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보다
- 2015/03 제2호
위기의 삼성, 민주노조의 도전
노동자운동연구소 2월 워크숍 <삼성의 중장기 변화와 노동조합>
이재용 체제의 삼성이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모바일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삼성의 한계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경영체계의 변화와 성장의 한계, 이는 삼성에서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한 삼성의 민주노조에도 또 다른 도전이 될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삼성의 향후 변화를 예측하고 민주노조와 사회운동의 전략을 토론하기 위한 워크숍을 개최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이유미 연구원은 ‘삼성의 변화 전망과 그것이 노동자운동에게 미치는 영향’을, 한지원 연구실장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둘러싼 조건과 해결방향’을 발표했다.
토론자로 나선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라두식 수석부지회장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2015년 쟁점과 현황’을 공유하며 올해의 투쟁방향에 대한 논의를 제기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조건준 교육선전부장은 ‘민주노조의 대삼성 투쟁전략’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삼성노동인권지킴이 활동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상근자와 현장간부들이 토론에 참여했다.
삼성의 위기
최근 삼성전자의 수익성이 하락하는 이유는 모바일주도 성장이 한계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삼성은 중저가 제품 경쟁에서 샤오미 등 중국 업체들에게 밀리고, 고가 제품 경쟁에서 애플에게 밀렸다. 삼성전자 수익의 60퍼센트는 모바일사업부에서 나오기 때문에, 스마트폰의 부진은 삼성전자 전체에 큰 타격이다.
스마트폰 산업 성장률 둔화의 충격을 완화하면서 당분간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할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은 반도체가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세계 메모리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문제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경기변동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것이다. 반도체 사업 비중이 커질수록 삼성전자 수익률은 경기변동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그렇다면 포스트-스마트폰 시대를 짊어질 성장동력은 무엇일까? 삼성이 2010년 천명한 5대 육성사업은 바이오제약, 자동차용전지, 의료기기, 발광다이오드(LED), 태양전지였다. 그러나 아직 그 어느 것도 스마트폰의 실적을 대체할만한 사업으로 뚜렷하게 부상하지 못했다.
사실 삼성은 여태껏 기술혁신을 주도해본 적이 없다. 도시바의 메모리 반도체(1980년대), 소니의 가전(1990년대), 샤프의 LCD(2000년대), 애플의 스마트폰(2010년대) 등 선두주자를 따라잡는 전략을 썼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따라갈 혁신적 제품이 마땅치 않다.
게다가 조직의 수장인 이건희 회장은 빈사 상태다. 삼성으로서는 올해 안에 경영권 승계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지만, 편법·불법적 ‘경영지배권 세습’에 대한 비판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삼성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세워 가장 유리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던 정치적으로 협조를 구해야할 것인데, 사회적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다면 승계과정이 험난해질 것이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그룹 내·외의 신뢰도는 아직 낮은 편이다.
그룹사들의 조용한 구조조정
삼성이 긴축경영에 돌입하면서 휴대폰 하청업체들은 단가인하 압력을 받고 있고, 공단에서는 이를 견디지 못해 문을 닫는 업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올해 지속적으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구조조정과 업체 폐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삼성은 국내 생산을 계속 줄이고 있다.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광주공장에서는 지속적으로 물량과 인원이 줄어들고 있다. 스마트폰은 전체 물량의 80퍼센트가 베트남에서 생산되고 있어서 구미공장의 물량이 지금도 적은 상황인데 이마저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한편 삼성중공업은 조선업 장기 침체로 구조조정 압력이 강한 편이다. 조선업 특성상 사내하청 중심으로 인력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SDI와 전기는 이미 희망퇴직 형태로 구조조정이 진행되었다.
삼성생명과 증권 등에서도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으로 전반적인 긴축에 돌입한 것도 있지만, 사업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계열사 정리와 일종의 ‘기강 잡기’를 통해 새로운 오너에 충성하라는 메시지를 전 계열사에 던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화로 매각될 위기에 처한 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 노동자들이 최근 노동조합을 결성해 대항하는 강한 반발이 생겨나고 있다. 삼성으로서는 여론에 민감한 상황이라 최대한 고립 분산시켜 조용히 해결하려 할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2015년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놓인 조건은 어떨까?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다양한 분석과 의견이 나왔다.
우선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은, 2010~13년이 삼성이 창사 이래 돈을 가장 많이 벌었던 시기였다면 2015년은 ‘삼성위기론’이 화두가 되는 해라는 점이다. 또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이슈화하면서 실질적으로 깼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무노조 삼성’ 의제도 이제는 한계가 있다. 삼성AS노동자들의 저임금, 극심한 노동조건, 간접고용 문제 등도 이제는 사회적으로 꽤 알려졌다. 새로운 의제를 계속해서 발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삼성위기론’을 고려한다면, 노동조합의 요구가 엄청난 임금인상이 아니라 임금의 ‘정상화’라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여론전을 해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임금체계의 문제는 첫째, 고정급이 없는 100퍼센트 건당수수료라는 제도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둘째, 그마저도 수수료 체계가 비합리적이고 불투명해서 중간에 협력업체 사장이 부당하게 착복할 여지가 많다. 셋째, 건당수수료체계 하에서 일감분배의 차별이 발생한다. 대표적인 것이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차별이다. 넷째, 이런 이유로 같은 일을 하고도 다른 임금을 받는 ‘동일노동·차별임금’이 발생한다.
이 모든 것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아무리 삼성이 위기여도, 아니 위기일수록 해야 할 지극히 합리적인 과제이다. 고정급 비율을 점차 높이고,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고, 직무·숙련을 반영하는 ‘정상적인’ 임금체계가 필요하다. 비단 임금체계만이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에서 도급업체로 이어지는 수수료 전반의 투명성을 높이는 체계개편이 삼성전자서비스의 입장에서도 필요하다.
삼성의 무노조경영 비판도 진화가 필요하다. 삼성 스마트폰을 만드는 하청노동자부터 최근 삼성에서 매각되거나 매각 예정인 계열사의 노조들, 그리고 해외 노동자들까지, 삼성에 관련된 노동자들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삼성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노조의 교섭·투쟁 경험과 역량이 축적된 것은 이전에 비해 유리한 조건이다. 교섭·투쟁 과정에서 작년의 혼란이 재발되지 않도록 조합원들의 요구를 제대로 수렴하고 명확한 교섭의제를 수립해야 한다. ‘조합원 의견 수렴 → 의견 토론, 정선 → 의제 확립 → 교섭전략 수립’의 절차를 마련하고, 교섭구조에서는 ‘삼성전자서비스 → 협력업체 → 경총’의 3중 대리구조를 개선할 방안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조기 와해에 실패했으니, 삼성의 다음 목표는 “장기적으로 고사화”(〈S그룹 노사전략 문건〉의 표현)시키는 것일 테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이를 넘어서려면 단기적 이익이나 성과에 얽매이기보다 3~5년의 중장기적 계획을 세워서 이에 맞는 조직적 태세를 갖추고 실행해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의 대삼성 운동전략
이유미 연구원은 전체 노동자와 사회운동이 함께 힘을 모아 큰 캠페인을 벌여보자는 제안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사회적 승인을 받기 위해서 ‘최소한 지켜야 할 약속’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이를 수용하도록 압력을 넣는 운동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와 협력업체가 준수할 노동표준을 정립하고 이재용이 이를 지킬 것을 약속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하청노동자의 저임금 문제, 고용불안 문제, 노조 결성의 문제가 주요한 요구사항이 될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상징’으로 나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건의 가시적 변화가 곧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증명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조건준 금속노조 경기지부 교육선전부장은 기존의 방식을 넘어서는 다차원적 기획이 있어야 민주노조의 대삼성 투쟁이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삼성은 본관노숙농성 같은 고강도 투쟁에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작년에 비해 효과가 낮을 것이다.
일상 활동에 있어서도 집회나 선전전을 넘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삼성의 미디어통제를 돌파하는 우리의 미디어전략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주체들의 특성에 맞는 성장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에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삼성전자 구미와 광주 공장에서 ‘노조합시다’라는 선전전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선전물을 배포하는 방식을 넘어서 삼성서비스기사들이 갖고 있는 고유의 장점과 특성, 일명 ‘소프트파워’를 살리는 방식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소프트파워’가 극대화된 형태의 소비자연대운동, 일명 ‘화이트컨슈머 운동’은 작년부터 고민해왔던 것이다. 실은 금속노조가 익숙하지 않은 방식인데, 삼성을 넘어서려면 이런 것이 절실하다는 의견이다.
이런 고민들은 지회나 금속노조의 역량만으로는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투쟁이 고조되는 3~4월과 그 이후를 바라보면서, 전체 사회운동이 맞물려서 집요하게 삼성을 물고 늘어지는 2기 삼바(삼성을 바꾸자)운동을 지금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