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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 제2호

그런데 말입니다 … ‘노가다’ 인생은 나아졌을까요?

건설경기 활성화와 부동산 규제 완화, 그리고 건설노동자의 삶

  • 소영호 건설노조 서울경기동부건설기계지부 사무차장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작년 건설업에 취업한 사람의 수는 179만 6000명이다. 이는 전체 취업자의 7퍼센트 수준에 해당하며,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의 수를 포함하면 200만 명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건설업계에 종사하고 있지만, 펜스가 높게 둘러쳐진 공사현장 안에서 일하는 이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에서 건설산업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만큼 많은 돈이 투입되고, 또한 연관되는 업종도 많다. 2015년 정부가 제시한 경제활성화 정책에는 부동산 시장 규제완화와 SOC 예산 증대와 같이 건설 관련 부문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건설경기는 정말 살아날까? 무수히 올라가는 빌딩과 공장, 그 사이 건설노동자들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투자는 늘어도 고용은 그대로

정부는 올해 국토교통부 예산을 작년보다 1조 원 많은 21조 7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또 SOC사업 예산 51조 1000억 원의 59.1퍼센트인 30조 2000억 원을 상반기에 투입해 건설경기의 성장을 주도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토목부문의 극심한 부진을 탈출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관광산업과 같이 경제활성화 정책으로 제시된 사업들에 대한 용지공급, 규제완화, 세제지원 등을 통해 건설부문 투자 확대를 약속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올해 건설투자 증가율을 5.2퍼센트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4.7퍼센트로 민간 연구기관들보다 높은 수준을 내놓고 있다. 민간주택임대시장 활성화 정책과 작년에 통과된  LTV, DTI 규제 완화로 건축부문이 호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예상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들도 내놓고 있다. 우선 분양가상한제 폐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3대 부동산 법안(주택법, 재건축초과이익환수에 관한 법률,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임대주택사업을 민간에게까지 확장하는 기업형 민간임대사업도 육성하고 있다.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임대주택 ‘뉴-스테이’와 같은 주택상품을 공급하는 등 임대주택 시장 규모를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부동산 규제완화가 건설경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는 논리다.
 
하지만 정부의 낙관에도 불구하고, 건설경기가 2015년에도 침체상태일 것이라는 예상도 만만치 않다. 우선 부동산시장 활성화와 SOC예산증대가 실물 투자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토교통부는 모두 37조 5000억 원 규모의 재정을 집행했다. 이중 공공임대주택지원(융자) 부문은 2조 4000억 원, 주택구입·전세자금(융자)에서는 10조 8000억 원이었다. 예산대비 113퍼센트정도를 금융 부문에 집행한 것이다. 반면 일반철도, 고속도로, 주택, 항만건설에는 예산대비 50~90퍼센트 정도만을 집행했을 뿐이다. (<월간 재정동향>, 2015.1.)
 
또한 비주거용 건물 착공면적 증가폭이 축소되고, 세종청사 3단계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듦으로써 토목분야에서도 부진이 예상된다. 평창 올림픽 경기장 건설, 혁신도시와 같은 대규모 사업들이 있긴 하지만 지역적인 건설경기에만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다.
 

부실 낳는 시스템

건설현장의 구조는 발주-원청-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구조이다. 공공기관에서 건설현장을 기획하여 돈을 푼다면, 이를 시공하는 종합건설업체(원청)가 토목, 건축, 조경, 마감과 각 공정별 과정을 하청업체인 전문건설업체에 발주한다. 헌데 이런 조건은 최저가낙찰제가 일반화된 현 구조로 인해 건설경기의 일시적 부흥이 건설노동자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에서 100의 금액을 가지고 공사를 발주하면, 전문건설업체는 50~60의 금액만 가지고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가로 낙찰을 받는 과정에서 건설산업 최하층에 위치한 건설노동자 임금을 낮춰야 하고, 이윤을 독식하려는 건설자본의 행위가 빈번해진다.
 
건설경기 침체 속에서 최저가낙찰제나 실적공사비 같은 제도들로 인해 건설자본들이 부실화되고 있다. 현재 전국의 전문건설업체들의 수는 6만 개가 넘는데, 이러한 업체들의 20퍼센트정도는 연간 1억 원 이하의 수주를 받는다. 게다가 전문건설업체들 중에는 건설업 면허만을 사들이거나 다른 목적으로 세운 페이퍼컴퍼니도 많다.
 
종합건설회사들도 상황이 좋지 않다. 지난 9월 대한건설협회는 종합건설사 9812개사의 2013년 말 기준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13년 종합건설사들의 당기순이익은 총 3조 2022억원 적자를 기록하였으며, 매출액순이익률도 -1.0퍼센트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작년 9월 부실건설업체는 1만 2000여 곳에 달했고, 그중 전문건설업체가 1만여 개였다.
 
건설업체들의 주요 해외진출 통로는 중동지역의 발전소나 정유시설과 같은 플랜트 부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동 정세 불안, 유가하락 및 유로화 약세와 같은 대외변수들로 인해 해외건설 분야 진출전망이 흐려졌다. 게다가 4대강 사업을 비롯한 각종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담합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입찰 참가자격 제한처분을 실시하며 활기가 줄었다. 이로 인해 활로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많은 건설사들이 부도나 법정관리로 들어선 것이다.
 
2014년 초 건설기업노조에서 100대 건설사 가운데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경험한 25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1만여 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집계되었다. 건설자본 역시 주요 부분을 외주화했으며, 공사 때에만 채용되어 공사 전반을 관리하는 ‘실행소장’의 비율도 증가하였다. 안전관리와 같은 필수적인 분야에서도 계약직을 채용하는 등 건설회사의 관리직·사무직에서도 비정규직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건설사의 비용 절감으로 건설현장에 대한 관리 또한 부실해지고, 노동자들의 임금 역시 저하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죽음으로 내모는 일터

“김씨, 지난 달엔 며칠 일했어?” 건설노동자들이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묻는 안부 인사다. 상시적 고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최근 건설산업이 경기침체와 더불어 금융자본 이해를 위주로 재편되면서 일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졌다. 더군다나 더 많은 노동자들이 건설업계로 유입되고 현장의 기계화와 대형 장비 도입으로 일할 곳은 더 줄어들었다.
 
이렇게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서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임금을 깎고 노동시간을 늘리며 일자리를 따내야 한다. 현재 2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건설현장에 들어온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로 인해 최근 한국인 건설노동자들이 불법 외국인력을 단속해야 한다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는 경기침체로 인한 불만과 불안을 정부와 자본이 아닌 이주노동자에게 투영한 결과다.
 
일자리 또한 부실해지고 있다. 특히 체불임금 문제는 건설노동자들에게 항시적 위험이고, 열심히 일하고도 삶의 파탄을 겪는 원인이 된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건설업계 체불 임금은 3000억 원으로, 5년 전에 비해 2배 늘었다. 특수고용인 건설기계종사자들의 체불액까지 추산하면 1조 원을 훌쩍 넘는다.
 
또 4대 보험과 같은 안전망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산업재해와 노동안전 또한 건설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한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참사 등 안전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건설현장에서는 해마다 7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사고로 죽어가고 있다.
 

함께 살기 위해

건설업 평균연령은 50세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이 최후의 일자리로 ‘노가다’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 그 때문에 한 사람의 입장에선 저임금-단가 경쟁을 하면서 하루라도 일을 더 하는 것이 이익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건설노동자들의 공멸을 낳는다. 결국 장기적으로 단결을 추구하며 더 많은 일자리와 적정임금, 노동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한 힘을 만들어가는 게 건설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된다.
 
이런 단결을 위한 적극적인 전략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상시적 고용 관계가 없고 사용자가 불명확하다는 점은 오히려 건설노동자들이 쉽게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리고 지역단위로 편제되는 노동조합에서 일정한 규모와 활동이 있다면, 비교적 안정된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 건설노동자들이 ‘노조할 권리’를 찾으며 경기침체에 대응하려는 것이 곧 삶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 전략의 시작이다. 건설노조 역시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조합으로서의 활동을 잇고 있다. 장기 경제위기 시대를 분석하고, 건설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지속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
 
 
일곱 개의 문을 가진 테베를 누가 지었는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왕들이 돌덩이들을 날랐을까?
그리고 저 여러 번 파괴되었던 바빌론-
누가 계속 바빌론을 건설했는가? 건축노동자들은
황금빛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서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다 만들어진 날 저녁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는
개선문으로 가득 차 있다. 누가 개선문을 세웠는가?
 
- 베르톨트 브레히트,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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