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에 부쳐 오늘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는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을 목표로 출범했던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을 공식적으로 지지할 것인지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집행부는 국민참여당과 합당한 통합진보당을 비례대표 투표에서 배타적으로 지지하고, 또 그 통합진보당이 전면적인 야권연대를 통해 단일화한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역구 투표에서 연대후보로 지지하는 총선방침을 밀어붙이고 있다. 집행부는 조직 내부 반론과 의결 절차를 무시하고 구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정치노선을 따라 국민참여당과 민주통합당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한다. 민주노총이 비민주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총선방침을 바로잡아 민주노조 운동의 정신을 되살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오로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대의원 동지들의 판단에 달려 있다. 집행부의 독단과 전횡을 바로잡자 지난 1월 31일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정족수 미달로 유회되어 정치방침과 선거방침을 논의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집행부는 여러 지역본부·산별연맹 대표자들의 강력한 반대와 퇴장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투표를 하나의 정당에 집중하는 방안’을 끝내 표결로 안건을 처리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이후 상임집행위원회는 전화 여론조사 방식으로 집중 투표 정당을 정하기로 했다. 공식 의결기구인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유회되고 별도의 위임절차도 밟지 못한 안건을 하급 기구인 중집에서 졸속적으로 처리한 것은 민주노조의 회의 원칙에 위배된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 여론조사는 그야말로 황당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말았다. 애초 여론조사 방식을 반대했던 다수의 산별노조/연맹과 지역본부가 제외된 결과, ‘조사에 응하고 싶은 조직과 조합원’만이 표본으로 취합된 것이다. 여론조사로 조직의 중요한 방침을 정한다는 발상도 상식 이하지만, 여론조사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측정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표본추출 절차마저 지키지 않은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다. 결과적으로 이번 여론조사는 민주주의를 가장하여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비판을 잠재우려는 집행부의 패권적 발상이었던 셈이다. 오늘의 임시 대의원대회는 이러한 집행부의 독단과 전횡을 제어하고 노조 민주주의의 원칙을 바로잡는 중요한 자리다. 책임있는 논의와 의결로 집행부의 비민주적 행태에 경종을 울리고 의결기구의 권위를 다시 세우자. 민주통합당과의 무원칙한 야권연대를 반대한다 민주노총 총선방침은 ‘진보정당의 약진과 진보민주세력의 집권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정세 인식 하에 의회권력 교체(여소야대)와 진보정당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총선방침은 민주통합당과의 전면적인 선거연합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 결과 ‘노동 의제 전면화’라는 민주노총의 목표는 오히려 민주통합당과의 야권연대라는 수단에 종속된다. 이는 역으로 민주노총의 요구안을 희석시키거나 변질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보자. 민주통합당은 파견법 폐지 대신 현행 파견법의 부분적 개정을 제시하고 있다. 설령 민주통합당의 공약대로 파견법이 개정된다고 해도, 불법파견으로 인정받기가 사실상 어렵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3월 10일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이 합의한 <범야권공동정책합의문>에는 ‘불법파견 금지’라고만 언급되어 있다. 민주노총 요구를 반영하여 파견법 폐지를 당론으로 삼고 있던 통합진보당의 입장이 야권연대 결과 실제로 유지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의 문제는 제대로 거론되지도 않고 있다. 또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한미 FTA 폐기’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이 체결한 한미 FTA의 시행 반대”로 합의했다. 한미 FTA가 아니라 MB FTA 반대 수준으로 합의한 것이다. 한미 FTA 체결을 주도했고 국회비준을 방조한 뒤 곧이어 등원을 결정한 민주당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볼 때, 설령 여소야대와 정권교체가 실현된다한들 이들이 한미 FTA를 폐기할리는 만무하다. ‘좋은 FTA’를 위한 재협상은 이명박 정부도 추진 중이다. 민주노총의 총선방침은 아무런 원칙도 근거도 없는 야권연대가 아니라 한미 FTA 폐기, 노동법 전면 재개정,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노동유연화 정책에 반대하는 분명한 기조와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투쟁 전선을 구축하는 것으로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대상이 될 수 없다 국민참여당은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를 체결하고 비정규직법을 개악하고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필수공익사업장 파업권 제한을 골자로 하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주도한 세력이다. 이들과의 통합을 주도한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국민참여당이 과거 참여정부 시절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을 반성하고 있으므로 통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변했다. 수적으로도 민주노동당이 다수를 점하므로 국민참여당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국민참여당의 합류로 말미암아 통합진보당의 강령에는 진보정당이라고 할 때 응당 포함되어야 할 반신자유주의 또는 반자본주의적 지향이 대폭 후퇴하거나 제외되었다. 당명에서도 ‘노동’이라는 단어가 사라져 버렸다. 대신 노동을 복지의 하위 개념으로 배치하고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노동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총선 주요 공약도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이다. 민주통합당과의 차별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 중심성을 상실하고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설 전망을 밝히지 못하는 통합진보당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정당이 될 수 없다. 더욱이 최근 며칠간 우리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통합진보당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정희 대표 선거캠프의 야권단일화 경선 여론조작 사실, 비례대표 후보 선출 및 순번 배정 과정에서의 부정 시비들, 성폭력 은폐 의혹이 제기된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의 비례대표 공천, 성추행 전력 후보에 대한 부실 검증, 현직 지방의원의 사퇴 후 총선 출마 등 결코 개인의 과오로 치부할 수 없는 행태들이 속속 드러났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보수 세력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진보의 위선을 고발하는 십자포화를 퍼부으면서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냉소와 환멸을 부추기고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바로 세우자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성폭력 전력 후보자가 개인적으로 사퇴 의사를 표한 것 외에는 대체로 큰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정희 대표는 “문자는 당원 200여 명 정도에게 보낸 것이라서 용퇴가 아닌 재경선을 선택하는 것이 보다 책임 있는 자세”라며 사퇴를 거부했다. 대표단도 사태의 본질을 경선불복으로 규정하고, 이정희 대표가 후보를 사퇴하면 오히려 야권연대가 무너져 자신들의 당선 가능성이 작아진다고 판단했다. 당 내에서도 보수세력의 정치공세에 대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식으로 이정희 대표를 두둔하는 옹호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후보자 개인의 당선과 정파적 이해관계에 집착한 결과 진보정당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과 자정능력을 상실하였다. 이는 근본적으로 원내교섭단체 실현과 연립정부 구성을 위해 신자유주의 세력과 무원칙한 야권단일화조차 불사하는 통합진보당의 정치노선이 불러온 필연적인 결과다. 민주노총이 이러한 통합진보당을 비례대표 투표에서 배타적으로 지지하고, 또 이들이 야권연대로 단일화한 민주통합당을 후보를 지역구 투표에서 연대후보로 지지하는 것은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총선방침은 민주노총의 요구 실현에 동의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원칙에 입각해 활동하는 정당 및 정치세력과의 연대와 협력, 지지와 지원을 강화하는 것으로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대의원들의 책임있는 논의를 통해 집행부의 비민주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총선방침을 바로잡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다시 세우자.
쌍용차 살인진압이 우수사례라고? 정신나간 경찰청의 야만적 작태를 규탄한다! 연행자를 즉각 석방하라! 경찰청이 지난 11일 자체적으로 지난 3년간 최고의 사건과 최악의 사건을 각각 10개씩 선정해서 발표했다. 그 가운데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폭력적으로 짓밟은 것을 ‘쌍용자동차 점거농성 사태 조기해결’이라며 최고의 사건, 즉 우수 진압사례 5위에 꼽았다. 경찰은 “기능 간 유기적 협조, 체계적인 수사계획 수립 등을 통해 대규모 연행자 사법처리로 공안사건 수사 모범사례”라고 쌍용차 진압 사례가 선정된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생존권을 지키고 노동자들이 함께 살기 위해 77일간이나 공장 안에서 무수한 공권력의 탄압에 맞섰던 쌍용차 노동자들을 군사작전 식으로, 무자비한 구타와 폭행으로 잔인하게 진압한 것이 모범사례라는 것이다. 경찰이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들을 때려잡는데 물불 가리지 않은 것도 모자라 어찌 이제는 그것을 이리 자화자찬하며 최소한의 양심도 내팽개치고, 아직도 고통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단 말인가? 정신이 나가지 않았으면 이럴수는 없는 것이다. 날마다 헬기로 노동자들을 잠못자게 위협하고 최루액 뿌리고, 무장 경찰을 투입해 테이저건에 고무탄을 쏘며 노동자들을 테러리스트 취급하고 진압과정에서 몽둥이와 방패로 야만적으로 폭행을 가한 것이 ‘우수 진압’인가? 숱한 부상자를 만들어내고, 진압 이후에도 그 상처와 깊은 트라우마로 인해 스물 한명이나 되는 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망한 것이 과연 ‘최고의 사건’이란 말인가? 경찰의 살인적인 강제 진압과 해고 사태로 인해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을 한 번이라도 헤아렸다면 이런 몰상식한 발표는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경찰은 오늘 이러한 잘못된 행태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며 항의하던 이들을 쌍용차 지부장을 포함해 6명이나 연행해 가는 치졸한 작태를 저질렀다. 우리는 지난 2005년 11월 농민대회 당시 전용철·홍덕표 농민열사가 경찰폭력으로 숨진 사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경찰의 무수한 강제 폭력 진압도 마찬가지다. 2009년 1월 생존대책을 요구하는 용산 남일당 건물의 철거민을 과잉 폭력진압하면서 철거민 5명이 사망한 용산참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러한 대형 사건이 아니라도 경찰은 시시때때로 폭력성을 표출하며 평화롭게 저항하는 노동자, 농민, 시민들을 곤봉과 방패로 구타하고 시민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해 왔다. 경찰의 폭력성을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통제해야 이러한 사태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경찰은 당장 쌍용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이번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연행한 이들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 2012. 3. 13 사회진보연대(www.pssp.org)
2012년, 여성의 미래는 투쟁하는 여성의 힘으로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3.8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봉기에서 시작되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쉼 없이 일하고도 노동자, 시민으로서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었던 여성들이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리고 현재 달력에 표기될 정도의 보편적인 ‘여성기념일’로 상징되고 있다. 그러나 104년 전의 여성들이 투쟁한 역사를 계승하는 것은 단순히 여성에게 꽃 한 송이 건네며 가사노동의 수고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또 몇몇 정치인들에게 여성의 삶과 미래를 맡기는 것도 아니다. 현재 여성을 억압하는 현실과 구조에 맞서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요구를 제기하고 이를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저임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현실 전체 노동자의 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계약직, 시간제 노동자가 늘어나고 ‘복잡한 고용형태’가 일반화되며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일하는 노동자가 다수가 되었다. 또한 많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다. 이런 상황은 여성에게 더 가혹하게 작동한다.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지. 돈도 좀 벌어오고’라는 인식은 부족한 가계를 보충하기 위해 일하러 나선 여성의 60% 이상에게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이유는 여성노동에 대한 저평가 때문이다. ‘여성에게 적합한 일자리’라 불리는 직종들은 그 동안 여성이 집안에서 수행해온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연장에 있는 일이다. 여성이 무급으로, 집에서 쉽게 해 온 일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여성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받았다. 게다가 여성노동자에게는 숙련과 전문성 외에 추가로 사랑과 희생, 봉사와 인내가 요구된다. 그래서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특수교육보조교사, 전화상담원, 간병인, 식당노동자, 마트노동자 등 여성노동자는 노동권을 입에 담는 것마저 금기시 되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열악한 노동조건은 부당한 인격적 대우로 연결된다. 민주노총이 지난 해 실시한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 비정규직 일수록 더 많이, 더 강도 높은 성희롱을 당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또 나이와 상관없이 사장이나 관리자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사례나 작년 투쟁에서 승리한 현대차 사내하청 여성노동자의 성희롱 사건에서 알 수 있듯, 불안정한 고용형태는 여성의 존엄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노동자의 투쟁에 주목하자 이러한 현실에 맞서 여성노동자의 투쟁이 곳곳에서 조직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의 6개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는 턱없이 낮게 책정되는 최저임금을 돌파하고자 집단교섭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은 최저임금 노동자의 요구를 대변하는 동시에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의 폐해에 맞선 투쟁으로 의미가 있다. 원청인 대학당국과 하청 용역업체는 어용노조를 세운 뒤 개악된 노조법을 활용해 창구단일화를 빌미로 교섭을 회피하고 민주노조를 파괴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3월 한 달 동안 총력 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청소·경비노동자의 투쟁은 전체 노동자 운동이 주목해야 할 사안이다. 이를 계기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통한 자본의 전략을 현장에서부터 깨는 싸움을 확장해야 한다. 보육교사의 투쟁에도 불씨가 붙기 시작했다. 그동안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아온 보육교사들은 ‘교사의 소명’만으로 참으며 일 해왔다. 하지만 몇 년째 계속된 실질임금 동결, 그리고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보육교사 임금동결안은 보육교사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보육교사들의 투쟁을 계기로 간병, 요양 등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사회적으로 알려내야 한다. 보수세력 마저 무상보육 정책을 수용하면서 보육제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보육노동을 제공하는 당사자인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 사회서비스를 확충하고 사회서비스 분야의 여성 일자리를 늘린다는 정부 정책이 사회서비스를 시장화하고 열악한 여성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청소, 보육노동자 외에도, 매년 봄을 해고와 함께 맞게 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조직되고 있다. 또 장시간 노동 외에도 감정노동을 제공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마트 노동자의 투쟁도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거리에서 농성장을 지키는 재능학습지 교사들, 노조탄압과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KEC 노동자의 투쟁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노동자계급이 형성되었을 때부터 여성노동자의 투쟁은 멈춤이 없었다. 저임금과 해고위협에 맞서, 생계를 위한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성적 폭력에 대항하여, 전쟁과 독재정권에 반대하며 투쟁을 이어왔다. 한국에서 역시 1920년대 고무공장 여성노동자의 투쟁이 1970년대 민주노조 사수 투쟁으로, 그리고 지금 신자유주의와 빈곤에 맞서는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성의 삶과 노동의 권리를 위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주목하는 것이 바로 노동해방과 여성해방을 위한 첫 출발임을 기억해야 한다. 2012년 총대선 국면을 여성노동자 투쟁의 시기로 올해 총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정치에 환멸을 느낀 민심을 다시 얻기 위해 정당 통합, 인적 쇄신 등 선거 이벤트를 추진하면서 각종 복지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우리 여성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질 것 같다. 일부 운동세력은 유권자 운동을 중심으로 민주통합당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 한다. 여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도권 정치 안에서 법·제도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법·제도 개선을 위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세력과 연합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들은 노동유연화를, 특히 여성에게 저임금, 불안정노동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유연근무제의 도입이 오히려 불안정한 파트타임 일자리 양산에 기여했던 점, 사회서비스 확충이 결국 돌봄서비스를 시장화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밀어 넣은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여성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몇몇 후보에게 실행이 불확실한 약속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과 연대로 정치인들이 고민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표몰이가 필요한 시즌에서는 사탕발림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여성의 삶과 노동의 권리가 개선된 것은 정치인들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104년 전부터 투쟁해 온 여성들의 의지와 행동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국의 여성노동자들이 서로를 조직하고 연대할 수 있는 자리를 기획하자 민주노총에서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전반적으로 낮다. 그중에서도 여성노동자의 조직률은 낮다. 여성노동자가 노동조합에 더 많이 가입하고, 노동조합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여성노동자가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으로 노동조합이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또 노동조합은 여성노동자의 요구를 모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여성의 역할에 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는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 과제기도 하다. 1970년대의 여성노동자들은 민주노조사수 투쟁의 주역이었지만, 그녀들은 결혼과 가족 내 여성의 역할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투쟁의 주역들 대부분은 현재 노동자운동 내부에 남아있지 않다. 이후 1987년을 전후하여 전국적 투쟁을 만들었던 대공장 남성노동자가 현재 노동조합과 노동자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어떤 성이 상징이 돼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이 주목하지 못했거나 혹은 외면하고 있는 여성노동권에 대한 인식과 지난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없다면, 민주노총은 ‘여성권’없는 반쪽짜리 노동권만 외치는 노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노동조합의 주인이 되기 위해 여성들이 노동자로서, 또 엄마이자 아내로서 살아가며 겪는 경험을 털어놓으며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단결하고 연대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보육교사나 마트노동자가 있지만 밤늦게까지 어린이집과 대형마트가 열려있길 원하는 여성노동자도 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간병노동자가 있지만 간병비 때문에 버거워하는 여성노동자도 있다.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면 같은 노동자이자 여성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돌봄노동의 사회적 책임 강화, 안정된 여성일자리와 생활임금 보장, 여성노동자의 정신적·육체적 건강권 보장 등 공동으로 자본과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내용을 만들 수 있다. 많은 노동조합에서 여성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여성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여성 사업을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것, 여성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것, 다른 투쟁 사업장이나 지역 차원의 연대투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금 특히 필요한 것은 여성노동자가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이다. 작년과 재작년 서울에서 치러진 여성조합원대회와 같이 여성조합원들이 의기투합할 수 있는 공간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 여성조합원대회를 통해 여성노동자 공동의 요구를 만들고, 연대의 폭을 넓혀보자. 각 지역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여성노동자들이 한 데 모여 우리가 누려야할 권리를 주장하자. 여성노동자가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바로 서기 위해, 단결과 투쟁을 확대하기 위해 지역별 여성조합원대회를 조직하자.
2012년 2월 1일 밤 9시 반 비행기로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 MTU) 미셸 카투이라 위원장이 본국인 필리핀으로 귀국했습니다. 2006년 2월에 입국한 지 6년 만입니다. 미셸 카투이라 위원장은 필리핀에서 나고 자란 노동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돈을 벌기 위해 전자제품 엔지니어, 건설노동자, 집 수리공, 학교 직원, 상담교사, 비서, 주유원, 쇼핑몰 점원, 가정부, 베이비시터, 유리창닦이 등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하지 않은 일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노조활동을 한 적도 없었습니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로서, 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한국에 와서는 처음에 울산에 있는 어느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첫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필리핀 여성노동자가 한국인 동료 직원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한 사건을 겪습니다. 그가 술먹고 밤에 기숙사에 와서 강제로 성관계를 요구를 하는 것을 겨우 뿌리치고 그녀는 미셸 동지와 함께 도망을 쳤습니다. 나중에 신고를 했지만 그 직원은 별다른 처벌 없이 겨우 2주 정직만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러한 차별과 폭력적인 행위는 다른 공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화성의 전자제품 조립 공장에서는 휴일도 주지 않아 한 달에 한 번 꼴로 쉬었다고 합니다. 쉬지 못하는 달도 있었습니다. 임신한 여성을 해고해서 본국으로 돌려보내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 했습니다. 미셸 동지는 혼자서 이러한 노동법 위반을 노동부에 고발해서 회사 측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에 동료의 해고 문제에 대응하다가 이주노조를 알게 되었고 노동조합 활동의 취지에 공감해서 노조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노조에 가입하고 나서 화성 지역에서 필리핀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여 ‘엄브렐라’(Umbrella)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여성문제, 성차별 문제 등을 논의하고 교육하는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던 중 이주노조 4대 위원장인 토르너 림부 위원장과 압두스 소부르 위원장이 2008년 5월 2일에 동시다발로 출입국에 의해 표적단속 되어 강제추방을 당했습니다. 이주노조에서는 후임 지도부를 선출하지 못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계로 운영되었는데, 2009년에 미셸 동지에게 위원장 제안이 되었습니다. 미셸 동지는 이를 받아들였고 2009년 7월 5일에 임시총회에서 5대 위원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최초의 성소수자 위원장을 뽑았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가슴 뭉클 했던지요. 위원장으로 당선된 이후 미셸 동지는 이주노동자, 특히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주력하는 한편, 각종 인터뷰, 기자회견, 집회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고발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여 행동에 나설 것을 호소해 왔습니다. 위원장이 되어서도 공장에서 계속 일을 해야 했기에 낮에는 일을 하고 밤늦게 사무실에 와서 노조 일을 하는 것이 반복되었습니다. 2009년에 일했던 서울의 봉제공장도 역시 휴게시간 위반, 수당 미지급 등 노동법 위반사항이 많았습니다. 초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은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사업장에서도 미셸 동지는 노동부에 진정을 내서 노동조건을 개선하도록 유도했습니다. 2010년에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검찰경찰출입국관리소에 의한 정부합동 강제단속 추방이 강화되었습니다. 이주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 테러리스트로 보면서 정부는 단속을 강화했고 이주노조는 7월에 미셸 위원장 주도로 ‘G20을 빌미로 한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에 대한 항의 농성’을 명동 향린교회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농성은 8월 말까지 50일 간 계속되었고 그 사이 미셸 위원장은 30일 간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단식 중에 쓰러져 병원신세까지 지기도 했지만 의지를 꺾지 않고 30일을 채웠습니다. 이 항의농성에 노동운동, 진보운동의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폭넓게 연대를 하면서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다시 한 번 한국사회에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2010년 9월에는 민주노총 사상 최초로 이주노동자로서 대의원이 되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참석했습니다. 2011년 2월 이주노조 총회에서 미셸 동지는 위원장으로 재선됩니다. 이렇게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한 행동과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소는 미셸 위원장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2010년 3월부터 등록되어 일을 하던 회사가 일감이 없어 실질적인 휴업상태에 들어가자 서울출입국관리소는 이를 ‘허위취업’으로 규정했고, 노동부에서는 12월 초 해당 회사에 대한 고용허가를 취소해 버렸습니다. 12월 21일에 서울출입국관리소에서는 미셸 위원장을 소환조사 했고 2011년 2월 10일자로 체류비자를 취소해 버렸습니다. 이는 이주노동자 운동, 이주노조 활동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이자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행동하면 다 추방하겠다는 인종차별적인 억압입니다. 이에 이주노조에서는 민주노총을 위시한 제 단체와 함께 지속적인 반대투쟁을 했으며 소송을 제기하여 9월 15일 1심 결과가 나왔습니다. 재판부는 노조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출입국 측의 체류비자 취소 처분을 취소했습니다. 1차적인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출입국 측이 항소하여 현재 2심이 진행 중입니다. 이주노조 미셸 위원장은 이주노동자이자 트랜스젠더 성소수자로서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중과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억압과 탄압을 받고 단속추방의 위기에 내몰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꺾지 않고 계속 노조운동을 했습니다. 필리핀으로 돌아가서도 노동운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주노조, 그 이전의 평등노조 이주지부에서 활동했던 지도부나 활동가들은 모두 이중 삼중의 굴레 속에서도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했습니다. 평등노조 이주지부장을 했고 2003-2004년 명동성당 농성투쟁단 단장을 했던 샤말 타파 동지는 그 따뜻하고 넓은 마음씨로 이주노동자들을 이끌면서도 집회현장에서는 항상 분노와 결의의 연설로 힘을 주었습니다. 2004년 초 과천 법무부 앞에서 집회를 할 때 500여 명의 이주노동자 앞에서 샤말 동지가 모든 이들의 평등한 인권을 역설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는 2004년 4월에 표적단속되어 네팔로 강제추방 되었지만 돌아가서도 네팔노총(GEFONT)에서 이주사업 담당자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샤말 동지에 이어 농성단장과 이주지부장을 하고 이주노조 초대 위원장이 된 아느와르 후세인 동지는 노조 설립 2주 만에 뚝섬 역에서 새벽 1시에 단속반원들에게 폭행을 당하였고 단속되었습니다. 외국인보호소에서 1년 여 구금되어 있으면서 몸도 마음도 상할대로 상했는데도 일시 보호해제된 이후에 위원장 역할을 다시 수행했습니다. 그는 2007년에 방글라데시로 귀국하고 나서도 계속 약을 먹고 치료를 받을 정도로 건강이 완전하지 않았지만 자기 지역에서 정치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구청장 같은 위치에 당선되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2007년 지도부였던 까지만 까풍 위원장, 라주 구릉 부위원장, 마숨 사무국장은 지도부 역할을 하기 전부터 꾸준히 이주노조 간부로서 활동해 왔습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으로서 이 동지들은 이주노조의 맨 선두에 서서 활동하였습니다. 단속추방에 맞서 매주 서울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추방을 무릅쓰고 활동하였지요. 급기야 11월에 동시에 표적단속되어 네팔과 방글라데시로 추방되었습니다. 까지만 동지는 부인과 함께 영국으로 가서 다시 이주 노동을 하고 있고 라주 동지 역시 일본 오사까에서 식당 주방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숨 동지는 방글라데시에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연대 네트워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8년 지도부였던 토르너 림부 위원장, 압두스 소부르 부위원장은 선출된 지 한 달 만에 동시에 표적단속 되었습니다. 표적단속이라는 것은 일단 단속대상을 찍고 며칠 동안 미행을 해서 동선을 파악하고 잠복을 통해 특정 시간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급습하여 잡아가는 방식입니다. 토르너 위원장은 광우병 촛불집회 참가를 위해 사무실을 나서다 사무실 앞에서, 소부르 부위원장은 집에 있다가 들이닥친 출입국 단속반원들에 의해 잡혔습니다. 토르너 동지는 지금 홍콩에서 경비 일을 하고 있고, 소부르 동지는 방글라데시에서 앞서 말한 단체 활동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정부의 탄압에 의해 ‘이주노조 지도부=단속추방’이라는 등식이 작동해 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도부 뿐만 아니라 많은 간부, 조합원들이 단속추방을 당했지요.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더욱이 노조라는 운동단체를 만들어 정부비판 활동을 하니 더욱 눈엣가시지요. 그래도 그 많은 동지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 자기보다 이후에 한국에 올 후배 이주노동자들의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위해 단속추방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활동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헌신과 열정, 조직화와 투쟁이 지금까지의 이주노동자운동 역사와 성과를 만들어 온 것입니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가더라도 끝이 아닙니다. 한국에서의 활동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동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08년 6월에 네팔 카트만두에서, 본국으로 돌아간 네팔과 방글라데시 활동가들과 이주노조가 모여서 ‘국제 이주노동자연대 네트워크’를 결성하였습니다. 이제 미셸 동지가 필리핀으로 돌아가서 활동을 하게 되면 이 네트워크에 필리핀도 함께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이전에 평등노조 이주지부 활동을 했던 동지가 한국에서 돌아간 노동자들을 규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주 본국에서부터 이주노동자들을 접촉하고 교육하고 정보를 제공해서 그것이 이주노조 조직화로 이어질 수 있다면 이 네트워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활동을 한국의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이 지원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나 이주노조로서는 여전히 활동가를 재생산해야 하는 힘든 과제가 계속 남아 있습니다. 미셸 동지가 귀국한 이후 이주노조는 위원장이 공석이 되었고, 남아 있는 간부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조합원 숫자는 600명 수준으로 늘어났지만 활동하는 간부들은 줄어든 어려운 상황입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활동가를 육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한 교육과 조직사업, 지역투쟁 등이 이뤄져야 하고 연대와 지원도 더 커져야 할 것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투쟁하던 당시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그대로 이어받아 일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중의 비정규직이고 국적과 피부색, 인종차별이라는 겹겹의 차별 속에서도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인간으로서 대우받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씩 싸워 나가고 있습니다. 2003-2004년 이주노동자들이 단속추방 중단과 합법화 쟁취를 위해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하던 당시, 이주노동자 활동가 버즈라 라이 동지가 했던 인상 깊은 말로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인간선언’을 하셨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노동자선언’을 하셨으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며 ‘투쟁선언’을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노동자들은 전태일 열사 정신을 이어받아 국경과 민족을 넘어 단결하여 노동해방을 이뤄가야 합니다.”
야권단일화를 위한 MB FTA 반대가 아니라 한미 FTA 폐기를 위한 지역 현장운동을 조직해야 당의 반격과 궁색하기 그지없는 민주당 3월 15일로 한미 FTA 발효일자가 발표되고, 그동안 줄곧 수세에 몰리던 새누리당이 반격에 나서면서 한미 FTA가 총선 최대 쟁점으로 새삼 떠올랐다. 지난 6년여 간의 투쟁들을 돌이켜보면, 한미 FTA의 발효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미국 워싱턴에서 제1차 공식협상을 시작한 날부터 따지면 만 6년이고, 2007년 4월 2일 협상 타결된 날로부터는 약 5년이 지났다. 또 지난해 11월 22일 날치기 비준으로부터는 3개월 만에 한미 FTA가 발효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국회비준이 완료된 이후 발효가 개시되는 것은 기계적인 법절차에 불과하다. 문제는 정식 발효 이후, ‘날치기 비준무효 촛불집회’의 투쟁방향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이다. 코앞에 닥친 총선은 이러한 쟁점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새누리당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민주당이 2월 초에 미국대사관에 한미 FTA 폐기 서한을 전달하자, 박근혜 대표가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의 최대 업적으로, 한 번 체결된 국제협약을 이런 식으로 폐기하자는 무책임한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맹공을 퍼부은 것이다. 그러자 한명숙 대표는 “민주당의 입장은 한미 FTA 폐기가 아니라 재협상”이라고 하루 만에 말을 바꾸며 물러섰다. 기세를 잡았다고 판단한 새누리당은 2주일이 넘도록, 과거 한미 FTA 체결에 앞장섰던 한명숙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의 행적과 발언을 일일이 거론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이로써 날치기 이후 줄곧 수세에 몰린 모습이었던 새누리당은 정식 발효일을 앞두고 오랜만에 반격에 나서게 되었고, 한미 FTA는 새누리당의 선공에 의해 총선 최대쟁점으로 떠올랐다. 한미 FTA 반대 진영은 지난해 연말에 타올랐던 날치기 무효 촛불집회로 기선을 잡았지만, 여기에는 한나라당의 무리한 날치기 처리에 대한 반대여론이 포함된 것이었다. 또한 20~30%대에 불과했던 한미 FTA 반대 여론을 50% 가까이 끌어올리기는 했으나, 과반의 반대여론을 끌어 모으기 전에 날치기 무효 촛불의 기세는 꺾이고 말았다. 5:5의 비등비등한 여론전에서 새누리당은 더 이상 움츠리고만 있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애초에 한미 FTA 체결에 앞장섰던 민주당을 향한 정치 공세는 참으로 손쉬운 역전방안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한미 FTA 체결에 대한 자기반성과 분명한 노선전환 없이 말을 바꾼 터라, 누가 봐도 민주당의 한미 FTA 반대는 약점투성이 표몰이용 카드에 불과했다. 아니라 다를까 새누리당이 정치공세를 시작하자 막상 민주당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침묵과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당이 오바마 미국대통령에게 보낸 이른바 ‘한미 FTA 폐기 서한’에서 언급한 폐기는 실제로 폐기가 아니었다. 서한의 내용을 보자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재협상을 요구하고, 미국 정부가 협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19대 의회에서 한미FTA 폐기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FTA 폐기가 아니라 실상은 ‘ISD 재협상 조건부 폐기 고려론’인 것이다. 이것은 날치기 직전에 김진표 원내대표가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함께 작성했던 ‘ISD 재협상 조건부 비준동의안’과 일맥상통하는 안이다. 재협상하지 않으면 폐기를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애매한 의지성 문구(?)를 제외한다면, 지난해 연말에 한나라당과 야합하여 통과시킨 ‘한미 FTA 재협상 촉구 국회결의안’과도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이 결의안에서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말하는 이른바 재협상은 한미 FTA 협정문에 이미 규정되어있는 협의기구에서 보다 공정하고 효과적인 시행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MB FTA인가, 한미 FTA인가?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은 얼마나 다른가? 민주당은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한미 FTA, 2010년에 재협상한 한미 FTA를 반대한다는 말을 자주한다. 노무현 정부가 어렵게 맞춘 이익균형을 이명박 정부가 깼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자동차관세 관련 양보협상 결과를 포함한 10여개 항목의 재재협상을 주장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자동차부문의 양보는 큰 것이 아니고 나머지 9개 조항들은 노무현 정부가 2007년 4월에 체결한 내용 그대로라는 반론을 편다. 이 대목에 관한한 새누리당의 주장이 옳다. 2010년 자동차 관세 관련 재협상은 한미 FTA 전체를 놓고 볼 때 그리 큰 변화가 아니다. 국책연구소 10곳이 작성한 경제적 효과 분석을 보면, 재협상으로 우리나라의 자동차 분야 무역수지 흑자가 애초 협정보다 연평균 5,300만 달러 줄어들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미국의 요구로 자동차 세이프가드(일정 물량 이상 수입이 늘어날 때 관세를 복원하는 조처)라는 ‘보호 장벽’이 도입됐다. 하지만 자동차 세이프가드 조항을 제외하고, 민주당이 재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나머지 9개 항목은 2007년 4월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내용 그대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의 한계가 드러나 금융 세이프가드 강화가 필요해졌고, 2010년 국회가 중소상공인을 보호하는 법률을 제개정해 한미 FTA와 충돌하는 국내 법률이 생겼지만 협정안 자체의 내용은 달라진 것이 없다. 나머지 조항은 모두 노무현 정부 때부터 줄곧 독소조항으로 지적돼온 것들이다. 민주당이 ‘재재협상 1호’로 꼽은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중앙정부는 물론 지자체의 법령과 정책, 사법부의 판결까지 투자자가 국제중재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심각한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당시 열린우리당의 한미 FTA 평가위원회는 ISD에 대해 “우리 제도 선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비스와 투자 분야에서 개방 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는 있어도, 뒤로 되돌릴 수는 없는 역진방지 조항(래칫)이나, 주요 농축산 품목의 관세철폐 기간,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 역시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협정에 있던 그대로다.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야권연대를 정당화시켜주는 화려한 명분으로 이용당하는 한미 FTA 민주당은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2008년 금융위기로 사정이 바뀌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퇴임 직후에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사정이 바뀌어 한미 FTA에 대한 재검토와 폐기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최강 경제대국인 미국의 지배력이 뒤바뀐 것은 아니다. 만약 민주당의 논리대로 따져보더라도, 2008년 금융위기 때문에 사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한미 FTA를 통한 수출 증대 전략과 경제(제도) 선진화는 더욱 더 절실한 상황이다. 민주당이 자주 언급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미 FTA 재검토 발언 또한, 미국 측의 재협상 요구와 관련한 이명박 정권의 태도를 비판하는 수준이고, 그가 말한 재협상은 말 그대로 ‘보다 면밀한 이익타산과 신중한 추진’을 강조하는 것이다. 폐기라는 단어를 노 전 대통령이 사용한 적이 있지만, 그의 말은 “재협상을 요구하여 추진하고, 정 안되면 폐기를 검토할 수도 있겠다”는 내용이었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엄포를 놓는 유능한 협상전략 차원의 언급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입장도 크게 다르지도 않은 양당이 한미 FTA를 놓고 으르렁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거 여론조사의 관점에서 보면, 한미 FTA는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갈등 이슈’다. 선명하게 찬반이 갈리면서, 보수 대 진보 선거 구도의 중심에서 다른 이슈들을 이끌고 여론을 움직이는 사안인 것이다. 별다른 관점과 이념 노선의 차이가 없는 보수 양당이 앞다퉈 한미 FTA를 선거 쟁점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짓고, 손쉽게 지지자를 동원할 수 있는 의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미 FTA 폐기 서한’은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는 운동전략을 반영하는 행동이 아니다. 이것은 한미 FTA라는 중심 이슈를 소재로 하는 영향력 있는 ‘정치 퍼포먼스’다.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한미 FTA가 민주당 주도의 야권연대를 정당화시켜주는 화려한 명분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의 공천기준에는 한미FTA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천심사위원회 자체가 친FTA인사들로 꾸려졌다는 내부논란이 불거지는 판국이다. 그러니 한미 FTA 찬성-협상파들이 건재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미 FTA 카드를 버리진 않는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내어, 자신이 주도하는 반MB-야권연대를 달성하기 위해 한미 FTA보다 강력한 카드는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2006년 한미 FTA 협상 당시 홍준표 의원을 비롯한 적지 않은 한나라당 의원들도 졸속협상이라는 이유로 당시 FTA 협상을 반대했었다. 그들 역시 한미 FTA를 반대했던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을 반대했던 것이다. 원조 친미 보수집단인 새누리당이 한미 FTA를 맹신하는 것이야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박근혜 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말하면서 동시에 한미 FTA같은 중대한 국가간 협정을 함부로 다루는 민주당을 성토하고 나서는 모순적인 태도는, 역시 선거 정치 퍼포먼스의 일환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서민경제도 돌보면서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민주당과 달리 말을 바꾸지 않는 진정성 있는 보수, 경제를 살릴 능력 있는 정치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한 목적이다. 한미 FTA가 이렇게 여야 정당간의 표몰이 쟁점으로 전락하는 사태로 말미암아 정작 한미 FTA를 둘러싼 진정한 계급투쟁의 발전은 왜곡되고 가로막힌다.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한미 FTA 추진은 선, 반대는 악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민주당은 정반대의 논리로 보수정당들 간의 표 대결에 한미 FTA를 동원하고 있을 뿐이다. 반MB 야권연대의 덫에 걸린 한미 FTA 투쟁과 범국민운동본부 이런 와중에 한미FTA저지범국본이 반MB-야권연대의 덫에 걸려, 한미 FTA 폐기 투쟁의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스스로 잃어가고 있다. 범국본은 2012년 1월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총선 대응 사업으로 전환했다. 여전히 주말 촛불집회를 계속 개최하고 있지만, 실제 내용과 실질적인 사업기조는 이미 반MB-야권연대 총선대응에 맞춰져 있다. 올해 초 내내 숱한 내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른바 ‘심판운동’이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다, 심판운동은 151인의 날치기 의원들을 심판하는 공천 반대운동과 총선 출마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약속운동, 온라인 유권자캠페인으로 구성된다. 최초의 논란은 여야 공천 반대 인사들의 명단 발표 문제를 둘러싸고 불거졌었다. 범국본 산하에 구성된 검증지원단은 애초에 심판자 명단을 <날치기의원 151인 + 박희태 국회의장, 정의화 부의장 2인 + 민주당 의원 7인>으로 제출했다. 이는 심판기준도 잘못됐고, 명단 규모도 지나치게 협소한 안이었다. 이 때문에 연이어 세 차례나 계속된 범국본 대표자회의에서 뜻있는 여러 단체 대표자들은 이러한 명단발표를 반대하고, 다른 기준과 질적으로 다른 총선 대응방식을 찾을 것을 제안했었다. 그것은 첫째, 심판명단 작성의 기준은 한미 FTA 날치기가 아니라 한미 FTA 폐기임을 분명히 해야 하고, 둘째 심판대상은 날치기에 참여한 151인과 7인의 민주당 야합파 의원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날치기151인’과 민주당의 핵심 야합파 의원들에 대한 심판은 별도로 강조하면 될 일이지, 그들 때문에 나머지 의원들을 심판에서 제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한미FTA범국본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천물갈이를 요구할 이유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범국본 대표자회의의 논의는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검증지원단의 안을 다수결로 밀어붙이려는 측과 이에 반대하는 측의 논쟁으로 평행선을 그렸다. 결국 논의는 범국본 대표자회의의 다수의견 대로 검증지원단의 심판자명단을 발표하되, 심판 명단 발표 취지에 “한미 FTA를 체결한 민주당(옛 열린우리당)과 날치기를 자행한 새누리당은 심판받아야 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범국본의 심판자 명단은 2월 16일에 1차 발표되었다.) 한미FTA범국본은 한미 FTA 밀실협상을 개시하고 폭력적으로 체결한 노무현 정권에 맞서 결성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FTA범국본은 날치기 이전이나 이후나 일관된 한미 FTA 폐기 입장에 근거해서, 민주당의 참여정부 FTA 원안 찬성론이나, ISD 재협상 조건부 비준찬성론 등을 비판해왔다. 그런 한미FTA범국본이 이제 와서 민주당과의 공조를 감안하여 야합파 7명 수준의 부실하기 짝이 없는 심판명단을 발표하고, 한미 FTA 폐기 입장을 분명히 할 수 없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민중운동의 우경화를 대가로 한 총선승리는 한미 FTA 폐기 투쟁의 질곡이 될 뿐 한미 FTA는 발효와 함께 계급갈등의 광범위한 쟁점들과 분리 불가능한 사안으로 바뀐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진정성 없고 파퓰리즘적인 정치동원 논리와 ‘말 바꾸기 정치’는 실질적인 한미 FTA 폐기 운동을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여소야대 국회의 등장이 한미 FTA 폐기 운동에 다소나마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막연한 바람일 뿐이다. 민주당의 전략은 MB-새누리당-박근혜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재협상으로 이른바 이익균형을 맞춘, 좀 더 공고하고 강력한 한미 FTA를 만드는 전략이다. 한미 FTA를 전면 폐기하기 위한 운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민주당과의 무분별한 정치적 연합이 우리 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새누리당의 말이 아니더라도 “일단 한 번 체결, 발효된 국가간 협정을 폐기하는 일”은 양국 간의 정치적경제적 외교관계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전환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이제 한미 FTA 폐기 운동은 불평등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한미관계에 대한 전반적 비판과 결합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과의 정치적 연합은 민중운동 내부로부터 이러한 급진적인 비판론을 검열하고 순화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다. 또한 거듭해서 강조하거니와 한미 FTA는 단순히 상품무역과 관련한 관세면제 협정도 아니고, 양국간 국익의 균형과 불평등으로 판단할 수 있는 협정도 아니다. 자동차와 소고기 문제도 핵심이 아니다. 한미 FTA의 핵심은 경제, 사회, 문화, 금융, 서비스, 교육, 노동 등에 걸친 포괄적인 투자 및 경제제도의 광범위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다. 한미 FTA는 국익이 아니라 계급이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 FTA는 다른 어떤 FTA와도 다른 각별한 특징들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FTA가 정식 발효된 이후에 그것의 전면적인 폐기를 추진하는 일은 경제제도 전반의 개혁방향을 역전시키는 과제다. 가장 관련이 깊고 직접적인 부분은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해외매각, 재벌규제 제도들이다. 하지만 한국전력과 발전노조 투쟁, 철도노조 투쟁으로 이어져온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투쟁들은 지난 2000년대 내내 거듭 패배하고, 집중력 있는 공동 연대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실패했다. 비정규직 노동탄압의 선봉인 현대자동차와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 어용노조를 무기로 키워온 재벌들과의 투쟁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강요하고 한번 개혁된 부분을 합법적인 방식으로는 되돌리지 못하게 봉쇄하는 한미 FTA가 발효하고, 이 민영화 잔치판에 머리 검은 외국투자자로 이들 재벌이 참여할 것이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운운하며 온갖 규제와 노동 보호 관련 제도들을 무력화하는 공세를 펼칠 것이다. 이에 맞서 이제 한미 FTA 폐기 운동은 공공부문 민영화저지 전선의 복구와 재벌의 지배체제에 맞선 총노동 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지역·현장의 운동들을 조직하는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MB 심판과 야권연대를 통한 총선승리(?)는 굳이 그것이 누구의 승리인지 따지지 않더라도, 전선 복구에 힘을 싣고 강화하는 흐름이 아니다. 야권연대 류의 정치적 흐름이 민중운동의 다수를 우경적인 주류화로 이탈시켜버린다면, 피폐화된 민중운동에 덩그러니 남겨진 국회의석들은 급진적인 운동 발전에 유리한 환경은커녕 민중운동의 질곡이 될 것이다. 이후 투쟁방향에 대하여: 한미 FTA 전면 폐기 기조를 명확히 하고, 실질적인 반신자유주의 전선복구에 매진해야 한다 끝으로 이후 투쟁방향을 구체화하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지점들을 살펴보자. 우선 2월 28일 금속노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한미 FTA 저지 총파업’안이 현장 발의되는 일이 있었다. 비록 과반수 결의에 9표 모자라 안건은 부결되었지만, 금속 대의원들은 47.5%의 예상치 못한 높은 지지로 3월 총파업을 요구했다. 이 일은 한미FTA범국본은 물론 금속중앙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역으로 이 일은 매우 상식적인 일이었다. 지난 6년간 민주노총을 위시한 모든 민중운동은 “한미 FTA가 체결되면, 총파업에 돌입한다”,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에 상정되면, 총파업 총력투쟁으로 저지한다”는 결의들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금속 대의원들은 이번에도 당연히 “발효가 이루어지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판단과 결의를 보여준 것이다. 물론 보름 앞으로 다가온 발효를 무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투쟁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장의 투쟁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핑계로 야권연대 선거만을 유일한 대안으로 강변하는 무책임한 태도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3월 발효 저지 파업이 무리라면, 지금부터라도 8-9월 민주노총 파업을 한미 FTA 폐기 민중투쟁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역현장의 투쟁 조직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한편 3월 중에 유성기업, 쌍용차 노동자들과 ‘희망 뚜벅이’(12개 투쟁 사업장들의 공동사업단)가 여러 좌파 운동단체들과 공동으로 주요 지역별 거점 농성투쟁을 진행하기로 했다. 부르주아 선거의 구원만을 기다리기보다는,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 한미 FTA 폐기를 핵심기치로 반신자유주의 투쟁전선 복구를 위한 운동태세 전환을 촉구하고 조직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쟁 흐름이 소기의 성과를 통해 대중적인 노동자 연대투쟁 흐름을 일궈 새로운 한미 FTA 폐기 운동으로 자리매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운동 흐름 속에서 일회적인 동원사업이 아니라 실질적인 반신자유주의 전선 복구의 전망에 걸맞은 한미 FTA 폐기 운동과 정치 교육 선전 사업들을 확장시켜가야 한다. 끝으로 지난해 날치기 이후 한미 FTA 투쟁의 중심축 역할을 수행해 온 한미 FTA 범국본과 촛불집회의 변화가 필요하다. 문제는 “투쟁 없이 총선승리 없다!”로 요약되는 범국본 촛불집회의 현재 기조다. 이러한 기조는 심판과 투쟁을 주장하지만, 선거승리가 상위의 목표이고, 심판의 방법은 야권연대다. 계급적 정치역량의 강화가 아니라 반MB 야권 국회의석 확대라는 잘못된 정치적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예컨대 지난 2월 25일 개최된 범국민대회는 통합진보당과 민주당간의 야권연대 협상 결렬을 성토하는 분위기로 가득 찼다. 원칙 없는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비판하기는커녕 민중운동이 야권연대를 애원하는 낯 뜨거운 집회였다. 이런 식이라면 한미 FTA 투쟁은 야권연대를 압박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맹목적인 대중동원과 명분 쌓기용 대중동원 행사로 전락할 뿐이다. 한미 FTA 투쟁은 이러한 정치적 굴레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국익을 위한 재협상이 아니라 전면 폐기를 명확한 기조로 다잡아야 하고, 반MB 정치 NGO들의 유권자운동낙선운동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 투쟁과 민영화 저지 운동들과의 결합을 중심으로 새로운 투쟁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할 때다.
한국의 장시간 노동 최근 고용노동부가 완성차 장시간 근로 실태 조사를 실시하며, 노동시간 문제가 다시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 한국에서 장시간 노동 문제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1980년대 군부독재 하에서도 장시간 노동 문제는 매년 관계 당국과 언론을 통해 자주 회자되었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는 한국 노동 문제의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로 다루어져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 해봐도 한국의 노동시간은 고도성장을 한 7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부동의 1위다. 물론 노동시간은 해마다 조금씩 줄고 있기는 하다. 1980년 2,864시간에 달했던 연평균 노동시간은 30년이 지난 2010년 2,193시간으로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노동시간은 1980년 OECD 평균 노동시간인 1,911시간보다도 많다. 2010년 한국의 1인당 GDP가 1980년 OECD 평균 1인당 GDP보다도 33%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30년 동안의 기술발전까지 감안한다면 한국은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장시간 노동을 바탕으로 한 경제 체제를 확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로의 대한민국’ 속에서도 자동차산업은 더욱 긴 노동시간으로 악명 높다. 금속노조 조사에 따르면 현대, 기아차의 평균 노동시간은 2,546시간에 달하며, 부품사는 2,752시간에 이른다. 자동차산업만 놓고 보면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여전히 1980년과 비슷한 수준인 셈이다. 2000년대 들어 법정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든 가운데서도 자동차산업에서는 오히려 잔업 특근이 늘어나며 노동시간 단축 효과가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1993년 37시간이던 월 잔업, 특근 시간은 2010년 45시간으로 늘어났다.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 자동차 부품 업체 노동자들이 고령화됨에 따라 장시간 노동은 더욱 첨예한 사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현대차, 기아차, 한국GM 조합원들의 50% 가까이가 40대 이상이며, 50대 이상도 20%를 넘어선다. 장시간 노동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심혈관질환, 수면장애 등은 고령화 진행도와 더불어 매년 더욱 심각해 질 가능성이 크다. 주간연속2교대제의 쟁점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완성차 업체를 중심으로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2004년 현대차 노동조합은 야간노동을 없애자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사측에 공식 요구했고, 2005년 교섭에서 2009년 실시를 사측과 합의했다. 하지만 2006년부터 현재까지 생산량 보전 방식, 임금 보전 방식, 노동강도에 관한 기준 마련 방법 등을 둘러싸고 노사 간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사측은 초지일관 생산량 대비 비용을 고정시켜 놓은 채, 생산량이 줄면 임금도 줄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만약 임금 보전을 원한다면 노동시간 감소만큼 노동강도를 상승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현대차 지부는 임금, 노동강도는 현재와 같은 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사측이 생산량 유지를 원한다면 노동시간 단축분 만큼 고용과 설비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을 둘러싼 논쟁은 노동자운동 내부에서도 존재한다. 크게 입장을 나누면, 임금, 노동강도를 다소 양보하더라도 일과 여가의 균형, 건강권 확보를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노동조합 주도로 먼저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과 임금과 노동조건 저하 없이 노동시간이 단축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이와 연동되어 전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노동조합 간부와 연구자들은 노사 노동강도 기준(맨아워)을 마련하여 생산량 보전을 위한 적정 노동강도와 적정 인력을 산정하자고 이야기하는 반면, 후자 입장을 지지하는 노동조합 간부와 연구자들은 노동강도 측정의 기준이 되는 모답스(MODAPTS) 등의 방법이 노동자의 다양한 노동 지출을 반영하지 못할뿐더러 이렇게 노동강도가 강제로 정해지면 지금까지 노동강도를 완화하기 위해 싸워온 노동조합의 현장권력이 무너진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가운데 지금까지는 ‘노동의 양보선’이 어디까지인가라는 논쟁이 주를 이뤄왔다. 자본의 양보가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채 사측이 제시한 각종 수치에 근거한 노동의 양보 목록만 논의되어 왔다는 것이다. 자본의 양보를 요구하는 입장은 주로 원칙주의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러한가? 노동의 양보는 현실적인데 반해 자본의 양보는 비현실적 이야기인가? 과연 투자 중심의 시간단축이 불가능할까?: 현대차 사례 현대차의 상황을 보자. 현대차그룹은 2011년 77.8조 매출에 8조원의 순익을 거뒀다. 수익률 10%대로 전세계 자동차 기업 중 최고 수준의 수익률이다. 자동차 생산 대수로 1위인 GM이 165조 원 매출에 10조 원 정도의 순익을 얻은 것에 비하면 현재 현대차의 수익성이 얼마나 좋은 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더군다나 현대차는 현재 11개인 플랫폼을 6개 정도로 통합하면서 신차 개발 및 생산 비용을 기술적으로 더욱 낮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른바 구조적 비용이라 불리는 장기간의 생산 비용이 기술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현대차가 돈이 없어서 추가 고용을 못하거나, 설비투자를 못할 상황은 아니다. 현대차지부가 요구하는 신규인력 채용, 설비투자 중심의 노동시간 단축 요구에 대해 현대차 사측은 자본이 언제나 하는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장기적으로 인건비 비중이 높아져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고, 경기 변동에 대응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런 비용 증가가 현대차 경영에 큰 문제를 발생시킬까? 10년 전인 2002년과 2011년을 비교해보자. 2004년 이후 해외공장이 크게 늘어나서 발생한 변화를 제외하기 위해 해외 계열사를 제외하고 국내 현대차 법인에 한해서 살펴본다. 설비투자, 아산 공장 규모로 증설 여력 있다 먼저 설비투자 부분을 보자. 설비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설비를 통해 한 해 얼마만큼의 매출액을 올리느냐다. 유형자산회전율이라고도 부르는 것인데, 여기서는 생산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설비(구축물, 기계, 금형/공구, 운반구)에 한해서 회전율을 살펴본다. 2002년 현대차의 매출액은 26조3천억 원이었고, 설비 순액은 3조6천억 원이었다. 즉 설비 1원 당 7.3원의 매출을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2011년에는 4조4천억 원의 설비로 40조5천억 원의 매출을 발생시켜, 설비 1원당 9.2원의 매출을 만들어냈다. 2002년에도 경영에 큰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는 최소한 2002년과 2011년의 회전율의 중간치인 8.2 정도의 설비투자 여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2011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약 5천억 원 정도의 설비투자를 진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2011년에 회사가 제시한 2천9백억 원에 2천1백억 원 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공장 증설, 설비 개선 등에 신규 투자해도 된다. 노동시간 단축 분을 노동강도 강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5천억 원 투자액으로 현재 공장 부지에서 증설을 한다면 아산 공장 규모를 하나 더 짓고도 남을 액수다. 현대차 아산 공장의 구축물, 기계, 금형/공구, 운반구 자산은 3천9백억 원 규모다. 9천 사내하청 정규직화와 2천3백여 신규채용도 가능하다 다음으로 인력 충원과 신규투자에 따라 매년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을 살펴보자. 먼저 신규 채용 부분. 현대차는 2010년 제조에 직접 필요한 인건비(급여+복리후생비+퇴직금)로 약 4조1천억 원을 지출했다. 현대차가 36조7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여기서 재료비, 감가상각비, 외주가동비, 제조 인건비 등 27조 8천억 원의 비용이 지출되어 제조과정에서 남은 이익은 8조9천억 원이다. 가치의 생산과 직접 연관된 과정에서 보면 현대차 노동자들은 2010년 1원 임금을 받아 약 2.2원의 이익을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다. 2011년에는 매출액이 10% 가까이 올랐으니 이 액수가 조금 더 올랐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자본이 조금만 양보해 인건비 1원 당 2.2배의 이익이 아니라(2.2배의 착취) 2배의 이익(2배의 착취)으로만 조금 조정하면, 인건비 여력은 매년 3천6백억 원 가량이 발생한다. 이 액수는 2012년 1월에 한 4천8백억 원 배당금의 75% 수준으로 사실 현대차 입장에서 보면 별로 큰 액수라 말할 수도 없는 금액이다. 추가 여력이 생산 3천6백억 원 중 공장 신규 증설로 발생할 350억 가량의 감가상각을 제외하면, 약 3천2백억 원 가량이 매년 신규 인력을 위해 임금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인건비에서 퇴직금, 복리후생비 등을 제외하고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80% 정도다. 이를 이용하면 첫째,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약 9천 명에 이르는 사내하청을 모두 정규직화 할 수 있다. 금속노조 조사에 따르면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은 같은 근속연수의 정규직 대비 68% 수준이다. 2011년 임금 명세표(근속 4~5년) 기준으로 정규직과의 1년 임금 총액 차이는 약 1천5백만 원 정도다. 9천명의 사내하청을 정규직화 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천4백억 원 수준이다. 둘째, 남은 1천8백억 원으로는 약 2천3백여 명을 신규채용할 수 있다. 현재 현대차지부 아산위원회 조합원 수인 2천5백여 명의 90%에 이르는 숫자다. 사측은 신규 채용 시 근속 연수 증가에 따라 비용이 계속 증가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앞으로 10년간 현대차에서 퇴직할 인원(근속연수가 20~30년인 노동자들)이 1만 명에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는다. 주간연속2교대제, 자본이 아주 조금만 양보해도 충분히 노동조건 개악 없이 실현 가능 2011년 노사 합의에 따르면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을 위해서는 시간당 생산 대수가 30대가 늘어야 하고, 식사시간, 휴게시간 축소 등으로 연 184.1시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사측은 자기 기준에 따른 맨아워를 재측정, 노동강도를 높일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자본이 조금, 아주 조금만 양보하면 굳이 이러한 현장통제 강화, 노동강도 강화 방안이 아니어도 생산량을 유지하며 주간연속2교대제를 시행할 수 있다. 자본의 탐욕을 조금만 버리면 된다는 것이다. 현재 8+9 체제로 변화 시 생산량 부족분은 18만 7천대 수준이다. 이 생산량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를 두고 맨아워위원회부터, 일부 공정의 3교대제 도입, 편성효율 증가 등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방식으로 투자 및 운용비를 마련할 수 있다면 굳이 노동이 양보해야만 하는 쟁점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아산 공장이 8+9로 변경 시 22만대 생산이 가능하니, 아산 공장 규모의 증설을 하면 될 일이다. 설비투자부터 운영비까지 모두 그렇게 어렵지 않게 확보 가능하다. 자본이 조금만 양보하면 될 일이고, 노동조합이 조금만 더 단결된 힘으로 싸워서 쟁취하면 될 일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자본과 노동의 역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앞서 제시한 투자, 고용에 관한 시뮬레이션도 결국 노동의 힘으로 자본의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가에 그 현실성 여부가 달려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를 비현실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인 것을 오직 노동의 양보 속에서만 찾는 것이야 말로 노동시간이 결국 자본의 이윤과 노동의 몫이라는 계급 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노동강도 강화, 중장기적인 패배일 뿐 자동차산업의 축적 전략을 들여다보면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의 거래는 중장기적으로 노동의 손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는 OECD 산업분석 데이터(STAN DB)와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요국 자동차산업의 장기 축적 추이를 분석했다. 교대제 변경과 같이 장기간에 걸쳐 영향을 주는 변화는 단기간의 경기 변동에 따른 손익 변화보다는 장기 변화의 핵심 변수인 고정자본(기계설비 등) 변화를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1998년 이전과 이후로 분명하게 구별되는데, 1998년 이전에는 대규모 설비투자가, 1998년 이후에는 소규모 설비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1980년대 후반부터 현대 대우 기아차 등은 일본 따라잡기를 하겠다면서 대규모 자동화 설비를 들여왔다. 정주영, 김우중 등 재벌 오너들은 대규모 해외차입까지 하며 공장 증설과 자동화에 열을 올렸다. 이 시기는 자동차산업 기계설비가 연평균 26%씩 고도성장했고, 노동생산성은 연평균 20%씩 성장했으며, 고용은 연평균 3%씩 늘어났다. 한국자동차산업의 황금기였다. 그리고 87년 투쟁을 통해 형성된 현장권력이 현장통제를 억누르며 노동강도 강화를 막아내던 시기다. 노동생산성은 노동강도 강화가 아니라 기계화 자동화로 높아졌다. 산업적 확장세였기 때문에 자동화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줄어들지는 않았고, 오히려 늘어났다. [그림] 한국자동차산업의 기계화, 노동생산성 추이. 1990~2007 1998년 이후에는 상황이 변화했다. 2010년까지 11년 간 기계설비(고정자본)는 연 7% 성장으로 급락했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연 8% 성장하며 기계설비 증가분보다 더 크게 성장했다. 바로 현장통제를 통해 노동강도 상승으로 노동생산성을 올려왔다는 것이다. 1998년 이전이 자본 지출에 의한 성장기였다면 1998년 이후는 바로 노동 지출에 의한 성장기였다는 의미다. 생산량은 매년 느는데 설비는 노후하여 너무 힘들다는 현대차 조합원의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성장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15년간 이렇게 성장해 온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동강도를 높인다는 것은 두 가지 점에서 치명적이다. 첫째, 현장 투쟁 속에서 어렵사리 올리던 노동강도를 노동이 합의까지 해준다면 현대기아차 사측은 더욱 설비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노동은 더욱 노후한 설비 속에 자신의 몸을 마모시켜 출혈적 생산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시간단축분 보다 더 큰 정신과 육체의 손실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일부 타협론자들이 잘 인용하는 폴크스바겐의 1990년대 타협도 이런 식의 노동강도 상승을 용인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 자동차산업의 노동생산성은 1991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1%씩 하락했다. 설비투자는 연 0.3%씩 증가했다. 사실상 폴크스바겐의 협약은 결과적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강도 완화를 동시에 추구하여 고용 유지를 달성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추진하는 것은 1990년대 폴크스바겐의 사례에도 맞지 않는다. 둘째, 현장권력이 무너지며 노동시간과 임금 모두 장기적으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노동강도 강화는 미시적 통제를 필요로 하며 사측의 현장 통제력이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현장권력을 잃을 경우 우리가 이미 예전에 겪었듯이 유무형의 방식으로 노동시간과 임금조건이 악화된다. 현대차지부가 유지해온 주간연속2교대제와 관련한 3무정책(노동강도, 임금, 고용 조건 하락 없는 교대제 개편)은 정세적으로, 현실적으로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