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보다
- 2016/04 제15호
사실의 힘
《세월호, 그 날의 기록》
1
이 책은 직접 인용하는 기록만 2281개다. 거의 매 문단 끝마다 인용 각주가 붙어 있다. 이런 수고를 하면서 저자들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그날, 실제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수많은 기록들 속에서 우리가 간과했던 것은 무엇이며, 그게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데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1부 <101분의 기록>은 르포(기록 문학) 형식을 빌려 당일 상황을 재현했다. 2014년 4월 15일, 어쩌면 세월호는 운항이 취소될 수도 있었다. 안개가 짙게 낀 날이었다. 하지만 단원고 학생들은 수학여행이 취소되기를 원치 않았고, 청해진해운은 평소보다 많은 화물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안개는 걷혔고, 세월호는 인천항을 출발했다. 하지만 이들의 소망은 곧 어긋나고 만다. 다음 날 아침 8시 49분,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가라앉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원인을 제공한 자와 피해자의 행동은 극명하게 나눠졌다. 단원고 학생들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억누르면서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렸다. 반면 청해진해운은 화물 적재량, 접대 기록 등을 숨기기 바빴다. 1시간여 남짓 시간이 흘렀지만 구조의 손길은 닿지 않았다. 선원들은 이미 탈출했고, 해경은 현장에 도착해서는 구조 임무마저 최선을 다 하지 않았다.
뒤늦게 탈출을 시도한 승객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했다. 누군가는 밀어주기도 하고, 누군가는 놓치기도 했다. 저자들은 공포에 휩싸여 울고 있는 사람들을 서로가 어떻게 지지했는지, 다섯 살 난 아이의 생명을 승객들과 단원고 학생들이 어떻게 보존하려 했는지, 옮겨놓았다. 그리고 안타깝게 사라져간 이들의 이름을 먹먹하게 적어놓았다.
2016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저자들은 자신들이 밝혀낸 사실들을 1부 <101분의 기록>에 온전히 그려냈다. 이 책의 백미다.
2
2014년 4월 19일 토요일, 더 이상 생존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18일 처음 선내 진입에 성공했지만 이내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하고 말았다. 시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300여 명의 실종자들을 이 나라가, 우리가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것을 실시간으로 그대로 지켜본 것이다.
정부와 구조기관들은 우왕좌왕했다. 해경이 구조에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정황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300여 명의 사람들을 구조하지 못한 것까?
서해해경청장, 목포해경서장 누구도 현장 지휘의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신고 및 의사 전달, 지휘명령 체계는 엉망진창이었다. 해경은 정보 파악과 소통 등 기본 조치도 제대로 못했다. 해경123정은 어업지도선 보다 구조에 소극적이었다. 여기다 청와대의 ‘영상 보고’ 지시는 구조 업무에 혼선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심지어 해경은 쏟아질 비난을 줄이기 위해 기록을 조작하기 시작했다(2부).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잡혔다면 억울한 죽음을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적절한 순간에 탈출 선내방송만 했었더라도,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 퇴선 명령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 받고 그걸 실행했더라도 상황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아니, 해경이 뒤늦게라도 혼란을 수습하고 퇴선 지휘를 하며 적극적으로 구조했다면 피해를 줄이기라도 했을 것이다. 9시 45분경에라도 그걸 수행했다면…(5부).
《세월호, 그날의 기록》의 저자들은 매 순간 순간의 시간과 상황을 기록하며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원망을 그대로 옮겨놓았고, 그 원망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음을, 현실 가능한 바람이었음을 입증한다. ‘당신의 절규가 맞다. 틀린 말이 아니다. 맞다.’ 그렇게나마 위로의 뜻을 전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날,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절망적인 기억을 보듬을 수 있도록, 유가족들과 시민들을 위로한다.
3
사실관계의 정리가 가지는 힘이 있다. 잘잘못을 따지거나 어떤 바람을 투영하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만으로 사태를 분명히 보여줄 수 있다. 또 침몰 원인의 사회구조적 배경을 분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도대체 얼마나 과적을 한 것이고, 운항관리자들은 단속을 한 게 맞기는 한 것인가? 세월호는 왜 복원성이 취약한 것이었으며, 어떻게 이런 배가 인천-제주를 운항할 수 있었는가? 세월호 침몰의 원인은 무엇인가?
청해진해운은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실소유주인 유병언과 그 일가족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다. 인천-제주 운항을 독점하기 위해 무리하게 증선했고, 그렇게 도입한 세월호는 유병언 일가들의 요구에 따라 어처구니없이 개조되었다. 복원성이 엉망이 되고 경제성도 없었지만, 유착관계에 있던 한국선급과 인천해경은 세월호의 운항을 승인해주었다(4부).
세월호는 상습적으로 과적 운행을 했다. 얼마나 되는지 스스로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화물을 실었으며, 운항관리자는 관행에 따라 4월 15일 세월호의 과적도 묵인했다.
4월 16일 세월호는 필요 이상으로 우(右)턴을 하게 된다. 증·개축과 과적으로 인해 복원성이 약화될 대로 약화된 배는 기울었고, 고박되지 않은 화물은 쏠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배 형태의 특징상 바닷물 침수마저 빨리 진행되면서 세월호는 급격히 침몰했다(3부).
4
세월호가 필요 이상으로 우회전을 하게 된 정확한 이유는 배를 인양해봐야 알 수 있다. 이를 제외하면 침몰의 원인이 거의 밝혀진 셈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불법적인 증개축과 운항 승인, 과적 관행을 근절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의 원인을 제공한 사업주들에 대해 충분히 책임을 묻고 처벌을 한 것인가? 살인죄를 물어야 한다면 정작 이들에게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이 책은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러한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는 자료가 미처 확보되지 못했거나 시간이 불충분해서일지도 모른다. 해답을 찾아 이어가야 할 텐데, 어떻게 가능할까?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발행된 이 책이 반갑기도 하고, 마음 한편을 무겁게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아직 분명한 대답을 찾지 못해서다. 지금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객관화하고, 안전한 사회를 향한 근본적인 전환점을 찾아 한걸음 내딛고 있는 것인가? 지금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것이 전부일지 모른다. “그래야 한다.” ●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전망, 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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