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7 전국노동자대회를 對노무현 정권 투쟁대회로! [%=사진1%] 노동자의 권리와 자존심을 팔아넘긴 노사정 야합 지난 9월 11일 한국노총은 경총, 대한상의, 노동부, 노사정위가 참여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자존심을 팔아 기득권을 유지하는 야합을 단행하였다. 대표적인 내용은 ▲기업단위 복수노조 도입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3년 유예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 폐지, 필수공익사업 범위에 혈액공급, 항공, 증기/온수공급, 폐/하수처리업 추가, 필수공익사업에 쟁의행위 중 필수업무 유지의무 부과 ▲필수공익사업에 대해 대체근로 허용 ▲부당해고 판정시 근로자의 요청으로 복직 대신 금전보상 가능 ▲정리해고 사전 통보기간 차등 설정(현행 60일에서 60일~30일로)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처벌 벌칙조항 삭제 등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 합의안에 복수노조와 관련된 내용이 빠진 것이다. 복수노조 문제는 노동자의 자주적 단결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특히 이미 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거나 유령노조, 어용노조 민주화 혹은 무노조 사업장에서의 노조 조직화를 위해 기본적인 필요조건이다. 이는 단순히 조직률 제고 뿐 아니라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과도 연관되어 있다. 복수노조 허용은 지난 97년부터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10년간 적용이 유예되어 온 바, 이번에야말로 도입하나 했더니 또 다시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되었다. 전임자 임금문제가 노조 보존을 위해 절박하다면 이를 금지하려는 정부와 자본을 비판하고 광범위한 반대운동을 조직할 일이지 노동자의 기본권을 희생시켜 맞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보존된 노조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필수공익사업 범위를 늘리고 필수업무 유지의무를 부과하며 파업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것은 파업권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그렇지 않아도 철도, 전기, 가스, 병원, 통신 등 필수공익사업장에서의 파업은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 공격과 교묘한 대체인력 투입으로 파업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어려웠는데, 이렇게 되면 파업의 최소한의 효과마저 봉쇄당할 것이 뻔하다. 부당해고 판정 시 금전으로 보상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해고자의 처지를 이용하여 원직복직 대신 돈으로 해결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결국 한국노총은 조직보존을 하고, 자본은 복수노조 도입에 따른 노조결성 가능성을 봉쇄하며, 정권은 노사정 합의라는 명분과 파업권 제한을 챙기는 ‘야합’을 했다. 노동자의 대의와 권리는 그들에게 먹잇감이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가는 노동운동의 추악한 말로 노무현 정권과 자본 세력은 '신자유주의와 함께 가는 노동운동', ‘위기관리 파트너로서 노동운동’을 원한다. 이미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한국노총 위원장은 상반기에 KOTRA와 외국자본 유치를 위한 협력약정서를 체결하고 6월말 미국에서 열린 국가 투자유치설명회에 노동계 대표랍시고 참여해서 투자유치 활동을 펼쳤다. 그것은 '건전하고 책임 있는 노동운동'을 할 터이니 초국적자본은 불안해하지 말고 한국에서 이윤추구 활동을 벌이라는 것이다. 이번 노사정 야합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노조 스스로가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체제의 일부가 되어 노동자의 권리를 해체하고 저항을 억압하는 행위를 지속하고 이를 사회적 대화 혹은 사회적 타협으로 포장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노총 스스로가 전체 노동자 앞에 무릎 꿇고 야합을 백배사죄해야 마땅한데도 ‘민주노총 타도’ 운운하며 민주노총 규탄집회까지 연 것은 노조‘운동’이기를 포기한 집단의 추악한 말로를 그대로 드러낸다. 노조운동 무력화를 노리는 노무현 정권 노사정야합에 이어 정부는 그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여 곧바로 입법예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무수히 지적된 것처럼 노무현 정권의 노사관계로드맵은 노동운동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의 결정판이다. 즉, 비정규법안이 비정규직을 양산하여 노동의 불안정화를 제도화시키는 것이라면, 노사관계로드맵은 이에 대한 노동운동의 운동과 저항을 봉쇄하는 것으로서 양자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노사관계로드맵은 한미 FTA와도 연결된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윤추구 활동을 촉진하고 투자 환경을 개선하려는 자유무역협정은 한국 노조운동의 무력화 조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미국 자본 측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형법규제에서 민법규제로 전환, 쟁의행위 중 대체인력 투입 허용, 파업 찬반투표 절차 강화, 정리해고 요건 완화 등을 요구해 왔는데 이는 노사관계로드맵의 내용과 일치한다. 노무현 정권은 노조의 권리를 제한하여 초국적자본의 투자환경을 개선시키고 개방에 대비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민주노조운동에 말하는 것 민주노총 역시 이번 야합사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노총의 맞바꾸기 방안을 충분히 예상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거의 방관했고 제대로 된 항의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운동의 관점을 제대로 정립하지 않은 탓이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자체가 협상, 즉 주고받기 공간이며 압도적인 대중투쟁이 담보되지 않으면 협상에서 양보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수세적인 상황에서 협상에 참여했고, ‘민주적 노사관계를 위한 8대 요구안’을 내세웠지만 선언적 의미 이상을 띠기 힘들었다. 또한 협상을 중심에 놓다 보니 조합원 대중을 교육하고 투쟁으로 조직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만의 사회적 합의’에 들러리가 된 것이다. 이번 사태의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협상을 잘 못해서가 아니라, 협상장의 파트너가 된 것이 문제였고 대중 교육과 운동을 중심에 두지 않은 것이 뼈아픈 오류인 것이다. 신자유주의 위기관리 체제 하에서 상층으로부터의 교섭과 협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운동과 주체 형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인하자. 노무현 정권에 종말을 고하자 뒤늦게 민주노총이 ‘노동자 살인정권, 노동기본권 개악 야합정권’을 규탄하면서 연맹별 규탄기자회견과 10월 총파업 투쟁을 내걸었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투쟁전선 구축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체 노동운동의 미래가 걸린 문제에기 때문이다. 이번 야합사태에 대한 분노를 결집시키고, 비정규 법안과 노사정로드맵의 본질을 교육/선전하여 투쟁동력을 모아 나가야 한다. 지역과 현장의 다양한 투쟁의 타격대상을 신자유주의 노무현 정권으로 정확히 맞추고 하중근 열사투쟁, 한미FTA/평택투쟁, 비정규법개악/노사관계로드맵 저지투쟁이 하나의 커다란 흐름이 될 수 있도록 하자. 이러한 의미에서 하반기 투쟁의 출발이 될 9월 17일 전국노동자대회를 노무현 정권에 대한 투쟁대회로 만들자.
어제, 9월 12일(화) 전국민중연대 조직발전기획단 4차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사회진보연대, 한총련, 노동자의힘,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전농, 한청, 부산민중연대 등이 참가했습니다 (민주노동자전국회의가 참관했습니다). 1, 2, 3차 회의는 토론회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어제 4차 회의는 정대연 정책위원장이 작성, 제출한 <전국민중연대 조직발전논의 결과보고>와 <전국민중연대 조직발전안(초안)>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안에 대한 사회진보연대의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1)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반전반미평화 투쟁을 중심으로 민중운동의 연대와 단결을 확장한다, 2) 민중연대투쟁의 지역적, 대중적 토대를 확장한다, 3) 조직운영의 민주성을 고양하여 연대운동의 기풍을 쇄신한다는 것은 상설공동투쟁체를 표방한 민중연대가 출범할 당시부터 제기한 것이며, 사회진보연대는 이를 제안하고 동의했기 때문에 민중연대에 참여해 활동을 펼쳐온 것이다. - 정대연 위원장에 제안한 것은 이와 같은 초기 목적을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조직건설의 근거로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민중연대가 이러한 목적을 지금까지 충분히 성취하지 못하고 있는 객관적 조건을 분석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바로 이러한 필수적 계획이 결여되어 있다. - 예컨대 당면투쟁이 FTA 범국본, 평택범대위, 하중근 열사대책위 등 민중연대 외부의 연대기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물론 민중연대 참가단체들이 각 연대기구에 참여하고, 민중연대 중앙사무처 활동가들도 연대기구에 파견되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민중연대 집행위 등에서는 각 사업에 대한 보고만을 청취할 뿐, 별도의 논의안건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 조건에서 민중연대의 역할을 무엇이고, 어떤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것인지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새로운 조직이 건설되어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민중연대 또는 새로운 조직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 한편 새 조직 건설과 관련하여 비공식적으로 논의되어온 ‘의결구조 개혁’, ‘통일연대와 통합’ 등의 문제가 지금까지 투명하게, 구체적으로 검토되지 못했다. 예컨대 초기에 언급되던 대의원구조는 단체별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고 참가단체에게 결정사항에 대한 구속력을 높이자는 것인데, 이번 안에서는 대의원구조를 두지 않더라도 의결구조를 개혁하고 ‘다수결의 원리’를 도입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상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통일연대와 통합도 일부 단체만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을 뿐, 과연 새로운 조직이 앞으로 어떤 통일사업을 펼칠 것인지에 대한 상이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지금까지 통일연대 사업이 반미반전사업을 제외하면 주로 교류사업과 반한나라당 투쟁을 중심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민중연대의 주요 사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 따라서 조직발전기획단이 제출하는 ‘조직발전안’의 요건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조직발전기획단의 명의로 문서가 운영위, 수련회, 대표자회의 등에 제출되는 것은 부적합하다. 기획단 회의에서 이런 문제를 두고 토론을 진행하였는데, 결론적으로는 조직발전안(초안)이 전원합의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시하고, 기획단 회의에서 토론된 내용도 첨부해서 차기 운영위원회(9월 14일)에 제출하자고 의견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기획단 운영은 종료하되 운영위원회에서 조직발전안에 대한 추가 토론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리면 기획단을 재소집하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전국민중연대 조직발전논의가 대체로 초기 각 단체들이 품었던 의견들이 반복되어 논의되고, 계속 평행선을 유지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민중연대투쟁의 활성화를 위해서 민중연대가 자임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사회진보연대도 더 많이 토론을 진행해야 할 듯합니다. 자료를 첨부합니다.
지난주 노동자집회에서 배포한 '신자유주의 분쇄! 노무현 퇴진! 공동투쟁본부(준)' 명의의 유인물입니다.
[%=사진1%] 장마와 폭염을 뚫고 하중근 열사투쟁이 힘겹게 불씨를 잇고 있다. 그러나 열사투쟁은 우리의 바람만큼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포스코와 정권은 열사가 넘어져서 죽었다는 기만적인 부검결과를 발표하며 언론을 통제하려 들고, 강경진압 일변도의 파렴치한 작태로 일관하고 있다. 8월 12일 타결되었다고 보도된 건설노조의 단체협상 역시 사측의 이중적인 태도 때문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한다. 이제 열사투쟁의 칼끝을 벼려, 9월 투쟁의 기본방향을 곧추 세울 때다. 도덕적 울분과 단순폭로를 넘어 사회정의와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으로 도덕적 울분에 기초한 일점돌파식 단순폭로형 전술은 오늘날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부도덕한 권력의 비밀과 그것을 숨기고 지탱하는 권위적인 폭력의 시대, 그 시절 우리의 투쟁방식은 은폐된 사건을 폭로하고 여기에 기반을 두어 지배체제의 균열을 가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노무현 정권 역시 군사정권에 뒤지지 않는 폭력성과 부도덕성을 자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여전히 많은 민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개혁의 비밀스러운 반민중성이 폭로된다고 하여 바로 전민중적이 투쟁에 나서지는 않는다. 광주의 비밀은 알리는 것만도 힘겨운 일이었고 동시에 그 자체로 충분했지만, 신자유주의개혁의 비밀은 더 많이 더 넓게 폭로됨과 동시에 원인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면 아무 실효성이 없다. 정권에 대한 일점돌파식 폭로와 타격이 지배체제의 균열을 불러일으켜 (지배체제의) 위기를 가속하는데 맞추어졌던 투쟁전략은 노동자민중의 대안적인 연대연합을 형성하는 것으로 이동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과 단일정치전선 수립을 위한 대정권 투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모두가(좌우가 동시에) 반대하는 정권에 대한, 그것도 모두가 경멸해마지 않는 인격화된 권력으로서 노무현 개인에 대한 도덕적 단순 폭로만 있다면, 이는 자칫 타인에 대한 불신과 증오의 감정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이런 투쟁은 노동자민중의 대안적 연대연합 창출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모두가 구조조정의 대상이라는 것 역시 너무나 상식적이고 공공연한 비밀이다. 나도 해고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몰라서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구조조정 이외의 대안에 관한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우선 당장 해고되기 전까지라도 바짝 벌어서 대비하자는 개인적 전망이 연대의 전망을 압도하는 것이다. 또한 단지 대중의 심성이 죽음에 대해 무뎌지고 이기적으로 변질된 것도 아니다. 공동의 미래전망이 무너짐으로써 일상화한 폭력이 출현하게 된 현실에서, 언제 나도 저런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진 개인들이 서로에 대한 불신과 자조적인 비웃음을 이겨내고 연대를 통한 집단적 대응방식으로 나가는 길은 그리 간단치 않은 여정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울분에만 의존하는 선전, 운동 방식은 투쟁의 대중적 확산과 참여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개혁은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 노동 불안정화라는 세 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 세 형태의 공격은 각기 다른 양상의 폭력과 불평등을 양산해낸다. 물론 다종 다기한 신자유주의공세의 파괴적 효과들은 하나의 연관 속에서 전개되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그 같은 사실은 정책개혁을 추진하는 지배집단의 머릿속에서나 명확하다. 현실에서 구체적인 공격을 직접 경험하게 되는 노동자 민중들에게 이처럼 비극적이고 천인공로할 사건들은 말 그대로 개개의 우발적인 사건 사고일 뿐이다. 지난해 전용철 열사를 가격한 날선 방패는 부산 아펙(APEC) 정상회의 사수를 위해 동원된 병력의 무기였고, 하중근 열사의 머리를 내리친 방패와 소화기는 한미FTA를 방어하기 위해 동원된 무기였다. 이번 사건은 보수언론이 이름 지은 이른바 ‘포항건설노조사태’가 아니라 노동의 불안정화에 따른 사회적 배제와 노동기본권박탈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폭로하고 해설해야한다. 더 나아가 또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건의 마무리는 사태해결의 맥락과 유족보상의 수준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기본권확보와 사회정의회복을 위한 노동자 민중간의 대안적 연대 연합의 확대만이 진정한 해결방책임을 실천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포항에서 전국으로, 건설노조투쟁에서 비정규직 노동기본권투쟁으로 더욱이 이번 하중근 열사투쟁은 지난해 전용철 열사투쟁에 비해서도 좁은 울타리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전용철 열사투쟁이 투쟁초기부터 쌀개방철회/정권규탄이라는 전국적이고 정치적인 중심점을 분명히 했던 것과 달리, 하중근 열사투쟁은 비정규직 노동기본권쟁취투쟁이기 이전에 건설노동자 그것도 포항지역 포스코건설노동자들의 투쟁으로만 비춰지고 있다. 보수언론들의 외면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두 세 차례 열린 포항집중집회와 포항건설노조 상경투쟁단의 헌신적 투쟁을 서울을 비롯한 여타 지역의 투쟁계획이 뒷받침 못해주고 있다는 현실은 이런 상황을 고착화하는 더 큰 장애요소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각 지역별 현장선전과 소실천에서 하중근 열사투쟁이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이라는 주장을 확산해야 한다. 하중근 열사의 죽음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완전히 무시된 상황의 필연적 귀결이며,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의 차원에서 하중근 열사 투쟁이 전국화하고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 절실한 과제다. 9월 FTA 3차 협상, 비정규노동악법, 노사로드맵 저지투쟁, 평택과 포항을 결합해야만 한다 열사를 살해한 1077, 1078 부대가 5월 4일 평택 대추 초등학교 철거 작전 부대였다는 사실은 전용철 열사를 때려죽인 이종우기동단장이 평택 과잉진압의 현장책임자였다는 사실만큼이나 충격적이다. 평택에서는 이제 곧 강제철거가 자행될 예정이며, 9월에는 기만적인 FTA 3차 협상이 미국에서 진행될 것이고, 정기국회에서는 그동안 미뤄져 왔던 비정규노동악법과 노사관계법 개악이 처리될 예정이다. 이 모든 사안들이 하나의 신자유주의 공세에서 비롯하는 다른 형태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이러한 사실 확인과 당위적인 주장만으로는 현실적으로 나눠져 전개되고 있는 평택과 포항투쟁, 노동악법투쟁과 포항투쟁이 결합되기는 어렵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이들 투쟁들 간의 실천적인 결합을 모색하지 않는 한 다른 활로는 없다. 이제까지 이를 결합하려는 시도들은 각각의 투쟁의 요구를 공동으로 내거는 수준과 일정을 조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내딛고자 한다면, 이 때 중요한 것은 정치적 공동과제를 합의하고 형성해내는 일일 것이다. 이 모든 사안들의 기획 집행자인 노무현정권의 책임을 묻는 정치적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노무현 정권 퇴진투쟁이 전선의 중심에 서야 한다. 물론, 노무현 정권퇴진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퇴진슬로건을 내건다고 우리투쟁의 난관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각각의 투쟁과 사회운동들의 독자성을 훼손하는 방식의 연대 또한 투쟁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잘못된 방향이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상기한 정치적 공동과제를 중심에 놓고, 각각의 투쟁 사안들이 이에 대한 공동투쟁의 합력을 드높일 수 있게끔 자신의 투쟁 국면을 바꿔내고, 또 이 같은 흐름이 신자유주의라는 반동적 공세를 강화하는 노무현 정권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가게끔 투쟁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 이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당면과제다. 하중근 열사투쟁이 평택강제철거 저지투쟁의 정치적 기운을 북돋을 수 있도록 지지·연대하며, FTA 투쟁과 노동악법투쟁이 하중근 열사투쟁의 전망을 확보하는 것. 다시 말해, 실제적인 정치적 과제를 중심에 놓는 공동투쟁 태세를 확보하는 일, 그럼으로써 고립과 정체상황에 직면한 개개 투쟁전선의 기운을 북돋우어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공세적 전환을 이루어 내는 것.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역'적 전략과 실천의 모색 2 지난 사회운동(2006년 7·8월호)에 실린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자운동의 재개 : '지역'적 전략과 실천의 모색」은 노무현 정권의 몰락이 자본주의의 위기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무능력과 한계의 필연적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위기가 기존 체제의 모순의 폭발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운동의 성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기존 사회운동의 위기와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고민에서 출발하였다. 특히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20세기 역사적 노동자운동 전체의 위기로, 즉 20세기의 대표적인 운동의 경향인 사회경제적 노동자운동/정치적 노동자운동의 한계로 분석하면서 이를 뛰어 넘는 노동자운동의 방향을 '노동자 사회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현존하는 노동자운동의 개조를 위해 무엇보다 '지역적 전략과 실천'이 중요함을 지적하고 몇 가지 실천방향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토론을 진행하면서 몇 가지 질문 혹은 토론의 쟁점이 제기되었다. 먼저 민주노총의 산별전환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산별전환과정 혹은 이후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노총의 전략과의 관계 설정이 쟁점이 되었다. 이는 두 가지 차원의 쟁점이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민주노총이 그 동안 조직발전전망으로 추구해 온 산별노조건설 전략을 노동자 사회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 이다. 다른 하나는 지역적 전략과 실천을 강조하는 것과 산별노조의 흐름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의 문제이다. 둘째, 지역과 지역운동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는 앞선 작업이 지역이라는 개념을 명확한 규정 없이 상이한 층위에서 사용한 데서 비롯된다. 지역이라는 단어 자체는 여러 분과학문에서 혹은 일상적으로 다양한 내포를 지니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역운동을 수용하는 방식도 이러한 지역에 대한 개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과거 그리고 현재 지역운동을 강조하는 사회운동 내의 여러 흐름들은 각기 상이한 지역 개념을 근거로 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역 개념의 차이 때문에 지역운동에 대한 관점이 나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근본적인 '운동론'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 더욱 크다. 따라서 '지역'과 '운동'에 대한 관점 그리고 이것이 결합된 '지역운동'에 대한 관점과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에 지역운동을 강조하는 다른 사회운동 내의 여러 경향들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 쟁점이 된다. 셋째,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제기가 있었다. 이는 쟁점이라기보다는 고민이 진척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문제제기 및 토론의 결과를 반영하여「사회운동으로서 노동자운동의 재개 : '지역'적 전략과 실천의 모색」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하고 모호했던 부분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한 시도이다. 산별전환에 대한 평가와 입장, 산별노조 전환이라는 현실 조건에서 지역 노동자사회운동의 방향을 밝히고 지역운동에 대한 관점과 입장을 보다 명확히 하는 한편 몇 가지 사례들을 중심으로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을 모색해 보도록 하겠다. 민주노총의 산별전환과 지역 노동자 사회운동 지난 6월 2일부터 진행된 민주노총의 1차 산별전환투표 결과 완성차 4사의 노동조합을 비롯하여 총 21개 노조가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금속연맹의 경우 총 29개 노조가 산별전환 투표를 진행하여 18개 노조(조합원수 총 97,679명)에서 산별전환이 가결되었고 화섬연맹의 경우 3개 노조(조합원수 총 222명)가 산별전환을 결정했다. 이로써 2006년 7월 현재 민주노총 전체 743개 노조 778,183명 중 조합원 대비 산별전환율은 기존의 54%에서 67%로 확대되었다.(민주노총 2006년 5차 중앙위 보고자료 참고, 단 산별전환율은 재계산) 이로써 통합금속노조가 10월 중 13만 명이 소속된 거대노조로 출범할 예정이며 이 외에도 다른 연맹의 산별전환 흐름도 탄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민주노총의 산별노조로의 재편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2003년 대의원 대회에서 산별전환의 구상을 천명하고 2006년 산별전환을 위해 배수진을 치고 모든 역량을 이에 집중해 왔다. 전노협 시절부터 산별노조 건설은 민주노조운동의 오랜 조직적 목표였으나 실질적 추진은 지지부진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07년 복수노조 도입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포함하여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법·제도적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산별노조의 건설만이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공감대가 민주노총 내부에 강력하게 형성되어 왔다. 더욱 중요하게는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폭발하면서 더 이상 '현재의 체제'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주요 정치세력들에게 확산되었다. 물론 각 세력마다 위기에 대한 진단과 그 해법은 다르지만 대체로 '산별노조 건설'이 절실하다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하였다. 이에 따라 6월 산별전환 동시 투표 연말 산별전환 총회라는 계획표가 세워졌고 총연맹 및 각 연맹 지도부는 산별전환 동시 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민주노총/금속연맹의 산별건설에 대한 조합원 선전, 선동은 '쪽수의 이점'에 주되게 호소하였다. 즉 더 큰 노조를 결성하여 더 큰 교섭력을 갖자는 것이다. 결국 대기업 노동자들은 계급적 단결로서 산별노조 건설을 택한 것이 아니라 더 큰 교섭력에 대한 실리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 조직화의 필요성, 구조조정 저지투쟁 등이 이야기되었지만 이는 주변적이었다. 이렇듯 산별전환 추진과정에서 '현재의 체제'가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실종되었다. 지난 십 여 년 동안 그랬듯이 산별노조가 기업별노조보다 노동자의 더욱 너른 단결을 모을 수 있는 형식이라는 교리의 강변만 있었을 뿐이다. 현장에서 이번 산별투표에 대해 ‘묻지마 산별’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이다. 일단 형식은 갖추었으니 이제 내용을 논의하자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물론 산별노조의 구체적인 형식과 활동에 대해 많은 토론이 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각 연맹 별 산별추진위원회에서는 산별노조의 조직구조와 교섭구조를 둘러싸고 치열한 토론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논의의 중심에는 기업별 노조를 어떻게 조직적으로 통합할 것인가가 있을 뿐, 위기에 처한 노동자운동을 다시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는 빠져 있거나 주변적인 문제로 다루어질 뿐이다. 1) 기업별 체제의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전후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은 수출주도형 산업화와 반공주의에 기반한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의 결합을 특징으로 한다. 1986∼88년 '3저 호황'을 계기로 노동시장 교섭력이 증가하고 권위주의적 국가와 이에 기반한 노동대중에 대한 착취와 통제의 모순이 폭발하면서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성공을 거둔다. 권위주의적인 자본의 현장통제와 이에 입각한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강요와 초과착취 어용노조와 노동악법을 통한 자주적 단결의 억압에 맞서 노동자대중들의 광범위한 투쟁이 벌어 졌다. 이는 노동해방이라는 이념으로 집약되었고 한국사회 전체의 사회변혁과 결합되면서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할 수 있었다. 당시 지배적인 노동조합의 형태는 기업별 노동조합이었다. 이는 제3자 개입금지 등 법적 제도적 요인, 기업별 노조를 넘어서는 연대 차단과 상급단체에 대한 불인정, 가혹한 탄압 등의 영향이기도 했고 재벌과 하청계열화라는 한국사회의 산업구조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업별 노조 형태는 억압적인 노동현장에 대한 전투적 투쟁을 통해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단일한 작업장을 중심으로 직접민주주의가 항상 가능하도록 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 노조의 의사결정이 작업장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다른 고려 사항이 없다는 점에서 지도부 소환, 협상안에 대한 총회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들이 제도적인 수준으로까지 강화되었다.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은 1990년대 들어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본격화되면서 곧바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3저호황 속에서 누적된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로 인해 과잉축적된 자본의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 재편이 본격화되었고 작업장 차원에서의 미시적인 구조조정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재편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정치적인 민주화가 제한적으로 진행되며 1980년대 반독재 민주화 전선이 소실된다. 이는 1987년 민주노조운동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두 가지 요인, 즉 현장에서의 전투적이고 대중적인 투쟁과 사회전체적인 변혁운동의 결합의 소멸을 의미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나마 대공장 노조는 자신의 투쟁력과 함께 독점자본의 지불능력 덕분으로 높은 임금 인상률을 쟁취했으나,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조의 경우 기업별 노조로는 조직화도 힘들뿐더러 투쟁을 통해 많은 성과를 얻기도 힘들며 대공장 정규직-중소·영세 비정규직의 분할은 강화된다. 1980년대 변혁적 노동자운동이 위기에 처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의 전망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된다. 이념적인 측면에서 변혁적 이념―최소한 노동해방과 같은―의 소멸은 허구적 논쟁, 즉 계급적 노동자운동과 사회적 노동자운동의 논쟁으로 귀결되었다. 계급적 노동자운동은 사실상 보편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로서 노동자가 아니라 특수한 경제적 계급 또는 직업적 의식으로서 노동자라는 전망과 단절하지 못했다. 조직적 측면에서 당과 노조의 분리를 전제로 해서 진보정당/산별노조라는 조직적 전망이 대세를 장악했다. 이는 현장에서의 역동적인 투쟁과 국가권력에 대한 투쟁이 결합된 1980년대 노동자운동의 역동성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산별전환이 지체되어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올바른 대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대중화된 민주노조운동은 양적인 운동의 확대와 함께 곧바로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재편의 본격화라는 질적인 조건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변화된 조건에 적합한 노동자운동의 혁신은 계속 지체되었고 결국 1997년 IMF위기와 노동법개정과 구조조정에 대한 한계적 대응 속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위기가 폭발하게 되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속에서 노동의 불안정화와 노동자운동의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전략의 수립이 필요하다. 이 속에서 조직적 혁신과 정치/이념적 혁신 과제가 동시에 제기된다. 2) 현재 산별추진 전략에 대한 평가 민주노총이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①산업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 ②비정규직화/사회양극화에 대한 대응 ③노조 무력화대응 ④복수노조허용/전임자 임금지급금지 등의 변화에 대한 대응 등이다. 산별노조 건설을 통해 산업적 차원의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사회양극화에 대응하는 사회적 교섭(혹은 대사회적 투쟁)을 추구하며 이를 통해 노동조합운동의 정당성을 회복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한국에서의 산업구조의 변화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재벌체제의 초민족화와 하청계열화의 중층화, 외주화의 확대를 통한 비용의 절감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산별노조를 통해 산업적 차원의 교섭 혹은 투쟁으로 저지할 수 있는가? 우선 이러한 구상의 제도적 토대가 되는 '산별교섭'이 핵심적 산업 내에서조차 안정화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국의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재벌들의 경우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속에서 초민족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에게는 일국 내의 계급타협과 자본들의 수평적 연합을 통해 안정적인 생산의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경총의 경우 기업별 교섭의 유지를 대응방향으로 일단 내 놓은 상태다. 그렇다고 국가를 통한 개입도 불가능하다. 현재의 노사정 합의라는 틀은 성장기의 '사회적 합의'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조합과 노동자대중의 고용안정성과 임금 및 노동조건의 안정성을 보장받는 틀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위기관리의 기구로 전환시키는 기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산업 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효과이므로 그 원인에 대한 대중적 투쟁이 중심에 놓여져야 한다. 이러한 투쟁 없이 진행되는 산별교섭은 방어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거나 정권의 허구적 코포러티즘에 포섭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대응의 측면에서 보면 어떠한가? 물론 기존의 기업별 노조가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응하기 위한 효율적인 조직화 방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초기업단위 노동조합 형태를 실현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그 해답이 곧바로 현재 논의되는 형태의 산별노조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한다. 19세기말 20세기 초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노동의 불안정화가 진행되면서 산별노조가 미숙련 대공장 노동자들이 조직되고 투쟁하는 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산업구조와 작업장에서의 노동통제 방식의 변화에 대응하는데 산별노조라는 형태가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2007년 노동관련 법·제도의 변화에 대한 대응을 위해 일단 형식적으로라도 산별노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의 타당성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러한 주장은 산별노조 전환 없이 기업별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노동운동의 계급적 연대 기반은 급속히 와해되고 아울러 사용자의 다양한 부당노동행위와 노조 간 차별로 인해 기업별 노조체계는 더욱 급속도로 어용화, 협조화의 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여기에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까지 시행된다면 기업별 노조 자체의 유지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1950∼60년대 일본 노동운동의 몰락이 사례로 제시된다. 하지만 10년 전 민주노조운동의 성장을 위해 폐지를 주장했던 복수노조 금지 조항이 오늘날 오히려 민주노조운동의 기반을 유지하는 방어막으로 변해버린 현실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원인은 민주노조운동의 계급 대표성의 상실, 현장 장악력의 약화이다. 산별노조로 형식적으로 전환하고 산별노조에 유리한 방향으로 노사관계의 제도화를 이루낸다면 위기의 폭발을 조금 지연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민주노총이 산별노조의 제도화에만 총력을 기울인다면 신자유주의적 코포라티즘 체제에 민주노조운동을 포섭하려는 정권의 의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3) 산별전환 과정에 어떠한 입장과 태도를 취할 것인가? 현재 추진되는 산별노조 건설은 낮은 조직률의 고착과 노조운동의 대표성의 위기, 법·제도의 변경에 따라 수세적으로 제기되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산별노조 건설에 대한 몰두는 밀리고 밀려서 진행되는 노동자운동의 퇴각에 대한 사후적인 반응, 그것도 한발 더 물러선 퇴행적인 반응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보다 공세적으로 노동자운동 혁신의 과제를 실천하는 투쟁에서, 하나의 과정으로서만 산별노조가 고민되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노동자운동의 혁신과 새로운 조직의 전면적인 건설은 다음과 같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①새로운 미조직 노동자들의 진출 ②새로운 급진적 이념의 수용 ③새로운 조직형태를 통한 단결 폭의 확대 ④동시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장 현장의 강화. 이후 한국에서 산별노조 건설 과정을 단지 기업별 노조의 통합이 아니라, 진정으로 노동운동의 혁신의 과정의 일부로 만들어가고자 한다면 이러한 요소들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산별노조라는 대안을 상대화하며 새로운 계급주체의 형성을 위한 노동자운동의 혁신 프로젝트를 현실화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산별노조의 건설이 이러한 방향에 일조할 수 있도록 개입해야 한다. 결국 우리에게 있어 복수노조 산별노조 시대는 체제의 전환이나 새로운 희망의 출발이 아니라 노동조합운동의 객관적 조건의 변화에 불과하다. 산별노조 건설의 쟁점을 넘어, 새로운 노동자 대중의 진출을 촉진하고 계급형성의 과제를 실현하는 노동자운동을 재개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비판과 실천을 조직해야 한다. 첫째, 불안정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해서 초기업적 노동조합활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많다. 하지만 기존의 산별노조에서 이러한 흐름을 제대로 조직한 사례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례는 지역일반노조의 운동이나 일반노조적 운동을 지향했던 산별노조적 운동의 흐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산별노조건설은 미조직노동자(비정규직노동자)들의 진출이 아직 새로운 조직을 출현시킬 만큼 폭발적이지 않고, 산별노조 건설의 과정이 끊임없이 기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에 좌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을 근거로 하는 불안정노동자조직화에 있어서 산별노조 건설과 지역일반노조운동이 수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수렴에는 몇 가지 쟁점이 존재한다. 당장에 부딪히는 조직구획상의 쟁점에서부터 장기적으로 보면 일반노조운동에는 전국단일노조라는 산별노조와 대별되는 지향이 있다. 하지만 현재 운동의 수준에서 이러한 쟁점은 무의미하다고 판단된다. 오히려 각각의 운동의 흐름이 독자성이 보장되고 서로의 운동에 도움이 되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산별노조 건설의 과정에서 노동자운동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기업별노조나 그 연합체제로서 연맹, 그러한 수준을 유지하는 산별노조로는 불가능하다. 산별노조로 전환한다고 해도 산별노조의 수직적 체계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가능성이 크다. 이런 측면에서 우선 업종별조직을 최대한 상대화하고 지역 중심의 수평적 조직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현장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현장의 활동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조직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조직형태의 변화를 통해서만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이룰 수는 없으며 이념적 혁신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는 한국사회의 변혁과 결합되어 제시되었던 '노동해방'의 정신을 오늘날 다시 복원하는 문제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의 주요한 원인은 기존의 노동운동의 이념이 신자유주의적 재편 속에서 대중들의 실리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인 삶의 원리 사회변혁의 전망으로 체화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별노조가 대안으로 제시되는 맥락 중 하나는 산별노조가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강화할 것이라는 것이지만 동일한 산업적 이해나 조직형식이 계급성의 강화로 이어지지 않음은 분명하다. 산별전환 과정 속에서 오늘날 노동자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이념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대적인 토론이 동반되어야 한다. '지역'과 '지역운동'에 대한 개념의 정립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자운동의 재개 : '지역'적 전략과 실천의 모색」에서는 지역적 차원의 운동을 주목하고 강화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의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생산과정 및 재생산과정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롤레타리아화의 계기들 속에서 노동자계급을 형성하고 생산과정에 대한 변혁 뿐 아니라 재생산과정에 대한 변혁 역시 노동자운동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작업장으로 한정되어 규정되고 있는 현장의 개념을 지역으로 확장할 것을 주장한다. 여기서 지역은 생산과정과 재생산과정이 결합되어 있는 공간으로 제시된다. 둘째, 지역은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연대, 사회운동들의 연합을 구축하기 위한 일상적인 공동의 정치활동, 현실에 대한 공통의 인식 확보와 행동 프로그램의 수립을 위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토론 과정이 가능한 현실적 범위 혹은 규모를 의미하며 위로부터의 통합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통합을 중시하는 어떠한 방향성을 지시한다. 셋째, 다수의 불안정 노동 층을 조직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조직형태이자 활동형태로서 지역을 주목한다. 구체적으로는 지역일반노조나 산별노조에서 지역에 기반을 둔 노조형태에 주목하였고 산별노조의 중앙 집중식의 수직적 체계보다는 기업, 산업, 업종별 구획을 뛰어 넘는 수평적 체계를 강조하였다. 넷째, 위에서 제시한 흐름들이 작업 현장에서의 전투적 경제주의와 협소한 계급주의에 매몰되는 한편 종파적 대립구도 속에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전망에 대한 건강한 토론이 실종된 노동자운동의 전투적 부위들이 정치적 시야를 확장하고 건강한 토론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강조하고자 했다. 이렇듯 노동자 사회운동의 일반적 방향 속에서 지역과 지역운동의 의미를 밝히다 보니 역으로 지역에 대한 상이한 층위의 개념을 명확한 정리 없이 사용하여 혼란의 여지가 있었다. 더구나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에서 존재했던 지역운동에 대한 특정한 담론 혹은 운동의 흐름에 대한 평가 없이 이러한 문제의식이 제기되다 보니 더욱 혼란을 가중시킨 측면이 있었다. 따라서 우선 한국 사회에서 지역운동의 담론과 실천적 흐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몇 가지 쟁점들을 중심으로 지역과 지역운동에 대한 개념을 보다 엄밀히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지역사회에 대한 개념적 접근 흔히 지역운동을 고민하면서 지역에 접근하는 시각은 어떤 범위로 묶여 질 수 있는 공통의 특징이 무엇이냐, 다시 말해 어떤 지역을 하나의 지역으로 규정할 수 있는 동일성은 무엇이고 지역적 수준의 운동이 가능한 토대가 무엇인가를 중심에 놓는다. 그런데 지역을 개념화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지역사회를 형성하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분석이다. 특히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민족국가에 대한 분석,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렇게 접근할 경우에 지역을 어떤 동질적인 특징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인 동일성이 형성되고 동시에 해체되는 모순적이고 역동적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지역사회는 갈등적인 생산과정과 재생산과정이 결합되는 구체적인 공간으로서 파악될 수 있다. 한정된 시간 내에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하려는 자본주의에게 있어 사실 공간은 축적에 있어 극복해야 할 장벽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주어진 기술수준에서, 구체적인 공간에서 자본과 노동력이 결합되어야 하며 동시에 산업간의 연계, 사회적 노동분업, 노동공급과 소비시장에의 접근성과 비용절감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며 자본축적은 특정한 공간 내에서 집중화된 구조를 형성한다. 데이비드 하비는 이를 구조화된 정합성이라 부르는데 이는 자본이 이윤의 제약을 받지 않고 순환될 수 있는 공간으로 느슨하게 정의된다. 한편 임금노동자로 전락한 노동자는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더 좋은 노동조건을 찾아 이동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이동의 비용이나 새로운 지역에의 적응의 문제가 발생하므로 특정한 장소에 정착하여 생활조건을 방어하는 전략을 채택하기도 한다. 이처럼 구조화된 지역적 정합성을 방어할 자본(축적의 필요)과 노동(생활수준의 방어)의 필요는 전형적으로 국가에 의해 매개된다. 근대적인 민족국가는 강제력의 행사를 통해 자본축적의 조건을 형성하고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등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통해 갈등의 폭발을 조정하는 기구로 기능해 왔다. 특정한 지역 내에서 다양한 계급과 당파의 이해관계의 결합을 촉진하고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지역공동체적 또는 국민적 연대를 위해 노력하는 지역적인 제도들이 국가라는 제도 속에서 결합된다. 특히 이는 전자본주의적 과정에서 형성된 지역 공동체들을 국가장치 속으로 통합하고 포섭하게 된다.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력의 생산/재생산공간에 있어 지역 공동체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장/학교/가족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한편 이러한 과정에서 지역적 정체성은 민족주의를 비롯한 지배 이데올로기 속에서 통합되고 변형을 겪게 된다. 2) 전후 한국에서의 지역운동의 역사에 대한 개괄과 평가 전후 한국 사회운동에서 지역운동이라는 담론과 운동의 흐름이 출현하게 되는 것은 1960∼70년대 진행된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발생한 모순에 대한 도시빈민들의 자생적 운동과 도시문제연구소-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 등으로 이어지는 종교적 흐름이 결합하며 탄생한 도시빈민운동에서다. 도시로 모여 든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절대적인 빈곤의 상태를 개선하려는 운동의 흐름들이 다양하게 형성되었고 이러한 운동의 경향은 대체로 빈곤계층에 대한 지원과 상호부조의 형태를 넘지 못했고 사회변혁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과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러한 운동의 흐름은 1980년대 사회변혁에 대한 전략적 논의가 촉발되며 마르크스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다시 복권되고 사회운동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급진화된다. 한편으로 도시빈민운동은 철거반대 투쟁과 노점상 합법화 투쟁을 거치면서 사회변혁 운동으로서의 성격이 강화되고 농촌 지역에서 농민운동 역시 급진화된다. 또한 학생운동과 노동자운동을 중심으로 전체 사회운동이 성장하면서 지역운동을 사회변혁의 대중적 토대로서 사고하는 흐름이 강화되었고 80년대 민주화투쟁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적 사회운동들의 연합이 결성된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사회운동이 급격한 위기를 맞으며 이러한 연합들이 급격히 해체된다. 급진화되었던 도시빈민운동 내에서 철거반대투쟁의 일회성, 산발성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 지역주민의 생활상의 이해와 지역적 특성을 강조하며 주민운동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또한 시민운동 담론이 확산되면서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된 다양한 운동단위들이 사회변혁의 과제를 생활세계의 민주화, 의제의 다양화를 통한 시민사회의 민주화로 대체하게 된다. 한편 양적으로 팽창한 노동자운동의 경우 전국적 조직의 통합에 몰두하고 실리주의적 경향이 강화되면서 지역으로부터 퇴각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운동의 흐름이 형성된다. 전국적 차원에서 정책개발능력을 중심으로 시민의 권익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대변형(advocacy) 시민운동과 이러한 활동을 지역에서 모사하는 지부 체계들이 형성되고, 이러한 흐름에 대해서 구체적인 지역주민을 주체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풀뿌리 운동'으로 자처하는 지역 주민 기반의 시민운동이 캠페인 성격의 사업을 통해서 지역운동의 저변을 넓혀가는 데 역점을 두는 '주민(시민)포괄형' 운동과 사안이나 프로그램을 매개로 주민을 직접 조직하는 데 주력하는 '주민밀착형' 운동 등이 등장한다. 한편 지역적 차원에서 대안적 공동체의 형성에 주력하는 협동조합운동 등의 '공동체운동'도 발전을 하게 된다. 이러한 다원화는 여성, 환경, 복지 등 각각 관심을 두는 의제의 다양화와 결합된다. 이러한 흐름들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지역과 지역운동에 대한 유사한 개념을 가진다. 먼저 시민사회론 혹은 이와 동일한 제 3섹터론에 근거하여 정치와 경제가 아닌 제 3의 영역을 민주화하는 것을 사회운동의 전략으로 사고하고 이러한 공간으로 지역을 바라본다. 이와 관련되어 지역운동의 주체로서 '주민' 혹은 '시민'이 강조되게 되는데 이는 1980년대 민중 개념이 사회의 착취와 억압 구조를 전제한 개념인데 반해 지역에서 공통의 이해를 가지는 중립적이고 비정치적인 개념의 성격을 지닌다. 또한 중앙 집중적 운동에 대해 비판하면서 분권화를 강조하게 되는데 이는 다양한 운동들의 통합과 이를 통한 다수자운동 자체를 포기하거나 경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이러한 운동의 흐름은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정책적 실행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진행되는 분권화를 민주화의 연장선상 속에서만 파악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목은 신자유주의 국가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사회정책의 일환으로 지역적 차원에서 노동력 재생산 기능의 사유화와 서비스 제공의 주체로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지역의 운동단체들을 활용하려는 흐름에 적극적으로 포섭되어 간다. 3) 소결 이러한 분석과 역사적 평가에서 지역사회의 개념화 및 지역운동의 방향에 대한 몇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첫째, 지역을 관통하는 사회 전체의 모순을 정치화하는 사회변혁운동으로서 지역운동이 복원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통의 생활공간으로서 지역을 바라보고 이러한 공간에서 주민들을 조직하여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민주화를 감시하는 주체로 만들어 낸다는 1990년대 시민운동과 단절해야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권력의 장악으로 국가변혁의 과제를 해결하려는 현실 사회주의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변혁은 국가기구를 폐지, 변혁하는 장구한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는 대안적인 대중의 권력과 정치체제를 형성하는 문제이다. 둘째, 지역운동의 주체로서 생활공간상의 이해를 같이 하는 주민이라는 개념과 단절하고 1980년대의 민중개념의 계급연합적 성격을 복원해야 한다. 이는 단지 특수한 경제적 이해를 같이 하는 계급들의 기계적 연합이 아니라 해당 시기 사회 전체의 모순에 대한 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정치적 연합이다. 노동자운동 차원에서 보면 경제적 이해나 협소한 계급에 대한 규정에 기반한 노동자 정체성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셋째, 아래로부터 대중들의 자발적 운동을 강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자발적 운동들이 상호간의 인식을 확장하고 공동의 행동의 원칙을 수립해 가는 통합적 흐름을 모색해야 한다. 전국적 운동의 전달벨트로서의 조직이나 고립된 공동체를 지향하는 지역공동체 조직이 아니라 연대지향적이고 상호간의 토론과 공동의 실천 이를 통한 상호 변화를 강조하는 조직형태를 모색해야 한다. 지역 노동자 사회운동의 실천 프로그램의 모색 : 일반노조운동/산별(업종별)지역노조운동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지역을 매개로 기존의 노동조합운동으로 조직되지 못했던 다양한 노동대중을 조직하려는 시도가 일반노조, 혹은 지역산별노조를 중심으로 계속 시도되어 왔으며 조직화에 일정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지역일반노조는 조합원 확대와 경제투쟁에 주력하면서 현장에서 활동가를 육성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지역사회운동과의 연대도 사안별 투쟁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형식적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지역일반노조의 경우 조직된 조합원들이 당면한 자기 사안이 해결되면 조합을 나가거나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역일반노조는 단순한 고충처리 서비스 기관으로 전락할 수도 있고 지역일반노조 운동 역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한편 지역공공서비스 노조는 후발주자로서 이러한 지역일반노조 운동에 대판 평가에서 그 한계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일부 지역노조의 '철새형 조직화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이미 조직된 사업장에 대한 안정적인 일상활동과 활동가 양성을 더 중요시하며 사회운동적 과제를 일상활동의 주요한 부분으로 만들어가려고 한다고 한다. 또한 정규직 노조들의 지원을 (비록 간접적인 방식으로라도) 연맹을 통해서 확보할 수 있고, 산별노조 건설을 예비하는 가운데 연맹 지역본부에 소속된 조직들의 지원을 받기 용이하다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지역공공서비스 노조 역시 지역일반노조의 한계를 온전하게 극복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또한 지역적 형태의 조직에 걸맞는 지역기반의 공동투쟁과 활동의 부족은 여전히 사업장별로 운영되는 구조를 낳고 있기도 하다. 전자와 관련해서는 금속노조 서울남부지회의의 운동을 참고할 수 있다. 남부지회의 경우 구로지역의 오랜 사회운동의 전통이 지역 기반의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커다란 힘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교육센터,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지역 기반의 사회운동단체들과 노조의 긴밀한 결합은 중소영세 사업장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 뿐 아니라 지속적인 노동조합 활동, 이를 넘어서는 정치활동을 강화하는 튼튼한 기반이 되고 있다. 이상의 점을 종합해 볼 때 지역적 차원에서 불안정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을 창출하기 위해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신규조직화와 현장투쟁의 승리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일상활동과 활동가 양성, 사회운동적 과제의 실천을 통한 조합원들의 지속적인 성장과 이에 기반한 노조의 강화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조합원 조직화는 물론이고 현장 활동가 육성과 지역에서 사회운동과의 전략적인 수준의 연대 혹은 융합이 이러한 운동에서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산별노조로의 재편 과정에서 지역 기반 노조의 흐름이 유실되지 않기 위해서는 산별의 구획을 넘는 운동의 흐름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본부가 지역 내의 산별지부들과 사회운동단위들의 연대의 구심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하며 일반노조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사진1%] 신자유주의 금융-군사 세계화로 인한 사회의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지난 5.31 지방선거 참패를 기점으로 집권 세력은 사실상 ‘레임덕’에 빠졌다. 이미 선거 전부터 노무현 정권의 개혁 이미지는 실종됐고 인민주의적 정치행태는 고스란히 한계를 드러냈다. 이러한 현상은 안팎의 제약으로 인해 집권 세력이 기존의 개혁-수구 구도로 지지층을 동원할 소재(개혁 의제)가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집권 당시 노무현을 지지했던 집단의 ‘휘발성’이 이번 선거를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가사 상태에 빠진 집권 세력은 교육부총리 낙마, 도박 게이트, 당청 갈등 등 임기 말 전형적인 권력 누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집권 여당은 김근태의 ‘뉴딜’처럼 친재벌 정책을 노골화하여 기존의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하지만 이는 궁여지책일 따름이다. 반면 역관계의 압도적 우위 속에서 한나라당과 언론은 연일 보수주의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물론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남한 경제의 장기-구조적 불황과 이에 따른 민생 조건의 악화에 대한 대중적 불만의 표출이었다. 그러나 정작 선거 과정에서 이에 관한 ‘정치적 논의’는 철저히 차단되었다. 단적으로 집권 여당의 참패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귀결된 것은 민주노동당으로 표상되는 사회운동 진영이 대안 세력으로 형성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사회운동 진영은 한미 FTA나 전략적 유연성, 비정규악법-노사관계로드맵 등 노무현 정권 말기 정세를 특징짓는 사안들에 대한 논쟁과 투쟁을 대중적으로 제기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의 선거 대응도 정책적 능력이라는 함정에 빠져서 대중정치를 작동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은 오히려 한미 FTA에 대한 범국민적 여론을 호도하고 평택 미군기지 투쟁, 포스코 점거농성 등 민중의 투쟁이 표출되는 사건마다 노골적으로 공권력에 의존하고 있다. 또 정권은 하반기에도 비정규악법-노사관계로드맵 등 노동자 대중의 생활과 권리 및 노동자 운동을 약화시킬 이슈들을 계속해서 준비하고 있다. 이는 집권 세력의 신자유주의적 진실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등장할 수 있는 더욱 격렬한 반동적 탄압을 예고한다. 이에 이 글은 ‘신자유주의 비판에 적합한 사회운동의 정형 창출’이라는 목표를 대안세계화 운동으로 잠정 결산하는 동시에, 한미 FTA를 비롯한 당면 투쟁의 전망을 대안세계화 운동의 지평에서 통합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작성됐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우선 자본 축적의 위기와 헤게모니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출현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경제위기와 정치위기를 동반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 과정에서 경제위기를 호도하고 정치위기를 착취하는 인민주의가 득세하는데,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를 소실점으로 과거와 같은 집중점을 찾지 못하는 사회운동의 위기는 인민주의가 자라나는 또 하나의 토양이 된다. 이러한 삼중의 위기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극복하고 인민주의를 비판하는 대안세계화 운동은 새로운 변혁의 정치의 출발점이 된다. 특히 세계화에 따라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각각 추진된 미주자유무역협정(FTAA)와 유럽연합(EU)에 반대하는 역내 사회운동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부로서 대안적 지역 통합을 추동한다. 한편 군부독재의 문민화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위한 정치적 실행 조건을 갖추게 된 남한 자본주의는 김영삼 정부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화에 편입한다. 장기 불황 속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위기와 반민중적 개혁의 악순환 속에서 정치 일반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증폭되고 배제된 계급·계층의 소외감은 정치·경제 엘리트와 노조와 같은 ‘기득권’에 대한 ‘원한의 정치’에 동원된다. 한미 FTA 체결, 평택 미군기지 확장, 비정규악법-노사관계로드맵 등을 저지하는 것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지향 속에서 사회운동의 이념 및 노선을 개조하고 그 지역적·대중적 토대를 강화해 나갈 때에만 가능하다. 삼중의 위기 속에서 개시되는 대안세계화 운동 초민족자본이 막강한 경제적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본의 세계적 집중은 점점 더 강화되었고, 이들이 구축하는 해외직접투자, 기업 내 무역, 자회사의 수출, 국가간 하청망은 미국, 서유럽, 일본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화된 세계를 구축했다. 신자유주의는 중심부 국가 경제의 탁월함을 강화한 것만큼이나 지배계급의 소득과 부를 회복하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탁월함의 대가는 나머지 세계와 인구에겐 거대했다. 자유시장-자유무역을 기치로 1990년대 이래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공간은 미증유의 규모로 확대되었지만 수많은 나라와 지역은 심각한 부의 파괴를 경험했다. 세기말 아시아의 충격에 뒤이은 아프리카, 러시아(및 일부 동유럽), 라틴 아메리카의 연쇄적 위기,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미국과 서유럽으로의 자본집중은 세계화가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과정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중심부 외부의 국가는 세계경제 시스템의 주변부로 밀려났고 자유기업이 구축하는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통합된 세계’라는 그들의 구호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주식시장 부양’을 절대 선으로 간주하는 금융권력은 노동자(특히 여성노동자)에게 고강도·장시간·저임금 노동을 강요하는 한편 주변부에서는 막대한 양의 잉여 유출과 함께 자본도피의 자유를 누렸고, 이는 세계 각지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경제위기의 기본적 특징을 이룬다. 아울러 미국을 위시한 중심부 국가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안정성을 침해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노골화하며 ‘무한 전쟁’을 수행 중이다. 미국은 세계화가 야기한 다양한 갈등에 맞서기 위해 군사전략을 고강도(MD/핵태세)-중강도(지역강국에 대한 선제공격옵션)-저강도(대테러/마약) 전쟁으로 세분화하며 이미 ‘열전(hot war)’을 개시한지 오래다. 때때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라는 미명 하에 제시되는 대안 역시 지속가능한 세계화를 위한 기만에 불과하다. 결국 ‘역사의 종언’과 함께 개시된 자본의 범지구적 확장이 약속했던 평화와 민주주의는 거짓임이 판명됐고, 세계적인 부의 불평등과 빈곤의 확산, 빈곤의 여성화와 전쟁의 창궐은 역으로 세계화의 위기를 상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동시에 세기말에 이르러 1990년대 가계 소비를 지지했던 주식시장의 호황과 ‘신경제’의 환상은 사라졌고 자본의 수익성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해외로부터 막대한 양의 소득을 흡수하는 반면 성장을 위해 거대한 규모의 국내외 신용 및 부채에 의존해왔던 미국 경제는 이중 적자를 비롯한 대외불균형의 심화 속에서 당혹스러운 형세에 처해있다. 심화되는 미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은 부시 정부가 최근 보이는 대외경제정책의 양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상쇄하기 위해 평가절상 압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확산하기 위해 양자간·지역간·다자간 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세계적인 수준에서 전개되는 자본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정화는 화폐와 노동력의 관리를 핵심으로 하는 개별 민족국가의 경제정책의 자율성을 심각히 훼손한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과 같은 국제경제기구들과 초민족자본은 직접적으로 민족국가의 경제정책을 세계화된 금융축적체계에 통합하고 이들이 제시하는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기술관료들의 영향력이 증대한다. 이에 따라 국회의 의사결정권과 정책적 영향력은 급속히 감소하고 정당체계 또는 대의제 자체가 식물화되는 경향이 발생한다. 기존의 정당은 좌우 이념을 대표하는 대신 정책정당, 심지어 ‘무지개 정당’을 표방하며 중도우파·중도좌파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념을 통해 대중의 참여를 조직하지 못하게 된 정당들은 각종 여론 조작적 기제에 호소한다. 경제위기와 함께 정치와 대중의 분리가 심화하면서 이에 대한 불만을 흡수 또는 무마하는 한편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인민주의가 세계적으로 발호한다. 유럽에서는 인종적·지방적 동일성에 기초하여 민족국가의 분리 또는 통합을 주장하는 극우정당이 반이민·반세계화를 쟁점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영국 노동당도 노동자조직과의 연계를 해체하고 블레어를 정점으로 한 기술관료 집단의 사당(私黨)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1980년대 외채위기를 경과하면서 인민주의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하여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수반되는 대중적 불만을 무마하고 사회운동의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특이하게도, 평화협상을 거쳐 선거정당으로 전환한 기존 사회운동 세력이 1990년대를 경과하며 선거정치와 신자유주의에 순응하게 되었고, 이들은 국제금융기구와 초민족자본에게 권력을 대폭 이양할 것을 주장하며 다른 나라의 인민주의 정치지도자를 대신해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인민주의는 경제위기, 정치위기 그리고 기존 사회운동의 위기를 배경으로 만개하지만 개인의 권리를 위한 집단적 운동이자 사회적 갈등의 대의 과정으로서 정치를 부정하는 반(反)정치의 정치이며 따라서 인민의 권리와 자율적 대중운동을 침식한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을 딛고 새롭게 태동한 대안세계화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 세계화에 맞서국제주의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인간과 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창안하는 한편 세계사회운동의 자율성과 연대를 고양시킨다는 점에서 인민주의와 정면으로 대립한다. 또 이들은 선거정치에 매몰된 좌파 정당과 코포러티즘을 수용하면서 계급대중을 분할하고 있는 노동조합 그리고 행정적 NGO로 포섭된 시민운동을 비판하며 사회운동의 이념과 조직, 운동형태의 개조를 주장한다. 특히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은 유럽통합과 미주자유무역지대와 같이 초민족자본과 국제경제기구 그리고 미제국주의가 주도하는 지역화에 맞서 대안적 지역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대안세계화 운동의 발전은 오늘날 변혁의 정치가 새롭게 부활하는 토대로서 작용한다. 세계화와 지역화에 맞서는 대안세계화 운동 1) 라틴 아메리카 사회운동 1980년대 초반 라틴 아메리카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외채·외환위기에 직면하여 미국과 IMF는 일차적으로 채권자 즉 초민족자본의 채권 회수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외채위기의 재발을 막는다는 명분 하에 강력한 경제구조조정과 정책개혁 프로그램을 강제하였다. 그러나 국제금융체계의 불안정과 (반)주변부 국가들의 거시경제적 불균형 속에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대안적 발전모델을 애당초 제시할 수 없었으며, 경제의 금융화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미봉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 얼개는 외채조정 방식을 ‘부채-주식 전환’ 중심으로 하며, 고금리에서 저금리로 정책기조를 전환하여 주식시장을 육성하고, 외환 및 자본거래를 자유화하고, 목표 환율대를 폐기하며, 금융산업 및 기업의 구조조정을 시도하여, 궁극적으로 해외로 도피한 자본을 다시 유인한다는 것이었다. 즉 ‘신흥공업국’을 ‘신흥시장(주식시장)’으로 전환하여 외채위기를 탈출하자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대중적 불만과 사회적 소요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경제개혁의 정치적 조건을 둘러싼 논쟁이 개시되었다. 이 과정에서 군부의 퇴진과 자유주의 또는 중도좌파의 집권이 권고되고 문민화의 구체적 경로로서 군부와 책임 있는 야당의 협상이 권장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대다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외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협상된 이행’에도 성공하지 못한다. 무능력하고 부패한 보수정당, 분명한 정치적 전망이 결여된 중도좌파 등 군부의 퇴진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대의제로 동원할 수 있는 정당의 역량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셈이다. 기존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를 추진함으로써 내적 위기를 경험하고 대중적 토대를 상실했다. 또 사회주의·공산주의 정당들도 독자적인 이념을 상실하고 내적 분할을 경험했다. 결국 기존의 어떤 정치세력도 분명한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를 등에 업고 새로운 인민주의자들이 대거 등장하기에 이른다. 새로운 인민주의자들은 ‘반정치의 정치’를 통해 경제적 위기와 계급적 갈등을 기존의 정치와 정치 엘리트, 정당과 의회제에 대한 공격으로 치환했다. 그러나 이들은 극단적 위기를 진정시키고 민족을 재건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여전히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용한다. ‘충격요법’의 과감성은 전통적 인민주의에 대한 국제금융기구와 자본가의 불신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한편 냉전질서의 해소 이후 과거 전략적 요충지로 간주되었던 지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원조와 군사적 지원이 삭감 혹은 철회되면서 이제 ‘적극적 배제’라는 문제가 새롭게 발생하게 된다. 미국은 자신의 이해에 있어서 사활적이라고 간주되는 지역에서는 냉전 시기 동안 육성해 온 군사적 동맹관계의 공고화를 꾀하지만, 세계경제의 통합으로부터 배제된 기타의 지역에서는 군사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에서 배제된 지역,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동유럽 등 황폐한 지역은 이미 무질서에 노출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벌이는 ‘저강도 전쟁’은 미주자유무역지대의 창설을 방해하는 세력을 마약-테러집단으로 범죄화 하여 소탕하기 위한 목적이다. 미국의 군사-안보복합체가 창안한 새로운 무기시스템은 자본의 세계화에 따른 사회의 황폐화를 겪고 있는 남반구 국가들의 인민 또는 무장세력에 맞서 미국 또는 그 동맹국이 시가전을 벌이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촉발되기 시작한 새로운 사회운동은 기존 정당과 노동조합이 선거정치에 매몰되거나 코퍼러티즘을 수용하면서 대중운동을 분할하는 상황을 극복하고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 세계화에 정면으로 맞서는 한편, 다양하게 분출하고 있는 사회운동 간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했다. 이들은 지난 해 11월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에 즈음하여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FTAA)’ 체결 논의를 중단시켰는데, 당시 차베스 대통령은 정상회의장 안팎에서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을 주장한 바 있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을 비롯한 역내 좌파 정권의 미래는 ‘무적의 제국’으로서 자신의 권력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비가역성’이라는 신화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간섭과 자본의 초민족화라는 구조적·객관적 조건에 의해 크게 제약된다. 실제로 FTAA 협상 타결 실패 이후 미국은 하위-지역 협정을 병행 추진하며 경제통합을 시도 중이다. 도미니카공화국-중앙아메리카-미국 자유무역협정(DR-CAFTA)을 법제화하고 파나마와 여타 안데스 3개 국가들과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 중이다. 한편 역내에서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인 브라질은 남미공동시장(MrcoSur) 8개 회원국을 확대 규합한데 이어 2004년 10월에는 안데스공동체(CAN)와 정치·경제 협정을 수립했다. 또 2004년 12월에는 총 12개국이 남미공동체(SACN)를 결성하는데 합의했다. 이에 거의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자주적인 경제정책을 실용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미국·브라질과 협상중이거나 모종의 협정에 가입하고 있다. 따라서 ALBA가 실질적으로 역내 국가들에 끼치게 될 영향력이 얼마나 클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사회운동들은 최근 들어 각 국에서 좌파 정권이 줄을 이어 등장하고 있는 현상이 남미 대륙에서 폭발하고 있는 자유무역, 군사주의, 사유화 정책에 반대하고, 자연자원과 식량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사회운동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좌파 정권에 대한 정치적 자율성’과 ‘각국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지 않도록 압박’하는 것을 재천명하며 대안적 지역통합의 노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미주사회동맹이 제출한 ‘미주대륙을 위한 대안’은 차베스 대통령이 제시한 ALBA와 최근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이 발의한 인민무역협정(TPC)에도 참조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들은 ALBA 협정이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다는 취지와 다르게 각 국 정상들이 주도하는 협정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미국 주도의 FTAA가 아닌 다른 형태의 지역적인 교류의 가능성을 이러한 시도를 통해 제시하며 FTAA 반대 투쟁을 조직하는데 이를 활용하고 있다. 2) 유럽 사회운동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유럽통합은 금융자본의 이동을 제약하는 규제를 철폐하고 공동시장을 개혁하는 차원에서 1970년대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이중에서 유럽화폐단위(ECU)와 환율조정제도(ERM)을 주축으로 하는 유럽화폐제도(EMS)는 특히 기술력과 생산력이 낮은 이탈리아와 같은 국가에게 타격이 되었다. 이탈리아는 대외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로 실질임금을 하락시키는 인플레이션과 수출가격을 하락시키는 평가절하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환율조정에 한계가 부가되자 이와 같은 정책은 불가능하게 되었고, 그 결과 노동의 신축화를 통해 노동일을 연장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방법이 추구되었다. 이어 유로를 단일화폐로 채택하기 위해 마스트리히트조약(1992)에서 제시되는 경제정책의 4가지 수렴 기준은 민족국가의 화폐 주권을 유럽중앙은행에 완전 이양하는 것을 의미했다. 유럽화폐제도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존재하던 개별 국가의 환율조정의 가능성은 완전히 폐기되었고, 이로써 기술력과 생산력이 열세인 국가가 대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신축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다. 반면 화폐동맹에 상응하는 재정동맹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복지정책은 여전히 민족국가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회원국의 재정정책 폭은 크게 제약을 받게 되었고, 이에 각국은 적자재정을 포기하고 균형재정의 범위 내에서 예산을 분배했다. 유럽연합을 출범시킨 마스트리히트조약, 유럽연합을 확대하려는 암스테르담조약(1997)·니스조약(2000)에 이어 2004년 회원국 정상들이 그 초안에 서명한 헌법조약은 유럽연합을 지지하는 다양한 조직들을 단일화하고 체계화하여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를 제도적으로 공고화하려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게다가 유럽연합은 입법권과 집행권을 모두 기술관료집단인 각료평의회와 집행위원회가 장악한 반면 유럽의회는 실제로 자문기관에 불과하여 ‘민주주의의 결핍’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유럽헌법조약은 유럽의 시민들이 직접 선출한 제헌의회에 의해 제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헌법’일 수 없었다. 또 유럽중앙은행이 완전한 독립성을 보장받고 유럽경제인회의와 같은 초민족자본가단체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우위가 명시됨으로써 유럽의 외교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배가 보장된다. 한편 유럽헌법조약에서 제시되는 ‘시민권’의 내용도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었다. 조약에 따르면 노동자의 기본권은 노사정 협약에 의해 크게 제약되고 피임·낙태·이혼과 같은 여성의 기본권도 카톨릭의 권위에 의해 제약된다. 특히 유럽연합의 시민은 회원국의 국적을 지닌 자로 한정됨으로써 유럽 이외 국가 출신의 이주자를 배제하고 있다. 경제위기와 그에 뒤이은 유럽통합은 결과적으로 전후 호황기에 구축된 노동 안정성과 사회복지 모델의 쇠퇴를 의미했다. 이러한 ‘사회적 민족국가’의 위기 속에서 한정된 일자리와 복지 서비스를 종족 공동체의 성원에 국한하여 배분함으로써 위기의 충격을 완화하고 낙후된 삶의 질을 회복해야 한다는 요지의 인민주의적 선동이 가세하면서 이주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이 점증한다. 프랑스 민족전선, 이탈리아 북부동맹, 오스트리아 자유당 등 극우정당은 이민 반대나 유럽연합 반대와 같이 인종주의와 인민주의적 반세계화 논리를 동원하여 세계화와 유럽연합으로 인해 피해가 가장 극심한 하층 노동자와 청년실업층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이에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ATTAC)이나 <공산주의재건당>(PRC)과 같이 대안세계화 운동을 추동하는 핵심적 사회운동들은 유럽헌법조약에 반대하여 ‘대안적 유럽’을 주창하며 노동권과 여성권을 핵심으로 시민권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광범하게 조직하고 있다.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은 금융세계화에 대한 발본적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하게 시민교육운동을 자신의 주된 과제로 천명하는 한편 정당이나 노조의 사회운동적 개조, 사회운동적 마르크스주의의 부흥에 복무함으로써 오늘날 유럽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진원이 되고 있다. 공산주의재건당은 ‘자율적이고 동시에 세계에 개방된 유럽, 자본주의적 세계화와는 다른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모델을 가진 유럽’을 주창하며 노동자운동과 페미니즘과의 결합, 정당의 사회운동적 개조를 이러한 전망 속에서 구현하고 있다. 이들이 주축이 된 유럽의 사회운동들은 2004년 10월에 열린 유럽사회포럼에서 채택한 사회운동 호소문을 통해 유럽헌법조약이 구현하고자 하는 유럽에 명백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한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전개 미국계 법인자본의 진출을 위한 사적 해외투자 확대 방식으로 고안된 마셜플랜을 통해 급격한 경제 부흥을 이룰 수 있었던 서유럽과 미국의 배후지로서 주로 미국계 법인 자본의 직접투자를 토대로 수입대체 공업화를 단행한 라틴 아메리카와 달리 동아시아는 반공·발전주의의 쇼케이스로서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원 하에 수출주도 공업화를 통해 성장해왔다. 미국은 냉전 이후 ‘군국주의 해체’에서 ‘전후 부흥’으로 대일본 정책을 전환한 뒤 대대적인 원조와 일본-동아시아 연계망의 형성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을 일본의 자원 공급지로 재정립했다. 이는 미국의 정치·군사적 지원 하에 일본을 정점으로 하는 역내 피라미드 망의 국제적 하청 체제의 수립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을 재통합하려는 시도였다. 또 지정학적 차원에서 중요성을 지니는 남한, 대만 등은 신흥공업국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은 미국의 역개방 정책에 따라 노동 신축화와 평가절하를 통해 대미 상품 수출 경쟁력을 확보한다. 그러나 냉전 질서의 이완과 더불어 미국의 역개방 정책이 철회되고 평가절상 압력과 함께 보호주의가 현실화되자 동아시아 경제는 일대 위기에 처한다. 1) 문민화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1979-80년 위기 이후 남한 경제는 새 케인즈주의적 의미에서 거시적 안정화와 금융과 기업 등 경제구조의 미국화라는 의미에서 미시적 구조조정 양자를 핵심으로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된다. 특히 1986-88년 ‘3저 호황’ 이후 재발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김영삼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WTO에 가입함으로써 세계화에 본격적으로 편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재벌을 주체로 하는 세계화는 오히려 반도체?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 등에서 고정자본투자의 급증과 이윤율의 급락을 초래함으로써 1997-98년 경제위기 및 외환위기로 귀결되었다. 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이 IMF의 충격과 노동자·농민의 대중적 저항으로 좌초되면서 야당세력은 군사정부 및 그들과 제휴한 자유주의 세력을 ‘지역패권주의’와 경제위기·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낙인찍으며 집권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들 집권세력은 오히려 보수주의 지역정당과 야합하는 한편 정책개혁의 실행력을 제고하기 위해 386세대와 진보적 지식인, NGO를 동원했다. 특히 NGO는 소액주주운동이나 낙천낙선운동을 선도함으로써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과 인민주의에 동조했다. 김대중 정권은 정리해고제 수용, 외환관리법 전면 개정, 적대적 인수·합병(M&A) 허용, 집단소송제 도입 등 김영삼 정부가 IMF와 맺은 협약에는 없었던 내용을 추가적으로 승인하였다. 아울러 비상대권을 활용하여 의회정치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국난극복’을 위해 ‘고통분담’을 호도하며 대중적 저항을 미연에 봉쇄한다. 결과적으로 당시 IMF 구조조정은 금융개방을 정점으로 재벌 및 금융산업, 노동시장을 국제금융시스템에 적합하도록 개조하는 것이었다. 외환위기의 결과 원화는 50% 정도 평가절하 되었고, 이로 인해 재벌들의 대미 수출을 통한 경쟁력은 점차 회복되었다. 그 결과 초민족자본과 이에 편승한 일부 재벌이 막대한 경제회복의 대가를 누린 반면, 노동자 대중은 이중삼중의 착취를 감수해야만 했다. 나아가 이러한 일련의 정책개혁은 장기적으로 재벌과 한국 경제에 대한 초민족자본의 금융지배가 강화되는 효과를 낳았다. 또 IMF 이후 남한경제는 장기침체에 진입했는데, 재벌이 중국을 통한 우회 수출을 시도하면서 국내 고정자본투자가 정체되었고 초민족자본의 지배에 따라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생산(GNP)의 괴리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7-98년 동아시아 위기 이후 남한을 비롯한 동아시아 경제는 수출달러의 환류와 자본도피를 통해 미국으로 자본을 수출함으로써 미국경제의 달러 발권이익과 이중 적자를 지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2) 장기불황과 노무현 정권의 인민주의 그러나 투기적 호황이 종료하고 ‘3홍 비리’가 폭발하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의 후과가 여실히 드러나며 집권 여당은 분열하게 되고, 이 와중에서 ‘노사모’와 ‘국민경선’ 등 초유의 정치 스타일에 의존한 노무현이 ‘반한나라당’이라는 부정적 동일성을 기초로 하여 정권 재창출에 극적으로 성공한다. 노무현 정권은 의회나 정당을 우회하여 대통령 비서진이나 자문단에 의존해 정책을 입안하고 미디어와 NGO를 동원해서 개혁을 합리화했다. 심지어 집권 초기 여권의 분당 과정에서 지지기반이 취약해지자 탄핵을 불사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과 집권 세력은 탄핵을 ‘의회쿠데타’로 규정하고 한나라당 등 반대세력과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공격을 통해 원내 과반석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장기불황이 지속되는 상황, 아울러 ‘북핵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은 자신의 주장과는 달리 진보적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에서 배제된 계층이나 지역에 대한 수혜를 약속하면서 대중을 실리주의적·지역주의적으로 동원하고 있으며, 각종 위원회를 남발함으로써 행정부 권력의 비대화를 동반한다. 다른 한편으로 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면서 정당의 사당(私黨)화를 꾀하고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념이나 정책보다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등 노무현 정권은 전형적인 인민주의적 정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의 인민주의는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조차 배제하며 노동자운동이 국가와 자본의 하위 파트너가 될 것을 일방적으로 종용한다. 노사정 위원회를 통해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과 경쟁을 촉진하는 한편 노동조합의 비리를 폭로하고 군사독재 시절을 능가하여 구속·수배 및 손배·가압류를 남발함으로써 노동자운동을 무력화한다. 또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심이 원인이라며 기존의 노조를 공격하거나 도리어 정규직의 ‘유연화’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자고 호도한다. 한편 노무현 정권은 이라크 파병을 강행함으로써 미국의 무한 전쟁에 적극 동조하고 미국의 탈냉전 군사전략에 조응하여 한미동맹 현대화와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함으로써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와 동시에 경제특구 확대, 금융규제 완화 등을 통해 초민족자본을 적극 유치하고 대내적으로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투기붐을 조성함으로써 장기불황을 탈출하려 한다. 무엇보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 FTA를 체결함으로써 미국과의 포괄적 동맹을 강화하는 것만이 남한 경제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의 약화와 중국 위협론의 부상이라는 상황에 처한 지배계급이 한미 FTA를 기화로 다시금 재벌 중심의 세계화를 추진하려고 하는 셈이다. 3)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한미 FTA-전략적 유연성 비판 이러한 한미 FTA 체결이 초래할 효과는 자명하다. 우선 한미 FTA는 지금까지 추진되어온 금융세계화의 구도를 강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사회 전반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정착시켜 투자자의 자유로운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는 반면 노동자 대중의 권리를 초민족자본의 이윤 추구 활동을 방해하는 장벽으로 취급하고 철저하게 짓밟는 것이 바로 한미 FTA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 일반적 결과는 노동의 불안정화와 이로 인한 노동자 대중의 궁핍화다. 또 교육, 보건의료, 기타 공공사회서비스 부문을 초민족자본의 투기 대상으로 전락시켜 민중의 기본적 권리를 박탈한다. 아울러 농업 역시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인해 대대적인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물론 초민족적 농기업이 주도하는 녹색혁명에 더욱 깊숙이 종속될 것이다. 반면 지배계급이 주장하듯 한미 FTA가 남한 경제의 장기침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가령 경상수지 흑자가 감소할 것인데, 그럴 경우 국내총생산과 국민총생산도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미 FTA 체결과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통한 한미 관계의 포괄적 동맹 강화는 역내에서 미국의 지위를 재차 공고화한다. 우선 미국은 한미 FTA 체결을 기반으로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초민족자본의 활동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자유무역체제를 더욱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미국은 ‘개방적 지역주의(open regionalism)’ 구상을 통해 동아시아의 배타적 블록화는 물론 EU와 NAFTA 등 역내 무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역 블록들의 배타성을 경계하면서 WTO 체제의 순항과 자유무역 체제의 완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는 APEC을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협정으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에서 확인된다. 한편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미군이 주둔한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사활적 이익을 갖고 있다. 미국은 2002년 9월 ??국가안보전략??을 통해 자유기업 또는 자유무역·자유시장이라는 원칙이 세계 각지에서 문제시될 때 미국의 국가안보는 보장될 수 없다고 천명하고 예방적 선제공격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주조했다. 이러한 국가안보전략에 조응하여 미국의 군사전략도 변화하는데, 군사분야혁명(RMA)과 소위 ‘럼스펠드 독트린’이라 불리는 군대의 경량화·유연화·첨단화가 그것이다. 이에 따라 해외 주둔 미군의 재편(GPR)이 추진되는데, 한미동맹 현대화 및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으로의 전화, 한국군(‘자주 국방’)과 한·미 연합군 전력의 변화에 대한 요구는 그 일환으로 제기되는 것이다. 또 부시 행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미 주력 군사력 배치의 중심을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옮기는 동시에 동북아 중심의 전력배치 구조를 동남아로 확대할 것을 주장해왔다.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신흥시장으로서 미국경제에 사활적 지위를 점하고 있는 반면 ‘북핵 위기’와 ‘잠재 세력(중국)’의 부상, 중동과 남아시아 지역에서 다양한 수준의 군비경쟁 등 대규모 군사적 경쟁과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항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시아 전역의 미군기지와 그 기반 시설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고 원거리 작전을 지속할 수 있는 역내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개발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동시에 역내에서 발생하는 ‘우발적’ 사태에 대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기동성과 신축성을 확보하는데 초점을 맞춘 전략이 모색되어 왔다. 이에 따라 범태평양 동맹을 지지하는 한-미-일 군사 동맹의 공고화가 추진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주한 미군 이전/재배치가 불러올 파장이 비단 한반도 전쟁위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회운동의 이념을 재건하자, 노선을 개조하자 그러나 현재 남한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회운동의 실체는 극히 미약하다. 이는 현존하는 운동 내에서 사회변혁에 대한 지향이나 이념이 대단히 취약하며 운동의 지역적·대중적 토대 역시 점점 유실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적으로 한미 FTA 저지 투쟁만 놓고 보더라도 대개의 반론이나 대응은 체결 절차에 대한 비판 또는 민족적·계층적 이해를 방어하거나 산업별·부문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실정이다. 지난 2차 협상 저지 투쟁 당시 ‘정권 퇴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실상 이에 참여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어떠한 정치적 목표를 내걸고 단결과 연대를 이루어 낼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전선 확대’라는 명목으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과의 연계를 부정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그러나 민족적·계층적 이해를 방어하거나 산업별·부문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일관할 경우, 정부의 기만적인 피해 부문 지원 계획에 농락당할뿐더러 그에 맞선 투쟁을 협소화하고 무력화하는데 기여할 따름이다. 따라서 한미 FTA를 둘러싼 사회운동의 대응은 형식적 대응이나 코포러티즘적 반대를 넘어 한미 FTA가 제기되는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한미 FTA를 통해 지배계급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민중적 대안은 무엇인지를 제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는 한미 FTA 협상을 중단시키는 것이지만 지배계급 내 일부 분파조차 명목상으로 한미 FTA 체결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한미 FTA 체결 저지는 우리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미 FTA 저지 투쟁을 필두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 비정규악법-노사관계로드맵 반대 투쟁을 펼쳐나감에 있어 노무현 정권 퇴진이라는 분명한 방향 속에서 정치적·조직적 집중점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각 사안은 현재 집권 세력을 포함한 지배계급 모두에게 반동적 질서재편을 위해 사활적인 과제로 제기되는 것인 만큼, ‘타협’의 여지는 극히 협소하며 반대 세력에 대한 탄압과 회유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집요할 것이다. 그만큼 각각의 투쟁이 정권 퇴진이라는 방향 속에서 공명할 때에만 운동의 공간은 확장될 것이고, 이 확장된 공간을 통해 각 사안에 반대하는 투쟁은 개별적으로도 더욱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등 주요 연대체는 각 사안별 대응을 넘어 ‘정권 퇴진’이라는 기조로 통일적인 활동을 펼쳐나가는 것에 소극적인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비단 운동주체의 ‘진정성’의 문제를 넘어 대중운동의 상황을 반영하는 문제라고 할 때, ‘정권 퇴진’이라는 구호를 채택할 것인가 여부로 연대의 범위를 제한하기보다는 대중운동들의 민주적 조정과 통합을 구체화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각각의 투쟁이 상정하고 있는 정치적·조직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정권에 맞서 민중의 연합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점을 끈질기게 설득해야 한다. 더불어 이미 ‘레임덕’에 빠진 노무현 정권이 우익적 반격에 노출된 상황에서, 정권 퇴진 투쟁을 막연한 분노의 표출이나 즉자적 반발의 차원에서 협소하게 이해해서도 곤란하다. 단발성 대중 동원을 넘어 투쟁의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교육·토론·선전 등 일상적 정치활동을 복원하면서 사회운동의 이념적 지향을 수립하고 대중적 저항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단일연대체’의 전망도 신자유주의 반대의 맥락에서 견결한 정세적 투쟁을 조직할 때 비로소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은 결국 기존 사회운동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개조하는 과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운동이 기존의 성과를 방어하는데 급급하거나 업종별·산업별 이해득실에 머무르지 않고, 신자유주의에 맞선 사회운동의 주체로 서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의 농업 포기 정책에 의해 궤멸 상태에 처한 농민운동은 기존의 농산물 개방 반대 투쟁을 넘어, 초민족적 농기업에 지배·포섭되어 자기착취 당하는 농민의 현실을 인식하고 이에 걸맞는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여성운동은 ‘노동과 가사의 양립’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여성을 신자유주의의 보완물로 활용하는 전략에 편승하여 제도화 하려는 경향과 단절하고, 여성권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을 새롭게 개시해야 한다. 동시에 대안세계화를 지향하는 사회운동의 경향성을 창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 세계화에 대한 객관적·이론적 이해를 바탕으로 운동 방향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창출해야 한다. 지방적 수준에서, 전국적 수준에서 나아가 범지역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들의 통합과 조정을 위한 프로세스를 구상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파와 현장을 넘어서는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고 연합적 조직틀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그 일환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고양하는 노동자-시민 교육운동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대안세계화를 지향하는 활동가·시민들의 운동체이자 교육기관으로서, 또 사회운동들의 교류와 소통을 매개하는 통합적 사회운동체로서 지역적-대중적 토대를 강화하고 그 역량을 전국적으로 응집시켜 나감으로써 이 과정에 적극 복무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투쟁본부를 구성하고 재수정안을 내기로 한 후 그 안이 나올 때까지 모두가 조용하다. 정부에서는 9월 정기국회 때 반드시 통과시키겠노라고 장담하는데 예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우리의 요구를 수정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에도 이런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으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이미 정해진 기조는 '노동법 개악 저지, 권리입법 쟁취'였기 때문에 쉽게 정권과 자본의 개악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기간제 사유제한’과 ‘불법파견 고용의제’ 조항 중심으로 재수정안을 낸다는 것은, 이 내용이 포함되기만 하면 정부의 개악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선언이기에 사실상 기조의 수정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기조 변화, 말장난으로 본질 흐리기 기간제 사유제한과 불법파견 고용의제 조항 중심으로 재수정안을 내는 것은 명백하게 투쟁 기조가 변한 것이다. 노동법 개악 자체를 저지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비정규직 권리 입법을 쟁취하겠다던 투쟁 기조가, 우리의 요구가 일부 들어가기만 하면 개악안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내용으로 변질된 것이다. 왜 그러한가? 이 수정안은 정부의 ‘특별법’을 인정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기간제에 대한 정부의 입법안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다. 특별법을 통해 기간제를 일반적 고용형태로 만들려는 의도이다. 이에 맞서는 우리의 요구안은 ‘근로기준법’에 기간제 사유제한을 명시하는 것이었다. 사용사유만 명시하는 이상 새로운 법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수정안은 특별법을 인정하고 그 안에 사유제한을 넣자는 것이다. 이는 기간제에 대한 확대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특별법으로 기간제라는 고용형태를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어 놓게 되면 이후에는 이 법안의 시행령을 고치는 것만으로도 기간제를 엄청나게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파견법을 봐도 알 수 있다. 파견법은 처음 만들어질 때 26개로 허용업종을 제한했다. 하지만 이제 자본은 그 법안의 개정을 추진하면서 허용업종의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다시 말해 특별법을 허용하면 ‘기간제’라는 고용형태가 일반화되고, 그 안에서 사용사유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사유는 언제든지 확대되고 변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특별법을 인정하는 사유제한’은 결코 사유제한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요구였던 ‘근로기준법상의 사유제한’이 슬그머니 ‘특별법 상의 사유제한’으로 변질되고 있다. 재수정안 중 ‘고용의제 조항’(불법파견임이 확인되면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조항)을 파견법에 넣겠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인사이트 코리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통해 불법파견의 경우 몇 년간 일했는가와 관계없이 불법파견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그것은 지난한 투쟁의 성과였다. 그런데 재수정안에는 우리의 성과인 불법파견 고용의제를 파견법에 명문화하는 대신 파견법 허용대상을 확대하는 정부의 안이 담겨 있다. 물론 정부의 안이 26개 허용업종을 그대로 두는 것일 수는 있으나, 시행령 등으로 파견허용 업종을 바꿀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파견허용 업종을 무한정 확대하는 것과 똑같다. 어떤 명분을 붙인다 하더라도 고용의제 조항과 파견허용대상 확대는 결코 맞바꾸기를 할 것이 아니다. 고용의제 조항의 실효도 무척 의심스럽다. 검찰에서는 파견허용 대상을 확대해서 합법파견이 확대되어야 불법파견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하겠다고 한다. 다시 말해 불법파견에 대한 제재는 파견법 확대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부에서는 몇 가지 시정조치 만으로 불법파견을 ‘진성도급’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제는 불법파견으로 인정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파견법 허용대상 확대와 불법파견의 경우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조항을 서로 바꿔치기 하는 것은 노동자의 요구가 아니라 자본의 요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부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재수정안이 이런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기조는 여전히 ‘근로기준법 상의 기간제 사유제한’이고, ‘파견 허용업종 확대에 대한 저지’를 분명히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기를 원한다. 또는 민주노동당의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재수정안이 관철될 확률이 없기 때문에 단지 정부가 밀어붙이기로 통과시키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재수정을 한다는 명분으로 시간을 벌어보자는 주장이 진심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은 정부 법안의 수용이라는 흐름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기조 변화의 과정 이런 기조 변화의 과정은 매우 불행하게도 각급 대중단위의 논의를 제대로 거치지도 않았다. 그냥 스리슬쩍 정부의 개악안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가면서도 마치 우리 입장에 변화가 없는 것처럼 스리슬쩍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이러한 기조의 변화에 대해서 제대로 된 문제제기를 하는 곳도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매일노동뉴스 등을 통해서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에 대한 왜곡된 평가가 유포되었다. “명분만 갖고 투쟁하느라 실리를 잃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국 정부안을 수용했어야 한다는 말을 이리저리 돌려 치기 한 것에 불과했다. 민주노총은 5월 1일 메이데이 집회에서도 우리의 요구는 ‘노동법 개악 저지, 비정규 권리입법 쟁취’라고 분명히 했다. 그러나 양대 노총 공조 복원을 논의하는 5월 14일 회의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기간제 사전 사용사유 제한’을 중심으로 비정규법안 재논의(재수정)를 위한 공동투쟁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기조가 바뀐 것이다. 이런 기조변화의 근저에는 노사정위원회 재편과 복귀, 그리고 한국노총과의 공조복원이라는 입장이 깔려있었다. 민주노총은 5월 1일 메이데이 집회를 통해 한국노총과의 공조를 이야기했고, 한국노총에서는 비정규권리입법을 제외하면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었다. 5월 9일 열린 상집 수련회에서 비정규법 재논의와 노사관계 민주화방안, 특수고용직 노동3권 보장, 한·미 FTA 협상 저지 투쟁 등 5~8월 계획에 대해 토론을 벌인 결과, 양대 노총 공조 복원 추진을 재확인하고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5월 11일 양대 노총 사무총장 및 정책실무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양대 노총 공조복원과 비정규법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고, 재논의(재수정)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공유했다. 한국노총은 일관되게 정부 및 열린우리당과 입장을 같이 하면서, 사실상 기간제 사유제한을 인정하지 않는 등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안을 밀어 붙여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노총과 공조를 하고자 한다면 반노동자적인 한국노총의 기조를 변화시켜야지 민주노총의 기조가 변화되어서야 되겠는가? 15차 중집에서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를 결정한 이후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가 민주노총이 노동법 단일안을 만들어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나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투쟁본부를 구성하고 사실상 정부의 법안을 수용하는 재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민주노동당은 6월에 법안이 처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주장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재수정을 통해서 정부의 입법을 받아들일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별다른 문제제기나 대중적 토론도 없이 투쟁의 기조가 슬쩍 변해버린 것이다. 왜곡된 특수고용 관련 논의 그런데다가 지금은 비정규직의 또 한 유형인 특수고용 관련 논의도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다뤄지고 있다. 중앙일보에 보도된 대로 정부는 이미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해 ‘경제법상 보호’를 방침으로 정해놓은 상태였다. 공정거래법 등으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문제점을 일부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정말로 ‘자영업자’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2000년 특수고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때만 해도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고 근로기준법을 어느 정도 적용할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그런데 정부의 입장은 계속 후퇴했고, 법원의 판례도 반동적으로 기울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자성을 부정해왔다. 2003년 노사정위원회는 공익위원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직군을 분리하고 특별법을 만들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법 적용을 배제하고 ‘유사2권’을 주는 안을 내놓았다. '유사2권'이라 함은 노조가 아닌 단체를 결성할 권한을 준다는 것이고, 단체교섭에 대해서도 단체교섭의 효력을 인정하지는 않는 임의 교섭에 불과한 권한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여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투쟁본부’를 구성하고 노동자성 완전 쟁취를 위해 투쟁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특수고용 문제를 논의한다고 하면서 2003년도에 이야기했던 내용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것도 ‘노동계의 합의라는 명분을 붙여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그동안 단결권이 워낙 심각하게 제한되어 왔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래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여를 해왔다. 그러나 이미 정부에서는 ’경제법상 보호‘라는 원칙을 갖고 있었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직군별로 분리를 해서 직군별로 다른 별도의 보호조치들을 약간씩 해주겠다고 하고 있다. 특수고용 논의에서 타협의 여지는 없다. 오히려 왜곡과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정부의 의도가 관철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에서는 특수고용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노사정대표자회의의 논의를 통해 뭔가 특수고용을 위한 조치들이 나올 수 있을 것처럼 왜곡된 인식을 퍼뜨린다. 정부에서 특수고용 문제를 노사정대표자회의의 현안으로 다루는 것에 합의한 이유는 ‘ILO 고용관계 권고안’에서 특수고용에 대한 노동자성을 명시했고, 정부는 이런 부담에 직면해서 ‘우리도 논의하고 있다’는 명분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경제법상 보호’를 원칙으로 갖고 있는 정부 및 자본과는 아무리 논의해도 타협의 지점이 없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은 투쟁으로 쟁취해야 한다. ILO 권고안에서 말한 바, 노동자성을 인정하라는 우리의 요구는 너무나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을 통한 정세의 주도권 행사하기 정부에서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재수정 논의를 진행하는 동안 나름대로 노동법 개악안 굳히기를 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올해 초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이 통과되면 차별 시정을 위한 기준을 정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이야기해왔다. 노동법 개정을 정부가 솔선해서 관철시키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는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2001년부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입법 논의가 시작되면서 정부는 노동계와의 합의를 통해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서 나옴으로써 이러한 기도는 무산되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정규직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안의 필요성을 이끌어내려고 했고, 이런 이데올로기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신이 선 2004년 9월 노동부가 단독으로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을 내밀면서 이것이 ‘비정규보호법안’이라고 거짓선전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이는 ‘보호법안’이 아니라 ‘비정규직 양산법안’이라는 것이 폭로되었다. 그러자 정부는 다시 시간을 질질 끌면서 노동계와 합의의 외형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자신들이 다시 비정규 문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것이 바로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으로 표현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5만 4천명 정규직화’라고 주장하니 무척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노동법 개악을 전제로 한 것이다. 즉 일부를 정규직화 함으로써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일반화할 수만 있다면 크게 손해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5만 4천명 정규직화’라는 주장도 허구적인 것이다.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해왔던 각종 구조조정 정부지침의 폐기 없이, 정부가 불법적으로 사용해온 비정규직들의 투쟁의 현실을 외면하고, 비정규노조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발표된 대책이 과연 비정규직의 확산을 막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는 ‘상시적 업무의 정규직화’라고 주장하지만 정규직화가 아니라 재정이 축소되면 얼마든지 계약해지 되는 ‘무기 계약 노동자’로 전환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일부는 노동법 개악안 조항 중 하나인 ‘평생 계약직’으로 쓸 수 있는 노동자로 전환시켜서 계속 고용은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자를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상시업무 개념도 자신들이 마음대로 결정하여 사실상 상시업무인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처우도 개선되지 않고 ‘합리적 차별’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차별이 용인된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합리적 외주화의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공공부문의 전 영역으로 외주화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비핵심업무는 외주화 할 수 있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핵심업무에도 외주화를 할 수 있는 사유를 열어둠으로써 이제까지 진행된 외주화를 모두 정당화하고 이후에도 이루어질 모든 종류의 외주화를 합리화하려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간제 노동자들은 이제 외주·용역·도급 등 간접고용 노동자로 전환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공공부문 사유화가 진행되는 과정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뭔가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면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 정세에서 주도력을 확보한다. 이 개악안이 뭔가 노동자에게 유리한 점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심어놓는다. 하지만 노동부의 ‘Q&A 자료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결국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방안이다. 돈도 많이 안 들고 합리적인 차별을 만들고, 외주화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노동부 입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 노동법 개악에 대비하는 자본가들의 발 빠른 행보 정부만 정세의 주도력을 발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가들은 이미 법안이 통과될 것에 대비하여 발 빠르게 대응을 하고 있다. 자본가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계약직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을 비롯한 공공부문에서도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한 재계약을 하지 말 것을 지침으로 내리는가 하면, 서울대병원에서도 7년 이상 장기적으로 계약을 해왔던 노동자들에게 재계약 불가 통보를 내고 있다. 이미 2년 이상 일해 왔던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한 대량해고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기간제 특별법이 ‘2년 이상의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는 법’이 아니라 ‘2년이 되기 전에 노동자들을 잘라내는 법’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법안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장기계약직들에게 자칫 혜택이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미리 해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기간제를 없애고 외주화로 가는 곳도 있다. 철도노조가 입수한 철도공사의 ‘비정규직 보호 법안 관련 비정규 계약직 대책 검토(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따르면 철도공사는 지난 7월 24일 기획조정본부 회의를 통해 상시업무 직접고용 계약직 노동자들을 2007년 1월 1일자로 전면 외주화 할 것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규모는 3,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정규직과 동일업무를 수행하는 역무, 수송, 개집표, 종합안내, 홈안내, 방송원 등 모든 직접고용 계약직을 외주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나 공사에서 오히려 기간제 법안을 핑계삼아 기간제 노동자들을 외주화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은행권에서는 기간제 노동자들에 대해서 ‘독립직군제’를 실시하면서 고용은 안정되지만 차별을 영구화하는 제도를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은행권이 말하고 있는 고용안정 논리는 허구이다. ‘독립직군제’는 노동자들을 2년 간 시험 사용을 해서 평점을 매기고 A, B, C, D 등급 중 C, D 등급을 받은 사람은 계약에서 탈락시키는 제도이다. 간신히 계약에 성공해서 무기계약 노동자가 된다 하더라도 승진도 없고 성과급제로 운영하면서 계속 경쟁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나마 나중에는 도급화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파견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은 불법파견을 진성도급화하는 방법을 개발해냈고, 작업장에서의 몇 가지 조치, 예를 들어 도급 업체에서 관리자를 따로 두어서 작업 관리를 하게 하거나 자바라 등으로 작업장을 분리하는 것, 그리고 전환배치를 통해서 사내하청만으로 작업공정을 유지하는 것 등을 통해서 불법파견으로 인정될 여지 자체를 없애고 있다. 물론 예전처럼 도급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 통제는 여전하지만 음성적인 방식으로만 관리 통제가 이루어지고 눈에 드러나는 곳에서는 마치 도급업체가 전권을 행사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파견허용이 확대될 것에 대비해서 대기업들이 파견사업에 진출을 하고 있다. 아직 파견법이 개악되지 않아서 파견허용업종이 확대되지 않았는데도 파견이 가능하지 않는 곳에 이미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등 사람을 대상으로 한 돈벌이가 횡행한다. 이렇게 노동법 개악이 진행되는 동안, 그 폐해는 이미 눈에 드러나고 있다. 자본은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2년에 한 번씩 잘라낼 준비를 하고, 차별을 합리화하고, 그리고 도급을 확대한다. 정부의 개악안이 통과되는 순간 우리 노동자들 앞에는 이런 고통이 기다린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이런 고통을 보면서도 이런 고통을 양산하는 정부의 노동법 개악안을 수용하자고 주장하는가?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법 개악을 막아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정권과 자본의 노동법 개악을 막아낼 힘이 없을 수도 있다. 열심히 투쟁했으나 패배한다면 물론 우리는 상처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그 패배를 두려워하여 재수정 운운하게 된다면 우리는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노동법 개악을 거부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억누르는 길이 될 것이다. 정말로 우리가 정부의 노동법 개악을 뒤집을 만한 힘이 없다면, 우리의 선택은 ‘명분이냐, 실리냐’가 아니다. 그 때 우리의 선택은 ‘명분과 실리 둘 다를 정부와 자본에게 내줄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저항으로 우리가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후 투쟁의 가능성을 만들 것인가’에 있다. 심지어는 노동법 개악을 우리의 힘으로 막지 못한다 하더라도 ‘노동계의 합의’라는 외형을 만들어서 정부에게 명분까지 달아주는 우를 범하지 말자. 그런데다가 우리는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죽을힘을 다해서 이 투쟁을 조직해오지 못했다. 형식적인 투쟁선언이 아니라, 정말로 최선을 다한 조직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투쟁 기조를 확인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일반적인 고용형태로 만드는 기간제 특별법은 당장에 폐기시켜야 한다. 파견법을 철폐할 힘이 없다면 개정안 자체를 상정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다시 비정규직의 권리 입법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국회 안에서의 타협 놀음에 조합원 대중을 동원하면서 말장난을 해왔던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힘을 발휘할 기회와 능력을 잃어버렸다. 투쟁의 힘을 다시 되살려야 한다. 그러려면 다시 한 번 기조를 분명하게 하고 토론에 나서자.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투쟁할 것을 이야기하자. 조합원들에게 막연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이 법안이 미치는 영향, 그리고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득하자. 또한 이 투쟁은 노사관계 로드맵과 분리된 투쟁이 아님을 확인해야 한다. 정부와 자본은 애초부터 이 두 가지를 분리하지 않았다.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길들이기를 위해서 먼저 유연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완성하고자 했고 그것이 바로 비정규노동법 개악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바로 노사관계 로드맵이었다. 지금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결국 이것은 무산될 것이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민주노총은 11월 투쟁계획을 세우고 있다. 노사관계 로드맵과 비정규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을 분리시키지 말고, 함께 힘을 모아서 투쟁 전선을 세우자. 끝까지 힘을 모으자. 뿐만 아니라 지금 정부의 노동법 개악으로 인해서 이미 고통을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투쟁의 주체를 새롭게 세우고 전선을 확대해야 한다. ‘경제법상 보호’를 운운하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정권에 맞서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투쟁을 준비하고 있고, 원청의 사용자 책임 인정을 내걸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투쟁하려고 한다. 지금 기간제 노동자들은 정부 입법으로 인해서 벌써부터 해고를 당하고 있다. 아무리 사탕발림을 해도 이 노동자들의 해고와 고용불안은 계속된다. 이 투쟁에 힘을 다해야 한다. 집중해서 투쟁 주체를 세우고 맞서야 한다. 이 노동자들의 상황은 우리 전체 노동자들이 곧 경험하게 될 상태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노동법 개악, 2년 간을 끌어온 개악안 저지투쟁 속에서 우리 모두 지치고 무기력해지고, 심지어는 무감각해졌다. 하지만 안정되게 일할 우리의 권리를 이렇게 무기력하게 송두리째 내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재수정’이라는 미명 아래, 조금이라도 얻어야 한다는 미명 아래 자본과 정권에게 비정규직 전선의 주도력을 넘겨주는 우를 범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우리가 힘을 내는 만큼, 우리가 힘을 모으는 그만큼, 우리는 정권과 자본의 의도에 균열을 만들고 투쟁을 예비할 수 있다. 그러니 작은 힘이라도 다시 모으고 다시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