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현 | 사회진보연대 회원 독일의 반나치 혁명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패배한 동포를 향하여, 대지에 나뒹구는 철모의 사진을 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아라 패배한 자들이 썼던 이 철모들을! 그러나 우리의 쓰라린 패배의 순간은 이 모자들이 마지막 벗겨져 내려 대지 위에 나뒹굴었던 때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모자들을 고분고분 우리의 머리 위에 썼을 때였다.” (브레히트, 『전쟁교본』중에서) 들어가며 지난 10월28일, 도쿄도(都)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鎭太郞)는 도쿄 도내에서 개최된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망언을 하였다. “우리는 결코 무력으로 [조선에] 침범한 적이 없다. 오히려 당시 조선반도는 분열된 정치상황으로 러시아, 시나(支那), 일본 어느 나라를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었다. 조선은, 이미 근대화를 눈부시게 달성하고 얼굴색도 비슷한 일본의 도움을 얻고자 했던 것이며 이에 따라 합병은 전세계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나아가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한합병을 100% 정당한 것으로 주장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조선인의 감정에서 본다면 분한 것도 있고, 굴욕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합병에는 그들 선조의 책임 또한 있을 뿐 아니라, 비록 이것이 식민주의라 해도 진보적이었으며 인간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비인간적, 호전적 망언은 바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구출을 위한 도쿄 모임’(회장 타시로 히로츠구(田代博嗣), 자민당 도쿄도의회 의원)이 주최한 ‘동포를 탈환하자! 도쿄도 결의대회’의 이시하라의 강연에서 나온 것이다. 이시하라는 이에 앞선 9월10일, 작년 북일정상회담을 준비한 일본지배계급의 한 분파․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외무심의관의 자택 앞에 ‘국적토벌대’라는 명의의 정체불명의 극우그룹에 의해 시한폭탄이 설치된 사건에 대해 “다나카 히토시라는 놈, 이번에 집 앞에 폭탄 설치되는 일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중략) 회담대표로 한 사람이 나가 북한과 논쟁이 될 리가 없다.”(10일, 자민당 총재선거후보, 카메이 이즈카(龜井精香)의 가두지원 연설 중)라고 말할 뿐 아니라, “(폭탄사건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를 묻는다면 당연히 나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러한 일을 맞게 된 것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던 것 아니었는가?”(11일 기자회견 중), “다나카 히토시의 매국행위는 만번 죽어 마땅할 일이기 때문에 그러한 표현을 했다”(25일, 도의회 발언 중) 등의 폭언을 내뱉었다. 이러한 이시하라의 국수적 망언․폭언은 이번 사건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이른바 ‘삼국인(三國人)’으로 대표되는 그의 망언․폭언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때마다 한국이나, 북한, 중국에서도 이에 대한 정부의 항의성명이나 민중의 규탄이 전달되고 있으나, 일본 내에서는 “있을 수 없는 발언이다”라는 기존의 분위기에서 단지 “또 시작인가”라는 분위기로 서서히 변화하여, 최근에는 인터넷상에서도 ‘도쿄도 이시하라 지사의 발언을 지지하는 모임’이라는 사이트마저 생겨나는 등 현재 이러한 민족주의는 일본 민중의 정신을 침식하고 있다. 나치의 선전상 괴벨은 “거짓말도 100번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라크에 대량파괴무기가 존재한다”고 반복해서 선전하여 미국 민중을 전쟁광으로 몰아간 것은 네오콘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시하라의 망언․폭언을 수용하는 광신성의 토대가 일본민중 내에 넓고 깊숙하게 뿌리내리려 하고 있다. 전쟁․개헌에 밀접히 관련된 고이즈미 2차 내각 9월20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압승한 고이즈미 수상은 22일 자민당 당직자 인사를 단행하고 제2차 내각을 발족시켰다. 새로운 내각의 면모를 보자면 하나같이 호전적이고 위험한 인물들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민당 당직자들을 살펴보면, 먼저 자민당의 새로운 간사장으로 발탁된 아베(安倍) 전 내각 관방 부장관은 작년 북일평양선언 발표를 계기로 한 북일국교 정상화의 흐름을 납치사건을 통해 돌려놓은 중심적인 인물로서 뿌리부터 개헌론자라 할 수 있다. 자민당 부총재에 취임한 야마자키(山埼) 전 자민당 간사장은 방위청 장관을 역임한 이른바 ‘국방족’의 유력한 인사로서 지금까지 자민당 간사장으로 당내 헌법 개악안 작성 과정을 주도해온 인물이다. 자민당 정조회장이 된 누카가(額賀)와 간사장 대리인 큐우마(久間) 또한 방위청 장관 경험자로 오늘날 자위대 해외파병의 기초를 닦은 인물들이다. 제2차 고이즈미 내각에 입각한 관료들은, 아소(麻生) 총무대신이 일본우익단체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일본회의(日本會議)’와 제휴한 ‘일본회의-국회의원 간담회’의 회장이며, 노자와(野澤) 법무대신이 입각 전까지 참의원에서 ‘헌법조정회’ 회장으로 활동한 헌법9조 부정론자이다. 나카가와(中川) 경제산업 대신은 [자민당 내] ‘청년 매파’의 대표격으로서 ‘납치구출행동의원연맹’(약칭 ‘납치의련’)의 회장이며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국회 내 지원세력인 ‘역사교과서 문제를 생각하는 초당파 모임’의 회장이며 코이케(小池) 환경 대신도 ‘납치의련’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대북한 강경론자이다. 모데키(茂木) 오끼나와․홋카이도․과학기술담당 대신은 전임 외무 부대신 당시부터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주장하고 부시의 이라크 침략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이와 같이 노골적인 개헌론자들, 더구나 이데올로기적이고 행동적인 청년 매파를 대거 등용한 신내각을 발판으로 고이즈미 수상은 연말로 계획되어 있는 이라크에의 육상자위대 파병, 북한에 대한 6자회담에서 미국 입장 추종 및 한층 강화된 강경책 전개, 내년 정기국회에서 ‘유사관련법’의 남아있는 법안인 국민보호법(‘전시총동원’)의 도입, 교육기본법의 개악, 나아가 2005년 헌법개악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중의원 선거의 계급적 의미 새로운 내각 구성을 마친 고이즈미 수상은 10월 10일 임시국회에서 한시적 입법이었던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기간연장을 참의원에서 통과시키고, 같은 날, 중의원을 해산하였다. 그리고 현재 일본에서는 중의원 선거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중의원 선거는 어떠한 계급적 의미를 갖고 있는가? 중의원 해산 전인 10월 5일 칸 나오토(管直人)가 이끄는 제1야당인 민주당이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가 이끄는 제4야당인 자유당을 흡수하는 형태로 통합하였다. 중의원과 참의원을 합해 소속의원 200명을 넘는 새로운 야당 민주당의 출현에 부르주아 언론들은 일제히 이번 중의원 선거를 여당 자민당 대 야당 민주당의 양대 정당 간의 대결인 것처럼 선동하고 있다. 민주당은 ‘마니페스토’(정권공약)을 발표하고 고이즈미 ‘구조개혁’에 자신들의 ‘개혁’을 대비하면서 정권교체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민주당은 이름만 ‘민주’일 뿐 일본 독점자본이 세계시장에서 생존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철저하게 옹호하고 있다. 이들은 정․관과 재계의 유착구조에 얽혀 있는 자민당 내 저항세력의 존재로 인해 고이즈미 ‘구조개혁’은 실행되기 어려우며, 이러한 관계를 갖지 않은 민주당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세력이라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마니페스토’에서 “논헌(論憲)에서 창헌(創憲)으로” 라는 슬로건 하에 헌법 전문(前文)과 제9조의 개악뿐 아니라, 인민의 생존권에 관한 규정인 제25조를 개악하고 헌법 전체를 신자유주의적으로 개악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민주당의 개헌노선은 자민당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민․민주의 양당체제는 일본 독점자본에 있어 매우 구미에 맞는 정당체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체제 하에서] 자본은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부르주아 언론의 이데올로기 조작을 동원하여 자본축적 달성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한, 보다 유리한 정권으로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에는 결코 손상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권의 지속적인 교체가 가능한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 계급과 민중에게는 임금은 물론 연금, 의료비 등의 사회보장비와 세금 등을 통한 착취가 더욱 강화되는 체제에 불과하다. 한편 헌법옹호를 주장하는 야당 사회민주당과 일본공산당은 이번 선거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 중의원 선거에 소선거구제가 도입된지 9년이 된다. 이러한 소선거구제 도입에 의해 자민당은 일시적으로 야당이 되었었다. 그러나 이후 연립여당을 구성한 사회당은 오히려 민주, 사민, 신사회당으로 분열, 해체되어 국회는 자민당 중심의 ‘대정익찬회(大政翼贊會)’와 같은 상황이 출현하게 되었다. 또한 일본공산당은 의회주의에 순화되어 당원과 당기능을 오로지 득표를 위한 형태로 변질시키고 말았다. 그 전형적인 사례를 당 규약에 ‘경영지부’의 지역에서의 활동의무를 명시하여 ‘경영지부’의 당원을 선거활동에 동원해온 것을 통해 볼 수 있다. 그 결과 일본공산당은 노동현장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공산당의 영향 하에 있는 전노련(全勞連) 산하 현장에서는 노동조합이 형해화되어 결국 현장집회 한번 만들어 내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현재 헌법 옹호를 주장하는 사민당과 공산당이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주체적 조건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들에서 볼 때, 현재 우리는 미래를 전망하지 못하는 매우 난망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10월 17일 방콕의 APEC 정상회담 참석을 위한 일정 중 일본을 방문한 부시에게 고이즈미는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과 50억 달러의 이라크 ‘재건원조금’ 지원을 약속했다. 고이즈미 정권은 아프간 전쟁 후 미제에 의한 ‘show the flag(깃발을 선명히)’ 작전에 따라 인도양에 자위대 함정을 파견했고, 이제 또다시 ‘boots on the ground(지상부대의 파견)’ 작전에 따라 육상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단순히 미제의 행동에 꼬리를 흔들며 쫓아가는 ‘바둑이 외교’가 아니라 일본제국주의 독자적인 계급적 이해에 따른 것이라 판단해야 한다. 즉 1985년 플라자 합의 이래 다국적 기업화를 극적으로 진전시켜온 일본제국주의는, 오늘과 같은 세계화 상황에서 일본계 다국적기업의 지속적인 권익확보를 위해서는 ‘일미동맹’과 같은 군사적 담보를 필수적인 전제로서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이즈미 정권은 ‘아미티지 리포트’의 제안에 호응하여 ‘유사법제 3법’을 제정하고 헌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것이며. 자민당 창당 50주년이 되는 2005년을 계기로 일거에 개헌을 성사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아미티지 리포트’가 그리는 일미관계의 미래상은 아프간 전쟁에서 이라크 전쟁까지 공조를 유지한 부시-블레어의 ‘영미동맹’에 다름 아니다. 이는 곧 서쪽으로는 ‘영미동맹’ 그리고 동쪽으로는 ‘일미동맹’을 구축하여 명실상부한 ‘팍스 아메리카나’를 성취하겠다는 몽상인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한미동맹’의 기치 하에 제2차 이라크 파병이 강행되려 하고 있다. 한국 내에서도 노무현 정권의 대미종속 자세가 초미의 현안이 되고 있으나, 단지 이러한 종속적인 태도 자체만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자본주의의 불균등발전의 과정에서, 85년의 플라자 합의와 같은 양상으로, 한국에서도 87년 루브르 합의를 계기로 사회주의가 붕괴한 동유럽의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한국기업의 다국적화가 진행되었다. 그 후 한국자본은 97년의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또다시 자본의 집중을 강행하여 현재 노무현 정권의 ‘동북아경제중심국가’ 구상의 기치 하에 한국계 다국적 자본의 사활을 걸고 동북아시아에의 진출과 확대를 꾀하고 있다. 다국적화하는 자본을 군사적으로 담보하고자 하는 이해관계를 갖는 것은 한국자본으로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정부의 동향 글의 서두에 언급한 이시하라와 아소 등의 망언이 일본민중에게 일정하게 수용되어 파시즘의 지반이 마련되고 있다는 판단, 그리고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에 이지스함을 포함한 자위대 군함이 미․영 함선의 호위와 연료 보급 등의 명목으로 인도양에 출항한 이래 일본이 이미 전시상황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인식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인식하에서만 고이즈미 정권 - 이는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다 해도 마찬가지인데 -이 추진하고 있는 ‘전쟁국가화 정책’에 대항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정부․독점자본은 자본의 세계화가 요청하는 전쟁국가화 상황을 창출하기 위해 작년 9월 북일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의 특수기관 일부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그리고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납치문제는 지속적으로 확대․증폭되고 있다. 부르주아 언론들은 연일 납치사건을 마치 ‘일본 민족 전체가 피해를 입은 비극’으로서 연출․선동하여 일종의 ‘피해의식’에 기반을 둔 국론을 형성하고, 북한과 관계된 일은 무엇을 막론하고 용서할 수 없다는 식의 위험한 민족 배외주의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이시하라의 발언도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도쿄모임’의 집회에서 나온 것이며, 이러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구출을 위한 전국협의회’(약칭 구출모임),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대책위원회’(약칭 가족대책위) 그리고 앞서 언급한 ‘납치의련’ 등이 일제히 북일국교 정상화 교섭에 개입하여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 국내에서는 민족배외주의가 만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그 공격의 초점이 (총련계) 재일조선인과 그 자녀들에게 향해지고 있다. 각 지방에 있는 총련 회관이나 관련시설에 폭탄이 설치되고, 협박장이 보내질 뿐 아니라 민족학교에 통학하는 총련계 학생들의 치마저고리 교복 등을 찢고 폭언을 퍼붓는 등의 사건이 전국에서 빈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족학교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체육복이나 사복을 입고 등교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한사람이라도 더 일본친구들을 사귀지 않으면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고 말하는 필자의 총련계 조선인 친구는, 80년 전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인 자경단이 6000명이상의 한국인을 학살했던 역사를 오늘의 민족배외주의가 만연한 상황을 보며 떠올리는 것이 분명했다.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민족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테제가 현재의 일본 노동자․민중에게 다시금 상기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 고이즈미 수상은 이러한 위험한 배외주의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여하한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오히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북한이 공격해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고 말하면서 배외주의를 확대․재생산하여 유사법(‘전쟁법’) 제정을 강행하고 연내 이라크 파병 준비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내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이 개최될 예정이지만 북일관계의 교착상황이 타개되지 않는 한, 6자회담이 다른 진전된 상황을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6자 회담에서 일본정부는 철저히 미국의 정책기조 하에 따를 것이며, 논의과정에서 납치문제를 재론할 속셈이며, 일본은 회담의 진전에 장애물이 될지언정 결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향후의 북일관계는 이 6자회담의 진척 이후 논의되게 될 것이다. 전쟁의 위험과 동북아시아의 시장경제화에 대항하기 위하여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6자회담의 계급적 성격이다. 부시 독트린은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것처럼, 독자행동주의와 선제공격을 주요한 내용으로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자유무역과 안정된 국제통화시스템을 이 원칙에 동의하는 모든 국가들에 관철시켜 경제성장과 정치적 개방을 촉진하려는 의도 또한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제국주의는 6자회담을 통해 북한포위망을 형성하고, 전쟁을 통해서일지 아닐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 최종목표로서 북한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 전역의 시장경제화를 상정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최근 일본 국내에서는 “시장경제가 확대되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논조가 신자유주의자들은 물론 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떠들썩하게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단지 ‘평화’롭기만 하면 되는 문제인가? 그러한 ‘평화’란 어떠한 상태이며, 그 속에서 노동자․민중들은 어떠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바라는 ‘평화’란 단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북한과 중국을 포함하여 동북아시아 전역을 석권하는 것으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부의 편재가 국제적으로도, 일국적으로도 현재보다 더욱 심화될 것이다. 현재 아시아 각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와 투자협정(BIT)의 체결교섭은 이를 담보하는 자본축적의 폭력장치에 불과하다. 우리는 침략전쟁과 세계화, 나아가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삼위일체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인식 하에 이에 대한 저항을, 남․북아메리카와 유럽 등 세계의 민중들과 연대하는 가운데, 동아시아 수준에서 구축해가야 한다고 본다. 작년 이래 이어지고 있는 반전투쟁의 국제적 확대와 칸쿤에서 WTO 각료회의 저지의 경험은 우리에게 이러한 과제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내년 1월 인도 뭄바이에서 개최될 제4차 세계사회포럼(WSF)을 계기로 이런 과제를 실현해가고자 한다. 나아가 WTO와 현재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과 투자협정에 대한 투쟁이 일국 내의 개별적 대응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수준의 포괄적인 대응을 위한 조직적 틀의 형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본의 동향이 ASEAN+3 회의와 같이 국내적인 갈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항 저항운동을 수행하는데 있어 한일간의 연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나아가 11월 중으로 예정되어 있는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오키나와, 토쿄와 서울 방문은 한반도에 전쟁위기를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에 대한 긴급한 대응이 요구된다. 지난 10월25일 ANSWER의 호소 하에 성사된 국제반전 동시행동에서 한국과 일본의 노동․사회․시민단체들은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구에 반대하는 한일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향후 이러한 공동행동을 일과성의 성명발표로 국한하지 않고 ‘이라크 파병반대’, ‘미군의 동아시아 재배치 반대’, ‘주둔 미군의 철거’라는 구체적인 공통의 과제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는 한일연대운동으로 발전시켜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글의 서두에 인용한 브레히트의 『전쟁교본』처럼, 대지 위에 나뒹구는 패잔병의 철모를 일본의 민중이 또다시 고분고분 쓰는 일이 없기 위하여!PSSP *역주 - 일본식 한자어 표현은 한국식 표현에 맞게 수정하였다. : ‘일미’, ‘일한’, ‘조미’, ‘조일‘은 미일’, ‘한일’, ‘북미’, ‘북일’ 등으로 표기하였으며 ‘조선’, ‘조선인’은 ‘북한’, ‘북한인’로 표기하였다. 단 ‘조선인’은 문맥상 ‘(총련계) 재일 조선인’ 등으로 표기하였다. 그 밖에 ‘수뇌회담’, ‘연락회’, ‘체조복’ 등은 ‘정상회담’, ‘대책위원회’, ‘체육복’ 등으로 표기하였다. - 그 밖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 역주를 달았다. 2,4,6,9번
노무현 파병정권, 한미 학살동맹을 심판하자 ! 우리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 결정을 내린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파병문제를 “결코 조급하게 결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데 이어 불과 하루 전인 17일에는 시민-종교 단체 대표들과 만남의 자리를 갖으며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으나, 같은 시각에 청와대에서 4당 대표들에게 파병확정을 통고했다고 하니 국민을 우롱하는 이런 기만적인 작태가 어디 있는가. 여론 수렴은커녕, 뻔뻔한 거짓말로 일관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에 우리는 다만 기가 차고 열불 터지는 분노를 감출 길 없다. 16일 유엔 안보리 이라크 결의안이 통과되기가 무섭게 단 이틀만에 파병 결정을 내린 것은 유엔 다국적군이라는 명분을 들이대며 파병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속내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처사이다. 허나 유엔 결의라는 국제 기구를 통한 문제해결 방안조차도 미국에 의해 저질러진 침략 전쟁을 사후 승인하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관철하는 구실 밖에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다국적군 타이틀을 건 파병이 무슨 명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말하는 허울좋은 다국적군 파병에 한국이 파병 비용뿐만 아니라 이라크 재건 비용으로만 2억 달러를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미국의 비용을 강제로 떠맡아야 하는 상황은 또 어떠한가. 미국의 부당한 파병압력에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학살동맹’으로 응한 것이다. 이라크 파병 결정 과정과 결정 근거 지난 4월 2일 1차 파병을 위한 국회결의안 의결에 앞선 연설에서 노무현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경제 불안 해소’가 파병 결정의 배경임을 주장했다. ‘더불어 명분이 아니라 현실의 힘이 국제 정치 질서를 좌우하고 있음’을 강조하여 오늘 세계 질서에서 미국의 무력이 무엇을 뜻하며 국회가 왜 파병 결의안을 통과시켜야 하는지, 세계정세를 냉정히 읽을 것을 주문했다. 또 지난 9월 9일 언론은 일제히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동아시아 태평양 부차관의 파병요청을 보도하였고, 이에 대해 황영수 국방부 대변인은 ‘국제정세의 동향과 국민 의견 수렴 등 다각적이고 신중한 검토를 거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석연휴를 경과하면서 언론은 대단히 모호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UN 결의가 통과될 때 파병찬반이 바로 그것이다. UN이 무엇을 결의하는지는 따지지도 않고, UN 결의는 곧 선이라는 전제아래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국민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한편, 9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은 ‘적어도 한반도 안정에 대해 예측 가능한 무엇이 필요하다’며 파병과 북핵 문제의 연계를 시사했지만, 그 날 파월 국무부 장관은 윤영관 외통부 장관과 벌인 회담에서 ‘북한의 선핵 포기가 모든 것의 전제’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9월 30일 한승주 주미대사는 일체 조건 없는 파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미국 현지의 시각이 매우 부정적임을 알려왔다. 그리고 최근에야 확인된 바에 따르면, 10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을 통해 미국에 친서를 보냈고, 이에 대해 라종일 보좌관은 외교관례상 친서의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정부는 북핵과 파병을 별개사안으로 대처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고 여러 경로를 통해 이 점을 미국 측에 통보한 일이 있다”고 밝힘으로써, 사실상 친서의 내용이 노무현 정부의 파병방침과 관련된 것임을 시사했다. 물론, 이는 그동안 정부측의 말과 달리 애초부터 파병은 북핵의 평화적 해결과 연계되어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내 준 것이기도 하다. 라종일 보좌관이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으며, 친서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10월 14일 라이스 보좌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미국의) 이라크 정책을 계속 지지할 것으로 확신하며 한국과 이라크 파병 문제를 가장 먼저 논의하고 싶다’며, ‘우리에게 한국보다 더 강력한 동맹은 없다… 이것은 매우 강력한 동맹이며, 매우 강력한 관계’라고 한국정부를 치켜세웠다. 통상관례를 넘는 수식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15일 한승주 주미대사는 본국의 훈령에 따라 급히 귀국해 미국 현지 분위기를 전했고, APEC과 한미정상회담까지 노무현을 수행하였다. 영/불/러시아를 달래는데 성공한 미국은 10월 16일 별다른 무리 없이 UN 안보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주도의 다국적군을 허용하는 UN 안보리의 결의를 받아낸 것이다. 이튿날인 17일 노무현 대통령은 재향군인회와 가진 간담회에서 재신임 국면이지만 그와 관계없이 파병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곧이어 이루어진 시민운동 관계자들과의 자리에서는 파병 결정의 우려점을 털어놓으면서 ‘정부 차원에서 결정된 바는 아무 것도 없다. … 내일(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이라며 이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파병 결정을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파병결정의 성격 : 대테러 전쟁 참여, 파병은 학살이다!! 결국 노무현의 ‘평화번영정책’에서 말하는 평화란, 전쟁위협의 제거를 뜻하는 본연의 평화라는 의미와 전혀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의 ‘평화번영정책’은 자본 투자의 불안 요인-위협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예방전쟁’, 선제공격, 침략전쟁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지지하는 전쟁지지 정책이다. 노무현의 2차 파병 결정은 이 같은 그의 속내를 더욱 적나라하게 내비치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은 ‘전투병 파병’이 부담될 수 있는 만큼 ‘안정화군(stabilizing force)’이라는 말로 동맹국에 다국적군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데, 이를 모방하기라도 하듯 노무현 정권도 ‘치안유지군’을 선호했다. 이라크에서 게릴라전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누구든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그가 사태를 호도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그 자신이 약속한 대로 ‘파병군대의 성격, 규모’에 대해서만큼은 논의의 여지를 남겨놓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즉, 비전투병이냐 전투병이냐의 선택),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파병을 보내는 국민적 동의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이번 파병의 목적이 ‘이라크의 치안유지’에 있음을 부각함으로써 어떤 군인을 보내건 파병 자체에 대해 국민적 동의를 얻겠다는 속셈이라는 뜻이다. 이는 미국이 ‘대량살상무기의 제거’를 위해 어떤 형태라도 군사적 제재 수단을 갖겠다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노무현도 역시 동일하게 파병의 명분을 취하겠다는 것이고, 따라서 이는 이라크에 파병된 군인들이 예측하지 못한 피해를 입더라도 약간의 희생(!)은 감내하는 범위에서 파병을 지속할 근거를 미리 마련해 놓겠다는 의미다. 여기서 문제는 부시가 선제공격옵션을 선택했듯 그가 ‘치안부재’의 상황에서 군사적 선택(비록 파병이라는 제한된 형태이긴 하지만) 즉 무장의 선택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때 우리는 그가 지난 10월 21일 APEC 정상회담에서 미래를 위한 파트너십과 반테러를 주제로 연설한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 ‘무역 자유화와 원활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투명성 증진과 정보화 촉진이 중요하다’며 역내 국가 사이 금융협력 필요성을 강조하고는 연이어, APEC내 반테러 협력의 진전을 평가하면서 “경제번영과 안보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에서 APEC에서 반테러를 포함한 안보이슈 논의를 확대해야 한다. … 반테러 협력의 이행을 위해 개도국의 능력 배양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 말이다. 따라서 이를 종합해보면 이번 이라크 파병 결정이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사에 기반을 둔 것임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단순 지원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와 함께 대테러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라크 민중에 대한 학살 선언은 이 땅의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전쟁선포와 한 쌍 동시에 우리는 이 같은 노무현 정권의 우향우가 단지 여기에만 그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지난 9월 노동부가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여, 노동자에 대한 자유로운 해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벌칙 삭제, 파업에 대한 손배 가압류 청구권 보장, 파업현장에 대한 경찰력 투입 근거 확대 등 노동 기본권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안의 실현을 예고하였다. NEIS 합의 파기, 4월 철도노조와 맺은 합의 파기, 파업현장에 경찰력/사설무장력 투입, 경제자유구역 확대, 기초생활보장제도 축소, 교육/의료/문화 시장개방의 확대들까지… 모든 것들이 다 하나같이 정확히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명목은 모두 하나같이 금융가와 기업가의 투자 여건을 방해하는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제거이다. 이라크 민중에 대한 학살선언이 이 땅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전쟁선포와 한 쌍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투병이냐 비전투병이냐의 기만적 논점에 놀아나지 말자 뿐 만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만적이게도 파병부대 형태, 규모, 시기를 ‘미국 요청과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결정하겠다는 묘한 사족을 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에 전투병 뿐만 아니라 ‘이라크 평화정착과 신속한 전후재건 지원’ 역할에 적합한 의료부대 등 이른바 민사지원부대를 추가 구성하여 다목적부대로 파견하는 것이 낫겠다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 쪽에선 이라크 민중들을 죽이고 한 쪽에선 그들을 치료로서 달래주기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종전 이후 아직도 전쟁위험이 도사리는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은 민사지원부대 구성 비율과 관계없이 ‘조금 더’ 또는 ‘조금 덜'의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이라크 민중을 학살하는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파병이 학살인 한에서 파병을 철회시킬 것이냐 아니냐의 싸움이 전투병이냐 비전투병이냐의 논란은 파병방침을 밀어붙이려는 노무현이 쳐놓은 덫이다. 노무현의 이 덫을 치워내는 일로부터 우리의 투쟁은 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노무현이 그 스스로 다짐했던 ‘국민과의 합의’라는 것을 미국의 유엔 결의안 통과를 위한 시간 벌기로 이용하고, 자신의 지지 세력들을 파병방침 결정의 들러리로 세워버린 정치 기술에 유의해야 한다. 그는 언제나 입에 침이 마르도록 대화와 타협을 운운하면서, 때가 되면 합의를 뒤집고 이전의 그 어느 군사독재정권에 못지 않은 탄압을 가해왔다. 그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합리적 개혁세력이 아니다. 그는 이 땅의 민주주의의 파괴자이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피바람 속에서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몇 안 되는 이라크 학살동맹의 우두머리 전범이다. 그는 노동자/농민/여성의 생존권을 벼랑 끝에 몰아넣는 것도 모자라 이들의 최소 저항마저 몰살시키려는 ‘사용자의 대항권’을 키워주려는 폭력사범이다. 그의 파병 결정은 이라크 민중들에 대한 학살선언이며, 이는 이 땅의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전쟁도발과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 노무현의 거짓과 만행을 더 이상 두고볼 여유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파병 결정을 내린 후 “이제까지 생각했던 여러 가지 기준에 비춰볼 때 지금이 파병을 결정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재신임을 둘러싸고 여야가 분열을 거듭하고, 파병 결정이 미뤄지면 ‘인기투표’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파병 결정과 때를 같이해서 대선 자금 공동고백을 매개로 여야가 극적인 ‘대화와 타협’을 이룰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국민들의 진정한 정치 참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야 상층 지배세력들의 타협과 이합집산만을 낳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규탄한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뻔뻔하게 재신임을 물을 수 있는 권한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의 실패로 인한 장기불황과 이라크 침략전쟁, 한반도 위기에 대한 기만적 대응으로 대표되는 노무현 정권의 무능과 연이은 권력형 부정부패가 얼룩진 민생파탄 민주상실의 사회현실을 노동자 민중의 이름으로 엄중히 심판할 것이다. PSSP
반전노동자 토론회가 10월 22일 저녁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2층에서 반전노동자연대(준)의 주최로 진행되었다. 지난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결정을 발표하였고 다시 전쟁반대․파병반대 투쟁이 주요한 정세로 떠오르고 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였기에 일부의 사람들은 뒤편에 서서 토론회에 참가해야 했다. 사전행사인 이라크 현지 상황 강연으로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기아자동차 화성분회와 공무원노조의 현장에서의 반전운동과 반전노동자연대의 문제의식 3가지 발제가 진행되었다. 현장에서의 반전운동에 대한 첫 번째 발제는 기아자동차 화성분회의 김우용씨가 진행하였다. ‘야만의 세계! 제국에 도전하는 노동자!’란 제목으로 노동자가 왜 반전운동에 참가해야 하는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였다. ‘다음’ 싸이트를 비롯한 인터넷 사이트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90% 이상의 응답자들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의 가장 큰 이유를 석유와 패권으로 들고 있다. 이것은 전쟁의 진실이 부분적으로나마 폭로되고 있다는 것을 뜻할 것이라 발제자는 말했다. 그리고 지난 2월 15일 전세계 600개 도시에서 진행된 반전 시위 등 국제적 규모로 진행된 반전운동을 소개했다. 미국은 석유와 패권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방법과 기구를 구사하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IMF와 WTO를 통해 전세계 노동자들에게 중단없는 구조조정과 시장개방, 민영화 등을 강요하며 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서구 유럽의 노동자들이 미국의 전쟁에 반대하며 싸우며 총파업까지 했다는 것은 이런 상황을 인식한 것이라며, 민주노총을 비롯한 남한의 노동자들도 반전투쟁에 동참해야 함을 주장했다. 노동자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이라크 전쟁의 연관을 정치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아무런 저항없이 승리한다면 미국식 자본주의가 더욱 강화되고 노동자 민중들의 재앙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반대 비정규직 철폐 공공민영화 반대와 함께 반전운동을 벌여나갈 것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기아 화성 공장에서 진행된 반전캠페인, 반전토론회, 서명과 버튼판매 등의 반전운동을 소개하며 마무리되었다. 두 번째는 ‘공무원노조의 반전 활동, 그 성과와 의미’라는 제목으로 공무원노조 반전평화 실천의 이신구씨가 발제해 주었다. 처음에는 공무원 사이에서 공무원이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활동(반전)을 해도 되는가에 대한 내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공무원반전평화실천이 공무원노조 상집위원회의 결의로 공식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무원노조의 이름으로 반전사진전, 반전서명 조합원 버튼달기, 플랭카드 걸기 등의 사업 전개하였으나 지역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거나 항의하는 사례는 없었다고 한다. 이런 활동들의 결과로 9.27국제 반전공동행동의 날 노조 내 활동가들이 집회에 참여했다.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파병에 반대하는 것은 대통령의 잘못된 정부정책에 맞설 뿐 아니라 전지구적인 반전운동에 동참하고 반자본주의 반세계화운동의 중심에 함께 하며 노조내의 문제에 매몰되지 않는 중요한 계기였다. 하반기 공무원노조의 특별법저지투쟁과 파병반대 운동이 하나의 목소리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로 발제는 마무리되었다. ‘반전노동자연대의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KT민주동지회의 이해관씨가 발제를 진행하였다. 지난 4월 2일 파병동의안 국회통과 당시, 3월의 반전운동이 가두에서 시민적 방식으로만 전개되었을 뿐 현장에서 계급적 방식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을 평가하면서 문제는 투쟁의 공간이 가두에 머물렀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규모에서의 자본주의의 위기와 전쟁을 통일적으로 바라보고 이에 맞서는 변혁적 반전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발제자는 전쟁 정세와 더불어 대기업 현장 노동자들 중심의 비판적 자아성찰이 반전노동자연대 태동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고 소개하며 정치․사회적 의제에 대한 현장 활동 강화와 공장을 넘어선 실천적 연대 등의 문제의식으로 반전노동자연대(준)이 출범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을 ‘반전운동하는 날’로 설정하여 선전전을 전개해 왔으며 5개월 간의 활동을 통해 현장노동자 중심의 반전운동과 정치활동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반전운동을 당장 대중적으로 전개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반전노동자 연대가 한발 앞서 실천하는 활동가들의 투쟁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했다. 다른 사업장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는 현장 조직간의 공동실천의 경험은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11월 9일 노동자대회의 사전집회로 반전집회를 개최할 것을 제안하며 노동자대회에 앞서 현장의 수평적인 연대의 힘으로 반전을 내용으로 하는 정치집회를 성사시켜낼 것을 제안하며 발제는 마무리되었다. 많은 토론이 진행되지는 못하였지만 발제자들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향후 10․25 전쟁 반대 한․미․일․터키 공동행동의 날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에 노동자의 이름으로 반전 집회에 참여할 것을 함께 결의하며 이날의 토론회는 끝이 났다. PSSP 반전노동자연대 이해관(KT 민주동지회)동지 인터뷰 Q. 반전노동자연대를 결성하게 된 계기를 설명해 주세요. A. 올해 3월 반전투쟁이 전개되면서 느낀건데, 가두에서는 반전 열기가 상당했는데 현장에서 반전 열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내용적으로는 이러한 3월에 있었던 반전투쟁이 시혜적이고, 인도주의적이고 전쟁의 부당성에만 초점을 맞춘 캠페인성 운동을 뛰어 넘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반전투쟁을 조직하고, 반전투쟁의 내용을 강화해보려는 두가지 이유에서이다. Q. 반전노동자연대의 문제의식은 대기업 현장노동자들의 비판적 자아 성찰 속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자아성찰을 말하는 것인가. A. 현재 많은 노동조합들이 조합원들에게 도구적인 자판기로 기능하며 활동가들은 해결사 역할을 맡게 되었다. 조합원들은 조합원대로 노동조합을 실리추구의 수단으로, 사회적으로는 집단이주주의 집단으로 인식되어 노동조합운동이 대중적 기반이 약화되고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또 활동가들의 운동이 자기실현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활동가들이 흔들리면서 점차 타협적으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또한 대다수 활동가들이 당위적으로 반전투쟁의 취지에는 동감하는데, 실천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앞서 말할 것들을 뛰어 넘어보려는 문제의식이 생겨났다. Q. 현재 노동자들이 반전․파병반대 운동에 대중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일부에서는 노동조합지도부의 관료주의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듯 합니다. A. 노동조합 지도부들의 관료주의만을 탓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지도부도 열심히 하려했으나, 현재의 민주노총 골간 체계로 정치․사회적 의제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데는 좀 한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노동조합이 이런 의제로 대중을 움직여보지 않은 게 사실이다. 관건은 현장을 정치적으로 단련시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대중적으로 반전투쟁에 결합 안 되는 이유는 현장을 정치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 운동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운동이다. Q. 반전노동자연대가 하는 일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두는가. A. 5월에 현장조직 공동으로 수련회에 다녀왔고, 6,7,8,9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반전선전전을 사업장 근방에서 진행했고, 10월에는 반전노동자 토론회를 개최했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확대되고 무척 재미있어 한다. 내용적으로도 활동가들의 자기실현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선전전 끝나고 만나면 각 자의 사업장에서 온 노동자들이 월급명세서 비교해보고 그랬는데, 이제는 서로 다른 사업장에서 모인 노동자들이 가벼운(?) 정치토론까지 할 정도까지 되었다. 가장 큰 의미는 현재 노동자 연대가 상층노동자들의 교류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데서 벗어나 현장노동자의 실천적 연대를 추구하는데 있다. Q. 향후 계획은? A. 반전노동자연대는 각 사업장 현장조직의 공동행동연대다. 따라서 특정한 진로를 설정해놓지 않았다. 사업적으로는 11월9일 전쟁반대를 위한 현장노동자결의대회를 기획 중이다. 반전노동자의 목표는 매월 마지막 수요일을 반전실천의 날로 정착시켜, 현장의 노동자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것이다.
파병반대 목소리를 폭력탄압으로 입막음하려는 노무현 정부 규탄한다! 지난 10월 18일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되기 무섭게 파병을 선언한 노무현 정부는 파병형태와 시기를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여 결정하겠다는 기만적인 코멘트를 내걸었다. 이후, 전투병이냐 아니냐, 득이냐 실이냐 하는 기만적인 쟁점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학살동맹 참가를 독단적으로 이미 결정한 이후 그 명분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억지로 끌어내려는 기만적인 선동에 불과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파병반대를 외치는 민중들에 대한 일관된 탄압에서 충분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8일 파병결정 후 광화문에서 연일 진행되고 있는 촛불시위에 대한 과잉진압과 지난 10월 25일 범국민대회 이후의 농성장 폭력침탈, 전원연행, 이에 항의방문 중이던 김종일 파병반대 국민행동 상황실장과 학생들의 폭력적인 연행 등이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이쯤에서 노무현이 내건 "참여정부"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의 참여'를 강행하며 근거없는 명분을 국민들에게 호도하며 '참여'를 거부하는 민중들에 대해서는 무한 탄압을 불사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님이 명확해졌다. 지금의 파병 결정은 이라크 민중들에 대한 폭력이며 미국을 위시로 한 학살동맹의 전범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답이 궁색해진 정권의 몸부림에 불과한 지금의 폭력탄압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파병 결정 철회, 또한 단 한명의 파병도 거부하는 민중의 단호한 투쟁으로 폭력정권, 파병정권을 심판할 것이다. 미제국주의 학살동맹, 노무현 정부 규탄한다! 여론 수렴 운운하다 폭력탄압 일관하는 노무현 정부 규탄한다! 폭력탄압 중단하고 연행자를 즉각 석방하라!
한미 학살동맹을 심판하자!! 노무현 파병정권,한미 학살동맹을 심판하자 ! 우리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 결정을 내린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파병문제를 "결코 조급하게 결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데 이어 불과 하루 전인 17일에는 시민-종교 단체 대표들과 만남의 자리를 갖으며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으나, 같은 시각에 청와대에서 4당 대표들에게 파병확정을 통고했다고 하니 국민을 우롱하는 이런 기만적인 작태가 어디 있는가. 여론 수렴은커녕, 뻔뻔한 거짓말로 일관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에 우리는 다만 기가 차고 열불 터지는 분노를 감출길 없다. 16일 유엔 안보리 이라크 결의안이 통과되기가 무섭게 단 이틀만에 파병 결정을 내린 것은 유엔 다국적군이라는 명분을 들이대며 파병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속내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처사이다. 허나 유엔 결의라는 국제 기구를 통한 문제해결 방안조차도 미국에 의해 저질러진 침략 전쟁을 사후 승인하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관철하는 구실 밖에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다국적군 타이틀을 건 파병이 무슨 명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말하는 허울좋은 다국적군 파병에 한국이 파병 비용뿐만 아니라 이라크 재건 비용으로만 2억 달러를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미국의 비용을 강제로 떠맡아야 하는 상황은 또 어떠한가. 미국의 부당한 파병압력에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학살동맹'으로 응한 것이다. 이라크 파병 결정 과정과 결정 근거 지난 4월 2일 1차 파병을 위한 국회결의안 의결에 앞선 연설에서 노무현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경제 불안 해소’가 파병 결정의 배경임을 주장했다. ‘더불어 명분이 아니라 현실의 힘이 국제 정치 질서를 좌우하고 있음’을 강조하여 오늘 세계 질서에서 미국의 무력이 무엇을 뜻하며 국회가 왜 파병 결의안을 통과시켜야 하는지, 세계정세를 냉정히 읽을 것을 주문했다. 또 지난 9월 9일 언론은 일제히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의 파병요청을 보도하였고, 이에 대해 황영수 국방부 대변인은 ‘국제정세의 동향과 국민 의견 수렴 등 다각적이고 신중한 검토를 거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석연휴를 경과하면서 언론은 대단히 모호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UN 결의 시 파병찬반이 바로 그것이다. UN이 무엇을 결의하는지는 따지지도 않고, UN 결의는 곧 선이라는 전제아래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국민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한편, 9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은 ‘적어도 한반도 안정에 대해 예측 가능한 무엇이 필요하다’며 파병과 북핵문제의 연계를 시사했지만, 그날 파월 국무부 장관은 윤영관 외통부 장관과 벌인 회담에서 ‘북의 선핵 포기가 모든 것의 전제’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9월 30일 한승주 주미대사는 일체 조건 없는 파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미국 현지의 시각이 매우 부정적임을 알려왔다. 그리고 최근에야 확인된 바에 따르면, 10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을 통해 미국에 친서를 보냈고, 이에 대해 라종일 보좌관은 외교관례상 친서의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정부는 북핵과 파병을 별개사안으로 대처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고 여러 경로를 통해 이 점을 미국 측에 통보한 일이 있다”고 밝힘으로써, 사실상 친서의 내용이 노무현 정부의 파병방침과 관련된 것임을 시사했다. 물론, 이는 그동안 정부측의 말과 달리 애초부터 파병은 북핵의 평화적 해결과 연계되어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내 준 것이기도 하다. 라종일 보좌관이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으며, 친서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10월 14일 라이스 보좌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미국의) 이라크 정책을 계속 지지할 것으로 확신하며 한국과 이라크 파병 문제를 가장 먼저 논의하고 싶다’며, ‘우리에게 한국보다 더 강력한 동맹은 없다… 이것은 매우 강력한 동맹이며, 매우 강력한 관계’라고 한국정부를 치켜세웠다. 통상관례를 넘는 수식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15일 한승주 주미대사는 본국의 훈령에 따라 급히 귀국해 미국 현지 분위기를 전했고, APEC과 한미정상회담까지 노무현을 수행하였다. 영․불․러시아를 달래는데 성공한 미국은 10월 16일 별다른 무리 없이 UN 안보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주도의 다국적군에 대한 UN 안보리의 결의를 받아낸 것이다. 이튿날인 17일 노무현 대통령은 재향군인회와 가진 간담회에서 재신임국면이지만 관계없이 파병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곧이어 이루어진 시민운동 관계자들과의 자리에서는 파병 결정의 우려 점을 털어놓으면서 ‘정부 차원에서 결정된 바는 아무 것도 없다. … 내일(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이라며 이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파병 결정을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파병결정의 성격 : 대테러 전쟁 참여, 파병은 학살이다!! 결국 노무현의 ‘평화번영정책’에서 말하는 평화란, 전쟁위협의 제거를 뜻하는 본연의 평화라는 의미와 전혀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의 ‘평화번영정책’은 자본 투자의 불안 요인-위협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예방전쟁', 선제공격, 침략전쟁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지지하는 전쟁지지 정책이다. 노무현의 2차 파병 결정은 이 같은 그의 속내를 더욱 정확히 내비치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은 ‘전투병 파병’이 부담될 수 있는 만큼 ‘안정화군(stabilizing force)’이라는 말로 동맹국에 다국적군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데, 이를 모방하기라도 하듯 노무현 정권도 ‘치안유지군’을 선호했다. 이라크에서 게릴라전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누구든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그가 사태를 호도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그 자신이 약속한 대로 ‘파병군대의 성격, 규모’에 대해서만큼은 논의의 여지를 남겨놓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즉, 비전투병이냐 전투병이냐의 선택),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파병을 보내는 국민적 동의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이번 파병의 목적이 ‘이라크의 치안유지’에 있음을 부각함으로써 어떤 군인을 보내건 파병 자체에 대해 국민적 동의를 얻겠다는 속셈이라는 뜻이다. 이는 미국이 ‘대량살상무기의 제거’를 위해 어떤 형태라도 군사적 재제 수단을 갖겠다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노무현도 역시 동일하게 파병의 명분을 취하겠다는 것이고, 따라서 이는 이라크에 파병된 군인들이 예측하지 못한 피해를 입더라도 약간의 희생(!)은 감내하는 범위에서 파병을 지속할 근거를 미리 마련해 놓겠다는 의미다. 여기서 문제는 부시가 선제공격옵션을 선택했듯 그가 ‘치안부재’의 상황에서 군사적 선택(비록 파병이라는 제한된 형태이긴 하지만) 즉 무장의 선택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때 우리는 그가 지난 10월 21일 APEC 정상회담에서 미래를 위한 파트너십과 반테러를 주제로 연설한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 ‘무역 자유화와 원활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투명성 증진과 정보화 촉진이 중요하다’며 역내 국가 사이 금융협력 필요성을 강조하고는 연이어, APEC내 반테러 협력의 진전을 평가하면서 “경제번영과 안보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에서 APEC에서 반테러를 포함한 안보이슈 논의를 확대해야 한다. … 반테러 협력의 이행을 위해 개도국의 능력 배양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 말이다. 따라서 이를 종합해보면 이번 이라크 파병 결정이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사에 기반을 둔 것임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단순 지원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와 함께 대테러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것을 의미 한다. 이라크 민중에 대한 학살 선언은 이땅의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전쟁선포와 한쌍 동시에 우리는 이 같은 노무현 정권의 우향우가 단지 여기에만 그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지난 9월 노동부가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여, 노동자에 대한 자유로운 해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벌칙 삭제, 파업에 대한 손배 가압류 청구권 보장, 파업현장에 대한 경찰력 투입 근거 확대 등 노동 기본권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안의 실현을 예고하였다. NEIS 합의 파기, 4월 철도노조와 맺은 합의 파기, 파업현장에 대한 경찰력/사설무장력 투입, 경제자유구역 확대, 기초생활보장제도 축소, 교육․의료․문화 시장개방의 확대들까지… 모든 것들이 다 하나같이 정확히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명목은 모두 하나같이 금융가와 기업가의 투자 여건을 방해하는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제거이다. 이라크 민중에 대한 학살선언이 이땅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전쟁선포와 한쌍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투병이냐 비전투병이냐의 기만적 논점에 놀아나지 말자 뿐만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만적이게도 파병부대 형태, 규모, 시기를 '미국 요청과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결정하겠다는 묘한 사족을 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에 전투병 뿐만 아니라 '이라크 평화정착과 신속한 전후재건 지원' 역할에 적합한 의료부대 등 이른바 민사지원부대를 추가 구성하여 다목적부대로 파견하는 것이 낫겠다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 쪽에선 이라크 민중들을 죽이고 한 쪽에선 그들을 치료로서 달래주기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종전 이후 아직도 전쟁위험이 도사리는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은 민사지원부대 구성 비율과 관계없이 '조금 더‘ 또는 ’조금 덜'의 정도차이만 있을 뿐 이라크 민중을 학살하는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파병이 학살인 한에서 파병을 철회시킬 것이냐 아니냐의 싸움이 전투병이냐 비전투병이냐의 논란은 파병방침을 밀어붙이려는 노무현이 쳐놓은 덫이다. 노무현의 이 덫을 치워내는 일로부터 우리의 투쟁은 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노무현이 그 스스로 다짐했던 ‘국민과의 합의’라는 것을 미국의 유엔 결의안 통과를 위한 시간벌기로 이용하고, 자신의 지지 세력들을 파병방침 결정의 들러리로 세워버린 정치 기술에 유의해야 한다. 그는 언제나 입에 침이 마르도록 대화와 타협을 운운하면서, 때가 되면 합의를 뒤집고 이전의 그 어느 군사독재정권에 못지않은 탄압을 가해왔다. 그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합리적 개혁세력이 아니다. 그는 이 땅의 민주주의의 파괴자이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피바람 속에서 세계적으로 다섯손가락안에 꼽히는 몇안되는 이라크 학살동맹의 우두머리 전범이다. 그는 노동자/농민/여성의 생존권을 벼랑 끝에 몰아넣는 것도 모자라 이들의 최소 저항마저 몰살시키려는 ‘사용자의 대항권’을 키워주려는 폭력사범이다. 그의 파병 결정은 이라크 민중들에 대한 학살선언이며, 이는 이땅의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전쟁도발과 한쌍을 이루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 노무현의 거짓과 만행을 더 이상 두고볼 여유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파병 결정을 내린 후 "이제까지 생각했던 여러 가지 기준에 비춰볼 때 지금이 파병을 결정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재신임을 둘러싸고 여야가 분열을 거듭하고, 파병 결정이 미뤄지면 '인기투표'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파병 결정과 때를 같이해서 대선자금 공동고백을 매개로 여야가 극적인 '대화와 타협'을 이룰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국민들의 진정한 정치 참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야 상층 지배세력들의 타협과 이합집산만을 낳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규탄한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뻔뻔하게 재신임을 물을 수 있는 권한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의 실패로 인한 장기불황과 이라크 침략전쟁, 한반도 위기에 대한 기만적 대응으로 대표되는 노무현 정권의 무능과 연이은 권력형 부정부패가 얼룩진 민생파탄 민주상실의 사회현실을 노동자 민중의 이름으로 엄중히 심판할 것이다.
[성명] 노무현 파병정권,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 우리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 결정을 내린 것을 강력히 규탄하는 바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파병문제를 "결코 조급하게 결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데 이어 불과 하루 전인 17일에는 시민-종교 단체 대표들과 만남의 자리를 갖으며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으나 같은 시각에 청와대에서 4당 대표들에게 파병확정을 통고했다고 하니 국민을 우롱하는 이런 기만적인 작태가 어디 있는가. 여론 수렴은커녕, 뻔뻔한 거짓말까지 해대는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가 독재자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 의심스럽다. 16일 유엔 안보리 이라크 결의안이 통과되기가 무섭게 단 이틀만에 파병 결정을 내린 것은 유엔 다국적군이라는 명분을 들이대며 파병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속내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처사이다. 허나 유엔 결의라는 국제 기구를 통한 문제해결 방안조차도 미국에 의해 저질러진 침략 전쟁을 사후 승인하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관철하는 구실 밖에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다국적군 타이틀을 건 파병이 무슨 명분이 될 수 있는가. 그들이 말하는 허울좋은 다국적군 파병에 한국이 파병 비용뿐만 아니라 이라크 재건 비용으로만 2억 달러를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미국의 비용을 강제로 떠맡아야 하는 상황은 또 어떠한가. 미국의 부당한 파병압력에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학살동맹'으로 응한 것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만적이게도 파병부대 형태, 규모, 시기를 '미국 요청과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결정하겠다는 코멘트를 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투병 뿐만 아니라 '이라크 평화정착과 신속한 전후재건 지원' 역할에 적합한 의료부대 등 이른바 민사지원부대를 추가 구성하여 다목적부대로 파견하는 것이 낫겠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한 쪽에선 이라크 민중들을 죽이고 한 쪽에선 그들을 치료로서 달래주기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종전 이후 아직도 전쟁위험이 도사리는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은 민사지원부대 구성 비율과 관계없이 '조금 더 또는 조금 덜'의 정도차이만 있을 뿐 이라크 민중을 학살하는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파병 결정을 내린 후 "이제까지 생각했던 여러 가지 기준에 비춰볼 때 지금이 파병을 결정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재신임을 둘러싸고 여야가 분열을 거듭하고, 파병 결정이 미뤄지면 '인기투표'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파병 결정을 계기로 여야가 극적인 '대화와 타협'을 이룰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국민들의 진정한 정치 참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야 상층 지배세력들의 타협과 이합집산만을 낳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규탄한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뻔뻔하게 재신임을 물을 수 있는 권한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의 실패로 인한 장기불황과 이라크 침략전쟁, 한반도 위기에 대한 기만적 대응으로 대표되는 노무현 정권의 무능과 연이은 권력형 부정부패가 얼룩진 민생파탄 민주상실의 사회현실을 노동자 민중의 이름으로 엄중히 심판할 것이다.
UN, 미국에게 합법적인 점령군의 지위를 승인하다! 지난 5월 22일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대 이라크 UN 제재 해제 결의안’(UN 결의안 1483호)을 통과시켰다. 15개 상임이사국 중에서 시리아만 기권했고, 나머지 14개국은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골자는 1990년 8월 이후 이라크에 내려진 무기금수를 제외한 모든 무역■금융 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전제로서 미국과 영국을 점령군(occupying force)으로 규정하여 그 권한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UN 회원국은 범죄와 잔혹 행위에 책임이 있는 이라크 정권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지 않으며 이들을 법에 따라 처벌한다”고 명시하여 이라크 정권을 범죄자로 규정했다. 또한 “미국과 모든 당사자들이 1949년 제네바협약을 비롯해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이라크 정권 인사들을 ‘인권유린’과 관련된 국제법과 제네바협약 위반으로 처리할 길을 열었다. 반면에 미국은 점령군으로서 제네바협약이 명시한 의무를 준수하는 가운데, 이라크 통치를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미국은 이라크의 석유수입금을 관리,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승인 받았다. 이라크 중앙은행 하에 신설되는 ‘이라크 개발기금’이 점령군의 손에 쥐어졌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이라크의 석유수입금 중에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점령에 대한 보상을 위해 UN보상기금에 적립할 5%를 제외한 모든 돈이 개발기금에 위탁된다. 그리고 이 자금이 인도적 요구, 경제 재건, 사회기반시설 복구, 이라크 무장해제, 민간행정 운영에 사용될 때 점령군이 그 결정권을 갖는다. (또한 “이라크의 석유수입금은 2007년 12월 31일까지 원유 유출을 비롯한 생태학적 사고를 제외하곤 모든 법적 절차에서 면제된다”고 명시하여, 모든 채권자들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었다.) 한편 이 결의안을 통해 UN이 획득한 권한은 “이라크 새 정부 출범을 촉진하기 위해” 유엔 사무총장이 ‘특사’를 임명해 점령군 당국과 ‘협의’한다는 것, UN을 포함해 IMF, 세계은행, 사회경제개발아랍기금의 대표들이 이라크개발기금의 국제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기금의 회계감사원을 임명하는 것, 12개월 후 결의안 이행을 검토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미국의 침략전쟁의 적법성과 그에 따른 피해, 지난 12년에 걸친 장기적인 경제제재의 결과에 대해서는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과 영국은 점령국의 지위를 UN으로부터 승인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결의안은 UN(그리고 ‘반전국’이라고 불렸던 프랑스, 독일, 러시아)이 제한적인 권한을 대가로 침략전쟁의 정당성 사후적으로 추인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이 결의안은 논리적 모순과 함께 전쟁 발발 이전부터 우려했던 문제들이 결코 기우가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하여 드러냈다. 애초 UN의 이라크 제재 결의안은 “이라크에 대랑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찰단의 확증이 있어야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으므로, 제재 해소를 위해서는 법적 절차에 따라 UN 무기사찰단의 이라크 복귀가 먼저 다루어져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조차 반대했고 결국 미국 뜻대로 이루어졌다. UN 제재의 근거가 되었던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이제는 오히려 미국에게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의안은 점령의 종료시점을 명시하지 않고 단지 “1년 후에 결의 사항을 재평가해 필요한 조치를 마련한다”는 구절을 삽입하여,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장기 점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라크개발기금의 지불권을 점령군 당국이 쥐게 되므로, 미국이 이라크 재건사업을 독식하는 방식으로 이라크 석유자원을 착취하는 것도 완전히 정당화되었다. 점령의 위험/ 잔인한 8월 이처럼 미국은 전승의 위세를 떨치며 정치적 정당성과 이라크 점령의 결정적인 권한들을 확보하면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는 단지 더 큰 문제의 시작일 뿐이었다. 즉 ‘점령의 위험’(occupational hazard)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그 위험은 무엇보다도 이라크 점령지에서 벌어지는 ‘저(低)강도 전쟁’이라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궁극적인 위험은 미국이 다른 사회를 점령하여 통치할 수 있는가, 즉 이라크에서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사회를 재건하고 ‘민족형성’(nation-building)에 성공하여 ‘통치성’을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이 미국에게 있냐는 것이었다. 미국의 희망과 달리 이라크의 상황이 점령 이전보다 더 악화되고 이라크 내부의 갈등이나 미국에 대한 저항이 수습할 수 없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다면, 그 역풍은 곧바로 주변 중동 지역으로 전이되거나 미국 사회로 역수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부시 대통령이 5월 1일 종전을 선언했지만, 5월 27일 팔루자에서 미군 4명이 피격 사망한 것을 비롯해 군사적 충돌이 연이어 발생했다. 9월초까지 사망한 미군 285명 중 147명이 부시 대통령이 종전을 선언한 다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군은 6월 9일 ‘사막의 전갈’ 작전이라는 대규모 소탕전을 개시했고, 7월 16일에는 존 아비자이이드 중부군사령관은 “이라크에서 게릴라전이 진행 중이다”고 공개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미군은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다수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공포를 조성하고, 도시 전체를 봉쇄하거나 마을을 급습하고, 대중들을 검거하는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이러한 작전은 민간인 사상과 주민들의 정신적■물질적 고통을 야기했고, 오히려 미국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처럼 미국의 게릴라 소탕 작전이 원하던 성과를 얻지 못하고 갈등을 더욱 부추기던 와중에, 특히 8월은 미군으로서 ‘잔인한 달’이라고 부르기 충분할 정도로 심각한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터졌다. 8월 초 바그다드의 요르단 대사관 밖에서 차량폭탄공격으로 이라크인 17명이 사망하는 사건을 비롯해, 두 주 후 19일에는 바그다드 주재 유엔본부에 차량폭탄공격이 발생해 세르지오 비에이라 데 멜루 유엔 특사 등을 포함해 23명이 사망했다. 29일에는 이라크 종전 이후 최악의 참사라 할 수 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자프시의 이맘 알리 회교사원에서 차량폭탄공격으로 126명이 사망하고 시아파 최고 지도자이며 과도통치위원회 위원인 아야툴라 모하메드 바키르 알 하킴이 사망하였다. 도대체 누가 적인가? 이러한 사태로 인해 미국 언론은 “민중봉기와 게릴라전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제3의 걸프전 위험이 있다”, 또는 “이라크가 제2의 베트남이 되고 있다”며 점령군이 처한 위협만을 크게 부각하는 선정적인 표제 기사로 문제를 몰아갔다. 하지만 ‘저강도 전쟁’에 직면하여 미국 정부와 전문가들의 가장 심각한 골치 꺼리는 “도대체 누가 적이냐”는 문제였다. 후세인/바트당 충성파, 전후 이라크 민족주의자, 이라크 수니파 그룹, 이라크 외부 아랍 출신 자원병들, 역시 이라크 외부의 조직적인 이슬람 극단주의 그룹(알 카에다와 느슨한 연계를 맺고 있는 그룹을 포함하여)이 다양하게 언급되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의 정체와 경향, 군사적 역량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정보 분석가들은 자기 입맛에 맞게 ‘음모 이론’을 창조해내고 언론은 그것을 퍼 나르기에 바쁠 뿐이었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공격자들을 한결같이 ‘테러리스트’로 묘사했고, 그들이 9■11 테러나 아프가니스탄과 관련이 있는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교묘히 형성하는데 주력했다. ‘반테러리즘’이라는 가장 간편하고도 인기 있는 구호를 계속 밀고 나갔다. 왜 이라크 내부에 ‘민족주의’적 기류가 발생하고 있는가, 또한 ‘민족-형성’을 둘러싸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가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하면, “미국 정부는 전후 사태에 대해 충분한 예상과 준비 없이 전쟁에 돌입했으며, 국제적 지원도 결핍되어 있는가”라는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비난의 초점이 부시 정부로 옮겨질 것이다. 나아가 이라크의 상황이 미국인들에게 크나큰 정신적 상처로 남아 있는 베트남이나 레바논, 소말리아와 유사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대중에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라크에 더 많은 군사력을? 따라서 미국은 국내외에서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해 서둘러서 이라크 내 점령군의 군사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8월에 이르러 검토된 방안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을 확대하자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 경우 국방예산이 대규모로 확대됨에 따라 재정적자가 급증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미국의 배치 가능한 공군, 해군, 해병대의 40%를 이라크에 집중해야되는 큰 부담이 있었다. 또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두 번째 방안은 UN으로 문제를 끌고 가서 UN의 역할을 확대하고 ‘UN의 군대’를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UN 군대‘의 역할은 평화협정의 이행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실제 ’저강도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나라가 실제로 군대를 파병할만한 군사적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기꺼이 그렇게 할 용의가 있는지, 그 비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모든 문제가 불분명하였다. 그리고 파병국이 그에 걸맞는 ’정치적 결정 권한‘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반응할지의 문제도 있었다. 게다가 이미 이라크에 파병한 미국 이외의 31개국 군대도 지휘통제나 병참지원, 재정지원 등의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 각종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세 번째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주장한 것으로, 이라크인들을 군사력 확대에 활용하자는 방안이다. (이미 폴 브레머 이라크 최고행정관은 이라크 사회의 완전한 ‘탈(脫)-바트당’을 목표로 이라크군을 해체했고, 40만 명의 군인이 실업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방안은 가장 간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최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는 단지 이라크인들 훈련하는 것과 관련된 기술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인을 내세운 ‘소탕작전’이 극도로 정치적인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적절한 훈련과 언어 소통이 결여된 상태에서 이라크인들이 전장에 투입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이라크 내부의 정치적 분할과 갈등을 폭발시키는 뇌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라크에서 점령군의 군사력을 확대하기 위한 어느 방안도 모순이나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결국 미국이 택한 것은 이른바 ‘미군의 지휘를 받는 다국적군’이라는 방식으로 두 번째 방안을 밀어 부치는 것이었다. 그 대상으로 한국을 비롯해 터키, 인도, 파키스탄 등 10여 개 나라가 물망에 올랐고, 한국 정부에는 9월 초 서울에서 열린 ‘미래한미동맹조정회의’에서 공식 요청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이 요청한 다국적군은 군사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비용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미국이 염두에 두고 있는 한국군 파병 시나리오의 전모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최근까지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이 군대는 미국의 101 공중강습사단이 맡고 있던 북부 산악지대를 맡게 되며, 단순한 보호활동이 아니라 게릴라 군에 대한 소탕작전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한국군이 그 지역에 주둔하게 될 다른 나라의 주둔 비용을 사전에 부담하고 사후에 정산하는 방식으로 전쟁비용을 책임져야 할 전망이다.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의 종파(宗派)적■종족적 구성 한편 7월 13일 점령군 당국이 임명한 25인으로 구성된 ‘과도통치위원회’가 취임식과 첫 회의를 열었다. 애초에 브레머 최고행정관은 이 위원회의 역할을 순수한 ‘자문’으로 한정하려 했다. 하지만 이라크 내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조만간 정치권력을 이양할 것이라는 제스처를 취해 미군의 점령 현실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저항세력을 고립시키려는 의도로 서둘러 과도통치위원회를 창설한 것이다. 점령군 당국은 과도통치위원회가 새로 수립될 정권의 모태라면서 법적 정통성을 부여했고, 몇 가지 상징적 권한을 제공했다. 장관을 임명하거나 해임하고, 점령당국이 제시한 윤곽 내에서 정책을 세우고, 장차 새로운 헌법을 기초할 역할을 나눈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점령군 당국의 최고행정관이 최종 결정권과 위원회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브레머 행정관은 위원회를 구성할 때 ‘7 그룹’이라고 불리는 정치세력들에게 최우선권을 부여했다. 그 구성원들의 배경과 정치적 제휴세력은 실로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후세인 정권 때 해외로 망명한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후세인 통치 시절 이라크에 남아 있던 인물들이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을 봉쇄하고 경쟁자들에 대한 거부권을 강하게 주장했다. 브레머는 미국의 관점에서 종파와 종족을 안배하여 구성하였다. 즉 시아파 무슬림 13인, 수니파 무슬림 5명, 쿠르드 5명, 투르크 1인, 아시리아 1인. (9월 3일 과도통치위원회가 임명한 25명의 과도 내각은 통치위원의 구성 비율과 동일하게 맞춰졌다.) 그러나 ‘7 그룹’을 구성하는 각 세력들은 ‘연방제’ 창설이라는 대강의 공약을 제외하면 정치 비전에서 공통점을 거의 찾을 수 없다. (단적인 예로 점령군에 관해 최고혁명위원회의 알 하킴은 최대한 빠른 철수를 요구하지만 찰라비는 해방군으로서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한 위원회 활동의 투명성과 독립성에 대한 의문도 널리 제기되었다. 8월 12월 과도통치위원회는 이라크 총선 실시를 위한 헌법을 설계할 제헌위원회를 임명하였지만, 그 구성원들이 누구인지조차 투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라크의 레바논화? 그러나 과도통치위원회의 권한과 투명성 문제를 넘어서, 미국이 이것을 창설할 때 채택했던 접근방식이야말로 위원회의 미래에 가장 치명적인 위협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정치, 사회를 극히 단순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이해하여, 사회■정치적 정체성의 복합성을 무시하고, 종파나 종족이라는 협소한 프리즘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와 그들이 후원하는 망명 그룹들은 시아, 수니, 쿠르드 주민들의 상대적인 인구수 비율을 반영하여 연방의 대표들을 끌어 모으는 방식의 정치적 틀을 옹호해왔다. 14명의 시아 통치위원의 5명은 명백히 종파의 성격이 강하며, 5인의 쿠르드 대표는 종족적 경향이 강하다. 수니는 단지 5명이고 그 종교적 지도자는 위원회에서 배제되었다. 동시에 미국은 미군에 대한 공격이 “수니 삼각지대”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근거를 들어서 수니를 바트당과 동일시하고 나아가 후세인 충성파와 똑같게 취급하는 잘못을 범했다. 이러한 미국의 경향은 수니파 아랍인들에게 장차 이라크 사회에서 주변화될 것이라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고 종교적 기초로 재결집하도록 촉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점령 통치 전략은 수니파 아랍인들이 점령군 당국에 대한 저항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게 만들거나, 장차 수니-시아-쿠르드 간의 잠재적 긴장을 높여 이라크의 “레바논화(化)”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의 미래와 미국의 지배 전략 물론 이라크의 미래에 관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상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라크 사회에는 정체되었거나 퇴행적인 방향으로 흘러 갈 수밖에 없는 고유한 ‘결함’이 내재되어 있고, 외부의 힘이 그것을 교정해야 한다는 전제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피점령국 이라크 사회가 직면한 객관적인 현실과 미국의 점령통치 전략이 낳을 실제적 위험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지정학적 이해 관계를 고려하여 이라크 내부의 정치적 세력관계를 특정한 방향으로 고정시키려는 시도, 특히 종파적■종족적 동일성을 부추겨 이라크의 정치적 세력관계를 외부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미국의 오래된 지배 전술은 이라크에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쿠르드, 수니, 시아 등 어느 세력도 (각기 다른 이유로) 완전히 지지하거나 신뢰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를 종파적■종족적으로 분할하는 것을 주도하거나 조장하면서도, 그 균형을 활용하려 할 것이다. 또한 이라크 경제의 재건 과정이 석유산업의 사유화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회의 양극화를 넘어 사회의 분리나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소련과 동유럽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빅뱅을 거치며 이루어진 마피아 유형의 사유화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이미 분명하게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군사력을 신뢰할수록 이라크 주변 국가의 지역을 포함해 비대칭적(즉 비정규적) 저항의 잠재력은 더욱 커지고 미국이 오히려 장기 주둔할 수밖에 없는 사태로 확산되어, 이라크 사회의 장기적인 혼돈의 씨앗을 뿌리게 될 위험성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의 점령은 바로 오늘도 지속되고 있고, 그 끝이 어디일지는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