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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 제11호

영덕 주민들, 막무가내식 핵발전소 유치에 브레이크를 걸다!

  • 표영민 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무국장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투표 하지 말자!”, “녹색당에 속아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

버스가 영덕 근처에 진입하자마자 눈에 들어왔던 어이없는 플래카드 문구들이다. 박근혜 정권의 성공이 영덕 핵발전소 유치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녹색당은 창당준비위원회 기간까지 3년도 되지 않는데 잃어버린 10년은 어디서 나온 걸까? 11월 11일,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앞둔 영덕은 소리 없는 전쟁 중이었다. 아니, 주민투표 당일에도 찬성과 반대 측 모두 방송차를 크게 틀며 영덕시장 및 읍내를 다녔으니 정말로 조용한 전쟁은 아니었다. 

나는 ‘핵 없는 세상 광주전남행동’의 제안으로 11월 10~11일 이틀간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 지원을 다녀왔다. 투표를 진행하기 위해 이미 많은 환경운동단체·종교단체·경북지역 민주노총 조합원들·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지원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현재 반핵운동의 최전선인 영덕에서 주민들의 민주적 의사결정으로 핵발전소를 막기 위한 주민투표에 전국적 연대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대구에서 영덕으로 가는 시외버스에서 내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영덕 핵발전소를 유치하면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다는 영상이 나오는 광고차였다. 중앙정부에서 천문학적인 지역발전기금을 주고, 핵발전소로 인해 일자리가 창출되고, 일자리가 창출되면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허황된 주장들이영상을 채우고 있었다.

터미널 부근과 영덕읍내 곳곳에는 핵발전소 유치 찬반 플래카드가 도배되다시피 걸려 있었다. 대체로 찬성내용과 반대내용의 현수막들이 번갈아 걸린 곳이 많았다. 주민투표 지원 활동에 동행했던 온 환경운동 활동가가 “플래카드 회사들이 영덕에서 떼돈 벌었겠네”라고 농담할 정도였다.
 

주민 의사를 묻지 않은 반민주적인 핵발전소 유치

영덕에 핵관련 시설 유치를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1989년, 2003년, 2005년에 걸쳐 3차례나 영덕에 ‘핵폐기물처리장’을 유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때마다 영덕주민들은 유치를 막아낸 전력이 있다.

그러자 정부부처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이번 핵발전소 건설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공청회, 주민설명회 등 절차를 아예 삭제해버리고 막가파식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한수원이 주민들에게 한 발표는 오로지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영덕 핵발전소 건설계획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주민들에게 제대된 설명을 하거나 주민들의 의사를 묻거나 하다못해 설명회와 같은 형식적인 절차조차 없었다. 주민들로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주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이번엔 핵폐기물처리장이 아니라 핵발전소였다. 동해를 끼고 있는 영덕군은 주로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에 의한 수입과 특산품인 영덕대게, 송이버섯 판매 등이 주수입원인 농어촌 지역이다. 따라서 핵발전소가 들어오면 관광객 감소는 불을 보듯 빤하고, 농수산물 판매량도 줄어들어 주민들은 커다란 경제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암발생률이 높아지는 등 지역주민들의 건강도 크게 해친다는 것 또한 여러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문제가 된 사실이다.

이렇게 중요하고 민감한 사항을 단 한명의 의견도 묻지 않고 강행하겠다는 정부와 한수원의 행태가 과연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의심스럽다.

더 기막힌 사실은 영덕의 핵발전소 건설계획이 포함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발표된 때가 2015년 7월이었는데, 한수원은 이미 영덕에서 핵발전소 부지선정까지 마친 상태였다고 한다. 핵관련 시설 유치가 해당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여러 차례 무산된 경험들이 있기에 이번엔 아예 발표도 하지 않고 비밀리 추진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분노한 영덕주민들, 주민투표소로 오다

주민투표 당일 현장에선, 주민들을 무시하는 한수원의 행태에 대한 분노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것들이 시골이라고 완전히 무시하는거냐’, ‘나이 먹었다고 아무것도 모를 줄 아나’ 등 한수원을 향한 분노 섞인 고성도 들렸다. 주민들이 갖고 있던 저변의 분노가 주민투표 참여로 나타난 것이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된 주민투표에 투표소를 열자마자 주민들이 삼삼오오 주민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찾아왔다. 지역선거관리위원회의 지원을 일절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투표소는 천막으로 만들어야 했고 하필 비까지 간간히 내렸다. 거기에 투표소 위치도 자원활동가들이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명해야 했던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투표소에 끊임없이 찾아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였다. 대부분이 고령자인 시골에서 어떤 분들은 몸이 불편하신데도 가족의 부축을 받아 투표소를 찾았고, 시장이나 밭에 나가기 전에 들려서 투표하기도 하였다. 어떤 분들은 자원활동가들에게 연신 ‘감사하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분들도 있었고, 또 어떤 분들은 투표소에 빵이나 요구르트 같은 간식을 건네주고 가는 분들도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핵발전소 유치와 주민투표에 대한 영덕주민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수원과 어용단체들의 방해공작도 만만치 않아 투표소에서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민들은 투표를 한 뒤에도 아직 투표하지 않은 다른 주민들을 직접 데려오는 등 굉장히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했다. 자원활동가들은 더욱 큰 힘을 받고 열심히 주민투표 진행을 할 수 있었다. 
 

한수원과 찬성단체들의 치졸한 방해공작

주민투표 방해공작에는 가히 모든 수단이 총동원되었다. 주민들조차 알지 못하는 주민단체들(사실상 어용단체)의 명의로 된 플래카드가 곳곳에서 보였으며, 투표소가 있는 장소 주변은 아예 반대 측 현수막으로 도배되었다. 반대 측 현수막의 논지는 대체로 ‘불법투표’, ‘지역발전’, ‘외부세력 개입’, ‘박근혜 정부의 성공’ 등이었다. 

한수원 및 찬성단체들의 주민투표 방해 공작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민투표가 있기 전부터 주민투표를 하면 처벌받는다는 식의 거짓말과 협박을 일삼았다. 동시에 한수원에서는 주민들에게 쌀 20킬로그램 한 포대씩을 배급(?)해주는가 하면 알 수 없는 명목으로 주민들에게 단체관광을 보내주고 식사 제공까지 버젓이 진행하였다. 거기에 투표당일에는 투표소마다 2~3명씩 직원들을 배치하여 감시하고 사진촬영까지 시도했으며, 골목마다 돌아다니며 투표하지 말 것을 주민들에게 종용하고 다녔다. 
 

 

성공적으로 마친 주민투표, 앞으로가 중요하다!

각종 협박과 방해공작에도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는 전체 선거인명부 대비 투표율 60퍼센트를 넘겼고 핵발전소 유치 반대는 91퍼센트에 달했다. 주민투표가 성공리에 완료된 것이다. 치열한 준비과정을 봤을 때 당연할 결과였다. 이것이 영덕주민의 민심이었던 것이다. 

물론 한수원과 중앙정부는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2005년 전북 부안에서도 주민투표를 통해 핵폐기물처리장 유치를 무산시킨 바 있고, 지난해 강원도 삼척에서도 주민투표를 통해 핵발전소 유치를 유예시킨 사례가 있다.

이번 영덕 주민투표의 결과는 한수원과 중앙정부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반대로 핵발전소 유치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에게는 앞으로의 싸움들을 만들어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주민투표는 싸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인 셈이다.

나아가 지역을 넘어 탈핵운동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과 고민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까지 탈핵운동은 영덕, 삼척과 같이 핵관련 시설에 대한 신설 및 유치를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투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영덕과 삼척 핵발전소 건설 시도는 중앙정부와 정부부처에서 주도하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시발점이었다. 따라서 전국적인 반행운동을 통해 중앙정부를 압박하고 ‘한반도의 탈핵’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대중적 운동을 조직해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핵발전소 유치는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또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뿐이다. 

어떤 과정을 통한 탈핵인지도 중요하다. 에너지 체제의 전환은 시장과 기업이 아니라 에너지 민주주의(공공성)의 강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에너지에 관한 공적 소유와 민주적 통제, 참여가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의 힘으로 이런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주요한 과제가 되길 희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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