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강대국의‘ 인도주의적 군사개입’, 과연 실현 가능한가? 2011년 3월 17일 유엔 안보리는 리비아 제재 2차 결의안(1973호)을 전격 통과시켰다. 안보리에는 15개 이사국이 참가했고 찬성 10, 기권 5로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기권한 5개국은 러시아, 중국, 독일, 브라질, 인도다. 결의안의 핵심은 민간인과 민간인 거주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리비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그 외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비행금지구역이란 허가받지 않은 어떤 항공기도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을 뜻한다. 유엔은 비행금지구역을 감시하는 군대를 지정하며 그 군대는 항공기를 격추할 권한을 부여받는다. 유엔의 감시활동을 방해하는 어떤 적대행위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지상군에 대한 공습도 가능하다. 실제로 ‘오디세이 여명’ 작전이 시작되자 그 목표는 비행금지구역이 아니라 차량금지구역을 설정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나아가 군사작전의 목적은 유엔이 인정한 민간인 보호가 아니라 유엔이 명시하지 않은 정권교체인 것처럼 보였다. 카다피가 정전을 제안하자 오바마는 카다피가 반정부세력으로부터 탈환한 아즈다비야, 미스라타, 알자와위야 세 도시로부터 철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프랑스 제트기는 카다피의 차량을 공격했고 미국의 미사일은 대공방어시설과 트리폴리에 있는 지휘통제시설을 파괴했다. 하지만 오바마가 이끄는 미국의 군사작전은 부시에 비해 훨씬 영리해 보인다. 미국은 리비아 공격에 참가한 서방국 중에서 가장 강력한 공습을 단행했고 오바마의 요구는 가장 비타협적이다. 오바마는 “카다피가 물러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고, 미국의 유엔 대표 수잔 라이스는 유엔 결의안 1973호에 “필요한 모든 조치”라는 조항을 추가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미국은 자신의 폭격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하려 했고 다른 국가들에 공을 돌리려 했다. 프랑스가 첫 번째 폭탄을 투하했으며 미국은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휘권을 나토에 이양했다. 미국은 아랍과 유럽이 리비아에 대해 일차적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미국 관리는 유럽이 리비아 석유의 대부분을 소비한다고 말했다. 즉 미국은 리비아에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다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서 외부로부터 새로운 질서를 강요했다면 오바마가 추구하는 정권교체는 리비아 토착 세력에 의한 것이고 서방은 단지 리비아인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시 정부가 경솔하게도 맨 선두에서 앞장섰다면 오바마는 가장 후위에서 지휘하고 있다. 유엔결의안과 리비아 공격을 둘러싼 국제 좌파의 의견 분열 유엔결의안과 리비아 공격을 두고 국제좌파는 심각한 의견 분열을 겪었다. 질문은 간단하다. 리비아 공격은 카다피 정권이 가하고 있는 반정부세력에 대한 맹공을 중단시키기 위해 불가피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략적 이익에 따른 침략일 뿐인가. 프랑스의 경우 녹색당이 리비아의 국가과도위원회(NTC)를 승인하고 그들이 요청하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자는 데 가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프랑스공산당, 좌파당, 반자본주의신당도 동참했다. 이에 대해 다른 입장을 지닌 좌파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좌파정당의 요구를 완수하기 위해 군사공격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즉 사르코지가 좌파의 대행자냐고 비꼰 것이다. 반면 유럽좌파당은 ‘리비아 전쟁을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나토의 개입이 민중봉기에 도움이 되지도 시민들을 보호하지도 않는다’, ‘리비아 문제에 군사적 해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정치적·외교적 발의가 필요하다’, ‘카다피 군과 리비아 반정부군뿐만 아니라 나토군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휴전을 요구한다. 리비아에 국제 정치·외교 사절단과 시민 감시단을 파견하는 것은 평화를 향한 구체적인 진일보일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서방의 군사개입이 시작된 후 입장을 변경한 경우도 있다. 공습에 참여한 덴마크의 적녹동맹은 서방의 군사개입이 민간인 보호에서 내전으로 바뀌고 있고 유엔과 덴마크 정부는 휴전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리비아 군사작전을 지지한다는 기존 입장을 취소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한국의 진보신당도 3월 17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군사개입에 대해 ‘국제사회가 이렇게 미적거리는 동안 반정부 시위대는 점차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국제사회는 조속히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라고 촉구했고, 3월23일 반전평화연대가 주최한 ‘다국적군의 리비아 폭격 규탄 기자회견’에 불참 의사를 밝혔다. 이제부터 좌파가 제시한 입장을 ▲즉각적인 리비아 개입을 지지하는 입장, ▲비행금지구역은 지지하지만 강대국의 리비아 점령은 반대하는 입장,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제국주의적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구별하여 각각의 논거를 살펴보겠다. 우선 리비아 반정부운동을 민주주의 운동으로 규정하면서도 유엔결의안과 리비아 공격을 지지하는 입장부터 살펴보자. 필자는 세 번째 입장을 지지한다는 점을 먼저 밝혀 둔다. (반정부세력의 일부 핵심집단이 과거 카다피를 축출하려는 서방과 은밀한 관련을 맺고 있고 서방의 내전교사로 인해 리비아 사태가 확대된 것이므로 반정부운동을 민주주의 운동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입장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검토하겠다.) 즉각적인 리비아 개입을 지지하는 입장 먼저 ‘비행금지 구역 설정과 이행은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논자도 카다피 세력의 패배는 서방이 아니라 반드시 리비아인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반정부 세력은 비대칭적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특히 카다피는 공군력에서 월등한 우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서방의 군사개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서방의 군사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빨리 군사개입에 착수해야 한다, 그래야만 반정부 세력의 핵심부가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향후 서방의 군사개입을 축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논자는 대체로 인권을 지지하기 위해 외부의 군사개입을 요청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 그 논거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외부의 군사개입은 유엔 헌장에 담긴 제재 조항이나 최근에 선언된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ion)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즉 기본 인권 보호라는 원칙이 민족주권에 대한 존중이라는 원칙과 최소한 동등하다는 것이다. 둘째, 심지어 그러한 군사개입이 불법적이더라도 그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며 법률보다 우선권을 지닌다. 셋째, 동기보다 그 결과가 훨씬 더 중요하다. 즉 군사행동이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군사행동 배후에 있는 서방국의 이기적 동기보다 우선시해야 한다. 넷째, ‘결과에서의 정의’ 또는 장기적으로 정의를 보장한다는 것은 군사개입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정권을 보장하는 책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방국은 얼마나 오랫동안 비행금지구역을 유지할지, 어떤 다른 형태의 군사개입(곧 지상군 투입)이 시작되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다섯째, 이러한 군사개입이 다른 중동, 북아프리카 정부에 대한 서방의 태도와 비견하여 모순적이고 선택적이라고 하더라도, 무엇이 문제인가. 리비아에 군사개입을 하는 것은 모순에 처하지 않기 위해 개입하지 않는 것에 비해 긍정적 결과를 낳을 것이다. 비행금지구역은 지지하지만, 강대국의 리비아 점령은 반대한다는 입장 다음으로는 ‘민간인 보호를 위한 비행금지 구역 설정을 지지하되 군사개입이 강대국의 리비아의 점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는 입장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입장도 서방의 군사개입이 궁극적으로는 석유 냄새를 맡고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또한 군사개입에 대해 서방이 역사적으로 보인 이중기준이 어떤 모순을 지니고 있는지도 인정한다. 예를 들어 2008-09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공습이나 최근 바레인 사례처럼 친서방 정부에 대해서는 끝없이 관대한 서방의 위선을 보라. 그리고 유엔 결의안이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의지를 제한하는 충분한 안전판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카다피 군대에 의한 대량학살을 막기 위해서는 유엔의 결정에 반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좌파가 추상적 원칙이나 혁명적 공문구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수많은 주민이 죽음의 위험에 닥쳐 있는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찰의 본질과 이중기준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강력범죄가 벌어질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다면 경찰을 부르는 것을 비난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논리다. 따라서 그것은 좌파가 유엔 결의와 리비아 공격이 민간인 보호라는 선을 넘지 않도록 감시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비아의 민중도 지상군 투입을 의미하는 군사개입과 비행금지구역을 구분하고 있고, 서방 강대국의 군사행위가 지닌 위험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행동을 계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입장을 제시한 논자는 서방의 군사개입이 시작된 후에는 ‘폭격 중단’과 ‘봉기세력에게 무기 전달’을 구호로 제시하기도 했다. 즉 임박한 대량살상이라는 긴급한 상황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의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평상시의 입장을 기각했지만 현재 그러한 긴급 상황이 지나갔기 때문에 봉기세력을 보호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토가 엄격하게 비행금지구역을 이행하고 있고 카다피가 대량살상을 자행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약화된 반면 리비아 봉기세력은 핵심지역에서 대중적 기반을 지니고 있다. 둘째, 서방의 지상군이 리비아를 점령하지 않는 한 외부 세력이 리비아의 정치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그런데 현재 유엔 결의안은 리비아에 대한 무기수출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봉기세력의 능력을 제한하고 제국주의 국가가 리비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리비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제공한다.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제국주의적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입장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제국주의적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입장도 강조점에 따라 몇 가지 경향으로 나타난다. 첫째,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서방의 군사개입은 원천적으로 국제법 위반이며 민족주권의 침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비행금지구역은 냉전 이후의 산물이며 강대국만 활용할 수 있다. ▲비행금지구역을 강제할 수 있는 정치적, 도덕적으로 공정한 국제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비행금지구역은 특정 국가의 민족주권 원칙의 위반이다. (1990년대 이라크 사례처럼 이미 정복, 매수, 강압된 정부가 그것에 동의하는 경우만 예외다.) ▲비행금지구역은 반드시 지상공격을 동반하며 이는 민간인 사상자를 초래한다. 민간인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이는 강대국의 근본적 동기가 아니다. ▲비행금지구역 적용에는 항상 강대국의 선택성과 위선이 존재한다. ▲민족 영토주권의 불가침성(영공도 포함된다.)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에 새겨져 있고, 오직 유엔 헌장에 의해서만 그 예외가 허용될 수 있다. (타국 군대의 공격에 대한 방어, 국제평화 위반에 대해 다른 모든 노력이 실패한 후에 취하는 최후수단.) 이러한 보편적 합의는 20세기 중반의 거대한 민주적 격변이 낳은 위대한 민주적 성취물이며 그 후 거대한 탈식민화 과정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민간인 보호 원칙은 비행금지구역뿐만 아니라 특정한 조건에서 지상군 개입에도 활용될 수 있고, ‘사전 예방’이라는 명분도 활용될 수 있다. 리비아 공격은 서방국이 ‘인권이 과도하게 침해당할 경우 특정 국가의 주권을 침해할 권리’를 되살릴 수 있는 기회다. 이러한 관념은 토니 블레어가 옹호한 것이지만 이라크에서 벌어진 재앙 때문에 위기에 빠졌다. 이러한 관념이 부활한다면 서방 강대국은 자신이 정권을 무너뜨리길 바라는 국가를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게 될 것이다. 서방 강대국이 이런 권리를 향유하게 된다면 세계 민중운동은 머지않아 재앙에 노출될 것이다. 둘째, 억압에 처한 민중이 자신의 폭군을 전복할 권리를 존중해야 하며, 이는 곧 그들의 선택의지를 존중해야 하며 그들의 의지를 대체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군사개입을 제외한 다른 형태의 외부적 개입이나 압력, 예를 들어 외교적 압력, 제재, 무기제공이 경우에 따라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대와 지원이 민중의 권리를 대체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전복하는 것은 남아프리카 민중의 과업이며, 이란을 지배하는 샤를 전복하는 것은 이란인의 과업인 것과 같은 이치다. 서방의 군사개입은 이러한 과업을 대체하거나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서방의 비행금지구역 설치와 제국주의적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은 과거 ‘인도주의’를 표방한 군사개입 사례에서 교훈을 찾고자 한다. 몇 가지 교훈을 상기해보자. 첫째, 서방의 군사개입 과정이 개입을 당하는 국가의 민중에 의해 통제될 수 있나.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서방의 군사공격이 유엔이 명시한 ‘민간인 보호’라는 목적에 제한될 것인지는 반정부 세력도 심지어 유엔 안보리도 결정할 수 없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군사작전의 목표물이나 궁극적 전쟁목적은 사실상 작전에 참여한 서방국가가 결정할 뿐이다. 실제로 반정부 세력은 군사작전의 유형, 범위, 수단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도 없다. 결국 이미 개시된 서방 강대국의 군사공격을 통제할 수 있는 세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반정부 세력은 이미 그 과정에서 소외되었다. 심지어 리비아 정부군을 최종적으로 격퇴하기 위해 지상군이 투입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물론 이번 안보리 결의안은 리비아 점령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서방국도 지상군 투입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계속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라크, 아프간도 점령이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우리는 그 전쟁의 결과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둘째, 서방의 군사개입 결과로 이루어진 정권교체가 통일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민중운동의 확장에 기여했나. 현재 반정부 세력은 결코 단일하지 않고 사실상 매우 이질적인 집단들이다. 그렇다면 누가 정권 담당자로 부상할 것인가? 아마도 ‘영어를 가장 잘 구사하고’, ‘미국 의회에 출석해 미국의 군사행동에 가장 깊이 감사의 뜻을 표현할 수 있는’ 집단이 부상하지 않을까. 그들이야말로 서방의 석유회사에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리비아의 지하자원을 제공할 의지로 충만하지 않을까. 과거 리비아 왕가의 자손이나 카다피 정부 관료 출신이라면 가장 적격일 것이다. (반정부세력에 가담한 고위급 관료에는 미국 유학생 출신이 많다. 총리 역할을 하는 마흐무드 지브릴은 피츠버그 대학 박사 출신이고 재정장관직을 담당하는 알리 타루니는 워싱턴대학 교수다.) 심지어 서방과 리비아의 새로운 지배 세력이 리비아에 통일적이며 민주적인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사례처럼 최근 현실을 보더라도 서방 강대국은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전쟁을 치른 국가에 정치적 합의와 경제적 번영은커녕 최소한의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능력조차 매우 빈곤하다는 게 증명되었다. 셋째, 서방의 군사공격이 민간인 살상을 막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주장도 신중하게 검토해보아야 한다. 서방의 군사공격이 ‘인종 청소’와 같은 극단적 폭력을 막는 데 철저히 실패한 경우도 존재한다. 또한 일시적으로 억제효과가 있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서방의 군사공격에 의해 억제된 세력이 ‘반외세’라는 거대한 명분을 얻고 적대적 원한을 누적함으로써 폭력의 악순환이 뿌리를 내릴 수도 있다. 이는 현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상황이 웅변하는 바다. 기실 초기에는 반정부운동이 외부에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방의 보수주의자, 신보수주의자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군사개입 요청에 대해 운운했을 뿐이었다. 반정부 운동 세력은 서방의 개입이 오히려 카다피 세력에게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한다는 명분을 제공하고 지지 세력을 집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리비아의 미래 반정부세력의 핵심 지역인 벵가지의 최근 모습을 보면 반정부 세력이 카다피가 남기고 간 정치적 공백을 이제 부분적으로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과도위원회는 일종의 느슨한 입법부처럼 행동하고 국가과도위원회가 임명한 위기관리위원회가 그 집행부 역할을 하고 있다. 법원 일부가 다시 열려서 카다피 정권의 법률에 따라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은행과 공항도 다시 문을 열었다. 과거가 너무 나빴기 때문에 새로운 질서에 대한 대중적 동의와 참여가 압도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지도자로 지목한 엘리트와 봉기를 주도한 청년들 사이에 간극이 커지고 있다. 과도정부가 주요한 자리를 임명한 주정부 건물 밖에 모여 있는 청년들은 소수 가문이 직위를 독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주민은 과도위원회가 투명성 없이 권력과 통제를 행사하며 각자 믿을 수 있는 친척을 데려와 직위를 주는 모습이 마치 카다피 때와 마찬가지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처음에 국가과도위원회는 자기 기관들에서 일하는 어떤 사람도 선거 출마가 제한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그 후 말을 바꿨다. 과도위원회 대변인은 그런 제한이 위원 30명에만 적용되고 위기관리위원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선거일도 언제일지 모르는 트리폴리 점령 뒤로 미루어졌다. 한편 카다피의 핵심 정치기관이었던 벵가지 혁명위원회는 과거 3,000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이 지금도 벵가지에서 각종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카다피 군대도 이제 공중폭격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반란군처럼 위장하여 군복과 군용차량 대신 민간인 복장으로 소형트럭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 영국이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사막의 들쥐’ 전략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소규모 기병대 전략을 활용해서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석유시설과 군사시설을 공격하고 있다. 또한 이제 곧 사막폭풍 계절이 돌아올 것이다. 나토의 공중폭격 전략이 이제 곧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곧 전황이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나토의 지상군 투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전황에 어려움이 발생하자 반정부군 지도자들은 외부에서 비난할 대상을 찾고 있다. 지휘권이 나토로 이양된 후 나토의 공중폭격 강도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도자 유니스는 “나토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나토에 위임한 권한을 박탈하라고 유엔 안보이사회에 요구하도록 정부에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정부 세력은 점점 더 생존을 위해 외부세력에 의존하고 있고, 이에 따라 봉기는 점점 더 리비아인의 손을 떠나 다른 집단의 것이 되고 있다. 리비아인의 통제 밖에 있는 국제무대에서 벌어지는 서방 강대국의 교묘한 책략에 의해 리비아 동부 주민은 점점 더 서방 강대국이 필요로 했던 희생물이란 처지로 떨어질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
민주노총 내 두 번째 규모(약 14만 명)의 산별 연맹인 공공운수연맹은 산별노조 건설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공공부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운수산업부문과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등에서 복잡한 조직구성만큼 복잡한 논쟁을 겪어왔다.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경로에 대해서도 따라서 논쟁이 거듭되었다. 2011년 4월 현재, 공공운수연맹은 공공운수노조건설준비위원회(이하 ‘공공운수노조(준)’)로 운영되고 있다. 그 산하의 공공노조, 운수노조와 다수의 기업별노조를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약칭‘공공운수노조’)로 통합하는 일정이 상정되어 있다. 출범 시 규모, 통합이 예정된 조직의 통합완료 일정은 다소 조정이 있을 수 있으나 대강의 윤곽이 드러나는 중이다. 현재 추산으로는 2011년 6월 하순 출범시 약 5만여 명에서 시작하여 2011년 중 약 8만여명 규모의 단일한 산별노조로 통합될 것으로 예상된다. 철도, 사회보험(건강보험, 국민연금), 가스, 서울대병원 등 국립대병원,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공공기관노조가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한다. 그리고 화물연대, 민주버스, 민주택시 등 운수노동자, 최근 활발한 투쟁과 조직확대를 경험하고 있는 청소용역 등 다수의 공공부문 직·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함께 포괄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공공운수노조 건설의 의미를 검토하고, 이에 따라 어떤 운동과제가 있을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관련 활동가들의 토론, 현장 조합원 토론이 더 진행되어야 하는 사안인 만큼, 이후 논의를 위한 출발선의 문제 제기다. 공공부문, 운수부문, 그리고 공공운수노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공부문을 정의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논쟁사항이었다. 공공부문은 정부가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공공기관(public sector)을 의미하는가, 혹은 서비스의 성격이 공공적인 영역, 즉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를 의미하는가? 이러한 논쟁은 결국 공공노조의 전체명칭,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이 보여주는 것처럼 후자로 합의되었다. 이는 공공부문 노조가 단지 소유관계상 정부 산하의 공공기관만이 아니라 서비스 성격을 매개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대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이에 따라 그 경계가 모호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다수 포괄할 가능성도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공공기관에 대한 지배, 통제와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가혹하게 진행됨에 따라 공공기관 노조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이 쟁점은 뒤에서 언급할 공공기관 노조운동의 방향과 연관된 문제이다. 한편, 운수부문은 여객 교통, 물류 운수 부문을 포괄하며, 교통·물류망에 개입함으로써 강력한 투쟁력을 실현하고자 한다. 운수노조 설립과정에서 핵심적인 추동력 중 하나는 철도와 화물연대의 연대파업을 통해 물류망을 마비시킬 수 있는 투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적기생산방식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물류 자체가 직접적 생산공정과 긴밀하게 결합함에 따라 이 부문은 노동자에 대한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벌어지면서도 동시에 산업에서 전략적 중요성과 구조적 힘을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철도공사는 가장 큰 공기업 중 하나이면서도, 교통·물류 운수부문에서도 가장 큰 사업자라는 점에서 이중적인 정체성을 가진다. 따라서 철도노조(운수노조 철도본부)는 공공부문에서도 운수부문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공공운수노조라는 기획은 철도를 매개로 공공기관노조와 운수부문노조가 결합하여 투쟁력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공공기관 정체성과 운동방향 한편, 공공운수노조 건설은 공공부문과 운수부문의 통합이라는 의미 이전에, 미완의 공공노조를 완성하자는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애초 공공노조는 2006년 건설 당시 최소한 5만 명 이상의 조직규모를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3만 명 수준으로 출범하였다. 그만큼 다수의 산별 미전환노조가 연맹에 남아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들도 주로 공공기관노조들이었다(대표적으로 서울지하철노조·서울도시철도노조 등 지방공기업과 과학기술노조·연구전문노조 등 출연연구기관노조, 그밖에 발전산업노조·지적공사노조 등 공기업노조들이 있다). 따라서 현재 공공운수노조 건설과정에서 기존에 산별노조로 전환하지 않았던 공공기관 기업별노조들을 산별노조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 중 하나이다. 그런데 최근 기존에 산별노조에 합류하지 않는 공공기관노조도 산별노조 전환을 다시 검토하는 중이다. 공공운수노조 건설을 추진하는 주체들의 설득이 주요한 요인이기는 하겠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지난 수년간 정부에 의한 공공기관 노사관계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고,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을 통해 인력감축과 임금·노동시간 신축화 등 구조조정이 추진됐다. 이에 대한 대응은 개별 기업별로는 어려우며, 공동의 대정부 대응이 중요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따라서 공공운수노조의 산별노조 건설사업의 과제 중 공공기관과 관련된 교섭구조 마련, 구조조정 대응이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공공기관노조들이 요청하는 과제를 산별노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공공운수노조(준) 내에서 공공기관특성협의회(공공노협)의 활동으로 추진되고 있다. 공공기관노조들에게 있어서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대한 공동대응이 산별교섭의 추진력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사업이 추진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쟁점이 있다. 현재 공공운수노조(준)은 이러한 사업을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은 물론 민주당 국회의원을 포함한 ‘의정포럼’, 사회공공연구소,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한겨레경제연구소, 야 4당 정책연구소 등과 함께하는 ‘싱크탱크’와 연대사업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 성과연봉제, 개별연봉제, 유연근무제 등에 대한 대응사업, 투쟁도 전개하고 있으나 방점은 정치대응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정치대응은 민주노총과 유사하게 2012년 정권교체기에 의미 있는 개입, 정권교체를 통해 정책 변화를 실현한다는 기조를 가진다. 공공기관들은 정부의 지배개입를 받기 때문에, 국가정책에 대한 개입은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제도적 개입을 위한 다양한 사업은 중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정치 대응 자체를 노조 사업의 중심에 놓는 활동방향에 대해서는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이러한 방식의 활동은 노조의 기층 조직력을 침식하면서, 조합원 운동보다는 상층조직의 대응을 통한 정치적 해결을 추구하게 되어 노조라기보다는 일종의 로비 조직으로 변모하게 된다. 둘째 민주당 등 신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연대활동은 결국 신자유주의 정책을 뒷문으로 수용하는 것이 된다. 셋째, 이러한 정치대응은 핵심파트너인 민주당 등과 정치연합으로 발전할 수 있다. (더 구체적인 비판은 [사회화와 노동] 513호(2011.04.07.) “야권연대는 만병통치약인가-민주노총의 야권연대와 공공운수노조(준)의 의정포럼 비판” 참고). 공공운수노조(준) 안에서 공공기관 노조가 가지는 비중을 볼 때, 공공기관 쟁점에 대한 대응방식은 공공운수노조 전체의 운동방향을 규정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막아내는 데 있어서 다양한 전술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노동조합 기층 현장조직의 투쟁을 전제할 때 의미가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전술활용에서도 전체 노동자운동의 과제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 시기의 단기적인 전술적 필요가 전략을 대체하고 단기의 성과에 몰두하는 극도의 실용주의에 빠지고 말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노동자운동의 일반적 과제를 (사실상) 폐기하는 방식의 사업을 (단지 ‘전술’일 뿐이라고 해도) 수용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조직 발전 전망 한편, 공공운수노조 건설과정은 기존의 산별노조에 대한 평가가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주로 공공노조와 운수노조의 경험이다. 그런데 그 평가는 썩 후하지 않다. 2006년, 공공노조와 운수노조가 설립될 당시, 특히 공공기관 노조에 대해 산별노조 건설의 주된 설득논리는 규모 있는 조직적 단결을 통한 대정부 교섭과 투쟁, 미조직 비정규직조직화를 통한 조직확대, 사회공공성 운동의 전면화 등이었다. 그중에서 공공기관의 정규직 노조는 전자를 핵심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가능성’은 투쟁을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라기보다는 산별노조라는 조직형태의 완성을 통해서 자동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처럼 선전되었다. 산별노조에 재정과 권한을 집중해주면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유포되었다. 게다가 산별노조 건설 이후 수년간 제대로 된 대정부 투쟁과 교섭을 실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산별노조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되었다. 운수노조의 경우에도 핵심적인 건설 이유였던 철도본부와 화물연대본부의 공동투쟁이 성사되지 못하고, 철도본부의 탄압(100억 원대의 손해배상, 200여 명의 해고자)에 따른 조합비 미납과 재정부족 때문에 조직운영이 마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조건이 반영되어, 공공운수노조 건설 과정에서 산별노조를 강화하기보다는 조직적 단결의 정도를 약화, 후퇴시키자는 목소리가 오히려 커지게 되었다. 산별노조 중앙에 납부하는 조합비 수준을 낮추고 여러 권한을 기업별조직에 부여하자는 주장이다. 어차피 산별노조를 통해 애초에 가졌던 기대를 실현하기가 어려운 이상, (부분적으로) 과거의 연맹과 같은 조직형태로 위상을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따라, 공공운수노조를 설계, 운영할 경우, 실제로 단일노조로서 지향은 약화하고 기업별노조의 연합체인 기존의 ‘연맹’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될 가능성이 많다. 인력과 재정의 집중, 권한의 집중도를 줄이면서 산별노조 소속 사업장을 지원하거나 대정부 교섭·투쟁을 실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전략적인 영역에서 신규 조직확대사업을 추진하거나 영세 사업장의 투쟁을 지원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수년간 공공노조와 운수노조를 통해 조직확대를 달성한 영역이 주로 지역지부 등 초기업지부를 통한 중소 영세, 비정규직 사업장 노동자였다. 노동조합을 통해 계급적 연대를 확대한 조직적 성과다. 그러나 산별노조의 약화는 이러한 성과를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초래 할 것이고, 노조운동의 사회적 정당성도 침식될 것이다. 조직적 집중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주로 기업별 공공기관노조의 전환을 촉진하고, 이에 대한 포괄범위를 확대하자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조직적 권한과 인력, 재정의 집중 없이 포괄범위 확대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은 정치대응과 같은 것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이는 산별노조가 기업별노조의 관행을 산별적, 초기업적인 것으로 확대하고, 따라서 계급적 연대가 쉽도록 단결을 확대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이다. 산별노조를 왜 건설하고자 했느냐는 취지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자본주의의 위기, 어떤 산별노조를 지향하는가 공공노조와 운수노조 건설에서 미완의 기획을 다시 현실화하기 위한 계획을 차근차근 다시 실행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공공노조가 자신의 정체성을 ‘공공서비스부문’으로 확장하면서 미조직 비정규노동자 조직화와 사회운동과 결합을 실현하려 했던 과정, 운수노조가 강력한 조직적 연대를 통해 대정부, 대자본 투쟁력을 극대화하려고 했던 과정은 쉽게 기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각 산별노조는 나름의 방식으로 기업별 운영을 지양하고 초기업적인 단결을 확대해왔는데, 이 역시 중단 없이 추진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러한 과제는 변화된 상황을 고려하여 일부 조정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취지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정당하다면 그것을 실현하는 데 장애가 무엇이었는지를 평가하고, 이후 실제로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이러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조직형태, 재정과 인력의 배치, 권한의 배분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2006년부터 2009년경까지 계속된 조직형식적 논쟁을 그대로 재연할 필요는 없다. (주로 유럽대륙의 산별노조 모델을 염두에 둔) ‘완성된’ 산별노조 모델을 설정하고, 그 달성 여부를 논쟁하는 것은 오히려 산별노조의 운동방향을 상대화하는 부작용이 있다. 조직형식을 먼저 구현하면 운동내용이 변화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운수노조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에서 조직형태와 운영방안은 중요한 쟁점이기는 하지만 조직형식적 논쟁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명칭은 ‘산별노조’라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연합체 조직에 불과하며, 초기업적 운영보다는 기업별 운영을 고착화하고, 더구나 기존의 산별노조 발전전망마저 크게 훼손한다면, 공공운수노조를 건설하고자 한 애초의 취지는 크게 손상될 것임은 분명하다. 기업별노조들이 산별노조의 지부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지만, 그것은 산별노조의 건설취지가 유지될 때에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기업별노조들에게 산별노조의 전망을 제시하는 데도 ‘기업별노조 때와 다를 것이 별로 없다’라고 설득하고 실제로 그렇게 운영하려 한다면, 그것은 산별노조로서 조직발전을 도모하던 조직들이 수년간의 고된 노력조차 퇴행시키는 어리석은 선택이 될 것이다. 또한 산별노조로 단결하는 조직들의 공동투쟁 전망을 세워야 한다. 노동조합들의 단결은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또는 그러한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서 스스로도 조직된다. 공공부문의 주요한 산별조직이 건설되어온 역사는 이를 방증한다. 1994~1995년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에 반대하는 공공부문노조들의 공동투쟁으로 연대운동이 발전한 결과 공공부문 노동조합대표자회의 등을 거쳐 (구)공공연맹이 건설되었다. 전지협 투쟁을 통해 민철노련이 건설되었다. 2002년 기간산업사유화저지공투본 투쟁의 성과로 철도, 발전, 가스 등 주요 공기업노조들이 민주화되고 공공연맹으로 단결했다. 공공노조와 운수노조의 건설은 이러한 연대투쟁에 더욱 힘을 모으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공공운수노조 건설에서도 그러한 투쟁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과제가 합의되지 않는다면, 상층기구의 정치대응이 노조사업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고, 아래로부터 연대를 강화하는 산별노조는 영영 먼 미래의 일이 되고 만다(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경우 산별노조는 딱 그러한 사업에 필요한 정도의 연대체로 머물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공공운수노조 건설과정에 대한 현장활동가들의 비판과 우려는 정당한 측면이 있다. 운수노조 건설에서 철도-화물의 공동투쟁이라는 기획처럼, 공공노조 건설에서 공공기관노조의 연대투쟁이라는 기획을 했던 것처럼, 공공부문과 운수부문의 조직들이 함께 단결하는 이유를 제시할 수 있는 투쟁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단지 ‘전망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투쟁조직화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산별노조 건설의 전제조건으로서 구체적인 투쟁일정을 당장 확정하거나 혹은 건설 직후에 산별 전면파업을 선언하라는 주장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계획과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 조직형식 논쟁이 아니라 그러한 투쟁의 전망제시, 조직화 과정이 바로 산별노조 건설과정이 되어야 한다. 한편, 2011년 공공운수노조(준) 정기대의원대회에는 비록 논의 중인 자료이기는 하나, ‘중기사업계획’ 초안이 제출되었다. 이 ‘중기사업계획(초안)’은 현재 정세에 대해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위기로 보고, 전쟁과 변혁이 확대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 초안이 제시하는 정세 분석은 경제위기의 원인 분석 등에서 일부 쟁점이 있으나, 현재의 경제위기가 체제위기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세분석에 따른 사업계획(‘중기사업방향’의 본문)이나 실제 공공운수노조의 건설 사업은 이것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공공운수노조가 출범하는 지금 시점은 자본주의 성장기의 노자간 양보를 통한 안정적 교섭체계가 가능했던 시기가 아니다. 지금은 세계 경제위기 이후 회복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가혹한 노동에 대한 포섭과 배제가 이루어지는 시기다. 1998년에 이미 경험했듯이 경제위기 정세는 위기 이후 회복 과정에서 자본의 노동에 대한 분할 통제를 공고히 한다. 자본주의 성장을 기반으로 한 계급타협(혹은 그에 적합한 노동자 조직형태로서의 산별노조)보다는 20세기 초반 노동운동이 이념적 지향을 분명히 해가며 미숙련 노동자의 일반노조, 산별노조를 통한 정치적 경제적 힘을 공세적으로 키워가던 시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즉, 계급적 단결을 확대한다는 의미의 산별노조가 필요한 것이다. 이미 2007-2009년 경제위기 이후 이러한 전망은 더욱 현실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기에 추진해야 할 산별노조의 형태는 코포라티즘 체제하에 제도화된 산별교섭을 실현하는 유럽대륙의 산별노조 형태와는 다를 것이다. 오히려 더 이념적으로 급진적이고 연대 지향적이며, 미조직 비정규직(미숙련) 노동자에게 열려 있는 조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건설과정에서 ‘21세기 초 정세에 적합한’ 노조를 추구한다면, 나날이 온건해지는 자신의 노선에 대한 알리바이로서만 ‘사회변혁’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한 구체적인 활동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노조 운동의 이념을 혁신하고 조합원과 활동가들이 공유하기 위한 사업, 새로운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사업, 신자유주의적인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계획과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또한, 보수야당까지 함께 하는 정치대응을 중심으로 현안 문제를 해결하려기보다는 조합원과 함께하는 연대투쟁을 우선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산별노조가 충분히 자신이 제시한 전망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평가는 정당하다. 그러나 그러한 대차대조표가 애초의 전망이 부적절하다거나 포기해도 마땅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라는 변화된 정세에 따라 산별노조의 과제는 새롭게 토론되어야 한다. 기존에 많이 논의되던 서구 산별노조의 모델을 조직형식적으로 적용하려 한다거나, 혹은 그러한 모델의 실패를 산별노조라는 초기업노조 활동 전망 자체의 오류로 등치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공공운수노조의 전망을 새롭게 세운다면, 그것은 기존의 산별노조와도 산별연맹과도, 기업별노조와도 다른 것이겠지만, 후퇴된 것이 아니라 전진된 어떤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사회운동> 100호 특별좌담 일시: 2011년 4월 15일(금) 14시 토론: 김태연(노동전선 집행위원장), 임승철(혁신네트워크 집행위원장), 정종권(진보신당 前 부대표), 이현대(사회진보연대 공동운영위원장) 사회: 류주형(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장) 기록ㆍ정리: 수열(정책위원), 이은주(정책위원) 사회: 사회진보연대는 기관지『 사회운동』 통권 100호 발간을 기념하여 <노동자 정치세력화 평가와 과제>를 주제로 특별 좌담을 기획했다. 김태연, 임승철, 정종권, 이현대 네 분의 토론자를 모셨다.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장석준 연구기획실장의 경우 사정상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린다. 오늘 토론은 편집부가 미리 마련한 질문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주어진 틀에 구애받지 말고 토론자 상호 간에 역동적인 토론을 이어가 주시기 바란다. 정세 진단 사회: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현 정세 개관이 필요할 것 같다. 미국 발 금융위기와 이어지는 유럽 재정위기는 세계 자본주의에 깊은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노동유연화와 FTA 네트워크를 한국 자본주의의 활로로 제시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도 점차 수위가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좌파의 대응은 수세적 대응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현 정세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들려주시기 바란다. 정종권: 유럽 재정위기는 미국 금융위기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세계 자본주의의 결함을 보여주는 고리일 수 있는데, 좌파운동이 이에 대한 시야와 조망이 부족한 것 같다. 자본주의 시스템과 미국의 위기, 유럽의 위기, 한국에서 자본주의의 변화가 체계적으로 얘기되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좌파들도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약점이다. 김태연: 국내외적으로 수세적 대응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2009년 이후의 위기는 최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30년 이상, 한국은 20년 이상 신자유주의의 첨예한 모순이 쌓인 결과다. 그런데 노동 측이 수세적 대응만 하고 있으니까 자본 측은 구조조정, IMF가 내세운 정책, 노동에 대한 공세와 같은 것을 해결책이라 내놓고 있다. 돌이켜 보면 좌파운동은 사회주의 같은 새로운 대안을 대중적 담론으로 제출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 담론이 특화되어 세력 구도를 결정하는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가 대중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수준에서 나타나지만, 좌파진영은 그에 걸맞은 수준으로 대안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정종권: 지금 상황은 전략적 수세 국면이라 본다. 현실 상황을 근본적 문제와 결합시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지만, 수세적 상황에서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우리의 요구조건을 쟁점화하면서 공세적으로 제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97년 IMF 이후 진행된 노동유연화와 관련된 법과 제도를 폐기하고 이전으로 돌리라는 식으로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현대: 한국은 대외여건 변화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수출 의존형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국적 금융자본의 유입, 원화가치의 상승, 주식시장의 거품화, 국부유출과 자본도피라는 위기 메커니즘이 구조화되었다. 지배계급은 경제위기를 구실로 ‘다른 대안이 없다’라거나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우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대중들은 세계적 위기 속에서 부당하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존재한다. 이는 물론 우리 투쟁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패배주의가 짙어진 것과 연결된다. 노동자 민중운동은 유럽의 긴축에 맞선 투쟁이나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민주화·생존권 투쟁과 같이 경제위기의 파괴적 후과에 강력히 도전하고 있지만 구조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경제적 착취가 심화되지만 대안적인 투쟁은 미약하고, 특히 조직된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통해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을 통해 과실을 분배받으려는 사고가 커지고 있다. 착취가 강화되지만 계급투쟁이 폭발하지 못하는 이유다. 또한 제국주의 침략전쟁과 동아시아의 군사 긴장 고조, 광우병·구제역·조류독감, 가뭄·홍수·지진해일, 핵발전소 폭발과 같이 전쟁, 생태나 기후변화 같은 문제들이 함께 터져 나오고 있다. 경제적 착취, 즉 자본-임노동 관계에서의 계급투쟁이 중요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촉발되는 이런 문제들의 중요성을 함께 봐야 한다. 최근 핵발전소 사고 후에 삼척과 경주, 울주군 등 핵발전소 인근의 핵발전소 유치 및 수명연장 반대운동 등이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경제적 착취에 대한 계급투쟁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이런 문제들에 대한 대중적 투쟁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치적 기획이 필요하다. 임승철: 세계는 현재 대 전환기에 있다. 미국 주도의 일극 신자유주의 체계가 파산했다. 객관적인 정세가 진보운동에 기회로 다가오고 있지만, 주체의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한국도 국제 금융시스템에 깊숙이 예속, 편입되어 있기에 당연히 양극화가 심화되고 위기의 심화와 폭발로 나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진보세력이 명확한 대안을 주지 못하니까 자본은 구체제로 회귀하려는 반동적 모습을 보인다. 이명박 정권은 노동에 대한 전면 공격을 통해 운동 진영을 약화시키고, FTA 네트워크와 같이 기득권 중심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방어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는 미국 중심의 서구 제국주의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반동적으로 개입해 구체제로의 회귀를 꾀하려는 리비아 사태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민중운동의 현황 사회: 이반의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급진화시켜낼 수 있는 세력이 부재하다는 것이 공통적인 진단인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 민중운동 현황을 진단하면서 현 정세에 대해 좀 더 구체적 얘기를 나눠보자. 지난 4월 8일 상설연대체 ‘세상을 바꾸는 민중의 힘(준)’이 출범했다. 출범에 이르기까지 줄곧 쟁점이 되었던 것은 자유주의 세력과의 제휴였다. 상설연대체 건설 과정에서 드러난 민중운동의 상황에 대한 의견을 부탁드린다. 김태연: 작년 1년 동안 논의를 거쳐 출범 준비위가 발족은 했지만,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간의 과정은 상호 간 입장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문구 상 ‘민주당’을 삽입하는 문제를 놓고 반쪽짜리로 가느냐 마느냐 까지 갔다. 한국진보연대에 이어 또다시 반쪽짜리 상설연대체라는 상황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없었다면 자민통 진영은 그냥 갔을 것이다. 작년 지자체 선거나 올해 재보궐 선거 등을 보아도 민주당과 같이 해야 한다는 자민통 진영의 입장이 굉장히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상설연대체가 과연 얼마만큼 기층 민중의 공동투쟁체로서의 자기 역할을 할 것인가에 있어 이 문제가 계속 걸림돌이 될 것이다. 아직은 운명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현대: 논의과정에서 상설연대체의 목표에 대한 명백한 시각차이가 확인되었다. 소위 좌파세력의 경우 상설연대체 건설은 대중조직을 중심으로 반신자유주의 전선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진보연대로 대표되는 자민통 운동의 다수는 외형적으로는 공동투쟁의 활성화를 말하면서도 2012년 정권교체를 위한 반MB, 반한나라당 연합의 하위 파트너로서 상설연대체를 사고하는 경향이 강했다. 지난 1년여 논의 과정에서 논쟁이 첨예하게 진행된 핵심 이유다. 임승철: 상설연대체 논의를 보면서, 우리 운동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자유주의와 연대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는데도 민주당을 굳이 명기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문제가 있다. 민주당이 신자유주의 세력이라는 것이 명백한데, 양보할 수 있는 것을 너무 경직되게 대응한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적 단결이다. 또한 정치적 연합 문제는 아예 논의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본다. 투쟁을 함께 하고, 정치적 연합과 선거는 개별 단체들이 알아서 하면 되는 문제다. 사회주의 정당 등 정치적 입장이 다양하고, 특히 야당과의 제휴 방침은 모두 다른데 무리하게 합의하려 하면 안 된다. 아직은 상설연대체가 상층의 협의체 수준에 불과한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공통점을 찾아 연대하면서 대중의 관심과 격려에 화답하는 모습, 논쟁을 최소화하고 내부 분열을 조장할 소지가 있는 논쟁의 싹은 미리 없애버리는 과정으로 가야 한다. 정종권: 생각이 다르다. 이 논쟁이 시작된 바탕에는 한국진보연대에 대한 평가가 깔려 있다. 한국진보연대가 전선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는지, 우리 운동에 전선체가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 전선조직이 우리 운동의 발전과 대중운동의 활성화에 도움을 주었냐는 질문을 해보면 회의적이다. 우선은 연대조직, 전선조직이면 차이가 공존하며 상호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좌파는 사실상 포장지나 데코레이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또 하나는 대중운동을 촉발하는 것이 아니라 생색내기 식의 연대 사업을 진행했다는 평가가 있다. 대중운동에 대한 리더십이 부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그동안 드러난 전선 조직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시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맺는 관계보다 못한 상황을 돌아봐야 한다.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합 문제는 불안감이 핵심이라고 본다. 지금 얘기되는 상설연대체는 민중조직이고 민중연합이다. 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 개별적 필요에 의하면 민주당과 사업도 하고, 정당도 필요하면 선거연합 정치연합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설연대체는 그런 주체가 아니고 민중진영을 단결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정당들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합이 상설연대체의 자기 과제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해야 한다. 김태연: 막연한 불안감이나 과거의 경험을 넘어서는 문제가 있었다. 상설연대체 제안 주체인 민주노총은 2012년으로 가는 흐름에서 야당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있고, 조직구도까지 갖고 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범국민운동본부 구성안을 갖고 있었다.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범국민운동본부에 상설연대체가 민중운동 진영을 대표하는 한 구성요소로 참가하는 그림이었다. 선거연합이야 정당들이 하는 문제지만, 상설연대체 자체를 그 구도 안에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있었기에 현실적인 문제였다. 상설연대체 논의 과정 초기에는 6.15, 10.4 선언을 당면 투쟁과제로 넣을 것인가의 문제가 불거졌다. 핵심은 통일운동을 할 것인가가 아니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6.15, 10.4 실천을 이유로 당면한 노동자민중의 과제를 하위로 놓았던 점에 대한 평가다. 그러다보니 논란이 되었고, ‘반통일’ 입장이냐는 비난까지 나왔다. 반통일은 아니니까 6.15, 10.4 선언에 포함된 통일운동의 핵심은 수용하되, 6·15, 10·4 선언의 한 주체인 민주당에 대한 태도는 확실히 하자는 안이 대두되었다. 상설연대체의 성격이 전선체인지 투쟁체인지를 두고도 많이 부딪혔다. 지속적으로 전선체 구성을 전략적 과제로 삼는 동지들이 있지만, 모든 민중운동 세력이 그렇게 실천하는 것은 맞지 않아 대중의 투쟁체여야 한다고 정리했다. 1, 2년 안에 대중투쟁체를 건설할 수 있는지, 대중투쟁체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과거처럼 노농빈 대중이 강력한 대중투쟁을 전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선거에서 야 4당과의 연합을 고려하면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상설연대체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상설연대체가 민주당과의 연합에서 분명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흐름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이것이 논쟁에 반영되었다. 정종권: 이전부터 논란이 되어왔던 6.15, 10.4 문제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 집권 세력의 정치적 결과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반도에서 남북문제를 풀어가는 일반 민주주의의 측면이라는 것이다. 후자만 강조하면 김대중, 노무현에 대한 일정한 인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졌을 때 이를 신자유주의자가 추진한다고 반대할 수 없듯이, 그것에 대한 지지가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김태연: 그것은 분명해졌고, 해소된 쟁점이다. 이현대: 향후 민중의힘(준)의 활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전국민중연대 활동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전국민중연대는 반신자유주의 공동투쟁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활동 후반으로 가면서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첫째로, 특정 정치적 경향으로 구성된 사무처가 전국민중연대 내부의 정치적 합의를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기 보다는 시민운동과 먼저 사업기조를 합의한 뒤, 그 내용을 민중연대 내부에 관철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함으로써 내부 갈등이 심화되었다. 둘째, 대중조직의 결합력 약화라는 문제에 직면하여 광역단위 및 시군구 민중연대 운동에 대한 지원, 기층 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기획을 마련하지 못한 채 ‘대의원대회’ 구성을 통해 방침을 강제하려고 하면서 갈등이 증폭되었다. 셋째, 시민운동이나 영향력 있는 상층 단위에게는 민중운동의 입장을 많이 양보하면서까지 밀착했지만, 비정규직 운동, 반빈곤운동, 인권·문화운동 등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다양한 운동 흐름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했다. 지금도 여러 운동들이 공동투쟁의 절박함 때문에 민중의힘(준)에 참여하고 있지만, 기존 활동에 대한 평가에서 시각차가 분명한 탓에 불안정한 출발이 되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대중조직 對 정치조직’의 문제로 부당 대립시키는 경향이다. 정치적 이견은 대중조직 내부에도 실존하고 있기 때문에 부당 대립하여 상대의 입장을 억압해서는 안 되며 상호합의와 조정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현실 사회: 비슷한 맥락에서 초점을 노동조합 운동에 맞춰보자. 최근 민주노총의 사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야4당 공조를 강조하는 것이다. 노동법 개정, 비정규직 문제, 한미 FTA와 같은 굵직한 정치적 현안뿐만 아니라 현장 투쟁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공공운수노조(준)도 민주당 의원들을 포함한 ‘의정포럼’을 출범시켰다. 노동자운동 내에서 야권연대 흐름은 비단 특정 정파만의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임승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노동운동의 분열과 개량화를 목표로 했다. 이명박은 민주노조 자체를 무력화, 말살하려고 한다. 민주노총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것이다. 민주노총이나 민주당은 서로를 활용하려 한다. MB독재 체제하에서 야4당 공조가 불가피한 면이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대중적 힘을 복원해서 자기중심성을 잃지 않고 ‘묻지마 반MB연대’로 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6·2 지방선거를 보면 우려스럽다. 총노동전선의 복구가 시급하다. 정종권: DJ나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을 개량화ㆍ체제내화시키는 것과 함께 극단적 세력을 배제하는 강온전략이 함께 갔다. 이명박 정부는 다른데, 현재의 배제전략에 대한 노동운동의 돌파력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 민주노총은 대중운동을 정치화시키면서 활성하는 탈출구로 진보정당을 비롯한 야당공조를 사고하는 것이다. 이는 대중운동 쇠퇴의 효과이자 정치적 실리주의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김태연: 진보정당과의 공조는 문제 될 것이 없으니, 문제는 민주당과의 공조다. DJ,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차이를 엄밀히 따져보자. 본질이 다르지 않다는 환원론이 아니다. 구체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명박 정권이 이전 신자유주의 정권과 차이가 있는가? 통일운동이나 시민운동에 대한 태도는 확연히 다르지만, 노동운동만 놓고 보면 별 차이 없다. 투쟁이 안 되니 민주노총은 일종의 우회로라 할 수 있는 야4당 공조를 찾고 있다. 상황논리상 그럴 수는 있지만, 기본적인 것을 해야 한다. 공공운수노조 산별 흐름을 보자. 최근까지 엄청난 공세를 받으며 모든 것을 다 뺏겨 버렸지만, 투쟁을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운수노조(준)가 제일 먼저 의정포럼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투쟁을 포기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민주당에 대해 갖는 태도가 지금과 다르다면, 노동조합이 이렇게 갈 수 있겠나.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보정당이 민주당과 선을 긋는다면, 대중조직이 이렇게 야4당 공조에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진보 양당이 이런 정치노선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배타적 지지 방침을 갖고 있는 노동조합 역시 그런 길을 가는 것이다. 이런 역학 관계가 분명하고 작용하고 있다. 이현대: 김태연 동지 말씀에 대체로 동의한다. 민주노총이 노동조합의 대중 동력을 형성하고, 총노선 전선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없다. 타임오프, 복수노조 등 노조법 개악 관련해서도 법 개정을 위한 야당과의 상층협의가 있을 뿐이며 총노동 전선이 부재한 조건에서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 각개격파 당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투쟁의 지도부라기보다 국회의원들 교섭 중재단의 역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중운동의 이념 평가 사회: 다들 말해주셨다시피,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민중운동은 ‘반MB 연합’이나 ‘복지동맹’을 중심으로 진보·개혁 세력의 제휴를 추진하는 것이 주류인 것 같다. 이념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평가 의견을 부탁드린다. 임승철: ‘반MB 반신자유주의 연합’과 ‘반MB 연합’은 다르다. 반MB로 화력을 집중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방향을 잃으면 안 된다. 민주당과의 연대도 선택적 제휴가 되어야 한다. 필요할 때 신자유주의 세력 내부의 갈등과 모순을 이용해서 반신자유주의 세력의 힘을 강화하는 전술적 차원의 반MB 연합이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속한 민주노동당은 이런 노선을 잘 견지하지 못했고, 6.2 지방선거 때는 빛 좋은 개살구 신세였다. 반MB 연합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그 자체가 아니라 ‘잘못된 반MB 연합’이다. 공동 지방정부를 구성할 경우 진보정치 자체가 실종될 수 있다. 인천은 아니지만, 경남은 공동 지방정부를 꾸리고 있다. 자칫 진보의 독자성을 잃고 뿌리까지 녹아버릴 수 있어 우려스럽다. 반신자유주의라는 명확한 기치 하에 반MB 연합을 해야 한다. 복지동맹은 그 자체를 반대한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얘기하는 보편적 복지, 역동적 복지는 신자유주의 체제 내에서는 사기다. 경제구조 개혁과 같이 고용과 생존권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바꿔나가는 정책하에서 복지가 제시되어야 한다. 요새는 복지가 담론이 되다 보니 ‘고용복지’ 등 모든 말에 복지가 붙는다. 원래 복지는 재분배 영역과 관련되는데, 요새는 1차 영역까지 복지로 얘기된다. 그만큼 삶이 힘들다는 얘기이니, 복지의 개념을 기능적으로 차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민주노동당은 ‘노동중심의 평화복지’, 진보신당은 ‘노동중심의 사회연대복지국가론’을 제시하고 있다.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의 말도 안 되는 복지와는 분명 다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이 말하는 복지동맹, 즉 자주, 평등, 생태, 평화 등의 모든 가치를 복지 하나에 종속시키는 것은 결코 옳지 않으며, 복지에 있어서도 명백히 다르다. 정종권: 반MB 연합이나 복지 동맹도 필요하면 할 수 있다. 그러나 반MB 연합에 매몰되어 진보정치와 진보정당의 해소라는 방향으로 가서는 절대 안 된다. 복지가 화두가 된 원인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데, 결과만 보는 것은 한계적이다. 여기에는 ‘연합정당론’이라는 쟁점이 숨어 있다. 이는 곧 진보정당 해소론으로, 연합정치와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 연합정당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반MB 연합의 불가피성이나 절대성, ‘복지로 헤쳐 모여’가 강조된다.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의 가치에 대해 진보신당은 3대 가치와 10대 강령을 제시했다. 신자유주의, 분단, 생태, 여성, 진보적 가치, 노동문제 등 이런 것에 동의하는 진보독자정당을 유지하는 가운데 필요하면 사안별 연대를 사고할 수 있다. 그러나 반MB나 복지담론으로 진보정치를 규정하거나 재편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현대: 의도와 무관하게 현 정세에서 복지담론이 사회운동의 이념 노선으로 등치되는 효과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이런 현상은 없었다. ‘복지국가’는 이념 노선적 차원에서 보면 사회민주주의 전략이다. 이는 자본주의 호황기에 일부 유럽국가 및 소수 중심부 국가에서 강력한 노동자정당과 노동조합 운동을 배경으로 일정한 사회적 평등과 재분배를 달성했지만, 현재는 자본주의의 장기불황 국면을 배경으로 복지국가 또한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 복지 혹은 복지국가 담론이 확장되는 것은 경제위기와 이에 따른 구조조정과 저임비정규직 노동자의 확산 등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임금소득 하락 등 생존의 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복지’ 일반에 대해 거부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현재 부르주아 정당들의 구상과 대중들의 요구 등을 고려하여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서 ‘복지국가’ 전략은 현실 가능성 측면에서나 운동 주체 형성의 측면에서나 진보 민중진영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경제위기, 노동자대중의 생존의 위기라는 조건에서 ‘복지’ 혹은 ‘공적 서비스’로서 교육, 의료, 주택, 에너지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분석과 대안제출이 필요하다. 득표 전략으로서 정치적인 대중동원, 조세정책을 둘러싼 정책대안 중심의 ‘복지경쟁’에 포섭되지 않고, 대중을 운동주체로 세우기 위한 운동기획이 필요하다. 김태연: 반MB 연합과 복지동맹이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노동에 대한 배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복지문제에서도 노동계급의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구조나 반MB 연합을 보면 한국 사회 구조의 핵심적 문제인 계급 대립의 문제를 희석시키고 있다. 반MB 연합은 민중운동의 생존 전략이라기보다는 정당들의 자기 생존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반MB 연합이 진보신당이 제시한 3대 과제, 10대 강령의 내용으로 가고 있나. 정당 간의 연합에서는 의석이 없으면 찬밥 신세가 된다. 이를 고민하다 보니 노동자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제도권 내에서 정당으로서의 시민권을 확보하는 생존 전략이 우선한다. 노자 간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 의제 형성이나 집중이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임승철: 동의한다. 복지 문제에서 전략적 차별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천적으로는 우편향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정당이나 정치에서 복지담론에 대한 개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링 위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복지를 갖고 전체 대중의 여론을 좌우할 때 고춧가루를 뿌리든, 판을 새로 짜든 개입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너희의 복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노자 간 근본적 모순, 경제적 원인을 지적하지 않는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노동중심의 평화복지나 사회연대복지 등을 이야기해야 하는 전술적 측면도 있다. 김태연: 박근혜조차 복지카드를 들고 나온 마당에 진보정당이든 민중운동이 복지의 허구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한다. 복지담론에 끼어드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동맹, 연대연합의 수준으로까지 가는 것이 아까 말한 문제를 초래한다고 본다. 정종권: 제도권 내에서 정치적 시민권을 확보하는 것은 정당에 중요한 문제다. 의석은 없어도 된다. 국민참여당도 의석 없다. 정당지지율로 표현되든 의석으로 표현되든 제도권 내에서 정치적 시민권이나 존재감이 없으면 배제된다. 반MB 연합 내에서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은 배제당하거나 억압당한다. 일방적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시민권과 힘을 가져야 한다. 그 힘의 근원은 한편으로 비제도적 투쟁 세력과의 연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연대다. 따라서 양당이 정치적으로 분할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과 대등한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반MB 연합이라는 것이 전략적 과제가 된다. 전략적 과제로 격상되면서 반MB 연대에 흡수되고, 진보정치의 가치가 묻혀 버리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연합의 조건이 안 된다면 깨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가다보면 민주노동당은 정치적으로 소멸하고, 진보신당은 물리적으로 소멸하는 양상으로 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진보정당, 통합 정당으로 가면 주도권을 바로 장악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흐름을 늦출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제도권 정당 집착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반MB 연합이라는 것은 필요하면 할 수 있지만, 무조건 하면 안 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저도 반성해야 하겠지만, 민주노동당이 많이 고민해야 한다. 김태연: 정당이든 노동조합이든 자족적 활동은 의미 없다. 절대다수 민중의 동의와 지지로 이기는 것이 운동이다. 사회에서 시민권,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가 중요하다. 반MB 연합이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단기적으로도 그렇고 몇 년 이후 뭐가 남을 것이냐. 지금은 물리적 소멸을 논하기에 앞서 정치적 소멸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이현대: 복지 관련해서 또 지적할 것은 성격상 한정된 재원으로 인해 특정인을 선별해서 지원하며, 대단히 시혜적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정권과 자본에게 복지는 대중적 저항의 관리체계로서의 성격이 크다. 임금투쟁 과정을 보면, 실리적 결과는 임금 인상이지만 투쟁 과정에서 의식화, 조직화를 통해 노동자대중을 주체화하고 단결을 확대하는 데에 운동적 목표를 두고 있다. 우리가 교육, 의료, 주택 등 복지의 문제를 제기할 때 ‘실제 대중을 어떻게 주체화시킬 것인가’, ‘단결과 연대를 확장할 것인가’하는 대중운동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 대중운동 기획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한나라당, 민주당 등 신자유주의 세력들이 표방하는 복지는 노동유연화 또는 ‘유연안정성’을 전제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비판해야 한다. 노동유연화, 저임비정규직의 확대를 전제하는 복지정책은 대중에 대한 기만이며 대중적 저항을 봉쇄하는 효과를 낳을 뿐이다. 이행적 과제와 요구 사회: 복지 문제는 대중의 현실적 요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대안사회의 상이나 이념을 주장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대중 요구와 결합시켜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먼저 오늘날 정치사회운동이 대중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대안사회의 이념과 상이 무엇인지 의견을 부탁드린다. 그리고 그것을 연결할 수 있는, 전통적으로 말하자면 이행적 과제, 이행적 요구라고 할 수 있겠는데, 기본소득, 사회연대임금, 노동시간단축 등과 관련한 논의도 부탁드린다. 정종권: 대안사회라는 것이 시스템과 운영 원리를 다 정해놓고 ‘이거다’라고 말할 것은 아닌 것 같다. 경제든 생태문제든 고용 현장이든 나타나는 갈등과 모순을 해소할 수 있는 흐름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연대국가, 평화복지 국가 등 얘기하는 것의 공통점은 빈부격차든 개인의 궁핍화든 이 문제에 대해 이전에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와 국가의 능동적 역할을 찾는 것이 하나의 흐름인 것 같다. 그것이 진보신당에서는 사회연대국가인 것 같다. 이것의 내용이 이념적으로 사회주의인지 사민주의 지향인지는 답을 잘 못하겠다. 이행적 요구, 쉽게 말하면 대안사회로 가는 데 핵심적인 제도적 정책적 고리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10대 실천 강령으로 노동, 조세 문제, 교육 문제, 금융자본 재벌해체 등 몇 가지를 얘기하는데, 이를 압축시키는 이행적 요구에 대해서는 고민이 더 필요하다. 임승철: 비슷하다. 위키백과를 보면 민주노동당이 중도좌파 정당으로 규정되어 있다. 대중들이 중도좌파, 사민주의 정당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유럽적 사민주의와는 다른, 민족주의적 요소가 있는 한국적 사민주의다. 혁신네트워크는 사민주의가 우리 사회의 과학적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보지만, 같이 연대해서 견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사적으로 사회주의가 쇠퇴하여 수세에 있고, 과학적 대안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잠복기, 모색기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혁신네트워크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노동존중사회’를 제안했다. 옛날엔 노동해방을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이 안 먹힌다. 거북스러워한다. 노자 문제를 의제화하고 계급 정치로 구성하는데 적합한 개념을 고민하여 노동존중사회를 제시했다. 의외로 좀 먹히더라. 자신들이 갖고 있는 이념을 대중적 용어로 바꾸려는 고민이 필요하다. 제가 쓴 책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협동경제론을 제시하고 있다. 아직도 사회주의 경제에 대해 역사적 실험이 대중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시장만능주의는 당연히 답이 아니다. 그렇다면 협동경제·국유화·사적 시장부분이 상호작용하면서 과도기적 혼합경제체가 당분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사회협동경제론을 제시했다. 이는 사회연대국가와 비슷한 것 같다. 정치적으로 참여자치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부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협동경제와 참여자치를 묶어서 무엇이라 할지는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은 반대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와 노자관계의 모순을 희석시킨다. 복지동맹이 갖고 있는 전략적 우편향으로 빠지기 쉬운 개념이다. 완전고용으로 가면서 비정규직의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 일차적으로 국민의 고용과 생활이 안정되고, 소외된 부분에 복지가 적용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860만을 놔두고 기본소득을 주겠다는 발상은 현실과 맞지 않다. 유럽에서의 기본소득은 애초 보편적 복지를 축소시키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공격이었다.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사회연대임금, 노동시간단축 등이 유효하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이현대: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유일한 시도가 사회주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역사적인 사회주의 운동은 실패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권력과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토대로 하여 생산과 사회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민주적 통제가 중요한 요소였는데, 역설적으로 정당이 국가권력을 장악한 이후 대중정치를 억압하고 자본주의적 질서로 재통합되는 결과를 낳았다. 현재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은 공적 소유관계의 확대를 비롯한 일부 제도적 장치를 도입한다고 해결될 수 없다. 자본-임노동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 착취를 토대로 생산된 잉여가치에 대한 처분의 권한, 노동력 사용을 축소하는 기술진보의 방향을 비롯한 핵심적인 부분을 모두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고 있는데, 국가권력의 장악과 더불어 이에 대한 노동자의 민주적 통제를 바탕으로 자본-임노동관계를 폐절하는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 사회주의 노선이다. 한편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임노동 문제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착취관계와 결합된 전쟁과 핵무기의 위험,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 생태파괴, 종교 인종 민족적 갈등의 심화 등 인류의 생존과 평화를 위협하는 다른 모순들을 키워왔다. 이러한 모순들은 자본-임노동 관계의 폐절을 통해 자동적으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회주의적 변혁은 반전 반핵 평화주의, 페미니즘, 생태주의, 국제주의, 반인종주의와 같은 보편적 가치와 결합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자본주의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식민지 해방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이 분출했던 100년 전과는 다르게 대중정치가 취약한 상황이다. 관건은 대중운동, 대중정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행적 요구라고 할 수 있을지는 토론이 더 필요하겠지만, 두 가지 과제가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첫째,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분할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규직 비정규직의 공동투쟁과 계급적 단결을 매개할 수 있는 요구와 투쟁이 중요하다. 정액임금제와 같이 노동자 간 임금격차를 축소하기 위한 요구와 정규직 비정규직, 원하청 공동투쟁을 기획해야 하며, 공단조직화 등을 통해 최저임금제도의 한계를 넘어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인상 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둘째,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 하에서 심각한 국부유출과 자본 소유권의 절대화, 노동권 파괴를 초래하는 FTA에 대한 투쟁, 초국적 자본 및 외환거래에 대한 통제방안, 상업은행의 겸업화·자통법·금산분리 반대 등 한국사회의 구조적 변혁을 위한 매개를 확보하기 위한 대안과 투쟁이 중요하다. 김태연: 사회주의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필요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 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이 실제 느끼고 있는 것을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지가 중요한데, 사회주의 말고 다른 개념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소련 붕괴 후 그리 긴 세월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상당히 잊혀졌다. 방식은 다르지만, 남미에서 사회주의가 또다시 하나의 대안으로 대중적으로 논의되고, 실험되고 있다. 지금은 고립적일지 모르나 사회주의가 시민권을 획득해가는 과정으로 사고되어야 한다. 단기간에 승부를 볼 게 아니다. 이행기 요구라는 것도, 대안사회에 대한 지향을 한 방에 나타낼 수 있는 건 없다고 본다. 다양한 대중의 삶과 정치 체계 등이 복합된 문제다. 러시아의 경우에 빵·자유가 있었는데, 이것이 모든 걸 대변하는 건 아니었다. 핵심은 당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삶을 압박하는 가장 절박한 문제를 찾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포괄하면서 사회적 지향까지 담은 요구를 찾는다는 것은 무망한 얘기다. 지금의 조건에서는 비정규직과 고용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예전보다 훨씬 후진적 요구라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면 사회주의로 가는 것이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자본주의의 문제를 가장 근본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본다. 이와 함께 제기해야 할 것이 있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문제가 그것이다. 전면적으로 제기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최소한 대기업의 독점적 소유의 문제는 대중적 공감이 있다. 이를 핵심적으로 제기해 나가야 한다. 시장 문제의 경우 사회공공성이나 사회적 통제 관련한 얘기들이 있는데 이행기적 요구로서 부족하지는 않다고 본다. 정치체제의 경우 의회주의 틀 내에 편입되기에 앞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취약점인 민중자치, 민중적 통제 등 현실적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런 서너 가지 문제들은 핵심적 고리들과 연결되어 통합적으로 제기될 수 있다. 임승철: 김태연 동지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공산당이 동유럽이나 현대의 미국, 일본에서는 이미 낡은 것으로 상징화되어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공산당이나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가치가 옳을 수는 있어도 그것을 어떻게 대중에게 개념으로 제시할 것인가는 역사적 산물로 봐야 할 것 같다. 언어가 무기고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개념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김태연: 저는 사회주의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역사적 문제로 인해 선입견 같은 것이 있다. 그런데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기각해야 할 정도로 대중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 의문이 든다. 정종권: 반자본주의, 탈자본주의 지향의 운동이 사회주의라는 것은 일종의 두괄식 논리다. 고민해야 할 것은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주의는 뭐다’라는 미괄식 설명이 필요하다. 생태주의, 여성주의, 노동자들의 자기 통제의 역사, 정치적으로 참여민주주의 등이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주의다라는 식의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김태연: 사회주의와 사민주의 사이에 이행적 요구 차원에서는 별 차이가 드러나지 않을 거라 본다. 대안 사회의 강령을 본다면 100개 중 80개 이상은 일치할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이행의 과정과 정치체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당의 문제에서 차이가 날 것이다. 사회: 오늘 토론에서 다 해소될 수 있는 쟁점은 아닐 것이고 이후 논의를 해 나가기 위한 전제의 확인이었다고 본다. 덧붙이자면 오늘날 세계화라는 객관적 현실 속에서, 우리가 대안 사회를 고민한다고 했을 때 우리의 고민과 실천은 일국적 수준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겠지만, 국제주의적 관점에서 재구성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고 본다. 현안인 FTA도 그렇고 비정규직도 생산의 국제적 이전, 하청기지화의 문제도 뗄 수 없기에 우리 사회운동의 고민이 깊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럼 이제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평가 사회: 대중운동이 침체된 상황에서 진보대통합 또는 새로운 진보정당이라는 화두가 민중운동 전반을 압도하고 있는 것 같다.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본디 노동자운동이나 전선운동의 발전과 긴밀히 연관되는 문제라고 할 때, 우선은 진보정당 운동으로 환원되지 않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역사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지난 시기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평가 의견을 들려주시기 바란다. 김태연: 정치세력화는 정당운동으로 환원되지 않는, 노동계급의 역량 발전을 의미하는 포괄적 개념이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계급의 역량 확대 속에서 정치세력화가 시작되었고, 이후 정치세력화의 발전도 노동계급의 역량 확대 속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96-97년 노개투 총파업 시기, 요구를 쟁취하지 못하니까 우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당을 만들자는 논리로 갔다. 산별운동도 원래는 제대로 투쟁하고자 했던 것인데 왜곡되어 자본가들과의 교섭테이블을 확보하려는 방식으로 갔다. 양날개론의 산별노조-진보정당 양자 모두 그렇게 갔다. 물론 대중투쟁 자체가 바로 정치권력 장악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투쟁의 활성화와 저변 확대 속에서 정치세력화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대중투쟁은 축소되고 의석 확보를 위한 선거 중심의 구도가 되었다. 그동안 신물이 날 정도로 반복한 얘기지만, 여전히 이것이 냉정한 평가일 수밖에 없다. 정종권: 사회자가 던진 질문이 이미 답을 깔고 있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노동운동의 정치화, 노동운동의 정치투쟁은 같은 말이라고 본다. 범주를 넓히면, 노동조합이 노개투 투쟁하는 것도 정치투쟁이고 정치세력화 활동의 일환이다. 백기완 후보 지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이런 부분은 정치세력화가 아니고, 정당 내부에서의 활동만으로 규정되고 있다. 노동운동의 정치화, 정치투쟁의 역사를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을 분리시키려는 사람들 중에는 좌익적 판본과 우익적 판본이 있다. 김태연 동지는 좌익적 판본인 것 같다. 우익적 판본은 노개투는 노동조합의 역할이고, 당에는 다른 역할이 있다는 식이다. 둘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진보정당을 만들고 어떤 정책과 이슈를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는 바깥에서 노동자 투쟁과 어떻게 접점을 만들 것인가로 고민되었어야 한다. 그동안 진보정당 운동은 노동자운동을 조직 만드는 벽돌 역할로만 생각했다. 노동자를 주체화, 활성화시킬 고민이 없었다. 제2의 정치세력화에서는 그런 사고가 있어야 한다. 당의 입법 활동과 조직 활동, 외부의 노동자 투쟁과 주체화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가 이후 과제가 될 것이다. 김태연: 정치세력화 개념 설정에 대해서는 정종권 동지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느냐 평가가 문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정당을 만들어봐야 의회주의 정당이 되는 것이 뻔하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좌익적 버전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제 얘기는 그게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정당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정당운동이냐, 실제 의회주의 정당 활동을 한 것이 문제다. 정당이 선거나 의회전술을 구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데, 솔직히 그것 말고는 한 것이 없다. 처음 시작할 때 분명 투쟁정당으로 얘기했다. 집회 때 마다 표가 없어서 패배했다고 반복해왔다. 대중정당의 투쟁은 분명 노동조합 투쟁과 다르다. 하지만 당 지도부가 집회에 와서 생색내는 것 말고 한 게 없다. 작년 진보신당 서울시당의 일상적인 비정규문제 관련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당 운동이 기존 제도권 정당과 달리 지난 10여 년 동안 일상적 투쟁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면, 당 지도부가 벌써 몇 명은 구속되었을 것이다. 정종권: 사실 관계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의회주의적 경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10년 역사는 대중투쟁에 적극 결합하고 당원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투쟁 동원도 못하는 상황이다. 김태연: 대중조직의 투쟁에 일부 당원들이 결합하는 것과 당 차원의 대중투쟁을 전개하는 것은 다르다. 정종권: 서울시 무상급식 조례제정 운동을 당이 주도하고 10만 명을 조직했다. 새 진보정당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지금 분당으로 인해 이런 대중 투쟁을 만들어낼 역량이 안 된다는 점 때문이다. 조직 활동에서 실천활동, 투쟁사업이 80% 가량이고 의회활동 비중은 20% 정도라고 본다. 문제는 의회활동이 비의회 정당활동에 비해 과잉대표되는 것이다. 그것이 의회주의적 경향인데, 이런 지점에 대한 평가에는 동의한다. 김태연: 자기는 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이 모르는 건 안 한 거다. 당 지도부가 구속될 정도면 당 차원의 대대적 투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정종권: FTA 투쟁 시 강기갑 대표의 투쟁이 있었다. 그리고 진보신당 경북도당 김병일 위원장도 건설 플랜트 노동자 투쟁에 함께 하다가 구속되어 수년간 징역살이를 하기도 했다. 지난 진보정당 10년 역사에서 당 차원의 투쟁을 한 적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과하다고 본다. 김태연: 거의 못했다고 본다. 희화화된 논점이지만 구속 얘기를 하곤 한다. 진보정당 운동 십 수 년 간 당 지도부가 구속된 경우가 없다. 경북도당 위원장 경우만으로 전체를 평가할 수 없다. 정종권: 개개인을 지금 다 말할 수는 없다. 의원들이 그런 사람 있냐고 말하면 동의한다. 그런 실천보다 의원 열 명의 의회 활동에 종속되어 가는 평가라면 동의한다. 사회: 일단은 시각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하고 다른 두 분 말씀 들어보자. 임승철: 제가 민주노동당 창당 멤버이기도 하고 국민승리21부터 참여했기 때문에 김태연 동지의 말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정종권 동지와 일치한다. 분명 새겨들을 게 많다. 노무현 정권 들어 국가보안법 개정한다고 했을 때 민주노동당이 집단단식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저는 ‘민주노동당 큰일이다’라고 생각했다. 신자유주의, 민생파탄 의제에 올인해야 하는데 국가보안법 투쟁에 올인하는 것이 우려스러웠다. 그때 열린우리당이 투쟁을 접으니까, 민주노동당도 바로 접었다. 그때부터 ‘민주당 2중대’라는 말이 나왔다. 대중의 이해와 요구 중심의 정치투쟁을 하기보다는 대단히 포퓰리즘적이거나 주류 세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주의의 연장에서 민주노동당의 반성이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민주노동당은 의회주의도 못했고, 사회운동적인 대중투쟁도 못했다. 열심히 안 한 것이 아니라 성적 미달이다. 왜냐하면 대중정치, 현장정치를 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대리정치, 위탁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96년 노개투 총파업 열기가 사그라들자 대중투쟁보다는 선거와 의회주의적 요소에 기대는 분위기였고, 진보정당 창당을 상층 중심으로 몰고 갔다. 말로는 직접참여 민주주의를 얘기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대중 참여를 봉쇄했다. 최고위원회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부르주아 제도를 가져다 놓고 계파별로 나눠먹는 등 정파의 폐해가 컸다. 이런 면에서 민주노총이 제대로 된 정치세력화를 이루면서 현장 대중 및 비정규직과 함께 성장하는 것을 1기 민주노동당이 가로막은 면이 있다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의회주의도 못하고 대중투쟁도 못한 것이다. 종북주의 비판하는데, 실제 민주노동당 내에 일부 종북주의자들이 있긴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깨진 건 종북주의 때문이 아니라 총체적 무능 때문이다. 종북주의도, 의회주의도 제대로 못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분당 되고서 다 죽어간다. 그러니까 정공법이 아니라 ‘묻지마 반MB 연대’로 간다. 그러면서 실리를 좀 챙겼는데, 그것은 상층 정치 지망생들의 떡고물이다. 대중투쟁은 박살났다. 그런 면에서 위탁 대리 정치이고, 대중 정치, 노동 중심 정치가 없었다. 평당원 중심의 대중정당이 되지 못한 것이 패권과 무능을 낳았다. 이 때문에 분당까지 갔는데, 지금 다시 합치자고 해도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김태연 동지가 우려하듯 독일식 사민주의 모델-양날개론으로 갈 우려가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들어가서 싸워야 한다고 본다. 밖에서 아무리 얘기해봐야 안 된다. 모든 진보세력이 안에 들어와서 같이 해결해야 한다. 이현대: 97년에 노동자정치세력화 얘기를 할 때 좋은 조건에서 출발한 것 같지는 않다. 당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동력을 크게 두 축에서 볼 수 있는 데, 그 한축이 되는 민주노총의 경우 일부 인사들이 당으로 활동공간을 이전했으나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주로 직접적인 당 활동을 하기 보다는 돈만 내는 당원가입 수준에 머물렀다. 다른 한축은 노동자 정당을 추진한 흐름이었는데, 90년도 초반의 사회주의 정당 건설 시도 이후 그 세력이 지속적으로 축소되었다. ‘국민승리21’ 결성 이후 민주노동당 건설까지 많은 한계들이 존재했지만 초기 민주노동당 활동은 운동적 성과를 낳았다.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의 사회적 발언력을 확대했고, 지역적인 운동기반을 확대했다. 기존 노동운동이 지역적 영향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주류 시민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입장에 대해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각 지역 지구당을 중심으로 지역 차원의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그 시기에는 당의 운동적 성격을 유지하기 위한 논의들도 상당히 있었다. 절대적 기준에서 보면 비판할 점이 많이 있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상대적으로 사회운동적 성격이 강했던 시기였다. 2004년 10석의 국회진출은 한편으로는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당의 운동적 성격을 약화시키는 계기이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이 제도권 진출의 경로로 현실화되면서 의석을 두고 정파 간, 개인 간 과도한 경쟁과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 운동의 수준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과정에서 몇몇 영향력 있는 정치인을 중심으로 의정지원단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 대폭 강화되고 선거대응 중심의 활동이 강화되었다. 반면 현장 정치의 활성화나 당의 지역 활동 주체의 재생산을 위한 당의 프로그램은 거의 부재했다. 진보정당 운동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양하는 한국사회의 변혁이라고 할 때, 대중운동의 토대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중운동의 강화라는 관점을 결여한 채 득표 전략을 중심으로 사고할 때, 더 이상 진보정당으로서의 성격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정종권: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법 정당 하면 그런 긴장이 끊이지 않는다. 운동과 정치, 투쟁과 의회활동, 이런 것들을 분할시키려는 경향이 반복된다. 이 간극을 좁히려는 의식적인 활동가들의 의지, 개입 활동이 있어야 한다. 그런 역할을 만들어가는 주체와 계획, 경향이 부족했다는 점을 평가해야 한다. 계급정당과 국민정당의 딜레마라고 하는 것이다. 가만 두면 국민정당, 의회정치 중심으로 간다. 여기에 우리의 역할과 몫이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발전 방향과 2012년 사회: 앞의 논의에 이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 토론을 이어가보자. 토론자들 간에 많은 쟁점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에서는 진보정당의 분화가 대중운동의 통합적 발전에 질곡이 되고 있으므로 이를 극복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견해가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정당의 단순한 재통합이 아니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방점을 찍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아니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지반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재출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1992년 이후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을 한꺼번에 치르는 2012년을 맞아 일찍부터 총대선 대응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칫 총대선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전반적 합의는 부족하다는 느낌도 있다. 민중운동에게 2012년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 그리고 2012년을 앞두고 정치·사회 운동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정당통합이나 선거연합의 구체적 실현 경로에 대한 의견을 포함하여, 총대선 대응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시면 좋겠다. 정종권: 분당의 원인은 현실적 요인들도 있었고, 이념적 갈등도 있다. 이념적 갈등은 그 자체로 드러나지 않는다. 처음 만들 때부터 자주파, 좌파가 있었다. 이것이 분할되는 건 대중적으로 그럴 만한 설득력 있는 계기가 있거나, 급격한 충돌과 갈등이 순간적으로 분출하는 경우인데, 민주노동당의 분당은 후자의 상황이었다. 진보정당이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조건과 상황에 따라 분화될 수 있다. 그런데 2008년 과정은 조건이 숙성되는 과정이 아니라 총체적 무능, 패권주의, 북한 문제 갈등 등이 폭발한 것이다.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아니다. 다만 2008년의 분당 과정에서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흐름을 만들지 못했음을 평가해야 한다. 2011년 현재는 진보정치 운동의 전략적 수세기라고 본다. 한나라당의 공세만이 아니라 자유주의자들이 반MB라는 이름으로 활개를 치면서 시민사회와 대중운동을 잠식하는 상황이다. 진보정치가 공세적이고 능동적이지 못하고 왜소해지면서 대중운동의 발전에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현 상황에서는 진보정치의 연대를 통해 바리게이트를 쳐야 한다. 10년의 진보정당 운동의 약점과 한계가 한 번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2008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운동과 정치의 관계, 대리정치가 아닌 노동자의 주체적인 정치를 만들 단초들을 형성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을 해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양당이 형식적 주체가 될 수는 있지만, 산술적 합이 아닌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을 만들어가는 운동의 흐름이 되어야 한다. 97년부터 보자면 50년의 군사독재와는 다른 민주당 정부라는 자유주의 정부의 한 순환이 지났다. 이것에 대한 반발이 좌익 정권이 아닌 이명박 정부라는 복고로 갔다. 그렇다면 이런 이명박 정부의 인정인가 자유주의 정부의 회귀인가, 아니면 다른 전망을 만들어갈 수 있는가를 가르는 것이 2012년이다. 전략적 수세 국면에서 진보정치의 역량과 가치와 내용이 유실된다면 그것은 연합이 아니라 투항이다. 진보정치의 독자적인 후보와 전략을 내고 고민하는 것이 일차적이라고 본다. 그 과정에서 연대연합을 열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97년 이후 노동운동의 해체와 말살 흐름을 무화시키는 것, 또 한국정치의 근본적 정치지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이 두 가지가 된다면 연합을 고민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독자 노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임승철: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이 난항이 있지만 잘 되었으면 하는데, 도로 민주노동당이 될 것 같아 걱정이다. 여전히 대중의 참여가 저조하다. 대대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더라도 비정규직들까지도 적극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단초 마련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민주노총뿐 아니라 사회운동 세력들의 전반적 지지와 아래로부터의 정치 참여가 필요한데, 그런 기획이 없다. 지역에서부터 자발적으로 평당원 직접운동을 하지 않으면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권력싸움을 막기 위해 대중운동과 제도를 만들고, 최고위원회를 없앴으면 한다. 2012년에는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줄 수 있는 교두보 확보가 중요하다.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기폭제로서의 선거의회 전술이 전략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민중 중심의 정권교체가 적당한 표현이라고 본다. 민중들은 MB정권에 대한 심판과 새로운 정치를 바라고 있는데, 그 상이 무엇인지 대중과 소통하며 실사구시 해야 한다. 한 번에 사회변혁을 할 수는 없기에 진보진영의 힘을 키우면서 대중의 역동성을 촉진할 수 있는 기폭제로서 능동적 선거 대응이 필요하다. 그것을 우리는 선택적 탄력적 전술적 야권 연대라고 부른다. 이러한 전술의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다만 제일 중요한 것은 원칙이다. 정당정치, 선택과 탄력 속에서 민중 중심 정치의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제2의 비판적 지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자유주의 반대, 6.15, 비정규직, FTA 문제를 명확히 제기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러한 제안을 받을 수 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독자 집권이 어려우니 진보정당을 2중대로 만들려 한다. 그들이 지키지 않을 것을 알지만, 알면서도 손잡을 수 있다. 그것으로 발목을 잡아야 한다. 그들이 약속을 어기면 대중적으로 폭로하고, 진보진영의 지지기반을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이현대: 지금 노동현장은 정권 자본의 공세에 무너지고 있다. 현재 수준의 진보정당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 운동 세력들의 합력을 만들고 단결을 확대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그것을 진보대통합이라 부르든,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혹은 제2의 노동자정치세력화라 부르든 이러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2012년 정권교체 선거전술이 압도하고 있다. 민주노총 자체가 지방선거 때 ‘무원칙한 반MB 연합’을 중심으로 대응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는 민주당과의 연합을 우선 고려하기보다 진보적 정치세력이 통합적인 대응을 함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서 진보정치 세력들이 지역 차원에서 현장 방문하고 현장정치를 일구고, 지역의 기반을 다지는 사업들이 중요한 기획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진보정치세력 간의 논의도 선거와 관련된 쟁점만 논의되고 있다. 전체 운동 세력이 단결하여 공조할 수 있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노회찬 전대표가 제기한 가설정당도 우선 진보정치 세력과 대중운동을 중심으로 제안되어야 되는 것 아닌가.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들이 힘을 결집하는 방향에서 추진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민주당에 구걸한다고 해서 그들이 변화하는 게 아니라, 우리 운동이 단결하고 성장해야 그들도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민주당의 입장변화도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 민중운동의 단결과 연대에 힘쓰기 보다는 민주당에게 구걸하고 있는 형국이다. 2012년 총선, 대선을 고려할 때, 정권교체 운동의 주체적 상황을 봐야 한다. 대기업 현장에서 좌파 현장조직이 집행부에 당선된 이후 현장의 조건으로 인해 공언했던 투쟁을 책임지지 못하고 물러나는 경우들이 다수 있었다. 현재 사회적인 세력관계를 고려할 때 노동자 민중운동의 역량을 강화하는 계획 없이 집권에 집착할 경우 실제 집권도 불가능할뿐더러, 설사 운 좋게 집권하더라도 사면초가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사례를 보더라도 진보정당이 일부 내각 구성에 참여하였다가 정권 차원의 파병과 반노동정책 시행으로 인해 진보정당 자체가 분할되거나 해체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또한 현재와 같이 복지국가와 같은 기준으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추진할 경우 진보정당의 우향우와 진보정치의 해체로 귀결될 수 있다. 현재 노동자민중운동은 세계경제 위기 상황에 대한 대안적인 전망과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득표가 중요하지만 한국사회의 변혁전략이 부재한 채로 득표 전략에만 치중한다면 대중적으로 민주당, 국민참여당과 같은 신자유주의세력과 차별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김태연: 진보대통합은 정당통합 범주가 있고, 연대 수준의 범주가 있는데, 지금은 사실상 정당통합의 얘기다. 그런데 지금 정당통합 논의는 폭력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논리가 단순하다. 왜 다른가를 논의하지 않고, 정당이 분열되어 노동조합이 복잡하고 골치 아프다는 식이다. 민주노총의 진보대통합을 위한 10만 서명운동, 굉장히 폭력적이다. 좀 더 확대하면 진보정당이라는 것은 특정 정당의 지칭이 되어 버렸다. 제가 고민하는 사회주의 정당은 완전히 다른 결의 문제가 되었다. 진보정당 외의 부분은 인정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배타적 지지의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대중조직 수준이건 정당 수준이건 노동자민중의 힘을 합치는 것이 추구되어야 한다. 정당통합과 배타적 지지는 노동자민중 진영의 연대를 질식시킨다. 진보정당 통합 수준을 넘어서서 변혁진영을 조직통합으로 강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연대 투쟁체의 수준에서 당면한 투쟁을 중심으로 논의해야 한다. 변혁운동 진영 내의 선거연합은 그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연동해서 현재 진행되는 야4당 선거연합을 보자. 민주노동당이 10석의 의석을 확보한 후 당이 쪼개졌다. 진보정당은 일정정도의 대중적 지지를 얻고, 표를 얻고, 의석을 확보했다. 의석확대 답보 상태가 굉장히 오래되었다거나 확대방안이 도저히 없다고 확인된 상태도 아니었다. 다른 나라를 보면 이렇게 빠른 성장을 한 진보정당 운동은 흔치 않다. 자력으로 도저히 안 된다는 것이 확인된 바가 없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십여 년간 대적 상태에 있던 정치세력과 손을 잡는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이른바 정치공학적 면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진보정당 운동이 살기 위해서는 민주당 자유주의 세력을 찌그러뜨려야 한다. 이쪽에서 손을 잡고 이쪽의 힘을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다 죽어가는 민주당 살려주는 것이다. 여러 가지 미사여구를 붙이지만, 국회의원의 입신양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 운동이 10년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 고민이 없다는 것이다. 임승철: 출세주의 많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정치 지형에서 한나라당을 아웃시키는 것의 정치적 의미, 그것이 갖고 올 변화의 폭에 대한 정치적 판단의 차이는 있는 것 같다. 김태연: 그런 차이 있는 것 안다. 그것만으로 해석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임승철: 예전부터 고질적인 비판적 지지, 묻지마 반MB 연대가 모양을 바꿔가면서 나타난다. 정종권: 반MB 연대에는 개인적 출세주의와 정치공학 등이 다 섞여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은 반MB 연대의 ‘반’자도 꺼내지 마라가 아니다. 죽어가는 민주당을 살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독자적인 흐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뭐냐를 고민하는 것이다. 독이 되는 요인이 더 크다면 잘라야 한다. 득이 된다면 제한적으로 써야 한다. 구체적 내용을 살펴야 한다. 플러스 요인을 극대화시키고 마이너스 요인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플러스 될 수 있는 요인은 두 가지 정도다. 영국 자민당과 보수당이 연립했는데, 그 조건이 정당명부비례대표제 국민투표였다. 그런 정도의 전략적 조건들이 된다면 고민할 수 있다. 반MB연합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김태연 동지가 얘기한 수세적 경향 등 문제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MB연합 자체를 좌파가 꺼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김태연: 그런 면에서 지금은 반MB 연합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반MB연합은 곧 민주당과의 연합으로 드러난다. MB 정권에 대한 공동 대응은 다양한 수준에서 할 수 있다. 그런데 4.27 보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당연하고, 결국 진보신당도 4당 연합을 했다. 정종권: 아니다. 강원도는 안했다. 김태연: 하지만 4.27 보선에서 4야당 선거연합이 이루어졌다고 발표됐다. 이현대: 야당과의 무원칙한 선거연합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충북 제천의 경우도 민주노동당 당원이 탈당해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또한 진보정당운동 내부에서 국민참여당, 나아가 민주당까지 ‘복지국가’라는 단일가치로 결집하자는 ‘복지국가진보정치연대’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과의 무원칙한 선거연합의 부정적 효과가 진보정당운동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노동자민중운동 내부의 갈등만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김태연: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없애버렸다. 이념이나 지향이 발전하는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통합문제나 총대선의 과정에서 보면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정책적 문제가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 누가 후보를 차지하느냐가 쟁점이 될 뿐이다. 전술적으로도 자유주의 정파의 과거 문제에 대해 드러내는 과정이 없다. 조직적 반성, 성찰을 표명하라는 것까지 아니더라도 비정규직 관련해 이런 것을 잘못했다는 것을 대중이 알도록 하는 것이 전혀 없다. 운동적 의미가 없다. 야4당 연합을 하면, 중앙에서 모여서 사진 찍고 발표한다. 과거 10년간 집권세력과 선거에서 연합전술을 구사하는데 비정규직 문제 등이 대중적으로 각인되도록 하는, ‘민주당 분파가 과거에 이것에 대해 잘못했다는 입장을 밝혔다’라고 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임승철: 여전히 ‘묻지마 반MB 연대’ 경향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진보신당이나 여러 사회단체들이 들어오면 제동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통합이 절실하다. 김태연: 그래도 뭔가 가능성이 보여야 한다. 나도 예전에 민주노동당 입당전술을 주장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어렵다. 임승철: 제동이 걸려서 이 정도 하는 것이다. 안 걸렸으면 더 했을 것이다. 정종권: 선거연합을 추진한다면 진보정당이 핵심적으로 제기하는 정책합의 사항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제기하는 핵심 정책을 다 받으면 선거연합을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자: 진보대통합이나 선거연합 방안에 관해 의견을 들어보았다. 예상대로, 토론자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확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의석 확보’와 ‘반한나라당 정권교체’에 경도된 진보정당과 민중운동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해 주었다. 앞으로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발전을 위해 토론과 협력을 이어나가자. 『사회운동』도 오늘 좌담에 후속하는 토론 자리를 계속 마련하도록 하겠다. 장시간 좌담에 함께 해 주신 것에 대해 독자들을 대신해서 감사드린다.
오세용 전 경북일반노조 정책교육국장 초청 경주지역 노동운동은 90년대부터 최근까지 수차례의 지역 총파업으로 지역연대 운동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모범으로 꼽혀왔었다. 작년 발레오만도 투쟁 패배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많은 활동가들은 경주 지역이 조만간 예전의 활력을 되찾고 민주노조 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일으킬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경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어떤 문제점으로 현재의 침체를 겪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또 많은 이들이 노동운동의 끝 모를 침체 속에서도 여전히 경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에 대해 많은 기대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운동연구소는 지난 3월 18일 경북일반노조 오세용 전 정책교육국장을 초청하여 “경주 사례로 보는 노동자운동의 지역연대”를 주제로 두 번째 월례워크숍을 열었다. 오세용 전 정책교육국장은 20년 넘는 시간 동안 경주지역에서 민주노조 운동을 일궈온 경주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다. 경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오세용 전 정책교육국장이 정리한 경주지역의 민주노조 운동은 크게 다섯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 시기는 암흑기로 민주노조 운동이 태동하기 이전인 1987년 이전이다. 두 번째 시기는 민주노조 운동의 시작기로 1987년 노동자 대투쟁부터 1996년 민주노총 경주시협의회 출범 전까지다. 세 번째 시기는 1996년부터 2005년까지로 민주노조 운동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던 시기다. 네 번째 시기는 금속노조 경주지부와 경북일반노조를 중심으로 조직확대가 크게 이뤄지고 지역 민주노조 운동이 가장 활성화되었던 2006년부터 2009년까지다. 마지막 시기는 2010년 이후 현재로 민주노조 운동의 정권과 자본의 집중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고 내부적으로도 양적 성장을 질적 전화로 발전시키지 못한 한계가 드러나는 시기다. 민주노조 운동의 시작 경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은 1989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첫 출발은 자동차부품사업장 어용노조 민주화 투쟁이었다. 89년 1월 경주 안강 풍산금속 공권력 투입에 따른 구속 해고자가 발생하고 같은 해 5월 전교조 결성에 따른 해직자가 대량 발생하면서 해고·해직자들을 중심으로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8월 울산 현대자동차에 민주 집행부가 출범하여 경주지역 노동자운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한 것 역시 중요한 힘이 되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90년 1월 경주지역 최초의 지역노동조직인 ‘경주노동자회’가 건설된다. 경주노동자회는 한국노총과 단절한 민주노조 대표자들의 모임으로 자동차부품 6개 노조와 전교조, 2개 택시노조가 함께 했다. 경주노동자회는 이후 자동차부품사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거쳐 91년 10월에는 경주지역노조대표자회의로 발전, 10개 노조 2천여 명의 조합원을 포괄한다. 한편 이들은 90~91년 전노협에 함께 하고자 경노협 건설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정권의 거센 탄압으로 전노협에 직접 가입하지는 못했다. 경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은 이후 1993년 5월 문민정권 최초의 공권력 투입 사업장인 아폴로 산업 투쟁을 계기로 더욱 강한 연대투쟁을 발전시키며 1995년 1월에는 자동차부품노조 ‘지역집단교섭’을 추진하기도 했다. 산별노조가 건설되기 한참 전인 95년에 이미 경주지역에서는 집단교섭이 시도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여러 한계로 인해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이후 이러한 공동교섭-공동투쟁의 기풍은 계속 발전해 나가게 된다. 그리고 1996년 4월에는 민주노총 경주시협의회가 출범하며 그동안 자동차부품사 10개 노조 3천여 명이었던 지역 민주노조 운동 연대를 16개 노조 4천여 명으로 확대했다. 90년대 경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은 한 편에서 정권과 자본의 탄압이 계속됐지만 동시에 매년 4~5개 노조가 시기 집중 임단투 파업을 돌입해 큰 마찰 없이 3~4일 만에 노조별로 타결을 보던 시기이기도 했다. 민주노조 운동의 정착기 경주의 세 번째 민주노조 운동 시기는 96년 노동법개정 총파업 투쟁으로 시작했다. 노개투는 경주지역 노동운동의 단결력을 다시금 확인하던 계기였는데 12월부터 1월 수요 총파업 전환 전까지 10개 노조가 2천여 명 파업 및 지역집회로 전국적 투쟁에 함께했다. 이 밖에도 96년부터 97년까지 힐튼호텔, 동아산업, 금아교통, 한일 등이 파업 투쟁을 벌였다. 한편 경주 자동차부품 6개 노조는 1998년 5월에, 1995년 이후 중단되었던 지역집단교섭을 재추진하는데 그 해 출범한 금속산업연맹의 영향과 IMF 경제위기로 인한 정세를 함께 돌파해내기 위한 주체적 노력이었다. 11차례 교섭과 공동파업, 경고파업, 천막농성 등을 진행했으나 결국 집단교섭을 성사시키지 못한 채 개별교섭으로 전환했다. 집단교섭 실패는 경주지역에서 자동차부품사 노조 운동 이후 강고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맛본 첫 좌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좌절은 이후 1999년 현대차의 부품사 구조조정에 맞서기 위해 자동차부품 노조 통합 추진위를 구성하며 극복된다. 당시 현대차는 부품사들을 인수합병하는 한편 모듈화를 통해 부품 공급 시스템을 개편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조정에 맞선 부품사 노조 공동투쟁은 2000년 4월 경주금속노조 출범으로 이어졌다. 금속산업연맹 소속 8개 노조 1천여 명의 통합노조인 경주금속노조는 일종의 지역산별노조 형태였는데, 상근자와 재정을 통합하고 임금 요구안까지 공동으로 내거는 높은 수준의 통합을 지향했다. 전국금속노조가 추진되던 중에 당시 경주금속노조의 앞선 출발은 전국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전국금속노조의 조직 체계와 충돌하며 연맹 중앙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도 경주금속노조는 2개월에 걸친 16차례 교섭을 통해 2001년부터 집단교섭을 추진하는 것을 사측으로부터 이끌어내 금속 산별의 지부 집단 교섭의 첫 사례를 만들어 낸다. 2001년 2월에는 금속노조 건설에 따라 현재와 같은 금속노조 경주지부가 출범한다. 금속노조 경주지부에는 11개 노조 1,600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다. 그리고 바로 6월에는 다스의 위장 계열사인 세광공업 위장 폐업 사태를 계기로 금속노조 경주지부의 첫 연대파업이 진행되었다. 금속노조 경주지부는 약 10개월에 걸쳐 투쟁을 전개하는데 경주-울산을 잇는 7번 국도를 점거하는 가두 시위까지도 불사하며 금속노조의 지역연대투쟁이 무엇인지를 자본에게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7명의 활동가가 구속되었다. 결과적으로 위장폐업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이 투쟁을 통해 다수의 훌륭한 활동가들이 지역에 배출되었고, 경주지역 자본이 이후 금속노조에 대해 함부로 탄압을 자행하지 못하게 하는 방파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세광공업 투쟁 이후 2010년 이전까지 경주지역에서는 큰 투쟁이 없었는데 이는 이후 노사타협, 담합구조가 점차 노조 내에서 확산되는 역효과도 가져오게 된다. 2002년부터는 비정규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노동법률상담소가 개설되고, 미조직특위가 구성되어 경주지역 비정규사업이 본격화되었다. 2004년에는 자동차 부품 8개 사업장 300여 명 사내하청에 대한 불법 판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을 노동자 투쟁으로 현실화시켜내는 것은 실패했는데 사업장 내 정규직들의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부담이 투쟁을 확대하는데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법원의 불법 판정이 있을 때만 해도 비정규직 투쟁이 크게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으나 현실의 정규직·비정규직 장벽은 생각보다 컸다. 2005년 6월에는 민주노총 경북본부 사무처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경북일반노조가 출범했다. 경북일반노조는 민주노총 경북본부의 비정규 조직화 사업단위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출발 초기에는 민주노총의 산별 방침과 어긋나며 인력 재정 등에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근 10년의 경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은 여러 점에서 체계화되었고 세광공업을 제외하면 큰 투쟁 없이 전국적 투쟁에 헌신적으로 복무했다. 2000년 롯데호텔 사회보험 투쟁, 대우차 투쟁, 2002년 주5일제 투쟁, 2003년 열사 투쟁에 이르기까지 전국적 투쟁 전선에 경주지역은 선두에서 함께 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 속에서 한계도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금속노조 출범 이후 지역의 중심이었던 금속노조 경주지부는 ‘지역’보다도 ‘산별’ 중심성이 강화되기 시작했고,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지역 민주노조 운동의 성장, 활성기 하지만 이러한 한계를 점차 극복해가며 경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은 계속 발전했는데 2006년에서 2009년까지 4년간은 지역 민주노조 운동이 가장 활성화된 시기였다. 금속노조 경주지부와 경북일반노조의 조직화와 투쟁은 지역연대 투쟁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2006년 통합산별노조 출범에 따라 지역지부에 결합하지 못했던 오리엔스와 에코플라스틱이 산별체계로 전환되었고, 2007년부터 시작된 대규모 조직화 운동으로 대림플라스틱, 디에스씨를 조직하는 데 성공하고 2008년에는 외동지역에서 대동산업, 다스, 인지컨트롤스, 청우가 조직되었다. 2009년에도 대진공업, 영진기업, 고려산업 등이 추가로 조직되며 금속노조 경주지부는 2001년 1,600명에서 2009년 말 3,200명으로 두 배 이상 규모가 성장했다. 지역 민주노조 운동에서 금속 부품사 조직에 불을 댕긴 것은 2008년 다스 조직화였는데, 다스는 지역에서 가장 큰 사업장 중 하나면서도 번번이 조직화에 실패했었던 자본의 철옹성 중 하나였었다. 경주 민주노조 운동은 대규모 선전전을 통해 지역에서 민주노조 조직화 운동의 분위기를 조성했고, 다스 조직화를 위해 계엄 상황을 방불케 하는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다스에서 노조를 건설하고자 하는 활동가들과 연대 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몇 명의 활동가들이 구속되기도 했지만 이러한 조직화 노력은 3년간 8개 이상의 사업장을 조직하는 성과로 남았다. 2006년 이후 경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의 다른 한 축은 경북일반노조였다. 경북일반노조는 2006년 경주CC 투쟁을 시작으로 2009년 430명의 조직으로 발전해나갔다. 경북일반노조의 조직화는 금속 경주지부와 마찬가지로 강고한 지역연대 투쟁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는데 경주CC투쟁, 동국대학교미화투쟁 등이 대표적이다. 경주CC 투쟁에서는 금속노조경주지부가 총파업 집회를 함께 진행하며 승리했고, 동국대미화노동자 투쟁은 확대간부들의 학내 3보1배투쟁, 1,500명이 참여한 연대파업 투쟁으로 승리했다. 이러한 지역연대 기풍은 2009년까지도 이어져 경주재활용선별장 민간위탁 저지 투쟁에 금속노조경주지부가 지역총파업을 통해 연대했다. 이 밖에도 세천향예술단,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경주교육문화회관, 경주드림센터, 토비스콘도, 동국대학교병원미화 등이 투쟁과 지역연대를 통해 조직화되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과 자본은 촛불 정국 이후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그 포문은 보수언론들이 열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은 2009년 하반기가 되자 ‘경주는 노조 천국’, ‘민주노총 막가파식 파업’ 등의 제목으로 경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을 매도하기 시작했고, 경제위기가 어느 정도 회복 국면으로 진입한 2010년이 되자 집중 탄압을 시작했다. 경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의 현황과 과제 오세용 전 정책교육국장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가 단순한 기사가 아니라 사실상 자본이 2010년 탄압을 준비하는 첫 시작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그의 우려대로 2010년 봄부터 시작된 경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기획 탄압은 발레오만도 투쟁부터 시작했다. 외주화 비정규직에 맞서 파업한 발레오만도에 대해 자본은 직장폐쇄, 용역깡패와 검경의 합동작전으로 노조를 몰아붙였다. 발레오만도지회는 경주지역에서 가장 큰 사업장 중 하나이자 오랜 기간 경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노조였다. 2001년 세광공업 이후 어느 정도 유지되었던 노사타협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인데 문제는 민주노조 운동 진영이 의외로 이러한 탄압에 쉽게 패배했다는 것이었다. 2010년 3월 영진기업이 원청의 물량 협박으로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한국펠저가 공장을 이전하는가 하면, 6월에는 발레오만도가, 11월에는 광진상공이, 올해 2월에는 전진산업이 금속노조를 탈퇴했다. 경북일반노조 역시 작년 10월 531일간 투쟁한 재활용선별장 투쟁이 패배하고, 11월에는 토비스콘도가 부도나며 노조가 해산했다. 이 밖에도 지역 직가입 노조였던 320명 규모의 경신공업이 희망퇴직을 수용하며 이탈했다. 발레오만도, 재활용선별장 투쟁이 패배한 후유증에 지난 몇 년간 조직한 수에 육박하는 노조들이 도미노 노조 탈퇴를 계속하며 많은 지역 활동가들이 무력감에 빠졌다. 주체적 원인 오세용 전 정책교육국장은 이러한 현실은 정권의 탄압이 드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주노조 운동 내부적으로도 몇 가지 문제점들을 그동안 혁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진단했다. 우선 그동안의 양적 성장을 질적 전화로 발전시켜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다. 집행부 중심의 해결사 자판기적 노조활동이 계속되었고, 지침파업, (노사)담합파업이 계속되며 탄압에 대한 내성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 속에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건강한 활동가들을 키워내는 일을 게을리하고, 지침만 수행하는 일회성, 실무적 간부들만 양성했다. 다음으로는 시나브로 진행된 민주노총의 중심성 약화와 정파운동의 폐해다. 금속노조로의 집중성이 강화되면서 지역으로의 집중성이 약화되었고, 여기에 일부 정파가 경주지역 조직화를 시도하며 곳곳에서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민주노총, 금속노조, 민주노동당 등 주요 조직 지도부 선거를 중심으로 계속 문제가 발생하면서 지역연대 기풍이 약화되었다. 이 밖에 비정규 미조직 조직화 사업 정체, 노동문제에만 갇힌 활동 등도 민주노조 운동을 약화시켰다. 경주지역 민주노조 운동의 과제 오세용 전 정책교육국장은 민주노조 운동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방법은 새로운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기존에 이야기되어 왔던 것들을 착실하게 실천해나가는 길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첫 번째는 당연히 공세적 조직화로 다시 나서는 것이다. 현 시기 민주노조 운동의 주요과제라는 측면에서도, 복수노조(교섭창구단일화) 시대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도, 수세에 몰린 경주지역 노동운동의 돌파라는 측면에서도 공세적인 비정규·미조직노동자 조직화가 요구되고 있다. 경주지역은 금속노조경주지부와 경북일반노조를 두 축으로, 이전의 상담을 통한 개별사업장 조직화라는 한계를 넘어 집단적·집중적 조직화로 나가야 한다. 두 번째는 집단적으로 활동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단지 양적·기능주의적 조직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된 곳에서 이후 민주노조 운동을 새롭게 이끌어나갈 주체(계급의식으로 무장한 활동가)들을 집단적으로 양성해내지 않으면 운동의 미래는 없다. 지역차원의 활동가 양성은 실리화되고 취약해지는 현장조직력을 복원시켜낼 주체로서, 사업장을 넘어서고 정파를 넘어서고 노조활동을 넘어서는 방향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다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노조 운동의 기풍을 만들어야 한다. 사업장 따로, 산별조직 따로, 민주노총 지역조직 따로가 아니라 ‘지역’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투쟁하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복수노조 시대로 접어들며 기업별회귀와 담합(反산별의식)이 확대되는 것의 대안으로서 ‘지역 중심성’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 이상의 과제를 정리하면 민주노조 운동 본래의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의 정신인 자주성/민주성/투쟁성/연대성/변혁성/(도덕성)을 회복하고 실천하는 방향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해 정규직/대기업/남성/정주/비장애/취업/조직노동자 중심의 운동에서 비정규직/중소영세/여성/이주/장애/실업/미조직노동자 중심의 운동으로 변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운동과의 결합으로 나가야 한다. 지역 민주노조 운동의 내용은 상급조직 지침수행, 소속사업장 관리, 투쟁사업장 지원·연대는 기본이 되면서(현재는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님), 비정규·미조직노동자 조직화, 활동가 양성 교육, 불안정노동자 사업과 함께 삶과 생활의 영역인 지역운동과의 결합과 실천으로 그 중심이 이동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노동의제를 포함한 지역운동의 의제를 중심으로, 관변시민단체나 개량적 시민단체를 넘어 지역에서 대안운동을 모색하는 단체들과 함께 지역운동으로 실천해 나갈 필요가 있다. 2011년 민주노조 운동, 새 도약을 위해 다시 초심으로! 오세용 전 정책교육국장의 발표는 1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되었고 이후 발제에 대한 몇 가지 질의와 응답이 이루어졌다. 여러 질문들이 있었지만 오세용 동지가 강조한 것은 '이전에 없던 특별한 것에서 답을 찾지 말라'는 것이었다. 민주노조 운동이 원래 해왔던, 조직되어 있지 않던 노동자를 조직하고, 새로운 주체를 발굴하고, 계급적 전망을 가지고 운동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노조 운동의 발전 동력이었고 현재 민주노조 운동이 수세에 몰리며 잃어버린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노조 탄압은 올해도 계속될 것이고, 개악 노조법에 따라 자본은 현장에서부터 민주노조를 말살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쓸 것이다. 이미 작년 경주, 창원, 대구 등에서 많은 지역의 금속노조 핵심 사업장들이 무너졌고, 올해도 여러 사업장들이 곤란함을 겪고 있다. 정권의 탄압을 뚫고 다시 민주노조 운동을 되살리는 길은 오세용 동지의 말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실천하는 것이다.
구미지역 사례를 중심으로 공단조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수직적 원하청 관계는 공단 노동자를 쥐어짜고 있고, 이에 저항하려는 노동자들을 물량협박과 공장이전 위협으로 좌절시킨다. 만연한 불법파견은 일상적 고용 불안과 저임금을 강요하고 있다. 최악의 노동 조건에서도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조차없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노동자운동은 공단조직화를 주목하고 있다. 노동자운동 연구소는 지난 4월 13일 배태선 민주노총 구미지부 사무처장을 모시고공단 조직화의 경험과 전망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 85년 처음으로 구미에 발 디뎠을 때, 출근하는 수많은 통근버스를 바라보며 모두가 노동조합의 깃발 아래 서게 될 미래를 꿈꾸며 설레어 했다는 배태선 사무처장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구미지역 민주노조 운동을 일구어왔다. 벅찬 감동과 쓰라린 패배의 시간을 함께해온 배태선 사무처장에게서 구미공단의 특징과 투쟁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회원들과 공단조직화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워크숍에 함께했다. 번져가는 민주노조의 물결, 강화되는 지역연대 구미공단은 계획된 산업단지다. 노동자 구성을 보면 구미지역에 살던 사람들보다 공단이 없는 인근 경북지역 노동자들이 몰려와 정착한 수가 더 많다. 산업별로 노동조건과 임금수준도 비슷했고, 이는 자연스레 노동자들 간의 동질성을 높였다. 80년대 다른 지역처럼 차고 올라오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공단지역 노동자들 간의 동질적인 분위기 속에서 결정적 승리가 공단 분위기를 바꾸고 다른 투쟁들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성장하면서 노동자들이 진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왔다. 구미지역에서 90년대 초 노조가 설립되기 시작하자 당시 상당한 규모였던 일본 자본들이 대거 철수하면서 노동자운동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공단에서 100명 모아서 집회하는 것이 활동가들의 소원일 정도로 구미지역 노동운동의 암흑기였는데 이것을 걷어내는 투쟁이 96년 한국합섬에서 시작되었다. 질소탱크 관리 노동자 두 명이 산재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고 유령노조를 민주화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다. 공권력이 투입되고 무자비한 폭행과 연행이 자행되자 이에 분신으로 항거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투쟁이 전국화되었다. 한국노총 구미지부와 민주노총 준비위가 공동투쟁을 위해 한국합섬에 모였다. 오리온전기 노동자들은 한국합섬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했고, 그 결과 역사적으로 어용강성이던 오리온전기에서 민주노조 지향 위원장이 당선되었다. 지역적 연대투쟁으로 사측을 굴복시키고 이후 대공장을 중심으로 노동조합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KEC 역시 연대회의에 참여하게 된다. 한국노총의 양심적 위원장들과 지역의 운동단위들이 모여서 민주노총 건설 투쟁으로 가는데 한국합섬 투쟁이 핵심적이었던 것이다. 한국합섬 투쟁은 대하투쟁으로 이어졌다. 투쟁전술은 농성돌입해서 선전 타격하는 것이었다. 250여 명의 대하합섬 노동자들을 금오공대에 모아두고 노조설립교육을 했다. 다음 날 농성 돌입을 위해 노래도 배우고, 구호도 외치고, 늦은 밤까지 교육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불안해하던 노동자들의 눈빛이 퇴근하면서 가담하는 동료들이 계속 늘어나자 자신감으로 바뀌어갔다. 자본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날이 거듭될수록 조합원들은 늘어났다. 동네 반상회에 전 조합원이 돌아다닐 정도로 시민에게 선전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하도록 투쟁했다. 이후 노동조합 사무실에 전화가 빗발쳤는데, 대하투쟁을 구미지역 노동자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공세적인 노조결성 투쟁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투쟁 과정에서 지역연대의 기풍을 세워나갔다. 한국노총 사업장이었던 KEC가 파업에 돌입하자 구사대가 노동자들을 기숙사에 가둬버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대하합섬 노동자들은 구사대를 돌파하고 들어가 KEC 노동자들과 연대집회를 진행했다. 3일 만에 KEC 투쟁에서 승리하고, 대하합섬 역시 이기면서 이후 다른 파업투쟁들 역시 승기를 잡아갔다. 연대는 연대를 부르고 하나의 투쟁도 모두의 투쟁으로 만들어가는 기풍 역시 계속되었다. 보광노동조합 투쟁 역시 그러했다. 농성 돌입 직전에 삼성이 조합원을 납치하려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자 곧바로 공장점거투쟁 돌입을 결정하고 전 간부 결집 지침을 내렸다. 다리 건너 공장에 있는 노동자, 도로 맞은편에 있는 공장 노동자들은 출퇴근하면서 연대집회 참석하는 것이 일과였다. 단위노조 간부수련회를 농성장에서 실시하고 농성장 물품도 전 노조가 분담지원해가며 싸워서 결국 자본을 항복하게 만들었다. 결정적 패배와 복구되지 못한 운동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시련이 시작되었다. 새한의 워크아웃에 맞서 처절하게 싸웠으나 결국 패배했고, 남겨진 상처와 패배감은 매우 컸다. 오웬스코닝과 두산전자에 노조를 설립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이후 오리온전기, 코오롱, 금강화섬에서 대규모 구조조정과 폐업이 이어졌고, 이제 맞서는 투쟁을 벌였으나 결정적 패배 이후 운동이 복구되지 못했다. 승승장구하던 구미지역 노동운동이 위기에 직면하게 된 배경에는 산업구조적 변화가 있었다. 구미지역 제조업은 화섬산업과 전자산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90년대 초중반 화섬산업 시장으로 진입하는 자본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구미지역에 공장이 대거 들어섰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자본과의 경쟁 격화와 과잉설비투자로 화섬산업이 위기에 직면하면서 98년 이후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새한, 코오롱, 금강화섬, 한국합성 등의 규모 있는 사업장 대부분에서 대량 정리해고가 자행되었다. 화섬산업은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 영역을 탈피해 전자소재 자동차 부품으로 업종 다각화했다. 전자산업의 경우 삼성과 LG로 대표되는 대기업을 원청으로 백여 개가 넘는 중소영세사업장들이 수직적 하청화되는 구조가 고착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주요 사업장들이 폐업 또는 정리해고로 노조가 깨지거나 활동이 위축되었다. 경영실패로 폐업하는 기업들이 생겨나자 지역 자본가들은 ‘민주노총 있는 공장 문 닫는다’는 악의적 이념공세를 펴며 고립화전략을 펴는 상황이다. 민주노총 깃발 하나 빼앗기면 두 개 올리고 두 개 빼앗기면 네 개 올린다! KEC 투쟁 구미지역은 대다수가 대공장이었고 최저임금이랑도 상관없는 분위기였는데 최근에는 달라졌다. 많은 공장이 문을 닫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버렸고, 구조조정으로 해고 한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했으며, 더 이상 쥐어짤 수도 없을 정도의 원하청 고리를 만들어 최저임금 인상도 반영되지 못하도록 몰아가는 열악한 상항이다. 화섬사업장은 소규모가 되고 전자산업은 삼성과 LG의 하청업체들이 주를 이루면서 구미공단의 재편이 완료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바로 KEC 투쟁의 배경이다. 천명 이상의 대공장이 줄어서 KEC는 지역에서 여섯 번째로 크고, 금속구미지부에서는 최대 규모 사업장이다. 게다가 경비아저씨만 빼고 모두 정규직인데다 근속연수도 높고 임금도 다른 공장에 비해 높은 편이라 구미지역 민주노조 운동에서 상징적인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은 사업 조정에 따른 대규모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었고, 이에 저항할 노조를 제거하기 위해 맹렬하게 공격했다. KEC 투쟁은 구미지역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중요했다. 타임오프가 도입되면서 전임자 문제로 시작된 투쟁이기 때문에 전국적인 싸움으로 만들어 금속노조 투쟁의 구심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금속 총파업은 선언에 불과했음이 드러났고, 회사는 협상을 거부하고 있으며 조합원들은 생계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합원들은 공장점거 이후 많이 힘들어했지만 집단토론을 지속하면서 투쟁이 발생한 원인이 구조적인 것에서 기인한 것을 인식하고, 스스로 전망을 밝히기 위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눴다. 예전에는 KEC 계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조차 시도하지 못했지만,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지역 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자신의 과제로 삼게 되었고, 구미공단 곳곳을 다니면서 미조직 노동자를 만날 것을 결의했다. 민주노총 깃발 하나 빼앗기면 두 개 올리고, 두 개 빼앗기면 네 개를 올리겠다는 것을 자본에 보여주자고 결심한 것이다. 공단 조직화 경험 나누기 배태선 사무처장으로부터 구미지역 상황을 듣고 난 후, 참석자들이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구로지역에서 공단조직화 사업을 하고 있다는 한 참석자는 수직적 하청 구조 속에서 물량협박이나, 공장이전 위협이 만연하여 조직화가 쉽지 않은데 구미지역의 경험을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배태선 사무처장은 LG하청 세 군데가 한꺼번에 찾아와서 노조설립 상담을 요청한 사례를 얘기해 주었다. 상담을 요청한 노동자들끼리 서로가 모르는 상태였지만 노동조합 건설을 함께하자고 합의를 했다고 한다. 협업단지에서 여러 하청을 묶어서 조직하면 원청에 타격도 크게 입힐 수 있고 교섭력도 커지기 때문에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음같이 되지 않았다. 각각의 사업장이 동일한 속도로 조직되지 않았고 보안이 깨지기도 하는 어려움 속에서 결국 좌초됐기 때문이다. 사실 패배가 예상된다 하더라도 조직화를 주저해서는 안 되고 패배의 경험을 딛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구미지역에서 운동이 잘되면 노조 가입 여부를 떠나 전반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향상되고 운동이 후퇴하면 모두가 열악해져 왔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전자산업에는 여성 노동자들이 많고 여성노동자들이 많은 사업장은 조직화가 어렵다는 생각이 일반적인데 역시 여성이 많은 사업장인 KEC 투쟁은 어떻게 조직하고 투쟁을 만들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이어졌다. 배태선 사무처장은 우선 구미지역 여성노동자 비중이 예전같이 높지 않다고 했다. KEC가 예외적으로 여성 비율이 높은 곳이었다. 그리고 젊은 노동자들이 예전 세대와 다르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으며 성별에 따른 차이도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젊은 여성들 같은 경우 구미지역에 정착한 여성 노동자들의 2세들이라서 그런지 자신의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어 사측의 탄압에 분노하면서 맞서는 분위기라고 한다. 같은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이라 서로 간에 동질감이 높아서 응집력이 생기는 것 같다고 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삼사십 대 여성들은 생계에 대한 책임 때문에 잘 움직이지 못하는 편이다. 젊은 남성들 같은 경우 일하는 곳에 대한 애착이 없고 언제든 다른 곳으로 옮길 거란 생각에 단결을 통해서 무엇을 쟁취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나 신뢰가 적은 것 같다고 얘기했다. 이어서 구미지역의 현재 과제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배태선 사무처장은 현재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했다. 구미지역은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다가 공장 문 닫아서 다른 공장에 재취업한 노동자들이 많은데 그들의 열패감이 매우 크다고 한다. 다수가 우리 사업장이 민주노총이라서 문 닫았다고 생각한단다. 자본가들도 악의적으로 이러한 생각을 퍼트리고 있는데 반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정규직 비정규직을 갈라치기 하는 자본에 대항하기 위해서 이들을 함께 조직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미지역의 우선 삼성이나 LG를 상대로 싸움을 거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기를 뚫어야 하청업체들을 조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점 사업장이 승리하면 다른 공간이 열린다는 것이 구미지역의 이전 경험을 통해서 체득한 바임을 덧붙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단에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전전을 많이 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워낙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으므로 ‘올리자 임금! 만들자 노동조합!’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노동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태선 사무처장은 공단조직화에 임하는 데 있어 노동자를 왜 조직하려는 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수량적으로 사람을 늘리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수년간 함께하면서 동지라고 믿어왔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하여 총대를 거꾸로 메는 경우를 숱하게 봐오면서 더욱 사람을 바꾸는 조직화가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구미지역 노동운동이 열심히는 해왔지만 양심적인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 반성하게 된다고 했다. 노조를 당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가 아니라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혁신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통해서 자본의 본질을 보고 자신을 자각하게 된다. 투쟁은 노동자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힘든 난관을 함께 넘을 수 있는 동지에 대한 신뢰, 집단적으로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속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KEC 조합원들이 집단적인 토론을 통해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투쟁의 전망을 능동적으로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 속에서 그 단초들을 찾아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배태선 사무처장은 반전의 계기도 자신감이 있을 때 가능하다며 주눅 들어 있는 민주노조 운동이 주저 없이 싸워 반격의 기회를 잡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열 번의 싸움에서 패배했다고 패배의식이 자리 잡으면,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11번 째 승리의 계기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사활을 걸고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에 힘을 모을 것을 당부하면서 워크샵을 마무리했다.
2011년 경기지역 운동의 화두는 지역총파업이다.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논의는 민주노총 경기본부의 2011년 상반기 사업 계획(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으로 포함되었다. 도본부와 산하 지역지부, 몇 개의 산별 지역지부가 함께 투쟁기획단을 꾸렸고, 경기본부 운영위원회는 4월 ‘최저임금 현실화! 비정규직 철폐! 노동탄압 분쇄! 노동기본권 사수! 공공의료 쟁취! 경기지역 총파업 투쟁본부’로 전환되었다. 주요 투쟁 흐름으로 5월 12일 ‘2011년 상반기 총력투쟁 선포대회’, 6월 11일 ‘도민 결의대회’, 7월 중순 ‘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이 제안되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가 처음 지역총파업을 제안했을 때부터 그 진정성과 가능성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사업 자체는 서서히 모양새가 갖춰지고 있다. 고민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경기지역의 이러한 결의가 2011년 노동자운동의 위기와 고립 속에 어떤 가능성과 과제를 남길 것인지 주목된다.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지역총파업 제안 배경 금속노조 경기지부는 2010년 12월 열린 정기대의원대회 ‘경기지부 6기 2년 차 사업계획(안)’에서 다음과 같이 지역총파업 제안 취지를 밝혔다.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격이 강화되고 노동자 간 분열이 확대되는 가운데 노동운동은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다. 사업장을 넘어 단결하기 위해 만든 산별노조는 오히려 지역전체의 연대운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처해있다. 경기지부 또한 그간 산별노조 틀 안에 머물면서 지역의 다른 노동자와 연대하는 데 소홀했다는 반성을 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주도적 실천을 해야 한다. 전체 노동자에 대한 공격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개별 사업장에 대한 공격과 계속 생겨나는 장기투쟁사업장 문제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기업을 넘어선 연대라는 산별노조운동의 핵심원리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경기지부가 주도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 지역연대운동 강화를 통해 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열어야 한다. 지역차원의 단결과 연대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하여 2012년 지역총궐기를 목표로 2011년 지역총파업으로 그 기반을 구축하자.”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금속노조 경기지부는 민주노총 경기본부, 산별 지역지부 등에 지역총파업 계획을 제안했다. 경기본부는 이를 2011년 상반기 주요 사업으로 상정했고, 건설노조, 보건의료노조 등 산별노조 지역지부들도 산별 현안을 걸고 지역총파업 투쟁에 결합한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내적으로는 4,000여 조합원에게 교육을 진행했고 매주 화요일 투쟁사업장 공동 실천의 날을 통해 지역 선전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총파업을 경과하는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주요 목표는 1) 교육, 토론을 통해 조직된 운동 내부의 시야 확장과 인식 전환, 2) 주 1회 간부 직접 실천 등을 통해 금속 경기지부와 조합원이 지역연대 운동의 주체가 될 것, 3) 조합원의 대중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들이 지역본부 산하 지역지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모아지는 것이 산별운동에 복무하는 방향이라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지역총파업, 필요하고 가능한가? 지역총파업 논의가 대중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4월 15일 열린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반공개 토론회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역총파업, 필요하고 가능한가?’라는 제목으로 열린 토론회에는 금속노조 경기지부 주요 사업장의 현장조직, 현장 활동가들과 지역 사회운동단위들이 참가했다. 이날 토론은 금속노조의 발제, 경기노동전선, 다산인권센터, 현장실천연대 경기준비위의 의견서 발표, 토론회에 참석한 현장 활동가, 지역 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전체토론으로 이어졌다. 토론에서는 많은 현장 활동가들이 지역총파업과 같은 투쟁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조직화와 성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자본과 정권의 계속되는 공격과 노동자 간 격차 심화, 노동운동의 위축과 관성화를 타개하고 새로운 계기를 만들자는 취지에 대체로 동감했다. 규모보다 내용과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기노동전선(집행위원장 정성훈)은 구체적 투쟁 시기를 최저임금투쟁, 임단투, 국회의 노조법 재개정안 상정 시기 등을 고려해 6월로 조정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투쟁의 핵심 과제로는 침체된 현장투쟁과 실천을 복원하고 지역연대투쟁 전선을 복원하는 것, 총파업 이후를 준비할 수 있는 자신감 획득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5월 중 현장 활동가 대회’라는 구체적 일정을 제안했다. 가능한 현장 활동가 중심으로 현장에서의 일상 선전활동을 진행하고, 현장조직간 ‘지역총파업’ 의제의 논의테이블을 구축해 현장논의와 실천을 재건하자는 것이다. 다산인권센터(활동가 안병주)는 지역총파업 제안은 노동운동의 위기를 보여주는 절박한 제안이지만 정규직 중심, 정파 중심의 노동운동 속에서 ‘지역연대 복원’이라는 취지는 아직 추상적이며 구체적 방안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노동운동이 기존의 한정된 노동권에 국한되지 말고 시민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노동자의 권리를 설명하기 위해 노동인권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 사업으로 수원촛불, (가칭)수원 노동사회포럼, (가칭)노동인권교육 네트워크(교육사업)에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현장실천연대 경기준비위(집행위원장 이규선)는 지역총파업 투쟁의 본질적 의미는 지역연대전선 복원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역연대의 공고화를 위해서는 연대 틀 구성이 중요한데 최근 발족한 상설연대체 <민중의 힘(준)>에 지역에서도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결집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통해 노동운동의 분열에 대해 성찰하고 논의의 장을 넓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체 토론에서도 총파업의 성격과 준비과정이 규모보다 중요하다는 의견들이 이어졌다. 조직된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들의 인식변화, 활동가들의 실천 강화, 사업장을 뛰어넘어 지역적으로 함께 하는 자기 기풍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전국적인 투쟁전선의 소실과 조직된 운동의 고립에 대한 현장의 절박함이 묻어나는 의견들이었다. 지역총파업, 어떤 요구로 누구와 함께 성사할 것인가? 지역총파업에 관한 여러 토론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분위기는 필요성에 대한 공감과 실제 성사 가능성에 대한 의문, 그리고 의제 설정의 어려움이다. 어떤 요구가 경기지역의 조직된 노동자들을 주체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다양한 처지의 노동자들을 결집시키고, 지역사회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낼 것인가. 어려운 문제다. 금속노조 경기지부는 핵심 요구를 중심으로 이를 쟁취하는 방식이 아니라 민생현안을 포괄하는 장을 만들고 생존에 대한 국가(및 지자체)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비정규직 문제가 현재 금속노조 경기지부 구성상 조합원들의 주체적 요구가 되기 어려운 조건을 반영한 주장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역총파업을 통해 이들이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인식을 넓히고 연대의식을 확장하는 계기를 중요시하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경기본부는 2011년 상반기 총력투쟁 계획(안)에서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철폐가 지역총파업의 중심 요구가 되어야 하며, 이를 중심으로 민주노총의 전체적인 투쟁 일정과 결합하고 지역지부의 일상적 활동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차원에서는 대지자체 투쟁을 통해 예산 및 조례제정 등의 성과를 마련하자는 제안이다. 대지자체 요구로는 최저임금 현실화, 비정규직 철폐를 지자체 관련 업무부터 적용될 수 있도록 하고, 공공의료 확대와 외국계 투기자본의 노동탄압 근절, 건설부문 체불임금 근절 등을 함께 요구하며, 각 사안에 대해 모두 조례제정 등의 구체적 성과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기노동전선은 대지자체 투쟁의 측면에서 조례제정과 같은 구체적 요구를 할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현장의 투쟁이 제약되어서는 안 된다고 문제제기 했다. 현장실천연대 경기준비위는 지역민을 포괄하는 의제와 요구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정치적으로 이명박 정권에 책임을 묻는 요구가 핵심이라 주장했다. 여러 토론을 통해 최저임금, 물가 대책, 비정규직 문제, 핵발전 문제 등을 제기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이 나왔다. 경기지역 총파업, 노조운동 혁신의 주체를 만드는 계기로 지역총파업투쟁 논의로부터 주로 지역의 노조운동 현황 진단과 반성이 무수히 제기되고 있다. 조직된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간 격차의 문제, 노동자운동의 계급대표성을 회복하기 위한 내부적 혁신과 연대의 확산, 현장에서의 교육과 실천을 재건하는 문제, 산별노조 운동 현황에 대한 평가,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지역지부 위상 강화의 문제 등. 하나하나 많은 논쟁의 여지와 의미가 있는 제기들이다. 지역총파업 논의를 통해 노조운동이 자기 진단과 혁신을 위해 문제를 스스로 꺼내놓고 토론의 장을 확장하고 있는 점은 정말 좋은 일이다. 또한 대중투쟁에서 빗겨나 2012년 정권교체를 통해 운동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정치적 대응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부터의 조직력 강화와 투쟁전선 구축을 주장하는 흐름이 고무적이다. 여기서 나아가 이번 투쟁을 통해 자본이 만들어 놓은 분할, 즉 노동자 간 임금과 노동조건의 격차를 뛰어넘어 단결을 확대하는 전략을 고민할 주체와 논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모두가 우려하는 일회성 지침 파업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고민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본다. 자본의 분할 전략이 현장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가, 그에 맞서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는 누구를 조직할 것인가, 다양한 층위의 노동자 간에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지역총파업은 이러한 고민이 현장에서 시작되어 현장을 뛰어넘도록 하는 계기와 구조를 남겨야 할 것이다. 그런 주체들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 어떤 의제와 요구로 지역총파업을 구성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다. 투쟁을 제안한 금속노조와 비교해 경기본부나 다른 산별 지역지부의 논의와 교육 속도도 차이가 크다. 지역본부 차원에서 금속을 제외한 다른 산별에 교육과 논의를 제안하고 관장할 준비도 아직 미흡하다. 민주노총 지역지부 또한 지역으로부터의 일상적 연대를 구축하려면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지역연대운동 단위들이 다양한 고민을 토론하고 함께 준비할 수 있는 장도 통일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지역총파업 준비 과정을 통해 많은 단위에서 제기한대로 지역본부가 산별을 포함한 지역연대운동 전반을 관장하고 지역지부의 일상 활동을 강화해 나갈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4월 22일 민주노총 경기본부 대표자 수련회에는 100여 명의 지역지부, 산별 지역지부 단위 사업장 대표자와 활동가들이 모여 지역총파업의 필요성과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2011년 지역총파업 실현을 위해 결의를 모았다. 운동의 위기에 대한 공통의 절박함에서 시작된 지역총파업 논의가 지역운동의 과제를 발굴하고 차이를 넘어 연대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