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투쟁, 어떻게 임할 것인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로 조직되고 있는 11월 투쟁은 우리에게 섣부른 기대보다는 끈질긴 인내를 요구한다. 현재 진행중인 각각의 투쟁에 대해 호흡을 가다듬고 진단, 평가하는 것은 우리 운동의 일보전진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무능부패로 일관하는 지배정치에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11월 들어 전개될 대부분의 투쟁이 처한 곤란은 장기간 준비한 대중동원 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어디로 갈무리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여기에는 11월 대중투쟁의 성과를 대통령 선거에서 어떻게 수렴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착종되어 있다. 즉 선거시기 민중의 이해를 대변할 정치세력이 여전히 미력하다는 것을 이유로 투쟁의 종착지가 기성 정치권(대선 후보)으로부터 확약을 받아내는 것으로 미끄러지는 것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세력은 민중들의 요구를 받아 안을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초국적자본과 국제기구의 요구에 부합하여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한 각종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 그 역할이 제한된 행정부나, 정치 이념보다는 대중적인 이슈에 대해 그때그때 신속하게 대처함으로써 자신과 다른 정당을 구별시키는 선정적 폭로만이 난무하는 국회에서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민중의 요구가 진지하게 다루어지기란 애시당초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정치상황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대통령 선거를 40여일 앞둔 현 시점에서 지배 정치권의 행태는 '바닥을 향한 경쟁'에 돌입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정치권 일반은 오로지 널뛰듯 오르내리는 여론조사의 향배에만 정신이 팔린 채 이합집산·합종연횡·이전투구에 몰두하고 있다. 8·8 재보선 선거 참패 이후 사실상 야당으로 전락한 뒤 해체 일로를 겪던 민주당은 개혁세력로서 자신의 정체성마저 져버린 반동적 정계개편 말고는 자신의 욕된 목숨을 부지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와 '분당'이라는 극약처방을 통해 오로지 정몽준과의 야합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미 이들에게 있어 모든 정치활동의 목표는 아무런 원칙도 없는, 반이회창 단일후보를 통한 재집권의 야욕에 불과하다. 원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한나라당 역시 무능하기로는 피차 일반이다. 이들은 정확히 말해 무정견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 어떠한 적극적인 정치활동도 전개하지 않고 있다. "대선에 팔려 국회 문닫는 나라"라는 보수일간지 사설 제목이 시사하듯, 이번 정기국회가 특별한 정치적 쟁점 없이 11월 8일로 한 달 가량 서둘러 마무리될 것이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정치권은 '짜고 치는 고스톱' 마냥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전대미문의 증액경쟁을 벌인 다음, 법안심의에서도 옥탑방 양성화, 군인연금 인상 등 실효성 없는 선심성 법안만 서둘러 통과시키고, 마지막으로 정당에 대한 예산지원을 더 타내기 위한 공직선거법만 처리하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국회는, 집권 말기에 이르러 거듭된 무능부패로 사실상 가사(假死)상태에 빠져있는 김대중 정부 최후의 '개혁', 다시 말해 미완의 신자유주의 개혁 정책 입안을 서두르고자 하는 행정부의 요구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역설에 직면하기도 한다. 결국 대선을 앞둔 이번 정기국회에서, 정치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괜시리 민감한 사안을 건드려 손해날 장사하기 싫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이러한 정치의 희화화 경향 하에서 선거가 이념이나 구체적인 정책의 차별화가 아니라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 인기영합주의로 대체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대정치권 압박·청원식 투쟁이 마치 '떡 줄 놈은 생각도 없는데 김치국 마시는 격'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투쟁의 목표를 대정치권 압박·청원으로 설정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현재 민중운동 진영의 현실은 이러한 경향에서 전반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주지하다시피 민주노총은 지난 10월부터 주5일제 근로기준법개악·공무원조합법·경제특구법 등 자칭 '3대 쓰레기 악법' 국회통과 저지를 위해 총파업을 조직해왔다. 20만에 달하는 조합원이 총파업 찬반투표에 참가하고 국회 앞에서 펼쳐진 확대간부 상경노숙투쟁에는 3박4일 동안 연인원 5천여명이 참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비로소 11월 5일, 12만을 웃도는 조합원이 총파업에 참여해 22개 도시에서 '악법철폐'를 외쳐 노동부조차 96∼97년 노동법개정투쟁 이후 최대의 투쟁동력이라고 실토할 정도였다. 4·2 발전노조 연대파업 불발 이후 근간부터 흔들린 조직을 복구하고 5개월만에 새롭게 구성된 지도부 체계에서 뒤늦게나마 하반기 투쟁계획을 확정한 뒤, 단 2주만에 총파업을 성사시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일견 고무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국회 앞 도로를 완전 점거한 집회대오가 총파업 결의대회 과정에서, 하루 전날 정권의 극악무도한 폭력침탈만행에 몸서리쳐야 했던 공무원 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 공무원노동자대회를 성사시켜냈다는 점도 분명한 의의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빛'의 이면에는 분명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할 정치세력이 여전히 미력하다는 것을 이유로 대신 국회를 압박, 가시적인 성과를 쟁취하려는 무의식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이번 총파업이 '주5일제 근로기준법 개정안' 정기국회 회기 내 통과를 저지한다는 명목 하에 조직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번 투쟁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다. 대중투쟁의 역동성은 끊임없이 국회일정에 종속, 제한되기 일쑤고 이 과정에서 동원되는 대중들은 정치권에 대한 해바라기식 투쟁에 매몰된다. 그리고 총파업 규모는 은연중에 협상력과 동일시된다. 실제로 김대중 정권 들어 연례행사처럼 진행된 '대국회투쟁'은 그 형식 자체가 법안의 국회통과를 저지하는 것을 현실적 목표로 하는 탓에 이러한 오류를 끊임없이 노정했다. 이러한 조건부 총파업의 후과는 민주노총이 주5일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파업 중단을 선언한 그 즉시 나타났다. 바로 다음날인 6일, 국회가 경제특구법을 국회 재경위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이로써 '3대 쓰레기악법'의 폐기라는 당초 목표는 유실되고 말았다. 자기방어적-근시안적인 투쟁을 넘어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으로 여기서 우리의 우려는 비단 특정 법안의 파괴적 속성에 국한된 것도 아니요, 이 법안 자체를 막아내지 못할 거라는 비관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경제특구법안이 통과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주5일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이번 회기 내에 처리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업을 중단하고 간부상경투쟁으로 대체한 현실에 있다. 다시 말해 현재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추진되는 전형적인 메커니즘을 올바로 간파하지 못하고 근시안적이고 자기방어적인 투쟁으로 일관하고 있는 민중운동의 현실을 통탄하는 것이다. 기간 민중운동은 겉으로는 소리 높여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한다는 것에 모두가 합의하면서도 그 실내용에 따른 투쟁형태와 조직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전방위적으로 자행되는 신자유주의적 공격에 대해 민중운동 진영은 각기 개별적으로 당면한 단위사업장 구조조정(정리해고)에 치중하거나 ―이번 근로기준법 국회 통과 저지 대국회투쟁처럼 사후적으로― 현안 쟁점에 대응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전에 줄곧 자유무역협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확인하였듯이 현재의 WTO-금융세계화 체제는 설사 이러한 현안 투쟁에서 승리하더라도 그 성과를 모조리 앗아갈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정책은 일반적으로 생각되듯이 의회(정당·정치인)나 행정부(정책입안 전문관료)의 신념과 의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규준으로 제시되는 자본축적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종속되기 때문이다. 관건은 해당 사안에 국한된 선전·조직화와 정책개혁의 사후정당화에 불과한 법·제도 반대를 넘어 반신자유주의-반정권 투쟁의 전반적 기조와 방향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투쟁에 임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은 투쟁은, 설령 외양은 대정권-대국회 투쟁일지언정 실상은 '법안' 저지라는 형태로 축소되는 것을 언제나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능동적 투쟁으로 공동의 행동강령을 만들어나가자 한편 공무원노조는 11월 4∼5일 이틀동안 연가상경투쟁을 통해 공무원조합법 철회 공무원노조 합법화를 위한 대정부투쟁을 전개한 바 있으며, 특히 전농을 중심으로 한 농민 대오의 경우 WTO-쌀수입 개방에 맞서 실수로만 무려 15만을 상회하는 동력이 조직되는 와중이다. 민주노총 역시 경제특구법 반대 투쟁을 중섐으로 10만 노동자대회를 약속하고 있다. 실로 엄청난 사건이다. 하지만 애시당초 빼곡한 투쟁 '일정'만으로 전선 형성이 가능할리 만무하다 했을 때, 핵심은 각계각층에서 분출하는 민중투쟁을 지지엄호, 확산시켜내는 동시에 이를 정확한 정치적 기조로 집약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계획'의 문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민중운동 전반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을 따름이다. 오로지 유일한 대안이 있다면 전국민중연대(준) 차원에서 공동투쟁-공동협상-공동타결이라는 원칙 하에 추진중인 <민중대표단>일 것이다. 현재로선 향후 그 성사 가능성조차 불투명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바에 따르면 <민중대표단>은 민중연대투쟁전선의 형성 문제를 지극히 형식상의 문제로 대체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대선 직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막아내기 위해 "강력한 민중연대 투쟁태세를 구축"하는 것이 주된 목표라고는 하지만 이는 공문구에 불과할 뿐이다. 상층 대표단이 꾸려지고 공동투쟁과제를 선언한다고 해서 공동투쟁의 조건이 즉각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공동투쟁-공동교섭-공동타결이 즉각 단결과 연대의 사상으로 격상되고 마치 현재 민중연대투쟁전선을 강화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으로 인식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오히려 대중들로 하여금 단결과 연대를 지속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들에 대해 진지하게 탐색할 기회를 박탈하고 대중투쟁의 역동성을 희석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상당하다. 예컨대 농민(쌀수입개방 저지)/공무원(공무원노조 인정)/철도(사유화 저지)의 투쟁이 공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개별 요구의 단순합을 넘어서는 수준에서 공통의 전선을 형성하여 해결될 문제지, '민정(民政) 교섭'이라는 형태에 몰두하여 각각의 투쟁을 기계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이다. 설령 무능부패한 정치인들에게 약속을 받아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배 정치권은 철저한 무시전략으로 가거나 애매모호한 립서비스(최근 정기국회에서 통과된 농어가 부채 탕감책이 대표적이다)로 거듭 민중을 기만할 뿐이다. 이미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김대중이 민중에게 선사한 것은 철저한 배신이었음을 지난 5년간 뼈저리게 깨닫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아도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반하는 대중들의 개별적 투쟁이 '자기실리적'-'집단방어적'이라는 혐의로 덧씌워져 왔음에 비춰보았을 때, 대통령선거에 의해 일정하게 규정된 현 정세에서 무능부패한 정치권을 압박하고 청원하는 투쟁 방식의 한계는 더욱 자명하다. 민중운동은 투쟁의 성과를 무능부패한 정치권을 압박하여 행동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치환하는 미망(迷妄)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 오로지 '민중의 해방은 민중의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투쟁 속에서 스스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민중대표단>은 향후 투쟁을 위한 출발점을 구축하는 과정이지, 종착지가 아님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11월 투쟁을 전선 재편의 출발점으로 그렇다면 결국 11월 투쟁은 대중들 스스로가 자신의 요구가 결국은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화해할 수 없는 것임을 인식하고 이를 공동투쟁 과정 속에서 상승,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물론 대중투쟁의 성과를 집약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할 민중운동의 집단적 지도력은 여전히 부족하며, 공동투쟁의 경험과 지역적-대중적 기반은 일천한 것이 현실이다. 자칫 한판 대결의 후과가 돌이킬 수 없는 패배로 이어질 염려마저 존재한다. 그러나 패배를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의 투쟁을 처음부터 한계짓고 적당한 선에서 멈추려한다면 그것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초래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당면한 현안 투쟁이 대선까지만 유효한 것이 절대 아닌 만큼 민중 공동의 행동강령으로 정식화하여, 향후 이를 중심으로 정권과 자본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내야 한다. 많은 오류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의 피에 젖은 '노동자 선언'으로 불붙기 시작한 11월 투쟁은 10일 노동자대회, 13일 농민대회를 남겨둔 상황에서 일대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무엇보다도 고무적인 것은 민중 스스로가 자신이 처한 고통의 원인에 대해 집단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현재 지역적-전국적 차원에서 실질적인 공동투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농 특위를 매개로 한 전국민중연대(준)의 지역적-대중적 기반이 확장되고 있으며, 전국적 차원의 민중연대투쟁조직 구축의 흐름이 차츰 조직되고 있다. 우리는 11월에 전개될 개별 투쟁이 공동의 전선 형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도를 고민해야 한다. 11월 전개될 대중투쟁의 성과를 민중연대투쟁전선의 강화로 수렴하여 향후 보다 반동적인 형태로 편재, 새로 탄생하게될 정권에 맞설 본격적인 태세를 갖추자. 이것이야말로 IMF와 김대중의 등장을 '서 있는 채로' 맞이한 채 눈물의 나날을 보내야 했던 우리 모두가 11월 투쟁현장에서 마주치게될 서로에 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당당한 요구이다.
공투본 무산{{) '공투본의 무산'이라는 표현에 대해 공투본 7차 예비모임이 진행되었고, 후속모임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전국연합, 자통협 등이 참가하여 10월 26일 진행된 7차 예비모임의 결과를 보면, 이들 단체들의 공투본 논의에 임하는 태도가 얼마나 형식적이고, 기만적인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미 한 달여에 걸처 7차례의 모임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공투본의 유의미성을 확인할 뿐, 공투본의 구체적인 향후 계획을 제출하는 단체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 이를 반증한다. 또한, 그간 논의과정에서도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의힘에서 노동해방 실천단의 논의를 통해 제출했던 공동투쟁에 대해서도 형식적인 검토만 이루어졌을 뿐이고, 민중경선방안과 관련해서는 공투본 예비모임 기획소위에서 실질적인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지난 9월 17일 노동자의힘의 제안으로 시작된 '공투본 예비모임'은 6차 예비모임을 끝으로 사실상 무산되었다. 공투본의 무산을 두고 여러 가지 논점의 비판이 혼재된 채로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본디 좌파란 것들이 그렇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며 좌파라는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에 찬 발언들을 쏟아냈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당류의 "민족주의/의회주의 세력과 연대/연합을 주장하더니 결과가 뭐냐"라며 좌파결집론 혹은 사회주의 세력화를 정당화하는 입장을 펼치기도 한다. 또한, "대중투쟁돌파론"을 주장하던 세력들은 "역시 선거투쟁하면 좌파가 분열할 수 밖에 없어. 선거대응 하지 말고 대중투쟁에 집중하는게 옳았어"라며 공투본의 실패가 자신의 정당성을 대변해 주는 양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고, 어떤 이들은 유력한 대선방침으로서 공투본의 유의미성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을 펼치는 이들은 공투본의 무산을 "특정한 정치세력의 제안으로서 공투본의 파산"으로만 한정하여 이해하기 때문에, 2002년 대선에서 공투본의 의미를 사장한 채 자신의 입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만 급급해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투본 무산이라는 사건에는 어느 특정한 정치세력의 제안의 실패로만 제한될 수 없는 남한운동의 현실적 조건이 존재한다고 판단한다. 그 제안자가 누군인가 혹은 정확하게 그 의미를 이해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상관없이2002년 대선에서, 공투본이 가지는 현실 운동지형에서 의미에 대해 각 운동진영이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대선이후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전선의 구축"이라는 민족/민중민주운동의 공동의 과제는 또다시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운동진영은 2002년 대선을 통해 새롭게 정당성을 부여받은 반동화된 지배권력의 공세에 무력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2002년 대선을 눈앞에 둔 현 정세, 운동현실은 어떠한지, 그 속에서 공투본을 제기한 배경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살펴보고자 한다. 그 속에서 우리운동의 일보전진을 가로막고 있는 왜곡된 논점과 운동지형을 평가하려 한다. 또한 90년대 초반 이후 무너진 반파쇼민주주의 전선을 대체할 것으로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이 대중운동 속에서 재구축되어야 하고 정파적, 노선적 차이를 넘어 민족/민중민주운동 전반의 과제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1. 현 정세와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조건 우리는 2002년 대선을 앞둔 현재의 정세를 "민주화운동의 적자를 자처하며 집권한 '개혁세력'의 붕괴 및 이것의 결과가 한나라당/정몽준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대중들의 보수화 경향과 이에 따른 반동적 권력재편"으로 규정했다. 현재 형성된 정세는 지난 10년여 동안의 계급투쟁 결과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독재타도/민주쟁취'의 슬로건 아래 함께 투쟁했던 반파쇼민주주의운동은 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대선을 거치면서 자유민주주의(개혁주의)와 민족/민중민주운동으로 계급적 분화를 겪었다. 민족/민중민주운동은 90년 초반까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기반으로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을 조직하는데 기여했지만, 91년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암묵적, 보편적으로 동의했던 사회주의의 붕괴와 정권의 탄압, 계급투쟁의 패배 속에서 급격한 분화와 쇠락을 경험했다. 이러한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쇠락을 틈타 80년 민주화운동의 적자임을 자처하며, YS/DJ 양대 문민정권이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민족/민중민주운동은 세계/남한자본주의 조건에 대한 분석능력을 상실했으며, 양대 문민정권 등장의 실질적 의미-민주화운동 경력이라는 정치적 명분을 배경으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실행가능성을 제고하는-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채, 통일운동 및 운동노선을 둘러싼 분화와 다수 인사들이 부르주아정당으로 투항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개혁주의) 정권에 포섭{{) 통일운동의 개량화/민화협 건설을 주도했던 상층 인사들, 특히 98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이창복 전 상임의장의 민주당 입당, 노동운동 및 농민운동 상층 인사의 정치권 영입, 소위 NGO로 불리는 자유주의적 시민운동 인사들의 DJ 정권에의 대거 참여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다. }}되어 갔다. 이러한 자유민주주의(개혁주의)의 헤게모니는 경실련, 참여연대로 이어지는 자유주의적 시민운동의 융성, 386과 전문가/지식인을 동원한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공고화되었다. 그리고 노동운동/농민운동 등의 계급대중운동은 이익집단으로 폄하되었다. 그리고,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정치적 보편성은 대중 속에서 새롭게 구축되지 못한채, 해체되는 과정을 겪는다. 특히,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급격한 구조조정을 대세로 만들었다. 더구나 경제위기를 구실로 취임이전부터 비상대권을 거머쥔 DJ 정권의 수평적 정권교체는 민주화와 개혁의 이미지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정당화하였다. 또한, DJ정권은 민주노총으로부터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법을 골격으로하는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유력한 저항세력이었던 노동운동의 예봉을 초기에 꺾을 수 있었다. DJ 정권은 개혁의 이름으로 자유주의적 NGO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민족/민중민주운동을 포섭/교란하는데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DJ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정치적 조건을 활용하여 일시적{{) 대표적으로 사유화(민영화) 정책의 경우, DJ정권 초기 대중적으로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졌고, 대부분의 NGO들은 노동자들의 사유화저지/고용안정 투쟁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붙이며, 공기업 사유화(민영화) 정책을 지지(기껏해야 민영화 방법과 시기를 둘러싼 이견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지난 발전노조 파업 과정에서 보이듯이, 발전/철도산업 사유화(민영화) 반대에 대해 대다수 NGO들이 지지를 표명했으며, 국민 다수의 여론도 사유화(민영화) 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할 수 있다. }}으로 대중을 포섭할 수는 있었지만, 노동대중의 고용/임금/노동조건을 끊임없이 불안정화함으로서 가능한 것이기에 대중적 불만과 저항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세계자본주의 위기심화와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금융개방, 자본시장의 완전개방, 주식시장 중심의 경제구조)은 한국경제의 대외 종속성을 심화(초민족적 금융자본, IMF/WTO 등 세계기구, 신용평가기관에 철저히 종속된)시켰으며, 그 투기적 성격과 부패성이 진승현/이용호 게이트와 DJ 세아들의 금융비리를 통해 대중적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로 개혁세력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급격히 철회되었고, 그 공백을 역설적이게도 한나라당과 정몽준이 잠식하는 퇴행적인 지형이 형성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개혁세력의 붕괴'는 단지 민주당의 실패가 아니라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정치적 보편성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조건과 향후 세계자본주의 위기 하에서 한국사회의 전망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안없음에 대한 대중적 이데올로기가 보수/반동적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 지배세력들이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금융적 재편에 따른 대중의 궁핍화와 불만을 미봉적으로 관리하고, 위기를 지연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지속하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세 하에서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주체적 조건은 어떠한가? 민족/민중민주운동의 객관적 현실은 앞서 밝혔듯이, '개혁세력의 붕괴'라는 한국자본주의의 대안없음/대중들의 보수화 경향에 대해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하고 있음에도 대중적으로 정치적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92년 YS정권 이후 민족민주운동과 민중민주운동은 모두 내적으로 노선적 분화와 정치적 투항, 쇠퇴의 과정을 걸었으며, 공동의 투쟁전선을 형성하지 못해온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21을 통한 공동의 대선투쟁이 실패한 뒤{{) 돌이켜 보건데, 97년 대선에 대한 핵심적인 평가지점은 IMF 사태에 대한 제대로된 투쟁방침을 제출하지 못한 민중운동진영의 무능이다. 현실의 상황에 대한 분석능력을 상실한 민중운동진영 무능을 뼈져리게 자기비판했더라면, 적어도 현실을 설명하거나 개조하지 못하는 구래의 운동관계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폐쇄적인 운동구조를 재생산하는 지금의 상황은 상당히 개선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중운동진영의 주요한 평가가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국민승리 21의 특정 정치노선에 대한 비판으로 제한된 것은 우리 운동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런 이유에서 2002년 공투본 무산과 대선투쟁 평가의 관점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 'IMF 범국민운동본부'(1998년), 민중대회위원회(2000) , 전국민중연대(준)(2001)으로 이어지는 공동투쟁체 건설 흐름이 있었다. 하지만 전국민중연대(준)은 건설된지 2년이 다되도록 본조직 건설을 결의하지 못할 정도로 참가단체 상호간의 정치적 신뢰{{) 2001년 3월 전국민중연대(준)의 출범을 전후한 시기는 전국민중연대(준)의 향후 진로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우자동차 투쟁, '김대중 퇴진'을 둘러싼 논쟁, 김대중정권 퇴진 투쟁본부(최종적으로 '신자유주의구조조정분쇄·민중생존권 쟁취 투쟁본부'로 합의됨) 건설논의 및 활동의 과정에서 '6·15 공동선언에 대한 정세인식의 차이'까지 더해져 상호간의 불신을 확대/재생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과잉된 논점을 형성(물론, 분명한 논점의 차이가 존재)했다는 것은 민주노총의 단병호 위원장의 자진출두 및 민주노총의 사실상의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의 철회에 대해서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을 주장했던 어떤 세력도 제대로된 비판과 계획을 제출하지 못했다는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 형성되지 못한 채, 공동투쟁에 있어 대중적 지도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IMF-DJ정권에 의한 민생파탄, 민주압살로 끊임없이 투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전국민중연대(준)을 통해 이러한 투쟁들이 수렴되고, 민족/민중민주운동의 단결과 역량강화로 귀결되기 보다는 수많은 사안별 투쟁/대책기구을 통해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민족/민중민주운동의 투쟁 슬로건을 보면, 신자유주의 반대투쟁과 반미·반제투쟁으로 수렴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동의 투쟁과제를 공동의 투쟁조직을 통해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 가슴아픈 현실이다. 이러한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상호불신과 분열이라는 조건에서 역설적이게도 하나의 수렴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정치세력이 '(합법)대중정당운동'을 자신의 정치적 전망과 계획으로 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를 통한 집권을 주장하는 이러한 (합법)대중정당 흐름의 심각한 문제는 세계자본주의 위기와 한국사회의 금융적 재편이 초래한 구조적 종속과 국가자율성의 심각한 제약과 현재의 지배세력 조차도 정책결정권을 심각히 박탈당하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이러한 (합법)대중정당운동이 지배계급의 포섭/분할전략에 의한 노동대중의 분화와 대중운동의 분열이라는 객관적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적극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들은 대중운동의 자기방어적 실리주의를 넘어서는 현실의 투쟁계획과 조직전략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반제·반신자유주의라는 공동의 투쟁과제를 진정한 자신의 과제로 설정하지 못한 채, 정당운동을 이러한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구축을 위한 계기로 사고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중정당운동이 전선구축이라는 당면한 과제에 복무하지 못하는 한, 사회주의를 이념으로 표방하던, 혹은 사민주의, 민족민주당으로 좀더 우경화된 집권전략을 설정하던 간에, 이들이 말하는 변혁이란 지배계급 앞에 무력한 공염불이거나, 민중에 대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자본주의 위기라는 조건에서 노동대중의 내적 분화(불균등화)가 가속화되는 현실, 즉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임금수준, 고용불안, 노동3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합법)대중정당은 노동대중의 계급적 단결을 이루고, 노동자/ 농민/여성들의 동맹을 현실화시키는 문제를 회피하고는 부르주아 정치위기를 봉합해주는 역할에 머무르거나 서구 사민주의정당들처럼 '제3의 길'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신자유주의의 집행관이 될 운명에 처할 것이다. 2. 2002년 대선투쟁에서 공투본은 민족/민중민주운동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공투본 제안을 두고 많은 비판들이 있었다. 지난 7월 16일 10개단체 지도부가 합의한 '2002년 대선승리와 범진보진영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범국민추진기구'(이하 '범추')의 재판이고, 민주노동당의 지지부대로 전락할 것임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실제 범추의 제안대상을 보면,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노골적으로 지지했거나, 보조했던 세력뿐만 아니라 반노동자적인 '노동법 개악'에 합의했던 한국노총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도 범추의 제안자인 민주노동당의 범추 추진세력이 생각하는 향후 당의 성격이나 득표에만 목매고 있는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당내 대선후보 선출 후 범진보진영 경선에 참가한다'는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실질적 연대 가능성을 저버리는 민주노동당의 자기 중심적인 방침으로 인해 범추는 실질적으로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범추의 추진목적과 과정이 분명히 문제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나, 공투본 제안을 범추의 재판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치방침 및 전술운용을 판단함에 있어 지나치게 운동세력의 역관계만을 고려하는 편향에서 비롯된다고 판단한다. 어차피 남한사회운동에서 어떠한 투쟁기구를 꾸리던 간에 전국민중연대(준)에 참여한 단체와 조직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동일한 단체와 조직이 참가하더라도 어떠한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모였는가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다르게 결과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개혁세력의 붕괴'라는 정세적 조건, 이는 이후 대안세력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고, 이 틈을 한나라당, 정몽준 등이 보수/퇴행적 논점으로 대중 이데올로기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민중민주운동은 '반제·반신자유주의 ' 전선구축이라는 목표 하에 하나의 대안세력으로 자신을 구성해낼 절대적인 필요성이 존재한다. 이것이 공투본/민중경선 제안의 첫 번째 이유이다. 민족민주운동이나 민중민주운동이나 실상 그 투쟁요구를 보면, 비정규직철폐, 사유화 반대, 교육/의료의 공공성 강화, 미국반대/전쟁반대 등 대부분 주장의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 즉, 선거라는 공간에서 대중들이 보기에는 별반 차별화된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중들이 사회주의가 이미 실패한 상황에서 뜬금없이 사회주의를 외친다고 환호할 리 만무할 것이며, 따라서 이번 대선투쟁에서 '반제·반신자유주의'라는 쟁점을 통해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잊혀진 시민권을 확보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사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공투본의 후보이면 되는 것이지, 그 법적 양식이 민주노동당이냐 사회당이냐는 부차적일 수 밖에 없다. 다만, 민중경선이 중요하게 강조된 이유는, 첫째로 노동자, 농민, 민중들이 자신의 투쟁요구를 제출하고, 자신의 후보를 선출했을 때 공투본의 후보로서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둘째로 서로 다른 정치세력과 견해가 존재하기 때문에 각 정치세력이 공히 대중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할 기회를 가져야 하고 그 속에서 대중적인 의사결정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상호불신과 분열이라는 현실에서 공투본은 전국민중연대(준)이 현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민족/민중민주운동의 단결을 위한 유력한 공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공투본/민중경선을 제안한 두 번째 이유이다. 공투본이 2003년 새롭게 집권한 반동적 권력에 맞서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전선을 구축하는데, 유력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많은 동지들이 지적하듯이 공투본이 건설된다고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이 공투본을 실질적인 투쟁기구로 사고하리라고 판단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투본/민중경선에 동의했던 노동해방 실천단의 경우, 적극적으로 11월, 12월 투쟁을 조직하는데 기여하려했다. 공투본은 하반기 예정된 노동자, 농민 투쟁의 폭발 가능성은 열려져 있는 것이기에 이러한 투쟁의 성과를 어디로 수렴시킬 것인가, 그를 통해 2003년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상징적 구심을 어디로부터 출발시킬 것인가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민중경선이 중요한 이유는 민중경선이 없는 공투본은 사실상 전국민중연대(준)의 노동특위를 중심으로 하반기 투쟁계획이 잡혀있는 조건에서 충분한 명분을 확보하기 힘든 현실적 조건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재 민족/민중민주운동 내에 형성되어 있는 민주노동당 지지/반대, 민주노동당(사민주의)/사회당(사회주의)이라는 지극히 왜곡된 논점을 바로잡을 필요성이 존재했다. 이것이 공투본/민중경선을 제안한 세 번째 이유이다. 다수 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수준, 고용불안, 노동3권마저도 박탈당한 현실, 한칠레자유무역협정이나 WTO 쌀개방 계획에서 보이듯이 농업포기로 내몰리는 농민들의 현실에서, 대다수는 정치적 불신으로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규직 혹은 상층 노동자들, 그리고 일부 농민들의 경우는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당장 삶의 고통으로 인해 민주노동당에 조차 관심이 없는데, 여기에다 사민주의는 개량이고 사회주의 대통령 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가. 이러한 현실에서 공투본/민중경선은 자신의 후보를 선출하고, 자신의 요구를 가지고 공동투쟁하는 과정을 통해 정치적 불신을 깨고, 보수 정치로 흡수되는 것을 막는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또한 민중경선의 과정이 대중에게 민주노동당을 찍을 건지 말건지, 민주노동당/사회당 어느 당을 찍어야할지 왜곡된 선택을 강요하는 운동지형을 바꾸는데,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민중경선의 과정이 대중을 (합법)대중정당에 대한 수동적인 지지자/유권자로만 사고하는 현실 운동경향에 맞서 노동자, 민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워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것이라 판단했다. 또한 이러한 대중에게 열린 공간을 통해, 현실 민생파탄의 원인과 지배세력의 무능에 대해서 비판하고, 노동자, 민중의 세상을 열기 위한 각 정치세력들의 입장이 논쟁되는 공간을 열고자 했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문제도, 민주노동당의 개량적인 입장도 이러한 민중경선의 과정에서 대중적으로 비판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제안 취지에도 불구하고, 9월 17일 제안되고 10월 21일 발족할 계획이었던 공투본은 사실 "공동투쟁-민중경선"이라는 원칙을 제외하고 나면 빈 껍데기와 같은 조직인 것이 사실이다. 2001년 상설공투체로 발족한 전국민중연대(준) 내에서 본조직 건설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것이 객관적인 민족/민중민주운동의 현실이 아니던가?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하반기 투쟁의 대강은 전국민중연대(준) 노동특위를 중심으로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에 의해 예정되어 있었다. 공투본은 몇몇 단체가 모여, 존재하지 않는 투쟁을 일구는 것이 아닌 바에야 현재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조건상 정치적 구심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전국민중연대(준)과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상징적 구심으로 자리잡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물론, 이를 위해 민중경선은 비껴갈 수 없는 핵심적 요소였다고 할 수 있다. 3/ "후보의 등록형식"이라는 쟁점은 공투본의 제안취지를 왜곡하는 쟁점이다. 이러한 공투본-민중경선의 의의에도 불구하고, 6차 예비모임에서 노동자의 힘이 '후보의 법적 등록형식'을 공투본 건설의 전제조건으로 거듭 주장하면서 공투본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우리가 극복하려고 했던 왜곡된 운동구도를 더욱 악화된 형태로 고착화-재생산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5차 모임에 이르기까지 공투본 예비모임에 참가했던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을 비롯한 나머지 단체들이 실질적으로 공투본 성사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대해서는 모두가 원칙적인 동의와 참가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심지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초기 사회당과의 후보단일화에 모든 관심이 있었고, 사회당의 불참 이후에도 실질적인 공동투쟁과 민중경선을 추진하는 것보다 득표전략에 손해될 것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는 점 또한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사회진보연대와 노동자의 힘이 노동해방 실천단의 논의를 거쳐 제출한 공동투쟁계획은 형식적인 검토만 이루어졌을 뿐이며, 구체적인 민중경선의 방안은 공투본 예비모임 기획소위에서 논의조차 진행하지 않은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따라서, 아무런 계획도 없이, 혹은 당세의 확장을 위해서 전농의 참여만을 기다리는 7차 예비모임 참가단체들 또한 공투본 무산에 대한 책임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민주노총에서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지지'라는 기존의 정치방침이 대선공투본 경선 시 조합원들의 자유투표와 선거운동의 자유를 제약해서는 안되며, 대선공투본 후보로 민중진영의 정치적 단결이 이루어질 경우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지지'라는 기존의 방침을 대선공투본(후보)에 대한 지지로 해석한다"는 입장을 제시했고, 민주노동당 또한 기존의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가 결정한다는 패권적인 입장을 철회하고, "대선공투본 후보로 추대하며, 후보의 법적 등록 방식은 등록과 관련한 공투본 내 대중적 논의와 후보선출 후 공투본 내 민주적 의사수렴 과정을 거쳐 결정한다"는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에 동의를 표명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힘의 태도는 대중적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한다. 더구나 노동자의 힘의 이러한 행보는 공투본-민중경선에 동의하는 민중민주운동이 함께 건설했던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활동의 전제였던, 중요한 정치방침의 경우 각 조직의 결정에 우선하여 노동해방 실천단 총회{{) 이에 대한 평가는 10월 26일 개최된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총회에 제출된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이현대, 임필수, 이상훈, 박준도 4인 명의로 제출된 "공투본 무산에 대한 평가(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평가(안)에서는 평가서와 함께 '1)후보의 법적 등록형식 문제는 공투본 결성의 전제조건일 수 없었다 2)공투본 후보 및 민중경선 문제 등 변화된 조건에 따른 주요정치방침은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총회에서 결정될 사안이었음을 확인하고, 6차 공투본 예비모임 과정에서 노동자의힘에 의해 이 총회의 권한이 침해되었음을 확인한다'를 평가안으로 채택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2)에 대해서는 총회 참석자들이 대체로 공감을 표시하였으나, 1)과 관련하여 이견이 존재했고, 표결처리 요구를 하였으나 표결처리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이 있어 표결을 진행하지 못했다.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은 총회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통감하고 해산을 결정했다. 정확히는 사회자가 노동해방 실천단 해산에 대해 반대의사를 물었으나, 반대한 사람이 없었다. }}에서 결정한다는 대중적 약속을 사실상 파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후보의 법적 등록형식"이 중심적인 쟁점이 된 것은 왜 문제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이 일순간 모든 쟁점을 민주노동당 지지/반대, 민주노총 정치방침안 지지/반대라는 틀로 폭력적으로 정리시키면서, 대선방침의 본래 취지였던 기존의 민족/민중민주운동의 분열과 배타적 대립을 극복하고, '반제·반신자유주의'라는 정치적 과제를 중심으로 한 운동지형의 재구축의 발판을 삼고자 했던 공투본의 제안 의도 자체를 왜곡했다는 데 있다. 애초 공투본을 제기한 전제가 이러한 구도를 넘어서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구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공투본을 출범할 수 없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노동자의 힘 중앙집행위(2002/10/30) 명의로 제출된 '공투본 제안 철회와 노동해방 대선실천단 해산에 대한 노동자의 힘의 입장'을 보면, 실제로 노동자의 힘이 공투본을 제안한 취지 자체를 무색하게 하고,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의 공투본 제안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 장문의 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힘 주장의 요지는, '민주노동당의 선거주의와 민주노총 정치방침 밀월관계가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왜곡하고, 현장 노동자들을 선거주의 틀안에 가두고 있다. 따라서, 노동해방 실천단을 통해서 현장을 조직하고, 공투본의 상층협상을 통해 압박해서 민주노총 정치방침을 바꾸고, 민주노총-민주노동당의 밀월관계를 해체하려 했다. 그러나, 사회당의 불참으로 큰 장애가 발생했고, 노동해방 실천단을 통한 현장조직화도 여의치 않아 실패했다. 따라서 노동자의 힘이 애초 주요하게 판단했던 민주노동당의 탈계급적이고 계급연합적인 성격과 선거주의를 문제삼으며 퇴각하기로 하였다. 공투본을 제안하고 책임지지 못한 것은 노동자의 힘의 책임임을 통감하나, 결국 계급운동진영(좌파)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다'로 압축할 수 있겠다. 이 입장을 보면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상층협상과 압박을 통해 이미 운동 내부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노동운동의 자기방어적 실리주의, 이를 기반으로하는 민주노동당의 선거주의를 바꿀 수 있다는 노동자의 힘의 발상이고, 이것이 공투본 제안의 핵심적인 요소임을 스스로 털어놓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힘이 입장을 통해 밝히고 있듯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밀월관계는 선거주의를 넘어서는 노동대중의 계급적 단결과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강화 속에서만 극복될 수 있다. 불과 1개월여의 공투본 건설과정에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것인데, 참으로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민주노총의 정치방침과 관련한 노동자의 힘의 태도이다. 판단컨데,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 노동운동의 현실, 즉 노동계급 내부의 불균등화와 노동운동의 자기방어적 실리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실질적인 정치방침을 제출하지 못하고, 그것을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지지방침을 정치적 자유를 제약하는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목표로 하는 노동자의 힘을 민주노동당/사회당에 대당하는 정당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잔존하기 때문이라 판단한다. 관건적인 것은 민주노총 정치방침이 아니라 노조운동-정당운동을 개입/개조할 수 있는 주체를 형성하는 운동계획의 문제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동자의 힘은 공투본을 퇴각한 핵심적인 이유로 대부분이 노동조합 혹은 지역본부의 활동가인 조직원들이 실질적으로 공투본/노동해방 대선실천단 계획을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조직화하지 않음으로 인해, 현장이 조직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노동자의 힘이 애초에 공투본을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구축을 위한 발판이자 자기혁신의 계기로 사고하였다면, 공투본 제안의 취지자체가 우리의 힘이 미약했기에 제안된 것이고, 공투본-민중경선을 통해서 우리의 힘을 키우자는 문제의식이었던 점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힘이 없어서 공투본을 깨야 했다는 식의 평가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초기부터 노동자의 힘 내부에 존재했던 '대중투쟁돌파론'을 내세운 현장과 지역의 동지들이 실질적인 투쟁계획도 없이,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에 편승할 뿐임을 직시하고 있었다면, 더디더라도 일부지역에서 지역별 공동투쟁 나아가 공동의 선거투쟁, 노동해방 실천단 구성의 의지들이 형성되고 있음을 주목했더라면 그러한 식의 결정은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따라서 현장 세력이 이번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를 '비관'적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훨씬 더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왜냐 하면 이것은 현재 민주노동당-민주노총의 밀월관계가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에 의해 얼마나 강하게 '계급적'으로 부정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라는 노동자의힘의 평가는 노동해방 실천단 건설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당황스럽게 한다.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은 현장의 정치적 무관심을 극복하고, 구래의 '대중투쟁돌파론'이라는 대중의 탈정치를 넘어서서, 공투본-민중경선이라는 계기를 통해 노동자, 민중을 실질적인 정치적 주체로 세우고,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 구축의 계기를 확보하기 위해 건설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건설된 노동해방 실천단에 현장세력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을 비관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견해로 판단컨데, 애초에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이건 공투본이건 제대로 할 생각이 있었는지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 4. 2003년 '반제·반신자유주의' 전선구축은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공투본-민중경선은 사실상 무산되었으나, 공투본의 제안을 통해 밝혔던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의 구축이라는 과제는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있다. 공투본 무산의 책임을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으로 제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진보연대 또한 6차 예비모임에서 보인 정치적 태도에 대해 냉철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이에 책임지는 우리의 모습은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의 해소였다. 우리가 노동해방 대선실천단의 해소를 주장했던 핵심적인 이유는, 이미 '후보의 등록형식'이 쟁점이 되어 공투본이 무산된 상황에서, 공투본을 통해 넘어서고자 했던 민주노동당 반대, 민주노총 정치방침 반대라는 정체성으로 노동해방 실천단이 상징화되는 것이 공투본-민중경선-노동해방 실천단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했던 바를 왜곡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투본-민중경선-노동해방 실천단의 취지는 민주노동당 반대, 민주노총 정치방침 변경으로 축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민족/민중민주운동의 반목과 불신을 넘어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전선을 구축하고자 했던 애초의 취지를 다시금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노동해방 실천단의 이름으로 (노동)대중들을 헌신적으로 조직하고 있는 지역, 학생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고, 많은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가 노동해방 실천단 총회에서 실천단의 해산을 제안할 수 밖에 없었던 진실은 여기에 있다. 공투본의 무산으로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상호간의 불신과 분열을 넘어서고자 했던 유력한 계기가 무산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하반기 전국민중연대(준)의 민중연대특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30만 농민항쟁과 노동자들의 투쟁을 함께 진행하면서, 2003년 반동권력의 집권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현재 전국민중연대(준)의 내적 한계를 넘어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이번 경험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통해 자기혁신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위기와 지배계급의 무능에 의해 고통받는 노동자, 민중들의 해방된 세상을 여는 것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기본적 기능은 노동대중(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분파)의 계급적 통일을 저지하는 기능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현존하는 국가 및 역사적 형태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만, 계급적 통일을 가로막는 장애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실천을 통해서만 노동대중(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분파)의 계급적 통일을 이루고, 계급동맹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여의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지속적인 분화와 쇠퇴의 과정은 변화된 현실조건을 정확히 분석하지 못하는 무능의 과정이었고, 대중적 운동과 논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구래의 운동관계로부터 배타적인 자신의 정체성(좌파, 사회주의...)을 선언하는 왜곡된 운동지형을 낳고 있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지배계급의 무능이라는 조건에서 지배세력의 포섭/분할 전략에 맞서 노동대중의 계급적 단결을 이루고,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전선을 구축하여 민족/민중민주운동이 새롭게 정치적 보편성을 획득할 것인가 아니면, 각 정치세력의 자폐적인 폐쇄회로 속에서 갇혀 민족/민중민주운동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을 갈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정세적 과제를 보지 못한 채 운동진영 내의 세력관계가 절대시 되고, 배타적인 운동관계를 형성할 때, 미소짓는 것은 지배계급이고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단결은 그만큼 지체될 것이다. '반제·반신자유주의'라는 현실의 공동 투쟁과제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현실인식과 운동노선을 둘러싼 대중적인 논쟁을 새롭게 형성하는 것만이 민족/민중민주운동에게 미래를 보증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존재하는 상설공투체로서 전국민중연대(준)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명확히 내려야 한다. 반제·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 구축의 조직적 거점으로 전국민중연대(준)가 기능할 수 있는지, 혹은 그러하기 위해서 어떠한 조건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모든 정치세력이 진지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전국민중연대(준)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동지들 또한 공히 적용되는 것이다. 참가해서 함께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실제로 함께 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기존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않던 세력들 또한 전국민중연대(준)을 통해 공동의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제기할 필요가 있고, 전국민중연대(준)이 공동의 투쟁 거점으로 기능할 수 없다면, 그 근거와 책임있는 제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 대한 평가는 진보정당의 득표율에 대한 평가로 한계지어질 수 없다. 짧게는 공투본의 무산에 대한 공동의 책임있는 평가가 필요하고, 길게는 지난 10년여의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있어야 될 것이다. 새로운 출발은 언제나 과거의 연장이 아니라 역사적 단절의 과정이 필요하다. 공투본의 무산이라는 2002년의 경험이 민족/민중민주운동의 자기비판과 혁신, 그리고 단결과 연대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2003년 반동권력에 맞선 노동자, 민중의 투쟁에 대한 책임있는 평가의 시기로 2002년 하반기가 위치 지어져야 한다. PSSP
[아래 논의의 전제가 되는 것은 [사회화와 노동] 153호이다. 이 글을 꼭 참고해 주길 바란다.] 90년대 이후 전선이 해체되었음을 부정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심지어 상반되기까지 한 여러 입장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전선 개념에 대한 이해가 차별적이라는 점을 주되게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는 전선의 문제를 무엇보다 (정치적) 보편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종류의 보편성은 두 가지 속성을 갖는다. 우선 누구도 그것을 함부로 부정할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다. 적어도 근대 이후,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스스로를 민주주의에 대한 반대자로 공공연히 내세울 수 없었다. 이 점에서 보편성은 누구도 그것 외부로 함부로 나갈 수 없는 하나의 '경계'를 상징한다. 그것은 갈등을 없애지는 않지만 갈등이 해결될 수 있는 보다 유리한 조건을 형성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어떤 '모호성'을 갖는다. 그것을 함부로 부정할 순 없지만 당연히 동일한 입장이나 해석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적인 분화 혹은 차별화가 진행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곧 전장이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는 즉각 자유민주주의와 민중민주주의로 나뉘고, 이들은 각각 적대적인 계급적 이해에 복무한다. 사실 이같은 모호성을 갖지 않는다면 보편성은 보편성일 수 없을 것이다. 이 양자가 결합할 때에만 보편성이 존재할 수 있다. 만일 전자 없이 후자만 있다면 그것은 무원칙한 '다원주의'가 될 것이고, 후자 없이 전자만 있다면 폭력적인 '전체주의'가 될 것이다. 이상의 맥락은 전선을 사고하는 데도 정확히 동일하게 적용된다. 전선은 다원주의도 전체주의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상의 두 가지 극단을 지양하면서, 차별적인 입장들과 투쟁들이 조정될 수 있는 조건을 이룬다. 이렇게 볼 때 전선이란, 특히 피지배계급의 입장에서, 하나의 '정치적 거점'이다. 그것은 지배계급이 함부로 부정할 수 없는 정당성을 피지배계급에게 부여함과 동시에, 지배계급과 구별되는(심지어 적대적인) 피지배계급의 입장과 투쟁이 숨쉴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따라서 지배계급은 기회가 될 때마다 그것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 노력하며, 피지배계급은 그것을 '영속적 민주화'의 거점으로 활용한다. 그런데 현 정세는 전선의 해체, 혹은 보편성의 해체로 특징지어진다. 여기에는 기존의 경계를 넘어서는 폭력 및 불평등의 출현이라는 정황이 있다. 그 상징적 사례로 '유사-카스트'의 출현을 들 수 있다. "잉여권리"를 누리면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부유한 국가의 부유한 사람들, 착취가능한 인구로 분류되어 간신히 자신의 재생산을 유지해 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착취불가능한 인구로 분류되어 이런저런 방식으로 소비되고 마침내 쓰레기통에 내버려지는 "일회용 인간들"의 카스트 말이다.{{) 최원,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화], {사회진보연대} 2002년 11월호. }} 하지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같은 모순이 현실적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 즉 '준-자연상태'로 표상된다는 점이다. 부르주아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TINA). 그들은 현 정세를 보편성을 '포기'하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보편성의 운명은 그 어느 때보다 피지배계급의 손에 맡겨지게 된다. 이에 대해서 두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이를 계기로 지배계급으로부터 보편성을 결정적으로 탈환하여, 보다 민주화된 방식으로 보편성을 개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관건은 대중들과 밀착하여 기존의 보편성 속에서는 '들리지 않던' 그/녀들의 발언을 적극적으로 영유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배계급과 함께 보편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정치 자체의 포기로 이어지고, 다른 편으로 (이전보다 훨씬 배타화된) '정체성의 정치' 내지 명확한 대상 없는 증오에 기반한 '원한의 정치'로 이어진다. 이것이 지배계급의 권력 재생산을 사실상 돕는 것으로 이용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안타깝게도 현재 피지배계급이 보이는 대부분의 반응은 후자다. 즉 전선의 해체가 곧 새로운 기회로 작용하기보다는, 피지배계급의 정치마저 위기에 빠뜨리고 이것이 지배계급의 욕된 목숨을 부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명확한 평가와 극복 없이, 전선을 재건하자는 선언만을 가지고서, 전선을 재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사회주의 정치연합' 구상을 평가하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소위 '사회주의 정치연합' 구상에 대한 비판 1 -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에 대한 몰이해를 중심으로 공투본 논의를 내외부에서 흔들어 댔고, 그것의 무산을 기화로 자신들의 입장이 정당했음을 주장하는 세력이 있다. 대표적인 세력으로는 사회당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사회화와 노동] 153호를 통해서 이들을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그 글에서 밝힌 바 있듯, 문제는 사회당이라는 특정한 정치세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운동의 상태와 연관되어 있다. 이런 경향을 보이는 제 세력은 현재 '사회주의 정치연합' 준비모임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들이 최근 발표한 "신자유주의 분쇄 노동자민중 전선강화를 위한 전국투쟁연대" 제안서의 면면에는, 소위 '좌파' 이외의 세력 및 이들과의 연대 자체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이 흐르고 있다. 현재 투쟁연대 및 사회주의 정치연합(준)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노동자 민중회의의 성명은 상징적이다: "특히 노동자의 힘과 사회진보연대 등의 통칭 좌파로 분류되는 이들 집단의 사고방식은 대립세력과의 배타적 연대를 통해 자신들의 흐름을 확대재생산하겠다는 기이한 수세적 패권주의에 다름 아니다. 보다 더 거칠게 비유하자면, 마치 남북이 배타적으로 자기 체제를 유지하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분단구조의 활용 전술과 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사고 방식이 틀려먹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견해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민족민주운동 내지 개량주의 운동의 상태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위기란 보편적이고, 그들에게도 관통하고 있다. 이는 당장의 상태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양호하냐 와 별개로, 이전의 방식 내지는 그들 스스로 표방하는 바처럼 운동을 지속할 수 없고, 즉 기존의 노선을 가지고서는 자신들이 조직한 대중들과도 강력하게 결합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그 운동들의 균열을 보다 확장시키고, 따라서 그 운동들이 재편되지 않을 수 없게 강제하는 대안적인 노선이 없기 때문에 그럭저럭 갈등을 봉합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당면 과제로서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 구축을 말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즉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 구축을 통해 그 운동의 균열을 확대시키고, 따라서 새로운 운동 지형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전제에는 현재 어떤 세력도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판단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를 지연하고 관리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전략이자 이데올로기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일반적 위기'를 하나의 전제로 명확히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 위기가 도래한 지금, 현 체제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전향적인 대안은 신자유주의다. 부르주아가 말하는 "대안은 없다!"는 구호에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이렇듯 가장 전향적인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유례없는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민중들의 '억압할 수 없는 최저한도'를 수시로 침해하지 않는 한 욕된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지배계급 스스로 현재 위기의 깊이와 강도를 알기 때문에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고, 이는 그들을 더욱 난폭하게 만든다. 누군가가 말했던 것처럼, 상처입은 이리가 더 사나운 법이다. 이로 인해 민중들은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끊임없이 내몰리고 동시에 야만적인 폭력에 노출된다. 이때 그들의 요구는 운동의 전성기에 비해 아주 소박한, 주로 생존에 관한 기본적인 요구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사회주의가 아니라 말이다). 이는 아마도 자본주의의 물질적 팽창기에는 어렵지 않게 수용될 수 있었을지 모르나, 현재의 체제는 그것을 감당할 만한 여력을 대폭 상실하였다. 체제가 유지되는 한 '개량의 물적 토대'가 완전히 소멸되는 일은 없을 것이나, 그것이 심각하게 취약해진 것은 객관적 현실이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어쨌든 운동을 하는 세력이라면 누구도 반신자유주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억압할 수 없는 최저한도'를 수시로 침해당하는 대중들로부터 객관적 압박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앞서 말했듯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와 내재적으로 연관되는 것이라면, 반신자유주의 투쟁은 결국 '체제의 모순을 어떻게 전화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킬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는 최소한 지난 10년 동안 완전히 억압된 문제로, 아무도 그에 대한 확정적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어쨌든 이 문제를 회피할 수는 없고, 따라서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과정에서 이 문제는 점점 더 전면에 등장할 수 밖에 없다. 이는 기존의 운동 내부에 객관적 균열을 만들 수 밖에 없고, 심지어 실천적으로 기존의 입장을 배반하는 상황으로까지 밀어 넣게 될 것이다. 이런 객관적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을 광범위하게 구축하는 가운데, 그것에 가장 적합하게 대응하기 위한 쟁점으로 '체제의 지양' 혹은 '이행'의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이다. 이상의 견해는 '사회주의 정치연합'을 주장하는 이들과 극단적으로 대립한다. 이들은 '반자본주의' 내지 소위 '사회주의' 기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가운데,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과 다른 실천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사회당은 '사회주의 대통령 후보로 대선독자 돌파'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 정치연합으로 가기 위한 경로로 좌파 공투체로서 투쟁연대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는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의 구축에 근본적인 장애물로 작용하며, 따라서 우리 모두가 공히 제기하고 싶어하는 이행의 문제를 광범위하게 전면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축소한다. 요컨대 사회주의 정치연합의 가장 큰 문제는 전선 형성이 자신들의 입장(그것 자체가 적합한가와는 전혀 별개로)을 제기하는 데 호조건이 된다는 점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이해력'의 부재로 비판할 순 없다. 오히려 그들이 갖고 있는 어떤 문제틀이 적합한 인식을 제약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는 그 문제틀이 '당의 유령'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해 '전선의 외부에서 당을 구성하려는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공투본 무산의 와중에서 무대를 지휘했던 '부재하는' 배우였다. 소위 '사회주의 정치연합' 구상에 대한 비판 2 - 전선 외부에서 당을 구축하려는 일체의 시도에 대해서 공투본을 반대하던 '사회주의 정치연합'의 논거는 의외로 간단하다. 즉 공투본의 성과가 결국 (민주노동)당으로 수렴될 것이며, 이는 곧 모종의 (좌파정)당 건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투본의 성과가 당으로 수렴되기보다, 오히려 당을 상대화하는 전선 형성으로 수렴될 것이라고 보았다. 더욱이 그러한 전선 형성이 당 형성에 저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덧붙여야 한다. 그것은 오히려 그 전선을 가장 올바르게 이끌어가기 위한 당을 형성해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즉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의 구축 및 그것을 급진화할 수 있는 분파의 자격으로서 '당'의 구성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사회당은 일찍이 전선의 외부에서 좌파의 독자 정당을 구축할 것을 주장해 왔고, 그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었다. 그 핵심을 간추리자면, 전선의 외부에서 당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불가피하게 '정체성의 정치' 내지 심지어 '원한의 정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사회당이 취하는 얼마간 극단적인 행보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반정립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설명될 수 없다. 전선의 내부에서 누가 더 전선에 올바르게 복무할 수 있을 것인가 의 논쟁을 통해 차별성을 획득하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결국 나타나는 것은 실용주의와 근거없는 선명성의 대당이고, 이는 양자 모두에게 불행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노동자 민중회의에서는 평의회-계급정당 동시구축을 제기하면서, 사회당에 대해서 흔히 쏟아지는 '의회주의'라는 비판을 우회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당은 그들이 평의회 운동을 전혀 몰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할 뿐이다. 그들은 스스로 주장하는 것과 달리 평의회를 '조직'의 문제로 협소화시키면서, 그것이 기존의 운동에 대해 제기하는 발본적인 쟁점을 무화시킨다. 역사적으로 볼 때 평의회 운동은 항상 당-노조의 이분법에서 결정적으로 탈출함과 동시에, '이행'이라는 쟁점을 제기함으로써 양자를 공히 개조하려 노력해 왔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시에는 기존의 당-노조를 '내파'시킴으로써 그것들을 결정적으로 무력화시키고 새로운 운동의 조건을 창출하였다. 결코 지금처럼 '외재적'으로 대당하는 또다른 '계급정당'(혹은 '혁명적 노조')을 그 자체로 건설하는 방식을 취하진 않았던 것이다. 노동자 민중회의가 제기하는 것은 실상 혁명/개량 혹은 최대강령/최소강령의 이분법에 지나지 않는다. 즉 혁명의 문제는 평의회가 담당하는 가운데, '일반민주주의' 투쟁을 위한 거점을 확보함으로써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확장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누차 지적했듯, 현재의 과제는 객관적으로 위기에 빠진 기존의 운동지형 전반을 재편하는 것이지, 기존의 판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그 안에서 다수파가 될 수 있는 전술을 수립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 이러한 강박의 배후에는 현실의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과대평가가 있다. 그것은 이전 식의 전위당도 아니고,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대중정당'이다. 이는 현재 대중들의 상태가 아주 직접적으로 반영된다는 의미인데, 단적으로 말하자면 반동을 용납할 수는 없지만, 이념의 해체 상황에서 '진보'라는 모호한 기치를 붙잡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그 내부에 균열이 아주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상황이 그렇다면 우리의 중심 고민은 그/녀들을 어떻게 재조직할 것인가 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을 구축하고 그 안에 당을 포함해 내는 가운데, 이행이라는 쟁점을 전면화시켜야 한다. 이때 계급정당이 구축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현재의 진보정당 운동과 대당하는 것이 아닌 전혀 종별적인 과정일 것이다. 이때 평의회는 유력한 화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럴려면 평의회는 조직의 문제로 협소화되지 않아야 한다(평의회-계급정당 동시구축론은 정확히 반대이다). 그것은 이행의 이념을 집약하는 상징으로, 그에 입각해서 운동 전반을 재조직하는 표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전선을 구축하는 가운데, 이 내부에서의 사상투쟁을 통해 문제의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사회주의 정치연합은 평의회 사상의 무덤이다. 요컨대 문제는 전선과 당(다른 맥락이지만 평의회)을 배타적으로 대립시키는 경향이다. 전선 구축 혹은 보편성 형성의 문제설정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당이든 평의회든 그 정당성을 얻을 수 없고, 결국 '정체성의 정치'로 빠져들 뿐이다. 우리는 그 가장 비극적인 사례를, 우리와 함께 공투본을 구성했던 노힘에게서 발견한다. 공투본 무산 과정과 그 이후 나왔던 노힘의 입장을 통해 우리는, 결국 그들이 '전선'을 '(노동계급정)당'의 건설이라는 목표에 '종속'시켰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당이라는 문제설정에 어떤 진실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방식은 오직 전선 형성의 과정에서 스스로의 입장의 정당함을 대중적으로 증명하는 것에 의해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즉 전선 수립의 목표가 일차적이며 노동계급 정당의 건설은 그 과정에서만 획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힘은 전선형성의 유력한 계기로서 대선전술을, 오직 현장에서의 세 확장 및 (노동계급정)당 건설의 계기로만 사고했다. 그들이 공투본 논의에서 철수한 것은 거기에 어떤 미사여구를 붙인다 하더라도, 결국 전선과 대립적으로 여겨진 자기 당의 이해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선과 대립되는 당이란, 말의 강한 의미에서 '종파'가 아닌가? 조금 완화해서 말하자면, 전선 구축에 복무하지 못하는 당이 도대체 어떻게 노동자계급의 당일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무수히 많고, 전선 개념과 당 개념의 지속적 혼란은 그 '한' 측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분명히 한 '측면'이었고, 따라서 그것을 올바르게 해결하지 않는 한 그것은 어느 때 다시 유령처럼 출몰하여 계급투쟁과 대중운동의 진전을 가로막을지 모른다. 우리가 공투본 무산을 평가하고, 그것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사회주의 정치연합' 구상을 비판한 것은 이 때문이다. 공투본은 무산되었고 그것은 향후의 대중운동에 심각한 제약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다음 번에 또 제약이 되지 않게 하는 것 뿐이다. 이것을 눈 앞의 투쟁이 시급하다는 말로 억압하려 들지 말자. 도대체 앞으로의 투쟁에 개입하는 것을 이 모양으로 만든 것이 무엇이었단 말인가!
지난 27일, 남미 최대 국가 브라질에서 최초로 선거를 통한 좌파정당이 집권하면서 "노동자 대통령"이 탄생했다. "룰라"라 불리는 노동자당(PT)의 루이스 이냐시오 다 실바가 8천3백 만 표 중 61.5%를 얻어 집권당 사회민주당(PSDB)의 조제 세하 후보를 누르고 기록적인 압승을 거둔 것이다. 룰라는 지난 6일에 실시된 1차 투표에서 3천9백만 표(46%), 세하는 1천9백만 표(23%), 사회당(PSB) 소속 리우데자네이루 주지사 안토니 가로티뉴는 17%, 그리고 민중사회당(PPS)의 시루 고메스는 12%를 얻어 결선투표는 룰라와 세하 간 경쟁이었다. 1차 투표 결과가 나오자 좌파의 당선을 우려하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압박으로 주가폭락과 채권가격 하락 그리고 환율급등 등 룰라에게 여러 가지 악재가 작용했었다. 그러나, 룰라가 긴축 재정, 인플레이션 억제, 외채 상환 등을 다시 천명하는 한편, 고메스와 가로티뉴, 그리고 브라질 산업자본가들을 비롯해 정·재·학계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얻어내면서 결선투표에서 무난하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지난 8년 동안 집권했던 페르난도 카르도수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패배와 이에 따른 우파의 분열, 신자유주의에 대한 브라질 민중들의 환멸 그리고 초국적 금융자본을 달래면서 분열된 우파를 포섭한 룰라의 전략이 성공한 결과라 평가할 수 있다. 카르도수의 신자유주의 정책, 외채의 악순환과 브라질 경제의 파탄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브라질 대통령직을 역임한 "맑스주의" 사회학자 카르도수는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93년 중반에 재무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브라질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제하기 시작했다. 1994년 초, 브래디플랜(Brady Plan)을 통해 브라질은 IMF와 국제채권단으로부터 국가예산을 외채 상환으로 유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외채 상환 연기를 협상해냈다. 카르도수는 이런 새로운 예산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고, 사회비상기금(Social Emergency Fund)을 조성했다. 물론 이 사회비상기금은 정부의 예산삭감액으로 충당되는 것으로, 이는 곧 사회보장정책의 대대적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의 예산과 정부 조직이 국제채권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직접적인 감독을 받게 되었으며,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종속되었다는 면에서 중대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미셸 초스도프스키, [빈곤의 세계화], 당대 }} 재무장관으로서의 "성과"에 힘입어 카르도수는 1994년 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그 때부터 IMF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브라질 경제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기 시작했다. 그는 "헤알 계획(Plano Real)"이라는 일련의 정책을 도입하는 데, 이는 헤알이라는 새로운 화폐단위를 도입하고 달러에 고정시켜 5,000%나 되던 인플레를 안정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초기 얼마 동안은 인플레 억제에 성공해 인플레를 두 자리 숫자로 안정시켰다. 그러나 국제채권자의 이익만을 옹호하는 가운데 수입 촉진과 자본시장 자유화를 통해 초국적 자본을 적극 유치하면서 이미 해외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취약해질 대로 취약해진 브라질 경제는 더더욱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초국적 자본이 대량 유입되어 화폐가 오히려 평가절상되었고, 이는 결국 무역 및 자본수지 적자로 이어졌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더 많이 빌렸고 자본 도피를 막기 위해 이자율을 대폭 높였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오히려 외채 부담만 증가시켜 경제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 뿐, 경제위기의 악순환은 지속됐다. 1998년에 IMF가 다시 한 번 개입해 총체적 위기를 유보시키면서 초국적 자본을 안전지대로 유도했고, 이 속에서 카르도수가 대통령으로 재당선되어 국제채권국 및 금융기구들과의 호의적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카드도수는 경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통신과 전력 등 주요 공기업을 사유화했고 외채 상환을 위해 공공서비스를 더욱 감축했다. 그러나 외채 부담은 줄어들지 않아 카르도수 정권 하에서 공공채무가 GDP의 30%에서 60%로 증가하였고, 외채는 사상 최대 규모인 2,600억 달러에 달했다. 2000년도 수출 대 외채 비율은 442.2%에 달아 심지어 세계은행이 HIPC(*편집자 주: 외채과다 빈곤국, Heavily Indepted Poor Country)가 유지 가능한 수준으로 지정한 150%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헤알도 1994년 달러에 대해 1:1로 맞춰졌었는데 올해가 되자 그 가치가 4배나 떨어졌다. 카르도수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브라질 민중들에게 처참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현재 4천 5백만 명이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으며 실업율은 21% 수준이다. 현재 브라질 인구 3%가 토지 3분의 2를 차지하는 반면, 2천 3백 만 명이 임시 농업노동을 통해 간신히 생활하고 있다. 게다가 브라질은 남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세금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 구조는 워낙 퇴행적이라 부유층은 한 자리 숫자의 세금을 내는 반면, 빈곤한 가구는 무려 20%나 넘는 세금을 국가에 내야 한다. 물론, 민중들이 내는 이런 혈세는 고스란히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외채를 상환하는데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신자유주의의 공격이 빈민에게만 가해진 것은 아니다. 철저히 국제채권단에 의해 조정되고 그들의 이윤 축적에 복무한 브라질 시장의 자유화 및 개방화는 사실상 브라질 국내 경제의 탈산업화를 가져왔고, 높은 이자율은 제조업에 큰 부담이 되었다. 또한 자본자유화로 인한 화폐의 가치 인상은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을 크게 위축시켰고 내수는 내수대로 무너졌다. 카르도수로부터 외면당해 위기에 처한 브라질의 국내 제조업 산업자본가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고, 오히려 "내수 중심의 민족적 국가 경제 개발"을 천명한 룰라에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노동자당은 지난 2월, 자유당(LP)의 조세 알렌카를 대통령 선거 부후보로 추대했다. 알렌카는 전국산업연맹 부회장이며 개인 재산이 5억 달러에 이르는 억만장자이다. 그는 코르테미나스라는 브라질의 가장 큰 섬유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그가 바로 시장 개방화로 피해를 입은 민족 자본가를 대표하는 인물인 것이다. 물론, 노동자당 내 일부를 비롯한 좌파진영은 자유당이 지배엘리트로 구성되어 있고 기독교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런 동맹을 비판했으나, 2002년도 대통령 선거에서 이런 민족 산업자본가들과의 연대는 카르도수가 후임자로 내정한 세하를 누르고 노동자당이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민주적 사회주의? 민족적 자본주의? 브라질 노동자당은 그야말로 노동자계급 정당이다. 60∼70년대 군사정권이 추진한 경제부흥계획이 노동착취와 탄압으로 이어지자 1978년 상베르나르두에 있는 SAAB에서 총파업이 시작되었고 그 열기가 브라질 전역으로 퍼졌다. 그 속에서 룰라가 이끌던 ABC 지역 금속노동자들은 노동자계급 정당 창당을 위한 계획을 본격화하기 시작했고, 1980년 2월 10일 상파울루에서 창당대회를 개최하였다. 애초부터 노동자당은 사회주의를 목표로 표방했으며 무토지농민운동(MST)이나 노동자단일동맹(CUT) 등 거대 대중운동들을 정당의 기반으로 삼았다. 물론, 민주적 사회주의로 전환하기 위한 완성된 전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1989년 선거에서 노동자당은 외채 이자지불 중지, 사유화 반대, 사회보장 지출 증대, 무토지 농민을 위한 토지 개혁 등 급진적 정책을 내세웠다. 그리고 노동자당이 집권한 브라질 최대 도시인 상파울로와 리우그란데두술 주(州)를 비롯해 5개 주 187개 기초 지자체에서 실시한 참여예산제 등이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런데 1998년 선거부터 그러한 노동자당이 변하기 시작했고, 3번의 고배를 마신 후 승리를 거둔 이번 선거에서 노동자당은 사실상 "우경화"의 최고조에 이르렀다. 노동자당은 "좌파 통합, 우파 분열, 대선 승리" 전략이라 불리는 "좌우연합 전술"{{) 이승철, "노동자 후보, 사장과 손잡다", 한겨레21 2002년 10월 10일 자 }}을 구사하면서 두 개의 공산당(PCB, PCdoB)과 동맹을 맺는 한편, 우파인 자유당도 포섭했다. 이번 선거에서 룰라가 내세운 정책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한다.{{) Roger Burbach, "Has Lula Sold Out?", www.americas.org }} 첫째는 "참여적 국가 운영"으로, 지역 수준의 참여민주주의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지역마다 지역의회를 구성해 경제, 사회, 정치, 문화, 환경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브라질리아의 중앙정부 기관들과 직접 협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는 "전략적 국가 운영"으로, 카르도수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결별을 선언한 가운데 교육 및 보건 등 민중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국내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IMF, 유엔, 세계은행과 WTO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쿠바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노동자당 정책의 핵심 내용이다. 첫째와 둘째를 관통하는 중요한 맥은 물론 사회주의 정당인 만큼 5,000 만 명에 달하는 빈곤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 사회안정, 세제 개편, 주택 보급, 교육 및 보건의료 혜택 확충, 토지 개혁 등 민중의 생활 조건 개선을 위한 재분배 정책이다. 그러나 또 한 하나는 "내수 중심의 민족적 국가 경제 개발"이다. 즉, 해외자본을 유치하되 투기가 아닌 "건강한 투자"로 유도해 생산과 일자리를 확충하고 국내 산업을 육성해 경제 성장과 민생 안정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해외자본을 생산부문에 유치하기 위해 선거전에 이미 GM이나 폭스바겐 등과 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무역 조건 재협상을 통해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 주류 언론에서는 룰라가 "보호무역"을 주장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미국 등의 국가들이 "자유무역"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이런 전제는 사실상 국제적인 무역 불평등을 은폐하기 위한 논리인데, 미국은 사실상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제3세계 상품을 봉쇄하면서 오히려 제3세계 국가들에게는 시장을 자유화하고 개방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룰라가 문제제기하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지점이며, 미국도 브라질 상품에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고, 수출 촉진 정책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자율 억제를 통해 국내 기업의 대출 및 투자 활동을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최저임금도 현재 200헤알(약 8만원)에서 2006년까지 2배로 인상해 국내 소비를 활성화겠다는 계획이다. 경제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 그리고 해외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룰라는 "조심스러운 정부 지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1990년대의 시장경제 개혁 조치들을 존중하고, 3%의 재정흑자를 통해 (IMF는 3.75%를 요구했으나 룰라의 안에 만족하는 듯하다) 채무 상환을 이행하겠다고 하는 등 외채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추가적 사유화에는 반대하나 이미 사유화된 기업을 재국유화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최근 사회운동들이 FTAA에 관한 비공식 총투표를 실시했다. 브라질에서 약 천 만 명이 투표했으며, 96%가 FTAA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와, 남미 민중들이 소위 "자유무역"을 내세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얼마나 불신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놓고 있다. 즉, 룰라가 FTAA 자체에 반대하는 지의 여부는 모호하며 다만 현재의 무역체제가 미국 중심으로 설정되어 FTAA의 세부적 조건에 반대한다는 정도를 밝히고 있다.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 군사 쿠데타가 이를 타도하곤 하는 남미의 역사와 미국이 "대테러전쟁"을 명목으로 펼치고 있는 군사적 강경 정책을 의식해서인지, 그는 자본 뿐 아니라 군대를 안심시켰다. 선거 기간 동안 그는 군 관료들과 만나 브라질이 1998년에 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한 것을 후회한다고 하며, 현 병력을 유지하고 무기산업에 투자를 유치해 브라질을 "경제적, 기술적 그리고 군사적으로 강력한 국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렇듯, 룰라는 과연 제대로 어울리는 지의 여부가 불분명한 두 개의 축 -평등한 재분배와 경제 성장- 을 제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 대 자본"의 전선이 아니라 "투기자본 대 반(反)투기자본"{{) 이승철, 위와 같은 글 }}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즉, 카르도수 집권 하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폐해를 입은 민족자본가와 중산계급 그리고 빈민까지 아울러, 신자유주의에 대한 범계급적 반감을 범계급적 민족주의로 돌파하려는 것이다. IMF를 비롯한 국제채권단을 달래면서 말이다. 물론, 이런 우경화와 포퓰리즘은 노동자당 내부에서 뿐 아니라 좌파 진영에서 상당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임스 페트라스는 "직접행동과 선거정치를 결합한 풀뿌리 운동들의 연대로 시작한 노동자당이 중간계급 전문가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이 지배하는 관료주의적 정당이 되었으며, 선거 캠페인과 정권을 잡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그리고 "민중이 아닌 은행에 복무하고자 한다"며 노동자당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James Petras, "Brazil: Neo-Liberalism, crises and electoral politics", www.rebelion.org }} IMF·초국적 금융자본과의 줄다리기 룰라는 당선 확정 후 첫 공식성명에서 "국제적인 임무를 존중하고 반인플레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금융시장도 이에 만족한 지 룰라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헤알화의 가치가 5% 오르고, 주가도 급등했다. 그러나 룰라의 이러한 "우경화" 또는 "좌우연합전술"은 그에게 승리를 선사해줬지만, 역설적이게도 승리 이후 룰라에게 큰 질곡이자 최악의 경우 브라질 경제와 함께 그가 몰락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올해 8월 IMF는 브라질에 대한 구제금융 총 300억 달러 중 60억 달러를 먼저 지원하고 나머지 240억은 2003년에 구조조정 이행 성과에 따라 지급하기로 카르도수 정부와 합의했다. IMF와의 합의를 파기하고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지 않는 이상, 룰라는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 현재로서 룰라는 재정흑자를 통해 "국제적 임무를 존중"하겠다며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 IMF 구제금융은 타이밍과 의도를 봤을 때 1998년 11월 IMF가 경제위기에 직면한 브라질에 415억 달러를 지급했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당시 1998년 구제금융은 사실상 총체적인 경제 몰락을 카르도수가 집권할 때까지 유보함으로써 해외 투자자들이 자본을 도피시킬 시간적 여유를 부여해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고, 더불어 유력한 당선자였던 카르도수가 지속적으로 경제 구조조정을 단행하도록 강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초국적 금융자본에게 안전망을 형성해주고 룰라로 하여금 친민중적 정책보다 채권자 -특히 시티 그룹, HSBC, JP 모건 등 미국 및 유럽의 초국적 금융자본- 에 대한 의무를 더욱 중요시하도록 강제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 진행된 제 57차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나온 공동성명서는 브라질 경제개혁 가속화를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IMF와 국제채권단, 그리고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룰라의 당선을 어느 정도 "허용"한 것이 결코 그의 정책 -그것이 좌파적인 것이든 우파적인 것이든- 을 액면 그대로 환영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엄청난 규모의 외채와 경제위기의 위험으로 룰라를 일정 정도 견제하고 그럼으로써 브라질 민중들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초국적 자본은 룰라가 그의 본심이 무엇이든 간에 그의 "좌파적 성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을 것이며 그래서 자체적으로 몰락하거나 아니면 친신자유주의적 "제 3의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시카고대학 자유주의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룰라의 인기를 오랜 보수당 집권 끝에 영국 "신"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집권한 배경에 비유하면서 보수적 정권보다 오히려 노동조합의 신뢰를 얻고 있는 룰라가 노동의 유연화를 달성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며, 룰라의 승리를 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Gary S. Becker, "Brazil: If Lula Wins, Free Markets Will Survive", [Business Week] 2002년 10월 21일 자 }} 그리고 세계은행 총재 제임스 울펜슨도 "지난 7, 8년 간 내 경험에 의하면 악마나 혁명가, 무엇으로든 묘사되었던 사람이 집권하기만 하면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룰라는 경험이 많고 주위에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여유 있게 말했다.{{) Matthew Flynn, "For Lula and the PT, Winning Brazil's Elections Not the Biggest Challenge After All", Interhemispheric Resource Center }} 물론, 우파 경제학자들의 이런 발언은 좌파의 전세계적 "패배"를 증명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전술일 수 있겠지만, 룰라의 실제 행보를 봤을 때 이런 비유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초국적 자본과 제국주의 국가들이 견제하려는 것은 룰라나 노동자당 그 자체라기보다 브라질 민중들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한쪽에서 룰라를 견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쪽에는 변화를 갈망하는 브라질 민중들과 룰라가 다시 "좌경화"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세력이 있다. 룰라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노동자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당의 지지기반인 MST와 CUT 등 사회운동들에서도 나오고 있다. 특히 MST와 같은 사회운동들은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으며, 이들은 노동자당을 압박하고 나아가 초국적 자본에 맞서는 세력이다. 룰라는 과연 폭풍을 헤치고 나갈 수 있을까 노동자당이 현재 내놓은 정책을 개혁이라 평가하든 변혁이라 평가하든, 룰라의 당선이 전세계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사실이다. 룰라가 브라질 헌정 사상 첫 좌파 대통령이라는 점, 그 자신이 노동자 출신이며 그가 이끄는 노동자당은 노동자 투쟁 속에서 피어난 노동자계급 정당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며, 더군다나 20년 전만 해도 총선에서 3.1%를 득표하던 군소정당이 꾸준한 지방자치 경험을 기반으로 오늘날까지 성장했다는 사실 역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지난 10년 넘게 노동자당은 전국 200여 개에 달하는 기초 지자체에서 그야말로 풀뿌리 참여민주주주를 실천해왔으며, 대중성을 강하게 유지해왔다. 물론, 최근의 우경화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브라질 노동자당은 교조적 스탈린주의도, 개량적 사회민주주의도 뛰어넘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아래로부터의 정당"이라는 점에서 전세계 좌파진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룰라의 당선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민중들의 거부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증명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최근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로 좌파적 성향의 정당들이 집권을 하는 (때로는 오히려 극우의 세력화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전세계적인 추세로 봤을 때, "세계 9위 경제대국"에서 역시 신자유주의 정책이 민중들로부터 거부당했다는 사실은 연이은 경제위기에 허덕이고 있는 기타 남미 좌파와 더 넓게는 전세계의 반신자유주의 운동에 큰 촉매제 역할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룰라가 당선되자 쿠바,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이 함께 남미의 "선의 축"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의 축"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제3세계 국가의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볼 만하다. 그리고 노동자당이 13년 간 집권한 포르투알레그레는 지난 2년 동안 (그리고 내년에도) 세계사회포럼을 개최하면서 반신자유주의 국제연대 전선을 강화하는 "대회합의 장"으로 역할했는데, 이제 포르투알레그레 시가 아니라 브라질 전체가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중심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세계 사회운동 진영 내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룰라의 당선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상당함에도, 향후 룰라가 넘어야 할 산은 너무나도 많다. 룰라는 너무나 큰 문제를 유산으로 받았는데 과연 그 부담을 견딜 수 있을까. 외채 위기를 지랫대로 삼아 브라질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제하려는 IMF 및 초국적 자본이 한 쪽에, "룰라만이 높은 실업률과 빈부격차, 생계난 등을 해결할 수 있다... 그가 서민들을 위해 좋은 정책을 펼칠 것"을 기대하는 대중이 다른 한 쪽에 있는 상황을 룰라는 어떻게 저울질할 것인가가 브라질 정치, 경제, 사회적 미래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룰라는 갈림길에 서있다. 현재로서는 "두 마리 토끼 다 잡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 그가 초국적 자본과 타협하고 궁핍한 브라질 민중들을 외면할 경우, 노동자당은 정치적 위기는 물론이고 심화된 외채의 악순환을 직면하게 것이다. 실제로 MST와 CUT는 두 조직의 지도부 모두가 공식적으로 노동자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지만 기층에서는 룰라에 대한 비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특히 MST의 경우, 노동자당 집권 지역에서도 토지 점거운동을 벌이거나 노동자당이 점거 활동에 대해 명확한 지지를 표명하지 않아 갈등이 직접 일어나기도 했고, 최근에 진행된 FTAA 총투표에 대한 후원을 노동자당이 거부해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노동자당은 선거 기간에 공무원 연금제도를 하향조절해야 한다고 발언해 CUT 내 상당한 세력을 이루고 있는 공무원 노동자들로부터 반발을 사는 등, 향후 CUT 내 PT파와 비PT파 간, 그리고 CUT와 노동자당 간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러나 만약 그가 민중들 편에 서서 그들이 진정 원하는 정치를 펼칠 경우 초국적 자본과 제국주의 국가들이 "보복"할 것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여러 번 증명된 바이다. 한국의 한 일간지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한 애널리스트가 룰라에 대해 "극도로 불안해진 투자자들의 심리를 되돌려야 한다"고 한 말이 "조언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기대에 조금이라고 미치지 못하면 B+에 부정적 감시대상으로 지정된 이 나라의 신용등급을 언제든 부도수준으로 깎아내릴 준비가 돼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고 보도했다.{{) [매일경제], 2002년 10월 29일 자 }} 그리고 남미의 역사를 봤을 때, 미국 등의 국가들이 "썩은 사과"를 제거하기 위해 군사 행동을 불사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여러 정치논평가들이 우려하고 있다. 선거는 끝났지만 브라질의 미래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룰라가 자신의 당선 그 자체가 가지는 의의를 잘 살리면서 경제위기의 폭풍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지의 여부는 그와 노동자당이 향후 어떤 길로 들어설 것인가에 달려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룰라만의 과제가 아니다. 룰라가 초국적 금융자본과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가고 있는 경제위기에 효과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투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만약 룰라가 민중들을 "배반"한다면 그에 맞서서도 싸우는 것- 은 결국 브라질 민중들과 이들의 세력화, 그리고 브라질 민중들과의 전세계 민중운동 진영의 국제연대가 될 것이다. PSSP
주지하다시피 87년 투쟁은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상징을 통해 대중의 무의식을 움직일 수 있었고 일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형식적이거나 혹은 심지어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달성했기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상징이 더 이상 대중의 무의식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포스트-민주주의적인 상황'이라는 것이 (시간의 편차는 있다고 할지라도) 반주변을 통해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제임스 페트라스의 말처럼, 각국에 민선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통치의 메커니즘은 일관된 폭력의 적용을 통한 정권수립 및 유지로부터 선거를 통한 정권수립 이후의 폭력의 적용이라는 방식으로 변모해왔으며, 이것이 대중들로 하여금 그들이 적어도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확보했다는 환상을 품도록 만들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술책이 대중들을 속이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상징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타협/왜곡되어 제도화되었던 것은 역사를 통해 한두 번 일어난 일이 아니며, 대중들은 항상 다시 이러한 지배이데올로기의 보편성을 전도시킴으로써 평등-자유를 위한 새로운 투쟁에 나섰던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이후에는 항상 또 다른 민주주의의 '상징'이 가능했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 대중들은 다시 투쟁에 나서지 않는가? 신자유주의 하에서 대중들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오히려 정치로부터 점점 등을 돌리며, 자신에게 강제되는 경제적, 비경제적 곤란들을 스스로의 정치적 투쟁의 조직화를 통해서 돌파해 내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가역적으로 포스트-정치적인 시대에 진입한 것처럼 보이며 더 이상의 정치(어쨌든 '대중정치')를 꿈꾸는 것은 오지도 않을 '고도를 기다리며' 아귀가 맞지 않는 말이나 서로 주고받는 실존주의적인 부조리극을 연기하는 일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진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실리주의"가 문제라고 말하지만, 이러한 진단은 사실 동어반복적이다. 왜냐하면 실리주의가 곧 우경화며 그것은 결과일 뿐 원인에 대한 진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간다면, 우리는 이제 단순히 대중들의 '의지 없음'을 개탄하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게다가 질문은 더욱 더 당혹스러운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분명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조건들은 끊임없이 악화되고 있으며 노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정하다. 즉 문제의 실리주의란 주어진 "떡고물"이 다소간 풍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실리주의가 아니라, 도망칠 곳 없는 막다른 골목(그 너머에는 실업이나 계약직 등이 기다리고 있다)에 내몰릴 때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떡고물"은 여기서 절대적인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경쟁하는) 다른 노동자들에 대한 상대적인 "떡고물"로서만 존재한다. 신자유주의적인 노동분할정책(유연화!)의 발톱이 할퀴고 간 자리마다 굴러 떨어지면 다시 기어오르지 못할 깊은 골짜기가 패인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벼랑 끝에 매달린다. "노동귀족"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역을 간신히 관리하는 노동자들과 그 틈에 끼지 못해 이리 저리 철새처럼 이동하는 반(半)노동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실리주의가 불가능해져야 하는 곳에서 오히려 실리주의가 자라 나오고 있다. 실리주의가 문제라고? 진정 그러한가? 다른 한 편, 점점 늘어만 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및 주변화된 노동, 성노동, 가사노동 사이를 전전해야 하는 여성들, 또 삼엄한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최소한의 노동권마저 모두 포기할 것을 강요당하면서 죽음과 같은 노동을 하루하루 견뎌 가는 이주 노동자들은 어떠한가? (산발적인 투쟁이 없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들 또한 싸움의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왜 민주주의라는 상징은 그들을 집단적으로 호출하지 못하고 있는가? 여기서 우리들의 전형적인 대답은 전국적인 전선 조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어느 정도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다시 우리가 좀처럼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할 논리적인 순환이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전선체를 조직하기 위해 우리가 참조하는 것은 '대중정치'인데, 대다수의 대중들은 싸움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즉, 대중정치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선 전선체가 필요하고 전선체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선 대중정치가 필요하다. 끝없는 순환, 끝없는 반복이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를 '포스트-민주주의적인 상황'으로 묘사한다면, 적어도 그것은 근원적인 방식으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현재의 곤란들은 단순히 세련된 통치술의 등장 때문만이 아니며 어떤 전국적인 규모의 전선조직의 부재 때문만도 아니다. (그 두 가지 이유들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면서도) 나는 여기서 이러한 상황의 진정한 원인들을 식별해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황의 현상학적 묘사의 관점 자체를 국내적인 차원으로부터 국제적인(진정 세계적인) 차원으로 전위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우리는 현재 보여지는 신자유주의적인 부르주아 계급의 대응, 그들의 계급투쟁이 완전히 새로운 문턱을 넘어서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단지 자본축적의 위기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의 대응이라고 보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불충분할 것 같다. 반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르주아 계급 스스로가 어떻게 자신이 만들어낸 착취 전략들에 의해 거꾸로 규정되며 심지어 '해체'되기 시작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이제까지 (적어도 최근까지) 모든 부르주아지는 민족-국가에 결합된 '국가부르주아지'였다. "국가장치들"이야말로 노동과정의 모든 곳에 침투하여 그들의 "지배"를 보장해온 물질성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알튀세르가 말하듯) 규범과 기술적 숙련을 위한 훈육을 위해서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 그 자체를 '살만한 것'으로 상상하도록 항상 조작하는 이러한 "국가장치들"의 개입 없이는 노동력이 아예 상품으로 등장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대 국가는 (적어도 19세기 말 이래) 핵심적으로 민족-국가였고, 따라서 민족-국가는 자본의 외부가 아니라 그것의 절대적인 내부였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신자유주의가 핵심적으로 해체해 나가고 있는 것이 또한 이것이다. 결국 변하는 것은 단순히 착취를 조직했던 과거의 이러저러한 형태들이 아니라, 정확히 그러한 착취가 조직되는 단위로서 민족-국가 그 자체다. 그렇다면 역으로 민족-국가의 해체(상대화)의 분명한 결과가 국가부르주아지, 즉 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지 그 자체의 해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하다. 왜냐하면 세계 부르주아지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부르주아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권력의 중심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알튀세르는 최후에 쓴 어떤 글에서 그 중심이 "전세계 투기꾼들의 지갑 속에 있는가?"라고 물었다. "가장 중요한" 나라도 "가장 제국주의적"인 나라도 그 중심이 아니다. 여기 퍼즐의 한 조각이 있다. 세계 권력의 중심이 부재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저항 자체가 모호해진다. 비록 민족-국가가 여전히 이러저러한 정세 하에서 투쟁의 집중적인 과녁으로 나타날 수는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더 이상 반-체제 운동의 성공을 위한 아르키메데스의 점이 될 수 없다(주지하다시피 브라질 페테당의 변질은 핵심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반제의 측면에서 접근한다고 그 중심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G7 정상회담이나 세계은행 회의장 앞에서의 시위들이 있지만, 이는 점점 성과도 요점도 없는 싸움들로 변하고 실질적인 압력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결국 세계 부르주아지가 없다면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도 없다는 것만이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더 나아가서 민족-국가의 해체가 민주주의의 요구 그 자체를 곤란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사회주의적인 대안이 파산한 것과 더불어 사민주의적인 모델이 위기에 빠지고 미국적 자유주의(계급타협적 케인즈주의)는 이미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실에서 입증된다. 혹자는 신자유주의를 자유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라고 간주하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관념은 신자유주의가 애초에 미국적 자유주의의 불가능성의 확인으로 등장했다는 점만 기억해도 그 기만성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신자유주의는 또 다른 정치의 모델이 아니라 정확히 '반(反)정치'의 모델인 셈이다. 그렇다면 '세계화된 세계'의 현실적 출현 속에서 좌우를 막론한 정치의 모델들이 '공멸'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치적 모델들이 공히 전제하고 있던 것이 바로 민족-국가라는 단위였기 때문이다. 진정 맑스주의의 위기, 사민주의적 복지국가의 위기, 미국적 자유주의의 위기, 이 삼자 모두가 신자유주의의 출현이 가시화된 70년대에 동시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은 우리를 섬뜩하게 만드는 바가 있지 않은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사실 이야기는 거꾸로 진행되었던 것 같다. 계급적대 자체가 자신의 일정한 형태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민족-국가의 경계 내에서였고, 그 만큼의 정치적 모델들로 드러났던 중심(동서를 막론하고)의 민주주의들이란 그러한 계급투쟁이 다소간 해결된 것의 결과(물론 모순은 결정적으로 "위성국들"이나 "제 3세계" 쪽을 향해 전위되었다)였을 뿐이다. 그런데 민족적 경계들이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계급적대 그 자체가 가시권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자본은 한 지역 내에서 계급적 양보를 강제 당하기보다는 계급투쟁 그 자체를 포기하고 다른 지역의 노동력을 향해 '탈주'한다. 노동력 재생산 과정의 '생략'이 발생하고, "노동의 자본에 의한 실질적인 포섭"은 오직 제한된 일부 노동자들(소위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유효하도록 "구조조정"되며, 그로부터 밀려난 인구들에 대해서는 역으로 '노동의 자본에 의한 실질적인 파괴'가 조직된다. 극단적인 노동분할, 극단적인 유연화 속에서 더 이상 '착취'는 사치스러운 말이다. 반대로 여기서 문제는 착취 그 자체로부터의 '배제'인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발리바르는 배제를 "적대의 유령"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민주주의 혹은 평등-자유 테제가 변함없는 진리로 재등장할 수 있는 것이 언제나 지배이데올로기의 '전도' 효과를 통해서였다면, 지금 민주주의라는 상징이 더 이상 대중을 호출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세계적인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신자유주의란 더 이상 어떤 보편성에 입각한 헤게모니의 확보를 목표로 한다기보다는, 차라리 민주주의의 포기를 선언(따라서 유사-카스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잉여권리"를 누리면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부유한 국가의 부유한 사람들, 착취 가능한 인구로 분류되어 간신히 자신의 재생산을 유지해 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착취 불가능한 인구로 분류되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마침내 쓰레기통에 내버려지는 "일회용 인간들"의 카스트들 말이다)하고 각국의 대중들에게 '세계화에 편입되거나 죽거나'의 길만을 열어놓은 채 양자택일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과거 냉전 당시에는 도망칠 다른 진영이라도 있었다면, 이제는 빠져나갈 어떤 구멍도 남아있지 않다. 신자유주의는 진정 헤겔적이라기 보다는 푸코적인 의미에서의 "지배"를 위한 이데올로기가 된다! 만일 극단적인 폭력의 한계상황이 바로 정치(혹은 정치의 주체)가 사라지는 상황이기도 하다면, 현재 우리가 포스트-민주주의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화는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한가? 아마도 이러한 극단적인 폭력에 맞서는 길을 우리가 찾지 못한다면 당분간은 그럴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반성을 통과하면서 단지 우울함만을 느낀다면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해야할 것 같다. 첫 째, 우리가 당면한 싸움의 성격은 단지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는 문제'를 훨씬 초과한다. 둘 째, 시민권의 근본적 개조를 통해 한 편으로 자본의 미친 탈주들을 막고, 다른 한 편으로 이동/이주하는 노동인구들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각국의 시민권 자체에 동시에 각인시켜야 한다. 세 째, 각종의 배제들을 정당화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비정규직의 철폐, 여성노동의 주변화 철폐, 각종 소수자들의 시민권으로부터의 배제의 철폐를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 시민들의 존엄을 국가에 재인식시켜야 하며 그것을 통해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화가 가능해지는 정치의 공간을 다시 한 번 열어 젖혀야 한다. 네 째, 이 모든 것을 위해서 우리는 '반(反)폭력'의 국제주의적인 연대를 실질적으로 구성해내야 한다. 국제주의적 연대 없는 고립된 투쟁들은 항상 다시 '세계화에 편입되거나 죽거나'의 양자택일에 몰리게 될 것이고, 따라서 민족주의는 그 어떤 형태로도 우리에게 불가능한 전략이며 그 자체로 반동적이라는 것을 우리가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현재적인 '계급투쟁' 혹은 '계급 없는 투쟁'(발리바르)의 유일하게 효과적인 형태는 폭력과 배제에 반대하는 국제주의적인 다중(多衆)의 연대를 형성하는 투쟁일 수 있을 뿐이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