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보다
- 2019/03 제50호
변함없는 의료 상업화를 고발하다
김기태, 《병원 장사》를 읽고
2002년부터였다. 정부는 끊임없이 의료영리화를 시도해왔다. 시작은 노골적이었으나, 이윤을 창출하려는 수법은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우려해서다. 의료민영화 반대 투쟁, 2013년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를 거쳐 현재의 제주영리병원 추진까지, 의료영리화와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높다. 하지만 그 내용이 방대하고 복잡한 데다 전문적인 지식까지 필요해 일반인이 접근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번에 집어 든 책 ≪병원 장사≫의 부제는 ‘대한민국 의료 상업화 보고서’다. 기자였던 저자가 직접 여러 병원을 돌며 의료 공공성과 의료 상업화에 대해 취재한 수기를 묶은 것이다. 출간된 지 어언 7년이 되었지만, 진료 현장에 대한 묘사와 다양한 사례, 국내외 현직 의사들의 인터뷰는 여전히 생동감 있다. 의료계의 실제 분위기를 느껴보고, 한국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현실 속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제격이다.
첫 주제는 과잉진료에 관한 내용이다. 현재 운영구조 상 병원이 수가대로 진료할 경우 많은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이런저런 부재료 사용과 부가적인 시술을 하게 만드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의사의 치료 횟수에 따라 한 건씩 진료비를 청구하는 방식, 불필요한 검사나 시술을 부추김)를 지양하고 포괄수가제(병원이 질병의 종류에 따라 미리 정해진 표준 진료비를 받는 제도)를 확대하여 비급여 부분에서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한 저자는 현재 국내 대형 상급병원, 특히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학교병원을 가리키는 이른바 ‘빅5’ 편중 현상과 그로 인한 1차 병원 폐업 문제 역시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대형병원에는 환자가 바글바글하는데 1차 병원은 아무도 찾지 않아 문을 닫는다는 거다. 1차 병원 간의 경쟁이 심할 때는 한 달에 139군데가 연이어 폐업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대형병원과 달리, 1차 병원은 지역 사회 내에서 환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통합적이고 접근이 쉬운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는 그런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1차 병원이 많지 않다. 반면 대형 병원들의 ‘의료계 군비 경쟁’은 상상이 치열하다.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고급스럽고 세련된 시설을 갖추고, 첨단 장비들을 도입하는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넘치는 장비와 병상을 투자할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 보건의료 부문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심각한 정보 비대칭성이 있기 때문에, 환자들은 의사의 권유대로 서비스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의료상업화의 정점에는 삼성과 같은 재벌이 있다.
환자들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힘들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면모인 크고 쾌적하며 고가의 장비를 갖춘 병원을 선호하게 된다. 그리고 병원들은 그동안 쏟아부은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 진료비를 올린다. 이는 다시 의료비 지출을 늘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다른 산업에서 경쟁이 심하면 가격이 내려가는 일반적인 경쟁이론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 땅에서 40여 년 전에 벌어진 의료계 군비 경쟁이 대한민국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의료계 군비 경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온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생명이 먼저’를 말한다. 이를 위해 1차 병원이 제구실을 하고, 의료 공공성이 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의료로 돈 벌어먹으려는 자본의 시도와 정부의 뒷받침을 정세적으로 비판하고 저지해야 한다. 의료영리화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기조 아래서 계속되고 있다. 보건의료 부문의 규제 완화와 의료계 군비 경쟁이 합쳐지고, 문재인 케어가 더해지면 의료비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비효율적이고 영리추구적인 의료공급체계가 개선되어야 하고, 영리병원 투쟁은 의료영리화 반대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비급여 통제정책과 병상 총량제, 고가 의료장비 규제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토대 위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성도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