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신자유주의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각 국의 정·재계 지배 엘리트들이 서울에 대거 몰려온다. 아시아의 성장 트렌드, 도전요인, 기회요인을 다뤄보자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대단히 좋은 기회로 보고 있는데, 이 참에 세계적인 정·재계 석학들과 관료들에게 문화강국, IT강국으로서 한국의 면모와 동시에 한반도 평화에 기반을 두어 기업하기 좋은 나라임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한편, 노무현 정부는 파병문제에 대한 대대적인 입 단속에 나서기 시작했는데, 미국의 이라크 민중들에 대한 잔혹한 학살과 고문이 드러난 뒤 파병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드세졌기 때문이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야당 일각의 파병 재검토 논의를 일축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여당 내부의 회의적인 시각마저 아예 거부해 버렸다. 오늘 지배세력이 처한 이 같은 현실은 한국자본주의 위기탈출전략의 빈곤함과 자신이 기반을 두고 있는 통치이데올로기의 (위선이라는 의미에서) 이중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위기극복이냐 개혁이냐'는 식의 (허구적인) 논란을 전개하고도 그들은 위기감에 빠져있는 대중을 휘어잡지 못하였고(6·5 재보선 선거에서 28.4%의 투표율은 이를 극적으로 상징한다), 탄핵국면에서 수구보수세력이라 비난했던 것에 비추어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진보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 세계의 지배엘리트들에게 한류현상의 대표주자를 앞세워 선정적인 가무를 제공하고, 화려한 리셉션과 함께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며 대통령 자신이 직접 이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현실을 두고, "수출로 번 돈, (해외자본의) 배당 이자로 까먹는다"는 언론의 호들갑을 기억하고 있는 대중으로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여기다 이라크 파병문제에 있어서 노무현 정부가 보여준 우기기는 결국 열린우리당의 '민주수호'라는 구호가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드러낸 꼴이 되고 말았으니, 대중의 실망과 좌절, 그리고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도 당연한 결과 아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이상이 어쩌면 노무현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상황이 그렇게 낙관적인 것만도 아닌데, 이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곧바로 행동으로 조직되지 않는 데다, 활동가들 역시 예전처럼 대중의 반역이 확산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철회를 위한 범국민 청원운동이 애초 목표에 훨씬 미달하는 수준에서 멈칫거리는 것도 그렇거니와 WEF에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 역시 6월 임단투 투쟁(특히 보건의료노동조합의 파업투쟁)에 기대어야 겨우 진행할 수 있는 현실도 이를 잘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6월 12일 파병철회투쟁에서 광화문에 2만이 모인들, 6월 13일 WEF 동아시아 경제정상회의에 2만이 모인들 그 의미가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대중의 좌절과 분노가 심연의 바다 속에서 요동치는데도 그것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또 우리 스스로가 그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에서 자신을 질책하고 한탄해야 함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이제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좌절감에서 이를 어떻게 딛고 일어설 것인지가 초점이 된다는 점이다. 이를 대중운동이 어떻게 다시금 급진화 할 수 있겠는가와 비교해보면, 사실 이는 앞서의 의문과 동전의 양면이기도 하다. 이런 모호한 질문 속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자폐증으로 몰아 넣을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예 다르게 질문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처한 이 같은 상태가 대중의 실망과 좌절, 그리고 심연의 분노와 정확히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우리가 만일 한국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노무현이 내놓은 대안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그리고 노무현의 통치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우리를 기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보고 있다면, 그만큼 대중들도 관찰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중의 급진화는 곧 우리 자신의 급진화를 의미한다. 능동적인 대중이 곧 우리 자신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만일 WEF에 저항하는 대중을 조직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을 조직한다는 뜻일 터이며, 우리가 파병을 철회하기 위한 대중의 범국민적인 청원운동을 조직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이 청원운동에 나선다는 뜻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결론부터 서둘러 말하자. '6월 12일, 13일 파병과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중의 의지를 보여주자!' 정확히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6월 12일, 13일 파병과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자!' 노무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을 드러내는 싸움에 나서는 주체는 바로 우리라는 사실 말이다.
디지털 말에 실렸습니다. (편집자 주)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군과 저항세력간의 교전이 진행 중인 가 운데 미국 뉴욕의 빙햄프턴 대학 제임스 페트라스 교수가 지난 4월 7일 발 표한 「이라크 저항운동을 지지하자」를 번역·소개한다. 그동안 시민·사 회운동과 남미의 사회문제에 관심을 집중시켜온 페트라스 교수는 팔루자 교전을 '민족해방운동'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서구 좌파 지식인들의 무기력 을 질타하고 있다.
이라크의 사회세력들이 전국적 회합을 가지고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문서는 지난 5월 8일 바그다드에서 열린 이라크 전국회의에서 승인된 최종 선언입니다. 이것은 사회조직과 모든 종교조직뿐 아니라 아랍족과 쿠르드족, 민족주의 자, 바트주의자, 공산주의자 등 광범위한 이라크의 정치 사회 조직들을 대 표하는 이들에 의해 지지된 발의이며 여기에 2000명 이상이 참여했습니 다. - global anti war movement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입수한 것입니다. (global anti war movement는 2003년 자카르타 평화회의, 2004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을 거치면서 형성된 세계 반전운동 진영 네트워크입니다.)
* 출처: 한겨레 2004년 4 - 5월 < 중동 깊이 보기 > 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위기의 뿌리 2.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해법은 어디에 3. 사우디 ‘와하비즘’과 위기의 왕권 4. 사우디 경제와 청년실업 5. 이란의 개혁 열망과 한계 6. 이란 여성의 사회참여 7. 걸프지역 왕정과 민주개혁 8.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야> 9. 예멘, 통일 이후 10. 좌담/ 중동과 반미
2004. 5. 1 네이션 誌에 실린 나오미 클라인의 글입니다. 이라크 문제에 대한 나름의 구상을 얘기하는데요, 유엔을 중심에 놓고 사태해결을 하고자하는 국제 NGO의 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6월반전반세계화 투쟁을 조직하자 자본가들의 잔치, 세계경제포럼 오는 6월 13일~15일 서울 심장부에 위치한 신라호텔에 전 세계 자본가, 고위 관료, 정치인, 학자들이 모여든다. '아시아의 번영과 평화'를 주제로 하는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 경제정상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사전적 역사와 의미를 따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스위스 제네바대학의 클라우스 슈왑교수가 세계 정계, 재계 지도자들 간의 유대 관계 형성을 위해 제안한 비영리 재단이며, ‘다보스 포럼’으로 알려진 연차총회와 지역 정상회의를 주관하고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발간한다. 세계 1200여 개 초국적 기업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으며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세계경제포럼은 반세계화/대안세계화 투쟁의 상징적 타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반세계화 투쟁의 정치적 시발점으로 알려진 1999년 시애틀 투쟁 이전부터, 세계경제포럼에 맞선 국제연대투쟁은 항상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이는 세계경제포럼이 모든 영역을 망라하여 세계적인 지배엘리트들의 배타적인 사교모임으로, 매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심화와 확대를 위한 포괄적 의제들을 논의하고 동의를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다보스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진행되었으며 2001년에는 뉴욕, 칸쿤, 홍콩 등에서 개최된 세계회의 및 지역회의 때 반대시위가 조직되었다. 또한 세계경제포럼은 세계사회포럼에 의해 더 많이 알려졌고, 그것을 통해 관찰할 때 더 잘 이해된다. 전 세계 사회운동 진영의 교류와 연결의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은 세계사회포럼의 첫 출발이 세계경제포럼에 대한 대항포럼이었다는 사실에서 세계경제포럼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다. 세계사회포럼이 자본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민중의 삶의 대안을 모색하는 다양한 사회운동들 간의 연대를 실현하고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행동을 결의하는 장이라면, 세계경제포럼은 우리가 저항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기 위한 자본의 과제를 도출하고 전략을 짜는 장인 것이다. 동아시아 정상회의는 수백 명의 기업총수들과 각 국의 경제장관들이 모여 아시아에서 자본의 돈벌이 계획을 논의하고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모임이다.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정상회의와 6월 투쟁의 의미 특히 이번에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 경제정상회의는 다음과 같은 정세적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한국 정부는 이번 회의를 ‘동북아 물류·금융 허브’ 구상을 구체화시키는 계기로 활용할 것이다. 이미 싱가포르에서 열린 작년 동아시아 경제정상회의에서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는 2004년 서울개최를 수락하는 연설을 통해 동북아 물류·금융 허브 구상이 동아시아의 활력회복과 공동번영에 기여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동북아 허브 구상은 그 현실가능성과 무관하게 한국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과 초국적 자본의 하위 파트너화, 그에 따른 노동권과 민중생존권의 위기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둘째,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다양한 자유무역협정의 추진 필요성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 지반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계기로 사고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역내 자유무역협정 추진 현황은 타 대륙에 비해 활발한 편이 못 된다. 하지만 1997-98 아시아 경제위기는 역설적으로 역내 무역과 투자의 연관관계가 상당히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아시아 지배 엘리트와 민중들 모두에게 던져 주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역내 자본가들은 일-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 아세안자유무역지대, 한-일 자유무역협정, 일-태국 자유무역협정 등 다양한 양자간/지역별 자유무역협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번 동아시아경제정상회의는 정, 관, 학계 등 모든 영역의 신자유주의자들이 결집하여, 신자유주의적 지역화 과정을 확인하고 추동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셋째, '아시아 평화'라는 테마 아래 무엇이 논의될 지 쉽게 짐작할 수는 없지만 아시아 지역이 갖는 의미, 즉 미국 주도의 군사 세계화와 대테러전쟁, 이라크 점령에 대한 정당성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작동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라크 침략전쟁 및 점령, 한반도 위기에 대한 제국주의적 해결 방식 등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군사주의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넷째, 반전/반세계화 투쟁에 있어서 6월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내적으로 이라크에 추가 파병이 6월에 이뤄지고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상이 6월 24일부터 제네바에서 시작되며 한일자유무역협정의 4차 정부간 협상이 6월에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2004년 투쟁에 있어서 6월 투쟁은 중요한 결절점이 될 것이다. 파병반대 국민행동 차원에서도 6월 12일 대규모 반전 시위를 기획하고 있다. 따라서 이 투쟁을 9월 10일 '칸쿤 각료회의 및 이경해 열사 1주기 투쟁'과 쌀개방 반대투쟁, 11월 노동자대회, 민중대회로 연결시켜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6월 투쟁은 반전/반세계화 투쟁을 대중적인 차원에서 추동해낼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다. 우리는 이처럼 6월에 집중되어 있는 여러 계기들을 묶어내고 군사주의와 금융세계화에 반대하는 통일된 정치적 행동으로 6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반전-반세계화 투쟁으로 6월을 달구자 현재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등 주요 대중조직과 전국민중연대, 자유무역협정·WTO반대국민행동 등 주요 연대기구들이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정상회의 반대 공동행동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본격적인 투쟁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대강의 투쟁 흐름을 보면, 6월 12일(토) 오후에 이라크 점령반대, 파병철회 대규모 집회가 파병반대국민행동 주최로 상정되어 있고 밤에는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정상회의 반대투쟁 전야제가 개최된다. 13일 오전에서 저녁까지는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경제정상회의 반대 결의대회와 저지투쟁이 진행될 계획이다. 또 저녁에는 효순이 미선이 2주기 추모제가 전개될 예정이다. 이어서 6월 14-15일에는 아시아 사회운동회의가 조직된다. 특히 아시아 사회운동회의에서는 아시아 각 국에서 100여명의 활동가들이 참가하여 WTO, FTA, 지역통합에 대한 대응 방안과 WTO 각료회의에 대한 공동 투쟁, 아시아에서의 반전/반제투쟁과 향후 계획, 한반도 위기와 이라크 사태에 대한 공동 행동, 아시아 사회운동 사이의 연대와 네트워크 구성을 논의하고 결의할 것이다. 6월 투쟁을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의 반전/반세계화 투쟁을 대중화시켜내고 일국적 맥락의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을 국제적으로 확장시켜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조직하자. 투쟁을 세계화하고, 희망을 세계화하자.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군사 세계화에 맞선 투쟁에 함께 하고, 아시아 민중들의 연대와 전진을 위한 중요한 첫 걸음을 내딛자. PSSP
지난 4월 15일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는 북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해야 하며, 지구상의 어느 사회든 인권 신장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동시에 인권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특정 사회를 옭죄는 수단으로 삼는 시도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 북인권결의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북에 존재하는 인권 문제의 실질적인 개선을 도울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북을 압박하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또 한 가지 수단으로 기능할 것인가? 미리 답부터 말하자면, 후자에 가깝다. 북인권 결의안,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이번 결의문의 내용을 짚어보자. 가장 특징적인 것은 북 인권 문제만을 전담하는 특별보고관 신설이다. 결의문에 따르면, 특별보고관은 북을 방문하는 등 북 인민들과의 직접 연락망을 구축하고 북의 인권상황을 조사해 그 결과를 차기 유엔총회 및 인권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지난 해 결의문에서는 고문, 식량권, 여성 폭력 등 기존에 있는 주제별 특별보고관과의 협력이 북 정부에 대한 요청사항이었다면, 올해는 여기에 덧붙여 북에 대한 전담 보고관까지 신설되어 그 내용의 강도가 한층 높아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북 정부는 사회권규약 및 아동권협약에 따른 보고서를 제출하고 관련 심사회의에 참석하는 등 유엔인권기구들과의 협력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유엔인권위원회는 이번에 더 강경한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북 정부의 반발을 부르고 유엔과 북 당국의 협력 속에 인권 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여지를 오히려 축소했다. 내용의 편향성도 문제다. 대북인권결의문은 북 인권 문제를 묘사하는 단락에서 수용소의 문제 및 자유권의 억압 등에 상당한 비중을 둔 반면, 북 인민 전반에 걸쳐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식량권·생존권·평화권의 문제는 무척 소홀히 다루고 있다. 또한 식량 지원과 관련 분배의 투명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시급한 인도적 지원마저도 도외시하는 결과가 우려된다. 일부에서는 식량권과 평화를 인권과 별개의 문제로 바라보는데, 식량권과 평화권은 인권의 중요한 일부이자 정치적 자유의 신장을 가능케 하는 기본적 조건이기도 하다. 이번 결의안을 주도한 유럽연합, 미국, 일본 등이 인권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들 국가들은 이라크 침략 전쟁의 가해자이거나 방조자였고, 수십 년 동안 체계적인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는 이스라엘 규탄 인권 결의안에 대해서는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하였다. 결의안은 북 정부를 상대로 국제인권조약의 비준과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북 당국이 이러한 요구에 응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만, 여러 국제인권조약의 가입을 거부하면서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을 훼방 놓았던 미국 등이 결의안을 주도한 국가 중 하나라는 사실은 이번 결의가 이중 잣대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사실 더 큰 문제는 결의문 내용 그 자체보다 현재 북 인권 문제가 제기되는 맥락에 있다. 북인권결의안의 채택을 주도했던 영국의 한 관계자는 북 문제를 '이라크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인권을 빌미로 군사 침략이 정당화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미국 등 제국주의 세력에 의한 북 정권교체 전략을 정당화시키는 강력한 요소로 '인권'이 공공연히 이야기되고 있다. 인권, 미국의 대북압박 정책에 포섭되다 민간단체의 틀을 빌어 과거 CIA가 하던 일의 일부를 하고 있는 NED의 2002년 전략 문서는 세계 전략의 일부로 대북 프로그램을 제시되고 있다. 북 내의 정치범 수용소와 노동교화소의 상황을 폭로하며 대북 제재를 비롯한 모든 가능한 조치를 취하는 것, 북 정부가 기아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북에 책임을 묻는 것, 탈북자 문제로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 NED 의장 칼 거쉬만이 내세운 대북 프로그램의 목표다. 리차드 루거 미 상원외교위원장은 2003년 7월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우리는 일부 탈북자들이 미국에 재정착하는 것을 허가하고 동맹국들도 그렇게 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며 "… (이런 조치는) 1989년 동독의 대규모 탈출사태가 동독을 무너뜨린 것처럼 평양 정권의 붕괴를 재촉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2003년 11월엔 미 상하 양원에 북한자유법안이 상정됐다. 법안은 한반도의 대량살상무기 문제 해소 민주정부 하의 한반도 통일 지원 북 주민의 인권 향상을 목표로 내세웠다. 인권 문제를 앞의 정치적 목적과 접목한 것은 이미 인권 문제 그 자체의 옹호와 개선에 목적이 없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한반도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도 의지가 별로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정부 하의 한반도 통일 지원이란 곧 남한 정부에 의한 흡수통일을 떠올리게 된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탈북자들의 입국 관리를 국토안보부로 이관하고, 탈북을 지원하며, 국토안보부 주관하에 대량살상 무기 정보를 제공하는 탈북자들에게 미국 비자를 발급하도록 했다. 또 북한 민주화 향상 조치란 제목 아래, 대북라디오 방송 시간을 연장하고, 북 주민에게 라디오를 살포하는 데 예산을 배정한다. 올해 초엔 미 하원에 북한인권법안이 상정됐다. 미 워싱턴 정가에서는 북한자유법안보다 내용이 다소 완화된 이 법안을 중심으로 앞으로의 논의가 진행될 것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북한인권법안은 대량살상무기 문제의 해결을 법안의 목적에서 제외했고, 자유법안이 대북 지원에 있어 지나친 전제 조건들을 부과하는 데 비해 대통령의 재량권을 인정하는 일정한 융통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인권법안 역시 목적 중 하나로 '민주정부 하의 통일'을 언급하고 있으며, 북에 대한 압박과 고립을 통해 북 인권을 개선할 수 있다는 기본 인식을 깔고 있다. 위험성이 감소됐다고 하지만, 기본인식과 목적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 한 북한인권법안 역시 미국의 북 침략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과거 대 이라크 정책은 이러한 우려가 과한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지난 3월 25일 ABC 방송 시사프로그램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침략이 9.11 이전부터 계획된 것이냐는 질문에 "그것은 미국의 상, 하 양원에서 통과됐던 이라크 정권교체법안(의 내용)과 밀접한 것이며, 미 행정부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답한 바 있다. 여기서 럼스펠드가 언급하고 있는 법안은 1998년의 이라크 해방법으로 짐작된다. 이라크 해방법은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을 "이라크에서 사담후세인 체제를 제거하고 민주정부를 창출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개괄하며, 이라크 반정부세력의 방송 송출과 군사 원조 및 인도적 원조 등에 예산을 배정했다. 그렇다면, 북 인권 문제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봉착하게 되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북 인권 문제가 제국주의적 공세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인가, 대안적인 접근은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진보운동 일부에서는 북에 인권문제가 있다는 말조차 기피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북에 인권 문제가 있다는 것조차 부인한다면 문제의 해답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자면, 인권을 빌미로 한 대북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서, 북 인민들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 나아가 한반도 인권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대안적 인권 담론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물론, '인권의 질서=자본주의'라는 잘못된 등식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은 기본 전제이다. 흔히 우파들이 북 인권 문제의 원인을 북 체제의 문제로 환원시켜버리는 오류와 편견도 극복해야 할 점이다. 결국에 인권과 민주주의의 신장은 외부에 의해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쟁취되고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지점이다. 이러한 점들을 유념하며, 북 인권 문제에 대한 진보적 접근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해야만 할 일이다. 우선 북 인민들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생존권(기아와 궁핍으로부터의 자유)과 평화권(전쟁 위협으로부터의 자유)을 중요한 인권 문제로 제기해야 할 것이다. 북 인민들이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올해 초에도 북에 식량을 지원하고 있는 세계식량계획과 유니세프 등에서 국제사회의 대량의 인도적 지원을 호소했다. 식량배급체제의 와해 등으로 인해 일종의 도시빈민이 생겨나고, 그들의 식량권 문제도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국제사회의 대량의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동시에, 북 정부는 경제구조조정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층이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우선적으로 배려할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북에 자본이 진출함으로써 새롭게 발생할 수 있는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식량난의 해소와 더불어 한반도의 전쟁 위협을 제거하고 인민들이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일도 절박한 과제다. 이 점에선 한반도에 전쟁 위협을 가하고 있는 미국이 한반도 인민의 평화권을 침해하는 가해자이다. 전쟁이 곧 인권의 절멸 상태를 초래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준전시 상태 역시 과도한 군사비 지출과 사회의 군사화를 통해 인권을 억압하는 조건을 만든다. 전쟁 위협이 곧 인권 침해를 낳는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경제 상황, 안보 상황을 내세워 자국 내의 다른 인권이 유보되거나 제한되어서도 안 된다. 이런 점에서 북 당국은 인민들의 자주성과 창조성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비판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오랜 외적 위협과 분단체제 속에서 고착화된 억압적 법제와 관행이 있다면, 내부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편, 남한에서 인권운동을 하는 우리들은 북 인권 문제에 대한 대안적 접근을 모색하면서 장기적으로 북과 남이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한반도 인권 보장의 체계를 구상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인권을 수단화하는 정치 공세를 막아내면서, 한반도의 인민들이 진정으로 인권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