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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집
  • 2016/06 제17호

왜 우리가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가

재벌의 손실 전가에 맞서는 노동자운동의 과제

  • 박준도 사회진보연대 노동위원장
©금속노동자
 

일사불란한 공세

노동자의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는 정부대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포문을 연 건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다. 공기업은 6월까지, 준정부기관은 12월까지 도입하라는 정부의 강경한 입장 앞에서, 몇몇 공공기관은 노조 동의 없이 도입을 강행하기도 했다. 불법 논란과 사회적 지탄이 쏟아지자 고용노동부 장관은 “(성과연봉제 도입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식으로 운을 뗐고, 기획재정부 장관은 “노사합의를 거치지 않고 이사회 의결을 한 것도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취업규칙 개정으로 노동자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면, 그것은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는 게 법조계 상식이다. 하지만 정권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뒷수습은 기재부와 노동부가 할 테니 공공기관은 성과연봉제 도입을 밀어붙이라는 식이다.

‘노동자 때리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는 민간기업에서도 임금피크제 도입과 임금체계 개편이 차질 없이 진행돼야 한다며 <2016년 임금·단체교섭 지도방향>을 내밀었다. 사문화된 조항에 불과했던 ‘유일교섭’ 항목이나, ‘조합원 자녀 우선채용’을 문제 삼으며, 교섭을 앞둔 노동조합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2016년 임단협 과정에서 사업주들로 하여금 임금피크제 도입, 임금체계 개편을 시도할 수 있도록 기운을 몰아준 것이다.

기업주들은 영리하게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사항을 앞세워 교섭 첫 대면식에서부터 임금피크제 확대, 임금체계 개편, 복지조항 부분삭제 등을 주장하고 나섰다. 임단협 교섭 자리의 주객이 바뀐 것이다.
 

소리 없는 공격

한편, 노동조합이 없는 현장에서는 ‘소리 없는’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 취업규칙 변경과 근로기준법에 대해 노동자의 생존에 반하는 해석을 내놓은 고용노동부 방침을 현장에 확산시키는 것이다.

지난 4월 민주노총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영세사업장이 밀집되어 있는 7개 공단 23.7퍼센트의 노동자들이 지난 한 해 노동조건 악화를 경험했다고 한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경우 이보다 심각하다. 5명 중 2명(40.7퍼센트)이 노동조건 악화를 경험했고, 그 중 1명(19.9퍼센트)은 취업규칙 변경에 따른 서명까지 강요당했다. 다른 1명은 성과에 따른 임금 차등지급을 겪거나 수당을 삭감 당했다. 저성과자 징계(이른바 3진아웃 제도)가 도입된 곳도 4.7퍼센트나 된다. 저임금과 해고를 앞세운 공격이 소리 없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서울에 노무관리 컨설팅업체들이 몰려있는 것에서 기인한다. 세무사가 사업주들의 세금 절약을 위해 온갖 편법을 알려주듯, 이 업체들은 임금지급액을 줄이기 위한 편법들을 알려준다. 공휴일 연차휴가 대체, 휴업기간 연차 소비, 통상임금 산정 범위 축소, 정기상여금 지급규정 변경, 성과에 따른 임금 차등지급 방안, 포괄임금 지급, 근로계약기간이 명시된 근로계약서 교부 등 종류도 다양하다.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을 귀띔해 주며 사장들이 부당해고 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물량 감속에 따른 휴업기간 연차를 소비시켜 휴업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도록, 불법파견 논란에 휩싸이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들을 알려주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현실의 명목임금 인상분은 말짱 도루묵이 된다. 법정최저임금이든, 개별 협상을 통해 인상시킨 연봉이든 위 방법 중 한두 가지만 동원해도 임금총액은 절감되고, 경우에 따라 개인당 임금지급액(시간당 임금)도 줄일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된다면 취업규칙을 사업주가 변경할 수 있다”며 요건 완화를 언급하는 사이, 이 말을 재빠르게 알아들은 사업주들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강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고용노동부가 법에 대한 반노동자적인 행정해석으로 바람을 잡으면, 노무컨설팅업체는 사업주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사업주는 이를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수도권에서 지역공단으로 확산되어 전국의 중소영세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미친 것이다.

 

손실은 노동자에게

박근혜 정권은 더 큰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 상시적 구조조정,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모든 손실을 떠넘기는 것 말이다.

지난 20여년 간, 정리해고 요건은 계속 완화되어 왔다. 1998년 처음 제정됐을 땐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와 ‘도산회피’, ‘객관적 합리성’만 전제했었는데, 지금은 경영합리화를 위한 ‘장래대비설’과 감량경영설’까지 인정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른 기업회생 과정에서의 고용조정(정리해고) 역시 폭넓게 인정된다. 기업은 회생하는데 노동자 고용승계는 상대화되는 것이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른 워크아웃(기업개선)은 더 혹독하다. 기업개선계획 약정에는 인원 구조조정과 재무구조 개선계획을 포함할 것을 명시하고 있고, 목표에 미달할 경우 총 인건비 조정 등 추가이행계획까지 포함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융채권단이 노동조합에게 사실상 ‘백기투항’ 합의서를 요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정권은 이를 기반삼아 대기업에 대한 신용평가를 정례화하고 C나 D등급을 받은 부실기업에 상시적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A나 B등급 정상기업에 대해서도, 인수합병 등 사업재편을 독려하는 ‘사전적’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 2월 과잉·중복투자에 따른 기업부실을 사전에 차단하고 기업경쟁력을 제고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기업활력제고를위한특별법’을 제정했고, 이에 따라 석유화학과 철강업종에서 사전적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는 해고 대상인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보장, 지원책이 없다. “정부가 재취업과 직업능력개발을 지원할 수 있다(31조)” 정도의 노력조항만 있을 뿐이다. 부실기업의 개선, 회생과정에서의 손실과 인수합병과 사업재편 과정에서 예상되는 손실 역시 노동자들이 떠안아야 한다.
 

성과는 채권단과 재벌기업에게

구조조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용승계의 거부, 고용협약 파기에 따른 인원구조조정에는 물량 하도급(원하청)계약의 파기, 계약기간의 종료에 따른 인원조정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암묵적인 고용조정이 그것이다.
근로계약관계가 임시적이고 불완전하기에, 사업주들은 노동력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당사자임에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심지어 비정규직 고용은 기업구조조정에서 쟁점화 되지도 않는다. 고용조정 규모가 커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된다 하더라도 이들은 대상이 아니다. 고용유지지원금이나 고용보험 기간연장 등은 그나마 정규직 대상으로만 지급된다.

반면 금융채권단은 채권자협의회의 구성원으로서 기업회생 과정에 개입한다. 워크아웃 과정은 채권단이 주도하는 것이니 말할 것도 없다. 인수합병 등 사업재편 과정에는 채권자보호절차에 대한 특례조항이 있어 손해에 대한 이의도 제기할 수 있다.

최고경영자들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도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 기업오너나 경영인이 회생절차에 들어간 기업의 법정관리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워크아웃 과정에서 빚의 일부를 탕감받기도 하고, 심지어 사업재편에 들어가면 이를 오너가 주도할 수 있다. 또 산업통상자원부 사업재편계획심의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으면 각종 세제혜택도 받을 수 있게 된다. 재벌들이 경영을 확장하고 지배력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어떠한 권한도 인정받지 못한다. 회생과정에서 임금채권을 근거삼아 관계인 집회, 채권단 협의회 등에 참여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임금은 공익채권’이란 구실로 참여가 배제된다. 기업개선이나 사업재편과정에서는 형식적 발언권조차 없다. 인수합병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사업재편계획안이 노동자의 이익이 침해되는지 대신 살펴봐주는 게 전부다.
 
 
 

기업 경영 손실의 책임은 재벌이

오늘날 조선업의 위기란 사실 독점재벌들의 조선업 현대화 실패에서 비롯됐다. 박근혜 정권은 기술축적과 숙련 형성보다는 하청노동자를 자르고 구제금융을 받아 손실을 보존하는 재벌들의 해법을 지지해왔다. 1997년, 2008년에 이어 2016년에도 노동자에게 손실을 강요하고, 국민경제를 담보로 하는 재벌성장 정책을 다시 시도하려는 것이다.

IMF 때도, 미국발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재벌은 정부와 채권단 뒤에 숨어 경영실패, 과잉투자에 따른 책임을 제대로 져본 적이 없다. 이번에는 누가 이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책임자들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간 부당하게 취득한 배당금, 불법·편법으로 증식한 재산을 환원해야 한다. 고용안정이나 기업정상화를 위해 사재를 출연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전제로 재벌개혁의 밑거름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선 재벌들이 노동조합과의 교섭에 나오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2016년 기술서비스 노동자들의 공동투쟁, 자동차 그룹사(부품사) 노동자 공동투쟁, 건설플랜트 중앙교섭 투쟁, 대형마트 화물노동자의 투쟁이 그 동력이다. 노동자운동은 이 싸움들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하는 재벌체제를 바꾸기 위해 더 많은 노동자들과의 단결이 필요하다. 노조가입 사업은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공급사슬을 따라, 노동자들이 실제로 자기조직할 수 있는 방법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손실에 대한 재벌 책임을 묻고, 이를 근거로 교섭 테이블에 재벌들을 앉히고, 재벌에 맞설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의 우산 아래 모으는 것. 이것이 재벌천국-노동자지옥으로 전락한 오늘의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는 싸움의 출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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