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새해 벽두 날치기로 통과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일부 개정안에 따라 2011년 7월부터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된다. 군부독재 시절 민주노조의 설립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된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1997년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정에 따라 폐지되었으나, 동법 부칙에 따라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은 그 후 줄곧 유예됐다. 그러나 이미 민주노조 운동이 정체 내지는 침체에 빠진 상태에서 제도적 문제가 있는 복수노조 시행으로 민주노조 운동은 애초의 기대와는 반대로 커다란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장) 단위 창구단일화를 요체로 하는 이번 개정법은 원천적으로 결사의 자유를 부정함으로써 신규 노조의 설립을 가로막고 산별노조 등 초기업단위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무력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밖에도 복수노조를 활용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창구단일화 방안을 둘러싼 노조(들) 내부의 경쟁과 분열 가능성이 있다. 이 글은 이번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이 갖는 법률적 문제점과 현실적 쟁점, 관련 해외 사례를 분석하면서 그 대응 방향을 제시한다. 복수노조 개정법의 문제점 이번 복수노조 개정법은 ‘복수노조 난립으로 인한 교섭비용 증가’를 이유로 사업(장) 단위 창구단일화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제29조의 제1항). 이는 ‘결사의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복수노조 도입의 본 취지를 크게 훼손한다. 그 결과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에 큰 제한을 부과한 것도 중요한 문제점이다. 아래에서 복수노조 관련 개정 노조법의 주요 문제점을 하나씩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소수노조의 단결권 부정 애초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은 결사의 자유를 부정하는 위헌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취지에서 도입되었다. 우리 헌법은 단체교섭권을 기본권의 하나로 명문으로 인정하고 있고, 대법원은 노동3권 중 단체교섭권이 핵심 권리라는 입장을 채택하고 있다. 이 점에 비추어볼 때, 개정법의 교섭창구단일화 방안은 소수노조의 결사의 자유를 부정함으로써 헌법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37조 2항) 및 평등권(11조 1항)을 침해하는 동시에 노동3권의 실질로서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소지를 지닌다. 교섭대표노조 결정 절차와 권한의 문제점 노동조합은 원칙적으로 조합원들의 직접·비밀·무기명 투표에 의한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개시할 수 있다. 그런데 개정법은 창구단일화를 통해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된 경우, 교섭대표노조만이 유일하게 노조법상의 ‘노동조합’으로 간주되여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 규정은 교섭대표노조를 단체교섭권 행사의 유일한 주체로 간주함으로써 여타 노조의 존립 근거를 위협한다. 더구나 개정법은 창구단일화를 통해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된 경우, 쟁의행위는 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모든 노조 조합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이때 쟁의행위 지도권 등을 교섭대표노조가 가진다고 규정하여 창구단일화에 참여한 소수 노조는 쟁의권의 행사까지 제한받게 된다. 그 밖에도 교섭대표 결정 과정에서 잠재적 경쟁 관계에 놓인 다른 노조와 의견을 조정·통일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담을 노조에게 전가함으로써 노조의 정상적인 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산별노조-산별교섭의 무력화 개정법은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로 조직형태와 무관하게 교섭대표노조를 통하여 교섭을 요구하도록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즉, 산별노조-지역노조 등 초기업 노조를 포함하여 사업(장) 단위에 존재하는 모든 노동조합을 창구단일화의 대상으로 포섭함으로써 산별노조 및 산별교섭 자체가 아예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현재 사용자단체에 가입된 각 회사도 탈퇴할 가능성이 크고, 설사 탈퇴하지 않는다고 해도 산별노조의 지부·분회가 사업장에서 과반수 다수가 되지 못할 때 사용자는 법률적으로 산별노조의 대각선 교섭에도 응할 의무가 없게 되므로 사용자단체를 탈퇴하고 교섭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 산별노조 지회나 분회가 과반수노조 조직이 되지 못하게 각종 부당노동행위가 성행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노조에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한다면, 사용자에게도 초기업노조에 대응하여 공동교섭에 응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형평에 부합할 것이다. 금속·병원·은행·택시·시내버스 등에서는 지금도 업종-산업 교섭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초기업단위 교섭을 법률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교섭단위 분리 제도의 문제점 개정법은 교섭단위를 사업(장) 단위를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 교섭관행 등을 고려하여 노동위원회가 노동관계 당사자의 양쪽 또는 어느 한 쪽의 신청을 받아 분리를 결정’하는 교섭단위 분리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에 따라 사용자가 분리신청을 하게 될 경우, △실질적으로 특정 노동조합에 대한 우호적 처우를 목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고 △이는 특정 노동조합에 대한 배타적 교섭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일 가능성이 크며 △또한 사용자가 조직개편을 단행한 후 개편된 조직의 경계선을 따라 교섭단위를 분리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사업(장) 단위로 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을 넘어 사업장 하부단위로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효과를 지닌다. 이는 노동자를 개별화-파편화하여 노동자계급 내부의 차이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 밖에도 개정법은 노동위원회로 하여금 교섭단위 분리 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교섭단위 분리의 기준과 경계가 애매하여 향후 수많은 분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공정대표의무 개정법은 공정대표의무 조항에서 교섭대표노조와 사용자가 노조 간 차별을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공정대표의무는 교섭대표노조 대표자의 의무이지 사용자의 의무가 될 수 없다. 이 경우 사용자가 공정‘대표’의 의무 당사자가 되는 어폐가 발생한다. 사용자의 노조 간 차별은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불이익취급 또는 지배개입으로서 사실상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사용자의 노조 간 차별 금지를 공정대표의무 조항에서 규정함으로써 위반 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벌칙 조항 적용에 어려움이 초래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사용자에 의한 복수노조 간 차별행위가 심각히 우려된다. 더욱이 차별 사실의 입증 책임이 현실적으로 노조에 있어 부당노동행위 적용에 더 큰 어려움이 있다. 참고로, 일본은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시하고 있다. 전망: 현실 쟁점과 사례를 중심으로 앞에서는 복수노조 관련 개정법의 법률적 문제점을 검토하였다. 이번 절에서는 개정법 시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현실적 쟁점과 사례를 검토한다. 첫째,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으로 신규 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을 조사한다. 둘째, 복수노조를 활용한 사측의 잠재적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 전망한다. 셋째, 복수노조 시행으로 단체교섭-단체행동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조사한다. 넷째, 비정규직의 경우 복수노조 시행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조사한다. 다섯째, 이른바 ‘무노조 경영’을 표방하는 주요 재벌 사업장에서 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에 대해 조사한다. 끝으로 하나의 사업 내 복수노조 병존 시 관할권 분쟁 또는 이를 활용한 사측의 개입 가능성을 조사한다. 신규 노조 설립 여부 첫째, 사업(장) 단위 허용으로 조직률이 급증할 것인가? 1997년 3월 노조법 개정으로 초기업단위 복수노조 결성이 가능해진 지 10년이 넘었지만, 노동조합 조직률은 정체나 하락 추세다. 노동부 통계로는 노조 조직률은 최근 수년간 10% 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실에서 노조 조직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반증한다. 따라서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법률적 변화만으로 단기간에 사업(장) 단위에서 즉각 복수노조가 대거 설립될 것이라는 기대는 별 근거가 없다. 둘째,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병존은 기업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100인 미만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사용자 측이 기존노조를 약화시키거나 파괴시키기 위해 제2노조를 설립하지 않는 한, 월평균 조합비가 수십만 원 대에 불과한 사업장 단위에서 복수노조가 병존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반면 1,000인 이상 대기업에서는 기존노조의 분할 또는 제2노조의 신설 등으로 복수노조가 병존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금속노조는 완성차 사업장에서 현재 복수노조 ‘추진 세력이 있거나 잠재적으로 존재하며, 조건만 된다면 복수노조를 설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준) 역시 철도본부와 발전노조와 같은 대규모 공기업에서 복수노조가 존재하거나 설립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셋째, 고용형태·직군에 따른 기존노조의 분리 가능성이 존재한다. 가령 병원 사업장의 경우, 간호사와 같이 임금·근로조건의 격차가 확연한 직군은 기존 노조에서 이탈하는 경향이 많은데, 노조를 분리 신설하거나 사측의 개입에 의해 직군별 어용노조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넷째, 이렇게 복수노조 허용으로 신설되는 노조의 노선과 성향에 대해서는 노사 모두 기업 협조적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새롭게 설립되는 노조의 활동 성향은 기존 노조보다 협력적일 것이다’라는 응답이 무려 94.3%에 달한다. 복수노조 설립 시 노사간 역관계 변화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우세할 것이라는 응답이 70.2%로 압도적이다. 경영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리주의적 협력적 노조주의로 변화할 것이다’ 또는 ‘코포러티즘으로 변화할 것이다’라는 전망이 유노조-무노조 사업장 모두 75%가량 차지한다. 복수노조를 활용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복수노조를 활용하여 사용자가 특정 노동조합을 우대하거나 불이익대우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특정 노조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또는 노조의 분열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커졌다. 우선 복수노조의 조합원에 대한 임금 및 근로조건과 관련한 차별적 취급이 발생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방식으로는 △임금 및 수당 차별 △잔업 등 근로제공과 관련한 차별 △복리후생 등 기타 근로조건의 차별 △신분상, 인사상 대우의 차별 등이 있을 수 있다. 둘째, 복수노조 중 특정 노조의 가입·불가입·탈퇴를 고용 조건으로 하는 부당노동행위가 있을 수 있다. △유니언숍 협약이 체결된 노조를 탈퇴하여 다른 노조에 가입함을 이유로 해고 등 신분상 불이익을 행하는 경우 △자율교섭 시 특정 노조의 단협에 유일교섭단체조항을 포함시키는 경우 △2/3 이상 노조와 유니언숍협약을 체결하면서 노조 불가입 또는 탈퇴한 경우 불이익 조치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셋째, 단체교섭을 거부하거나 해태하는 등의 부당노동행위가 있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산별교섭이나 집단교섭에 대한 노사합의를 위반하며 교섭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밖에 창구단일화 절차를 악용하여 다양한 교섭 거부?해태 행위를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사측의 지배?개입, 경비원조 등의 부당노동행위가 가능하다. 복수노조를 활용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는 법률적 구제제도 조치를 활용할 수 있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현실적인 장애 요소가 많다. 법적 대응 이전에 노조 내적으로 조직력과 조직운영의 민주성을 높여 내부로부터의 분열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수노조에 따른 단체교섭 대응 개정법 부칙은 ‘이 법 시행일 당시 단체교섭 중인 노동조합은 이 법에 따른 교섭대표노동조합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조가 사업(장)에서 다수노조인 경우 이 조항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즉, △어용노조 출현이 예상될 경우 2011.7.1. 이전 협약체결을 완료하는 것이 유리하며 △교섭창구단일화 시에는 자율교섭을 원칙으로 하되, 어용노조의 출현 및 사용자의 지배개입으로 단체교섭권이 침해될 위협이 현저한 경우에는 교섭대표노조의 권한을 갖는 방안을 권고한다. 한편 소수노조가 창구단일화에 참여하면 기존에 독자적으로 체결했던 협약보다 후퇴한 안을 받아들이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를 대비해서 창구단일화에 참여하지 않은 채 ‘자동연장’ 조항을 활용하여 기존 단협의 효력을 연장할 수 있으나, 이 경우에 사측은 단협 해지로 맞설 수 있다. 민주노조가 사업(장) 내에서 과반 미만일 경우에도 △2011.7.1. 이전 최대한 이른 시일에 교섭을 요구하고 △2011.7.1. 현재 교섭 중인 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사용자 불응 시 단체교섭응낙가처분 신청 등의 절차를 밟는 방안을 권고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어용노조 출현이 예상될 경우 2011.7.1. 이전 협약체결을 완료하는 것이 유리하다. 소수노조의 경우, 자율교섭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용노조가 출현할 경우 법이 정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피해가기 어려우므로 최대한 자율교섭을 보장받는 방향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할 것이다. 자율교섭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용노조가 출현한 경우, △최대한 자율합의 절차를 밟아 일정 정도의 권한을 나눠 가지는 방법 △이중가입 등을 활용해 어용노조의 과반 점유를 막아 절대적 권한 부여를 막는 방법 △공정대표 의무 관련 내용을 세세히 규정해 과반 노조의 전횡을 막는 방법 등이 입체적으로 수행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사용자의 지배개입과 차별 등 부당노동행위를 감시, 적발해야 한다. 복수노조와 비정규직 창구단일화와 비정규직 노동조합 간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유형화할 수 있다. △기간제 및 단시간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에 대한 사용자의 차별적 협약 체결요구의 문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창구단일화 대상범위로의 포섭문제 △비정규직만을 대상으로 하는 교섭단위 분리에 관련된 문제가 있을 수 있음. 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투쟁이 관건일 수밖에 없다. 우선, 직접고용(기간제 및 단시간) 노동자로 구성된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차별적 협약 체결 요구 시, 교섭대표노조 또는 (자율교섭 상황일 경우)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법의 의거하여 동등한 수준의 단협 체결을 요구해야 한다. 간접고용의 경우 상황은 복잡해진다. 통상의 사내하청업체들이 독자적인 근로조건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내하청노동조합은 원청과의 교섭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일반적인 정규직 노동조합이 가입대상을 사내하청업체의 노동자까지 확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독자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고자 할 것이며, 이런 노동조합이 협력업체별로 기업단위 노동조합이 아닌 지역노동조합 혹은 일반노동조합의 형식으로 구성되었을 경우 앞의 필요에 의해 원청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 간접고용 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또는 사용자업주)이 교섭에 응한 사례는 거의 없다. 대개 노동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논리를 들어 교섭을 거부하고, 현재 노동위원회?법원도 이러한 단체교섭거부를 부당노동행위로 보지 않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간접고용 노동자와 용역업체가 교섭할 때 원청이 일정하게 개입하여 용역단가를 조정한다든지(도시철도), 단협이 아닌 정치적 합의에 참여한다든지(하이스코의 ‘확약서’ 사례), 원청의 정규직노조의 협조 속에서 원청과 교섭 테이블에 앉게 되는 경우(현대자동차)가 있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원청은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성을 극구 부인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이 부분은 노조법상 사용자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의 문제와 연동되어 있지만 교섭의 실질적 효과를 구현한다는 의미와 교섭의 경제성을 고려한다는 의미에서 원청을 상대로 혹은 원하청이 공동으로 교섭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가능한지가 쟁점이다. 또한 간접고용(사내하청 및 파견) 노동자로 구성된 노조가 존재할 경우 창구단일화 여부가 쟁점이 될 것이다. 이때에는 운동 주체의 전략적 선택이 중요한데, 사례별로 대응 양상도 달라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정규직 노조가 한국노총 가입 또는 어용노조일 경우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고, 민주노총 가입일 경우 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공공서비스부문, 대표적으로 시설관리 용역의 경우 정규직노조의 단체교섭 시 창구단일화 편입 대상으로 삼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한편으로 창구단일화 기준을 용역회사를 기준으로 설정할 것인지, 아니면 사업장별로 설정할 것인지 여부도 쟁점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노조 결성 여건이 워낙 열악하므로 어용노조가 출현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단적으로 시설관리 용역업체에 속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용역업체 사용자가 어용노조를 결성한 후 사업장단위로 조직된 민주노조 조합원에 대해 교섭창구단일화를 요구, 교섭권을 박탈하려 들 수 있다. 이제까지 교섭에서는 사실상 용역업체가 아니라 사업장별로 교섭을 진행하여 왔는데, 향후 법적인 대응보다는 조직력-투쟁력을 통해 상황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노조 경영’ 재벌 노조 결성 일반적으로 말하면 노조 설립 가능성이 확대되었고 노조 결성 여부는 전적으로 노사간 역관계에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노조 설립 현실성이 미약하다. 법 시행 자체만으로 결사의 자유가 확대되었다고 볼 수도 없거니와, 소수노조의 존립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드는 제도적 결함으로 말미암아 단기간 내 구체적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하여 금속노조는 ‘포스코에 지회를 결성하고 삼성의 활동가들과 전략조직화 대책회의를 구성하는 등 나름대로 사업을 추진해왔지만, 현재까지 포스코 지회가 와해되고 삼성에 대한 전략조직화 사업도 꾸준히 진행되지 못하는 등 전반적으로 사업에 별 진전이 없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현재 금속노조는 사업 기획단 구성, 전국적 활동가 네트워크 구축, 조직화 사업을 위한 주체 발굴, 반재벌 투쟁 등 장기적 전망과 계획 속에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사업 내 복수노조 병존 시 노-노 갈등과 사측의 개입: 현대제철의 사례 한편 2010년 현대제철의 당진 고로제철소(C지구) 건립으로 철강 업종 내 고용 및 근로조건, 노사관계에도 큰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현대제철에는 두 개의 ‘노동조합’이 존재한다. 인천?포항 사업장은 기업노조 형식으로 ‘금속노조 현대제철노조’이며, 당진은 지역지부로 편재되어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지회’다. 인천?포항 사업장은 2006년 금속노조 가입을 결의했지만 지부 편제 문제로 조합비 납부 등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현대제철지회는 옛 한보철강 시절부터 금속노조 충남지부 소속 지회로 활동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설된 당진 고로제철소로 인천·포항공장 현대제철노조 조합원들이 전환배치됐는데, 현대제철노조는 당진공장에 별도의 지부를 설치하고 조직 확대사업을 전개하려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금속노조충남지부와 현대제철지회가 현대제철노조의 제명을 금속노조 본조에 요구하였고, 금속노조 역시 ‘현대제철노조의 조직화 방식은 금속노조의 규약·규정에 어긋나고 법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며 ‘당진공장 소속 신규 조합원은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지회에 소속돼 활동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사측은 C지구에서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이 현실화되자 기존 노동조합의 접근을 차단하려던 초기 대응 방침에서 탈피하여 ‘협조적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현대제철노조로 가입을 권하고 있다. 노조가 분리된 상태에서 신축 고로사업장에서 사측이 노노갈등을 유발하면서 노사 협조주의를 조장한 뒤 장기적으로 포스코의 무노조 전략을 관철시킬 우려가 존재한다. 현대제철의 사례처럼, 장차 사업(장) 내에서 복수의 노조가 존재하고 이들 노조 간의 노선 차이에 따라 관할권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산별 미전환 노조에 대한 조직화와 더불어 민주노조 진영 내에서 관할권 분쟁을 축소·해소할 수 있는 내부 기준의 마련이 시급하다. 소결 교섭창구단일화로 소수 노조에 대한 단체교섭권이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 조건에서 민주노조 건설 시도는 그만큼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의 경우 복수노조가 현실화되고 이 속에서 대표노조(과반수노조) 장악을 위한 노조 간의 분열·경쟁이 심화될 수도 있다. 이 경우 사측은 사무·관리직과 생산직 일부를 규합하려 교섭대표 노조를 장악하려 시도할 것이다. 사업(장) 단위 교섭창구단일화는 기업별 교섭을 강화할 것이다. 아직 산별노조가 기업별 노조의 잔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조건에서, 산별과 기업별 양 방향으로 분열이 동시에 발생할 수도 있고, 노선에 따라 분열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고용형태·직군·지역별로 분열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양상이 혼합된 형태로 분열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노동시장의 분단 효과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해외 사례와 시사점 이번 절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유형별로 검토하면서 시사점을 도출한다. 단, 구체적 법·제도는 민족국가별로 큰 차이를 보이므로 해외 사례는 간접적으로 참고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우리와 같이 복수노조를 금지하다 허용한 사례는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동유럽 국가 외에는 없으므로, 해외 사례로부터 직접적 연관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뤄진 해외 복수노조 사례 연구는 주로 미국·일본·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미국의 복수노조 체계는 기업 및 기업 하부단위로의 분권화와 노조 간 조직화 경쟁을 특징으로 하며, 그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법원의 보수적 판결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다는 점에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복수노조 형성 과정이 기업별노조 체계와 협조적 노사관계로 전환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는 긍정적·계발적 참조점을 제공한다기보다는 반면교사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례 연구는 주로 1993년 노사정합의에 의해 제도화된 기업수준 통합노조대표제(RSU)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양국 간 법·제도상의 차이로 인해 RSU로부터 우리의 교섭대표노조 결정 절차에 관한 교훈을 도출하기란 쉽지 않다. 복수노조 간 조정과 통합의 사례를 찾는다면 1969년 ‘뜨거운 가을’ 당시 공장평의회의 경험에서 교훈을 발견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미국의 복수노조 미국 노사관계의 특징은 분권화된 경쟁적 복수노조가 가능한 구조에 있다. 그렇지만 실제 우리와 동일한 의미에서 복수노조가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교섭권이 없는 소수노조는 사업장 내에서 거의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으므로 산별노조가 해당 사업(장)에서 소수노조로 남기보다는 조직을 철수시키는 것이 일반적이고, 한 사업장 내 서로 구분되는 교섭단위에 존재하는 노조의 경우 이들을 ‘복수노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노조가 분권화된 구조를 갖게 된 가장 것은 지리적 요인도 있지만, 노조 간 분열·갈등, 협력 부재로 인해 조직화를 둘러싸고 경쟁적 관계에 놓인 것도 큰 요인이다. 또 미국의 노사관계법들은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로서 소수의 임금노동자 포섭을 위해 다수 노동자의 희생을 요구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분권화된 구조로 인해 미국의 노조들은 한 산업에서 장기적·체계적인 조직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조직화가 용이해 보이는 산업·지역·사업장에서 실용적인 조직화를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복수노조’는 같은 사업장 또는 같은 교섭단위에 2개 이상의 노조가 장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라기보다는 같은 사업장 또는 같은 교섭단위에 2개 이상의 노조가 동시에 조직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밖에 미국에서 노조 간 경쟁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는 관할권을 둘러싼 갈등을 꼽을 수 있다. 1954년 미국노총(AFL-CIO)은 가맹조직 간에 조합원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규약에 관할권분쟁금지협정을 집어넣었다. 이 협정이 체결되기 전에는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 간 대표권 분쟁이 많았지만, 본 협정이 체결된 후 분쟁이 뚜렷이 감소했다는 관찰 결과가 있다. 미국의 제2노총인 승리혁신동맹(CtW)이 AFL-CIO에서 분리했을 때에도, 양 노총 산하조직들 간에 이와 유사한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노조 간 관할권 분쟁에 대한 대안으로 AFL-CIO에서는 기본 관할권(core jurisdiction)에 대한 논의를 1999-2000년경 시작했다. 기본 관할권 개념은 1사 1조직 원칙에서 비롯된 것으로, 즉, 산별·업종 노조는 해당 산업·업종에 고유한 노동자 정체성, 직무의 성격을 중심으로 조직화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가맹조직 내 관할권 분쟁을 지양하기 위한 규약 개정 제의를 AFL-CIO가 거부함으로써, 이것이 CtW가 AFL-CIO로부터 분리한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CtW의 중추인 북미서비스노조(SEIU)의 경우, 전체 산업을 조직해서 노조가 힘을 가질 때 노동자에게 유리한 임금 교섭을 할 수 있는데, 동종 산업 내 여러 노조가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으면 힘이 분산되므로 지역노조나 일반노조와 같은 소규모 노조를 불필요할뿐더러 위험한 시도라도 간주했다. 그런데 비단 산별 구획에 의거해서 기본 관할권을 정한 뒤 이에 따라 조직화를 시도하는 것이 반드시 적합하다고 볼 수는 없다. 복합적 생산 시스템에 속한 노동자의 다양한 정체성을 고려할 때, 산별노조 형태나 기본 관할권 원칙을 엄격히 준수하는 것만 대안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령 노동자의 다양한 정체성이나 지역적 환경 등을 고려하는 장기적 조직화 계획이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 또 미국 노조의 조직화 노선을 대표하는 SEIU의 조직화 방식으로 인해 노조 간 분쟁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최근 SEIU와 그 가맹조직인 서부보건의료노조(Healthcare Workers West)간의 관할권 분쟁은 관할권 분쟁이 노조 지도부의 비민주성과 결합된 대표적 사례다. 2008년 서부보건의료노동자연합(United Healthcare Workers West, UHW)은 SEIU 스턴(Stern) 집행부의 ‘효율적 교섭 전략’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2009년에 신탁관리(trusteeship)를 당했다. UHW의 입장은 ‘조합원들에게 더 유리한 조건을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중앙지도부가 사업주와 비밀리에 교섭을 진행했다’는 것이었고, SEIU의 입장은 ‘양보교섭을 통해서라도 조직률을 빨리 증가시키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는데, UHW가 자기 조합원의 이해를 위해 전체 노동자운동의 대의를 희생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UHW는 ‘양보교섭 없이도 조직률을 빨리 높일 수 있었고, 또한 노조 지도부의 비민주적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 최근까지 큰 분쟁을 겪었다. 또 업종노조와 산별노조 간의 관할권 분쟁 사례로서 SEIU와 캘리포니아간호사조합(California Nurses Association, CNA) 간의 분쟁을 들 수 있다. 1990년 후반 이후 지금까지 양 조직은 10여 년 동안 30-40개의 사업장에서 격렬한 조직화 경쟁을 벌여왔다. 결국 2009년 양 조직은 협정을 통해서 상대방 조직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고 공동으로 간호사를 비롯한 보건의료분야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 CNA는 등록간호사를, SEIU는 나머지 보건의료분야 노동자들을 배타적으로 조직하되, 이미 조직된 부분에 대해서는 상호존중을 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평화협정은 영원한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시적인 휴전상태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상에서 살핀 것처럼, 미국에서는 배타적 교섭권제도로 인해 사업장 단위에서는 노조가 한 개만 존재하게 되었지만, 산업이나 업종 단위에서는 교섭권 획득을 위한 격렬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경쟁은 상이한 총연맹 간, 상이한 산별노조 간, 혹은 상이한 업종노조 간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미국과 한국의 교섭창구단일화 방안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한국에서 복수노조 시행 시 과반수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 결정될 확률이 높을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미국의 배타적 교섭제도와 비슷한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파 간 갈등이 치열한 한국에서 조직 운영방식을 둘러싼 분쟁이 노조 분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노조 내 민주주의가 부재한 것도 분할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확인하였다. 한국에서 이런 문제들이 미국과 똑같은 방식으로 발생하지 않겠지만, 최소한 미국의 사례들이 복수노조 환경 하에서 노조 간의 갈등의 복잡성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복수노조 일본의 노동법은 제정 당시부터 국제기준에 맞춰 노조의 조직형태와 단체교섭 방식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 없이 전적으로 노사관계 주체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기는 법체계를 갖추었고, 복수노조에 대한 규제는 없었다. 2000년 현재 동일 사업소 내 복수노조가 존재하는 기업의 비중은 14.5%에 이르며, 전체 인원수 기준으로는 조직노동자의 약 40%가 복수노조 병존 상황에 있다. 복수노조가 병존하는 경우 각 노조는 고유한 교섭권을 갖는 교섭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복수노조의 취급과 관련해서는 판례법에 따라 경쟁적 조합주의(복수 노조는 조합원의 다소에 관계없이 모두 사용자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지며 노조 상호 간은 경쟁 관계), 노조 차별 금지(사용자가 각 조합과 노동조건에 대해서 별개로 교섭하되 노조 간에 노동조건에 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억제), 사용자의 중립의무(사용자가 특정한 조합의 운영에 개입하거나 세력의 약화를 의도하는 것을 금지)라는 원칙이 확립되어 있다. 이러한 복수노조 병존 상황은 계급투쟁 패배의 직접적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대개 먼저 설립된 제1노조가 50~60년대 노사 간의 사활을 건 장기간의 쟁의에서 패배하면서 분열을 통해 제2노조가 결성되고, 직원층(화이트칼라)과 현장감독층을 중심으로 한 이 경영협조노선의 기업별노조 세력이 회사의 지원을 배경으로 다수파 조합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소수파 노조는 소멸하지 않고 남아 현재의 복수노조 병존 상황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또한 일본의 전후 노동운동의 지상과제이던 산별노조운동 역시 1960년대의 노동운동의 패배를 거치며 기업별노조 체제로 정착되었다. 일본의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 사회당계)는 1950년 출범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직장투쟁을 통한 현장통제노선을 중심으로 일본 노동운동을 이끌어왔다. 강력한 총평에 대한 도전 중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미쯔이(三井)광산 미이케(三池)광업소 투쟁이다. 미이케 쟁의는 석탄위주에서 석유위주로 바뀐 일본의 산업정책에 발맞추어 미쯔이광산 측이 지명해고를 시도하고, 이에 미이케광업소 지부가 1960년 1월 25일부로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면서 시작되었다. 미이케노조가 항복할 때까지 10개월에 걸쳐 전개된 이 투쟁은 총자본과 총노동 간의 일대 격돌의 장이 되었다. 총평으로서는 당시 일본이 세계자본주의에 급속히 편입되며 진행되던 자본의 합리화 운동에 제동을 걸고 노사관계의 세력구도를 바꾸어 낼 결전장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석탄 업계와 경단련(經團連)에서도 그 중대성을 인식하고 공동기금의 마련 등을 통해 대응하였기 때문이다. 노동의 패배로 끝난 이 투쟁이 의미심장한 것은 바로 이 투쟁에서 이후 일본의 사용자 측이 즐겨 사용한 제2노조 전술의 전형적인 패턴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미이케 투쟁은 온건 제2노조가 사용자 측의 파트너가 되어 강성 제1노조를 무력화시키고 노조대표권을 확보하는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즉 “강성노조의 파업 투쟁 → 직장폐쇄 → 노조분열 및 제2조합의 취로 → 제1, 제2 양 노조의 충돌로 인한 형사사건의 발생 → 제1조합원의 공장 출입금지 및 생활고, 신분불안 증대로 인한 제1노조 조합원의 격감 혹은 노조 소멸”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더해 제2노조가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데는 회사의 조합차별정책이 결정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회사는 정기적인 승급, 상여, 승격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탄광노동의 특성상 임금수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직무배치(장소와 직무내용)에 있어서 제1노조 및 조합원에게 매우 불리한 차별을 했다. 제1노조의 주도 세력인 갱내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차별정책으로 인해 제1노조가 사실상 붕괴하게 되었다. 이 투쟁의 패배와 뒤이은 노동조합의 분열로 형식상의 산별노조 체제나 그 시도가 좌절되고 기업별노조 체제가 형성되었다. 분열에 의해 결성된 제2노조는 거의 예외 없이 기업별노조로 우파(동맹계)의 상부단체에 가맹하게 되었고, 분열 전의 제1노조가 소수파로 전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복수노조법은 사용자의 노동조합 차별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노동조합 지배개입과 노조 간 차별을 통한 부당노동행위의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 중에서 닛산 자동차의 사례는 단협을 통해 사용자에게 재량권이 부여되었을 경우 어떻게 비협조적 노조의 고사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편 1953년 닛산 자동차에서 노조의 현장통제라는 직장 관행을 둘러싼 투쟁은 100일에 걸쳐 시한부파업, 무기한파업 등을 통해 전개되었지만 사측의 직장폐쇄에 직면하여 전면 패배했다. 쟁의의 결과, 노동조합의 일상적 활동에 대해 전반적인 금지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았지만 사용자의 재량권이 크게 강화되었다는 점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제1노조와의 단협을 보면 취업시간 중 조합 활동 일반은 금지되어 있지 않지만, 회사가 승인 또는 허가하지 않는 노조 활동 참여자에 대해서 불취업시간에 대해서 임금을 일절 지불하지 않고, 또 회사가 승낙하지 않는 집회 등은 회사에 신고 시에만 인정되었다. 이 협정서의 의도는 노조 활동 전반을 회사 자신의 재량적 승인권의 범위 안에 두는 것이었고, 결국 회사의 재량에 의해 양 노조의 활동에 대해서 차별을 할 수 있게 하는 근거로 이용되었다. 이 같은 노조 차별 등에 의해 1954년 12월에는 닛산분회(제1조합)가 소멸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전일본자동차산업노조(全自) 자체가 해산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일본의 노동운동은 투쟁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단협 체결 위주의 양상에서 경영기반의 강화와 그 성과의 분배로 방점 이동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 사례는 창구단일화를 전제하는 한국의 복수노조 제도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이 명확하나, 양국 모두 노조의 운영 형태 및 단체교섭 구조가 기본적으로 기업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점을 고려한다면, 복수노조 병존 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통한 지배·개입의 사례를 풍부하게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산별건설을 지상과제로 하였던 전후 일본 노동자운동의 패배가 복수노조를 매개로 기업별 노조 체계로 정착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아직 정착되지 못한 한국의 산별 교섭구조 등이 복수노조의 도입으로 유명무실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언: 대응방향 현재 민주노총은 복수노조 허용이 무노조사업장 혹은 미조직사업장에 대한 조직화 가능성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복수노조를 활용한 사측의 개입 △노조 간 경쟁 심화 △실리적 노조주의의 확산이라는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에 △조직의 민주성 제고 △복수노조 시행으로 인한 ‘실리주의’ 경도 가능성 제어 △공세적 조직화 전략 수립 △교육·선전·소모임 등 일상 활동 강화 등을 대응 방향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2011년 하반기부터 ‘1기업 1교섭 체제’가 본격화되는 2012년 하반기 사이에 교섭창구 단일화를 둘러싼 문제점이 표출될 것이므로 법률적 대응을 진행하는 한편 2012년 정치일정에 적극 개입하여 2012-13년 법개정 투쟁 진행할 예정이다. 금속노조나 공공운수노조(준)도 비슷한 맥락에서 △산별전환 촉진 및 산별교섭 혁신 △전략조직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단기·중기적으로 기존 민주노조를 방어·유지하고 법·제도 개혁을 통해 불리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지만, 장기적으로 복수노조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조 운동의 이념적 혁신과 함께 공세적 조직화 전략이 동반되어야 한다. 단기 대응 (2011년 상반기) 우선 상반기 민주노총 투쟁의 핵심 기조를 ‘민주노조 사수, 노조탄압 분쇄’로 설정하고 향후 본격적인 노조법 개정 투쟁의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상반기 투쟁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는 (현대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투쟁이 될 것이다. 원하청 공동투쟁을 성사시킴으로써 중장기적으로 ‘1사 1조직’ 원칙을 실질화하고 산별전환을 촉진하는 적극적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조직 내적으로는 법 시행을 대비하는 방침을 수립해야 한다. 법 시행 이후 교섭창구단일화로 인한 소수노조 무력화에 대비하기 위해 법 시행 이전에 조직·투쟁·교섭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이와 함께 사업(장) 단위 창구단일화 교섭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방안, 어용노조를 활용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적극 대응하면서 노동조합 간의 갈등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한 조합원 교육과 대응 매뉴얼 개발도 시급하다. 총연맹-산별연맹 차원의 노동조합 실태조사 사업, 특히 사업(장) 내 비정규직 실태 조사를 통해 노동자 내부 갈등을 심화시킬 요인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도 있다. 중기 대응 개정 노조법은 민주노조 운동에 커다란 장애 요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노동법 재개정 투쟁이 적극 전개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법률적으로 문제를 국한해보더라도 위헌 소지와 여러 법률적 문제점으로 인해 시행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낼 것이므로 위헌 소송을 비롯한 각종 법적 대응도 병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노조법 개정 투쟁은 현실 정치 지형에서 2012년을 전후로 ‘반MB 전선’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2011-12년에 걸쳐 ‘개혁세력’이 적절한 수준에서 수정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나, 설사 노조법이 개정된다 하더라도 그 최대치는 ‘합헌’을 전제한 가운데 부분 수정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1997년 노조법 제정 이후 여러 번 유예기간을 거치며 법제화에 이르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분간 폐기 또는 전면 개정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봐야 한다. 더욱이 경제위기라는 객관적 제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민주노조 운동 진영은 최소한 산별 수준 교섭구조 법제화라는 장기적 목표를 상정하고 법개정 투쟁에 임할 필요가 있다. 조직 내적으로는 중앙 정치 수준의 법·제도 개혁 논의에 매몰되지 않고 법·제도에 대한 노동자대중의 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지역-현장 수준의 계획을 중층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원론적으로, 노조법 개정 과정에서 자본가와 정부의 노림수가 노동자의 분할-지배에 있다면 노동자의 대응은 계급적 단결일 수밖에 없다. 2011-12년 중 총연맹-산별 수준에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공동투쟁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계급적 단결’의 실현 경로를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산별노조 전환을 적극 추동해야 한다. 이때 민주노총의 산별전환 방침이나 금속노조의 1사 1조직 원칙은 조직형태의 문제로 사고하기보다는 동일한 산업?업종에서 어떻게 동일한 노동조건을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기존 정규직 중심의 조직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주체적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약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선별적 접근에 머물렀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산별협약의 일반적 구속력 제도 도입이나 산별협약에 최저 노동기준임을 명문화 하는 것 등은 타당한 방안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 개선 노력뿐 아니라 현재 금속노조·보건의료노조 등의 산별협약이 비정규직 내지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사실상 적용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노조 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특히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을 극복하고 단결을 확장하는 것이 본래 목표라면, 대자본(원청)을 정점으로 다단계 하도급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산업·업종 조건에서 원청을 상대로 한 공동교섭·투쟁을 조직하는 것, 이를 위한 계기로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을 공동 요구로 제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편 1사 1조직이 업종이나 고용 및 직무 형태와 무관하게 일괄 적용되기 어려운 사정도 감안해야 한다. 가령 조선 업종의 경우 사내하청과 사외하청의 구분이 불분명하여 정규직 지회를 중심으로 한 사업장 단위로 노동자들을 묶어내기 어려운 조건이 있다. 철강 업종의 경우, 특히 정규직 지회의 조직력이 약하고 사내하청업체의 노사관계에 대한 원청회사의 개입력이 다른 업종에 비해서 더욱 크다. 이런 맥락에서 금속노조는 ‘1사 1조직’ 전술이 완성차와 자동차부품, 기계금속, 전기전자 등의 업종을 주요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장기적 과제 장기적으로 민주노조 운동은 이념적 쇄신에 동반하는 적극적 조직화를 통해서 복수노조 시대를 개척해야 한다. 이미 노동자운동의 저변이 붕괴된 상황에서 최근 국가와 자본은 복수노조 시행에 동반하여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제도와 같이 노동조합 활동 자체를 무력화하는 법·제도를 도입하고 핵심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초기업 단위 노조 활동에 근본적 제약을 부과함으로써 조직화 사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민주노조 운동은 신규 노조를 조직하는 데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는 것은 물론 기존 노조를 유지·재생산하는 데에도 상당한 역량이 투여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노조 운동의 조직 확대 방향은 △전자·철강 등 무노조 업종 신규 조직화 △공단 중소·영세사업장 지역 조직화 △‘노조 민주화’를 통한 조직 확대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업종의 수직적 하청계열화라는 조건을 염두에 둘 때 전자·철강 업종 위계구조의 정점에 서 있는 삼성 또는 포스코에서 ‘무노조(또는 어용노조) 신화’를 깨는 것은 대단히 큰 상징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철강 등 노동조합 운동의 대중적 토대가 부실한 업종의 경우, 사측의 노조탄압과 엄격한 노무관리로 인해 앞으로도 한동안 신규 조직화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포스코 등 대표적인 ‘무노조 경영’ 사업(장)에서 노조 조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업장 차원을 넘어 사회적-지역적 차원의 투쟁 및 조직화 전략과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청 계열화와 비정규직화, 노조 탄압, 산업재해 은폐 등을 쟁점으로 한 사회적 차원의 반재벌 투쟁이 중요한 매개가 될 것이다. 한편 조선 업종의 경우 건설플랜트와 유사하게 어느 정도 독립적인 노동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므로 지역 차원에서 해당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대 원청 교섭력을 획득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민주노조 운동 진영은 지역 차원의 전략 조직화 사업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자업종 조직화는 금속산업 내 미조직 부문 조직 확대라는 측면에서 사고할 수도 있지만, 또한 지역공단 조직화라는 측면에서 사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총연맹-금속서울남부지회-서울남부운동본부 등을 중심으로 구로공단(서울디지털단지)에서 진행 중인 전략조직화 사업이 하나의 시범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는 △지역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통한 조직화 전략(전략조직화 공동사업단) △‘사회적 정의’ 캠페인과 결합된 조직화 전략(최저임금 인상, 간접고용 근절,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월급제 쟁취, 노동안전보건 확보)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단, 공단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의 경우 초기업단위 교섭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당장 교섭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전념하기보다는 지역 차원의 공동 투쟁 경험을 쌓아 나가는데 주력해야 한다. 이런 시도가 중장기에 걸쳐 일정한 성과를 거둘 때 지역 차원의 초기업단위 단체교섭-협약, 나아가 지역 차원의 강력한 투쟁이 가능할 것이다. 어용노조 민주화의 경우, 개정법이 소수 민주노조에 여러 제약을 부과하므로 당장 폭발적인 흐름으로 드러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최근 공공운수노조(준) 버스본부의 사례에서 보듯이 기존노조 내부의 민주화 흐름과 산업·업종 차원의 장기적 역량 투여, 지역 차원의 연대 투쟁이 결합한다면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은 복수노조 시대에 대비하는 포괄적 전략을 수입하는 가운데, 소시기별로 가용 가능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파성과 비민주성이 결합하여 파괴적 결과를 낳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단기적으로 민주노조 운동 내에서 정파에 의한 복수노조 분할 가능성은 작아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민주노조 내부에서 이념·노선·전술을 둘러싼 갈등이 자칫 파괴적 양상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고용·직무 형태별 분할 가능성이나 노조 간 관할권 분쟁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거시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민주노총이 ‘배타적 지지 방침’을 형식적으로 유지하는 상황에서 복수의 진보정당 간 (재)통합이 난항에 빠질 경우, 장기적으로 민주노총 내 정파 간에 정치적 분화가 심화되어 이것이 노동조합의 분할을 촉진할 가능성이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노동조합 수준에서 계급적·정치적 단결을 추구함으로써 정치적 분화 가능성을 전진적으로 해소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운동을 위한 새로운 전진 지난 9월 28일 민주노총과 네팔노총(General Federation of Nepalese Trade Unions, GEFONT)은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해각서를 통해 민주노총과 네팔노총은 1)공동의 전략을 논의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두 노총 지도부들의 상호 방문 추진, 2)이주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경험 공유, 3)관련된 법제도, 연구, 자료 교환, 4)이주노동자와 관련된 각자의 활동 지원 등에 대해 합의했다. 양해각서 하에서 수행되는 사업의 일부로 네팔노총은 출국 전 선전과 교육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한국으로 이주를 준비하는 네팔 노동자들은 한국 노동법, 노동조건, 민주노총 노동조합에 대해 안내받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은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조직화 책임을 지기 위해 네팔노총에서 훈련받은 이주민 활동가를 채용하는 데 합의했다. 국제연대의 새로운 전진 첫걸음에 불과하지만 민주노총과 네팔노총의 양해각서는 국제연대 영역에서 중대한 발전이다. 이는 민주노총이 네팔과 같은 이주노동자 본국의 노총과 함께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활동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처음으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 노동계에서 이주 본국과 목적국 노조 사이의 협력은 중요한 전략으로 자주 강조된다. 이를 통해 노동조합이 이주 과정의 모든 단계에 개입하고, 빈번히 이동하는 노동자들과 장기간 접촉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노총(ITUC)이 노조들의 협력관계 설정을 유도하기 위해 표준 양해각서를 개발했지만, 맺어진 협정은 많지 않고 실질적인 성과를 낸 사례는 여전히 매우 적다. 네팔노총과의 협력이 성공적이게 되면 그것은 민주노총과 다른 이주 본국 노총 간의 유사한 협정 뿐 아니라 다른 목적국 노조들이 체결한 협정에도 긍정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총-네팔노총의 양해각서는 또한 상징적인 성명과 연대행동을 넘어 양 당사자들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진전시키는 국제협력의 실천적인 형태를 나타낸다. 해마다 수십만 명을 해외로 보내는 나라의 총연맹으로서 네팔노총은 해외 네팔노동자의 권리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고, 그들이 결국 네팔 노동시장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이와 유사하게 민주노총도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주노동자들이 노동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에는 이주 관련 활동가들이 부족하고 한국의 이주노동자 공동체들과 연계가 약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오기 전과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한국에서 떠난 후에 정보를 교류하고 접촉을 유지하는 것을 통해 두 노총은 양자의 목표 달성을 위해 서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네팔노총과 체결한 양해각서를 모델로 삼아 한국에 이주노동자를 보내는 다른 나라의 노조와도 유사한 협정을 체결할 계획이다. 이렇게 된다면 민주노총-네팔노총 양해각서의 중요성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민주노총이 이주의 모든 과정에서 접촉할 수 있는 노동자층이 더 확대·다양화될 뿐만 아니라, 네팔노총과 한국에 있는 네팔 활동가들이 엄호될 수 있기 때문에 이 계획을 실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정부는 한국에 있는 네팔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운동에 앞장선다는 이유로 압박해 왔고 양해각서를 체결한 직후 한국 G20 투쟁에 참여하려는 네팔노총 간부들의 비자를 거부한 바 있다. 한국 내 조직화에 이어지는 다른 나라 노조들과의 협력은 한국정부가 네팔활동가들을 표적으로 삼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주노동자 조직화의 새로운 전진 국제연대 영역에서의 진전에 더하여, 이번 양해각서는 이주노동자에 관한 민주노총의 국내 사업에 새로운 국면을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처음으로 한국인이 아닌 활동가가 한국인 민주노총 간부와 함께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주노동자 본국의 단체에서 파견된 활동가들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매우 성공적이었다. 예를 들어 홍콩에서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 온 활동가들이 3개 국적의 가사노동자 노동조합들을 설립하고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태국에서는 버마노조연맹(FTUB)이 두 개의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설립을 성공적으로 지원했고 태국 노동조합에 이주 공동체들을 소개했다. 민주노총의 상황은 약간 다르다. 네팔노총은 장기간 한국에서 일할 활동가를 네팔 내에서 찾을 수 없었다. 대신에 민주노총은 한국인과 결혼해서 이미 한국에 살고 있는 네팔 이주노동자 라이 동지를 채용했다. 그는 이주노조 전신인 평등노조 이주지부(ETU-MB)의 조합원이었고 이후에 이주노조의 간부가 되었다. 그는 지난 10월부터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있고 12월 말에 네팔로 가서 네팔노총에서 한 달 반가량 연수를 받을 계획이다. 여전히 이주노동자 권리와 조직화에 적극적이지 않은 민주노총에서 한 사람의 이주 활동가가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물론 과도하다. 그렇지만 네팔 사람이자 이주노동의 경험이 있는 라이 동지는 민주노총에 특별한 자원이 된다. 민주노총이, 특히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들과 접촉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강화할 가능성 때문이다. 지난 2개월 동안 라이 동지와 민주노총 담당자는 이미 네팔, 베트남, 버마, 방글라데시, 우즈베키스탄 공동체 지도자들을 만났고 노동권과 노조 조직화에 관한 간담회를 해오고 있다. 민주노총의 목표는 내년 중반까지 전국에서 이주노동자 500명, 2년에 걸쳐 2,000명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계획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지역과 상황에 따라 민주노총 소속 노조에 가입하게 된다. 산별노조의 지회나 일반노조, 혹은 이주노조 같은 이주노동자 독자노조가 될 수도 있다. 새롭거나 그렇게 새롭지 않을 수도 있는 질문들 민주노총에서 라이 동지의 활동, 민주노총이 이후에 다른 이주 활동가를 채용할 것이라는 예상, 민주노총 이주노동자 조합원 숫자의 증가 가능성 등은 노동운동에서 이주민과 비이주민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운동이 언어, 경험수준, 한국사회에서의 사회적 지위에 따른 불평등을 뚫고 나갈 효과적인 수단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 민주노총 내에 이러한 것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한국의 인종화된 사회적 위계가 노동운동에서 어느 정도로 재생산될 것인지와 민주노총에 소속된 이주노동자들이 의사결정력을 행사하고 지도부로 활동할 수 있는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이주민과 비이주민 활동가 사이의 구조적인 불평등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회적 연관관계와 자원이 많고 온정주의적인 이주센터 활동가들이 이주민들을 대신해서 발언하는 경향에 대한 분노는 2001년 평등노조 이주지부 설립으로 이어졌다. 2003-2004년 명동성당 농성투쟁 당시 투쟁방향을 정하고자 하는 경험 많은 한국단체들과 활동가들 사이의 경쟁 역시 이주노동자의 지도력을 억압했다. 이러한 인식은 이주노동자 스스로가 이끌어가는 독자 노조로서 이주노조를 설립하게 된 주된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주노조의 지도부들 다수가 표적단속 되어 추방되면서 비이주민 활동가의 권한과 그에 대한 의존이 증가한 것은 남아 있는 이주 간부들을 질식시켰다. 이러한 상황은 비이주민 활동가들이 한 발 물러서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양쪽에서 느끼게 했다. 평등노조 이주지부와 이주노조의 경험은 사회 구조적 불평등이 이주민과 비이주민 사이의 연대에 장애물이 되고 이주민의 지도력을 질식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민주노총이 진심으로 향후에도 라이 동지와 같은 다른 이주 활동가들을 양성하려 한다면 이러한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 이주노동자 조합원을 늘린다는 민주노총의 계획도 어려워질 것이다. 구조적인 불평등에 대처하는 첫걸음은 물론 인식과 교육, 관련 당사자들 사이의 진실한 대화다. 그러나 이를 넘어 민주노총의 가맹산하 노조들은 이주민들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과, 이주노동자들이 주체화되고, 그들의 운동에서 지도부로 발전할 수 있는 운동과정을 만들어내야 한다. 결국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또 무엇을 위해서 조직화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새로운 조직화 목표 조직화에 대한 라이 동지의 관점은 평등노조 이주지부와 이주노조에서의 활동 경험에 주로 기반해 있다. 서로 자기들의 의견을 밀어붙이려는 한국단체들과 활동가들에게 실망해서 그는 한동안 활동에서 떠나 있었지만, 이주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확신하고 다시 이주노조에 돌아와 지금은 민주노총에 있다. 산별노조나 일반노조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는 이주노조와 같은 독자적 노조가 이상적인 조직형태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독자적 노조조직화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중요한 함의가 있지만, 라이 동지가 인식하듯 많은 경우 실제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어떤 노조에 가입하든 노조조직화는 단순히 조합원 숫자를 늘리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고용주가 파업을 파괴하거나 저임금을 강제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이용하는 것을 막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즉 이는 구조적인 불평등을 바로잡는 세력화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맞다면, 이주노동자 지도력의 발전은 처음부터 조직화의 중심 목표로서 설정되어야 한다. 이 목표를 달성할 최선의 수단은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다른 나라의 조직화 경험에 기반 해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수 있다. 첫째, 노동자들은 대개 수동적인 교육이나 상담이 아니라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계급의식과 지도력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사실은 이랜드나 기륭투쟁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비정규노동자 투쟁에서 반복적으로 증명되었다. 2003-2004년 명동성당 농성투쟁은 (한국인들의 과도한 개입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주노조 초창기 간부들에게 이전의 어떤 공식적 노조 교육프로그램보다 더 나은 훈련의 장으로 기능했다. 농성투쟁 당시에 고용허가제 철폐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 요구는 실현가능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 정책들이 완전히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공 가능성은 농성투쟁 참가자들, 초기 이주노조 조합원과 간부들에게 희망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이 요구들을 쟁취하기 위한 6년 투쟁의 성과는 미미했고, 실망으로 이어졌다. 이는 커다란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는 오랜 투쟁이 그 변화의 중요성과 정당성과는 무관하게 운동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정치적 요구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라기보다 조직화와 주체화의 수단이 될 수 있는 중단기적인 달성 가능한 목표들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의 몇몇 이민자 공동체 단체들은 작은 승리들을 통해 주체화를 이루고 운동의 소속감을 형성하는 조직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조직화 수단도 겸하는 투쟁들은 종종 ‘승리할 수 있는 목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중국직원·노동자협회(CSWA)는 배달과 식당 및 여타 산업에서 노동법을 강제하고 상습적인 임금·봉사료(팁) 체불 근절을 위해 대부분 미등록인 중국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상당히 성공했다. 법적 소송과 행동의 결합은 대부분 법의 기준에 못 미치는 관행을 충분히 알려냈다. 노동조건은 실제로 개선되었고 협회원 숫자와 핵심 활동가 숫자도 증가하였다. 30년이 넘는 조직화 기간 동안, 협회의 지도부는 노조로 등록하거나 공식적인 집단교섭권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주 조합원이 있는 이주노조나 일반노조들이 임금과 노동조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무사에 위임하여 노동부 진정이나 사업장 집회 같은 전술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면 그것은 이주노동자 주체화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또 다른 사례를 보면,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설립하여 이끄는 단체인 가사노동자연합(DWU)은 뉴욕주 당국으로 하여금 ‘가사노동자 권리헌장(Domestic Workers Bill of Rights)’을 채택하도록 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활동가들은 결사의 자유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뉴욕의 가사노동자들의 부당한 현실을 인식했지만 우선 권리헌장을 요구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 목표가 달성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캠페인은 가사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지도력을 획득하는 수단이 되었다. 가사노동자연합의 사례는 조직화 캠페인이 고용주를 타깃으로 삼아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사노동의 경우 사업장에 집중된 투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동자들의 고용주가 다 다르고 고용주 바로 곁에서 일하고 살며, 일하는 중에는 노동자들이 매우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영세규모 공장들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서로 고립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고용허가제로 인한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극히 불평등한 관계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취약한 위치는 노동자들이 고용주에 대해 직접 맞서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필자는 ‘사업장 투쟁 대신에 지역 고용센터들이 사업장 이동을 다루는 방식을 바꾸는 것을 요구하는 운동을 통해 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할 수 없을까’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필자는 2007년에 이주노조가 사업장 이동을 처음에 거부당한 필리핀 이주노동자 사건을 다루면서, 고용센터 직원들이 이주노동자 권리행사를 쉽고 효과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법적 조사를 태만히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우리가 약간 시끄럽게 하자 수원 고용센터로부터 잘못했다는 시인을 받아낼 수 있었기에 이러한 투쟁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명확해 보였다. 또한 이주노동자 처지에서도, 날마다 봐야 하는 고용주를 타깃으로 하는 투쟁보다는 이러한 운동에 실제로 참여하는 것이 더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운동은 등록 이주노동자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정부기관에서 구체적인 개선조치를 성취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이는 참여자들에게 지도력을 배우고 단결을 발전시키고 활동가로서 자신감을 갖게 할 수 있다. 2011년을 위한 몇 가지 생각들 고용센터 캠페인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구체적인 제안이라기보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민주노총-네팔노총 협약 체결과 라이 동지의 민주노총 활동이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나타낸다면(이것은 객관적 현실보다 더 많이 필자가 부여하고자 하는 의미이다),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를 시작해야 한다. 이제는 이주노동자를 단순히 조합원으로 가입시키는 것으로 조직화를 사고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조직화의 매개로 기능해 제도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단계가 될 수 있는, 승리가 가능한 지역투쟁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는 언어, 거주 지위와 인종에 기반한 한국사회의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이주노동자의 지도력 발전과 주체화를 위한 새로운 조직화 방식을 찾아야 한다. 2011년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
세계 노동운동 활동가 인터뷰 G20 서울회의를 반대하는 한국의 사회운동 단체들은 지난 11월 6일부터 12일까지 “G20 민중 공동행동 주간”을 선포하고 각종 활동을 벌였다. 공동행동주간에 참여하기 위해 노조 지도자와 활동가들이 세계 각국에서 한국을 방문하였다. 얼마 전 출범한 노동자운동연구소는 국제적 네트워크가 아직 부족하지만, 이 기회를 활용하여 각국의 노동자 운동 활동가와 인터뷰할 수 있었다. 남아공노총(COSATU) 제르고 하메스(Jeorgo Hames) 수석부위원장, 남아공노총 소속 전국교육보건노동조합(NEHAWU) 조 뭄비사(Jo Mumbisa) 수석부위원장), 이탈리아 제1노총(CGIL) 니콜레타 로시(Nicoletta Rocchi) 국제국장, 국제노점상연합(StreetNet International) 팻 혼(Pat Horn) 국제 코디네이터 등과 인터뷰할 수 있었으며, 아르헨티나 신생노총(CTA) 마테 야누스(Maite Llanos) 동지와 루이스 캄포스(Luis Campos) 동지는 이메일로 서면 인터뷰하였다. 인터뷰 내용을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 노동계의 반응과 대안, 정치력 영향력 증진이라는 주제별로 정리하였다.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 이탈리아 2008년 말 시작된 세계 경제위기는 2007년부터 이미 GDP가 하락하기 시작한 이탈리아를 강타하였다. 2008년을 거치며 더욱 심화된 경제위기의 결과 이탈리아의 경제는 2009년 전년대비 5.1%의 위축을 경험한다. 공식통계로는 2007년 2/4분기 6%에 머물던 실업률은 2009년 4/4분기 8.2%까지 치솟았으며, 특히 청소년들과 임시직 노동자들에 대한 영향이 컸다. 2008년과 2009년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세 가지 경기부양책을 도입하고 실업수당의 수혜 범위를 확장하였다. 이탈리아 로시 국제국장은 이러한 조치로는 전혀 충분치 않았다고 말한다. “(베를루스코니) 중도우파정부의 대응은 미약합니다. 이탈리아의 실업률은 [실제로는] 12%를 향해가고 있고 비공식 노동이 많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불안정노동자가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사회보장과 실업수당 제도의 부담도 클뿐더러, 실업자에 대한 사회적 보장조치가 끝나는 내년이 되면 상황은 더 크게 악화될 것입니다.” 로시 국제국장은 이어 긴축정책이 공공부문의 일자리와 노동조건에 미친 악영향에 대해 설명하였다. “정부는 [2013년까지] 30만 개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삭감하겠다고 공언한 상태입니다. 정부기관에 고용되어 있거나, 교육부문에 종사하는 상당수 임시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겠지요. 정부 소속 노동자들은 단협을 갱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임금도 동결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은행 부문의 차입 구조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독일이나 영국 정부에 비하면 이탈리아 정부에게 여유가 있었으며, 상당한 국가부채에도 불구, 그리스나 스페인의 재정위기 상황보다는 그 심각성이 덜한 것도 사실이다. 로시 국제국장은 이탈리아 정부는 이러한 사실에 자부심만 느끼고 있을 게 아니라 국가부채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 “보건, 연금, 교육, 사회보장 축소 없는 경제 성장”을 가능케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아르헨티나 세계 금융경제 위기가 강타한 곳은 서구였지만, 중남미 역시 무역, 외국인직접투자, 송금 축소로 영향을 받았다. 아르헨티나는 2008년 4/4분기와 2009년 1/4분기에 실질 GDP 하락을 겪었고, 실업률은 동기간 7.4%에서 8.4%로 소폭 상승하였다. 그렇지만 아르헨티나는 정부의 일자리 유지 대책과 포괄적 경기부양책, 연금제도의 재사회화(1994년 사유화) 등을 통해 위기에 대처하였다. 야누스와 캄포스는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자인 페르난데스 정부의 위기대응 정책을 대체로 긍정하는 입장이었다. “가장 중요한 대책 가운데 하나는 위기 상황 기업의 임금지급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집행한 것입니다. 정부는 국내산업을 수입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환율도 높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르헨티나 정부는 보편소득 프로그램을 시행하였습니다. 그중에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보편적 아동수당(AUH) 프로그램을 들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공식적 사회보장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부모 슬하에 있는 350만에 달하는 아이들에게 한 달 180페소(약 5만 원)를 지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또 정상 수급요건이 미달하는 노령층에게 연금지급을 확대한 것도 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야누스와 캄포스는 이러한 조치를 정부의 공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사회단체와 노조가 지난 수년간 요구해온 것입니다. CTA의 입장에서는 이 조치들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편적 아동수당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이 조치들이 위기 대응에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남아공 세계 경제에 깊숙이 편입된 남아공은 경제위기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경기후퇴를 겪었으며, 이미 어려운 고용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실질 GDP 성장률은 2008년 4/4분기 마이너스를 기록한 뒤, 2009년 1/4분기에는 거의 -8%를 기록하였다. 동기간 실업률은 21.9%에서 24.3%로 상승하였다. 실망 실업자까지 고려한다면 2009년 4/4분기 실업률은 훨씬 더 높은 31.2%로 추산할 수 있다. 정부대응은 노사정 3자 협상의 결과물인 핵심 산업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과 공공 일자리 프로그램을 비롯한 대규모 공공투자였다. 이러한 조치들이 없었다면 위기의 영향이 더 심각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하메스와 뭄비사 두 수석부위원장은 이 조치들이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말하였다. “[2009년에] 백만 개의 일자리가 날아갔습니다. [구제금융 조치가 없었더라면] 광업과 자동차 부분에서 더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직물 분야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공장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수많은 노동자가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COSATU는 여러 제안을 하였지만 [노사정 협상에서] 자본가들이 거부하였습니다. 가진 자들은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정부가 생각을 고쳐먹고 한 걸음 더 노동자의 편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비공식 부문 공식 부문 경제에 만연한 실업 때문에 많은 남아공인은 노점상이나 시장상인, 넝마주이 등 비공식 경제에 종사함으로써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러나 최근의 경기 침체 때문에 공식 부문과 마찬가지로 비공식 부분의 일자리도 감소하였다. 비공식 부문 고용은 2008년 2/4분기 기준 총고용의 17% 수준에서 2009년 3/4분기 15.5%로 하락하였다. 비공식 부문 실업자와 노동자 모두 상당 부분 정부의 구제 정책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 StreetNet의 팻 혼 국제 코디네이터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 비공식 부문 노동자들이 이러한 상황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 노동자들이 위기로부터 완충지대에 있다는 생각은 신화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비공식 부문 노동자, 특히 여성은 세계 경제 피라미드의 최하층을 이루고 있고, 이들에 대한 보호조치도 공식 부문 노동자들보다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 비공식 부문 기업과 노동자들은 경제위기 시 충격을 완화할 장치도 없고 다만 일을 계속해야만 할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가난이 심화되면서 실업의 문제도 부차화됩니다. 차상위 계층이 더 가난해질 뿐이니까요. 노동관련 입법에서 [비공식 부문 노동자들이] 고려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들은 노동자나 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적대적 대접만 받게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예를 들어 위기상황에서 아프리카의] 지자체들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노점상이 일하는] 공공부지를 매각합니다. 지방정부는 정부의 위기경감 대책에 함께 하지 않고 손 놓는 일도 있습니다. 팻 혼 코디네이터는 이러한 상황은 최근 위기에 의해 악화된 측면도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비공식 부문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어려움의 연장선에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항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노점상은 경제주체로 여겨진 적이 없어요.” 팻 혼 코디네이터는 이번 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아프리카 지역의 일반적 반응은 “위기는 무슨 위기? 좋았던 적이 아예 없었는데…”였다며 현지 반응을 전했다. 노동계의 대응과 대안 남아공 COSATU 대표자들은 현재의 위기가 과거로부터 극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동의하였다. “이번 세계 금융위기는 남아공 노동자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남아공은 이번 위기 이전에도 이미 경기 침체를 겪고 있었습니다. 남아공이 민주화되기 이전부터 노동자들은 위기를 겪어온 것입니다. 1996년 성장·고용·재분배 전략(GEAR)이 도입은 이러한 위기에 일조하였습니다. 이 전략의 시행 결과 몇 개 부분의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경제성장은 겨우 3% 남짓이었습니다만, 그마저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약속했던 재분배는 없었고, 있는 사람들 재산만 불릴 뿐이었지요.” 성장·고용·재분배 전략은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1996년 ANC 정부가 COSATU와 남아공 공산당(SACP)과의 3자 동맹에도 불구, 일방적으로 채택한 정책이다. 이 정책의 골자는 재정 적자 감소를 비롯하여 인플레이션 목표제, 세금 감면, 사유화, 무역 자유화, 외자유치, 수출주도 성장 등이다. COSATU는 남아공의 경기침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성장·고용·재분배 전략을 폐기하고 새로운 경제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해 COSATU는 ‘완전고용 성장경로’라는 새로운 경제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완전고용 성장경로 전략은 다음의 6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아파르트헤이트 시기 및 뒤이은 16년간의 민주화 기간 발생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부의 재분배 2)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와 산업발전 및 재분배 지원을 위한 통화정책 3) 인프라 발전, 신용 제공, 기술지원, 기술발전 및 훈련을 통한 지역 산업 육성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 4) 공기업과 협동조합을 비롯한 집단적 형태의 소유권 보장 5) 기술 이전 및 경제 개발 정책 조율을 통한 지역 개발 6) 환경파괴, 생물 다양성 악영향, 토양 유실, 사막화, 온실가스 방출, 지표 및 지하수 오염 등에 대한 제한을 통한 환경적 지속 가능성 창출 등이 그것이다. 최근 몇 년간 COSATU와 ANC와의 관계가 경색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COSATU는 여전히 남아공 정부가 이러한 제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COSATU의 두 대표자는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시 ANC 정부가 도입하여 제도화된 사회적 대화 기구를 노동자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으로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우리는 ANC와 동맹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정부가 새 경제 계획을 시행하도록 강제할 것입니다. 우리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우리의 견해를 표출하고 다른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남아공에는] 사회적 대화를 위한 기구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기구를 없앤다면 문호를 닫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합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파업을 조직할 것입니다. 이미 공공부문, 자동차, 광업 부문에서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두 대표자는 5개년으로 계획된 완전고용 성장경로 전략이 불평등과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지만 COSATU의 궁극적 목표가 이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역시 강조하였다. “[완전고용 성장경로는]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지금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약화시키는 것일 뿐이지요.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이탈리아 CGIL은 대규모 대중집회를 통해 위기대응에 실패한 이탈리아 정부를 비판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CGIL의 로시 국제국장은 범유럽적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로시 국장은 또한 장기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럽차원의 경제 정책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하였다. “유럽노총(ETUC)을 비롯한 유럽 전역의 다른 노동조합과 연계하여 지금껏 수많은 집회와 총파업을 벌여왔습니다. 10월 16일 금속 노동자들이 대규모 집회를 벌였습니다. 총연맹 차원에서 다른 노조들과 함께 11월 27일 또 한 번 대규모 집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 집회를 통해 일자리와 사회정의를 요구할 생각입니다. 유럽 차원의 투쟁이 더 필요합니다. 지금까진 ‘모두가 자국만을 위했을 뿐’입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세계적 차원에서 승리란 요원한 일이 되겠지요. 유럽 차원에서 경제정책을 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CGIL은 유럽 차원의 인프라, 교육, 훈련에 관한 경제적·정치적 정책을 요구하는 ETUC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유럽 차원의 단협이 필요하며 공통의 재정정책과 노동정책을 펼쳐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사회모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지 시스템을 방어하고 유럽적 차원에서 재형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시 국장의 언급은 ‘사회적 유럽’을 상기시켰는데, ‘사회적 유럽’이란 ‘유럽적 자본주의 사회 모델’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파생되어 “유럽 시장의 긴밀한 통합 때문에 더 이상 국가적 수준만으로는 불가능해진 사회적 규제 및 보호를 더 높은 차원에서 재건할 것을 요구”하는 흐름이다. 사회적 유럽 담론은 유럽 통합의 불가피성과 필연성을 전제로 하며, 노동조합을 운동의 주체로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대화의 적극적 파트너로 파악한다. 이는 비단 유럽의 노동조합뿐 아니라, 유럽 각국 정부 및 유럽 차원 기구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수용된 개념이다. 로시 국장의 언급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바, ETUC와 가입조직은 사회적 유럽 담론에 기반을 두고 자신의 요구를 주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르헨티나 남아공과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의 노동자들도 노사정 협의뿐만 아니라 파업과 시위를 통해 위기에 대응해 왔다. “아르헨티나에 최악의 위기는 2008년 10월부터 2009년 6월까지였습니다. 이 동안 대부분 노동쟁의는 위기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직위해제, 대규모 해고, 임금체불, 직장폐쇄 등이 그것이지요. 우리 자료를 보면 2009년 노동쟁의의 55%가 위기로 인해 발생하였습니다. CTA는 2009년 4월 22일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였습니다. 또한 위기의 비용의 노동자 전가를 반대하는 정책도 추진하였습니다. CTA와 다른 노동운동 단체들은 3자 기구에 참여하여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하여, 사회보장제도를 공식부문 노동자뿐 아니라 모든 노동하는 민중을 대상으로 확대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CTA의 비공식 부문 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단지 립서비스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40%가 넘는 아르헨티나의 노동인구가 비공식 부문에 종사하고 있고, CTA는 노동운동 강화를 위해 이들을 조직하는 일이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있다. “[CTA는] 실업자, 특수고용자, 농민, 원주민 등을 조직하고 있으며, 오로지 고용주만이 CTA에 가입할 수 없습니다. CTA에게 있어 모든 부문의 노동자들에 대한 대표성을 획득한다는 것은 최우선 과제 중 하나입니다.” 비공식 부문 CTA는 StreetNet과 비공식적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CTA는 StreetNet의 가맹조직과 유사한 논의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떻게 자가고용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시킬 것이며, 이들의 힘을 어떻게 정치적 세력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사회연대 경제’에 관한 논의가 점점 중요하게 부상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적이고 수평적 구조를 갖추고 자가고용/비공식 부문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운영되는 집단적 경제 행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그 주된 목적은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다. CTA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이러한 아르헨티나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이러한 경제형태는 지난 100년 이상 존재해왔다. StreetNet은 2010년 8월에 열린 3차 세계총회에서 사회연대경제 촉진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 결의안에는 노점상과 기타 자가고용 노동자들의 활동이 사회적 책임, 기업가정신, 연대의 원리와 가치로 운영되는 “새로운 경제부문(사회연대경제)의 형성으로 귀결됐으며, 이는 민주주의와 경제적 시민권의 발달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인간이 자본보다 중시되는 지속가능한 경제 모델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 결의안은 StreetNet의 가맹조직들이 정부를 압박하여 사회연대경제와 그 구성원을 지원하여 지역 공동체를 강화하고, 새로운 기업문화를 창출하며, 경제활동을 지역적 필요와 연계시킬 수 있도록 촉구하고 있다. 팻 혼 코디네이터는 사회연대경제의 촉진이야말로 노점상과 기타 비공식부문 노동자들이 직면한 ‘항상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StreetNet이 제시하는 대안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긍정적인 비전입니다. [이 결의안은] 공식 입장으로서, 새로운 정치-경제적 비전의 시발입니다. 일종의 사회주의적 비전이지요. [이러한 비전을 통해서] 우리는 단순히 방어적인 투쟁에서 한 발 더 나갈 수 있습니다.” 정치력 영향력 강화 노동자운동연구소가 인터뷰한 모든 노조 대표들은 노동자의 제안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자의 단결과 정치적 영향력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탈리아 로시 국장은 정치적 영향력 강화를 위해선 CGIL과 다른 두 노총, 즉 기독교계 CISL과 사민주의계열의 UIL 사이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중도우파 정부는 3대 노총 사이의 관계를 경색시키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다른 두 노총은 정부에 조금 더 협력적입니다. 노총들과 정부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못 받아들일 합의를 맺었습니다.” 로시 국장은 CGIL 내부의 정치적 견해 차이가 단결의 장벽이 된다는 언급도 하였다. “[이탈리아에는] 새로운 정당이 생겼습니다. 니키 벤돌라(Niki Vendola)가 속한 SEL(좌파·생태·자유)이 그것인데요, 여기에 공산당과 민주당도 있습니다. CGIL은 이 모든 정당과 관계가 있지요. [다른 두 정당 소속도 있지만] 노조의 고위 간부 중 상당수가 SEL 소속입니다. 그렇지만 노조 간부와 평조합원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건 큰 문제입니다. 단결이 전제되지 않으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로시 국장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수준에서 단결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남아공 COSATU 의 대표자들은 ANC가 신성장경로 전략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하는 데 있어 사회운동과 시민사회세력과의 동맹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완전고용 성장경로 전략은 남아공에서 널리 반향이 있습니다. 시민사회와 함께 이를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를 조직했으며, 앞으로 함께 캠페인을 벌여나갈 것입니다.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선 시민사회를 동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COSATU의 대표자들은 ANC와 남아공 공산당과의 동맹 또한 강조하였지만,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서만 ANC가 올바른 목표를 추구하도록 강제할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ANC 안에는 노동자, 시민운동 세력, 자본가,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등 제반 세력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ANC의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려고 합니다. 돈이 있는 이들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묻어버리길 원합니다. 민중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실질적인 동맹이 필요합니다.” 아르헨티나 CTA 역시 노동운동과 시민사회단체 간의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CTA는 이를 원칙으로 확립하고 조직 구조 속에 반영하여 부문 간 장벽을 뛰어넘는 노동자의 단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CTA에는 개별 노동자의 직접 가입 이외에도 다양한 가입형태가 있다. “CTA에는 사회운동, 그러니까 실업자 단체, 농민단체 등이 가입할 수 있습니다. 이 단체들의 대표자가 CTA의 집행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CTA는 인권단체, 군사독재 청산 법정활동, 성차별에 반대하는 입법을 위한 여성단체, 거대 곡물기업로부터 보호를 위한 규제를 청원하는 농민 단체 등 대부분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CTA는 이러한 활동들이 정치적 영향력 확산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체들은 위기 시 전략적 동맹입니다. 민중들의 영향력 증진은 CTA의 근본적 변화와 지속가능하고, 배타적이지 않고, 평등하고, 공정한 개발 모델을 쟁취하기 위한 주요 전략 중 하나입니다.” 비공식 부문 CTA 대표자와 마찬가지로 팻 혼 코디네이터 역시 공식-비공식 부문 노동자 간 연대와 동맹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StreetNet은] 노조와 비공식 부문 노동자 조직이 함께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증진시킬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연대와 공동행동을 촉구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노조가 고용된 노동자만을 조직해서는 노동인구를 완전히 대변하기란 요원해질 것입니다.” 아직은 대부분 노조가 비공식 부문 노동자들의 이해에 무관심한 편이긴 하지만, 팻 혼 코디네이터는 이 분야에서 StreetNet의 성과에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StreetNet은 남반구 노조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중남미 지역의 CUT나, 민주노총, COSATU가 그 예이지요. 콜롬비아 CUT는 노점상 조직을 새로 출범시켰습니다. StreetNet은 현재 COSATU와 [비공식부문 노동자 조직의] 전국동맹을 건설하기 위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결론 COSATU와 CTA, CGIL, StreetNet 활동가와의 대화를 통해 이들 노동자 조직의 경제위기에 대한 인식과 그 대응방향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눈앞에 닥친 위기에 대한 방어적 대응이 아닌, 장기적인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향한 역량 증진에 방점을 찍고 있는 노동운동의 흐름이 있다는 것이다. CGIL의 범유럽 연대와 “사회적 유럽” 추구, COASTU의 완전고용 성장경로 전략, CTA의 혁신적인 부문을 초월한 조직화, StreetNet의 사회연대경제와 공식-비공식 부문 간 연대를 호소하는 결의문 등에서 사회 변화를 위한 비전과 국제 노동운동의 방향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확인한 각국 노동운동의 전략에는 많은 쟁점이 포함되어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는 계급적 통일성 증진과 국제 연대를 위한 새로운 틀을 모색하면서 주요국 노동조합의 전략과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수행할 것이다.
울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 중 하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의 행렬이다. 때로는 어마어마하게 떼를 지어 가기도 하는데, 최근엔 기름값이 올라서 그런지 스쿠터가 많아졌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더 많아졌다고 한다. 울산을 처음 방문해 이 광경을 처음 본 사람들은 종종 ‘웬 오토바이 동호회?’ 라는 의문을 갖기도 하는데, 잠시 바라보면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의 행렬임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의 거대한 오토바이 행렬은 때로는 감동으로, 때로는 고된 삶에 대한 상징으로 느껴진다. 경이로울 만치 밝고 환한 빛을 내는 현대중공업 건물의 야경을 보고, 우뚝우뚝 높은 굴뚝이 서 있는 현대자동차의 열여섯 개나 된다는 출입구를 쭉 돌아보면, 노동자들이 갖고 있을 노동의 자긍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높고 거대한 기계 앞에서 견딜 수밖에 없는 길고 고된 노동과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이 다치고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이 교차되기도 한다. 울산 노동자투쟁의 역사와 비정규직 노동운동 울산은 노동자들의 도시다. 노동자들이 많이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대왕국이라 불리는 자본의 도시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들을 만들어 온 곳이라는 의미다. 1987년 이후 늘 격전의 연속이었고,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노동자들의 굵직굵직한 투쟁 속에서, 노동운동은 자본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경험들을 차근차근 쌓아왔다. 비단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실로 거대한 노동자들의 공동체이기도 했다. 흔히 울산을 노동운동의 메카, 중심이라고도 부를 수 있었던 이유는 거대한 계급투쟁의 공간에서 노동자들이 승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동조합의 민주적이고 계급적인 투쟁의 정신을 잃지 않고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울산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많은 활동가들은 ‘이젠 울산도 더 이상 노동운동의 도시가 아니’라고 자조하듯 말한다. 노동조합은 민주적·계급적인 공간으로서 올바른 역할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회사 측의 통제와 압박은 어느 때보다도 더 과감해지고, 노골화되었다. 보수언론에서 ‘대기업 강성노조’라고 떠들어대는 울산의 정규직 노조조차 이들 자본의 공세를 제어할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1987년 이후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지난한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투쟁을 일궈왔다. 지게차와 샌딩머신을 앞세우고 남목고개를 넘어 운동장으로, 시청으로 진군해 갔던 19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 1988-1989년 현대중공업 노조민주화를 위한 128일 파업투쟁,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 “현중이 깨지면 현자도 깨진다!”고 외치며 연대를 외친 현대자동차 4·28 연대투쟁, 1991년 5월 투쟁, 1991-1992년 현대자동차 성과분배투쟁, 1992-1993년 지리했던 민주노조 재건투쟁, “현중과 현자가 만났다!” 1993년 현총련 공동임투, 1994년 현대중공업 파업투쟁, 1995년 현대자동차 양봉수 열사 투쟁, 그리고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투쟁까지. 2000년 들어서 잇달아 결성된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울산 노동운동의 새로운 기점이 되었다. 현자비정규노조, 현중하청노조, 울산건설플랜트노조, 구몬학습지노조, 자치단체비정규직노조 등의 결성은 비정규직 투쟁 중심으로 지역연대를 가능하게 했다. 현대자동차를 기점으로 한 ‘불법파견 정규직화’투쟁의 여러 계기는 울산 노동운동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어 왔다. 2010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은 이 역사의 연장선에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정규직이 떠난 자리에 비정규직이 채워졌고, 본격적인 후과는 2002년 이후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0년 현재 30대 초중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2년 이후 입사한 이들이다. 그때 그들은 20대 중후반이었는데, IMF 이후 대부분의 청년세대가 그렇듯 당시 그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부분 ‘젊은’세대들로 구성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은 하나의 낙인이며, 신분이 되었다. 현대자동차를 둘러싼 지역 공동체내에서는 이러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존재하는, 때로는 암묵적인 때로는 명시적인 차별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아주 일상적으로 삶의 전반을 아우르며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30대 초중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애나 결혼의 과정에서 언제나 부딪히는 물음이 있다. 맞선을 보거나 소개팅을 할 때 ‘직영인지, 하청인지’를 물어본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비정규직이라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고, 떳떳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현실에 대한 좌절이 밀려온다고 했다. 한 조합원은 ‘그래서 여기 비정규직은 노총각이 많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가족대책위 모임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비정규직 조합원의 젊은 아내들은 결혼할 때 남편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 경우가 많았다. 또한 ‘직영인지, 하청인지’ 물어보는 건 이미 오래된 질문이 되었고, 언젠가부터는 1차 하청인지, 2차 하청인지, 3차 하청인지까지 구체적으로 물어본다고 한다. 실제 원청과 직접 계약한 1차 사내하청 업체는 2차, 3차 사내하청에 비해 원청 자본에 의해 상대적으로 내부화되어 있어서, 이들 사내하청들 간에서조차 각 노동자 간의 차별이 점점 더 크게 드러나고 있다. 절반의 임금, 작업복·안전화에도 적용되는 차별, 월차 한번 마음 놓고 쓰지 못하는 일상이다. 정규직과 같은 라인에서 같은 공정의 일을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공정을 떠맡느라 겪어야 하는 노동강도에서의 차별들. 원청 자본을 정점으로 하는 하청 업체의 먹이사슬 구조는 노동자들의 인간관계와 일상적인 삶까지 지배하며, 차별과 억압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25일간의 현대차 비정규직 공장점거 파업투쟁 지난 11월 15일, 울산 공장에서 시작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이러한 차별에 대한 오랜 시간 동안의 분노로부터 촉발되었다. 수년간 경험했던 차별은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열망’을 더욱 부추겼고, 지난 7월 22일 대법원 판결과 11월 26일 고등법원 판결은 더욱 공세적인 투쟁을 밀어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뿌리 깊은 패배감과 무기력을 걷어내고 새로운 투쟁의 공간을 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6년 불법파견 투쟁 패배 이후 5년의 세월 동안 자신을 가두었던 억압을 뛰어넘어 파업투쟁을 일구었다. 11월 15일 시트 1공장에서 시작된 파업의 불길은 공장을 멈춰 세웠고, 1천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공장 도어탈착 농성장을 가득 메웠다. 자신감과 정규직화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1공장 점거 파업의 불길은 야만적인 폭력을 뚫고 2, 3공장의 파업으로 이어졌고, 아산과 전주공장으로 번졌다.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외치며 분신으로 항거한 황인화 동지의 염원이 들불이 되었고, 울산 비정규직 지회 조합원 1,700여 명 중 1,200여 명이 파업에 참가했고, 전주 350명, 아산 250명 등 1800여명의 조합원이 노조지침에 따라 끝까지 파업에 참여했다. 2010년 12월 9일, 25일간의 파업투쟁이 끝난 후 우리에겐 남겨진 과제가 매우 많다. 2차 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현재,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천천히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이 지난 10년간 이야기했던 정규직-비정규직 연대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지난 파업기간동안 가장 많이 강조되고 이야기된 것은 “아름다운 연대”,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말들이었다. 그 무엇보다 정규직-비정규직 단결과 연대가 중요했고, 그것은 비단 비정규직의 힘이 약해서 정규직의 도움이 필요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자본이 노동자들을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으로 ‘분할’해 통제하고 억압할 때, 노동자들이 그 경계들을 뛰어넘어 계급적으로 단결하고 공동투쟁을 만드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된 ‘운동의 위기’는 자본이 만든 다양한 분할(정규직-비정규, 남성-여성, 정주-이주 노동자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노동조합조차 그 경계들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은 아직 우리가 넘어서야 할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현대자동차 지부(정규직노조)는 ‘중재’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거부했을 뿐 만 아니라 사실상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투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노골적인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아니러니하게도 그런 상황에서 이번 투쟁 내내 회자되었던 ‘아름다운 연대’라는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은 현대자동차 지부 이경훈 지부장이었다. 이경훈 지부장은 간간이 지부 간부들과 함께 식료품을 가지고 들어와 ‘아름다운 연대’를 강조했다. 그리고 농성장 안 조합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매번 밥을 들여오는 것이 전쟁이라고 말했다. 그 무렵은 하루 한 번 김밥 두 끼 분이 들어왔지만 김밥이 이내 쉬는 문제가 발생해, 조합원들은 전날 저녁에 들어와 그 다음날 아침에 쉰 김밥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전날 김밥이 두 줄 나오면 다음날은 저녁에 한 끼만 김밥이 나왔고, 운 좋은 날은 점심 때 컵라면이나 건빵이 나오기도 했다. ‘아름다운 김밥연대’는 조합원들이 춥고 배고픈 농성장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었지만, 현대차지부의 “교섭과 동시에 농성해제”요구와 “손 떼겠다”, “내가 없으면 김밥도 못 먹는다” “김밥도 못 넣어주겠다”는 모욕적인 협박도 감수해야 했다. 조금씩 음식반입이 줄어들기도 했는데, 조합원들 사이에서 “현대차 지부가 농성장기화 되는 것을 막고 빨리 교섭에 매달리게 해서 농성을 해제하도록 하기 위해 밥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이 돌기도 했다. 이 말은 농성을 해제할 때 정확히 들어맞았다. 농성해제를 결정하기 바로 전날인 12월 8일은 하루 종일 전기가 끊어져 암흑 속이었다. 현대차 지부는 비정규직지회에서 ‘선 농성해제 후 교섭’을 거부하자 지원을 끊겠다고 선포하고 농성장을 떠났다. 농성장 아래에서 사수를 맡고 있던 상집 간부들도 모두 철수했다. 또한 식사 지원을 중단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비상식량인 초코파이 2개로 저녁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정규직, 아름다운 연대는 가능한가? 하지만 지금 우리는 현대차 지부 이경훈 집행부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애초부터 이경훈 집행부에게 기대할 것은 그리 크지 않았다. 지금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의 문제는, 특정 정파나 몇몇 현장조직들만의 문제를 초과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1998년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합의하고 그 이후 매 시기 비정규직의 권리를 제대로 조직하지 못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축소하기 위한 투쟁을 공세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또한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는 1998년 정리해고 투쟁 패배 이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현장분위기를 일신하지 못했다. 현장권력이 급격히 축소되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은 더욱더 불안해지는 고용위기 앞에 위축되었고, 그것은 지도부가 투쟁을 회피하는 근거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2000년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는 사내하청 대거 투입을 사측과 합의한다. 2000년 6월 현대자동차 노조는 현 조합원들이 고용을 보장받는 대신, 부족한 생산인력은 비정규직(사내하청)을 대거 투입하여 해결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 합의는 향후 고용위기가 발생할 경우, “비정규직은 정규직 고용의 방패막이로 사용한다”는 점을 내용적으로 포함하는 것이었다. 구조조정이 광풍처럼 휩쓸고 간 자리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이상 저항할 힘을 잃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싸우기보다는 불안한 고용 앞에 놓여 있는 유혹에 무너져 갔다. 자기 부서에 비정규직이 많을수록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덜 수 있다는 생각, 비정규직이 많을수록 힘들고 어려운 공정을 그들에게 넘기고 정규직은 상대적으로 편한 공정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정규직들의 현실적인 이해관계 때문이다. 1998년 현대차 정리해고 투쟁 패배와 고용의 불안 속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은 유혹 앞에 급속하게 허물어진다. ‘벌 수 있을 때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정서는, 현장 내 노동강도 강화와 살인적인 노동시간연장 등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 가운데 비정규직 노조 설립조차 정규직 노조가 방해하거나 반대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정규직 노조와 활동가들은 자기 방향을 명확히 하지 못한 채 ‘비정규직을 고용보장의 도구로 인식’하는 반계급적인 태도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계급적 연대’속에서 혼돈을 거듭하고 있다. 자본이 만들어 놓은 원하청 노선의 단층선을 따라 노동자들의 인간관계, 삶의 양상까지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조 운동은 허물어지고, 노동자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진정 ‘아름다운 연대’를 위하여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번 투쟁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헌신적이고 모범적인 정규직 활동가들의 연대가 투쟁의 큰 힘이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25일간의 파업투쟁에서 진심어린 ‘아름다운 연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1공장 대의원들은 비정규직 파업에 대한 대체인력 투입 저지를 결의했고, 파업농성장에 대한 침탈을 인간방패가 되어 막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농성장을 지켰고, 농성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반입시키며 농성자의 손발이 되어 주었다. 파업 처음부터 끝까지 비정규직 조합원들보다 더 열성적이고 헌신적으로 싸웠다. 1980년대 혹은 1990년대부터 투쟁경험이 많은 정규직 활동가들은 상대적으로 투쟁 경험이 적은 젊은 비정규직 조합원에게 직접 ‘훌라송’을 불러가며 집회 사회 보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고, 투쟁방향을 함께 토론하며 격려하고 투쟁을 만들어갔다. 많은 정규직 활동가들은 매일 아침저녁 공장 정문 앞에서 출근투쟁을 벌였고, 공장 앞 천막농성에 결합했으며, 1공장 농성장을 방문해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고, 담요를 대신해 잠바를 벗어 비정규직을 덮어주었다. 2공장의 대의원은 비정규직 파업에 대한 구사대의 폭력을 온몸으로 막아 큰 부상을 입었다. 많은 대의원들은 사측으로부터 고소고발당하고, 체포영장을 받았다. 2차 파업을 위하여 자본이 만들어 놓은 분할 속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자신의 존재조건을 뛰어넘어 새로운 운동을 일구어나가는 것은 매우 지난하고 고된 과정이 될 것이다. 파업이 진정으로 민주주의의 학교가 되려면, 노동조합은 민주적이고 계급적인 원칙을 가지고 힘겨운 과정들을 함께 고민하고 교육하고 토론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차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현대자동차 자본이 ‘원청사용자’임을 명확히 하며, 자신들을 고용한 ‘정몽구’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고, 이젠 차별받는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들불처럼 일어났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돌파구를 어떻게 확장하고 뚫어 나가느냐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다. 2011년 1월 울산공장 최병승 조합원의 고등법원 선고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고, 아산공장의 대법원 판결은 3-4월 중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기들을 고려하여 비정규직 지회는 2차 파업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25일간의 파업투쟁을 통해 보여준 조합원들의 의지와 자신감을 모아 2차 파업을 성사해야 한다.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쟁취! 구조조정 저지! “3년이면 충분하다! 현장으로 돌아가자!” 12월 1일 새벽,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2인이 GM대우 자동차 부평공장 정문 아치 위로 올라간 지 어느 새 한 달이 다되어 가고 있다. 지난 2007년 GM대우 비정규직지회 설립 이후 한강대교․마포대교 고공농성, 부평역 CCTV 철탑 고공농성, 135일간의 부평구청 CCTV 철탑 고공농성에 이어 벌써 다섯 번째의 고공농성이다. GM비정규직지회하면 고공농성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상징적인 투쟁전술이 되었는데, 이번 고공농성은 한 겨울의 투쟁인 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제조업 사내하청 불법파견의 문제를 환기시키고 있다. 하지만 GM대우 사측의 태도는 3년 전과 다르지 않다. 불법파견 문제를 감추기 위해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노조활동을 위해 취업한 외부인으로 규정하고, 현장 노동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CCTV와 카메라 촬영을 통해 집회 참가자를 파악하거나 해당 노동자를 불러 협박․회유하고 있다. 또 출퇴근 출입을 다른 문으로 유도해 노동자들이 정문 앞 농성대오와의 접촉하지 못하게 한다. 사측의 태도가 변한 것은 없어도 지금의 상황은 3년 전과는 다르다. 기륭전자․동희오토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하고,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이 내려지고,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공장 점거 파업이 진행되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다시 세간의 화두가 되었다. 이러한 기세에 힘입어 지역의 연대단위들도 집중적으로 결합하여 다각도로 투쟁을 지원하고 있다. 고공농성이 알려지면서 사측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여론을 의식한 듯 송영길 인천시장이 GM대우 사장을 만나 농성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인천시의회는 사측의 책임 있는 교섭과 인천시․노동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GM비정규직 노조원 안전 및 조속한 해결책 촉구 건의안’을 가결하기도 했다. 비정규직은 GM자본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 투쟁이 여론의 불을 댕긴 것도 있지만, GM대우가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상징성 때문에라도 지역의 여론이 집중되고 있다. GM대우는 현재 지역 총생산의 21%, 수출액의 51%를 차지해 인천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GM대우는 향토기업으로 대접받으며 여러 혜택을 누리고 있다. GM대우는 2002년 대우차를 인수하면서 영업흑자를 기록하는 연도부터 10년간(7년간 100%, 3년간 50%) 법인세와 본사파견 임원의 소득세 면제를 약속받았고, 자동차 판매 시 따라 붙는 평균 10% 정도의 특별소비세 납부유예라는 특혜도 챙겨왔다. 대우차 부도 이후 첫 흑자전환이 2005년인 것을 감안하면 수백 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한 푼도 제대로 내지 않은 셈이다. 이 밖에도 각종 부지지원, 시의 GM대우차 사주기 운동 등 안정적인 지원도 제공받고 있는데, 모두 계산해보면 약 1,000억 원에 달한다. 2000년 대우차 부도사태, 2008~09년 위기 때 시와 시민운동진영이 나서서 ‘GM대우차 사기 운동’을 펼쳤던 것도 그 산업 경제적 비중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원 받은 비용을 따지면 현재 일하고 있는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 800여 명의 정규직 전환 비용 100억 원(현대차 비정규직 8,000명의 정규직 전환비용 1,000억 원 대비)을 쓰고도 충분히 남는 돈이다. 현재 해고된 GM대우 비정규직 조합원 20여 명 분을 더한다 한들 전혀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고용문제를 수익창출을 위한 안전판 정도로 생각하는 GM대우가 선뜻 문제를 해결할리 만무하다. 2003년 비정규직 800명 채용을 시작으로 정규직 라인을 대거 도급화하고 2,000명이 넘도록 비정규직 채용을 확대해왔던 것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다. 노동비용 절감을 통한 빠른 기간 내 경영정상화 달성, 경기 변동에 맞춘 탄력적 고용조절이 그것이다. 2005년 예상보다 1년이나 빨리 경영정상화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이러한 비용절감에 힘입은 바다. 이렇게 안전판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2008년 2조 원에 달하는 수익 유출로 경영위기에 빠졌어도 잘못을 저지른 경영진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도 가하지 않았고, 비정규직 노동자 1000명 해고로 대신한 것이다. GM대우가 아무리 향토기업 운운한들 경영실패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거나, 수익을 쫓아 한국공장을 청산할 수 있는 초국적 자본이라는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GM대우에게 비정규직 문제는 기본적으로 가볍게 털고 갈 수 있는 비용문제가 아니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시장이 있는 곳에서 생산한다는 GM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향후 3~5년 내에 한국공장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하는데 고용문제에 발목 잡힐 이유가 없고, 비정규직 문제를 책임지는 자충수를 둘 수가 없다. 결국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투쟁의 힘이 빠지기만을 기다리던지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시점을 계산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GM대우의 구조조정 계획 최근 산업은행과 GM본사 간에 맺어진 ‘GM대우 장기발전전략’은 산업은행이 주장하는 바와 다르게 GM이 추진하는 국제적 구조조정을 막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전략의 내용을 보면 산은 등에 지급된 우선주 상환을 GM이 책임지고, GM대우가 “GM 본사와 결별한 후에도 독자적인 생존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공동 개발한 기술 건에 대해서는 7년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장기적인 생산물량 확보 보다는 2조 3천억 원 규모의 우선주에 대한 수익성 확보에 초점이 맞춰진 협상이라 GM의 한국에서의 생산계획을 강제하지도 못하고, 우선주에 대한 GM의 상환 보장 약속도 구속력도 없다는 점에서 ‘장기 발전전략’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협의라고 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설상가상 GM과의 결별이 이루어진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GM대우가 공동 개발권을 가진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같은 차종을 생산한다고 해도, 역시 동일한 개발권을 가진 GM이 차종을 개량해서 판매한다면 자체 판매망도 없는 GM대우가 경쟁에서 열세에 놓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산업은행에 대해서도 GM대우의 산업기반 유지 및 발전 방안 수립 보다 GM본사와의 결별을 상정한 수익성 확보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워버릴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을 구조조정에 맞서는 투쟁의 시작으로, 초국적 자본 GM에 대한 지역의 감시와 통제를 만들어가는 논의의 시작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GM대우 자본의 경영실패의 책임을 묻고, 노동비용절감 및 구조조정 전략을 바꿔 나간다는 원칙 속에서 비정규직투쟁에 연대하고, 운동 진영의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쟁취를 위해 GM대우 비정규직 투쟁을 확대하자!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농성장을 사수하고, 여론을 이어나가도록 하자.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하되 특히 사측이 집회 신고를 내놓은 첫 날인 1월 1일에 맞춰 12월 31일과 1일 양일 간 힘 있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농성 장기화를 막기 위해 낫까지 동원한 사측이다. 만약 있을지도 모르는 농성해제 시도에 맞서 농성자를 보위하고 투쟁의 거점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이 단순히 해고된 노동자 몇몇의 복직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현장 조합원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몇 차례 현장 유인물이 배포되었으나 아직까지 적극적인 현장활동이 조직되고 있지 못하다. ‘불법파견 중단! 정규직화 실시!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 플래카드 문구처럼 이번 투쟁이 현장에 만연한 제조업 불법파견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을 알려야 한다. 또한 이번 투쟁이 노동자의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활동인 노조 탄압과 사측의 현장 통제에 대한 투쟁이라는 점을 알려야한다. 앞으로 더욱 강화될 노동자에 대한 수탈과 착취에 저항하는 투쟁이라는 점을 현장 조합원들과 분명히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조합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을 기획함으로써 이번 투쟁의 성과가 파견노동법에 대한 투쟁으로, 사측의 구조조정 전략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GM대우 비정규직 투쟁은 최근 촉발되고 있는 불법파견 철폐 투쟁의 일환이자, 전국적인 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주요 고리이다.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쟁취를 목표로 투쟁하는 제 민중단체의 보다 적극적인 결합이 필요하다. 극한의 고공농성 중인 GM대우 비정규직 투쟁을 확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