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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 제50호

구조조정 투쟁,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제조업 위기와 노동조합의 대응

  •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한지원
금속노조의 올해 첫 번째 투쟁과제는 구조조정 대응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중화학공업 전반의 활력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업단체나 경제연구기관도 연일 심각한 어조로 제조업 위기를 거론한다. 금속노조 조합원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당장 대규모 해고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직간접적인 인력 감축이 올해 내내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구조조정 대응은 말처럼 쉽지 않다. 수익성 하락으로 기업의 지불 능력이 제한되어 있는데다,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으로 노동자들의 단결이 약해져 있다. 더군다나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곱지 않다. 본 글은 구조조정 시기 노동자운동의 여러 대응을 분석하고, 올해 투쟁에서 참고할 만한 시사점을 찾아본다.
 

경기침체인가? 구조적 위기인가?

제조업 구조조정 대응책을 이야기하려면 그 구조조정이 일어나는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세 가지 원인을 들 수 있다.

첫째, 확장과 침체가 반복되는 단기적 경기변동 과정에서의 침체기 대응책이다. 기업은 경기 확장에 대비하여 생산설비를 유지하고자 한다. 동시에 수익성 하락은 막고 싶을 때 인건비를 삭감한다. 예로 2교대제로 운영되는 공장을 1교대로 운영하면서 한 개 조를 해고하는 식이다. 둘째, 기술변화로 인한 사업조정이나 노동절약이다. 예를 들면 전기차 생산을 확대하면 기존의 엔진생산 공정이 감소하면서 잉여인력이 발생해 해고가 이뤄진다. 또 다른 예로 기술혁신으로 로봇 같은 자동화 기기의 가격이 하락하면, 기업은 인력을 로봇으로 대체하면서 노동을 절약한다. 셋째, 장기간의 수익성 위기다. 기술진보의 곤란 속에 경쟁이 격화되면, 기업이 자본을 투자해도 적절한 수익을 얻지 못한다. 이 경우 시장 전체에서 이윤율이 하락하고, 투자가 감소하면서 수익성이 낮은 설비들은 폐기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고용도 감소한다.
 
 
구조조정의 원인에 따라 노동조합의 대응에도 차이가 있다. 먼저 경기변동에 따른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이 임금 양보,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일자리를 나누는 방식으로 해고를 최소화할 수 있다. 유럽, 특히 독일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일상적으로 이뤄졌던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잔업 특근 축소로 고용 변동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이루거나, 이것도 여의치 않을 때는 비정규직 해고 또는 아웃소싱으로 고용조정을 외부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런 구조조정 대응은 대기업 정규직이 아니면 효과가 없다.

다음으로 기술 변화로 인한 구조조정이 발생하면 노동조합은 사회적으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요구하거나, 전환 배치를 요구하며 고용 조정을 최소화한다. 북유럽에서 이런 대응이 일반적인데, 사업 조정이나 자동화로 해고가 발생하면, 정부가 해고된 노동자에게 상당 기간 실업급여, 직업교육을 제공하며 새로 성장하는 산업에 재취업하도록 돕는다. 노동조합 역시 해고 노동자의 권리 보호에 상당한 자원을 쏟는다. 소위 말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장 변화에 따른 노동력 이동은 정부나 노동조합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한다. 이동에 따른 손실은 개인이 모두 짊어진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은 구조조정 대응 시 기업 내 고용 안정 유지에 필사적으로 나서게 된다.

마지막으로 장기간의 수익성 위기로 인한 구조조정 시기에는 자본과 노동, 한쪽의 일방적 패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로 1920~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는 러시아에서 노동자 혁명이 발생했고, 유럽에서는 파시즘으로 자본과 노동이 모두 몰락했다. 1970~1980년대 공황 시기에는 선진국에서 전반적으로 노동운동이 크게 약화하며 자본의 지배가 공고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중반 IMF 구조조정 전후가 이러했다. 노동자운동이 체제에 도전할만한 비전을 갖추지 못했고, 다양한 노조 탄압과 비정규직 확대 속에 노동조합이 크게 위축됐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제조업 구조조정은 경기변동이나 기술변화가 핵심 원인은 아니다. 장기간의 수익성 위기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제조업 전반에서 수익성이 크게 하락하고 있으며, 투자도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2012년부터 7년 넘게 제조업 평균가동률이 하락 중이다. 심지어 추격 성장 전략의 한계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불투명하다. 중화학공업 제조업은 수출이 중요한데, 세계경제를 봐도 미국의 재정위기, 중국의 부채위기, 유럽의 통화동맹 위기가 경기에 하방압력을 가하고 있다. 현재의 위기는 단기간에 변화 불가능한, 말 그대로 ‘구조적인 것’이다.


정부가 위기를 구원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노동운동의 일반적인 대응은 정부에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 해결책은 보통 산업정책이나 국유화다. 노동운동 정파 별로 보자면, 전자는 주로 국민파나 중앙파가, 후자는 좌파가 선호하는 해결책이다. 올해 금속노조의 경우 구조조정 대응 기조로 ‘노동지향적 산업정책 마련’을 내걸었다.
 

‘산업정책 마련’ 요구는 간단히 말해 정부가 나서서 산업 경쟁력을 높이라는 요구다. 관세를 통한 유치산업 보호, 정부의 정책자금을 통한 특정 산업의 수출경쟁력 강화, 위험부담이 큰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를 정부가 대행하는 것 등이다. 19세기 말 미국과 독일, 20세기 초중반 일본, 그리고 1970년대 한국이 이런 산업정책을 사용했던 대표적 사례다. 추격성장 전략이 성공한 사례 대부분에서 이러한 산업정책이 큰 효과를 발휘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산업정책이 오늘날의 한국에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첫째, 20세기 개발도상국의 산업정책 성공은 그 나라의 정책 효과를 따지기 이전에 미국의 냉전 전략이 핵심이었다. 한국의 1970~1980년대 고도성장은 미국의 역(逆) 개방 정책 없이는 성공할 수 없었다. 수출재벌의 성공은 그들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미국이 그들의 물건을 수입해줘서 가능했던 것이다. 또 다른 성공 사례인 1980년대 대만도 마찬가지다. 대만의 전자산업 육성 정책은 미일 반공동맹의 아시아 정책 없이는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21세기에 이러한 정치동맹은 더는 없다. 미국은 한국의 산업정책이 성공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한미FTA에서 오히려 제소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이전의 산업정책이 성공했다고 오늘날 같은 방식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둘째, 우리나라는 단기적 자원배분보다는 장기적 구조개혁이 중요하다. 추격성장 이후를 준비하려면 그만큼 국민경제가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지식을 축적하고 있어야 한다. 추격성장국가와 선진국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지식축적의 기반이 있느냐다. 하지만 한국은 고등교육기관이 몰락했다. 미국 유학알선 기관이 되어버린 한국의 대학이 대표적 사례다. 자립적 지식 축적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가 자원의 선택과 집중으로 몇 가지 업종의 경쟁력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추격성장 한계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건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셋째, 금융세계화와 세계적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금융세계화는 정부 차원의 시장 개입을 규제한다. 20세기 초중반처럼 정부 주도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 정부가 산업정책이란 이름으로 관세를 높이거나 특정 기업을 지원하면, 당장 WTO에 제소되거나, 한미FTA의 투자자 제소 대상이 된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산업정책을 강화하자고 주장하려면, 그 전에 한국이 금융세계화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방안부터 제시해야 한다. 더군다나 21세기 경제는 더 이상의 혁신이 곤란한 상황이다. 정부가 나선다고 크게 개선될 여지가 적다. 단적으로 4차 산업혁명 같은 요란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유례없이 하락하고 있다. 정부가 자원을 몰아준다고 수출경쟁력이 대폭 높아지기는 어렵다.
 

국유화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구조조정 관련 투쟁을 하다 이것저것 다 막히면 결국 노동조합이 꺼내는 카드는 ‘국유화’다. 정부가 다 책임지라는 것이다. 사회주의 운동의 고전적 강령에서는 국유화를 사회주의로 가는 이행경로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유화는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국유화는 반드시 필요한 이행강령이 아니라 정세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좌파운동 진영의 경우 정세판단 문제를 원칙의 문제로 오판하는 경우가 많다.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이행이란, 노동자계급이 평의회를 건설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계급적 단결의 수준, 경영·생산과정에 대한 집단적 지식의 수준, 화폐 경제를 밀어낼 수 있는 협동조합(평의회)의 생산과 분배 수준을 높이는 것이 곧 이행이다. 이때 국유화는 노동자 경쟁을 제한하고, 노동조합의 기업통제권을 넓히며, 시장경제를 제한하는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소련처럼 국유화 된 ‘국가단일기업’에서 당이라는 새로운 자본가가 만들어지거나, 중국처럼 소유만 국영일 뿐 경영과 생산이 민간기업과 전혀 다르지 않은 형태로 기업이 조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20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이뤄진 민간기업의 국유화가 시사적이다. 1980년대 프랑스는 한계기업을 유상매입(자본주입 또는 출자전환 등)하는 대규모 국영화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이 지배적인 상태에서 일부 기업 국유화로는 모순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첫째, 시장 조건이 변하지 않는 한 국유화된 한계기업은 계속 적자를 낼 수밖에 없다. 정부재정으로 경쟁력 없는 기업의 손실을 메워주는 꼴이다. 둘째,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경쟁력을 회복할 경우 정부가 이를 국영기업으로 유지할 수 없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시장에서 납세자 민간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불공정 경쟁이다. 셋째, 국영화된 기업의 노동조합이 구조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세금을 낭비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국유화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가 친 노동조합 정부일 경우 이 딜레마는 더욱 심각해진다. 예로 프랑스 제1 노총이었던 CGT는 1980년대 사회당·공산당 연합 정부 시기 조합원 수가 가장 심각하게 감소했다. (1979년 200만 명 → 1987년 80만 명)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구조조정 위기에 처한 제조업 기업들은 이런 국유화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지금 같은 불황에 가능한지도 의문이고, 가능하더라도 시장에서 얼마나 기업이 지속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구조조정 대응의 초점은 오히려 노동조합의 ‘능력’이다.

장기간의 수익성 위기로 자본이나 국가가 대안을 만들기 어려운 조건이다. 따라서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노동조합이 생산과 분배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 당장 어렵다면 구조조정 대응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용안정 요구만 반복하지 말고, 금속노조가 생산과 경영을 통제할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노동자운동의 궁극적 지향은 경영과 생산과정 전반을 노동자가 통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노동자운동의 궁극적 지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지금은 임금 인상과 고용 유지를 전투적으로 주장한다고 특별한 답이 나올 수 없다. 구조조정 위기에 처한 기업을 대상으로 금속노조가 노동자 통제의 경제를 실험하고, 경험하는 계기로 만들어 봐야 한다. 여기에 약간의 정부 지원이 토대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국유화를 요청하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누가 와도 경영하고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금으로 몇 년 더 고용을 유지하는 것은 해당 노동자에게는 약간의 도움이 되겠지만, 위기에 처한 노동자계급 전체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현장과 금속노조 차원의 집단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노동조합을 통해 경영과 생산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다.
 

물론 이런 제안들은 임금 인상 요구를 상대화할 수밖에 없다. 임금에 한정해서 보면 양보교섭이라 부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침체 상황에서, 말 그대로 시장의 원리에 따라 많은 기업이 도태되는 상황에서 임금 인상으로 계급적 요구를 쟁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프로그램도 아니다. 임금과 관련해 쟁취할 것이 없는 조건에서 어떻게 사회변혁의 동기를 확대할 것인지가 노동자운동에 주어진 문제다.

참고로 지금까지 제조업 부문에서 노동자통제기업(자주관리)이나 경영 참여는 그다지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격한 시장경쟁 속에서 자신의 조합원을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딜레마가 발생하거나, 새로운 노동자 경영진과 과거의 노동자 조합원들 간의 갈등으로 기업이 파탄 나는 경우가 많았다. 경영참여 역시 마찬가지다. 사외이사 한 두 자리 얻는 것으로 이사회를 장악할 수도 없고, 노동자를 대표하는 이사가 노동조합을 역으로 공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다양한 방법의 경영참여나 노동자 통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노동자가 일자리를 두고 서로 전쟁을 벌이거나, 정부 세금으로 무기력하게 연명하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생산을 조직하고, 결과를 분배할 수 있는 경험을 쌓는 것이 그나마 차선이기 때문이다. 어렵고 실패하더라도, 미래가 없는 투쟁보다는 그래도 미래가 있을 수 있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노동자운동의 오늘날 구조조정 대응책이 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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