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평화
- 2014/11 창간준비1호
인도주의적 공습은 없다기사읽기
긴급 워크숍 ‘미국의 새로운 중동 전쟁? 중동은 어디로?’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의 제목은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 메시지의 발신자는 최근 이라크-시리아 등지에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 세력인인 이슬람국가(IS)*[1]이다.
이 4분짜리 영상으로 인해 미국은 다시금 중동에서의 전쟁에 깊숙이 발을 들이게 되었다. 9·11테러 13주년을 하루 앞둔 9월 10일(이라크에서 완전 철군한 지 2년 8개월),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에 이어 시리아에서도 IS 격퇴를 위한 공습을 감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라크에 대한 공습은 먼저 시작되었다. IS가 세력을 확장해 바그다드 방향으로 진격하자, 미국은 이라크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미 올 8월부터 이라크에 ‘제한적 공습’을 했다. 9월 23일부터는 ‘전면적 공습’이 시작되었다.
시리아 공습은 IS의 메시지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대답이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서막일지도 모른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직까지 지상군 투입 계획을 부인하고 있으나 미국 내에선 시간이 지날수록 공화당 강경파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 형국이다.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테드 크루즈는 ‘융단폭격을 통해 이라크-시리아 지역을 석기시대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일삼는다. IS는 제임스 폴리 이후에도 미국인 기자 스티븐 소틀로프, 영국인 구호단체 활동가 데이비드 헤인즈와 앨런 헤닝까지 세 명의 인질을 같은 방식으로 살해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 희생자로 시리아에서 구호 활동을 하다 붙잡힌 스물여섯 살의 미국인 청년 피터 캐식을 지목했다.
서로를 자극하는 극단적인 말과 행동이 점점 더 증폭되며 오간다. 치킨게임처럼 아슬아슬한 상황에 놓인 중동 정세를 이해하기 위하여 10월 10일, 반전평화연대(준)**[2]에서 긴급 워크숍 ‘미국의 새로운 중동전쟁? 중동은 어디로?’를 열었다. 워크숍에서는 네 명의 활동가가 글을 발표했다. 발표자들은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이번 시리아 공습을 분석했다. 경계를넘어에서는 2003년 미국의 점령 이후 이라크-시리아 지역의 ‘역사’를, 사회진보연대는 공습의 향후 ‘전망’을, 노동자연대는 시리아에 대한 공습이 갖는 ‘모순’을, 보건의료단체연합에서는 내전과 공습으로 중동 민중의 삶이 무참히 파괴당하는 ‘실상’을 각각 다루었다. 먼저 각 발표의 요지를 다음 면에 소개한다.
경계를넘어 최재훈 “IS는 ‘테러와의 전쟁’이 낳은 괴물이다”
꿇어앉은 시아파 주민 수십 명의 뒷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에도 ‘알라 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는 IS 단원들의 모습에 전 세계인들이 경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이슬람주의 세력은 정확히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이 낳은 괴물이다.
이슬람에서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은 140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러나 종파 갈등이 항상 중동 민중들의 생활세계를 압도하는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세속주의(정교분리) 경향이 우세하고 종파 차이에 대한 관용이 강한 시기도 분명 존재했다. 지금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불거진 극단적인 종파 갈등은 미영 연합군이 점령을 유지하기 위해 ‘종파 간 분열과 갈등’이라는 위험한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며 미영 연합군은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하층민이던 시아파와 쿠르드족을 지배층으로 끌어올리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수니파들을 무력화시켜 점령에 대한 저항을 억누르고자 했다. 사담 후세인의 바트당에 가입하여 일자리를 얻었던 수니파 주민들은 미영 연합군의 점령 하에서 한순간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점령 이전까지 한 동네에서 이웃으로 어울려 살던 시아파와 수니파 주민들은 몇 차례의 내전을 거치며 얼굴조차 보지 않는 적대적인 원수가 되어 갔다.
오늘날 수만 명에 달하는 수니파 청년들이 IS에 가담하고 있는 현실은 여기에 기인한 것이다. 오랜 내전에 지치고, 지금의 불균형 구도에서는 영원히 빈곤과 차별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젊은이들이 IS에 자신의 인생을 내맡기고 있는 것이다.
사회진보연대 임필수 “미국의 공습은 종파 갈등을 증폭시킨다”
현재 미국은 IS에 대한 공중폭격만을 진행하고 있다. IS와 실질적인 전투를 벌이는 것은 이라크-시리아에서 IS와 싸우는 여러 세력들이며 미국은 이들 군대를 지원한다. 오바마 정부가 지상군은 투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지역은 시리아보다는 이라크이다. 이라크에서도 석유의 대부분이 생산되는 남부 지역이 중요하다. IS가 당장 이라크 남부로 진격하지 않는 한 미국은 최대한 지상군 파병이라는 모험 없이 IS와 싸우고자 할 것이다.
문제는 이 전략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라크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대리전을 수행할 만한 무장력을 갖춘 군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이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과 IS 양자에 승리를 거두려면, 이미 약화될 대로 약화된 반군 민병대를 해체하고 병사를 모집해 새로운 군대를 양성해야 한다. 이는 상당한 돈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계획이며 성공 여부도 불투명하다.
미국의 공습은 미국이 이라크 정부(시아파)와 시리아 아사드 정부(친시아파)를 지지하고 반대 세력을 공격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이라크와 시리아의 종파 갈등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결국 미국의 공습은 부패한 독재 정권에 대한 아랍 민중들의 분노,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강화시킬 뿐이다.
노동자연대 김종환 “시리아 민중의 적이 셋으로 늘어났다”
중동 전체로 민주화 혁명이 번지던 2011년 봄, 시리아에서도 아사드 독재정권에 맞서는 시위가 촉발되었다. 시리아의 대중 봉기는 2000년대 아사드 정권 들어 더욱 가속화된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지녔다. 중동에서 신자유주의의 도입은 국가가 기본적인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던 전통을 무너뜨렸다. 결과적으로 실업자를 포함한 빈곤층이 급증하여 대중들의 불만이 높았다. 그러나 미국, 러시아, 중동 각국이 다양한 반군 세력 및 정부군에 군사적 지원을 포함한 개입을 시작하며 대중시위는 내전으로 비화되었다.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난관에 부딪히자, 좌절한 사람들의 일부는 IS의 군사력에 매력을 느꼈다. 지금 IS는 이라크-시리아에서 ‘시아파와 서방이 손잡고 수니파를 학살하는 것에 맞서는 세력’임을 자임하고 있다. 미연방수사국(FBI)조차 공습 이후 IS의 인기가 올라갔다고 인정했다.
미국의 개입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사회 변혁을 위해 힘쓰고 있던 활동가들을 곤란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시리아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적이 둘(아사드 독재정권, IS)에서 셋(미국)으로 늘어난 셈이다. 미국은 즉각 이 지역에서 손을 떼야 한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채민석 “사망자가 이미 20만 명에 육박한다”
3년이 넘게 지속된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는 사망자 수가 20만 명에 육박하는 ‘거대한 도살장’이 되었다. 신경계 마비나 발작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화학가스 공격, 드럼통 안에 폭발물과 금속 조각들을 채워 만든 ‘통 폭탄’은 내전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민간인들도 무차별 살상의 희생자로 만들고 있다.
전쟁을 피해 3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시리아를 떠났다. 특히 시리아의 부모들은 미성년자인 자녀들을 주변국으로 떠나보내고 있다. 주변국으로 떠난 시리아의 청소년들은 저임금 노동, 교육의 중단, 심리적 트라우마, 성적 학대와 같은 문제들을 겪는다.
시리아에서는 반군과 정부군 모두가 의료기관이나 의료진을 군사 작전의 목표물로 삼고 있어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는 일조차 쉽지 않다. ‘인권을 위한 의사회(PHR)’는 분쟁 발생 이후 총 561명의 의료진이 사망했고 그 중 252명(44.9퍼센트)은 표적 살해되었다고 보고했다.
미국의 시리아 폭격은 시리아 민중의 생명과 건강을 더욱 위협한다. 미국의 공습에 대한 IS의 대응은 민간인 속으로의 ‘해산전략’이다. 이대로라면 민간인들의 피해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중동에 대한 미국의 ‘인도주의적 개입’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인도주의적 공습이라는 모순
공습은 우선 IS가 외국인 인질들을 참수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미국의 공습 결정 이후 IS는 보복이자 경고의 의미로 계속해서 인질들을 참수하고 그 동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또한 폭격은 이라크-시리아 지역 민간인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최근 4개월 간 이라크에서는 공습으로 인해 매달 2000여 명이 넘는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시리아 공습은 시리아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의 피해를 낳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의 공습이 중동 지역에서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세력의 득세를 돕는 아이러니한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IS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 아랍 민중들도 미국의 공습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를 잃으면 분노하여 IS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이라크-시리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파 갈등의 씨앗을 뿌린 미국이 다시금 이 지역에 개입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미국의 공습은 더 큰 불안정과 분열을 낳는 장기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2000년대 초,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공언하기 위해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발명해 냈다. 그밖에도 ‘예방적 차원의 선제공격’ ‘평화 유지와 재건’ ‘민주주의의 확산’ 등의 뒤틀리고 역전된 말들이 중동에서의 전쟁에 동원되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공허한 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말이기도 했다. 2014년, 그 망령이 ‘인도주의적 공습’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 모순을 똑바로 대면하지 않는 한, 세계는 극단적인 폭력의 한가운데에 있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나
미국의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 한국은 새로운 중동 전쟁을 피해갈 수 있을까? 한국은 이라크 전쟁 파병으로 인해 2004년 김선일 씨가 이슬람 무장세력의 직접적인 표적이 되어 살해당한 끔찍한 경험을 했다. 우리가 IS의 등장, 미국의 이라크-시리아 공습이 던지는 물음에 성실하게 대답해야 할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번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의 시리아 공습이 결정된 바로 다음 날인 9월 11일에 인도주의적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12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400만 달러의 추가 지원 계획도 밝혔다. 중동에 폭력의 악순환을 부르는 전쟁을 지지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 복구 비용을 주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보다는 공습과 전쟁 자체를 막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미국의 전쟁과 그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에 동시에 반대하는 반전평화 운동이 다시금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