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에는 민주노총 여성연맹, 전국시설관리노조 고려대지부, 서울대 간병인 지부,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 주체로 '저임금 여성노동자 행진'이 있었다. 이날 행진은 서울 노동청 앞 간병인 유료소개소 실태조사 결과 발표, 여성부 앞 집회와 선전전, 고대에서 '저임금 여성노동자 한마당' 행사로 이어졌다. 이번 행진은 최근 여성노동자의 비정규직화와 저임금 문제를 중심으로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했던 여성노동자들이 단위 사업장의 사안을 넘어 공동의 요구를 마련하고 공동행동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이 직접 주체가 되어 저임금, 여성빈곤의 문제가 결국 사회적, 경제적인 여성차별과 구조의 문제임을 발언했던 이 행진은 향후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의 여성화에 저항하는 광범위한 공동투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성별분업이데올로기가 빈곤의 여성화를 심화시킨다.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라 할 만큼 저임금-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심화시킨 노동시장 유연화 전략이 여성을 주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만큼 그 결과도 여성들에게 더욱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빈곤의 여성화는 어떻게 심화되고 있는가? 여성들은 지표에서도 현실에서도 남성들보다 가난하다. 물론 대다수의 민중들은 언제나 빈곤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여성들은 빈곤의 최저층을 형성하고 있다. 하루에 고작 2달러 이하의 돈으로 살아야 하는 전 세계 45억 인구의 70%가 여성과 아동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전 세계의 토지 중 단 1%만, 세계전체 소득의 10%만 소유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들이 이등 시민이라는 지위 때문이다. 그녀들은 독립적인 인간으로 인정받기보다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실제 아직도 세계의 많은 여성들은 토지를 소유할 권리와 재산을 소유할 어떤 법적 권리도 갖지 못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노동은 비가시적이다. 실제 여성들은 세계 공식 노동의 1/3을 차지하고, 비공식 부문의 4/5에 달하는 노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사노동은 국가의 부를 계산하는 어떤 통계에도 들어가지 않고, 무임으로 여성에게 의존한다. 여성이 책임져야하는 가사노동은 노동시장에서 여성에게 저임금을 할당하는 논리가 된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약 10억의 세계 문맹 인구 중 2/3이 여성인데, 이것은 여성이 자신의 생계나 발전을 위해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런 여성들이 겪는 빈곤을 더욱 심화시켰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일을 해도 빈곤한 신빈곤층을 양산했는데, 이러한 신빈곤층에서 여성증가는 두드러진다. 이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전략이 여성의 비정규직화를 가속화했고, 성별분업체계의 강화는 여성노동의 가치를 절하해 여성에게 저임금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보장체계의 축소와 그나마 존재하는 사회보장체계도 남성생계부양자모델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 혜택에서도 배제되고 있다. 또한 세계화가 촉진하는 자유무역지대,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것들은 민중들의 삶에 가혹하다. 남반구에 들어선 수많은 자유무역지대는 원주민의 터전을 빼앗고,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박탈했으며, 환경을 파괴했다. 이러한 상황은 여성에게 특히 극적이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은 여성에게 더욱 불리했다. 민영화, 탈규제화 조치는 여성에게 더욱 커다란 재생산 노동의 부담을 지웠다. 교육과 의료 등 각종 사회적 재생산 영역들이 사유화되면서 가난한 민중들의 재생산 노동은 가족 내로 집중되고 이것은 여성의 일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게다가 민중들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여성들은 부족한 가계를 보충하기 위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고 노동시장에 진출해야 했다. 빈곤은 여성들에게 특히 더 고통스럽다. 이중의 부담과 빈곤으로 인한 성매매로의 유입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니 말이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빈곤하다는 말은 이제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빈곤의 여성화란 말이 말해주듯이 여성이 처한 빈곤의 현실이 민중 전반으로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의 빈곤 자체를 제거해나가기 위한 투쟁과 그 속에서 여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특수하게 위협받는 것에 대한 투쟁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한국에서 여성빈곤의 실태와 빈곤의 여성화의 원인 한국에서 여성빈곤을 위시해 빈곤문제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어 주요한 사회문제로 부각된 것은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이다. IMF 이후 여성빈곤 문제는 더욱 심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절대빈곤층과 새로운 빈곤층에서의 여성 증가로 나타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자 기준으로 볼 때, 여성들의 경우 빈곤집단에서 가구수로는 55.5%, 가구원수로는 58.1%를 차지함으로써 주요 빈곤층을 이루고 있다.(보건복지부, 2002) 여성가구주 가구는 1980년 14.7%, 1990년 15.7%, 2000년 18.5%, 2003년 19.1%로 증가하고 있다. 여성가구주 가구의 증가 현상은 최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이혼율과 맞물린 것으로 결혼대비 이혼율은 1995년 17.1%에서 2003년 47.7%까지 상승하였고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여성에게 결혼상태와 빈곤간의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이 강하고 남성생계부양자 복지모델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보장정책 하에서 여성은 결혼상태에 따라 경제적 수준과 빈곤 상태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현실을 나타내준다. 이와 같이 증가하는 여성가구주 중 빈곤가구는 IMF 이전에는 40.3%였으나, IMF 이후에 43.8%로 증가하여 남성가구주 빈곤가구 19.8%의 두 배 이상을 나타내고 있다.(윤정원, 1999) 즉 빈곤 여성가구주 가구의 절반정도가 절대빈곤선 이하의 가구라는 것이다. 또한 2001년부터 타 연령대와 달리 노동 가능한 집단인 18-64세 미만에서의 빈곤여성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다(1997년 58,347명에서 2001년 376,710명). 결국 IMF 경제위기 이후 부각되기 시작한 신빈곤층 문제는 여성빈곤, 특히 여성가구주 가구의 빈곤문제가 핵심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신빈곤층에서의 여성들의 증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남성들에 비해 구조적, 제도적, 관습적으로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는 여성들을 먼저 공략하기 때문이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신빈곤층에서의 여성증가는 첫째, 노동시장 유연화에 의해 여성비정규직화의 증가와 함께 실업증가, 둘째, 사회보장제도의 축소로 인한 가사노동의 여성부담의 증가와 남성생계부양자 복지모델에 따른 여성수혜의 축소, 셋째 성별분업체계의 강화로 인한 여성노동의 저임금화로 들 수 있다. 특히 여성 비정규직 문제를 보자. 2003년 8월 통계청에 따르면 2002년 남성은 46.&%, 여성은 70.7%가 비정규직이었는데, 이는 고용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이 일차적으로는 여성을 주 대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현실에서는 비정규고용이 '남녀고용평등법', '남녀차별금지법'을 무력화시키면서 여성노동자에 대한 간접차별이 되고 있는 것이다. IMF이후 무급가족 종사자가 줄고, 취업자의 비중이 증가하였음에도 소득분배율이 하락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고용이 저임금-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빈곤의 여성화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직접행동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 이번 '저임금 여성노동자의 행진'의 요구는 "여성노동자는 안정된 일자리를 원한다./ 여성노동자는 (직업소개소, 용역회사의) 중간착취를 거부한다./ 소중한 나의 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다. 여성노동자는 저임금을 거부한다."였다. 행진에 참여한 여성노동자들은 안 그래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저임금에 용역회사나 직업소개소의 중간착취까지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서울지하철 향우용역 관리장의 성폭력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여성의 불안정한 고용조건은 여성노동자들이 성폭력을 당해도, 해고의 위협 때문에 문제제기 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이번 행진은 이러한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알려내고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연대를 이루는 계기였다. 이번 행진의 경험을 계기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빈곤의 여성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좀더 광범위한 공동행동 기획이 필요함이 확인되었다. 결국 '빈곤의 여성화'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은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대안세계화 운동속에서, 여성들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 민중들의 직접공동행동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8.17 고용허가제 시행에 부쳐 고용허가제 : 관리와 통제, 억압과 착취의 또 다른 이름 "외국인 근로자를 체계적으로 도입, 관리함으써 원활한 인력수급 및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해 7월 31일 국회를 통과하고 올해 8월 17일부터 시행된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 Employment Permit System, EPS)에 들어 있는 법률의 목적에 대한 규정이다. 이 법률의 목적은 결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이주노동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 통제함으로써 한국 자본주의를 위해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동안 만악의 근원인 산업연수제 속에서 이주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의 신분으로 위장하여 가장 하층의 저임금 노동으로 활용하고, 이를 참지 못하고 사업장을 이탈하는 노동자의 불법체류를 구조적으로 조장하여 또 다른 저임금 노동자군을 형성시켰던 정책기조의 연장선에서 고용허가제가 시행되고 있음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는 사업주는 1개월간 내국인 구인노력을 한 후 고용신청을 하게 되고, 산업인력공단은 정부가 인력송출양해각서를 맺은 필리핀,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태국, 몽골, 베트남 등의 국가로부터 노동자를 도입하여 해당 사업장에 배치하게 된다. 사업주들은 최저임금 수준이나 이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초과수당, 퇴직금, 4대 보험 등의 비용을 합치면 100만원 내외가 될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또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관계법 적용을 받게 되기 때문에 인권이 신장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주노동자들을 관리·통제하고 억압·착취하는 제도이다. 첫째,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게 된다. 사업체가 휴·폐업하거나 일방적으로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경우에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나은 사업장으로 이동하는 순간 그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자'가 된다. 둘째, 노동3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겉으로는 노동법이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하지만,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게 되어 있어서 사업주가 모든 노동조건을 일방적으로 결정해버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계약을 거부하면 계약해지가 되고 이는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철폐되어야 할 산업연수제도가 병행 유지됨으로 인해 구조적 폐해는 계속된다. 갖은 인권침해와 비리의 온상인 산업연수제도는 저임금 노동착취, 미등록 불법체류를 구조적으로 양산한다. 넷째, 기존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전면 사면 없이 강제적인 단속추방만 강행하고 있다. 노예와도 같은 삶을 강요한 책임은 정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합법화하지 않고 인간사냥하듯이 단속추방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단속추방에도 불구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6월말 16만 6천명에서 7월말 17만 2천명으로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고용허가제는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로서 살아온 이주노동자들을 내쫓고 정부와 자본의 통제아래 '3년 단위'로 이주노동자들을 가져다 쓰고 다시 내쫓는 것을 반복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주노동자 노동권 쟁취는 노동운동의 중요한 과제 이주노동자의 발생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 자유, 자유롭게 노동할 권리는 노동자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국민국가의 경계는 지배계급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이지, 노동자 계급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다. 세계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의 결과로 저개발 국가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는 것은 그들에겐 생존의 문제이며, 그래서 당연한 그들의 생존권적 권리이다. 또한 초국적자본에 의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동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 아시아에서의 이주노동의 확산은 이 지역 민중들의 황폐화된 삶의 조건 속에서 급격히 증가되는 추세에 있다.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국내 노동자의 일자리를 침범하는 이해관계의 대립 구도로 사고하는 한, 이주노동자 문제는 영원히 풀릴 수 없는 골치 아픈 문제일 뿐이며, 노동자 국제 연대의 당위성과 국내 노동자 계급의 보호라는 양자에서 남한 노동자 운동은 갈등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세계 경제 호황기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시기에는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호황기에 자본은 단순히 국내 노동력의 부족을 보충하는 이주노동자의 역할에 만족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을 유입하였고 국내의 노동자와 대립 구도가 크게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윤율의 급격한 저하로 구조적 위기에 봉착한 신자유주의는 노동계급을 분할하고 노동조건을 저하시킨다. 저임금 이주노동자의 유입을 통해 내국인 노동자의 노동조건 저하를 의도하여, 국내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이해 관계의 충돌을 기획한다. 그러므로 국내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 주권국가의 이해와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충돌한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주노동자로 인해 국내 일자리가 잠식당하고 노동조건이 저하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인종, 성, 계층의 분할선을 이용하여 내국인과 외국인,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으로 갈라놓으면서 노동의 불안정화를 강요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노동자의 이름으로 단결해야 하는 것처럼, 이주노동자와 한국노동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와 노동권 쟁취는 남한 민주노조운동의 중요한 과제라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운동을 노동자운동의 강력한 힘으로 성장시키고, 국제 노동자연대를 위한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 노동자 민중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방향으로 투쟁과 연대를 형성해나가야 한다. 이주노동자운동과 그 주체 형성에 연대하자! 남한 자본주의의 의도는 분명하다. 이윤율의 급격한 저하에 따른 세계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불안정 노동의 확산과 노동유연화 정책의 추진이 생존을 위한 극히 불안한 대안인 것이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동의 분할과 위계화를 획책하여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저가 다단계 하청구조를 통해 파견노동과 사내 하청이라는 비정상적인 고용형태를 노동 대중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위계적 불안정 노동의 최하층에 이주노동자들의 오늘의 현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당장의 자신의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 비정규직을 용인하고 연대하지 못하는 순간 자신의 노동마저 불안정노동으로 강요되어 되돌아오듯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를 위한 투쟁에 무관심한 채 외면한다면, 이는 바로 전체 노동조건의 동반 하락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주노동자운동에 대한 남한 민주노조운동의 연대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단속추방 분쇄,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산업연수생 제도 철폐를 위해 이주노동자들은 힘겹게 투쟁해 왔다. 명동성당에서는 280일 가까이 농성을 해오고 있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부정당한 채 온갖 인권 유린과 노동착취 속에서 자연스럽게 저항을 표출하였고, 자본과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스스로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지속해 온 것이다. 그러한 투쟁의 결과로 정권이 내놓은 제도개선의 결과물이 바로 고용허가제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의 개선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운동을 무력화시키고 이주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하여 만든 법안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와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없이 오로지 사용자의 의사에 의해서만 자신의 노동이 허용되는 제도에서 어떻게 노동자로서의 지위와 권리가 보장될 수 있겠는가? 고용허가제 시행에 맞추어 벌어지고 있는 정부의 살인적인 강제단속과 추방과 이미 20여 만명에 가까운 불법체류자 양산은 고용허가제가 이미 실패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허가제는 이름만 바뀐 산업연수생 제도의 연장판이며, 현재의 이주노동자들을 내쫓고 이후에도 계속적인 단기 순환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장기 체류를 막아, 이주노동자운동이 자주적 계급적 노동운동으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으려는 반노동자적 정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주노동의 자유롭고 합법적인 권리를 위한 노동허가제로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시민단체와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에서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관련 규정 및 부칙 2조의 경과 규정을 개정하는 것으로 운동의 방향을 잡으려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하나를 얻기 위해 구조적 문제를 용인하는 것이며 이주노동자들이 운동의 주체로서의 성장하는 것을 지체시키는 단기적 대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가 고용허가제를 일부 개정하는 선에서 고용허가제를 인정하는 순간, 이후 고용허가제를 넘어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쟁취 투쟁으로 나아가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우리의 운동은 이주노동자운동의 주체가 이주노동자 내부에서 형성되고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법개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투쟁을 통해 운동의 역량을 높이는 방향 속에서 배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한국의 활동가들이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하며 그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헌신해 왔다.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노동자운동의 국제 연대의 훌륭한 모범이라 할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단계를 넘어 이주노동자들 스스로가 운동의 주체로서 확고히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운동의 성격과 목표에 대하여 인식을 분명히 하고 남한 이주노동자운동의 주체임을 선언하였다. 이주노동자운동이 성장 발전하여 노동운동의 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남한 노동운동은 연대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연 구 보 고 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진상보고서 -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 2004. 4 국가기간산업 사유화(민영화) 저지 공동투쟁본부,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차 례> 1장. 서론 1 2장. 공공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추진과정 3 0. 들어가며 5 1. 효율성 7 1) 정부가 이야기하는 공공부문의 효율성이란 무엇인가? 7 2) 정부는 어떻게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높였는가? 19 3) 효율성 추구를 위한 사유화와 구조조정의 결과 33 4) 공공부문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35 2. 책임·자율경영 39 1) 책임·자율경영이 공공부문의 올바른 변화 방향인가? 40 2) 공공부문의 책임·자율경영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41 3) 책임·자율경영의 결과 44 4) 공공부문에 대한 노동자·민중적 소유·통제구조 48 3. 경쟁 53 1) 공공부문도 경쟁체제가 구축되어야 하는가? 53 2) 구조조정과 분할 사유화를 통해 경쟁체제는 구축되었는가? 55 4. 성과와 고객중심 57 1) 공공부문의 성과와 고객중심 경영의 효과 57 2) 이루어진 성과와 고객중심의 경영의 내용은 무엇인가? 58 3) 진정한 고객중심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 61 3장.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및 금융세계화로의 통합이 한국경제에 미친 영 향 67 1. 초국적 금융자본의 지배력 증대 69 2. 초국적 금융자본이 얻은 막대한 이익 78 1) 주식시장에서의 투기이득 78 2) 외국인투자기업의 높은 수익률 80 3. 공기업을 비롯한 국내기업의 외국자본으로의 매각 83 1) 초국적 금융자본의 투기대상이 된 공기업 83 2) KT 사유화 및 해외매각 사례 84 3) (공공) 금융기관의 매각 86 4. 주주자본주의 또는 금융의 원리 관철 87 5. 투자 부진 및 성장 저하 88 6. 재정적자 및 국가 채무 상황 92 7. 금융투기거품의 형성과 붕괴 93 1) 소비의 초국적화 94 2) 두뇌유출: 이민과 유학열풍 95 보론 : 한국경제에서 초국적 (금융)자본은 누구인가? 97 4장.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노동자, 서민에게 미치는 영향 99 1. 고용 불안 103 1) 인원감축 104 2) 비정규직의 확산 113 3) 소결: 고용불안, 비정규직 확산의 의미 131 <생각해 볼 문제: 비정규직 확대에 대한 실용적 동의> 135 2. 노동강도의 강화 139 1) 노동강도 강화 현황 139 2) 노동강도 강화의 원인 141 3) 노동강도 강화 결과 150 4) 소결: 노동자들의 희생을 통한 수익성 향상 168 <생각해볼 문제: 고객서비스 vs 노동권> 171 3. 노동(조합)운동의 무력화 173 1) 미조직 노동자의 증가: 노동조합 조직률의 하락 173 2) 노동자간의 분할, 개별화 174 3) 노동조합 무력화 177 4) 소결 192 4. 생활의 불안정화 194 1) 빈곤의 심화 194 2) 심리적 불안정 197 3) 생명의 위협 199 4) 한탕주의의 만연 204 5) 소결 205 <생각해볼 문제: 노동자 주식투자 - 불안정화에 대한 협조> 205 5. 불평등의 심화, 사회적 약자의 배제 207 1) 빈익빈 부익부: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207 2) 공공성의 훼손: 사회적 약자의 배제 210 3) 소결 214 6. 맺음말: 자본주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정화 216 5장. 신자유주의 구조조정반대 노동자투쟁 평가 222 1. 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 투쟁 223 2. '시간차 공격'으로 진행된 구조조정과 투쟁경과 225 1) '시간차공격'으로 진행된 구조조정 225 2) IMF 하의 노동자 투쟁경과 226 3. 투쟁의 성과와 한계 228 4. 노사정위 활용 문제 232 5.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34 6장. 이후 예상되는 구조조정 239 1. 재정 240 1)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재정정책 240 2) 현재의 재정상황 241 3) 중기적 재정정책 242 2. 사유화 242 3. 구조조정 244 4. 소결 245
부유(浮游)하는 '사회적 대화(교섭)'논의, 노동자민중에게 과연 무엇인가? 드디어 오늘, 자이툰부대가 이라크를 향해 파병되었다. 노무현 정권은 파병결정이 한미동맹과 이라크 재건을 위한 국익차원의 결정이었다고 말하며, 파병반대를 외치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결국 외면했다. 지난 7월 23일부터 민주노총위원장과 민주노동당대표, 각 단체 활동가들과 시민들은 파병반대 '범국민 10만 릴레이' 단식농성에 돌입하는 등 이라크파병철회를 위해 목숨 건 투쟁을 전개해왔다. 단식농성 중 쓰러진 민주노동당의 대표가 병문 온 청와대비서관을 통해 파병결정 재논의를 위한 대통령면담을 호소해도 대답은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각 사회단체 그리고 노동자민중의 파병반대 외침에 대해 아무런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 정권은 한편 올해 초부터 노사정협의기구에 민주노총을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광화문 열린시민공원 단식농성장의 민주노총 이수호위원장을 직접 찾아간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단식을 그만두고 몸을 아끼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이번 궤도연대공동파업과 LG정유노조에 대해 직권중재라는 구시대노동악법이라는 방침을 내린 것에 반발하여 7월 8일 노사정대표자회의마저 무기한 유보한 상태이다. 민주노총이 이번 임·단투 과정에서 내건 대정부 투쟁기조를 계속 유지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정부가 어떤 카드를 내밀지, 내민다면 어느 정도의 효과를 지닌 카드일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파병이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듯, 노동자운동도 이제는 '사회적 협의기구'에 참여해 '상생과 공존'을 위한 길을 가라고 강요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 개혁 하에서 노동자민중의 의제를 갈라치기하고 , 노동자민중 내부를 분열시켜 포섭과 배제의 정치를 하고 있다. 부유(浮游)하는 '사회적 대화' 논의과정 노무현정권은 잘 알려져 있듯이, 참여민주주의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국정과제로 출범한 정권이다. 특히 현정권의 노사관계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기본적으로 금융자본에게 규제가 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국제적 수준으로 재편(완화)하여, 자본투자(투기)를 자유화하고 노동유연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이 그 목표이다. 그러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겠다고 나선 노무현 정권은 출범 첫 해,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대하여 어김없이 구속과 손배가압류의 족쇄를 채웠으며, 노동자농민들의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이제 노무현 정권은 남한의 노동자운동을 대표한다는 민주노총에 올해 대정부투쟁에 있어 온건한 지도부가 등장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이러한 판단과 동시에 구조조정 이후 노동조합의 계속된 투쟁의 패배에 따라 쌓여온 피로감과 패배주의에서 싹트고 있는 조합원들의 실리주의를 부추겨 그동안의 반쪽짜리 노사정기구를 개편한 남한의 대표적인 '노사정협의기구'를 만들려 하고 있다. 올해 새로이 등장한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에 조응하여 산별노조 건설과 정책제도 개선을 명분으로 새로운 '노사정협의기구' 건설을 위해 '노사정 청와대회동'에 이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참가해 왔다. 하지만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노동조합에서 파업도 들어가기도 전 직권중재를 내리고, 예년과 같은 구속수배를 반복하는 등 정권이 노동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만큼 민주노총은 현 국면에서 '노사정대표자회의'의 지속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이는 "최근의 노동탄압은 노사정 대표자회의의 취지를 정면 부정하는 도발"이라고 규정한 뒤 "대화에는 대화로, 탄압에는 투쟁으로 맞설 것"이라는 발언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사실 '사회적 대화'는 올해 지도부가 '새로운 노사정대화 체계 건설'을 명분으로 등장한 만큼, 공약이행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자의든 타의든 '노사정대표자희의'가 유보가 되었고, 따라서 8월 대의원대회에 상정하기로 한 '사회적 대화(교섭)' 지침 또한 순연할 것으로 보인다. 이 연기가 '사회적 대화' 형성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일보전진을 위한 이보후퇴'의 제스처에 불과한 것인지, '사회적 대화' 그 자체에 대하여 노사정이 화해할 수 없는 계급대립을 반영하는 '경고성' 발언인지는 좀더 두고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현 지도부가 '사회적 대화'에 무척 집착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이미 두 차례 진행된 '노사정대표자회의'는 '노사정협의기구'의 성격을 갖고 있다. 노사정대표자회의는 각종 주요 노동사안에 대한 논의, 향후 건설될 '새로운 노사정협의기구'에 대한 위상과 역할을 결정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는 '노사정위 복귀'는 대의원 대회의 결정에 따른다는 방침을 벗어난 행위에 진배없는 것이다. 또한 임·단협이 한창인 6, 7월에 각 연맹과 산하본부에 '사회적 대화'에 대한 논의를 주문하고 8월에 안건을 상정하려 했던 모습은 누가 보아도 번갯불에 콩구워 먹는 식으로 진행된 면이 있다. 물론 민주노총은 이전에도 노사정위 가입과 탈퇴를 반복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현재의 부유(浮游)가 민주노총이 걸어온 역사의 반복이라 하면 너무 과장된 말일까? 노동유연화 촉진의 통로, 노동자민중을 포섭/관리하는 노사정위원회 그렇다면 '기존의 노사정위원회'와 새롭게 재편될 '노사정협의기구'의 틀은 과연 다를 것인가? 더 설명할 필요없는 98년 노사정위원회는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변형시간근로제 합의를 통해 파견노동, 즉 중간착취를 합법화하는데 기여하고, 2000년 복수노조 금지조항 유예와 전임자 임금지급금지 유예를 맞바꿔치기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독자노조 건설을 어렵게 만들었다. 2001년에는 모성보호법이 개정되었지만, 그 혜택은 여성노동자, 그 중에서도 고용보험에 들어있는 40% 미만에게만 한정되는 것이었고, 대부분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소외되었다. 2002년 들어서면서 노사정위원회 비정규직 특위에서는 비정규노동자의 범위와 통계 개선, 취약노동자 개념 도입, 노사정 참여기구 설치, 상담 및 고충처리방안, 사회보험제도의 부분적용 등이 노사정 합의의 이름으로 발표되었고, 이는 이후 노사정위에서 왜곡된 비정규직 논의를 계속 진행되게 만드는 발판으로 작동하게 된다. 또한 2003년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위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를 사용자와 노동자의 중간자적 위치로 보고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유사근로자라는 개념을 통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노동3권과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등을 선별적으로 적용하는 안을 내놓아 노동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노사정위원회였다. 또한 최근에는 파견법 개정을 통해 파견업종을 전면확대하려는 의도까지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의 노사정위원회는 집단적 노사관계와 개별적 노사관계의 맞바꾸기(trade-off) 방식으로 노동자대중을 갈라치기하고 위계화시켰다. 이렇듯 노사정위원회는 노동법 개악을 통해 노동유연화를 관철하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광풍에 그대로 노출된 노동자대중들을 위계화하여 비정규직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올해 2월에 노사정위원회에서 발표된 '2004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은 98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 이후 간만의 합의도출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하지만 '일자리만들기 사회협약'의 내용은 그 일자리 수가 1만 개든 10만 개든 상관없이 사회서비스 분야의 사회적 일자리에 1인당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으로 9-10개월간 지원한다는 것이 그 내용의 골자이다. 한마디로 유연화된 일자리, 비정규직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사회적 빈곤'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불안정노동의 확산을 정부 스스로 앞장서겠다는 것이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내용이다. 지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졌던 노사정위원회의 역할은 이처럼 자명했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추구한다며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지냈던 인사가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되어도 노사정위원회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노총도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노사정위원회를 무조건 참가하는 방식을 경계하고 있는 듯 하다. "노사정위원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적 교섭'기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사회적 교섭기구에 대한 기본 인식에서부터 큰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 노사정위원회는 정부가 주도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기구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도 잊지 않는다. "새로운 사회적 교섭기구는 노사당사자가 진정한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적합한 교섭기구의 구성과 운영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적합한 교섭기구의 구성과 운영은 "첫째, 기구의 독립성이 강화되어야 하며 둘째, 논의의제를 확대하고 셋째, 합의사항 이행이 담보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논리이다. 현재 남한 노동자운동은 낮은 조합원 조직률에 지난 구조조정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배제로 얻을 것도 잃었다는 피해의식이 겹쳐, '여러 가지 점에서 사회적 합의주의가 제약되고 있지만 노동계급과 조합원의 권익과 역량강화를 위해서 사회적 교섭기구를 활용할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현재의 국면이 사회적 합의주의를 실현하기에는 충분히 제약적인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교섭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조합원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정규직 차별철폐나 빈곤해소라는 명분은 단지 치장에 불과했던 노사정합의의 역사가 언급되어야 한다. 현재 남한이 구조적 경제위기 국면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온전한 실현이 불가능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인정하고 있는 바다. 결국 이러한 조건에서 '사회적 대화(교섭)'틀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허구적 합의주의를 양산할 뿐만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노동자로 한정되어지는 특수한 노동자 계층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꼴이 될 것이다. 관리된 합의주의, 신자유주의의 관철을 위한 '사회적 합의주의'를 극복하기 위하여 노사정 삼자기구는 사회적합의주의 모델의 핵심적인 제도이며, 형식적 틀에 관한 하나의 교섭안정화 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노사정위원회가 기만책이었다는 경험의 쓰라림으로 부유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해진 노사정위원회를 대신하여 비슷한 삼자위원회가 제시된다면, 충분히 힘을 얻을 수 있다. 궤도공동투쟁이 책임있는 교섭 틀 내에서 논의되었다면, 현재와 같은 쓰라린 패배는 없었을 거라는 일부의 분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사회적 합의주의'의 실현이 가능하거나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신자유주의에 따른 '사회적 합의주의'의 약화가 크게 회자되는 중에도 그 형식적 틀이 완전히 해체되는 데 이른 것은 아니고, 오히려 1980년대나 1990년대 몇몇 국가에서는 '사회협약'이 잇달아 체결됨에 따라 '사회적 합의주의' 부활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니 말이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비슷한 형식적 틀이라 하더라도 그 틀 내에서 논의되고 협상되는 실내용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 이른바 '경쟁력 향상을 위한 사회적 합의주의'가 그 실체인데, 예전에 자본 및 국가가 사회적 합의주의에 응했던 것은 노동자계급의 임금과 복지에 협상했던 것에 반하여, 현재의 '사회적 합의주의' 타협은 신자유주의적 '국가경쟁력(정확히 말하면 자본의 경쟁력)'을 어떻게 제고할 것인가가 우선적인 전제가 되는 것이다. 민주노조진영 내에서 이미 이러한 징후는 다분하다. 올해 임·단투 과정에서 선보인 '사회연대기금'은 노사정이 공동으로 기금을 출연하여, 비정규의 임금과 복지를 개선하고, 궁극적으로는 산업발전을 위한 공동연구기금으로 쓰자는 것이 그 내용이다. 특히 자동차 4사에서 제출한 '산업발전과 사회발전을 위한 사회공헌기금'은 그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노조와 자본이 힘을 합쳐, 산업발전을 이룩해보겠다는 소박한 발상을 담고 있다. 산업공동화에 따른 고용위협에 맞선 노동조합의 전략이 산업별 정책차원에서의 대응 차원으로 수행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본의 금융세계화라는 현 국면에서 일국적 산업정책은 그 한계가 명백하다. 산업공동화 현상은 산업적 형태로 대응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닌, 초민족적 자본에 의한 '전지구적 차원의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라는 관점을 명확히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한편 참여연대에서는 노사정과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경제사회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최근 공공연맹을 탈퇴한 KT를 중심으로 새로이 출범한 전국IT산업노조연맹은 '기존 연맹이 비정규직 중심의 활동으로 인하여 대사업장노조의 이익에 소홀했으니 이제는 직접 정보통신 정책에 개입해' 자신의 이익을 직접 챙기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게 개혁의 정당성 이데올로기를 부여해 줄 것이며, 노조가 취하는 단위사업장과 조합원만의 이익을 방어하는 전략은 비정규직을 희생시킬 수 밖에 없는 관리된 합의주의 양상을 띌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계급형성적 노동자운동의 복구를 위해서는 좀더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좌/우', '개량주의/반개량주의'의 낙인을 깨고, 새로운 '계급형성'에 주력하자. 새로운 '사회적 대화'는 '노정의 신뢰회복을 위하여 가시적인 조치가 선행' 된다던가, '노동조합의 역량이 강화되면 참가할 수 있다', 또는 '제대로 된 노사정위라면 참가할 수 있다'라는 '전술적(조건부) 참가론'이 좌/우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전술적 참가론은 그야말로 사회적 대화를 '교섭'틀의 확장으로 바라보는 실용적인 관점으로, 시기와 정세에 따라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고, 나올 수 있다는 시각이다. 새롭게 개편되던 아니든, 결국 현 국면에서 노사정위가 노동자민중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이익이 극히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참가를 결정한다면 노동자운동은 그야말로 정권에 의한 관리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노사정위원회는 '교섭'틀의 확장으로 바라볼 수 없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작동시키는 핵심적인 기제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사회적 대화' 틀에 대한 각 단체, 현장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각종 토론회를 통해 '사회적 대화' 틀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사회적 합의주의의 허상에 대한 선전을 진행하는 등 '사회적 대화' 틀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진정 현재의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난 시기 노동자운동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자세로부터 출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회적 교섭' 틀과 이에 따른 '사회적 합의주의' 논쟁 과정에서 불거지는 현재의 운동 위기 상황의 원인이 지도부 탓으로만 돌려진다면 안 될 것이다. 근본적인 혁신관점과 성찰이 전제된 실천만이 구래의 껍데기를 벗고 새로이 태어날 수 있다는 진실과 쓰러져 가는 계급운동을 복원하기 위한 길은 오직 '계급주체' 형성에 있다는 것을 민주노조운동진영은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대중이 함께하는 교육과 토론시간을 충분히 보장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노동자대중운동의 일진전을 위한 방안이 발굴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연맹 산하 293개 사업장(13만여 조합원)중에서 올해 주5일제 실시사업장(정부산하기관 및 1,000인 이상 사업장)은 50여개 사업장이다. 거의 모든 사업장은 주5일제 강제시행일인 7월 1일 이전에 거의 타결이 되었다. 그 중 궤도연대(서울, 인천, 부산, 대구지하철, 도시철도, 철도 등) 소속 사업장이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 쟁취,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신규인력충원)’ 등을 요구하며 오는 7월 21일 총파업의 배수진을 치고 투쟁에 들어간다. 연맹에는 장기투쟁사업장도 많다. 7개월 째 복직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예술노조와 광주환경위생노조, 장애인콜택시노조, 민주적 기관운영 쟁취를 위해 싸우는 소아마비정립회관노조, 위장폐업에 맞서고 있는 자동차운전학원노조 등등.... 오랜 시간 질기게 싸우는 노조들도 있지만, 그 외 연맹 산하에 많은 노조들은 회의하고, 간담회하고, 교섭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장황히 우리 연맹 상황을 읊는 이유는 노동조합이 할 일도 많고, 싸울꺼리가 많다고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현안이 이렇게 많으니, 다른데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파병을 철회하라고 절규하며 죽어간 후 연일 광화문이며, 종묘에서 ‘파병철회’를 외치는 정세 속에서 노동조합은 참 할말도, 할 일도 없이 무기력해지는 것에 대한 상대적인 강조일 뿐이다. 변명하자면 그 만큼 본의 아니게 내부사정으로 신경 못 쓰고 있다는 말이다. ‘반전’, ‘평화’, ‘반핵’, ‘환경’, ‘여성’, ‘장애’ 등의 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느껴지는 이 무기력증.....이 원인을 찾아서 치료해야 진정한 노동운동의 혁신과 노동조합 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을! 이런 얘기 나오면 사실 좀 답답해진다. 지난 파병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노동자들의 양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주로 광화문에서 저녁 7시부터 진행되는 촛불집회에 가면 노동자들(공공연맹 조합원)은 촛불을 들고 수동적으로 몇 시간 씩 앉았다가 가는 게 고작이다. 총연맹이 조합원들에게 집회 참가 지침을 내리고 조직하는데도 그나마도 몇 명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집회가 워낙 길어서-보통 3시간 이상이다!!- 끝까지 다 있지도 못한 채 이내 자리를 뜨고 만다. 집회에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일어서는 이유를 노동자들이 참을성이 없고, 파병철회에 대한 의지가 적어서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집회 시간이 긴 것도 있지만, 사실 촛불집회에 대한 문화적, 정치적 반감이 크게 작용한다. 팔뚝질 한번 안 하고, ‘아침이슬’, ‘광야에서’, ‘솔아솔아’만 연거푸 부르며 내내 쭈구리고 앉아서 “노무현 대통령님~~ 파병을 철회해주세요~~”라고 외치는 집회에서 노동자들은 되려 기가 빠져서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번 참석한 사람들은 집회에 다시 잘 오지도 않는다. 어떤 조합원은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시간만 아깝다”고 잘라 말한다. 집회 내내 내재되어 있는 교묘한 논점과 정치적 분열지점을 굳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오히려 촛불로 분노를 통제, 조절 당하고 있음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듯하다. 자신들이 ‘파병’은 반대하지만 노무현은 반대 안 하는 ‘착한 시민’, ‘덜 정치화된 시민’으로 포장됨을 느끼는 순간,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불청객이 된 듯이 두리번거리다 가버리는 것은 투쟁 속에서 단련된 훌륭한 감각 덕분일까? 노동자들을 파병반대 투쟁에 좀 더 힘있게 조직화하려면 역시 ‘노무현 퇴진’과 ‘파병철회’를 나란히 앞세우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좀 더 신이 나서 투쟁할 것 같단 말이다. 이제 집회 성격 탓은 그만하겠다. 사실 반전평화를 위한 노동자들의 독자적 실천이 너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작년 초 파병반대 투쟁을 진행 할 때도 독자적인 투쟁한번 못해보고, 시민사회단체가 마련해 놓은 집회에 참석해서 ‘집회가 너무 유하니 뭐니’, 불만만 토로하다가 돌아선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특성을 살리고 노동조합 내에서 순전히 반전평화, 파병반대를 가지고 투쟁 사례도 거의 없다. 하지만 김선일씨가 제국주의와 테러리즘이 양산하는 ‘피의 악순환’ 속에서 무참히 죽어간 뒤, 그나마 올해 노동조합의 반전투쟁은 좀 달라진 듯 한다. 공공연맹 산하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등이 속해 있는 항공연대에서 지난 6월 24일 파병군 수송비행 거부선언을 했고, 연맹 산하의 경기도노조는 지난 6월 30일 “정부가 이라크파병을 그대로 밀어붙일 경우 미군부대 안에 있는 쓰레기 수거 거부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한 바 있다. 모두 노조의 특성을 살린 실천적 투쟁이다. 공공연맹 산하 노동조합 이외에도 화물통합노조(준)도 지난 6월 25일 “이라크로 가는 군수물자를 운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으며, 전교조는 6월 28일 ~ 7월 3일을 ‘고 김선일씨 추모기간’으로 정해 ‘반전평화’를 주제로 한 계기수업을 전국의 초중고교에서 일제히 진행했다. 이밖에 금속노조 대구지부는 지난 7월 7일 오후 2시 파병반대 등을 내걸고 대구에 있는 미20지원단 앞에서 이라크 파병철회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일천했던 일년 전 노동조합의 파병반대 투쟁과 비교해 보면,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반전’, ‘평화’, ‘반핵’, ‘환경’, ‘여성’, ‘장애’ 등....노조의 무기력증을 환기시켜주는 의제들을 노동조합 내부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미 진부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임단협에 매몰되는 경제적인 투쟁으로는 ‘조직율’하락으로 대변되는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 사회적 보편적인 과제를 가지고 이른바 ‘대안 세계화’를 고민하지 않으면, 노동조합은 남한사회 내 하나의 기득권 세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노동조합 외부에서 혼란스럽게 마구 흘러 들어오는 ‘테러’, ‘저항폭력’의 개념들에 대해서 무비판적으로 입장 없이 수용할 것이 아니라, 올바로 정립하고 근본적인 비판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야말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전쟁 속에서 이라크 노동자민중들의 인권, 노동권, 여성권에 대해 제기해야 한다. 그래서 ‘공장을 뛰어넘는 연대’와 더 나아가 ‘국경을 뛰어넘는 연대’를 경험하자! 이라크에서 희생된 1만 여명의 김선일에 대해 침묵하지 말자! 노동운동, 노동조합 운동이 그토록 열망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변혁적 투쟁과 위기탈출을 위한 몸부림은 오늘날 ‘반전평화’, '파병철회‘ 투쟁과 같은 사회운동의 텃밭에서 그 씨앗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PSSP ※ 이 글은 파병이 되기 전에 작성된 글입니다. 하지만 시기적 경과를 감안하더라도 파병철회를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유효하기에 이 글을 싣습니다.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하나의 고육지책... 그러나 노동운동진영에서 제안된 연대기금 발상은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하나의 고육지책으로 나왔을 것이다. 이미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비정규직의 경제적 소외, 더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노동자 사이의 심각한 임금·복지격차가 더 이상 치유되기 힘든 상태까지 와 있다는 것이 노조내부의 진단이기도 하다. 이렇듯 '연대기금'안은 노동운동이 언론의 도덕적 공격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에 무기력한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대응력을 키우고, 더욱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도덕적 책무와 쓰러져 가는 민주노조운동의 정당성을 되살리기 위한 몸부림에서 나왔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민주노총의 연대기금 제안배경에는 '고용형태별 임금·복지 격차'와 '기업규모간 임금 및 복지격차가 확대'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더 이상 비정규직 투쟁을 연대한다고 진행해온 소모적인 논쟁보다 실천방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 말하고 있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이자면 지난해 10월 일어났던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 노조 이용석 열사의 분신, 올해 2월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 박일수 열사투쟁에서 정규직 노조의 태도이다. 정규직노조에서 보인 무관심과 정규직 노조의 비정규노조에 대한 탄압은 더 이상 민주노조운동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바라보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대부분 정규직노조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배타성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격렬하게 진행된 이후로 계속해서 쌓인 결과로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운동이 처한 조건이 자본과 언론의 무차별적인 도덕적·경제적 이데올로기 공격에 무기력하다는 것과 이를 대응하기에는 노조의 단결력과 대응 이데올로기가 너무나 취약하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조에서는 도덕적 공격을 방어하고, 민주노조운동의 정당성을 복원하기 위한 처방으로 노동자들도 임금인상 자제할 테니, 그 댓가로 너희(자본)들도 앞장서서 비정규직 문제와 (정규직)고용문제(산업공동화)를 책임져라 하는 식의 인식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부채감과 노사상생(?)의 길을 향한 '연대기금'안 민주노총은 올해 임·단협에서 '사회적연대 기반 상실 저지'를 위해 '연대기금조성을 통한 연대 기금제를 추진할 것'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노동연대기금' 조성을 밝힌바 있다. '연대기금'이란 정규직 조합원 임금(인상분) 중 노사가 공동으로 일정액(또는 비율)을 적립하는 것으로, 민주노총은 이를 '비정규직 복지기금', '직업훈련', '조합원의 고용안정기금'등에 사용토록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조합원 기금을 산업별(또는 업종별)로 적립할 것과 기금은 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5가지 연대기금 방침을 내놓았다. 그리고 연대기금은 '노사간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고, '임금격차와 차별해소분위기가 확산'과 '산업(업종)별 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 길만이 살길이고, 노사 상생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민주노조운동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저지 투쟁의 힘겨운 길을 걸어왔다. 이 시기에 민주노조는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와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통한 고용안정요구를 전면을 내 걸었다. 이후 노동시간단축투쟁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주5일제 쟁취투쟁으로 변모하였다. 또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이 법제화된 이후, 자본은 자유로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더욱더 심화되었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점점 더 열악해져갔다. 그리고 주5일제 쟁취투쟁은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투쟁과는 상관없이 철저히 정규직 중심의 투쟁으로 변질되고 결국 탄력적 노동시간 확대와 각종 휴가무급화를 골자로 하는 노동법이 통과되며, 상처뿐인 주 5일제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권리는 철저히 소외된 것은 당연지사다. 올해 제출된 연대기금안은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명분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정규직을 연대의 대상이나 운동의 주체로 보는 관점이 아니라 시혜적인 대상으로 '비정규직 복지증진'을 정규직노조가 해결한다는 식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부책의식을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지금의 비정규직의 문제가 노동의 불안정화 시대에 나타나는 노동자내부의 위계화와 분절화의 한 현상이라면, 이것을 극복하는 것도 노동자내부의 위계화와 분절화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자본과 언론의 도덕적 정당의 이데올로기 공격에 대응하는 것에 급급하여 비정규직에 대한 연대에 대한 관점 없이 단지 '연대기금'조성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일정하게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너무나도 수세적이다. 기금조성방식과 운영주체의 문제점으로 본 '연대기금'안 기금 조성방식과 운영주체는 산업(업종)별로 천차만별이다. 금속산업연맹 산하 현대·기아·대우·쌍용자동차 등 완성차 4개 노조도 완성차 업체부터 세전 순이익의 5%를 기금으로 적립하고 노사가 공동기구를 통해 운영하는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노동연대기금의 추진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올해 산별교섭의 실질적인 원년으로서 산별교섭의 취지에 걸맞는 요구를 산별5대 요구로 확정하고, 그중 의미 있는 요구'가 '노동연대기금'조성 요구라고 밝힌바 있다. 구체적으로 노사는 2004년 임금 인상분 총액의 1%를 각각 각출하여 '보건의료산업 노동연대기금'으로 적립하고, 정부도 같은 금액을 지원하도록 요청한다'는 복안이다. 이에 반해 민주노총의 경우 '2004년 정규직 조합원 임금(일정분) 중 일정액(비율)을 적립하고, 조합원이 조성한 기금에 대당하는 금액을 기업에게 요구하는 방식으로 노사 공동으로 출연하여 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반해 자동차4사노조는 기금출연을 사측에서 전면부담하고, 운영주체로 노사공동기구에서 관리할 것을 요구하고, 보건의료노조는 '노·사·정'이 공동으로 기금을 출연하여 노사 공동으로 운영하자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기금조성주체와 운영주체가 산업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혼란스러움의 배경에는 산업별 조합원들 이익과 교섭대상을 고려한 이유이다. '연대기금'안이 비정규직과 연대를 강화하고, 운동의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라면 기금의 출연이 어떠하던 간에 기금운영의 주체가 분명히 노동자들과 노조가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노사공동으로, 아니면 노사정공동으로 되어 있는 것은 산업별 합의주의 정신에 입각한 안이기 떄문이다. 또한 기금출연의 불안정성이 문제가 될 것이다. 미시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기금이이라면 최소한의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제안된 안은 기금 출연 주체가 제 각각이거나 불분명해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불안정한 기금안이다. 자동차 4사 노조의 변명과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연대의 기만성 또한 금속연맹은 기금조성방식에 대하여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대신 그 중의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하는 '연대기금' 안이 구조조정 시기에 고통분담론 나타났던 것으로 왜곡될 것이라며, 노사간에 일정비율을 같이 분담하자는 제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부담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노동운동진영에서 이 부담감이 지속되면 될수록 노동자내부의 격차는 커질 것이다. 노동운동진영은 노동자내부의 격차가 너무 벌어져 집회장소에서 외치는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가 공허하고 낮 설기조차 한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이미 노동자들의 임금·복지·위계화 등에 따른 내부격차가 벌어질 대로 벌어져, 원상태로 되돌리기 힘든 상황까지 온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조합원들에 대한 부담감이 존재하니까 기금조성을 공동으로 하자는 안이 힘들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앞으로 조합원의 이익과 관계없거나 관계없어 보이는 사업에 대해서는 소극적이거나 안 하겠다는 것 다름 아니다. 기업별노조의식을 극복하자고 한 민주노조에서 오히려 반대로 단사별(기업별), 산업별 합의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아이러니의 현장이다. 기금을 공동으로 출연하기 힘든 이유가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과 차별해소를 목적으로 쓰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악몽을 되살릴 수 있는 고통분담론에 따른 이데올로기라면 자동차노조들은 1998년 현재에서 한치도 전진도 없을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왜곡된 관점은 오히려 노동자내부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노동조합에서 재생산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올해 현재자동차노조의 임·단협에서 추진한 '정규직 임금대비 비정규직 임금을 8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결의가 '정규직임금 인상분의 80%인상'으로 대체되는 과정이 있었다. 대표적인 민주노조라고 뽑히는 현대자동차의 이러한 단면을 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기만이 오늘 한국의 민주노조의 현 주소라면 너무 가혹한 것일까? 결국에는 조합원을 이유로 노동운동의 위기가 도래했다고 핑계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조 내부에서 논의되는 '연대임금' 추진안도 문제지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위한답시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을 기만하는 작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노동자내부의 위계화와 분할이 자본의 공격에 의한 결과라고 어쩔 수 없었다 라고 말할 수 없듯이, 조합원을 핑계로 어쩔 수 없었다 라는 변명에 앞서, 노동운동내부의 성찰이 먼저 필요할 시점일 것이다. 결국에는 산업별 합의주의가 강화될 것 기금조성주체와 운영주체가 산업(업종)별로 다르고, 민주노총의 권고방침과 전혀 다른 안(자동차4사 노조)이 나오는 이유는 '연대기금'조성 목적이 서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연대기금조성 목적에 대하여 자동차 4사 노조의 경우, '자동차산업발전을 위한 노사공동연구기금을 통한 산업발전', '비정규직을 위한 기금, 직업훈련기금, 고용안전망을 위한 기금', '복지센터 설립비와 빈민층자녀를 위한 교육기금 등 사회공헌'등을 위한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을 말하고 있다. 덧 붙여 조성된 기금은 노동자의 삶의 질과 노동의 질을 높여 자동차산업을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발전시켜내는 한편, 보호받지 못하는 자동차산업의 수많은 노동자(비정규직)들의 고용과 숙련향상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하였다. 금속연맹은 제기의 배경으로 첫째, 노사간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자는 취지, 둘째 산업정책에 기여를 함으로서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고, 셋째는 심각하게 왜곡되는 노동시장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는 것, 넷째 내수시장 침체에 대한 일정한 대비책이 될 수 있고,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운동의 전략적 발전을 위한 사도로서 의미가 있음을 밝힌바 있다. 또한 보건의료노조의 경우는 '보건의료 전체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비정규직 복지, 교육훈련, 모성보호, 보건의료복지회관 걸립 등의 용도'로 사용된다고 밝힌바 있다. 화학섬유연맹 광주전남지부(준) 여수공투본은 여수공투본 2004년 주요 3대요구중에 하나인 '지역사회발전기금조성'의 내용은 '회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지역사회 발전과 기업이익을 사회환원을 실현하기 위해 총 매출액의 0.01%를 지역사회발전기금으로 출연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밝힌 기금제 도입의 가장 큰 이유는 '민주노조 운동의 도덕적 정당성 확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머뭇거리게 되면 계급적·사회적 연대의 기반을 상실할 것이고, 노동자 계급 내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립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다. 또 최근 경총 등이 지난해부터 정부가 유포한 '노동자 귀족론(?)'에 편승해 '대기업 임금인상 자제'를 강력히 제기하고 나온 상황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배경도 있을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의 도덕적 정당성 확보'의 측면과 금속연맹에서 말하는 '노동조합운동의 전략적발전시도로의 의미'에서 본 '연대기금'안은 함량미달이고, 위기에 대한 근본처방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서구 사민주의 모델에서 차용했다면 그것은 계급타협적 내용이 기본 축 일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조건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허구적 합의주의가 양산될 점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차용하지 않았더라고 현재 '연대기금'안의 목적과 사용방안으로는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힘들뿐더러 '계급주체'형성을 향한 노조운동의 전략으로서도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운동이 자본에게 산업발전기금을 요구하여, 산업발전을 위해 공동으로 연구하자는 안도 아이러니이다. 앞서 말한 기금출연목적과 연구로 산업공동화에 대한 대응책이 나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백 번 양보해서 설사 그렇다 하더라고 초민조적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경제구조 하에서 이전과 같은 성장전략의 산업정책을 실행하기에 무척 제약된 조건이 현재라면 산업정책에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이미 산업정책이 실종되어가고 있는 조건에서 산업적 차원에서 노사 공동으로 산업정책을 발전시키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조건하에서는 오히려 (허구적) 합의주의가 득세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또한 이 합의주의는 산업별 이기주의가 강화되는 합의주의로 변형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자본의 입맛만 당기는 안이다. 기금을 모으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제하고있는 모델이 문제이다. 노조가 산업정책에 개입하고, 노동시장을 통제하고, 숙련을 훈련을 시키겠다는 것은 서구 산별노조 모델에서 나온 것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기금 조성의 목적과 관점', 그에 따른 '기금 조성 방안과 운영주체', '실행의지'가 될 것이다. 생색내기용에도 못 미친 임·단협 이후 '연대기금'안의 현실 지금은 각 노조들의 임·단협이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올해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차별철폐를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연대임금'교섭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연대기금'조성에 가장 의욕을 보였던 금속연맹소속 자동차분과노조들과 보건의료노조는 각각 △ 자동차공업협회와 금속연맹 자동차분과의 협의 결과를 준수하도록 하고, 사회적 책무를 위한 별도 재원을 회사에서 출연하며, 복지회관 내 비정규직 센터 설치한다는 3가지 조항과 △'보건연대기금' 조성을 위한 노사공동 위원회 구성하여 '전체 보건의료산업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비정규직 복지, 모성보호, 의료산업 발전' 등의 용도로 보건연대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노사 동수 각 3인이 참여하는 '보건연대기금 노·사 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기금 조성방법, 운영방안 등 세부사항을 논의하여 노·사 합의 후 시행하고 동 위원회는 위원회 설립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정부의 위원회 참여와 기금 지원등을 요청한다' 는 내용을 담은 잠정 합의문을 내놓았다. 잠정합의안을 보면 애초에 제시했던 노조들의 안에 비하여 대폭 후퇴하였거나, '노동연대기금'이 '보건연대기금'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이제 연대기금조성에 관한 첫발을 떼었으니 좀더 기다려 보자'라는 식으로 변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폭 후퇴한 안의 원인은 주요하게 추진했던 산별(업종)노조에서 조차도 '연대임금'안을 주요요구 안으로 상정하였지만, 중요한 의제로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연대임금 개념에 대해서조차 전달되지 않은 조합원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점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또한 연대임금 안은 몇몇 산별(업종)노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산별연맹(노조)들은 썰렁한 반응을 보였다. 공공연맹은 지난 3월 24일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연대기금 방침은 현 단계 연맹 조건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04년에는 년 임금인상분 1개월 치의 1%를 비정규직기금으로 적립한다'는 기존의 결정을 실천하는 것으로 결정한바 있다. 금속연맹 자동자분과 노조들과 보건의료노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산별조직들은 논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연대기금'안을 추진한 산별(업종)노조들의 결과가 무척 초라하기 그지없는 상황을 보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서구 사민주의 모델의 개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연대임금' 제안은 스웨덴식 임노동자 기금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보인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연대기금정책 마련 직전인 2004년 2월12일 성공회대 유철규 교수(경제학과)를 초청해 '사회기금'을 주제로 내부 정책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또한 금속연맹은 유럽의 복지국가모델을 근거로 스웨던의 연대임금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웨덴식 모델의 개념은 무엇인지 우선 살펴보자. + 스웨덴 임노동자 기금(Wage Earners' Funds)이란? - 스웨덴에서 80년대 초 이후 7년간 유지된 임노동자 기금은 1950∼1980년 동안 유지돼오던 '연대임금제'의 대안으로 제기된 것이다. - 스웨덴의 '연대임금제'란 간단히 말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원칙화 한 것으로, 기업의 규모와 수익, 산업 등에 상관없이 동일임금을 보장하는 일종의 '임금 가이드라인'이다. 이는 어떤 면에선 사양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는데, 이 경우 발생하는 사양산업·중소기업의 실업자를 대상으로 정부 운영의 복지제도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재교육)이 뒷받침 됐다. 이 정책은 1960년대 이후 전반적인 임금균등화에 적잖은 역할을 했다. - 하지만 연대임금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몇가지 부작용을 낳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임금유동(Wage Drift) 현상이다. 즉 기업수준에서 최종적으로 확정된 임금상승률이 중앙단체교섭이나 산업별 단체교섭에서 정한 상승률을 상회하는 것이다. 이는 수익성이 높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불만을 누적시켰고, 고수익 업종의 고용흡수력이 약해짐에 따라 공공부문의 비대화도 나타나게 됐다. 결국 산업간·민간-공공부문간 누적적 임금상승 경쟁과 임금격차의 확대, 중앙교섭 해체, 물가상승 등으로 연대임금제의 기반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 그 대안으로 추진된 것이 '임노동자기금'제다. 스웨덴노총(LO)가 1975년에 제출, 1983년 사민당 정부에 의해 입법화된 이 정책은 Wage Dirft(평균임금률을 웃도는 개별기업 등의 임금상승경향)에 해당하는 만큼의 금액을 임금보조가 아닌 신규주식으로 기금 출연토록 하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이 제도는 임금인상 억제책의 성격이 짙었던 셈이다. 이 주식들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해당 기업 안에 임노동자기금의 소유지분으로 동결된다. 기금은 개별기업이 아닌 상위수준에서 운영토록 했다. 운영 주체로는 정부가 기금 이사회를 구성·선임했다. 그러나 기업경영권 확보가 위협받으며 주식출연이 이후 현금 출연으로 바뀌면서 결국 기관투자가의 하나 역할을 하게 됐고, 91년 부르주아 연립정부가 등장하며 사민당이 실권하자 해체되며 결말을 빚었다. - 임노동자기금안이 구상한 미래는 시장사회주의의 일종인 '기금사회주의(Fund Socialism)다. 시장경제의 존속을 통해 경제적 효율이 확보되고, 복지국가의 유지를 통해 시장경제의 문제점들이 완화되며, 임노동자기금을 통해 노동자들이 민간대기업을 소유함으로서 직접생산자에 대한 생산수단의 소유라는 사회주의의 고전적인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논리다. 또 임노동자기금이 지배주주가 되기까지는 수십년이 소요될 것이므로, 기금을 관리할 노동조합은 그 사이에 기업운영의 기법을 습득할 수 있다. 기업소유의 사회화가 합법적이고 평화적일 뿐만 아니라 점진적이기 때문에, 이행기에 큰 경제적 혼란이없으며 반대세력에 대한 정치적 억압도 필요없다는 설명이다. 스웨덴의 '임노동자기금(또는 연대임금정책)'과 별 상관없는 한국의 '연대기금'안 스웨덴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노동조합조직인 LO가 현실적 집권세력인 사민당과 공조하며 '임노동자 기금'이란 제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서구 대부분의 나라들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 노조의 영향력이 극대화되는 시점 이후에 가능했다. 특히 LO 안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정치적 영향력이 강한 노조인 '금속노련(Metall)은 치열한 국제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금속기계공업의 객관적 조건 때문에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등 계급협조적인 양상을 보여왔다. 한국의 경우 노동조합 조직률도 형편없이 낮은 데다가, 제대로 된 '시민권' 조차 아직 미숙아 단계인 지금의 노동운동 진영으로선 다급한 접근인 셈이다. 사용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대기업은 연대임금제에 쉽게 동의했는데, 이는 대기업의 임금지불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음에도 불구하고 임금 가이드라인은 이보다 낮게 책정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임노동자 기금'과 관련해선 경기침체 국면에서 사민당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반면, SAF(재계), 자유당, 중앙당(전 농민당), 보수당 등은 모두 반대 혹은 절대 반대 입장을 냈으며, 공산주의자 좌익당은 '기권'에 표를 던졌다. 스웨덴에서 복지국가가 확장되던 시기는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복지국가 모델에서 경제성장은 필수적이었다. 이에 비해 현재 세계자본주의는 구조적 불황에 직면해 있고, 한국의 경우 경기침체와 저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조건에서 스웨덴식 모델은 더욱더 힘들 것이다. 계급 타협적이며, 경제주의적 노동조직모델, 개량주의적으로 조직된 노동운동을 갖고 있는 스웨덴식 모델과도 거리가 먼 것이 현재 한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연대기금'안이다. 스웨덴의 '연대임금제'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정책-제도화 한 것이고, 임노동자기금의 애초 구상은 장기적으로 기업을 노동자가 소유하는 점진적 사회화 안이었던 것에 반해, 현재 민주노조운동에서 추진되는 '연대기금'은 이도 저도 아닌, 비정규직 복지증진과 직업훈련, 산업발전과 사회공헌기금이라는 점에서 애초 취지와 목적이 다르고 기금운영목적과 운영주체에서 모두 다르다. 급하다고 우회할 수는 없다. 올해가 첫해이기에 아직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만을 놓고 보면 '연대기금'안 조차 제대로 추진하기 어려운 이유로 현재 한국의 노조형태가 기업별 형태이고, 산별노조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조건이라는 분석은 결과론 적이다. 노조에서 비정규직 처우(복지)개선의 '연대기금'안 조차 제대로 추진되기 힘든 이유로는 금속연맹에서 지적했듯이 조합원들의 부담감도 깔려있었을 것이고, 자본의 강한 거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조가 이를 빌미로 조합원을 탓하고, 현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지 못한 원인도 존재한다. 이러한 사태의 근본원인은 현재 노동자내부의 위계화와 경쟁, 노동자들의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고용의 불안정)에서 나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공공연맹 중앙위에서 보여지듯이, 현재 추진중인 비정규직 기금적립도 쉽지 않은 판에 비정규직을 위하여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모험일수 있다. 공언(空言)만 남발하는 조직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럴 바에는 기존에 추진한 비정규직 기금적립을 통해 하나하나 밟아 가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이며,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연대기금'안은 지금의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효한 시도라고 보기 어렵다. 현재의 노동운동의 위기가 이데올로기적·정당성의 위기라고 한다면 그에 걸 맞는 안을 내놓아야 한다. 단순히 지금까지 방식으로 지속하던 임·단협을 강화하자라는 방식으로 곤란하다는 것이다. 임·단협을 하더라도 노조운동의 상박하후의 원칙에 따라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공동투쟁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의 공세는 입체적이다. 혹은 전방위적이다. 이미 상시적 구조조정 시스템이 완비된 이 땅에서 비정규직 사용제한에 있어 제한을 거의 받지 않는 자본은 한국을 무노조, 관리노조, 무권리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의 천국의 땅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이제 시작일 뿐인 예이다. 노조는 일상적인 정치투쟁을 강화하기 위하여 교육적 기능을 강화하고, 투쟁을 배치해야 한다. 자본의 공격도 문제지만, 현재 노동자내부의 의식과 행동이 바뀌지 않은 한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는 없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분할과 노동운동의 위기가 한 순간에 드러난 문제가 아니듯, 처방전 또한 좀더 장기적이고 근본적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