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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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 제6호

혁명의 맛을 찾아서

가쓰미 요이치, 《혁명의 맛》

  • 이상철 민주노총 강원본부 대외협력부장
마오쩌둥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 지난 20여 년간 중국 인민들을 사로잡은 입맛은 단연 ‘매운맛’이다. 이를테면 ‘베이징 맛집 베스트 10’ 안에 드는 음식점 대부분이 쓰촨(사천)요리나 쓰촨식으로 맵게 만든 지방 요리라고 하니, 마오쩌둥이 살아나 현대 중국의 음식문화를 본다면 대단히 혁명적인 정세라 판단할지도 모르겠다. ‘매운 맛’과 ‘혁명’의 상관관계를 일찍이 간파한 그는 역시 8억인민을 지도할 능력을 갖춘 비범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예리한 식견을 이해하지 못하는 범인들은 반문할 것이다. 매운 음식이 혁명적이라면, 안 매운 음식은 반혁명적인가. 예컨대 중국집에 가서 짜장을 시키면 우파, 짬뽕을 시키면 좌파란 말인가. 교동 짬뽕을 좋아하면 혁명가, 나가사키 짬뽕을 좋아하면 개량주의자인 것인가. 
 
웃고 넘길만한 농담 같은 질문은 때로 사회와 역사 발전에 관한 심대한 문제의식과 연결되기도 한다. 《혁명의 맛》은 청나라 전후 시기와 본인이 직접 경험한 사회주의 혁명기의 중국을 ‘혀’로 탐사한 책이다. 베이징의 명물 ‘베이징 카오야’(북경오리요리)의 탄생비화나, 청나라 건륭제가 만주족과 한족의 민족 융합을 꾀한 정치요리 ‘만한전석’에 관한 설명은 흥미롭다. 특히 서태후가 권력을 거머쥔 뒤 진행된 황실의 타락과 부패는 역설적으로 중국요리의 비약적 발전을 이뤘는데, 맛집 블로그나 요리 프로그램이 대 유행 중인 최근 한국 사회의 모습이 무엇을 반영하는 건지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그러다 사회주의 혁명을 거쳐 ‘문화혁명’ 시기로 접어들면 조금 복잡한 기분이 든다. ‘혁명적 음식’들은 입맛을 돋우는 것과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혁명 시기 제창된 구호 중 하나였던 ‘이쿠쓰톈’(행복할수록 고생했던 지난날을 잊지 말자)의 일환으로 쌀겨, 잡초, 상한 야채 이파리 같은 질 낮은 재료로 일부러 맛없게 만든 음식, 그걸 먹으며 지주에게 착취당했던 가난한 농민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 ‘혁명적 음식’의 정체였다. 
 
저자가 체험한 당시의 중국은 이해하지 못할 일들로 가득했고, 그러한 시각에서 지금은 사라진 중국의 맛에 대한 비애감이 책 곳곳에 진하게 배어있다. 아쉬운 것들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는 일은 어렵지 않으나, 그것을 현재화해서 다루는 일은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다. ‘혁명의 맛’은 그래서 문화혁명이 남긴 쟁점과 연결될 수밖에 없고, 여전히 난감한 질문들과 마주해야 하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혁명 이후 국가장치로 전환되는 당 조직, 제어되지 않는 ‘공포스러운 대중’의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지난하더라도 고민을 회피할 수는 없다. 그 고민, 이왕이면 매운 걸 먹으면서 하자.
 

 같이 보면 좋은 책

 

백승욱, 살림출판사,《문화대혁명 - 중국 현대사의 트라우마》

 

 
덧붙이는 말

'책 이어달리기'는 《오늘보다》의 독자들이 권하고 싶은 책 한 권을 가지고 짧은 글을 쓰는 코너입니다. 글을 쓴 사람이 다음 호에 책을 소개할 사람을 지목하는 '이어달리기'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다음 주자는 황산하 사회진보연대 후원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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