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보다
- 2019/03 제50호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 모든 노동자를 위한 투쟁을 만들다
지난 2월 9일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의 노동사회장이 치러졌다. 고인이 사망한 지 60일 만이었다. 그의 죽음은 한국의 노동 현장에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고인의 사망은 위험의 외주화, 비정규직 남용,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 문제를 수면에 드러냈다. 일명 ‘김용균법’으로 불린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이 28년 만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많은 문제가 장례 이후인 지금도 아직 ‘해결 과정’에 있다.
최근 5년간 발전 5사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중 사망사고에서는 100퍼센트(20명)이, 사상자 334명 중 97.6퍼센트가 하청노동자였다. 모든 산업과 생활의 기반이 되는 전력 산업 전체가 위험의 외주화라는 토대 위에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故 김용균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지만, 사람들이 지금에서야 이러한 문제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어쩌면 더 놀라운 일이다.
故 김용균의 사망이 지난 사고들과 달랐던 직접적인 이유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의 대정부 투쟁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故 김용균의 사진은 공동투쟁의 일환으로 진행된 운동이었다. 특히 공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점에서, 또한 직접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운동의 참가자였다는 점에서 정부도 책임을 외면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가 압박을 받은 진짜 이유는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등을 거치며 ‘청년 비정규직’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정부와 기업의 행태에 대해 시민들의 문제의식이 커져 왔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남용을 반대하는 여론이 힘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와 민영화
정부가 독점하는 전력 산업에서 위험의 외주화 과정은 민영화와 구별되지 않고 진행된다. 위험 업무, 혹은 ‘비핵심’ 업무를 중심으로 자회사 설립이나 분사가 진행되고, 이들은 곧 민간에 매각되어 민영화된다. 화력발전을 5개 발전사로 쪼개서 민영화하는 방식으로 경쟁 체제를 형성하면 효율화된다고 믿었던 관료들은 정비 부문 등도 여러 민간 기업이 경쟁하는 체제를 도입한다. 공기업이지만 제조업과 유사한 발전소에서도 다른 제조업 사업장과 마찬가지로 광범위한 사내 업무를 외주화한 하청 체제가 형성된다. 비록 분할 민영화는 발전노조 파업(2002년) 등을 통해 저지되었지만, 민영화는 외주화라는 방식으로 계속 진행되어 왔다.
결국 1만 2000명에 달하는 발전 5개사 정규직 직원의 40퍼센트인 8000여 명이 외주 업체 소속으로 발전소 안에서 일하게 된다. 이들 외주 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모회사에 종속되어 일하지만, 업체의 재계약 여부에 고용이 좌우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8배 가까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사용하던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다면 공기업 중 가장 높은 비정규직 남용 군에 속한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애초 위험 업무의 외주화로 시작된 만큼 산재 사고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더구나 외주화 이후 안전 투자와 관리는 더욱 축소되면서 악순환이 시작된다. 원청인 발전공기업은 산재 사고에 더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에 하청회사에서 알아서 정리할 문제가 된다. 노동조합도 없는 이들 하청회사에서 산재 사고는 조용히 묻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故 김용균의 사망이 사회 문제로 주목받는 데에는 새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발전 5사 하청노동자들을 포함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노동조합으로 단결하기 시작한 것은 2017~2018년 즈음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제시하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운수노조와 발전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2018년을 거치면서 정책 추진 동력이 크게 약화한 상태다. 정규직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심지어 전환 과정에서 해고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발전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발전사들은 청소 경비 업무는 용역회사 수준의 개별 자회사를 강행하고, 故 김용균이 일한 연료환경설비운전이나 산재 사고율이 가장 높은 경상정비 부문은 아예 전환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한 노사 갈등 상황에서 故 김용균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미 20~30년 동안 외주화 정책을 밀어붙인 산업부와 발전사 관료들은 하청 노동자들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의 대상으로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번 사고에 대한 정부·여당의 대책 발표와 후속 협의에서도 계속 쟁점이 될 부분이다. 특히 경상정비 부문은 외주용역도 아니고 ‘민간위탁’이라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사고 이후에도 사용자들의 일관된 입장이다.[1] 이들은 위험의 외주화로 발생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여전히 부족하다.
노동조합과 시민대책위, 투쟁과 합의까지
故 김용균 사고 직후 시민대책위가 구성되고, 이를 중심으로 투쟁이 전개되었다. ‘故김용균시민대책위원회’에는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등 노동조합과 함께 노동안전보건단체, 비정규직 단위,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제 정당, 인권단체, 법률가 단체, 문화예술 단위, 학계, 청년·학생단체 등 100여 개가 넘는 단체가 참여했다. 시민대책위는 매주 토요일 범국민 추모제 등 집회 투쟁과 언론 홍보, 단식농성, 노정 협의 등 중요한 투쟁 전반을 진행했다. 노동조합만의 투쟁으로 진행될 경우 자칫 협소한 이해관계 투쟁으로 보이거나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될지 몰랐을 이 투쟁은 모든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고용안정을 위한 투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발전소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소속된 공공운수노조를 중심으로 민주노총은 투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공공부문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위험의 외주화에 맞서 싸워왔던 금속노조, 한전 하청 노동자인 건설노조 전기원지부 등이 투쟁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발전기술지부 등 고인의 동료들도 단식과 상경 투쟁으로 헌신했다.
유가족의 결단이 특히 매우 중요했다. 사망사고 대응 투쟁의 특성상 유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사회적인 투쟁은 시작되기도 어렵다. 그런데 故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님과 가족들은 ‘동의’ 정도를 넘어서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장 먼저 유가족의 긴급 요구는 동료들의 안전을 위해 태안화력 1~8호기 가동중단부터 요구했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발전소의 동료 노동자는 물론,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함께 했다. 故 김용균 사망 사고 대응 투쟁이 획득한 보편성의 상당한 부분은 김미숙 님을 중심으로 유가족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시민대책위는 ‘5대 입장’으로, 문재인 대통령 사과,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안 12월 임시국회 처리,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현장 시설 개선 및 안전설비 완비 등을 제시했다. 이 중 진행 중인 것도 있고 충분치 않더라도 진행된 사항도 있다. 가장 먼저 28년 만에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험 업무의 사내도급을 금지하고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산재 보호 대상에 편입했다. 원청사용자의 책임과 의무도 확대했다. 비록 故 김용균이 일하던 업무에는 직접 적용되지 못하는 등 한계가 있지만, 당사자를 넘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초반에 이 과제에 힘을 쏟은 시민대책위의 판단도 적절했다. 이후 시민대책위와 정부·여당은 설 연휴 기간 집중적인 협의를 통해 사태 해결을 위한 의견 접근을 이루어냈다. 정부·여당은 협의된 내용을 <故 김용균 노동자 사망 후속대책 당·정 발표문>으로 발표한다(2월 5일).
노정협의, 의미와 남은 과제
<당·정 발표문>은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원칙, 인력충원, 정규직 전환 방식 등을 담았다. 시민대책위와 정부·여당은 <당·정 발표문>과 함께 부속 협의 사항에 합의하고, 고인이 일했던 서부발전(주)과 한국발전기술(하청기업)과도 합의서를 작성했다. <당·정 발표문>은 시민대책위가 요구했던 내용에 비해서는 크게 부족하지만, 중요한 의미가 있는 몇 가지 내용을 담았다.
먼저 정부가 ‘위험의 외주화 방지’ 원칙을 확인했다. 추상적 원칙이라 구체적 적용이 더 어려운 과제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공공부문만이 아니라 전체 산업에서 위험의 외주화 경향을 역전시키기 위한 한걸음으로 삼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취지에서도 확인한 것처럼, 원청 사용자의 책임을 확인하기로 했다. 앞으로 산업안전만 아니라 노사관계에서도 원청 사용자 책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안전 문제가 인력 확충과 직결된다는 점을 인정하여 인력을 충원하기로 했다. 고인이 일하던 연료환경설비운전은 정규직 전환을 확정했다. 다만 경상정비는 ‘민간위탁’이라는 이유로 전환을 확정하지 못하고 노·사·전 통합협의체를 구성하여 논의하기로 했다.
당정 발표가 있고 장례를 치렀지만 문제 해결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당장 진상규명위를 구성하여 권고안이 충실히 나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규직 전환도 신설 자회사의 설립 방식이나 모회사와의 관계 설정 등 새로 정해야 할 것들이 많다. 특히 노동 안전과 노사관계에서 원청 사용자의 책임을 확인하는 것은, 외주화가 만연한 민간부문, 제조업에도 확산하기 위해 중요한 과제다. 또한 발전소의 광범위한 업무의 외주화는 민영화 정책의 일환이기도 했던 만큼,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을 역전하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투쟁 과정에서 반올림 대표이자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님을 포함해, 제주 현장실습생으로 숨진 이민호 군의 아버지, 故 이한빛 피디의 유가족도 연대를 보탰다. 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과 합의하는 과정에서 故 김용균 군 어머니의 요청으로 사용자 측은 약간의 기금을 내고 고인을 추모하는 재단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위험에 내몰린 하청 등 노동자들의 노동안전을 위한 활동에 사용할 예정이다. 자본에 의해 생명을 잃은 노동자들의 가족과 동료들이, 해당 사건의 해결을 넘어 더 많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사회운동을 만들고 있다. 물론 이 사회운동에 취지에 동감하는 많은 시민들의 동참도 필수적이다. ●
Footnotes
- ^ 정부의 분류상 외주용역은 업무에 필요한 인원수와 인건비를 정하여 용역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민간위탁은 특정 업무에 대해 포괄적으로 위탁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를 말한다. 공공업무의 민간위탁이 필요한 분야도 있기는 하나, 실제로는 외주용역과 구별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사용자들은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