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경제위기로 전 세계 민중은 실질임금 하락, 실업 증가, 빈곤의 확산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임금삭감, 정리해고 등 위기는 노동자 민중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으며, 이명박 정부는 노동신축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노동자 민중의 저항을 무력화하려는 여러 가지 법제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2008년 말부터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려는 시도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이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었고 G20 정상회의를 비롯한 몇몇 계기를 통해 국제적인 공동행동이 시도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고용 및 임금을 둘러싼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방어하기 위한 방안을 풍부화하기 위해 2009년 5월 27일 “경제위기와 노동조합의 대응”이라는 제목의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각 국 노동조합의 경험을 공유하고 대안적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이 자리에는 민주노총, 이탈리아노총(CGIL), 브라질노총(CUT), 남아공노총(COSATU), 호주노총(ACTU)의 정책 담당자들이 발표자로 나섰으며, 민주노총 산하 여러 노조의 활동가, 조합원들이 참석하여 논의를 펼쳤다. 1부: 세계경제위기의 원인과 대안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1부에서는 세계 경제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향후 정세를 전망했다. 기조발표자로 나선 제라르 뒤메닐 파리 10대학 정치경제학 교수는 현재의 위기를 자본주의의 가장 최근 형태인 신자유주의의 위기로 규정하고, 위기의 원인으로 금융세계화와 자본의 극단적 이윤추구를 한 축으로, 미국의 무역적자(대외적 불균형), 과잉소비와 가계부채의 상승(대내적 불균형)을 또 다른 한 축으로 제시했다. 그는 현재의 위기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예측 불가능하지만 위기가 언제 끝날지 보다는 위기 이후 어떤 사회가 도래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이며 이런 상황에서 민중들의 광범위한 투쟁이 위기 이후의 상황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분석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현재의 위기 이전에도 자본주의는 세 차례의 구조적 위기를 겪었다. 1980년대 유럽에서 발생한 불황, 1930년대 대불황,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발생한 1970년대 위기가 그것이다. 현재의 위기를 포함하여 네 차례의 위기를 겪으며 자본주의는 여러 중요한 변형을 겪게 된다. 첫 번째 위기 이후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특징으로 하는 법인기업의 등장(법인혁명), 급여를 받으면서 자본의 이윤 극대화에 종사하는 관리자계급의 등장(관리자혁명), 거대금융기관의 부상(금융혁명)을 거쳐 미국 헤게모니가 형성된다. 그러다가 두 번째 구조적 위기가 발생하고 두 번째 새로운 자본주의 시기인 제국주의/뉴딜 시기가 개시된다. 또한 자본가계급 내 이해관계 충돌의 결과로 사회적 타협이 발생했고 이 계급의 소득과 권력이 위축되었다. 세 번째 위기 이후 뉴딜시기에 한계에 부딪혔던 자본가 계급의 소득과 이윤을 회복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2차 금융헤게모니가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 무역자유화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이루어졌고, 국제 금융시장이 형성되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모든 노동자들이 경쟁하게 되었고, 이로써 관리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이 소득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폭발한 네 번째 위기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지속불가능한 것임을 입증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미국 중앙은행은 금융메커니즘을 미국 내에서 통제할 수 없게 되었고, 미국의 대외 불균형은 다른 나라들이 미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뒤메닐 교수는 현재의 위기가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주고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전 세계적인 대중 투쟁이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며 기조발표를 마무리했다. 지정토론이 뒤를 이었다. 브라질 노총의 켈트 야콥슨 국제국장은 현재의 위기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경제적 측면 뿐 아니라 정치적 측면 역시 함께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930년대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파시즘, 소비에트주의, 자유주의가 대결하여 미국이 헤게모니를 쥐게 된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가 전개되는 현재 전반적으로 저항의 주체들이 매우 취약한 상황에서 단기적으로는 가장 잘 조직된 노동조합이 정치적 대응에 대한 책임을 지닌다고 그는 강조했다. 각국 정부가 노동자 민중 다수의 이익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도록 추동하는 데 노동조합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지정토론에 나선 이탈리아 노총의 스테파노 팔미에르 경제정책국장은 뒤메닐 교수의 분석에 동의를 표하며 지배계급이 나머지 계급을 체계 밖으로 밀어내면서 불균형과 불안정성을 심화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 가운데 노동조합이 최고경영진의 보수의 급상승, 대기업 통폐합, 인수합병 등을 노동자들의 안전과 복지에 대한 대안 없이 근시안적으로 수용했던 것을 반성적으로 평가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좌파 정치세력 및 노동자운동이 취약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국제적인 연대로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 토론자는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정용건 위원장이었다. 그는 지난 4월 초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 금융감독과 금융규제를 위한 국제공조 계획을 담은 합의문이 발표되었음을 소개한 후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계급을 뛰어 넘어 대중과 함께 하는 투쟁으로 변화를 추동하고 우리가 원하는 사회경제 시스템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이정희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경제위기 하에서 각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이에 대한 금속노조의 투쟁과제를 소개했다. IMF 위기 당시에 대공장이 먼저 타격을 입었다면 현재는 중소기업이 먼저 영향을 받고 있는데, 특히 외국계 자본이 구조조정에 대해 공세적인 태토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도 기업을 국내 자본이 인수할 수 없어 해외에 매각될 경우, 기술적 역량과 잉여의 유출, 노동조합 파괴의 양상이 나타나며 악랄한 형태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더라도 투쟁할 대상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뒤이어 △실업보험 확충 및 국민기초생활법 적용 대폭 확대 △비정규직 포함 총고용 보장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 유지/확대, 주간연속 2교대제 전면시행을 통한 일자리 창출 △재벌 잉여금 출연과 투기자본 규제로 고용유지와 중소기업 지원 △제조업과 중소기업 기반 강화라는 금속노조의 5대 대정부 요구안을 소개했다. 지정토론자들의 문제제기 및 토론에 대한 뒤메닐 교수의 답변이 이어졌다. 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가, 노동조합의 대응 세 측면으로 나누어 추가설명을 제시했다. 우선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 세계 노동자들을 경쟁하게 만든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며 대안세계화를 기치로 국제적인 연대를 이루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가 문제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이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현재의 국가는 계급사회에서의 제도이며, 국가 없는 신자유주의는 없다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를 관철시켜온 것이 바로 국가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뉴딜이나 사민주의가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급과 광범위한 민중계급의 투쟁이 이후 상황을 주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부: 경제위기에 맞선 노동조합의 대응전략(고용, 임금을 중심으로) 2부에서는 각국에서 경제위기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이에 대한 각국 노총의 대응계획은 무엇인지를 공유했다. 첫 번째 발제자인 이탈리아노총의 스테파노 팔미에르 경제정책국장은 경제위기로 인하여 노동자간 격차가 커지고 있는 양상을 소개했다. 그는 남부와 북부의 격차,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의 격차,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외국인혐오를 동원하여 차별적 경향을 제도화하는 한편 이전 중도좌파정부가 취해놓은 보호조치들을 무력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도 임금격차 문제가 심각하다고 강조했는데, 지난 20년 동안 임금격차가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왔다고 했다. 특히 최상위층의 임금상승률이 하위층 임금상승률의 4배라고 했다. 지난 25년 동안 실질적으로 경제생산성이 14.3%나 늘어났지만 이중 노동자에게 돌아간 혜택은 3.8%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가져온 모델이 소수에게만 혜택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노총은 사회정의와 좋은 일자리를 목표로 한 새로운 사회협약을 제안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구체적 요구로 3년간 GDP 1%를 좋은 일자리 확충을 위해 투자할 것과 노동자의 권리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단기적 정책을 실시할 것, 유럽차원의 사회적 연대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2010년까지 해고 중단, 복지네트워크 강화, 사회보장 적용범위 확대,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사회보장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재정 확충, 이전 임금의 80%를 보장하는 실업수당 지급 등을 경제위기 극복 방안으로 제출했다고 소개했다. 이런 요구를 가지고 이탈리아 노총은 지난 4월 1일 로마에서 총력투쟁을 전개했으며, 5월 14일~16일에는 유럽 차원의 공동투쟁을 전개했다고 소개했다.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이탈리아노총은 임금상승과 노동권 확대를 위한 투쟁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으로 브라질노총의 켈트 야콥슨 국제국장이 브라질의 상황을 소개했다. 2008년 10월~11월 위기가 명확해지자 브라질 은행들은 자금부족을 이유로 신용공급을 중단했다가 정부가 소비자 신용대출을 회복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한 자금을 곧장 정부 채권에 대한 투기자금으로 유용했다고 보고했다. 뿐만 아니라 경쟁력 보존을 이유로 들며 생산 구조조정을 위해 공적자금을 대출받은 민간 기업들이 고용보장에 대한 어떤 약속도 없이 임금삭감에 들어갔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10월~2009년 4월 사이에 75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또한 2007년 11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노동계약을 맺은 노동자가 1,650만 명이고 계약해지를 당한 노동자가 1,500만 명이었을 정도로 해고가 자유로운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브라질 노총은 룰라정부의 고용안정 보장없는 구제금융 정책을 비판하고 있지만 몇가지 긍정적인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선 에너지, 운송, 위생시설과 같은 사회 기반시설에 대한 공공투자가 최초의 계획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고 했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산업생산세”를 일시적으로 감면해 주면서 현 고용수준을 유지할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생산 증대와 일자리 보전을 동시에 가능케 했다고 했다. 또한 최저임금 프로그램을 위해 160만 달러를 추가로 투입하여 사회적 소외계층의 경우 월 평균 67달러의 소득을 추가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실업자에 대한 정부지원도 위기에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부분으로 확대되었다고 했다. 남아공노총을 대표하여 심포지엄에 참석한 조나스 모시아는 남아공노총이 대중투쟁과 사회적 대화라는 두 갈래의 접근법으로 경제위기에 대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남아공은 공식 실업통계로도 실업률이 20~30%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가장 타격을 입은 산업은 광산업과 자동차산업인데, 2009년 1/4분기 통계에 따르면 광산업에서 생산이 11.1% 하락했고 관련 여러 부문이 동반하락했다고 했다. 광산 기업과 자동차 기업들이 잇달아 정리해고자 명단을 발표하자 남아공노총 산하 자동차노조는 노사정위원회에 요구를 제출했다. 2008년 11월 노사정이 모여 사회적 대화를 위한 틀을 만들었고 실업방지, 재취업, 생산력확보에 초점을 둔 남아공노총의 제안이 대부분 수용되었다고 했다. 공적투자프로그램 재원마련, 지역경제 내에서 공공서비스 및 기타 필수품 조달 장려 등 역시 수용되었다고 했다. 남아공노총은 대량해고를 쉽게 용인하는 노동관계법의 개정과 용역, 외주,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퇴직연금 수급연령 하향조정, 정리해고 즉각 중단 등도 함께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호주노총을 대표하여 네 번째 발제에 나선 데이브 로빈슨은 지난 대선에서 노동조합과 시민들이 조직적으로 운동을 펼쳐 반노조-친기업적인 보수당을 몰아낸 후 경제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노동당 정부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나름대로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고했는데, 특정 소득 이하 근로가구에 대한 현금지급, 기간산업 지원, 노령연금 인상, 유급 육아휴직 연장 등 노동조합의 요구가 반영되어 2009년 예산이 책정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건설노동자 파업권 제한, 퇴직연령의 일방적 상향조정 등 여전히 투쟁할 과제가 많다고 보고했다. 호주노총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이 우선적으로 보장되도록 하기 위해 정리해고 중단, 노동자훈련 및 재교육에 대한 정부의 기금 지원, 해고노동자 및 전환배치된 노동자에 대한 재정지원, 기술훈련에 대한 재정지원 등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 발제에 나선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실장은 경제위기가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경제 위기를 틈타 정부가 어떻게 노동자 민중을 공격하고 있는지, 민주노총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차례로 소개했다. 김태현 실장의 발표에 따르면 우선 고용상황을 살펴보면 현재 구직단념자, 취업준비생, 유휴인력 등을 포함하는 실제 실업률이 13%에 이르며 82만 명의 고용이 감소했고 영세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는 27만 7천 명 감소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총 242개 사업장 중 192개 사업장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실질임금이 감소하고 있는데, 2008년 임금이 3.1% 상승했으나 고물가로 실질임금은 1.5% 하락했다. 상용직 임금은 3.4% 상승하고 임시일용직은 5.5% 하락했다. 이를 종합할 때 그는 비정규노동자가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은 고용기간이 매우 짧고 불안정하며, 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하다는 점을 덧붙였다. 뒤이어 그는 공무원 비정규직법 기간제한 확대, 최저임금법 개악 등 이명박 정부의 법제도 개악을 통한 일자리 공격 양상을 소개했다. 또한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나누기 계획이 결국은 삭감된 임금으로 저임금 인턴사원을 채용하는 한편 정규직 인력을 감축하는 계획이어서 일자리 보장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불안정 노동을 대체할 좋은 일자리 창출, 정리해고 철회 및 일자리나누기, 고용안정 특별법, 반노동적정책철회 및 친노동적 개혁입법화,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임금보장, 사회보장시스템의 발전적 구축, 초국적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 등 민주노총의 요구안을 소개했다. 2008년 말부터 지금까지 경제위기로 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에 대한 공격이 가시화됨에 따라 이를 방어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투쟁이 각 국에서 벌어졌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를 비롯한 각 국에서 임금삭감과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이 전개되었고, 지역차원의 공동행동도 뒤를 이었다. 참가자들은 이러한 각 국에서의 투쟁사례를 공유하며 현재의 위기를 만들어낸 주범은 바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해온 자본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추진해 온 각 국 정부라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위기의 대가가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한 노동자 민중 스스로의 투쟁이 정당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토론과정에서 각국에서 이미 실시되고 있는 여러 정책대안들이 주목을 받았는데, 특히 매년 물가인상률과 GDP 성장률이 반영되어 결정되는 브라질의 최저임금제(Bolsa Familia)가 실업수당, 퇴직연금, 최저생계비와 연동되어 전체 노동자 민중의 단결투쟁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점이 공유되었다. 위기에 빠진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다시 한 번 전 세계 민중을 경쟁과 분할로 몰아넣는 상황에서 노동자 민중이 국제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는 가운데 단결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점 또한 강조되었다. 그러나 각국에서 진행되는 투쟁을 상호 지지, 강화하기 위한 방안과 국제적인 공동행동을 매개하기 위한 의제에 대한 토론은 추후 과제로 남겨졌다.
전미자동차노조 사례가 한국 자동차노조에 주는 교훈 20세기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지엠 6월 1일 지엠이 결국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제출하였다. 지엠은 1908년 설립되어 1931년부터 2008년 초까지 세계 자동차 시장 1위의 자리를 지킨 자동차 산업의 상징이었다. 또한 지엠은 자동차 회사 그 이상이기도 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대기업의 생산 경영 방식, 초국적 기업의 현대적 형태를 만든 것이 바로 지엠이기 때문이다. 1923년부터 1946년까지 지엠 회장을 역임한 알프레드 슬론은 생산에서 유통까지를 회사 내에서 통합하는 법인기업의 수직 통합, 여러 사업을 별도 회계로 관리하는 다사업부제, 생산 노동 관리만이 아니라 마케팅, 회계, 재무 관리 등을 아우르는 통합 경영 등을 만들어내며 현대적인 초국적 법인 기업의 모태를 만들어 냈고, 미국 기업의 세계 제패를 이끌었다. 이러한 점에서 지엠 파산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한 기업의 파산 이상이다. 그것은 바로 20세기 자본주의 몰락의 상징이다. 해외 언론들은 지엠의 파산을 알리며 미국의 영광과 함께한 지엠의 흥망성쇠를 따져보며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되돌아보는 특집 기사들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20세기 미국 자본주의를 끝낸 것은 노조?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국내 언론들에 의해서는 참으로도 기이한 의미로 변화된다. 지엠 파산이 가지는 역사적, 경제적 의미보다는 강성 노조가 기업을 파산하게 만들었다는 고리타분한 레퍼토리가 핵심 이슈로 보도되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도대체 무엇이 지엠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강경노조는 기업 채산성을 크게 악화시켰다”라고 연일 주장하고 있고, <매일경제>는 “무엇보다 회사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는 무리한 노조 측 요구와 투쟁이 결국 회사를 망하게 한다”고 보도했다. 물론 이러한 지엠 보도 말미에는 한국의 강성노조 역시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빠뜨리지 않는다.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핵심 기업을 노동조합이 부셔버렸으니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노동자운동이 세계를 바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 미국에서 중심기업 지엠을 노동조합이 쓰러뜨린 것이 아닌가? 물론 국내언론들의 이러한 보도는 사실을 왜곡해도 이만저만 왜곡한 것이 아니다. 지엠이 파산까지 이른 것에는 전미자동차노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스스로 만들어 낸 금융화가 그 핵심에 있다. 수십 년 동안 양보교섭과 실리주의로 일관한 전미자동차노조는 회사를 망가뜨린 주범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중요한 매개자 역할을 했다. 금융화와 지엠의 성장 그리고 파산 지엠이 지난해 12월 미국 의회에 제출한 회생 계획은 자신의 문제점 중 첫 번째로 지맥(GMAC)이라는 지엠의 금융 자회사를 지적했다. 지엠의 자동차할부금융을 담당하던 지맥이 부실화되면서 자동차 할부금융 서비스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자동차 판매가 급감했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들의 보도와 달리 사측도, 관리 당국도 지엠 부실과 관련하여 지적하는 첫 항은 노조가 아니라 금융회사이다. 지엠 자동차 판매의 80% 가까이 할부금융 대출을 해주던 지맥은 2008년 말 그 비율이 6%까지 하락했다. 할부금융을 동반한 자동차 구매 혹은 리스가 대다수인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할부금융의 중단은 사실상의 자동차 판매 중단과 같은 의미다. 지엠이 다른 자동차 업계에 비해서도 매출 감소가 더욱 큰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할부금융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유독 왜 다른 자동차 업체들과 달리 지엠의 할부금융서비스가 크게 문제가 되었을까? 이는 지맥이 1990년대 후반부터 벌였던 사업과 관련이 있다. 1919년에 설립되어 90년 동안 지엠의 할부금융을 담당하던 지맥은 1998년 주택 모기지 회사들을 인수하기 시작하며 모기지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2006년 말부터 주택가격이 하락하며 지맥 전체가 부실화되기 시작했다. 지엠은 심지어 2006년 지맥을 이용하여 초국적 사모펀드인 서버러스와 함께 크라이슬러를 인수하기 위한 금융작전을 펼치기도 하며 갖가지 금융 투기를 벌였다. 예를 들면 지엠은 다음과 같이 장사를 했다. 지맥을 통해 연봉이 2000만 원인 노동자 A에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주고 1억 짜리 집을 사도록 한다. 그리고 그 노동자에게 앞으로 2년 후에는 그 집이 1억 5천만 원 정도로 상승할 것이니, 3천만 원짜리 자동차를 할부로 사도록 권유한다. 그래도 2천만 원이 남으니 노동자 A는 주택 모기지 이자, 자동차 할부금융 이자를 모두 공제해도 큰 이득이라는 것이다. 노동자 A는 아무런 비용 없이 자동차를 공짜로 얻고 이득까지 올리는 것이다! 물론 집값이 상승한다는 전제 하에서. 그런데 2006년 말부터 집값이 하락하더니 2007년 말에는 폭락하기 시작했다. 노동자 A는 자동차 할부금융도 주택 모기지 이자도 갚을 도리가 없어졌고, 세계 48개국에서 이러한 장사를 하던 지맥은 당연히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었다. 지엠은 다른 자동차 업체들보다도 더욱 크게 금융 부분을 키워왔고, 그것이 2008년 금융 위기 과정에서 지엠 전체를 파산으로 몰고 간 것이다. 2004년 지엠의 총이익 360억 달러 중 80%인 290억 달러가 지맥을 통해 거둔 수익이었지만, 2006년부터 지맥은 지엠 순손실의 주범이 되기 시작했고, 2008년 중반에는 아예 할부금융을 거의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맥은 2008년 12월 파산하여, 정부 구제금융을 통해 은행으로 전환되었다. 지맥은 지금도 미국 내 3-4위를 다투는 부실 은행으로 남아있다. 요컨대 현 지엠 파산의 주범은 노조가 아니라 지엠 자본 스스로가 만들어 낸 금융 투기였으며, 이 부실을 전 세계 노동자들이 해고와 임금 삭감을 통해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의 실리주의적 노조주의와 그 결과 이 과정에서 전미자동차노조는 어떠한 역할을 했을까? 한국언론들은 200억 달러에 달하는 전미자동차노조의 퇴직자건강보험기금(VEBA)의 엄청난 금액을 예로 들며 강성노조가 회사에 큰 부담을 주었다고 한다. 정말 그러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오히려 정반대다. 전미자동차노조는 1990년대 후반부터 회사의 해외공장 건설과 인원감축에 동의하며 약간의 떡고물을 받아 냈을 뿐이고, 그나마 이 약간의 이익도 2009년 회사 회생안에 합의하면서 대부분 뱉어내야 할 형편에 내몰렸다. 퇴직자건강보험기금은 2007년 자동차업체들의 퇴직자건강보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미자동차노조가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기존에 회사들이 개별적으로 지급하던 퇴직자건강보험료를 자동차 업체가 출연하고 전미자동차노조가 관리하는 기금으로 대체한 것이다. 지엠의 경우 이러한 단체협상에 따라 2007년 46억 달러에 달하던 퇴직자 건강보험부담금이 2010년 20억 달러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였다. 반대로 전미자동차노조의 경우 기금 운영에 대한 리스크를 떠안게 되었다. 다시 말해 퇴직자건강보험기금은 사측의 비용 감소 계획이었지 노동자가 무리하게 요구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에서 이러한 퇴직자 건강보험에 대한 요구는 임금 인상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퇴직자건강보험에 대한 단체협상을 제1과제로 생각할 정도였다.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없는 미국에서 퇴직은 곧바로 건강보험의 해지였고, 병원 이용비가 매우 비싸 보험 없이 산다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서 건강보험과 관련한 요구가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전미자동차노조가 이러한 대가로 신규 취업자에 대해 임금 삭감과 대규모 정리해고를 합의했다는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는 2003년 단체협상에서 최소고용수준(BMM)을 대폭 단축하며 약 8,900여 명에 대한 해고는 물론 생산 공정의 외주화 수준을 대폭 확대하는 데 합의하였다. 심지어 2007년 단체협상에서는 30만 명에 달하는 인원감축과 신규 취업자(비조합원)에 대한 임금 삭감, 2010년 이후부터는 신규 취업자에 대해 업계 최저 수준의 임금 적용을 합의하였다. 이들의 경우 퇴직자건강보험기금의 수혜 대상도 아님은 물론이다. 전미자동차노조는 미국 전체 노동자는 고사하고, 동종 업계에서도 비조합원의 희생을 바탕으로 일부 조합원에 대해서만 고용, 임금, 복지에 관한 협상을 진행해 왔다. 2002년 기준으로 지엠의 평균 조합원 연령은 50세에 육박했고, 1985년 3,200명에 달하던 신규 조합원은 1992년 191명, 2002년 375명 수준으로 하락했다. 1980년 150만 명에 달하던 조합원은 2008년 40만 명 수준으로 폭락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조합원만의 실리를 챙겨온 전미자동차노조는 과연 실제로 이득을 보았을까? 현재 전미자동차노조는 2008년 경제 위기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직자건강보험과 거래된 100만 명에 가까운 퇴직자의 건강보험기금 200억 달러 중에서 현재 110억 달러는 지엠 지분(보통주)으로, 65억 달러는 우선주로, 25억 달러는 채권으로 회사에 묶여 버렸다. 25억 달러의 채권을 제외하면 190억 달러는 언제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며, 최악의 경우 지엠과 함께 휴지 조각으로 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최소한의 기금 유지를 위해 이자 수입 혹은 배당(우선주 배당률 9%)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사측의 추가 구조조정안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면 건강보험 수혜자가 늘어 기금이 문제가 생기고,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자와 배당도 챙길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의 실리주의는 이렇게 2009년 경제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목을 조르는 사슬이 되었다. 전미자동차노조의 현재가 한국 자동차 노조에 던지는 교훈 이상에서 보았듯이 미국의 자동차노조는 영리한 척 조합원의 실리를 챙긴 듯 보였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비조합원들에 대한 희생은 결국 자동차노조가 지닌 힘의 약화로 이어졌고, 자동차노조는 세계적 경제 위기 와중에 회사가 금융 투기를 통해 만들어 놓은 부실을 책임져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러한 전미자동차노조의 교훈은 한국 자동차노조에게 의미심장하다. 현재 쌍용자동차에 대한 대규모 정리해고가 진행되고 있지만 현대 기아 대우 자동차 노동조합은 여전히 자신의 고용 유지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위기는 단시간에 해결될 수도 없으며 또한 특정 기업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당장의 고용 유지를 위해 ‘조용히’ 숨죽이는 것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는 더욱 큰 고통으로 닥칠 가능성이 크다. 이제 필요한 것은 내 사업장의, 우리 조합원의 고용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고용과 임금에 관한 표준을 대폭 상승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전 노동자의 단결된 투쟁이 필요하다. 회사가 망해도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며, 자본이 저질러 놓은 부실을 자본 스스로 책임지게 만들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전미자동차노조는 강성했기 때문에 회사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실리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자본의 부실을 떠안게 된 것이다. 전미자동차노조의 사례는 더욱 강한 투쟁이 왜 필요한지를, 더욱 넓은 연대와 단결이 왜 필요한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연일 추모인파가 분향소에 넘쳐났다. 5월 29일엔 지난해 6.10 촛불집회 이후 최대의 대중집회와 같은 영결식이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저녁까지 서울시청 광장을 중심으로 모여서 정부를 규탄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그런데 노무현 사망부터 지금까지 노무현 지지자들은 그렇다 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그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해왔던 사회운동들은 어떤 입장이었나? 민중운동 지도자들, “사실 노무현은 민중후보, 우리는 역할분담이었다” 다음날 언론보도에 따르면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전 의장은 노무현이 ‘서민후보’였다고 발언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를 보도한 프레시안은 처음에는 <진보 인사들도 봉하로…”노무현은 민중 후보”>라는 기사에서 ‘민중후보’라는 표현을 썼다가 몇 시간 만에 기사를 수정한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전 대표는 “어떻게 보면 우리는 (노무현과)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 아닌가도 싶었다”고 발언했다. 이쯤 되면 죽은 노무현도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러니 ‘서민후보’ 노무현을 추대하고 지지하는 게 본심이었다는 말씀이다.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던 그 단체 대표의 말씀이다. 그 민주노동당 전 대표님 말씀도 사실은 ‘역할분담’이었다니, 점입가경이다. 민중운동의 지도자라는 분들께서 이제 와서 한미FTA 반대, 이라크전쟁 파병반대 운동, 그게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고 고백하시니 아랫것들은 더 황망할 뿐이다. 그런 한미FTA 반대를 외치면서 당시 민주노동당 당원이고 민주노총 조합원인 허세욱 열사는 분신항거했었다. 사회운동의 이른바 ‘자주파’ 인사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진보신당 강령작성에 참여하기도 했고 국회의원 비례대표후보로 나서기도 했던 김상봉 교수는 노무현 영정에 “뜨겁게 사랑했으므로 내가 미워했던 마음의 벗이여, 잘 가오. 그대 영전에 오래 참았던 울음 우노니, 그대 나 대신 죽어, 내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는 멋진 문구도 남겼다. 진보신당의 미디어스타인 진중권 교수는 “인간 노무현과 그의 정책은 별개”라면서 “장례가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그 험한 입들 좀 다물어주실” 것을 부탁했다. 아, 예 그렇죠. “인간 전두환과 그의 독재는 별개”, “인간 이건희와 그의 식칼테러는 별개”, “인간 이완용과 그의 친일은 별개”, 그리고 “인간 이명박과 그의 정책은 별개”일 테니까요. “인간 노무현”이 정당화되는 동안 그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도 모두 정당화되고 있는 중이다. 노무현도 불가피했다는 것이니 그것은 곧 앞으로도 신자유주의 정책은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같은 이야기이다. 사회운동 진영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의 충격으로 집단적인 선택적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하다. 최근 몇 달 간 이명박 정권에게 괴롭힘을 당한 장면과, 1980년대 후반 노동인권변호사를 하던 때는 기억하지만, 기묘하게도 노무현 대통령 임기 5년 동안은 까맣게 잊은 듯하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2009년 5월 23일에는 1987년 어느 시점, 과거의 노무현이 죽은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역임한 현재의 노무현이 죽었다는 가장 단순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촛불 실용주의? 민주노총은 노무현 사망 후 급히 회의를 소집하고 두 가지 중요한 결정을 한다. 임성규 위원장 등 임원이 조문을 가겠다는 것과 장례기간 중 집회와 투쟁을 자제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적으로 추모 분위기가 강하니 여기에 맞추자는 이야기다. 건설노조 혼자 파업해도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실용적인 태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노무현 추모식(촛불집회)에 참여하고 함께 거리로 나가자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대중들이 거리로 나가고, 또 이명박 반대 구호를 외치니 여기에 동참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또 헛갈리기 시작한다.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괜히 인도가 아니라 아스팔트 차도 걷는 걸 선호하는 집단도 아니거니와, 밤에 촛불을 켜는 것에 뭔가 집착이 있는 사람들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수단과 목적이 도치되기 시작한다. 가두집회가 목적인가, 요구의 관철이 목적인가? 이 때 나오는 반론은 “이명박을 반대하는 집회잖아?”라는 것이다. 작년 촛불집회의 거대한 규모 자체, 스펙터클에 대한 기억에 압도된 나머지 다른 조건에 대한 생각은 모두 중단된 듯하다. 사회운동들이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씩 열거하자면 끝도 없는 실정과 폭정 때문이고, 요약하자면 주로 그의 ‘막장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 정책을 위해 자행하는 ‘민주주의 압살’ 때문일 것이다. 그럼, 노무현 추모식 촛불집회에 모인 이들이 이명박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명박의 신자유주의 정책이야 많은 것이 노무현 정권을 계승했거나 업그레이드 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사회운동과는 좀 다른 이유일 것이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을 죽였기 때문이다. 물론, 어쨌든 이 흐름이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것인 이상, 정부의 막장 신자유주의 정책이 다소 힘을 잃을 수는 있다. 예컨대 공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정책인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이나 여야 간 첨예한 정치적 쟁점인 미디어법 같은 경우에는 지연되거나 힘이 빠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미 FTA, 한EU FTA, 비정규법, 금산분리완화, 의료민영화 등 정작 가장 중요한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은 계속 추진될 것이다. 왜? 바로 노무현이 다 만들어놓았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나 노동조합이 노무현 추모집회에 함께 하는 것은 마치 ‘실용적’인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사회운동이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노무현 추모촛불이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 그것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치의 요구는 “노무현을 죽인 이명박 물러가라”가 된다. 그곳의 분노는 이명박이 노무현을 죽였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노무현은 누구인가? 이명박이 죽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신자유주의 노선의 인민주의(파퓰리즘) 정치인이다. 이 점을 너무 쉽게 잊어서는 안 된다. 인민주의는 20세기 후반부터 세계 각국 정치에 함께 나타나는 정치 현상이다. 인민주의는 정책, 이념의 쟁점을 상대화하고 기존정치에 대한 거부와 공격을 중심으로 하는 ‘반대의 정치’로서 부패무능한 정치가와 제도를 공격하는 ‘원한의 정치’를 통해 대중을 동원하는 특징을 가진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장면이다. 그것은 바로 불과 1년여 전에는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동력이기도 했다. 그는 ‘무능한 좌파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또 불과 그 3년여 전에는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시위가 있었다. 이명박이든 노무현이든 신자유주의 정권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서로 싸우는 동안 그들 사이에 정책적이고 이념적인 차이는 사실 거의 없다는 점은 가려지고 만다. 노무현 추모열기를 정치적 지지로 끌어 모으기에 여념이 없는 민주당의 경우를 보면 더 뚜렷하게 알 수 있다. 공교롭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며칠 전인 5월 17일, 민주당은 뉴민주당플랜을 발표한다.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니 몇몇 평가를 인용해보자. “대한민국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재벌과 스포츠뿐이다. 한나라당이 잘하고 있다면, 우리는 한나라당 2중대가 아니라 3중대라도 해야 한다.” (김효석 뉴민주당비전위원당, 5.17~19) “뉴민주당 선언의 기본 비전은 그야말로 한나라당의 입장과 같음을 확인했다.” (한나라당 대변인 논평, 5.18) 신자유주의 사회정책, 경제정책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뉴민주당플랜은 이명박 집권 이후에도 정책적으로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더욱 수렴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민주당은 노무현 사망 이후 반이명박, 반한나라당 전선을 강화하기 위해서 뉴민주당플랜을 상대화하고 있다. 선명한 야성(野性)을 강조한다는 민주당의 ‘정세적인 대응’이라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러니 당연히 초유의 경제공황 상황에서 민주당은 전혀 대안세력으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노무현 추모 물결 속에 단연 자신을 부각하는 인물인 유시민은 어떨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했던 그는 보건복지부장관 시절, 신자유주의적인 복지의료개혁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가 노무현의 후계자를 자처한다면 아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개혁적 정치인으로서 반한나라당 세력을 규합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신자유주의 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 따라서 노무현과 동일한 한계를 보여줄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한나라당과 노무현의 거리, 노무현과 사회운동의 거리 아무리 그들의 입장이 서로 수렴하기로서니 민주적 기본권의 후퇴 등을 생각해보면 이명박 혹은 한나라당보다야 노무현, 민주당이 나을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노무현 정권 때에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한미FTA 반대 집회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운동이 노무현 추모 분위기에 동참하거나, 추모 촛불집회를 통해서 어떤 운동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 이유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거리, 혹은 이명박과 노무현의 거리보다 노동자계급, 민중이 처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위치가 훨씬 더 멀리 있기 때문이다. ‘계급적 시각’ 즉, 누구의 눈으로 볼 것인가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명박은 노무현의 정책을 계승한 반면에, 노동자운동, 민중운동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정책을 반대하는 집회에 앉아있다. 물론 노무현 추모 집회에 모인 시민들은 단지 노무현이 죽었다는 데 슬퍼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에 분노하기 때문에 나선다는 것도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회운동 진영은 그들이 이명박 정권에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대화하고 선전하면서 그 공간에서도 채워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노무현 추모행사는 모든 정치적 쟁점을 삼켜버리는 블랙홀이다. 정치적 쟁점이 ‘노무현’을 중심으로 재생산되는 한,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왜 싸우는가 혹은 싸웠는가를 다시 생각해야 글머리에 이야기했던 사회운동의 지도자들 중 어떤 사람은 아마도 노무현과는 전략적인 동맹, 그러나 전술적인 차이가 있었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분들이라면 앞으로는 좀 더 솔직해지시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감히 드린다. 사람이 죽고 나서야 사실은 같은 편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다는 건 너무 쓸쓸한 일이 아닌가. 생전부터 그렇게 하셔야 안 헛갈린다. 혹은 노무현 추모 분위기에 함께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는 데 정세적, 실용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할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내기 쉬운 쟁점이라는 것이다. 민주노총 “추모” 유인물은 “전직 대통령마저 자살로 몰아가는 정권!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말이 좋아 (이명박 덕분에 유행하는 표현으로) ‘실용주의’이지, 이런 입장을 보통은 ‘기회주의’라고 부른다. 이러한 입장이 “실용적”일 수도 없는 이유는 곧 책임져야할 정치적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2부는 노무현 추모문화제로 진행되었던 6.10 집회에서 주된 구호는 (오마이뉴스의 이날 헤드라인을 인용하자면) “민주개혁 세력 하나됐다, 2012년 정권을 바꾸자”였다. 이 구호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미 ‘6.10 범국민대회 준비위 운영위원회’ 회의에서는 대회의 취지와 의의를 “향후 서민 살리기를 위한 범 민주진보개혁 세력의 연대 활동을 다짐하는 장” 등으로 밝히고 있었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6.10준비위를 상설연대체로 전환하자는 제안도 있고, 이후 내년 6월 지자체선거, 2012년 총선, 대선을 공동 대응하자는 구상도 확산되고 있다. 민주노총이 언론노조와 함께 “힘내라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윤도현밴드, 크라잉넛, 안치환과자유, 우리나라, 꽃다지, 장기하와얼굴들 등 유명 대중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는 여의도 콘서트 문화공연(6.24)을 개최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성격으로 전선을 규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처럼 보수야당의 주도아래 전선이 형성되고, 민중운동이 여기에 복무하는 구도인 셈이다. 지난 10여 년 간 사회운동이 제기해온, 보수야당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하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사회운동의 형성과정이 한순간에 22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다. 이명박이 20년 전으로 후퇴했으니 우리 대응도 그렇게 퇴행하면 되는 것일까? ‘실용’을 강조하는 정치적 기회주의는 실용적 성과조차도 얻지 못한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가 모두 끝난 후에는 “왜 이명박을 반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없이는 “반이명박”만으로 사람들이 오래 모일 수는 없다. 그렇게 모인다한들 ‘원한의 정치’로서 인민주의를 사회운동이 앞서서 부추기고 자기무덤을 팔 뿐이다. 특정 정치인의 대중동원을 중심으로 하는 인민주의 정치에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사회운동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노무현 정권 당시에 사회운동이 경험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사회운동, 노동자운동이 지금까지 싸워왔던 과제를 제대로 제기하고 잘 싸우는 것이 최선일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이명박에 반대해서 “왜” 싸워야하는지, 정치적 쟁점을 제기해야한다. 그 쟁점의 성격에 따라서 거리에 나오는 이들이 ‘노무현 지지자’로 불릴 사람들일 것인지, ‘노동자 민중’으로 불릴 사람들일 것인지가 결정된다. 시민들을 어떻게 호명하고, 어떤 정치적 주체로 형성할 것인가가 문제다. 노무현 추모 물결에 용산철거민 학살도, 박종태 열사도, 비정규직, 최저임금 투쟁도 묻혀진 5월29일, 용산 4구역에서는 철거용역의 강제철거가 다시 시작됐고,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서는 경영계측의 요구안이 “최저임금 5.8% 삭감”으로 제시되었다. 노동부는 노조의 임금협상을 4~5년에 한 번씩 하도록 하는 방안을 만든다는 뉴스도 그날 나왔다. 노무현의 죽음 이후에도 노동자운동은 하던 투쟁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비해 노무현 사망을 계기로 새롭게 제기되는 요구, 즉 추상적인 ‘민주주의 회복’이 아니라 구체적인 요구인 ‘대통령 사과, 책임자 처벌, 특검 도입’ 등은 바로 민주당의 “국회 등원을 위한 5대 선결조건”일 뿐이다. (민주당의 선결조건 중 나머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및 책임자 처벌, 천신일 세중나모 여행 회장 및 한상률 전 국세청장 특검, 노 전 대통령 과잉 수사 의혹 국정조사, 국회 내 검찰개혁특위 설치다. 민주당은 5대 선결과제가 수용되어야만 6월 임시국회에 등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가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분노라는 정서 자체가 모든 것을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왜 싸우는가에 따라서 무엇을 쟁취할 것인지, 싸움의 결과는 무엇일지 모든 것이 변한다. 노무현 추모 동참은 당장은 편리해 보이는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책임은 대중의 불만에 이유를 제시하고 함께 싸우는 데 있다. 6월 이후 거리의 투쟁을 만들어가는 것이 노무현의 유령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일 때, 이명박을 넘어서는 진짜 희망이 발견될 것이다. * 이 글은 <민중언론 참세상>에 실린 기고문을 보완한 것이다.
화물연대 파업이 마무리되었다. 특수고용자의 노동기본권이라는 정치쟁점에 대해 주의를 환기했다는 점에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전면파업이라는 노동조합운동 최대의 무기를 들고도 노사합의서에 화물연대라는 조직적 실체를 명시할 수 없었다. 우리는 화물연대의 투쟁이 다시 한 번 노동조합운동의 각성을 촉구하고, 5월 30일 범국민대회의 촉매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하지만 전투적인 민주노조운동의 한 축이 조직 실체를 명시하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린 결과는 우리로 하여금 민중운동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지난 5~6월 민주노조운동의 목표설정과 진행양상이 어떠했는지를 자문할 수밖에 없게 한다. 역량의 부족.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역량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노동자운동의 끊임없는 혼란과 동요다. 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과 민중운동의 혼란 지난 5월 23일 노무현 사망 이후 노동자운동은 5~6월 투쟁 계획을 일부 재조정한다. 5월 말 건설노조의 파업, 6월 투쟁을 앞둔 서울지역 노동자 총력투쟁대회, 그리고 박종태 열사 투쟁과 화물연대 파업 등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일정이 조정되거나 투쟁수위가 조정된 것이다. 5월 30일 이전에 투쟁을 조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보면 노무현의 죽음은 오히려 투쟁의 일정과 수위를 조정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 셈이다. 박종태 열사대책위가 보신각 앞에서 박종태 열사 촛불집회를 개최하지 못하고 대한문 앞 노무현 추모 촛불 장소로 이동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매일 촛불집회를 열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한문 앞 촛불집회는 실용적 선택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은커녕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용산범대위의 5월 30일 시청 앞 범국민대회 제안 역시 같은 맥락에서 논의가 진척되었다. 엄밀히 이야기해서 노무현의 죽음을 매개로 사회운동의 의제를 결합해보자는 각종 실용주의적 실천은 주체적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나왔다. 그리하여 5월 30일 노무현 장례 이후 민중운동 세력들이 함께 힘을 모아 경제위기 고통전가에 맞서 민중의 생존권을 제기하자는 범국민대회도 결국 그 본래 취지와 달리 노무현 추모행렬을 경찰이 탄압한 것으로 비춰지고 말았다. 시청 앞으로 나가자는 몇몇 시민들의 주장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경제위기라는 민중들의 생존과 민주주의를 둘러싼 쟁점은 실종되었다. 대신 논점은 시청 앞으로 대회를 치러야 했는데 어떻게 투쟁전술을 운영했는가에 대한 평가로 축소되었다. 노무현의 죽음 이후 민중운동세력 중 일부는 노무현 추모 국면을 반이명박 전선의 확대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체역량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 반이명박 전선 속에서 민중운동진영이 상황을 주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노선(자유주의자로서의 고백)을 속이거나 주체역량을 오판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다. 왜냐하면 현재 운동의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민중운동진영의 끊임없는 실용주의적 선택은 결국 보수야당의 정치적 헤게모니 확보로 귀결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쟁점을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투쟁은 투쟁의 목표 달성(문제의 제기와 논점 형성)과 대중 주체화에 실패한다. 반이명박 전선의 확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이명박 정권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대중의 정치적 발언을 불가능하게 하고,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 것이 가장 명백한 증거다. 거리는 물론이거니와 대학 안에서조차 정치적 행동이 제한되며 집회 시위의 자유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건설노조와 운수노조에 대한 노동부의 노조신고 반려 협박(단결권 부정)이나 전교조와 공공상용직노조에 대한 단협 무효화 선언(단체교섭권 부정), 필수공익사업장 지정과 업무개시명령제(단체행동권 부정)에서 나타나듯 이제는 노동기본권마저 박탈하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실업자 등 노동권 확대를 도모해온 노동자운동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정부정책에 항의하는 어떠한 정치적 행동도 불가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지금 정치권에서 시청 앞 거리에서 민주주의 문제가 제기되는 방식은 노동권과 생존권을 매개하기보다는 김대중으로 표상되는 과거 인민주의자들이 제기해왔던 방식(지역주의를 매개로 민주주의를 제기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허구적인 논점을 제기하고 이를 민주주의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계하여 정치쟁점으로 만들고 자신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확대하는 방식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현 시기 민주주의의 후퇴를 이명박 정권의 정치스타일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이른바 ‘소통의지 없음’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는 원인 분석 없는 묘사에 불과한 것이고, 따라서 또 다시 여기서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군사파쇼와의 유사성을 찾는 데 몰두한다. 군사파쇼에 맞서 전 민중이 투쟁했던 1987년 그 거대한 투쟁의 물결이 ‘6월항쟁 정신계승’으로 축소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어떤 투쟁도 옛 추억에 연원을 두고 승리하기는 어렵다. 2009년 6월항쟁과 비슷한 연출은 가능할지 모르나 재현은 불가하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실현되는 것은 민중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보수야당 및 시민운동 세력의 헤게모니일 뿐이다. 반이명박 전선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제기되는 민주주의 문제가 경제위기라는 정세에서 어떻게 후퇴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폭로가 필요하다. 현실의 구체적인 쟁점과 연계되어야 한다. 현재 경제위기 국면은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완전히 파탄지경에 이르렀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고, 현재 민주주의의 후퇴는 지배세력들이 어떠한 정치적 대안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대중들에 대한 지배세력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폭압적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결국 현 시기 민주주의 후퇴는 신자유주의 정책 파탄에 따른 인민의 불만을 사전에 잠재우고, 다시금 몇몇 지배세력들만 생존하기 위한 방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민중운동 세력은 오늘날 민주주의 문제를 객관적 정세인식에 근거해서 제기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 문제를 둘러싼 실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신자유주의 전선은 단순히 구조조정 저지나 해고 저지로 환원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정치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후퇴시키고, 어떻게 배제하는지도 정확히 보아야 한다. 하지만 노동권, 생존권과 괴리된 민주주의 투쟁은 유령(김대중, 노무현)과 직면할 뿐이다. 현재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오늘날 대중이 처한 상황을 보자. 경제위기 국면에서 대중은 더욱 움츠러든다. 한편에서는 국가나 기업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강화되고, 민중의 권리를 드러내고자 하는 사회운동의 고유한 쟁점은 쉽게 기각될 수 있다. 동시에 허구적이거나 퇴행적 쟁점에 자신의 불만을 집중시키며 무정형의 행동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대중의 이런 수동적 상황은 대중 자신을 조직하는 운동, 대중의 권리를 제기하는 민주주의보다는 특정한 인격체에 대한 연민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경제위기가 낳은 고통의 일방적 전가에 따른 생존권 위협과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이 급증했음에도 이에 맞서는 대중운동 특히 노동조합운동은 먼 미래형인 반면, 자신과 ‘비극적 영웅’으로서 노무현을 동일시하는 노무현에 대한 추모의 물결이 현재진행형인 것도 여기서 기인한다. 그리고 현 시기 대중운동이 정리해고자 명단에 들어간 노동자, 노조탄압에 직면한 노동조합 등 피해 당사자 운동에서 민중의 보편적인 운동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사이에 ‘6월항쟁 계승, 민주회복’ 같은 퇴행적 쟁점을 선점하는 운동이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는 ‘정치권’의 헤게모니 다툼의 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민중운동의 성과는 또다시 유실되고야마는 비극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5.30범국민대회의 실패, 박종태 열사 투쟁의 교훈을 놓쳐서는 안 된다. 대중의 자기 조직화, 주체화, 그리고 운동역량의 강화를 염두에 두지 않는 대중운동은 결국 모래성일 뿐이다. 대중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자각하는 운동이 아니고서는 사회운동의 이념 형성은 먼 미래 이야기일 수밖에 없고 대중이 스스로 조직하려는 대중조직의 운동이 아니고서는 거대한 대중운동의 물결은 허황된 꿈일 뿐이다. 주체역량이 취약할수록 여론의 추이에 의존하는 운동을 하게 된다. 더딘 한 걸음을 가더라도 운동의 주체화에 기여할 수 있는 운동과 이를 조직하려는 시도가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5월과 6월 투쟁과정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쟁점에 근거한 운동, 파업투쟁과 거리 선전활동이 오히려 현실의 실제 쟁점을 정확히 부각시키고 오늘 이 시대 민주주의 문제, 대중의 자기조직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제고하게 했다는 사실을 환기해야 한다. 쌍용자동차 노조의 옥쇄파업과 화물연대의 파업 투쟁이, 최저임금을 전 국민적인 쟁점으로 제기하려는 노동조합의 선전활동이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정면에서 비판하려 했던 노동자 결의대회가, 오늘날 정치에서 무엇이 배제되어 있으며 어떤 의제가 정치적인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6월 말, 7월 초 민중운동은 다시 한 번 투쟁태세를 재정비하고 있다. 20여 년 전 화려했던 과거를 손짓하는 김대중의 선동과 보수야당 그리고 시민단체들의 대응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짓누르려 하고 있다. 민중운동 전체가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귀향 나의 고향은 5월 혁명의 도시 광주다. 태어나서 대학 입학 전까지 줄곧 광주에서 자라며 지내왔다. 1995년인 중학교 2학년까지는 교실 창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최루탄 냄새 때문에 한여름 찜통더위에 창문을 닫고 수업을 하기 일쑤였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분주히 교정을 뛰어다니던 대학생들의 모습이 창밖을 장식했다. 이것이 내가 TV나 신문이 아닌 두 눈과 코에 직접 새긴 ‘운동권’에 대한 기억의 전부다. 그리고 광주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이라고 하면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절망과 실의에 빠진 가운데 호남민들에게는 선생님으로 추앙받던 ‘신자유주의 전도사’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일이다.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대선 이후 며칠간은 곳곳의 음식점마다 술과 안주를 무료 제공한다는 딱지를 문 앞에 써 붙여 놓고 이벤트를 열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오죽했으면 도청 앞 분수대에 맥주를 가득 채워 컵만 가져가면 무한대로 마실 수 있도록 축제를 벌인다는 말이 나돌았으니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은 이 지역에서는 정말 큰일은 큰일이었나 보다. 그밖에 크고 작은 기억이 많긴 하지만 중고등학교 때는 집과 학교를 쳇바퀴 굴러가듯 오가며 지내던 시절이라 강렬한 기억에 비해 깊이 있는 성찰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학 입학과 함께 광주와 기약 없는 이별을 했다. 세상만물을 모두 신기하게 여겼을 만큼 질주하던 대학시절은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았다. 자동차 매연으로 매캐한 서울 도심 거리 위에서 느낀 해방감은 고향 광주에 대한 기억을 멀리한 가장 큰 요인이었다. 다시 광주에 내려와 무언가 해보리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다시 광주에 섰다. 8년만의 귀향이다. 지난해 사회진보연대 신입회원교육에 함께할 무렵, 잠정적으로 결론 내린 나의 운동공간은 광주였다. 동기들과의 열띤 논의와 지역 동지들과의 몇 차례 간담회도 있었고 당시 집안 문제로 평소보다 잦은 고향 방문을 하게 된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광주의 낯설지 않은 편안함과 향후 활동을 도모해볼 수 있는 열린 가능성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부족한 가운데 잘 적응하였으며 긴 호흡에 장기적인 전망도 밝혀보고자 부단히 노력 중이다. 광주전남지역 운동에 대한 단상 광주전남지역 운동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다. 철거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인 도청 별관과 집회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광주출정가’ 속에 80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기에는 역부족이지만, 30년이라는 세월 안에 농익은 투쟁의지는 여느 지역에 못지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홉 달의 짧은 활동 속에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없지 않다. 첫째는 비정규, 여성, 이주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투쟁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을 여는 문제다. 활동의 많은 부분이 광주전남진보연대 또는 민주노총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하는 해당 단위의 지침에 의거해 투쟁에 결합하고 움직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곧 대공장 중심으로 대중을 집회에 동원하는 방식의 활동으로 굳어져 실험적이고 자생적인 활동 흐름은 오히려 정체된 느낌을 많이 받는다. 비정규, 여성, 이주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투쟁의 보편성을 획득하고 그/녀들의 주체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교육과 더불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가는 것이 처방임에 틀림없다. 비정규, 여성, 이주 노동자들 스스로 현재의 정형화된 틀 안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기획을 들고 제안하며 치고 올라올 수 있다면 이는 지역운동에 신선한 활력이 될 것이다. 둘째는 논쟁하고 토론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할 필요성이다. 올해 초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이 불거졌을 때, 지역의 금속노조 로케트 해고자 동지들의 복직 투쟁이 한창일 때, 아시아문화전당 건립과 도청 별관 철거 문제를 둘러싼 갈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투쟁 전술 등 숱한 논쟁거리가 운동사회 안에 던져졌을 때, 운동의 자양분 삼아 한걸음 전진하기 위한 계기로 삼기보다 그저 묵묵히 자기 활동에만 매진하는 편협함이 있지는 않았는지 나부터 반성해본다. 지역의 주류 운동세력의 입김에 이내 묻히고 말거라 지레짐작한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크다. 짜인 일정에 결합하는 방식의 잔잔한 운동판에 작은 돌멩이 하나 던질 용기가 있다면 보다 풍성한 의제들로 혁신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이상은 보다 튼실한 지역운동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과제들로 문득 든 생각들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지역지부 운동에 대한 단상 이쯤 되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일하는 곳은 공공노조 광주전남지부로 공공노조 산하 가스, 연금 등과 같은 공공기관지부와 달리 지역 소재 다양한 중소영세비정규사업장을 포괄하는 초기업지부다. 업종별로 보자면 건물 청소용역, 자치단체 직접고용 환경미화원, 민간위탁 대형폐기물 처리업무, 사회복지, 보육교사 등으로 다양하며, 사업장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대개 30명 이하의 조합원들로 구성된 분회로 편재되어 있다. 산별에 걸맞은 집단교섭 틀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지역지부는 일 년 중 투쟁과 교섭이 끊일 날이 없다고들 한다. 어디 그게 교섭방식만의 문제겠냐만 실제 투쟁과 교섭이 끊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최저임금 또는 그에 약간 상회하는 수준의 임금을 받는 사업장들로 위탁이나 용역업체의 계약이 만료되는 해이면 늘 고용위협에 시달리게 되며, 직접고용 사업장들도 예산감축, 총액인건비제 등의 정부 정책에 화답하듯 효율성과 예산절감을 빙자하여 민간위탁 수순을 밟아가고자 혈안이 되어있다. 따라서 고용의 적신호가 켜지기 무섭게 투쟁 태세를 갖춰야만 하는 것이 지역지부의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도 사업장별로 진행되는 교섭은 연중 끊이질 않으니 몸이 두 개였으면 하는 마음마저 간절할 때가 많다. 구조적으로 개선되어야할 부분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공공노조 비정규단위에 일부 존재하는 생각과 태도를 마주하며 더 당혹스러운 경험이 종종 있었다. 지난 9개월 동안 광주전남지부와 유사한 지역지부 동지들을 만나본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비정규단위 운동의 고뇌와 고달픔이 노조 중앙, 심지어는 정규직 동지들을 향한 질책으로 표출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했다. 활동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예산과 인력 지원을 요구하고 정규직 동지들의 연대를 호소하는 것이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예산과 인력이야 활동의 기본이고 비정규단위 투쟁에 더 많이 연대하는 것은 더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과연 지역지부 활동이 정체되고 힘든 것이 예산과 인력 때문 만일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돈과 사람이 있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 아니 오히려 희망사항이 100% 충족되기도 쉽지 않을 테니 “지금 어려운 조건에서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먼저 찾는 것이 암흑의 시기 공동의 전망을 밝히는 데 보다 유효하지 않을까. 나의 생각은 이렇다. 대개 비정규단위 사업장의 조직력, 파업 등 쟁의행위의 파괴력이 현저히 낮은 수준임을 감안할 때 지역의 단체, 언론, 노조 등을 폭넓게 아우르는 지역운동을 전면에 내걸지 않고서는 지역지부는 내일도 미래도 없다. 그러한 점에서 올해 광주전남지부의 핵심투쟁과제의 하나인 민간위탁 철회 투쟁을 위해 당, 언론, 단체를 포괄하는 지역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공동의 연구, 학습, 실천을 전개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본다. 향후 모임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나 전국 동지들 앞에 사례 발표할 만한 성과도 남길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또 하나는 간혹 접하는 정규직에 대한 질책 또는 연대를 호소하는 방식의 문제다. 일장 연설이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배부른 정규직, 이래서 안 돼”로 맺어지는 레퍼토리는 뼈아픈 운동 현실이 투영된 듯하여 가슴마저 미어지게 한다. 자본의 분할통치 전략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도 예외는 아닐진데 우리 스스로 그 구획을 보다 강화하며 투쟁의 어려움을 정규직을 향한 화살로 돌리는 인식. 그건 분명 적을 향한 일침이 아니다. 언젠가 나의 목을 향해 되돌아올 부메랑이다. 별로 득 될 것 없는 잡설이 아닌가 싶어 우려도 크지만 각자의 지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동지들을 책망하고자 함이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아니 오히려 열악한 현장에서 버티고 또 버텨온 노고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할수록 어렵고 고민되는 공공노조 지역지부 활동, 지역운동을 일구는 선봉장답게 전국의 수많은 동지들과 더 많이 교류하고 소통하며 전체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무기를 벼릴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기 위하여 사계절 한 순환도 채 마무리 짓지 않은 9개월의 평가는 활동 뿐 아니라 변화된 환경의 일상생활을 포괄해야하는 것이라 더욱 어렵다. 그러나 스치는 단상의 조각모음 수준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라 한계도 많지만 이번 글을 쓰면서 차분히 나의 활동과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하면 할수록 해야 할 게 많고 하나같이 쉽지 않은 지역운동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는 지역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의 다른 말이다. 어느 선배가 주문했던 ‘성실함’은 어느새 활동의 첫 번째 덕목이 되었고, 현재 몸담은 공공노조 광주전남지부에서도 실제 발로 뛰며 현장을 조직하고 학습하고 투쟁하는 것이 먼 미래의 꿈같은 얘기가 아니라 자신한다. 활동의 매순간 부딪히는 갈등과 난관은 힘겹지만 그 과정에 되뇌는 ‘원칙’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교육과 경험을 통해 습득한 기준과 원칙이 때로는 유연하고 때로는 단호하게 활동의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느새 몸에 배어버린, 책상머리에 앉아 컴퓨터 안에 빨려 들어갈 듯 몰입하는 습관. 이제 박차고 일어나 분주히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어 더욱 금쪽같았던 아홉 달이다. 이제는 하루를 금쪽같이, 희망을 싹틔우는 지역운동을 만들어갈 것을 다짐해본다. 근래 한 무리의 동지들이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운동에 뛰어들거나 준비 중이라 들었다. 해가 갈수록 알차게 채워져 가는 교육프로그램에 시샘도 나지만 이 또한 한 해 한 해 사회진보연대가 쌓아올린 성과를 바탕에 둔 것임을 감안하면 뿌듯하기 그지없다. 새로운 활동공간을 찾아가는 동지들 모두 각자의 지역과 현장에서 그려갈 청사진에 맑은 날이 가득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