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5/07 제6호
근로기준법만 알아도 세상은 바뀐다
근로기준법,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나는 전태일이 떠오른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외치며 제 몸에 불을 그었던 청년. 1970년의 일이었다. 그런데 인천의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나다 보면 지금이 21세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다. 얼마 전 전국 8개 지역 16개 공단에서 실시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 회사 중 90퍼센트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노동자가 34.8퍼센트, 연차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노동자가 61.7퍼센트, 근로계약서를 교부 받지 못한 노동자가 61.7퍼센트에 달한다. 실제로 근로기준법의 기본 내용을 모르는 노동자가 너무 많고, 그 사정은 사장님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적인 노동법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노동법 기초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다면 노동자로 살아가든 아니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체감도가 전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대안학교 ‘꽃피는 학교’에서 12학년(고3)을 대상으로 청소년 노동법 교육을 하게 된 것은 지인의 소개 때문이었다. 사회문제에 대한 접근성이 비교적 높은 대안학교 학생들에게도 근로기준법은 생소한 내용이었다. 아직 노동을 경험해보지 않은 청소년에게 노동법 교육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기에 현실에서 벌어지는 노동문제와 노동의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재미있었던 점은 학생들도 학생들이지만 함께 강의를 듣는 선생님의 반응이 뜨거웠다는 것이다. 직장인으로 살아가다 나름의 뜻을 품고 대안학교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노동법 교육을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하긴, 나름 대기업에 다니는 나의 친구들도 야근수당 외에 노동자로서 어떤 권리가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인천 남동공단에 한 달 동안 2명이 과로사한 아모텍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12시간씩 주야 맞교대로 휴일 없이 일하는 회사였다. 고(故)임승현씨는 죽기 직전 3개월 동안 단 하루 연차를 사용하고 휴일 없이 일했다. 이 일이 알려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지만, 같은 일을 함께한 동료들에게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챙겨야지’, ‘그러게 매일 같이 술을 먹더니만’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저녁과 휴일 없는 삶이 이들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했던 것이다.
아모텍에서 과로사한 두 노동자는 산재 인정을 받았다. 그렇게 일하다 죽은 것이 업무 때문이라는 걸, 그렇게 인정받기 힘들다는 산재로 승인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노동자들이 알았다면, 화라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30여 명이 한 학급인 고등학교에서 본인이 노동자가 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을 물어보면 한두 명 정도가 손을 든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자로 살아간다. 노동법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 상식이자 교양이다. 근로기준법만 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도 많은 것이 바뀌기 시작할 것이라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