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막상 벌어진 전쟁에 대한 당혹감과 분노를 미처 감지하기에도 일렀던 이날 오후, 보문동에 위치한 노동사목회관에서는 조금은 낯선 주제의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 2회 인권활동가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다양한 인권운동단체들이 함께 모여 꾸린 '인권활동가대회 준비모임'의 첫 번째 행사로 3월 인권포럼이 '전쟁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당시 전쟁중단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과 미대사관 앞 집회, 그리고 7시 광화문 반전집회가 다급하게 조직되고 있는 상황,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비하면 이 토론의 주제는 너무 추상적이며 상투적인 것이었다. 애초에 준비했던 토론의 내용들은 간략하게 정리하고 긴급한 대응들, 특히 소위 인권운동진영이라고 하는 운동단체들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핵심논의주제로 다루기로 하였다. 평화인권연대에서 준비한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의 정치·군사적 배경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 그리고 이러한 전쟁을 반대하고 막아내기 위해 인권운동 혹은 평화운동이 해야할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한 논의가 제안되었다. 하나는 '여성과 전쟁'이라는 주제로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가 발표하였다. 전쟁이 미치는 극악한 폭력적 상황이 하나의 사회를 파괴시키는 과정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이 존재함, 그것은 사회의 소수자들 즉 여성, 어린이, 장애인 등 전쟁이 아니어도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된 자들이 전쟁에 의한 극단적인 폭력상황에 의해 이중적인 혹은 최악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는 '억압받는 이들의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미국의 명분이 명백히 거짓임을 폭로할 수 있는 반전투쟁의 핵심적인 내용임을 인식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또 하나의 발표는 국제민주연대에서 준비하였다. "이라크 전쟁에 맞서 인권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는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인권운동, 평화운동이 전쟁 및 국제분쟁에 대한 대응방식의 한계 등을 지적하며 활발한 국내외의의 연대를 통한 인권(평화)운동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장하였다. 또한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반전서명운동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미국과 영국을 제소하는 것 등 실천적인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이상의 내용들로 토론이 진행되었고 논의의 과정에서 제기된 몇 가지 실천적 대응들과 관련해 별도의 모임을 상정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그러나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토론의 시간이 그 자리에 모인 참가자들에게도, 포럼을 준비한 인권단체 활동가들에게도 무척 낯설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공동의 대응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소위 '인권운동진영'이라고 하는 다소 모호한 운동집단 내에서의 운동의 방향성과 전망에 대한 내용적인 합의, 혹은 어떤 연대의 근거들이 부재함을 인식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다양한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의 과제와 공동의 운동방향성을 모색하는 토론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고, 토론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또한 밝혀진 바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3월 인권포럼에서 역시 구체적인 공동의 실천과제가 제출되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내용이 부족하였고, 급박한 당면 사안들 즉 전쟁중단을 촉구하는 인권단체 공동 성명서 채택, 이라크전 한국군 파병 국회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공동 대응 등 이전과 그리 다르지 않은 평이한 수준의 공동행동을 계획하는 것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만, 토론의 과정에서 짧게 제기된 몇 가지 고민들을 보다 의미있게 기억하고자 한다. 지금 시기 '인권'과 '평화' 등의 보편적 가치를 화두로 하는 운동들은 정확히 무엇을 위한 투쟁들인가, 또한 인권과 평화라는 화두의 보편성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투쟁들이 어떠한 연대를 무엇을 위해 도모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들. 정답이 아직 없기에 암묵적으로 숨겨 놓았던 그 고민들이 중요한 논의과제가 되고 있다. 3월 20일 진행된 인권활동가들의 토론은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하는 성과를 남겼다. 인권운동 네트워크, 그 의미는? 작년 11월, 첫 번째로 치뤄진 전국인권활동가대회는 인권운동진영의 공동의 과제를 모색하고 각 시기마다의 인권문제의 현안들을 논의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틀거리를 형성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전국30여개 단체의 130여명이 모였고, 다양한 영역과 주제의 운동들이 소개되었고 각각의 운동들은 더욱 폭넓은 연대를 제안하였다. 최초로 진행된 이 사업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제기되었고 이 행사가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문제의식들이 비판적으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평가회의에 거쳐 다시 제안된 제2회 인권활동가대회 준비모임에서는 제2회 대회는 일련의 연대의 흐름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보다 내용적으로 풍부한 공동의 과제를 중심으로 기획하기로 결정하였다. 준비모임에서는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간의 일상적인 교류와 소통을 통해 인권운동진영의 현안과 과제, 그리고 중장기적인 운동의 방향성을 밝혀내는 것이 준비과정에서의 과제임을 합의하였다. 이를 위해 3월/6월/9월에 포럼을 개최하여 당면한 현안에 대한 공동대응의 경험을 만들어나가고, 공동의 과제를 모색하기로 한 것이며 3월 인권포럼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기획되었던 것이다. 현재 준비모임의 주요참가단위는 사회진보연대, 국제민주연대, 동성애자인권연대, 인권실천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인권연대, 한국동성애자연합 등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대의 흐름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한국사회 특수한 역사적 계기로 인해 형성되어왔던 다양하고 수많은 인권운동들이 지금시기, 그 운동들의 방향성과 전망에 대해 수많은 쟁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구체적으로는 김대중 정권의 등장과 국가인권위원회를 둘러싼 쟁점들, 그리고 '인권운동'의 방식이 시민운동의 정책입안식 운동방식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이에 대한 입장차이와 그에 따른 인권단체들의 분별정립들, 또한 노무현 정권에 대한 판단의 차이와 '인권'이라는 화두의 정세적 효과가 시효만료되고 있는 현 시기를 판단하는 것의 차이 등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현존하는 소위 '인권운동' 딱잘라 어떠한 운동이라고 불리기는 모호하나 통상적으로 구분되는 그 운동들이 일종의 '특정영역'이 되어가고 있는 경향은 지금시기 '인권운동의 연대'가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연대틀을 경계하고 지양해야 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아직까지 이러한 쟁점들이 인권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 활발히 토론되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지는 못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권활동가 대회 준비모임은 활동가 대회를 실무적으로 기획하고 느슨한 네트워크의 수준으로 긴급한 현안에 대한 공동대응을 실천할 수 있는 틀거리로서 기능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이에 결합하고 있는 다양한 운동단위 역시 앞서 분류한 '인권운동진영'으로 자신의 운동이 분류되는 것조차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연대의 흐름들에 유의미성을 찾는다면, 존재해왔던 인권운동들 혹은 이로 분류되는 다양한 운동들이 기간의 운동들을 성찰하고 비판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논쟁의 계기를 제공해준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는, 당면한 정세 속에서 인권운동의 공동의 대응을 꾀하며, 기존에 이러한 운동들이 자임하고 있었던 역할들에 대한, 그리고 그러한 역할을 뒷받침하고 있는 '인권' 또는 '평화'의 담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기하며 서로의 고민을 진척시키는 과정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논의의 출발점, '인권'이라는 화두. 김대중 정권의 등장은 인권운동을 분열시켰고 인권운동의 포섭과 배제 속에 인권을 화두로 하는 기존의 운동의 영역들은 일정정도 제도화되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권 하에서 더욱 가속화 될 것이며 '인권'을 중심으로 한 운동들은 더 많은 혼란과 동요를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인권'이 가지고 있는 그 보편성이 각각의 운동의 정치적 효과들을 배제하고 경계하게 만들면서 지배계급이 허용하는 하는 제도권 내의 요구들로 한정되는 문제이다. 때문에 인권에 대한 요구, 즉 인권운동의 목표들은 민중에 의한 정치를 일구어내는 것과는 분리된 것으로 규정하고 그럼으로써 지배계급은 '통치'를 위한 다양한 폭력들에 대항하는 노동자 민중들의 계급투쟁과도 분리시킨다. 이렇듯 '인권'의 보편성은 지배계급의 제도적 틀거리를 유지하는 합리적인 대의와 명분으로 '인권'을 도용하는 위험을 허용하기도 한다. 지금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제기하는 운동들은 현실 속에서 '인권'이 정의되는 맥락의 구조적인 모순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내고 그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인권운동진영에게 던져진 복잡한 쟁점들을 풀어가는 것은 악용되고 있는 '인권'이라는 화두를 되찾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SSP
제 1막: 모하메드 아타(Mohammed Atta) 아타는 이집트의 한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수재였던 그는 카이로에서 건축학교를 마친 후 독일 함부르크로 유학을 가서 도시계획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는 1995년 '이슬람 도시' 카이로를 관광지로 전환하려는 이집트 정부의 도시계획에 관한 연구를 위해 독일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 받고 다른 두 동료 학생들(독일인)과 함께 이집트로 돌아왔는데, 거기서 그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경험을 하게 된다. 당시 이집트 정부는 도시계획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거리에서 내쫓고, 양파와 마늘 상인들을 근절시키고, 문자 그대로 그들을 대신해서 문화적 풍모를 갖춘 시민을 연기할 배우들을 데려와 거리를 꾸미려 했다. 아타와 그의 동료들은 이에 거부감을 느껴 이집트 정부에 항의했지만 정부 관료들은 이러한 그들의 반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타는 모든 것이 세습되는 족벌주의가 만연한 그곳에서 졸업 후에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당시 이집트는 자신의 경제가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고학력자를 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이로에서 연구를 계속할수록 아타는 정부에 대해 더욱 비판적이 되어갔다. 그는 정부의 계획이 유서 깊은 카이로를 이슬람식 디즈니랜드로 만들려는 것이며 이는 이집트 정부가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으려는 데서 생긴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2001년 9월 11일, 그는 비행기를 몰고 세계무역센터를 향해 돌진해 들어간다. 그로 인해 3000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세계는 경악했다. 그것은 비극(tragedy)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정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타가 이집트에 돌아갔을 때 가졌던,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던 경험의 예외적인 성격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의 지독한 진부함이다. 제 3세계 혹은 '주변'에 속한 국가에서라면 어디서나 발견될 수 있을 만한 흔한 일―정부에 의한 도시빈민촌의 철거, 노점상 탄압, 실업자 양산 등의 문제들―을 겪고 그가 '테러리스트'가 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나는 그것들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문제는 그것들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점에 있다. 그가 '사회적' 운동과 결합하여 자신의 문제의식을 풀어나가는 대신 '반-사회적인' 테러리스트가 되었다는 결론만 제외한다면 마치 운동권 청년의 자기 고백을 듣는 듯 귀에 익은 아타의 뒷 이야기에는 따라서 무언가 설명되지 않은 것이 있다. 1952년 군주제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은 낫세르(Gamal Abdel-Nasser)의 지도 하에서 이집트는 진보적인 아랍 민족주의의 유례없는 부흥을 경험했다. 과거 군주제 하에서는 2차 대전 이후 급성장한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무슬림 형제단(50만 회원)―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는데, 낫세르는 집권 후 이들을 주변화시키는 데에 완전히 성공했던 것이다. 낫세르에 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암살기도가 있은 후 그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졌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사정을 바꾼 것은 낫세르의 개혁정책이 가졌던 급진성이었다. 1956년 외국에 넘어가 있던 수웨즈 운하 소유권의 회복과 그에 이은 이스라엘-프랑스-영국 삼자 동맹의 이집트에 대한 공격은 오히려 낫세르를 제 3세계 해방 운동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는 토지를 재분배하고 외국 소유의 산업들을 차례로 되찾아옴으로써 이집트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고 교육 체계의 민주적 개혁을 통해서 이집트를 진보의 길로 안내했다. 이 모든 것들이 이집트 내의 이슬람 근본주의를 약화시켰고, 더 나아가 아랍 및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 다양한 민족주의 운동들을 고무시킬 수 있었다. 한 편 친미적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그 당시 정치·군사적 권력을 쥐고 있던 사우드 왕가와 종교적 권력을 쥐고 있던 와하비족 사이의 뿌리깊은 분쟁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집트에서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의 부흥과 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집트-소련의 동맹 형성이 이들의 협력을 강제했다. 이때부터 반민족주의적이고 반공주의적인 와하비족의 이슬람 근본주의가 사우디 아라비아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자리잡는다. "아랍 냉전"이라고 불리는 친미-사우디와 친소-이집트 사이의 이러한 대결은 1962년에 절정을 맞이한다. 이집트는 반제국주의적 아랍민족주의와 결합된 "사회주의"를 선언하게 되고, 그 반대편에서 사우디 아라비아는 무슬림 세계연맹(Muslim World League)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미국 CIA의 지원을 받아 활동했던 무슬림 세계연맹의 목표가 민족주의,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반동적 이슬람주의를 선동하는 것에 있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결정적으로 힘의 균형이 무너진 것은 67년 이스라엘이 거둔 6일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점으로 해서였는데, 이 사건은 아랍권의 이슬람 근본주의에 불을 지름으로써 사우디 아라비아의 입지를 획기적으로 강화시켜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1979년 호메이니에 의해 주도된 이란 혁명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 호메이니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반공주의적인 사우디의 그것과 구별되는 반서구적 성격을 갖고 있었고, 그것은 세력이 약화된 이집트의 반-제국주의를 우익적으로 전위된 형태 하에서 다시 취하는 것이었다. 이란 혁명과 동시에 발발한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지형의 변화를 완전히 굳혀버린 것은 당연했다. 아프간전에서 사우디와 이란은 누가 더 급진적인가라는 근본주의 경쟁에 연루되었고, 이러한 경쟁은 그 양자를 서로 대립시키면서도 끊임없이 닮아가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적보다 더 급진적이기 위해서는 적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과정의 배후에 소련을 의식한 미국의 다양한 지원이 있었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미국은 반-서구적 이슬람 근본주의의 창궐에 대해 이중적인 책임이 있다. 그들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직접적으로 지원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아랍권 내의 좌파적 운동 및 민족주의 운동을 붕괴시킴으로써 이슬람 근본주의 이외의 그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대안도 가질 수 없는 상황으로 대중들을 몰아넣었던 것이다. 사회적인 모순과 적대를 해결하지 않고 투쟁하는 진보적인 사회운동세력들만을 파괴했을 때, 불만은 전위된 다른 경로를 통해 스스로를 표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왜냐하면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며, 그것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일그러지고 왜곡된 병리학적인 형태로 복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불쌍한 '아타'가 잔혹한 테러리스트 '아타'로 변하게 된 것도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진보적인 운동세력의 총체적인 부재라는 상황 속에서 전망을 찾을 길 없는 그의 분노가 반서구적 이슬람 근본주의에 자신을 결합시켰던 것은 거의 자연적인 필연성을 갖는 과정이었다. 제 2막: 크레온 테바이의 궁전 앞으로 이스메네를 불러낸 안티고네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방금 왕[크레온]께서 테바이에 선포하셨다고 하는 새로운 포고는 무엇이냐? … 우리 친구들이 우리 원수가 될 운명이라는 것을 너에게는 감추더냐? … [전쟁에서 죽은 두 오빠 가운데] 에테오클레스 오빠는 바르고 법도에 맞는 정당한 의식으로 땅에 묻어 저 세상에서 고인들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한다는 거야. 그러나 폴류네이케스 오빠의 불쌍한 시체는 거리에 내놓고 매장도 못 하게 하고 조상도 금지한다는 소문이야."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의 서두에 나오는 이 몇몇 구절들 속에서 우리는 이미 무한한 테마(혹은 차라리 무한히 다르게 반복될 수 있는 테마)를 만난다. 전쟁, 통일된 삶(united life)의 파괴, 국가와 가족 간 갈등의 출현, 공동체 내부의 소속들의 경합, 즉 '전쟁의 내전으로의 전화'라는 일련의 테마를 말이다. 헤겔이 『정신현상학』의 '진정한' 출발점(현실 역사의 출발점)에 위치시켜 분석했고, 레닌이 그의 눈앞에서 전개되던 제국주의 전쟁의 성격을 분석하고자 활용했던 이 테마는 바로 '비극'의 테마였다. 그러나 비극은 '운명의 인과율'을 통해서만 비극이 될 수 있다. 폴류네이케스 오빠의 시신을 땅에 묻으려고 한 안티고네에게서 국가의 "정당한" 권위에 대항한 반-사회적 개인의 이미지만을 본 크레온이 주변의 모든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동굴 속에 산채로 '매장'하려고 했을 때, 그가 보지 못하고 있던 것은 정확히 안티고네의 존재가 자신의 외부가 아닌 내부라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아들 하이몬의 약혼녀인 안티고네를 죽이면서 그것이 역으로 자신의 존재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은 채 깨끗이 사라져 주리라고 크레온이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의 정당함만을 보게 되는 의식의 맹목성에 지배되는 내란(소속들의 경합)의 상황 속에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이몬이 안티고네와 함께 자살하고 이어 자신의 아내 에우류디케가 자살한 것을 전해 들은 크레온은 이렇게 울부짖는다. "아, 이 죄는 도저히 다른 사람한테 전가할 수 없는 것이구나! 내가, 그렇다, 내가 죽였다." 비극 혹은 운명의 인과율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타자와 동일자의 차이가 언제나 '내적인 차이'라는 점이다. 양자의 존재는 단순하게 분리될 수 없으며, 그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동일성이란 과정으로서 차이화(differentiation)가 가져오는 상대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자기자신과 내적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타자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가 곧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타자의 존재가 억압될 수는 있다고 할지라도 파괴될 수는 없으며 다시 돌아와 동일자의 뒷덜미를 잡아채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기와 분리 가능하다고 믿었던 타인의 존재('주체'란 이러한 착각을 우리가 이름짓는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가 사실은 동일자 자신의 내부를 항상 이미 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쟁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비극적인 파국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들이 모종의 상호 인정(mutual recognition)에 도달함으로써 일방성 없는 시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경우뿐이다. 발리바르는 최근에 쓴 자신의 글 「유럽: 사라지는 중재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극의 교훈 … 그것은 "내전"에 관련된다 … 장기 20세기의 "유럽적 내전"으로부터 하나의 교훈이 도출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절대적 승리"도 불가능하며, "적(敵)"에 대한 어떠한 최종적 억압이나 중화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언제든 "최종적"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당신은 더 많은 파괴와 자기-파괴의 조건들을 창출한다. 그러한 상호절멸에는 "끝"이 없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하자. 그것은 오직 그 상호절멸의 적법성이 근본적으로 제거될 때, 그리고 제도화된 집단적 대항-권력들이 나타날 때에만 끝날 수 있다고." 제 3막: 어떤 이름 모를 요르단 남자 냉전 이후 미국은 지구상의 유일한 헤게모니 국가로 독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은 오래지 않아 이를 제국적 지배의 야심으로 전환시켰다. 중동에 대한 미국의 전략은 1990년대 중반부터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클린턴 정권 하에서 제출된 1996년 Joint Vision 2010과 1997년 4년차 국방 보고서에 등장한 이러한 변화는 '방어'(defense) 개념을 대신하여 (사실상 지배(domination)의 완곡 어법인) US의 '우세'(dominance) 개념을 자신의 군사전략 목표로 설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적에 대한 '저지'(deterrence) 개념의 의미 자체가 변하는데, 과거에는 적들의 행동(acting)을 막는 것이 과제였다면, 이제 적들을 반응(reacting)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과제가 된다. 바꿔 말해서, 미국이 자의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거기에 대한 '반응'으로 나오는 적들의 저항을 분쇄시키는 방향으로 군사정책이 이동한 것이다. 2001년 9·11 테러공격이 발발한지 며칠 후 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에 의해 제출된 4년차 국방 보고서는 이러한 US의 '비대칭적 우세'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식별된 적들의 실제적인 위협에 기반한 대응전략(threat-based-strategy) 대신 가설적인 적들의 잠재적 군사 역량에 기반한 대응전략(capabilities-based-strategy)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방 전쟁" 및 "선제 공격" 개념을 정당화하기 시작하는 이러한 계획은 따라서 (테러리즘과 같은) '비대칭전'에 대한 허점을 커버하기 위해 기존의 군사·외교 정책들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강화하는 방향을 취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윗의 작은 돌멩이를 걱정한 골리앗은 이제 자신의 미련한 덩치를 보다 더 크게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정책 상의 변화는 1999년이래 나타난 기하급수적인 국방비의 증가로 이어진다. 현재 부시 행정부는 2002년-2003년 회계연도에 379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국방비를 책정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15개 강대국의 국방비를 모두 합친 금액과 맞먹고 EU 및 NATO의 회원국들의 국방비를 전부 합친 것의 두 배가 넘는다. 한 마디로 미국은 현재 제국으로 전환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국으로의 전환은 경제적인 측면이 아닌 군사적인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초민족적인 금융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경제적인 수단을 통해 하나의 민족국가가 제국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은 앞뒤가 안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는 이러한 미국의 제국으로의 전환에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으며, 미국은 아프간 침공을 필두로 "끝없는"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2003년 3월 20일 마침내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한다. UN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례없는 전 세계 시민들의 반전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결국 이라크를 침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들이 석유에 눈이 멀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많은 전쟁의 비판가들은 이라크 침략전쟁의 목적이 단지 석유에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사태를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일 수 있다. 석유는 탐나는 훌륭한 전리품임에 분명하지만, 미국이 그 모든 국제사회의 법들을 명시적으로 어기고 모든 반대를 무릅쓴 채 침략전쟁을 감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정당화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우익적인 인사들은 기만으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이 내뱉는 말들은 언제나 다른 속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에 젖어있지만, 사실 나는 이것이 하나의 함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무엇보다도 지배계급 스스로가 믿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여야 한다. 근본적으로 우익적 인사들도 자신의 올바름을 신실하게 믿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끝까지 일관된 행동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무서운 것은 그들이 그것을 철저하게 곧이곧대로 믿고 있다는 사실이며, 자신의 정당성만을 바라보려는 의식의 맹목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라크 침공 사흘째가 되던 날 미국의 ABC방송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요르단 남자와 가졌던 인터뷰를 방영했다. 미국 코네티컷의 한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귀국한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와는 아무 관련도 없을 뿐 아니라 미국식 생활 방식에 충분히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에서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는 엄청나게 화가 나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에 TV를 통해 9·11 테러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나 자신이 그러한 테러리즘을 저지르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역사의 행위자들은 종종 너무 늦게 비극의 교훈을 깨닫는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크레온 왕에게 거듭해서 안티고네를 용서해줄 것을 권유하다 마침내 이렇게 말하고 돌아선다. "왕께서는 저의 화를 돋우었기 때문에 노한 나머지 저는 왕의 심장을 겨냥하고 궁수처럼 화살을, 그 아픔을 피할 길 없는 빗나가지 않는 화살을 쏘았습니다." 크레온은 그제서야 자신의 결심을 바꾸면서, "운명과 공연한 싸움을 벌여서는 안되지"라고 말하고 안티고네가 갇혀 있는 동굴 쪽을 향해 달려간다. 이미 당겨진 화살이 자신의 심장을 향해 시시각각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오직 자신의 아들의 주검을 발견하기 위해서.
파병결정은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킬 최악의 선택 지난 3월 5일 미 백악관은 괌에 추가 배치한 24대의 B1, B52 폭격기는 공격임무를 띠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이 1994년 제네바합의로 동결되었던 영변지역의 핵시설(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을 폭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으로 큰 파문이 벌어졌다. 또한 3월 4일부터 한 달간 진행된 한미연합훈련이 마무리된 후에도, F-117 스텔스 폭격기와 F-15E 이글 전투기와 육군특별기동대가 잔류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미국은 한반도에서 사실상의 군사적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의 이런 행동의 목적은 남한에서 막연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다(미국의 ‘충격과 공포’ 작전은 동맹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이 새로운 방식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식의, 아무런 근거 없는 주장도 공포감을 부추기는 행동이기는 매 한 가지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지원해야 된다는 노무현 정부의 주장은, 추상적이고도 모호한 ‘국익’이란 명분을 내세운 것이지만, 결국 막연한 공포감에 기반한 것이다. 노무현이 국회 본회의를 앞둔 연설에서 “대등한 한미관계는 국민의 생존이 안전하게 보장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라고 말한 것은 ‘대등한 한미관계는 국민생존을 위협하는 일’이라는 의미로서, 노골적으로 국민들을 협박한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사태를 객관적으로 이해해야만, 그들이 불러일으키는 막연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한반도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렉산더가 단 칼에 잘라낸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본질은 단순하고 해결책도 존재한다. 단, 이는 한국정부가 미국의 일방주의와 군사주의를 거부할 때에만 가능하다. 칼을 들지 않는다면 노무현 정부는 점점 더 부시정부가 끌고 들어간 미로에서 헤맬 것이다. 아니 이미 그 길로 들어섰다. 북한은 과연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개발했는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국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가 북한을 다녀간 후,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농축우라늄에 기반한 핵무기 개발 계획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제시한 증거는 “강석주 부주석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과 북한이 원심분리기 제작에 사용될 수 있는 알루미늄을 수입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제시한 증거는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해 북한 외무성 관리는 미국 쪽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들이 주장한 농축우라늄에 의한 핵무기 제조계획을 부정했다.” “(미국은) 근거라고 한 위성사진도 내놓지 않았다!” 계속해서 북한 외무성 관리는 강석주 부주석의 당시 발언이 “지금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미국이 계속 강압적으로 나온다면 자기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의미였다고 덧붙였다(앞서 “강석주 부주석이 그렇게 말했다”라는 미국의 발표는 ‘가지게 되어 있다’는 북한식 표현을 의도적으로 오해한 결과인데, 본래 이는 ‘곧 가지게 된다’가 아니라 ‘가질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알루미늄 수입은 어떤가? 이는 현재 미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대인 이라크의 사례를 살펴보는 게 유용하다. 2002년 9월 미국 <뉴욕타임즈>는 이라크가 우라늄 농축을 목적으로 가스 원심분리기를 제작하고 있으며, 그 증거로 원심분리기의 외장재인 알루미늄 배관을 구입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과 딕 체니 부통령은 미국 방송에 출연하여 “정말로 오직 핵무기 원심분리기에만 적합한 설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미국의 핵과학교육재단에서 발행하는 <핵과학자회보>는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라크가 수입하려 한 품목은 재래식 무기나 산업용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이며, 무기에 사용될 경우 기껏해야 재래식 로켓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였다. 미국이 북한의 농축우라늄 기술개발의 증거로 제시했던 것으로 추측되는 품목인 코발트 파우더, 고강도 알루미늄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북한의 농축우라늄 문제는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금창리 지하시설 문제도 이와 유사한 사례였다. 1998년 10월경부터 미국은 위성사진을 근거로 평북 금창리 지역에서 비밀 핵시설을 건설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고, 모든 언론은 연일 떠들썩하게 핵위기론을 제기했다. 온갖 소란이 벌어졌지만 1999년 5월, 미국 조사단은 의혹 시설에 대한 현장 방문 끝에 이는 핵시설과 무관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2000년 5월에도 2차 방문이 이루어졌다). 미국은 자신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것이 무안했던지, ‘현장방문이 이루어질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므로 북한이 사태를 은폐할 시간이 있었다’면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뉘앙스로 정리했다. 한편, 북한과 미국의 핵 전문가들이 지난 2월말 베를린에서 비공식적으로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999년 금창리 지하시설 의혹 때와 마찬가지로 미 조사단을 현지에 받아들여 핵 계획 포기를 증명해 보이겠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고집했다(금창리의 경우에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방문의 대가로 일련의 경제 보상 조치가 있었다. 부시정부가 IAEA 사찰을 주장하는 것은 이를 피하기 위해서다). 한국 정부가 제시한 북핵 해법은 무엇이었나? ‘북핵 위기론’이 미국에 의해 조장, 고조되는 가운데 윤영관 외교통상부장관은 미국을 방문, 콜린 파월 국무부장관과 함께 북핵 해법에 대해 협의했다. 그런데 이들이 논의했다던 북핵 해법은 지금까지 언론에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윤영관 장관의 제안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고 파월 장관이 대답했다는 것은 그가 북한 문제에 대해 사실상 아는 게 거의 없다는 뜻이다. 현재 미국의 고위 관료들은 아무도 한반도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방식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주장이 그저 “흥미로울” 따름이다(미국의 어느 상원의원은 “우리는 지금 대북정책이 없다”고 말했다. ‘나쁜 정책’을 구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페리보고서가 검토했던 ‘무시’ 전략이 실행되고 있음을 뜻한다.) 대신 前주한 미국대사 제임스 레이니가 최근 미국의 <외교관계협의회>에 기고한 글을 살펴보면, 한국정부와 클린턴 정부의 ‘접촉정책’(햇볕정책)의 주요 정책가들이 제시하는 대안을 대략 추측할 수 있다(그는 특별보고서 작성팀의 책임자인 모튼 아브라모위츠 등 네 명과 함께 4월 중순 북한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핵심은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벌여야 하지만 미국이 ‘직접 보상을 주는’ 형태는 안 된다는 것이다(이는 페리보고서와 동일하다). 협상의 1단계는 남한과 북한, 미국■일본■중국■러시아가 공식적으로 한반도 전체의 안보와 안정을 보장하는 포괄적 합의를 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2단계는 여러 소단계로 이루어지는데, 북한이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IAEA를 통한 사찰을 허용하며, 앞서 6개국이 모은 재정적 보상을 대가로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의 개발■생산■실험을 포기하며, IAEA가 북한이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이 중단되었다고 판단하면 미국은 북한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며, 포괄적 합의가 이루어진 5년 후 시점에서 동북아안보포럼을 결성하는 것이다. 각각의 과정은 서로 분리된 합의나 협정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일본은 북한과 국교를 맺고 관계정상화를 이루며, KEDO는 애초의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협상 로드맵은 큰 틀에서 볼 때 페리보고서로 복귀하자는 것인데, 차이점은 일본■중국■러시아를 끌어 들여서 그 비용을 분담시키는 것이다. 페리보고서의 핵심은 미국의 유일한 관심사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제거라는 것이요(북한경제의 개혁은 부차적인 관심사다), 또 동북아에서 미군의 군사력 증강을 꾸준히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즉 핵-미사일 프로그램 제거에 소모되는 비용은 주변 국가에게 분담시키고(북한 경제위기의 관리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군사력 증강 프로그램은 협상 의제에 연루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다자주의’를 확대하는 것은 미국이 충분히 선택 가능한 옵션이다. 한반도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이상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미국은 북한 농축우라늄 파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금창리 지하시설 문제의 전례를 충분히 따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결은 기존에 페리보고서가 제시한 협상틀에 준하여 검토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문제가 진전되지 않았는가? 그것은 집권 이후 북한과 그 어떤 공식적인 외교접촉도 시도하지 않는 부시정부의 태도 때문이다. 미국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이라크와 이란, 북한이 서로 모종의 관련을 맺는 것처럼 묘사했다. “선제공격을 통한 방어”(preemptive defence)라는 군사 교리를 만들어 미국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방어를 위한 전쟁’을 벌일 수 있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UN의 무기사찰단이 별다른 제지 없이 사찰 활동을 벌이는 와중에, 독자적으로 이라크 침공을 결정했다. 미국은 뚜렷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제네바합의 파기를 선언했고 중유공급을 중단했다(금창리의 경우, 제네바합의의 틀이 유지되면서 문제를 해결했다). 역시 분명한 근거도 없이, 북한이 영변지역 핵시설을 재가동할 수 있다면서, 그 시설에 폭격을 가할 수 있는 군사 옵션을 세워야 한다고 일부러 언론에 흘리고 다녔다. 그렇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부시 행정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방법 밖에 없다. 북한은 농축우라늄 기술 개발이 미국의 악선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한국 정부는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이 독단적인 행각을 펼치는 것을 제한할 수 있는 외교적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다. 또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거부하고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미국에 굴종하여 파병을 선택했고, 이는 현재 상황에서 최악의 선택일 뿐이다.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노무현 정부를 누가 구원할 수 있으랴!
전국민중대회에 부쳐 3월 21일 침공이 시작된 이래 "충격과 공포" 작전으로 명명된,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맹폭이 이라크에 가해졌다. 지금까지 약 4000여명의 희생자가 속출했고 그 중 대다수는 어린이와 여성 등 민간인이라는 소식이 타전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에 의해 대량학살이 자행된 20세기와는 달리 21세기의 전쟁은 첨단정밀무기체계에 의한 '깨끗한 전쟁'이 가능할 것이라는 환상은 잠시. 500만명이 거주하는 바그다드에 집중 포격이 가해졌고 이내 거리는 검은 연기와 붉은 피로 뒤덮였다. 바쁘게 오가는 구급차의 경적 소리와 어디선가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찢어질 듯한 절규는 최첨단 정밀타격 최소파괴무기가 실은 무차별 대량살상무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아비규환... "충격과 공포"마저 일상이 되어 차라리 둔감해진, 이 참혹한 역설이 바로 이라크 민중의 현실이다. 이제 "충격과 공포"로 이라크의 해방을 가져오겠다는 미국의 새빨간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이라크 민중의 참상과 함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라크에 가해지는 "충격과 공포"에 의해 세계질서가 덩달아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충격과 공포" 작전은 비단 이라크를 겨냥한 순수 군사적전으로서의 의미를 뛰어넘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지역적 강국'들이나 초강제국으로서 자신의 지위에 도전하는 준(準)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일종의 상징적 공포를 안겨주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지난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 편에 설 것인가, 테러국 편에 설 것인가'를 강요했듯이 '이번 침략에 동참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세계를 아군과 적군으로 양분하고 있다. '의지연합' ― 굴종할 것인가, 배제될 것인가 미국은 침공 개시 전부터 이미 "의지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이라는 신개념을 통해 국제법이나 유엔, 나토와 같은 국제질서에 결박당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와 의지에 따라 쟁점별로 '유연하게' 동맹체제를 구축할 것을 천명했다. 1990년대말 부시 정권의 등장 이후 주로 미 군부나 공화당의 두뇌집단(think tank)들이 새로운 동맹체제를 구상하는 맥락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의지연합'이란, 요컨대 미국의 방침에 동조, 지지하는 국가들끼리의 동맹관계라는 뜻이다. 예컨대, 2002년 9월 '국가안전보장전략문서'를 통해 선제공격론을 정식화하며 유엔은 물론 나토 등 종래의 동맹체제를 그다지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 '부시 독트린'은 그 전형적인 사례다. 물론 현재로서는 미국의 일방적 힘과 의지에 의존한 "의지연합"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유엔과 국제법으로 상징되는― 기존의 국제질서를 대체, 새로운 국가간 체계로서 기능할 것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다만, 911이후 체계화된 '예방전쟁' 전략을 십분 감안한다면, '의지연합'이 당분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의 주요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는 점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그 징후는 이번 침공을 앞둔 상황에서 공공연히 터져나온 미국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에서 확인된다. 미국무장관 파월은 지난 3월 5일 <전략 및 국제 연구 센터 the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중대한 위협에 처했다고 확신해서 유엔 안보리가 제재를 가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만일 유엔 안보리가 제재를 가할 수 없다면, 그리고 가하지 않겠다면, 우리는 미국의 안전은 물론 지역 및 세계의 안전을 위해, '의지연합'과 함께 행동할 선택지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미국의 이해를 확고히 관철시키는데 기존의 국제질서가 방해물이 된다면 이조차 무시할 수 있다는 일방적 경고인 셈이다. 리처드 펄 미국방자문위원회 위원장은 한술 더 떠 지난 3월 21일 캐나다 <내셔널 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적극 승인하지 않은 유엔 안보리에 맹공을 가한 뒤, "이제 금세기는 새 방식에 의한 새 세계 질서를 희망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이라크 침공은 '의지연합'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출발점이다. 미국은 자신의 전쟁을 지지, 지원하는 국가(미국은 이 명단 자체를 '의지연합'이라고 지칭한다)와 그렇지 않은 국가를 명확히 구분, 향후 자신을 중심으로 재편될 국제 질서에서 후자를 배제할 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의지연합"에 가담할 것인가, 불참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크게 분기하는 중이다. 선택지는 굴종할 것인가, 배제될 것인가라는 오직 두 개의 항뿐이다. 이라크전의 전망 ― 세계의 체계적 불안정성의 도래 그러나 미국을 비롯, '의지연합'이 주도하는 이라크 침공은 장기적으로 세계질서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신중세적 무질서가 창궐하는 효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 비록 미디어에 의해 조작된 측면이 적지 않지만,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전쟁은 자칫 장기전으로 돌입할 태세다. 작전 초기부터 미군은 적지 않은 손실을 경험하고 있다. 정작 전쟁이 발발하면 내전을 일으킬 것이라던, '후세인 독재 체제 하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이 연합군에 맞서 항거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전쟁의 참화가 끊이지 않았던, 따라서 전쟁은 곧 삶의 일부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조용한 분노'를 쌓아왔던 것이다. 또 장기불황의 침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세계경제가 '전시경제'를 통해 회복되리라는 전망 역시 어둡다. 누적된 지정학적 사안 역시 이번 침공을 통해 그 모순이 더욱 첨예해질 것이 분명하다. 미국이 비록 전쟁에서 승리한 뒤 친미자유정권을 수립한다해도, 그 유지비용은 만만치 않을 것이며 되레 중동 전역에서 이슬람 민족주의 혹은 강경 원리주의 세력의 부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유라시아 전역에서 안보의 불안정성은 증폭될 것이다. 미국의 예방전쟁에 거부감을 느끼는 러시아와 중국·프랑스·독일과 같은 아류 제국들의 반발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며 중동 패권을 둘러싼 지역적 갈등은 심화될 것이다. 당분간 미국을 좇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을 적과 아로 나누며 무소불위의 군사력으로 패권을 강화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목적하는 자국의 안보와 시민의 안전은 점차 악화일로를 걷게 될 것이다. 결국 '의지연합'이 상징하는 오늘날 세계질서는 '체계적 불안정'으로 묘사될 수 있을 따름이다. 전쟁의 성패와 무관하게 세계 질서는 이전과는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911 이후 미국이 보여준 일련의 과정, 즉 세계질서를 주도하던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 질서를 폐기한 것은 세계 각국으로 하여금 미국의 일관된 정책이 무엇인지를 의심케 하기 충분했다. 징벌과 폭력이 잠재된 군사적 수단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노선 역시 항시적인 위험과 불안요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2차 대전 이후 창설된 국제기구들이 자명한 한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지연합"이 주도할 새로운 세계질서가 이전 세기에 비해 평화와 안전을 안겨주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노무현 정권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명분이나 논리보다는, 대단히 전략적이고도 현실적인 판단"이라며 파병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의지연합'에 복속되어야 한다는 절박감을 잘 드러내준다. 그러나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선택은 장기적으로 세계질서와 한반도에 중대한 위험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이미 "이라크 다음은 이란, 시리아, 북한"이라는 미국의 위협이 이라크 침공으로 현실화된 마당에 이라크 침공을 지지함으로써 한반도 위기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노무현의 발언은 자가당착일 따름이다. 더구나 파병찬성론자들이 주된 근거로 제시하듯, 파병을 통해 얻게 될 '국익'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종전 후 초기 복구사업과 관련한 계약은 이미 미국계 7개 업체로 한정되어 있으며 통상 전후 복구사업에 빠지지 않고 참여해온 국제기구나 비정부기구(NGO)는 초기단계부터 배제된 상태다. 재계 스스로도 '전쟁 기여도'에 따라 어느 정도의 참여나 하청이 가능할 뿐이라고 밝히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이라크 침공을 '이라크 자유'라 지칭하는 미국이, 이라크와 후세인보다 더 위험한 존재로 간주하는 북한 및 김정일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북한의 자유'라는 작전명을 사용하지 말라는 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작금의 한반도 핵위기를 조장한 주범이 제네바 합의를 고의로 위반한 미국이라는 사실이 명명백백한 상황에서, 북을 '벼랑끝 전술'로 내몰 뿐인 '한미공조 강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보장받겠다는 그의 주장은 옹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오히려 현재 미국이 구가하는 세계패권을 용인함으로써, 혹은 적극적으로 방조함으로써 한반도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또 노무현은 이라크와 북한은 다르다며 부시의 패권적 세계전략에서 한반도는 빗겨 갈 것이라 주장한다. 미국을 포함하여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세력은 전쟁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주요한 근거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아랍 내에서 반미감정이 격화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침략을 감행하는 제국의 모습이다. '예방-선제공격'이라는 새로운 세계 전략 앞에서는, 자신이 그토록 집착해 온 원칙과 질서 뿐 아니라 자신의 지정학적 이해의 일부마저도 과감히 희생하는 것이 지금의 미국이다. 이러한 숨김없는 야욕을 싣고 날아가는 미사일과, 폭격의 현장에 쓰러져 있는 주검이라는 이 명명백백한 현실 앞에서, 어디에 또 다른 현실이 있으며, 전략적 선택이 있단 말인가? 침공 중단! 파병 철회! 전국민중대회로 나아가자 25일에 이어 28일 다시 한번 국군파병동의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것은 일단 반전 투쟁의 소중한 성과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지배세력들은 '의지연합'에 복속되지 않고 과연 남한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집요하게 공격할 것이다. 현실주의를 가장하여 허구적 이익을 좇으라고 강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의 무질서와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주범이 바로 미국의 패권적 군사전략에 있으며 이를 제어하지 않는 이상,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는 요원한 것임을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국익'은 '의지연합'에 종속적으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힘으로 제국에 맞서 싸울 때에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서로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세계 각지에서 거세게 일어나는 반미-반전 시위대열의 함성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하등의 명분도, 정당성도 없음을 재차 웅변하고 있다. 이제 민중대회로 집결하자. 한국군 파병을 막아내고, 이라크 침략 전쟁을 중단시키자. 우리 자신의 평화와 생존을 위해서 그리고 지금도 미군의 무차별한 폭격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이라크 민중들의 평화와 생존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한다.
* 전략안보프로젝트(Strategic Security Project)의 director 마이클 레비 라는 사람이 <New Republic>이란 잡지에 쓴 글입니다. (잡지 제목을 보아 하니, 미국 공화당 계열의 잡지가 아닌가 추측됩니다만...) *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폭격하는 계획에서 가장 큰 문제는 - 오히려 이 미 알려진 영변 지역에 대한 정밀 공격은 방사능 피해가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 북한 핵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외교적인 방식으로 북한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 입니다. * 물론 이런 방식의 주장을 옹호해서 글을 소개하는 것은 아니고요, 이런 문제가 언급되는 것을 보면 북한 핵시설 폭격 문제가 기술적인 방식까지 공공연하게 토론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듯하여 올립니다.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많은 분석가들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은 치명적인 방사능 낙진 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94년 당시 북한의 핵 프로그램 은 단지 영변 지역의 하나의 재처리시설과 세 개의 원자로로 제한되어 있 어서, 효과적인 정밀 타격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이 비 밀리에 개발하고 있는 농축우라늄 문제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어디 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정밀 타격이 불가능하다. - 정밀 타격의 첫 번째 목표는 재처리시설이다. 기술적인 문제는 방사능 낙진이 흩뿌려지는 것인데, 최근 분석에 따르면 방사능 낙진은 북한의 작 은 일부 지역에 한정되거나, 대부분은 영변 지역 내부에 봉쇄될 것이라고 한다. 봉쇄된다는 게 무슨 말인가? 재처리시설은 1992년까지 절반 정도 완 성되었고, 따라서 미국 정보 당국은 완성된 재처리시설이 어떤 모습인지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보에 따르면 주의 깊은 정밀 타격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클린턴 정부의 고위 과학자는 "큰 화재의 발 생과 무거운 콘크리트 벽의 붕괴를 막아서 방사능 물질을 파편 속에 가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이런 방법은 북한이 책물질을 재활용하는 것 을 방해하는 보너스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두 번째 목표는 원자로다. 대부분의 사람은 체르노빌을 기억하기 때문 에 파국적인 결과 없이 원자로를 타격을 가하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 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북한의 원자로는 천연 우라늄을 사용하는 데 이는 물론 유독성 물질이지만 핵물질은 거의 아니다. 원자로가 작동하 면서 이 우라늄이 핵분열을 통해 방사능 물질로 전환된다. 북한의 원자로 는 재가동되기 전에 우라늄을 채우는데 거의 한 달의 시간이 걸리므로, 위험은 크게 감소된다. 클린턴 정부의 고위 과학자는 "새로운 연료로 매 우 오랫동안 가동되기 전에 공격을 감행하면 방사능 물질이 흩뿌려지는 일 은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그런데 진짜 어려움은 2002년 10월 떠오른 농축우라늄 문제다. 먼저 미 국은 북한이 언제쯤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지 모른 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어디인지 전혀 모른다. 이러한 방식 의 핵물질 생산은 전기 소모가 매우 적으며, 또한 그 시설이 차지하는 공 간도 매우 작다. - 또한 영변 지역 외에 재처리 시설이 존재하느냐의 문제도 심각한 의문이 다. 레온 시갈에 따르면, 이 문제는 1994년에도 심각한 논쟁을 낳았던 문 제다. 재처리시설도 전기 소모가 적고 차지하는 공간이 작기 때문에 찾아 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북한의 터널을 뚫는 기술을 볼 때, 지하에 설치했 을 수도 있기 때문에 찾아내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이론적으로 플루 토늄 재처리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인 크립톤-85(krypton085)로서 감지가 가능하지만, 일본과 중국의 합법적인 재처리 과정에서도 그 가스 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매우 떨어진다. 1994년 위기 당시에 클 린턴 정부는 북한 내부에 최소한 12개 이상의 감지기를 설치하려고 시도했 지만, 미국의 협상가들은 그것이 너무 공격적이라고 여겨져서 폐기되었다. - 따라서 군사적 방식의 문제 해결은 큰 어려움을 내재하고 있다.
전쟁중단, 파병반대를 위한 긴급행동에 돌입하자! 미군과 동맹군이 기어코 이라크를 향해 폭격을 가했다. 스스로 주도해 온 국제질서(유엔)도 무시하고, 전 지구적으로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전쟁반대의 물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타락한 제국의 시대가 시작되는가? 수십 년 간 쓰고 있던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면을 벗고 독재와 폭력의 본성을 드러내는가? 걸프에 집결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총구 앞에 이라크 아니 세계의 운명이 발가벗겨진 채 내던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전쟁반대의 깃발을 더욱 높이 쳐들어야 한다.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미국이 구상해왔고 지금 현실에 등장시키려 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는 새롭게 각오를 다져야 한다. 지금 우리가 강력한 비판과 저항을 해내는 만큼 타락한 제국의 질서를 막고 새로운 세계를 출현시키기 위한 우리의 싸움은 전진할 것이다. 타락한 제국의 '더러운 전쟁'을 강력히 규탄한다!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더러운 침략전쟁을 막기 위한 반전투쟁도 더욱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탈리아 항만 노동자들은 미국이 군사장비를 걸프만으로 옮기기 위해 자신들의 작업장을 이용하려는 데 항의해 파업을 단행한 것을 비롯하여 14일에는 수백만 명의 유럽 노동자들이 작업을 일시 중단했다. 이라크 침공이 개시된 지금 전 세계에서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행동들이 개시되고 있을 것이다.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투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경제적, 정치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부시 정부로서는 전쟁을 최대한 속전속결로 마무리지으려 할 것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외신들이 전하는 소식을 종합하면 "미국은 공습과 지상전을 거의 동시에 시작해 전쟁을 가능한 한 최단기간에 끝낸다"는 전쟁 시나리오를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 영 합동군은 개전 후 3~4일 동안 지난 91년 걸프전 때의 약 10배에 달하는 약 3천발의 순항 미사일과 정밀유도 폭탄으로 대규모 초토화 공습을 단행한 이후, 쿠웨이트 쪽에서 지상군을 침공시켜 수도 바그다드를 함락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걸프전 당시 공중폭격이 38일 간 계속되었다는 점과 비교해본다면 이번 공중폭격이 파괴력이 얼마나 가공할 만한 수준인가를 알 수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충격과 공포 계획(shock and awe)'이라는 시나리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 역사상 유래 없는 파괴력을 가진 전쟁이 될 것이다. '신속함'과 '파괴력'을 중시하는 작전은 대량의 인명피해로 이어질 것이다. 걸프전 당시 미국과 동맹국은 스텔스 폭격기에서 투하되는 정밀조준 폭탄과 레이저 조준 폭탄, 순항 미사일을 통해 목표물을 외과수술을 하듯 도려냈고 민간인 사상은 최소에 불과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걸프전 이후 이라크인의 인명 피해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지만, 대략 15만 명이 사망했고 그 중 12만 명이 민간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사시설이라고 주장한 폭격대상 중 상당수가 민간인이 군집한 시설을 포함하고 있었고, 투하된 폭탄 중 90%가 넘는 수가 매우 파괴적인 구형폭탄이었으며, 정밀조준 폭탄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구나 이번 공격이 '속도'와 '파괴력'으로 이라크를 충격과 공포에 빠뜨려 속전속결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겠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인명피해를 불러 올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속전속결'과 '깨끗한 전쟁'의 신화 뒤에 감추어진 더러운 전쟁의 본질을 폭로하고 당장 전쟁을 중단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반미없이 평화없다! 미국의 전쟁책동 분쇄하자! 한편 전쟁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현실주의를 가장한 전쟁지지의 입장이 기세를 부릴 것이다. 최후통첩 이후 미국에서 전쟁에 대한 지지 여론이 상승하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물론 전쟁을 앞두고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전쟁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이 되어 버린 전쟁을 보며 체념적 지지가 늘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미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전쟁을 반대하던 국가의 정부조차 전쟁이 자국의 경제에 미칠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많은 시민들이 물가 불안을 걱정하며 차라리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소망한다. 전쟁은 이미 돌이킬 수 없으므로, 이제는 전쟁으로 인해 우리 자신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 역시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도 한·미 동맹관계를 강화해야 하며, 이라크 침공을 적극적으로 지지,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가고 있다. 여당과 야당 모두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고 있어 지금으로서는 이라크 파병 안이 국회에서도 무리 없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반감이 파병이라는 현실적인 사안과 대면해서는 소극적인 지지 입장으로 많이 선회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전쟁이 현실화되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는 엄청난 위력의 미군 첨단 장비들은 표적에서 우리가 벗어나 있다는 안도감과 우리 역시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동시에 불러 올 것이다. 압도적인 현실의 힘과 대면하여 자연스럽게 발동되는 자기보호의 감정 앞에, 막연한 평화의 주장은 '이상적인 것', '시효 만료된 것'으로 여겨지기 쉽상이다. 따라서 감성적이고 도덕적으로 평화를 주장하는 것을 넘어, 지금의 전쟁에 우리가 굴복했을 때 형성될 질서에 대한 현실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미국과 군수기업들, 그리고 금융자본 및 거대주식투자자들은 끝도 목적도 필요로 하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전쟁을 시작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그 첫 걸음이다. 현실적으로 보이는 전쟁지지의 주장은 부메랑이 되어서 날아 올 것임을 알려내야 한다. 한-미 동맹의 강화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는 논리에 대해, 오히려 한반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음을 들어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한국정부는 이러한 행동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 것처럼 치장하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이라크 침공이 감행되는 시점에서, 부시정부의 알량한 전화통화 몇 마디로 한반도 평화가 보장될 수 있다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부시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기는커녕, 오히려 미국 관료들의 입에서는 "이라크 다음은 이란, 시리아, 북한이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정부는 누구에게 무슨 명목으로 향후 미국의 한반도 전쟁위협을 막자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오직 미국의 바지 끄트머리만을 잡고 미국이 알아서 한반도 평화를 실현해주길 바라볼 것인가? 한반도 평화에 힘이 되는 길은 오직 이라크 민중들이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지금의 세계 질서는 강대해 보이지만, 타락한 제국의 질서에 불과하다. 겉보기에 튼튼해 보이는 동아줄은, 사실 썩어 문드러진 새끼줄임을 명심해야 한다. 바로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에서 반전 투쟁을! 남한에서 반전투쟁의 흐름은 잠재되어 있는 전쟁 반대의 여론에 비해서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자신의 전략 변경에 따른 주한미군의 재편을 감축이나 철군으로 포장하거나 한반도에서의 전쟁의 가능성을 언급하며 가해지는 미국의 위협 속에서 이라크 침공에 대한 실리적인 접근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도덕적인 반대의 입장이 현실적인 선택과 투쟁으로 나가지 못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덧붙여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타개하는데 우리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우리에게 닥치고 있는 시대의 엄중함을 안이하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 본다. 다행스러운 것은 2월 15일 국제 공동 반전집회에 이어, 3월 15일 반전촛불대행진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도 반전투쟁의 흐름이 점차 고양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민주노총을 비롯하여 대중조직에서 반전투쟁을 자신들의 투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너무 늦었다고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고양되어 가는 흐름들을 상승시키고 확장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서로에게 일상적인 실천을 제안하고 행동을 조직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전쟁은 이미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현실 논리와 눈앞에서 재현되는 폭력의 거대한 힘 앞에서 고립되어 무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만나고, 이야기하고, 공동의 행동을 통해 우리의 힘을 확인하고 확장해가야 한다. 예를 들어 전북 임실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열띤 논의를 벌인 끝에 직접 고안하여 만든 '반전 배지'를 전교생이 달고 다닌다고 한다. 집회라는 자리에 모여 전쟁반대의 집단적인 의지를 표출하는 것과 함께 자신이 속한 생활 공간에서도 그러한 의지를 모아내기 위한 작은 행동들을 만들어가려는 절실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비판하는 토론을 조직하고, 토론된 내용을 주변사람에게 알리며, 사업장, 학교,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실천을 서로 제안하고 함께 만들어 가자. 위기를 맞아 탈주하기 시작한 타락한 제국의 질서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질문의 무게만큼 긴 호흡을 가지되 치열한 싸움을 시작해야 할 때다. - 미국의 이라크 침공 즉각 중단하라! - 한국정부의 이라크 침공 지원, 한국군 파병을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