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죽이지 마라! -택시노동자의 분신에 부쳐 또 다시 이 땅의 한 노동자가 정부의 택시노동자에 무책임한 정책과 택시사업주의 노조탄압에 항거하며 분신하였다. 지난 5월 7일 국세청 앞(광화문 열린마당)에서 열린 '부가세 전액쟁취를 위한 택시노동자 투쟁결의대회'집회 진행 중 서울 정오교통 노동자 조경식씨(44)가 "노조탄압 중지하라!", "부가세 지급하라!"라고 외치고 10여장의 유서를 뿌린 뒤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사태가 일어났다. 열악한 조건에 시달리는 택시노동자의 현실과 이로 인한 택시문제는 어제, 오늘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무려 25명이 넘는 택시노동열사들이 거의 매년 1∼2건씩 자신의 목숨을 던져 사업주의 횡포와 정부의 무책임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 이어져 왔고 사납금 철폐·월급제 실시·생활임금 보장·택시제도개혁을 요구하는 택시노동자의 투쟁이 1997년부터 치열하게 계속되어 왔지만, 택시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택시노조연맹에 따르면, 법인 택시노동자의 통상임금은 기초생활보장 최저생계비 1백5만원도 채 벌지 못하고 있다한다. 저임금은 대다수 택시업체가 고집하고 있는 소위 '사납금제'로 악화되고 있고, 법인 택시의 경우 12시간 2교대라는 장시간 노동이 횡횡하고 있다. 특히 당초 택시노동자 처우개선과 노동조건개선을 목적으로 도입한 '부가세 경감방안'은 사용자측의 불이행과 정부의 책임부실로 인하여 택시노동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농민, 빈민, 이주노동자들의 분신과 죽음이 계속되는 상황에 비통함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인한 구조조정과 산업공동화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며 죽음으로 내몰리게 하고 있다. 또한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 기조인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주검을 딛고 서 있다. 비정규직노동자들보다 임금과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는 택시노동자들, 이들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노동자들이다. 전체노동자들 중 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그리고 800만 명에 육박하는 빈곤층은 삶의 희망이라는 찾아볼 없어 삶의 벼랑에 내몰린 노동자들이다. 자본과 정권이 획책하는 죽음에 맞서 더 이상 노동자민중의 죽음을 장사치를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분신한 택시노동자가 하루빨리 쾌유하길 빈다. 그리고 전체 노동자민중들과 연대하여 노동자들의 죽음의 원인인 노동의 불안정화에 맞서 노동의 유연화를 분쇄하고, 불안정노동철폐, 최저임금·최저생계비 공동투쟁에 힘껏 나설 것을 밝히는 바이다. -2004년 5월 11일 사회진보연대-
집중하자! 심화되는 빈곤의 구조화와 노동의 불안정화 1999년 이후, 한국의 국민총생산과 국제수지, 실업률 등의 많은 경제지표가 IMF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의 위기는 지속되고 노동자민중의 삶은 그다지 나아보이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욱 나빠지고 있다. 그리고 격차는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빈곤의 일상화가 구조화되었기 때문이다. '가난이라는 굴레'가 더 이상 극소수의 사회적 부적응,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다는 것은 이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800만이 절대적 빈곤상태에 놓여 있다는 조사결과도 제출되었다. 뿐만 아니라 노동을 하는 인구 중 50%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들의 임금 수준이 최저생활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도 이미 밝혀진 바다. '가난한 노동자'는 이제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특히 여성들에게 이러한 고통은 더욱 집중되고 '빈곤의 여성화'라는 용어는 일반화되었다.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건강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구수도 이미 150만 가구에 이른다. 국민연금가입 대상자 중 40%는 연금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처지에 있어 이들의 노후생활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또한 신용불량자는 400만에 달하고 있어 정상적인 사회,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리고 2,30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중 10%가 실업상태에 놓여 있으며, 설사 고용된 처지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이들의 반 이상은 비정규직이란 처지에 놓여 있다. 그리고 2003년 들어서만 생활고나 빚에 내몰려 자살을 선택한 사람은 하루 평균 3명 꼴로, 지난 2000년에는 생활고, 사업 실패에 따른 자살이 786건이었지만, 2001년 844건, 2002년 968건 등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03년 7월까지만 해도 이미 408명이 목숨을 잃어 2003년 한해에만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를 “불안정 노동과 빈곤의 일반화”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이러한 모습은 바로 세계경제에 깊숙이 종속되어 있는 한국경제의 위치를 은폐하며, 노동자민중에게 미래에 대한 환상과 현재의 고역을 강요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동북아 중심국가'니 '2만 달러 국민소득 시대'니 하는 허울좋은 구호 아래 행해진 극소수 자본과 그 자본운동에 기생하는 소수 계층만을 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이다. IMF 경제위기를 바탕으로 수년간 자본과 정권은 노동유연화 정책을 전면에 내걸고 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는 지속적으로 축소되었고, 노동의 조건과 삶의 조건 역시 지속적으로 후퇴하였다. 특히, 양산된 불안정 노동층의 권리와 삶의 조건은 집중적으로 파괴되었다. 또한 민중들의 삶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생산적 복지’와 ‘참여복지’는 국민의 빈곤화를 막아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현존하는 빈곤에 대한 대책도 되지 못했다. 단지 신자유주의 전략 속에서 노동의 불안정성과 빈곤을 고착화시키는 기제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보완물로서 기능해왔던 것이다. 고립되어 각개 약진했던 지난 시기의 투쟁 이러한 삶의 위기 속에서 불안정노동자들의 투쟁은 폭발적으로 일어났고 지속되었다. 이미 2000년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2001년에는 평등노조 이주지부가 만들어져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을 선언했다. 장애인 이동권 쟁취투쟁을 벌이며 장애민중들이 본격적으로 장애인들의 권리를 선언했고, 여성노조가 만들어지면서 여성노동권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직접적인 결과에 전면적으로 저항하는 이러한 투쟁들은 그 사안의 중요성과 의미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투쟁’으로 진행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불안정노동층의 투쟁을 아우르는 중심체도 없이 각자 개별적 과제를 갖고 고군분투할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투쟁들은 선도성과 전투성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노출했고 지배계급의 각개 격파에 진압되고 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계는 불안정노동층의 투쟁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삶의 위기를 강제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을 양산함으로써 대중운동의 토대자체를 뒤흔든다. 정권은 노동자들을 분할 관리하면서 투쟁을 통한 성과를 나눌 때 노동자 전체에게 주어진 한정된 몫을 노동자 내부에서 나누도록 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결국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전선이 전체적으로 설치되지 못하고, 개별의 투쟁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충족해야 하는 상황에 노출된 노동자들은 때로는 자신의 투쟁으로 불안정노동층을 억압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위기의식 확산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중심의 운동방식을 고수하며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지 못하고 불안정노동층의 확산과 무권리 상태에 저항하지 못하고 자본의 방식에 조응해왔던 민주노조운동의 한계 역시 지적되어야 한다. 또한 빈곤계층의 투쟁은 “주체 없는” 투쟁으로 인식되었다. 주체 조직화의 어려움은 극복되지 못했고 투쟁들은 단기 “이벤트”성에 머무른 것이 사실이었다. 이것은 주로 청원운동으로 표현되었다. 계급적 운동진영은 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 비판적 견해는 제출했으나 이것을 투쟁으로 전환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대중조직을 놓고 시민단체가 동원하느냐, 계급적 진영이 동원하느냐 하는 싸움이 있었을 뿐 독립적인 투쟁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내용상으로 볼 때 대중조직은 시민단체로 동원될 확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이미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복지’ 요구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원이라 하더라도 전체적인 동원은 어렵다. 대중조직은 이미 ‘고용’을 통해서 자신의 기본생활을 보장받고 있기 때문에 이것 이외의 확장은 단지 운동을 책임지는 중요한 주체의 ‘의무’로서만 다가올 뿐이었다. 특히 빈곤과 관련된 문제들은 ‘노동’과 분리된 상태로 접근되며 마치 ‘취약한 노동자 보호’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어서 보편적인 권리를 ‘시혜’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또한 무상의료나 주택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말 그대로 ‘담론’ 수준으로만 제출되었고, 그나마 노동자와 민중이 누리고 있었던 부분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이 문제가 공세적으로 제출된 바가 없다. 또는 그것을 향해 가기 위한 낮은 수준의 요구도 확장되지 못했다.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투쟁이 필요하다! 불안정노동철폐투쟁은 전체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투쟁일 수밖에 없기에 이를 위해 각각의 투쟁의 공통의 요구를 정식화해야 하고 이러한 문제의식이 민중운동 전체에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 기계적인 ‘공동투쟁’으로 당장 묶어서 이를 강제하기보다는 보다 장기적인 전망 하에 각각의 투쟁이 충분히 발전할 수 있도록 지지 연대하고 그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공동의 틀을 형성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중조직들의 공동투쟁이 회복되어야 한다. 주체들의 요구와 내용은 정치적인 상징성을 갖고 통일되어야 하고, 그 공동의 요구에 입각한 공동행동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불안정노동의 문제와 빈곤의 문제를 동시에 사고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빈곤의 문제는 더 이상 ‘노동’과 분리되어 접근할 수 없다. 지속적인 노동의 불안화로 인해 예전처럼 “고용=생활의 안정”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의 빈곤화를 낳고, 이것은 신자유주의의 의도이기도 하다. 빈곤화와 복지의 축소를 통해 노동자들을 위계화하고 자본에 복속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도록 경쟁시킨다. 이런 구조를 통해 신자유주의는 재생산된다. 그런 점에서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중요한 전선으로 사고되어야 한다. 내부의 위계를 정규직과 불안정노동층의 대립으로 만드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불안정노동철폐 공동투쟁을 위한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이 필요하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이주노동자와 한국국적 노동자,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영세사업장과 대기업노동자 할 것 없이 노동의 불안정화는 모두가 공통으로 직면하게 되는 상황이며 불안정노동철폐투쟁은 모두의 과제이다. 민주노조운동의 관성을 떨쳐버리고 새롭게 주체들이 혁신해야 하며, 또 한축으로는 투쟁으로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불안정노동층 노동자들이 만나 말 그대로 ‘전체 노동자 총단결’ 기치를 세워야 한다. 개별 사업장이나 개별 부문이 처해있는 요구를 뛰어넘어 노동자와 민중의 권리를 제기하고, 이것을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대중투쟁전선으로 확장해가야 한다. 최저임금실질화투쟁/최저생계비현실화투쟁을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투쟁으로 최근 민주노총과 빈곤사회연대,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실질화 투쟁 / 최저생계비 현실화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투쟁에 대한 연대와 적극적 참여/행동으로부터 공동행동의 첫 발걸음을 내딛고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투쟁의 유의미한 계기로 만들어 가야한다. “노동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사회구성원으로서 기본적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가운데 “기본생활이 보장되는 최저임금■최저생계 보장”의 요구를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로부터 ‘시혜’를 얻어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이나 최저생계비 계측에 있어서의 정부■자본 논리의 비현실성을 폭로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어떻게 빈곤을 양산하고 심화시키고 있는가를 고발/폭로하면서 운동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이 가운데 지난 시기 투쟁의 한계를 극복한 대중적 공동행동이 복원될 수 있을 것이고 마침내 삶의 나락에서 고통받고 있는 민중들과 함께 반신자유주의 투쟁 전선에 우뚝 서는 길이다.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했다. 민주노동당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평소에 비판을 많이 했던 사람들조차도 격세지감을 느끼는 건 매한가지인 것 같다. 여기저기서, '혁명'을 위해서든 아니면 그냥 '복지사회'를 위해서든 혹은 다른 시민운동적 과제의 실현을 위해서든 어쨌거나 민주노동당과 함께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늘어나는 건, 투쟁 중인 노동조합에서 '국회의원이 왔으면 좋겠다'는 요구와, 먹고살기 힘든 노동자인데 노조도 없는 상황이라 당이 와서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요구, 그리고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를 당이 나서서 해결해달라는 무대뽀 스타일의 민원성 요구들이다. 이런 요구들을 접하면 중앙당 활동가들은 굉장히 곤혹스러워진다.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사람들을, 그렇다고 모른 체 하고 전화를 끊을 순 없기 때문에 "네, 네.."하면서 그냥 열심히 전화를 받을 뿐이다. 이런 전화가 하루에도 수백 통은 족히 오는 것 같고, 중앙당 활동가들은 거의 모든 사람이 '민원 상담'에 매달리고 있다. 가끔은 자기 이야기를 잔뜩 적은 문서를 가지고 와서 '면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당에 '민원실'이 없기 때문에 천상 처음 눈이 마주친 사람이 상담원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찍힌 사람은 30분이고 1시간이고, 대부분은 같은 얘기를 서너 차례 씩 하는 민원인들 앞에서 그 얘기를 다 듣고 앉아 있어야 한다. 먹고살기 진짜 팍팍한데 노동조합도 없고 당이 좀 나서줬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경우는 그냥 안타깝기만 하다. 전화해서 회사 욕 실컷 하고는 자기 회사가 어딘지는 말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전화한 것 알면 잘릴 게 두려워서란다. 그래 놓고는 또 당이 나서달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당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법제도를 고치거나, 법에 나와 있는 걸 안 지키는 사업장을 전국적으로 몽땅 조사해서 처벌받도록 조치하겠다는 수준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지 않겠냐는 불만을 하곤 한다. 처음에는, 직접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자들이 노조와 함께 단결해서 '투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몇 번했지만,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당은 못 하겠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말로 듣는다. 이래저래 참 어려운 일인데, 이런 건 뭐 어차피 활동가가 감당해야 하는 거라 불만은 없다. 이런 것보다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투쟁 중인 노동조합에서 국회의원이 왔으면 좋겠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군데에서 그런 요청이 들어온다. 특히 오랫동안 투쟁했으면서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곳의 경우 국회의원이 한번 와주고, 또 사측과 면담도 한번 하면 문제가 금방 풀리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많다. 근데 이게 참 난처하다. 우선은 몇 명 안 되는 국회의원들의 일정이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빡빡하다는 점이 문제다. 한 일주일 정도 일정은 하루에 30분 단위로 약속이 이미 잡혀 있는 식인데, 마음 급한 노조야 하루 이틀 전에 연락하는 게 보통이고 이러다 보니 당활동가들은 본의 아니게 "안되겠는데요", "조금만 더 일찍 연락하셨어도...", "다른 일정이 있어서.."등의 말을 하게 된다. "국회의원 생기니까 뻣뻣해졌다"는 소리 듣기 딱 좋은 분위기인 것이다. 실제로 국회의원이 가서 사측 면담 한번 하면 문제가 풀리는 곳도 있긴 할테다. 그런데, 걱정되는 건 현안이 해결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국회의원 몇 명 생겼다고 갑자기 바뀌는 사람들의 태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들의 태도가 문제라기 보다는, 이런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었던 우리의 태도가 문제다. 그리고 정말 걱정되는 건 이런 상황이 점점 커지면 민중운동 전체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열심히 투쟁하고 당은 '연대 투쟁'을 하는 것이다. 당 활동이 대중운동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발전한 대중운동이 당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그런 식이어야 한다. 이 원칙은 선거전이나 후나 달라질 게 없다. 연대 투쟁의 방식이나 내용이 국회의원이 생긴 상황에서 좀 변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께 싸워야 할 동지가 느닷없이 민원을 요청하는 민원인이 되고, 연대투쟁 해야 하는 당이 갑자기 대민 업무나 보는 꼴이 되어서는 안될 말이다. 안 그래도, 국회의원 배출 이후 의원 세비다, 국고보조금이다, 늘어난 당원들로부터 들어오는 당비다 해서 수입이 대폭 늘어나고 정책보좌관을 100명 가까이 뽑으면서 인력도 당으로 집중되는 상황인데, 이것이 노동운동 혹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투쟁하는 것을 약화시키는 쪽으로 영향을 미쳐서는 절대 안될 일이다. 국회의원이 나왔다고 해서 한국 노동운동이 그 간의 문제를 모두 극복하고 새롭게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일 뿐만 아니라 까딱 잘못하면 당의 성장이 노동운동 쇠퇴의 반작용으로 이루어질 가능성도 많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기존의 다른 진보정당과 달리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대중운동과 결합'했다는 것일텐데,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도 어떤 동지가 왔다 가셨는데, 자기들 집회하는데 당에서 '격려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공문을 들고 왔다. 그 전까지 민주노동당이 가면 주로 '연대사'를 했었는데, 갑자기 '격려사'를 해달란다. 노동절 114주년이 되는 올해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노동자 운동의 진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은 그 길에서 당연히 노동운동의 발전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연대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PSSP
1. 비정규직 투쟁에서 최저임금 투쟁으로 1)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너무나 기초적인 노동기본권, 이미 보장되어 있는 근로기준법상 권리,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인권침해가 심각한 수준에 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위 개선방안은 이와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보다는 질적으로 비정규직을 보다 제도화·공고화하고, 양적으로도 보다 확산하는데 기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의 공약이나, 소위 인수위 시절 중구난방 노무현 정권에 한발이던 한손이던 걸쳐있던 멤버들의 싸구려 멘트-'립써비스'보다도 훨씬 못한 것이분노의 현실이다. 2) 2002년 대통령 선거와, 이렇게 비교하기가 좀 뭐하지만, 2004년 1월의 민주노총 선거, 그리고 지난 4월15일 17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거치면서, 잠복했는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눈 가리고 아웅인지 모르겠지만,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제도화하려는 노동법 개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파견업종을 확대하고, 특수고용 노동자를 기만적인 유사근로자로 규정하고, 비정규직의 근본적인 문제인 기간제노동에 있어서 오히려 기간을 확대하려는 등 개악을 넘어 '노동자를 죽이려는' 법제도 '개선'이 추진 중인 것이다. 현장은 이미 상시적 구조조정으로 인해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노동법개악에 대해 총자본은 사활적 이해를 갖고 추진하고 있다. 온갖 차별과 고용불안, 무법천지, 무권리 상태로 인해 벼랑끝으로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격렬한 저항은 이미 작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 故이용석 열사와, 올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故박일수 열사의 죽음에서 표출되듯, 너무나 안타까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지금이다. 3) 민주노총에서는 비정규직 관련 정부안 확정시점인 상반기에 "노동법개악 저지"를 기본방향으로 하며, 개악저지, 법제도개선을 위한 총력투쟁을 전개하는 것을 투쟁목표로 상정하고 있다. 상반기에 시기집중 임단협 투쟁과 결합하여 노동법개악 기도를 분쇄하며 최저임금 쟁취투쟁을 공세적으로 전개하고, 하반기 법제도개선을 위한 총력투쟁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합원에 대한 교육과 선전, 실천사업을 통하여 조직 내 공유와 결의를 최대한 조직하고자 하고 있다. 기간제, 간접고용, 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각 영역별로 나뉘어져 있는 투쟁을 활성화시키되 결집하여 총력투쟁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 또한 경주하고 있다. 아울러,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에 따른 새로운 정치지형을 맞아 대국회·대정당 사업을 활성화하고 다면적 대응을 조직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중이다. 4) 이 중에서도 특히,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과 비정규직 투쟁의 중요성에 대해 민주노조운동은 물론 민중운동 진영 전체가 갖고 있는 당위적인 인식을 넘어, 실제 현장투쟁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정규직-비정규직이 하나되는 투쟁, 대정부-대자본 투쟁의 공통된 실천을 만들기 위한 주요한 과정으로 2004년 최저임금 투쟁이 위치지워질 것이라 판단한다. 2. 최저임금위원회와 민주노총의 투쟁계획 1)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제도가 최초로 실시된 것은 1988년이다. 민주노총은 2000년부터 최저임금위원회에 참가하였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에 참가하면서 상반기 임단협 투쟁과 하반기 법제도개선 투쟁의 큰 틀 아래, 최저임금위원회가 당해연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상반기-구체적으로 6월-까지는 최저임금 현실화(인상) 투쟁, 그리고 하반기에는 최저임금 위반사업장 신고 및 법제도개선 투쟁의 흐름을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늘 개선되지 않고 있는 법제도의 문제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작용하였고, 민주노총 노동자위원들의 참여 여부와는 무관하게, 공익위원(을 가장한 정부위원)의 소위 '공익'이란 가면 아래 결정되어지는 열악한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항변의 권리를 박탈당해 왔다. 급기야 작년, 2003년에는 (신자유주의) 경제학-구조조정-노동시장 유연화 논리로 무장한 최저임금위원회를 끝까지 참여하기가 역겨웠던 민주노총 노동자위원과 소수 공익위원들이 사퇴한 가운데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당해연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극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2) 2004년 다시금 2004년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의 대한민국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4월29일 1차 전원회의에서 논의된 민주노총의 최저임금 투쟁계획과 목표는 아래와 같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에 따라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는 것에 조응하여, 최저임금 현실화 및 법제도개선 투쟁이 결합될 최저임금 사업흐름을 보면, 2004년 한 해 동안 최저임금 투쟁의 지속적인 전개를 상정하고 있다. 3) 최저임금제는 국가가 노사간의 임금결정과정에 개입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할 것을 법률로 강제하는 제도이다. 최저임금제는 일반적으로 저임금 일소, 임금격차 해소, 노동소득불평등도 완화, 소득분배구조 개선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갖는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저임금은 첫 시행 때부터 지나치게 낮게 결정된 뒤 현재까지 전체 노동자 월평균 임금의 1/3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최소 생계 보장이라는 취지가 무색한 상황이다. 4) IMF 이후 부익부빈익빈 현상과 경제적 불평등이 한국사회 최대 문제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이는 그만큼 최저임금제도가 제 기능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목표를 달성하기에 현행 최저임금제도는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최저임금 결정기준이 생계비, 유사 노동자 임금 및 노동생산성(최저임금법 제4조 제1항)으로 명시돼 있음에도 이에 현격히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 수준을 개선할 방법이 없다는 점, 둘째, 최저임금 결정의 실질적 주체인 공익위원을 정부가 추천함에 따라 중립성이 훼손된다는 점, 셋째, 최저임금 적용시기를 9월∼이듬해 8월로 정함에 따라 공공부문 회계연도와 일치하지 않아 최저임금 위반사례가 속출한다는 점, 넷째, 18세 미만 노동자, 양성훈련자, 수습노동자, 감시단속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법조차 적용되지 못한다는 점 등이다. 5) 민주노총은 이같은 최저임금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법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제도개선 방향은 첫째,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적어도 전체 노동자 월평균 임금의 50%로 명시해서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할 것, 둘째, 공익위원 선출과 관련 노사단체가 후보군을 제출해 교차 삭제하는 방안으로 민주화를 기할 것, 셋째, 최저임금 적용시기를 현행 '9월-이듬해 8월'에서 '1월-12월'로 전환할 것, 넷째, 최저임금 적용대상에 18세 미만 노동자, 양성훈련자, 수습노동자, 감시단속 노동자들을 포함시킬 것 등이다. 현행 567,260원에 불과한 최저임금에 대해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에 해당하는 기준과 766,140원으로의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6) 이를 위해 2004년 민주노총은 사회, 시민, 노동단체와 함께 최저임금 투쟁을 지지 엄호하고, 국민적인 여론을 형성하며 사회적 투쟁을 확산하기 위한 단위로 [최저임금연대]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비정규직 관련 사업의 영역을 조직내부적으로 확대하여, 민주노총 내부의 조직쟁의실, 정책기획실, 미조직비정규실, 교육선전실 및 민주노총 산하 연맹과 지역본부 및 단위사업장 해당 주체를 아우르는 [최저임금기획회의]를 일찌감치 가동중이다. 5월 1일 노동절 대회에서 발대식을 진행할 [최저임금투쟁실천단]은 해당 비정규직·중소영세 단위사업장은 물론, 관련 연맹과 지역본부, 사회단체들이 참가하여 "최저임금법 개정! 최저임금 77만원 쟁취"를 선봉에서 실천하는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교육자료 제작, 배포는 물론, 연맹 및 지역본부와의 간담회를 배치하고, 임단협 포스터와 함께 최저임금투쟁 포스터를 제작, 배포하며, 이미 카세트테이프가 활용되고 있다. 금속산업연맹과 보건의료노조는 산별최저임금을 상정하여 산별교섭 및 투쟁의 주요 사안으로 최저임금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민주노총 상반기 투쟁의 결절점이 될 6월 시기집중 총력투쟁의 핵심 쟁점으로 파견법 개악 저지 투쟁과 더불어 최저임금 쟁취 투쟁 역시 상정되어 있다. 3. 서울에서 진행되는 교섭(?), 서울지역의 실천(!)이 중요하다! 1) 작년 자료이지만, 최저임금 영향률은 1993년부터 매해 추락해 1998년에는 0.4%까지 떨어졌다가 2002년 2.9%까지 겨우 상승했다. 그럼에도 1989년 10.7%에는 아직도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최저임금제도가 겨우 이름만 유지할 뿐 그 기능이 상실됐다는 비판의 근거가 된다. <표1> 연도별 최저임금액과 영향률 추이(단위: 원,명,%) 자료; 최저임금위원회, 최저임금심의·의결경위, 노동연구원(2003),『2003년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생계비산출』 OECD는 저임금 노동자를 상용직 중위임금(median)의 2/3 이하로 정하고 있으며 이 기준을 2002년 8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에 대입할 경우 대한민국 1천3백만 노동자 가운데 저임금 노동자는 663만명(48.6%)에 달한다. 단순 수치상으로도 최저임금 투쟁은 최소 수십만명에 달하는 (최저임금에 직접 해당되는) 노동자들에게 직결되는 임금교섭이자, 수백만명에 이르는 (최저임금에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위임교섭인 셈이다. 수십만에서 수백만명의 노동자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정부 임금위임교섭이 서울에서 매년 6월 열린다고 할 수 있다. 2)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동부, 서부, 남부, 북부, 남동, 중부 등 서울지역 6개 지구협의회와 함께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의 조직과 투쟁을 지원하고, 현장과 지역에서부터 미조직 조직화 및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한 투쟁을 전개해 왔다. 더군다나, 계약직·임시직 등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는 물론이고,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기본권 쟁취를 위해 개별사업장에서의 비정규직 투쟁과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을 해왔다. 또한 최저임금 투쟁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그 인식의 폭을 확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특히나 이번 2004년 최저임금 투쟁에 있어서는 여성연맹 지하철 및 도시철도 청소용역노동자들과, 전북지역일반노조를 비롯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만의 투쟁으로 최저임금 투쟁이 국한되어 왔던 그동안의 평가를 극복하고자, 최저임금 투쟁에 대해 기존 해당 사업장을 넘어 서울지역 전체 단위노조가 결합할 수 있도록 교육과 선전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중이다. 3)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최저임금서울실천단]을 조직하여 최저임금투쟁을 한단계 더 강도높게 전개하고 한다. [최저임금서울실천단]은 최저임금 해당조직인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의 간부 및 조합원들의 참여를 조직하고, 각 연맹 및 6개 지구협의회가 최저임금 비해당(?) 단위사업장(정규직·대공장사업장) 대표자 및 간부들을 적극 조직하는 틀이 될 것이다. 의원입법 발의에 맞춘 최저임금법 개정 서명운동을 전개함에 있어 조합원은 물론, 일상적인 대국민·대시민선전전 실천을 통해 조직하며, 5월19일(수), 6월 2일(수), 6월16일(수) 민주노총 전국동시다발 선전전을 서울 전역에서 집중·분산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6월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 맞춘 아침선전전과 집회를 적극 조직하며, 민주노총 시기집중투쟁 및 최저임금위원회 활동의 정점이 될 6월 간부상경투쟁 및 집중투쟁에 선봉에 설 결의를 다지고 있다. 4) 빈곤사회연대 및 불안정노동과 사회빈곤화에 맞서는 여러 연대조직과 함께 최저임금 투쟁을 협소한 의미의 임금노동자의 문제로부터 보다 확장시키기 위한 활동들 역시 적극적으로 요구되는 지금이다. 최저임금 투쟁의 인식을 최저생계비 투쟁으로까지 확대하고, 최저임금 투쟁에 대한 연대와 지원을 넘어서는 反신자유주의 투쟁의 주체형성을 위한 현장과 지역활동의 결합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기획사업이 배치되어야 할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 단위·현장·지역·조직에서 이런 실천은 어떨까? ① 각 단위사업장 및 현장·지역·조직별 최저임금투쟁의 결의를 담보할 수 있는 결의서명을 진행한다. ② 최저임금실천단 가입원서를 공개적으로 작성, 조직한다. ③ 최저임금 투쟁 관련 문화단위 및 학생조직과 연대하여 투쟁을 확산하고 강화한다. - 예를 들어, 영세민(?)밀집단위 "최저임금 현실화 게릴라콘서트", 지역 "만국기 게시", 학생들에게 "풍선나눠주기", "야외상담센터" 설치, "신문 간지" 지역 선전물 투입 등 - 학생조직의 경우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압박 및 학내선전전 등 ④ 최저임금투쟁의 새로운 주체조직화를 시도한다. 예를 들어, 학생조직과 대학 시설관리노동자 실태조사 및 조직, 전교조 서울시지부와 학생 아르바이트 실태조사 및 조직, 사무금융연맹과 고층빌딩 시설관리노동자 실태조사 및 조직 등 ⑤ 무엇보다, 주요 정규직-대공장 사업장에 대한 최저임금 투쟁 결합을 조직하는 것이 관건이다. ⑥ 민주노동당 서울시지부 및 개별 지구당에 서울본부 및 지구협의회 차원에서 최저임금투쟁을 제안하고 조직한다. 조직된 노동자의 힘으로 최저임금 실질화 쟁취하자!PSSP
6월반전반세계화 투쟁을 조직하자 자본가들의 잔치, 세계경제포럼 오는 6월 13일~15일 서울 심장부에 위치한 신라호텔에 전 세계 자본가, 고위 관료, 정치인, 학자들이 모여든다. '아시아의 번영과 평화'를 주제로 하는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 경제정상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사전적 역사와 의미를 따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스위스 제네바대학의 클라우스 슈왑교수가 세계 정계, 재계 지도자들 간의 유대 관계 형성을 위해 제안한 비영리 재단이며, ‘다보스 포럼’으로 알려진 연차총회와 지역 정상회의를 주관하고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발간한다. 세계 1200여 개 초국적 기업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으며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세계경제포럼은 반세계화/대안세계화 투쟁의 상징적 타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반세계화 투쟁의 정치적 시발점으로 알려진 1999년 시애틀 투쟁 이전부터, 세계경제포럼에 맞선 국제연대투쟁은 항상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이는 세계경제포럼이 모든 영역을 망라하여 세계적인 지배엘리트들의 배타적인 사교모임으로, 매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심화와 확대를 위한 포괄적 의제들을 논의하고 동의를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다보스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진행되었으며 2001년에는 뉴욕, 칸쿤, 홍콩 등에서 개최된 세계회의 및 지역회의 때 반대시위가 조직되었다. 또한 세계경제포럼은 세계사회포럼에 의해 더 많이 알려졌고, 그것을 통해 관찰할 때 더 잘 이해된다. 전 세계 사회운동 진영의 교류와 연결의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은 세계사회포럼의 첫 출발이 세계경제포럼에 대한 대항포럼이었다는 사실에서 세계경제포럼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다. 세계사회포럼이 자본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민중의 삶의 대안을 모색하는 다양한 사회운동들 간의 연대를 실현하고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행동을 결의하는 장이라면, 세계경제포럼은 우리가 저항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기 위한 자본의 과제를 도출하고 전략을 짜는 장인 것이다. 동아시아 정상회의는 수백 명의 기업총수들과 각 국의 경제장관들이 모여 아시아에서 자본의 돈벌이 계획을 논의하고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모임이다.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정상회의와 6월 투쟁의 의미 특히 이번에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 경제정상회의는 다음과 같은 정세적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한국 정부는 이번 회의를 ‘동북아 물류·금융 허브’ 구상을 구체화시키는 계기로 활용할 것이다. 이미 싱가포르에서 열린 작년 동아시아 경제정상회의에서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는 2004년 서울개최를 수락하는 연설을 통해 동북아 물류·금융 허브 구상이 동아시아의 활력회복과 공동번영에 기여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동북아 허브 구상은 그 현실가능성과 무관하게 한국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과 초국적 자본의 하위 파트너화, 그에 따른 노동권과 민중생존권의 위기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둘째,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다양한 자유무역협정의 추진 필요성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 지반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계기로 사고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역내 자유무역협정 추진 현황은 타 대륙에 비해 활발한 편이 못 된다. 하지만 1997-98 아시아 경제위기는 역설적으로 역내 무역과 투자의 연관관계가 상당히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아시아 지배 엘리트와 민중들 모두에게 던져 주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역내 자본가들은 일-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 아세안자유무역지대, 한-일 자유무역협정, 일-태국 자유무역협정 등 다양한 양자간/지역별 자유무역협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번 동아시아경제정상회의는 정, 관, 학계 등 모든 영역의 신자유주의자들이 결집하여, 신자유주의적 지역화 과정을 확인하고 추동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셋째, '아시아 평화'라는 테마 아래 무엇이 논의될 지 쉽게 짐작할 수는 없지만 아시아 지역이 갖는 의미, 즉 미국 주도의 군사 세계화와 대테러전쟁, 이라크 점령에 대한 정당성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작동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라크 침략전쟁 및 점령, 한반도 위기에 대한 제국주의적 해결 방식 등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군사주의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넷째, 반전/반세계화 투쟁에 있어서 6월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내적으로 이라크에 추가 파병이 6월에 이뤄지고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상이 6월 24일부터 제네바에서 시작되며 한일자유무역협정의 4차 정부간 협상이 6월에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2004년 투쟁에 있어서 6월 투쟁은 중요한 결절점이 될 것이다. 파병반대 국민행동 차원에서도 6월 12일 대규모 반전 시위를 기획하고 있다. 따라서 이 투쟁을 9월 10일 '칸쿤 각료회의 및 이경해 열사 1주기 투쟁'과 쌀개방 반대투쟁, 11월 노동자대회, 민중대회로 연결시켜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6월 투쟁은 반전/반세계화 투쟁을 대중적인 차원에서 추동해낼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다. 우리는 이처럼 6월에 집중되어 있는 여러 계기들을 묶어내고 군사주의와 금융세계화에 반대하는 통일된 정치적 행동으로 6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반전-반세계화 투쟁으로 6월을 달구자 현재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등 주요 대중조직과 전국민중연대, 자유무역협정·WTO반대국민행동 등 주요 연대기구들이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정상회의 반대 공동행동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본격적인 투쟁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대강의 투쟁 흐름을 보면, 6월 12일(토) 오후에 이라크 점령반대, 파병철회 대규모 집회가 파병반대국민행동 주최로 상정되어 있고 밤에는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정상회의 반대투쟁 전야제가 개최된다. 13일 오전에서 저녁까지는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경제정상회의 반대 결의대회와 저지투쟁이 진행될 계획이다. 또 저녁에는 효순이 미선이 2주기 추모제가 전개될 예정이다. 이어서 6월 14-15일에는 아시아 사회운동회의가 조직된다. 특히 아시아 사회운동회의에서는 아시아 각 국에서 100여명의 활동가들이 참가하여 WTO, FTA, 지역통합에 대한 대응 방안과 WTO 각료회의에 대한 공동 투쟁, 아시아에서의 반전/반제투쟁과 향후 계획, 한반도 위기와 이라크 사태에 대한 공동 행동, 아시아 사회운동 사이의 연대와 네트워크 구성을 논의하고 결의할 것이다. 6월 투쟁을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의 반전/반세계화 투쟁을 대중화시켜내고 일국적 맥락의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을 국제적으로 확장시켜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조직하자. 투쟁을 세계화하고, 희망을 세계화하자.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군사 세계화에 맞선 투쟁에 함께 하고, 아시아 민중들의 연대와 전진을 위한 중요한 첫 걸음을 내딛자. PSSP
총선결과 분석 1/ 불안정한 양당체제의 등장과 신자유주의 정치개혁의 모순 -총선은 지배정치의 위기를 해소했는가? 17대 총선은 외형적인 양당체제를 낳았다. 과반 의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은 탄핵심판의 민의를 확보했다며 압승을 선언했고, 121석을 확보하여 기사회생한 한나라당은 그들 나름대로 자축 분위기다. 언론은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안정적인 국정운영과 생산적 견제의 황금분할이라 평하고 있다. 우선 과반 의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은 이번 선거를 당연한 탄핵심판의 승리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실제 선거결과를 놓고 보면, 탄핵선두라 할만한 김기춘, 정형근, 박희태 같은 인물들이 모두 살아남았고, 한나라당은 무려 121석을 확보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를 탄핵심판론의 압도적 승리라고 평가할 수 있으려면, 호남의 지역주의는 개혁적이지만 영남의 지역주의는 수구보수적이라고 매도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역주의적 투표 행태의 실제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하더라도 영남대중 전체를 수구보수로 매도하거나, 어떤 지역주의가 이념적으로 구분된다는 논리는 지나치게 사후적인 비약이고 억측이다. 호남 지역주의가 열우당을 선택하고 민주당을 버린 것이 수구보수 한나라당에 대한 정서적 거부의 결과라면, 영남 지역주의는 노무현 정권의 국정수행 1년에 대한 거부를 정서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역주의는 복잡다단하게 얽힌 현실의 불만이 합리적 대안을 가지지 못한 가운데,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이데올로기적(모든 이데올로기는 왜곡된 이데올로기다) 투표 행태다. 지역주의적 형태를 띤 투표결과를 호남과 영남에서 누가 얼마만큼 당선되었는지의 사후적 결과로만 평가한다면, 성격상 무한히 변태가능하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지역주의는 스스로 '모든 지역에서의 각 정당의 균등한 득표'라는 불가능하고 제거할 수 없는 목표의 함정에 빠진다. 더욱이 영남에 출마한 수구보수적인 지역수장들이 선거과정에서 "그래 나 수구꼴통이고, 계속 차때기할테니 찍어 달라"며 선거를 했을 리 없고,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과 햇볕정책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를 설득하여 당선되지 않았다. 한편 한나라당의 자축분위기는 훨씬 기만적인데, 이들이 내놓은 주된 평가는 '국민의 놀라운 균형감각'이 표현됐다는 것이다. 정말 놀랍도록 뻔뻔한 해석이다. 하지만 152:121:10:9라는 분명한 양당 구도가 확정되자마자 노무현과 정동영은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운운하기 시작했고, 언론들은 진보가 가미된 '중도(수구)보수 vs 중도(보수)개혁 간의 황금분할'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를 통해 한나라당의 아전인수격 평가는 어떤 현실적인 근거를 얻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17대 총선의 의미는 "정치를 바꿔 경제를 살리자"는 모토로 요약되는 정치개혁의 기만성과 '안정적인 위기관리'라는 지배계급의 모순적 과제가 가지는 고유한 난점을 통해서만 옳게 파악할 수 있다. "정치를 바꿔 경제를 살리겠다"는 신자유주의 여야정당의 약속은 피착취 대중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했고 동시에 지배계급 또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통치할 수 없음이 분명해진 상황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통치하겠다"는 읍소로 모면하려는 하나의 기만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 기만 속에는 집권여당의 통치력 위기를 넘어 지배정치일반(국가)의 위기로 변태중인 경제위기를 오로지 여야 간, 국가기구 간의 책임전가를 통해 관리해야하는 극복할 수 없는 모순이 존재한다. 즉 지배체제의 위기를 봉합하기 위해서는 지배정치 스스로 지배체제의 정치적인 안정을 허물어야한다. 때문에 보수정당들 간의 차별성이 없어지고, 이들 간의 중도주의적인 수렴이 진행될수록, 지배계급 내 정치적 대결은 경제위기를 호도하기 위한 '다른 정치 수단'(부패 비리수사와 각종 스캔들, 정치이미지 마케팅)이 총동원되는 가운데 점점 더 극단적인 양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진다.(대통령 탄핵은 그 정점이었다) 그로 인해 17대 총선은 전적으로 탄핵심판론과 거여견제론이라는 네거티브 선거게임전략에 의해 치러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여야 각 정당은 상대를 배제하고 내부 숙청을 단행해야 자신이 살아남는 절박한 지경에서,(막상 서로 간의 정책-이념적 차별성이 없었기 때문에 인기몰이에 성공한 뉴리더를 내세워) 그저 울고, 사과하거나, 엄살 이벤트를 벌이며 서로의 다수의석 확보를 저지하자는 읍소(게임전략 대 게임전략)로 일관했다. 이러한 양상의 선거캠페인은 결국 여야 서로를 향해 책임을 몰아 묻는 투표행위로 표현되었고, 외형적인 양당체제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총선의 의석배분 결과는 여야가 분할한 '두개의 승리'라기보다는 서로에게 떠넘겨진 '두개의 패배'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 대중적 불신과 분노에 편승한 선거 캠페인의 결과, 대혼란과 무능에 빠진 위기관리체제는 스스로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또 다른 대립과 붕괴를 잠시 보류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끓어오르기 시작한 분노한 민심 위에 얹어진 '상생과 통합의 정치'라는 이름의 살얼음판과 같은 운명일 것이다. 총선결과 분석 2/ 신자유주의 정치개혁 전망 지난 김대중 정권 말기, 1,2차 구조조정과 상시 구조조정 시스템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채로 집권세력의 통치력 상실을 불러온 이후로 여야를 막론한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 남겨진 대안은 정치개혁뿐이었다.(그리고 그와 긴밀히 연관된 언론, 교육, 가족개혁) "깨끗한 정치, 일하는 정치로 경제를 살리자", "사회적 정치적 통합과 참여개혁"이라는 선동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연출하느냐가 선거 승패의 관건이었고, 결국 '노무현의 눈물'이 '엘리트 이회창'을 제압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승리는 채 1년을 지속하지 못했다. 지지율은 나날이 곤두박질 치고 측근비리가 줄줄이 터져 나왔다. 더 높은 강도와 더 많은 베팅만이 탈출구였고, 그것은 재신임과 연계된 전면적인 대선자금 비리수사, 그리고 그에 뒤이은 대통령 탄핵사태와 '총선 올인'전략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선거가 끝난 뒤에도 크고 작은 부패비리수사와 정치이미지 마케팅과 같은 '다른 정치 수단'들에 의한 무한캠페인이 계속되는 기이한 정치 행태를 낳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치루어진 총선은 변형된 정치캠페인을 제도화하는 개정된 선거법으로 치러진 최초의 선거였고, 17대 국회는 개정된 정치관계법에 의해 운영되는 최초의 국회가 될 것이다. 이 개정된 선거법과 정치관계법의 핵심은 금권-부패정치를 청산한다는 명분 아래 대중동원 선거를 봉쇄하고 미디어-정책 선거를 강제하며, 원외 법정지구당 폐지를 골자로 하는 원내 정책정당화를 추진하는 것에 있다. - 주어진 정책적 합의와 정치개혁 우리는 우선 이번 총선 이후 보다 분명한 형태로 나타날 '정책'(국가행정)과 '정치'간의 역전된 위계관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20세기적인 행정혁명과는 또 다른) 신자유주의시대에 위기관리적 국가기구 내에서 다루어지는 대부분의 정책은 세계화된 시장의 신호와 그에 대한 행정기구의 반응, 또 그 역의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의회와 정치정당은 이 정책 형성 결정과정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분리되는 과정에 있다. 이미 대부분의 주요 정책들은 의회나 각 정당들의 정치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고, 의회의 법안심의와 의결이란 기껏해야 이미 결정된 정책들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역할(시행시점과 집행순서, 속도, 강약 조절의 방법으로)에 그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주요 집행자는 의회나 정당이 아니라 행정이고, 행정은 언제나 차악의 선택을 강요하며, 공익의 이름으로 스스로 효율적인 차선과 차악의 선택조정체계 안에 머문다. 반면 치열한 보수정쟁으로 일관했던 야대여소의 16대 국회(여야정당들이 민생법안이라 부르는)조차 주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관련 안건에 관해서 만큼은 철저하게 통법부(通法府)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했을 따름이었고, 하물며 17대 국회는 여대야소로(근소한 차이의) 의석비율이 바뀐 처지다. 더욱이 그나마 여야정당과 의회에 주어진 그 같은 역할의 많은 부분은 보다 전문적인 매스미디어 기관과 NGO로 이전되었다. 한편으로는 '작지만 강한 국가'의 사회 정책적 기능을 '국가와 사회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또 다른 위기관리기구인 NGO에 넘기고, 대표성과 정당성을 상실한 정당정치를 매스미디어 기관(주로 TV와 인터넷)의 역할을 극대함으로써 보완토록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 NGO와 지배적 매스미디어 매체야말로 오늘날의 지배정당이다.(뉴스앵커를 그만 두고 여당대표로 자리를 옮긴 정동영이 아니라) 이에 따라 행정부-정당-미디어-NGO로 이어지는 불안정하지만 효과적인 제휴/갈등관계가 신자유주의적 위기관리체제의 기본 골격을 이루게 된다.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착취의 한계에 내몰린 노동자 민중의 격렬한 저항은 이 위기관리체제의 내부적인 갈등과 제휴관계로 흡입됨으로써, 주어진 '정책'의 실행을 위한 효율적 행정적 관리와 협소한 집단적 이익의 조정이 '정치'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여야정당이 총선이후 내놓은 '상생의 정치'란 '싸움 않고 일하는 정치', '대화합의 정치'가 아니라(앞서 살펴본 대로 이들 간의 대립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주어진 '정책'에 대한 예정된 합의의 충실한 이행을 지칭하는 것일 테고, 이 합의의 대전제는 IMF협약의 형태로 직수입된 '워싱턴 컨센서스'(1990년대 이후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간의 정책개혁에 대한 세계적 합의로 신자유주의의 다른 이름)와 글로벌 스탠다드인 것이다. - 원내 정책정당화 : 정치의 미디어화, 정당의 운동적 요소 제거, 의사(擬似)정치의 일반화 정책정당화가 정당정치의 탈이념화, 실용주의화, 미디어화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원내정당화는 그나마 존재해온 정당조직의 운동적 요소들을 조직적 법적으로 제거하는 신자유주의 정치개혁의 핵심적인 정책과제이다. 원내정당은 한마디로 국회의원이 중심이 되는 정당체제를 말한다. 법정 지구당은 모두 폐지되고, 당의 이름을 건 일상적인 지역-현장의 원외사업은 모두 불법이다.(광역단위 시도지부 정도가 소규모의 연락사무소정도를 유지한다) 나아가 열우당은 휴가철을 제외하고 연중 국회가 열리는 상시국회제도 도입을 국회개혁안으로 제시했으며, 중앙당을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당의 모든 주요 기능을 국회 안으로 옮기자는 식의 안도 내놓았다. 그런데 이 정책정당화에서 말하는 정책이란 앞서 서술한 주어진 '정책'이 아니라, 주어진 정책들의 틀 내에서 다루어지는 부분적인 이슈들을 법안으로 손질한 것들을 의미하거나, 주어진 정책들의 실행을 위한 법안과 선전방안들을 말하는 매우 제한적인 범위의 정책이다. 오히려 정책정당에서 말하는 정책의 주요한 측면은 인구의 특정 계급계층을 대표하고 그러한 대표성에 맞는 정당성의 원천인 이념을 폐기하고, 이를 정책(이슈)중심으로(그것도 여론조사결과와 표심에 따라 춤을 추는 주요 이슈) 대체하는 것에 있다. 이에 따라 정당은 당의 이념을 원자화된 유권자들의 표심에 맞춘 정책-이슈파이팅 정당, '모두를 위한 정당(Catch all Party)'으로 또 모든 계급계층, 모든 이념을 포괄하는 '무지개 정당'으로(혹은 담합Cartel정당) 재편된다.(계급이념정당, 대중정당의 폐기) 결국 '정치'는 정치연예인과 전문가-관료출신 정치인들의 원내 활동을 TV, 인터넷을 통해 지켜보거나(비추어지거나), 이들이 수시로 던지는 설문과 물음에 답하고 그 결과 수치를 확인하는 의사(擬似)정치로 대체되어 버리는 것이다. 금권 부패 보스정치의 폐해를 청산한다는 미명아래 '개혁'의 이름으로 도입된 원내 정책정당화란 더욱 축소된 의회의 정책적 영향력과 탈냉전시대에 약화된 보수이념정당의 일반적 위기를 표현하는 의회주의 쇠퇴, 대중 조작적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총선결과 분석 3/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의 운동사적 의의와 쟁점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은 91,92년 투쟁이후 본격화된 정치세력화(진보정당)운동 10년의 한 순환을 매듭지은 일대 사건이다. 87년 6월과 노동자 대투쟁, 91/92년 패배가 그렇듯이 우리는 아직 2004년의 이 사건의 의미를 온전한 역사로서 파악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음의 몇 가지 쟁점들은 이후 평가의 놓칠 수 없는 출발점들이다. - '진보 vs 보수'로의 역사적 진화라는 관념의 오류를 통해 본 민주노동당 의회진출의 운동사적 의의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은 분명 지난 민주화 운동과 특히 10여 년간 지속되어온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성과 위에 위치해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 민주화운동세력의 신자유주의적 타락과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반복되어온 패배의 성과라는 운동사적 특이점을 갖는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이번 총선에 이르는 운동사에는 91,92년 계급투쟁 패배와 신자유주의 개혁의 정치적 실행조건인 문민정부라는 단절점이 존재한다. 논란의 핵심은 이 단절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있다. 민주노동당의 우경화 문제에 관해 상반된 입장을 가지는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민주노총의 좌파는 이 단절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묘한 공감을 형성하고 있다. '민주-반민주' 전선이 '보수 vs 진보'구도, 혹은 '총자본 vs 총노동'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는 어떤 초역사적인 진보주의적 관념이 그것이다. 93-95년 문민정부와 민주노총의 출범은 91-92년의 패배-붕괴의 속편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것은 진보주의적 역사관으로는 인정되거나 포착하기 어려운 '운동사적인 역행'이었다. 좌측이 무너진 냉전체제의 반공-발전독재 세력이 문민화를 통해 뒤늦은 신자유주의의 전면도입을 꾀했다면, 냉전의 붕괴를 세계사적 패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냉전적 좌파(당-좌파)는 피지배 계급대중운동으로부터 이탈하거나 배제되었으며, 대중운동은 국가를 지렛대로 조직대오의 실리적 동원과 방어를 추구하는 코포러티즘적인 체계로 재편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자본의 금융화와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으로 인한 잇따른 패배는 노동자 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심각하게 위협했고,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코포러티즘적인 전략과 체계(진보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건설)는 더욱더 공고화되었다. 이러한 운동사 인식에 입각해 볼 때, 2004년에 거두어진 민주노동당의 성과는 87년에 뿌리를 두고 이로부터 진화해온 것이 아니라, 운동사적인 역행에 다름 아니었던 (93-95년의) 역사적 단절의 진화이며, 역전된 운동사의 진보라는 것이 우리의 관점이다. 이 역사적 단절의 의미를 보지 않을 때에만, '민주 vs 반민주'전선의 소멸이 '진보 vs 보수'로 전진했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전선 해체의 반성과 혁신, 복구의 과제(재편이 아니라)를 '패배의 성과'의 열광에 묻힌 부차적이고 열등한 쟁점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 민주노동당의 틈새진출 전략의 문제점 이번 선거의 양대 구도를 이룬 탄풍과 거대여당 견제론인 박풍은 여론조사를 유일한 객관적 근거로 하는 바람정치라는 점에서 동일하고, 대중의 민주화와 생존권적 요구를 오로지 이번 선거에서 누가 얼마만큼의 의석을 획득하느냐의 문제로 가두어 놓는다는 점에서 동일한 선거 게임전략에 불과하다. 탄풍과 박풍이 구분될 수 있다면, 그 구분점은 바람의 주역이 노무현이냐 박근혜냐, 즉 정당정치를 갈음하게 된 여론-미디어정치에 사용된 장식물이 더 이상 자신의 과업을 잃고(대통령직선제로 봉쇄된 채) 타락한 민주화의 기억이냐, 아니면 IMF위기로 무너진 박정희식 반공발전주의냐에 있다. 현 시기 제기되는 사회운동적인 쟁점들을 대의하기보다는 이미지적으로 착취하기에 급급한 정당정치가 가지는 유일한 진실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른 정략적 해석과 이를 통한 의석경쟁 캠페인이다. 내건 장식물의 색채가 어떤 이념적 정책적 내용을 가지느냐는 장식물로 치장된 이념과 정책의 이미지로만 판단되는 구조인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기간 중에 정동영은 과거 개발독재의 발전을 재연하기 위해서는 그 원동력이었던 과반여당을 열우당에게도 허용해줄 것을 호소했고, 동시에 박근혜는 한국정치의 정통성은 발전주의세력과 4·19, 5·18 민주화세력에게 있다면서 보수세력의 혁신의사를 표명했다. 그런데 이러한 지경에 접어든 보수정치를 심판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민주노동당은 막상 이번 총선에서 탄핵심판론, 거여견제론에 뒤이은 또 다른 선거게임전략인 야당교체론 혹은 진보야당론을 총선전략으로 삼았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정치가 대중의 요구를 운동이 아니라 정책공약을 통해 대리(대변)하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좌파정치의 근본적 곤란에 대한 대안창출이 아니라 지배정치의 위기진행과정에서 만들어진 틈새를 분점하는 원내진출 전략의 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원내진출 전략은 전선복구와 운동재개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절박한 운동적 과제들의 현실적인 착수를 계속 지체시키고, 부차적인 쟁점으로 억압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선거과정 평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입장하나는 바로 탄핵무효운동이 오히려 민주노동당 지지의 폭을 넓혔다는 아전인수격인 주장이다. 이는 탄핵무효투쟁에 대한 비판의 대안을 민주노동당 지지로 사고했던 입장에 대한 반비판으로는 유효하다. 또 사실 민주노동당은 '탄핵무효범국민행동'에 공식참여하지 않았다.(NGO중심의 범국민행동은 정치정당이 참여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열우당을 타격-견인의 대상, 좀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큰 틀에서) 하나의 파트너로 보는 기본적인 태도의 동일함이 유지된다는 의미에서 촛불과 진보야당론이 서로 수렴되는 것은 나름의 논리적 전략적 일관성을 지닌다. 이로써 탄풍 속에서 보수정치 심판, 민생정치라는 소극적이고 모호한 형태의 틈새전략을 택했던 민주노동당이 공식선거전 개시이후, 탄핵무효 촛불에 동원되었던 다수파와 탄핵심판론에 비판적이었던 당권파가 진보야당론을 접점으로 제휴하는 길로 나갔던 것이다. (탄핵에 대한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입장은 헌재에서의 조속한 기각요구, 국회개원이후 탄핵취소였다) -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의 쟁점 일반적으로 서구에서 사민주의 정당이 주요한 정치 행위자로 부상하게된 것은 세계대전 등 '국가의 위기'를 매개로 하여 노동자대중을 민족국가로 통합하는데, 매개 역할을 함으로써 가능했다. 이른바 '사회 민족적 국가'의 형성과 '자유주의의 쇠퇴'라는 역사적 조건이 그것인데, 이러한 역사적 조건과 경향에 따라 사민주의 정당의 의회진출은 피지배계급운동의 성과를 정치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양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러한 20세기적인 역사적 경향과 조건을 역전시켰고, 사민당-정부는 1980-90년대 들어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구분되는) '대안강령'의 일반적 실패 속에서 해체되거나, 위기관리 국가의 또 다른 관리자로 역할을 재조정하고 있다. 또한 민주노총과 전농 등의 계급대중조직이 주축이 되어 건설된 현재의 민주노동당은 1980년대 남미의 좌파운동들(특히 전선체들)이 군부독재의 종식과 '민주화 이행'(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실행조건으로 타락한) 이후 합법정당으로 이전하는 양상과 유사한 길을 걸어왔다. 1990년대 초반 일부 국가에서 이들 정당들은 부분적인 성공(중앙의회 진출, 지방정부 장악 등)을 거둠으로써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정당이 대중운동 또는 사회운동과의 결합이 곤란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정당이 노동자운동과의 역할분담 관계 속에서 인적-조직적 연계망을 형성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시대에 쇠퇴하는 노동자운동의 곤란과 모순을 그대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악순환 관계를 이루는 현실에 직면했다. 이때 이제 막 의회진출이라는 부분적인 성공을 이룬 민주노동당이 정당과 사회운동의 관계를 과연 이들 서구 사민주의 정당이나 남미의 진보정당들과 달리 어떻게 전진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야말로 이후 민주노동당의 성패를 가름할 핵심쟁점이다. - 신자유주의적 정치위기와 정치개혁의 흐름 속에서 원내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의 몇 가지 현실적인 딜레마 원외 운동조직으로부터 성장하여 독자적인 힘으로 원내 진출에 성공한 외생 정당의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그리 흔치않은 경우이다.(독일녹색당과 브라질PT정도다) 그러나 이들 외생 정당들은 거의 비슷한 패턴과 과정을 통해 원외 운동조직으로서 고수해왔던 '근본적 반대파로서의 원칙'을 점진적이긴 하지만 원천적으로 폐기해왔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한 옷 입기와 말투 같은 라이프스타일 상의 사소한 문제로부터 원외 대중운동과의 관계, 근본적인 운동철학과 양식, 이행전략과 이념에 이르기까지 그간 체계화되지 못하고, 구체적인 쟁점으로 사고되지 못했던 운동의 근본 문제들이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고 강제되는 부르주아적 규율과 사상에 부지불식간에 침식당해온 결과다. (현재 이 규율지도의 가장 엄하고 부지런한 교사는 장기화된 구조적 경제위기와 전쟁, 그리고 방송기자들이다.) 이러한 결과는 지배체제의 통제범위 외곽에서 성장해온 반체제적인 사회운동세력이 사회운동과의 전진적인 관계를 확보하지 못한 채 체제내부, 그것도 그 핵심부위에 진입했을 때 피치 못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매우 당연한 결과였으며, 비록 적은 규모이나마 최초의 성공을 이룬 민주노동당으로서도 피해갈 수 없는 시험코스일 것이다. 1> 우선 민주노동당은 거대 여야정당간의 짧은 밀월이 깨지고 이들 간의 정쟁이 본격화될 경우, 원내에서 독자적인 의제설정능력이 없는 소수정당의 고역을 겪을 수 있다. 짜여진 의제 안에서 최선의 답안을 제출하는 것으로는 진정한 진보를 달성할 수 없다. 그것은 보수와 한 쌍을 이루는 체제적 위험요소들을 거세한 '관리된 변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동당이 짜여진 원내 대립구도 안에서 진보적인 정책(공약) 개발에 주력하는 것은 반체제적인 의제를 독자적으로 세팅하여 제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스스로 제거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예컨대 탄핵찬반이나 경제성장(분배)론에 종속된 민생-경제법안과 (예산분배정책심의) 같은 의제로 짜여진 여야 간의 대립구조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NGO를 버퍼로 하는 보수개혁 여당과의 사안별 공조를 (안팎으로) 강요당할 위험이 크다. 2> 그동안 민주노동당의 조직 골간을 이루고 있던 지역 지구당이 폐지된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원내정책정당화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아무런 대안 없이 진행될 경우, 민주노동당은 운동정당적인 성격을 잃고 중앙당 혹은 의원단 차원의 민원창구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위험은 당 발전 전략상의 노선적 대립을 넘어서는 운동성 자체의 존폐위기이며, 당의 민원해결능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주객관적 요인들을 감안해 보았을 때도 운동성을 제거하지 않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막다른 길임을 직시해야한다. 그동안 당의 골간이었던 지역당 조직들이 하루아침에 붕괴되고, 당 외곽의 대중조직들과의 코포라티즘적인 상층연대만이 강화되는 퇴행적인 사태를 막아야 한다. 지역 지구당조직들이 다양한 사회운동조직으로 갱생할 수 있는 실질적인 여건이 마련되어야하며, 이러한 재편을 지속가능한 운동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근본적인 노선과 이념의 개조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3> 민주노동당, NGO, 개혁주의적 집권여당과의 사안별 '정치적 연대'와 노-정(勞-政) 및 노사정의 '사회적 합의'의 역할이 증대될 경우, 전국민중연대가 상층연대기구라는 한계 속에서나마 고수해왔던 공동투쟁연대 대표체로서의 독자적 지위와 통합력은 상당한 정도로 손상될 위험이 있다. 4/ 이후 사회운동의 전망과 과제 수립을 위하여 2004년 총선으로 변화한 사회운동의 조건은 무엇인가? 한국사회의 보수적인 정치지형이 전반적으로 좌로 이동하여 중도화되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또 역으로 변혁지향적인 사회운동이 우경화되어 중도화되는 현실은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 것인가? 이 글에서 앞서 살펴본 총선결과에 관한 몇 가지 쟁점들은 주로 의회 내 의석분배 결과에 관련된 것이었고, 그것은 이후 사회운동의 변화된 조건을 분석하기에는 매우 불충분하고 협소한 판단의 근거들이다. 더욱이 이러한 변화는 신자유주의적인 '위기관리'와 '관리된 변화'를 진보로 보는 착시효과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자신의 과업을 잃어버린 채 운동하지 않는 정지된 과거는 단지 하나의 '기억에 대한 신앙심'일뿐이다. 즉 역사의 전진을 이루어갈 피어린 전투의 발판은 어느새 전투의 기억에 대한 편협한 신앙과 틀에 박힌 보수주의로 썩어버리기 마련이다. 이로써 신자유주의 개혁의 정치적 실행조건으로 등장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문민정부들은 각기 자신의 이해관계와 처지에 맞는 방식으로 87년의 정지된 스냅사진을 팔아, 민중의 민주주의를 향한 전투의 기억을 편협한 신자유주의적 신앙과 틀에 박힌 보수주의로 전락시켰다. 이번 총선결과, 외형적인 양당체제의 등장으로 지배계급 내 정쟁은 일시적으로 봉합됐으나 그 내적 불안정성은 증대되었고, 보수개혁세력의 의회권력이 교체되고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 성사됨으로써 진보적인 사회운동의 일정한 여건이 확보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파쇼민주화 전선 해체 이후 지체되어온 반신자유주의 전선복구와 혁신의 과제가 '관리된 변화'와 '사회적 합의'의 틀로 봉쇄될 위험 또한 존재한다. 지난해 말 재신임-열사투쟁국면 이후 정세는 대선 자금 비리-정치개혁, 노동조합탄압-민중생존권, 이라크 추가파병과 같은 핵심사안들이 각각 (대선 자금 수사와 재신임, 탄핵을 둘러싼) 지배계급 내부갈등과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반미반전투쟁으로 이루어진 피지배계급투쟁의 양편으로 분리되어 전개되었다. 더 내줄 것이라곤 목숨밖에 남지 않은 피지배계급의 절망적인 생존권적 저항과 통치 정당성의 한계에 다 달은 지배계급 내 정쟁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동시에 진행되었던 정세는 일종의 이행기적 상황을 떠올릴 법한 비상시국이 분명했다. IMF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바야흐로 피지배계급과 지배계급 양자가 공히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형태로는 통치할 수 없고,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지배받으며 살아갈 수 없는 일종의 준이행기적 상황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면정세의 위기적인 소시기 국면은 4·15 총선을 통한 지배계급 내 파워시프트(권력변동)와 재편으로 외형적으로나마 재안정화되어 점차 닫혀 가고 있으며, 체제이행(위기의 혁명적 전화)을 예비하게 될 새로운 주객관적 조건의 창출을 억압하고 있다. 지배체제의 위기심화가 피지배계급의 주체적 태세 없이 계급투쟁의 폭과 수위, 그 역동적 발전방향의 진폭을 크게 확장시켰다는 사실만으로는 이후 계급투쟁의 양상이 매우 격렬해질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외에 어떤 것도 확정된 것은 없었던 것이다. 또한 광범위한 대중의 불만과 기존 지배질서의 내적 붕괴가 배제된 자들의 절망과 포섭된 자들의 불안감속에서 대중 간 연대의 파괴와 무너진 중산층적인 생활양식에 대한 허구적 동경으로 귀결되고 만다면, 위기의 심화는 오히려 새로운 이행조건의 등장을 억압하는 주역이 되고 말 것이었다. 말 그대로 "무엇도 가능하지만 어느 것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때 2004 총선에서 누가 어떻게 안정적 다수파를 형성하여 혼란에 빠진 위기관리시스템을 수습해낼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현재의 혼란과 사회적 갈등을 자본주의 지배체제의 위기로 발전시켜낼 것인가의 갈림이야말로 본모습을 드러나지 못한 채 묻혀버린 당면 정세의 계급대립핵심지점이었다. 그러나 당시 정세를 구성했던 개개의 핵심사안들은 각각의 참여주체와 쟁점들로 분할되어있었고, 지배계급 내 권력분쟁이 정치개혁의 이름으로 피지배계급투쟁의 의제들을 압도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민중의 사활적인 생존권적 저항은 지배계급의 정치적 위기로 인한 균열을 통로로 삼아 독자적인 역사적 행위로 분출되기보다는 (주어진 정치 일정 상에 존재하는) 개개의 핵심현안들에 대한 격렬하지만 방어적인 요구행위의 형태로 계급대립지점의 갈림길에서 동요하다 소멸되었고, 조기 레임덕에 빠졌던 노무현 정권은 재신임 선언과 전면적인 대선 자금 비리 수사를 거쳐, 일정한 정세적인 주도권을 복구해내는데 성공했다. 더욱이 지난해 말의 재신임-열사투쟁은 이후 별다른 평가와 계승 없이 탄핵-촛불시위로 휩쓸리고, 다시 야당교체론으로 표현된 총선국면으로 빠르게 순치되어 갔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위기비판의 관점에 입각한) 노동자 민중생존권과 반전-반신자유주의적인 운동의 의제들은 '정치'에 의해 억압되거나, 자기과제를 '정치'에 위탁하여 스스로 비정치적인 쟁점으로 제한된 가운데 자기 검열되고, 분열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냉정히 직시해본다면, 이제까지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은 지배체제의 위기로 인한 작금의 생존권적 민주주의적 위기를 정상화하고 수습해야할 '비정상국면'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에서, (그 외적 격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지배계급과의 대척점으로부터 멀찌감치 물러선 양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권과 자본은 시시때때로 분출되는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투쟁을 반미반전투쟁과 집요하게 분리시키고, 반신자유주의적 생존권투쟁 속에 녹아있는 투쟁의 보편적 성격들을 폭력/비폭력, 합법/비합법, 정치/경제의 지배이데올로기를 동원하여 교묘하게 분할 타격하는 성공적인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이번 촛불-총선 국면에서 여실하게 드러난 바와 같이 정당성과 대표성을 상실한 지배 정당정치는 사회운동적인 쟁점들, 피착취계급 대중운동의 의제들을 정치적으로 배제하고 법적 물리적으로 억압할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의 정당성을 자신들의 정치캠페인의 도구로 착취하기 시작했다.(정치수사적인 좌익화) 결국 또다시 관건은 '닫힌 정세'를 열어낼 대중의 정치적 통합과 행동의 전망일 것이며, '열린 정세'를 결정짓게 될 대중운동의 발본적 혁신과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의 대중적 기반 형성, 그리고 이를 통한 반신자유주의 전선복구는 더욱 현실적이고 사활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사회운동의 이념을 전쟁과 경제위기로 점철된 이행의 시대이념으로 개조해야 할 것이며, 코포러티즘적인 당과 노조를 사회운동기관으로 개조해야한다. 이로써 노동자 민중의 새로운 연합과 자기통치로 가는 교두보들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 수행의 현실적인 착수는 총선 이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사회적 합의'의 외곽에서 ('사회적 합의'의 일각이면서, 동시에 운동의 대중적 표상인)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관통하는 별도의 대중적인 운동의 흐름을 형성해내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관통한다는 것의 의미는 이 흐름이 기존 노조-정당의 다수파(지도부)와 대립하는 소수파연합이나 분리주의가 아니면서, 기존 운동질서를 관통하여 그 권위와 체계를 상대화시킬 수 있는 대안적인 운동형태의 맹아가 되어야한다는 의미이다. 지난 10여 년간 민중운동을 지배해온 코포라티즘적인 산별-진보정당 노선은 점차로 증대한 노동자 대중운동과 노동자운동 조직사이의 괴리, 노동자운동 조직과 진보정당 사이의 괴리를 해결하기보다는 이에 부합하는 대응방식이었다.(실리적 동원과 실용적 역할분담, 나아가 의사擬似동원 구조로 진화중이다) 극한의 생존 위기 속에서 수동화된 대중은 날로 우경화되는 노동조합의 알리바이가 되었고, 다시 우경화된 노조는 진보정당의 우경화의 알리바이다. 그리고 점차 이러한 연쇄의 탈운동적인 결과가 대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됨으로써 대중, 운동, 조직, 정당 사이의 불신과 괴리는 더욱 더 깊어지는 끊기지 않는 악순환의 구조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태 해결의 방식은 역전된 운동사적인 진행방향을 아래로부터 역주행하는 역전전략이어야 한다. 우선은 지역, 업종, 당, 노조, 사회단체를 막론한 반전-반신자유주의 운동, 사상에 입각한 다양한 지역적 소모임 들의 구축이 시도되어야 한다. 이러한 운동-조직 형태들은 잠정적으로는 '완성된 사상적 통일을 전제하지 않는 공동행동', 완성된 형태의 행동통일 없는 사상적 토론과 공유가 가능한 '자발적인 사상학습 소모임', 혹은 그들 간의 자발적인 연계망의 형태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러한 혁신의 흐름이 복구되지 않는 대중운동의 침체와 패배를 (다른 정파의) 지도부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대중의 정치/대의제 자체에 대한 불신에 영합하면서, 당과 노조의 소수파연합이나 분리주의로 귀결될 경우, 이는 노동자 운동의 대중적 표상을 변화시키기보다는 그것과 부당 대립(고립)하거나 내부의 즉자적인 정파적 갈등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지배정치는 물론이거니와) 기존의 운동조직 내에서 지체되어온 페미니즘적 문제와 환경 (지역 간 불평등과 결합된), 문화적 갈등 등의 첨예한 사회적 쟁점들이 (기존 대중조직과 당내에서) 분리주의적인 형태로 표출될 경우, 사태는 (전진적인 혁신의 방향과는 동떨어진) 자기 파괴적인 '르 상티망의 정치'(약자의 강자에 대한 원한의 정치)의 양상으로 진행될 위험이 크다. 이러한 양상의 진행은 착취와 차별의 조건과 원인에 대한 투쟁을 착취/차별의 효과 및 결과에 대한 부인과 거부, 이탈로 머물게 하여 더 이상의 전진을 봉쇄하는 자멸의 길이다. 소수자 운동의 관점에서 다수자 운동의 관점으로, 문제 해결자-대변자의 관점에서 억압된 다수대중의 이해와 요구의 목소리를 스스로의 힘으로 발언하고 행동하여 사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운동으로 나가야하며, '관리된 변화'의 틀을 개방시켜내려는 노력, 즉 '봉기의 정치'적인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PS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