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화사업은 노동조합 재건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자 비정규직 운동의 과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축적이 확대되어도 고용은 항상 불안정하다. 자본축적으로 말미암은 노동의 수요보다 자본축적에서 유리되는 노동자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를 상대적 과잉인구의 형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따라서 실업자와 취업자의 경쟁은 상시적인 상태가 되고, 그에 따른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만성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대중의 궁핍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계기는 항상적인 실업의 위험이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실업의 위험은 급격히 악화되고, 이는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를 객관적으로 구성하는 요인이 된다. 신자유주의시대 지배세력은 금융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적자, 통화공급의 증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 정책이나 사회보장정책을 철회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완전고용을 포기하고 실업을 조직하는 한편, 금융소득에 기반을 둔 사회보장정책으로 기존 복지정책을 대체하고,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사회보장예산 적자와 실업위기를 무마한다. 즉 경제위기 시대 확산하는 실업을 불완전한 취업으로,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조직함으로써 노동력 재생산의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다. 한편 자본은 지급된 임금과 투입된 노동량을 일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노동력을 최대한 쥐어짜기 위해 노동을 전면적으로 재조직하고 있다. 이 과정은 해고나 신규채용 억제라는 인원감축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변형근로시간제의 도입에 따른 노동시간 신축화로 드러나기도 한다. 사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인데, 노동시간신축화로 인해 반(半)실업자와 취업자간의 경쟁이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부족한 생활임금을 얻어내기 위해 생산물량확보에 더욱 의존하고, 일정한 임금소득을 보장받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마다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에게서 경쟁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경제위기 시대 실업이 반실업상태로 조직되고 노동신축화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고용불안이 확산하고 동시에 노동자들 간 바닥을 향한 경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 맞서는 노동조합운동의 도전은 중차대한 과제다. <그림 1> 종사상 지위별 취업자 비중 (자료 : 통계청) <그림 1>을 보자. 지난 20여 년 동안 상용직 규모는 등락이 있기는 하지만 34%를 전후로 진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영업자가 조금씩 감소하고 무급가족종사자 상당수가 감소하고 있다. 무급가족종사자 중 80~90%는 여성이다. 1990년대 이래 임시직 일용직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은 자영업자 일부와 무급가족종사자 상당수가 임시직에 종사한 것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잔여적 형태로 정의할 경우, 비정규직은 임시직, 일용직 노동자와 상용직 노동자 중 고용형태가 비전형적인 노동자로 구성된다. <그림 1>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는 단지 IMF 이후 강행된 정리해고제나 파견근로제 도입의 결과만은 아니다. 반실업상태로서 비정규직은 자본주의 형성과 궤를 같이하며, 고용형태가 다른 일자리로서 비정규직은 이미 1980년대 하청구조를 확대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해고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노동자라는 의미에서 정규직은 근로기준법에나 존재했지 실제로는 (특히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1970년대는 물론이거니와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되었다 할 수 있는 1980년대 후반에도 사업장 구조조정과 해고는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제조업 사업장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라는 인식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는 198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다. 고용안정, 정규직 노동자는 사실 노동조합의 효과인 것이다. 1980년대 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에서 하청구조가 광범위하게 도입 확산되었지만, 강력한 노동조합의 운동이 일정하게 이를 제어한 셈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하청구조의 확산과 제조업사업장의 구조조정을 계기로 전노협의 조직력이 하락하고,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려는 정권과 자본이 전노협을 강력히 탄압하면서 이른바 3제를 도입하려 했다. 3제란 노동신축화를 촉진하는 제도로서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를 가리킨다. 한편 1990년대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민주노조운동은 이념(노동해방)을 상실하고, 정권의 탄압과 함께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본격화한다. 민주노총은 노조합법화를 대가로 3제를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한다. <그림 2> 실업자와 불완전 취업자 (자료: 통계청) <그림 2>에서처럼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36시간 미만의 불완전취업자가 급격히 확대되고, 경제위기 상황이 심화되는 가운데 민주노총은 조합원의 이해만을 방어하는 형태로 더욱 위축된다. 이 과정에서 고용과 임금을 둘러싼 반실업자와 취업자의 바닥을 향한 경쟁이 가속화되고, 이른바 ‘비정규직 문제’ 즉, 취업자와 반(半)실업자 사이의 갈등이 확산된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이상을 염두에 두고, 이른바 ‘비정규직 운동’의 과제에 대해 재론해보자. 노동조합운동 재건 고용안정과 임금인상 혹은 실질임금 하락 저지는 그 어떠한 제도적 도입에 앞서 노동조합운동의 강화와 그를 통한 노동권의 전면적인 확산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복지나 사회보장제도는 상대적 과잉인구에 의해 규정되는 임금노동제도를 절대 위협하지 않으며, 실업률과 임금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기능을 할 뿐이다. 반면 노동조합은 실질임금하락을 저지하거나 임금을 올리고, 고용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유력한 제도 곧 노동자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노동조합은 고용의 불안전성을 완충할 수 있는 제도이지만, 동시에 (자본의 지배를 위협한다는 의미에서) 노동자를 단결할 수 있게 하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운동의 결과로서 노동권의 전면적인 확대만이 실업자와 취업자의 경쟁을 완화할 수 있고, 실질임금의 상승과 고용안정을 가능케 한다. 종종 노동자의 실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반실업상태를 특권화해서 노동조합운동을 상대화하거나, 노동조합운동을 이른바 ‘정규직 운동’으로 등치시켜 그 자체를 개량주의 운동으로 한정하고는 노동조합운동으로부터의 이탈 혹은 우회를 주장하는 흐름도 있다. 이런 경향은 노동조합에서 임금과 고용을 둘러싼 노동자투쟁의 중요성을 무시한 것이거나, 투쟁과 단결의 무기로서 노동조합의 의미를 간과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이를 매개로 임금과 고용의제를 둘러싼 투쟁에서 실제로 그것을 쟁취하거나 방어할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노동에 대한 권리(생산에 대한 통제)를 자각할 기회를 얻게 된다. 물론 임금과 고용을 둘러싼 투쟁만으로, 혹은 노동조합운동만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문제는 노동조합운동의 절대적 부족이지 (관료화 혹은 정규직 대공장 운동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하는) 노동조합운동의 과잉이 결코 아니다. 노동조합운동의 보편화를 위한 노동조합의 재건과 민주노조운동 혁신이 필요하다. 따라서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려는 노력,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주체로 하는 노동조합운동을 만들려는 노력은 여전히, 앞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 공동의 요구에 근거한 노동권 쟁취 투쟁 노동조합 운동에서 공동요구를 구성하는 핵심 사안은 무엇보다도 고용과 임금이다. 공통의 임금 의제, 공통의 고용 의제에 대한 투쟁을 꾸준히 개발해내야 한다. 2008년발 경제위기 상황에서 2009년 최저임금은 물론이거니와 전체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모두 삭감되었다. 이를 만회하려는 전국적인 차원의 투쟁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 2009년 손실된 임금을 1999년처럼 특별수당을 통해서 만회하려해서는 곤란하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불안정한 소득으로 말미암은 생계 위기를 폭로하면서 기본급 인상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동시에 최저임금 인상투쟁을 전 조직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기본급과 최저임금의 임금인상을 통해 임금격차를 실질적으로 축소할 수 있는 투쟁을 기획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2009년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근로기준법도,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도 노동자에 대한 광범위한 해고와 계약해지를 제어하지 못하였다. 경제위기 시기에 해고와 계약해지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방안을 공동으로 법제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투쟁을 단위 사업장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은 의미가 감소될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희박하다. 전 계급적인 요구로서, 민주노총 총연맹의 요구로서 투쟁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전국적 전선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총연맹의 위상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이 투쟁의 의의는 대단히 크다. ‘비정규직 운동’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비정규직화와 노동권 후퇴에 맞서는 투쟁으로서 일정한 역사적 지위를 획득한 것은 분명한다. 따라서 공동의 요구로서 노동재조직화, 노동신축화에 맞서는 운동, 노동강도를 완화하려는 공동의 투쟁은 계속 모색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운동의 혁신, 이념의 형성과 사회운동기관으로의 전화 ‘비정규직 운동’이 그 자체로 노동자 운동의 혁신을 주도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노동자운동의 혁신은 당대 새로운 이념을 대표하는 노동자집단의 형성과 그 집단의 헤게모니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지, 생산의 중심에 있는 노동자가 주도한다거나 생산의 주변 혹은 더 억압받는 노동자가 주도한다고 미리 가정할 수 없다. 비정규직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에 있기 때문에 더욱 철저히 계급성을 구현할 것이며,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중심이 될 것이라고 선험적으로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현 단계 노동자운동의 혁신군으로서 ‘비정규직 운동’이 자신의 역할을 자임하고자 한다면, 전체노동자운동의 혁신과 노동조합운동의 재건이라는 차원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이념을 발본적으로 쇄신하고, 쇄신된 이념을 노동자 대중의 이념으로 형성하는 데 있어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비정규직 운동도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의 확대라는 관점아래 자신의 운동 역사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에만 매달려 비정규직 문제를 잣대로 노동자운동을 편 가르는 식으로 토론이 진행된다면 노동자운동의 혁신 논의는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 또한 ‘비정규직 운동’은 고용문제에서 비롯하는, 결국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미시적 결과에 맞서는 투쟁이라는 점도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운동’에 머무는 것 자체가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를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야기 확산하는 실질적인 원인에 대한 투쟁을 ‘비정규직 운동’ 스스로가 선도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는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해야 한다. 미조직 조직화 사업 1기 전략조직화 사업 평가 현 시점에서 고용형태의 다변화, 노동시장에서 반실업자와 취업자 사이의 경쟁구도 확산, 고용불안의 확산과 저임금 구조의 확대, 외주화와 간접고용 확대에 따른 노동3권의 무력화, 원하청구조의 안착화에 따른 손실전가 메커니즘의 안정화에 대해 노동조합운동은 구체적인 대안을 수립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에 접근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미국의 조직화 사례를 모델로 삼아서 전략조직화라는 이름으로 미조직―비정규직 사업을 특화하여 조직화 사업을 확대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정치 사회적으로 쟁점화해 왔다. (미국노총은 1995년 100년 역사상 처음으로 경선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서비스노조인 SEIU 출신의 존 스위니 위원장이 당선되면서 SEIU의 활동경험을 바탕으로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를 최대 과제로 내세우면서 ‘새 목소리’(New Voice)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현재 민주노총 전략조직화 사업 평가는 대체로 세 축이다. 첫째, 이른바 ‘5대 부문’ (하청노동자, 서비스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지자체 비정규노동자, 건설 일용노동자)의 조직화를 추진하는 산별노조의 조직확대계획에 비추어 본 평가다. 조직활동가의 경험 미숙과 전문성 부족을 꼽거나, 반대로 조직활동가들이 미조직사업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조직 내부적으로 뒷받침 해주지 못한 문제들(조직관리와 투쟁조직화에 내몰리는 상황이나 정책선전역량이 뒷받침 안 되는 경우 등)을 지적하는 것이다. 둘째, 산별노조의 질적인 전환 계획에 비추어서 전략조직화 사업을 평가하는 시각이 있다. 앞서 평가가 조직의 양적 성장에 비추어본 평가라면, 이 평가는 조직의 질적 전환이라는 차원의 평가라 할 수 있는데, 전략조직화 사업을 산별노조 건설의 실질적 내용이라는 차원에서 본 것이다. 이 차원에서는 금속의 1사1노조와 거점 공단조직사업, 보건의료노조의 비정규직 처우개선 활동, 의료연대의 지역지부 재편과 조직사업의 확대, 공공노조의 지역지부 건설과 통합산별 출범 지체에 따른 조직화 사업의 곤란, 건설노조의 일상적인 조직화 사업의 의미와 그것의 성과 등을 지적한다. 셋째, 조직노선 차원에서의 문제제기가 있다. 이는 대체로 비정규직 문제가 조직문화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평가에 무게를 두면서, 전 사회적인 문제제기를 동반하는 미조직 비정규직 운동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이상의 평가들이 일정하게 한계적인 것은 ‘전략’이라고 이름붙일 만큼 강조했던 조직화 사업이 왜 실제로는 적극적인 실천으로 조직되지 못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왜 혁신의 담론이 혁신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는가’라는 문제다. 그것은 전략조직화 사업을 추진하는 이념적 기반의 취약성, 전략조직화 사업을 추진하는 활동가 주체들의 절대적 부족에서 기인한다. 현재 비정규직 투쟁의 조직화를 통해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겠다는 구상이 현재로서는 답보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을 냉정히 볼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운동을 노동조합운동의 재건이라는 차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면, 전략조직화 사업을 노동조합운동의 재건이라는 시각에서 평가하고, 2기 전략조직화 사업 역시 민주노조운동의 재건이라는 차원에서 구상해야 한다. 조직화사업: 민주노조운동의 재건을 위하여 총연맹의 전략조직화 2기 사업은 대략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논의 중이다. ① 핵심 전략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중소영세노동자의 조직화, ②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문화의 혁신, ③ 중소영세 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법 제도 개선투쟁과 조직화의 결합이다. 적어도 이는 1기 전략조직화처럼 조직전문가 몇몇을 산별 중앙에 맡기는 방식, 정확히 말해 산별중앙 차원에서 재정과 인력을 단순히 나눠 가지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적 차원에서 총연맹 지역본부와 산별지역지부가 전략지역을 선택하여 해당지역(본부, 지부)의 조직주체, 지역의 노동 사회운동단체들이 협력해서 실제 조직화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총연맹이 이를 주관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이상의 계획이 재정과 인력의 집중,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담대한 전략의 구상이라는 점에서 ‘전략’조직화 사업인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전략조직화 사업계획이 노동조합의 미조직사업 계획 수립을 촉구한 것은 명확하다. 미조직 사업이 그저 단순히 민주노총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내부적 단결을 확대하고, 노동자계급의 보편적 이해를 민주노조운동으로 재정립하기 위한 활동이라 할 때, 민주노조운동의 재건이라는 차원에서 다음 몇 가지를 중점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① 노조조직화 활동가 주체의 확대 미조직 사업, 전략조직화 사업을 조직 활동가 주체를 총연맹과 산별연맹 내에 미조직 담당자를 두는 문제로만 이해하는 인식을 넘어서야 한다. 물론 미조직 담당자도 없는 마당에 담당자를 두는 것도 의의가 있다. 하지만 조직전문가 몇몇이 헌신적으로 활동한다 해도 이는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노조운동의 주체가 확대되지 않으면 노동조합이 또 다시 서비스 모델에 갇혀 조합원의 수동화와 조직률의 정체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속노조의 공단조직화사업 평가과정에서도 제기되었던 것처럼 현장 주체와 조직 담당 주체 사이의 입체적인 조직화가 실제 효과를 발휘한다는 평가는 충분히 주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차원에서 활동가 주체들이 확대되어야 한다. 먼저 제 사회단체, 정당이 노동조합재건투쟁에 목적의식적으로 참여하고, 각 지역에서 이를 지지하며 뒷받침해야 하고 다음으로 노동조합운동의 결과로서 조합원이 스스로 조직 활동가로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단체와 정당이 기층대중조직의 건설, 노동조합운동의 재건이라는 차원에서 현장진출, 노동자를 상대로 하는 지역교육사업, 노동조합조직화 지원 사업 등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노동조합운동이 조합원들을 활동가로서 거듭나게 할 수 있도록 투쟁의 목표 설정을 분명히 밝혀야 하며, 노동조합과 지역 사회단체, 정당의 교육사업이 재구성되어야 한다. 노조가 스스로 활동가를 재생산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또한 정당,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는데 있어 대중조직을 프랙션의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종파주의, 조급함에서 기인하는 좌익맹동주의, 반대로 정세와 무관하게 지나친 대기주의로 일관하는 것에 대한 자기비판을 전제하는 것이다. ② 노동조합운동의 교육사업과 문화운동의 혁신 비정규직 운동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이념 없는 맹목적인 조직화로는 조직화사업을 궁극적으로 확대할 수가 없다.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하고, 그것에 기반을 두어 임노동제도의 철폐와 공동체의 재구성(노동해방, 여성해방)을 지향하며, 그리고 대안세계화운동의 다양한 의제(생태주의, 평화주의)와 교통하는 노동조합의 가치와 이념을 정립해야 한다. 이념 없는 조직화사업은 노동조합운동을 아래로부터 붕괴시킬 뿐이다. 이념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함께 결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노동자 교육사업이다. 노동조합의 조직화사업과 교육사업이 상호유기성을 확보하며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차원의 조직화 사업이 지역차원의 교육사업과 함께 서로 교차할 수 있도록 총연맹과 지역본부, 산별연맹의 지역지부가 조직화의 주체로서 활동주체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해당지역의 유관 사회단체, 정당과 함께 노동조합의 가치와 이념을 정립할 수 있는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사회운동의 다양한 의제들에 대한 토론, 구체적인 정세에 대한 토론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하나하나가 활동가로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운영, 임단협 중심의 실무교육만으로는 활동가로서 거듭날 수가 없다. 한편 노동조합운동의 주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문화운동의 전면적인 혁신도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연대의 기풍이 확립될 수 있도록 (여성과 남성, 정규직 비정규직의 분할을 넘어) 활동가들 사이에서 평등한 소통을 중요시하고, 조직 내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문화운동이 필요하다. 또 정확한 정세분석 아래 임금노예가 아닌 주체적 노동자로서 스스로 투쟁을 조직할 수 있도록 추동하는 교육과 학습이 필요하다. 이를 구체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 대의원과 소의원 제도, 각종 소모임 활동, 단체협약을 통해 쟁취한 교육시간 등을 확산시켜야 한다. ③ 경제위기 시대, 정규직 비정규직의 공동투쟁: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 연대고용과 연대임금, 임단협의 집중화, 단협적용 확대, 최저임금투쟁, 민주노조 사수 비정규직 미조직 조직화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비정규직 사이에서 공동의 요구에 근거한 노동권 쟁취 투쟁을 지속적으로 기획해야 한다. 노동재조직화, 노동신축화에 맞서는 운동, (물량확보가 아니라) 노동강도를 완화하려는 투쟁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간에 공동의 노동조건을 확보하려는 운동을 통해 공동투쟁의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기본급 인상을 매개하는 정규직 비정규직의 정액임금인상,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실질적으로 기획해야 한다. 또한 총고용 쟁취, 해고와 계약해지를 제한하려는 공동의 고용안정 투쟁 역시 지속적으로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처럼 분권화된 임단협투쟁을 집중화시켜야 한다. 임단협에서 노동자대중의 전국적 계급적 단결을 확대할 수 있도록 총연맹과 (핵심)산별노조 사이에서 시기집중을 비롯한 공동기획과 공동투쟁을 강화하면서 분권화된 임단협 투쟁의 집중성을 높이고, 이를 기반으로 정규직 비정규직 정액임금인상투쟁을 조직하는 한편, 임단협의 포괄범위를 확대하려는 투쟁, 정규직 비정규직 공동단협쟁취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최저임금과 같은 노동조건의 하한선을 결정하는 투쟁에서 총연맹이 전체민주노조운동의 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는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기업의 손실전가 메커니즘이 확립되면서 하청노동자의 임금인상이 억제되고, 그에 따라 임금격차가 확대되었다. 2001년부터 전개된 최저임금인상투쟁은 재벌기업들의 손실을 어느 이상 노동자에게 떠넘길 수 없는 노동표준으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최저임금 미적용 사업장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이를 역으로 반증한다. 이런 상황을 폭로하면서 총연맹, 산별노조의 최저임금 투쟁을 해당 지역과 산별노조의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과 연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 사수’를 넘어 전체 노동자 민중의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관점 아래 정규직 비정규직이 함께 민주노조사수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화물연대 열사투쟁,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저지투쟁, 철도의 공공선진화 분쇄 투쟁을 지배세력들이 고강도로 탄압한 것은 노조를 깨거나 순치시킴으로써, 헌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다. 따라서 현 시기 민주노조를 죽이려는 것은 노동자 대중의 단결권 단체행동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민주노조사수투쟁이 ‘정규직 살리기’에 불과하다는 그릇된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정규직 비정규직, 나아가 전체 민중의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여성노동자를 민주노총 혁신의 주체로 세우자 민주노총은 페미니즘을 수용하고 여성의 요구와 권리의 실현을 자신의 과제로 삼고 있는가? 1997년 여성위원회가 출범하고 할당제, 반성폭력 규약과 같은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어 온 12년의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조금씩이나마 페미니즘적으로 개조되고 있는가? 여성사업은 확대 강화되고 있는가? 지난해 발생한 민주노총 임원 성폭력 사건과 그 처리 과정은 여성 문제에 관해서 민주노총이 여전히도 답보상태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노동조합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논란이 될 때마다 민주노총과 노동조합이 페미니즘에 입각해 혁신되어야 한다는 주문이 잇달았지만, 지금까지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 성폭력 사건이 아니더라도 여성노동자 조직률,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에 대한 태도, 민주노총의 여성관련 요구 등 여러 지표들에서 민주노총의 여성 문제에 대한 인식과 활동이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논란이 되어야 여성 문제에 대한 주의가 환기되고 그마저도 늘 흐지부지되는 현실은 민주노총이 여전히 여성노동자의 요구와 권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노동조합에서 여성 배제와 차별이라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제안된 할당제나 반성폭력 규약은 여성사업과 운동의 강화로 이어지지 못한 채 제도만 남아있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여성조합원들이 여성위원회를 자신의 운동조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여성사업이 자신의 요구와 문제를 담아서 해결하는 사업이라 느끼지 못하는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사업의 부문화, 부차화는 당연한 결과다. 여성사업 강화라는 과제는 단지 부문으로서 여성사업을 강화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민주노총에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확산하고 민주노총 운동을 페미니즘적으로 개조하려는 노력을 전면적으로 강화하는 것으로 사고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민주노총 여성사업의 현황을 진단하고 이후 과제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민주노총 여성사업 현황과 진단 여성위원회 구성과 사업 현황 민주노총의 여성사업은 흔히 여성위원회의 사업으로 이해된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여성 담당 부위원장(여성위원장), 사무총국의 여성사업 담당자, 산별연맹 또는 산별노조와 지역본부의 여성위원장이나 여성사업 담당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산별연맹과 산별노조, 지역본부의 여성위원장과 여성사업 담당자가 공석이거나 겸직인 경우가 많아 실제 여성위원회 결합도는 그리 높지 않다. 최근 여성위원회 사업은 대체로 조직사업, 정책사업, 교육사업, 연대사업 등 기본 사업과 정기적인 대중사업인 ‘3ㆍ8 세계 여성의 날’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직사업은 주로 여성위원회 골간을 확대 강화하기 위한 사업으로, 지역조직과 가맹산하조직과의 간담회를 통해 여성사업의 중요성을 알리고 사업주체를 세워야 한다는 공감대를 높이기 위한 사업이다. 간담회에서는 인력을 확충하기 어려운 재정 구조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항상 제기되곤 한다. 이는 여성사업의 중요성이 당위적인 수준에서 인정되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위상을 획득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객관적으로 재정의 어려움도 존재하지만, 여성사업이 노조 전체의 사업이고 남녀 조합원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과 평가를 받지 못한 채 부문으로 축소되는 상황에서 여성위원회와 여성사업의 확대 강화에 대한 적극적인 동의와 결의가 나오기는 상당히 어렵다. 정책사업은 여성의 고용과 임금 차별, 보육과 모성권, 적극적 차별시정 조치, 할당제, 성폭력과 성희롱, 건강권 등 여성에 관한 다양한 의제를 포괄하고 있다. 언급된 의제들은 물론 여성조합원들의 현실에서 비롯된 것들이지만, 실제 사업은 주로 연구프로젝트, 토론회, 설명회로 진행된다. 여성위원회의 정책이란 여성조합원들의 요구, 민주노총의 여성 문제에 대한 요구다. 그러나 이런 요구가 외부의 전문가나 연구자들의 작업을 통해 정리되고 있으며, 실제 사업계획과 맞물리지 못하면서 민주노총의 입장, 여론전을 위한 정책에 그치고 있다. 여성조합원들의 요구로 자리 잡고 운동으로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과 요구가 민주노총의 노선, 투쟁방향에 적합한지, 여성조합원들의 현실과 요구에 부합하는지 확인할 수 없게 된다. 교육사업으로는 민주노총 내 여성사업 현황, 여성노동 관련 법률과 쟁점, 여성학 기본 등을 다루는 내용으로 여성노동교실이나 성평등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참여자를 확대하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그때그때 외부 강사들을 섭외하는 일회성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교육내용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참여자 확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참여자들은 여전히 여성사업 담당자나 여성 간부들로 한정된다. 현 시기 총연맹 여성위원회가 교육사업을 진행하는 목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텐데, 전 조직적인 교육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체계적인 교육 내용 선정과 그에 따른 교안 마련, 강사단 구축을 통해 지역본부, 산별연맹과 산별노조에서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시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할당제, 여성의 대표성을 강화했는가 노조 내 여성의 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 민주노총은 2004년부터 임원과 대의원, 중앙위원에 대한 30% 여성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할당제 시행으로 2002년 10%에 그치던 여성임원 비율이 2007년 33.3%로 증가하면서 의사결정기구에 여성 참여 비율의 양적 증가를 낳았다. 그러나 할당제를 통해 하려고 했던 여성사업의 강화나 여성노동자의 조직률 제고, 조직 내 여성의 요구 반영과 같은 과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실에서 많은 조직이 할당 수만큼 여성위원을 선출하지 못하여 미선출(공석)로 처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할당제가 여성조합원들을 활동가 간부로 육성하는 것에 기여하고 있는가, 할당제를 통해 선출된 여성간부가 여성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할당제를 둘러싼 여러 평가의 지점 중에 가장 우선적인 것은 과연 할당제가 제고하려 했던 여성 대표성의 실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여성임원이나 간부 비율이 증가한 것만으로 여성 대표성이 강화되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여성할당제를 통해 여성대표를 선출하는 근거는 바로 여성조합원의 존재와 요구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의 주체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으며, 여성들의 집단적인 요구도 분명하게 조직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할당제를 통해 선출된 여성 간부는 여성조합원들을 대표한다기보다는 개인으로 인식될 뿐이다. 여성대표로 선출되었으나 대표할 여성의 요구와 집단적 주체성이 부재한 현실은 한편에서는 여성위원회, 여성대표의 기반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대표들의 활동이 개인의 성향, 정파 등을 근거로 진행되는 것을 제어할 수 없게 한다. 결국 여성들이 민주노총 운동과 조합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체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 여성들이 노조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처해있는 현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이를 통해 집단적인 요구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여성 의제, 어떻게 다뤄지는가 민주노총이 다루고 있는 여성 의제는 여성의 고용과 임금에서부터 여성 노동 관련 법, 출산 및 육아와 같은 모성권과 재생산 노동, 직장 내 성희롱, 여성의 건강권 등 매우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의제들이 어떤 기조로, 또 어떤 방식으로 다뤄지는가를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여성 의제가 여성만의 사항으로 국한되면서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전체 노동자의 조건과 민주노총의 운동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여성들의 일자리를 특징짓는 비정규직, 최저임금과 같은 사안은 민주노총 전체의 과제로 다뤄지기는 하지만 여성을 저임금, 유연한 일자리에 집중시키는 고유한 성별분업의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여성의 고용과 임금에 관한 고유한 쟁점은 주로 차별시정이나 적극적 조치의 문제로 인식된다. 여성의 고용과 임금의 일반적 조건인 저임금, 비정규직에 맞서는 투쟁이 여성노동자의 노동권을 쟁취하고 성별분업에 맞서는 투쟁임과 동시에 민주노총 전체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 조건을 방어하는 투쟁으로 제기되어야 하며 여성의 요구가 보편적인 요구로 인식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여성 의제에 관한 일관된 기조를 세우지 못하고, 여성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실용적이고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정부의 일 가정 양립 정책에 대한 태도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 가정 양립 정책은 여성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것으로, 여성의 일자리 확대를 통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 제고와 출산 및 보육 지원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럴 듯해 보이는 이 정책의 목표는 저출산을 위시한 재생산의 위기를 관리하고 저임금 여성 노동력을 창출하는 것이다. 실제 정부 여성 정책은 여성이 재생산 노동에 대한 일차적 책임자라는 성별분업의 구조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여성에 대한 출산과 보육에 대한 지원이 다른 여성의 열악한 사회서비스 일자리로 나타나는 것은 이 정책이 초래하는 당연한 귀결이다. 정부 정책의 목표와 문제점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제기하지 못한 채, 출산과 육아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는 것은 좋다는 식으로 정책을 수용하는 것은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우선 민주노총이 가사와 재생산 노동에 대한 여성의 의무를 강화하는 정책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문제다. 양육을 비롯한 재생산 노동은 여성이 가족 안에서 책임질 것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두 번째로 민주노총이 제시하는 여성 관련 단체협약안의 대부분이 정부가 제시하는 출산, 육아 지원정책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어쨌든 정부는 여성의 재생산 노동 관련 지원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를 무비판적으로 단체협약안에 그대로 넣다보니 민주노총 차원의 여성 단체협약안에 대한 별도의 고민이 필요 없게 된다. 결국 이는 여성조합원들의 정확한 현실을 반영할 수 없는데, 특히 최근 대다수 여성노동자가 고용상의 지위로 출산, 육아 휴직은커녕 노동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반성폭력 운동 지금까지 민주노총의 반성폭력 운동은 규약에 따른 사건 처리와 성폭력 예방교육이라는 두 축에서 진행되었다. 2003년 <성폭력 폭언 폭행 금지 및 처벌 규정>이 제정되었다. 이는 운동사회 내 반성폭력 운동이 제기해 온 문제의식을 수용한 것이었다. 물리적, 신체적 성폭력뿐만 아니라 여성억압 구조와 문화에서 기인한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성폭력 규정으로 포괄하였고,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와 같은 개념을 받아들였다. 규약 제정은 성폭력 사건이 피해자와 가해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며, 공동체의 문화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동반하면서 조직이 성폭력 사건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러나 규약이 제정되면서 오히려 민주노총 내 여성 배제와 차별을 비판하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논의도 일단락되었고, 이후에는 발생한 사건의 처리가 반성폭력 운동의 주요 활동이 되었다. 발생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논란에 대응하면서 성폭력 규정과 처리의 원칙, 피해자의 권리를 조직 내에서 인식시키는 것이 반성폭력 운동의 주요 과제였다. 지난해 발생한 민주노총 임원의 성폭력 사건과 그 처리 과정은 민주노총 내 반성폭력 운동을 심각하게 평가해야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성폭력 사건은 그동안 펼쳐진 반성폭력 운동을 통해 성폭력이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고 자율성을 제약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이 민주노총 내에서 생겨났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주었다. 이후 사건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점은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처리를 중심으로 펼쳐져 왔던 반성폭력 운동이 최소한 사건 처리 원칙과 방식조차 조직에 안착시키지 못했다는 평가를 낳았다. 현재는 성평등미래위원회 내 반성폭력팀을 중심으로 그동안 펼쳐진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평가와 이후 대안적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대체로 사건 처리 중심의 반성폭력 운동이 한계에 부딪혔고 이를 넘어서 민주노총의 활동과 문화의 혁신을 실현하는 반성폭력 운동이 필요하다는 합의는 존재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규약 상의 성폭력 규정, 처리 과정, 피해자 중심주의나 2차 가해와 같은 개념 등을 좀 더 명확히 명문화하여 사건 처리의 원칙과 매뉴얼을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구체적인 사건을 다루는 방식 이전에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대안 모색의 기본 전제는 민주노총 내에 성폭력과 그 바탕에 놓인 여성 차별, 억압, 배제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고 이를 바꿔야 한다는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과 합의를 만들기 위한 일상적인 여성사업, 여성위원회의 역할이 포괄적으로 고민되어야 한다. 성평등미래위원회와 여성위원회 여성위원회의 구성도 매우 취약하고 여성조합원들의 힘을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여성위원회가 민주노총 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노동조합의 페미니즘적 개조를 선도하지 못하고 여성사업이 계속 부차화, 부문화되는 상황에서 여성위원회의 역할과 위상도 매우 모호하고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민주노총 임원 성폭력 사건은 여성위원회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회의를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였다. 실제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꾸리기까지 여성위원회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전교조 내 2차 가해자들의 징계 불복과 재심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사건 처리에 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여성위원회는 페미니즘, 여성의 권리에 입각하여 사태를 평가하고 입장을 정리할 수도 없었다. 여성위원회가 정파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관점이 명확하지도 못하며, 제대로 사업을 진행하기도 어렵다는 회의가 제기되었다. 결국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권고를 따라 성평등미래위원회를 한시적 기구로 설치하여 민주노총 혁신방안을 마련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혁신의 주체가 기존에 민주노총 내에서 여성을 대표하고 여성사업을 추진한다는 여성위원회가 아니라 성평등미래위원회로 결정된 것이다. 현재 성평등미래위원회는 민주노총의 성평등 혁신 방안을 내기 위한 중장기사업팀, 그간 민주노총의 반성폭력 운동을 평가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반성폭력팀으로 구성되어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구체적인 사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민주노총 성평등 강사단 양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임원 성폭력 사건이 민주노총 여성사업을 가장 크게 규정하고 있는 현재의 조건이나, 산하가맹조직의 임원들과 외부 전문가를 포괄한 위원장 직속 위원회로서 성평등미래위원회의 위상을 고려했을 때 성평등미래위원회의 권한과 영향력은 여성위원회에 비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평등미래위원회와 여성위원회를 둘러싼 논의가 촉발되고 있다. 여성위원회를 성평등미래위원회로 대체하자는 의견도 있고, 양자를 같이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여성위원회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조건 상 성평등미래위원회가 여성위원회를 대체하는 것이 손쉬운 해법처럼 보일 수 있다. 성평등미래위원회를 상설 기구로 유지한다고 했을 때 그 역할과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새롭게 논의될 문제겠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즉 민주노총을 페미니즘적으로 개조하고 혁신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다. 민주노총에 여성 문제를 제기하고, 여성의 요구를 보편적인 운동의 과제로 제기할 수 있는 주체는 바로 여성조합원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요구를 집단적으로 묶어내고 대표하는 단위가 여성위원회다. 이런 기층의 힘이 없다면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개조는 불가능한 일이다. 성평등 의제를 민주노총의 외부에서 아무리 많이 들여오고 강제할 조항이나 구조를 만든다고 해도 조직 내에서 이를 추동할 주체와 힘이 없다면 성과를 보기 힘들다. 임원 성폭력 사건이라는 정세적 조건이 사라졌을 때, 기층의 주체 없이 성평등미래위원회의 권한과 위상이 지금처럼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민주노총 운동 얼마 전 여성부는 여성에게 적합한 일자리와 근무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여건에 따라 근무 시간과 형태를 조절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도(일명 퍼플잡) 도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내년 초 시간제 근무 공무원 제도를 시범 도입하고, 민간 기업의 유연근무제 도입 촉진을 위해 법령 정비와 인사노무 관리 매뉴얼 개발에 나선다고 한다. 이를 받아 정부는 유연근무제도를 공공 부문으로 확대 시행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유연근무제도뿐만 아니라 몇 년 전부터 여성의 일자리를 둘러싼 여러 제도가 마련되고 있다. 그런데 분리직군제나 무기계약, 사회서비스 일자리, 유연근무제도 등 여성의 일자리를 제도화하는 기본 전제는 노동신축화다. 그 일차적 대상은 가장 조직이 안 되어 있고 힘이 없는 여성노동자들이지만, 결국 전체 노동자가 대상이다. 비정규직 확대, 노동자 집단간 격차의 확대라는 조건에서 민주노총은 노동신축화에 맞서고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강화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이 여성들을 유연한 저임금 노동에 고착시키는 여러 정책과 제도에 대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라는 논리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이라는 과제로 환원되지 않는 가족의 문제가 놓여있다. 여성들이 가사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풀타임 근무보다는 파트타임이 적합하다는 논리는 많은 노동자들도 공유하고 있는 남성생계부양자-여성가사담당자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가족임금을 매개로 한 남성생계부양자-여성가사담당자 모델은 완전히 실현된 적도 없거니와, 최근 현실에 적합하지도 않다.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라도 필요하다는 여성들의 요구는 가계 소득을 보전하려는 노동자 가족의 요구다. 정권과 자본은 이러한 요구를 바탕으로 오히려 여성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여성의 가족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확대하고, 노동신축화를 달성하려는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지금까지 이 문제를 진지하게 운동의 과제로 사고한 적이 없다. 오히려 가족을 매개로 한 성별분업과 여성의 재생산 노동에 대한 책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여성노동자의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조건은 여성노동권이 제약되는 고유한 구조로 파악하기보다는 비정규직 일반의 문제로 사고한다.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개조와 혁신이 필수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성의 노동을 부차화하고 현재 가족의 성별분업 구조와 여성억압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한 여성들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맞서는 투쟁은 민주노총의 중심 과제가 될 수도 없고 여성노동자들이 민주노총 운동의 일주체로 설 수도 없다. 또한 출산, 양육에 대한 지원으로 여성에게 모성과 재생산 노동을 강요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여성을 착취하는 공세에 대응할 수 없다. 나아가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강화해야 하는 민주노총의 과제를 이룰 수도 없다.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혁신과 여성사업 강화를 위한 과제 여성노동자 조직화 민주노총을 페미니즘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주체로서 여성노동자의 조직화는 언제나 중요한 과제다. 무엇보다 여성의 조직률이 워낙 낮은 상황에서 이를 높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더불어 미조직 노동자의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라는 측면에서도 여성노동자 조직화의 중요성은 배가된다.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노동자 대다수는 노동조건과 임금이 매우 열악하고, 해고나 여타의 권리 침해에 대응조차 할 수 없거나 노동자성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무권리 상태에 놓여있다. 민주노총이 이런 무권리 상태의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방어함으로써,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자신의 노동과 삶에 의미를 가지는 조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조직화 과정은 남성생계부양자-여성가사담당자라는 이데올로기와 현실이 여성을 어떻게 노동시장에서 배제하거나 활용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여성권과 페미니즘을 민주노총의 과제로 받아들일 필요성을 실천적으로 제기한다는 의미가 있다. 더불어 이미 조직된 여성조합원과 새롭게 조직되는 여성노동자들을 민주노총 운동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조직화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 활동의 주체로서 자신의 이념을 정립할 수 있는 교육과 학습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여성해방운동의 역사, 페미니즘 이론, 여성의 권리와 같은 페미니즘 관련 교육뿐만 아니라 노동자운동의 역사, 노동자의 권리, 노동조합 활동, 정세를 포괄하는 교육사업이 필요하다. 또한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활동과 정치적 실천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과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의 여성요구: 여성의 노동권 쟁취와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 민주노총은 여성조합원의 요구에 기초해 사회적인 여성억압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에서 여성관련 요구가 강제성을 가지는 조항으로 사업화되는 경우는 기업별, 산별 수준의 여성 관련 단체협약이다. 그러나 많은 사업장에서 여성 관련 단체협약은 가장 먼저 양보할 수 있는 사항으로 치부된다. 또한 실제 여성노동자 대다수는 해고 위협과 같은 고용상의 실제조건 때문에 단체협약이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사업장 수준의 요구를 넘어서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일반적 현실을 반영한 요구안을 민주노총 차원에서 제시하고 대사회적인 영향력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안은 정부가 제시하는 여성관련 정책들을 사안별로 유불리를 따져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노동권 쟁취와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라는 일관된 방향에서, 남녀 모든 조합원의 작업장, 가족, 노조의 활동과 구조, 그 안에서 여성들의 현실에 기초하여 구성되어야 한다. 여성들로부터 나오는 여성의 힘: 여성위원회 현재 여성사업 담당 부문, 여성 간부들의 사업 단위로 인식되고 있는 여성위원회를 여성조합원의 힘을 바탕으로 한 여성들의 자율적인 조직으로 강화해야 한다. 여성위원회는 사회적인 여성억압의 문제가 제기될 때, 또 이러한 문제가 노조 내에서 표출됐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과 방안을 모색하고 이를 전체 민주노총 운동의 과제로 제시하는 기구로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성위원회는 여성조합원과 접촉면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배제, 차별을 감축시키기 위한 문화 혁신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처리를 넘어서 여성 차별적, 억압적 구조와 문화를 개조하기 위한 다차원적 노력이 모색되어야 한다. 여성의 권리, 페미니즘에 대한 전 조직적인 교육 과정을 마련하고 진행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산하가맹조직에 여성억압적 문화를 점검할 수 있는 정기적인 토론을 안착시킴으로써 여성 문제를 일상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사업이 마련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제2의 정치세력화, 정당 간 통합을 넘어 사회운동정당으로 나아가자 2009년 정세는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두 전직 대통령의 사망, 쌍용차 공권력투입,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세종시 사업 수정 등 집권세력에게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각종 현안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정권의 의도가 관철된 형세로 볼 수 있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전통적인 보수세력 결집에 우선순위를 두고 강경한 대북정책과 사회운동 및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을 주요 이슈로 활용한 결과 이명박 정부는 30% 수준의 안정적 지지선을 확보했다. 더욱이 올 하반기부터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면서 한층 자신감을 얻은 정권이 친서민 중도실용 행보를 전면화하면서 그 지지율은 40%를 상회하고 있다. 최근 정권이 큰 저항 없이 철도파업,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에 대한 탄압을 가하고 노조법 개악이나 4대강 예산심의를 밀어붙이는 것은 자신감을 상당히 회복한 징후로 볼 수 있다. 반면 민중운동은 용산 투쟁이나 쌍용차 파업 등의 계기에서 끈질긴 투쟁을 이어왔지만, 대개는 압도적인 힘의 열세 속에 정권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굴복해야 했다. 정권은 2010년에도 각종 법 제도 개악을 통해 노동신축화를 강화하고 노동조합 활동의 근간을 뒤흔드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민중운동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던 민주노동당이 대선 이후 분열하면서 그 정치적 입지가 대폭 축소된 것도 중요한 패인이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각각 5석과 1석의 의석에 5%와 3%를 밑도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향후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정당의 암울한 미래를 점치는 전망이 곳곳에서 제출되고 있다.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의 공식적 결의와 지원에 바탕을 둔 노동자 대중정당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에 있다. 분당을 계기로 복수의 진보정당 시대가 개시되면서 배타적 지지 방침으로 근간으로 하는 정치세력화 운동의 하나의 순환이 극적으로 마감된 것이다. 진보정당운동을 둘러싼 세력구도가 고착화되면서 민주노총의 통합력은 크게 저하하고 있으며, 현장 조합원들의 무기력과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힘 관계의 역전을 위해 진보대연합이나 민주대연합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진보정당들 간의 통합을 촉구하거나 민주당이나 시민단체와의 연대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6기 민주노총 집행부 선거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그간 민주노총이 추진해온 정치세력화와 민중연대운동에 대한 평가를 통해 대안적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2009년 민주노총이 진행한 정치사업, 연대사업에 대한 평가를 통해 몇 가지 쟁점을 추출한 뒤, 이와 결부된 진보정당들의 민주대연합 또는 진보대연합 노선을 비판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드러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총 1기 정치세력화를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결론적으로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둘러싼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적 토대의 혁신과 개조를 통해 역으로 정당운동과 민중연대전선을 통합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9년 민주노총 정치사업 경과 민주노총은 “제 진보세력의 대단결을 요구하고 있는 정세적 측면과, 당분열 이후 조합원들 속에 확산되고 있는 정치세력화운동에 대한 냉소주의와 패배주의를 불식하고 노동자민중의 집권운동에 대한 진일보한 전망을 세워내야 한다는 측면에서, 진보정당세력의 단결과 통합을 위한 민주노총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인식 하에 지난 1월 열린 정기대의원대회 2009년 정치 사업계획으로 진보정당 세력의 통합추진 건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3월 ‘진보정당세력의 단결과 통합을 위한 민주노총 추진위원회’(통추위) 구성 건을 확정하고, ①제 진보정당 방문 및 간담회 개최 ②단결과 통합을 위한 추진 논의 기구(TFT) 구성 ③토론회 개최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민주노총 내부적으로도 ①단위노조 간부 여론조사, ②진보정당 통합촉구 선언문 채택(9월 임시대의원대회 만장일치 결정), ③진보정당 통합촉구 조합원 10만 선언 서명운동 ④지역본부 순회 토론회 등의 일정을 밟고 있다. 민주노총 통추위는 5월에 진보정당세력의 단결과 통합을 위한 내부 의견을 조율한 뒤, 7월과 8월에 각각 현장조직과 진보4당 및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이러한 의견 수렴 절차와 병행하여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사노준)과 진보4당 TFT를 구성하여 협의를 진행해왔다. 그런데 민주노총-진보4당 TFT는 시작부터 난항을 겪으며 당초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잠정 실패하고 말았다. 우선 ‘진보정당의 단결과 통합이 필요하다’는 기본 취지에 대해 정당들 간의 이견이 표출되었다. 진보신당, 사회당, 사노준은 TFT의 명칭에서 ‘단결과 통합’이라는 표현을 ‘연대와 혁신’으로 수정할 것을 제기했다. 또 이들 3당은 “정파나 정치세력의 분립 자체가 노동현장을 갈라놓는다는 해석은 정치적 차이에도 민주노조 운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진보정치세력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무원칙한 대동단결주의”라며 민주노총 통합촉구 선언문 채택에 대한 유감 성명서를 발표했다. 문제제기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진보신당은 민주노총이 기존 배타적 지지 방침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정당간 통합을 촉구하는 것이 모순이라며 민주노총 세액공제 방침에 대한 유감을 전달하고 진보신당에 대한 세액공제 방침을 협조 요청하였다. 사노준은 “민주노총의 진보정당통합운동은 (…) 진보정당 주체와의 실질적 논의가 생략된 채 나온 ‘폭력’이자 ‘월권’행위이며, 민주노총의 결정은 TFT에 참여한 각 정당과 민주노총 간의 실질적 연대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유로 TFT에서 탈퇴하였다. 민주노총은 11월 초 TFT를 확장하여 ‘제진보진영 간담회 및 논의기구 구성을 위한 사전모임’을 진행하고 이 틀을 통해 공동의 정치선언문 발표를 추진하였다. 여기서 민주노총은 ‘진보정당 통합선언(약속)→2010년 지방선거에서 제 진보진영의 공동 대응→큰 틀의 진보정당 건설의 로드맵 제시→2012년 총선 대선 필승전략 수립’ 경로를 설정했다. 그러나 정치선언문 성안 과정에서 또다시 조직간 이견이 표출되어, 선언문 작성은 유예되고 대신 2010년 초 ‘대토론회’를 추진하기로 한 상태다. 진보정치세력 통합을 둘러싸고 표류하는 논란 1: 진보대연합 왜 이런 결과가 발생했는가? 일단 2009년 민주노총의 정치사업이 진보정당이 분화하게 된 근본적 이유에 대한 폭넓은 진단 없이 주어진 선거일정에 긴박당해 성급히 정당 간 조직통합을 촉구한 것이 문제였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우선 민주노동당의 경우, 민주노총의 ‘단결과 통합’ 제의에 대해 큰 틀에서 동의하면서 지방선거에 즈음하여 ‘선 통합선언 후 선거연합’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는 당의 진로와 관련하여 당 정체성 강화론과 진보정치세력 통합론이 경합하고, 연대연합과 관련하여 반MB연합론과 진보대연합론이 경합하는 양상을 띠어왔다. 이러한 내부 논란을 일소하는 취지에서 민주노동당은 최근 확대간부회의를 개최하여, 당의 정체성 강화를 제일의 과제로 설정하는 한편 ‘반MB 전선의 주도성을 확보하면서 진보대연합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상태다. 여기서 ‘당 정체성 강화’론은 민주노동당 주류파, 그중에서도 분당 사태를 진보신당의 분열주의로 평가하는 강경한 세력의 인식이 투영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용대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당 기관지 <진보정치> 기고를 통해, “당을 모욕하고 파괴한 분열주의자들에게 아무런 절차 과정의 매개 없이 당선 가능성과도 무관한 ‘진보대연합’ 명분 때문에 면죄부를 주고 지지까지 해야 하는가”라며 “허구적 ‘진보대연합’에 매달리는 것에 우려한다”고 강하게 통합론을 비판했다. 이러한 기류는 지난 4월 울산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후보단일화에 합의한 이후 여론조사에서 패배한 민주노동당의 대변인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한 사례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의식한 듯 진보신당의 경우 ‘민주노총의 통합 제의의 진정성은 이해하지만, 지방선거 전 통합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분당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지방선거 전에 무리하게 조직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실질적인 연대마저 가로막을 공산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진보신당은 ‘선 통합선언 후 선거연합’의 논리가 자칫 선거연합을 회피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즉 민주노동당 내에서 진보신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세력이 오히려 민주노총의 통합 요구에 편승하여 진보신당을 통합에 반대하는 분열세력으로 낙인찍은 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 방침을 추수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것이다. 또한 진보신당은 지난 4월 재보선 당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후보가 단독 출마한 인천과 전주에서 양당이 교차로 지지선언하자는 일각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전북본부가 배타적 지지방침을 근거로 진보신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불허함으로써 연대의 계기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도 불신의 근거로 들고 있다. 진보정치세력 통합을 둘러싸고 표류하는 논란 2: 민주대연합 앞으로도 한동안 논란은 지속되겠지만, 어쨌든 현재까지 민주노동당은 진보대연합은 기본적으로 추진하되 민주대연합도 민주노동당의 명분과 실리가 보장되는 선에서 병행 추진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신당의 경우에도, “민주당 중심의 민주대연합과는 구별되는 사회 경제적 민주화연합(민들레연대)을 중심으로 선거연합론을 적극적으로 제기”한다고 하지만, “‘반MB 대안 연대’를 기준으로 선거연대를 추진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겨둔 상황이다. 여기에는 개혁세력 내지는 범진보개혁세력의 통합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진영의 ‘반MB 선거연합’ 흐름이 일정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반MB 선거연합’을 주창하는 여러 흐름이 형성되어 있는데, 대체로 전 집권세력과 시민사회단체 상층부, 일부 민중운동 출신 명망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제일 먼저 창립된 <민주통합시민행동>의 경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던 재야 출신 인사들과 현재 민주당, 국민참여당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모든 민주세력이 대동단결하자는 민주대연합을 제안하고 있다. 뒤이어 창립된 <시민주권모임> 역시 이해찬 전총리를 대표로, 참여정부 인사와 현재 민주당 인사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개혁세력의 승리를 위해 <승리 2010, 시민의 힘>이라는 정당-시민사회 연대기구를 제안한 상황이다. 이상과는 다른 맥락에서 박원순 변호사와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박순성 동국대 교수, 백승헌 민변 회장 등 시민사회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희망과 대안>의 경우, 지방선거를 앞두고 좋은 정치세력 형성에 기여하고 정치권과 시민사회, 시민사회 내부소통, 정책 생산 등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창립 취지를 밝혔다. 끝으로 지방선거에서 진보개혁진영의 연대를 모색하는 노동·시민사회 진영의 연대체인 <2010연대(준)>가 있다. 여기에는 민주노총 간부 출신 인사들도 상당수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일부 진보 학계에서도 이런 흐름에 관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주로 ‘반MB’라는 국민적 정치전선과 ‘반신자유주의’라는 민중적 정치전선의 이중적 존재와 상호 긴장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국민정치적 공간에 반신자유주의적 세력이 어떻게 헤게모니적 개입전략을 구사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아래에서 정치적 민주주의에 관한 권리가 신장되었지만 경제적 민주주의에 관한 권리가 미흡했으므로, 민주당의 진보파와 진보정당들이 제휴하여 사회권의 확장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인식을 전제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한 주요 방안으로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축소된 시민사회와의 협력, 즉 거버넌스를 회복할 것을 주장한다. 반MB연합 비판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이명박 정부를 악마화하며(예를 들어 이명박 파시즘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아래에서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제반 민주적 권리의 침해에 대해 의도적으로 침묵하거나 면죄부를 부여한다. 설령 전 집권세력을 비판하더라도 압도적인 힘 관계의 열세 속에서 최소한의 방어를 위해 현실적으로 민주당을 활용하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러한 수세적 태도는 이른바 MB악법을 저지하기 위한 대국회 투쟁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한미FTA, 금융자유화 등 금융세계화를 촉진하는 현안과 관련하여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를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거니와, 국회에서 벌어지는 여야 간의 충돌 역시 실제로는 권력 분점을 둘러싼 당파적 마찰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전 집권세력들의 경우 민주당의 재집권 프로젝트나 또는 국민참여당으로 결집한 친노세력의 부활을 위해 시민사회와 민중운동이 외곽에서 지원을 담당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반면 여기에 마지못해 동참하는 진보정당은 여전히 민주당의 2중대라는 국민적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MB 선거연합 역시 해법이 묘연하기는 마찬가지다. 논자들마다 강조점의 차이는 있지만, 시민단체 인사들은 대개 민주당이나 진보정당 어느 세력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민심을 대표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차기 정권교체를 위해 새로운 정치연합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의 근저에는 이전 정권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여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던 시민단체의 생존이라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진보정당 스스로 이런 흐름과 분명히 단절하며 정치적 독자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진보정당이 자신의 전망을 사회운동보다는 선거정당에 두기 때문에 선거 시기 중도파와의 연합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진보정당 역시 선거 시기 지지층의 외연을 확대할 것인가 또는 내부 결속력을 강화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대개는 전자의 길을 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진보정당은 정치공학에 근거한 선거기법에 몰두한다. 이때 새로운 지지층의 확대를 위해 대중적 조직망을 구축하는 방안은 비효율적인 활동으로 치부되고 만다. 핵심 지지층의 동원은 기정사실로 간주되거나, 이 역시 선거 기법상의 문제로 접근된다. 그 결과 진보정당 스스로 자신의 계급적 기반인 민중운동을 경시하는 풍조를 낳고 궁극적으로는 민중운동의 토대를 약화시킨다. 진보정당의 전략 비판 이러한 문제는 현실에서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단적인 사례로,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는 △10만 당원 확보 △2010년까지 지지율 20% 확보 △진보적 지방자치 실현으로 지역집권의 축 형성 △2012년 원내교섭단체 발전 △2017년 집권을 발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민주노동당이 반이명박 정부 투쟁에서 주도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범개혁세력의 분화로 발생한 균열과 공백을 잠식함으로써 자주민주정부를 수립한다는 전통적 전략의 변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기대와 달리 10월 보궐선거에서 반 정권 민심은 여전히 민주당의 자장에 속해 있었고, 친노세력이 규합한 국민참여당은 창당과 동시에 지지율 3등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범진보개혁세력에 대한 구 집권세력의 헤게모니를 대체한다는 민주노동당의 장기적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응당 두 가지 전제, 즉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급진적 대중운동의 실존과 함께 이를 정치적으로 대표하기 위한 민주노동당의 내적 성장이라는 조건이 구비되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분당 이후 퇴보적 정체 상태에 빠져 있고, 그 대중적 토대인 민주노총 역시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있다. 진보신당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창당 당시부터 공공연히 ‘탈 민주노총’을 선언한 진보신당은 전통적인 조직 노동자운동을 상대화하는 대신 비정규직이나 수도권, 고학력, 화이트칼라 중심의 ‘핵심 타겟’(표적집단) 공략을 표방하며 선거주의를 심화하고 있다. 진보신당 창당과정에 즉각 동참하지 않은 세력이 외곽에서 진보신당을 노동자 중심 정당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 것은 이에 대한 나름의 비판인 셈이다. 이러한 궤도 수정의 결과, 진보신당은 ‘추상적인 이념대신 구체적인 현실분석과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생활진보와 민생정치’를 당노선으로 제시하고 있다. 2008년 촛불집회에 대한 무비판적인 접근도 여기에 한 몫을 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진보신당 자체 진단처럼 한 석의 국회의원과 3% 미만의 지지율로는 당의 존립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고심일 것이다. 현재 진보신당은 일상적인 지역 활동의 부재를 조직적 약점으로 지적하며 지방선거 대응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중장기 지역 활동의 토대를 마련할 것을 목표로 설정한 상태다. 그런데 진보신당은 “정당 브랜드가 약한 상황에서 유력 정치인의 출마 선언을 통한 대중적 관심을 집중한다”거나 “소위 ‘노심 쌍포론’을 중심으로 인물이 정당을 키우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한다는 등 스타 정치인 한두 명에게 의존하는 한계를 반복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처럼 선거공학이나 선거시기 득표전략에 매몰된 진보정당들이 동일한 기법을 채택하는 지배정당들에 대해 우위를 점하게 될 가망성은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또한 분당 이후 양당 간 외적 경쟁구도가 작동하면서 새로운 운동을 창출하려는 노력보다는 기득권을 분점하기 위한 악무한적인 대립을 낳을 우려가 크다. 민주노총 내부의 정파적 대립구도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대립과정에서 기층에서의 운동이 혼란과 무기력에 빠지고 있다. 한국진보연대 구축과정은 이러한 경향을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존재 그 자체가 분열의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 현 집행부가 진보정치세력의 통합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일단 기존 집행부가 배타적 지지 방침을 고수하던 것에 비해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주로 진보양당의 재통합에 초점이 맞춰진 현 집행부의 제안은 1기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 대증요법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총 1기 정치세력화의 문제점 그렇다면 비판의 초점은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운동으로 모아진다. 1996년 총선에서 노동자후보를 출마시킨 민주노총은 1997년부터 정치세력화 운동을 본격화한다. 1996-97년 총파업 실패의 교훈을 ‘의회에 노동자 대표가 있어야 한다’는 데서 찾은 민주노총은 다가올 대선에서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국민후보로 추대하고 정치조직을 결성한다는 방침을 수립한다. 그 결과 민주노총을 필두로 진보진영 전체를 아우르는 공동대선대책기구의 위상을 지닌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21>이 결성되고 민주노총 위원장이 ‘국민후보’의 이름으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였다. 이는 여러 굴곡에도 불구하고 향후 민주노동당의 모태를 이루게 된다. 이처럼 1990년대 진보정당 건설 운동은 민주노총 건설 이전부터 진보정당을 주장했던 이념지향적, 정당지향적 세력의 주도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양적 성장을 토대로 실현되었다. 애초 진보정당 운동을 주도하던 정치세력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된 상태였고, 이런 의미에서 <국민승리21>의 결성은 모든 운동세력의 결집이라는 외양을 띠었지만, 그 결합은 이념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상당히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 정치세력화 방침은 이미 노동자운동이 수세적 노선으로 전환한 이후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초반 좌파정치운동 일각에서 제기한 ‘신노선’은 정치조직과 대중조직 분리 구축을 주장하며 정당과 노조의 역할을 규정하였지만, 이는 사실상 노동조합 활동을 경시하거나 노동조합의 이념 지향적 활동을 방기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 위기론이 제기되었고, 민주노총 출범을 기화로 진보적 조합주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기치로 하는 실제적 노선 변화가 발생했다. 게다가 IMF 경제위기를 경과하며 노동조합의 내적 분열과 위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민주노총 1기 지도부는 김대중정권이 제안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에 합의한 뒤 사퇴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으로 출범한 2, 3기 지도부 역시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를 철폐하지 못한 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와 탈퇴를 반복하는 악순환에 빠졌고, 2003년에는 변형근로제 도입을 저지하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신자유주의 노동신축화에 굴하고 말았다. 이렇듯 민주노총이 만성적 위기에 빠져 있을 때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10석에 이르는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급작스러운 성공을 거둔다. 이는 민주노총의 공식적 결의와 지원에 기반을 둔 노동자정당인 동시에 다양한 정파들이 공존하는 정치연합으로서 성격이 공존해온 민주노동당의 진로에 역설적인 효과를 낳았다. 첫째, 민주노동당이 점점 더 ‘원내정당’을 지향하면서 민주노총으로부터 자립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의 정치방침에 근거하여 건설되었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한계가 고스란히 당 내부로 이전되어 당의 토대를 약화시키는 경향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원내 진출 이후 자신의 지지기반인 민주노총과 사회운동의 혁신이나 정치적 재조직화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민주노총으로부터 당 활동의 자원을 확충하는 데 치중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은 선거 시기 인적 물적 동원으로 이해되기 일쑤였고, 당원의 지속적인 충원에도 불구하고 당원을 포함한 조합원들을 의식화, 조직화하기 위한 당이나 민주노총 차원의 교육 프로그램은 매우 취약했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 활동에 주력하면서 스타 정치인들에 의한 사당화(私黨化)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민주노총당’을 탈피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즉 민주노총의 투쟁이 조합원의 적극적 참여와 열기 속에 진행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적 정당성과 지지도 취약한 마당에 더 이상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의 이미지를 함께 감당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둘째, 민주노동당을 구성하는 다양한 정파들의 연합은 민주노총의 공식적 지원이라는 토대 위에서 정파세력 간에 경쟁과 협력의 계기가 될 수 있으나, 역시 역으로 정파연합의 붕괴는 민주노총의 분할로 이어지게 할 가능성을 내포했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제도권 진출이 가시화되자 민주노총 상층부 인사들이 권력지향적 정치엘리트를 추구할 위험성이 높아졌고 이는 민주노동당 당직, 공직을 둘러싼 정파 간 갈등을 유발했다.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는 기본적으로 특정 정파의 공직, 당직 독점에 대한 반발로 출발했기 때문에, 이는 결국 민주노총 내부에서 정파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궁극적으로 노총의 분할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이러한 정파 간 갈등을 완화하지 못한다면 정당과 노동조합의 분열은 극단화되거나 파국적인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제2의 정치세력화, 정당 간 통합을 넘어 사회운동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차기 집행부의 과제로 제시되고 있는 제2의 정치세력화는 현존하는 정당들 간의 통합을 촉구하는 수준을 넘어 정당과 노조의 관계와 노동조합의 정치 활동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전제로 추진되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자운동이 허구적 코퍼러티즘과 노동자 분할 전략에 맞서 계급적 통일성을 강화하는 운동 전략을 통해 대중운동을 재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과거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운동이 노동자운동의 위기에 대한 수세적 반응의 산물이었다는 점에서, 다시 말하면 민주노총이 위기에 빠진 것이 단지 ‘의회에 국회의원이 없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위한 포괄적 과제를 은폐하는 알리바이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이 ‘부정적 수렴점’으로 기능했다고 평가했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 부정적 수렴점마저 극적으로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고, 최소한의 공동활동의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 우선 노동자운동 내 모든 세력은 정당의 분열이 민주노총의 분열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객관적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민주노총 운동, 특히 선거를 둘러싼 정파들 간의 갈등을 축소하고 민주노총의 개조와 통합을 추구함으로써 역으로 정당들의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 이번 6기 집행부 선거가 그 시금석이 될 것인 바, 정파들 간의 허구적 대립을 지양하고 민주노총 내부 혁신을 통해 공동활동의 토대를 마련하는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하자. 다른 한편으로 진보정당들은 민주노총을 포함한 대중운동의 통합적 발전과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진보정당은 사회운동의 성과를 소진시키는 방식의 정당이 아니라 사회운동을 활성화함으로써 사회적 세력관계의 역전을 촉진하는 정당, 출세주의나 당의 우경화와 직결되는 조급한 집권전략에 몰두하기보다는 당의 근본이 되는 대중운동을 재건,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운동정당으로 변모해야 한다. 사회운동정당으로의 변모를 추동하면서 민주노총은 진보정당과 공조하여 선거와 대중투쟁에서 통합적인 대응을 시도할 수 있다. 우선 민주노총은 경제위기 시기 노동권에 관한 대중적 요구를 집약하여 진보정당과 공동으로 제도적 대안을 발의하고, 선거 전후 대중투쟁과 선거운동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들의 실질적인 공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민주노총이 주도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미 현실에서 ‘사문화’되고 있는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 방침 문제에 대해서는 단순히 유지냐 폐지냐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민주노총이 전개해야 할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총괄적 방향과 경로를 제시하면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사노준 등 정당추진세력의 정치활동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 방침’을 재수립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 스스로 진보정당에 대한 인적 물적 동원으로 조합원들의 정치활동을 수동화한 관행을 탈피함으로써 선거 대응에 경도된 정당운동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조합원들이 일상적인 학습 선전 조직을 통해 대안사회에 대한 이념과 전망을 습득할 수 있도록 민주노총 정치사업 전반을 혁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민주노총은 장기적으로 전선재편을 포함하는 정치세력화 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창출해야 한다. 민주노총, 반MB연합을 넘어 신자유주의 반대 민중연대전선의 선봉에 서자 이러한 과정에 병행하여 민중연대전선을 새롭게 구축하는 데 민주노총이 선도적으로 복무해야 한다. 현재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되는 반MB연합의 근저에는 억압적인 보수정권이 등장한 상황에서 과거 집권세력이나 시민단체와의 상층 연대를 통해 활동공간과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있다. 그러나 충족될 수 없는 기대 속에서 민중운동의 주체적 투쟁역량을 키우기 위한 노력은 상대화되고 있다. 민중운동은 허구적인 반MB연합에 휘둘리지 말고 노동자운동의 재건, 민중운동의 독자성 강화, 진보정당의 사회운동적 성격 강화를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을 바로 세워야 한다. 한국진보연대는 전국민중연대 해소를 둘러싼 지난한 논란 끝에 반쪽짜리로 출범한 이후 민중운동 내에서 합력을 창출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시민운동 진영이나 민주당과 협력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정 정파의 경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마다 한국진보연대 가입 건을 의안으로 상정하여 분란의 소지를 계속 낳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한국진보연대를 넘어 보다 폭넓은 공동투쟁기구를 추진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렇게 결성된 <이명박 심판, 민주주의 민중생존권 쟁취 공동투쟁본부>(반MB공투본) 역시 신자유주의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의제를 설정하거나 그에 적합한 투쟁 태세와 조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향후 반MB공투본을 지역과 부문을 아우르는 상설연대체로 발전시키기에는 내부적 합의도 부족하다. 조만간 예상되는 세계경제위기와 이에 따른 정권의 노동권에 대한 공격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민중운동의 단결의 수준을 한층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은 경제위기 시기 노동권을 중심으로 대중투쟁 요구를 정선하여, 전체 노동자계급의 중심으로서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농민, 빈민, 청년학생 등 계급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중심으로 하는 전체 민중운동의 동맹을 실현하는 데 선도적으로 복무해야 한다. 또한 민주노총은 전국적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지역에 근거한 연대운동을 모색해야 한다. 서울에서 새로운 상설연대체가 결성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며 소지역별(지구협) 단위에서도 지역연대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지역 연대운동을 복원하여 지역 정치활동과 미조직사업의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
수십 명의 구속자와 수천 명의 해고자를 발생시킨 쌍용차 구조조정은 초민족 자본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한국 노동자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2004년 쌍용차를 인수한 상하이자동차는 투자는 외면한 채 기술 유출에만 몰두하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회사를 부도내 버렸고, 이후 법정관리인에 의해 대규모 정리해고가 단행되었다. 상하이 자동차는 이후 검찰 조사에서 기술 유출 등의 범죄 사실이 확인되었지만, 한국 정부가 상하이자동차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현재 쌍용차는 인수자를 찾기 위해 저비용 생산 구조(저임금 고강도 노동 시스템)를 갖추기 위한 구조조정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쌍용차만큼 여론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캐리어, 발레오공조, 위니아만도 등 초민족자본이 투자한 제조업 기업에서 자본 철수가 진행 중이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의 피해를 겪고 있다. 미국계 초민족 자본인 유티씨의 계열사인 캐리어는 몇 년째 시설투자는 하지 않은 채 수백 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며, 영업망만을 유지한 자본 철수 절차에 돌입했고, 프랑스계 자동차 부품 업체인 발레오의 한국 계열사인 발레오공조는 아예 공장 폐쇄를 단행했으며, 초민족적 사모펀드 씨브이씨의 소유인 위니아만도는 자본철수 협박 속에서 노동자를 정리해고 중이다. 이 밖에도 파카한일유압, 동서공업, 포레시아지장, 보워터코리아 등에서 정리해고, 노조탄압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현재 금속노조에서 구조조정에 대해 투쟁하는 사업장 대다수가 초민족자본 투자 기업일 정도로 한국에서 초민족 자본의 문제는 심각한 상태이다. 현재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금속노조를 필두로 하여 초민족자본에 의한 노동권 파괴에 맞서 여러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하지만 이 투쟁들은 한편에서 사업장 수준의 구조조정 저지 투쟁에 머무르는 것이 현실이며, 초민족자본의 자본 철수 위협과 노조 탄압 속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만들어 내지도 못하고 있다. 이 글은 이들 초민족자본 사업장의 구조조정 저지 투쟁이 단순한 단위 사업장 투쟁에서 벗어나 노동자운동의 전략적 투쟁으로 의미를 부여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한국 노동자운동이 국제적 수준에서 이 투쟁들을 재조직할 필요가 있으며, 초민족자본과 관련한 산별 특별협약, 대정부 협약 등을 만들어 내고, 제도적 수준에서 다국적기업과 관련한 국제노동조약의 국내적 실질화, 무역협정에서의 노동권 관련 의무 강화,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혜택의 반대급부로 노동권 규약 의무화, 직접투자로 위장한 투기 목적의 자본 투자 규제 등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초민족자본 사업장의 투쟁이 중요한가? : 국제적 노동권 수준을 낮추는 초민족자본과 노동자 국제주의 물론 국내자본보다 초민족자본이 ‘더’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윤 추구라는 측면에서 국내외 자본은 차별점이 없다. 하지만 국제적 수준에서의 노동자 투쟁을 조직하고, 대안세계화 운동을 확장시키는 데 있어 초민족자본에 맞선 투쟁은 몇 가지 점에서 더 강조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들 초민족자본이 세계적 노동권 파괴의 선봉에 서며 국제적으로 노동권 수준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초민족자본은 자본의 자유로운 세계적 이동 때문에 일국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무력화하는데 유능하다. 위니아만도의 예에서처럼 노조가 고용 임금 조건 관련 투쟁을 조직하면, 초민족자본은 떠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대응하기 일쑤다. 또한 세계적 수준의 생산 네트워크로 한 공장에서 파업을 하더라도 다른 공장에서 대체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파업 효과 역시 작다. 예를 들면 발레오는 한국 발레오공조 노조가 파업하자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삼성르노에 다른 국가에서 생산하는 부품을 납품하려 하고 있다. 초민족자본은 정부에 대한 압력을 통해 노동권 파괴를 직접적으로 감행하기도 한다. 정부의 외국자본 유치 경쟁을 이용하여 초민족자본은 그야말로 노동권 없는 지역을 만들기도 하는데, 1970년대 한국의 수출자유지역부터 최근의 경제자유구역이 그 예이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의 수출자유지역에서는 아직도 노조 간부에 대한 납치 협박이 횡행할 정도로 노동권 파괴가 극심하다. 동유럽, 남미에도 비슷한 노동권 면제 지역들이 다수 존재하며, 초민족자본은 자신들의 입지 조건을 정부와 거래하며 각종 세금 혜택과 현금 지원을 받으며 노동 관련 기준을 대폭 낮추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초민족자본의 노동권 파괴에 맞선 싸움은 세계적 수준에서 노동권을 방어하는 국제 노동자운동이다. 노동자 국제주의는 국제회의나 한날한시 캠페인과 같은 상징적 수준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운동이 국제적 수준의 노동권 문제를 이슈로 실질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따라서 초국적 자본이 자신의 작업 현장에서 저지르는 노동 탄압을 국제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자신의 노동권을 방어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분명히 노동자 국제주의를 한 단계 높여내는 일이다. 초민족자본의 구조조정 양상 : 비용 절감 또는 시장 진출을 위한 생산 재배치 그리고 노동탄압 세계자본주의는 정체된 기술 혁신 속에서 1960년대 중반 이후 이윤율 저하를 겪었고, 초민족자본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 개혁 속에서 이윤율 회복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시장을 확대하며, 노동 착취와 투기에 대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적 생산 네트워크를 만들어 냈다. 초국적 자본의 세계적 이동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외국인직접투자(FDI)액 변화를 보면 82년 세계총생산의 0.7%에 불과했던 외국인직접투자 출입 규모는 2008년 6%로 성장, 26년 만에 9배 가까이 커졌다. 이들은 이러한 국제적 이동을 통해 이윤율 회복도 어느 정도 달성하였다. 미국 초국적 기업의 예를 보면 초국적 기업들의 해외 자회사는 산업 평균 이윤율과 비교하여 두 배 이상 높다. 초민족자본이 노동자들에 대해 압도적 힘의 우위를 갖는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국제적으로 생산을 재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기업이 있는 국가의 노동자들에게는 해외 생산 확대를 근거로 노동조합 결성 또는 임단협에 위협을 가하고, 해외 자회사의 노동자와 지역사회에는 자본 철수 위협으로 저임금 노동탄압을 감내할 것을 주문한다. 몇몇 연구들은 초민족 자본의 실재 힘은 자본 축적의 세계적 이동보다는 노사 관계 및 지역 사회에 대한 자본의 협상력 우위가 핵심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노동비용 절감을 통한 초과이윤 획득 초민족자본은 이러한 우위를 이용하여 여러 수준에서 초과 이윤을 획득한다. 첫 번째는 노동 비용 절감이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에서 이들은 충분하게 저임금 노동을 이용하며 더군다나 노동법에 대해서도 특혜를 누린다. 한국의 경제자유구역(FEZ), 아시아 및 남미의 수출가공구역(EPZ)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지역에서 초민족 자본은 정부의 각종 자금 혜택은 물론 노동법을 면제받기도 한다. 한국에서 2002년에 제정된 경제자유구역법은 구역 내 초민족 기업들에 근로기준법과 파견법의 일부 조항들을 무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도미니카공화국, 멕시코, 필리핀 등의 국가에서는 노조활동 탄압,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지불 등에 대해 정부가 눈을 감는다. 유로 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은 최근 몇 년간 노동 비용 감소를 위해 동유럽 및 중국으로 많은 공장을 이전했는데 이들 기업은 단순히 임금 수준만이 아니라 노동법 관련 이슈, 정부의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민족자본의 전략은 기존 노동자운동을 약화시키거나 배제하는 데도 뛰어나다. 서유럽에서 초민족자본들은 강력하게 집중화된 산별교섭을 분권화시키고, 때로는 산별 교섭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시도를 계속 벌이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다국적 은행들이 주도하여 은행산업별 협약을 종료시켜버렸고 코카콜라는 산별협약을 벗어나기 위해 기존 사업장을 버리고 무노조 사업장을 신규로 내었다. 벨기에에서 까르푸는 일정 규모 이하의 슈퍼마켓 체인은 산별협약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허점을 이용하여 매장의 규모를 줄였고, 독일에서 다임러는 금속산별협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 사업부서를 정보통신사업으로 업종 변경하여 분사하였다. 남미에서 역시 양상은 비슷하다. 초민족 자동차 기업들이 대거 진출한 브라질의 경우 초민족 자동차 기업들은 강한 금속노조가 있는 에이비씨(ABC)공단 대신, 지자체와 친자본 어용노조가 노동조합을 관리하는 지역으로 신규 공장을 이전하고 있다. 이들 신규 공단 지역은 기존 금속노조 강세의 공단보다 임금은 40% 가까이 낮으며 노동시간은 10% 이상 길다. 노동조합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초민족자본들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언론에도 몇 차례 소개된 미국계 파카 자본의 파카한일유압은 노동조합 파괴를 목적으로 파카한일유압의 생산 물량을 파카코리아라는 다른 계열사로 이전시켜 조합원들을 정리해고시켰고, 프랑스계 자동차 부품 회사인 포레시아의 포레시아배기시스템코리아 역시 용역 깡패를 동원하여 노동조합 파괴를 목적으로 조합 간부와 조합원들을 정리해고했다. 미국계 제지회사인 보워터의 한국지사인 보워터코리아는 노동조합과의 임단협을 일방 해지하고 노조간부를 사찰하며 노조파괴를 기도하였고, 미국계 엔지니어링 업체인 에스피엑스(SPX)의 한국지사인 SPX플로우테크놀로지는 어용노조를 설립하여 민주노조 설립 자체를 막고 있다. 유연한 생산조정을 통한 초과이윤 획득 다음으로는 경제 여건과 시장 상황에 따른 유연한 생산 조정이다. 초민족 자본은 국제적 경제 여건에 따라 공장 폐쇄와 이전을 자유롭게 감행한다. 2008~2009년 세계경제위기에서도 볼 수 있었던 초민족 자본의 국제적 이동은 경제 조건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과감하게 공장을 폐쇄하고,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곳에서는 현지에서 자본을 조달하고 본사의 자원을 집중하여 공격적으로 인수 합병을 하고 신규 공장을 건설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본 철수 협박 및 신규 투자 등을 조건으로 노동자들에게 큰 양보를 얻어냄은 물론이다. 경제위기 과정에서 나타난 초민족 자동차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이들 기업은 하나같이 생산이 감소하는 곳에서는 정리해고 공장폐쇄 등의 구조조정을 감행하며 동시에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서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도요타는 판매가 급감한 미국에서 2009년 8월, 4,700여 명이 근무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장을 폐쇄하고, 일본에서도 비정규직 5,000여 명을 계약해지하며 동시에 중국에서는 2013년까지 중국에서 생산능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폴크스바겐은 독일에서 16,500여 명의 임시직을 계약해지하고, 멕시코 공장에서 900여 임시직을 계약해지했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에서 7조원을 투자해 생산능력을 현재 수준의 두 배 이상 늘리기로 하는가 하면, 일본 자동차 기업인 스즈키를 인수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지엠은 판매가 급감한 유럽의 독일, 영국, 스페인, 벨기에 공장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고 스웨덴에 있는 사브를 파산 상태로 방치하며, 중국에서는 생산 설비 확충에 나설 것이라 발표하였다. 그리고 혼다, 닛산, 포드, 피아트 등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계획을 모두 가지고 있다. 최근 공장 폐쇄와 대규모 해고로 문제를 일으키는 캐리어 에어컨, 발레오공조 등의 한국에 진출한 초민족 자본들도 위와 비슷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미국계 군수종합기업 유티씨(UTC)의 자회사인 캐리어 에어컨은 240명을 희망퇴직시키고, 희망퇴직을 거부한 40명을 정리해고시켰는데, 이는 유티씨 기업의 1만 8천여 명에 달하는 국제적 구조조정의 일환이었다. 군사용 헬리콥터와 비행기 엔진에서부터 엘리베이터, 에어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는 유티씨는 경제 위기로 건설 경기 하락과 항공 운수 산업 침체로 관련 사업들(Carrier, Otis, Pratt&Whitney)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한국 공장을 비롯하여 동유럽의 여러 공장들에 대한 사실상의 폐쇄 조치들을 단행하고 있다. 물론 안정적 수익원이 확보된 군수 관련 사업들은 유지 또는 확장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프랑스계 자동차부품업체인 발레오의 발레오공조코리아는 아예 공장 폐쇄 조치를 단행했다. 세계적 자동차 부품회사인 발레오는 세계경제위기로 2008년 2억 유로의 순손실을 기록하고, 2009년 초부터 세계적으로 5,000여 명의 인력감축을 포함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었다. 프랑스 정부는 발레오의 대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가 발레오를 다른 부품사와 인수합병하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려 하자 국부펀드를 동원하여 발레오 주식을 획득, 프랑스 내 정리해고를 막고 대신 다른 국가의 공장을 줄일 것을 주문하였다. 그 결과 미국 텍사스 공장을 포함하여 한국, 동유럽의 공장들이 폐쇄 또는 생산 감축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앞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발레오 역시 이러한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중국 등 신흥시장 진출을 위해서 막대한 자본을 동원하여 현지 기업들을 인수합병하였다. 어떻게 초민족자본과 맞서 싸울 것인가? : 외투자본에 대한 노동권 강화 제도와 노동자운동의 전국적 산업적 단결이 필요 위와 같이 노동자운동 탄압, 국제적 정리해고를 밥 먹듯이 자행하며 국제적 수준에서 노동권 수준을 낮춘 초민족 자본은 유럽, 남미, 한국 등의 강한 노동자 운동을 상대로도 자본 철수 위협을 무기로 노동탄압과 구조조정을 상시로 감행해 왔다. 특히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장기간의 경제 위기를 대비한다는 명분을 하나 더 얻은 초민족자본은 거칠 것이 없이 노동자운동을 위협하며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초민족자본에 맞선 투쟁을 진행함에 있어 우선 초민족 자본에 대한 범시민적인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초민족자본 투자는 절대선이며,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난 수 십년 간의 정부의 선전은 환상일 뿐이다. 쌍용차에서부터, 지엠대우, 발레오공조, 위니아만도, 캐리어에어컨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초민적 자본은 국내 경제를 하청 생산 공장으로 변모시키며, 노동자들의 생존과 권리를 가장 크게 위협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는 자본 축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자본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과잉 자본이 금융적 투기로 이용되는 것이 문제다. 초민족자본 유치의 부정적 효과 인식 제임스 페트라스는 초민족 자본과 싸우는 첫 번째 방법은 자본 유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는 이어 국내적 자본 동원보다 초민족 자본 유치가 효과적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하며 경제적 효율성이나 정치적 효과에서도 대중적인 경제 발전과 노동권 강화의 동의 지반 속에서 정부가 전략적으로 산업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몇 가지 구체적 방안으로 금융 기관의 투기에 이용되는 연기금을 국가 전략적 투자에 사용하거나, 초민족자본들이 받은 면세, 금융 지원, 토지 무상사용 등의 혜택들을 반환하여 사용하는 것 등을 들고 있다. 그는 이러한 예들이 얼마든지 실현 가능하며,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베네수엘라에서는 초민족 자동차 기업들을 상대로 위와 비슷한 구상을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차베스 정부는 지난 12월 초에 도요타를 비롯한 초민족 자동차 기업들이 50년 이상 된 공장에서 투자는 방치한 채 하청 생산 및 수입 판매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정부가 공공 교통 수단으로 원하는 차량을 개발 판매하지 않을 시 도요타를 몰수하여 중국 기업들에 운영을 맡기겠다고 발표하였다. 더불어 이러한 정책은 지엠, 포드 등 다른 자동차 기업들에도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초민족 자동차 기업들과 친기업 언론들은 차베스 정부를 맹비난하고 있지만, 차베스 정부의 이런 비판과 몰수 압력은 사실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초민족 자본은 저임금 노동과 시장 진입을 위해 남미, 동유럽, 아시아 등에 많은 공장을 세우거나 기존 기업들은 인수했지만, 이들 현지 공장들은 대부분 하청 생산에 이용되며 국민 경제 차원에서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베네수엘라의 지엠, 포드, 도요타 공장들도 매년 4~5천 대 가량의 차량을 판매했지만 정작 현지 차량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나 자본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대부분이 반조립품(KD)으로 수입되어 단순 조립만 하는 노동 집약적 공장에 불과하다. 이들 초민족자본의 공장들은 저임금 공장을 운영하며 국외에서 반조립으로 수입한 차량을 판매하여 큰돈을 오히려 본사로 가져가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차베스 정부는 이들 기업이 베네수엘라에서 번 돈으로 환전한 달러를 이용해서 국외에서 부품과 반조립품을 수입하는 것 역시 통제하고 있다. 차베스 정부는 이번 경제 위기를 계기로 석유 수출만이 아닌 제조업 분야의 산업적 발전 필요성을 체감하고 초민족 자본에 대한 통제를 다시 강화하는 것이다. 노동권 보장에 대한 제도적 규제 방안 마련 둘째로 노동자운동은 단위 사업장에서 끈질긴 투쟁과 더불어 초민족 자본의 노동권 파괴에 관한 제도적 규제 방안들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초민족 자본에 맞서 싸우는 투쟁은 단위 사업장만의 투쟁으로는 성과를 얻기 쉽지 않다. 초민족 자본의 힘이 바로 일국 사업장에서 자유롭다는 것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 시장과 연계가 강한 한국에서 베네수엘라 식의 몰수 정책을 바로 쓸 수는 없겠지만, 초민족 자본의 노동권 파괴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최소한의 대응을 중심으로 노동자운동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책들은 필요하다. 우선 상식적인 차원에서 초민족 자본들의 고용에 관한 의무 혹은 패널티 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르면 5,000만원 이상의 투자와 주식 10% 이상 보유로 규정되는 외국인직접투자는 법인세, 지방세, 관세 등의 세금에서 큰 혜택을 받는 것은 물론 고용과 교육, 토지 임대, 설비 건설, 자본재 및 연구 시설 비용 등에 관해 정부의 직접 지원을 받는다. 또한 중앙정부의 지원 이외에도 지방정부들의 투자 유치를 위한 무상 토지 임대, 주거 시설, 노무 관리 등에 대한 유무형의 지원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에 비해 초민족 자본이 져야 할 의무는 추상적이거나 거의 없는 형편이다. 단적인 예로 외국인투자촉진법은 외투기업이 20명 이상의 한국인을 고용하면 6개월까지 일 인당 1백만원의 고용 지원을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이후 이들을 해고해도 아무런 제재 조항이 없다. 예를 들면 아일랜드는 고용 지원금을 받은 사람을 해고할 경우 그 돈을 물어 내야 하는 조항이 있고, 실제로 2008년 경제 위기 시기 대규모 해고 사태가 발생하여 초민족 기업들이 정부에 420만 유로를 지불해야 했다. 이들 초민족 자본이 노동권 관련 의무들을 엄격하게 준수할 수 있도록 정부 당국이 관리하는 것 또한 중요한데, 예를 들면 경제협력기구의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OECD Guidelines for Multinational Enterprises)의 준수를 실질적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은 초민족 기업의 노동권 파괴가 심각해짐에 따라 2000년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채택한 문서로 다국적 기업과 각국 정부가 준수해야 할 사항을 서술하고 있다. 물론 이는 제재 조항이 없다는 점에서 선언적 공문구에 그칠 수도 있는 한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이 한국 정부에 초민족 자본의 노동권 파괴에 대한 제재를 수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면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서유럽 초민족 기업들이 반발하는 산별협상이나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한 입장은 가이드라인 4조 4항의 “진출국의 상응한 사용자가 준수하는 기준보다 불리하지 않은 고용 및 노사관계 기준을 준수하여야 한다”에 어긋난다. 또한 발레오공조가 취한 공장폐쇄 조치는 4조 6항의 “집단 정리해고를 수반하는 사업장의 폐쇄를 검토하는 경우 … 근로자 대표 및 적절한 정부 당국과 협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에 위배된다. 노동자운동은 정부가 이러한 국제 협약들을 실질적으로 받아안아 특별 근로 감독 등을 통해 초민족기업의 노동권 탄압을 중지시킬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 양자간 혹은 다자간 무역협정에서 초민족 기업의 노동권 준수 관련 조항을 강제하는 방안 역시 고려해볼 만하다. 철저히 자본의 재산권과 업종 간 수출입 비율로만 맺어지는 무역협정에서 노동권 관련 규제 조항들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 있는 조항들을 삽입하는 것이다. 현재의 자유무역협정은 국가 간 무역장벽을 철폐함으로써 초민족 기업이 사업장을 국가 간 이동하여 얻는 이득을 물리적 이동 없이 얻게 하는 효과를 가진다. 초민족 기업의 확장으로 기업 수준에서 이루어지던 자본 이동을 전 경제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들이 우후죽순 발효된다면 초민족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바닥을 향한 경쟁’을 막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노동권 수준의 상향 조정을 협정에 함께 넣은 자유무역협정은 칠레-멕시코, 볼리비아-멕시코 등 주로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 맺어진 협정이 대표적이다. 이들 무역협정은 투자에 있어 노동권 표준을 하향시킬 수 없도록 단서 조항을 두고 있다. 물론 이러한 조항들은 선진국의 노동조합이 무역협정으로 인한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한 보호무역주의적 의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본의 국제적 이동은 기본적으로 노동권에 대한 하향 조정을 통한 초과 착취와 노동자 간 경쟁이 그 이윤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노동권의 하향 평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자본철수에 대한 대처방안 마련 세 번째로 2009년 경제 위기에서 볼 수 있었던 자본 철수에 대한 대처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 위기가 심화할수록 자본 철수라는 초민족 자본의 선택 역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자본 철수라는 극단적 상황 이전에 이들 초민족 자본의 자본 유출입을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지엠대우의 2008년 대규모 손실에서 볼 수 있었듯이 초민족 자본은 그것이 제조업 기업이든 아니든 다양한 금융 투기 기법을 이용하여 해당 국가에서 생산한 부를 외부로 이전시킨다. 또한 헐값에 기업을 인수하여 하청공장으로 이용할만큼 이용하다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자본 철수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초민족 기업의 인수 합병에 대한 심사 기준을 더욱 강화하고, 정부 기관들은 이들의 영업이익에 대한 사용 및 국외 이동에 관해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정부가 각종 금융 지원을 통해 인수 합병과 매각을 오히려 확대하는 것은 결국 더 많은 자본 철수 상황을 만들어 낼 뿐이다. 자본 이동의 자유라는 이유로 초민족자본의 자본 이동을 방치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 경제 손실을 가져온다. 자본 철수가 이루어져 기업이 부도나는 경우에 기존 정부 지원금을 받아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초민족 기업들은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받는데, 이들이 철수할 경우 이러한 지원은 모조리 국민 경제에 대한 아무런 대가 없이 국외로 빠져나가는 꼴이 된다. 따라서 자본 철수를 염두해 둔 외국인투자에 관한 감시 체계가 필요하며, 자본 철수의 조짐이 보일 시 과감히 지원금을 포함한 초민족 자본이 누린 혜택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자금을 통해 국민 경제 차원에서 육성해야 하는 산업은 국유화를 통해서라도 고용과 생산을 유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총연맹과 산별노조로의 단결과 투쟁을 통한 전국적, 산업적 협정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떠한 제도라도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노동자 정부가 아닌 이상 언제나 자본가 편인 정권이 초민족 자본에 대해 여러 규제들을 제대로 만들 리도 만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운동을 통한 노동권의 방어기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그것을 제도로 만들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이는 현재 금속노조가 추진 중인 진정한 의미의 노동자 단결에 입각한 산별노조 건설, 정부와 총자본을 상대할 수 있는 민주노총의 강화를 통해 가능하다. 대규모 노동조합 투쟁을 통해 전국적 협약과 산별 협약을 쟁취한 서유럽의 노조들은 미약하게나마 자본의 생산 설비 이동과 관련한 제약들을 협약으로 두고 있다. 한국은 현재 이러한 협약은 고사하고 노동조합 자체를 말살하기 위한 노조법 개악이 진행되고 있다. 노동조합의 단결과 강화에서부터 모든 문제 해결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권 박탈, 노동조합 탄압의 공세에 맞서야 한다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을 빌미로 노동권을 강력하게 제약하고 노사관계를 변형하려는 시도가 2009년의 마지막 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12월 29일 추미애 환노위 위원장과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인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 임태희 노동부장관은 단일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복수노조 허용은 1년 6개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6개월 유예하여 시행하는 것이 합의안의 골자다. 동시 시행을 주장하는 입장이 있었지만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먼저 시행해야 한다는 한나라당과 노동부의 입장이 관철된 것으로 보인다. 타임오프 대상 업무의 경우 교섭, 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업무에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조유지 및 관리업무’가 추가되었다. 창구단일화의 경우 교섭대표를 우선 노조 간 자율로 결정하고, 자율 협상에 실패할 경우 과반수노조에 대표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노조별 조합원 수에 비례해서 공동교섭대표단을 구성한다. 단 10% 미만 노조는 공동교섭대표단에서 제외된다. 논란이 되었던 초기업노조의 창구단일화 제외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노동부의 현행법 시행 방침 한편 노동부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12월 28일 △노조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대한 행정고시 △복수노조 관련 부당노동행위 업무처리 규정을 행정예고했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경우 기존법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별도의 고시가 필요하지 않다.) 12월 31일까지 노동조합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곧바로 관보에 게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11월 25일 노사정 6자 대표자회의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끝나자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노동부는 현행법이 내년 1월 1일 발효되는 것을 전제로 산업현장의 혼란을 줄일 시행 방안을 준비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11월 10일에도 임태희 장관은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현행법을 개정하지 않고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법에는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노동부 장관이 마련토록 위임해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별도의 법률 개정 없이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명시해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회 입법조사처는 행정법규를 통해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겠다는 노동부의 방침에 대해 “위헌 소지가 크다”는 견해를 밝혔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의무화하는 것은 노동자와 노조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법률에 근거해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사항은 상위법령인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례도 있다. 따라서 현행법을 개정하지 않고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행한다면 헌법에 위배된다. 또한 현행법을 개정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법의 부칙에 명시되어 있는 교섭창구 단일화 관련 조항이 자동 삭제됨에 따라 교섭창구 단일화 없이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노동조합법 부칙 5310호 5조 3항에는 “노동부장관은 2009년 12월 31일까지 … 교섭창구 단일화를 위한 단체교섭의 방법 절차 기타 필요한 사항을 강구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입법조사처는 이 조항이 교섭창구 단일화를 의무화한 규정도 아니고, 노동부 장관에게 교섭창구 단일화의 방법과 절차를 위임한 것도 아니라고 해석했다. 법률 시행을 위해 준비를 하고 정책 수립을 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노동부의 입장과는 완전히 반대의 해석이다. 민주노총의 경우에도 법 개정 없이 시행령을 통해 창구단일화를 강행하려고 할 경우 행정소송 및 법적 절차를 통해 노동부의 고시를 무력화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복수노조에 대한 사측의 대응 계획 정부와 자본은 교섭창구 단일화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지렛대 삼아서 민주노조 운동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나아가 민주노조 운동의 리더십을 교체하려고 시도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민주노조 운동이 요구한 복수노조 허용을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쟁점으로 변화시키고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연결시켰다. 이렇게 한다면 복수노조 허용이 보장하는 노동권의 확장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경총은 복수노조 허용의 ‘폐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철저히 금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월간 경영계」 2009년 9월호).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현재보다 전임자 숫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타임오프 제도 역시 우회적으로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노동부의 안에서 창구단일화의 1단계로 추진하게 되어있는 자율적 교섭창구 단일화도 반대한다. 노조 간의 자율적 합의 과정에서 비례대표제와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교섭대표가 선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를 운용하면 각 노조 간 이해관계 및 의견 차이로 교섭단 구성 과정이 장기화되고, 다수의 조합원 확보를 위한 선명성 경쟁으로 현장 노사관계를 투쟁적 노조가 주도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논지다. 이에 더해 사업장 단위에서의 교섭창구 단일화가 하나의 기업에서 다수의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을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1기업 1교섭만 허용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 단위 복수노조의 허용은 한국 노사관계의 큰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사측의 입장에서는 복수노조 허용으로 새로운 노조가 설립될지, 노무관리 비용이 증가할지 여부가 큰 관심사다. 한 연구에 따르면 복수노조 허용 이후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예측할 수 있다(「복수노조 갈등」, 『노동정책연구』 2009년 9권 2호). 첫째, 한국의 노조 가입률이 1989년 19.8%를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현재 10%대에 머물고 있다. 노조는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고 중소기업은 노조가 설립될 여지는 있지만 지불 능력이 낮아 이미 설립되어 있는 기존 노조도 운영상의 어려움에 처해있다. 이는 노조에 가입할 만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가입해 포화상태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노조가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복수노조 허용으로 노조 가입률이 높아지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둘째, 지불 능력이 좋은 대기업은 사정이 다를 것이다. 특히 기존의 노조가 정파 간의 주도권 확보나 운동노선의 추구로 ‘정치주의’ 성향을 띠는 경우 새로운 노조가 설립되어 복수노조 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치주의에 대한 조합원의 지지가 크지 않기 때문에 탈정치주의를 표방하는 노조가 새롭게 건설되거나, 정치주의를 표방하더라도 노선이 달라 새로운 노조가 설립될 수 있다. 이 경우 기존 노조와 새 노조의 조합원 수가 비슷한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는 노조간의 갈등을 격화시킬 것이다. 셋째, 대기업 중에서 노동자의 인적 구성이 지역, 직종, 근무형태 등에서 상이한 경우 새로운 노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생산직과 사무직 노조가 분리되거나 생산직 중에서 특수한 자격 및 숙련도가 요구되는 직종이 분리되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넷째, 상급단체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양분되어 있고 이들이 조직 확대를 위해 직접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복수노조 설립이 상급단체에 의해서 주도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어떤 사업장에서 한 상급단체의 노조가 설립되면 다른 사업장에서 경쟁 상급단체가 노조를 설립하는 식으로 경쟁이 격화될 수 있다. 다섯째, 교섭창구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보면 노조끼리 상호협력적인 관계에 놓이는 경우보다 경쟁적인 관계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사측이 복수노조 설립을 원천적으로 막지 못하더라도 가능한 이런 상황을 피하거나 그 부담을 줄이고자 할 것이다. 사측의 대응 방향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제기된다. 첫째, 복수노조가 허용된다면 노조와의 교섭비용이 증가한다고 보고 하나의 사업(장)에 하나의 노조가 전체 조합원을 대변하는 교섭구조를 요구할 것이다. 현재 사측과 정부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둘째, 노무관리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법제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셋째, 노조의 설립 요건 강화를 요구할 것이다. 넷째, 노조에 대해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노사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노무관리 비용을 가급적 줄이고자 할 것이다. 다섯째, 복수노조로 인한 인건비 상승, 작업 몰입도 감소를 우려하여 작업규율을 강화하는 등 개별적 근로관계의 강화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노동3권 제약과 기업별 노사관계 강화 시도 정부와 사측이 교섭창구 단일화를 복수노조 허용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복수노조로 인한 ‘비용’과 ‘혼란’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12월 29일 현재 환노위 위원장과 한나라당, 노동부가 합의한 안이나 노동부의 안은 복수의 노조가 자율적으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하고, 자율적 단일화가 실패할 경우에는 과반수 노조에 대표권을 부여하며, 과반수 노조가 없을 경우 조합원 수에 비례해서 공동교섭대표단을 꾸리도록 한다(그러나 10% 미만 노조에는 이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애초에 복수노조 허용의 취지로 논의되었던 단결의 자유는 크게 침식된다. 노조를 설립해도 실질적으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단결의 의미가 반감된다. 그런데 자본가 단체들은 공익위원안의 자율적 교섭창구 단일화는 물론이고, 사업이나 사업장 단위의 교섭창구 단일화조차도 불충분하다고 주장하며 더욱 개악된 형태로 복수노조 허용을 밀어붙이려고 한다. 한편 교섭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는 결과적으로 산별교섭을 무력화하고 기업별 노사관계를 강화할 것이다. 현재 환노위에서 주요하게 논의되고 있는 안이나 노동부의 안 같은 경우에 산별노조, 지역(일반)노조와 같은 초기업노조의 경우에도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도록 하고 있다. 산별노조의 특정 사업장에 대한 대각선 교섭이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다수노조로 승인되지 않은 소수노조의 경우 산별교섭에 참여할 수 없다. 현재 산별교섭에 참여하고 있는 노조라 할지라도 사업장에서 다수노조의 지위를 상실하였을 경우에는 산별교섭에 대한 참여의 권리를 박탈당할 것이다. 2008년 말 기준으로 한국 노조 조합원의 52.9%가 산별 및 업종별 노조의 조합원이고, 민주노총의 경우 77.6%가 산별노조 조합원이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산별노조의 지회나 분회까지 포함하여 모든 복수노조의 교섭창구를 단일화할 경우 현재도 안착화하지 못한 산별교섭은 아예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측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해 기업별 노사관계를 강화하고 노동자의 기업에 대한 귀속감을 고취시켜 현장에 대한 노조의 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게 된다. 특히 기업별 노사관계가 강화될 경우 어용노조를 통해 사측의 현장장악 능력이 배가될 수 있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사측이 어용노조를 활용함으로써 기존의 민주노조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도 있다. 1950~70년대 일본에서는 사측이 제2노조(어용노조)를 결성하여 총평으로 대표되는 투쟁적인 민주노조를 파괴했다. 일부 자본이 전임자 임금 지급이 금지되고 교섭창구가 단일화되면 복수노조 허용을 수용할 수 있다고 간주하는 데는 이러한 계산도 깔려 있다. 사측에 우호적인 노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파업과 같은 격렬한 대립의 국면에서 강경노조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측이 당장 무리하게 어용노조 설립을 강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측은 현재와 같이 기존 노조의 대의원을 장악하고 반대파를 이용해서 투쟁적인 집행부를 흔드는 방식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무리하게 어용노조를 만들면 조합원의 반발감이 거세지고, 기존 노조가 강력한 투쟁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받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합원의 동요가 커지는 시기, 즉 기존 노조의 리더십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어용노조로 조합원을 결집시키는 전술을 사용하면 기업별 수준에서 노조운동의 틀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즉각적인 제2노조 결성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난 여름 쌍용차 파업과정에서 사측이 사용한 전술을 이러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노동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관철된다면 노동권과 노조 활동이 크게 제약될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노동3권의 온전한 실현을 위해서 논의된 복수노조 허용을 노조활동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수단으로 전환시켰다. 정부는 국회를 우회해서 사태를 행정적으로 처리하려고 하고 있다. 사측과 자본가 단체들은 더욱 강경한 안을 밀어붙여서 최소한 현재의 노동부안을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노동기본권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법 개악을 막기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번 법 개정은 노조 활동 전반을 변화시키고 노동기본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것이기 때문에 매년 반복되는 국회 대응 투쟁과 같을 수 없다. 또한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의 시행이 일정 기간 유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2010년에도 격렬한 논란과 투쟁이 지속될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미래가 좌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될 복수노조와 관련한 사회적 쟁점의 첫 단추를 잘 끼운다는 측면에서 현재 어떤 방식으로 투쟁을 전개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각 개별 노조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실익을 계산하는 방식으로는 노조 전체와 노동기본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격에 맞설 수 없을 것이다. 교섭창구 단일화와 전임자 문제를 노동3권을 침해하고 노조활동을 제약하려는 정부와 자본의 공세라는 점에서 바로 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