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약국'을 끝장낼 인도-EU FTA협상을 중단하라! 인도특허법 개악하려는 노바티스 소송을 기각시켜야 한다! 한미FTA를 폐기하라! 지금 미국과 유럽연합은 전 세계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한미 FTA와 마찬가지로 인도-EU FTA도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협정이다. 특히 인도-EU FTA는 전세계 환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이명박대통령에게 한미FTA를 당장 폐기할 것과 인도정부에게 인도-EU FTA협상 중단과 인도의 진보적 특허법에 대한 스위스계 제약회사 노바티스의 소송을 기각할 것을 촉구한다. 인도는 ‘세계의 약국’이라 불리고 있다. 인도는 개발도상국 수많은 환자들에게 값싼 복제약을 공급하여 생명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120개국이상의 개발도상국에 공급되는 에이즈치료제 90%가 인도산 복제약이며 전 세계 에이즈치료제의 50%가 인도에서 공급된다. 또 항생제, 항암제, 혈압약, 당뇨약 등 전 세계의 20%의 복제약이 인도에서 공급된다. 지금 인도에서는 ‘세계의 약국’의 미래가 끝장 날수도 있는 두가지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인도-EU FTA 협상과 노바티스의 인도특허법에 대한 소송이다. 11월 29일이 노바티스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변론일이다. 인도특허법은 에버그리닝 즉 ‘제약회사들이 기존의 의약품에 사소한 변화를 가하여 특허기간을 연장하여 복제약 생산을 억제하고 약값을 높은 상태로 유지하려는 행위’를 방지하고 있다.(인도특허법 section 3(d)). 밀가루보다 효능이 있으면 특허를 주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약제보다 개선된 효능이 있어야만 특허를 인정하는 진보적인 법률이다. 바로 이 법률로 초국적제약회사의 사실상의 ‘거짓 특허약’에 대해 1/10도 안되는 가격으로 복제약을 생산할 수 있었고 세계의 수많은 환자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2006년 첸나이 특허청이 인도특허법에 따라 백혈병과 위암(GIST) 등의 치료약인 글리벡에 대해 특허부여를 거부했다. 글리벡이 기존의 이마티닙을 약간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노바티스는 이에 인도특허법 section 3(d)가 무역관련지적재산권(TRIPS)협정과 인도헌법에 위배된다고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제 대법원의 판결만 남은 상황이다. (참고자료 1). 대법원이 노바티스의 손을 들어주면 사소한 변화를 가지고도 ‘거짓 특허약’에 특허권를 부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지금처럼 값싼 복제약을 생산하지 못하게 된다. 글리벡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환자들의 문제인 것이다. 이에 더해 인도-EU FTA로 인해 인도특허법을 완전히 뜯어고쳐야할 상황에 직면했다. 2007년부터 협상이 시작된 인도-EU FTA협상에는 의약품자료독점권, 지적재산권 집행조치가 포함되어 있다. 올해 초 인도-EU FTA는 체결될 예정이었으나 전 세계 환자와 사회단체, 구호단체들의 국제적인 반대로 협상이 지연되어왔다. EU는 이에 자료독점권과 지적재산권 집행조치를 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나 전혀 변함없이 2012년 2월에 예정된 인도-EU 정상회담전에 협상완료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도-EU FTA 지적재산권 부문 협상이 뉴델리에서 12월 5~9일에 열릴 예정이다. 자료독점권이 부여되면 특허가 없거나 만료된 의약품일지라도 복제약 생산이 불가능해진다. 또 특허권 강제실시와 같은 특허권의 공공적 사용도 불가능해진다. 인도 제약회사 낫코(Natco Pharma)는 2011년 8월에 바이엘사가 특허권을 갖고 있는 항암제 넥사바에 대해 공공목적을 위한 특허권 강제실시를 청구했다. 값싼 복제약을 인도에서 생산, 사용하기위한 강제실시로는 처음이다. 최신 에이즈치료제에도 강제실시를 청구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EU FTA가 체결되면 이러한 시도는 불가능해진다. 지적재산권 집행조항은 초국적기업들이 지재권 침해를 빌미로 사법절차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고 민∙형사소송을 손쉽게 제기하고, 과다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복제약을 위조품으로 간주하여 압류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한다. 이를 통해 인도 제네릭이 수입, 수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한국에서 백혈병 환자들은 이미 2001년 노바티스의 글리벡 특허 때문에 한달에 300만원이 넘는 약값을 요구하여 큰 고통을 겪은 바 있다. 환자들은 병마와 싸워도 모자란 상황에서 거리에서 약가인하, 보험적용확대 등의 요구를 내걸고 1년 반이 넘도록 싸워야 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노바티스의 요구대로 한달에 270만원이 넘는 약값으로 결정하였고, 특허청은 강제실시청구를 기각하였다(참고자료2). 당시 일부 환자들은 인도제약회사 낫코(Natco Phrama)에서 글리벡의 복제약 비낫(Veenat)을 한달에 13만원, 즉 글리벡의 1/20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스위스계 제약회사 로슈는 보험약가가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2004년부터 지금까지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을 건강보험제도를 통해서는 공급하지 않고 있다. 특허청은 푸제온에 대한 강제실시 청구도 기각하였다. 한국은 이미 특허권보호가 미국만큼 강력한 나라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회는 한미FTA를 날치기로 비준하였다. 한미 FTA에는 허가-특허 연계, 자료독점권, 투자자국가분쟁제도(ISD)를 포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약가제도와 의약품정책을 미국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독립적검토기구, 의약품 공동위원회 등의 설치가 포함되어있다. 약값을 대폭 인상시키고 특허약품의 독점기간 연장 등을 초래할 한미 FTA는 지금까지 체결된 의약품 관련 협정 중 전 세계에서 가장 최악의 협정이다. 우리는 한미 FTA의 즉각 폐기를 요구한다. 또한 인도정부가 ‘세계의 약국’을 지키느냐 여부는 전 세계 120개국이 넘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인도정부는 인도-EU FTA협상을 당장 중단하고, 노바티스 소송을 기각하라! 2011년 11월 28일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GIST환우회,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KANOS, PL(P대ple living with HIV/AIDS)community 건강나누리,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건강세상네트워크, 젊은보건의료인의공간 ‘다리’,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보공유연대 IPleft, 문화연대,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Giant Girls), 완전변태,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사회진보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국제민주연대, 다함께, 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분과, 국제통상연구소, 인권운동사랑방,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 여성국, 진보전략회의, 학술단체협의회,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공공의약센터,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손미아 교수,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이빈파 공동대표,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이해영 교수
기획재정부는 서비스산업의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제도적 기반 조성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하 서비스법) 제정안을 11월 3~23일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서비스법은 ‘서비스’를 산업으로 인식하는 공감대를 만들고, 기재부 장관이 주재하는 서비스산업 선진화위원회를 법적 기구로 구성하고, 관련 기업, 교육연구기관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드는 법이다. 입법예고 참고자료에서 기재부가 스스로 밝힌 추진배경이다. 그동안 서비스발전선진화방안으로 줄곧 제시되어오던 내용들을 법률화하려는 것이다. 산업(business)으로 인식되지 않는 서비스업이 도대체 무엇인가? 국민들이 ‘산업화’, ‘민영화’를 지속적으로 반대해온 교육, 의료서비스를 말한다. 입법예고된 서비스법 12조에는 서비스산업 선진화위원회가 서비스 관련 법안에 대해 의견, 권고를 내릴 수 있도록 한다. 그 이유로 기재부는 ‘교육․의료 등 핵심 분야의 경우 이해당사자간 복잡한 이해관계로 규제가 과도하여 서비스산업의 투자 및 경쟁을 저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는 이제 국민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위원회를 중심으로 독단적으로 의료민영화, 교육시장화를 추진하려 하는가. 기재부에 따르면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는 ‘부처별 서비스산업 발전 정책을 통합․조정하고 시장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민관합동의 범정부적 추진체계’다.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및 정무직 공무원이 당연직 위원이 된다. 부처간 협력체계를 강화해야 할 대표적 사안으로 원격의료를 제시하고, 기재부와 복지부가 협력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한다. 이는 과거 기재부가 추진하려던 의료민영화정책을 보건복지에서 반대했던 사태 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기재부를 중심으로 서비스업의 전반적인 산업화를 추진하려는 것이다. 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토록 의료에 있어서 국민의 건강을 위한 ‘규제’의 필요성과 이윤을 위한 ‘규제완화’의 경제적 비효율성을 이야기해 왔다. 상식적인 논의를 통해 뜻하는 바를 관철시키지 못한 이명박정부는 이제 논리적 결론이 아닌 세뇌로 목표를 바꾸었다는 점이 이번 서비스법을 통해 드러났다. 국민적 논의 자체를 봉쇄하고 교육과 의료의 시장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을 강력히 규탄한다. 교육시장화, 의료민영화를 불러올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즉각 폐기하라!! 국민의 뜻에 반하는 정책을 끊임없이 추진한 이명박 정부와 기재부는 국민앞에 사과하라!!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건강보험체계가 부럽다고 했습니다. 파산하는 미국인들의 50% 이상이 의료비로 인해 파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 역시 파산의 원인 중 10~20%가 의료비 부채로 인한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 성인 중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데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미충족률은 3~10%에 달합니다. 빈곤층의 경우에는 8~15%가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료비 부담은 일부 가난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 대다수의 문제입니다. 암이나 심장 및 뇌혈관 질환 등 중병에 걸리면 치료비가 수천 만 원이 들어 웬만한 중산층도 빈곤층으로 전락합니다. ‘의료비 가계 파탄’이라는 말이 언론 매체에 점점 더 많이 등장하고 피부에 와 닿는 문제가 되다보니, 민주당도 ‘무상의료’가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을 만한 얘기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민주당은 올해 1월 “실질적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입원진료비 90% 보장(현재 입원진료비 보장률 약 62%), 환자 본인부담 상한 연간 100만원’을 내세웠습니다. 향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공약이기에 한나라당과 주류 보수언론은 즉각적 비판에 나섰고 진보진영은 그간 시민사회에서 요구해왔던 정책방안들을 담고 있는 민주당의 무상의료안을 환영하거나 부족한 부분들을 지적하며 비판적 지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을 지지하고 정권을 교체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무상의료는 단지 의료비를 경감한다는 문제를 넘어 보건의료제도 전반의 개혁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개혁의 방향입니다. 국민들의 보편적인 건강권 실현을 위해 존재해야 할 보건의료는 점점 더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의 시장 확대 영역으로 변질되어, 보건의료에서 자본의 지배는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노동자 민중이 건강할 권리보다 병원, 제약, 민간보험 등의 의료자본이 ‘이윤을 추구할 권리’에 힘이 훨씬 많이 쏠려 있는 상태입니다.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이 그동안 시민사회 진영에서 요구했던 정책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서 민주당이 이러한 역관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정책의 함정이기도 합니다. 보건의료가 자본에 잠식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건강권에 훨씬 더 많은 힘을 실어야 하지만 역대 정부는 자본을 제어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했습니다. 오히려 자본의 지배를 방관하고 부추겼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본의 의도를 저지할 수 있는 노동자 민중의 대중적 운동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운동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민주당과 협력해야 조금이라도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상황을 개선시키려면 자본에 맞설 수 있는 노동자민중의 독자적인 힘이 더 커져야 합니다. 민주당에 기대면 기댈수록 노동자 민중의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민주당을 압박할 정치적 힘도 줄어들고 말 것입니다.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야권연합 프레임에 갇혀 노동자민중운동이 점점 더 우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민중운동을 재건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병원비 부담을 덜기 위해 보건의료제도에서 진정 바뀌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일지, 노동자 민중의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해 무상의료 운동이 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지, 이 소책자가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제공하길 바랍니다. 2011년 11월 7일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발간사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건강보험체계가 부럽다고 했습니다. 파산하는 미국인들의 50% 이상이 의료비로 인해 파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 역시 파산의 원인 중 10~20%가 의료비 부채로 인한 것입니다. 또 우리나라 성인 중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데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미충족률은 3~10%에 달합니다. 빈곤층의 경우에는 8~15%가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료비 부담은 일부 가난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 대다수의 문제입니다. 암이나 심장 및 뇌혈관 질환 등 중병에 걸리면 치료비가 수천 만 원이 들어 웬만한 중산층도 빈곤층으로 전락합니다. ‘의료비 가계 파탄’이라는 말이 언론 매체에 점점 더 많이 등장하고 피부에 와 닿는 문제가 되다보니, 민주당도 ‘무상의료’가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을 만한 얘기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민주당은 올해 1월 “실질적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입원진료비 90% 보장(현재 입원진료비 보장률 약 62%), 환자 본인부담 상한 연간 100만원’을 내세웠습니다. 향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공약이기에 한나라당과 주류 보수언론은 즉각적 비판에 나섰고 진보진영은 그간 시민사회에서 요구해왔던 정책방안들을 담고 있는 민주당의 무상의료안을 환영하거나 부족한 부분들을 지적하며 비판적 지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을 지지하고 정권을 교체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무상의료는 단지 의료비를 경감한다는 문제를 넘어 보건의료제도 전반의 개혁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개혁의 방향입니다. 국민들의 보편적인 건강권 실현을 위해 존재해야 할 보건의료는 점점 더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의 시장 확대 영역으로 변질되어, 보건의료에서 자본의 지배는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노동자 민중이 건강할 권리보다 병원, 제약, 민간보험 등의 의료자본이 ‘이윤을 추구할 권리’에 힘이 훨씬 많이 쏠려 있는 상태입니다.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이 그동안 시민사회 진영에서 요구했던 정책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서 민주당이 이러한 역관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정책의 함정이기도 합니다. 보건의료가 자본에 잠식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건강권에 훨씬 더 많은 힘을 실어야 하지만 역대 정부는 자본을 제어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했습니다. 오히려 자본의 지배를 방관하고 부추겼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본의 의도를 저지할 수 있는 노동자 민중의 대중적 운동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운동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민주당과 협력해야 조금이라도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상황을 개선시키려면 자본에 맞설 수 있는 노동자민중의 독자적인 힘이 더 커져야 합니다. 민주당에 기대면 기댈수록 노동자 민중의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민주당을 압박할 정치적 힘도 줄어들고 말 것입니다.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야권연합 프레임에 갇혀 노동자민중운동이 점점 더 우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민중운동을 재건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병원비 부담을 덜기 위해 보건의료제도에서 진정 바뀌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일지, 노동자 민중의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해 무상의료 운동이 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지, 이 소책자가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제공하길 바랍니다. 2011년 11월 7일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무상의료 민주당 무상의료 정책의 주요 내용은 입원진료비의 건강보험부담률을 90%까지 높이고(현행 61.7%), 본인부담 상한액을 최대 100만원으로 낮추어(현행 최고 400만원) 실질적 무상의료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필수의료 중 비급여 의료를 전면 급여화, 간병·상병 등의 비용을 급여대상에 포함, 차상위 계층을 의료급여대상으로 재전환을 제시한다. 진료비를 절감하기 위한 지출구조 합리화 방안으로는 포괄수가제(입원)와 주치의제도(외래), 중장기적으로 총액계약제, 지역별 병상총량제가 제시된다.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은 노무현 정권의 보건의료 공약을 떠올리게 한다. 노무현 정권은 보건의료 공약으로 건강보험보장성 80%로 확대, 공공병상 30%까지 확대, 총액예산제, 본인부담금상한제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공공의료의 경우 2005년이 되어서야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을 마련했으나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료기관 수 기준 2002년 8.01%에서 2006년 6.6%로, 병상 수 기준 2002년 15.07%에서 2006년 12.32%로 감소했다. 총액예산제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2004년 상반기 공공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이었으나 대한의사협회 등의 강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본인부담금 상한제가 최초로 도입되기는 했으나, 병원비 중 비급여의 비율이 높아서 현실적으로 환자들에게 도움이 못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보장성이 강화될 리 없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1인당 보험료가 79% 인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은 59%에서 64%로 겨우 5% 증가했다. 노무현 정권이 공공의료 확충과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대신 추진한 것이 의료민영화다. 노무현 정권은 자본에게 새로운 이윤창출 시장을 제공하기 위해서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신성장동력론’을 공격적으로 제기하고, 그 일환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했다. 김대중 정부가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설립을 허용했던 것을 이어받아, 2004년 10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으로 외국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여 영리법인화와 당연지정제 폐지로 가는 길을 열었다. 2006년 12월에는 ‘1단계 서비스산업 경쟁력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병원경영지원회사설립, 인수합병, 환자유인알선행위를 허용하고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할 것을 제안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2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데, 이 법안은 그간 추진해온 의료민영화정책들을 거의 망라한 법안이었다. 의료민영화는 무상의료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의료민영화는 대형병원, 제약회사, 의료기기, 민간보험 등 의료자본이 마음껏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시장을 열어준다. 따라서 의료민영화는 의료비를 급격히 증가시키는데, 그 의료비는 모두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들에게서 나온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기 위해 공적 재정을 확충해도 의료기관의 이윤추구가 제어되지 않는다면, 공적재정은 다시 의료자본의 확장에 들어가고 의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무상의료는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나아가 무상의료는 대형병원, 제약회사, 의료기기, 민간보험회사의 이윤추구행위를 억제하여 의료비 상승을 제어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이를 억제할 능력도 의지도 갖추지 못했다. 오히려 시장을 키우고 자본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서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지금의 민주당 역시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올해 4월 국회에서 제주영리병원을 통과시키려다 사회단체 등 여론에 밀려 이를 일시적으로 미룬 바 있다. 민주당의 송영길 인천시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송도의 영리병원 설치를 공언하였다. 민주당 지지를 선언하며 제주도에서 당선된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계속해서 제주도 국내영리병원 설립을 시도하고 있고 제주도의 민주당 국회의원들도 이에 동조하거나 묵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약값 상승, 민영의료보험의 무분별한 확대, 영리병원 허용을 촉진하는 조항을 담고 있는 한EU FTA 비준 동의안에 사실상 합의했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참여정부 시절 자신들이 체결한 협정은 별 문제가 없고, 작년 이명박 정부가 타결한 재협상안은 ‘굴욕ㆍ퍼주기 협상’이라고 주장하지만, 2007년 민주당이 체결한 협정은 의료민영화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민주당이 생각하는 무상의료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이런 태도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의료민영화나 의료자본 통제에 대한 무상의료 운동 진영의 안이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상보육 민주당의 무상보육 정책안 주요 내용을 보자. 이명박 정부는 시설이용 아동에 대해 소득 하위 70%까지 정부지원 단가로 제공하지만, 민주당은 법정시설 이용 모든 아동에게 표준보육비용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시설 미이용 아동에 대한 양육수당 역시 이명박 정부는 0~2세 아동 중 차상위 계층까지만 제공하고 있는데 비하여 민주당은 0~5세 모든 아동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 같은 목표를 집권 5년간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상보육 역시 획기적인 내용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5년간 42.2조원(저출산 부문 19.7조원)을 투입했고, 이명박 정부는 2011년부터 5년간 78.5조원(저출산 부문 39.7조원)을 투여하는 2차 계획을 세웠다. 두 계획은 보육정책으로 보육비 지원과 동시에 보육의 시장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핵심 내용이 동일하다. 민주당의 무상보육도 이러한 연장선에 위치하기 때문에 현 정부 정책을 좀 더 확장하는 수준일 뿐 획기적인 내용은 없다. 보육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그 지원 금액을 높이는 방향이다. 반면 무상보육 논란에 끼고 있지 못하고 있는 국공립 보육시설 확대에 대해서 민주당은 침묵하고 있다. 현재 전국 보육시설 중 국공립 보육시설은 전체 보육시설의 5.4%이고, 보육시설 이용 아동의 11%만 이용가능하며 평균대기자는 78명에 이르는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아동 수 대비 30%까지 확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추진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 민간보육 시장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의 무상보육 계획에도 보육에 대한 공적인 인프라를 갖추는 내용은 없다. 민간보육 시장 활성화가 초래할 보육의 양극화와 비용 상승에 대한 대책도 없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노무현과 이명박 두 정부 모두 <저출산·고령사회 대책>과 동시에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두 정책이 하나의 세트이자 상호보완물인 것이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1차 여성인력개발종합계획은 2010년까지 여성경제활동참가율 55% 달성, 여성일자리 60만개 확대를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과 노동유연화 확대를 핵심 수단으로 삼았다. 탄력근무제 확대, 단시간 근로모델 개발,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확산이라는 노동유연화를 내세운 것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2010년 2차 여성인력개발 종합계획을 제시했다. 1차 계획을 대부분 이어가는 한편 고학력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높이는 방안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보육이 화두가 되는 이유는 낮은 출산율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가운데 양육에 대한 부담도 져야하는 상황이 출산을 기피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은 저출산 문제의 해법으로 고용안정과 임금상승, 보육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래의 산업예비군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의 출산의무를 강요하고,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여성에게 더욱 필요하고 적합하다는 사회 인식을 강화하며, 이를 빌미로 노동시장에서 저임금 고용불안을 감내할 것을 강요하는 단시간 근로모델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또 가정에서 여성이 담당하던 돌봄노동의 공백은 시장화하는 동시에, 돌봄노동에 대한 저평가로 여성을 위한 일자리로 각광받고 있는 사회서비스 산업 노동자들을 값싸게 활용하려고 한다. 민주당의 ‘무상보육’이 보육의 공적 인프라 구축에 대한 계획 없이 보육의 시장화와 동시에 추진되는 보육비 지원 확대라면, 이는 비용 상승과 보육의 양극화로 이어질 것이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또한 민주당이 노무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여성인력 활용정책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단절할 것인가에 진지하게 답하지 않는다면 ‘무상보육’도 여성인력활용을 위한 보완책에 머물 것이다. 반값등록금 [표3]은 지난 1월 31일에 민주당이 ‘3+1 보편적 복지 정책’ 재원 조달 방안을 발표한 자료에서 반값등록금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소득 하위 50%에 등록금을 전액에서 30%까지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민주당이 6월 국회 추경 예산안에 반값등록금 정책을 반영하겠다며 5월 26일에 발표한 자료 역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반값등록금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면서 한나라당 정책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자 6월 7일, 반값등록금 정책의 전면재검토를 발표하였다. 국공립대부터 등록금 자체를 인하하고, 사립대도 이월적립금 활용, 구조조정 등을 통해 등록금을 인하하며, 등록금 지원 범위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후 구체적인 내용 없이 고지서상 명목등록금 반값, 추가 예산 5조 7천억 원을 주장하고 있다. 반값등록금 촛불문화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입장이 갈팡질팡 하는 것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이다. 한나라당은 애초 소득하위 50% 이하 계층, B학점 이상을 전제로 국가장학금을 지원하는 내용이었으나 촛불문화제로 압박을 받자 6월 23일, 황우여 원내대표가 2014년까지 3년간 정부재정 6조 8천억 원 투입을 통해 명목등록금을 30% 인하하는 방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도 정부와 입장이 조정된 것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고, 7월 21일 고위 당정회의에서 소득구간별 차등 지원과 대학 구조조정을 협의하는 등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고 있다. 지난 17일 당정회의에서는 다시 내년에 1조 5천억 원 투입을 통한 명목등록금 10%인하를 협의하였다. 의료나 보육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재정 지원과 함께 공공적으로 고등교육을 제공하는 체계를 갖추는 대신 민간자본(사학자본)에 운영과 재정을 맡겨왔다. 그 결과 고등교육은 대부분 민간에 의해 이루어져 현재 한국의 사립대 비율은 78%로 매우 높은 편이다(OECD 평균 22%). 전 사회적인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진행되면서 대학 역시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진행되었다. 대학은 경쟁 속에서 산학협력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등 대학 운영을 기업 운영과 비슷하게 바꾸어갔고,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은 다른 분야에 통폐합하거나, 자본의 이해에 맞는 지식을 생산하게 되었다. 민주당을 포함한 지배세력은 ‘산업교육진흥법’을 제·개정하고,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하는 등 이러한 대학의 기업화 흐름을 적극적으로 촉진하였다. 또 대학 재정 확보를 위해 노태우 정권은 1989년 사립대 등록금을 자율화했고, 김대중 정권은 2002년에 산업대학 등록금을, 2003년에는 모든 국립대 등록금을 자율화했다. 이러한 조치에 따라 1989년에서 약 10년간 사립대학 등록금이 폭등하였고, 2002~2008년 국립대학의 등록금이 크게 인상되었다. 그 결과 한국의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부문 투자는 총 투자의 20.7%(OECD 국가 중 28위, OECD 평균 69.1%)에 불과한 반면 사립대의 등록금 의존율은 70%(OECD 평균 대학 등록금 의존율 25%)에 이른다. 한편 대학은 등록금 인상으로 마련한 재정을 적립금으로 이월하여 그 규모가 10조 원에 이른다.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던 2007년 말, 정부가 대학 이월 적립금의 주식 투자를 허용하면서 2008년 하반기에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수많은 대학들이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결국 지금의 높은 등록금은 고등 교육이 공공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되어 온 결과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주장대로 재정을 확보해서 등록금을 낮추고, 사립대학의 투명성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사립대학 중심의 구조는 변하지 않으며, 대학의 기업화 흐름은 대학구조조정이라는 명목 하에 더욱 심화될 것이다. 당장 민중에게 절박한 등록금 인하 요구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전제로 사립대학 의존 구조의 변화와 대학의 기업화·상업화 흐름의 중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세금이 고스란히 사학자본에 들어가고, 이후에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된다. 반값등록금 운동이 사회적 지지를 받은 이유는 연간 500~1300만 원에 육박하는 높은 등록금 때문만은 아니다. 비싼 교육비를 지불해 대학 졸업하더라도 취업이 어렵고, 일자리의 질이 낮으며, 나아가 인생을 설계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 대졸자의 취업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일자리의 질도 낮아졌다. 정부측 통계에 따르면, 고등교육 이수자의 정규직 취업률은 2006년 58.4%에서 2007년 56.8%, 2008년 56.1%, 2009년은 48.3%로 낮아졌다. 반면 비정규직 취업률은 2006년 15.7%, 2007년 17.7%, 2008년 18.8%, 2009년 26.2%로 상승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이력추적 연구에 따르면, 남성 대졸자 취업률은 53.1%, 여성 대졸자는 31.6%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등록금 인하가 제도적으로 달성된다 하더라도 높은 청년 실업률, 비정규직과 간접고용의 늪, 열악한 노동조건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와 한나라당이 장학금 지원의 전제로 제시하는 부실대학 구조조정은 노동시장의 조건이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취업의 최소 조건마저도 박탈하게 된다. 무상급식 무상급식을 내세워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많은 당선자를 내었던 민주당(서울시의회)은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2011년 1월 6일, 서울시에서 초·중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위한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 시장은 서울시의회의 무상급식 조례안에 반대하는 주민투표를 발의하였다. 주민투표용지에 기재될 두 가지 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2.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무상급식은 2010년 기준 저소득층 11%(초중고 평균)에 실시되었다. 서울시가 애초에 냈던 계획은 11%에서 매년 5%씩 늘려 2014년까지 소득 하위 30%로 끌어올린다는 것이었으나 주민투표를 앞두고 소득 하위 50%까지 확대하였다. 서울시의회가 의결한 조례는 초ㆍ중학생에 대한 100% 무상급식인 데 비해 서울시 안은 저소득층에 대해서만 무상급식을 제공하되 초ㆍ중학생뿐 아니라 고등학생도 포함하는 차이가 있다. 무상급식 조례안에 따르면, 무상급식과 관련한 지원할당은 교육청이 50%, 지자체가 20%, 서울시가 30%를 부담해야 하므로 각 기관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다음과 같다. 오세훈은 전면 무상급식이 부자들에게 부당한 혜택을 주는 것이므로 그 예산을 다른 곳에 쓰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안의 전체예산 차이는 1000억 원이며, 서울시가 부담해야 할 예산 차이는 300억 원에 불과하다. 주민투표에 드는 예산이 200억 원임을 생각하면, 오세훈이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가 예산 문제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내년 두 번의 큰 선거를 앞두고 여야 구분 없이 민심 얻기 경쟁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무상급식에 대해 진보진영은 아이들 밥 먹이는 것에 대한 이슈로 자꾸 의미를 축소하지만 실제로 지난해 6·2 지방선거의 핵심 이슈였다. 진보진영에서 이른바 보편적 복지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복지를 화두로 론칭 역할을 했던 이슈이고, 그렇게 하면서 내년 선거를 보편적 복지로 치른다는 입장이다. …… 이기면 민주당의 프레임에 갇혀 있던 선거 프레임이 풀리는 것이다. 민주당이 설정한 보편적 복지 프레임에서 해체되면 내년 총선과 대선 때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설정할 국가적 어젠다가 무엇인가, 지금처럼 보편적 복지냐, 아니면 어렵고 힘든 부분을 도와주고 여력이 있으면 성장에 투자해야 하느냐의 프레임으로 바뀌는 것이다. -오세훈 홈페이지 즉 오세훈은 300억 원의 예산이 부자급식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인기를 얻기 위해 무상급식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및 복지국가 논자들은 선별적 무상급식을 하면 아이들이 ‘눈칫밥’을 먹게 된다는 것을 주요 근거로 내세운다. 취약계층을 낙인찍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통해서 누구나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안의 차이는 초·중학생 상위 50%(서울시의회, 민주당)와 고등학생 하위 50%(서울시, 오세훈)에 대한 무상급식 여부이며, 그 예산 차이가 고작 300억 원이다. 민중의 삶에 큰 변화를 준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서울시 교육청은 올해 초등학교 1,2,3학년에 무상급식을 위해 1162억 원의 재원을 확보하면서 영어전용교실 설치 예산, 과학실 현대화 예산, 보건실 개선, 학교 신설비 예산을 삭감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즉 무상급식이 실제 민중에게 도움이 되느냐보다 ‘보편적 복지’라는 프레임을 유지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무상급식 찬성론자들도 이미 무상급식 논쟁을 ‘선별적 복지 세력과 보편주의 복지국가 세력의 대결’로 인식하고 있다. 무상급식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여 보편적 복지국가를 필두로 2012년 총대선을 유리하게 치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민주당을 주축으로 하는 복지국가 논자들이 지지하는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매년 건강보험료가 오르는데도 건강보험보장률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의료자본의 영리추구로 전체 의료비가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보육이 중요한 민생 현안이 된 이유는 여성들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가운데 양육에 대한 부담도 져야하는 상황이 출산을 기피하도록 만들면서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값등록금 운동이 폭발한 이유는 사립대학의 자산 늘리기에 사용되는 높은 등록금을 내고 간신히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취업률이 낮고 일자리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는 이러한 모든 근본 문제를 우회하여 세금으로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식이다. 이 세금은 모두 의료자본, 민간보육시설, 사학자본 등의 민간자본으로 고스란히 들어가며, 이후 의료비, 보육비, 등록금을 더 올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 결국 근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무상복지 정책은 지속 불가능하게 된다. 둘째,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를 주도하는 민주당은 실제로 이를 추진할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추진하려고 하더라도 실현 불가능하다. 민주당은 무상의료를 당론으로 확정한 후에도 의료민영화 추진 행보를 계속해왔다. 의료민영화는 의료비를 증가시키고 이는 무상의료를 불가능하게 한다. 그럼에도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은 무상의료를 실현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재원 조달 방안으로 부자감세 철회, 4대강 사업 등 비효율적 예산 절감, 건강보험료 부과 기반 개선(건강보험료 부과 기준을 현행 근로소득에서 종합소득 기준으로 변경하고 고소득자의 피부양자도 건강보험료를 내도록)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자본가 계급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노사의 대화와 참여를 활성화하여 미래지향의 노사관계를 지향하는’ 민주당이 자본가 계급과 한 판 싸움을 벌일 리는 없다.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의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는 실현될 수 없다. 이것이 정책연대가 계급투쟁을 대신할 수 없으며, 다른 운동 전략이 필요한 이유이다. 셋째, 민중운동은 무상복지 정책 패키지를 민주당의 좌선회로 오인하여 정책 연대에 의존하고, 변혁적 전망을 상실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보건의료운동에서 그나마 이어오던 의료민영화 반대 운동의 흐름은 공식적·비공식적으로 민주당과 함께 하는 무상의료 운동으로 대체되고 있다.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안이 민중운동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은 앞에서 설명하였다. 그러나 보건의료운동 진영은 ‘민주당을 잘 견인하여 무상의료 정책안을 실현하는 것’을 운동의 목표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반값등록금 투쟁 역시 일부학생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시민사회단체, 민주당과 공동행보의 흐름을 만들어 가면서, 근본 문제를 드러내기보다는 외연 확장, 상층 연대, 제도적 성과 쟁취에 집중하고 있다. 결국 반값등록금 운동은 새로운 운동 주체 형성이나 실질적인 민생 문제 해결보다는 민주대연합의 근거로 활용되어 그 성과가 민주당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 무상급식 문제는 실제로 민중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오세훈이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지나치게 정치쟁점화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무상급식을 보편적 복지를 대표하는 중요한 사안으로 여겨 한 톨이 아쉬운 전력을 민주당에 실어주고 있다. 결국 민주당이 주민투표에서 이기더라도 민중의 삶에는 큰 변화 없이 민주당의 정치적 성과로 수렴될 것이다.
뜨겁게 불붙은 약국 외 판매 논쟁 지난 7월 4일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 일정을 밝혔다. 전문가 간담회와 공청회 등의 일정을 거쳐 9월 정기국회에 약사법을 상정하는 일정이다. 약국이 운영하는 주간에는 판매하지 않고 심야와 공휴일에만 판매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지만 약국 외 판매 추진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는 의약분업 도입 시기에도 논의된 적이 있으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이하 경실련)는 십여 년 동안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를 주장해 왔다. 해묵은 논쟁거리였던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문제가 올해 갑자기 이슈가 된 것은 지난해 말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서의 감기약 슈퍼 판매를 언급하면서 국내에서 이것이 가능한지 알아보라는 발언이 시발점이었다. 이에 발맞춰 기획재정부는 지난 4월 ‘서비스산업 선진화 평가 및 향후 추진방향’을 발표하면서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 추진’을 예시로 들어 드라이브를 걸었다. 경실련 역시 3월부터 ‘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전국운동’을 선언하면서 불이 붙기 시작했다. 대한 약사회는 이에 반발하였고,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약사회의 의견을 일정 부분 받아들여 지난 6월 초, 약국 외 판매를 유보하고, 당번약국의 확대와 저소득층부터 상비약 보관함을 지급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의 방안은 언론을 포함한 여론의 반발에 부딪혔고, 청와대는 약국 외 판매 추진을 다시 지시하였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태도를 바꿔 우선 박카스, 액상 소화제 등의 약품을 의약외품으로 지정하여 약국 외 판매가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3차례의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의 논의 결과 7월 4일 약국 외 판매 추진 로드맵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 로드맵에 따라 7월 21일부터 의약외품으로 지정된 박카스, 액상소화제 등을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게 되었으며, 7월 28일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였고, 9월 중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에 대해 의약품 오남용 우려를 이유로 반대를 표명했던 대한 약사회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다. 언론에 의해서 조장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약사회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불신은 실체가 있었다. 실제로 심야에 상비약을 구하지 못하는 불편은 차치하더라도, 현재 의약품 구매과정에서 있으나 마나 한 복약지도와 약국 내에서의 무자격자 의약품 판매라는 대중의 경험은 대한약사회의 의약품 오남용 우려 주장을 근거 없는 주장으로 간주하게 하였고, 심지어 약사 직능 자체에 대한 무용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문제는 단순히 여론 수렴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의 도입 논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민 편의’만큼이나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의약품 안전성’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쟁에서 약국 외 판매를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반의약품 중 안전성이 확립된 품목을 굳이 약국에서 살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의약품의 안전성이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한국인의 두통약’으로 알려진 진통제 ‘게보린’의 주성분인 이소프로필 안티피린(IPA)의 경우 2008년부터 재생불량성 빈혈 등 혈액학적 부작용 문제로 식약청이 ‘15세 미만 사용 금지, 장기 복용 금지’라는 조건을 걸었고, 결국 올해 식약청은 IPA가 포함된 제제를 생산하는 제조사에 직접 안전성을 검증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이에 따라 퇴출 여부를 판단하기로 하였다. 뿐만 아니라 2004년에는 유명한 감기약 ‘콘택600’의 주성분인 페닐프로판올아민(PPA)이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식약청이 직접 시판 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비충혈제거제로 콧속의 혈관을 수축시켜 코막힘을 완화하는 이 성분은 뇌혈관까지 수축시켜 뇌졸중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식약청의 조치가 뒤늦었다는 여론이 확산되어 식약청장이 중도 사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처럼 일반의약품 중 다빈도로 사용되는 감기약, 진통제도 언제든지 안전성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안전성이 확립된 약을 철저히 분류해야 하며 안전성이 확립되었다고 판단된 약품에 대해서도 충분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약국 외 판매가 이뤄지는 영국의 발표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13,000여 명이 의약품 부작용을 겪었고 이 중 3,000명이 사망하였다. 이 중 일반의약품으로 인한 부작용 대다수는 진통제로 인한 위출혈 등이다. 미국은 매년 18만 명 이상이 의약품 부작용으로 사망한다. 이 때문에 미국 식품의약청(FDA)는 자유판매약을 약사의 관리 하에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이러한 의약품 부작용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의약품 부작용 보고 건수는 2006년 인구 천 명당 0.05명이며, 일본의 0.5명(2005년) 미국의 1.5명(2004년)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는 한국에서 의약품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보고되지 않을 정도로 관리가 안 된다는 의미이다. 비록 2006년 이후 보고 건수가 늘었다고 하지만, 올해 5월에서야 의약품안전관리원이 신설될 정도로 의약품 부작용 관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또 한국은 영국의 주치의 제도처럼 개인의 병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의료 전달 체계가 부실하므로 약국 외 판매 시 발생할 의약품 부작용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결국 국민의 건강은 위협받고, 이로 인한 의료비 지출은 증가할 것이다. 의약품 관리는 국민 건강이라는 원칙 아래 객관적이고 신중하게 안전성을 평가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야지, 복약지도의 부실이라는 현 실태와 국민 불편이라는 근거만으로 손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의약품 안전성 문제가 일반의약품을 약국에서 판매한다고 해결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현재 약국에서 일반의약품 판매 시 충분한 복약지도가 되지 않는 것 역시 사실이다. 약국 외 판매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현재도 약국에서 슈퍼에서 사듯이 약을 살 수가 있는데 약국 외 판매가 이뤄진다고 달라질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약국에서 약을 다룬다는 것은 단순히 판매의 자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의약품 관리와 복약지도에 대한 책임을 사회적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복약지도가 불성실하다면, 복약지도를 성실하게 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게 우선이어야지 약국 외 판매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하는 것은 약사에게 부과된 책임을 개개인에게 분산시켜 결국 의약품 안전성에 대한 부담까지 개인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의약품 재분류, 타협의 문제가 아니다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약사회는 안전성 확립을 이유로 일부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주장했고, 이에 맞서 의사협회에서는 오히려 일부 일반의약품의 안전성을 우려하며 전문의약품 전환을 주장했다. 의약품 안전성을 근거로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반대하던 약사회와 찬성하던 의사협회가 의약품 재분류에서는 서로 반대되는 논리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약사회와 의사협회가 직능이기주의로 자가당착에 빠졌다고 비판받는 이유이다. 의약분업 이후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재분류가 이뤄지지 않아서 재분류 논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의약품 재분류가 의약분업 이후 처음 있는 일이기에 다양한 측면에서 진통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8월 8일 제5차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의약품분류 소분과위원회 회의에서 소비자 단체가 재분류를 요청한 17개 의약품 품목에 대해 논의한 결과는 약사, 의사 단체들의 주장에 일정부분 타협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의약품분류 소분과위원회 자체 구성이 의료계 단체 대표 4인과 약계 대표 4인, 공익 대표 4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일부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은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에 따른 광고시장의 확대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시한 방안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유럽은 우선 전문의약품으로 등록하면, 일정 정도 이상 사용한 후 의약품의 안전성 결과를 토대로 일반의약품 전환을 결정하며, 미국은 일반의약품 전환 시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에게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일반의약품의 허가 및 전환을 전담으로 하는 부서가 마련되어 있으며, 허가 및 전환 과정에서의 절차와 기준이 명확하고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으므로 심의 과정에서 심사자와 신청자의 마찰을 최소화한다. 하지만 한국은 의약품의 허가를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의약품 평가부에서 주관하지만 일반의약품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이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모두 관장한다. 또한 안전성, 유효성에 관한 자문이 필요한 경우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해당 분과위원회(의약품분류 소분과위원회)의 자문을 받을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다. 의약품의 안정성, 유효성을 판단하는데 이해당사자들의 자문을 받는 것이다. 한국의 의약품 분류기준은 일본의 분류기준과 매우 유사한 편이지만, 일반의약품 허가 및 전환에 있어서 일본과 달리 의약품 표준제조기준의 확립, 허가 과정에서의 규정과 절차의 일목요연함이 명확하지 않다. 투명하게 재분류가 결정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이는 의약품 재분류가 첫 시도라는 점에서 시급한 정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지난 8월 8일 식약청이 발표한 ‘의약품 재분류에 대한 기본입장’에 따르면 식약청은 현재의 의약품을 제로베이스에서부터 다시 재분류하는 작업을 연말까지 완료하며, ‘상시재분류시스템’을 새로 구축하고, 의약품 분류업무의 활성화를 위해 ‘분류추진TF’를 구성, 운영할 것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현재의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의약품분류 소분과위원회의 구성을 객관성을 위해 관련단체 대표가 아닌 외부전문가로 구성하기로 했다. 이 같은 식약청의 기본입장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게 될지 주의가 필요하다. 의사, 약사들 관련단체뿐 아니라 광고시장을 노리는 종합편성채널 등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도록 충분히 과학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의료 공백’으로 인한 불편, 필요한 것은 올바른 의료전달 체계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심야 혹은 공휴일에 감기약, 해열제 등 상비약을 구할 곳이 없다는 점이다.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이러한 불편을 해소할 수는 있지만 앞서 말했던 의약품 오남용과 안전성의 문제를 피해가기 힘들다. 이에 대해 대한약사회 측에서 대안으로 제시했던 것은 당번약국의 확대였는데, 약사들의 근무시간을 늘리는 이 방식은 약사회 내부에서도 반발을 낳았고, 결국 적절하게 시행되지도 못했다. 이렇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또 다른 문제를 낳는 이유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 심야와 공휴일에 의약품 구매의 불편함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은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1차 의료시스템의 부재이다. 한국 보건의료체계는 국가의 중장기적 계획 속에서 공공적으로 의료서비스의 공급을 조정해왔다기보다 민간에 의존하고 의료 공백에 대해서는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왔던 것이다. 의약품 약국 외 판매는 이 상황에서 당장의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 공백을 아예 시장에 맡기는 것이고, 공공의료체계의 구축과는 반대로 가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선진화된 사례인 양 언급했던) 미국에서의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는 비싼 의료비와 왜곡된 의료체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료기관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보건의료체계에서 공백의 문제는 공공의료를 체계적으로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국은 24시간 보건서비스(NHS Direct, NHS Walk-In)를 통해 병원 진료시간 외에 발생하는 환자를 관리한다. 24시간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간호사의 문진 하에 의사(주치의)의 진료가 필요한지, 자가 치료로 해결 가능한지를 판단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한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도 심야나 공휴일 진료를 위해 지역별로 거점을 두고 당직 의사들이 전화, 왕진 등을 통해 진료 공백을 해결한다. 일본에서도 인구 5만 명당 한 개 꼴로 ‘휴일야간급환센터’를 설치하며, 재택당번의제도(의무사항은 아님) 등을 시행하여 시간 외 진료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편의성을 이유로 약국 외 판매를 검토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응급실을 이용할 정도로 급한 질환이 아닌 경우 멀고 비싼 응급실이 아닌 시간 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시간 외 진료를 통해 약을 구매할 경우 약국 역시 현재처럼 자율적인 당번 약국 방식이 아닌 일정 수준 인구 혹은 면적당 거점 약국을 통해서 처방약, 일반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혹은 일정 수준 인구 혹은 면적 당 공공거점진료소를 통해 당직 의사, 약사를 두어 진료 및 처방조제가 가능한 방식을 고민해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응급 의료체계 구축은 한국에서도 2000년대 주 5일 근무제 시행 이후를 대비하여 논의가 지속되어 왔으며, 보건복지부 차원에서도 2005년부터 응급 진료 체계 구축에 대한 정책 논의를 하고 있다. 이번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쟁은 이처럼 공공적인 응급 의료 체계 구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주도한 약국 외 판매, 핵심은 ‘시장화’ 우리가 약국 외 판매 논의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논의가 기획재정부의 주도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9년 취임 초부터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강력히 주장했고, 대통령 발언 이후 올해 4월 「서비스산업 선진화 평가 및 향후 추진방향」(이하 「선진화 방안」)을 통해 약국 외 판매에 적극적이지 않은 보건복지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기획재정부는 무엇 때문에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에 이토록 적극적인 것일까. 기획재정부에서 발표한 「선진화 방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선진화 방안」에서 보건의료와 관계된 분야를 살펴보면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병원 설립을 위한 법 개정 추진, 제주특별자치도 내 국내투자병원 도입, 원격진료 도입 등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의료를 시장으로 편입시켜 신규 수요를 창출하여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선진화 방안」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전문자격사 제도 선진화’다. 이는 약사, 변호사, 법무사 등 전문자격사 제도의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자본의 진입을 허용하여 대형화, 법인화하여 일반 법인이 전문자격사를 고용, 전문자격사 공급을 늘리고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등의 내용이다. 약국도 여기에 포함되며, 현재 약사만이 개설할 수 있는 약국도 법인화가 가능하도록 해서 대형 유통자본들이 약국 개설에 뛰어들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약국의 영리법인을 가능하게 하는 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며, 지난 8월 10일 기획재정부 주도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는 약국 영리법인 관련 법안을 조속히 통과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선진화 방안」에서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는 사업서비스 부문에서 전문자격사 제도 선진화 방안의 세부 항목으로 다뤄지고 있다. 약국 외 판매는 이처럼 국민 건강에 대한 고려가 아닌 편의성과 신규 시장 창출의 잣대로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대형 유통 자본은 이미 올리브 영(CJ), GS왓슨스(GS), W-store(코오롱) 등 소위 ‘한국형 드럭스토어’라는 이름으로 진입하여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의 드럭스토어에서 일반의약품과 조제의 비중이 더 큰 반면, ‘한국형 드럭스토어’에서는 약국 개설 요건의 장벽으로 건강식품, 화장품 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에게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는 호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일단 약국 외 판매가 이뤄지고, 후속작업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약국의 영리법인화 법안이 통과된다면, 대형 유통자본의 주도로 약국의 대형화, 체인화가 일반화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형 드럭스토어’는 당연히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 일반의약품의 자유판매 허용 이후 드럭스토어의 성장과 최근 이들이 편의점 유통 자본들과의 합병으로 더욱 대형화하고 있는 현실을 보아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현재 기업형 슈퍼마켓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기업과 중소상인의 대립이 약국 가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가 시행됨에 따라 광고시장 역시 확대될 것이다. 이는 10월부터 방송을 시작할 종합편성채널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희소식이다. 그리고 광고의 증가에 따라 늘어난 비용부담과 광고로 인한 의약품 오남용의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에게 전가될 것이다. 결국 기획재정부가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이렇게 대형 자본들의 신규 시장 창출을 통한 이윤 추구와 맞물려 있으며, 이는 영리병원 설립, 민간의료보험 도입 등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보건의료를 시장화하려는 움직임과 일맥상통한다. 기획재정부의 논의에서 국민 건강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한 청와대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며 추진하고 있으며, 국민건강을 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보건복지부는 이 흐름을 막아내기는커녕 슬금슬금 함께 추진하는 모양새이다. ‘건강’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이명박 대통령이, 그리고 기획재정부가 굳이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들고 나온 것은 어찌 보면 현재의 보건의료체계를 더 시장화하기 위한 하나의 약한 고리를 건드렸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단지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현 정권의 시장화 의도가 들어있다고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실제로 의약품의 구입과 복약지도, 심야, 응급 상황에서의 진료 공백 등의 불편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편은 아직 공공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 보건의료체계의 실태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여전히 병이 발생한 이후에나 역할을 한다. 1차 의료를 통해 지역 주민의 병력을 관리하고 질병을 미리 예방하는 기능은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의료비 지불 제도가 행위별 수가제이므로 병원은 더 많은 환자를 받아야 이익이 남고, 약국 역시 더 많은 처방환자를 받기 위해 복약지도를 줄이거나 생략한다. 의약품 사용은 더욱 늘어나고 오남용은 증가하며, 이로 인해 또 다른 병이 발생하고 환자도 계속 발생한다. 그러므로 지금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반대하는 것만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문제로 전화시켜 생각해야 한다. 보건의료체계가 어떻게 공공성을 가지고 대중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며, 최근까지도 논쟁이 되고 있는 무상의료 논쟁과 연관하여 보건의료체계 개편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 희귀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이 법원으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2010년 1월 11일 피해자 및 유족 5인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불승인 처분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은 “명백하게 발암성 물질 유출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작업환경상 지속적으로 물질에 노출됐을 것을 추정 판단할 수 있다”는 취지와 함께 불승인 처분 취소를 판결했다. 오랜 기간 피해당사자와 운동진영이 벌여온 투쟁을 통해 은폐되어 있던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산업재해가 처음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소중한 결과이다. 다만 비슷한 피해 사례인 나머지 3인에 대해서 “명백하게 백혈병을 일으킬만한 물질에 노출됐다고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기각했다는 점에서 이번 법원의 판결은 제한적이다. 그런데 소송의 피고인 근로복지공단이 법원의 결정에 불복하며 항소를 제기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공단의 보조참가인인 삼성과 함께 판결 직후부터 항소 의사를 보였다. 피해자들이 근로복지공단 농성 등으로 저항하자 7월 7일 공단은 이사장을 통해 ‘열린 마음을 열고 전향적인 의견을 검찰에 제출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농성을 푼 바로 다음날 약속을 뒤엎고 항소를 제기한 것이다. 공단은 ‘검찰의 항소 지휘가 떨어졌다. 시스템상 검찰의 지휘를 어길 수 없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지만 피고측 당사자인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포기할 경우 검찰이 단독으로 항소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 정부측은 철저하게 삼성 등 자본의 입장에서 행동했다. 산업안전공단은 판단에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역학조사를 삼성이 공장을 수리하고 나서야 실시하였고, 노동부는 산업재해 입증에 필요한 자료 공개를 기업의 영업비밀 보장을 이유로 거부함으로써 노동자의 권리보다 기업의 이익 추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산업재해신청에 대해서 불승인 판정을 내렸고, 피해자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하자 내부 방침을 통해 삼성전자를 보조참가인으로 끌어들였다. 실제 소송과정에서도 삼성이 피고인 공단을 대신해 소송을 주도해왔다. 그것도 모자라 소송에서 패하자 항소라는 방법으로 피해자들의 가슴에 또다시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다. 노동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을 예방하고,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의 치료와 복귀를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근로복지공단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이번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이 그간 노동자들의 정당한 산업재해 인정 요구를 묵살해온 것이 사회적으로 폭로된 것이다. 스스로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면서까지 자본의 편에 서려 하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근로복지공단은 항소를 철회하고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더불어 피해자들을 회유․협박하고 정부에 대한 로비를 통해서 이번 사건을 왜곡시켜온 삼성 역시 그간의 행태를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함께 보상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의 산업재해 사실을 인정하고 항소를 즉각 철회하라!! 삼성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건강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뜨겁게 불붙은 약국 외 판매 논쟁 지난 7월 4일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 일정을 밝혔다. 전문가 간담회와 공청회 등을 거쳐 9월 정기국회에 약사법을 상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약국이 운영하지 않는 심야와 공휴일에만 판매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긴 하지만 약국 외 판매 추진을 기정사실화 한 것이다. [%=사진1%]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의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의약품 오남용 우려를 이유로 약국 외 판매를 반대했던 대한약사회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이다. 물론 이는 언론에 의해 조장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간 약국에서 의약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느낀 불만이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대한 찬성여론으로 옮겨간 측면이 있다. 심야에 상비약을 구하지 못하는 불편은 차치하더라도, 의약품 구매 시 있으나마나한 복약지도와 약국 내 무자격자 의약품 판매 등에 대한 대중들의 경험은 대한약사회 주장에 대한 불신을 넘어 약사 직능 자체에 대한 무용론으로까지 이어졌다. '편의'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의약품 안전성'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반의약품 중 안전성이 확립된 품목은 굳이 약국에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약품의 안전성은 간단하게 판단할 수 없다. 유명한 진통제 '게보린'의 주성분인 이소프로필 안티피린(IPA)의 경우 지난 2008년부터 재생불량성 빈혈 등 부작용 논란이 일었다. 결국 식약청이 안전성을 재검토한 후 퇴출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또 지난 2004년에는 유명한 감기약 '콘택600'의 주성분인 페닐프로파놀라민(PPA)이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식약청에서 직접 시판 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이처럼 일반의약품 중 높은 빈도로 사용되는 감기약이나 진통제도 문제가 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가 이뤄지는 영국에서의 발표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13,000여 명이 의약품 부작용을 겪었고, 이중 3,000명이 사망했다. 일반의약품의 경우도 아스피린, 이부프로펜 등 진통제 복용으로 위출혈이 나타난 경우가 많았다. 영국은 주치의 제도가 발달되어 있어 대부분 지속적인 의료적 관찰과 관리가 가능하다. 한국보다 의약품 부작용의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의약품 부작용 보고조차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의료이용의 적절성이 관리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약국 외 판매 시 발생할 의약품 부작용 문제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 건강은 위협받고, 의료비 지출은 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의약품 관리는 국민 건강이라는 원칙아래 객관적이고 신중하게 안전성을 평가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안전하다고 판단된 약품도 충분한 사후평가와 관리가 필수적이다. 또한 안전성이 입증된 의약품도 적절한 용법에 맞게 적절한 양으로 복용하지 않을 경우 부작용 발생 등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있으나마나한 약사의 복약지도와 약국의 허술한 의약품 관리는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약국의 의약품 관리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슈퍼에서 판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약국 외 판매는 약사에게 부과된 책임을 개개인에게 분산시켜 결국 의약품 안전성에 대한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시키게 될 것이다. '진료 공백'으로 인한 불편, 필요한 것은 올바른 의료전달 체계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심야시간 혹은 공휴일에 감기약, 해열제 등 상비약을 구할 곳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사람들이 심야시간 혹은 공휴일에 '의약품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의료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병원과 약국이 문을 닫은 밤에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대형 병원의 응급실 밖에 없다. 먼 길을 가야 하는 문제도 있거니와 굳이 응급실까지 갈 필요가 없는 병에 대해서도 응급실을 이용해야만 한다. 응급실의 과도한 의료비 부담 역시 심각하다. 의약품을 슈퍼에서 판매하는 것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심야시간과 공휴일에 생기는 의료 공백의 문제에 대한 잘못된 접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선진화된 사례인 양 언급했던)미국에서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가 이루어지는 것은 비싼 의료비와 왜곡된 의료체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료기관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24시간 보건서비스를 통해 병원 진료시간 외에 발생하는 환자를 관리한다. 간호사의 문진 하에 의사의 진료가 필요한지, 자가 치료로 해결 가능한지를 판단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한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도 심야시간이나 공휴일 진료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의약품 구매라는 협소한 시야에서가 아니라 심야/공휴일 진료를 담당하는 1차 의료 수준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24시간 이용 가능한 콜센터를 운영하는 등 전체 의료시스템 차원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에 대한 고려 없는 약국 외 판매 또 한 가지,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의가 기획재정부의 주도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9년 취임 초부터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강력히 주장했다. 올해 4월에는 '서비스산업 선진화 평가 및 향후 추진방향'을 통해 약국 외 판매에 적극적이지 않은 보건복지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에서 보건의료와 관계된 분야를 살펴보면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병원 설립을 위한 법 개정 추진, 제주특별자치도 내 국내투자병원 도입, 원격진료 도입 등의 내용이 있다. 이는 의료를 시장으로 편입시켜 신규 수요를 창출하여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약국이 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기획재정부가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추진한 것은 이처럼 단지 국민 편의가 아니라 약국에 묶여 있는 의약품을 소매시장으로 진출시켜 신규 수요를 창출하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약품 안전성 등 국민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약국 외 판매가 이뤄질 경우 올리브 영(CJ), GS 왓슨스(GS), W-store(코오롱)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드럭스토어 방식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는 약국 개설요건이 까다로워 올리브 영과 GS왓슨스는 매장 내에 약국 입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가 가능해지면 가장 유리한 곳은 이러한 드럭스토어 형식의 매장이다. 이는 약국 개설요건의 완화와 법인화 허용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고, 장기적으로 약국이 유통 시장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의료분야 시장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약품 유통시장의 확대는 병원 등 다른 의료분야에 대한 시장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더불어 급작스럽게 추진되고 있는 약사법 개정이 종합편성채널 시대를 앞두고 광고시장을 늘리기 위한 방안 중 하나라는 의혹도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초 대통령에게 보고한 '2010 업무계획'에는 “사회․경제적 환경변화에 따라 방송광고 금지 품목을 축소 추진”이라는 언급이 있다. 일반의약품 범위를 확대하고 약국 외에서 의약품 판매를 허용하게 되면 신규 광고 수요가 발생할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의약품 관련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는 진정한 이유가 여러모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의료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이번에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가 이처럼 이슈가 된 것은 그만큼 한국의 의료체계에 공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전히 의료전달체계는 미흡하고, 의료기관과 약국은 이윤추구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심야시간 의료체계와 같은 수익성이 좋지 않은 부문이 구축되기는 쉽지 않다. 해결책은 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라는 시장적 방안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일차적 목표로 하는 의료체계 구축이라는 공공적 방안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