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스위니 집행부 당선 이후 미국 AFL-CIO의 대외정책 킴 사입스1) *번역 : 임 필 수 | 정책편집국장 노동 제국주의와 미국 노동자운동의 비극 미국 노동총연맹-산별노조협의회(AFL-CIO)는 자신의 역사 대부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반동적인 활동을 펼쳤다. AFL-CIO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움직였고, 진보적인 노동운동을 공격하는 독재자와 협조했고, 진보적인 정부에 대항하는 반동적인 노동운동을 지원했다는 사실은 명백히 입증되었다. 한마디로 AFL-CIO는 우리가 정확히 ‘노동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실천을 펼쳤다. AFL-CIA(미국노총-중앙정보국)라는 이름은 좌파의 망상증이 아니며 현실을 정확히 표현한다. ‘노동 제국주의’는 1955년 AFL-CIO의 통합부터 등장한 게 아니다. 정확히 20세기 초, 사무엘 곰퍼스가 지도부를 맡은 미국 노동총연맹(AFL) 때부터 등장했다. AFL은 멕시코혁명 동안 혁명세력을 방해하기 위해 간섭했고, 1차 세계대전에는 정부의 전쟁을 지지했으며, 미국 외교정책 집단 내에서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비록 성공하진 못했어도, AFL은 1차 세계대전 후 서반구(특히 멕시코)의 노동운동을 통제하기 위해 범아메리카노동총연맹(PAFL)을 설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AFL은 윌슨 정부에게 받은 5만 달러를 PAFL 설립에 사용했다. 1924년 곰퍼스가 죽자 대부분의 해외 활동은 일단 끝났지만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부활했다. AFL은 유럽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는데, 처음에는 나찌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파시스트에 저항한 공산주의자를 목표로 삼았다. 1940년대 후반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훼손하기 위해 광범위한 활동을 펼쳤고, 그 후에는 유럽대륙에서 소련에 대항하며 미국의 이해를 방어하기 위한 장기적인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활동을 위해 CIA는 AFL에게 자금을 지원했다. 그리고 CIA가 자금을 중단하자 AFL은 악명 높은 ‘프렌치 커넥션’을 포함해 마약거래에 손을 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라틴아메리카에서 AFL의 활동도 부활했다. 처음에는 반공주의 국제노동조직인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의 라틴아메리카 지역조직(ORIT)를 통해 활동했고, 1954년 과테말라 정부를 전복하는 데 조력했다. 그러나 쿠바혁명의 성공 이후 AFL-CIO는 이 지역의 도전에 더 적극 대응하려고 아메리카자유노동개발기구(AIFLD)를 창설했다. 특히 AIFLD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한 쿠데타(1964년 브라질과 1973년 칠레)를 위한 기초를 깔았고, 도미니카공화국과 영국령 기니에 간섭했다. 또한 AFL-CIO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활동을 병행했다. 1964년 아프리카아메리카노동센터(AALC)를 설립했고, 남아프리카에서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항하는 활동을 펼쳤다. 1967년 아시아아메리칸자유노동기구(AAFLI)는 특히 남한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고,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부를 돕기 위해 거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AAFLI는 1983-89년 동안 필리핀의 진보적인 노동자조직인 메이데이운동(KMU)에 대항하기 위해 마르코스가 세운 필리핀노동조합회의(TUCP)에 거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이 자금 규모는 폴란드의 연대노조를 포함해 세계 다른 어느 나라의 노동자조직에 지원한 것보다 더 많은 액수였다. AAFLI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95년 존 스위니의 당선과 대외정책 개혁 한마디로 조지 미니와 레인 커크랜드가 의장으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AFL-CIO는 반동적인 활동을 펼쳤다. 1980년대 중반 노동운동 내에서 이러한 활동에 반대하는 상당한 흐름이 형성됐다. 1995년 존 스위니가 새로운 의장으로 당선될 때 AFL-CIO의 이러한 활동에 대한 반대는 적어도 하나의 요소였다. 1995년 10월 존 스위니가 당선될 때 많은 활동가들은 AFL-CIO의 대외활동을 급진적으로 개혁하리라 기대했다. 스위니의 초기 활동은 고무적이었다. 1997년 그는 AAFLI, AALC, AIFLD와 유럽에서 활동하는 자유노동조합기구(FTUI)와 같은 반(半)-자율적인 기구들을 해산하게 했고 (보통 연대센터라고 부르는) 아메리카국제노동연대센터(ACILS)라는 중앙집중적인 조직으로 대체했다. 또한 스위니는 국제부에서 오랫동안 냉전의 전사로 활동했던 사람들을 제거했다. 그는 몇몇 개발도상국의 노동자투쟁을 지원하는 긍정적인 노력을 보였고, 이러한 변화는 질적인 개선이었다. 하지만 최근 어떤 사건들은 AFL-CIO의 대외정책 개혁에 의문을 품게 한다. 세 가지 사건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AFL-CIO는 과거 활동에 대해 자료를 공개하고 의혹을 일소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둘째, 연대센터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을 전복하려는 시도에 개입했다. 셋째, AFL-CIO는 미국 정부의 냉전시기와 유사한 노동기구에 참여하고 있다. 이제 이 문제들의 상호연관성을 염두에 두며 각각의 문제들을 살펴보자. AFL-CIO, 과거를 자백하길 계속 거부하다 처음부터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AFL-CIO와 (독자적인 대외정책을 펼치는) 일부 가입조직들의 반동적인 대외정책에 반대해 투쟁했다. 이러한 도전은 성장과 쇠퇴를 반복했다. 특히 1960년대 AFL-CIO의 대외정책을 분석한 책의 출판은 중요한 계기였다. 또한 1980년대 활동가들이 레이건의 니카라과 공격을 노동운동이 지지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막은 것도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초기 분석은 AFL-CIO의 활동이 노동운동 외부 즉 CIA, 백악관, 국무부에 의해 계획된 것으로 주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노동운동의 대외정책을 외부 요인의 결과로 설명했다. 그러나 1989년 나의 책이 출판된 후, 독립 연구자들은 이러한 대외정책이 노동운동 내부에서 내적 요소에 근거해 계발되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AFL-CIO의 대외활동이 CIA와 합작한 것이었고 미국 대외정책에 이득을 주었고 백악관과 국무부의 주도력을 지지한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접근방식은 그러한 대외정책이 정부의 자금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했지만 상층부 관리 내에서 계발되었고 통제되었다고 입증했다. 이러한 대외정책은 평조합원에게 보고되거나 추인되지 않았고 의식적으로 은폐되었다 - 보고되더라도 매우 왜곡된 방식이었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미국 노동자의 이름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AFL-CIO가 해외에서 어떤 활동을 펼쳐 왔는지 모르며, 그러한 활동이 정부의 엄청난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도 모른다. 따라서 활동가들은 지금까지 AFL-CIO의 대외활동에 대한 학술적 조사활동을 펼쳤고 동시에 기층 조합원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활동을 진행했다. 마침내 활동가들은 조합원을 교육하고 그들이 국제노동조직에서 악명을 지우기 위한 활동을 요구하게 하려는 뜻을 품었으나, AFL-CIO의 지도부는 이러한 활동을 방해하거나 멈추려고 시도하고 있다. 1998년 이후로 지도부의 이러한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프레드 히르쉬는 AFL-CIO의 대외정책을 처음으로 폭로한 사람 중 한 명이며 캘리포니아 산 호세 지역의 사우스베이 노동평의회에서 “의혹청산”(Clear the Air) 결의안을 통과시키려고 한 동료들 중 하나였다. 그는 미국과 AIFLD가 지원한 칠레 쿠데타(1973년)의 25주년을 회상하고 1974년 AFILD의 지도자 윌리엄 도허티를 반대하는 공식 결의안을 노동평의회가 통과시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 결의한 통과를 시도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러한 노력이 좌절되었고, 안은 공식적으로 제출되지 못했다. 2000년 영국정부가 칠레의 피노체트 전 대통령을 체포한 사건은 새로운 기회였다. 그러나 AFL-CIO는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 프레드 히르쉬와 동료들은 “의혹청산” 결의안을 다시 통과시키려고 시도했다. 결의안이 사우스베이 노동평의회에서 통과되었고, AFL의 주(州) 조직인 캘리포니아노동연맹의 2002년 총회에 상정되었다. 캘리포니아연맹의 집행위원회는 ‘협상안’처럼 보이는 것을 제시했다. 그것은 결의안이 “완화된다면” 이 문제를 더욱 신중히 토의하기 위한 캘리포니아 활동가와 AFL-CIO 대외정책 지도자의 모임을 주선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협상안이 수용되었고 누그러진 결의안이 총회에서 통과되었다. 2003년 10월에 약속한 모임이 열리기까지 15개월 이상이 걸렸다. AFL-CIO의 대외정책 지도자들은 본질적인 문제들을 다루기보다는 상투적인 말을 늘어놓았고, 모임에 참여한 평조합원들은 크게 실망했다. 그들은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이고 있는 활동에 관한 정보와 보고서를 모아달라는 캘리포니아 활동가들의 요구를 존중하지 않았다. AFL-CIO가 차베스정부를 전복하려는 쿠데타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폭로되다 AFL-CIO가 과거를 자백하도록 하기 위한 활동이 계속 저항에 직면하는 동안 AFL-CIO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를 전복하려는 활동에 연루되어 있다는 혼란스러운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보수파는 차베스에 적대적인 세력이었으며, 고용주 편에 선 베네수엘라노동자총연맹(CTV)도 종종 번번히 적대세력에 포함되었다. CTV는 2002년 쿠데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나는 2004년 4월에 쓴 기사에서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다음처럼 지적했다. 아메리카통신노동자(CWA)/신문동업조합의 로버트 콜리어의 보도에 따르면 CTV는 2001년 10월, 2002년 3-4월, 2002년 10월-2003년 2월에 벌어진 총파업/공장폐쇄를 수행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기업가연합회인 페데카마라스(FEDECAMARAS)와 협력했다. 콜리어는 CTV가 2002년 3월 쿠데타를 계획하고 조직하는데 직접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콜리어는 “한마디로 AFL-CIO는 반동적인 노동조합 설립을 지원했다.”고 결론을 맺었다. 활동가들은 AFL-CIO(특히 ACILS)와 CTV의 무수한 관계를 발견했다. AFL-CIO는 쿠데타 직전에 CTV의 관리들을 워싱턴으로 인도했다. 베네수엘라연대센터와 결합한 활동가들은 정보자유법을 활용해서 미국 민주주의기부재단(NED)에 제출된 문서와 보고서를 폭로했다. [NED는 미국 국무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기구며, 1983년 레이건 정권 당시에 창설됐다. CIA가 벌이는 정치인에 대한 은밀한 매수나 거짓 민간인조직 창설에 대한 비난이 일면서, CIA를 대체하여 정당들과 NGO 부문에서 중요한 정보기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역주] 자료들은 1997-2002년 동안 ACILS의 활동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어떤 문서들은 AFL-CIO가 페데카마라스가 주도하는 기업가조직과 카톨릭교회, CTV가 연합하고, 차베스 대통령에 대항하는 공동 프로그램을 계발하는 데 어떻게 개입했는지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ACILS가 NED에 제출하는 2002년 1/4분기 보고서를 보자. CTV와 페데카마라스는 카톨릭교회의 지원을 받으며 2002년 3월 5일 전국회의를 개최했다. 회의는 두 달에 걸친 두 조직간의 회의와 공동계획으로 이루어진 최고의 사건이었다.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위기의 심화를 막기 위한 ‘민족적 합의’(National Accord)를 도출한 공동활동은 두 조직을 차베스정부에 반대하는 기함 조직으로 확립할 것이다. 연대센터는 두 조직의 협력을 위한 의제를 토론하고 결정하는 초기 모임의 조직 단계를 지원했다. 3월 5일 전국회의는 대충자금(counterpart funds)으로 재정을 충당했다. 전국회의가 열린지 30일이 지나지 않아 CTV와 페데마라카스는 석유회사 경영진의 해고에 항의하는 전국적인 총파업에 돌입했고, 쿠데타가 벌어졌다. ACILS가 이런 과정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리려면, 우리는 ACILS의 대표자들이 CTV와 페데마라카스의 지도자와 정기적으로 만났다는 사실을 무시해야 한다. 또 1997-2001년 동안 NED가 ACILS와 CTV의 협력활동에 지원한 587,962 달러를 무시해야 한다 (2001년에도 153,777 달러를 지원했다). 2002년 12월에는 6개월 간 활동을 위해 11,6001 달러를 지원했다. 이러한 증거는 활동가들이 AFL-CIO의 대외공작에 대한 항의 행동을 자극했다. 2004년 캘리포니아 총회를 위한 결의안 검토위원회에서 “세계노동자의 단결과 신뢰의 건설”이란 이름의 결의안이 등장했다. 이 결의안은 1994년 7월 캘리포니아주 총회 대표단에서 통과되었다. AFL-CIO의 전국수준의 대외정책 지도자들이 자신의 가장 큰 주(州) 지부로부터 힐난을 받은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의 조합원은 전체 AFL-CIO의 1/6을 차지한다). 미 국무부와 노동외교자문위원회 AFL-CIO의 이러한 활동은 과거 방식의 활동을 포기하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매우 어두운 징조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은 노동제국주의로 복귀를 뜻하는가, 아니면 존 스위니가 새롭게 선택한 방침에서 벗어난 예외일 뿐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미 국무부의 노동외교[노동부문에 관한 외교] 자문위원회(ACLD)에 AFL-CIO가 참여하고 있는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웹사이트에 올라온 자료를 신중히 검토하면 몇몇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 ACLD는 미국 대외정책의 증진을 위해 국무부가 제안해 설립되었다. 클린턴정부 때 세워졌지만 부시정부로 이어지고 있다. 2. 존 스위니 의장과 린다 차베스 톰슨 사무총장, 윌리엄 루시 국제위원장, 바바라 쉐일러 국제국장과 필 피시맨 국제차장, 해리 캠버리스 연대센터 집행위원장 등 주요 지도부 모두가 ACLD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위원회는 과거 노동운동 최고위층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자격으로 참여한 사람도 포함하고 있다 (토마스 도나휴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오랫동안 NED 위원이었고 AFL-CIO의 재정책임자였으며 1995년 의장선거에서 스위니와 경쟁했다). 3. 이들 지도자들은 독립적인 행위자이며 특히 부시정부와 다른 접근법을 옹호했다. 4. 이러한 활동은 어떤 출판물로도 보고되지 않으며, 웹사이트에서도 볼 수 없다. ACLD는 1999년 5월 20일에 설립되었고, 설립헌장은 위원회의 목적을 분명히 보여준다. 자문위원회의 목적은 국무부가 관리하는 노동외교 프로그램에 관해 국무부 장관을 자문하는 것이다. 국무부는 위원회의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노동부와 긴밀히 협력할 것이다. 특히 위원회는 미국 노동정책의 목표와 이상을 증진하고자 하는 국제사회 내의 미국의 지도력을 보장하고자 한다. 누가 ACLD를 착안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국무부의 외교인권노동국의 에드문드 맥윌리암스 국제노동국장은 노동외교를 부활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미국 노동운동이 냉전시기 미국정부에게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동외교는 냉전 시기 동안 노동자의 권리와 민주사회를 증진하려는 미국 대외정책의 성공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였다. 당시 노동운동은 공산주의를 봉쇄하고 쳐부수는 데 중요한 정치적 지원이었다. 냉전 이후 정책 결정자들은 노동외교를 격하했다. 동시에 세계화가 노동자에게 새로운 도전을 낳으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싸움은 훨씬 더 중요해졌다. 활기찬 노동외교가 다시금 미국 대외정책의 소중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 그는 “국무부 노동국, 국제개발처(USAID), 해외공보처(USIA)가 수행한 활발한 노동외교가 미국 대외정책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다”고 지적하며, 공산주의와 투쟁하자는 정부의 요청에 노동조합이 “다시 집결했고” 서구 정부를 떠받치는 정치적 지지를 제공했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오늘날 노동은 냉전시기처럼 미국 대외정책의 공식화와 이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 외교정책이 증진하고자 하는 목표-민주주의, 인권, 정치적 안정, 사회경제적 발전-는 노동이 기꺼이 받아들이는 목표와 동일하다. 그는 세계화가 사회안전망이나 직업훈련 없이 구조조정을 시행하면서 세계 노동자에게 해악을 끼쳤으며, 이처럼 확대되는 문제를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고, 미국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관심사를 대외정책 결정가들에게 제출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며, 노동운동은 정부의 대외정책 과정에 재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미국과 노동의 동맹은 노동자의 권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히 경제발전이 아동노동, 강제노동, 여성과 약소자에 대한 차별적 고용에 기반을 두면 안 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노동외교의 부활은 냉전시기 동안 그랬던 것처럼 깨지기 쉬운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민주적 자유를 촉진해야 한다. 국무부 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맥윌리암스의 책이 출판되기 전에 이러한 주장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ACLD의 첫 번째 보고서, “괜찮은 노동의 세계: 새로운 세기를 향한 노동외교”를 받고 몇 개월 간 몇몇 권고 사항을 평가한 후 2000년 11월 8일 ACLD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효과적인 노동외교 없이 미국의 대외정책이 성공할 수 없다고 지난 4개월 간 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절대적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미국 정부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은 당신들이 의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것이 매우 중요한 협력관계라고 믿는다. 처음에는 ACLD는 단지 2년 동안 지속되리라 예상되었지만, 부시정부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001년 말(9.11 사건 이후)에 나온 보고서에서는 강조점이 이동한다. 보고서는 “노동외교의 역할과 중요성은 미국의 안보를 증진하고 이를 훼손하는 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조건과 싸우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보고서의 이름이 “노동외교: 민주주의와 안보에 복무하자”란 점에서 강조점의 변화를 더 잘 간파할 수 있다. 두 번째 보고서도 첫 번째처럼 노동권과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언급하지만 두 번째 보고서는 노동자의 권리가 미국의 안보를 향상시킬 때만 중요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대테러전쟁은 왜 노동외교의 기능이 중요한지 실례를 제공한다. 비참함, 소외, 절망으로 이끄는 노동조건은 테러리즘 세력이 모이는데 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노동조건의 개선은 테러리즘을 예방하고 대항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나아가 보고서는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것은 테러리즘과 싸우고 안보를 보장하려는 미국의 모든 노력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보고서는 “이슬람 국가의 노동조합”에 대해 다룬다. 보고서는 “이슬람의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감성, 정신, 직업을 통제하기 위한 정지적 대리자 역할을 하는 기구이자 도구이기 때문에 정치적 전장”이라고 강조한다. 정부가 지원하는 ACILS의 프로그램은 기업과 산업 수준에서 노동조합의 지도력을 고양하려는 정책이 이슬람 국가의 노동자에게 현대적인 경제적 사고와 정치적 가치를 심어주는 데 가장 유망한 접근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보고서는 미국의 안보에 대한 커다란 관심을 반복해서 표현하지만, 세계 노동자의 안녕과 호혜와 연대에 기반한 AFL-CIO의 활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이제 맥윌리암스의 주장의 모순을 살펴보자. 우리는 냉전시기에 AFL-CIO의 역할이 명백히 반동적이었다고 입증했지만, 어째서 맥윌리암스는 냉전시기의 정부와 노동조직의 긴밀한 관계를 찬양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관계를 재수립해서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목표를 공동으로 실현하자고 주장하는 것인가? 그러한 모순적인 주장의 의미를 풀기 위해서는 윌리암 로빈슨의 저서, 『과두제의 촉진: 세계화, 미국의 간섭과 헤게모니』를 살펴보아야 한다. 로빈슨은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대외정책의 초점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즉 초점이, 충성을 맹세한다면 어떤 독재자라도 지지하고 통제하는 것에서 (노동운동 지도자를 포함하여) 보수적인 정치인들의 지지를 구축하기 위해 “시민사회”에 적극 간섭하는 것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는 “민주주의의 촉진”이 핵심이다. 그러나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사실상 과두제의 촉진 또는 위로부터 엘리트가 주도하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과두제 민주주의는 엘리트가 제시하는 사람들 중에서 지도자를 뽑고, 그들이 제안하는 방식으로만 사회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특히 USIAD와 국무부가 주도하는) ‘민주주의건설 프로그램’을 통해 과두제 민주주의를 주입하고 있다. 그리고 국무부는 NED를 통해 연대센터를 포함한 미국의 주요조직과 세계 곳곳의 여러 조직에 자금을 지원한다. 이러한 이해는 민주주의가 미국 대외정책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라는 정부 보고서의 주장을 ‘해독’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그리고 노동지도자들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미국과 해외의 노동자를 공격하는 미국정부와 협력하고 있다. 노동 제국주의의 귀환과 우리의 선택 지금까지 명백히 드러난 결과를 볼 때 존 스위니가 이끄는 AFL-CIO의 대외정책이 ‘전통적인’ 노동 제국주의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AFL-CIO 최상층부가 노동 제국주의로 복귀하는 문제를 숨김없이 다루지 않는다면 AFL-CIO를 ‘개혁’하려는 최근 어떤 시도도 실패할 운명에 처할 게 분명하다. 이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며, 의미심장한 변화를 추구하려면 회피해서는 안 될 문제다. 미국과 세계 노동자의 안녕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 깊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1) [역주] 이 글은 『Monthly Review』 2005년 5월호에 실린 킴 사입스(Kim Scipes)의 「Labor Imperialism Redux?: The AFL-CIO's Foreign Policy Since 1995」를 요약, 번역한 글이다. 웹사이트 www.monthlyreview.org에서 영어 원문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전국작가노동조합(National Writers Union)에서 활동하며 퍼듀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본문으로
김 정 은 | 여성부장 성매매는 여성의 빈곤, 여성 노동의 현실, 성의 상품화, 가족 제도 하에서 억압당하는 여성의 섹슈얼리티 등 여성 일반이 겪는 문제들이 중첩되어 드러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지금껏 성매매는 이러한 사회구조적인 원인들이 제기되기보다는 그 원인이 '성을 파는' 여성들의 도덕적 문제로(또는 여성들의 성을 사는 남성들의 문제로) 치부되었고,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공격이 이뤄졌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성매매 여성들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사회적인 낙인과 편견으로 고통 받았다. 따라서 우리가 성매매 문제를 개인적인 행위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제기하는 것은 성매매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이 성매매 여성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성매매 문제 해결에 대한 관점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은 그녀들의 긍정적인 주체화, 조직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하는 자, 성노동자로서 그녀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글에서는 그간 남한사회 성매매 운동에서 펼쳐진 담론들을 살펴보며 성매매 여성들이 주체로 설정될 수 없었던 성매매 논의의 공백을 현재 성매매 '근절'의 근거로 제기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제기하고 있다. 성매매 여성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노동하는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다는 주장은 '성'노동자라는 차이를 주장하기 보다는 '노동자'로서의 공통의 권리를 긍정하자는 주장이다. 이 때 성매매가 개별행위자들의 행위이기에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금지주의의 관점을 폐기하고, 사회구조적인 지배, 착취, 폭력의 문제로 쟁점을 확대하고 성노동자들의 주체화와 조직화를 가능케 하기 위한 측면에서 비범죄주의는 필연적으로 제기된다. 성매매는 여성 일반의 문제이고, 여성 해방의 과정 속에서 폐절될 수 있다. 성매매 '근절'이라는 당위 선언이 아닌, 성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성매매 폐절을 위한 운동 속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실천이 되어야 한다. 성매매 논의에서 성노동자가 부재했던 이유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성매매방지법의 강력한 시행을 요구했던 여성운동 단체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했던 지점이 아마도 집결지 여성들의 시위를 접했을 때일 것이다. 성매매방지법 시행이 오히려 생존권을 억압한다고 말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여성운동계가 말하던 '피해' 여성으로서의 모습이 아니었다. 여성운동계는 '포주의 강요', '스톡홀름 신드롬'(인질이 장기간 범인에게 잡혀 있다보면 나중에는 범인에게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운운하며 그녀들의 발언 자체를 '사뿐히 즈려밟고' 초지일관 경찰의 강력한 단속을 촉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사회에서 성에 대한 페미니즘의 문제제기가 성적 억압의 한 형태인 성매매에 집중되었던 상황에서 성매매에 대한 분석이 성매매 여성의 주체성을 상정하지 못한 채 성매매 '근절'을 위한 법 개정 운동으로 나아갔던 논의의 과정들을 반영한다. 기생관광 반대 운동으로 대표되는 70~80년대 성매매 운동은 기독교 여성운동의 주도 하에 이뤄졌다. 이 기독교 여성운동은 정부의 기생관광 정책과 이를 통한 외화 획득, 향락 산업의 문제를 비판했다. 이들은 기생관광 반대의 근거로 '민족의 수치'를 언급하거나 성매매 여성의 인권 유린을 성의 상품화로 인한 '정조'유린의 문제로 제기했다. 당시 성매매 운동은 가부장제에서의 남녀 성별 권력관계, 성매매 문제와 여성 문제 전반과의 연관을 해명하지 못했던 한계를 보였다. 이러한 기독교 여성운동은 이후 쉼터와 쉼터의 연합체인 ('매매춘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절박한 여성'을 지원하고 성매매 여성의 인권문제를 이슈화했다. 이들은 성매매를 개인여성의 문제가 아닌 '매매구조'의 문제로 제기했다. 매춘여성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을 드러내 성매매 여성이 자발적으로 매춘을 하고 있다는 사회적 통념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탈매춘이 왜 불가능한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두었다. 성매매 현장에서의 인신매매, 구금, 강간, 포주의 착취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몰린 성매매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이 폭로되었다. 성매매 여성은 거대한 성적 착취 구조의 피해자로 인식되고 성매매 현장에서 '구출'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한계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착취당하고 소외당하는 인간'을 구원한다는 '종교적'인 맥락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운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여성학계가 성매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성매매 여성들의 문제는 단순한 성 문제가 아니라 여성노동, 가족 등의 문제가 얽힌 여성문제의 결정판이라는 인식 또한 가능하게 되었다.(민경자, 「한국 매춘여성운동사」, 『한국 여성인권운동사』, 한울아카데미, 1999) 그러나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성매매가 여성의 생존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는 점을 간과한 채 성매매 문제에 대한 과제로 성매매 '근절'을 고수하고, 성매매 반대의 근거는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라는 명제를 제출하였다. 이러한 입장을 바탕으로 성매매 근절을 요구하고 성매매방지법 개정운동을 펼쳐온 것이 현재까지 여성운동계의 성매매에 대한 입장이다. 여성운동계는 '자신의 쾌락과 이익을 위해 여성을 대상화하고 여성을 사물로 취급하는 성매매의 경험은 결국 여성을 대상화, 사물화하는 성폭력의 경험과 일치하고 남성에게 "포르노는 이론이고 강간은 실천"이듯, 성매매는 돈을 주고 행하는 "연습게임"이라며' 서구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을 논거로 삼아 성매매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원미혜,「우리는 왜 성매매를 반대해야 하는가」, 『섹슈얼리티 강의』, p180, 동녘, 1999) 남성일반이 여성일반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구조 아래서 성매매 여성은 성폭력의 피해자이며, 성매매에서 자발이나 동의는 불가능하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은 성매매방지법에서 성매매 여성을 동질적으로 피해자라 규정했던 지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성매매를 '선택'했고 성매매를 지속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요구와 행위는 그녀들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그녀들은 정신적 치료와 사회 '적응' 훈련이 필요한 더욱 약한 피해자가 되어갔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성매매에 대한 논의는 '왜 성을 파는 사람이 여성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지만 '왜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에 유입되고 남아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회구조적인 원인을 간과한 채 성매매 여성들의 주체성을 무시하고 억압해온 한계를 지닌다.1) 그리고 이러한 한계는 서구에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성에 대한 분석이 남성의 '폭력적인 성'으로 인한 여성의 성적 실천의 위험성을 부각하면서 여성들이 성적 실천에 대해 발언하지 않거나 그로부터 후퇴했던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의 실천 지점을 남기지 못했던 역사적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검토에서 알 수 있듯이 성매매 문제는 성매매 여성들의 문제로만 환원되고, 성매매 여성들은 '정조'를 훼손당한 자, 구원받아야 하는 자, 남성의 성적 착취의 희생자, 스스로 성매매를 '선택'했다고까지 말하도록 '세뇌'당한 성적 착취 구조의 피해자로서만 인식되었다. 성매매방지법 이후 생존권을 위해 성매매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 집결지 여성들의 존재는 지금까지의 논의에서는 다뤄질 수 없었던 공백이었던 것이다. 성매매 여성도 노동자다! 역설적이게도 지금껏 남한의 성매매 금지주의 법 아래에서 범죄자이자 '문란한' 여성이라 낙인찍히며 살아온 성매매 여성들이 집단적인 시위를 통해 자신들을 드러내고 권리를 요구한 것은 성매매방지법 제정과 시행의 후과다. 그녀들의 존재와 요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와 여성운동계에 대항하여 이들은 스스로를 조직화하여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노동에 의한 대개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으로서 노동자'2)라고 말하며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을 성'노동자'로 호명하는 것은 육체적인 거래라는 도덕적 기준을 고수하며 그녀들과의 차이를 강조하기보다는 인간이자 노동하는 자로서의 공통의 권리를 긍정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녀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그녀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그에 대해 발언할 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성매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인지 그 쉽지 않은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리자가 아닌 주체로서 사회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된 그녀들의 삶을 가시화하는 것은 그녀들을 억압했던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분쇄하는 운동의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하자고 했을 때, "성노동이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인가?", "성매매를 노동으로 긍정함으로써 성매매를 지속시키자는 것 아닌가?"하는 물음들이 제기된다. 과연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칭하면 성매매가 확대될 것인가. 그렇다면 그동안 성매매가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라고 명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성매매가 노동이냐 아니냐의 성격 규정은 성매매 감소· 확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성매매를 발생시키는 사회구조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그를 제거하는 운동의 과정을 통해서만 성매매는 폐절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자신의 임노동을 팔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 그리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있다. 이 때 성매매가 진정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 아닌 것은 현재 자본주의에서 존재하는 대다수의 노동이 그러한 '노동'이 아닌 것과 같다. 자본주의에서 임노동은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형태를 띠기 때문에 노동자의 집단적인 권력을 통해 착취에 맞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임노동 관계를 폐절하는 운동의 일환이 된다. 그러나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임노동 관계를 폐절하는 것이 즉각적으로 그러한 임노동 관계에서 철수하라는 주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같은 이유에서 집결지 여성들도 생존을 위해 자신들의 일터에서 철수할 수 없음을 주장했다. 여성의 의제로서 가사노동 문제를 제기했을 때도 여성들이 이를 전담하자거나 가사노동이 이뤄지는 공간인 가족을 폐쇄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가사노동이 성별분업이라는 논리로 여성들에게 전담되고 여성이 수행하는 노동을 평가절하했던 측면을 비판하고 가사노동의 전화를 제기하고자 했던 측면을 되새김해야 할 것이다. 성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장 '폐쇄'가 아니라 자신들이 착취당하지 않고 노동할 수 있는 집단적인 권력을 형성하는 권리 쟁취의 과정이다. 현재 성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착취당하며 건강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성노동자들은 남들 다 자는 시간에 노동하며, 노동시간도 무척 길고, 노동과정에서 원치 않는 임신, 그에 따른 낙태, 성병이나 AIDS와 같은 질병에 노출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성노동자 자신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매매를 통해 생존을 유지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성노동이 자아실현을 위한 '노동'이 될 수 없으며 종국에는 폐절되어야 한다는 지향은 명확하다. 성매매는 여성의 육체와 성적 이미지가 상품 가치로 거래되는 성의 상품화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매매만을 '근절'함으로써 성의 상품화 일반을 저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여성들이 자신의 육체와 성적 이미지를 통제할 수 있는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인식하고 요구하는 운동의 과정 속에서 그 한 형태인 성매매 또한 폐절될 수 있을 것이다. 성매매를 비범죄화하자! 성노동자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고 권리 쟁취를 위한 조직화를 가능케 하기 위해 성매매의 비범죄화는 필연적인 요구이다. 당연히 현행 범죄자의 신분이 성노동자들의 주체화와 조직화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금지주의가 성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권리마저 억압해왔다는 비판적 평가와 맞닿는 바이기도 하다. 금지주의는 성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온갖 폭력에 노출시켰다. 금지주의는 성매매의 음성화를 동반하는데 음성화는 법의 테두리 밖에서 성매매를 양산하는 범죄 조직, 그와 결탁한 경찰을 만들어냄으로서 음성적 성매매를 가능케 하는 구조를 양산한다. 음성화는 단지 성매매 업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단속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노동자들의 인권의 사각지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비판되어야 한다. 포주와 남성 구매자들은 성노동자들이 범죄자라는 신분을 악용하여 그녀에게 폭력과 착취를 휘둘렀지만 성노동자들은 처벌이 두려워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할 수 없었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남성들에게 성매매가 용인되는 것과는 별개로 성노동자를 도덕적으로 타락한 이로 보고 손가락질하는 '창녀' 낙인은 성노동자를 가정과 공동체로부터 추방하여 더욱 고립시켰다. 고립된 여성들은 여기저기 팔려다니고, 지속적으로 살인이나 강간 같은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으며, 자신들의 아이를 양육할 권리마저 의심받았다.(김정은, 「성매매방지법과 성매매를 둘러싼 쟁점」, 『월간 사회진보연대』, 2004년 11월호, 통권 50호) 그러나 비범죄주의가 성매매를 둘러싼 모든 법률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성매매 자체를 규제하지도, 성매매를 합법적으로 인정하지도 않는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의 비범죄주의 국가에서 매춘을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 상업적 목적을 위한 아동과 성인에 대한 성적 착취 행위에 가담한 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두는 등의 적극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법률의 개입이 필요한 지점은 성매매를 금지하는 지점이 아니라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지점이어야 한다. 포주로부터 부당하게 임금을 착취당하지 않을 권리, 남성 구매자의 폭력과 강간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남성 구매자를 처벌할 권리, 평생 직업도 아닌 성매매를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권리,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신매매 되지 않을 권리 등은 성매매를 금지하는 형법이 아닌 노동법이나 상법, 민법과 같은 여타의 법률로 보호할 수 있다. 현재 성매매를 둘러싼 각 국의 입법 정책을 금지주의, 합법적 규제주의, 비범죄주의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비범죄주의 또한 국가가 성매매를 관리· 통제하는 법률의 일환이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비범죄주의는 19세기 유럽의 합법적 규제주의 정책이 공창이나 등록제로 성판매 여성을 '통제'했던 것에 반대하여 폐창운동이 전개되면서 모색된 하나의 시도이자 전략이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찾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주장은 금지주의가 아닌 나머지, 합법적 규제주의나 비범죄주의에서 하나를 선택하자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느 사회에서 어떤 정책을 행하든 간에 성매매를 완벽히 근절하거나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매매 관련 법률안의 의미를 상대화하고 사회적으로 만연된 성매매의 형태를 억제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을 최소화하는 데 성매매 법률안의 의미를 둔다면, 우리는 성매매 정책을 사고함에 있어 어떤 법률안의 형태가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한 지점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매매가 도덕적이거나 법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개별 행위자들의 행위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지배, 착취, 폭력의 문제로 쟁점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성매매 수요-공급에서 성 구매자와 알선자, 성매매 여성을 성매매 성립의 원인으로 보고 이들을 처벌해야 성매매가 감소한다는 금지주의의 관점을 폐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범죄주의를 통해 우리는 성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면서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사회구조적인 원인들을 인식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김정은·호성희, 「성매매, 새로운 담론을 위해(2)-각 국의 성매매 법률안 고찰」, 『월간 사회진보연대』, 2005년 3· 4월호 통권 53호) 한국 사회에서 서울여성영화제라는 형식을 빌어 공식적으로 성노동 담론이 제기되기도 하고, 아직은 적지만 여러 여성단체나 조직들이 성노동자를 인정하고 그녀들과의 연대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성노동자'만'을 비범죄화하고 남성 구매자는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제기되고 있다. 『여/성이론』에서 고정갑희씨는 성매매종사여성들의 노동을 성노동으로 칭하고 당연히 그녀들을 비범죄화해야 하지만 '진짜 범죄자는 가부장적 구조를 유지해 온 남성 집단이므로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남성구매자를 처벌하게 되면 여성들이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생존을 누군가가 책임져 줘야 하고 그래서 구출과 구제라는 용어가 나오게 된다, 이런 딜레마는 있지만...'(고정갑희, 〈성매매방지법과 여성주의자들의 방향감각〉,《여/성이론》통권 12호)이라고도 말한다. 그녀는 이런 '딜레마'를 감수하면서까지 남성 구매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성노동자만을 비범죄화하여 처벌을 면하는 것과 여성운동진영이 모든 성매매 여성은 '피해자'이기 때문에 처벌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 다른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가부장적 구조를 유지해온' 남성 집단을 처벌하면 가부장적 구조가 폐지될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처벌되어야 가부장적 구조가 폐지될 수 있을까. 남성들이 처벌되기만 하면 여성들의 성적 억압은 사라지는가. 여성의 성적 억압과 착취라는 가부장적 구조는 남성 일반이 유지해온 것이 아니라 가족 제도 하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욕 추구가 다른 방식으로 조직되었던 방식에 그 원인이 있다. 가족 제도 하에서 여성의 성은 재생산을 위한 기능만을 부여받았으며, 여성의 성욕은 억압되었다. 성매매에서 드러나는 ('성매매 여성'이 아닌) 여성 '일반'의 성적 억압과 착취의 구조는 가족 제도 하에서 성욕이 부정되고 억압되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여성의 억압과 종속에 기초한 가족 제도의 전화 없이는 여성 '일반'의 성적 억압은 소멸되지 않는다. 성노동자와 연대를 실천하자 박정희 군사정부가 '사회악'을 근절한다는 차원에서 1961년 제정된 윤락행위등방지법을 제정했듯, 2004년 제정된 성매매방지법도 '국가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것이지, 진정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함은 아니었다.(김정은, 「성매매방지법과 성매매를 둘러싼 쟁점」, 『월간 사회진보연대』, 2004년 11월호, 통권 50호) 도시개발사업을 통해 집결지를 폐쇄하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집결지를 중점적으로 단속하여 눈앞에서 없애버리겠다는 발상을 드러낸다. 정부는 성노동자들이 외치는 생존권 보장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철거 계획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여성부는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위한 예산을 확충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직 현실적인 수준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그러나 턱없이 적은 자활생계비는 탈성매매라는 '사회복귀'를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되면서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문제는 가벼운 문제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매매를 병행하는 여성에게는 집결지 여성들의 자활생계비를 지원하면 안 된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되고,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을 지원하는 문제가 법률상의 문구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는 탁상공론이 제기되는 실정은 성매매방지법이 결코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성노동자들과 그녀들의 생존을 건 요구를 법 논리라는 빌미로 억압하고 방관하는 정부를 규탄한다. 우리는 성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에 함께 할 것이다. 여성운동계도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성노동자와 연대해야 한다. 우리가 연대해야 할 주체이자, 권리의 주체로서 성노동자를 인정하고 연대를 모색하는 길은 여성 해방 운동에 새로운 지평이 될 것이다. 1)1960년대 아메리카 핵가족의 위기와 함께 출현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성에 대한 논의는 1990년대 여성운동계에 수입되어 현재까지 여성운동계의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하는 성매매 근절운동과 성폭력 운동에 대한 평가는 현실 운동에 대한 평가를 제기하는 바, 이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오현미, 「2세대 페미니즘」,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 가족과 성욕을 둘러싼 쟁점들』, 공감, 2003을 참고할 것. 본문으로 2)2005년 4월 5일, <성노동운동민중연대>에서 낸 「여성계는 반성하고 진보진영은 성노동자들의 죽음을 외면 말라!」는 제목의 성명서의 일부에서 발췌했다.(www.k-hnews.com) 이 단체의 조직 구성이나 성격이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으나, 스스로 성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고자 한다. 본문으로
김 정 은 | 여성부장 성매매는 여성의 빈곤, 여성 노동의 현실, 성의 상품화, 가족 제도 하에서 억압당하는 여성의 섹슈얼리티 등 여성 일반이 겪는 문제들이 중첩되어 드러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지금껏 성매매는 이러한 사회구조적인 원인들이 제기되기보다는 그 원인이 '성을 파는' 여성들의 도덕적 문제로(또는 여성들의 성을 사는 남성들의 문제로) 치부되었고,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공격이 이뤄졌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성매매 여성들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사회적인 낙인과 편견으로 고통 받았다. 따라서 우리가 성매매 문제를 개인적인 행위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제기하는 것은 성매매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이 성매매 여성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성매매 문제 해결에 대한 관점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은 그녀들의 긍정적인 주체화, 조직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하는 자, 성노동자로서 그녀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글에서는 그간 남한사회 성매매 운동에서 펼쳐진 담론들을 살펴보며 성매매 여성들이 주체로 설정될 수 없었던 성매매 논의의 공백을 현재 성매매 '근절'의 근거로 제기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제기하고 있다. 성매매 여성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노동하는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다는 주장은 '성'노동자라는 차이를 주장하기 보다는 '노동자'로서의 공통의 권리를 긍정하자는 주장이다. 이 때 성매매가 개별행위자들의 행위이기에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금지주의의 관점을 폐기하고, 사회구조적인 지배, 착취, 폭력의 문제로 쟁점을 확대하고 성노동자들의 주체화와 조직화를 가능케 하기 위한 측면에서 비범죄주의는 필연적으로 제기된다. 성매매는 여성 일반의 문제이고, 여성 해방의 과정 속에서 폐절될 수 있다. 성매매 '근절'이라는 당위 선언이 아닌, 성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성매매 폐절을 위한 운동 속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실천이 되어야 한다. 성매매 논의에서 성노동자가 부재했던 이유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성매매방지법의 강력한 시행을 요구했던 여성운동 단체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했던 지점이 아마도 집결지 여성들의 시위를 접했을 때일 것이다. 성매매방지법 시행이 오히려 생존권을 억압한다고 말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여성운동계가 말하던 '피해' 여성으로서의 모습이 아니었다. 여성운동계는 '포주의 강요', '스톡홀름 신드롬'(인질이 장기간 범인에게 잡혀 있다보면 나중에는 범인에게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운운하며 그녀들의 발언 자체를 '사뿐히 즈려밟고' 초지일관 경찰의 강력한 단속을 촉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사회에서 성에 대한 페미니즘의 문제제기가 성적 억압의 한 형태인 성매매에 집중되었던 상황에서 성매매에 대한 분석이 성매매 여성의 주체성을 상정하지 못한 채 성매매 '근절'을 위한 법 개정 운동으로 나아갔던 논의의 과정들을 반영한다. 기생관광 반대 운동으로 대표되는 70~80년대 성매매 운동은 기독교 여성운동의 주도 하에 이뤄졌다. 이 기독교 여성운동은 정부의 기생관광 정책과 이를 통한 외화 획득, 향락 산업의 문제를 비판했다. 이들은 기생관광 반대의 근거로 '민족의 수치'를 언급하거나 성매매 여성의 인권 유린을 성의 상품화로 인한 '정조'유린의 문제로 제기했다. 당시 성매매 운동은 가부장제에서의 남녀 성별 권력관계, 성매매 문제와 여성 문제 전반과의 연관을 해명하지 못했던 한계를 보였다. 이러한 기독교 여성운동은 이후 쉼터와 쉼터의 연합체인 ('매매춘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절박한 여성'을 지원하고 성매매 여성의 인권문제를 이슈화했다. 이들은 성매매를 개인여성의 문제가 아닌 '매매구조'의 문제로 제기했다. 매춘여성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을 드러내 성매매 여성이 자발적으로 매춘을 하고 있다는 사회적 통념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탈매춘이 왜 불가능한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두었다. 성매매 현장에서의 인신매매, 구금, 강간, 포주의 착취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몰린 성매매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이 폭로되었다. 성매매 여성은 거대한 성적 착취 구조의 피해자로 인식되고 성매매 현장에서 '구출'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한계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착취당하고 소외당하는 인간'을 구원한다는 '종교적'인 맥락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운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여성학계가 성매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성매매 여성들의 문제는 단순한 성 문제가 아니라 여성노동, 가족 등의 문제가 얽힌 여성문제의 결정판이라는 인식 또한 가능하게 되었다.(민경자, 「한국 매춘여성운동사」, 『한국 여성인권운동사』, 한울아카데미, 1999) 그러나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성매매가 여성의 생존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는 점을 간과한 채 성매매 문제에 대한 과제로 성매매 '근절'을 고수하고, 성매매 반대의 근거는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라는 명제를 제출하였다. 이러한 입장을 바탕으로 성매매 근절을 요구하고 성매매방지법 개정운동을 펼쳐온 것이 현재까지 여성운동계의 성매매에 대한 입장이다. 여성운동계는 '자신의 쾌락과 이익을 위해 여성을 대상화하고 여성을 사물로 취급하는 성매매의 경험은 결국 여성을 대상화, 사물화하는 성폭력의 경험과 일치하고 남성에게 "포르노는 이론이고 강간은 실천"이듯, 성매매는 돈을 주고 행하는 "연습게임"이라며' 서구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을 논거로 삼아 성매매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다.(원미혜,「우리는 왜 성매매를 반대해야 하는가」, 『섹슈얼리티 강의』, p180, 동녘, 1999) 남성일반이 여성일반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구조 아래서 성매매 여성은 성폭력의 피해자이며, 성매매에서 자발이나 동의는 불가능하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은 성매매방지법에서 성매매 여성을 동질적으로 피해자라 규정했던 지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성매매를 '선택'했고 성매매를 지속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요구와 행위는 그녀들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그녀들은 정신적 치료와 사회 '적응' 훈련이 필요한 더욱 약한 피해자가 되어갔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성매매에 대한 논의는 '왜 성을 파는 사람이 여성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지만 '왜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에 유입되고 남아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회구조적인 원인을 간과한 채 성매매 여성들의 주체성을 무시하고 억압해온 한계를 지닌다.1) 그리고 이러한 한계는 서구에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성에 대한 분석이 남성의 '폭력적인 성'으로 인한 여성의 성적 실천의 위험성을 부각하면서 여성들이 성적 실천에 대해 발언하지 않거나 그로부터 후퇴했던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의 실천 지점을 남기지 못했던 역사적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검토에서 알 수 있듯이 성매매 문제는 성매매 여성들의 문제로만 환원되고, 성매매 여성들은 '정조'를 훼손당한 자, 구원받아야 하는 자, 남성의 성적 착취의 희생자, 스스로 성매매를 '선택'했다고까지 말하도록 '세뇌'당한 성적 착취 구조의 피해자로서만 인식되었다. 성매매방지법 이후 생존권을 위해 성매매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 집결지 여성들의 존재는 지금까지의 논의에서는 다뤄질 수 없었던 공백이었던 것이다. 성매매 여성도 노동자다! 역설적이게도 지금껏 남한의 성매매 금지주의 법 아래에서 범죄자이자 '문란한' 여성이라 낙인찍히며 살아온 성매매 여성들이 집단적인 시위를 통해 자신들을 드러내고 권리를 요구한 것은 성매매방지법 제정과 시행의 후과다. 그녀들의 존재와 요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와 여성운동계에 대항하여 이들은 스스로를 조직화하여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노동에 의한 대개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으로서 노동자'2)라고 말하며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을 성'노동자'로 호명하는 것은 육체적인 거래라는 도덕적 기준을 고수하며 그녀들과의 차이를 강조하기보다는 인간이자 노동하는 자로서의 공통의 권리를 긍정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녀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그녀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그에 대해 발언할 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성매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인지 그 쉽지 않은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리자가 아닌 주체로서 사회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된 그녀들의 삶을 가시화하는 것은 그녀들을 억압했던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분쇄하는 운동의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하자고 했을 때, "성노동이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인가?", "성매매를 노동으로 긍정함으로써 성매매를 지속시키자는 것 아닌가?"하는 물음들이 제기된다. 과연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칭하면 성매매가 확대될 것인가. 그렇다면 그동안 성매매가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라고 명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성매매가 노동이냐 아니냐의 성격 규정은 성매매 감소· 확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성매매를 발생시키는 사회구조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그를 제거하는 운동의 과정을 통해서만 성매매는 폐절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자신의 임노동을 팔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 그리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있다. 이 때 성매매가 진정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 아닌 것은 현재 자본주의에서 존재하는 대다수의 노동이 그러한 '노동'이 아닌 것과 같다. 자본주의에서 임노동은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형태를 띠기 때문에 노동자의 집단적인 권력을 통해 착취에 맞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임노동 관계를 폐절하는 운동의 일환이 된다. 그러나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임노동 관계를 폐절하는 것이 즉각적으로 그러한 임노동 관계에서 철수하라는 주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같은 이유에서 집결지 여성들도 생존을 위해 자신들의 일터에서 철수할 수 없음을 주장했다. 여성의 의제로서 가사노동 문제를 제기했을 때도 여성들이 이를 전담하자거나 가사노동이 이뤄지는 공간인 가족을 폐쇄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가사노동이 성별분업이라는 논리로 여성들에게 전담되고 여성이 수행하는 노동을 평가절하했던 측면을 비판하고 가사노동의 전화를 제기하고자 했던 측면을 되새김해야 할 것이다. 성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장 '폐쇄'가 아니라 자신들이 착취당하지 않고 노동할 수 있는 집단적인 권력을 형성하는 권리 쟁취의 과정이다. 현재 성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착취당하며 건강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성노동자들은 남들 다 자는 시간에 노동하며, 노동시간도 무척 길고, 노동과정에서 원치 않는 임신, 그에 따른 낙태, 성병이나 AIDS와 같은 질병에 노출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성노동자 자신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매매를 통해 생존을 유지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성노동이 자아실현을 위한 '노동'이 될 수 없으며 종국에는 폐절되어야 한다는 지향은 명확하다. 성매매는 여성의 육체와 성적 이미지가 상품 가치로 거래되는 성의 상품화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매매만을 '근절'함으로써 성의 상품화 일반을 저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여성들이 자신의 육체와 성적 이미지를 통제할 수 있는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인식하고 요구하는 운동의 과정 속에서 그 한 형태인 성매매 또한 폐절될 수 있을 것이다. 성매매를 비범죄화하자! 성노동자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고 권리 쟁취를 위한 조직화를 가능케 하기 위해 성매매의 비범죄화는 필연적인 요구이다. 당연히 현행 범죄자의 신분이 성노동자들의 주체화와 조직화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금지주의가 성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권리마저 억압해왔다는 비판적 평가와 맞닿는 바이기도 하다. 금지주의는 성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온갖 폭력에 노출시켰다. 금지주의는 성매매의 음성화를 동반하는데 음성화는 법의 테두리 밖에서 성매매를 양산하는 범죄 조직, 그와 결탁한 경찰을 만들어냄으로서 음성적 성매매를 가능케 하는 구조를 양산한다. 음성화는 단지 성매매 업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단속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노동자들의 인권의 사각지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비판되어야 한다. 포주와 남성 구매자들은 성노동자들이 범죄자라는 신분을 악용하여 그녀에게 폭력과 착취를 휘둘렀지만 성노동자들은 처벌이 두려워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할 수 없었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남성들에게 성매매가 용인되는 것과는 별개로 성노동자를 도덕적으로 타락한 이로 보고 손가락질하는 '창녀' 낙인은 성노동자를 가정과 공동체로부터 추방하여 더욱 고립시켰다. 고립된 여성들은 여기저기 팔려다니고, 지속적으로 살인이나 강간 같은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으며, 자신들의 아이를 양육할 권리마저 의심받았다.(김정은, 「성매매방지법과 성매매를 둘러싼 쟁점」, 『월간 사회진보연대』, 2004년 11월호, 통권 50호) 그러나 비범죄주의가 성매매를 둘러싼 모든 법률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성매매 자체를 규제하지도, 성매매를 합법적으로 인정하지도 않는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의 비범죄주의 국가에서 매춘을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 상업적 목적을 위한 아동과 성인에 대한 성적 착취 행위에 가담한 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두는 등의 적극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법률의 개입이 필요한 지점은 성매매를 금지하는 지점이 아니라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지점이어야 한다. 포주로부터 부당하게 임금을 착취당하지 않을 권리, 남성 구매자의 폭력과 강간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남성 구매자를 처벌할 권리, 평생 직업도 아닌 성매매를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권리,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신매매 되지 않을 권리 등은 성매매를 금지하는 형법이 아닌 노동법이나 상법, 민법과 같은 여타의 법률로 보호할 수 있다. 현재 성매매를 둘러싼 각 국의 입법 정책을 금지주의, 합법적 규제주의, 비범죄주의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비범죄주의 또한 국가가 성매매를 관리· 통제하는 법률의 일환이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비범죄주의는 19세기 유럽의 합법적 규제주의 정책이 공창이나 등록제로 성판매 여성을 '통제'했던 것에 반대하여 폐창운동이 전개되면서 모색된 하나의 시도이자 전략이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찾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주장은 금지주의가 아닌 나머지, 합법적 규제주의나 비범죄주의에서 하나를 선택하자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느 사회에서 어떤 정책을 행하든 간에 성매매를 완벽히 근절하거나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매매 관련 법률안의 의미를 상대화하고 사회적으로 만연된 성매매의 형태를 억제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을 최소화하는 데 성매매 법률안의 의미를 둔다면, 우리는 성매매 정책을 사고함에 있어 어떤 법률안의 형태가 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한 지점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매매가 도덕적이거나 법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개별 행위자들의 행위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지배, 착취, 폭력의 문제로 쟁점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성매매 수요-공급에서 성 구매자와 알선자, 성매매 여성을 성매매 성립의 원인으로 보고 이들을 처벌해야 성매매가 감소한다는 금지주의의 관점을 폐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범죄주의를 통해 우리는 성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면서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사회구조적인 원인들을 인식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김정은·호성희, 「성매매, 새로운 담론을 위해(2)-각 국의 성매매 법률안 고찰」, 『월간 사회진보연대』, 2005년 3· 4월호 통권 53호) 한국 사회에서 서울여성영화제라는 형식을 빌어 공식적으로 성노동 담론이 제기되기도 하고, 아직은 적지만 여러 여성단체나 조직들이 성노동자를 인정하고 그녀들과의 연대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성노동자'만'을 비범죄화하고 남성 구매자는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제기되고 있다. 『여/성이론』에서 고정갑희씨는 성매매종사여성들의 노동을 성노동으로 칭하고 당연히 그녀들을 비범죄화해야 하지만 '진짜 범죄자는 가부장적 구조를 유지해 온 남성 집단이므로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남성구매자를 처벌하게 되면 여성들이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생존을 누군가가 책임져 줘야 하고 그래서 구출과 구제라는 용어가 나오게 된다, 이런 딜레마는 있지만...'(고정갑희, 〈성매매방지법과 여성주의자들의 방향감각〉,《여/성이론》통권 12호)이라고도 말한다. 그녀는 이런 '딜레마'를 감수하면서까지 남성 구매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성노동자만을 비범죄화하여 처벌을 면하는 것과 여성운동진영이 모든 성매매 여성은 '피해자'이기 때문에 처벌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 다른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가부장적 구조를 유지해온' 남성 집단을 처벌하면 가부장적 구조가 폐지될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처벌되어야 가부장적 구조가 폐지될 수 있을까. 남성들이 처벌되기만 하면 여성들의 성적 억압은 사라지는가. 여성의 성적 억압과 착취라는 가부장적 구조는 남성 일반이 유지해온 것이 아니라 가족 제도 하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욕 추구가 다른 방식으로 조직되었던 방식에 그 원인이 있다. 가족 제도 하에서 여성의 성은 재생산을 위한 기능만을 부여받았으며, 여성의 성욕은 억압되었다. 성매매에서 드러나는 ('성매매 여성'이 아닌) 여성 '일반'의 성적 억압과 착취의 구조는 가족 제도 하에서 성욕이 부정되고 억압되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여성의 억압과 종속에 기초한 가족 제도의 전화 없이는 여성 '일반'의 성적 억압은 소멸되지 않는다. 성노동자와 연대를 실천하자 박정희 군사정부가 '사회악'을 근절한다는 차원에서 1961년 제정된 윤락행위등방지법을 제정했듯, 2004년 제정된 성매매방지법도 '국가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것이지, 진정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함은 아니었다.(김정은, 「성매매방지법과 성매매를 둘러싼 쟁점」, 『월간 사회진보연대』, 2004년 11월호, 통권 50호) 도시개발사업을 통해 집결지를 폐쇄하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집결지를 중점적으로 단속하여 눈앞에서 없애버리겠다는 발상을 드러낸다. 정부는 성노동자들이 외치는 생존권 보장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철거 계획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여성부는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위한 예산을 확충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직 현실적인 수준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그러나 턱없이 적은 자활생계비는 탈성매매라는 '사회복귀'를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되면서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문제는 가벼운 문제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매매를 병행하는 여성에게는 집결지 여성들의 자활생계비를 지원하면 안 된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되고,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을 지원하는 문제가 법률상의 문구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는 탁상공론이 제기되는 실정은 성매매방지법이 결코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성노동자들과 그녀들의 생존을 건 요구를 법 논리라는 빌미로 억압하고 방관하는 정부를 규탄한다. 우리는 성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에 함께 할 것이다. 여성운동계도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성노동자와 연대해야 한다. 우리가 연대해야 할 주체이자, 권리의 주체로서 성노동자를 인정하고 연대를 모색하는 길은 여성 해방 운동에 새로운 지평이 될 것이다. 1)1960년대 아메리카 핵가족의 위기와 함께 출현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성에 대한 논의는 1990년대 여성운동계에 수입되어 현재까지 여성운동계의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하는 성매매 근절운동과 성폭력 운동에 대한 평가는 현실 운동에 대한 평가를 제기하는 바, 이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오현미, 「2세대 페미니즘」,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 가족과 성욕을 둘러싼 쟁점들』, 공감, 2003을 참고할 것. 본문으로 2)2005년 4월 5일, <성노동운동민중연대>에서 낸 「여성계는 반성하고 진보진영은 성노동자들의 죽음을 외면 말라!」는 제목의 성명서의 일부에서 발췌했다.(www.k-hnews.com) 이 단체의 조직 구성이나 성격이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으나, 스스로 성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고자 한다. 본문으로
울산 건설플랜트 노조 파업투쟁 64일차1) 유 기 수 |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사무처장 1년 전 엘지칼텍스 노조파업에 대해 이 땅의 언론과 재벌 그리고 정권까지 합세해 온통 난리를 쳤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귀족 노동자라고 표현하면서 저소득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분노를 십분 이용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엘지칼텍스노조가 주장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오간데 없이 그들은 극도의 집단이기주로 매도하면서 파업을 불법으로 주장하며 탄압하였다. 현재 파업60일이 지난 울산지역건설 플랜트 노동조합의 요구조건은 ‘화장실을 지어 달라’, ‘식당을 지어달라’, 그리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다. 이 땅의 기득권세력은 울산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번에는 귀족노동자대신 폭도로 매도하고 있다. 무식한 건설 노동자들이 정상적인 노조활동이 아니라 불순세력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고 점차 폭력집단화 하고 있다고 연일 공격한다. 그들은 처지가 어려운 노동자는 보호하고 고소득층 노동자들은 공격하면서 상대적인 일말의 도덕적 기준이 있는 것처럼 포장 했을 뿐 정권과 자본의 속셈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정권과 자본은 건설노동자들의 소, 돼지 같은 현장노동조건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노예처럼 일만하던 건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쳐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노조파괴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정권은 파업에 돌입하자마자 5,000여명의 경찰을 공장에 배치하고 당일부터 불법대체근로를 할 수 있도록 사측을 도와주었다. 반면에 노조에게는 하루에 한 번씩 출두요구서를 발송하는 친절을(?) 베풀며 파업5일만에 지도부 10명을 수배조치 하였다. 현재까지 이 투쟁으로 22명의 구속자가 발생하였다. 핵심지도부는 전부 구속 수배조치 된 것이다. 4월 8일에는 825명을 전원 연행하는 초유의 탄압이 자행 되었다. 가만히 있는 조합원은 물론 집에 돌아가는 조합원까지, 아니 청사에서 나오면 연행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번복하며 울산지역건설플랜트노조 조합원들을 강제 폭력 연행 하였다. 정권과 자본은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 그 많은 조합원들을 연행 하는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노동3권이 가장 열악한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우선 적용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고 그럴듯한 사탕발림을 하면서 오히려 비정규직의 노동조합활동을 전면에 나서서 탄압하고 있다. 울산 건설 노동자에 대한 탄압은 노무현정권의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정규직노동운동을 시의적절한 이데올로기 공세와 비리수사, 그리고 노동 분열 정책으로 약화시켰다고 자평한 정권은 이제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비정규직투쟁을 초기부터 강공책으로 짓밟고 있다. 전국곳곳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투쟁들을 모아 노무현 정권과 분명한 전선을 쳐야 한다. 법 이전에 현장의 힘이 우선이라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파업기간 중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60이 다된 조합원이 언론에 폭도로 매도당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눈물이 말라 감정까지 메말라 가는 건 아닐까. 자그마한 절망들이 모여 죽음의 강으로 모이고 있는 느낌이다. 박해욱 울산지역건설플랜트 노조 위원장의 “우리는 살기 위해서 싸운다”라는 말이 가슴을 친다. 휴게실, 탈의실을 지어달라는 소박한 요구를 가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업에 나선 천여 명의 노동자들을 폭도라고 한다면 정부는 이 땅에서 노동조합 활동자체를 아예 불허하라.PSSP 1)이 글은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협상이 타결된 5월 27일 이전에 작성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울산 건설플랜트 노조 파업투쟁 64일차1) 유 기 수 |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사무처장 1년 전 엘지칼텍스 노조파업에 대해 이 땅의 언론과 재벌 그리고 정권까지 합세해 온통 난리를 쳤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귀족 노동자라고 표현하면서 저소득 노동자들의 상대적인 분노를 십분 이용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엘지칼텍스노조가 주장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오간데 없이 그들은 극도의 집단이기주로 매도하면서 파업을 불법으로 주장하며 탄압하였다. 현재 파업60일이 지난 울산지역건설 플랜트 노동조합의 요구조건은 ‘화장실을 지어 달라’, ‘식당을 지어달라’, 그리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다. 이 땅의 기득권세력은 울산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번에는 귀족노동자대신 폭도로 매도하고 있다. 무식한 건설 노동자들이 정상적인 노조활동이 아니라 불순세력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고 점차 폭력집단화 하고 있다고 연일 공격한다. 그들은 처지가 어려운 노동자는 보호하고 고소득층 노동자들은 공격하면서 상대적인 일말의 도덕적 기준이 있는 것처럼 포장 했을 뿐 정권과 자본의 속셈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정권과 자본은 건설노동자들의 소, 돼지 같은 현장노동조건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노예처럼 일만하던 건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쳐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노조파괴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정권은 파업에 돌입하자마자 5,000여명의 경찰을 공장에 배치하고 당일부터 불법대체근로를 할 수 있도록 사측을 도와주었다. 반면에 노조에게는 하루에 한 번씩 출두요구서를 발송하는 친절을(?) 베풀며 파업5일만에 지도부 10명을 수배조치 하였다. 현재까지 이 투쟁으로 22명의 구속자가 발생하였다. 핵심지도부는 전부 구속 수배조치 된 것이다. 4월 8일에는 825명을 전원 연행하는 초유의 탄압이 자행 되었다. 가만히 있는 조합원은 물론 집에 돌아가는 조합원까지, 아니 청사에서 나오면 연행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번복하며 울산지역건설플랜트노조 조합원들을 강제 폭력 연행 하였다. 정권과 자본은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 그 많은 조합원들을 연행 하는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노동3권이 가장 열악한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우선 적용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고 그럴듯한 사탕발림을 하면서 오히려 비정규직의 노동조합활동을 전면에 나서서 탄압하고 있다. 울산 건설 노동자에 대한 탄압은 노무현정권의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정규직노동운동을 시의적절한 이데올로기 공세와 비리수사, 그리고 노동 분열 정책으로 약화시켰다고 자평한 정권은 이제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비정규직투쟁을 초기부터 강공책으로 짓밟고 있다. 전국곳곳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투쟁들을 모아 노무현 정권과 분명한 전선을 쳐야 한다. 법 이전에 현장의 힘이 우선이라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파업기간 중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60이 다된 조합원이 언론에 폭도로 매도당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눈물이 말라 감정까지 메말라 가는 건 아닐까. 자그마한 절망들이 모여 죽음의 강으로 모이고 있는 느낌이다. 박해욱 울산지역건설플랜트 노조 위원장의 “우리는 살기 위해서 싸운다”라는 말이 가슴을 친다. 휴게실, 탈의실을 지어달라는 소박한 요구를 가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업에 나선 천여 명의 노동자들을 폭도라고 한다면 정부는 이 땅에서 노동조합 활동자체를 아예 불허하라.PSSP 1)이 글은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협상이 타결된 5월 27일 이전에 작성한 것입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