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공운수노조 건설 준비위원회 중심으로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 분쇄하자 2010년 4월 17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공공운수노조 건설 준비위원회 출범 및 2010년 투쟁 선포식’이 열렸다. (가)공공운수노조 건설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는 2007년부터 추진되어 온 공공운수부문의 통합 산별노조 건설이 사실상 좌초되면서 일종의 ‘우회로’ 혹은 ‘낮은 단계’의 경로로 제시된 것이다. 준비위는 그간 산업노조가 축적해 온 산별노조운동의 성과를 계승하고 강화·발전시켜 공공운수노조(가) 건설의 토대를 구축해야 하는 임무를 안고 있다. 또한 공공기관 민주노조의 근간을 흔드는 이명박 정권의 공공기관 선진화 공세 속에서 공공부문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적 대안을 절실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공공노조, 운수노조, 공공운수연맹 대의원대회에서 준비위(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난한 논의과정과 이견으로 인해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으며, 현장에서부터 조직된 결의가 모아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2010년, 공공부문 노동자운동은 매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또한 그 만큼 위기를 반전시켜 새로운 국면을 열어갈 책임을 부여 받고 있다. 공공운수 산별노조운동의 가치를 재점검하고 공공부문 민주노조 운동을 재건할 것인가, 이명박 정권의 탄압에 맞서 무너져 버릴 것인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한 의지로 지혜를 모아 조직력-투쟁력을 복원하고, 공공부문 민주노조 운동의 대안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 공격, 이명박 정권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 IMF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공공기관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되었다. 공기업 2만 8천여 명, 출연위탁기관 1만 3천여 명 인원감축을 시작으로 사유화, 통폐합, 자회사매각 등이 이루어졌다. 이명박 정권의 선진화 프로젝트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연장선에 있을 뿐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도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명박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공공기관에 대해 ‘방만한 경영’ ‘도덕적 해이’를 부각시키는 마녀사냥으로 경제위기 책임을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시도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공공부문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자극하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강화하고 공공부문 예산삭감으로 재정적자를 대체하려 하고 공공부문 사유화를 통해 국내 독점 재벌과 초국적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그리스 재정위기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총파업에서 볼 수 있듯, 정부는 금융위기는 국가재정을 통해, 국가재정 위기는 재정긴축을 통해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특히 그 과정에서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2008년 7월 공기업 선진화 추진 원칙을 발표하고, 2008년 8월부터 2009년 3월까지 6차에 걸친 1기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계획을 쏟아냈다. 2009년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2기 공공기관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다. 공공기관 선진화는 ‘보수, 직급과 조직, 사업구조’의 3대 거품을 제거하여 ‘신의 직장’ 논란을 불러온 방만 경영을 견제하고, 임금구조(과도한 임금, 연공서열 호봉제)를 개편한다는 게 목표다. 단협 개악, 연봉제, 경영평가 등을 통해 임금삭감, 인원감축, 경쟁을 심화시키고 노조무력화를 통해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경영평가, 기관장평가 공공기관에 대한 총체적인 공세는 경영평가라는 강력한 통제기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경영효율화는 물론 노사관계 선진화 추진도 호봉승급분(2009년도 예산지침 1.7%, 2010년도 예산지침 1.6%)을 제외한 임금 동결, 복리후생 축소를 내용으로 하는 예산지침도 모두 경영평가를 통해 공공기관에 강제되고 있다. 또한 공공기관장에 대한 평가를 강화해 성적이 나쁘면 과감하게 중도 해임시킨다는 것인데, 실제 2009년 4명의 기관장 해임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평가기준을 보면 객관성과 공정성을 찾을 수 없고, 노동조합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임을 알 수 있다. 기관장이 해임된 기관 중 하나인 영화진흥위원회의 경우 △정원감축을 완료하지 않았고 △노동조합 전임직원이 많으며 △징계위원회에 노동조합이 참가하고 △청년인턴제도 시행 미흡했다는 것이 대표적인 감점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면,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 등에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진 한국투자공사 기관장은 ‘우수’평가를 받았다. 또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공공기관장 인사 상황을 보면 해당분야에 어떤 지식과 전문성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이 낙하산 인사로 자리를 꿰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까지 철도노조를 악랄하게 탄압하고 있는 철도공사 사장 허준영은 잘 알려진 바대로 전 경찰청장이었고, 안택수 전 의원이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으로, 정형근 전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과거 현대 인맥이었던 주강수가 한국가스공사 사장으로 인사 발령되었다. 결국 공공기관 경영평가와 기관장 평가는 기관 설립에 대한 고유 목적보다 정권의 정책방향 또는 권력핵심과 얼마나 코드를 잘 맞추느냐가 높은 점수를 얻는 기준이 되고 있다. 또한 경영평가는 인력감축, 임금반납, 노사관계 등 공공기관 3대 선진화 과제에 대한 충성경쟁을 유도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이런 식의 경영평가제도가 강화 될수록 공공기관들은 경영평가제도가 요구하는 가치와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공서비스를 통해 국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리보다 개별공공기관의 이윤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다. 단협 개악·해지 경영평가, 기관장 평가에서 드러나듯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은 노동조합 무력화를 위한 기제다. 특히 단협 개악·해지는 신종노조탄압수단으로 불릴 만큼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2009년 하반기는 노동연구원, 철도, 발전, 가스 등 공공부문 노조에 대한 단체협약 전면개악 및 해지가 줄을 이었다. 철도, 발전, 국민연금 등 임단협을 맞이한 거의 모든 공공기관에서 사측은 단협 개악 요구안을 내놓았다. 노동연구원은 단협 해지가 실제로 자행된 데 이어 직장폐쇄까지 단행해 노조는 이에 맞서 85일간 파업투쟁을 벌였다. 사측의 개악 요구안은 일부 사업장별 특성을 반영하긴 했지만, 대부분 동일한 내용으로 정부의 일관된 지침에 따라 작성되었다. 조합원 범위 축소, 노조 활동 범위 제한, 전임 활동 제한, 노조의 경영 인사권 참여 제한, 단체교섭 대상 제한 등 노조 활동 전반의 축소와 약화를 요구했으며, 개악안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단협 해지를 통보함으로써 노조탄압 공세를 강화했다. 2009년 단협이 해지 된 후 6개월이 지나면서 2010년 상하반기, 많은 사업장에 단체협약 해지가 예고되고 있다. 노조법 제32조의 단서조항에 의하면, 노사 어느 일방이 단체협약을 해지하고자 할 때에는 6개월 전에 상대방에게 통고함으로써 기존의 단체협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 조항은 1998년 정리해고법과 함께 만들어진 조항으로 ‘교섭의 장기화 예방’을 위해 제정되었지만, 그러나 현재는 ‘노동조합 탄압’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즉, 회사 측이 단체협약 개악을 요구하고 노조에서 이에 응하지 않을 때,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해지 통보함으로써 노조는 무단협 상태가 되고 있다. 단협 해지가 공공기관에서 줄줄이 시작되어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전체 사업장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중이다. 2010년에도 끊이지 않고 있는데 국민연금공단은 3월 13일 단협 유효기관이 만료되자 15일부로 단협 해지를 통고했다. 이에 공공노조 사회연대연금지부(국민연금공단)는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공공부문 선진화는 정리해고, 인원 감축 등을 목표로 하고 있어, 공공기관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졌다. 당초 2010년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던 정원 감축은 선진화 방침 조기 이행이라는 정부 지침에 따라 사업장별로 2009-2010년 내 추진 완료를 목표로 강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의 경우 특정 하위 직군에만 집중하여 300여 명을 조기 감축하도록 하였고, 결국 강제적인 희망퇴직과 명예퇴직을 거쳐 2009년 말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공공운수노조 건설 준비위원회 공식 출범 이런 상황에서 출범한 준비위는 공공기관 선진화 공세에 총력 대응하는 투쟁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공공부문 노동운동 진영은 적절한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특히 이명박 정권에 의해 조장되는 공공부문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흐름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대응을 만들어내지 못함으로써 연맹이나 산업노조 모두 조직축소 위기에 직면해 왔다. 통합 산별 노조 건설 방침을 확인하고 건설 준비를 위한 조직체계를 구축했다는 측면에서 준비위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2007년 이후 진행된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통합 산별노조는 지난 2007년 연맹 산하에 공공노조와 운수노조가 출범하면서 함께 추진됐다. 그러나 이후 통합 산별노조 건설 시도가 좌초되거나 지연되면서 많은 진통을 겪어왔다. 공공노조와 운수노조는 모두 강령과 규약에 ‘통합 산별노조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체제’로 규정해, 원래 계획대로라면 2009년 5월1일 공공운수 통합 산별노조가 출범했어야 했다. 하지만 2008년 운수노조 대의원대회에서 통합 산별 안건이 성원부족으로 처리되지 못해 통합이 무산되고, 이후 통합 산별노조 건설이 지연되면서 비정상적인 ‘과도기적 조직형태’가 장기간 지속되었다. 2009년 5월 선출된 연맹 집행부는 조직합병을 통한 통합 산별노조 추진 실패를 인정하고, 준비위를 구성하되 통합 산별노조 건설 시기는 추후 준비위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제까지의 과정은, 일단 (구 공공연맹의) 조직을 유지, 확대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공노조와 운수노조라는 두 개의 산별노조를 건설한 후 상층결의를 통한 공공노조, 운수노조의 조직통합과 이를 통한 기업별노조의 산별노조로의 전환촉진이라는 방식이었다. 산별노조의 성과를 유지, 확대하기 위해 다시 조직통합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과정에 대한 엄밀한 평가가 병행되어야한다. 두 개의 산별노조를 건설한 것은 타당했는지, 이 두 조직의 통합을 중심으로 이후 산별노조건설 사업을 진행한 것은 타당했는지, 상층 의결단위 결정을 중심으로 산별노조 통합을 추진한 것은 적절했는지 등 쟁점에 대한 평가를 통해 앞으로 공공운수노조 건설의 올바른 방향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통합 산별 노조 건설에 대한 여러 입장이 개진되었다. 첫째, 통합 산별노조 건설을 재추진하자는 입장인데, 빠른 시일 내 통합 산별노조 출범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것이다. 둘째, 통합 산별노조 건설을 실패로 규정하고 기업별노조로 회귀해 연맹을 강화하자는 입장이다. 물론 이같은 입장은 민주노조가 초기업단위의 연대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퇴행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그 밖에도 셋째, 산업노조 독자 생존론으로 산업노조가 연맹을 벗어나 민주노총에 직가입 하자는 입장과 넷째, 업종노조(소산별 노조)를 중심으로 재편하고 연맹을 업종노조의 연합체로 설계하는 입장도 있었다. 공공노조의 경우, 공공기관(전국단위 기업지부), 단위 기업지부, 초업종 지역지부 간의 조건과 입장의 차이로 인해 내부적 조직재편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다. 통합 산별노조 건설이 불투명할 경우, 과도조직으로서의 공공노조 또한 존립의 위기에 처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공공노조는 산별교섭과 관련해서도 한축으로는 공공기관(전국네트워크 대사업장)의 대정부 교섭이 관건적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교섭거부라는 장벽에 막혀 공동투쟁을 통한 돌파가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지부의 경우, 규모의 영세성과 집단교섭의 어려움으로 인해 사업장 교섭에 대부분의 활동력이 투여되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기관의 경우, 이명박 정권의 공공부문 선진화 계획에 맞서 공동투쟁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지역지부의 경우, 조직화 과정에서부터 집단교섭을 염두에 두고 조직하거나 현장의 교섭역량을 키워내는 등 다각도로 과다한 교섭의 문제를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여러 차원의 논의를 거쳐 2010년 초, 공공노조, 운수노조, 공공운수 연맹 대의원대회를 통해 준비위 출범이 결의되었다. 꽤 오랜 시간 논의되고 지체되었던 통합 산별 계획이 한 단계 고비를 넘기고, 산별노조 운동의 현 단계 의미와 가치를 재점검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특히 준비위 결성이 합의된 조직발전 전망에 따른 것이었다기보다는 미봉책으로 추진되었다는 점, 여전히 공공부문과 운수부문이 통합해야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대중적 합의가 부재하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의원대회에서도 치밀한 토론이 이루지지 않고 안건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이후 준비위가 운영되는 과정에서 실천이 담보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상층에서는 지난한 논의과정에서 쌓여온 피로도가 있지만, 반면 지역-지부에서는 복잡한 체계에 대한 논의지형과 잠복된 쟁점을 다 소화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준비위는 이러한 주체적인 조건을 극복하고 공공부문의 통합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워나가야 한다. 공공운수노조 건설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공공노조와 운수노조, 연맹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과정에서 지난 몇 년간의 산별노조 운동의 성과를 계승하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많은 한계가 있지만,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장을 넘은 연대를 강화하고,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해왔던 산별노조의 성과가 확대될 수 없다면 조직통합의 의미는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공공부문 노동자 운동의 과제 결론으로 공공부문 노동자 운동의 과제를 정리해보자. 첫째, 이명박 정권의 ‘공공기관 선진화’에 맞서, 조직력·투쟁력을 복원하고, 현장에서부터 투쟁전선을 구축하자. 지배계급과 보수언론의 악의적인 왜곡을 뛰어넘어 공공기관 선진화를 박살내기 위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는 아래로부터, 현장과 지역을 복원하는 속에서만이 가능하다. 현장의 투쟁력 조직력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지침이나 선언이 아닌 현장, 지역 활동가들의 조직적 활동이 담보되어야 한다. 둘째, 공공기관 민주노조 운동을 재건하고, 대안세력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공공노조, 운수노조, 공공운수연맹의 위기는 한국노동운동의 위기라는 조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민주노조의 계급대표성과 투쟁력을 복원하고, 노동자의 단결된 투쟁으로 전국적 투쟁전선을 구축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민주노조를 재건할 방안들을 토론하고 투쟁해야 한다. 특히 노동운동의 전반적인 수세적 상황에서 방어적 실리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공공부문 노동자운동의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경제위기 시기, 지배계급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선제적 양보를 강요하고 악의적 마녀사냥을 전면화하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운동은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마녀사냥의 부당성을 전면 폭로하고, 공공부문 노동자운동 스스로도 더 이상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대응을 넘어 대안적이고 공세적인 운동 지향을 밝혀 나아가야 한다. 셋째, 공공운수 노조 건설 준비위원회로 단결하고 ‘아래로부터’ 통합 산별노조 건설 추진을 모색하자. 준비위는 공공부문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할 조직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산별노조운동이 조직 형식에 집중해왔던 것을 반성적으로 평가하고, 운동의 내용을 만들어 발전적 전망과 이념을 구축해야 한다. 지난 공공운수부문 산별운동에 대한 평가와 발전방향, 공공운수노조 건설의 이행경로, 투쟁 방향을 수립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토론을 강화하고 실질적으로 통합 산별노조를 건설해내기 위한 힘을 추동하자. 이 과정에서 산업노조의 성과를 유지 계승하고 미전환 노조와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이를 위해 현장투쟁의 지역연대가 강화되어야 하는데, 지역조직 운동을 총연맹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전개해나갈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 시기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은 민주노조운동의 존립을 건 싸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4-5월 철도, 화물, 연금, 건설노조의 투쟁이 준비되고는 있으나 총자본의 공세에 맞선 공동투쟁을 만들기에는 힘에 부친다. 공공부문 노동운동은 민주노조 운동의 중요한 계기마다 중요한 대중적 투쟁들을 만들어 왔다. 이명박 정권의 기만적인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맞서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준비위를 중심으로 싸워나가야 할 때다.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선언 “누군가에게 밥은 삶의 기쁨이고 또 누군가에게 ‘밥’은 ‘서러움’입니다. 그녀들의 서러운 한 끼 밥 뒤에는 살인적인 저임금,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존재합니다.” 지난 3월 3일, 신촌에서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1차 거리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이후 4월 16일에는 여의도역에서 2차 캠페인을, 26일에는 서울대학병원 안에서 3차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은 한 끼의 밥조차 따뜻하게 챙겨먹을 수 없는 청소, 간병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폭로하고 이들의 박탈당한 권리를 알리는 대중 캠페인이다. 캠페인단은 언론기고, 거리선전, 영상제작, 증언대회를 통해 대중적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캠페인은 지난 2009년 10월부터 공공노조의 전략조직화사업의 구상으로 시작되었다. 대학교에서 일하는 청소용역 노동자들에 대한 지역별 현장조직화 사업에 사회 단체들이 참여하여 캠페인단을 구성하였다. (캠페인단의 블로그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blog.naver.com/babrose)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한 끼의 밥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여건에 처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암담한 현실은 사회적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밥 한 끼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 중 캠페인단이 우선 주목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청소, 간병노동자들이다. 이들의 노동현실을 살펴보자. 찬밥을 강요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유령 청소노동자: 살인적인 저임금과 고용불안 대학건물, 관공서 등 빌딩이라면 어디든 청소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1,600만 명이 조금 넘는 전체 임금노동자 중 청소노동자는 377,927명으로 2.3%를 차지한다. 이처럼 많은 숫자의 노동자들은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온종일 건물을 쓸고 닦고 광을 내지만, 이들의 존재는 가려져 있다. 단순히 ‘청소 아줌마’로 분류되는 이들은 81% 이상이 여성이고 , 이 중 41%가 60세 이상의 고령이다. 마치 유령처럼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들. 그러므로 이들이 겪고 있는 극단적인 저임금과 비상식적인 노동환경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74.3만 원으로 법정 최저임금 787,930원에 못 미친다. 대부분이 임시직, 일용직으로 고용되어 있는 비정규직이다. 청소노동자 중 상용직은 28.8%, 임시직은 49.6%, 일용직은 21.6%다. 그러나 상용직이라 하더라도 계약기간이 존재하는 경우는 23.6%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계약기간을 설정한 계약직이던지, 아니면 계약기간을 설정하지 않았지만 언제든 그만 두라면 그만 둬야하는 임시직이고 그 비율은 76. 4%에 달한다. 이처럼 극단적인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는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식사와 휴게공간으로 이어진다. 청소노동자들은 대부분 오전과 점심 하루 2회 1~2시간 휴게시간을 갖는데 이 시간조차 온전한 식사 및 휴식시간이 되지 못한다. 밥 먹는 시간도 ‘대기 상태’로 분류되어 ‘건물 청결’에 있어 도발 사고가 난다던가, 더러운 오물이 쏟아졌다던가 하면 어김없이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휴게 및 식사시간은 비 근무시간이므로 임금계산에 산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업체에서는 근무와 관련된 조회나 교육을 휴게시간에 하거나, 이 시간대에 개인 업무를 보는 것이 적발될 경우 업무평가에 반영해 여름휴가비를 차등 지급하는 식으로 노동자들을 옥죄는 행위를 일삼아 왔다. 전체 청소용역노동자들 중 회사로부터 식비를 지급받는 노동자는 41.1%인 반면, 어떤 방식의 식사지원도 전혀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43. 2%에 이른다. 식사비 지원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새벽부터 오후 4시까지 힘든 노동을 버티기 위해 하루 두 끼의 도시락을 직접 싸와야 한다. 용역업체가 식사비를 지원하더라도 점심 한 끼를 구내식당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식권 지원이거나 1인당 쌀 10킬로그램 제공이다. (이 정도면 매우 후한 편이다.) 일부에서는 현금지원을 받고 있으나 금액이 불충분하여 노동자들이 추가 부담을 하여 쌀과 부식을 구입해 밥을 지어 먹는다. 휴게 시설의 경우는 더욱 열악하다. 청소노동자들이 휴게, 수면, 식사를 할 수 있는 별도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경우는 58%에 불과하고 별도시설은 아니나 간이시설을 만들어 휴게와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장이 34.2%이며, 7.8%는 아예 별도의 휴게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고 있다. 휴게시설의 규모와 요건에 관한 표준화된 법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업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성신여대의 경우, 과학관에 휴게실을 만들었는데 남자화장실 변기 위에 판자만 깔아 놓았다. 심지어 배수구를 막지 않아 아무리 환기를 시켜도 악취가 가시지 않는다. 식대 역시 따로 지급되지 않아 도시락을 싸오지만 전자제품 사용마저 금하고 있어 대부분 찬밥으로 끼니를 때울 수 밖에 없다. 국이나 찌개라도 데워먹으려 하면 강의실에 냄새가 올라 간다고 다그치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찬 밥을 씹어 삼킬 수밖에 없다. 고려대학 병원의 경우, 휴게 공간이 너무 비좁아 창고로 사용하는 비트실(전기 설비나 각종 배관이 지나가는 장소)에서 잠시 몸을 쉬거나 식사를 해결했는데, 병원측에서 석면가루를 이유로 사용을 금지했다. 간병노동자: 비공식 노동, 특수고용 비정규직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간병 인력에 대한 전국규모의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집계는 없다. 다만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2005년 말 기준으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1,449개소를 통해 파악한 1일 활동 간병인수는 총 3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간병도우미, 노인복지시설에서 일하는 간병노동자, 대기 중인 간병노동자, 가사서비스의 일부로 취급되어 간병노동을 제공하는 간병노동자를 고려하면 훨씬 더 큰 규모의 간병 인력이 존재할 것이다. 간병인의 업무는 필수적인 의료서비스이지만 사적영역, 비공식 영역으로 취급되었다. 의료법을 비롯해 관련 법령 어디에도 간병에 대한 정의가 없으며 건강보험 수가에서도 제외되어 환자들의 개인 부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노동부는 2001년 간병인을 ‘가사사용인’으로 분류했으며(2001년 행정해석), 특수고용에도 해당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08년 7월 1일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시행됨에 따라 간병노동자 일부가 65세 이상의 등급판정을 받은 노인을 수발하는 ‘요양보호사’라는 공식 노동으로 전환되기도 하였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2010년부터 간병비를 비급여 항목으로 포함시키고 공동간병 제도를 활성화하여 2011년부터 간병 서비스를 급여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간병노동이 공식노동으로 전환되어 병원에 직간접적으로 고용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병원 내 간병서비스를 비급여 대상에 포함시켜 사적 거래가 아닌 ‘병원을 통한 공식적 서비스’로 전환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보호자 없는 병원’사업이 시범시행중이다. 비공식 부문에 있던 간병을 공식화시킨다는 것은 간병인과 환자들에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의 추진 안은 건강보험 급여화보다는 민간의료보험을 통해 개인별 선택에 중점을 두고 있어 많은 우려와 비판이 제기된다. 한편 일대일 간병의 경우, 간병 노동자는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된다. 1일 24시간 또는 12시간제로 간병하고 있으며 임금은 24시간 간병시 5만원~7만원, 12시간 간병 시 3만원~3만 5천원으로 1일 8시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시급 2,080~2,917원으로 2008년 최저임금(시급, 3,77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악한 저임금이다. 또한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아서 사회보험도 적용되지 않으며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을 비롯해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유료소개소 대부분은 알선료를 법정 한도액인 3만원을 초과하여 받거나 교육비나 가운비 항목으로 부당이익을 취하고 있다. 간병노동자에게는 공식적으로 정해진 식사시간이 없다. 환자의 식사를 보조하고 잠깐 짬을 내서 식사를 해야 하는데 이 역시 간병인에게 협조적인 환자를 만날 경우에만 허용된다. 물론 환자가 허락하더라도 병동의 간호사들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대학병원 중 간병인에게도 직원식당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경우가 있으나 식당까지 가는 시간과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부담스러운 간병 노동자는 환자 병실 근처 아무데서나 급하게 식사를 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간병인들은 일주일에 하루를 쉬며, 이 때 6일치의 밥을 한꺼번에 만들어와 냉동실에 얼려놓는다. 냉동밥은 배선실의 전자렌지에 해동하여 먹는데 환자의 상태가 안 좋은 상황에서는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기에 이 마저도 챙겨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로부터 잠시 떨어져 쉴 수 있는 간병인들의 공간은 병원 어디에도 없다. 간병노동자는 환자의 가장 세밀하고 필수적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의 위계질서와 의료체계 속에서 가장 ‘비전문적인’ 인력으로 취급당한다. 업무의 정해진 매뉴얼과 규정이 없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는 어떠한 허드렛일도 요구할 수 있으며, 의사나 간호사의 지시와 판단에 의해서 업무의 범위가 정해지기 때문에 언제나 ‘눈 밖에 나지 않게’ 촉각을 세워야 한다. 환자를 간병하는 노동자에게 위생과 생리적인 문제 해결은 매우 중요하다. 화장실과 세면실, 탈의실, 휴게실과 의자, 깨끗한 식수,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 간단하게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이나 공터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병원은 간병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필수적 시설의 제공의무를 기피하고 있다.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간선언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이외에도 청소, 간병 노동자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제대로 먹고 쉬지 못하는 문제이다. 이들이 일하는 장소가 원청 사업장이기 때문에 식사와 휴게공간도 사업장 내에서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원청 사업주가 협조하지 않으면 용역회사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파견법에 의하면 사용사업주도 파견근로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시 일부조항에 대해서는 사용자로 간주된다. 파견법 21조에는 파견근로자에 대해 사용사업주의 사업내의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동종근로자와 비교하여 부당하게 차별적 처우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되어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할 때도 사용사업주를 사용자로 간주하고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았지만 직접 지휘명령을 하고 있고 자신의 사업장에서 노무제공이 이뤄지고 있으며, 제공된 노무로 인한 이익을 취하는 사용사업주가 노무제공 장소 및 지휘 명령과 관련된 사용자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용역의 경우 계약 외형상 지휘명령권한을 원청이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직간접적으로 지휘명령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무제공 장소가 자신의 사업장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최소한의 노동조건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 청소용역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관련해서 원청 사업주는 자신의 사업장 내의 식당, 휴게 공간 등 편의시설을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원청이 청소노동자 1인당 일정면적의 휴게공간을 갖추도록 표준화하는 방안도 모색해 볼 수 있다. 3월부터 시작된 캠페인을 통해 화장실에 밥을 먹는 청소노동자의 현실이 이슈가 되자 몇몇 대학들은 청소노동자의 요구를 수용하여 휴게실을 개선하고 있다. 남자화장실을 휴게시설로 사용했던 성신여대에서는 건물에 새로운 휴게공간을 만들었고, 고려대 병원 역시 휴게실 확장공사를 진행 중이다.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이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먼지 날리는 찬 시멘트 바닥에 앉아야 하는 현실은 대중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가려져 있었던 노동자의 삶에 대한 공감과 지지의 목소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자칫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시혜와 동정을 호소하는 이벤트로 이해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의 열악한 생활을 규정하는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 간병 노동자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자신이 처해있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발언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을 선포하는 것에 있다. 이제 청소, 간병노동자들은 스스로 ‘유령’이 아닌 ‘인간’임을 선언하고, 자신이 수행하는 노동의 필요성과 가치를 사회적으로 알리는 운동의 주체로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함께 힘을 모아 단결하고 연대할 때, 거대한 현실의 구조를 바꾸어 낼 수 있다는 노동자의 긍지를 인식하고 경험해나갈 것이다. 노동조합의 연대와 전략조직화 공공노조는 총연맹 미조직 특위와 함께 산하 정규직 사업장에 <청소·미화 노동자 식사 및 휴게실 현황 실태조사 요청서>를 배포하고 사업장 내 청소노동자의 현황(노동조건, 임금, 식사 및 휴게공간 등)을 파악하고 있다. 대중적인 캠페인과 함께 개별학교와 병원에서 원청 사용자에게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식권지급과 휴게 공간 확보를 요구하고 관련한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노조의 투쟁을 병행하고자 함이다. 공공노조는 <2010년 교섭방침 및 투쟁방침>에서 ‘따뜻한 밥 한 끼 의 권리’ 운동 요구안을 통과시켜 이를 전사업장에 요구안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각 노동현장에서조차 가려져 있었던 청소 노동자들의 존재를 정규직 노동조합이 인식하고 이들의 요구를 함께 제기함으로서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투쟁을 만들어가자는 의미이다. 각 노조마다 현안투쟁을 전개하고 단협을 성사시키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이 간접,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해 관심과 연대를 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흐름이 될 것이다. 한편 청소, 간병 노동자 등 광범위한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과정으로서 캠페인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청소노동자의 93.8%가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없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미화노동자는 4,849명으로 전체 청소노동자의 1.3%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청소노동자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노조나 다른 조직을 통해 제기할 수 있는 경로를 찾지 못한다. 또한 많은 노동자가 자신을 노동자라고 규정하지 않고 있다.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있으나 자신이 가입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62. 6%나 된다. 청소노동의 의미와 가치가 폄하되고 있는 현실에서 수많은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의 상황을 토로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의 조직화 사업의 한 경로로서 캠페인 사업이 자리 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5.29 청소노동자들의 행진, “여기 우리가 있다!” 캠페인단은 5월 29일, <“여기 우리가 있다!” 청소 노동자들의 빵과 장미 행진>을 조직하고 있다. 6월 최저임금 투쟁을 앞두고, 조직되어 있는 청소 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수십만의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모으는 자리다. 가려져 있던 그녀들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를 제기하는 힘찬 행진을 만들고자 한다. 사회진보연대는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다. 5월 29일 청소노동자의 행진을 조직하고 선전하는 흐름에 서울의 각 지역이 다양한 활동을 계획할 것을 제안한다. 5월 10일부터 예정되어 있는 <차별없는 서울 대행진> 동안 각 지역별로 실천을 계획해 볼 수 있다. 또한 밥 한 끼의 권리 캠페인을 6월 최저임금 투쟁의 시기에 대중적으로 펼치면서 전체 노동자운동의 관심과 연대를 호소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고용확대 전략 지난 3월 고용률은 57.8%로 전년 동기대비 0.1% 포인트 하락했다. 2월 고용률이 56.6%로 전년 동기대비 0.4% 포인트 하락한 것에 비하면 나아졌지만, (계절요인을 감안했을 때 고용률은 각각 58.3%, 58.5%다) 2002년 고용률이 60%였고, 1997년 이전 고용률이 61%에 육박했던 점을 감안하면, 고용위기 상황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지난 4월 12일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2%로 0.6%포인트 상향 조정할 만큼 경기회복 전망이 낙관적인 것에 비하면 고용전망은 매우 불투명한 셈이다. 2008~2009년 금융위기 이후 “고용 없는 회복”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명박 정권은 “국가고용전략회의”를 통한 고용창출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명박 정권은 서민들의 낮은 경기회복 체감도를 높이고, 현재 회복추세인 경기상황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2010년부터 기조를 고용유지가 아니라 고용창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고용전략회의는 이처럼 일자리 창출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이를 집행하기 위한, 대통령이 직접 주관하고 관련 행정부처장을 소집하는 국가기구다. 국가고용전략회의는 고용률을 경제정책의 핵심지표로 삼아 이를 높이기 위한 정책적 방안들을 강구한다. 더 나아가 기획재정부는 고용정책의 대상을 실업자에서 취업애로계층(실업자 + 취업의사나 취업능력이 있는 사람 + 추가적인 취업희망자)으로 확대하여 실업문제에 대해 포괄적으로 접근할 것을 공언하고 있다. 2010년 고용회복을 가시화하기 위해서는 하락추세인 고용률을 역전시켜 0.1%포인트 높여야 하는데, 국가고용전략회의는 이를 위해 일자리 25만개를 창출할 방안을 제시한다. (민간부문 일자리가 급격히 늘어날 수는 없으므로) 희망근로프로젝트, 보금자리주택, 4대강 살리기 사업 등 정부재정사업을 중심으로 고용여건을 보완하고,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고용지원센터와 민간고용중개기관의 역할을 확대하자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또한 취업장려수당 인턴제 도입 등을 통해 근로의욕을 높이고, (상시)고용인원을 늘리는 중소기업에게는 세액을 공제하여 구인유인을 확대하고, 공공기관은 단시간근로자 고용을 가능케 하도록 하여 고용형태를 다변화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한편 국가고용전략회의는 중장기적 고용 회복을 위해 매년 0.1%포인트 고용률 상승, 10년 내 고용률 60% 달성을 정책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한국사회고용의 구조적인 문제가 개선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는데, 첫째, 경제의 고용창출력을 제고하기 위해 산업정책 및 재정 세제 지원제도를 고용 친화적으로 개편하고, 임금근로자의 90%를 고용하는 중소기업의 성장토대를 강화한다. 둘째, (고용창출 여지가 큰 의료 교육 등) 서비스 산업을 선진화하고, 사회서비스 등 유망서비스 산업의 시장형성을 촉진한다. 셋째, 인력수급 전망 및 (구인과 구직간의) 미스매치 해소 방안을 마련하고, 인력양성 방안을 확대한다. 넷째, 유연근로제 단시간근로 등 근로형태를 다양화하고, 임금피크제 및 직무 성과급 확산 등 임금유연화를 추진하여 노동시장을 효율화한다는 계획을 제출하였다. 국가고용전략회의가 2010년 25만개 일자리 창출방안을 제안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비판했던 것은, 정부가 처음에는 경제성장률 5% 성장과 그에 따른 20만개 일자리 증대를 목표로 하다가, 고용률을 0.1% 포인트 높이겠다며 ‘25만 명 +α ’ 일자리 창출로 고용목표를 수정했기 때문이다. (국가고용전략회의 스스로 밝혔듯이) 이를 위해서는 정부재정지출로 공공부문에서 직접적으로 일자리를 증대시키는 방안 밖에 없는데, 정작 일자리 관련 예산(고용창출, 고용유지, 고용촉진, 교육훈련 등)은 3조 3천억 원 가량 삭감되었다. 더구나 희망근로 등 재정일자리 사업을 조기에 시작해서 6월 이전에 집행을 완료하겠다고 한 점, 국가고용전략회의의 존재 자체가 이명박 정부의 고용의지를 상징한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자체 선거를 앞둔 선거용 책략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단기적인 정부재정지출에 의존하는 일자리 창출방안은 그 자체로 임시적인 조치일 뿐만 아니라, 금융위기, 감세와 대규모 국책사업 등 재정 제약 상황에 종속된 한계적인 방안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3월부터 6월까지는 희망근로, 6월부터 11월까지는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 9월부터 12월까지는 주민공동체 사업 등 몇 개월 단위로 재원에 따라 일자리가 바뀌는 형태로 계획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지난 2월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유연근무제 확산방안이 발표되고, 기획재정부가 주관하는 「2010 고용회복 프로젝트」에 따라 일자리 창출 관련 정책들이 구체적으로 실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고용전략회의가 단지 단기적인 일자리 창출 기구만은 아니다. 말 그대로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시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고용전략을 구상하고 이를 집행하는 기구인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저임금 노동의 정당화와 파견노동의 확산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이 정부가 임금노동자의 9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고용을 더욱 늘리겠다고 한 점이다. 여기에는 ‘청년 실업자가 31만 명인데 중소기업 인력부족은 16만 명’과 같은 노동시장 수급불균형문제를 해결하면 고용문제가 일정정도 해소된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따라서 구인 구직을 전국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데이터망과 같은 기본 시스템을 구축하고, 고용중개기관에 대한 민간위탁을 확대하여 구인과 구직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빈 일자리’ 기준(사업주 제시임금이 평균임금보다 낮고, 2주 동안 모집인원의 3배수 이상이 알선했던 일자리)을 완화하여 모집기간 1주, 150만 원 이하의 일자리는 무조건 중개가 가능하게 하였다. 또 공공―민간 고용중개기관 사이에 전산네트워크 등을 구축하는 비용을 지원하고, DB에 등록된 구직자를 DB에 등록된 일자리에 취업시켰을 때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교육훈련까지 일관하면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으로 고용중개기관 민간위탁을 확대하도록 하였다. 또한 (장기실업자의 신규고용촉진장려금 지원 대상 요건을 6개월에서 12개월로 연장하긴 하였지만) 취업애로계층이 이 시스템을 통해 중소기업에 취업할 경우 취업장려수당(1개월 경과 시 30만원, 6개월 경과 시 50만원, 12개월 경과 시 100만원)을 1년간 본인에게 지원하고, 중소기업 청년인턴 사업을 3만 명으로 확대하는 등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는 방안과 상시고용인원을 전년도보다 증가시킨 중소기업에 대하여 1인당 300만원의 세액을 공제하는 식으로 구인유인을 확대하는 방안도 마련하였다. 고용알선업무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안정적인 내부노동시장과 부족한 외부노동시장, 즉 (움직이지 않는 경직된) 비경제활동인구를 노동시장으로 유인할 때 그나마 효과가 있다.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는 국면에서 임시 일용직을 확대할 때 고용확대의 의미가 있는 방안이다. 하지만 취업애로계층의 대다수는 (경제위기로 인해 고용의 불안전성이 높아지는 이유로 인해)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노동자고, 이들을 상대로 하는 취업알선이 전문화되고 확대된다고 한들 고용상태가 개선될 리가 없다. 더구나 중소기업 ‘빈 일자리’가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일자리라는 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의도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고용지원서비스를 민간위탁하는 것은 직업소개와 직업훈련도 연계하고, 정부재정지원과 함께 전문화 대형화를 유도하여 직업소개업의 사적이윤을 보장해준다는 문제점 말고도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오늘날 직업소개소들이 음으로 양으로 파견 용역업을 병행하고 있으며, 많은 직업소개소들이 알선하는 업종과 영역이 세분화되어 있고, 실제로 구직을 필요로 하는 중소 제조업의 구인 구직 정보를 불법파견 하도급 업체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용지원서비스를 민간위탁해서 중소기업의 ‘빈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조업 파견 허용 문제를 우회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제조업 파견 허용은 시간문제인 셈이다. 최근 노동부와 각종 국책연구소들에서 제조업 파견의 필요성을 흘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방안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직접적인 효과보다는 저임금 일자리를 일반화함과 동시에 파견 용역 업무의 확대를 꾀하면서, 저임금에 노동3권을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를 확산하는 방책에 불과하다. 단시간근로 일자리와 변형근로제의 확산 고용유지가 아니라 고용창출을 위한 핵심적 방안으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단시간근로와 유연근로와 같은 근로형태의 다양화다. 2009년 12월, 진동섭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상황 등을 봐선 정규직 풀타임의 일자리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며 “유연근무제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고 정책 구체화를 위해 부처에서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 바 있다. 물론 그 자리에서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비춰 우리나라의 단시간 근무 비중은 매우 낮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방안은 2차 국가고용전략회의 때 “유연근무제 확산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소수가 장시간 근로하는 관행(획일적인 전일제 중심의 고용관행)으로 인해 유연근무확대에 한계가 있고, 그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제기배경 중 하나다. 더구나 이와 같은 관행은 여성의 취업률을 급감시키기 때문에 여성의 낮은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단시간근로와 같은 유연근무제의 도입이 유용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당연히 전체 고용률을 제고하는 데 빠른 길이기도 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공공부문에서 먼저 유연근무제를 실시할 수 있는 선도모델을 발굴 확산해야 한다는 점을 국가고용전략회의는 강조하고 있다. 단시간(시간제) 근무 형태를 확대하기 위해 직무를 공유하고, 전일제에서 시간제 근무로 전환할 것을 독려하며, 시간제 근무인력 충원을 꾀하고 있다. 심지어는 공공기관 인력수급의 핵심인 정원관리 방식마저 인원수 외에 총 근로시간으로도 관리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노동부 콜센터, (시간 연장) 보육시설처럼 업무분할이 가능한 직무에서에서 신규 고용을 할 때 단시간 근로자를 채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민간부문에서도 단시간 근로가 확산될 수 있도록 재정적 정책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세웠다. 의료기관, 유통 서비스업과 같은 업종에서 중소기업 위주로 상용직으로 단시간근로자를 채용할 경우 늘어나는 고용인원에 대해 (40만원 한도 내에서 신규 단시간 근로자 임금의 50%를 1년간 지원하는 등) 소요비용 일부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더 나아가 ‘민간부문 확산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일 가정 양립형 단시간 근로 모델을 확산하는 것’이라는 전제 아래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유연근무제도확산 특별팀을 구성하였다. 지자체, 경제인단체, 기업 등이 한자리에 모여 이를 운영하면서, 단시간 근로 적합 직종을 발굴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유통과 보건 의료 등 여성노동자들이 많고, 업무집중으로 인해 노동력 공급이 탄력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업종에서 단시간 근로자를 채용하고 확산할 수 방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 많은 정책조언자들이 단시간근로를 확산하는 데 있어 단시간근로자에 대한 보호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고용창출방안에는 이를 강구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단시간근로자 차별시정 등 근로조건을 보호하고, 단시간근로자 사회보험가입 요건을 월 60시간 이상으로 완화하는 등의 방안을 세운 것이다. 또한 유연근로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2010년 내에 이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주요한 내용은 첫째, 정부지원 및 규제제도에 있어 상시근로자수 산정기준을 고용시간을 고려한 종업원 수(예컨대 20시간 이하 노동자는 0.5명)로 개선하는 것, 둘째,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현행 3개월에서 6개월 내지는 1년으로 연장하는 방안 등이 있다. 즉 변형근로제의 확대도입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단시간 근로와 같은 유연한 근로형태가 (통계수치로서의) 고용률을 개선할 것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이것이 실제 노동조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첫째, 무엇보다도 시간당 임금이 현격히 낮은 상황에서 단시간 근로 노동자가, 해당 가구가 충분한 소득을 얻을 리 없다. 단시간 노동자와 장시간 노동자의 공존 속에서 노동자들은 부족한 소득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노동시간을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고, 이는 또다시 시간급을 낮추는 파괴적인 경쟁양상으로 이어진다. 시간급은 낮아지고 노동자들은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문제는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시간의 신축화, 유연근로는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집단성, 노동조합으로의 단결가능성을 해친다. 출퇴근 시간이 각각 개별 노동자들마다 다르고, 노동자들의 사적인 일상이 일―가정(여가/취업준비)을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으로 채워지는 사이, 노동조합의 존재는 잊히기 마련이다. 노동조합이 형해화되고, 노동권을 유지하고 쟁취하기 위한 기구이자 민주주의의 공간으로서, 공동체로서의 노동조합의 위상은 더더욱 하락하게 된다. 반면 단시간 근로는 일체의 빈틈의 노동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사용주는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어 더 많은 이윤을 얻게 된다. 단시간 근로를 통해 이익을 챙기는 집단은 오로지 사용자인 자본가들뿐이다. 노조탄압은 유연안정성의 전제 국가고용전략회의가 내세운 방안들은 과거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도 여러 정책 자문 집단들이 네덜란드 모델이라느니, 덴마크 모델이라느니 하며 논의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저성장시대 유연안정성의 제고만이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주장으로 말이다. 이 같은 유연안정성 확립의 전제가 무엇인지를 국가고용전략회의의 보도자료를 통해 확인해 보자. 국가고용전략회의는 일자리가 확대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고용구조의 이중구조를 지목하고 있다. 고용구조의 이중구조란 대공장 정규직 근로자가 단체협약에 의해 과보호되고 있는 반면, 하청 중소기업 근로자는 어떠한 보호도 없어 노동조건이 점점 더 열악해져, (근로빈곤층이 양산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대기업 취업을 선호하여 노동시장이 구조적으로 왜곡된다는 주장이다. 즉 노동자들이 풀타임의 정규직 일자리를 선호하지, 단시간 근로와 같은 유연한 형태의 일자리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상황이 아니라) 이것이 지금 현재 고용률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국가고용전략회의는 2009년 일자리 나누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고용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정부가 일자리 나누기를 유도했는데 기업들이 (그리고 노동조합이)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근무형태 다양화’보다는 ‘임금조정형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본래의 목적이 퇴색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2009년 상당수 노동조합들이 임금조정형태를 선호했던 것은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존재가 ‘근무형태를 다양화’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인 것은 사실이다.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최소의 목적이 일자리를 지키고 노동자의 임금을 방어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의 입장에서, 불황기 저성장시대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일자리 창출(정확히는 통계상의 고용률 제고)은 필수적인데, 대공장 노동조합의 존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와 고용안정도의 차이는 (불안전한 일자리 확산을 통한) 고용확대의 걸림돌이자 시정대상일 수밖에 없다. 현 정권이 공공부문을 필두로 단체협약을 해지해가면서 대기업 노동조합 탄압에 전례 없이 집중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노동시장의 구조적 왜곡을 시정하는 것은 중장기적 계획이다. 이렇게 보면 이명박 정권은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순치하는 것을 중장기적 대응방안으로 간주하고 있는 셈이다. 좀 더 정확히 규정하자. 국가가 단기근로를 확산시키는 데 있어 제도적 장벽으로 지목한 것은 일상적인 해고가 어렵다는 것이고, 이는 강한 노동조합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대기업 노조 뿐만 아니라 화물연대나 건설노조를 탄압하는 것은 이 처럼 강한 노동조합이 불안전한 일자리 확산의 최대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의 일자리 창출 방안이 기만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시: 2010년 4월 16일 오후 3시 장소: 사회진보연대 회의실 사회: 이소형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참석: 박윤기 장애인 활동보조인, 심선혜 공공노조 서울경인지부 보육분회 분회장, 차승희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지부 간병분회 사무장 정리: 방민희 사회진보연대 노동위원 지금까지 여성이 가정 내에서 무급으로 수행해 온 돌봄노동이 사회서비스란 이름으로 정부 정책화되고 제도화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제도는 올해로 2년째로 접어들고 있으며 장애인장기요양제도와 간병의 제도화가 시범 시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형 어린이집’을 늘려가는 추세다. 심지어 한나라당도 무상보육이 중요하다고 열변한다. 그동안 열심히 누군가를 보살피고 돌보고 간호했지만 ‘사랑’과 ‘헌신’이라는 미명 아래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간주되어왔던 여성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제도에는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과, 그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삭제되어 있다. 사회서비스가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위기 대응책으로, 경제위기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제도화되면서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재생산 위기의 부담이 다시 노동자 민중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 사회서비스 시장 육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정부 정책은 여성노동이 하찮고 부차적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제도의 취지가 시장 육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지도 못하면서 저임금의 고된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돌봄노동과 사회서비스에 대한 자본과 국가의 일방적인 전략에 맞서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돌봄노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돌봄노동 문제를 제기할 투쟁 주체의 조직화에서부터 출발할 것을 제안한다. 생산과 재생산을 나누고, 재생산을 사적인 영역으로 구분하여 여성에게 떠맡기며 평가절하했던 역사와 단절해야 한다. 돌봄노동의 가치가 인정받고,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이 보장받고, 돌봄노동과 관련된 제도는 보편적인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마구잡이로 시장에 내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번 <사회운동>에서는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개최했던 ‘돌봄노동자 희망대회’의 후속사업으로 각 분야의 돌봄노동자를 초청하여 돌봄노동의 현황과 운동과제를 살펴보았다. 이번 좌담에서는 돌봄노동자의 현실을 널리 알리고 돌봄노동자들 간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향후 노동자 운동에서 돌봄노동의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고, 주요한 투쟁 과제로 만드는 것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돌봄노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장하고, 새로운 주체들을 조직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주요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한 논의는 이후 <사회운동>에 소개할 예정이다. 본문의 각주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정리자가 추가한 것이다. * * * 사회자: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개최된 <돌봄노동자 희망대회>에서 요양보호사, 간병노동자, 활동보조인, 보육교사들은 돌봄노동의 현실을 폭로하고,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요구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돌봄노동을 가족과 여성에게 떠넘겨온 사회적 인식과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돌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사회적 책임이 필요함을 알리는 첫 발걸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를 위해서는 돌봄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이 중요한 문제임을 알릴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첫 발걸음을 시작으로 미래를 돌보는 사람들인 돌봄노동자들의 현황을 알리고 이후 투쟁을 결의하자는 의미에서 돌봄노동자 좌담회를 기획하였습니다. 돌봄노동의 의미. 내가 하는 노동, 왜 소중한가? 사회자: 자신이 하고 있는 노동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인지 평소 느끼신 바나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선혜: 그동안은 어린이집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만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돌봄노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그 전에는 일을 할 때 기술적인 부분이나 일을 잘 해서 인정받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면, 돌봄노동을 알게 된 이후로는 철학이 생긴 것 같아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있듯이 요람, 즉 인생의 초기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 그 아이들에게 돌봄을 제공한다는 점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책임감도 더 커졌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니까 나의 노동조건, 내 컨디션이 돌봄의 질을 크게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누적되는 스트레스가 아이들 때문이 아닌데 아이들을 대할 때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돌봄의 가치를 알게 된 이후에는 이것이 나 혼자의 문제거나, 아이들에게 풀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을 찾아내고 그것을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돌봄을 하는 행위를 노동으로 인정으로 받고, 그 가치가 인정받아야지 돌봄의 질도 높아지고, 나 혼자 죄책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낀거죠. 그래서 노동조건을 개선하라는 요구도 더욱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박윤기: 장애인활동보조 일을 시작할 때는 사실 불쌍하다, 안쓰럽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면서 비장애인인 내가 좀 더 장애인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일을 해보니, ‘장애인도 사람이다’, ‘장애인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 대입검정고시 준비를 하는 분을 만나기도 했는데, 나랑 똑같구나, 단지 장애가 장애일 뿐 ‘장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활동보조의 의미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장애인이 동등한 인간으로 설 수 있는 데 보조를 하는 것이지요. 차승희: 아까 보육이 요람이라면 우리는 무덤 쪽이지요(웃음). 어딘가 아파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사람이 병원에 와서 우리의 간병을 통해 회복을 해나가는 과정을 보고, 큰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는 제3의 의료진이라는 이야기를 해요. 그만큼 간병은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거지요. 그래서 돌봄이라는 단어와 의미가 참 좋아요. 의지가 있는데 본의 아니게 혼자서 움직일 수 없거나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간병인들의 돌봄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정부의 사회서비스 정책에 대한 비판 사회자: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돌봄노동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이런 돌봄노동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책임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 저출산 고령화 시대, 경제위기 시대라며 수많은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돌봄의 가치를 높이고 사회적인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현재 시범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 장기요양제도, 공보육을 강화한다는 서울형 어린이 집, 간병의 제도화에 대해 각 당사자들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세요. 심선혜: 서울시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서울형 어린이집’ 포스터 아시죠? 할아버지가 여자아이를 안고 웃고 있는 사진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울시에서 정말 보육에 신경을 쓰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게 서울형 어린이집입니다. 저출산 위기와 연관되어 보육의 중요성이 많이 강조됩니다. 저도 그런 고민을 합니다. 아이를 대책 없이 막 낳으라는 것보다는 있는 아이들을 잘 돌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있는 어린이집은 대부분 민간 어린이집입니다. 서울 같은 경우에 100개 중 10개만 국공립이고 90개는 민간이라고 보면 됩니다. 부모들은 질 좋은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하지만, 서울시에서는 갑자기 국공립을 만들 수 없는 노릇이니 민간어린이집을 국공립수준으로 높이겠다고 서울형 어린이집이라는 걸 만들고 재정을 투여하고 있습니다. 재정 투여는 저렴한 보육료와 보육교사의 인건비 지원이 핵심인데요,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재정지원만으로 질이 향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 몇 푼 지원이 바로 질 향상으로 연관 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떻게 운영하는가, 즉 관리감독과 문제의 원인 해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기본적인 습관을 익히게 하는 등 교사들이 하루에 정말 많은 일을 하는데, 그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어린이집이 시설장의 독단적인 운영에 좌지우지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서울형 어린이집은 회계 투명화와 CCTV를 다는 것으로 이를 해결하려 합니다. 회계 투명화야 필요합니다. 그런데 CCTV가 안심보육에 도움이 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동과 교사의 인권침해는 차치하고서라도, CCTV를 달아서 감시한다고 해서 교사 1인이 수많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발생하게 되는 안전사고가 방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력확충과 같은 근본적인 해결방안보다는 손쉽고 빠르고 자극적인 방법, 그리고 오히려 교사들의 스트레스를 높여 보육의 질을 떨어뜨리게 하는 방법을 도입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결국 보육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정책이 보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승희: 간병제도화는 간병인들의 염원이었습니다. 간병노동자는 특수고용 노동자라서 24시간이라는 초유의 장시간노동에 최저임금도 못 받는 신세입니다. 심지어 밥을 사먹는 것도 부담이 되어 집에서 밥을 얼려 싸와서 병원 복도나 배선실, 혹은 환자 곁에서 눈치 보면서 녹여먹는 정도입니다.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밥은 기본적으로 시켜주는데, 우리는 그나마도 해결이 안 됩니다. 환자를 보다가 감염이 되고 다치더라도 간병인은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서 산재예방은커녕 산재처리조차 안 되는 열악한 조건에 처해있습니다. 병원에서 필수적인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로 인정 못 받는 문제, 이건 병원만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간병제도의 사회화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에서는 간병을 제도화를 한다면서 MRI와 같이 비급여화하고 오히려 민간보험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환자들도 보험 얼마짜리에 들었는지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달라지고, 간병인들의 임금도 낮아지는 것이 민간보험 도입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대안으로 간병인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건강보험에 간병을 포함시켜서 급여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윤기: 현재 장애인장기요양제도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 시범사업이 그대로 시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장애인장기요양제도의 핵심이 시장화이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의 노동조건은 더욱 열악해 질 것이라 걱정이 큽니다.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중에 개인 사업자로 등록하라고 할까봐 염려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수입도 일정하지 않고, 4대 보험의 혜택도 그림의 떡입니다. 실업급여나 퇴직금을 실제로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현재 중개기관에서 25%의 중개수수료를 떼고 있는데 시장자율화가 되면, 센터나 중개기관은 수수료를 올리겠지요? 그러면 저임금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또 이용자 수와 이용자들의 사용시간에 비해 활동보조인들이 넘쳐나고 있는 현실인데, 정부의 시장화 속에서 취업 경쟁 때문에 우리 권리는 이야기되지도 못할 것입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하에서 일을 하는 요양보호사도 마찬가지 않습니까? 이렇게 제도가 시장화되는 상황에서 장애인 요양 서비스의 질은 당연히 하락할 것입니다. 돌봄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실태 사회자: 보육, 간병, 장애인과 관련한 정부 정책의 문제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정부는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이 정책 취지라 밝혔지만, 반대로 제도를 민간영역에 맡기고 시장화해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었습니다. 결국 아이, 노인, 환자, 장애인이 돌봄 서비스를 온전히 받지 못하고 돌봄의 질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돌봄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현재 노동조건은 어떤지 이야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선혜: 하도 어린이집 사고로 분쟁이 심해서, CCTV를 설치하는 것까지는 보육교사들이 수용을 했습니다. 그런데 IP-TV 생중계 시스템까지 도입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동의를 하고나서 추진해야 하는 문제인데, 오히려 이거 안 해서 우리 어린이집이 서울형 어린이집 심사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되묻고 있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을 다 내보이는 것에 신경이 쓰여서 어떻게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겠습니까. 또 시간도 문제예요. 하루 종일 교사가 하는 일을 쭉 뽑아봤더니 기본 10시간이 넘어갑니다. 우리가 8시간 노동을 기본이라고 하지만, 어린이집은 12시간 열려있기 때문에 10시간 이상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토요일에도 일하고 밤샘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온전한 정신으로 돌볼 수 있겠습니까. 일하는 시간뿐만이 아니라 일하는 형태도 노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린이들을 돌보느라 앉았다 일어났다, 들었다 놨다하고 아파도 쉬지 못하고 웃으면서 일해야 해서 정신도 지치고, 급하게 밥을 먹느라 속도 망가지죠. 노동건강연대와 실태조사 한 결과 우울증 지수가 자살수위를 훨씬 웃돌게 나왔습니다. 제대로 된 보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최소한 만들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이러한 요구를 하면 자꾸 교육자로서의 사명감과 헌신만 강요합니다. 교사당 아이수도 문제입니다. 연령대별로 교사당 아이수가 만 0세 1:3, 만 1세 1:5, 만 2세 1:7 등으로 정해져있습니다. 이건 최대정원이었는데 최근에는 최소정원이 되어 여기에서 더 돌보라고 요구받고 있어요. 아이들을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건지, 아이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으니까,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 혼자서 세 쌍둥이 볼 수 있습니까? 본다 해도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보육교사면 다 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인간으로 본다면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대폭 줄여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상호작용이 가능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지 말고 제대로 보라는 것은 매우 모순된 요구입니다. 차승희: 간병인들은 시간당 2500원이라는 저임금으로 보통 하루 24시간 일합니다.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최저임금과 8시간 노동을 보장 받지 못합니다.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하루 온종일 일을 하니 대부분의 간병노동자들이 근골격계질환이나, 안구건조증, 위장장애 등의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적용도 못 받고 있어요. 병원에서 감염환자를 돌보다가 병이 옮아도 보호받지 못합니다. 노동권 보장, 최저임금, 산재적용, 8시간 노동시간 준수가 시급한 과제입니다.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수면시간도 보장 받아야합니다. 잠을 못자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알지 못하죠. 밤새 환자를 주무르라는 보호자들이 있는데, 그 지시에 따랐다가 병원신세를 지게 된 간병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간병인들은 노동자라기보다는 ‘돈 주고 산 사람’이라고 인식되어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여 있습니다.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환자를 돌보라는 불가능한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1:1로 환자를 돌보는 경우가 아닌, 요양시설이나 병원에서의 공동간병의 경우 한 명의 간병인이 정말 많은 환자들을 돌봐야 합니다. 야간에는 위 아래층을 왔다 갔다하며 혼자서 20명 넘는 환자를 돌봐야 하기도 해요. 이는 간병노동자의 노동강도 문제뿐만 아니라 환자 생명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매우 위험한 노동조건이지요. 간병제도화가 된다면 제대로 된 인력기준이 세워져야 합니다. 박윤기: 우리도 장애인 대 활동보조인 비율 1:1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반대했습니다. 건장한 신체의 장애인 같은 경우 혼자서 돌보기 어렵습니다. 필요한 경우에 한 사람 더 붙이면 안 되냐 요구를 해도 법적으로 그렇게 안 된다고 합니다. 현재 활동보조인들이 늘어서 일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말이죠. 요양보호사도 혼자서 노인을 돌보니 우리 활동보조인도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활동보조인은 이렇게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혼자서 감당이 안 되는 장애인을 혼자서 돌봐야 하는 거죠. 활동보조인의 경우 장애인 이동시 활동보조인과 함께 오지 않은 다른 장애인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장애인들이 정부에게 받은 시간이 적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을 못 쓰는 거죠. 또 시급제도 문제입니다. 좀 전에 말했듯이 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활동보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활동보조인이 장애인과 연결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임금이 들쭉날쭉합니다. 만약 한 달 내내 연결이 되지 않으면 한 달 수입이 없는 거지요. 게다가 이용자 장애인이나 센터의 마음에 안 드는 활동보조인의 경우에는 아예 일을 못 받습니다. 이렇게 생활을 불안정하게 하는 시급제가 아니라, 활동보조인들이 안정된 조건에서 책임감 있게 일 할 수 있도록 월급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동시간도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강원도 정선에 사는 활동보조인의 경우 이동시 왕복 7시간이 걸린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일하는 시간보다 이동하는 시간이 더 많고, 임금은 임금대로 적은데 그나마 서울이야 사정이 상대적으로 낫다고 쳐도 지방 같은 곳은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제공될 수 없는 것이지요. 돌봄노동자들의 조직 현황과 활동 사회자: 저출산 고령화 시대라고 호들갑 떨며 정부가 내놓은 각종 돌봄 정책이 잘못된 것이라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안을 만드는 주체는 우선 돌봄노동자들이 되어야겠지요. 주현숙 감독 영화 제목이기도 한데, ‘미래를 돌보는 사람들’이 바로 돌봄노동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전국의 돌봄노동자 수에 비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투쟁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 돌봄노동자들의 조직 상황이나 조직화 관련해서 평소 갖고 계신 고민들을 말씀해 주십시오. 심선혜: 서울의 보육교사가 3만 3천 명입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도 함께 뭉쳐서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왜 그럴까, 왜 참고만 살까, 생각해보면 보육교사의 꿈은 훗날 원장이 되는 거니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또 만성피로에 찌들어있어서 자기 목소리를 낼 힘조차 없거나, 단 한번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아이들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만 익숙해져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변화를 원한다면 함께 모여야 합니다. 그동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면 이제는 그런 방식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집을 직접 찾아다니는 등 보육교사들을 직접 만나는 계기들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보육 정책 관련해서 정부를 상대하는 싸움도 멈출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보육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입니다. 지금의 보육의 틀을 완전히 뒤엎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까지 무상교육을 들고 나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단순히 보육료를 지원하는 차원이 아니라 보육시설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게 요구하려고 합니다. 보육교사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는 채널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보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게 하는 요구를 해나가고자 합니다. 보육정책위원회 참가를 해서 보육조례를 만드는 것에 우리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다면 제대로 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하나는 시설보육에 갇히지 않는 보육 전반의 문제, 예를 들어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제기하는 것도 고민 중입니다. 보육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인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정에 파견이 되었을 때, 가사일까지 도맡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또 보육교사가 아이를 돌보고 교육할 때 지도와 협조가 필요한데, 무조건 한 사람에게 집에 가서 알아서 아이를 돌보라는 식이 되면 안 됩니다. 차승희: 간병인과 요양보호사가 함께 모이는 자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도 힘쓰고 있어요. 우리가 단순히 돈 벌러 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우리 스스로 적극적으로 개선해나가고 있다는 점을 함께 알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렇게 개개인의 의식을 모아서 집단적으로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토론회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도 힘쓰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노동부도 찾아다니면서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도 있습니다. 박윤기: 지금 ‘활동보조인 권리 찾기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의 경우 현재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에서 중개기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보적인 운동단체라고 이름이 나있는 곳에서도 활동보조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민감하지 않은 경우가 있어 고민이 됩니다. 우리는 활동보조인도, 중개기관도 함께 잘해보자는 생각인데 이러한 우리의 생각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활동보조인이 함께 모여서 우리의 권리를 찾아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리 찾기 모임을 점점 확장하면서 활동보조인의 권리를 대변할 조직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봄노동은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자: 국가와 사회가 공적으로 책임져야 할 역할을 가족,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에게 떠넘겼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성의 노동을 아무나 할 수 있는, 비숙련 노동으로 여겼던 사회적 인식은 저임금의 불안정한 여성일자리를 늘려왔습니다. 또 이는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만들었지요. 돌봄노동자의 노동조건과 돌봄노동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것은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도 해소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차승희: 고민 고민하다 보면 결국 거기에 결론이 닿습니다. 우리 여성들이 먼저 깨어야 하고, 우리의 목소리가 제대로 사회에 반영이 될 수 있도록 되어야 할 것입니다. 돌봄노동이 여성만의 일로 여겨지는 우리사회의 인식의 틀을 바꾸려면 돌봄노동자들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심선혜: 돌봄을 사적인 영역으로 볼 것이냐, 공적인 영역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는 이데올로기 차원의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아이를 돌보고 노인과 환자를 돌보는 일은 가정에서 책임져야 하고 국가는 일부 지원만 하면 되는 일로 여겨지면 여성은 이러한 조건에서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보육료를 지자체에 내고 지자체에서 보육시설을 관리합니다. 그러다보니 임금 수준이 높아서 남성들도 보육교사 일을 많이 합니다. 일본이 잘 사는 나라라서 가능한 문제라기보다, 돌봄을 공적인 영역으로 인정할 때 이것은 여자의 일이 아니라 사회의 일로, 제대로 된 가치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박윤기: 현행 복지제도 중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무료봉사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기부문화만 강요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돌봄에 대해 희생과 봉사만 요구한다면 여성의 현실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이후 공동 투쟁 결의와 노동운동에 바라는 점 사회자: 돌봄노동자들의 연대와 공동 투쟁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2010년 3.8 돌봄노동자 희망대회의 경험을 발판으로 하반기에 돌봄노동자 대회를 개최해 공동 투쟁을 이어가면 어떨까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해주세요. 또 마지막으로 돌봄노동자들의 투쟁과 관련해서 기존의 노동운동에 바라는 바가 있으시면 덧붙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차승희: 그동안은 우리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만날 수 있는 계기를 자꾸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번의 행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의식을 계속하여 이어나가고 발전시켜 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간병노동자들도 우리가 행동한 것이 어떠한 의미였는지 스스로 확인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심선혜: 같은 돌봄 영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만나지 않으면, 보육교사만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로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고, 그런 기회가 돌봄노동의 범주에 있는 더 많은 노동자로 확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8 여성의 날에 그나마 사회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소중하지만, 일 년에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연속성을 가지고 우리의 요구를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자 운동에 바라는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돌봄은 우리의 삶 전반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돌봄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개선될수록 노동자 전반의 삶의 질도 향상됩니다. 지금까지는 각자의 영역에서 일하는 노동자 정도로 인식하는 수준이었다면, 노동자 운동 전체가 우리 삶의 질을 바꾸는 근본적인 활동의 시작으로서 돌봄노동자의 행동에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박윤기: 연대는 당연히 해야지요. 문제는 어떠한 방법으로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봐야 할 것이고, 노동자 운동 관련해서는 돌봄노동 관련한 학습이나 인식의 기회를 늘려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 운동이 새롭게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인식 하에 새롭게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많은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를 시작으로 돌봄노동의 중요성과 사회적 책임의 필요성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합니다. 또 이를 위해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 돌봄노동자들을 투쟁의 주체로 세우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두고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1970~80년 정세와 노동운동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빈곤을 강요하는 정부의 경제성장 정책, 자본가들의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탄압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한국의 노동운동은 1970년대에 접어들어 전환점을 맞이했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었던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고 1970년대 노동운동의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외국자본을 도입해 수출중심의 공업화를 추진했다. 한국경제는 베트남 전쟁, 중동 건설 붐에 편승해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채에 의존한 성장으로 경제는 외국에 종속되어 갔고, 한국이 세계경제의 일부분으로 편입됨에 따라 세계경제의 변화에 따라 한국도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정부는 수출 기업체에게 금융지원, 면세혜택을 주어 독점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이에 드는 비용이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졌기 때문에, 결국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으로 재벌을 키운 셈이었다. 한국 기업들이 외국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법은 값싼 임금비용을 더 줄여서 가격 경쟁력을 가지는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노동자의 임금은 매우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었고, 어디에서나 장시간의 고된 노동이 강요되었다. 노동법은 법전 속에 있을 뿐이었다. 저임금과 가혹한 노동환경에 시달렸던 노동자들은 침묵하지만은 않았다. 1970년 165건이던 노동쟁의가 1971년에는 1656건으로 10배나 늘어났다. 1970년 11월의 전태일 열사 분신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971년 8월에는 도시 빈민들의 분노가 광주대단지사건으로 폭발하였다. 노동자와 민중들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서 박정희 정부는 1971년 12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1972년 10월 유신체제를 선포해 광폭한 군사독재를 한층 강화했다. 모든 민주화운동과 노동자운동은 사실상 금지되었다. 특히 외국자본의 한국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 1970년 제정된 <외국인 투자기업의 노동조합 및 쟁의조정에 관한 임시특례법>으로 외자기업에서 노동자의 기본권이 제한되었다. 1971년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과 단체 교섭권이 전면적으로 제한됐다. 1979년 박정희의 암살로 유신체제가 막을 내렸지만 노동운동의 조건은 개선되지 않았다. 1980년 봄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 세력이 권력 장악을 시도했다. 이에 대항하여 학생들을 중심으로 학원 민주화, 병영집체훈련제도 폐지, 계엄령 해제, 언론자유 보장을 내건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 사이 노동자의 쟁의도 급속하게 확대되고 격화되어갔다. 그러나 신군부는 5.17 계엄확대 이후 노동운동을 또다시 처참하게 짓밟았다. 신군부는 한국노총의 민주파를 제압하기 위해서 8월 21일 산별위원장 12명 사퇴, 지역지부 폐지를 골자로 한 ‘노동조합 정화지침’을 시행했다. 급기야 1980년 마지막 날 신군부는 기업별노조로의 전환, 제3자 개입 금지를 골자로 노동법을 개악했다. 김경숙과 YH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1970년대 장시간의 노동과 생명을 위협하는 작업조건 속에서 최저생계비에 턱없이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일했던 노동자들은 곳곳에서 저항했다. 1970년 11월 청계피복 노조가 결성되었고 1973년 신진자동차(나중에 대우가 인수), 원풍모방, 아세아자동차에서 노조 결성되었다. 한국모방 노조 민주화와 임단협 체결 투쟁, 동일방직 노조의 민주노조 사수 투쟁 등이 벌어졌다. YH노조의 김경숙(1958~1979)은 어린 나이부터 공장에서 일했다. 김경숙이 8세가 되던 해,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날품팔이를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갔다. 김경숙은 겨우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졸업 전부터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녀는 ‘내가 못한 공부를 동생에게 가르쳐서 동생만은 성공할 수 있도록 하자’고 다짐하며 고향을 등지고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에 하청공장에 취직해 코피가 그치는 날이 없을 정도로 고되게 일했지만 임금체불에 시달렸다. 김경숙은 여러 공장을 옮겨 다나며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체험했다. 젊은 나이에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공장에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자신과 같은 어린 노동자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녀는 몸은 병들더라도 마음은 상하지 않는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자고 다짐하며 8년간 공장생활을 이어갔다. 김경숙은 1978년에 가발공장 YH무역에 입사했다. 임금이 조금 높았기 때문이다. 가발을 수출하는 YH무역은 노동자들에게 하루 16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다. YH무역은 휴일도 없이 철야 노동을 강요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물 마시는 것도 통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경숙은 노동자의 지위와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이후 김경숙은 노조 대의원으로, 조직부 차장으로 선출되고 노조 소그룹의 장으로 활약했다. YH 노조는 민주노조를 건설한 후 잔업거부 운동과 일요일 연장 거부 투쟁으로 해고자 원직복직과 추석보너스를 타냈다. 또 노조는 부모 사망 시 5일간 주어지는 휴가를 여성노동자들에게 보장하지 않던 차별적인 관행을 개선했다. 김경숙은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노동자가 단결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YH무역 경영진들은 노동조합의 힘이 커지자 회사 자금 빼돌린 후에 폐업 공고를 냈다. 이에 맞서 전 조합원이 폐업 반대 농성에 참여하며 5일 만에 정부와 사측으로부터 폐업철회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백일 만에 휴지조각이 됐다. 김경숙을 비롯한 조합원들은 1979년 8월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그녀들은 “공장폐쇄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비인도적인 처사이고 몇 사람만을 위한 사기극”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요구가 정치권을 비롯한 세간의 이목을 끌자, 투쟁이 확산될 것을 두려워한 경찰이 농성 이틀 만에 농성장에 난입했다. 김경숙은 경찰의 난입에 항의 하던 과정에서 완고하게 저항했다. 경찰의 진압 작전이 끝난 후 그녀는 건물 아래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김경숙은 작전개시 30분 전 스스로 투신했다”고 서둘러 사건을 수습했다. 그러나 30년 후, 김경숙의 사인은 경찰에 의한 타살로 밝혀졌다. 김경숙 열사의 짧은 삶은 ‘공순이’라고 무시당하며 ‘가족’과 ‘국가’의 이름 아래 고된 노동을 감내했던 여성노동자와 그녀들의 저항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박영진과 구로공단 노동운동 신군부가 들어선 이후 1980년대에도 노동조합의 투쟁은 끊이지 않았다. 1983년 정권의 유화조치 발표 이후 노동자들의 투쟁은 더욱 고조됐다. 1980년대는 1970년대와는 달리 대공장 남성노동자가 운동의 전면에 등장하고,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민주노조 건설의 움직임이 특히 활발해졌다. 투쟁방식도 공장점거, 경찰과의 직접적인 대결로 발전했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대우어패럴 간부 구속에 맞서 구로공단의 9개 노동조합이 7일간 폭발적인 투쟁을 전개했다. 박영진(1960~1986)은 구로동맹파업의 영향을 받고 구로지역 노동운동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박영진은 중학교 3년을 끝으로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행상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박영진은 가난한 생계를 돕기 위해 신문팔이, 껌팔이, 구두닦이를 하며 밑바닥 생활을 경험했다. 그는 1983년 시흥 소재의 마찌코바(영세작업장)에 취직해 노동자로서 삶을 시작했다. 평소 성실했던 박영진은 회사의 전화기 관리를 맡았다. 그러나 전화기를 담당한지 얼마 안 되어 전화요금이 10만 원이나 나왔고 사장은 책임을 물어 박영진의 월급에서 9만 원을 제해버렸다. 그가 전화국에 찾아가 시외전화 사용의 내막을 알아보니 대부분이 사장이 사용한 것이었다. 박용진은 결국 뺏긴 월급을 돌려받고 밀린 체불임금까지 받고 퇴사했다. 이 과정에서 박영진은 자본가의 교활하고 탐욕스런 속성과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983년 초 배움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야학을 찾아간 박영진은 노동법과 노동운동, 노동자의 삶을 학습하면서 노동자의 현실을 체계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전태일 열사의 삶을 듣고 1983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84년 구로에 있는 동일제강에 입사한 박영진은 노동자들에게 노동법을 알리며 그들을 조직했다. 친목회를 통해 노동법 교육팀을 꾸렸고 동료들의 믿음과 신뢰를 얻어 노동조합을 건설했다. 그러나 구청과 공권력은 합법적인 노조결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측의 어용노조를 인정하고 민주노조의 서류는 반려시킨 것이다. 이후 박영진은 2개월 동안 구로지역 노동자들과 정치상황과 사상에 대해 학습한 후 1985년 악덕기업으로 소문난 신흥정밀(현 마이크로)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박영진은 구로동맹파업을 목격하고 공동투쟁을 계획했으나 경찰과 사측의 공작으로 투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1986년 3월 17일 박영진은 임금인상 파업을 주도하며 식당을 점거했다. 구사대와 경찰이 식당에 난입하고 박영진과 동료들을 옥상으로 올라가 투신과 분신을 경고하며 저항했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살인적인 부당노동행위 철회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경찰과 사측은 부모와 친척을 회유해 시신을 탈취하고 재빠르게 화장시켜 문제가 커지는 것을 막았다. 가난한 날품팔이의 영세업체 취직, 야학을 통한 의식화, 민주노조 건설, 격렬한 투쟁으로 이어진 박영진 열사의 삶은 1980년대 중반 구로공단 지역 노동자와 노동운동을 대변한다. 성완희와 탄광 노동자들의 투쟁 성완희(1959~1988)는 1961년 아버지를 결핵으로, 어머니를 사고로 여의고 14살에 평화시장 봉제공장에 취직했다. 당시 평화시장에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의 여파가 남아있었다. 성완희는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들으면 노동자 의식을 조금씩 깨닫게 됐다. 1986년 10월 태백에 있는 강원탄광에 입사한 성완희는 막장광부로 일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물결은 강원도 탄광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해 7월 7일 어룡광업소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투쟁을 시작으로 16일 동해광업소, 18일 한보탄광 통보광업소, 26일 한성광업소 등 거의 모든 광업소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일어났다. 성완희는 1987년 10월 강원탄광 파업에 앞장서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강원탄광 노동자들은 헌신적으로 자신의 몸을 던져 투쟁에 나선 성완희를 절대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그를 눈에 가시로 여겼던 강원탄광은 작업 중 다리를 다친 성완희를 무단결근으로 해고했다. 이에 맞서 동료 노동자들과 성완희는 복직을 요구하며 작업거부에 나섰다. 회사는 사태 무마를 위해 성완희를 조합원 자격이 없는 청원경찰로 복직시키고 동료들을 해고시키는 기만적인 작태를 보였다. 이러한 사측의 분열과 탄압에 대해 성완희와 해고노동자들은 강원탄광 우정회를 결성하고 강력한 복직투쟁을 전개했다. 노동부와 지노위에서 복직판정, 복직명령을 받았지만 사측은 이를 거부했다. 성완희는 노조사무실에서 동료들과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사측이 각목을 들고 들어오려고 하자 성완희는 온 몸에 휘발유를 뿌리며 “인권탄압 중단하라” “광산쟁이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라며 외치고 분신했다. 그는 화염에 휩싸여 아스팔트에 쓰러져서도 “강원탄광에 민주노조를 건설해 달라”고 부탁했다. 성완희의 분신 이후 태백, 도계, 고한, 사북 등 강원남부 탄광노동자들과 시민들은 열사의 유해를 모시고 장례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지역마다 민주노조 쟁취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조직적인 투쟁이 벌어졌다. 1989-90년 탄광 노동운동의 마지막 불꽃이 타올랐다. 열사들의 삶에 새겨진 1970-80년대 한국 노동운동 김경숙, 박영진, 성완희 열사의 삶은 1970-80년대 한국 노동자의 평범한 자화상일 수도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족을 위해서 또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일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가혹한 현실을 체험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사측과 정권의 갖은 탄압을 겪으면서 노동자의 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깨닫고 노동조합의 결성과 투쟁에 자신의 온몸을 바쳤기 때문이다. YH노조 투쟁, 구로공단 노동운동, 강원도 탄광노동자들의 투쟁까지 열사들의 발자국은 민주노조운동 역사에 남아있다.
유명한 이솝우화에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라는 이야기가 있다. 쥐들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고양이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던 중이었다. 그때 한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 고양이의 움직임을 미리 알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제안을 내놓자 다들 좋은 제안이라며 이를 채택했다. 그러나 막상 어떤 늙은 쥐가 어떤 방법으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를 묻자,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 우화는 탁상공론의 부질없음, 즉 말은 쉽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가 마치 이 우화에 나오는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 애시 당초 예상했던 일이지만 근심위 논의가 노동계의 입장을 전혀 대변하지 않고 파행으로 치닫는 가운데, 7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4월 파업투쟁을 목전에 두고 있는 현실이 우화의 장면 장면들과 어찌도 이리 닳았을까? 금속노조 인천지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부 집단교섭의 진행과정을 들여다보자. 우선 우리에게는 고양이 격이지만, 전임자 문제와 관련해서 교섭이 진행되어 가면서, 개별 사업장 사업장별의 처지에서만 보면 스스로가 정부와 노조의 틈바구니에 끼였다고 여기고 있는 사측의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업장마다 임단협과 전임자 처우에 대한 경총과 노동부의 협박성 지침이 하달되었고, 노무 담당자들은 수시로 교육에 불려 다녀야 했다. 그 와중에 몇몇 사측 관리자들은 사견임을 전제로 전임자 문제는 노사자율의 사안이고 정부가 개입하면 노사관계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면서, 설령 법이 시행되더라도 타사업장에 비해서 제일 먼저 합의 하지 않는다면 전임자 처우를 현행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솔직한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반면 노동조합의 곤란은 고양이가 늘어놓는 푸념과는 달리, 그저 그런 푸념으로 들어 넘기기 어려운 보다 심각하고 복잡한 양상들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이, 지역에서 4월 28일 총파업 조직을 위한 확대간부 간담회 자리에서는 일선 간부들의 노조와 기업지부들에 대한 의심과 불만의 질타가 이어졌다. 이번 파업도 소위 ‘뻥파업’은 아닌지, 기업지부들은 참여 하는지에(경험상 참여하더라도 제대로 파업 조직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물론 이런 비판을 하는 동지들은 노조의 결정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는 편이다.) 인천에서 GM대우가 파업에 불참하는데 자품사들(자동차 부품협력사)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가는 당장 물량과 단가로 보복을 당하는 현실에서 다분히 설득력 있고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기업지부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4월 말 총력투쟁을 성사시켜야 하는 우리의 처지와 정세를 설명하기에는 대단히 역부족이다. 다시 우화로 돌아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쥐들의 내부적 갈등은 이렇지 않았을까? 몇몇 큰 쥐는 고양이의 위협에서 그나마 안전하다며 한발 물러서고, 자그마한 쥐들은 맨 날 자기들만 당할 수 없다면서 큰 쥐들이 나서서 방울을 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대장격인 쥐는 누가 방울을 달지 질문만 던져 놓고 가만히 있는 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우화의 결론은 어떻게 끝날까? 그럼 반대편에 서있는 고양이는 어떨까? 큰 쥐들을 잡아먹기에 아직까지 부담스럽고, 작은 쥐들은 잡아먹기는 쉽지만 이래저래 번잡스럽고, 혹여나 속으로는 몹쓸 쥐들이 떼거리로 덤벼서 체면 구기는 일이 생기면 어쩌지 하고 쫄아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우습다. 4월 말 총파업을 일주일 남짓 앞둔 시점이다. MBC의 파업투쟁이 다시금 시민들의 촛불과 함께 힘차게 진행 중이고, 뒤이어 건설과 보건이 그리고 철도와 금속이 파업투쟁을 앞두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건 무엇이겠는가? 총파업 성사여부를 두고 서로 서로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거나,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의 망설임에서 분연히 떨쳐 일어서야 한다. 우화가 사물이나 동물에 빗대어 인간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때, 글 속에서나마 우화의 결말을 통쾌하게 비틀어 끝맺어보자. 대책회의를 마친 쥐들은 작은 쥐, 큰 쥐, 대장 쥐 할 것 없이 손마다 방울을 움켜지고 서서히 고양이에게 향해 나갔다. 고양이는 서슬 퍼런 쥐들의 위세에 밀려 자꾸만 한쪽 구석으로 몰렸다. 결국 방울을 걸기도 전에 겁에 질린 고양이는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고 말았다. 그래서 후세에게 이 우화의 결론을 이렇게 바꾸어 들려주자.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모두가 합심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