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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 제18호

꿀팁상담소 : 죽거나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을까?

  • 정리 홍명교 편집실 미디어국장
  • 삽화 이재임
얼마 전 우리는 상담소를 열었다. 상담을 주로 맡는 나 비둘기 노무사, 온갖 살림을 맡아서 하는 고양이 총무, 말수 적지만 무지하게 똑똑한 꿀벌 변호사 이렇게 셋이. 다들 힘들다는 세상, ‘닝겐(인간이 아닌 동물, 외계인 등의 존재가 인간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인터넷 용어로. 일본어로 인간을 지칭하는 말)’들에게 작은 무기 하나씩 나누어주는 게 우리 소망이다. 잘 보이진 않지만 골목 앞에 간판도 달았다. 노동자꿀팁상담소! 
 
첫 손님은 앳된 얼굴의 노동자였다. 이제 스무 살쯤 됐을까? 쭈뼛거리며 말을 않던 그는, 좀 지나서야 이런저런 말을 꺼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아시죠? 고장 나면 바로 출동해서 수리하는 일을 해요.”
 
비둘기 : 알죠. 얼마 전 서울 구의역에서 사고 났었던...?
 
“네. 그거예요. 그 사고 나고 말이 많았잖아요. 대전이나 부산, 대구 지하철도 똑같은 식이거든요. 근데 아무 얘기가 없어요. 똑같이 문제가 있는데 왜 별 말이 없을까요? 이해가 안돼요.

일단 일하기가 너무 무서워요. 전 여기 취직한 거 백 번은 후회했어요. 현장이 위험해서 사고가 많거든요. 저희는 하청이잖아요. 임금 적은 것도 문제지만, 일이 너무 위험해요. 가끔 출동할 때 무서워서 다리가 풀릴 정도니까요. 왜 그런지 몰라도 스크린도어가 고장이 너무 잦아요. 툭하면 고장나고 툭하면 정비해야 하거든요. 근데 일하는 사람들은 적고요. 예전엔 지금보다 많았다는데 어떻게 된 게 지하철역은 늘어났는데 일하는 사람은 더 줄었어요.

그리고 고장 접수가 되면 1시간 안에 출동해서 수리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거든요. 이게 어쩔 땐 말이 안 될 때가 있어요. 2인1조로 일해야 되는데, 동시에 여기저기서 고장난 경우는 어떡하죠? 혼자 수리해야 되거든요. 그럼 몇 십 배는 위험해요. 사고도 생기고요. 작업할 때 지하철이 들어오는지 일찍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붙잡아줄 사람도 없어요.”
 
고양이 : 말이 안된다냥!

비둘기 : 지하철 운행 중에 수리하라니. 심각하네요. 바꾸자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노조에서는?
 
“글쎄요. 하긴 한다는데 씨알도 안 먹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하청이라서 조합원도 아니고요. 어디에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비둘기 : 회사는 일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책임이 있어요. 노동자가 다치지 않도록 안전 교육도 해야 되고, 위험한 작업을 할 때는 보호 장비도 지급하라고 되어 있어요. 규정을 체크해봐야겠지만 2인1조 근무는 꼭 지켜져야 해요. 그게 지켜지지 않는 조건이 만들어지면 이걸 갖고 동료들이랑 다 같이 얘기를 해야죠.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걸 그대로 두는 건 무조건 사측 책임이에요. 게다가 이건 생명이 걸린 위험한 일이잖아요. 작업할 때 차량이 오지 않게 운행을 중단시킨다든지 해야죠. 구의역에서도 그게 문제였거든요. 역에선 수리 중인줄도 몰랐대고. 2인1조를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불법이니까 요구해야 해요. 

대놓고 얘기하는 게 부담스럽거나 안 먹히면 다른 방법들도 있어요. 고용노동부에 진정 넣어서 산업안전 감독하는 제도도 있고, 언론에 익명으로 제보하는 것도 해볼 수 있겠죠?
 
“아… 근데요. 거기까진 어떻게 해볼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그 다음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불만을 얘기한 형님이 있었거든요. 첨엔 좀 바꾸는 것 같다가 나중에 계약기간 지나고 재계약을 안 해줬어요. 말 많다고 자른 거죠. 말짱 도루묵이에요.”
 
비둘기 : 맞아요, 그럴 거예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거,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건데 죄다 그딴 식으로 나온다니까. 어쨌든 일하는 사람이 원하는 건 수칙대로 안전하게 일하는 거, 인원이나 노동조건이 적절하게 지켜지는 거잖아요. 그게 상식인데 아마 사측은 큰 사고가 나거나 노동자들 힘이 세지지 않으면 무시할 거예요. 그래서, 너무 뻔한 얘기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들끼리 똘똘 뭉치는 게 중요해요. 

암튼 그건 좀 장기적인 얘기고, 일하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조치들도 있어요. 일단 다치거나 죽지 않고 일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잖아요. 그냥 조심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진짜 위험한 상황에서는 일을 멈출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란 게 있어요. 법이 잘 돼 있는 건 아니지만, 산업안전보건법 26조에 ‘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으면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되어 있거든요. 위험하다는 판단이 서면 윗사람한테 보고하고, 상급자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소극적이던 노동자들 생각도 많이 바뀔 수 있어요.

작업중지까지 못하더라도, 지난번처럼 그렇게 인원이나 규정, 열차 통제에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작업해야 하거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면, 무조건 규정 지켜야 하니까 둘이서 일하겠다고 해봐요. 그런 상황에서 관리자가 잘못된 지시를 한다? 증거로 남기는 것도 방법이에요. 통화 녹음을 해도 좋고, 문자메시지 화면을 캡쳐해도 좋아요. 그게 우리 총알이 되기도 하거든. 그걸 근거로 잘못된 지시에 대응할 수 있고, 만약에 불이익을 준다고 해도 승산있는 싸움을 할 수 있어요. 알겠죠?
 
“네! 정리하면 이런 건가요? 제보나 진정을 통해 외부에 알리기, 안에서 잘못된 규정이나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한 노력, 현장에서 당장 벌어지는 위험한 상황에서는 규정이나 법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갖고 요구하기? 더 강하게 하면 작업중지까지! 맞죠?”
 
비둘기 : 맞아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빠졌는데…
 
“동료들을 내 편으로 만들기!”
 
비둘기 : 맞아요~ 다들 겉으론 관심 없어보여도 사람이라면 무서운 건 마찬가지일 걸요. 찍힐까봐, 얘기해도 안 될 거 같으니까 숨기고, 포기하고 있는 거죠. 근데 몸으로는 알거든!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요. 우리가 특별히 불만쟁이가 아니라, 잘못된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거니까요. 알겠죠?
 
“콜!”
 
고양이 : 뿅!
 
묵묵히 듣던 꿀벌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 총무는 닝겐에게 꿀 한 숟가락을 떠먹여주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하청노동자는 꿀에 홍삼이 들었냐고 물었다. 힘이 쭉쭉 난다며! 앞으로 홍삼보다 더 힘이 되는 꿀팁상담소로 거듭나야겠다. ●
 
 
덧붙이는 말

*노동자꿀팁상담소는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실용적인 팁을 공유하는 코너입니다. 정리 : 홍명교(편집실 미디어국장) 삽화 : 이재임 자문 : 이규철(금속노조 서울지부), 이대우(금속노조 인천지부), 조영관(변호사), 김준우(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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