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량실업 직후 실업운동의 양상과 약평. 1) 대량실업 직후 실업운동의 양상 - 부산 실직자 거리행진 경제 공황 초기인 1998년 4월 부산, 실직자 권리를 선언하는 최초의 실업자 거리 시위가 있었다. '실직자 거리행진 준비위원회'의 주최로 열린 실직자 거리행진에는 부당해고된 파라다이스호텔 노조와 한국노총에서 탈퇴하여 민주노총에 가입한 트롤선 선원노조, 부산지역 건설일용노조, 그리고 일반 실직자들과 시민, 학생들이 참가하였다. 부산의 '실직자 거리행진'은 매월 셋째 토요일을 '실직자 거리행진의 날'로 정하고 거의 1년동안 거리행진을 진행하였다. 수차례의 행진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실업자군이 형성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실업자들은 행진에 합류하지 않았다. 이후 노숙자들을 우선 조직하기로 하고 '노숙자 자활추진위원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으나 주체가 행방불명 되는 등 모임 자체가 흐지부지 되었다. 다양한 시민사회종교단체들이 '행진'을 매개로 결합했으며, 행진초기 실직자의 주체적 결합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실직자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행진'만을 지속하는 것은 그들을 결합시키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자평을 남겼다. - 일용직·저소득노동자 실업대책협의회 98년 6월에는 정부의 실업대책이 한계계층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거나 취약하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임시직·저소득 노동자의 실업문제대책을 요구하는 집단 움직임이 있었다. 주로 빈민지역에 뿌리를 두고 활동해온 빈민운동단체들이 중심이 돼 결성된 '일용직·저소득노동자 실업대책협의회'는, 일용직·저소득 실업자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과 복지정책의 토대 구축, 노사정위원회에의 대표 참여, 대규모 공공사업 조기 발주, 원스톱 서비스센터 설립 등을 요구하면서 기자회견과 가두 시위를 벌였다. 건설일용노동자 및 지역빈민운동단체로 구성된 실업대책협의회는 정책단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실업대책협의회는 전국적인 실업극복단체의 연계를 제안하며 전국적인 실업정책생산단위로의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회의'를 구성하였으며, 서울은 '서울지역실업극복연대'로 전환하게 된다. - 실업자동맹(준) 98년 12월 22일 전국실업자동맹(가칭) 준비위원회가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결성식을 갖고 99년 상반기까지 전국실업자동맹을 건설할 것을 결의했다. 결성식을 가진 실업자동맹 준비위원회는 일주일에 27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반실업자를 포함한 모든 실업자와 실업운동의 동조자들에게 회원자격을 부여하는 내규를 통과시켰으며, 실업자들의 생존권 확보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자주적 노력을 하기로 결의했다. 실업자동맹 준비위는 이어서 실업자들의 가장 절박한 문제로 △안정된 일자리의 마련 △실업자 지원을 위한 별도의 실업부조금고 등 지원대책 수립 △노숙자에 대한 인간적인 대책 마련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실업자동맹은 국민승리21이 중심이 되어 구성되었으나 이후에 독립적으로 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서울역 선전전의 진행해 실직자 주체를 형성하고자 했으며, 구호활동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실업극복사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주체가 불안정하고 지속적인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면서 조직이 해산되었다. 실업자동맹(준)은 실직으로 인해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던 주체들이 모여 결성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 실업자대회 98년 4월 23일 1차 실업자대회를 시작으로 10월까지 6차례의 실업자대회가 개최됐으며, 8월 26일엔 전국의 13개 실업운동 단체들이 전국실업운동단체연석회의를 결성하였다. 이는 IMF범국본을 중심으로 진행된 것으로(현재의 민중대회 형태) 실직자들의 실질적인 조직이라기 보다는 운동진영내의 주요과제로 실업의 문제를 부각시켰다는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 전해투의 '실업자투쟁' 전해투는 '실업자운동'이라는 광범위한 표현보다는 '투쟁'을 조직한다는 것에 전해투 사업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실업자운동 또는 사업으로써 취업알선, 상담 등의 구제사업은 전개되고 있지만 실제 실업자들의 근본적인 요구를 내걸고 실천적인 행동으로 투쟁하는 것은 소극적이다. 따라서 전해투는 원상회복·고용승계를 요구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실업자 군으로 규정하며 이들을 우선 전국적으로 묶어 세워 투쟁을 힘있게 조직하는 것을 중심사업으로 하고 '실업자 주체들의 투쟁'으로 실업문제를 직접 제기해 들어가는 것이다. 전해투는 독자적 계획으로 서울역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한 캠페인과 집회투쟁을 조직했으나 한계가 있었고, 정리해고 저지투쟁, 정리해고노동자의 원상회복투쟁, 고용승계투쟁을 '중앙집중화'시키기 위한 전국순회투쟁을 했다. 전해투는 '실업·해고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가장 절박한 요구의 함축적 의미인 '완전고용'이라는 공세적 요구를 내걸 때만이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양보를 쟁취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실업반대! 완전고용!'의 구호속에 1차 순회투쟁을 전개했다. - 청년실업 1) '민중의 기본생활권 쟁취와 청년실업 대책 수립을 위한 전국학생특별위원회' 2) 청년실업운동본부(준) - 민우회, 여성실업자 '희망선언' 한국여성민우회는 전문대 이상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여성실업자들로 구성된 [희망선언]을 발족하여 활동했다. 여성청년실업자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희망선언]은 여성실업자의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안 등을 제출하며 활동했으나 조직적 확대를 이루지 못하고 해산하였다. - 사회진보연대 실업정책생산모임 사회진보연대는 99년 2월 '실업정책생산모임'을 구성하여 실업운동에 대한 정책논의모임을 진행하였다. 실업의 원인과 실업운동의 이념과 과제를 밝히고자 했으며, 실업운동에 결합하여 정책적 역할을 담당하고자 했다. 99년 10월 '실업자 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의 책을 발간하고 이후에도 정책제언 등의 활동을 전개했으나, 논의주체들이 불안정해져서 지속되지 못하고 2001년 해산한다. - 민주노총 고용안정센터 민주노총은 98년 상반기, 고용안정 및 실업대책사업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취업알선 및 능력개발센타'를 설치할 것을 논의 하고, 민주노총내에 고용안정센터의 건립과 '실업자종합지원센터'의 적극적 결합을 통한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게 된다. 민주노총은 99년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의 지원을 기반으로 한 '실업자종합지원센터'의 건설과 함께 서울센터 및 전국을 연계하는 지역지원팀의 주관단체가 된다. 민주노총은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의 운영위원단체, 실업자종합지원센터 (서울센터)지역지원팀의 주관단체, 전실연 건설이후 전실연 사업의 주관단체(공동대표-민주노총 위원장, 집행위원장-고용안정센터소장, 사무국-고용안정센터 내 설치)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실업극복운동의 주요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정부 및 한겨레,MBC,종교단체,시민단체,양대노총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관협력조직이며, 대량실업이후 조성된 실업기금(1,200억)을 운용하는 단위이다. 다양한 실업자구호사업을 민간단체에 위탁하여 진행했다.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의 재원을 바탕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사업을 매개로 모인 실업자들을 교육하고 조직하고자 했다. 이후 실업운동의 주된 흐름을 형성하게 되는 이러한 경향은 '구호사업, 취업알선, 민간위탁 공공근로' 등을 통하여 지역의 저소득, 중고령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의 재원은 수많은 종교,시민,지역단체들의 실업극복사업의 참여를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실업'사업을 위한 새로운 단체들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 되었다. 2) 약평 대량실업 초기에 실업운동은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으로 인식되었다. 이는 실업운동이 존재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실업자와 사회위협으로 느껴지는 실업의 문제가 새로운 운동기반을 형성할 것이라는 기대에 따른 것이었다. 대량실업 초기 등장했던 '실업자동맹'이나 '실업자 거리행진' 등은 실업문제의 정치적인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었으나 더 이상의 자기계획을 가지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민중진영의 실업문제에 대한 대응은 더욱 단명했다. 대량실업 초기에는 노동사회운동단체를 망라하여 실업문제에 대한 입장과 대응방향이 쏟아져 나왔다. 민주노총이나 진보정당에서는 '실업자 조직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했고, 사회운동진영에서는 노동, 경제, 여성, 복지, 정보통신, 보건의료 등 각 부문에서 나타나는 실업의 문제를 진단하고 각각의 대응과 총체적인 실업운동이 필요함을 제기했다. 그러나 실업률의 하락과 함께 실업의 문제가 수그러들면서, 실업문제는 경기가 악화되고 있음을 나타나는 사례로, 문서에나 등장할 뿐이었다. '실업운동'은 근본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으로 인식되지 못했다. 조직화에 있어서도 실업자 대중의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채 무조건적인 조직화의 강조는 조직화에 있어서의 철저한 실패로 드러났다. 실업노동자는 행진 대오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며, 정리해고된 노동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이시기 하나의 쟁점이었던 '실업자 노조가입'의 문제는 현장과 연결되지 못했다.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이를 제기하였으나 노사정위 협상내용의 하나일 뿐 실업자(정리해고자)들이 노조가입을 요구하거나 조직하는데는 실패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실업이 바로 생존의 위협으로 직결되었던 대다수의 실업자를 지원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실업자 풀(pool)을 형성, 조직하려는 흐름이 생겨났다.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의 재원을 바탕으로 하여 진행된 사업과 센터들이 그것이다. IMF 직후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들을 보면서 국민 상당수가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인식하여 출발한 실직자 지원사업은 쌀나누기, 시레기 나누기, 월 15만원지원 등의 지원사업을 펼쳤다. 운동진영의 일부에서 IMF재협상을 주장하고 거리로 나올 때에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된 구호사업에 대한 평가는 다음 두가지다. 구호사업을 통해 실업노동자와 만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조직화하는 매개가 되었다는 평가와, 결국 실업노동자들의 분노를 관리하고 잠재우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제출되었다. 실업자구호사업은 국가의 위기상황에 대해 민간단체가 그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과 대책마련을 요구하는 방식이 아닌, 정부나 언론의 '실업극복 캠페인'이나 '금모으기 운동'에 조응하여 민간단체가 앞장서서 근거없는 희망을 유포하고 위기관리를 위한 지원으로 표현되었다. 구호사업의 또다른 영향은 실업단체의 활동이 지원사업을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사업'을 중심으로 국한되었다는 것이다. 즉, 실업단체에서 진행하는 구호사업이 중단될 경우 실업자를 만날 수 있는 통로자체가 사라진다는 인식이 존재했다. 실업자를 만나려면 사업이 있어야 하고, 사업이 진행되려면 재정과 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은 실업극복국민운동이나 지자체의 지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을 낳았다. 2. 2000년 ~ 2003년까지의 실업운동 가장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던 2000년 2월 이후 실업률은 계속 하락했다. 2000년부터 꾸준히 낮아진 실업률은 '실업'의 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에서 멀어지는 과정이었다. 정부의 실업대책의 축소 - 공공근로 축소 - 와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의 지원으로 문을 연 전국 100개 실업자종합지원센터에 대한 지원중단은 변화된 실업의 양상과는 무관하게 실업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에서 벗어난 상황을 반영했다. 99년 결성된 실업단체의 전국적인 연대체인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회의'(이하 전실연)는 거의 유일한 실업운동조직으로 남아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의 해소 논의는 전실연이 사회적으로 실업운동의 요구를 제기하고 활동하기보다는 실업운동진영내의 재편과 재정지원문제로 국한된 측면이 존재한다. 1) 실업자종합지원센터와 조직화 99년 시범적으로 시행되었던 실업자종합지원센터는 2000년 전국 100개 센터로 확대되었으며, 2001년 실업극복국민운동의 지원중단으로 인해 많은 단체들이 센터사업을 중단했다. 그러나 취업알선, 생활·노동법률상담, 생계비 지원 및 기타 복지지원프로그램들을 수행했던 지원센터는 지원의 중단과 재개 등의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도 37개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실업운동에서 지원센터사업은 실업자의 조직화를 위한 유의미한 거점으로 인식되었다. 즉, 센터를 중심으로 실업자들이 모이고 각각의 사업을 통해 교육 및 주체를 조직화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센터들이 공공근로 참여자나 생계비지원대상을 중심으로 상조회 등의 모임을 만들었으며, 취업알선상담을 통해 직종별 모임을 구성하고 노동조합의 구성까지를 논의하기도 했다. 생계비 지원 등 구호사업의 중단 이후에는 취업알선과 수급권 상담을 주요한 조직화의 매개로 판단하고 주요사업으로 배치했다. 취업알선의 경우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일용직 중심의 실업노동자가 대부분이었기에 이들을 중심으로 직종별 모임을 구성하고, 낮은 임금에 반대하며 최소한의 노동법을 준수하도록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센터운영 자체를 기금에 의존했던 실업단체들은 기금의 중단으로 인해 절반 이상이 센터사업을 중단했으며, 일부 남아있는 상조회 등의 모임도 지역내 소규모 공동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모임은 구성되었으나 일자리의 중단이나 지원이 중단되면 해소되는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나마 '지역주민 조직화'에 중심을 두고 활동했던 센터들은 지역운동단체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러한 지역단체들은 지역내 주민들의 이해와 결합하는 주제로 활동의 중심을 변화하였다. 이는 일상적인 주민의 조직화를 목표로 하기에 조직화의 매개로서의 센터사업은 스스로의 목적과 방향을 정립하지 못한채 지원여부에 따라 운영이 흔들리는 한계가 있었다.. 실업자종합지원센터에 대한 평가는 정부나 기금을 '활용'한다는 입장에서 출발하였으나 결국은 스스로 '관리의 주체'가 되거나 활동의 범위를 오히려 국한시켰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현재에도 많은 단체들이 정부나 민간기금을 '활용'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지역내 거점으로의 이러저러한 센터의 건립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회의 전실연은 고실업, 장기실업이 고착화되는 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사업을 전개하였던, 노동, 여성, 시민사회, 종교, 빈민, 장애인 등의 단체들의 전국적 연대기구이다. 또한 전국적으로 개별화된 실업운동의 구심을 세우기 위한 활동을 목적으로 한 기구이기도 하다. 전실연은 사회적으로 상대적 소외계층의 실업문제를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궁극적으로는 실업자를 주체로 한 조직화가 목적이었다. 전실연은 전국적 연대의 틀을 마련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실업자를 포함한 소외계층의 권리를 지켜내고 나아가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영역을 확대하는 사업을 중심에 두었다. 2000년 공공근로 축소와 센터사업의 확대는 전실연의 활동과 기반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2001년 센터사업의 중단과 실업단체들의 자활후견기관으로의 전화는 전실연으로 하여금 연대기구의 성격과 목표를 분명히 할 것을 강제했다. 전실연은 실업운동의 방향논의를 위한 실업단체 설문과 논의를 통하여 '전실연은 '실업'의 문제를 주제로 하는 단체들의 아니라 '실업운동체'임을 분명히 하고, 전실연의 정체성 및 지향은 실업문제 및 실업운동에 대한 방향제시를 통해 사회운동속에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러한 실업단체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실연은 실업단체의 유지·존속을 위한 상층협의에 중심을 두었으며, 전실연의 제도화와 민간고용안정센터 등을 추진하였다. 전실연은 실업운동의 요구와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사회적운동으로 제기하며 투쟁하기보다는 실업단체들을 유지하거나 실업기금을 민간기금화하기 위한 협상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3)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 대량실업 직후 조성된 1,200억의 민간실업기금을 운영하는 민간대책기구가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이다. 그러나 민간단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기금이 근로복지공단에 포함되어 있으면서, 실질적인 기금의 운용은 정부주도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업극복국민운동은 대량실업 초기 다양한 구호사업에 기금을 지원했으며, 2000년 전국에 100개의 실업자종합지원센터에 재정을 지원했다. 그러나 2001년 센터사업의 중단과 실업극복국민운동의 해소논의를 거쳐 2003년 해소하게 된다. 운영위원에 민주노총, 여연, 경실련 등이 참여하고 있는 실업극복위원회는 겉으로는 민간운동기구를 표방하고 있으나 사실상 실업단체의 활동을 규제하며 관리하는 역할을 해왔다. 구호사업 이외에 '실업자 조직'사업에 기금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각 센터와는 사업을 '약정'한 관계라는 이유로 실업극복국민운동의 의사결정이나 최소한의 논의결과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를 둘러싼 평가의 지점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국민운동의 사업이 정부의 실업대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희석시키는 관리자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러한 관리자의 주도적인 역할을 민간단체들이 담당하거나 혹은 묵인했다는 평가이다. 결국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를 민간대책기구로 내세우며 실업자조직운동을 관리하고 실업자대중의 불만을 무마하고자 했던 정부의 의도와 이에 대한 비판보다는 기금을 중심으로 스스로 그 관리주체를 자임했던 민간단체의 문제점인 것이다. 3) 약평 - 실업운동의 과제와 목표 부재 실업운동진영의 활동이 가장 왕성했던 2000년은 '자활'사업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집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월 말 자활후견기관 신청을 앞두고 제 실업단체들은 앞다투어 자활사업에 대한 계획을 제출하였다. 자활후견기관 신청이 마무리되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논의가 진행되었다. 또한 5월말로 들어서면서 실업운동진영의 쟁점은 공공근로 축소반대, 실업예산 확충으로 맞추어졌다. 3단계 공공근로의 대폭적인 축소는 전국의 실업노동자들을 한자리로 모이게하며, 3000명이 모이는 실업자대회를 가능하게 했다. 자활사업·국민기초생활보장법·공공근로의 3대 쟁점사안에 대한 대응과 계획을 중심으로 실업운동진영은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나 3대 쟁점을 관통하는 실업운동의 요구는 모호했다. 현안에 대한 구호는 존재했으나, 실업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는 부재했다. 전실연은 2001년 논의를 통하여 실업문제의 사회화와 실업운동의 주체형성, 연대운동의 강화를 목표로 설정했으나, 구체적인 요구나 사업으로 확대되지 못한채 흐지부지 되었다. 대량실업 직후 'IMF 재협상', '구조조정, 정리해고 반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외에 실업운동진영이 자신의 정치적 요구를 명확히 한적이 한번도 없다. 또한 현재 일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임금인상과 고용안정을 위해 싸우고 이미 실업자가 된 사람들을 위해서는 사회적 안전망을 요구한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취업자와 실업자가 원하는 것은 "안정적인 일자리"이다. '안정적이고 떳떳한 일자리의 적극적 창출'은 계속적으로 강조되고 확인되어야할 요구임에도 이는 선명하게 제출되지 못했다. - 실업자에서 '실업노동자'로 이시기 실업운동의 유의미함은 그동안의 '실업극복'사업에서 '실업운동'으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한다는 요구들이 분출되었다는 것이며, 실업자를 '실업노동자'로 규정하며 주체조직화운동에 대한 고민을 확대했다는 것이다. '실업노동자'라는 언명은 실업자와 노동자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조건에 서 있다는 원칙적인 관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구조조정 상황에서 모든 노동자는 잠재적으로 실업의 위험을 가지며, 실업자들은 영원히 실업상태를 지속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불안정한 노동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노동자나 실업자 모두는 자신의 노동을 팔아야만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실업자와 노동자라는 대립적 개념이 아니라, "실업노동자"라는 인식을 통해서 양자의 동질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업자가 중장년실업자인가 청년실업자인가 정리해고자인가과 무관한 것이며, 노동자라고 하는 규정자체가 '노동조합'이라는 조직형태로 귀결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 실업운동/제3섹터운동 실업운동진영이 논의를 돌아보면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편의상 이름을 붙이자면 실업운동/제3섹터운동의 논의가 그것이다. 실업극복활동의 방향성을 실업자'운동'으로 잡을 것인가, 아니면 지역의 자활사업·제3섹터사업을 통한 지역운동의 영역으로 잡을 것인가 하는 논점이다. 이러한 논의는 표면적으로 활발히 진행되지는 못했으나 둘다 계속적으로 제기되면서 단체 및 활동가들의 주된 고민의 한축이었다. 이는 실업운동에 대한 고민을 활발하게 하는 긍정적 요소를 지녔으나 거꾸로 그 둘을 선택 혹은 다른 지점의 문제로 사고하는 편향을 낳았다고 보여진다. 즉 실업자운동이라는 포괄적 영역과 자활사업 등 하나의 영역의 문제를 동일한 심급으로 보면서 전자에 있어서는 구체성의 결여를, 후자에 있어서는 운동성의 배제를 가져오는 경향이었다. 여기에는 자활사업에 대한 과도한 긍정성 부여, 혹은 이를 통한 대안의 모색에 대한 맹목적 의미부여가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논의를 통하여 암묵적으로 실업극복단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할 것을 강제받았다. 지역의 기반과 '선의'를 가지고 정부의 비판적(혹은 경쟁적)협력자로 남을 것인지, 실업의 '제거'를 위하여 실업대중 스스로가 조직하는 길고 지난한 투쟁의 길에 나설 것인지. 그러나 논의는 지속되지 못했으며, 자활사업 및 제3섹터논의는 자활후견기관의 몫으로 넘겨졌다. 실업운동이 지속되면서 실업운동의 방향과 요구를 밝히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활동이 진행되면서 실업운동은 재편되지 못했다. - 사회·민중운동과의 연대의 단절 실업운동진영은 사회·민중운동진영과의 연대를 어디로부터 꾀할지 알지못했거나, 역량의 한계를 이유로 뒤로 밀어놓은 듯 하다. 그러나 실업운동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실업의 '제거'에 있다면 실업과 불안정노동을 강요하며 빈곤을 확산시키는 원인이 신자유주의 정책과 구조조정에 있음을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이는 어느 한 세력의 역량으로 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각각의 차이는 있다할지라도 이에 대해서는 투쟁의 한 괘를 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에 '자주성'을 기반으로 한 '연대성'의 구현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결국 실업운동진영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실업노동자로의 목소리를 내거나 실업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며, 부문의 운동으로 스스로를 국한시켰다. 또한 투쟁하는 주체들의 연대를 통한 실업운동의 제기와 주체의 조직화로서의 실업운동이 아닌 '스스로의 조직'을 위한 활동이 중심이 되며 사회운동으로의 실업운동을 제기해내지 못했다. 3) 2004년 현황 전실연은 상반기 수련회를 통해 법인 총회를 열고 법인 설립을 결정했다. 전실연은 사회적 일자리에 대한 전국적인 사업단을 구성하여 그중 여성일용가사사업단을 브랜드화('우렁각시')하여 발족했다. 전실연은 향후 실업운동의 방향에 대해 실업노동자의 조직을 통한 주체운동으로서의 묘연함과 '실업'을 중심으로 활동하기 어려움을 제기하며 정책적 역량을 강화하고, 모니터링 등을 통한 대정부 정책제안을 제안하고 있다.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 해소 이후 남은 기금은 '실업극복국민재단'이 설립되어 운영하고 있다. 실업극복국민재단은 '일자리만들기운동본부'를 제안하여 발족을 앞두고 있다. 3. 실업운동의 평가와 과제 약평을 통해서 실업운동의 시기별로 평가할 지점들을 서술했다. 실업의 원인에 대한 진단을 통해 실업운동의 목표와 요구를 설정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실업운동의 목표와 요구의 부재는 결국 실업운동이 운동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수행하기 보다는 '물질화된 조직'으로 화석화되면서, 스스로의 활동을 축소시키는 경향을 낳았다. 그렇다면 실업운동은 무엇인가? 실업운동이 실업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실업'의 원인을 제거하고, 모두가 떳떳하고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스스로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동안 온전한 의미에서의 실업운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실업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와 실업자에 대한 구제정책만 있었을 뿐이다. 많은 실업단체들이 있었지만 실업노동자들은 실제로 실업운동에서 주체로 서지 못했다. 실업노동자들은 구호의 대상으로 전락되었고, 자신들의 요구에 근거한 독자적 조직을 꾸리는 데 실패했다. 실업노동자들의 권리를 당연한 권리로 인정하게 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즉, 실업자운동으로의 실업운동은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대량실업 초기 거리로 밀려나온 실업자들을 조직하거나 정리해고된 노동자의 조직화를 통해 실업운동의 주체를 형성하려던 시도는 실패했다. 그 이후 일상적인 사업을 통해 중고령 장기실업자를 조직하려던 시도는 지금도 진행중이나 아직까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실업노동자'는 누구인가? 노동의 유연화로 인한 노동의 불안정화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을 실업의 위협에 놓이게 했을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게 하고 있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실업노동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불안정한 일자리를 떠도는 노동자들과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중고령장기실업자와 청년실업자. 이러한 실업노동자들의 다양한 군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과 계획없이 실업노동자의 조직화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다. 또한 '실업노동자'의 '조직'에 대한 상조차 불분명하다. 그동안의 논의속에서 노동조합(일반노조 혹은 실업자노조)이나 자조모임 등의 상이 제시되었으나, 어떠한 것도 정확한 조직적 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 실업단체들의 활동은 '실업운동이라기보다는 실업이라는 현실공간에서 다양한 배경과 지향을 갖는 단위들이 운동적 접근을 하고 있는 상황(실업운동의 전망과 과제, 김홍일)'이었다. 이는 '실업문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운동의 연대와 결합이라는 긍정적 차원과 함께 실업운동의 단일한 지향과 목표설정의 한계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업단체들은 '실업'이라는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왔으며, 사안적 연대라기 보다는 '실업문제'에 대한 일관된 정책방향을 제시할 것을 요구받았다. 즉, 다양한 요구는 실업운동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 실업문제 및 실업운동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일관된 정책제시와 실천을 통해 정체성을 확보,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인식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실업'의 문제는 이슈화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실업운동이 '실업'만의 문제로는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업'의 문제를 극명하게 제출하기 위하여 '실업'의 문제가 실업노동자의 삶속에서 어떠한 구체적 문제들로 드러나는지를 보다 폭넓게 바라봐야 한다는 과제를 설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업단체들은 실업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폭로하고 그 투쟁을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 확장시키는 데에 실패했으며, 불안정노동과 빈곤의 문제를 통해 실업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실패했다. 물론 실업운동을 반신자유주의 운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실업의 근본적인 원인이 지속적으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노동의 유연화를 촉진시키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있다면, 이에 맞서서 고용안정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요구하며 정부 정책의 전면적 수정을 제기하고 나아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에 실업운동이 위치할 수 있도록 해야했다. 실업운동(?)의 대표적 조직인 전실연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의 운동을 합의주의적인 시민운동으로 축소시켜왔다. 주체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돈을 매개로 하는 지원사업이 갖는 한계는 자명하다. 기금을 활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기금이 '활용'이 되려면 자기 운동에 대한 명확한 방향과 요구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전실연은 오히려 지원을 안정화하기 위해 연대운동기구로의 전실연을 제도화하는 등 우려스러운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전실연은 스스로의 냉철한 활동평가를 통해 '실업운동체'로서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민중운동진영과 함께 사회운동·주체운동으로서 실업운동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실업운동의 주체는 반신자유주의투쟁의 주체이기도 하다. 민중운동진영 또한 실업운동을 어느 한 영역의 운동으로 국한시키지 않는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일 주체로 세워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PSSP
'사회적 타살', 지난달 3월, 대통령 탄핵과 17대 총선이라는 시끄러운 정국 속에서 죽음의 행렬이 소리없이 이어지고 있다. 카센타 운영하던 39세 마모씨는 1000만원 빚을 갚지 못해 모텔에서 스스로 목을 매었다. 우유대리점 직원, 트럭운전을 하며 살아가던 34세 전모씨는 작년 2월부터 지속된 실직상태를 견디지 못해 유서를 남긴 채 목숨을 끊었다. 주식투자 실패로 1억원의 빚을 지던 아버지가 아내와 딸 아들과 함께 동반자살을 하였고, 실직상태에 있던 45세 이모씨는 아내를 죽이고 두 딸과 극약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 어는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은 객사한 아버지와 뇌종양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난한 생활을 비관하며 밥을 한솥 가득히 해놓고는 자신의 방에서 목숨을 끊었다. 가난으로 인한 인간적 생활의 불가능함, 그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의 늪에서 선택하는 극단적인 죽음들...이 끔찍한 사건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한국사회의 빈곤문제의 심각함은 단지 가난한 몇 명들의 딱한 사정이 아니다. 도시에서만 하루에 3명 꼴로 생계를 비관한 죽음이 이어지고 있으며, 신용불량·단전단수·실업으로 인한 생활고는 대다수 서민의 일상을 파괴하고 있다. 800만이 넘는 빈곤계층의 극도의 불안정한 삶. 이제 빈곤의 문제는 다수 국민의 삶의 문제로 번져가고 있다. 그들의 변명 총 29개의 빈민, 장애, 실업, 노동, 주거, 복지단체들로 구성된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은 지난 3월 30일 강남 타워펠리스 앞에서 발족기자회견을 열고 최옥란 열사 등 가난으로 숨져간 이들을 위한 위령굿을 진행하였다. 극단적 빈곤과 과잉된 부가 공존하는 그곳에서 빈곤문제의 심각함과 잇따른 생계비관자살의 근본적인 원인이 한국사회 경제구조와 정부의 의도적 외면에 있음을 폭로하고, 이에 맞서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연대의 호소하고자 했던 이 행사는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의미 있는 첫 발걸음이었다. 한국경제를 비롯한 각 언론들은 이 기자회견과 위령굿 행사에 대한 기사를 상세히 보도하며 지배계급의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들은 "빈곤문제가 심각한 것은 인정하나, 경제가 어렵다", "소외된 소수의 문제를 다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위험한 발상", "정부에게 빈곤층 소득확보기회보장, 부동산 가격 안정책 실시 등의 제도개선을 요구할 문제"로 일축했다. 결국 빈곤문제는 살풀이를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회생만이 해결책이고, 괜히 사회계층간 갈등을 부추기는 이런 행동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극도의 불안한 삶, 그마저 지탱할 수 없는 이들에게 '경제가 먼저'라는 망발은 문제를 해결하는가. 또한 타워펠리스 앞에서 외친 빈곤사회연대의 목소리가 어찌 소외된 소수의 목소리인가. 급증하고 있는 빈곤의 문제는 특정한 소수집단의 불만과 삶의 파탄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대다수의 불안정한 노동, 교육, 의료, 주거 등 생활수준의 후퇴를 말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실업 등 노동의 위기와 가족의 해체, 교육의 붕괴는 이제 일상의 문제가 되었고 서민의 절망의 늪은 더욱 깊어만 간다. 그렇다면 저들이 말하는 경제회생은 진정 가능하긴 한 것일까? 2004년 실업률이 다시 급등하였고, 경기침체가 만성화되고 있다. 이미 신자유주의 재편의 안정적 정착 단계로 진입한 한국사회에서 노무현 정부는 금융자본의 자유화, 탈규제화의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는 문제와 동시에 김대중 정부 5년 간 금융자본의 활로를 위해 조장한 카드발행확대, 벤처육성의 거품이 붕괴된 이후 신용불량자의 대거양산, 구조조정으로 인한 빈곤과 불안정 노동의 확산, 이로 인한 투자심리의 위축의 문제를 감당해야만 한다. '고용없는 성장', 아니 '고용 파괴적인 자본축적'이라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남한자본의 운동은 실업과 불안정노동의 확산, 파괴된 서민의 삶을 짓밟으며 그 체인을 계속 돌리는 것이 남한경제성장의 유일한 길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 1년 동안 기존의 사회복지정책으로는 도저히 봉합할 수 없을 정도로 빈곤계층의 삶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실업과 빈곤은 점차로 확산되고 있다. 정권 출범당시 스스로의 개혁성을 포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참여복지'라는 신조어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경제의 상황 속에 이제는 어디 명함도 못 내미는 신세이다. 경제회생이 결국 서민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며, 빈곤계층의 파탄난 삶은 정부와 지배계급으로서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도 이미 알고 있다. 남한사회 신자유주의 재편 완성단계에서 노동유연화가 법제화되고 있는 가운데 시급한 빈곤문제 해결방안으로 정부가 기껏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전·단수가구, 도시가스 중단가구 등 취약계층을 위한 특별긴급구호대책 마련 같은 것들뿐이다. 실업과 빈곤에 내몰린 수많은 대중들의 삶의 불안에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는 못하는 지배계급'경제회생'이라는 궁색고 거짓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정치권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도박판을 벌일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속사정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분명한 것은 '빈곤문제'로 표상되고 있는 현재의 대중의 삶의 문제를 우회하고서는 그 어떠한 정치세력도 안정적인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장기화된 경제침체와 실업의 만연, 노동유연화 전략으로 인한 불안정 노동이 경제의 구조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어떠한 정치세력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17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달라진 것은 죽음 앞에 서있는 빈민들의 울분 앞에 이제는 너도나도 제출하고 있는 선심성공약들 뿐이다. 차악의 선택? 각 정당들이 민생파탄의 현실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놓은 공약들은 여전히 빈약하다. 그러나 각 당의 복지정책의 양이 적다고 새삼스럽게 비판할 대상은 아닐 것이다. .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모두 신용불량자 구제대책, 소외계층에 연금지원, 노후대책 확장, 부동산 가격 안정과 주택공급 등의 공약들을 제시하고 있다. 각 당들의 세부정책들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현실화되기 위해서 '경제성장'이 우선이라는 인식은 동일하다. 또한 그 경제회복의 방식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모두 어떠한 차별성도 없이 동일한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외국인 투자활성화 방안'이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희망공약 50>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제도의 확립을 강조하고 있는데 R&D(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을 넘어 대덕밸리, 대구테크노폴리스, 광주첨단과학단지를 R&D특구로 지정하기 위한 법률제정, 이 특구를 위해 외국인병원과 학교, 고급주거단지를 조성할 것을 말한다. 또한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는 사후적 규제방식으로 우대조치를 시행하고 외국기업 국내투자에 대해서 One-Stop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한국외국인 투자유치전문기관(Invest Korea)을 반관반민기구로 확대 개편하여 외국인 투자관련사항을 전담한다는 공약이다. 한편 열린우리당은 '4대비젼과 6대실천과제'에 명시되어있는 '기업하기 편한 나라'로 그 정책기조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금융환경조성"을 위한 다양한 탈규제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한가지 똑같이 제시하고 있는 주요공약으로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정립을 통한 사회적비용의 최소화'와 당장 시급하게 노사분규를 자제하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여 이를 외국인 투자기업에 우선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이다. 결국 주목해야 할 점은 노무현 정부가 경제적 불안과 대중의 삶을 파괴하면서 안정적인 집권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이유, 즉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과 금융화로의 안정적 편입이라는 그 노선에 대해 지배계급 내에서는 어떠한 이견도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 현 시기 '빈곤의 해결'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정망인 사회복지정책의 문제이며, 그래서 부차적인 정책차원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총선시기 생색내기식 선심성 복지공약의 남발 이후, 가난한 이들의 이 극단적인 삶은 또다시 얼마나 파괴될 것이며 또 어떠한 방식으로 배제되어 갈 것인가? 누구의 공약이 더 현실적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과정과 대중의 삶의 문제가 충돌하는 모순은 결국 '빈곤의 문제'로 폭발하고 있다. 이제 빈곤문제는 어떤 하한선을 넘어 극단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지배계급 누구도 이에 불안과 분노의 행렬에 답을 제시할 수 없는 지경임을 이제 그들도 시인하고 있다. 오직 지난 5년간 노동자, 농민, 빈민의 피어린 투쟁들만이 신자유주의가 위협하는 대중의 삶의 문제를 제기했었고, 그 돌이킬 수 없는 그 파괴의 과정에 끈질기게 저항해왔다. 총선시기, 그들의 다급한 정치도박으로 전선은 흔들리고 있으며 민중의 투쟁은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조건으로 하는 반신자유주의 사회운동을 새롭게 발언해야 한다. 그것은 도곡동 타워펠리스에서나 볼 수 있는 극단적인 빈부의 차이를 개탄하는 빈민의 목소리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투표함에 '국민발의제 쟁취'가 적힌 종이를 넣으며 신자유주의가 파괴한 민중의 민주적 권리를 제기하는 행동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17대 총선에서 원내진출을 예비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공정한 분배'를 원칙으로 사회복지예산의 확충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부유세 제정을 통한 종합소득세, 부가가치세 탈루액 회수, 불필요한 전력증강 중단, 등 세제개혁을 통한 재원확보정책이 그것이다. 이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현재의 시급한 빈곤대책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정책 입안은 빈곤 문제를 제기하는 출발점일 뿐이다. 실제 대중들이 인간으로 살 권리를 제기하는 투쟁을 조직화하는 과정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것이 더욱 요긴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 제출되고 있는 이런 정책공약의 현실성 여부가 빈곤문제 해결의 지름길이 될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가 양산하는 빈곤의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고 이를 중단시키고자 하는 빈민 스스로의 목소리와 투쟁이 전제되지 않는 한, 결국 '공정한 분배'란 여타의 지배계급의 사회복지정책 개선 약속과 한치도 다를 바 없는 '단지 하나의 정책'이 될 뿐이다. 800만이 넘어서는 이 땅 빈곤한 자들의 목소리로 반신자유주의를 발언해야 할 때이다. 이를 반신자유주의 투쟁전선을 복구하는 민중의 요구로 확산시키자. 현 시기 사회운동의 임무는 여기에 있다.
수고하셨습니다.
2004년 1월 노무현 정부는 일자리 30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호언장담하였으며, 재경부는 일자리창출을 어떤 경제정책보다도 우선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작년 한해부터 일관되게 추진되었던 합리적 노사관계의 모색(노조탄압, 사회적 합의주의)과, 정규직-비정규직 격차완화(정규직 임금억제, 파견근로 확대 등 비정규직 전면화)등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를 향한 노동유연화 정책에 비춰볼 때, 이는 신자유주의 개혁 프로그램의 완수를 위한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으로 파악된다. 지난 2월의 일자리 협약은 기업투자요건개선을 위한 노동구조재편전략을 "사회적 합의"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실업정책은 대량실업 사태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한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는 한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마무리 단계인 노동시장 재편 완수를 지향한다.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에 입각한 "실업"에 대한 인식과 대책은 무엇이며, 오늘날 실업문제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가운데 실업운동은 어떠한 관점에서 '재'출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1. 오늘날 실업의 양상과 국가관리 전략 1> "실업"이라는 노동력 관리전략 이윤의 극대화라는 "자본주의"적 인식 틀에 따라 '노동력'은 자본의 요구에 따라 배치되고 관리되는 일종의 상품으로 치부되어 왔다. 자본가 집단의 공통적인 원리-수요와 공급, 투자와 이윤으로 표현되는-에 근거하여 작동하는 자본 운동의 체계와 그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물신성의 원리가 지배적인 한, 착취와 배제라는 권력관계는 은폐된다. 그러나 자본은 가족과 국가의 틀 속에서 생산, 재생산되는 인간을 '상품으로 구매'-노동 계약-하여 노동력으로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생산요소에 대한 통제라는 관점에서 자본은 노동력 즉, 인간 자체를 관리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실업' 혹은 '산업 예비군'을 동시에 생산해냈다. 더 많은 산 노동이 더 많은 죽은 노동, 즉 기계로 대체되는 경향이라는 자본의 경쟁 속에서 노동력의 관리, 통제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자본축적은 그 법칙 내에서 상대적 과잉인구를 낳고, 나아가 노동자 대중을 불안정 노동과 궁핍으로 이끄는 경향을 포함한다. 그것에 멈추지 않고, 소위 노동시장의 규율과 전략을 통해서 이러한 산업예비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임금 안정, 인적 자원의 가용성 제고, 기업의 노동비용 완화, 창업촉진, 산업 구조조정 가속화" 등의 과제에 실업의 문제는 조절과 통제의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했던 것이다. 국가는 언제나 "화폐화 되지 못하는 상품", 즉 실업노동자를 관리한다. 국가는 생산 과정의 외부에서, 노동력이 언제라도 좋은 상태를 유지하여 판매될 수 있도록 노동력을 관리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 이들이 사회적 갈등요인이 되는 것을 억제한다. "통계"라는 조작과정을 통해 실업자를 각각의 집단으로 분류하여 실업자 수, 실업률을 조정하여, 실업자 개개인의 능력을 자의적으로 평가·낙인찍는 작업을 수행한다. 가장 일반적인 수준에서 실업노동자의 일부분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하여 실업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거나, 군대, 학교의 활용 등으로 노동시장으로부터 조용히 퇴장시키는 것이 이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또한 이를 넘어서 적극적인 "실업 정책"의 시행으로 실업노동자들을 관리한다.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형태로 공공근로 등의 단기적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일하는 복지"로 규율과 근면이라는 습관을 유지시키고, 자본축적의 변화에 걸맞는 노동능력을 실업노동자들에게 교육시키고자 한다. 케인즈 이론의 핵심은 원래 자본주의의 내적 불안정성/불황경제 테제에 있었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가격기구의 작동을 통해 자동적으로 완전고용 균형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고용량은 기업의 판단에 달린 것임.) 사회화된 형태로 정부가 재생산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시장의 지배를 제한하는 불가피한 국가의 개입에 대해 케인즈는 한 편에서 국가의 소득재분배를 통한 소비수요의 확대,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투자의 사회화를 제시했다. 투자의 사회화란 사적 이윤에 지배되는 사적 투자에 대비되는 형태로서 낮은 이윤율 하에서도 공동의 이해를 목적으로 공공적 성격의 법인에 의해 수행되는 투자를 의미한다. 케인즈는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 국가개입(자본주의 개혁)을 통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고용량은 기업가의 예상에 의해 결정되며, 국가의 유효수요 확대 정책을 통해 기업가의 예상을 변화시켜 고용증대를 꾀할 수 있다고 분석하였다. 소위 새 케인즈주의(New Keynsian)으로 불리는 경제 이론에 따르면, 과거의 케인즈 정책에서 활용했던 통화 공급(화폐발행)의 엄격성은 더 이상 불가능하지만 케인즈주의적 유용성은 취하는데, '국가의 실패'라는 통화주의자의 공세에 대해 '정책 개혁'이라는 역공을 펼친다.(작고 강한 정부) 저금리정책을 통해 주식시장을 부양하고, 여기서 창조되는 '금융 소득'을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금융 소득 중심의 유효수요 창출은 자연히 고용파괴적이다. 따라서 새 케인즈주의는 전통적 케인즈주의와 달리 완전고용을 포기한다. 대신 이들은 완만한 인플레이션을 동반하는 실업률(NAIRU)을 수용하면서 일정 수준의 실업률을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새 케인즈주의 경제 정책의 기반은 미국식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있는데 신자유주의(새케인즈주의)에 입각한 논자들의 주된 논지는 기업의 필요에 따라 고용과 임금을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꾼다는 것이다. 실업을 유효수요 부족의 산물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면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노동의 유연성 확보를 강조한다. 이는 더 이상 국가가 직접적인 총수요 관리나 공공근로 확대 등의 공적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성장 산업에 적합한 양질의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창조하겠다는 전략을 내포한다. 즉, 노동시장에서 구매되지 못하는 노동력을 시민사회의 관리와 적극적인 교육훈련을 통해서 노동시장으로 재진입시키는 "평생 기회 보장"이 화두가 된다. 여기서 국가의 역할은 단순히 사회복지를 책임지는 주체가 아니라 '인적 자원'을 개발하는 데 투자하는 사회투자국가 즉, 일종의 '기업가적 국가'로 재정의된다. 새케인즈주의의 '신경제'(New Economy)란 결국 노동력의 평가절하를 통한 고용 안정과 이른바 '사회 안전망'을 통한 사회보장의 축소의 경향을 갖는 것이다. 오늘날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국가·자본의 실업자(노동력) 관리 방식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산업구조재편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훈련의 기회 확장이라는 "일하는 복지" 정책의 구사이다. 2> 오늘날 실업의 양상 김대중 정부는 "세계화된 금융적 축적체계'에 조응하기 위해, 주식시장을 매개로 하여 자유로운 금융시장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의 투자-사실상 투기와 구분하기 힘든-를 통해서 금융적 축적을 추진해왔다. 금융적 팽창과 동시에 비용절감을 통한 생산부문의 경쟁력 증진의 과정은 해고·감원, 조직·혁신, 과잉 착취, 유연화, 즉 노동의 불안정화를 동반했다. 이러한 IMF 권고안에 따른,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대량해고로 인한 대량실업사태를 불러왔다. <표1>을 살펴보면 10%대에 육박했던 실업률은 2000년부터 급격한 하락 추세를 보이며, 안정적인(!) 3%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통계는 대거 발생하였던 실업자 층이 어떻게 노동시장으로 흡수되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정부자료에 의거하면, 임금노동자 비중 중 상용근로자 비중이 2003년 50.5%로 증가, 임시·일용 근로자가 49.5%로 감소 추세에 있다고 하지만 비경제활동인구가 약 1,442만 명으로 1998년에 비교 50만 명 이상 증가하였다는 사실은 크게 지적하고 있지 않다. 이 비경제활동인구의 사유 중 가사, 육아 등의 이유가 40%가 넘는다는 사실은, 실제로 구직자로 등록하지 않았지만 노동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특히 여성)가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파견법의 확대 시행으로 인한 불안정노동의 종사자들은 상용근로자로 둔갑하며, 특수고용직의 형태로 개입사업자로 분류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현실 또한 은폐된다. 한편 <표2>를 통해 현재 실업자 구조를 살펴보면, 신규실업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구직기간 3~5개월 미만의 실업자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략 현재의 실업의 구조는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노출되어 단기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노동자의 증가를 볼 수 있으며, 1999년까지 다수를 점했던 장기실업자 층이 실망실업자로 빠져나가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년실업의 높은 비율은, 실업자 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함으로써 실업이 해소된 것이 아니며, 단지, 통계에서 사라진 비경제활동인구로 전락했음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정부가 이에 대해 청년층에게 교육연수기회를 확장하겠다는 방식의 실업대책을 선사하는 것은 현재의 실업의 핵심원인을 외면하겠다는 의도이다. 또한, 여성, 고령자 층의 실업률 증가는 지식습득을 매개로 한 벤쳐(중소)기업 육성전략이 또 다른 위계화된 계급구조질서를 양산하였음을 보여준다. <표1> 연령대별 실업률 (단위:%) 자료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원자료, KOSIS. <표2> 실업자 구조 (단위:천명) 자료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원자료, KOSIS. 신규실업자-과거에 취업 경험이 없었던 실업자/ 전직실업자-과거에 취업 경험이 있었던 실업자 2. 신자유주의 정부에게 실업정책이란 존재하는가? 1>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과 실업정책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외 개방과 자유화를 앞당기고, 나아가 공황 상태에 빠진 자본축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국내적 축적 조건을 재형성하는 "구조조정"에 착수한다. 김대중 정부가 가장 먼저 강력하게 추진한 것은 금융부문 구조조정이었다. 98년 연말까지 41조의 재정자금을 투입하여 부실금융기관을 퇴출시키고, 인수합병을 추진하였으며, 노동력의 10~30%를 감축하였다. 이를 통해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완전한 금융시장"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또한, 5대 재벌기업의 빅딜을 추진하고, 부실기업의 부채를 탕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재벌개혁"은 재벌들의 경영을 합리화하고, 정리해고 및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창출했다. 집권 말기 이루어진 경기회복은 주식시장을 매개로 한 금융적 팽창의 지표일 뿐이며, "고용 파괴적인 자본축적"의 본격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산업부문(농업, 광업, 제조업)의 고용 감소는 서비스산업, 금융·보험 부문으로 일부 흡수되었다. 그러나 서비스·금융 산업에서 이루어진 고용 증가는 기존의 제조업 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기보다 소위 골드 칼라로 불리는 금리생활자(혹은 금융 조작자)들에 의한 것이다.(서비스업 고용증가를 통한 일자리창출이라는 현 정부의 구호는 수년전에 이미 거짓으로 판명된 것이다.) 대량실업은 불가피했다. 또한, 신자유주의 정권에게 실업은 해결 불가능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대량실업으로 인한 노동자 민중의 불만과 저항에 직면한 정부는 "실업정책"을 내놓는데, 그것은 "신지식인 양성"과 "생산적 복지"라는 정책기조에 입각한 노동력관리전략에 불과하였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벤쳐(중소)기업육성은 수없이 망해나가는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을 실업자 통계에서 불안정 노동자로 밀어내며 또한 학력과 지식을 잣대로 실업의 문제를 개인의 무능의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결과했다. 또한 한시적인 공공근로(그것도 정규직 임금노동자와 대단히 차별적인)와 생활보호 조치는 실업노동자의 불만을 잠재우고 최소한의 도덕성을 유지하려는 면피성 "사회적 안전망" 확충에 불과했다. 김대중 정부의 이러한 실업정책의 결과, 실업노동자의 대다수는 불안정 노동 층으로 흡수되거나, 생계유지를 위해 자신의 피로 부풀려진 금융자본에 손을 벌려 신용불량자가 되어 가정파탄-가난에 못 이겨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게 된 것이다. 2>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전망과 노동정책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의해 남한 사회는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정착과 철수를 보장하는 언제나 준비되어있는 국가로의 체질개선을 이루어내었다. 남한 사회를 금융적 팽창의 "성장"국면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출범초기 정보와 기술 강국으로 나아가 동북아 중심 국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부의 재분배를 참여복지를 통해 이루어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는 장기침체에 허덕이는 세계경제의 활성화정책으로 미국이 내놓은 '신경제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식 신경제론의 핵심은 알려진 바대로 IT산업의 집중 육성과 인수합병을 통한 집적, 집중을 통한 부가가치의 창출, 그리고 금융부문의 활성화로 요약된다. 그러나 "정보혁명·기술혁명"으로 대변되는 신경제론은 생산의 효율성을 높일지언정,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의 기본적 성격을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술은 일련의 사회관계 속에 배태되어 있다. 그러나 소유 유형과 자산을 과대평가하려는 충동-미래의 잉여가치 창출에 대한 주장을 사고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려는 투자, 투기심리-은 기술-교육의 문제를 생산요소로 분류, 투기적 성장의 요소로 포함시킨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현실 속에서 신경제는 생산성 증대의 과제를 노동절약에서 찾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신경제론은 노동유연화, 불안정화를 야기하고 잠재적 가치를 투자조건으로 탈바꿈시키는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보장하였고, 주식-금융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부의 집적과 집중을 강화하였다. "지식-기술훈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노동력 관리 전략을 강화하는 한편 "노동"으로부터 노동자의 소외와 실업의 관리를 정당화하였다. 애초에 동북아중심국가 구상의 핵심은 자본유치였다. 국민소득 2만 달러의 기조 또한 만성화된 실업, 삶의 파탄이라는 사회적 위기 해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노무현 정부에게는 자본유치를 위한 국내투자환경 조성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금융주도 자본주의의 필연적 속성인 불안정성(투기성)과 장기적인 내수침체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이 '비용절감'으로부터 추출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자본이 주장하는 '고용 없는 성장'은 "고용파괴적인 자본축적"을 의미한다. "고용의 파괴"란 그들의 분석대로 제조업 공동화, 해외이전이라는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성장 산업에 대한 기대를 매개로 한 금융적 팽창과 노동유연화를 통한 비용절감에 있는 것이다. GDP가 늘어도 민중의 삶은 점점 고통에 빠져드는 현실의 본질적인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인위적 내수부양책(가계대출, 신용카드 거래 확대)이 파탄에 이르고, 카드사 부실 등 금융 불안 요소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다가 원/달러 환율(미국의 약한 달러 정책)의 급락 등 대내외적 제약조건은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성장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동원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연기금의 금융화로의 동원, 부동산거래 활성화 등 거품경제의 증대는 한국사회의 경제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며, IT 산업육성 등 신규산업에 대한 기대심리로 주식시장을 부흥하는 길 말고는 대안이 없다. 무엇보다 확실한 방식은 신축적인 노동구조로의 재편을 통한 비용절감효과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정규직 임금 억제, 파업투쟁 엄단 등 노동탄압의 강도를 높이는 한편, 파견제 적용영역 확대, 노동시간의 유연성 강화 등의 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하는 것을 골자로 노동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지식기반경제론 지식-기술의 문제를 투기적 생산요소로 분류하여, 미래의 잉여가치에 대한 기대심리를 작동하는 방식은 금융적 팽창의 주요한 측면을 차지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절약=효율', '재교육 기회=신분상승의 보장'이라는 도식이 추출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지식기반경제론의 본질이다. '기술'혁신을 위한 지식의 문제를 학교 교육의 차원(학사관리 엄정화, 교사 평가제 등등 교육 개혁)에서 제기하는 것에서부터 취업자-실업자의 기술교육-훈련에 대한 강조로 이어지는 이러한 논리는 실업의 문제를 개인의 무능으로 호도하고, 노동자의 삶과 지식을 송두리째 통제하는 이데올로기를 구성한다. -참여복지 한편 "참여복지"정책은 악명 높은 "생산적 복지"(언제나 팔려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노동력으로서의 자기단련)의 최신판이다. 국민의 정부의 생산적 복지는 금융 시장의 불안 요소가 되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사관계 안정화, 실업자 관리의 근거로 작용하였다. 전통적 복지국가를 해체하여 최소한의 복지주의를 내세운 "사회안전망" 확충이란 죽지 않을 정도로 삶의 보장임과 동시에, 공공근로 등의 불안정하고 비민주적인(노동 3권 보장 없는) 노동시장으로의 실업자층의 흡수전략임이 드러난 바 있다. "참여복지" 정책은 이에 덧붙여 복지 분야의 민간참여를 확대한다. 이는 국민의 정부시절부터 국가의 노동력 관리전략에 협력해온 NGO들의 더 많은 참여를 통한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 추출을 목표로 추진된다. 전국민 복지시대, 시민권적 복지라는 명분을 제시하는 가운데, 참여하지 않는 자(참여하지 못하는 자)에게 근면과 기술의 부족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참여 복지"의 본질이다. 따라서 실업정책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생산(노동)의 영역을 스스로 개척하라!"는 명제를 부여받은 실업노동자들은, 자본이 취사선택 가능하도록 진열된 산업예비군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3> 일자리 창출 계획의 허구성 결론적으로 노무현 정부에게는 실업 정책이 없다. 국민적 고충을 덜겠다며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시 하겠다고 이야기하였지만, 실업대책은 "일자리 창출"의 이름으로 재정경제부의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기업투자환경 개선을 위한 노사협력체제 구축으로 현실화되고 있을 따름이다. "고용파괴적인 자본축적"을 지속하는 한에서 실업의 문제를 기업투자의 자유화의 과제에 철저히 종속시킨다. 노무현 정부의 일자리 창출 대책은 (1)투자활성화 (2)서비스산업과 중소기업 육성 (3)노사관계 개선 (4)공공부문 취업지원 기능 확대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불안정한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라는 김대중 정부의 실업대책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일말의 복지적 성격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1)(2)의 과제는 기업투자제한요소를 제거하고 선진기술의 경영기법도입과 서비스시장 등의 개방을 통한 외자유치를 통해 실현될 것이라며, 투자활성화의 걸림돌이 되는 토지이용제한을 풀고 산학협력강화 등 혁신주도형 성장전략을 추진하여 경제자유구역 전면 실시와 개방정책으로 동북아 중심국 목표에 다가선다는 계획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나 서비스시장(금융부문 포함) 등의 개방은 그 투기성, 불안정성으로 인한 고용불안의 요소를 점증시킬 것이며, 기업투자 제한요소 제거는 금융주도의 투기적 이윤창출을 극대화시키는 한편, 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핵심 요소 즉, '노동'의 비용절감을 위한 유연화를 심화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이러한 금융주도의 투기적 자본축적 방식에 대한 노동대중의 불만을 노사관계 개선이라는 구호로 무마하며 '일자리 협약'으로 노동운동을 동원하는 한편, 임금피크제 도입, 파견법 확대시행을 추진하는 등의 노동자에 대한 공세를 퍼붓는 반면, 공공부문에서의 단기적 일자리, 직업훈련, 연수기회 제공을 확대하며 실업자(특히 청년실업자)에게 선심을 베푸는 것 인양 행세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계획은 정규직 임금 노동자의 임금안정 정책이며, 더 많은 노동유연화의 선언이며, 성장산업의 전망을 호도하는 가운데 '언젠가 올지도 모를 기회'를 대비한 자기단련을 강요하는 형태로 '실업자', '半 실업자'를 관리하는 노동구조의 재편전략에 불과하다. 3. 오늘 실업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IMF 대량실업사태 이후 '실업자'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실업운동은 한편으로는 고용안정센터, 지역 자활사업 등의 "실업자 구제"라는 제도화된 흐름으로 정착하였다. 실업의 근본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의 흐름은 '주체형성'의 난관에 부딪혀 시작조차 되지 못하였다. 실업급여와 재교육기회, 취업알선 등의 "권리" 주장을 넘어선 실업자의 자기요구는 무엇인가? 실업노동자의 투쟁은 근본적이다. 자본주의의 출현과 함께, '노동하는 인간'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규정되어왔고, 이런 관점에서라면, 실업자는 '과소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실업노동자들의 투쟁은 근본적으로 '인간적 삶'에 대한 투쟁이 된다. 실업노동자의 투쟁의 과제는 정치적인 것이 된다. 노동을 가로막는, 혹은 노동을 포기하게 만드는 핵심원인이 무엇인가로부터 출발하는 정치적인 투쟁의 주체로서 '실업노동자'(이러한 방식의 호명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에 관한 고민이 요구된다. 분명한 것은, 실업은 변화하는 구조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책임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적 팽창이라는 고용파괴적인 양상 그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업자는 고용안정센터에 등록하여 재교육을 받고 팔려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구매력 없는 상품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실업운동-실업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러한 현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PSSP <표1> <표2>
- 대통령 탄핵 사태의 본질과 대응 방향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사회의 위기는 국가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중도좌파"를 자처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정책결정을 철저히 초민족자본과 국제금융기구에 의존하고 권력을 강력한 행정부로 집중시켰다. 그 결과 의회는 부차적인 지위로 전락하고, 정당의 기능은 본질적으로 허물어졌다. 이러한 구조가 형성되면서 여야 정당들의 대결 구도는 사실상 무의미해지고 있다. 한국사회는 IMF 이후 신자유주의 개혁을 가장 철저히 이행하고 있다. 여야정당은 모두 신자유주의 개혁 노선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이로 인하여 비정규직, 실업, 빈곤 등 노동의 위기와 가족의 해체, 교육의 붕괴 등 심각한 일상의 고통으로 민중의 불만은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 여야정당은 자신의 정당성을 선전할 도리가 없는 상태에서, 결국 "나도 나쁘지만 상대방은 나보다 더 나쁘다"는 식의 "차악"(次惡)의 정치를 동원했다. 이러한 "부정적 정당화"는 여야 지배세력의 사생결단의 위기를 낳았다. 그리고 이러한 대결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극대화될 수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인한 국민 정서의 이반이 심각하고, 따라서 총선을 앞둔 지배세력의 정치적 동원은 매우 곤란함을 겪고 있었다 (지배세력들은 자신의 분파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하는 사회그룹들 ― 사회운동을 포함하여 ― 을 형성하려하지만, 그 성과는 매우 미진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측은 탄핵통과를 불사하며, 총선과 재신임 문제를 연계하겠다고 선언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탄핵을 추진할 때부터 이것이 "총선전략"이라는 점을 공공연하게 인정했다. 여야정당 모두 총선을 앞두고 거대한 도박판을 벌여 누가 차악인가 선택하라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탄핵이 가능하다고 야당이 판단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노무현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층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50%가 참여하는 투표에서 어느 정도 의석을 확보하는 문제와는 전혀 딴 문제다 (지난해 여론조사에서는 대선 때 노무현을 찍은 사람의 절반이 "후회한다"고 응답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세력 내 다른 분파들의 "흔들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달리 말해 신자유주의 개혁의 불만을 지배세력 내의 다른 분파가 활용할 수 있었다 (경제침체에 대한 책임론은 태통령 탄핵 사유에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지역경제의 위기와 지역주의 활용은 가장 중요한 네가티브 캠페인의 선전 기조다). 그러나 일단 탄핵이 발의되고 국회에서 통과되자 사태의 흐름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친노/반노 또는 친한나라/반한나라 대결구도로 대중의 판단을 몰아가려는 흐름이 더욱 크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는 그 방향이 어느 한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노대통령은 의회의 횡포에 당한 "희생자"로 묘사되고 열린우리당은 50%를 상회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불만이 과연 친노/반노로 "안전하게"(?) 봉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든다. 대중의 불만은 노무현정권의 신자유주의 개혁과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노동자 분신사태에 직면해 "노무현정권 심판"이라는 요구까지 내걸었고, 올 초 한칠레 FTA와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로 격렬한 전투를 치른 노동자, 농민운동, 사회운동이 그 주장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 운동들이 일종의 "자기검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사태의 흐름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반동적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따라서 현재의 흐름은 크게 두 측면에서 커다란 우려를 낳는다. 첫째, 이번 계기는 "노무현식 정치스타일"이 통용되고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노정권은 부패스캔들의 뇌관을 터뜨려 정당들을 붕괴시키고 강력한 행정부와 사법부라는 억압적 국가기구를 통해 신자유주의 개혁의 효율성과 신속성을 강화하려 했다. 그리고 미디어와 팬클럽으로 이를 보완하려 했다. 현재의 강력한 "反의회" 이데올로기는 도리어 억압적 국가기구의 편을 드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둘째, 현재 노동, 사회운동의 주류적 흐름은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이 낳은 민중의 민주적 권리의 대대적인 침해에 대해 침묵하는 방향으로 휩쓸려 가고 있다. 이는 "문민화"를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호도하려 했던 지배세력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호재다. "노무현식 정치스타일"은 언제, 왜 등장했나? - "신자유주의 독재"와 대중조작적 정치 노무현 정권은 DJ 개혁의 처참한 실패를 배경으로 등장했다. 2000년 총선 전까지 IMF 조기졸업과 주가 1000선 돌파가 가능해 보이고 코스닥 활황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처럼 보일 때까지는 그런 대로 신자유주의 개혁이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거품이 빠진 자리에 만성 불황이 찾아왔다. 대중들의 불만은 폭발했고, "3홍비리"는 DJ 정권에게 사형선고였다. 이제 정권재창출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 된 듯하였다. 바로 이 순간에 나타난 것이 국민경선이고, 후보단일화 여론조사였고, 노무현식 정치스타일이었다. 물론 IMF가 요구한 경제개혁과 문민화 과정은 DJ 개혁의 특정한 지지층을 형성했다 (아메리카식 생활양식과 소비문화에 포섭된 386-화이트칼라, 권력지향적인 지식인·NGO, 그리고 노동자대중 일부 등의 "실리주의"적 지지). 그러나 이들은 신자유주의와 대중의 삶의 위기로 인해 적극적인 정당화의 논리를 개발할 수 없었다. 이 때부터 노무현은 "탈권위"를 내세우며 파퓰리즘적인 정치스타일에 적극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남미에서의 파퓰리즘이 노조 등과의 "사회적 합의"라는 코포라티즘적인 수단에 의존했다면, 그러한 기반이 없는 노무현은 철저하게 미디어와 팬클럽을 활용하는 파퓰리즘으로 나아갔다 (물론 노무현 정권도 끊임없이 남미 사례와 유사한 사회적 합의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효율성을 위해 미디어의 선동주의를 동원하고, 이념도 정책도 없는 여야 대결에서 승리를 얻어내려고 개인의 카리스마를 빛내기 위해 팬클럽을 활용했다 ("노사모"는 모든 문제를 노무현 개인에 대한 지지로 환원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노정권이 신자유주의 위기를 은폐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했다. 지난해 여론조사 결과는 대선 때 노무현을 찍은 사람들의 절반이 "후회한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러 하자 노무현은 부패스캔들의 뇌관을 터뜨렸다. 노무현은 스스로가 부패스캔들에 깊숙이 연루되었으나 희대의 "10분의 1 정계은퇴" 발언으로 야당을 정면으로 겨냥한 대도박을 감행할 수 있었다. 기존의 모든 정당이 "털면 나오는"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그리고 "부패척결"은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는 구호다). 노정권은 모든 정당을 폐허로 만드는 전략을 실행한 것이다. 그리고 정당을 폐허로 만들고 나면, 강력한 행정부와 사법부에 의존한 파퓰리즘 정치가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된다. 결국 파퓰리즘에 의존한 행정부-사법부 권력의 극대화, 부패스캔들의 연쇄를 통한 정당정치의 황폐화, 그 이후에 오는 "신자유주의 독재". 이것이 노무현식 정치스타일이 그리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신자유주의가 낳은 민주주의의 위기의 한국형 판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가 안정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재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50%를 상회한다한들 그것이 몇 달이나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다. (이미 한국경제는 장기불황에 돌입한지 오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지율의 급등과 급락이 반복되는 현실 자체다. 어떤 정치세력도 안정적인 대표성과 정당성을 누릴 수가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중운동의 적합한 대응이 없다면 노무현식 정치스타일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제 "그들"이 돌아온다? - 누가 민중의 권리를 대대적으로 침해하는가? 냉전시기 제3세계(신식민지) 우파세력은 대중적 토대가 취약했고, 따라서 제국주의에 철저하게 의탁한 반공친미적인 "매판우파"로서만 등장했다. 똑같이 오늘날의 한나라당도 매판우파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고, "반공-발전주의"의 그늘 아래 성장했다. 그러나 실제 "대중적 우파"는 존재하지 않았고, 강력한 억압기구를 동원해서만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냉전의 시기가 끝나고 우파세력의 주문과도 같았던 "민족적 발전의 길"도 약효가 다하게 되자, 그들의 보수주의는 더 이상 안정적인 통치가 불가능해졌다. 중심부 국가들의 우익 보수파들이 "반미"를 내걸고(민족주의/인종주의) 대중선동적인 형태의 보수파로 등장했지만, 이는 한국의 우파에게 도저히 불가능한 노선이었다. (한편 신자유주의 세계화에서 배제된 지역들, 동유럽이나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종족주의-분리주의나 종교 원리주의가 대중을 장악했다.) 한국의 우파세력은 탈냉전과 발전주의의 해체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당시 미국과 국제금융기구는 오히려 "정권교체"를 선호하고 DJ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했다. IMF 경제개혁은 재벌개혁이나 정부 구조조정과 같이 지배세력 내부의 반발을 불사하는 것이었으므로, 전통적인 지배층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요긴한 일이었다. 일단 신자유주의 개혁에서 주도권을 놓치게 되자 그들은 퇴행적인 정치행위에 의존함으로써(지역주의, 반공-발전주의에 대한 향수 등), "수구보수 왕초"의 낙인을 거두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제 보수화 된 자유주의 세력이 신자유주의 개혁과 통치의 관리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한국의 야당세력은 근본적으로 보수-반공주의에 뿌리를 두었고, 똑같이 "친미파"였다. 그들의 파병강행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침해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들 또한 안정적인 통치를 형성하지 못하고 계속적인 정치 위기에 빠진다. 하지만 행동 스타일에서 잘 포장된 자유주의적 외양과 실제 정책 지향을 호도하는 미디어 선동, 지식인과 NGO의 적극적인 활용은 계속 '차악'의 논리를 통해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자유주의적 보수파가 냉전적 보수파를 대체하여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하고, 민주주의의 대대적 침해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농민, 여성, 이주노동자의 권리, 교육, 보건 등 민중의 권리가 위협받는 것은 냉전 시기의 "그들"이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무엇이 민중의 민주주의를 가로막는가? - 신자유주의 비판을 결여한 민주주의에 대한 주장은 오직 기만이다.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이 70%를 넘는 결과는 오늘날 정당정치가 국민들에게 대표성, 정당성을 상실했고, 심각한 위기의 국면에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현재 정당들의 국회의석 비율은 국민의 지지를 과대하게 반영하고 있다. 2000년 총선 투표율은 57%에 불과했다). 따라서 탄핵사태에 대해 대중이 규탄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곧바로 노무현정권에 대한 지지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탄핵무효"를 요구하는 세력 중에는 노정권에게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운동을 이끌어 가려는 흐름이 분명히 존재한다. <탄핵무효 부패정치청산 범국민행동(준)>은 운동의 초점을 순전히 한나라당-민주당 척결로 맞춤으로써 실제로 노정권과 신자유주의 개혁의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부패세력 척결이 87년 민주화운동의 "완성"이라고 주장하는 대목은 신자유주의 개혁이 바로 민중의 민주적 요구, 민중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결정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다. "탄핵사유가 안된다" 또는 "탄핵사유로 경미하다"는 주장은 "헌법학자"의 시각에서 보면 타당할 수 있다 (물론 헌법학자 내에도 적지 않은 이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결코 노무현정권에서 벌어진 부패비리나 권위주의-파퓰리즘적인 정치행태,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한 민중의 정치적 심판의 근거를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비약될 수는 없다. 나아가 현재 국면에서 표출되는 민중의 불만에서 발견되는 것은 87년 시기 이미 표출된 바 있는 민주주의의 기본 쟁점인 "국민주권" - "인민주권"이 더 분명한 표현이다 - 의 모순이다. 우리가 "누가 인민인가", "어떻게 인민은 자신의 주권을 표현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 정치"가 실제로 얼마나 이를 억압해 왔는지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사안을 국민의 대표를 자처하는 정당들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 통과시킬 때, 특히 그 목표가 87년의 성과물이라고 생각하는 "대통령 직선제"를 공격하는 것일 때, 민중들이 주권을 표출할 수 없는 무능력성과 허구적인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87년 민중이 등장하여 자신의 궁극적 권리인 민중의 민주주의를 확대하려 하자, 위험을 감지한 지배세력은 그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해 대통령 직선제를 내놓았다. 대통령 직선제는 마치 "성과물"인 듯 보였지만 민중의 민주주의적 열망을 봉쇄한 도구였다. 사실 1990년대 전체에 걸쳐 민중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여기서 단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따라서 지금 87년의 봉쇄점을 단순히 "복구"하려는 수동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는 민중이 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권리를 조금도 진전시키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개혁,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 공격과 위협을 넘어서서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는 방향이 될 수 없다. 87년과 달리 사소한 성과물조차 쟁취할 수 없는 이러한 방향은 그것이 끝난 후 다시 끝없는 절망과 자조로 돌아서게 될 길을 닦을 뿐이다. 헌법재판소가 민중의 심판을 대신할 수 있는가? - 헌재의 판결은 억압적 국가기구의 심판이다. 한편 사회운동 내 <범국민행동>의 노선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실제 탄핵 문제를 결정할 최종적인 권능은 헌법재판소의 손안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제 여야정당과 모든 언론도 사태 해결의 담당자는 9명의 헌판재판관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야정당과 그 지지세력은 언론에 대한 압박이나 대중동원, 결정적으로는 총선 결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려하고 있다. "탄핵무효"를 선전하는 세력은 헌법학자의 다수 견해가 반대고 (어떤 언론은 70%, 또다른 언론은 50%의 학자들이 탄핵이 불가하다는 견해를 냈다고 보도하고 있다), 대세가 탄핵 기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겠지만, 불행하게도 진정한 문제는 헌법재판관이 어떻게 판결을 내릴지는 판결문이 나올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선출"된 자가 아니고 "임명"된 자들이다. 그들은 순전히 개인이 생각하는 "법리"에 따라 결정을 내릴 뿐이다. 하지만 여야정당이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판단을 촉구하고 그것을 따르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것을 거부하는 경우 국가기구 대 국가기구의 대결이 극단화되어 현존하는 국가기구의 붕괴로도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재의 판단이 어떻게든 어느 한쪽이 받아들 수 없다고 선포하면 그 위기를 봉합할 수 있는 능력은 "군대"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억압적 국가기구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범국민행동>이 헌재의 조속한 기각을 촉구하는 것은 민중의 결정을 억압적 국가기구에게 대신 전적으로 맡기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어떤 결정이 나올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범국민행동>이 아무리 민주주의 "완성"을 주장한다고 한들 그 장벽을 뛰어 넘을 수는 없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진정한 문제는 "선출된 자"에게 있다기보다는 "선출되지 않은 자"의 거대한 권력에 있다. 누가 민중의 결정 권리를 그들에게 위임했는가? 잠재된 신자유주의 반대,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 민주주의는 민중의 투쟁으로, 거리에서 만들어진다. 무엇보다도 노정권에 대한 "헌재의 심판"이나 "탄핵무효-총선승리"의 대결 구도를 "민중의 심판"으로 전환해야한다. 또한 "총선에서의 심판"을 민중의 대중행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왜냐하면 헌재의 심판은 결국 국가기구의 심판이며, 총선에서의 심판은 "차악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도를 깨뜨리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민중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조금도 진전될 수 없다. 그리고 이를 위한 대중적 운동을 형성하는 게 가장 긴급한 정치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에 특히 유념해야 한다. 첫째 먼저, 현 사태를 자신의 이득을 위해 활용하려는 지배세력과 그 지원세력에 대해 모든 전선에서 분명한 대치선을 그어야 한다. 둘째, 탄핵사태로 표출된 여야정당과 국회에 대한 대중의 불만은 신자유주의 개혁이 낳은 위험과 불안과 매우 밀접히 결합되어 있다. 현재 <범국민행동>은 이러한 결합의 고리를 깨뜨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개혁이 낳은 위기를 분명히 밝히고, 민중의 민주적 권리가 대대적으로 침해되고 있는 현실을 반드시 드러내야 한다. 셋째, 정당정치의 대표성,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하여, 대중행동과 직접민주주의를 결합하고 강화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단지 의회가 문제가 아니라 행정부, 사법부(선출되지 않은 자들!)에 대한 민중의 직접적인 통제 방안을 사고해야 한다. 최근 사회운동에서는 참정권 확대의 맥락에서 국민소환, 국민발의제와 같은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논의되고 있으며, 이 문제에 관한 토론은 더욱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 넷째, 사회운동은 반전반세계화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에 헌신해온 만큼, 그 기조 위에서 민중진영의 합의와 단결에 입각해 탄핵사태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 한편 현 사태에 직면하여 총선참여를 준비해온 "진보정당"의 처지는 매우 궁색한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이는 현재의 억압적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다) 현재의 정당정치 체계 전반의 위기와 보수적인 파퓰리즘의 득세는 곧 진보정당이 단순히 총선에 참여하고 소수의 의석을 확보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유효한 결과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오히려 진보정당이 "파병반대, FTA반대"와 같이 사회운동의 이슈들과 결합하고 사회운동의 강화를 자신의 목표로 할 때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현재 국면을 지나며 진보정당은 단지 "실패했다"는 규정을 받게 되고, 민중운동의 "사기저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진보정당은 당 내부의 권력 경합에 몰입하기보다는, 자신의 운동방향을 결정할 때 다양한 사회운동들과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토론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민중의 힘으로 전쟁반대 신자유주의 심판! 반민중 반민주 여야정당에 파산선고를 ! FTA·파병강행 노무현정권 심판하자! 국민소환, 국민발의로 민중의 민주주의로 나아가자!PSSP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과 이에 대한 공방으로 날새는 줄 모르던 여야정당들이 총선 준비를 위한 신속한 체계 정비에 돌입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탄핵역풍'으로 인한 열린우리당의 압도적 우위가 예상되는 가운데, 야당은 이러한 국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놓고 내부적인 논쟁에 휩싸였다. 한나라당의 대표선출과정, 민주당의 선대위장 선임과정 등 야당들의 내부 논쟁에 있어서 판단의 유일한 기준은 총선 득표다. 이들 야당도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판을 뒤엎을 수 없는 바에야 '탄핵역풍'의 효과를 인정한 가운데 그 충격을 최소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야당 내부의 '탄핵취소'를 둘러싼 논란이나 박근혜, 추미애를 둘러싼 당내 체계개편 논란 모두 현재 이들의 지지율 하락이 총선 시기까지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로 인한 것이다. '탄핵역풍' 이후 탄핵반대 여론은 총선 지지율 속에 일단은 안정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탄핵반대' 여론도 지난 20일 광화문 촛불집회 이후 대규모 대중동원보다는 열린우리당과 그 후보에 대한 지지로 수렴되고 있다. 쟁점은 총선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으며 '총선에서 심판하자'가 주된 구호다. 탄핵반대 촛불시위 등을 주도했던 <범국민행동>의 활동도 차차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범국민행동>의 기조가 "신자유주의 반대, 민주주의 투쟁의 급진화"와 같은 방향을 억압하거나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국민행동>은 '탄핵반대', '민주수호' 등의 제한된 요구를 내걸고 이라크 파병문제 등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되는 쟁점에는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따라서 다른 모든 쟁점을 '탄핵반대'이하의 부차적인 쟁점으로 전락시킨다.) 운동의 쟁점 자체가 제한되어 있고 더 이상 운동의 요구를 확대하지 않으면서, 시효가 만료된 기존의 구호를 단순하게 반복하고 있다. 이미 압도적인 탄핵반대 여론을 통해서 애초 야당이 노린 탄핵의 정치적 효과를 무력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탄핵 반대' 구호가 계속 외쳐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계속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대중동원의 축소와 함께 열린우리당은 예정된 계획대로 탄핵반대 여론 전체를 자신에 대한 지지로 안정적으로 전환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동원전략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탄핵 국면에서 촉발되었던 대중의 광범위한 지배정치에 대한 불만은 이렇게 거칠게 봉합되고 있다. 현 시기 탄핵을 둘러싼 논쟁의 출발점은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한 입장이다. 한편 탄핵정국을 둘러싼 사회운동 내의 논쟁이 공통의 정치적 목표를 합의하지 못한 채 민중운동 진영은 각 단체, 대중조직들의 각각의 대응으로 흩어졌다. 시민운동단체의 대부분은 탄핵반대 운동을 주도하는 데 앞장섰고, 민중운동 진영은 탄핵사태 이후 <탄핵무효 민주수호 범국민행동> 참가여부를 놓고 크게 양분되었다. <범국민행동>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연대 소속의 상당수 단체들이 참가하고, 민중연대 간부들도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는 가운데, '탄핵 반대' 슬로건에 대한 논란 속에서 민주노총이나 민중연대 등은 어떠한 내부적인 합의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임기응변 식으로 대응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민중진영의 공동투쟁을 통해 형성되어온 최소한의 합의가 해체될 위험에 처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은 한 순간에 모래알처럼 흩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재 시민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진영의 균열은 각 운동의 역사성, 물질성을 반영한다.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과정에서 잠재되어있던 입장의 차이가 이번 탄핵사태를 계기로 전면화되고 있다. 시민운동 중 일부는 그들이 생각하는 진보적 과제 예컨대 '재벌개혁'을 달성할 수 있는 디딤돌이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이라 생각하고 활동을 전개해왔다. 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탄핵반대 운동이 제2의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고 광화문으로 나섰다. IMF 구제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수행자가 된 이른바 '개혁세력'은 이들의 든든한 후원자/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반대의 입장을 공유하면서 같은 전선에 서있다고 믿었던 단체, 대중조직들이다. 물론 이들 조직 내부에서 다양한 입장들이 공존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공동의 목표로 이제까지 전국민중연대 건설과정을 함께 한 조직들의 혼란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내부의 혼란을 넘어서기 위해서 명확히 해야 할 출발점을 각인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탄핵국면에서의 대응을 둘러싼 논쟁이 곧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쟁점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총선 이후에도 바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번 탄핵사태로 폭발한 대중의 분노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파괴적인 영향으로 인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개혁과 그 실패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경제의 금융화, 금융의 투기화 속에서 부패비리를 확산시켰을 뿐 아니라, 한국경제의 장기침체의 원인이 되었다. 이런 실패 속에서 지배계급 스스로도 안정적인 지배연합을 구축하지 못한 채 대립국면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개혁과 정치의 무능, 혼란 속에서 대중의 분노는 촉발된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불만을 그들에 대한 지지로 흡수하여 대중을 동원하고 있다. 지배계급 분파들 사이의 대립은 신자유주의라는 쟁점을 봉합하고 (그들 스스로가 파괴한) 민주주의에 관한 쟁점으로 포장되었다. 이런 상태로 총선을 경과한다고 해도 신자유주의 정책 방향은 이전과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강력한 대중동원을 통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집권은 그들의 정책 추진을 가속할 것이다. 워싱턴 브루킹스 연구소는 지난 23일 한국의 탄핵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일부 참가자들이 주목할 만한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IMF 구제금융 위기와 유사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던 것이다. 98년 IMF 구제금융 위기 당시, IMF와 미국은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의 수행을 위한 정권교체를 지지하였다. 이전의 지배정치 분파는 구조조정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에 선행하는 위기, 야당에 대한 억압/분열, 변화의 비전을 가지는 국민적 지도자 출현, 신속하고 종합적인 정책의 변화, 의회 내의 정치적 기반 확보 등 이른바 워싱턴 콘센서스에 따라 한국사회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현재의 국면 역시 신자유주의 개혁정책 수행을 위한 지배정치를 재구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위한 정치적 주체, 즉 노무현/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IMF 구제금융 위기 당시와는 달리 외부적 충격이 아니라 내부적인 정치 과정을 통해 수행된다는 차이점을 가질 뿐이다. 한편 지배 정치의 극도의 불안정은 총선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 직후에 일시적으로 그것이 봉합된다 하더라도, 현재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가 탄핵반대 여론을 단기적으로 흡수한 것일뿐더러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이 지속되는 한 한국경제의 위기는 지속되기 때문이다. 불만과 분노에 휩싸인 대중들을 외면하는 지배정치의 쟁점없는 대립은 지속될 것이다. 설사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장악한다고 해도 다른 방식으로 위기와 불안정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열린우리당 등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주장하는 '총선 심판'이 아무리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이후에 바뀔 것은 거의 없는 셈이다. '변한 것 없는' 지배정치를 '심판'해봤자 남는 것은 정치에 대한 대중의 극심한 환멸뿐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전선의 복구가 절실하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탄핵반대' 여론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끌어내고 이를 통해 총선 이후 집권 기반을 공고히 하고자 한다. 이 때, 민중운동진영 일부가 이러한 동원 전략에 편승하여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이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중동원 전략이 성공하고 총선에 이들이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들이 추진해오던 민중 파괴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은 더욱 강력하게 추진될 것이다. 비정규직 확대, 노동통제·탄압, 전쟁지원·파병결정, FTA를 비롯한 개방정책의 승인 등 수많은 민중들을 죽음으로 몰고갔던 정책들이 노골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중동원 정치 속에서 '정상적인' 부르조아 의회 정치마저도 마비상태에 빠진 후, 남는 것은 무엇인가? 부르주아 분파들 사이의 분열 속에서 안정적인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은 구축되기 힘들 것이며 무한 정쟁 -민중적 요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만이 반복될 것이다. 대중은 극심한 정치적 환멸에 빠질 것이고 폐허가 된 의회정치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민중운동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동원되는 한, 그러한 부정적인 결과를 피해갈 수 없다. 신자유주의 반대의 쟁점을 억압하는 '탄핵반대' 물결에 휩쓸려간 민중운동의 '자발적 동원'의 결과, 남는 것은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의 해체뿐이며, 총선을 경과한 이후 민중운동은 그간 힘들게 쌓아온 투쟁의 성과를 스스로 허물게 되는 무력함을 맞이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향하지 않기 위해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민중운동 전체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만들어놓은 허구적인 대결구도를 벗어나 스스로 전선의 성격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현재의 탄핵 찬/반 구도에 머문다면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지지하는 꼴이 될 뿐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노동권 쟁취", "파병철회", "국민발의, 국민소환" 등의 요구들을 전면적으로 제기하며 탄핵 찬/반을 넘어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쟁점을 형성해 가야한다. 특히 스페인에 대한 테러 이후 가속화된 미국의 군사동맹의 약화, 팔레스타인 저항세력 하마스의 지도자 야신이 살해된 이후 점증하는 저항과 중동의 불안 속에서 한국군의 파병이 시간을 다투고 있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곧 파병찬성 세력이었으며, 이들이 주장하는 '개혁적' 이라는 이미지는 거짓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폭로해내야 한다. 대중적인 전쟁반대, 파병반대 투쟁을 조직하면서 탄핵 정세에 개입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탄핵 찬/반으로 표상되는 수구세력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 모두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담지자임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총선에 개입해야 할 것이다. 민중에 의한 신자유주의 지배세력 심판은 이러한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 가능해질 것이다. 민주노총 등 대중운동 단위에서는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쟁점을 전면에 부각하고 투쟁을 전개해야한다. 27일 예정된 비정규노동자 대회를 시작으로 총선 시기에 민주노동당지지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제한되지 않는 대중투쟁을 조직해야 할 것이다. 총선에 '올인'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역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대한 '예의바른 조언자'의 역할에 주저앉으면서 득표에만 몰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쟁반대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전선 복구를 위해 노력하면서 총선 국면를 돌파하여아 할 것이다. 현재의 정세적 전환 국면은 운동진영이 차분히 대응할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 정세가 급격히 총선 국면으로 넘어가면서 지배정치의 강화를 위해 대중의 불만을 동원하는 작업이 단기간에 추진력을 더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이 의도하는 결과로 나가지 않으려면 운동진영 내의 적극적인 토론과 행동계획이 절실히 필요하다. 어느 때보다 운동진영의 신속한 공동의 투쟁을 통해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은 복구되어야 한다.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