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6/03 제14호
<베테랑>은 끝나지 않았다
새벽 2시,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이 씨는 사무실로 오라는 회장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피곤한 마음에 집에 가고 싶었지만 회장 아들이 부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회장 아들은 사무실에 불러놓고 잡스러운 대화를 할 뿐이었다. 이 씨는 술도 얼큰하게 한 잔 했겠다 이참에 잘 보여야겠다 싶어서 ‘손자 때가 되면 큰 기업으로 성장하겠네요’라고 한 마디 건냈다.
그러자 회장 아들은 자기 때 큰 기업이 될 건데 왜 손자 때가 되어야 하냐고 격분하여 폭행을 시작했다. 이종격투기에서나 볼 법하게, 회장 아들은 이 씨를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고서 한참 동안 주먹세례를 퍼부었다. 그러고도 분이 덜 풀렸는지 식칼을 가져와서 자해 시늉까지 하면서 온갖 욕설과 협박을 했다.
이틀 뒤 금속노조 사무실로 찾아온 이 씨는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왜소한 체격의 전형적인 사무직 노동자로 보였다. 그가 내민 사건 당일 폭행당한 사진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이 끔찍했다. 새벽에 불려가 폭행을 당하는 시간 동안 그가 느꼈을 생명의 위협과 공포는 과연 어떠했을까?
그와 상의 후 회장 아들을 경찰에 폭행죄로 고소했다. 그러자 회사는 ‘사직처리 완료 안내’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그 내용에는 무고죄와 업무방해까지 언급하고 있었다. 이 씨를 겁주어 고소를 취하시키려는 회사의 뻔뻔한 속내가 엿보였다.
매 맞고 쫓겨난 것도 억울한데 해고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곧바로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접수했다. 그리고 이유서, 답변서, 추가이유서 등 지루한 공방을 거쳐야만 했다. 이 또한 이 씨에게 그 날을 기억을 떠올리게 했을테니 무척이나 참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결국 한 달여 뒤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고, 원직복직 명령과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이 지급되었다. 하지만 그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한동안 다른 회사 생활을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SK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 최철원 SK M&M 사장이 2010년 1인 시위를 하던 화물연대 노동자를 야구방망이로 때린 뒤 맷값으로 2000만 원을 준 사건이 있었다. 작년에 1300만 명이 관람해 흥행 1위에 오른 영화 <베테랑>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제작되었다. 이건 과거의 이야기도 아니고 영화 속 이야기도 아니다. 노동자를 종 부리듯 하는 현실은 2016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