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과 이에 대한 공방으로 날새는 줄 모르던 여야정당들이 총선 준비를 위한 신속한 체계 정비에 돌입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탄핵역풍'으로 인한 열린우리당의 압도적 우위가 예상되는 가운데, 야당은 이러한 국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놓고 내부적인 논쟁에 휩싸였다. 한나라당의 대표선출과정, 민주당의 선대위장 선임과정 등 야당들의 내부 논쟁에 있어서 판단의 유일한 기준은 총선 득표다. 이들 야당도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판을 뒤엎을 수 없는 바에야 '탄핵역풍'의 효과를 인정한 가운데 그 충격을 최소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야당 내부의 '탄핵취소'를 둘러싼 논란이나 박근혜, 추미애를 둘러싼 당내 체계개편 논란 모두 현재 이들의 지지율 하락이 총선 시기까지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로 인한 것이다. '탄핵역풍' 이후 탄핵반대 여론은 총선 지지율 속에 일단은 안정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탄핵반대' 여론도 지난 20일 광화문 촛불집회 이후 대규모 대중동원보다는 열린우리당과 그 후보에 대한 지지로 수렴되고 있다. 쟁점은 총선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으며 '총선에서 심판하자'가 주된 구호다. 탄핵반대 촛불시위 등을 주도했던 <범국민행동>의 활동도 차차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범국민행동>의 기조가 "신자유주의 반대, 민주주의 투쟁의 급진화"와 같은 방향을 억압하거나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국민행동>은 '탄핵반대', '민주수호' 등의 제한된 요구를 내걸고 이라크 파병문제 등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되는 쟁점에는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따라서 다른 모든 쟁점을 '탄핵반대'이하의 부차적인 쟁점으로 전락시킨다.) 운동의 쟁점 자체가 제한되어 있고 더 이상 운동의 요구를 확대하지 않으면서, 시효가 만료된 기존의 구호를 단순하게 반복하고 있다. 이미 압도적인 탄핵반대 여론을 통해서 애초 야당이 노린 탄핵의 정치적 효과를 무력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탄핵 반대' 구호가 계속 외쳐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계속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대중동원의 축소와 함께 열린우리당은 예정된 계획대로 탄핵반대 여론 전체를 자신에 대한 지지로 안정적으로 전환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동원전략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탄핵 국면에서 촉발되었던 대중의 광범위한 지배정치에 대한 불만은 이렇게 거칠게 봉합되고 있다. 현 시기 탄핵을 둘러싼 논쟁의 출발점은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한 입장이다. 한편 탄핵정국을 둘러싼 사회운동 내의 논쟁이 공통의 정치적 목표를 합의하지 못한 채 민중운동 진영은 각 단체, 대중조직들의 각각의 대응으로 흩어졌다. 시민운동단체의 대부분은 탄핵반대 운동을 주도하는 데 앞장섰고, 민중운동 진영은 탄핵사태 이후 <탄핵무효 민주수호 범국민행동> 참가여부를 놓고 크게 양분되었다. <범국민행동>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연대 소속의 상당수 단체들이 참가하고, 민중연대 간부들도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는 가운데, '탄핵 반대' 슬로건에 대한 논란 속에서 민주노총이나 민중연대 등은 어떠한 내부적인 합의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임기응변 식으로 대응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민중진영의 공동투쟁을 통해 형성되어온 최소한의 합의가 해체될 위험에 처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은 한 순간에 모래알처럼 흩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재 시민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진영의 균열은 각 운동의 역사성, 물질성을 반영한다.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과정에서 잠재되어있던 입장의 차이가 이번 탄핵사태를 계기로 전면화되고 있다. 시민운동 중 일부는 그들이 생각하는 진보적 과제 예컨대 '재벌개혁'을 달성할 수 있는 디딤돌이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이라 생각하고 활동을 전개해왔다. 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탄핵반대 운동이 제2의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고 광화문으로 나섰다. IMF 구제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수행자가 된 이른바 '개혁세력'은 이들의 든든한 후원자/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반대의 입장을 공유하면서 같은 전선에 서있다고 믿었던 단체, 대중조직들이다. 물론 이들 조직 내부에서 다양한 입장들이 공존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공동의 목표로 이제까지 전국민중연대 건설과정을 함께 한 조직들의 혼란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내부의 혼란을 넘어서기 위해서 명확히 해야 할 출발점을 각인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탄핵국면에서의 대응을 둘러싼 논쟁이 곧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쟁점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총선 이후에도 바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번 탄핵사태로 폭발한 대중의 분노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파괴적인 영향으로 인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개혁과 그 실패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경제의 금융화, 금융의 투기화 속에서 부패비리를 확산시켰을 뿐 아니라, 한국경제의 장기침체의 원인이 되었다. 이런 실패 속에서 지배계급 스스로도 안정적인 지배연합을 구축하지 못한 채 대립국면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개혁과 정치의 무능, 혼란 속에서 대중의 분노는 촉발된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불만을 그들에 대한 지지로 흡수하여 대중을 동원하고 있다. 지배계급 분파들 사이의 대립은 신자유주의라는 쟁점을 봉합하고 (그들 스스로가 파괴한) 민주주의에 관한 쟁점으로 포장되었다. 이런 상태로 총선을 경과한다고 해도 신자유주의 정책 방향은 이전과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강력한 대중동원을 통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집권은 그들의 정책 추진을 가속할 것이다. 워싱턴 브루킹스 연구소는 지난 23일 한국의 탄핵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일부 참가자들이 주목할 만한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IMF 구제금융 위기와 유사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던 것이다. 98년 IMF 구제금융 위기 당시, IMF와 미국은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의 수행을 위한 정권교체를 지지하였다. 이전의 지배정치 분파는 구조조정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에 선행하는 위기, 야당에 대한 억압/분열, 변화의 비전을 가지는 국민적 지도자 출현, 신속하고 종합적인 정책의 변화, 의회 내의 정치적 기반 확보 등 이른바 워싱턴 콘센서스에 따라 한국사회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현재의 국면 역시 신자유주의 개혁정책 수행을 위한 지배정치를 재구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위한 정치적 주체, 즉 노무현/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IMF 구제금융 위기 당시와는 달리 외부적 충격이 아니라 내부적인 정치 과정을 통해 수행된다는 차이점을 가질 뿐이다. 한편 지배 정치의 극도의 불안정은 총선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 직후에 일시적으로 그것이 봉합된다 하더라도, 현재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가 탄핵반대 여론을 단기적으로 흡수한 것일뿐더러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이 지속되는 한 한국경제의 위기는 지속되기 때문이다. 불만과 분노에 휩싸인 대중들을 외면하는 지배정치의 쟁점없는 대립은 지속될 것이다. 설사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장악한다고 해도 다른 방식으로 위기와 불안정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열린우리당 등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주장하는 '총선 심판'이 아무리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이후에 바뀔 것은 거의 없는 셈이다. '변한 것 없는' 지배정치를 '심판'해봤자 남는 것은 정치에 대한 대중의 극심한 환멸뿐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전선의 복구가 절실하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탄핵반대' 여론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끌어내고 이를 통해 총선 이후 집권 기반을 공고히 하고자 한다. 이 때, 민중운동진영 일부가 이러한 동원 전략에 편승하여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이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중동원 전략이 성공하고 총선에 이들이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들이 추진해오던 민중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은 더욱 강력하게 추진될 것이다. 비정규직 확대, 노동통제·탄압, 전쟁지원·파병결정, FTA를 비롯한 개방정책의 승인 등 수많은 민중들을 죽음으로 몰고갔던 정책들이 노골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중동원 정치 속에서 '정상적인' 부르조아 의회 정치마저도 마비상태에 빠진 후, 남는 것은 무엇인가? 부르주아 분파들 사이의 분열 속에서 안정적인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은 구축되기 힘들 것이며 무한 정쟁 -민중적 요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만이 반복될 것이다. 대중은 극심한 정치적 환멸에 빠질 것이고 폐허가 된 의회정치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민중운동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동원되는 한, 그러한 부정적인 결과를 피해갈 수 없다. 신자유주의 반대의 쟁점을 억압하는 '탄핵반대' 물결에 휩쓸려간 민중운동의 '자발적 동원'의 결과, 남는 것은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의 해체뿐이며, 총선을 경과한 이후 민중운동은 그간 힘들게 쌓아온 투쟁의 성과를 스스로 허물게 되는 무력함을 맞이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향하지 않기 위해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민중운동 전체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만들어놓은 허구적인 대결구도를 벗어나 스스로 전선의 성격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현재의 탄핵 찬/반 구도에 머문다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지지하는 꼴이 될 뿐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노동권 쟁취", "파병철회", "국민발의, 국민소환" 등의 요구들을 전면적으로 제기하며 탄핵 찬/반을 넘어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쟁점을 형성해 가야한다. 특히 스페인에 대한 테러 이후 가속화된 미국의 군사동맹의 약화, 팔레스타인 저항세력 하마스의 지도자 야신이 살해된 이후 점증하는 저항과 중동의 불안 속에서 한국군의 파병이 시간을 다투고 있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곧 파병찬성 세력이었으며, 이들이 주장하는 '개혁적' 이라는 이미지는 거짓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폭로해내야 한다. 대중적인 전쟁반대, 파병반대 투쟁을 조직하면서 탄핵 정세에 개입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탄핵 찬/반으로 표상되는 수구세력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 모두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담지자임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총선에 개입해야 할 것이다. 민중에 의한 신자유주의 지배세력 심판은 이러한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 가능해질 것이다. 민주노총 등 대중운동 단위에서는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쟁점을 전면에 부각하고 투쟁을 전개해야한다. 27일 예정된 비정규노동자 대회를 시작으로 총선 시기에 민주노동당지지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제한되지 않는 대중투쟁을 조직해야 할 것이다. 총선에 '올인'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역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대한 '예의바른 조언자'의 역할에 주저앉으면서 득표에만 몰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쟁반대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전선 복구를 위해 노력하면서 총선 국면를 돌파하여아 할 것이다. 현재의 정세적 전환 국면은 운동진영이 차분히 대응할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 정세가 급격히 총선 국면으로 넘어가면서 지배정치의 강화를 위해 대중의 불만을 동원하는 작업이 단기간에 추진력을 더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이 의도하는 결과로 나가지 않으려면 운동진영 내의 적극적인 토론과 행동계획이 절실히 필요하다. 어느 때보다 운동진영의 신속한 공동의 투쟁을 통해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은 복구되어야 한다.PSSP
이번 탄핵정국에 대응하기 위해 채택된 사회진보연대의 세 가지 구호(‘신자유주의 반대/노동권 쟁취’, ‘전쟁반대/파병반대’, ‘국민발의, 국민소환, 민중민주주의 건설’)는 현 시기 우리 운동의 일반적 투쟁 방향의 핵심을 훌륭하게 요약한다. 나는 이 글에서 ‘국민(시민)발의, 국민(시민)소환, 민중민주주의 건설’이라는 구호가 갖는 의미를 간략하게 논하고자 한다.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또 일시적인 반전이 있다 할지라도 점점 하락하는 투표율, 대중 운동의 왜소화 등은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하여 어떤 학자들은 우리가 결정적으로 ‘포스트-정치적’인 시대로 들어선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펴기도 하지만, 발리바르의 진단은 사뭇 다르다. 그는 이를 ‘포스트-정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하에서 체계적으로 조직되는‘반-정치’(antipolitics)의 일반화 문제로 사고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반정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 자본주의가 맞닥뜨린 위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금 자본에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착취 불가능한 인구’ 혹은 ‘잉여인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문제다(한국에서도 실업자 급증은 더 이상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경제논리로만 따지자면, 이렇게 잉여인구를 방치하는 것이 자본에게도 비합리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 잉여인구를 ‘노동력’으로 포섭하는 일은 자본에게 쉽지 않은 일이 되었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죽은 노동’이 아닌 ‘산 노동’, 즉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지금 자본주의는 이 정치적 권리들을 수용할 능력이 없다. 포섭할 수 없다면,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 잉여인구의 목소리를 정치적 발언권에서 배제하고, 극단적 폭력과 빈곤이 지배하는 게토 안에서 이들을 서서히 죽어가도록 방치하는 ‘반정치’가 자행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단지 구조조정, 노동의 불안정화 및 극단적 폭력/전쟁의 조직화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파괴, 정치의 위기를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로 자본의 계급투쟁이 노동권 축소, 무장한 세계화, 민주주의의 파괴로 나타나고, 이에 대한 다중(multitudes)의 투쟁이 노동권 쟁취, 전쟁반대, 새로운 민중민주주의의 건설로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부르주아 정치의 총체적 위기는 인민주권의 파괴와 민중 배제적 정치의 극단화로 나타난다. 의회는 외양상으로조차 인민주권의 관철장소이길 멈추고 신자유주의 정책입안을 위한 행정부의 일개 부속기구로 전락한다. 원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핵심은 삼권분립을 통한 권력남용 방지와 의회를 통한 인민주권의 제한된 허용에 있었고, 이 때문에 억압적 국가장치에 대한 의회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의 차별성이 부각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 의회가 과연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가가 의문시되는 것이다. 예상되는 우리당의 개헌저지선을 넘는 거대 여당화는 아마도 이런 문제를 가속시킬 것이다. 국민발의, 소환권 쟁취와 이를 통한 민중민주주의 건설은 탄핵정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 투쟁방향의 핵심적인 축을 이루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한시적 이슈로 축소하거나, 대의제 민주주의를 단순하게 형식적으로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제도 도입 문제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국민발의, 소환권을 제도화한 일부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예를 통해 그것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남한 자본주의의 ‘반주변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국민발의와 국민소환권 쟁취투쟁은 ‘인민주권’과 새로운 민주주의의 상으로서 ‘갈등적 민주주의’라는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반정치 하에 형해화된 ‘시민권’을 재창출하기 위한, 장기적 전망을 갖는 운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04. 03. 26-
WTO 5차 각료회의 무산과 지역무역협정의 활성화 지난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5차 WTO 각료회의는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났다. 농산물 수출개도국들은 G20이라는 그룹을 형성하여 협상을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연합에 맞서 강력하게 저항했다. '관세인하' '국내보조금 철폐' '수출보조금 철폐'를 3대 과제로 하는 농업협상에서, 미국과 유럽은 개도국에는 농업개방을 강요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세계 식량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초국적 메이저 농기업에 대한 수출보조금을 유지하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G20은 자국의 농산물에 대한 시장접근을 늘이기 위해서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보조금이 철폐되어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뿐만 아니라 '투자·정부조달·경쟁·무역원활화'의 네 가지 의제를 일컫는 '싱가포르이슈'에 대해서도 많은 나라들이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도하개발의제'협상이 그 시효로 정해진 2004년 말 까지 마무리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졌다. 5차 각료회의에 뒤이어 고위급 각료회의 및 분야별 협상 역시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자본 이동이 자유화되고 민중의 삶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를 상품화하여 자본의 이윤 추구 대상으로 탈바꿈 시키는 도하개발의제 협상이 난항에 빠지자 지역별, 혹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 체결 흐름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을 비롯한 각 국은 관세 철폐, 투자 자유화 등 WTO 도하개발의제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조치들을 지역별,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시도하겠다며 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등 중미 5개국과 체결하는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 체결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주지역 자유무역협정(FTAA)이 2005년에 발효될 수 있도록 협상의 고삐를 더욱 당길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은 아시아 지역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6월 방콕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참가한 각국의 정상들은 '각 회원국이 WTO의 목표 진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지역무역협정(RTA)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할 것'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양자간 협상이 개시되거나 개시를 앞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ASEAN+한·중·일] 등 지역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연구 작업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정부간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발표한 [21세기 한일 파트너쉽 공동선언]에 따라 '한일FTA 산·관·학 공동연구회'가 구성되었다. 이후 공동연구회는 2003년 10월까지 총 8차에 걸친 회의의 결과를 '한일FTA 공동연구회 보고서'를 통해 발표했고, 이 협정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며 양국 정부가 조속히 공식 협상을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총리는 앞서 언급된 작년 6월 APEC 정상회의를 즈음해 양국간 정상회담을 열고, 한일 FTA 체결을 위한 정부간 협상을 조속히 개시할 것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지난 해 12월 22일 서울에서 열린 1차 협상으로 정부간 협상은 본격화되었다. 양국 정부는 2005년에 한일 FTA 발효를 위해 격월로 양국을 오가며 정기적인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오는 4월 26일에 다시 서울에서 열리게 되는 3차 협상에서는 협정문의 초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협상이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일 FTA 산·관·학 공동연구회 보고서의 개요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은 지난해 10월에 발표된 '한일 FTA 산·관·학 공동연구회 보고서'를 토대로 삼고 있다. 이 보고서를 통해 한일 FTA 협상에서 논의대상이 무엇이며 그 효과를 양국 정부와 자본은 어떻게 예측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공동연구회 보고서에 나타난 한일 FTA의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일 FTA는 '포괄적'이고 특정 분야를 제외하지 않고 모든 분야에서 자유화를 추진해야 한다. 또한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자유화를 추구해야 한다. 이에 따라 공산품, 농수산물 등의 무역에 관세 및 비관세 무역장벽의 철폐가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또한 서비스, 투자, 정부조달, 상호인증, 지적재산권 등에서의 자유화가 추진된다. 둘째, 양국은 국제 무역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조응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한일 FTA가 현재 진행 중인 구조 개혁을 촉진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 관행을 폐지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셋째, 한일 FTA는 GATT 24조에 명시된 요건 및 GATS 5조에 따라, WTO 조항과 정신을 준수해야 한다. 또한 현재 진행 중인 WTO나 여타의 지역무역협정에서의 논의를 반영해야 한다. 이는 상품 무역에 관해 양 국간의 모든 교역을 점진적으로 자유화해야 하고, 통상에 관한 모든 규제를 현재보다 더 강화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넷째, 한일 FTA가 아시아 지역 통합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 FTA와 한·중·일 삼자간 FTA 체결을 위한 논의를 촉발시켜야 한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한일 FTA는 다음의 분야를 다룬다. 우선 관세철폐 뿐만 아니라 비관세 장벽 철폐 역시 그 대상이 된다. 비관세 장벽은 '관세와는 별도로 국제 무역에 역효과를 가져오며 국내 생산자와 해외생산자를 차별하는 요인이 되는 직·간접적 규제'로 정의되며, 수량 제한, 기술 장벽, 식물 및 동식물 검역 기준, 유통 장벽 등이 이에 해당된다. 원산지 규정(ROO, rules of origin)은 FTA 하에서 특혜 대우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므로, 한일 FTA의 주요한 논의 대상이다. 보고서는 오직 일본과 한국이 원산지인 상품에 대해서만 한일FTA에 근거한 관세철폐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제3국으로부터 우회수입을 방지하도록 하되, 간단하고 이용자-친화적인 원산지규정을 제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세관절차의 간소화, 비용절감, 효율성 제고를 위한 조치, '서류 없는 무역(paperless trade)'의 촉진', 무역구제조치 등 무역을 원활화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논의들이 이루어진다. 또한 덤핑방지조치 및 상계관세조치를 발동할 수 있는 요건 강화 방안과 전기용품, 정보통신기기, 의약품 및 의료기기, 일본공업규격(JS)/한국국가표준(KS)등에 대한 상호승인(MRA)제도의 도입, 그리고 위생·식품 검역(SPS) 적용 범위 한정 등도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서비스 자유화에 관해서는 도하개발의제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추진할 방안이 논의된다. 투자 전 단계 및 후 단계에서의 내국민 대우 및 최혜국 대우의 원칙, 투자에 대한 이행의무 부과 금지, 수용과 보상에 관한 규정, 분쟁해결 절차 등 투자자유화 및 투자자의 소유권 보호를 위한 조치들은 이미 발효된 '한일투자자유화협정(BIT)'을 기본으로 더 많은 자유화를 촉진하는 방향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 밖에 정보통신기술, 중소기업, 무역과 투자의 촉진, 과학기술, 운수, 방송, 관광, 환경, 금융 분야에서 양국간의 협력을 강화할 방안을 논의한다. 언뜻 보기에는, 교역에 있어 양국간의 협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제반것을 논의 대상으로 삼는 듯 하지만 WTO 도하개발의제를 비롯해 현재 진행 중인 자유무역협정은 상품 교역에 대한 관세 철폐를 대상으로 삼는데 그치지 않는다. 지난 95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로 WTO가 출범하면서, 공산품 뿐 만 아니라 민중들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시장의 논리에 따라 취급되어서는 안 될 식량과 공공서비스 역시 자유무역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협정들은 점차 투자자유화 및 소유권에 대한 철저한 보호 등, 초국적 금융자본이 자유롭게 활동하는데 필요한 조치들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일 FTA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여, 모든 분야에 대한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자유화를 추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한일 FTA를 둘러싼 논란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교역구조상 양국간 FTA는 한국경제와 산업의 거의 전 영역에 걸친 치명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공동연구회 보고서에도 자동차, 기계, 전자, 철강 등 대부분의 공산품에 대해 일본은 거의 관세가 없는데 반해 한국은 8% 수준이라서, 한국의 대일(對日) 무역적자 규모가 확대되고, 대일 의존도가 심화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산업연구회가 최근 발표한『한·일 FTA 체결이 중소기업의 대일 수출에 미칠 영향』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대일 수출 품목은 일본이 이미 관세를 부과하지 않거나 낮은 관세만을 부과하는 품목에 집중되어 있고,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품목은 매년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어 FTA에 따른 대일 수출 증대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다'라고 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가 주최한 '코리아오토포럼'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비교해보면 가격경쟁력, 품질경쟁력 모두 일본이 앞서고, 한국의 현생 관세 8%가 철폐되면 일본차는 약 9.2%의 가격인하효과가 발생해 대일무역적자 규모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견해가 발표되었다. 이에 전경련은 자체적으로 8개 주요 산업의 '업종별 대책반'과 '총괄반'으로 이루어진 상설대책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으며, 정부에 공산품에 대한 관세 철폐를 유보하거나 시기를 늦춰줄 것과 중소기업체들의 피해산업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한일 FTA 체결로 인한 국내자본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을 뿐, 협정 체결 자체를 반대하거나 별다른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금융세계화 시대에 변화한 일본자본의 지배체계에 성공적으로 재편입하기 위한 국내자본의 요구와, 오로지 모든 경제 산업정책을 해외투자 유치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인상을 구걸하는 것에 고정시킨 노무현정부의 정책개혁비전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차이점은 속도와 추진순서상의 세부적인 조정계획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 간의 이기적이고 기만적인 말장난은 뒤로하고 더욱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사태를 다시 살펴보아야한다. 초국적 자본에 기업하기 좋은 환경, 즉 온갖 특혜를 부여하여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유인책에 불과한 FTA 체결이 정부가 주장하듯 실제 경제가 성장하고 고용을 증대하는 것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자유화', '규제완화'가 노동자 민중의 권리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한일 FTA 체결 협상에서 양국 정부와 자본이 논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것이 노동자 민중의 삶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무역 활성화' '자유화'라는 수사 뒤에 숨겨진 양국 정부와 자본의 의도를 좀 더 들여다 보자. 노동권은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비관세 장벽'? 보고서의 부록으로 별첨된 '비관세 조치 협의회 보고서'에는 한일 FTA의 반 노동자적인 성격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에 앞서, 이미 발효된 '한일투자자유화협정(BIT)'를 체결하기 위한 논의 과정에서, 일본의 기업들은 '한국 정부가 노동자들의 불법파업에 대해 신속하고 엄중하게 대처한다. '는 조항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이른바 한국에 진출한 일본 자본투자 사업장에서 노동쟁의가 발생했을 경우 한국 정부가 진/지/한/ 자세로 노동탄압을 자행해줄 것을 약속한다고 해서 '진지조항'이라는 이름이 붙은 천인공노할 조항이다. 이 조항은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여 본문이 아닌 전문에 '노사간의 화합의 중요성을 확인한다. '는 문구로 대체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기업들은 한일 FTA를 통해 한국 정부가 자본 친화적인 노사관계를 확대할것을 명문화하려 하고 있다. 양국은 공동연구회 산하에 비관세 조치만을 별도로 다루는 '비관세조치협의회'를 구성하여 운영했다. 비관세 조치의 범위가 넓고 복잡하기 때문에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협의회는 두 차례의 회의를 진행하고 각 국의 기업이 비관세조치로 인식하고 있는 바를 항목별로 분류하여 각각에 대한 해법을 토론했다. 이에 한국 측은 총 28개 항목, 일본 측은 13개 항목을 각각 비관세조치의 예로 제시했다. 일본의 기업들은 한국의 노동자 친화적인 노사관행이 한국에 진출해 기업 활동을 하는데 장해가 되는 요인이라며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시했다. 1)종업원지주조합에 우선적으로 신주를 배당하는 규정을 폐지할 것. 또한 한국에서 영업하고 있는 외국기업에 대해 이러한 규제에서 예외가 되도록 할 것 2) 한국의 노동위원회가 노사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 더욱 노력할 것 3) '무노동 - 무임금' 원칙을 준수할 것 4) 피고용인의 미사용 휴가에 대해 사용자가 금전적으로 보상할 의무가 없음을 명확히 할 것 5) 퇴직금 산출에 대한 유연성 제고 6) 노동자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 엄격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것 이렇듯, 무역을 자유화하고 초국적 자본에게 최적의 투자환경을 선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한일 FTA에서, 노동자들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들은 한낱 '기업 활동의 장해 요인'으로 취급 될 뿐이다. IMF 구제금융으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노동환경의 악화에 시달리도록 했다. 이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정부와 자본은 외자유치를 가로막는 '경제발전의 적'으로 몰아세우며 철저하게 탄압해왔다. 뿐만 아니라 '서울재팬클럽' 등 한국에 진출해 있는 초국적 자본을 대표하는 이들은 "한국의 노동자들이 과도하게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마음대로 정리해고를 할 수도 없는데다가, 툭하면 불법파업을 일삼고 있어서 기업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며, "한국에서 떠나겠다"고 협박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얼마 전 마산 수출자유지대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 '한국시티즌'은 더욱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이전할 것을 시도하다 고용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대면한바 있다. 이들은 일부러 한국인 사장을 고용하여 고의로 적자를 내고, 어용노조에 위로금을 지급할 것을 전제로 공장폐쇄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의 '자본철수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러나 이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불법적인 위장폐업에 맞서 장기간의 파업투쟁을 조직했고, 공장재가동과 고용보장을 내걸고 일본 본사와 직접 교섭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 기업이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을 불법시하고 '손배가압류'를 제기하는 등 가혹하게 탄압하자, 노동조합을 지지하는 연대투쟁이 곳곳에서 조직되고 일본 노동자들의 연대가 쏟아져 결국 체불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는 등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중국으로 이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말이다. 이렇듯 값싼 노동력을 찾아 진출했다가 수익성이 떨어지면 또다시 자본 철수를 일삼는 초국적 자본에게는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필수적이다. 이들에게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법적 조치도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이다. 이들에게 한일 FTA는 마음대로 진출했다가 수익을 남기고 필요하면 아무런 손해 없이 철수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일본 자본의 이러한 요구는 정부가 노동자들의 투쟁을 더욱 효과적으로 탄압할 수 있는 무기가 되는 셈이다. 한일 FTA로 더욱 본격화 될 필수 서비스의 상품화 공동연구회가 '서비스 무역'의 자유화에 관해 제시하고 있는 의견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서비스 무역의 중요성과 이익의 메리트를 고려해서 WTO 논의의 범위를 넘어 고도의 자유화를 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극히 한정된 서비스를 제외하고 모든 서비스 영역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며, '국경간 거래, 해외소비, 상업적 주재, 자연인의 이동 등 모든 공급모드를 망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서비스 분야의 새로운 자유화는 한일 FTA를 체결한 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규제를 감축하거나 철폐하기 위한 정기적인 교섭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한일 FTA를 통한 협상은 WTO-도하개발의제 협상의 결과를 반영할 것을 전제로, 한일 FTA 하에서 규정되는 서비스분야의 양허는 도하개발의제 협상에 의해 규정되는 양허보다 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점에 양국이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야는 통신, 교육, 법률 금융서비스이고, 한국은 일본에 대해 의료서비스 제공자에 관한 MRA(상호인증), 항공운송, 금융서비스 등에 관심을 드러냈다. 이러한 논의를 추동하는 WTO 도하개발의제 서비스협정 협상은 각 회원국들이 상대방국에 개방을 요청하는 분야에 대한 '양허요청안'을 제출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국이 개방할 분야에 대한 '양허안'을 제출한 후, 개별분야에 대해 당사국 간 양자 협상을 거쳐 개방 여부를 확정짓는다. 이 협상은 '일괄 타결'을 원칙으로 하는 도하개발의제 내의 농업협상 등의 협상 진척정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데에 따라 서비스 협상에서도 양허안을 제출한 회원국의 수가 많지 않아 협상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한일 양국은 한일 FTA에서 이루어질 서비스 분야 자유화에 관한 논의가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의 결과를 반영하되, 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이루어 낼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따라서, 양국이 관심을 보이는 분야에서 더욱 빨리 자유화 조치가 취해질 것임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현재 일본에는 교육 및 의료기관을 영리법인화 하는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해 6월 도야마 야스코 문부과학상은 '국립대의 숫자를 대폭 줄이고 경영 개념을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립대학 재편·통합 구상'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립대간 통합 추진하고, 국가기관으로 되어 있는 국립대를 법인화 할 계획이라고 한다. 고이즈미 총리도 '궁극적으로는 대학도 전부 민영화되어야 한다'며 이러한 계획에 힘을 싣고 있다. 이에 따라 사립대학 역시 기업 경영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한일 FTA를 매개로 하여, 교육, 의료 등 필수 서비스에 대한 민중들의 접근권을 박탈하는 방향의 제도개혁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도 교육부를 중심으로 일본과 유사한 대학 구조조정 계획이 추진 중에 있으며, 얼마 전 보건복지부는 경제자유구역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던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설립을 전국으로 확대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흐름은 한일 FTA 논의와 맞물려 더욱 속도 있게 추진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서비스 자유화 논의의 교육 분야에서 다음이 언급되고 있다. 사립학교는 비영리 학교법인만이 설립·경영할 수 있어 영리 목적의 사업이나 이익의 해외송금이 불가능한 점, 잔여재산 처분에 대한 제한, 수도권내 대학 신설 제한 의료 분야 대학(원)의 정원 제한, 등록금 인상에 대한 행정지도 등이 초국적 자본의 침투를 가로막는 요소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보건·의료 분야에 대해서도, 외국의 의료인이 국내에서 자격을 취득하지 않고 의료행위와 의료기관 설립을 할 수 없는 점, 국내 의료인 면허를 취득한 자 이외에 국가·지방자치단체, 의료법인 또는 비영리법인만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점, 이에 따라 과실 송금이 불가능 한 점 등이 꼽히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이러한 논의는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등, 보건·의료 제도 전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렇듯, 서비스 분야에 대한 자유화 조치는 민중들의 삶과 밀접해서 필수적으로 공급되어야 할 것들을 상품화하고, 자본의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도록 한다. 무엇을 더 내주어야 한단 말인가? 이상에서 보듯, 한일 FTA는 노동권, 필수 서비스에 대한 접근권 등 노동자 민중의 기본권을 '무역장벽'으로 취급 하여 철저하게 파괴하고 있다. 게다가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과라고 해 봐야, 산업 내 무역이 활성화되고 통관, 시험·인증 절차가 간소화되어 기업의 거래비용이 감소할 것이며, 업체간 상호 경쟁과 협력을 통해 일부 산업에서 과잉투자가 해소되고 전략적 제휴가 확대되는 효과 정도가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산업구조조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고, 경제개혁을 촉진하는데 한일 FTA가 기여할 것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오히려 공동연구회 스스로도 FTA 체결로 관세가 철폐되면 그 효과는 한국의 산업에 훨씬 더 심각하여 한국의 대일무역수지 적자를 한층 확대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협상에 임하고 있는 한국 정부 역시 평균 관세율과 경제 규모에 있어 한일 양국이 현격한 차이를 지니고 있음에 따라 일부 제조업 분야에 가해질 충격이 단기간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심각하다는 우려를 내보이고 있을 지경이다. 경제가 활성화 되어 고용이 창출된다거나 하는 효과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오직 초국적 자본이 침투하여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영역을 극대화 하고, 이들이 아무런 손해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한일 FTA 체결로 노동자 민중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한일 FTA 체결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상시적인 고용불안, 실업과 빈곤의 만연, 생계형 자살의 급증, 농업포기-농민생존권 말살…. 자본의 위기 극복을 위한 처방에 희생되어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 민중에게 더 내줄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PSSP
미국의 이라크 침략 1년을 맞아 전 세계적으로 '3월 20일 행진'이 개최되었다. 대략 60여 나라 600여 도시에서 200만명 이상이 국제 공동행동에 참여하였다. 한국에서도 '이라크 점령 중단, 한국군 파병 철회 3.20 전세계 반전행동' 집회가 서울을 비롯한 8개 도시에서 열렸다. 당일 시위는 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아프리카를 지나 아메리카에 이르렀다. 주요 국가와 도시의 시위 인원을 최대치로 잡아 보면, 미국이 뉴욕 10만, 샌프란시스코 5만, LA 2만, 시애틀 1만5천, 시카고 1만 등 300여개 도시에서 20만명이 넘게 참가하였고 캐나다 5만, 중남미 3만, 영국 10만, 로마 1백만,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 2십만, 마드리드 십만, 발렌시아 2만, 프랑스 파리 2만, 벨기에 브뤼셀 1만, 그리스 아테네 1만 등 유럽 1백 5십만, 호주 지역 1만 5천, 아프리카 4천, 아시아에서 일본 13만, 한국 1만 등 15만명 등이다. 주류언론에서는 1500만 명이 참가한 작년 2월 15일 국제 공동행동보다 훨씬 부드러워졌고 규모도 작아졌다고 평했다. 그러나 올해 참여국가와 도시는 더 늘어났으며 특히 미국과 아시아에서 그 특징은 두드러졌다. 베트남이나 동티모르, 이라크에서도 연대집회가 개최되었는데, 동티모르에서는 "우리는 미국이 말하는 '해방'을 알고 있다. 미국은 수하르토의 침략과 24년 동안의 불법 점령, 20만 명의 학살과 실종을 지원했다. 우리는 같은 운명으로 고통받는 이라크의 친구들을 본다"라는 성명서가 낭독되었다. 이라크에서는 정치조직, 쉬아와 수니 이슬람, 기독교, 투르크멘, 앗시리아인, 노조 등이 공동성명을 통해 "이라크인들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재앙과 고통이지만,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체코 그리고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라고 연대의 의지를 천명하였다. 뻔뻔스러운 전쟁광들의 자화자찬 조지 부시는 20일 이라크 전쟁 1주년을 기념하는 라디오 주례 연설을 통해 "이라크전은 유엔의 요구를 이행하기 위해, 우리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이라크를 독재자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수행됐다", "이라크엔 해방의 날, 중동에는 전환점이었다", "인간의 자유를 위한 귀중한 진전이었다", "이라크전은 세계를 위해 현명한 처사였다. 사담 후세인 축출로 중동지역에서 침략의 뿌리가 제거됐으며 이 지역 국민에게 자유와 희망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전세계적인 반전의 물결을 외면하면서 침략과 학살, 점령을 정당화하는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다. 럼스펠드는 한술 더 떠 "50년 전 미군이 피를 흘린 결과 한국은 번영과 자유를 누리게 됐다"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쟁도 한국에서처럼 매우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각양 각색의 시위물결, '점령반대, 군대철수' 한 목소리 3월 20일 시위는 북구부터 호주와 남미까지 아시아에서 서유럽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륙 모든 인종이 참가하였다. 그리고 풀뿌리조직에서 정당조직까지, 평화단체나 NGO와 공산주의나 아나키 조직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조직들과 대중들이 참여한 행동이었다. 따라서 각국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많은 슬로건과 구호들이 터져나왔다. 스페인의 경우 3월 11일에 발생한 열차테러로 숨진 200여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부시의 충실한 동맹자인 아스나르 총리를 쫓아낸 기쁨이 공존했다. 마드리드에서는 3월 12일에 수만 명이 모여 희생자들을 추모했고 일주일이 넘도록 이 흐름은 지속되었다. 20일에는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세비야, 사라고사, 빌바오 등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이라크점령 중단과 스페인군 철수, 주권과 자치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플랭카드에는 "전쟁 반대" "아스나르 없는 스페인 만세" "우파의 장례식"이라고 씌어져있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호세 사라마고는 마드리드를 '유럽의 도덕적 수도'라고 묘사했다. 미국에서는 300여 도시에서 열린 반전집회에서 "세계는 여전히 전쟁반대를 외친다", "부시, 당신이 내 아들을 죽였다", "모든 미군을 철수시키라" 등이 요구되었다. 부시의 고향인 텍사스주 크로포드 반전집회에서는 "부시 탄핵" 주장이 나왔고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전쟁비용을 학교, 보건, 실업에 써야한다는 요구도 많았다. 신시내티에서 어떤 참가자는 생화학전용 복장을 하고 나와 벤치 밑이나 쓰레기통을 뒤지며 대량살상무기를 찾기도 했다. 75개 도시에서 몰려든 10만 명이 참가한 영국 런던의 집회에서는 "부시는 세계 제일의 테러리스트", "부시와 블레어 지명수배", "전쟁중단, 거짓말중단" 등의 플랭카드와 포스터가 물결을 이뤘다. 그린피스 2명은 유명한 빅벤 시계탑에 올라가 '진실을 말할 때'라며 블레어를 비난했다. 로마에는 1백만명이나 되는 가장 많은 사람이 결집하였다. 시위대들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부시, 블레어를 향해 "당신들의 전쟁이 우리들의 죽음"이라며 전쟁중단을 촉구하였다. 노벨상 수상작가 다리오 포는 무지개빛 평화 깃발들이 펄럭이는 것을 '거대한 시위'라고 말했다. 호주 시드니에서는 6000여명의 시위대가 '점령중단', '군대철수'를 외치며 반전 집회를 벌였다. 70여개 도시에서 수천여명이 시위에 참가한 독일에서는 람슈타인 미공군기지 앞에 '학살자 생일축하'라는 플랭카드가 걸리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1만여명이 '부시, 샤론, 아스나르, 블레어: 학살자'라고 쓴 플랭카드를 들고 행진하였다. 일본에서는 도쿄와 오사카를 비롯하여 일본 전역에서 약 13만명이 반전시위에 나서 점령 중단과 자위대 철수를 요구했다. 51개 단체가 주최한 도쿄 히비야공원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무력으로는 해결할 것은 없으므로 철수해야 한다", "이라크 침공이후 1만 명이 넘게 숨졌고 자위대 파견으로 일본도 위험에 노출됐다"라고 성토했고 육상자위대 본대가 있는 삿포로와 아사히카와 등에서도 시위가 벌여졌다. 제3세계: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반대로! 서구와 1세계에서 주로 점령중단과 파병철수, 정부수반의 거짓말에 초점을 맞추어 시위가 진행되었다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제3세계 국가에서는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문제 등이 결합되었고 행동도 더 급진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집트 카이로에서는 2000여명의 시위자들이 성조기를 불태우며 미국 정부를 규탄했고 "대량살상무기를 찾지도 못한 채 이라크 민간인만 2만 명 숨졌다"면서 "우리의 피와 영혼을 바쳐 이라크를 되찾겠다"고 성토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500명의 시위대가 경찰저지선을 뚫고 미대사관까지 진격하면서 경찰의 물대포와 곤봉에 맞서 싸웠다. 방글라데시 다카에서는 8개 조직에 의해 시위가 조직되었는데, 주로 미 제국주의와 군사주의에 반대하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반대하는 요구를 내세웠다. 터키에서는 12개 도시에서 시위가 개최되었다. 이스탄불에 3000여명이 모인 것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1만여 명이 참가하여 "점령중단", "미국은 중동에서 떠나라" 등을 외쳤고, 특히 6월 26일에서 29일에 이스탄불에서 열릴 나토 정상회담에 대비하여 부시 방문 반대 투쟁을 펼쳤다. 인도 뉴델리에서는 3000여명이 만디하우스에서 아메리카센터까지 행진했다. 공산주의 정당, 노동조합, 학생단체, 여성조직들이 '전쟁과 점령에 반대하는 시민들' 깃발아래 행진하였고 미군과 동맹군 철수, 제국주의 세계화 중단을 요구하였다. 뭄바이에서는 무슬림 1만여명을 포함하여 여러곳에서 시위가 개최되었고 그 외 방갈로르, 체네, 럭나우, 캘커타 등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니카라과에서는 미국의 개입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개최되었는데 수천여명이 전쟁의 폭력뿐만 아니라 기업의 착취에 대해서도 규탄하였다. 또한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에 대해서도 "우리의 생산과 산업의 적"이라고 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분명히 하였다. 칠레, 산티아고 등 중남미 국가들에서는 비슷한 시위가 이어졌다. 예외적으로 한국에서는 탄핵국면이 검열기제로 작동해서인지 그 수많은 연사들 가운데 누구도 전쟁참여를 결정하고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정권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대한 이렇다할 비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탄핵반대 집회시간에 맞추기 위해 쫓기듯이 집회와 행진이 진행되었고 그 많은 반전피켓은 촛불집회 앞에서 내려졌다. 한편, 이라크에서는 폭력과 점령에 반대하여 수니파와 쉬아파 이슬람교도 3000여명이 바그다드에 모여 "후세인도 미국도 반대한다. 미국은 이라크 땅에서 떠나라"고 촉구했다. 그들간의 단결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는데 쉬아파는 카다미야에서 행진을 시작하였고 수니파는 아다미야에서 행진을 하였다. 두 시위대는 중간 지점의 다리 부근에서 만났고 분위기가 고양되어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는 광장으로 행진해서 점령중단과 모든 이라크인들의 단결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라크에서는 이날도 미군 2명이 공격을 받아 사망했고 바그다드의 연합군 주둔지역인 '그린존'에도 로켓포 공격이 가해지는 등 저항세력의 공격이 이어졌다. 침략 2년 집회를 맞이하지는 말자 세계 반전운동은 2003년에 이어 2004년에도 수백만에 이르는 대규모 국제 공동행동을 조직함으로써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무장한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지구적 운동의 힘을 보여주었다. 또한 스스로 해방전쟁이라 부른 이라크 전쟁이 1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고 세계가 더욱 불안해짐으로써 부시는 국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 부시가 취임 직후부터 이라크 공격에 집착했다는 오닐 전 재무장관의 주장에 이어 9ㆍ11 이전 알 카에다의 위협을 긴급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클라크 전 백악관 보좌관의 증언은 부시에게 타격을 입혔다. 더욱이 전쟁과 점령의 강력한 동맹자였던 스페인의 아스나르가 권좌에서 물러나고 점령중단과 파병군 철수를 공언하는 좌파 사파테로가 집권한 것과 더불어 각국에서 철군 요구가 확대되고 있다. 전 세계 민중들의 더 강력한 연대투쟁으로 반드시 점령군을 철수시키자. 침략 2년 집회는 맞이하지 말자.PSSP ※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웹사이트와 각종 내외신을 참조하였습니다. www.indymedia.org www.unitedforpeace.org www.internationalanswer.org www.focusweb.org www.stopwar.org.uk www.occupationwatch.org www.zmag.org <박스기사> 한국의 파병지역 논란 - 미군철수, 파병철회만이 대안이다 3월 11일 국방부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맡기로 했던 키르쿠크 지역 일부에 미군이 잔류하겠다고 통보해서 미국과 이 문제를 협의중이라고 밝혔다.(미국은 한국에게 전투헬기와 탱크를 보강하도록 요구했다고 알려졌다) 그 지역의 치안질서 유지를 위해 "공세작전"이 불가피하며, 한국군의 전술통제 하에 안정화 작전을 실시하려는 미국의 구상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이런 의사를 지난 2월 24일부터 3월 3일까지 이라크를 방문했던 정부대표단에게도 이미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귀국 직후 황의돈 파병부대 사단장은 "책임지역에 대해 원만히 협의했다"고만 말했다. 결국 국방부는 모든 국민을 상대로 사실을 은폐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연히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파병 일정이 연기될 수 있다"는 식으로 모호한 입장을 취하다가, 19일 "키르쿠크의 치안 악화 때문에 파병지역 변경이 불가피하며, 이라크 전지역을 대상으로 다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게 되었다. 그리고 대체 지역으로는 6월말 스페인이 철군하는 남부 나자프 지역이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한편 이 와중에 한승주 주미대사는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군의 독자주둔이 원칙이지만, 이라크 반군활동에 미군이 대응하지 않으면 반군이 그 지역으로 몰려 우리에게 안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말해 파란을 일으켰다. 미국의 요구가 불가피하며 나아가 합리적이라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사실 파병을 반대해온 여론은 키루쿠크 지역에 대한 말이 나올 때부터 그곳이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했다. 쿠르드, 아랍, 투르크멘 사이의 종족갈등이 내전으로 확산될 위험이 있으며, 이라크 전역에서 외국 주둔군에 대한 적대감이 시간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심지어 노무현대통령은 지난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군이 가서 전투할 곳이 없으며 전투할 상대도 없다"고 말했고, 국방부는 아무 문제없다는 말만 반복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거짓말을 다시 반복하려는데 있다. 주둔 지역을 "안전한" 나자프 지역으로 옮긴다는 게 똑같은 식의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만약 나파즈가 그렇게 안전한 지역이고, 파병이 아무런 문제도 낳지 않을 것이라면 왜 스페인은 서둘러 나자프에서 철군을 하려하는가? 이미 1300여명의 스페인군은 지난해 8월 나자프에 주둔한 이후 정보요원 7명을 포함해서 11명의 스페인군을 잃지 않았는가? 나자프 시내에는 "임시헌법에 서명한 이라크 지도자들은 미국의 하수인이다"라는 구호가 걸려 있고, "미군은 알라바바다"라는 시민들의 주장이 서슴없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한승주 대사가 은연중에 "시인"한 것처럼 미국의 침략과 점령에 동참하는 점령군에게 안전한 지역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거짓말을 거듭하게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점령이 아무런 정당성도 없고 오히려 이라크의 불안과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이 파병을 강행하는 것은 어떤 포장을 달던 '점령군'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고, 결국 그 자체가 갈등 요인이다. 한국군 파병을 전면적으로 철회하고,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즉각 중단시키기 위한 여론과 사회운동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국제 노점상 서울대회 참가기 StreetNet International Congress 2004 2004년 3월 16일~3월 19일 국제 노점상 서울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2002년 11월 발족한 'StreetNet International(국제 노점상 연합)'의 첫 정식 총회다. 지금까지 임시대표체계로 운영해오던 국제 노점상 연합이 정식 지도부를 선출하고, 전 세계 노점상들이 국경을 넘어선 단결과 연대로 싸워나갈 것을 선포하였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10개국에서 15단체 30여명이 모였는데, 준비과정에서 한국대사관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방글라데시, 말라비의 회원들은 참가하지 못하였다. 또한 15일 전노련 이필두 공동의장이 갑작스럽게 연행돼 한국조직위는 준비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국제 노점상대회는 많은 성과를 남기며 성사됐다. 전 세계 노점상들의 단결과 연대의 장 전 세계 노점상들은 불법으로 매도되어 정부과 경찰의 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각 국의 상황을 공유하고 각 국 정부에 맞서 국제노점상 연합에서 공동 대응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노점상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가내노동자, 이주 노동자, 폐지 수집 노동자 등 가난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비공식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을 선포했다. 16일 국제 노점상 연합 개막식 각 국 대표들과 전노련의 회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성사됐다. 한국의 사회단체 및 조직들이 다수 참가하였다. 17일 국제노점상 연합 총회 국제 노점상 연합 초대의장으로 전노련 김흥현 의장선출 향후 3년 간 국제 노점상 운동을 이끌 공식 지도부로 한국의 전국노점상연합 김흥현 의장이 선출되었고 규약개정안과 성명서를 채택하였다. 아직 안정적인 조직운영이 어려운 조건에 있는 나라들이 많은 가운데, 한국의 청계천투쟁을 비롯한 투쟁사례는 각 국 대표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제출되었다. 또한 그들은 현재 국제 노점상연합이 포드의 지원을 받는 등 재정자립이 어려운 데 비해 한국의 전노련이 회원들의 회비 등을 통해 재정 독립을 이루어 운영되는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전노련은 국제노점상연합이 장기적인 전망아래 재정자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제기했고, 국제노점상연합은 한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노력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전노련과 전노총련이 통합해 하나의 조직으로 거듭난 것도 좋은 평가를 낳았다. 이 외에 대륙별 운영위원 배치, 코디네이트 조항을 삭제하고 사무총장으로 통합할 것 등을 대의원 안건으로 제출하려 했으나 사전 5개월 전 안건 심사문제로 제출되지 못하였다. 18일 노점상 정책 토론회 / 사회진보연대-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의 간담회 19일 국제노점상연합 페스티벌 동대문 풍물시장에서 국제노점상연합 페스티벌이 열렸다. 풍물시장은 청계청 노점상들이 쫓겨난 후 전노련의 투쟁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터다. 풍물시장 앞에 무대를 설치하고, 문화제를 했다. 전노련 회원들이 함께 참여해 집회를 하고, 한국음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흘 간의 일정은 다음과 같은 총회결의문으로 외화되었다. 총회 결의문 1>비공식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노동권와 복지를 요구하면서 투쟁할 것이다. 또한 자기 지역과 나라, 더 나아가 전 세계 발전을 위해 노동조합운동 다른 활동가들과 전략적인 동맹관계를 발전시킬 것을 결의한다. 2>외국인과 이주 노점상들 : 외국인 비공식 상인들이 당국의 탄압을 받으며, 뇌물을 요구받고 쫓겨가기 쉬운 처지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우리는 각 국의 노점상들이 서로 자발적으로 무역을 하고 그러한 무역이 노점상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적절한 조건들을 개발할 것으로 결의했다. 또, 2004년 6월 국제노동대회(ILO의 International Labour Conference)에서 외국인 노점상들이 당면한 상황과 문제들에 대해 알려낼 것을 결의했다. 3>아동노동: 우리는 ILO의 최소연령협약 제138호와 최악의 형태의 아동노동에 관한 협약 제 182호를 지지한다. 우리는 모든 아동이 학교에 다닐 권리를 지지하며, 소녀들의 동등한 권리를 증진할 것이다. 아동들이 어른-가족을 위해 일해야 할 필요가 없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성인 노점상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노점상들의 근무지에서 가까운 곳에 저렴한 탁아시설 설치를 추진할 것을 결의한다. 4>정부의 탄압과 단속에 대한 투쟁: 우리 회원들 중 다수가 정부의 지속적인 탄압과 단속을 당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능력이 저해되고 있다. 우리는 전 세계 노점상들에 대한 모든 형태의 탄압에 맞서 부단히 싸울 것이다. 여성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장 빈곤한 노점상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데, 여성들이 당하는 성폭력을 비롯한 노점상들이 겪는 문제들을 널리 알려낼 것이다. 정부 당국이 노점상들, 선출된 노점상 대표자들과의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로 결의했다. 비공식 부문 간담회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함께 국제 노점상 대회에 참가한 단위 중 비공식 부문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인도의 SEWA(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 남아프리카공화국의 SEWU(Self-Employed Womens Union), WIEGO(Women in Informal Economy Globalizing and Organizing)와 간담회를 진행했다. 공식적인 대회가 끝나고 조촐하게 모인 자리에서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각 단위들의 간략한 소개를 들을 수 있었다. 인도의 SEWA는 1972년에 창립된 비공식 부문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다. 인도 전체 노동자 중 단지 8%만이 공식부문에 종사하고 92%에 달하는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이 가내노동/건설 일용직/노점상/폐품 수집 등의 비공식 노동자로서 일하고 있는 것이 인도 노동자들의 현실이라고 SEWA 부위원장이 말하였다. SEWA는 활동의 주요 목표로 완전고용을 내세운다. 완전 고용은 충분한 소득, 육아/주거/보건 등의 사회적 보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고용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SEWA는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지역에 기반한 소규모 회의들을 통해 대표를 선출하고 노동자들이 직접 집행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한다. SEWA의 협동조합은 100여개이며, 예술가, 가축업, 농업, 서비스 조합 등이 있다. 신용협동조합은 1974년에 설립되었으며 여성만이 가입하여 예금, 대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1995년에 SEWA가 주축이 되어 노점상 부문 국제회의를 소집하여 노점상 합법화 쟁취를 의제로 내걸고 회의를 진행하였고 이후 노점상 국제연맹 Street net이 창설되었다. SEWA의 비공식 부문 여성 노동자 조직화 운동은 다른 나라에도 전파되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SEWU, 예멘의 WEEA, 터키에서 동일한 문제 의식을 가진 조직들이 생겨나면서 확산되고 있다. SEWU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자가고용여성노동자협의회라고 한다. SEWU는 가사 노동과 노점 등의 생계를 병행하는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여성들이 직면하는 폭력에 대항해서 싸운다. 여성 능력 고양을 위한 교육/훈련으로 여성 그룹을 형성해서 문맹 퇴치, 글 배우기, 기술 훈련, 컴퓨터 교육 등을 하고, 여성들의 활동력을 배가하기 위해 워크샵을 개최하고 노동자 대학도 운영한다. SEWU는 시당국에서 노점상 정책을 채택하는데 개입하여 시당국과 협상력을 높이면서 노점상들의 권리를 위해 여러 정책적 돌파구를 만드는데 결실을 맺고 있다고 한다. SEWU는 비공식 영역과 관련된 이슈와 활동에 있어 SEWA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활동하고 있다. 앞서 SEWA와 SEWU 활동가들이 모두 여성이었는데 한 남성 간담회 참석자는 자신을 위고 활동가라고 소개하였다. 위고는 미국에 사무국을 두고 있는 비공식 부문 노조를 지원하고자 연구 조사 작업을 수행하는 단체라고 한다. 조직화/도시 정책/통계의 3가지 그룹으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공식 일정이 끝난 후 진행된 간담회 자리라 시간도 적고 여러 한계가 있었던지라 그리고 각 단체들에 대한 사전지식 및 간담회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아서 간담회는 짧게 끝날 수밖에 없었다. 온전한 권리를 누릴 수 없는 비공식 부문의 노동자들을 조직한다는 점과 여성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여성의 빈곤과 노동의 문제를 풀어가고자 한다는 점에서 SEWA나 SEWU의 이러한 시도들은 주목할 만하다. 간략한 간담회를 보충하고자 SEWA에 대한 소개를 담은 글을 참고자료로 덧붙이고자 한다. 빈곤에 맞서는 여성들의 자기조직화: SEWA(Self-Employed Wonen's Association) "빈곤과 폭력에 맞선 여성들의 투쟁", 사회진보연대여성위(준), 진보평론 2003년 여름호 중에서 발췌 SEWA는 인도의 빈민, 자가고용 여성 노동자들의 조직이다. 이는 1920년에 설립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섬유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섬유노동자연합(TLA)로 부터 출발했다. 이 노동조합은 마하트마 간디가 이끌었던 1917년 섬유 노동자들의 파업에 그 기원을 갖는다. 1954년에는 이 노동조합에 페미니즘적인 맹아를 제공한 아나수야 사라파이에 의해 여성분파가 조직되었다. 이 여성분파는 가내 제분 노동자들의 부인들을 지원하고 훈련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1968년까지는 제분노동자들의 부인과 딸들을 위해 봉제, 편물, 자수, 방적, 인쇄, 타이핑 및 속기 수업을 개설했다. 1970년 초반에는 여성 봉제노동자들의 불만과 감독관에 의한 착취의 양상을 조사하면서 활동의 범위를 넓혔다. 조사 과정에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수많은 착취의 사례들이 드러났고, 이러한 상황이 정부의 정책에는 전혀 반영되고 있지 않음이 밝혀졌다. 그러던 중, 의류 판매업에 종사하던 이들이 자신들의 고충사항을 가지고 여성분과를 방문하게 되었고, 100여명의 여성ㅇ들이 참석하는 공식 회의가 조직되었다. 공원에서 이 회의가 열리는 동안, 군중속의 한 여성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것을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으로 1971년에 자가고용노동자 연합인 SEWA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여성들은 SEWA가 노동조합으로 설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가고용 노동자들이 조직된 역사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SEWA의 첫 번째 투쟁은 노동조합 설립허가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노동부는 SEWA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상대해서 싸울 고용주가 없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SEWA는 노동조합은 고용주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닌 스스로 단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주장했고, 마침내 1972년에 노동조합으로 등록되었다. SEWA의 구성원들은 고정된 고용주-피고용인의 관계하에 놓여 있지 않은 행상, 노점상(야채, 과일, 생선, 달걀등의 식료품 및 가재도구, 옷 등을 판매), 혹은 가내수공업, 가사도우미 여성들이다. 인도 GDP의 64%가 이러한 여성노동자들의 기여로 형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조직된 노동자들처럼 안정적인 소득과 복지 혜택을 비롯해서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SEWA는 여성노동자들이 노동, 소득, 식량에 있어서 안정성과 거주지, 보건의료, 육아에 대한 사회적인 보장을 쟁취할 수 있도록 조직화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상정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그리고 의사결정에 있어서 자율성과 독립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SEWA는 크게 두 가지의 전략을 취한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성들에게 부과된 억압과 제약을 무너뜨리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여성들이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도록 하는 독자적인 대안적 경제시스템을 형성하는 것이다. SEWA는 협동조합, 농촌 빈곤 감축 프로그램, 사회적 서비스 제공자들의 조직, 저축 및 신용 프로그램 등을 독자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스스로 고용을 창출하고, 여성들에게 육아 등의 재생산 노동이 사회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조직하며, 빈곤한 여성들을 지원한다. SEWA 내에는 유제품 생산, 장인, 서비스-노동, 농업, 판매 분야의 약 84개의 협동조합이 있으며, 11, 610명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협동조합의 재산에 대한 지분을 가지며, 동시에 일자리를 제공받는다. 한 명이 한 개 이상의 협동조합에 소속되는 것이 가능하며, 각각의 협동조합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노동자 실행위원회를 통해 운영된다. '농촌지역 여성과 아동의 발전(DWCRA)'은 정부가 지원하는 빈곤퇴치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하는 소규모 그룹이다. 각 그룹은 15-20명의 빈곤선 이하의 농촌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SEWA내에는 이러한 그룹이 181개 있고, 2,981명이 이러한 그룹에 속해있다. 각 그룹은 25,000루피를 제공받아 스스로를 부양하고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의 종자돈으로 사용한다. 또한 SEWA내에는 '사회적 서비스 제공자들의 조직이 있다' 보건의료 혹은 육아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6개의 조직이 있는데, 이들은 다른 여성들에게 육아를 비롯한 보살핌 서비스를 제공해줌과 동시에, 스스로는 일자리를 얻는다. 또한, 농촌지역에서 여성들은 스스로의 저축 그룹을 형성하여, 집합적 자본을 스스로 운용한다. 마을을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그룹을 통해서 여성들은 자신의 명의로 자산을 형성할 수 있다. SEWA는 빈민 여성들이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을 얻게 되고,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며, 건강을 보장받고, 육아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때, 일정한 거주지를 갖게 될 때 여성들의 성장과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조건을 보장받기 위해 '완전한 고용'과 '독립'을 목표로 상정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목표의 달성 정도와 SEWA 활동의 진척정도를 가늠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열 가지의 질문을 척도로 활용하고 있다. ① 일자리가 더욱 확대되었나? ② 여성들의 소득이 늘었는가? ③ 여성들은 식량과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고 있는가? ④ 건강상태는 양호한가? ⑤ 육아에 대한 지원을 받고 있는가? ⑥ 거주지가 있는가? ⑦ 자산이 늘고 있는가 (예를 들어 자기 명의로 된 저축, 토지, 집, 작업장, 작업도구, 자격증, 신분증, 협동조합에서의 지분 등) ? ⑧ 노동자들의 조직력은 증대되고 있는가? ⑨ 노동자들의 지도력은 늘어나고 있는가? ⑩ 집단적인, 개인적인 독립을 성취했는가? SEWA의 이러한 시도는 여성들 스스로가 운동을 통해 힘을 얻고,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기여를 가시화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강요하는 여성들의 빈곤과 불평등의 상황을 뛰어 넘는 대안적인 사회적, 경제적 질서를 운동을 통해서 형성해 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PSSP
3월 30일 오전, 강남 도곡동의 타워팰리스 앞에서는 빈곤해결을위한사회연대(준)(이하 빈곤사회연대)의 출범기자회견이 있었다. 한국사회 부의 상징인 타워팰리스, 싯가 30억을 호가한다는 그 주거단지 앞에서 치뤄진 출범기자회견은 타워팰리스의 명성과 그와는 극단적으로 다른 빈곤한 삶의 주체들이 외치는 요구들로 인해 충분한 기사거리가 되었다. 2001년 12월 최옥란열사와 노동사회단체들이 명동성당에서 진행한 '민중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것의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 "기본생활권쟁취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현실화를 위한 연석회의(이하 기초법연석회의)라는 연대 단위를 결성하였다. 2002년 하반기 기초법 공대위로 활동하다가 2003년 참여단체를 27개 단체로 확대하고 기초법제도개선 요구, 상담 및 교육, 주간사업 등을 진행하였으며, 2003년 11월 24일부터 12월 3일까지 서울역에서 '빈곤문제 해결과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투쟁'을 전개했다. 그후 기초법연석회의는 기간의 활동평가를 통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에 국한되지 않는 활동을 전개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즉, 빈민·장애·주거·노숙·실업·복지등 기존의 각부문별로 나뉘어 빈곤문제에 대응하던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고,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을 넘어서 부문과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빈곤문제의 전반적인 사안과 근본적인 원인에 대응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하에 기초법연석회의는 명칭을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으로 개칭하고 체계를 개편하는 한편 각 영역과 부문의 참여를 확대하였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빈곤문제는 더욱 심각해져가고 있다. 계속되는 생계형 자살과, 360만의 신용불량자, 그리고 134만의 수급자와 그나마 수급권에서도 탈락된 400만에 이르는 사각지대 빈곤계층. 서울에만 3만가구가 넘는 단전단수 가구와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병원조차 가지 못하는 체납자들, 52만원의 최저임금으로 점점 더 가난해지는 상황속에서도 항상 해고의 위협에 놓여있는 불안정노동자들. 더이상 빈곤의 문제는 일부계층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으며 사회구성원의 다수를 위협하고 있다. 얼마전 정부는 '참여복지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총선용 선심정책이라는 언론의 비난에 대해 '준비된' 계획이었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5개년 계획은 구차하기까지 하다. 빈곤문제의 심각성에 임기응변식으로 제출했던 졸속대책들을 이름만 바꾸거나 기존의 추진계획중이었던 계획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참여복지 5개년 계획은 빈곤원인에 대한 최소한의 접근이나 빈곤규모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근거조차 없이 제출되었다. 또한 이를 추진할만한 예산 확보 계획도 부재한 상황이다. 그러나 '참여복지 5개년 계획'의 의도는 분명하다. '참여'라는 기치아래 다양한 NGO의 포섭과 그 참여에서 배제되어 있는 빈곤대중의 막연한 '기대'와 그 기대에 대한 절망으로 표출되는 분노를 '관리'하는 효과가 그것이다. 빈곤사회연대(준)는 이러한 막연한 '기대'를 걷어내고 복지를 권리로서 요구하고자 한다. 최소한의 생존을 넘어서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제도나 정책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빈곤 주체들의 당당한 자기 권리와 요구로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빈곤문제 해결 영역에서의 주체형성은 미약한 상태이다. 대중적 기반을 가진 조직들은 현안투쟁으로 집중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조직은 대중적 기반이 미약한 상황이다. 이는 조직역량만의 문제라기보다는 기본생활권 영역에서의 주체가 거의 전무한 상황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운동의 화두로 제기되고 있는 빈곤문제와 이의 각 영역의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지속적인 사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사업은 한 지역이나 단체적 차원에서 진행하기 어려움이 있다. 빈곤문제 및 기본생활권 영역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와 공동의 투쟁, 교육이 병행되었을 때 권리의식의 확대와 주체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많은 조직들이 빈곤문제 해결을 주요한 과제로 삼고 있으나 구체적인 활동계획은 부재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각 영역의 요구를 모아내고 투쟁의 전선을 만들어 내는 것, 이를 가능하게 하는 연대구조는 여전히 유의미하다. 다양한 부문별, 지역별 단위가 모여 자신의 요구를 표출하고 그를 기반으로 공동의 이해와 요구를 만들어 나가면서 지속적인 투쟁과 교육을 통해 빈곤문제의 주체로서 서게 될 것이다. 또한 빈곤해결과 기본생활권 쟁취를 위한 개인과 단체의 유기적인 결합이 가능한 소통과 연대의 틀을 만들어갈 것이다. 빈곤사회연대(준)는 출범과 함께 다음과 같은 5가지 요구를 내걸었다. 첫째,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기본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라. 둘째, 기초생활보장 취지에 맞게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실질적으로 개혁하라. 세째, 주택의 투기화를 막고,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기본 주거를 보장하라. 네째, 영유아 보육의 공공화, 의료급여 본인부담상한제, 노인 무료요양시설 등 사회복지서비스를 확대하라. 다섯째, 세제, 재정개혁에 박차를 가하여 사회복지재원을 대폭 확대하라. 2004년에는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주거권 확보를 중심으로 사회복지서비스, 사회복지예산에 대한 부분까지 포괄하여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빈곤사회연대(준)의 발족은 한국사회에서 드러난 빈곤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전체 사회의 책임임을 밝히는 비판 선언이며, 노동을 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사회구성원은 최소한의 기본생활을 영위해야 한다는 권리선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