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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 제3호

찰스 페로의 시스템 사고이론을 세월호에 적용해본다면?

해양운송 사고의 구조적 원인과 예방 방안

  • 이진우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모든 생명에게 안전은 본질적인 문제이다. 특히 인간은 자연재해나 다른 동물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문화와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따라서 안전은 인간 문명 활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에는 자연 재난에 국한되었던 안전에 대한 위협이 현대사회로 오면서 인적 재난(대형화재, 가스폭발, 붕괴, 오염사고, 비행기 사고), 사회적 재난(에볼라유행 등 질병 확산, 통신마비, 금융위기) 등으로 확산되었다. 현대사회의 위험과 안전의 초점은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위험 자체로 옮겨져 갔다. 즉, 현대사회는 위험을 극복하거나 피하는 사회가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위험은 일상화되었지만, 재난의 결과는 대형화되고 복합적으로 전개된다. 전기, 철도, 정보통신망 등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산업과 일상을 가능케 하는 인프라가 대형기술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시스템 자체가 상호작용적인 복잡성과 연계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안전에 대한 접근법은 그 이전과는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 
 
 

대형기술시스템의 안전 이론

대형기술시스템의 안전에 대한 이론 중 대표적인 것이 고신뢰조직론과 정상사고론이다. 와익이 제시한 고신뢰조직론은 위험한 기술이라도 조직 디자인과 관리를 통해 안전한 작동과 시스템이 가능하다는 낙관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시스템과 사회조직의 복잡성과 불예측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찰스 페로가 주장하는 정상사고론은 ‘상호작용적인 복잡성’과 긴밀한 ‘연계성’이라는 시스템의 속성에 따라 ‘정상 사고’ 혹은 ‘시스템 사고’라는 것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시스템 사고는 우연한 사고가 전체 시스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고, 이를 통제하기 위한 체계전체에 대한 이해나 정보가 부족하며, 사고 와중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치명적이다. 따라서 장애 범위가 부품·장치에 국한된 사건과 달리, 시스템 사고는 흔하지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참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찰스 페로의 ‘시스템 사고’ 개념

시스템 사고에서 복잡성은 시스템 내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또한 불가피한) 상호작용의 증가로 발생한다. 정상적인 생산순서에 따라 근접한 시스템 요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단선적 상호작용’과 달리, 정상적인 생산순서를 벗어난 요소들 사이에 발생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은 운용자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대표적 단선시스템은 자동차 조립라인 등의 일반 제조업이고, 복잡한 시스템의 대표적인 경우는 원자력발전소이다. 자동차 조립은 이상이 있을 때 라인을 멈춘 후 처리가 가능하지만, 원자력발전소는 어느 부분을 감시하기 위한 장치의 고장 등으로 전체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연계성은 두 요소 간 완충장치 혹은 여지가 없어 한 요소에서 발생한 일이 다른 요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느슨한 연계’는 시스템의 특정 부분들이 고유한 논리나 이해관계를 따를 수 있도록 허용하여, 장애나 충격 대응에서도 안정성을 해치지 않고도 변화 압력을 감당할 수 있게 한다. 반면, ‘긴밀한 연계’는 그런 행동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고, 혼란에 신속 대응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연계성이 긴밀한 경우는 제약, 제빵 등의 연속 가공 공정이 예가 될 수 있고, 느슨한 연계는 단일 목적 기관인 우체국이나 대학 기관 등이 그 예이다.
 
복잡한 상호작용과 긴밀한 연계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시스템은 시스템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원전, 핵무기, 유전자 재조합, 화학공장 등이 그 예이다. 특히, 핵무기, 원전은 합리적 편익보다 불가피한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폐기해야 할 시스템으로 분류된다. 반면 앞으로 살펴볼 해상운송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거나 편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상당한 노력을 들여서 위험성을 줄여야 할 시스템이다. 하지만 시스템의 상호작용과 연계성 모두를 낮추는 것만이 시스템 사고의 해결방안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시스템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한 측면의 연계성은 높이고, 다른 측면은 연계성을 낮추는 방식으로 조정도 가능하다. 또한 각 시스템마다 상호작용과 연계성의 성격이 다르고, 둘의 속성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기에 이 둘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해상운송 시스템의 상호작용과 연계성

찰스 페로의 상호작용/연계성 차트에 의하면, 해상운송 시스템은 연계성 측면에서는 긴밀한 편이고, 상호작용은 상대적으로 단선적인 시스템이다. 하지만 상호작용과 연계성의 정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와 그것을 둘러싼 구조에 의해 유동적으로 결정된다. 
 
해상운송 시스템에서 생산압력과 선내조직은 지나치게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선주의 생산압력은 하위 시스템의 근접성을 높이고 가용한 여지를 줄이는 결정을 유도한다. 선박의 운송이 안전이 아니라 선주(자본)의 이윤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위험상황을 감수하게 되고 장애나 충격 대응에 대해서도 취약해진다. 중앙집권적인 선내조직은 긴밀한 연계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너무 단선적인 상호작용과도 연결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해상운송에서는 선장에게 선원들과 가까운 위치에서 절대적인 권한이 부여되었다. 선장이 개별적으로 선원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가능했고, 쉽게 분리되지 않는 단일 시스템을 총괄하였다. 한 사람이 시스템의 운용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이 실수를 바로 잡기 어렵다. 
 
 
반대로 너무 느슨하게 연계된 측면도 존재한다. 보험사와 해운사의 문제인데, 해양운송의 경우는 전손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낮기 때문에 사고 횟수에 따라 보험요율을 정하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안전성 향상을 위한 조치를 집행하기 어려운 한계가 분명하다. 또한 선주의 생산압력과는 긴밀히 연계된 선장은 바다 위에서는 감시받지 않고, 수많은 상황을 독자적으로 판단한다. 이는 항공운송 시스템과 상반된다. 항공사는 기장을 ‘신뢰’할 수 있다. 수많은 독립적인 척도로 기상 상태와 공항의 혼잡도, 기계적 문제를 판단하고, 기장의 운항을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개별선박에 대한 기술적 보완은 느슨하게 연계된 상호작용들을 긴밀하게 바꿔서 장애 수습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레이더를 믿고, 선박들이 속도를 높이면서 운행하게 된 것이다. 만약 빠르게 운행 중인 두 척의 선박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들어오면, 긴밀해진 시스템과 중앙집권적이면서 단선적인 선장의 권력이 예상치 못한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비상시에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강력한 지휘체계는 오히려 원칙에 따르지 않고 선장의 임의 운행으로 선박 사이의 충돌을 야기한다.
앞서 살펴본 권위적인 위계질서, 경제적 압력, 해운산업과 보험산업의 구조, 국내외를 막론한 규제의 어려움 등 해상운송 시스템의 여러 요소들은 위험을 촉진한다. 해상운송 시스템은 보다 폭넓은 분석을 요구하는 더 복잡한 시스템이다. 
 

세월호의 반복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들

하지만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가 내놓은 연안여객선 안전관리 혁신대책이나 안전에 대한 정책기조에서는 시스템 사고 예방을 위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안전산업에 대한 민영화와 외주화를 더욱 확대하여 안전산업분야를 육성할 계획을 내놓았다. 안전 부분을 외부화 시키는 일은 안전 전체에 대한 포괄적이고 긴밀한 연계없이, 피드백 고리만 늘려서 불필요한 복잡성을 늘리게 될 것이다. 또한, 많은 사례에서 봐 왔듯이 자본이 안전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들을 회피하게 만들 것이다. 안전에 대해서는 효율적이면서 긴밀한 통합구조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 안에는 선주의 선장에 대한 압박(생산압력)과 선장에 집중된 권력 등에 대한 해결방안이 부재하다. 선주의 선장에 대한 압박은 세월호의 과적·과승에 의한 침몰이라는 형태로 문제가 드러났다. 유럽에서는 선장과 간부들이 팀으로 일하도록 훈련받으며, 장비도 팀워크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설계된다고 한다. 또한 조타수도 필요할 경우 선장이나 항해사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모두가 현실을 해석하는 모델을 서로 점검하면서 책임을 공유한다. 이는 해상운송 시스템에서 복잡하게 얽힌 긴밀한 연계성과 지나치게 단선적인 위계질서의 실타래를 푸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험사회에서의 침몰을 막으려면 

울리히 벡은 찰스 페로의 ‘시스템 사고’에 근거해 현대사회를 복잡한 기술 시스템과 관료제가 결합해서 낳은 ‘위험사회’라 정리하였다. 위험 사회는 우리가 지금까지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발전시켰던 도구가 더 큰 위험을 만들었다는 역설에 기인한다. 그는 위험사회를 기회와 위해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사회라 규정한다. 산업 및 대형기술시스템의 발전으로 인적·사회적 재난의 위험이 높아졌지만, 이 위험이 현대사회의 내재적 한계임을 깨닫는다면 새로운 기회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자본의 이윤 추구와 효율성만 맹목적으로 중시하고, 현대사회의 위험을 더욱 키우는 방식으로 내달리고 있다. 10년마다 반복되어 온 대규모 해양재난사고의 원인은 모두 과적과 과승이었지만, 정부는 규제를 강화할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안전을 지키는 방식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정부는 해상안전을 위해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안전관련 ‘산업’을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방향을 잡았다. 치안업무는 물론 구조·구난 업무에서도 민간위탁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는 해상운송 시스템의 복잡한 연계성과 상호작용의 실타래를 더 엉키게 할 것이다.
 
이제 4월이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벌써 1년이 흘렀다. 우리사회는 세월호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정부의 무차별적인 안전규제완화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논리와 힘을 모아가는 과정에 함께해야 할 것이다. ●
 
덧붙이는 말

찰스 페로(Charles Perrow)는 예일 대학의 사회학 교수다. 다양한 실제 사고 사례를 연구하며 ‘강하게 결합된’ 시스템의 위험성에 대해 줄곧 언급해왔다.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불가피하게 장애를 초래하는 시스템의 복잡성 때문에 경고 장치와 안전장치를 추가하는 전통적인 대책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사고 방지 대책이 오히려 복잡성을 높여 새로운 범주의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1984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 책은 ‘대형 사고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각종 사고 연구의 필독서로 인정받고 있다. 찰스 페로의 주요 저서로는 『The Radical Attack on Business』, 『Organizational Analysis: A Sociological View』, 『Complex Organizations: A Critical Essay』, 『The AIDS Disaster: The Failure of Organizations in New York and the Natio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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