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세대 이후 25년 87년, 노동자들의 눈부신 투쟁으로부터 25년도 더 흘렀다. 그동안 전노협이 건설되고, 민주노총이 만들어졌다. 96~97년 총파업에 이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와 노사정합의,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2000년대 노동자 투쟁이 계속되었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25년은 생물학적으로도 한 세대가 지날 기간이다. 87년 당시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했던 노동자들은 어느새 퇴직을 앞두고 있고 정년연장이 화두가 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남한의 87년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출발인 플라자합의의 결과였던 3저 호황의 한가운데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 노동자운동은 이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 마주하고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앞으로의 시기는, 87년 이후 노동자운동이 경험한 것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정세가 달라졌을 뿐 아니라, 노동자운동의 주체들도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새로운 시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남한 노동자운동의 경험 속에서 발견된 어떤 가능성, 변화된 조건에서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시사점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특히 98년 금융위기 이후 급변한 상황을 반영하여 출현한 새로운 노동자운동 흐름은 2000년대 일부 성공사례에서 그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을 뿐, 전면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 가능성을 발굴하고 뚜렷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87년 세대 이후,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다. 이를 위해 우선 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부터 전노협, 민주노총의 건설과정을 살펴본다. 이어 90년대 후반 IMF 구제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전면화 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을 검토하고,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주체 형성의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이 운동이 더욱 나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지 제안하고자 한다. 87년에서 전노협, 민주노총까지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3저 호황의 전개 과정에서 중공업 남성 노동자가 대거 진출하는 것과 같은 노동자 구성의 변화 속에서 시작되었다. 기업의 임금인상 여력은 충분했지만 국가와 자본은 억압적 노무관리를 통해 임금을 억제했다.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투쟁 속에서 급진화된 학생들은 공장에 투신해 현장학습모임을 결성하는 등 투쟁의 주체를 형성해갔다. 87년 민주화투쟁 속에서 급진적 이념이 확산되는 와중에 7·8·9월 한순간에 투쟁이 폭발했다. 그리고 이렇게 건설된 노동조합들은 곧이어 지역노동조합협의회(지노협)를 건설하고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를 건설한다. 전노협의 건설은 87년 이후 기존 한국노총의 외부에서 급격하게 조직된 노동조합의 결집임은 물론, 노동운동단체(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와 정치단체들의 전국적 단결과정이기도 했다. 전노협의 강점은 이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첫째, 투쟁 속에서 조합원이 형성되는 과정이 곧 학습과 조직화를 결합하는 과정이었으며 둘째, 지역 기반 운동의 전통을 형성했고 셋째, 노동조합이 노동운동단체와 결합하였다. 이는 노동조합이 좁은 의미에서 노사관계에 규정되는 틀을 벗어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전노협은 건설 과정에서부터 가혹한 탄압에 노출되고 조직적 확대는 지체되었다. 92년이 되자 ‘노동운동 위기논쟁’이 제기되었다. 논쟁을 제기한 이들은 ‘노동조합의 활동작풍을 개선해야 한다’거나, ‘과도한 임금투쟁을 지양하고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발전적 노동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거나,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의 노동생활조건 개선과 경영참가를 받아들이고, 노동조합은 생산성 향상에 협력하는 진보적 코퍼러티즘을 지향해야 한다’거나, ‘퇴조기에 노동자의 다양한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한계를 넘는 진보정당 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노동조합은 한국노총에 대한 반대를 최소공약수로 해서 광범위한 결집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위기 논쟁은 노동조합운동 이념의 탈각이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었고, 노동조합운동도 이념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실용주의적이거나 코포러티즘적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었다. ILO공대위, 전노대를 거쳐 이루어진 민주노총 건설은 전노협에 포괄되지 않았던 대기업, 공기업노조와 업종회의가 결합하는 계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노협의 청산과정이기도 했다. 전노협 청산과 민주노총 건설은 노선적 측면에서는 ‘평등사회’, ‘노동해방’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라는 사회개혁노선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전노협 청산은 앞서 언급한 조직적 장점의 후퇴과정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노동운동 위기논쟁’ 제기자들의 주장이 민주노총 건설과정에 관철되고 만 것이다. 전노협 건설에서 청산까지, 민주노총 건설과 현재까지 변화된 조건에서 전노협의 장점이라는 요소를 단순히 부활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이때부터 민주노총 운동은 지속적으로 ‘이념’을 상대화시켜 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95년에 건설된 민주노총은 기업별 대기업노조가 주도하는 산별연맹의 연합체에서 출발했다.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전노협이 상대화된 결과다. 지금도 유사하게 ‘기업별 대기업노조가 주도하는 형식적 산별노조의 연합체’의 모습을 띤다. 그러나 이 체계에는 지노협을 계승한 민주노총의 지역본부와 각 산별노조라는 기업별노조 외부도 존재하며, 이러한 ‘차상위 조직’이라는 틈새에서 다양한 운동이 시도되었다. 의식적인 활동가집단의 노력을 통해 비정규직 조직화 등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운동들도 이 공간에서 형성되었다. 97~9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의 조건은 이후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90년대 남한 재벌의 과잉축적은 90년대 중반의 금융세계화 편입을 거쳐 97~98년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IMF 구제금융협약 체결과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기업 부실화와 국부유출이 일어났고, 다양한 형태의 불안전노동자가 증가하고 정리해고제가 도입되는 등 고용안정이 심각하게 침식되었다. 민주노총 건설 이후 민주노조운동 내에 실리주의의 확산과 이념적 요소의 쇠퇴가 이러한 조건과 결합하면서 98년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도입 등 노사정합의가 이루어졌다. 98년에 민주노총 집행부가 합의한 노사정합의를 이해하려면 역설적으로 금융위기 직전인 96~97년 총파업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엄청난 대중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당시 총파업의 결과, 정리해고는 단지 ‘유예’되었다. 총파업은 일종의 노사정 삼자협의기구인 ‘노사관계개혁위원회’ 논의가 결렬된 결과다. 그런데 정작 이 논의에서 틀 잡힌 개별적 노동관계법과 집단적 노사관계법의 교환이라는 패키지 협상구도는 여전히 폐기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불과 1년 후 98년 노사정합의에서 정리해고제와 함께 부활한다. 노사정합의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는 IMF의 요구사항(구제금융협약)의 내용을 대부분 수용하였는데, 당시 경제위기의 원인과 신자유주의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있었다면, 이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념적 후퇴는 정세를 노동자계급의 눈으로 인식할 수 없도록 했다. 결국 98년 민주노총의 노사정합의는 대의원대회에서 거부되고 집행부는 교체되었다. 그러나 비대위를 맡은 단병호 집행부나, 선거에서 당선된 이갑용 집행부 모두 약속했던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노사정합의에서 거부에 이르는 과정은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이념정책적 취약성을 드러낸 것은 물론, 노사정합의 거부와 집행부 사퇴, 그 이후 수차례 총파업 시도의 무산은 조직적 취약성 역시 보여주었다. 금융위기 이후 민주노총의 주요한 투쟁은 대부분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에 대한 반대투쟁의 성격을 갖고 진행되었다. 2000~2001년 한통계약직노조 투쟁(비정규직 독자 노조운동),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2002년 철도발전가스 3개 노조 공동파업(공공부문노조, 새로운 주체의 진출), 2003년 비정규직정리해고노조탄압 사업장 열사투쟁 및 화물연대 파업, 2005~2006년 사내하청, 플랜트 노동자 투쟁, 2007년 뉴코아이랜드 투쟁,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 공공부문 선진화 분쇄투쟁(철도파업 등)이 이어졌다. IMF 구제금융위기 속에 노동자운동이 조직적 위기에 빠지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향은 민주노총 내에서 크게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제시되었다. 논쟁은 있었지만 주류가 이러한 흐름을 수용했는데 첫째, 기업별노조를 산별노조 형태로 전환하고 둘째, 진보정당을 건설한다는 것이다(양날개론). 이에 더해 셋째,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전략조직사업을 추진한다. 물론 산별노조나 진보정당 건설은 90년대 초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오던 것이지만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금융위기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이러한 전략은 지금 잘 작동하고 있는가? 불행히도 2013년 현재 산별노조와 진보정당 모두를 결산해볼 때 이러한 전략은 시효만료 되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개별적으로 산별노조와 진보정당이 각각 어려운 사정에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런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둘을 결합함으로서 추구하려고 했던 운동노선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별노조가 경제투쟁을 담당하며 의회에 진출한 진보정당이 정치를 담당하고, 이에 기반해 노사정 삼자협의 체제를 갖춘다는, 중북부 유럽을 모방하려했던 시도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각각을 보더라도 산별노조는 조직형식적 전환 이후 정체되어 있고, 진보정당 운동은 조직적 분열만이 아니라도 애초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세력화’라는 의미를 대부분 상실하고 말았다. 비정규직 전략조직사업은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비정규직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 그러나 총연맹 차원의 조직활동가 양성과 산별연맹(1기) 혹은 전략 지역업종(2기)에 배치하는 것을 넘어서지는 못한 상태다. 노동조합 전체가 조직화를 핵심사업으로 배치하는 전체 조직의 ‘체질개선’은 아직 먼 과제다. 게다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할 민주노총(총연맹)도 약화되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2003년을 기점으로 국민파와 민족해방파 연합으로 교체된다. 이들이 주도하는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으로 김대중-노무현 민주당 정권과 타협을 시도하지만 불발된다. 그런데 이 과정은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노사정위원회 참여 문제를 둘러싸고 조직 내 대립이 격화되면서 총연맹의 지도력은 지속적으로 약화되었다. 한편, 진보정당 운동도 민주노동당의 분열 이후 혼란을 거듭한다.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등 국회에 진출한 진보정당들은 이미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통합진보당의 분당 이후에는 전국회의가 주도하는 정파노조 흐름과 같이 민주노총에 근거를 둔 정파들이 자신들의 정치노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대중조직을 분열시키는 행태도 확산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노총 내 운동노선에 입각하여 경쟁해왔던 정파들(의 구분선)도 오히려 지속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과거에 “국민파-중앙파-현장파”로 형성되었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다. 2013년 민주노총 선거에서도 과거의 구분선에 따른 선거구도가 형성되지 못했다. 일부 후보는 과거 구도의 대표성을 주장하고 싶었을지라도 실질적으로 그러한 지지를 획득하지 못했다. 이는 92년 노동운동 위기 논쟁 과정에서 형성된 논점, 즉 이른바 ‘전투적 조합주의’, ‘사회적 조합주의’ 등으로 대별되었던 운동노선 경쟁이 의미 없는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투적 조합주의’로 불린 경향은 기업별노조의 전투적 경제주의로 수렴되고 있으며, ‘사회적 조합주의’로 불린 노선은 보수 정권 하에서 사회적 합의주의가 실현불가능하게 되면서 노동운동의 노선적 대안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물론 이를 주장한 일부는 민주당이나 안철수 세력에 흡수되었다). 따라서 이들 노선에 근거한 구래의 정파구도도 유지되기 힘든 조건이다. 기존 노선 논쟁에서 그나마 의미 있었던 노동운동의 가치로서 전투성(투쟁성), 사회적 의제 확장 등의 일부 요소를 재평가하는 것 정도가 남아있는 과제이다. 산별노조 운동의 실험 2000년대 들어 노동조합운동이 중점을 둔 조직발전과제는 ‘산별노조 건설’이었다.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애초 의도한 성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운동주체 형성에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깊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2002~2006년 사이에 기업별노조의 조직형태 전환을 중심으로 산별노조 건설이 본격화된다. 건설 당시에는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이 주요한 산별전환 논거 중 하나였지만, 실상 이들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는 것이 나중에 드러난다. 2006년을 거치면서 자동차 완성4사의 금속노조 전환, 공공노조운수노조 건설과 함께 주요 산업에서 조직형식적으로 산별노조 건설이 진행되었지만, 산별교섭산별투쟁을 전면적으로 실현하는 것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부분적 성과를 남기는데 그친다. 남한에서 초기업적 노사관계는 느리게 성장하고 있으며 기업별교섭관행이 모든 산별노조에서 강력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조건이 수년간 지속됨에 따라 산별노조운동의 정당성은 약화되어 왔다. 산별노조의 정착이 지연되는 동안 정규직 노조 현장은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 비정규직과 격차가 벌어지고 고용안정이 위협받으면서 기업별노조에서 (회사와 노조에 대한) 이중몰입과 실리주의가 강화되었다. 이러한 기업별 노사관계의 유지는 작업장 노동조직과 노조가 단일화되어 있는 한국의 기업별노조 체제의 역사적 결과이며 역설적으로 노동조합 힘의 근거이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남한의 산별노조들은 유럽의 경우처럼 작업장 노동조직과 노조가 분리되지 않았다. 이러한 토대에 의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기업노조주의를 단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는’ 것은 지속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한편 정규직 신규채용이 상당 기간 중단되면서 노조운동의 경험이 단절될 우려도 있다. 80년대 초중반 베이비붐 세대(57~60년 생)의 노동시장 진출과 80년대 후반 3저 호황으로 인한 노동시장 팽창 과정에서 형성된 87년 대투쟁 세대가 퇴직을 앞둔 시기에 있고, 이들의 경험이 단절된다는 의미다. 금속(제조업), 공공부문, 민간서비스 등 주요 산업부문에서 한국 산업구조와 기업지배구조 특징 상 산별교섭이 짧은 시간 안에 지배적인 교섭형태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우선 가능한 영역에서부터 초기업 교섭구조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미 몇 개의 영역에서는 초기업적 투쟁과 조직화가 연계된 초기업적 교섭구조가 실현되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기업별 교섭 자체가 어려운 조건에 있는 중소영세비정규 부문에서 성공적으로 신규 조직을 확대한 경험이 나타났다. 이들은 조직화와 투쟁의 초기부터 초기업적인 교섭투쟁을 전개해왔다. 산별적(초기업적) 교섭투쟁 구조를 구축한다는 산별노조의 목적이 여기서 진짜 빛을 발했다. 산별노조 건설을 제기하였던 일부 논자들은 기존 기업별노조의 산별노조 전환에서 시작하더라도 여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략조직사업’ 등과 연계하여 새로운 조합원을 조직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이는 산별노조에 ‘개별가입’한 조합원을 통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조합원층이 점차 기존 조직의 규모를 대체해가는 방식을 말한다. 대부분의 산별노조는 기업별노조의 (불완전한) 산별 조직형태 전환에서 한계에 봉착해있지만, 한편으로는 초기업적 조직화교섭투쟁이 새로 조직되는 영역에서 나타났다. 이 점을 좀 더 살펴보자. 조직화 경험: 성과와 한계 지난 10여 년 동안 노동자운동 주체의 혁신에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중소영세비정규직 조직화투쟁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노동자 대중이 진출하는 중요한 조직화의 경험이 축적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에서 성과와 한계, 교훈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화물연대, 건설노조플랜트노조, 금속노조 지역지부지회, 공공운수노조 지역지부, 학교비정규직노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 건설노조 지역지부는 지역적 차이는 있으나, 성공적인 사례들은 몇 가지 주목할만한 특징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조직화 전략을 세우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몇 가지 지표들을 아래와 같이 찾아낼 수 있다. 첫째, “기업을 넘어선[초기업적] 조직화”만 성공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기업단위의 비정규직노조운동은 치열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 운동을 조직적으로 확장하는 데 한계에 봉착했다. 비정규·영세 사업장의 특징 상 개별 기업별조직은 붕괴할 수도 있으나, 초기업조직은 조직을 재생산하기 위한 조직적 경험과 활동가가 지속적으로 축적될 수 있다. 비록 기업단위로 조직된 운동이라 하더라도 조직의 운영과 투쟁에서 초기업적 운동을 전개해나가는 경우에는 운동의 성과가 지속적으로 축적된다. 둘째, 일정한 ‘정체성의 범위’ 내에서 시작한 조직들이 성공하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화물, 건설, 학교비정규직 등의 업종조직이나, 지역노조의 경우에도 정체성을 공유하는 중심 조합원 집단이 형성된 경우에 실질적인 투쟁력과 조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새롭게 조직되는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데에는 현실적으로 조합원 정서에서 수용가능한 일정한 정체성의 범위가 존재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조직적 단결의 범위를 의미하는 정체성의 범위를 산업과 지역으로 더 확장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을 지속해야겠지만, 이는 단계적 과정 혹은 중층적 조직이라는 ‘매개’를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정체성의 범위 내에서, 조직화 노선을 채택하고 불굴의 의지로 추진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력 또한 형성될 수 있다. 셋째, 조직 전체가 확고한 ‘조직화 노선’을 채택하고 자신의 운동대상에 미조직 노동자를 포괄한다. 비조합원에게도 적용되는 요구안을 투쟁의 전면에 제기하는 투쟁을 통해 투쟁이 조직화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당 부문 노동자 대표성을 획득해나가는 조직이 성공해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물연대, 건설노조, 학교비정규직노조의 요구는 소속조합원의 배타적 요구라기보다는 해당 부문 노동자 전체의 요구를 담았다. 한편, 평가를 위해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해온 다른 운동의 경험, 지역일반노조와 기업별 비정규직노조, 청년노조를 잠시 비교해보자. 지역일반노조는 지역별 차이는 있으나 과연 기업별 체제를 성공적으로 넘어섰는지에 대해서는 더 평가가 필요하다. 지역일반노조는 다양한 업종의 소규모 사업장 조직이라는 특성 상, 초기업 조직 형태에도 불구하고 집단적인 교섭투쟁을 조직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 결과 상당수의 조직이 사실상 기업별로 운영되어 초기 조직화 이후 운동주체를 안정적으로 형성하는데 한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동질감에 기반한 효과적인 교육훈련, 이를 통한 간부양성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가 나타난다. 다른 측면에서 기업별 비정규직노조는 영웅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지속성과 확장성이라는 측면에서 큰 한계에 봉착했다. 따라서 새로운 운동주체를 ‘조직’으로 남길 수 있는가의 측면에서 기업별 조직화는 지양하고, 기존 조직도 재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한편에서는 청년층 세대노조도 실험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청년층이 조직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조직화에 성공한 초기업노조들의 경험을 살펴보면, 조직화의 성공은 자연스럽게 해당 영역의 청년 조합원 조직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년 조직화가 지연되거나 실패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청년’에 대한 별도의 조직화 계획이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노동시장에 불안정하게 편입된 청년들이 주로 진출하는 영역(특히 민간서비스업, ‘아르바이트’ 고용 형태)에 대한 전반적인 조직화가 성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년층 세대노조들은 조합원을 확대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보다는 사회적 쟁점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활동하는데, 이는 물론 의미 있는 사회운동이기는 하지만 대중적 단결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노조운동을 대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세대 대립을 특권화하는 청년층 세대노조가 아니라 초기업노조가 더 넓은 영역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다. 한편 이러한 방식의 노조가 주목받는 것은 학생운동의 상대적 약화와 청년 노동권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있는 주체의 공백이 낳은 효과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기존 정규직 노조 안에서도 (별도의 노조가 아니라) 청년층 조합원 조직화와 활동가 양성은 중요한 과제다. 청년 조합원을 조직교육하고 87년 세대의 퇴직 이후에도 민주노조 운동의 노선, 문화, 리더십이 계승되도록 하는 노력이 시급히 필요하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자운동이 처한 조건 앞으로의 운동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자운동과 노동자계급은 어떤 중장기적 조건에 놓여있는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장기침체와 위기, 노동의 불안정화와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한편, 인구론적 전환도 이루어질텐데 2015~2017년 이후 대량 은퇴(정년퇴직)와 노동력 공급 감소가 진행된다. 박근혜 정부는 이렇게 예측되는 정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 준비가 곧 노동력 부족에 대한 대안으로 노동신축화(고용률 70% 정책), 창조경제(산업구조 재편), 국민행복연금(연금제도 개악) 정책이다. 이주노동자 관리 정책도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공격도 계속 심화되고 있다. 민주노총 주요 조직의 위기 가능성도 예상해볼 수 있다. 어용복수노조를 활용한 공공부문의 노조탄압, 완성차노조의 보수화는 특히 위험한 요소다. 지난 이명박 정부는 민주노총 핵심노조(금속노조 지역지부의 핵심지회, 공공부문의 철도발전노조 등)에 대해 정권 차원의 공격과 복수노조 설립, 노무컨설팅업체와 용역깡패를 통한 노조파괴 공작을 전개했다. 민주노조 운동은 일부에서는 방어하고 일부에서는 패배했다. 박근혜 정부도 유사한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민주노총 리더십의 분할은 정치적(정파적)으로 분할되어 있는데, 진보정당의 분할과정에서 더욱 심화된 상태다. 민주노총이 직선제 선거 과정 등을 통해 내부 갈등이 증폭될 경우 극단적으로 정파노조로 분할 혹은 한국노총으로의 수렴 등 위기가 전개될 우려도 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조직적 토대의 강화와 리더십 형성이 중요한 조직과제다. 민주노총의 리더십과 핵심부문노조가 함께 붕괴할 경우 민주노총이 일본 총평의 붕괴와 같은 ‘노동운동의 우익재편’으로 나아갈 우려도 있다. 과거 많은 이들이 민주노총의 위기가 전개되는 양상을 독일과 같이 코포러티즘을 수용하여 체제에 순치되는 양상, 혹은 미국과 같이 비즈니스노조주의로 경도되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조직적으로 축소되는 양상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오히려 기업별노조 체제 하에서 핵심조직리더십의 위기를 통해 ‘우익적으로 재편’되는 방식, 즉 일본식 위기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총평이 붕괴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철도노조의 분할 민영화가 남한에서도 정부에 의해 추진된다는 점은 이러한 위기 가능성을 높인다. 반면 2000년대 초반 이후 기존 노조의 관행과는 다른 새로운 운동, 운동주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비정규직 노조운동은 어떤가? 비정규직노조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안정적인 조직적 기반을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하기도 하고, 기존 노조운동의 관행을 답습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투쟁 속에서 살아남은 초기업노조로서 중소영세비정규직 조직들은 이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운동노선적 과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민주노총 건설과 98년 IMF 금융위기 이후 정세에 대응하면서 민주노총의 전략들은 현실적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현재의 민주노총 운동은 87년에 형성된 민주노조 운동의 인적조직적 토대에 근거한 전략이었는데, 이 역시 어려움에 놓여 있다. 조직적인 위기만이 아니라, 2009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장기침체’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붕괴 가능성이라는 조건에 처해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객관적 조건에서 노동자운동의 부활을 위한 새로운 방향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 87년 대투쟁, 민주노총 건설 과정에서 현재 민주노총의 주력군(대기업, 공공부문노조)이 형성되어 왔다. 이 주력군은 여전히 중요한 운동의 근간이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노동자운동이 포괄하는 범위는 점점 더 줄어들고 만다. 따라서 이를 넘어서는 운동 주체 형성이 중요한 과제다. 2000년대의 경험을 평가해볼 때 ‘비정규직 조직화’의 지체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운동에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확대하기 위한 실천과 조직적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변화된 조건에서 노동자운동의 노선에 대해 사회진보연대를 비롯하여 많은 정치단체 활동가와 학자들은 (비록 그 강조점과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사회운동노조’를 주장했다. 사회진보연대는 ‘사회운동노조’가 하나의 노조 유형을 지칭하기 보다는 노동조합이 광범위한 정치사회적 투쟁에 나서는 사회운동의 기관이 됨을 의미한다고 강조해왔다.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건설노조와 구분되는 별도의 노조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이들 노동조합들이 ‘사회운동노조’로 변모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사회운동노조’의 현재적 과제로는 △사회운동을 자기과제로 하는 노동조합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실천 △미조직비정규노동자 적극적 조직화 △민주노총[총연맹] 강화(전국적전계급적 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조직으로)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우리는 이를 좀 더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2009년 금융위기와 87년 세대 이후라는 조건에서 어떤 방향으로 노동자운동의 실천을 조직할 것인가 라는 운동노선적 과제로서 질문을 다시 던지고자 한다. 첫째, 어떻게 새로운 계급주체를 형성하고 조직적 단결을 확대 강화할 것인가? 둘째, 어떻게 노동자운동이 자본주의 위기를 넘어선 대안을 제기할 것인가? 첫째, 주체형성: 조직화 노선 이제까지 새로운 운동 주체를 조직하려는 시도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초기업 조직화를 중심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는 지속되고 확대되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총(지역본부)과 산별노조 등 노동조합들이 조직화 사업을 혁신하고 또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는 단지 사업을 몇 가지 더 배치하는 것으로 될 수는 없다. 조직 전체의 목표를 새로운 운동주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조직화 노선’을 공공연히, 공식적으로 채택할 필요가 있다. 각각 개별 조직화 사업을 확대하여 실행하는 것은 물론, 조직의 전망과 존재 의미를 ‘새로운 운동주체의 확장’으로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조직화 노선’을 채택한다는 것은 미조직 전략조직사업에 재정인력을 투자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노조의 투쟁과제, 사업방식도 지속적으로 변화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산별요구와 투쟁 전략에 있어서 저임금미조직 노동자 공동 임투를 우선 배치하는 등의 방식이다. 앞서의 논의를 통해 ‘초기업적 조직화’가 갖는 가능성을 분명히 확인하고 조직화 경로로 집중할 필요성을 확인했다.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를 ‘초기업 조직’으로 조직하는데 더욱 집중하고 새로운 노동자운동 주체들이 진출하는 조직적 장으로 만들자. 물론 시론적으로 검토한 ‘성공사례’는 아직은 경험적이고 잠정적이다. 앞으로도 몇 가지 성공의 요소, 실패의 요소에 대해서는 보다 과학적인 분석이 진행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동시장과 경제정세의 변화에 대해 분석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전제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화물연대는 자본의 운동구조, 물류정책의 변화에 조응하는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데 투자해왔고, 최근 금속노조 지역지부 투쟁 전략 수립에는 기업 지배구조와 공급사슬에 대한 분석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다. 한편 미조직부문 조직화만이 아니라, 이미 조직된 대기업공공부문 노조에서는 어떤 ‘방어전략’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 (사실상) 기업별 조직에서도 산별 노사관계의 지속적 확대를 통해 단계적으로 초기업적 정체성을 형성해 가야한다. 기업별노조(지부)의 조직형식적 전환을 넘어서는 실질적인 산별조직으로의 전환은 구체적인 상황에 맞게 중기 과제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금속노조의 경우 현대기아차지부와 하청사가 조직된 지역지부의 연대전략, 공공운수노조의 경우 공기업 등 공공기관 노조들의 구심 재구성 등 구체적인 실현경로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산별노조의 지역조직을 강화하고,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공동실천연대투쟁의 조직가’로서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운동의 강화를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운동주체들과 기존의 조직들이 단결하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미조직노동자 신규조직화만이 아니라 기존에 조직된 기업별 조직의 변모를 위한 재조직화도 앞서 살펴본 조직화 운동의 경험을 접목할 수 있다. 예컨대 임단투에서부터 기업을 넘어선 요구와 투쟁을 확대하고, 끈질기고 의식적인 사업을 통해 점차 실질적인 초기업 조직으로 변모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할 것은 금속산업(제조업) 부문 조직화의 중요성이다. 사용자자본이 국경을 벗어나기 힘든 공공부문, 사회서비스부문, 건설노조와는 달리 금속노조(제조업부문)의 조직화는 더 어려운 영역임은 분명하다. 앞서 언급한 조직화의 성공사례도 (해외 이전이 힘들고) ‘육지에 갇힌’ 공공사회서비스 산업부문이 다수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조업(금속)부문은 노동자운동에 원칙적 중요성을 가지는 영역으로서, 조직확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금속노조가 자신의 전략조직사업을 시행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 노동자운동사회운동정치운동이 관심을 더 기울여야한다는 의미다. 공단을 중심으로 한 하청기업 노동자의 광범위한 조직화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둘째, 정치사회운동: 이념의 복원 앞으로 전개될 세계자본주의 위기, 장기침체로 인한 민중생존의 위기 국면에서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키고 대안사회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이념적 대안이 더욱 중요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민주노총은 설립과정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이념적 요소가 취약해져왔다. 이후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주장하게 되는 노동운동 위기론자들(1992년)은 민주노조운동 사회변혁이념의 “과잉”을 위기의 원인으로 진단했다. 앞서 강조한 ‘조직화’는 그 자체로서 계급적 단결을 확대한다는 운동적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라는 정세에서 ‘이념’ 없는 단결은 맹목이며, 우리가 지향할 운동은 아니다. 1998년 금융위기 대응과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혼란을 반성하고, 자본주의 위기 이후에 노동자 계급의 투쟁전망을 정확히 수립하기 위해서 변혁 이념의 복원은 시급한 과제다. 따라서 우리는 10여년 간 “노동자 운동 내 변혁 이념의 지속적 약화”라는 경향을 대역전시키고, 전노협 시기(80~90년대) “노동해방, 평등세상”을 현재의 2009년 이후 정세에 적합한 이념 형태로 노동자운동 내에서 전면화해야 한다. 사회진보연대는 현 시기 사회운동노조의 과제로 △노동계급의 단결 확대를 위한 총연맹 강화와 조직화 사업 확대 및 △‘대안세계화운동’을 제시해온 바 있다. 특히 대안세계화 운동을 구성하는 이념으로는 ‘전위당·국유화’ 노선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사회주의 운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가운데, 금융세계화 반대, 평화주의, 국제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을 함께 지향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노동자운동에 이념적 요소가 중요하다는 것은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자본주의 극복과 대안사회 건설의 추상적 지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념에 근거한 구체적인 정세분석(능력), 그리고 이를 실천 사업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기획과 실행력을 동시에 의미한다.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은 이러한 힘의 종합을 의미한다. 예컨대 이념적 기반이 확고하다면 초민족적 기업의 자본철수로 인한 정리해고에 대해서 완강한 투쟁계획을 갖는 것은 물론이고, 이와 연계하여 자본의 전략의 어떤 부분을 공격할 것인지, 이를 위한 전술은 어떻게 구사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구체적인 전략정책을 수립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이념적 요소의 강화, 사회운동적 성격의 강화가 노조 운동 이외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면밀한 검토와 토론은 필수적이다. 다양한 주장으로 제기되는 운동의 아이디어들에 대해서, “그 운동이념[실천]은 노동자계급 주체를 형성하고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확대할 수 있는 입장인가”라고 질문한다면 답이 나온다. 노동운동 이념이 참신한 아이디어들로 대체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최근 유행하는 ‘사회적 경제론’과 이에 입각한 다양한 운동 아이디어(협동조합으로의 노조운동 대체,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비정규센터, 변형된 사회봉사활동 등)가 사회운동노조에 적절한 이념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다. 노동조합 운동이 사회운동과 결합하는 행위 이전에, ‘사회운동노조’를 통해 사회운동 내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복권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념적 요소가 조직 내에서 실질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실천 투쟁과제로 구체화되는 ‘정책 공정’이 필요한 것은 물론, 조합원 이데올로기로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교육사업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따라서 민주노총(지역본부)과 산별노조는 기존 교육사업을 혁신하고 이념정책과 결합한 교육 기능을 강화 필요가 있다. 이념의 재건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활동가, 조합원과 함께 할 수 있는 매개인 교육사업이 없다면 제대로 된 의미를 갖지 못한다. 교육사업은 이념의 재건에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87년 세대 이후 노동운동의 대안 현실화를 위한 조직적 과제 위와 같은 노선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운동의 여러 실천이 교통하면서 힘을 모아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노동조합들이 구체적인 혁신과제를 자신의 사업 속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운동의 주체를 확대강화할 필요를 공감하는 활동가들에게 몇 가지 공동의 과제를 제안하고자한다. 첫째, 대중운동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분석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구성하자.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형성해가기 위해서는, 실천과제에 대해 노동운동 내 합의를 만들어가기 위한 논의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민주노총(지역본부)과 산별노조의 현장 활동가들이 구체적 과제를 토론하고 조직적 실천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각급 조직에서 운동경험에 대한 평가와 공유, 과학적 분석을 진행하기 위한 논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이러한 대중운동의 경험과 논의를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분석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말하자면 각 노조, 정치사회운동의 활동가들이 “87년 세대 이후, 노동운동은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함께 밟아보자는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도 이와 같은 실천과제의 한 부분에서 기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는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역할이기도 하다. 둘째, 민주노총 운동의 혁신 과제 실현을 위해 합의를 확대하자. 위에서 제안한 대중운동 경험의 공유와 공동의 분석이 지역현장 활동가들에 대한 제안이라면, 민주노총(총연맹) 차원에서도 민주노조 운동 전체가 혁신될 수 있도록 하는 출발점의 의미를 갖는 혁신과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자 한다. 운동 관행과 운영의 혁신 과제가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총연맹의 혁신과제 수립을 위해서는 이번 민주노총 새 집행부가 혁신과제에 대한 논의의 장을 형성하고 차기 직선제 선거 전까지 제 운동세력이 합의하는 공동의 혁신과제와 투쟁과제(공유기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제는 아래와 같이 예시할 수 있다. 1) (노조답게) 투쟁하자!: 재벌 통제, 반신자유주의 노동자 투쟁 전선 구축 • 노동권 확대와 재벌 통제 전략 (경제민주화 비판) • 노동자의 계급대표성 회복을 위한 투쟁 태세 구축 : 정리해고노동유연화 분쇄! 노동기본권 쟁취! 민주노조 사수! •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화 운동의 전면적인 재구성 • 노동자국제연대: 재벌의 초민족화에 맞서는 국제 노동표준 향상 전략 2) (노조답게) 단결하자!: 계급 단결 확대강화 • 시기집중 임단투 투쟁전선의 복원 • (조직 노동자, 미조직 노동자 단결) 임단투와 최저임금 투쟁 결합 • (공동요구안에 근거한)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 • (고용안정을 위한 연대의 확대) 비정규직 철폐! 3) (노조답게) 확대하자!: 조직화에 전념, 현장사업 강화 • 경제위기시대,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향한 제2의 전략조직화 운동 • 산별지역조직, 지역본부의 미조직 사업 역량 강화, 제 사회단체와의 미조직사업 협력 강화 • 지역과 현장 주체로부터 출발하는 현장사업 강화 4) (노조답게) 운영하자!: 조직운영 혁신 • 총연맹 중집의 실질적인 역할 강화 • (투쟁의 구심, 미조직사업의 구심으로서) 산별지역조직 강화, 지역본부 강화 • 사무처 운영 혁신 : 임원―(정무직) 실장단, 활동가 순환배치 (현장-순환배치) 마치며 : 사회운동노조를 위한 하나의 비교 이 글을 시작하면서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변화된 주객관적 정세와 물리적 세대교체를 맞아 현 정세에 적합한 노동자운동의 방향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함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 87년 이후 노동자운동의 주요 시기별 운동을 반성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이 2000년대 시도했던 산별노조, 진보정당, 미조직전략조직화의 조합으로 구성된 전략은 유효성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따라서 2000년대 운동 경험에 대한 평가를 통해 대안을 재구성하자는 것이 우리의 제안이다. 2000년대를 돌아볼 때 초기업 방식으로 진행했던 중소영세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주체형성 시도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이는 초기업노조운동(산별노조지역노조)과 전략조직화 사업이 결합될 필요를 보여준다. 이에 따라 2009년 금융위기,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25년동안 노동자운동을 책임져온 세대 이후 시기의 운동과제로 몇 가지를 제안했다. 노선적 측면에서는 첫째, 산별노조·지역본부가 ‘초기업적인 신규 조직화’를 노선으로 채택하고 조직적 투자를 집중하는 방향으로 혁신할 것과 둘째, 건설 과정부터 “노동해방, 평등세상”의 이념적 성격을 지속적으로 약화시켜왔던 민주노총의 추세를 대역전하여 대안세계화 이념을 운동 내에서 전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노동자운동의 조직적 과제로는 (지역현장) 대중운동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분석하기 위한 활동가 네트워크 운영과, 민주노총(총연맹) 운동의 혁신 과제 실현을 위한 합의 확대를 위한 노력을 제안했다. 우리는 이러한 실천에 나서는 노동조합을 ‘사회운동노조’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사회운동노조’의 구체적인 의미나, 이 운동에서 제안하는 이념의 모호성이 노동운동포럼 토론과정에서도 지적되었다(‘어떤’ 사회운동인가, 어떤 ‘실천 활동’인가?). 정당과 ‘사회운동노조’의 관계도 논의가 제안되었다. 이러한 쟁점에 대한 보다 정리된 토론은 이후 공동의 논의과정에서 보완되어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한 가지 짧은 비유 혹은 비교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1998년 IMF 구제금융위기에 대한 민주노총의 대응을 돌아보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른바 노동유연화 ‘3제’(변형시간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에 대한 노사정합의와 번복, 총파업의 실패가 있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비판하고 경제위기의 부담을 자본가에게 질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이념정책적 능력의 부재가 낳은 안타까운 결과다. 세계경제, 한국경제의 상황을 볼 때 이런 식의 심각한 경제위기는 앞으로 남한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닥쳐올 것으로 예상된다(물론 98년과 같은 외환위기 형태가 아닐 수도 있다). 그 때 민주노총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최근 경제위기를 심각하게 겪고, 또 그 과정에서 노동자사회운동의 저항이 확산되고 있는 그리스의 사례를 보자. 물론 그리스의 양대노총을 사회운동노조의 사례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지만, 남한 노동조합운동의 대응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리스 경제위기의 전개 과정에서, 민간부문 노총인 GSEE와 공공부문 노총인 ADEDY은 2010년 최초로 총파업 투쟁을 전개한다. 이들 노총은 원래 (한국과 굳이 비교하자면 민주당과 유사한) 사회당을 지지하는 조직들이어서 애초에는 총파업에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경제위기의 부담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긴축정책을 인정할 수 없었다. 노동자들의 연이은 총파업과 이어 확산된 ‘분노한 사람들’의 저항에서 좌파 정치운동은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긴축반대 투쟁, 트로이카(IMF,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가 강요한 채무조건 재협상 투쟁이 핵심 요구다. 이러한 대중투쟁의 성과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SYRIZA)는 총선 결과 집권 직전까지 갈 정도로 대중적 지지가 확대되었다. 그리스의 상황이 이렇게 전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동조합운동이나 정치운동이 노동자계급의 입장과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트로이카의 요구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리자와 그리스 사회운동, 노동자운동의 요구는 ‘대안유럽’을 요구하는 국제주의적 방향을 취하고 있다. 유럽의 변혁이 그리스의 변혁에도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한편 98년과 그 이후의 민주노총으로 다시 돌아와보자. 민주노총의 요구는 노동자에게 경제위기 부담을 전가하는 긴축정책을 반대한다거나 IMF 구제금융협약을 거부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장에서는 정리해고를 막아내고 비정규직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이 계속되었지만 전체 노동자계급의 거시적 투쟁방향을 제시해야할 총연맹 차원의 정책은 결이 달랐다. 집단적 노사관계의 일부 양보를 대가로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유연화 ‘3제’를 합의했다. 재벌개혁(해체)을 요구하거나 소액주주운동과 연대하기도 하고,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사회복지 확대 등을 요구했다. 경제위기의 원인을 오해하거나, 그게 아니면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한 투쟁은 없이, 온통 ‘결과를 완화’하기 위한 요구에 집중했다. 경제위기의 결과를 완화하는 것도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에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에 그쳐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민주노총은 노동자계급의 입장을 벼리는 노력보다는 중간계급 ‘개혁적’ 전문가들의 이런저런 정책제안을 수용하는데 오히려 열심이었다. ‘이념을 가진 조직화 노선으로서’ 사회운동노조라면, 경제위기 상황에서 다른 것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화를 통해 꾸준하게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연계된 한국경제 위기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이념을 활동가들과 조합원이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다. 시리자를 대표하는 치프라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전쟁은 국가와 인민들 사이의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은 한편으로 노동자 및 인민 다수와 다른 한편으로 전 세계 자본가, 은행가, 주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자, 거대 펀드들 사이의 투쟁이다. 이것은 인민들과 자본주의 사이의 투쟁이며, 그리스는 이러한 투쟁의 선두에 서 있다.” 경제위기는 계급투쟁의 문제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사태의 원인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에 입각해서 투쟁하기 위해서는 ‘이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투쟁을 가장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위한 조직화, 미조직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성이 투쟁 속에서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남한 경제의 위기도 세계자본주의 경제위기의 효과로서 나타날 것이라는 점에서 ‘대안세계화’라는 사회운동의 이념(시각)이 필수적이다. 사회운동노조라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대안세계화 사회운동’을 노동자운동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의미다(모든 종류의 사회운동들과 별다른 기준도 없이 연대하자거나 의제를 확장하자는 것이 사회운동노조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념’과 노동자운동의 주체 형성을 위한 ‘조직화’도 다른 과제가 아니다. 경제위기에 대해서 “인민들과 자본주의 사이의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세력 역시, 정당들의 이합집산 이전에 노동조합의 총파업 등 대중 투쟁의 과정에서 (그 결과로) 형성되었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정당들은 대중운동의 분출에 뒤따르면서 이를 지원하는, ‘전위당’이기보다는 (사회운동의 조직가지원자로서) ‘후위당’ 일 수 있다. 남한 노동자운동이 98년의 민주노총과 다를 바 없이 다음 경제위기를 준비 없이 맞는다면, 그 때는 너무 늦을 것이다. 민주노총과 현장의 민주노조들은 현장의 고용안정 투쟁만이 아니라, 혹은 경제위기의 결과를 완화하는 요구만이 아니라, 경제위기의 원인을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인식하고 이에 대한 투쟁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이러한 투쟁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인가? 경제위기가 어느 한 순간의 파국이 아니라 매순간 여러 정치사회적 쟁점으로 드러나는 ‘현재진행형’ 정세라고 할 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과 투쟁 준비가 사회운동노조의 주요한 실천이라 할 수 있다. 1998년 이후 현재의 노조운동은 실책을 범하면서, 살아남을 조직적 자산도 취약해졌다. 2009년 경제위기 이후 정세를 분석하면서 새로운 운동주체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 중에 하나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노동자계급 단결의 확대와 이념의 재건이라는 의미로서 사회운동노조’가 필요한 정세에 있다.
엄길용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장 인터뷰 인터뷰어: 이승하 | 서울지부 사무국장 기획/정리: 이승하 | 서울지부 사무국장, 이민영 | 정책위원 일시: 2013년 8월 23일(금) 새 정부 출범 이후 수서발 KTX 법인설립을 필두로 한 철도민영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사실 철도를 민영화하려는 정부의 정책은 이번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시민들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공공부문 민영화가 곳곳에서 십수 년 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수록 민영화 정책도 점점 교묘해진다는 것이다. 민중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노조의 반대투쟁을 점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조건 속에서도 힘차게 민영화 반대 투쟁을 진행해온 노동조합이 있다. 바로 공공운수노조·연맹 전국철도노동조합이다. 지난 6월에는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한 총파업 찬반투표를 89.7%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시키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2013년 하반기, 민영화 반대 투쟁을 앞둔 상황에서 현재 철도노조의 상황, 이후 투쟁 과제를 듣기 위해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 엄길용 본부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교묘한 방식의 민영화, 결국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대응이다” 사회운동: 상반기 동안 철도노조는 박근혜 정부의 철도민영화 정책에 맞서 힘찬 투쟁을 전개해왔다. 지난 6월에는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한 총파업 찬반투표가 89.7%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되기도 했다. 이번 투쟁 준비과정은 어떠했나. 엄길용 본부장(이하 엄길용): 사실 철도민영화 반대 투쟁은 이번 정권 하에서 새롭게 진행된 투쟁은 아니었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국면에서 진행되는 투쟁임은 분명했으나, 투쟁 준비 과정 등에 있어서 이전의 투쟁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다. 내부적으로는 조합원 교육부터 시작해서 조합원들과 충분히 소통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다. 민영화 관련해서는 지난 10여 년 동안 교육이나 다양한 투쟁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이해가 높다. 쟁의행위 투표에서 총파업이 높은 찬성률로 가결된 것도 이러한 지난 과정들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그리고 정권이 바뀔수록 점점 민영화 추진 방식이 세련되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투쟁을 열심히 조직했고, 그 결과 압도적 찬성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은 철도민영화 저지이지만 본질은 전체 공공부문 민영화이다. 지금 진행하는 이런 투쟁을 통해서 조합원들이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교육도 이런 목표 하에서 진행하고 있다. 물론 많이 더딘 측면도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이기적인 면이 존재한다는 평가들도 있는데, 철도노조도 공기업 노조로서 여기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회운동: 얼마 전 진행된 지부별 파업학교에 참가했었는데, 분위기가 굉장히 좋고 모두가 열심히 참여하더라. 엄길용: 한 달에 한 번씩 본부에서도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자학교를 열고 순회하면서 지부별로 찾아가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분위기는 좋지만 조합원 전체 수에 비하면 참여수준이 매우 낮은 편이다. 파업학교도 지부별로 진행했는데, 총 400여 명 정도 참여했다. 전체 조합원 수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그래도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이 내용을 가지고 새롭게 전 조합원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지부에서 주도하면서 필요하면 간부들까지 파견해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회운동: 철도민영화와 관련해 최근 정부의 입장 변화나 주목해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엄길용: 기본적으로 정부의 민영화 추진 시도 자체가 세련되어졌다. 물론 신자유주의 도입 이후에 본질적인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정권은 바뀌어도 정책이 바뀐 적은 없었던 것이다. 저들이 세련되어졌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전통적인 방식의 민영화를 우회한 경로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수서발 KTX는 민영화가 아니라며 법인설립 추진 과정에서 ‘민간자본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겠다,’ ‘연기금을 도입하겠다’며 민영화 의도를 감추려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통신 민영화 사례에서 보듯이 연기금 지분은 매각하면 그만이다. 언론이나 정부 입장에서는 민영화가 아니라고 이야기하지만 관제권 환수, 선로분배권 환수, 출자했던 자산 환수 등을 통해서 민간 사업자가 진출했을 때 이윤을 추구하기 쉽도록 그들의 입맛에 맞게 철도운영구조를 바꾸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민영화 추진 방식이 훨씬 교묘하고 치밀해졌다. 사회운동: 최근 사장 선임과 관련해서 국토교통부의 개입이 있었다. 철도노조와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이에 문제제기를 하고 여론을 조직해서 정부의 낙하산 사장 선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철도민영화에 반대하는 여론을 의식한 조치인 것 같은데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엄길용: 이 사안을 통해 철도민영화 문제가 언론에 부각된 것은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사장 선임은 민영화 계획을 추진해나가는데 큰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민영화는 지금 정부의 수순대로 사장이 없이도 부사장 직무대행 체제로 진행이 가능하다. 파업 시기를 정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일 수는 있겠다. 어쨌든 사장 선임을 막아낸 것 자체는 투쟁의 성과이기 때문에 조합원들이나 전체 투쟁 대오의 자신감 형성에는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사회운동: 민영화 절차가 교묘한 방식으로 진행되다보니 파업 돌입 시점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안다. 지난 쟁의대책위원회에서도 수서발 KTX 법인 설립 시 파업 돌입이라는 원안이 격론 끝에 통과되었다고 들었다. 주체들의 준비 정도나 민영화 추진 일정을 두고 판단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떠한가. 엄길용: 아직 쟁점이 있다.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이 안 되면 철도민영화도 안 되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 법인 설립이 결정적이라면 그에 초점을 맞춰야겠지만 민영화는 이와 상관없이 이미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폭제가 있어야 더 큰 싸움을 만드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우리도 기점을 하나 확보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는 민영화 계획은 어떤 결정적인 전환점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한 단계 진행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6년 1월로 수서발 KTX 운영이 늦춰졌는데 법인 설립과 관련한 행정적 절차나 지분 출자는 영업개시 이전에 언제든 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법인 설립 이후로 투쟁을 보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연기금 투자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보도되었는데 이 역시 당장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 어떻게 하느냐다. 이에 따라 민영화가 당겨질 수도, 미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희생의 각오로 파업투쟁 승리하자” 사회운동: ‘국민의 발을 볼모로’ 싸운다는 비난부터 정권의 탄압과 징계까지, 최고 수위의 투쟁인 파업을 감행하려면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 하는데. 엄길용: 투쟁에는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총력투쟁, 파업뿐이다. 정치권에 청원을 하고 여론을 조직해서, 정부가 노사정 테이블로 민영화 문제를 넘기고 논의하게끔 한다는 방식도 있겠지만 지금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방식은 노동조합으로부터 강력한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방식을 통해서는 민영화 정책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사회운동: 민영화를 앞두고 공사 내부에서는 직종별 구조조정 등이 한창인 것으로 알고 있다. 화물 1인 승무, 전기 장비 외주화, 열차승무 강제순환전보가 추진 중이다. 민영화에 앞서 벌어지는 현장의 변화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엄길용: 사실 철도분야에 구조조정은 일상화 되어있다. 특히 인력감축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가장 큰 문제다. 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해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인데, 결국에는 외주와 하청 등으로 필요한 인력분을 보충할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일의 양은 그대로인 것이다. 한편 업무를 외주화하지 않고 1인 승무처럼 인력 자체를 줄이는 방식도 있다. 이런 흐름들의 목적은 철도를 가장 팔기 쉽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비용절감의 목적으로 인원 자체를 줄일 뿐만 아니라 인건비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는 민간자본이 진출했을 때 가장 이익을 내기 좋은 구조다. 정부가 조금만 보조를 해주면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사회운동: 현장은 인력부족이라 아우성인데 오히려 관리자들은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관리자가 더 많은 역도 있다고 하던데. 엄길용: 철도 관련 전체 인력 규모 내에 관리자 비중이 아주 커졌다. 노동조합을 염두에 두고 배치된 인력들이다. 통상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을 때는 우선 중간관리층을 상당히 슬림화 한다. 구조조정의 일반 타겟이 바로 중간관리층인 것이다. 하지만 철도는 역으로 중간관리층을 노무관리나 노동조합의 단체행동, 파업 시 대체인력으로 사용하기 위해 실제 필요보다 더욱 비대화시킨 측면이 있다. 사회운동: 현재 강제순환전보에 반대하여 열차 승무 조합원들이 휴일 지키기 투쟁을 하는데, 그 빈자리를 급조되고 자격 없는 이들이 대체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측에서는 파업에 대비하여 대체기관사로 쓸 인력들을 부랴부랴 추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엄길용: 날림 기관사, 자격 없는 역무원을 동원하여 철도를 움직이게 할 수는 있으되 안전을 담보할 수는 없다. 허준영 사장 시절에 3천여 명의 철도 관리자들에게 파업 등에 대비하여 약식으로 교육을 시키고 기관사 면허를 발급해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안전을 전혀 담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본 운영 자체도 제대로 담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경부선 운전을 하던 기관사가 중앙선에 가면 선로의 특징, 신호관계 등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이전의 파업 때도 대체 인력이 움직이는 열차가 중간에 운휴되거나 상당히 지연되는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많이 발생했다. 특전사들을 훈련시켜 열차, 선박 유사시 대비 운행 교육을 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모두 위험천만한 일이다. 사회운동: 지금까지 수많은 투쟁을 경험한 만큼 관록도 쌓였지만 반대로 해고나 징계가 빈번히 벌어지는 것을 보아왔기에 파업을 앞둔 조합원들의 마음은 한편으로 두렵기도 할 것 같다. 한길회 사건 등 최근 공안탄압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현재 큰 싸움을 앞둔 철도노동자들의 분위기는 어떤지 듣고 싶다. 엄길용: 타임오프가 도입되면서 전임자 수가 반 정도로 줄었다. 이전에는 64명의 상근자가 있었는데 현재는 32명 정도로 반으로 줄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여러모로 파업투쟁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현재 분위기는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제일 좋은 상황이다. 결의대회 참여정도,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 조합 지침에 의해 진행되는 선전 상황, 1인 승무 저지 투쟁 등의 객관적 상황들을 보았을 때 그렇다. 본부 지침이 100% 이행되고 있으며 집회 규모도 전례 없는 규모로 조직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전에는 더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럴 때도 투쟁에 돌입했다. 지역, 직종별 차이는 있겠지만 객관적인 상황을 봤을 때 지금은 파업에 돌입할 조건도 되고 정당성도 충분하다. 사회운동: 지난 대의원대회 때 “또 다른 희생의 각오로 파업투쟁 승리하자”는 철도노동자들의 구호를 들었다. 복직되지 못한 해고자가 상당히 많은데도 또 다시 희생을 함께 감내하자고 결의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숙연해졌다. 엄길용: 그게 철도노조의 전통이다. 그리고 좋은 전통을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것이다. 다른 공기업에 비해서 철도노조가 아직까지 민주노조 깃발을 굳건히 들고 있는 것은 싸워야 할 때 열심히, 제대로 싸웠기 때문이다. 피해를 보거나 깨진 적도 많았지만 그것들이 결코 패배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0년 동안 투쟁만으로 민영화를 막아왔다. 이러한 좋은 평가도 더욱 좋은 전통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철도노조가 2001년에 민주노조로 바뀌었는데, 그 이전에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시절, 노조민주화를 추진했던 시간까지 합치면 20여 년 정도가 된다. 이 20년 동안 870명 정도가 해고되었다. 그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KTX 여승무원 투쟁이었고 당시 390명이 일거에 해고되었는데 집단적인 비정규직 투쟁의 경험을 한 셈이다. 현재에도 91명의 해고자가 있지만 그동안의 투쟁을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해고자가 870명이지 좀 더 낮은 수준의 징계는 정말 몇 만 명에 달할 것이다. 그래서 철도에서는 해고자 아니면 징계 받았다고 명함을 내밀 수도 없다. 사실 공기업에서는 정직 당하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철도는 다르다. 좋은 전통이 만들어져 온 것이다. “철도 운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갈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 사회운동: 2002년 가스발전철도 3사 파업, 격렬했던 2003년 두 번의 투쟁, 2009년 투쟁 등 오랜 기간 투쟁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으로 투쟁 태세를 빠르게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 투쟁을 경험한 조합원들이 퇴사도 하고 세대구성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을 텐데. 엄길용: 철도노조 평균 연령이 만 45세이다. 직종별로 50세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는데 꽤 높은 연령대라고 볼 수 있다. 가스노조의 경우 인력이 충원되면서 젊은 조합원들도 생겨났다고 하는데, 철도는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 2005년 이후에 신규입사자가 별로 없고, 그래서 세대 간의 문제나 경험의 차이 등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신규입사자가 없기 때문에 평균 연령도 높은 편이다. 사회운동: 이번 투쟁을 거치면서 민영화 저지가 가장 큰 투쟁의 목표겠지만 내부적으로 조직 강화를 위한 여러 가지 과제도 있을 것 같다. 내부교육 사업, 투쟁의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기 위한 프로그램 등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엄길용: 현재 철도노조 내에서 간부층이 많이 얇아지고 고갈되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순환이 되어야 조직이 활성화되는데 그런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 노동조합 자체도 많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노동조합 활동방식이 우리와 다르기는 하지만 주목할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철도에서는 청년부 등을 따로 만들어 운영하고, 그것이 활성화되어 있다. 투쟁을 앞서서 하는 조직은 아니지만 간부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실천단을 조직한 적이 있다. 젊은 조합원 중 관심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간부로 커나가는 중간 과정 정도의 위상으로 진행했다. 지금은 따로 이런 기획을 내지는 못하고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교육, 파업학교 등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 사회운동: 민영화가 되고 분사화가 이루어지면 노조가 약화되는 경우가 많다. 단체교섭이 분권화파편화되고, 고용관계가 개별화되면서 노동자들의 단결이 이완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기관사 노조’처럼 직종별 노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이 노조들은 철도노동자 전체보다는 직종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기도 한다고 들었다. 엄길용: 일본 민영화 과정에서 직종 노조인 기관사 노조가 생겼다. 처음에는 민영화를 반대하고 싸우는 듯 했으나 나중에는 타협했다. 타협을 하면서 자신들의 세를 불리는 것에 집중했다. 반면 끝까지 반대했던 노조는 와해 직전까지 간 경우도 있다. 직종별로 하는 일이 다르긴 하지만 결국 철도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로서 운명을 같이하는 관계일 수밖에 없다. 업무 특성이 차이가 있지만 직종을 넘어 단결을 하는 것은 노조가 얼마나 건강하게 유지되느냐에 달려있다. 철도는 오히려 모든 직종이 전문화되어야 유기적으로 굴러가는 측면이 있다. 물론 업무의 특수성 때문에 조건 자체가 달라질 수는 있다. 차량, 운전과 같은 집단 사업장은 자주 모일 수 있는 반면에 역, 시설, 전기 등은 사방에 흩어져서 소수로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 사회운동: 해외사례를 보면 영국처럼 민영화 이후 폐해가 드러나 재공영화하는 곳도 있고, 끊임없는 민영화 압박 속에서도 스페인이나 독일, 프랑스처럼 계속 국영철도를 아직 유지하는 사례도 있다. 참고할 만한 모범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엄길용: 스페인, 독일의 경우 사실 많이 구조조정 되었다. 반면 프랑스 철도의 경우 주목할 만한 점이 많은데 특히 서비스를 생산하는 철도노동자, 경영자, 시민, 각각의 주체들이 모여 철도 산업에 대한 계획이나 운영과 관련해 아주 긴 시간 동안 논의를 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방식이 그렇다. 공공의 영역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게 하는 모범적인 국가가 프랑스인 것 같다. 근본적인 대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현재 상황에서 제일 발전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얼마 전 한국에서 민영화를 위해 만들었던 민간검토위원회는 구색을 갖추기 위한 형식적 자리다. 위원회 자체적으로 고민된 것은 하나도 없고 정부에서 준 안을 다시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1994년 전지협 투쟁, 공동파업의 기억을 잊지말자” 사회운동: 상반기 투쟁을 경과하면서 남은 성과와 이후 과제는 무엇인가. 엄길용: 아직 투쟁이 진행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성과를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 다만 다른 때보다 범국민대책위원회와 같은 연대사업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 하나의 성과다. 철도노조에서 적극적으로 연대사업을 하려고 노력한 측면도 있고 결과적으로 연대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 조합원들도 자신감이 높아지고, 생각하는 바도 많이 넓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부적으로 조합원들이 결의를 높여가는 과정 중이라 아직 성과를 논하기에는 이르다. 향후 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당연히 철도민영화를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하나는 민영화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이와 연동되어 있는 인력 구조조정 저지 투쟁이다. 지금까지 철도노조는 인력 문제를 전면으로 쟁점화 하는 데 부족했다. 공사의 인력 감축안에 대해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정도였다. 이제는 법이나 단체협약에 근거해서라도 공세적인 투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철도노조가 각 부문에 필요한 인원들을 실사하고, 이러한 자료에 근거해 구체적인 인력 충원의 요구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 요구안이 관철되지 않았을 시 쟁위행위를 배치한다거나 하는 등의 투쟁들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은 수세적으로 밀려왔다면 앞으로는 민영화 저지, 인력 감축에 맞선 사업을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공세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다양한 투쟁들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조합원들과도 공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사회운동: 현재 철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문에서 민영화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이를 하나로 묶어내면서 더 큰 투쟁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엄길용: 일단 지금은 상층 단위의 연대부터 모색하며 손발을 맞춰가고 있다. 각각의 민영화 사안들이 조금씩 다른 일정으로 목전에 와 있다. 사안별로 다른 정부의 민영화 추진 일정에 맞추다보면 공동투쟁은 불가능하다. 아예 주도적으로 우리가 투쟁일정을 잡고 공통의 요구안과 흐름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있기는 하다. 이전 경험을 반추해보면 철도나 궤도 쪽에서는 몇몇 아주 의미 있는 경험들이 있다. 1994년 전지협 투쟁이라고 들어보았는지. 당시 철도는 민주노조가 아니었는데 기관사 중심으로 민주노조 세력이 있었고 서울지하철, 부산지하철 등 지하철노조가 있었다. 당시 이 노조들을 중심으로 협의회가 구성되어 있었다. 이 협의회에서는 정부가 만약 한 군데라도 치고 들어오면 동맹파업을 하겠다는 결정이 있었고 실제로 집행이 됐다. 많이 연행되고 해고되었지만 그런 것들이 민주노조를 만들어나가고 민주노조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는 큰 경험이자 지표가 되고 있다. 2002년 3사 파업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험들을 목적의식적으로 앞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사회운동: 현재 전국에서 지역별 대책위가 꾸려졌는데 조합원들과 정기적으로 선전전을 진행하고 여러모로 교류가 많아지면서 다른 연대단체에도 굉장히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사회진보연대 회원들도 퇴근길에 민영화 저지 선전전에 동참하고 뒤풀이 자리에서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투쟁에 대한 열의가 더 높아지는 모습이다. 계속해서 힘차게 연대해야할 이유가 많아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운동』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엄길용: 민영화 저지 투쟁에서 어느 분들보다 아주 열심히 헌신적으로 같이 해주시고 계셔서 우선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철도민영화 뿐만이 아니라 사회를 바꿔나가는데 함께 힘차게 투쟁했으면 좋겠다. ※ 긴 시간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엄길용 본부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국제운수노련(International Transport Workers' Federation) 철도분과 의장 외스타인 아슬락센(Øystein Aslaksen) 인터뷰 인터뷰어/정리: 정영섭 | 사무처장 일시: 2013년 8월 26일(월) 철도노조와 공공운수노조/연맹이 주최하고 KTX민영화 저지와 철도공공성 강화 범대위,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공공성 강화 공동행동,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민주노총 등이 후원한 ‘한국 철도의 미래를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온 국제운수노련 철도분과 외스타인 아슬락센 의장을 만나 철도 민영화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노르웨이 기관사노조(Norwegian Locomotive Drivers' Union) 전 위원장 출신이며 노르웨이 국영 철도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다. 사회운동: 국제운수노련 철도분과에 대해서 간략한 소개말씀 부탁드린다. 아슬락센 의장(이하 아슬락센): 국제운수노련은 전 세계 운수노동자들의 가장 광범위하고 큰 노조연합 조직이다. 모든 운수 분야의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다. 조직 내에서 가장 큰 부위가 도로운송과 철도 분야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약 50%를 차지한다. 국제운수노련은 편의치적선박(flags of Convenience) 캠페인으로 유명하다. 국제운수노련은 50년 이상 이 캠페인을 지속해 왔으며 그 성과로 올해 8월 20일부터 ‘국제 해사노동 협약’(Maritime Labor Convention)이 발효되었다. 국제운수노련은 전 세계적으로 선원, 항만노동자, 항공사노동자, 철도노동자, 도로운송 및 지하철 노동자 등을 포괄하고 있으며 150여 국가의 약 450만 운수노동자를 대표하는 700여개 노조들이 가입해 있다(www.itfglobal.org 참조). 한국에서는 철도노조가 가입해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유럽 지역, 아메리카 지역, 아랍 지역, 아프리카 지역 등 지역 조직들이 있다. 최근에 준비하는 캠페인으로 도로운송 노동자들에 대한 것이 있다. 도로운송 부문에 점점 더 초국적 자본이 들어오고 있고 특히 버스, 지하철 등 도시 교통부문에서 그러하다. 대개 미국 자본들이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동지들과 협력하고 있다. 또한 디에이치엘(DHL), 페덱스, 유피에스(UPS) 같은 소화물 배달회사 노동자들 문제에도 개입하고 있다. 이들의 노동조건 역시 매우 열악하다. 최근에는 터키 항공노동자들 해고 문제에도 연대하고 있다. 유럽운수노련은 국제운수노련의 최대 지역조직인데, 서유럽 노조들만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철도분과로 보더라도 러시아 철도노조가 제일 크다. 우크라이나나 벨로루시의 철도노조도 규모가 큰데 역시 유럽운수노련 소속이다. 사회운동: 최근 세계적으로 철도 민영화나 구조조정 흐름은 어떤가? 아슬락센: 라틴아메리카 사례가 대표적이다. 많은 철도가 민간자본에 팔렸다. 정부나 지자체의 투자가 미흡했고 관리도 부실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이 민영화 정책을 강요하여 민영화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철도 네트워크는 민영화의 심각한 폐해를 겪었다. 최근 일부 국가들에서는 철도를 재국유화 하였다. 민간자본이 이윤 획득에만 집착하고 시설 투자나 서비스 개선을 소홀히 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가 그러하다. 최근에 아르헨티나에서 대형 철도사고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민간기업이 철도시설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았고 관리도 부실했기 때문이다. 공공 소유 하에서 철도네크워크가 잘 작동할 수 있고 라틴아메리카에서 더 진보적인 정책이 시행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이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유럽에서도 민영화 흐름이 강하다. 유럽의 철도산업은 수십 수백억 유로 규모에 달한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철도가 국유기업인데 민간자본이 시장에 접근하려 하고 있다. 최근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4차 철도종합정책(Railway Package)을 발표하였는데, 철도운영에 대한 의무적인 경쟁입찰을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실제로 대규모 민영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철도노선에 대한 접근 개방을 천명하고 있는데 이는 민간자본이 이윤이 나는 흑자선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서 이윤만 가져가는 행태(cherry picking)를 조장할 것이다. 납세자들은 높은 요금을 감당해야 할 것이고, 기존에 흑자선에서 나온 이윤을 적자선에 지원하던 교차보조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정책을 유럽연합이 강요하고 있다. 사회운동: 이러한 민영화 정책에 대한 국제운수노련의 입장은 무엇인가? 아슬락센: 국제운수노련은 철도를 공공재로 본다. 철도는 전 세계 민중들에게 매우 중요한 공공재이기에 반드시 공공의 자산에 속해야 한다. 우리는 민영화에 영향을 받는 가맹 노조의 투쟁과 활동을 지원하고 지지한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민영화 저지 운동에 국제운수노련이 참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각국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 역시 중요하다. 어디서든 민영화가 진행되는 것이 현재적 경향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민중들은 민영화에 반대해 왔고 성공을 거둔 경우도 많았다. 자본은 끊임없이 이윤 확대를 위해 민영화를 추구하지만, 민중들은 공공부문의 서비스가 강화되는 것을 바란다. [참고] 유럽운수노련의 요구(출처: 국제운수노련 홈페이지) 우리의 철도와 일자리를 지키자! 철도산업에 대한 자유화와 경쟁도입은 △감원 △외주화와 하청 증가 △비정규 불안정 고용 증가 △파견노동 증가 △업무량과 노동강도 증가 △노동시간 유연화, 교대제 개악으로 이어진다. 시설과 운영의 분리 반대! 시설과 운영을 각각 담당하는 회사로 나누면 필연적으로 행정비용이 증가한다. 차량과 선로 시스템 사이의 밀접한 조정과 소통, 협력이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시설과 운영 분리는 안전을 위협한다. 철도 여객서비스 자유화를 중단하라! 각국 정부가 자국민들의 요구를 바탕으로 공공운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선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보장하라! 철도노동자 노동권과 노동조건 보장하라! 철도는 공공서비스다! 사회운동: 국제운수노련은 민영화를 저지하고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는가? 아슬락센: 각국의 노동조합이 이러한 이슈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제운수노련은 그러한 활동을 지원하고 조력한다. 국제운수노련은 정책을 논의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가맹 노동조합에 제공하며, 각국 노동조합의 활동 경험을 교류하고 나누도록 한다. 또한 국제적인 캠페인을 제안하고 이를 추진한다. 민영화 저지 투쟁의 가장 중심 주체는 그 나라의 노동조합이다. 따라서 민영화에 대응하는 해당 노동조합의 노조 조직률이 매우 중요하다. 노조 조직률이 높고 힘을 유지하면 민영화에 잘 대응할 수 있다. 사회운동: 작년 스페인 철도노동자들이 민영화 반대 파업을 여러 번 벌였다. 이와 같이 주목할 만한 민영화 저지 투쟁 사례가 있다면 말해 달라. 아슬락센: 많은 나라들에서 파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10월 9일이 국제 공동행동의 날이다. 이 날은 민영화, 자유화를 강요하는 4차 철도종합정책에 맞서 유럽 차원의 공동 파업과 다양한 행동이 벌어질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파업을 벌일 것이고 또 어떤 나라에서는 집회와 시위를 벌일 것이다. 각국의 노동조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유럽운수노련이 조직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민영화에 대한 철도노동자의 투쟁은 기본적으로 방어적인 투쟁이다. 몇 년 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철도 민영화가 투쟁으로 저지되었고 최근에 뉴질랜드 정부는 철도를 재국유화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재국유화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철도에 대한 투자와 책임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국유화 하고도 여전히 부실한 상태에 있는 곳도 있다. 민영화의 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영국에서는 철도의 공공적 소유를 위한 운동이 현재 벌어지고 있다. ▲ 철도의 공공적 소유를 주장하는 캠페인 포스터 민영화의 폐해를 지난 수십 년 간 겪은 영국에서는 현재 민영화된 철도를 다시 공공의 소유로 돌려놓으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윤보다 인간이 먼저’라는 구호 아래 ‘철도를 위한 행동’이라는 이름의 캠페인 조직이 만들어져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8월 13일에 전국적 캠페인을 진행했다. 여기에는 영국노총(TUC)과 그에 소속된 서비스노조를 비롯한 많은 노동조합, 주민단체, 시민사회단체, 환경단체 등이 참여하고 있다. 2008년 이후로만 요금 인상은 임금 인상보다 세 배 더 빠르게 진행되었고, 매년 12억 파운드가 분할 민영화된 철도회사들의 비효율로 인해 사라진다고 한다. (http://actionforrail.org 참고) 노르웨이에서는 철도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국가는 철도시설에 대한 비용을 대고, 유지보수에 투자를 하며 이런 것들이 철도를 공적으로 강화하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민간자본은 이윤만 생각하므로 이러한 부분에 투자를 하지 않으려 하고 공공적 책임이 부족하다. 사회운동: 끝으로 향후 철도노동자 투쟁을 전망하면서 한국 철도노동자와 민중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해 달라. 아슬락센: 자본의 민영화 전략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전체 사회운동 진영의 연대투쟁으로 저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도는 그 자체로 공공의 자산이며 연관되지 않은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사회운동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세금을 내는 납세자의 문제이고, 철도를 이용하는 승객의 문제이다. 그래서 광범위한 연대투쟁 조직을 결성하고 힘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정치적인 투쟁이다. 한국의 동지들이 잘 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철도노동자들과 한국 민중들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본다.
현대에 부활한 과거의 노동시간 이 글은 피에로 바소의 『현대에 부활한 과거의 노동시간』(Pietro Basso, Modern Times, Ancient Hours, Verso, 2003)의 결론인 6장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 * * Ⅰ. 신자유주의의 명제 우리가 살펴 본 것처럼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은 노동시간 단축을 격하게 반대한다. 실제로 임금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연장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유연화하려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 결론을 다루는 이번 장에서는 우연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각각 살펴볼 것이다. 오늘날의 유력한 사회경제적 교리는 이러한 원인을 규명할 능력도, 관심도 없다. 이러한 교리를 따르는 학파와 그 영향권 아래 있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원칙만 통용된다. 시장경제라는 틀 안에서 과학, 기술, 노동생산성의 진보는 노동자 대중의 자유시간 확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윌리엄 그로신(William Grossin)은 이러한 지배적인 견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기술의 효과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기술은 노동에 투여되는 시간을 감소시킨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책에서 제기한 것과 같은 노동시간의 문제는 이러한 학문적 토대 아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문제의 존재가 인식된다고 하더라도, 그 현상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이례적 사례로 간주된다. 정치경제 분야에서 지금은 ‘사회과학의 여왕’을 자임하는 신자유주의가 케인즈주의를 압도하고 난 이후부터는 더욱 그러하다.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의 ‘자연화’를 이전에는 도달하지 못했던 정도로 철저하게 밀어붙인 정치경제 양식이다. 여기서 자연화의 의미는 자본주의와 같이 특수하며, 곧 사라질, 역사적 형태를 가진 사회의 경제적 조직체를 ‘인간본성’으로부터 내려오는 영원하고 메타역사적인 존재로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시장의 복음을 전파하는 이들에게 시장은 자생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놓아두기만 한다면 모든 문제, 비단 경제 문제뿐 아니라 모든 인간문제에 대한 자연적 해결책인 것이다.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 진다면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발전은 무한히 보장될 것이다. (하이에크가 제대로 정의 내린 대로) ‘시장이라는 비인격적 힘’에 대한 복종이 전면적이고 무조건적이어야 하는 일종의 종교행위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자유기업’은 시장의 가시적 화신이다. 시장의 자유, 자본의 자유는 기업의 절대적인 자유를 요구한다. 이것이 모든 좋은 것의 기원이 될지니. 하지만 신은 우리가 이러한 자유를 억압하거나 억제하더라도 우리를 도우신다! 불행하게도 자유기업과 자유시장의 적들은 군단을 이루고 있다. 분별없고(시장이 이성 그 이상이므로), 부도덕하다(시장은 그 본성상 윤리적이므로)는 점에서 강령과 조직, 노조를 갖춘 노동자운동은 최악의 적이다. 위기, 부채, 실업, 인플레이션 등 이 모든 사회적 무질서는 시장에 불경한 노동자들이 시장의 자유로운 운동을 가로막거나 방해함으로써 사회와 자기 자신들에게 부과한 천형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집단적’ 노동자들만이 자유시장의 유일한 적은 아니다. 단지 ‘연대’라는 의미에서라도 ‘집단주의’(collectivism)에 굴복한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부르주아의 신자유주의적 견해에 따르면 이것 역시 맹목적인 ‘코포라티즘’과 마찬가지다. 시장이 절대적으로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대안을 섣불리 내세우면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지반 위에서 일반적으로는 임금노동의 조건, 구체적으로는 노동시간의 가치, 길이, 강도에 대해 논할 여지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있어 임금노동의 유일한 문제는 그 정의상 스스로 만들어 내는 문제, 즉 정당화되지 않고 불합리한 요구를 통해 만들어 내는 문제 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실제적인 문제이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자유화’라는 과업을 수행해 오면서 일부 성공을 거두어 왔다. 산업간 경쟁, 국가간 경쟁, 남반구와 북반구의 경쟁, 그리고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경쟁을 심화시키면서 노동시간은 더욱 길어지고 힘들어졌으며, 앞으로 자본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펼쳐질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있어 시장의 자유와 자본의 자유, 사회의 안녕, 따라서 노동자의 안녕은 모두 같은 것이다. 모두 똑같은 고리, 즉 사슬이다. 노동조건의 향상은 복종, 그것이 동의된 복종이건 필요한 경우 주저함 없이 폭력을 사용해 얻어진 복종이건, 노동자들이 시장과 자본에 완전히 복종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신자유주의 이론이 최초로 전면 적용된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를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미국 슈퍼자본주의가 제작하고 연출한 ‘공포 영화’였다. 그리고 ‘노동 원천의 불안과 불안정’ 그리고 ‘산업 불안정이라는 조건 아래서 노동 속도, 노동시간, 교대조의 불균형적인 성장’이 이러한 ‘제작’이 제일 처음 불러오는 중요한 결과다. 이러한 점에서 출발하면 우리가 우려하는 문제에 대한 해법은 찾을 수 없으리라. 시장이 자연화되면 노동자들이 겪는 모순은 최소화된다. 신자유주의에 있어 ‘자유기업’과 ‘경쟁 질서’가 모든 ‘열린’ 사회와 노동자를 포함한 그 구성원들의 생활조건을 무한히 향상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물론 시장에 외부적인 요인들 때문에 이러한 조건, 특히 노동조건이 악화되는 것 역시 똑같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노동시간 동결, 노동시간 증가 및 강도 강화는 자연히 처리될 사안으로, 아예 문제가 아닌 것으로, 시장이 완전히 자유롭도록 놔두거나 자유를 복원시키기만 하면 될 일이다. 걱정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 즉 시장의 ‘도덕적 명령’에 반해서 투쟁하는 것은 반생산적인 일이다. 신자유주의가 가진 반노동적 자세는 오랜 경제학의 전통을 물려받은 것이다. 1847년 10시간 노동일 도입을 반대했던 맨체스터의 ‘복지가’ 콥든(Cobden)과 브라이트(Bright)에서부터, 8시간 노동일을 위해 투쟁한 기계공들에 대해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이 보인 생생한 적대감, 1933년 루이찌 에노디(Luigi Einaudi)의 ‘교훈’에 이르기까지, 또 일반적 노동시간 단축의 재앙적 성격에 대해 논한 지오반니 아넬리 경(Giovanni Agnelli Sr)에 이르기까지 그 메시지는 확고하고 명백한 것이었다. 근본적으로 시장경제 시스템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 못지 않게 케인즈나 케인즈주의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케인즈는 ‘빈곤과 가난, 계급과 국가 사이의 투쟁이라는 문제는 무시무시한 혼란, 하지만 일시적이고 불필요한 혼란일 뿐이며’, 확실한 해법을 위한 ‘자원과 기술’은 이미 자본주의 안에 있고 ‘이를 제대로 사용할 조직을 만들 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노동시간 단축에 있어서 케인즈는 그 대의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케인즈는 시장경제의 기본원칙 상 노동시간 단축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다고 본다. 케인즈가 보기에 장기적으로 노동시간의 급격한 단축과 평등주의적인 분배(‘1교대 3시간 또는 15시간 노동주’)를 가로막는 심각한 제약은 심리적 제약뿐이다. 이는 자본으로부터 유래하는 제약이 아니라, 과도한 노동에 병적으로 들러붙어 있는 우리 안에 있는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경제적 축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동에 대한 병적인 집착으로부터 재교육되고, 해방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시간의 일반적 단축은 따라서 본질적으로 심리적교육적 문제인 것이다. 더욱이 케인즈는 이런 놀라운 기술진보를 바탕으로 노동시간이 일반적으로 단축될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예측하였다. 그렇지만 문제는 케인즈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그러한 기술진보의 자본주의적 사용을 추상한 나머지 인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러한 실질적 가능성이 실질화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근본적 요인 또한 추상해 버린다는 점이다. 1930년 당시 케인즈가 안심시키고자 했던 ‘우리의 손자 손녀들’은 지금 머리가 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있지만 여전히 3시간 노동일이라는 약속의 땅과 비슷하기라도 한 것도 본 적이 없다. 오늘날 1970~1980년대 시점에서 ‘우리의 손자 손녀들’은 다음과 같은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 덕분에 새로운 안심거리(덜 안심이 되는 소리긴 하지만)를 갖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노동시간은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점진적으로 단축되어 왔다. 미국 산업에서 토요 노동을 점점 보기 힘들어진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급휴가는 아마도 증가추세가 될 것이다. 휴가가 노동자의 생산성을 향상시켜서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여름과 겨울 휴가로부터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더 많이 쉬는 것은 우리가 기술진보의 과실을 향유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우리의 손자 손녀 역시 주당 더 적은 시간 일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이는 선택일 뿐이지 그럴 필요성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확실성과 가능성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이러한 대립선들은 순수한 상태의 ‘사회과학’의 예이다. 모든 것은 파악하기 힘들고 정확하지 않다. 과거 100년 동안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어떤 사회적 권력에 의해, 어떤 상황에서 노동시간이 ‘점진적으로 단축’ 되었는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노동시간이 줄어들지 않았다면? 토요 노동이 줄어들지 않고, 여름이건 겨울이건 휴가일이 증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줄었다면? 그리고 보통의 우리 ‘손자 손녀’들이 더 짧은 노동주를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더 이상 ‘3시간 노동일’은 얘기되지 않는다. 케인즈의 약속이 얼마나 왜소해졌는지 보라!) 이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시간제 일자리, 마찬가지로 임금도 일부만 받는 그런 일자리를 택한다는 의미가 있을까? 이것이 그 확실-가능하다는 노동시간의 추가적인 ‘단축’의 결말이란 말인가? 아무도 확실한 답을 알지 못한다. 이런 불명확한 안개 속에서 더 확정적인 답을 찾는 것은 소용이 없다. 그냥 앞으로는 지금보다는 더 적게 일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심하자. 확실히 그렇다. 사실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노동시간에 대한 동시대의 많은 ‘전문가’들, 특히 사회학자들은 심지어 더 낙관적인 견해를 태평하게 늘어놓으며 핵심적인 문제를 피해가는 데 새뮤얼슨 못지 않은 실력을 보인다. 로저 수(Roger Sue)의 예를 한 번 들어보자. (프랑스에만 한정 짓는다면 아즈나(Aznar), 고르(Gorz), 드 푸코(de Foucauld) 같은 이들을 들 수 있을 텐데, 결과는 거의 같을 것이다.) 수는 인간 존재에 ‘자유시간이 새롭게 지배적 시간이 된’ 시대에 이미 접어들었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아직 그것을 현실화할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우리가 맞닥뜨린 모순은 문화적인 모순이다. 노동과 노동시간이 중심이 되는 ‘과거의 질서에 사회가 스스로의 자기표상 안에서 필사적으로 고착되도록’ 하는 것은 단지 조건반사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여 ‘탈산업’ 사회에서 더 이상 아등바등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외면토록 하는 것이 이러한 문화적 후진성 때문이라면 적절한 계몽작업(work of illumination)을 통해 그러한 고착을 풀어낼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할 것이다. 새로운 문화적 패러다임. 이것이 기본이다! 이와 함께 ‘사회적 효용성’에 해당하는 부문을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이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신성불가침’한 시장경제는 직접적인 노동시간을 ‘모든 것의 척도’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러한 척도가 역사적으로 진부해졌다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시장경제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장경제의 사회적 존재에 고유한 이유 때문이지 탈현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머리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정신적 후진성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를 지배하는 ‘효용’의 법칙, 그리고 실제 ‘첨단 기술’ 부분의 논리는 자본 축적의 사적 효용성의 법칙이다. 수를 비롯한 그와 같은 수많은 사회학자들과 지식인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다. 줄리엣 쇼어(Juliet Schor)는 이런 하릴없는 미망을 갖는 이들과는 다르다. 쇼어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노동시간 단축에 저항하는 것은 기업가 계급이지, 미국의 노동자들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한다. 실제로 대다수 미국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지지한다. 하지만 쇼어 역시 기업가들의 반대를 그들이 노동자를 믿지 못해서(또 다시 전적으로 심리적인 요인)라거나, 편협하기 때문이라거나(또 다시 문화적 요인), ‘처음에는 10시간으로 나중에는 8시간으로 노동일이 줄어들수록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잊기 때문(역사의식 부재?)이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자본의 소유자나 관리자들의 문화적 혹은 심리적 태도가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갑자기 튀어나와 편협하게 된 것은 아니며, 현재의 생산과 경쟁 관계가 만들어낸 것이다. 자본가들과 관리자들이 추가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격렬히 반대한다면 그 이유는 새로운 생산성 향상을 통해 그러한 단축을 만회하여 수익률 수준을 유지할 능력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쇼어가 장시간노동의 구조적 기초를 하나하나 뜯어보려 시도한 것은 사실이며, 쇼어는 그 기초를 ‘소비주의’의 구조적 강제에 기인하는 것으로 결론 내린다. 하지만 그러한 강제의 기원이 설명되어야만 한다. 실제로 쇼어의 비판적 연구가 끝나는 것도 이 지점이다.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쇼어는 스스로를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논리에서 구제하는 데에는 결국 실패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생산의 순간을 자기 연구 영역에서 추방했다. 쇼어는 노동시간 연장의 이유를 생산과정 외부에서 그리고 상품 생산을 관장하는 법칙 외부에서 찾는다. 자본축적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안정을 비이성적으로 갈구하는 소비자적 열망의 이유와 필요에 대해 쇼어는 보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많은 이들이 못 보는 것을 줄리엣 쇼어가 인식했다는 점은 인정받아야 한다. 말하자면 쇼어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저항이 사회의 전 부분이 아니라 특정한 부분, 즉 자본가 계급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은 인식했다. 그리고 이 자본가 계급은 전혀 거리낌 없이 노동시간 단축을 반대하며, 세계화된 시장에서는 가장 발전한 선진국에서조차 국제적 경쟁 때문에 제약이 있다는 말로 이를 정당화 한다. 프랑스에서, 이탈리아에서, 서구 모든 곳에서, ‘단지’ 주 35시간제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데 대한 자본가 계급의 반대는 실로 치열했다. 전혀 우연이 아닌 이러한 반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보려면 이탈리아 유수의 기업가로서 이탈리아경총(Confindustria) 사무총장을 지낸 이노센초 치폴레타(Innocenzo Cipolletta)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보면 된다. 주 35시간제로의 법정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논쟁에서 가장 멍청한 말은 노동시간 단축이 반대할 가치가 없는,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추세라는 언급이다. 오히려 그것이 역사적 추세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노동시간의 단축분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점점 감소할 것이다! 실제로 단축 과정은 한계가 명확한 것으로, 이 경우에는 주 0시간노동제가 그 한계가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모든 노동자들이 일하지 않고서도 돈을 버는 금리생활자가 될 수 있다고[이러한 위치는 이미 치폴레타와 그의 동료들이 차지하고 있다-저자]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평균 0시간을 일한다는 것은 더더욱 가능성이 없다. (중략) 그렇다면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노동시간 단축의 한계는 명확하다. 이 말은 노동시간 단축(법적, 실질적 모두)을 향한 역사적 경향은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언제? 언제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중단되기 전에 노동시간 단축 과정은 상당히 속도가 느려질 것이다. 이 말은 예를 들어 주 48시간제에서 40시간제로 가기까지 우리가 40년이 걸렸다면[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아니라 노동자들이고, 40년이 아니라 50년이다 - 저자], 40시간제에서 35시간제로 가려면 훨씬 더 오래, 아마도 80년에서 100년이 걸릴 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역사적 과정에 주목하여 노동시간 단축이 역사적 경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제 하한선 가까이 와 있으니 추가적인 노동시간 단축은 매우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해야만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 솔직하게 말해준 치폴레타 씨에게 감사한다. 물론 그의 ‘역사적 논증’은 한 푼 값어치도 없지만 말이다. 만약 이름 붙일만한 가치가 있는 역사적 경향이 절대적으로 광대 바지춤 마냥 중간에서 멈춰야 할 운명이라면 역사는 반역사적 추세로 가득할 것이고, 우리는 역사라는 개념 자체를 바꾸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렇다면 디오클레티안 황제 정도(주 35시간)에서 멈추는 대신 영점(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 서로마 제국 최후의 황제)으로 내려간 로마 제국의 멸망 추세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 봉건제의 멸망을 향한 추세는 또 어떤가? 최초의 부르주아 ─ 대중적 내전이었던 종교개혁 즈음에서 멈췄으면 꽤나 행복했을 것이지만, 실제로는 250년에 걸친 부르주아의 혁명을 거쳐 한 동안은 아주 느리게 쇠퇴가 진행되다 어느 순간 갑자기 몰락하고 만 봉건제 말이다. 치폴레타의 ‘역사적 논증’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하지만 그의 말은 확실한 현실성을 띠고 있다. 쓴 약을 달콤하게 포장하는 우리 ‘전문가’들하고는 다르게 치폴레타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노동시간 단축을 향한 역사적 추세는 점진적으로 멈추게 될 것임을 안다. 우리는 치폴레타 씨에게 이미 뒤죽박죽이 된 우리 분석에 동의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실용적인 치폴레타 씨는 완곡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모든 조건이 잘 갖추어진다면 40시간 노동제에서 35시간 노동제로 가기 위해서는 80년에서 100년이 걸릴 것이다. 서구의 기업가들은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제3세계 기업가들 역시 0을 하나씩 더 붙여 800년에서 1,000년 정도로 만들면 그러한 단축에 동의할 지도 모른다. 이것은 명확하다. 일단 ‘역사적 논증’이 말이 되지 않음이 밝혀진 이상 그렇다면 이러한 ‘감속’의 원인은 무엇인가? 한 가지 힌트만 있다. 확실히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의 소유자들이나 사적 소유의 전도사들이 그러는 것처럼 노동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게다가 금리생활자는 이미 넘쳐나고, 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필요하니, 노동자들이 모두 갑자기 금리생활자가 될 수도 없다. 여기까지는 명확하다. 하지만 막히는 부분, 그것도 심각하게 막히는 부분은 바로 여기다. 위의 언급에 이어 치폴레타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특히 다시 한 번 ‘역사적’ 관찰을 보면 평균 노동시간과 법정 노동시간의 단축은 고용인 당 자본이 급격히 증가하였을 때 나타났다. 다른 말로 하면 자본이 노동을 대체할 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체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고 노동시간 단축에 내재한 비용의 효과를 중화시켰던 것이다. (중략)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조건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 노동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경직되어 있고, (중략) 기술진보는 일자리를 급격히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줄이고 있다. 이 글에서 제대로 된 말은 하나도 없다. 20세기 들어 노동시간 단축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두 시기인 1917~1919년과 1968~1969년을 보면,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부터 도출된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경우에도 고용인 당 자본이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1917~1919년 당시의 노동시간 단축의 경우 자본과 ‘고용인’ 양자의 대붕괴 이후에 나타났다. 노동시간 단축은 기업가들이 생산성과 노동강도를 증가시켜 노동(혹은 잉여노동)의 축소와 함께 상실되는 이윤을 보상하려는 목적으로 반응하도록 자극하고(19세기 12시간 노동제, 이후 10시간 노동제의 도입 당시 그랬던 것처럼), 그 역도 사실이다. 고용인 당 고정자본의 증가는 노동시간 단축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훨씬 가깝다. 어쨌건 고정자본의 증가가 노동시간 단축에 기초적이고 자동적인 원인이라면, 고정자본이 끊임없이 증가하는데 왜 노동시간 단축이 멈추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질문의 두 번째 측면을 보자. 경험적으로 경제 일반이건 일자리이건 급격한 성장이 (더 이상) 창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통계를 조작하지 않는다면 이탈리아 뿐 아니라 어디서든 나타나는 현상이다. 1974년 이후로 서구 모든 곳에서 경제성장률은 하락하였다. 이런 전 세계적 규모의 현상을 두고 이탈리아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비난하려면 참으로 대단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다른 이유들이 있다. 더욱이 유연화가 더 높은 성장률을 가능케 하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이 유연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은 완전히 사실과 다르다. 서구에서 가장 유연성이 높은 미국과 영국은 노동시간이 가장 많이 증가한 국가들이다. 이들 나라들은 미국의 경우 43시간(금속은 45시간), 영국은 법정 44.4시간(실제 48시간) 노동주로서 1920년대 수준으로 떨어지기 직전이다. 실제로 서구의 ‘선도적 국가’는 이탈리아 기업가들이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제출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누구나 일할 수 있도록 더 많이 일하자.’ 이제 남은 건 사실진술 한 문장이다. 현재의 사회 시스템 아래서 기술진보는 더 이상 고용을 증가시키거나 노동시간을 단축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문장이 그것이다. 경제학과 시장경제가 보장한 약속에 대해 역사가 이렇게 가혹하게 응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기술진보가 이례적으로 가속화된 지금 노동시간 단축을 향한 역사적 추세가 멈추고, 다시 역전되고 있는가? 왜 자본은 생산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노동시간을 줄일 수 없게 되었는가? 19세기 중반 노동시간 단축을 향한 계급투쟁이 힘겹게 진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생산비용 하락과 노동시간 단축의 동반 발생은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사회적 갈등이 더욱 힘겹게 분출된 초기 테일러주의 시대에 들어서도 그러한 조합은 일반적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전후 발전의 30년 주기 막바지에 이르러서도 일반적이었다. 그렇다면 왜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이러한 일반적 해법이 오늘날에는 체계적으로 부정되는 것일까? 현재의 사회경제 사상으로는 이러한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할 수 없다. 실제로는 현재의 사상은 자본주의 메커니즘, 생산의 자본주의적 사회 시스템을 있는 그대로 보길 거부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 자체를 제기할 능력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본의 운동을 규정하는 ‘법칙’(law)이 사실은 진짜 법이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 법칙은 물가 법칙, 임금 법칙, 개인적 소비 법칙, 화폐 유통의 법칙, 기업 간 경쟁 법칙 등으로 나타나지 자본과 노동을 연결하는 특정한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는 법칙,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법칙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술 혁명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노동시간이 크게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길어지는 이 수수께끼를 적절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계로, 이러한 수준으로 돌아가야 한다. II. 비판적 분석의 최초 요소들 사회적 노동, 사적 영유 ‘나의’ 테제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자본가 계급과 자본주의 국가가 보이는 오늘날의 격렬한 저항, 그리고 노동시간 동결 심지어 연장을 향한 국제적 추세는 매우 견고한 구조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이 주장은 내가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면, 전적으로 마르크스로부터 연유한다. 이 기반은 자본의 가치증식(valorization) 과정이 더욱 복잡해졌다는 사실에 연유한다. 그 복잡성이란 결국 상품 생산 속에서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는) 기술, 과학, 기계가 구성하는 부분이 유일한 잉여가치의 원천인 산 노동으로 구성되는 부분보다 점점 더 커져감에 따라 산 노동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진적’ 감소(이러한 감소는 세계적으로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산술적 증가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자본이 ‘잔여’ 노동력을 그 강도와 시간에 있어 극한으로 쥐어짜낼 필요를 키운다. 이러한 필요와 더불어 기술진보의 자본주의적(이윤을 위한) 사용과 노동시간 단축 사이의 격차 확대는 이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기본 모순에 자리잡는다. 즉, 자본주의가 발전시킨 생산적 노동력의 사회적 성격과 그 사용의 사적 성격 사이의 모순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몇 페이지에서 ‘나의’ 테제를 완전히 전개하지는 않을 것이며,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된 사회경제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보기에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이해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범주를 제시하는 데서 그칠 것이다. 그 후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이론적 설명의 도식 정도가 이어질 것이다. 사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여 편견 없는 독자라면 현실(reality)과 우리 사회생활에 핵심적인 문제, 즉 노동시간이라는 문제에 대한 지금의 재현(representation) 사이의 간극에 대해 일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자의 목적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획일화된 정형의 시대에 몇 가지 의구심을 제기하고, 현재 ‘의심받지 않고, 의심받을 수 없는 진실’에 비판을 가하는 것, 그리고 현 상태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과정을 묘사하고 분석하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고 해서, ‘현대에 부활한 과거의 노동시간’이라는 수수께끼의 기본적 원인을 밝히는 의무를 회피하려는 것은 아니다. 일단 지금 문제가 되는 현상은 설명 불가능한 것도 아니며, ‘계산할 수 없는 경제의 신비’나 사회적 상호작용의 ‘여성적 변덕’ 탓으로 돌려야 할 것도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이러한 도식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본질을 밝힐 것이며, 이러한 본질을 비껴가는 노동시간의 ‘이상한 점’에 대한 모든 논의는 가치가 없다. 객관적, 구조적, 경제적 요소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둔 나머지 주관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 것 아닌가라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필자 역시 이러한 분석의 부분적 성격을 기꺼이 인정한다. 경제 문제를 분석함에 있어 실제로 몇 가지 선택적인 기준을 따랐다. 가격과 유통이 아니라 가치와 생산을 다룰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범주들은 동일하지 않다. 가치는 가격이 아니고, 생산도 유통이 아니다. 하지만 유통이 생산에 근거를 둔 것과 마찬가지로 가격은 가치에 근거한다. 그 반대임을 증명하려고 한 세기가 넘도록 시도하고(성공적이지 않았다), (제본스를 비롯한 이들이) ‘환상’이라고 평가한 노자간의 대립을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대립으로 치환하려 했지만(성공적이지 않았다), 이것이 사실이다. 여기서는 가치와 가격의 관계도, 개별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관계도,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평균적 생산조건도, 이 분야에서 경쟁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불가피한 자기제한은 이 연구의 기저에 깔린 이론적 논리에 부합하며, 길고 더 힘든 노동시간으로의 추세를 만들어 내는 가장 감추어져 있고, 등한시되고, 신비에 싸여 있지만, 또한 가장 핵심적인 요인들에 초점을 맞추려는 목적에도 부합한다. 그렇다면 반으로 줄어든 도식, 즉 A-B-C가 아닌 A-B를 고려하자. 하지만 문제가 되는 추세의 물질적(구조적) 기반을 처음으로 알아차리는 것은 그 주관적, 심리적, 문화적 구성요소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구성요소 역시 기반을 이루는 것으로, 나뭇가지도 나무 자체인 것과 다를 바 없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그 이전의 생산 형태와 구별짓는 핵심적인 특징은 그 역사적 기원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적 생산의 시작은 개별 자본가들이 다수의 노동자들을 한 곳에 모으고 이들에게 대량의 상품을 생산케 할 정도로 많은 화폐를 소유하게 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축적을 가능케 하기 위해 끊임없이 확장해야 하는 생산을 위한 대량의 화폐, 대규모 노동력, 대규모 상품들. 이러한 ‘이상적’ 개척자와 그 모방자들의 행위는 시간적으로 확장되고 성장하는 공간으로 확대되어(‘원시’ 자본주의) 전(前)자본주의적 생산에 적합한 ‘사적 노동’을 해방시켰고, 노동수단과 노동과정, 인간 노동력에 점점 더 사회적인 성격을 부여하였다. 그렇지만 이는 노동의 사회화(노동과정에서 인적 협력의 발전)가 자본주의와 함께 태어난 것이라기보다는, 천 년에 걸쳐 발달한 전자본주의적 사회화에 근거한 노동의 자본주의적 사회화가 매우 중요한 역사적 도약을 의미한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합적인 인간 노동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바로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는 많은 노동력을 단일하고 집합적인 사회적 노동력으로 모아 결합시킴으로써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력의 집합적 힘으로의 결합을 만들어 낸다. 이 집합적 힘은 우선 노동력의 집중, 그리고 생산 조건과 생산수단의 집중, ‘마지막으로’ 성장하는 노동의 사회화가 가능케 한 이러한 노동과정의 객관적 조건들을 끊임없이 기술적, 사회적으로 혁신해 나간 결과다. 이러한 노동력의 집중사회화 동역학 안에서, 사용가치의 생산에 기초해 있던 작업장 안에서의 수공업적 생산이 불에 타 사라진 재 속에서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적 평균 노동이 생겨난다. 이는 교환가치의 생산을 위한 노동으로(사용가치만 갖는 것이 아닌, 상품의 생산을 위한 노동) 노동력의 거대한 사회적이고 집합적인 결합(이 결합의 상징은 공장일 것이다)의 일부분인 한에서만 그렇게 존재할 수 있다. 사회적 평균 노동과 함께 사회적 평균 노동의 질과 양(시간)이 나타나는데, 이는 사회적 노동일과 사회적 노동일이 자본주의적 발전의 서로 다른 단계, 부문, 시기에 갖는 생산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특히 노동의 자본주의적 사회화는 생산력(생산성)의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가져오는데, 이는 정확히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다.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와 증가하는 노동력 사이의 협업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모든 사회적 생산 형태와 ‘수준’에 걸쳐 드러낸다. 생산에서 분업, 서로 다른 생산 제조 부문의 차별화와 경쟁, 구식의 도농간 분업 해체, 기계의 창조와 중단 없는 개선, 생산으로 자연력 흡수, 과학 기술을 그 과학 기술을 생산한 노동에서 분리, 노동 수단과 노동 과정의 끊임없는 혁명, 생산과 생산 계획의 과학적 분석, 기계 시스템 창조. 지난 다섯 세기 동안 노동의 자본주의적 사회화는 오래된 사회적 관계와 생산 방식을 전 세계에 걸쳐 더 널리 파괴시키면서, 상품 생산에 필요한 자본의 집중과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해 관련된 인간 노동의 생산 역량을 일깨워 온 태풍이다. 이러한 노동의 사회화 과정과 생산규모 확장은 자본의 이윤이라는 ‘악마가 지배’한다. 그 차별적 특징은 세계적 차원으로 보편적 ‘단일’ 생산양식을 만들려는 경향이 있어, 다양한 발전 단계를 거쳐 자본주의적 사회 및 생산관계의 세계화의 기초와 가속기가 되는 세계 시장을 출현시키고, 따라서 자본주의적 교환, 무역, 신용, 유통 그리고 위기의 세계화를 낳는다. 하지만 이렇게 보편적인 사회적 노동이 가진 힘이 무섭게 높아지면서 발생학적 모순(genetic contradiction)이 자리잡는다. 이러한 사회적 힘은 사회 전체의 처분에 놓여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한 ‘사적’인 부분, 즉 자본의 처분에 놓여진다. 자본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필요를 의식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자본의 자기 확대를 만족시키기 위한 카오스적 욕망이다. 오랜 동안 쌓여온 사회적 노동 조건들을 소유한 자본은 이 조건들을 마치 자기 자신의 특성인 것처럼 사용하고, 자기 자신의 가치증식이라는 특정한 사적 목적, 즉 이윤을 위해 사용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사회 시스템의 발생학적 모순은 자본과 노동의 객관적 적대로(표면적으로는 그러한 적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경우에도) 드러나는데, 이는 반윤리적인 결과를 무수히 내포한다. 이러한 것들은 생산과정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생산과정은 동시에 사회적 노동과정과 ‘사적’ 가치증식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끝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의 생성으로 결말을 맺게 되며, 이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은 대중의 실업과 금리생활자 계급의 유한(有閑) 시간의 상반된 두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노동의 사회화와 사회적 노동의 조건과 생산물에 대한 사적 영유 사이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이 말은 두 힘이 동등하여 영구적인 교착상태에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자본이 사회적 노동을 지배(착취)한다. 집합적인 사회적 노동은 사적 목표에 봉사해야 한다. 즉 이윤의 독재라는 법칙을 따라 자본의 확장에 복무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노동이 이러한 ‘운명’에 저항하지 않을 때만 그러하다. 이윤을 위한 생산, 자본주의 자본주의적 생산의 핵심은 실로 이윤을 위한 생산이라는 점에 있다. ‘더 많은 양으로 무한히 성장’하는 이윤을 위한 생산이다. 자본주의 아래서는 이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윤이야말로 ‘경제라는 기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며 그 유일한 생산요소는 (원료를 제공하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 있는 임금노동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거대한 집합적 힘이 흐르는 지하의 화산 같다(프리츠 랑 감독의 작품 메트로폴리스에서 묘사된 지하도시처럼). 모든 것은 움직인다. 하지만 이 영구적 운동이라는 영역은 결코 남들이 일컫는 자유의 왕국이 아니다. 모든 사회적 삶을 지탱하는 ‘기계 앞의’ 남성과 여성, 즉 노동자 계급 자체는 법적으로는 자유로울지라도 실질적으로는 예속 상태에 있다. 노동자 계급은 생산에 관여하지만, 생산 조건이나 수단 그 어느 것도 이들 계급에 속해 있지 않다. 과거에 장인 또는 농민이었지만 생산수단을 빼앗긴 이들, 혹은 이들의 자손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상품은 노동의 에너지이다. 이들은 이 노동의 에너지를 사회적 노동의 조건과 수단을 자신의 ‘재산’으로 소유한 이들의 처분에 맡기고, 또 맡겨야만 한다. ‘처분에 맡긴다’는 것은 노동력, 즉 노동시간, ─ 시간이 ‘인간 발전의 근원’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 곧 이들이 살아있는 시간을 판다는 말이다. 매일 같이 이러한 인간의 살아있는 에너지는 자신을 재구성하기 위해 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자신의 노동 에너지를 사서 고용할 금전적, 기술조직적 수단을 지닌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 인간의 살아있는 에너지(하지만 희귀한 상품인양 굴어서는 안 되므로 완전히 구매하지는 않는다)를 구매해서 일을 시키는 자본 소유자 계급에게서 이러한 수단을 찾는다. 상품을 생산하고, 무엇보다 이윤을 생산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영구적 운동이 지닌 목적이다. 확대하고, 이윤을 내고, 자본을 가치증식 하는 것. 자본에게 있어 이런 동일한 노동과정은 진정한 인간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유용한 ‘것들’을 생산해서가 아니라, 가치증식 과정으로서만 의미가 있다. 자본에게 있어 무엇을 생산하는가는 아무 차이가 없다. 그것이 아스피린이건 마약이건, 영계건 광우병 소건, 안나 카레니나건 사라 퍼거슨 전기이건, 맛있는 마멀레이드건 네이팜탄이건 아무 관계가 없다. 모든 제품상품은 동일하다. 이들이 판매가능하다는 점만 의미가 있으며, 판매를 통해 이것들을 생산한 자본이 이윤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개별 자본가의 심리인류학적 유형은, 형식적 소유자건 실제 관리자건 아니면 둘 다건 관계없이, 이러한 자본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 즉 이윤을 위한 존재로서의 존재양식을 물질화한 것이다. 따라서 자본의 자기 가치증식(잉여가치의 창출)은 결정적이고, 지배적이며, 압도적인 자본가의 목적으로, 자본가 행위의 원동력이며 내용이다. 개별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 에너지를 팔거나 팔지 않을 정도의 자유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개별 자본가, 개별 기업 임원은 이런 저런 것을 ‘마음대로 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정도로 자유롭지 못하다. 자선 사업에 투신하거나 ‘비영리 부문’에 몰두한다 하더라도 자본가는 그 자신이 단일한 목적을 가진 ‘시장이라는 비인격적인 힘’의 도구이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 단일한 목적이란 바로 이윤이고, 이것이 자본주의 아래서 ‘경제라는 기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부불 노동시간, 이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은 어느 정도까지는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주요 질문의 중심에 다다랐다. 이윤의 실질은 무엇인가? 그 기원은 무엇인가? 이윤은 혁신에 대한 보상이다. 이윤은 ‘기업가 위험’에 대한 보상이다. 이윤은 자신의 상품에 특별한 가격이 매겨진 기업가가 시장에서 획득한 수익이다. 이윤은 탁월한 품질의 상품이 만들어 낸 수익이다. 이 말들은 모두 두 가지 근거 없는 가정에 기초한 동어반복이다. 하나는 이윤이 시장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윤은 어떤 식으로든 명민한(정보를 가진) 자본가와 바보 같은(정보가 없는) 자본가, 아니면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상품 시장은 이윤이 실현되는 곳일 뿐, 이윤이 생산되는 곳은 아니다. 자본 간의 관계에 있어 개별 거래를 고려하지 않고 그 합을 계산하면 수익과 손해는 똑같다. 이는 상품의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관계와 마찬가지다. 사회과학에서 이윤에 관해 유일하게 동어반복이 아닌 설명이 있다면 그것은 이윤이 노동, 그 중에서도 지불되지 않은 노동, 즉 부불 노동시간을 노동수단의 소유자 계급이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집단적으로 전유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윤을 구성하는 (화폐화된) 가치의 ‘잉여는 노동의 ‘잉여’, 즉 잉여노동으로 이는 생산과정 속에서 임금노동(노동자 계급)이 자본(자본가 계급)에 제공한 것이다. 이는 노동의 ‘잉여’로서 자본이 실제로 지불한 노동의 양, 노동시간을 넘어서는 부분이다. 19세기의 한 경제학자는 순진하게도 이러한 ‘잉여’를 노동일 하루의 마지막 시간을 공짜로 일 해주는 것으로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그러한 그의 순진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윤이라는 나무가 자라나는 토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윤은 따라서 생산과정이다. 이곳이 부불 노동시간의 영유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사회 작용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법적인) 평등의 원칙과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이러한 사회작용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 이유는 실제로 작용하는 물질적 관계를 고려하면 자본과 노동의 교환은 ‘자유롭고 평등한’ 당사자들간의 교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적 생산수단과 조건을 독점적으로 보유한 계급과 그러한 수단과 조건이 없는 계급 사이에 일어나는 사회적 불평등 교환이다. 자본을 확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동 및 생활시간을 구매할 수 있는 계급과 살기 위해선 자신의 노동 및 생활시간을 임금을 위해 팔아야 하는 계급 사이의 교환이고, 사회적 시간, ‘모든 이’의 시간, 간단히 말해 그냥 시간을 소유할 수 있는 계급과 시간을 박탈당한 계급, ‘시간 없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이다. 이것이 시간과 노동시간에 대한 오늘날 모든 문제의 핵심이다. 말하자면 시간은 상품, 즉 현금 거래의 대상이다. 이 거래에서 자본은 노동에 대해 노동 ‘시장’(전형적인 구매자 우위 시장)에서 그리고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사회적 삶과 정치적 삶에서 지배적인 지위에 있다. 자본은 이런 지위 덕분에 ‘노동력’이라 불리는 아주 특별한 상품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력이 특별한 이유는 보통 상품은 구매에 들어가는 비용만큼의 가치가 있는 반면, 노동력은 주어진 가치 이외에도 자신이 가치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시장에서 x만큼의 가치를 지불하고 노동력을 구매하는 자본가들은 그 x만큼의 가치 이외에도 영구적으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힘(육체적 한계와 관계 없이, 육체적 한계는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신축적이다)을 영유한다. 이러한 힘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노동과정에서 ‘손’을 거쳐 가는 무엇이든 그것에 새로운 가치인 ‘잉여’가치를 추가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손’이라는 말에 따옴표를 붙인 것은 어떤 형태든 손노동(육체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임금노동자는 없기 때문이다(키보드 앞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마찬가지이다). 노동력이라는 언급은 ‘집합적인 사회적 노동’을 집단적으로 일컫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산업 노동자 중에서 커다란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낮은 부분’의 노동자에 집중하고 있지만, 노동력이라는 말에는 저숙련과 고숙련 노동자 모두가 포함된다. 우리가 말하는 ‘잉여’는 노동시간의 잉여를 말한다. (사회적이든 개별적이든) 노동시간, 노동일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임금의 가치에 해당한다. 이 부분은 노동자가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일하는 시간이고,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다. 이는 사회적으로나 국제적으로 그러하다. 두 번째 부분은 임금의 가치를 초과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추가적인 노동시간 또는 잉여노동 시간인) 부불 노동시간이다. 임금노동자, 즉 노동계급은 ‘타자’를 위해 임금을 받지 않고 일한다. 바로 자본가들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자본이다. 사회의 비노동 계급, 구체적으로는 자본가 계급을 유지시키는 것은 이 부불 노동시간이다. 이러한 부불 노동시간이 부족하거나 불충분할 경우 자본은 시장에서 퇴출되지만(실제로 그렇다), 그러한 시간이 풍부하고 성장하면 자본은 번성한다. 따라서 이윤의 내용은 부불 노동, 즉 노동자 계급의 부불 노동시간(잉여노동, 유급 노동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자본은 부불 노동시간을 잔인하게 추구함으로써 처음부터 차별화된다. 20세기 들어 이러한 이윤추구는 노동을 조직하고 강도를 증가시키는 고도로 발달된 방식을 통해 더욱 충실해져 왔다. 먼저 이 점을 명확히 하자. 자본주의 아래에서 ‘경제라는 기계를 움직이는 주요 원동력’은 이윤 추구다. 자본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존재하면, 이윤이 부불 노동시간으로 구성된다면, 자본은 보충적(부불) 노동시간을 영유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최대한 많은 부불 노동시간을 임금노동(이것이 없으면 자본은 ‘죽는다’)으로부터 (추출의 조건 아래서) 추출해 내기 위해 존재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본은 가치증식의 척도로서 직접(immediate) 노동시간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은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프롤레타리아의 어떤 시도에도 ‘외치고 투쟁하면서’ 반응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자본주의적 사용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생산과정에서 과학기술이 노동자들의 직접 노동보다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렇게 ‘외치고 투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견해에 따르면(예를 들어 은행가이자 에세이 작가인 아탈리를 보라), 지금은 ‘만세! 로봇과 컴퓨터가 노동자 계급을 해방시켰다!’라고 소리 질러야 할 때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되고 바보 같은 견해다. 작업장에 로봇과 컴퓨터가 도입되었지만 최대한 많은 부불 노동시간을 영유해야 할 자본의 필요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또 노동시간을 새롭게 획기적으로 줄인 자본가도 없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라는 배경에서 과학, 기술, 기계는 그 혜택을 사회 전체로 나누는 힘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고, 특히나 노동에 유리한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자본이 강제하는 방식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봇과 컴퓨터는 노동자 계급에 생활시간이라는 선물을 줄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럴 가능성은 없다. 기계 속에 들어 있는 ‘죽은’ 노동에 비해 산 노동의 양이 상대적으로 감소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실제로 과학기술은 노동의 힘이다. 과학기술을 만든 것은 육체노동이건 지식노동이건 보편적인 사회적 노동이었고, 과학기술을 불붙인 것도 사회적 노동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력 역시 자본이 전유하여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삼았다. 최초의 부르주아 산업 철학자들은 과학의 산물인 기계에 앤드류 유어(Andrew Ure)가 ‘다루기 힘든 노동의 손’, 즉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통제하기 위한 기능을 부여하였다. 과학기술의 이러한 ‘고차원’적인 기능을 찬양할 때 그들이 실제로 찬양했던 것은, 과학기술을 자본이 기술적 요소(고정자본)로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지배의 도구로서 복속시키고 포함시켰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고차원적 기능’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모두 친숙한 포악하고 독재적이라는 낙인을 공장에 부여한다. 유어와 바베지(Babbage) 이후 한 세기 반이 지났지만, 과학기술이 이윤이라는 절대 명령에 복종한다는 사실이나, 과학기술의 이러한 복종 때문에 노동자에게 나타나는 결과, 그중에서 특히 노동시간이라는 측면에서 나타나는 결과는 전혀 변하지 않다. 기술은 풍요 사회로의 길을 연다. 따라서 그 작동에 필요한 모든 것, 특히 인간의 시간을 기계에 복속시킨 것은 진보의 명백한 대가다. 이러한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원칙이라는 명목 아래서 우리는 노동시간에 대한 기술의 부정적 영향을 수용한다. 교대제, 야간노동, 주말노동 등. 이와 마찬가지로 전체 노동시간 구조는 바짝 조여진다. 속도와 리듬이 빨라진다. 육체적 피로에 정신적 피로가 더해지고 심해진다. 이 말은 생산성 상승 덕분에 노동시간 이외에 노동자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더 많아졌지만, 이런 자유시간 중 일부는 기력 회복을 위해 사용해야 하므로 전적으로 혜택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노동강도가 높아졌는지 낮아졌는지는 논쟁의 대상이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사회학적 사실은…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현재의 노동시간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임금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시간의 연장이나 강도에 있어 기계의 시간, 아마도 ‘객관적인’ 기술의 시간에 전적으로 복속된다. 이윤추구를 철저하게 추구할 필요에 의한 이러한 시간에 대한 철저한 필요 앞에서는, 노동자들에게 부정적인 모든 결과, 즉 노동자들이 ‘현재의 노동시간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명백한(그리고 명백하게 무시되는)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다. 노동자들은 ‘시간에 대해 더 많은 요구’를 표현하지만, 이러한 요구는 ‘끊임없이 확대되는 상품의 생산과 판매를 전제로 하는 이윤 추구가 일어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논리와 충돌을 일으킨다.’ 상황은 이렇다. 현재의 생산관계 속에서 과학기술은 자본주의적 가치증식의 도구이며, 부불 노동시간의 추출을 위한 도구다. 이러한 생산의 힘들은 사실 사회화된 육체적, 지적 노동의 산물이면서 이들을 생산하고 재생산하긴 하지만, 노동자 계급의 손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수 세기 동안 쌓여온 지식 ‘자본’을 포함)을 온전히 영유해온 사회 일부 계층에 속한다. 이러한 힘들이 노동의 질 그리고 노동시간의 길이와 강도와 관련하여 외부적이고 적대적인 힘인 노동과 반목하는 이유이다. 노동의 질과 관련해서 과학기술은 산 노동을 적대한다. 과학기술은 자신을 ‘지적인 생산력’으로 정립하면서 육체(손) 노동과 심지어 ‘비육체’ 노동까지 기계의 부속물로 저하시킨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모든 발명과 진보는 물질적 힘에 생명과 지성을 부여하면서 인간도 단순히 물질적 힘으로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은’ 이유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기계, 즉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 두뇌의 기관’은 인간의 지식과 작업 능력을 분절화시켜 노동자를 ‘부분적 인간’, 즉 자기가 하는 일처럼 조각난 인간으로 만들고, 또 ‘부분적으로는 기계’, 즉 ‘기계의 중요치 않은 부속물’로 전락해 기껏해야 일방적인 전문기술의 마스터쯤으로 여겨지는 불구자로 만든다. 테일러주의와 도요타주의가 공장에 대해 이야기한 이러한 측면이 역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명백한 확증이다. 소위 ‘탈 포드’ 산업을 기계, 엔지니어, 기술자, 그리고 잘 다려진 하얀 가운을 걸친 극소수의 초숙련공이 만들어가는 세계로 말하는 것은 협잡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마이크로 전자 혁명은 기계화에 전형적인 대량생산 작업의 표준화를 폐지시키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이러한 대량생산을 일반 노동의 ‘논리적 양식’으로 확장(이전)시키며, 구상과 실행의 분리를 극단화한다. 이는 마이크로전자 사회에서 가장 변화하지 않는 견고한 특성, 즉 진짜 추세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점점 더 확산되는 고차원적인 노동과정의 모델화는 자본주의 아래서 새로운 모델의 기획자와 그 속에서 일을 하는 작업자 사이의 분리를 확산시키는 것으로, 마르크스는 이것을 두고 ‘[산 노동으로부터] 노동의 정신적 힘의 분리’라고 지칭한 바 있다. 노동시간의 길이와 강도와 관련하여 19, 20, 21세기의 자본가들은 모두 과학, 기술, 기계에 똑같은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바로 ‘필요 노동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잉여 노동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이윤의 논리와 부합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요구하는 것은 일의 절약, 고용해야 할 노동력을 최대한 ‘절감’하는 것, 즉 산 노동의 대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본은 항상 이윤을 염두에 두고 ‘잔여’ 노동과 생산을 새로운 영역과 국가로 끊임없이 확장해서 노동과정으로 편입된 새로운 노동의 착취를 모두 합리화하길 요구한다. 먼저 외연적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하고, 다음에는 내포적으로 노동시간의 밀도를 높인다. 마지막으로(이 ‘마지막’이 150년을 끌었다), 이 둘을 결합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기계는 ‘상품 생산에 요구되는 가장 강력한 노동시간 단축 수단’이며 동시에 ‘인간 본성에 의해 정해진 제약을 넘어 노동일을 연장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자, 노동의 강도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수단인 것이다. 현대 산업 생산의 행위자로서 기계는 ‘인간 수행원의 연약한 육체와 강인한 의지 안에서 일정한 자연적 저항에 부딪히지 않는다면’ 영구적으로 또 무한한 속도로 작동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를 대신하여 지능과 의지를 부여 받은’ 자동기계는 ‘따라서 혐오스럽지만 유연한 자연적 장벽, 즉 인간이 만들어 내는 저항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갈망에서 생명을 얻는다.’ 하지만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 아침 8시에 돌아가기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멈추는 ‘구식’이지만 여전히 활용되고 있는 그런 조립라인을 떠 올리지 말아야 한다. 밤낮으로 하루 24시간 돌아가는 새로운 연속 생산 사이클을 떠올려야 한다. 모든 산업 부문과 심지어 ‘서비스’ 부문으로 확장되는 사이클, 상품과 사람을 이동시키기 위해 고도 기술이 집약된 트럭, 배, 비행기로 구성된 끊임없는 사슬을 떠올려야 한다. 눈 돌아가는 속도로 영구적인 운동을 하여 모든 면에서 공장을 모방한 사슬 말이다. 아니면 글로벌 정보통신 산업의 새로운 생산 라인을 떠올려야 한다. 정의상 시간(‘진짜 시간’), 즉 속도 그 자체인 시간에 따라 연속적인 시간과 기능을 수행하는 정보통신 산업 말이다. 자본의 힘으로서 과학기술은 생산과정과 상품 유통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생산 엔지니어, 기술자, 과학자, 일급 기사들이 행하는 소외된 노동은 자본에게 잉여가치의 중요한 직접 원천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아무리 많은 임금을 받더라도 이들은 자신들에게 들어가는 비용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고용주들에게 투여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부가가치의 최대치는 자본이 일반 노동자들의 근육, 손, 신경, (심지어) 머리로부터 부불 노동시간을 짜낼 수 있도록 하는 수단과 방법을 개선하는 데 이들이 얼마나 기여했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공장 노동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기타 생산 부문을 제외한 산업 부문의 5억 고용인구 중에서 75~80%)의 부불 노동시간이야말로 양적으로 보면 자본의 가장 중요한 이윤 원천이다. 만약 가설적으로라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산업이 있다면(산업화 이후 250년이 지났는데 그런 공장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연구실에서 입력을 하면 추가적인 조작이나 보완이 필요 없는 완전 자동기계를 통해 생산되는 시스템이 있다고 가정하면, 몇몇 공론가의 이런 꿈과 같은 공장은 자본 소유자 및 관리자의 악몽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자본이 잘 심어놓은 금맥은 고갈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본이 수많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에게 형편없는 임금을 지급하고 이들을 채찍질해 24시간 동안 부려먹는다고 하더라도 다시는 황금알을 낳지 못하리라. 노동생산성의 역설 과학의 응용과 함께 자본가 계급은 과학기술진보의 모든 혜택을 영유해 왔고 노동시간의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잉여가치의 생산성을 상승시켜 왔다. 그렇지만 일정 기간 이러한 진보는 노동시간 단축과 양립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다. 역설적으로 생산성 향상과 노동시간 단축이 양립 불가능해 진 것은 정확히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생산성이 오랜 기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 것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장경제에서만 기대되는 것이다. 만약 기술과학의 진보를 통해 사회적 자유시간이라는 선물을 전체 사회에 뿌리려 한다면 그것은 이윤의 법칙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진보는 노동시간 단축을 더욱 방해할 뿐이다. 그 이유는 역시 미지의 영역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과정을 생각해 보자. 자본은 지역적 범위에서 낮은 유기적 구성으로 출발하지만, 그 사명은 자신을 세계적 생산양식으로 현실화하고, 고정자본 형태를 노동생산성과 노동의 사회화와 함께 ‘무한히’ 확장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초기 노동자들이 직접적으로 공급한 산 노동은 기계에 포함된 죽은 노동을 압도적으로 상회한다. 기계는 여전히 산 노동과 ‘병행하여’ 노동자의 조력자였다. 잉여 노동시간의 양은 꽤 작았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임금노동의 노동일이 절반으로 나누어진다고 가설적으로, 그렇지만 자의적이지는 않은 수치를 제시한다. 즉 50%는 필요노동이고 50%는 잉여노동이라는 것이다. 노동일의 부불 부분이 상대적으로 제한(전체 노동시간의 ‘단지’ 50%)되어 있고, 노동일은 특별히 길고(10~12시간 이상), 노동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완만했다는 이유로 자본가들은 노동시간 중 이윤을 내포한 부분을 증가시킬 여지가 매우 컸다. 실제로 이 여지는 매우 컸기 때문에 격렬한 사회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전체 노동일의 길이가 단축되는 와중에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시간은 늘 수 있었다. 마르크스 자신은 영국의 산업이 생산 감소 없이 무제한적 노동일로부터 12시간 노동일, 그리고 1848년 이후로는 10시간 노동일로 변화하는 과정을 관찰했다. 어떤 의미에서 무섭게 노동력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할부’로 빼앗아 가는 것이 실제로 자본가 계급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개별 자본가들은 반대할 지라도). 왜냐하면 ‘노동일의 연장은 낮은 노동강도에서만 가능할 뿐 높은 노동강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짧은 노동일이 되어야만’하기 때문이다. 1917~1919년 노동자 계급이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한 것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대대적인 노동시간 단축이다. 이후 자본의 거대한 집중 ─ 중앙화, 노동강도의 비균질적인 상승, 생산기계의 향상(이제 산 노동은 기계와 ‘병행’한다), 자본주의의 보편적 확산이 진행되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8시간 노동제 시대는 저물 것 같은 기색이 없다. 적어도 영국에서는 무제한 노동시간으로부터 12, 10시간 노동제로의 전환이 상대적으로 빨랐다. 반면 10시간에서 8시간으로의 전환은 훨씬 더 오래 걸리고, 더 힘든 과정(혁명의 한 순환이 필요했다)이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나 ‘더 야심찬’ 기획인 8시간에서 7시간으로의 전환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목표까지는 한참 남았지만 이를 옹호하는 이는 많지 않다. 아까 얘기했던 것이 문제이다. 노동일 중 임금에 해당하는 부분이 더 줄어들고, 노동일의 길이가 줄어들면, 자본이 노동일의 단축을 노동생산성과 강도에서 만회하기가 더 힘들어 진다(지금은 극단적으로 힘들다). 이 역설의 해법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과 자본주의적이고 따라서 사적 이윤의 대립적 관계에 있다. 오늘날의 사회경제 조건에서 노동생산성은 이윤에 복무해야 하지만 심각한 객관적 제약이 있다. 말하자면 이미 착취된 임금노동의 노동시간의 양이고 다른 식으로 말하면 가변자본 대비 거대한 고정자본의 양이다. 마르크스는 탁월한 선견지명을 가지고 노동생산성과 이윤(잉여가치)의 관계, 이미 축적된 자본과 그 추가적인 가치증식 간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생산성 향상 이전에 자본의 잉여가치가 크면 클수록 전제되는 자본의 잉여노동 또는 잉여가치도 커진다. 노동일 중 노동자와 동등한 구성분이 작으면 작을수록 자본이 생산성 향상으로부터 수취하는 잉여가치 향상분은 작아진다. 자본의 잉여가치는 상승하지만 생산성 발전에 대비하면 훨씬 작은 비율이다. 따라서 자본이 이미 발전되어 있고 더 많은 잉여가치를 생성해 왔다면, 자본은 가치증식을 하기 위해서 즉 잉여가치를 더하기 위해서 곤란을 무릅쓰고 생산성 향상에 나서야만 하지만 이 경우에도 그 비율은 더 작다. 그것은 왜냐하면 하루 중 필요노동을 표현하는 일부분과 전체 노동일 사이의 관계가 항상 여전히 장벽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가기가치 증식은 이미 가치 증식된 만큼 더 힘들다. 예를 들어 보자. 현재 평균 노동일(8시간) 중에서 임금에 해당하는 부분이 2시간(1/4)이고, 나머지 2시간은 국가가 가져간다고 하자. 그러면 자본이 직접적으로 가져가는 것은 하루 평균 ‘단지’ 4시간에 불과하게 된다. 모든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고 보고, 예를 들어 노동생산성이 갑자기 100% 향상(이탈리아에서 대략 20년간 상승한 수치이다)되었다고 한다면, 부불 노동시간 상승분은 결코 100%에 이르지 않고, 25% 정도이다. 즉 상승분은 4시간에서 5시간 ‘밖에’ 안 되는 것이다. 자본에게 있어 ‘더 안 좋은’ 상황은 임금의 가치와 국가가 수취하는 부분의 가치가 절반인 경우이다. 즉 각기 2시간이 아니라 1시간인 경우이다(오늘날 서구 국가들의 평균적인 상황은 이 경계에 근접하였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 경우 두 번째로 100%의 생산성 향상이 일어난다고 하면 부불 노동시간 증가분은 ‘겨우’ 30분(1/8 향상이 아니라 1/16 향상) 밖에 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미 높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데에는 큰 문제가 있고, 이를 이윤 상승으로 가져가는 것은 더 큰 어려움이 생긴다. 부불 노동시간으로부터 얻는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인데, 이는 일반적으로 자본의 가치 상승은 노동의 생산력(생산성)의 향상보다 더 낮은 비율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오노(Ohno)가 테일러 자신도 해내지 못했던 목표였던 전체 노동에서 ‘부가가치 노동’이 아닌 부분을 0시간으로 줄이려는데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자본주의라는] 구조적 지반 위에서 더욱 곤란해진 가치증식에 대해 ‘부가가치’의 독점적 소유자와 관리자가 보편적으로(‘일본’만이 아니다)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자명하다. 피아트 자동차와 관련된 ‘물리적’ 데이터를 살펴보자. 1900년 피아트의 노동자 50명은 일 년에 24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일인당 연간 차 반대도 못 만든 것이다. 35년이 걸려 일인당 한대 수준을 넘었다. 1949년에 일인당 1.3대가 되었고, 1955년에는 3.3대, 1960년 5.7대, 1970년 8.4대로 상승했다. 1980년 19대로 상상하더니 1993년에는 44대(미라피오리(Mirafiori) 공장)가 되었다. 하지만 3년 뒤 멜피(Melfi) 공장에서는 일인당 64대를 생산했다. 물리적으로 보면 공장 노동의 생산성 향상은 1890년부터 따져보면 1993년 미라피오리 공장 기준 8,800%였고, 1996년 멜피 공장 기준 12,800%였던 것이다. 1949년에 비교하여 보면 피라피오리 공장은 대략 3,400% 이상, 멜피 공장은 5,000% 약간 못 미치는 정도이다. 가치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이러한 생산성 향상 비율은 크게 줄어들긴 하지만, 피아트 노동자들의 노동일 중 배타적으로 회사만을 위해 일하는 시간이 늘어났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실질 임금도 늘어났지만 비숙련 노동자의 경우 임금은 월 800에서 1,000유로(교대제 노동자) 정도로, 생존선을 크게 웃도는 것은 아니다. 임금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지 않았지만 회사의 매출(전후 기준)은 1950년 1억5천 리라에서 1997년 50조 550억 리라로 성장하였고, 노동자 수는 단지 50%가 조금 넘는 수준(1952년 71,000명, 현재 118,000명)이 늘어났을 뿐이지만, 일인당 생산액은 1950년 250만 리라에서 1997년 4억2천만 리라로 늘어났다. 이는 과학과 기계화를 자본주의적으로 사용한 결과 그리고 노동생산성 향상의 결과인 고정자본의 확대를 나타낸다. 지금까지 논의한 것처럼 고정자본(공장, 기계, 등)의 성장은 노동생산성 성장과 비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정자본은 거대해진다. 자본축적의 중력의 중심은 산 노동에서 객관화된 노동으로 옮겨간다(고정자본 역시 노동의 결과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축적된 노동이다). 이러한 자본 구성의 변화는 사회적 생산의 잠재력을 높이고 그 모순도 키운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든 자본의 이윤은 생산의 ‘주관적’ 요소, 즉 산 노동의 이윤율로 측정이 되는데, 그 자본에서 객관적인 비중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련의 결과를 산출하는데, 이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경제 이론은 부정하지만 국제경제의 현실을 보면 부각되는 요소이다. 무엇보다 일반 이윤율의 점진적 하락(1950~1982년 공식 통계를 보면 나와 있고, 자본은 이 시기 신자유주의로 대응했다), 생산과 소비의 격차 확대 및 과잉생산의 가능성 증대(통화당국은 과잉생산에 체계적인 억압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지식 향상과 그 지식을 사적 착취와 자연의 소비를 위해 활용하는 것 사이의 대립 확대 등이 그러한 현실이다. 이 모든 근원에는 사회적 노동력과 이를 사적으로 영유하는 반사회적 힘의 대립이 있다. 이는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생산을 하기위해 자본이 고용규모를 체계적으로 축소(‘린’ 생산)하려는 경향을 설명한다. 월스트리트의 최신 경향인 대규모 정리해고 의도를 내비치기만 해도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은 시장에서 (축적된 자본에 비해) 감소하는 노동력으로부터 더 많은 양의 잉여가치를 짜내는 기업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는지를 보여준다. 기술 혁신이 가장 빠르게 일어나는 곳은 새로운 부분이기 때문에 이 과정은 매우 역동적으로 진행된다. 이 지점에서 회사는 줄어든 노동자를 벌충하고, 자본투자를 최대한 빨리 상환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반대하고 노동시간 연장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 지난 25년간 대규모 실업의 확산은 너무나 눈에 띄는 현상이라 거의 누구나 경험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상으로 간주해 왔다. 세계노동기구(ILO)는 ‘정규고용 가능성의 희박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렌도르프(Dahrendorf)는 ‘과소고용’을 ‘후기 노동사회의 천형’으로 일컫는다(나라면 ‘후기 자본주의’라고 하겠다). 경제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심리적 실업’률의 상승을 말하면서 ‘실업 경험’의 ‘극화’에 대해 경고한다. 레오티에프(Leontiev)는 장기 실업을 노동절약적 기술 확산의 자연스런 귀결로까지 여긴다. 리프킨(Rifkin)은 ‘노동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1세계에서부터 3세계까지 대규모 실업과 불안정 노동자의 증가가 기술과학 진보 그 자체의 결과가 아니라, 기술진보가 이윤 동기에 복속하게 된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들 중 아무도 노동 인구의 팽창과 구호의 팽창이 노동강도의 상승과 극단적으로 높은 노동력 때문이라고, 또 더 긴 노동시간을 추구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명확하게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들 중 아무도 시장경제의 논리가 사회의 노동력을 이중으로 낭비하게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말은 한편에서 시장논리는 생산과정에 고용된 모든 이들을 쥐어짜지만, 배제된 이들의 전적/부분적 무능력을 소모한다는 뜻이다.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노동을 절약하면서 인간의 노동력을 파괴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아래 노동생산성의 역설이다. 직접적 생산과정에서 산 노동의 기능과 양이 줄어들어 최소화될수록(줄어드는 것이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노동시간은 최대 밀도에 근접해 가고, 노동일 중 임금 해당 부분이 줄어든다. 그리고 노동생산성의 추가적인 성장이 이윤율의 증가를 더 많이 가로막는 한편, 노동시간 단축을 방해하고 대규모 실업을 불러온다. 자본주의 사회는 일반적으로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의 탁월한 생산자이지만, 케인즈가 ‘해야 될 일을 최대한 나눠서’ 하는 측면에서는 거짓말을 했음을 밝혀냈다(모든 이들이 하루 세 시간). 실제로는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사회적 노동의 생산적 힘의 증가와 함께 ‘과잉 노동인구’(안정적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노동 대중) 역시 증가하였고, 노동자 계급 안에서 과로 노동자와 실업자 사이의 간극은 만성화 되었다. 반면 사회적 차원에서 비생산적 소비, 파괴적 소비, 지대수취자들의 유한 생활은 거대하게 팽창하였다. 따라서 최대한 이성적으로 인간노동을 사용하는 사회는 인간노동의 낭비를 극단으로 몰고 간 사회이다(상품 유통, 여성의 가정생활 말소, 과도한 생산, 그리고 여러 유해하고 반사회적인 생산형태, 군사주의 등). 고도로 생산적인 노동과 장시간 노동의 사회에는 봉건시대 쇠퇴기에 일반적이었던 두 현상이 나타난다. 하나는 사회적 기생의 만연이고, 다른 하나는 실업불안정화의 만연이다. 이 모든 것들은 노동일의 길이는 거의 백 년 동안, 노동주의 길이는 25년 동안 동결되어 있는 상태에서 벌어졌다. 이러한 기술과학 진보가 만들어낸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의 ‘비이성적’ 분배는 그 자체로 이윤율 법칙의 효과다. 자본가들이 노동시간 단축보다 소비를 장려하는 경향은 대량 생산을 끊임없이 확대할 필요(잉여노동 대중)와 함께 그에 비례해 고용된 노동자 수를 줄일 필요에 의해 설명된다(총 필요노동 시간). 자본가들이 그 반대로 한다면, 생산비용을 상승시키고,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인’ 이윤량과 이윤율 모두를 감소시킬 것이다. 상품 소비의 확장은(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는 자유롭지 않고 개인 외부에서 산업적으로 조직화되고 계획되어 결정된다) 사회 안정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면서 노동 생활에서 축소된 인간 기대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명백한(소외된) 수단으로 사회질서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탄생과 징조를 드러내려 했던 이러한 가치증식의 어려움이 일반적이 되고 증가하면서 소비 그 자체의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커져가는 소비주의의 ‘보상’은 이제 다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거대 소비자인 미국에서도 노동자들에게는 ‘어려운 시절’이 예상되는데, 이 어려운 시절은 꽤 많은 중산층들도 고통스러울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 감소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불안정한 상태에서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다. 세계화와 노동시간 하여 우리의 친구 이노센초 치폴레타 씨가 무의식적으로 마르크스의 어휘를 자기도 모르게 차용하며 노동시간 단축에서 역사적 추세는 ‘노동시간 단축 자체는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점점 감소할 것이다!’라거나 ‘이제 하한선 가까이 와 있으니 추가적인 노동시간 감축은 매우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고 하는 말은 옳다. 완전히 옳다. 서구에서 명목 노동일의 단축, 뒤이어 노동주 단축에 대한 저항은 수십 년 동안 증가하는 경향이었고, 그리고 훨씬 더 큰 규모로 그 반대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의 구조적 원인은 이른바 자본의 세계화라는 과정을 관찰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자본의 세계화는 지금껏 노동생산성과 기술과학의 진보라는 측면에서 고려했던 자본축적 과정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자본이 세계화하려는 충동은 전혀 새롭지 않다. 애초부터 점차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하여 그 결과로 발생한 (투하된 자본에 대한) ‘잉여’ 가치가 자본으로서 최소한 부분적인 재투자를 보장할 만큼 충분하도록 하는 것은 자본주의 고유의 특성이다. 사실, 생산 규모의 무한한 확장은 노동의 사회화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구성요소다. 세계 시장을 창출하고 그것을 확장하는 것은 자본의 ‘내재적 필수 요소’고 자본 발전의 필수 단계며 동시에 그 진화의 종착점이다. 자본의 이러한 충동으로 발생한 국제 분업은 생산력의 세계적 (조화롭지도 완전하지도 않은) 사회화를 위한 기초, 자본주의적 기초이며 당연하게도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전형적인 모순으로 특징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는 결코 ‘자유롭고 평등한’ 당사자들 간의 보편적 협력의 과정이 아니며, 오히려 가장 집중된 서구 자본, 특히 유럽 자본이 ‘후진 국민’을 예속, 몰수, 착취하는 적대적 과정이다. 유럽의 본원적 축적 기간을 건너뛰고 수 세기를 훑어보면 우리는 이 과정의 두 국면을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국면은 역사적 식민주의 국면이다. 이 국면에서 서구 자본은 식민지 국가의 소규모 독립 생산자들의 몰락을 촉발했고, 따라서 자신의 산업 생산을 위한 시장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식민지 국가들을 농업 및 산업 원자재 그리고 부분적으로 값싼 노동력의 원천으로 활용했다. 이 국면은 현대 부르주아 국가의 탄생과 세계시장의 ‘주변부’에서의 자본주의적 사회경제 관계의 탄생으로 정점을 이루었고, 전 세계에 걸친 ‘유색인’의 민주주의 혁명으로 마감했다. 두 번째는 (진행중인) 금융 식민주의 국면이다. 여기서 서구의 초집중화된 자본(초국적 기업, 국제통화기금, 서구 국가들, 주식시장 등)은 주변부를 자신의 우선적 이익에 철저하게 종속시키고 ‘중심부’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미연에 방지할 뿐만 아니라 이들 지역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허용하고, 또 일정 정도 촉진한다. 서구 자본은 피지배국의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과 초과이윤을 물가안정에 활용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축적과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전 세계적인 확장 과정에서 서구 자본주의 발전의 특징이었던 현상이 새로운 주인공과 함께 항상 새롭게 나타난다. 즉 뒤에서 치고 나오는 국가들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영국에 대해 그러한 우위를 누렸고, 일본과 독일이 미국을 상대로, 그리고 현재 중국과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에 대해 그러한 우위를 누리고 있다. 그 이유는 이들 국가의 유기적 구성이 낮은 수준(작은 불변자본, 많은 가변자본)에 있기 때문이거니와, 노력을 통해 최고수준의 노동생산성과 기술과학 진보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심’에서 ‘주변’으로 산업화를 향한 이중적 추진의 결과는 먼저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팽창이고, 다음으로 세계 시장의 두 극점을 통합하는 것이다. 이는 더 중앙화된 자본이 축적된 기술과학 지식의 힘을 휘두른다면, 제3세계의 신생 자본주의는 대규모 산 노동의 강력한 힘(잉여가치의 원천)으로 맞서는 형국이 되어 더욱 더 경쟁적으로 통합된다. 따라서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서구 열강은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경제적, 비경제적 수단을 활용해 이러한 ‘신규 진입자’들이 누리는 경쟁우위를 전유하고, 지금까지의 진보에 근거해 이들 경쟁자들을 물리친다. 먼저 ‘중심’에 해당하는 노동일과 ‘주변’에 해당하는 노동일은 서로 매우 다르다. 중심의 노동일은 짧고 주변의 노동일은 훨씬 길지만 중심부 노동일의 엄청난 강도 덕분에 평균적으로 더 많은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부에서 축적률과 함께 노동일이 가진 노동강도와 생산성이 급증하지만 노동일의 길이는 근소하게만 줄어듦으로써 양자 간 차이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국, 한국 및 기타 아시아 국가들이 특히 지난 50년 동안 유럽이 200년에 걸쳐 얻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장과 연결된 이러한 새로운 원동력은 축적 과정의 특정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한편, 자본주의적 가치증식이 가지는 새롭고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더 큰 생산동력은 사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에서 새로운 상승을 이끌어 낼 수밖에 없고, 이는 생산에서 산 노동의 상대적 비중을 감소시킨다. 그리고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체계로서의 자본주의가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유일한(임시적인) 길은 ‘중심’이건 ‘주변’이건 임금노동을 더욱 체계적으로 착취하여 더 밀도 있고 긴 노동시간을 강제하는 수밖에 없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금융적 흐름이 세계화된 결과 이것이 노동조건과 노동시간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가 없다(자본의 세계화의 마지막 측면이고 최종단계). 세계 자본주의의 ‘체계적 통합성’, 즉 ‘차별화되고 위계화된’ 통합성을 융합하는 동시에 이와 동일한 규모로 자본의 거대한 집중을 위해 국제적인 사회적 생산의 모든 부분을 재조정하면서 이런 식의 세계화가 진행된다. 섬유산업부터 금속산업까지, 전자산업부터 기업회계 서비스까지, 그리고 여객선 제조까지도 초민족적 기업의 과점적 힘은 그 이윤량과 이윤율을 상승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한다. 목표는 자신의 통제 아래 제조업을, 노동 착취율을 극단적으로 높일 수 있는 또 그럴 수 있다는 조건 아래 제3세계 국가로 이전하는 것이다. 동시에 과점 기업들은 이러한 팽창을 활용해 서구 산업 노동자들에게 부여된 ‘보장’을 다시 파괴하고, 노동자들을 두들겨 패면서 ‘좋았던 옛 시절’은 다 지나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한다. 따라서 세계 경제의 ‘주변적’ 영역과 ‘중심적’ 영역 간의 거리는 줄어든다. 서구 산업의 노동조건과 노동시간은 (서비스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점진적으로) 세계화된 자본이 ‘주변’ 노동자들에게 부여하는 노동조건과 노동시간에 점점 더 좌우되게 된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섬유 산업은 그 국제적 통합 정도 때문에 이런 경험을 겪은 최초의 분야였다. 서구의 산업 중 섬유산업에서 가장 낮은 임금, 가장 ‘비정형적인’ 노동시간, 극단적으로 높은 노동강도, 극단적으로 높은 여성 노동자 비율, 그리고 대기업의 경우 공방, 도급업체, 가내업체 등에 대한 시간제 일감(삯일) 활용의 확산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부문의 기업가들은 ‘더 큰 유연성, 더 긴 노동주, 더 연속적인 교대제, 여성노동자에게 더 많은 야간작업, 시간제 일자리 편성을 강제하도록 더 나아가고자’ 한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적 경직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서구 자동차 산업 역시 ‘중심’과 ‘주변’에서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 전위에는 ‘다른’ 유럽에서 온 기업들이 있다. 폴크스바겐은 그 중에서 가장 ‘다른’ 회사인데, 브라질 제센데(Resende) 공장을 ‘꿈의 공장’으로 만든 조직화 방식은 다음과 같다. 1,000명의 노동자 중에 단 200명이 품질검사, 마케팅, 연구, 설계 부분에서 폴크스바겐에 직접고용 되어 있다. 나머지 800명(생산직 전체)은 도급업체에 고용되어 있다. 단일 조립라인은 여러 직장으로 구분되어 서로 다른 업체가 운영한다. 이 업체(와 노동자)들은 서로 비용절감과 제품 신뢰성 향상 경쟁을 하기도 한다. 임금은 ‘상파울로 자동차 노동자의 약 삼분의 일’이다. 간단히 말하면 800명의 노동자들은 이전에 2,500명의 노동자들이 만들던 것을 생산한다. 노동시간(당연히 교대제이다)은 적기생산(JIT) 방식을 따르는데, 혁신점이 하나 있다. 어떤 이유로든 라인이 정지하면 그 시간 동안 노동자가 벌충해야 하며 초과노동수당은 없다. 꿈 같은 이윤을 위한 이 꿈의 공장은 1996년 문을 열었다. ‘멀리 떨어진’ 피아트 미라피오리 공장에서도 일 년이 지나지 않아 ‘우연히’ 예전에 피아트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던 일을 도급업체가 하고 신규 작업은 외주화되는 형태가 등장했다. ‘주변’에서 ‘중심’으로 악화되는 노동조건과 노동시간의 반등 효과는 멈추지 않는다. 전자산업, 광학 제조업, 철강 산업, 항만, 관광산업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과정이 이중 나선 구조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서구 자본은 서구 노동자 계급에게 제3세계 노동자들과의 ‘경쟁’ 비용을 떠안기려 하였지만, 그러한 시도가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현재 제3세계에 있는 ‘자연적’ 착취조건 자체가 성에 차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주변부’ 자본 및 국가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피지배국 노동자 계급이 얻은 성과를 공격하고 있다. 모든 부문에서 노동시간도 그 공격대상이다. 예를 들어야 하나? 아무 곳이나 찍으면 된다. 1970년대 위기 이래 이러한 현상은 무수히 벌어진 일이다. 피노체트의 칠레(피노체트 이후의 칠레도), 페론당 이후 아르헨티나, 인티파 이후 알제리, 무바라크의 이집트(공식 통계에 따르면 나세르 시절보다 하루 1시간 30분의 노동시간이 길어졌다), 스탈린 이후 동유럽 국가들. 이 모든 나라들에서 착취 받는 대중들에 대한 노동조건의 기하급수적인 악화가 나타났다. 또 상당수 국가들이 실질, 일부는 법정 노동시간 제한을 폐지하기도 하였다. 이제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같은 금융기구의 ‘빈곤의 세계화’ 정책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중국과 베트남의 국영기업 노동자이 너무 많이 벌면서 일은 너무 적게 한다며 반대하는 ‘인도주의 단체’에 대해서는 또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실제로 여전히 할 말이 많다. 그렇지만 현재는 우리가 서구에서 전체 세계로 눈을 더 넓히면 현대에 부활한 과거의 노동시간이라는 수수께끼는 상당부분 그 비밀이 풀릴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전환을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지난 9월 5일, 정부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2013-2015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공공부문에서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65,711명이 2015년까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 2011년부터 정부가 추진해온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이 박근혜 정권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진1%] 무기계약직은 정규직? 해고 위협은 여전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비정규직 고용관행 개선에 공공부문이 앞장서겠다”며,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의지를 갖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무기계약직 전환이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저임금과 고용불안인데, 무기계약직은 계약기간만 정해져있지 않을 뿐, 임금은 비정규직과 거의 차이가 없으며 노동조건 차별・해고 가능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이 아니라 ‘중규직’ 또는 ‘이름만 다른 비정규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이번 발표에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34,000여 명에 대해 일한 기간이 2년이 아닌 1년이 되는 시점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얼핏 보면 기간제법이 정한 2년보다 빨리 고용을 보장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교과부가 조사한 2013년 학교비정규직 계약해지 실태에 따르면 무기계약직 1,118명이 해고 됐다. 전체 계약해지자 6,457명 중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또 무기계약직 전환을 피하기 위한 계약해지 사례도 있다. 무기계약 전환이 결코 고용의 안전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무기계약직이 차별해소는 이루지 못하지만 고용안정이 되기 때문에 긍정적이라고 봤던 일부의 시각과는 다르게 고용마저도 지켜주지 못하는 현실이다. 편법은 눈감고 기관 권한만 키우는 정부 지침 또한 이번 계획에는 간접고용에 대한 대책이 아예 없다. 공공기관은 일정 기간이 지난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라는 정부 지침을 지키기 위해 편법을 사용한다. 직접고용이 아니라 간접고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사용자는 공공기관이 아니라 용역업체가 되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여러 복잡한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정부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인천국제공항이다. 인천국제공항은 정규직 857명에 간접고용은 5,960여 명으로 전체의 87%가 간접고용이다. 공공부문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2006년 64,822명에서 2012년 110,641명으로 오히려 크게 늘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현실에 눈감고 있다. 무기계약직 전환 지침은 이전 정부 때부터 문제가 많았다. 이명박 정부 시기였던 2012년 1월 발표된 <‘상시・지속적 업무 담당자의 무기계약직 전환기준’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추진지침>에는 전환대상자 선정 시 근무성적, 직무수행능력 및 태도를 평가하여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근무성적이 불량한 자 등 해당 기관이 자체 평가기준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는 전환 제외” 할 수 있다. 현행 기간제법에 따르면 2년 넘게 같은 일을 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할 의무가 발생하는데, 기간제법에 의해 정규직 전환 요건이 되더라도 기관의 판단에 따라 제외할 수 있는 것이다. 하반기, 한 판 싸움이 다가온다 올해 4월, 10만 여명에 이르는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과 호봉제 도입 등 처우개선을 위해 ‘공공부문비정규연대회의’를 구성했다. 이들은 이번 정부의 무기계약직 전환발표를 비판하며 “공공부문에 만연한 외주화 확산을 금지·규제하고 간접고용 노동자 실태조사와 정규직화 방안을 제출”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조건을 보장하고 각종 규정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운수노조・연맹은 올해 하반기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9월 28일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대회에 이어 10월에는 인천공항지역지부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정규직화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파업에 나설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의 생색내기, 허점투성이의 비정규직 대책은 우리의 대안일 수 없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자.
공공운수노조 우편지부 재택위탁집배원지회 출범을 지지하며 시급 5300원짜리 사장님? 지난 4월, 재택위탁집배원들에게 사업소득세 3.3%를 징수하겠다는 통보가 일방적으로 내려왔다. 재택위탁 배달운영지침이 개정(2013.2)되면서 관련 소득세가 사업소득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그 날 처음으로 자신들이 ‘사장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13년간 딱 850원 인상된 시급 5300원, 1일 6시간을 기준으로 한 달에 80만 원 내외를 받는 재택위탁집배원들에게 3.3%의 추가세금징수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면서 소득세 외에도 국민연금, 건강보험까지 추가로 내야한다는 소리에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본인이 보유한 재산에 따라 최대 15~20만원까지 추가 징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시흥과 용인수지 등 일부지역에서는 저항의 표시로 배달을 거부했다. 이에 우정사업본부는 ‘개별 접촉을 통한 설득 및 계약해지’라는 지침만 각 우체국에 전달했을 뿐 아무런 해명도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결국 재택위탁집배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마음을 모았다. 그 결과 2013년 9월 2일, △노동자성 인정 및 처우 보장, △사업소득세 징수 폐지, △시간 외 수당 지급, △생활임금 보장, △여름휴가 및 월휴가 보장이라는 요구를 걸고 공공운수노조 우편지부 재택위탁집배원지회가 출범했다. [%=사진1%] ‘재택위탁집배원’이 뭐예요? 재택위탁집배원이란 대도시 아파트 밀집지역에 배달해야 할 우편물을 집이나 배달현장에서 직접 받아 각자 계약한 시간(4~7시간)동안 배달하는 일을 하는 특수고용노동자다. 재택위탁집배원은 2002년부터 신도시 아파트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도시가 팽창하면서 택배물량이 증가하자 이를 집배원들이 모두 감당할 수 없어 우편물 일부를 위탁에 맡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재택위탁집배원은 전국에 약 690명이 존재하며, 절반 이상이 서울/경기지역에서 일하고 있다. 재택위탁집배원들은 대부분 40~50대 여성들이다.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단시간근로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시작했지만 현실은 지옥이었다. 재택위탁집배원 1인당 하루 배달 물량은 2,000(비수기)~4,000통(폭주기)이고, 1인당 1000세대 정도를 담당한다. 바쁠 때는 택배배달이 추가되기도 한다. 다음 날 배달할 우편물이 전 날 저녁 집으로 배달되면, 재택위탁집배원들은 새벽까지 우편물을 구분하고 다음 날 배달을 시작한다. 우체국과 계약한 근무시간은 배달하는데 모두 소요된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우편물을 분류하는 시간은 포함되지 않는다. 재택위탁집배원들은 ‘사장님’이기 때문에 계약한 시간에 맞게 자기가 알아서 배달하면 된다는 우체국의 논리에 따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재택위탁집배원들은 혼자 물량을 감당하기 힘들어 개인 아르바이트를 쓰기도 한다. 이렇게 시간에 쫓겨 늘 시간 외 노동을 하지만, 재택위탁집배원들에게 ‘시간 외 수당’은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시간 외 노동까지 고려하면 시급은 최저임금을 훨씬 밑돈다. 배송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든 고객들의 불만까지 고스란히 혼자 책임져야 하는 시련은 덤이다. 우체국은 이미 ‘위탁 계약’을 통해서 모든 책임을 재택위탁집배원들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사진2%] 인력충원 대신 비정규직 늘리는 우체국 최근 우정사업본부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집배원(기능직공무원, 상시위탁집배원), 위탁택배배달원, 우편집중국비정규직(우정실무원), 재택위탁집배원들이 연일 우정사업본부 앞에 찾아와 기자회견 및 1인 시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불만들이 동시에 터져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발생한 적자를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해결해 온 우정사업본부의 시장화·상업화 전략의 문제가 이제야 드러난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최근 ‘시차출근제’를 도입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가 철회한 바 있다. 집배원들은 이미 하루 10~12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을 하고 있는데, 이 방안은 ‘시간 외 노동’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아 집배원들의 엄청난 반발을 샀다. 더불어 인력충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시간단축은 노동강도를 높이는 효과를 낳는다. 문제는 집배원들로만 끝나지 않는다. 우정사업본부는 근로시간특례업종에서 우편업을 제외하더라도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특례를 유지해달라고 요청했다. 즉, 정규직들은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으로, 상시위탁집배, 위탁택배, 집중국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노동으로 나눠 입맛에 맞게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인터넷·스마트폰의 발달로 일반우편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택배물량이 엄청나게 늘었고, 배달하는 물건의 부피와 무게도 늘어난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우정사업본부는 늘어나는 물량을 집배원들로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적정인력을 충원하는 대신 상시집배원, 위탁택배배달원, 재택위탁집배원 등 비정규직 ․ 특수고용노동자를 양산했다. 이렇게 우체국이라는 대표적인 공공기관에서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제 비정규직이 없는 우체국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노동조합,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아마 사업소득세 걷는다는 이야기가 안 나왔다면, 그냥 다 참고 일했을 거예요. 나만 이렇게 힘든가했지,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다는 건 몰랐으니까요. (……) 무엇이든 하기 전엔 두려운데 하고나니 용기가 생기네요.” 노동자들을 쥐어짜기에만 급급한 우체국, 그 안에서 가장 외면 받는 사람들이 바로 재택위탁집배원들이다. 우편물을 개인적으로 받아 배달하다보니 같은 ‘재택위탁집배원’이라도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어렵게 연락이 닿아 모임을 확대해나가고, 두려웠지만 창립총회도 하고 우정사업본부 앞에서 기자회견도 하고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는 노동자로 인정받고, 현실을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함께 싸우고 싶다는 것이 그녀들의 바람이다. 우편업은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로서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서비스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노동조건을 상승시키고, 우편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기 위한 체계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체국 내 정규직-비정규직이 함께 연대하여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우정사업본부의 시장화·상업화 전략을 막아낼 수 있는 사회적 힘을 모아야 한다. 비록 미약한 움직임이지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우편지부의 확대와 노동조건 개선 흐름에 지지와 관심을 보내야 한다. 노동자를 쥐어짜야만 사는 우체국은 이미 노동자들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