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9/03 제50호

노동조합 여성 사업,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이유미

오늘날 여성의 현실과 노동자 운동의 과제

페미니즘 운동은 가족과 경제를 포괄하여 사회를 변혁하고, 여성의 성욕과 모성의 권리 인정을 통해 새로운 남녀관계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 운동을 페미니즘으로 개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 노동자의 구체적 현실에 기초하여 더 많은 여성이 운동에 나설 수 있다면, 노동자 운동을 페미니즘으로 개조하는 것이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노동자 운동은 국가의 저출산 고령화 대책이 가정과 일터에서 여성의 이중부담을 강화하고 있음을 비판해야 한다. 또한 사회서비스 일자리처럼 여성 노동의 저평가로 노동조건도 열악해지고 있음을 문제 제기하며 민간서비스가 아닌 공적 서비스로의 전환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경제위기로 구조조정과 노동조건 저하가 발생하는데, 여성 노동자의 경우 가장이 아니라 일시적 노동력으로 취급되어 주목받지 못해 그 실태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 경제위기를 빌미로 여성의 출산을 의무로 여겨 통제하려는 이데올로기에 맞서 재생산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낙태죄 폐지 운동에 나서야 한다.
 
지난 3월 8일 민주노총 주최로 열렸던 '세계 여성의 날 전국노동자대회'
 

여성 사업에 대한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자

노동자 운동이 페미니즘으로 개조되기 위해서는 여성 사업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 사업을 여성 담당자의 일만으로 치부하거나, 반성폭력 사업으로만 인식되는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 여성 사업에 대한 지배적 인식 세 가지를 살피면서 변화 방향을 모색해 보자.

첫째로 여성 사업은 반성폭력 사업이라는 인식이다. 노동조합에서 여성 사업에 대한 강조는 조직운영이 얼마나 성차별적인가, 성폭력이 만연하는가를 드러내며 경종을 울리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구성원들의 태도를 점검하고 성찰하기 위한 기획은 필요하지만, 여성 사업이 반성폭력 교육이나 성폭력 사건 처리가 중심으로 진행될 경우 페미니즘은 도덕과 윤리의 문제로만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즉, 여성 사업은 정세와 무관하다는 인식을 벗어나기 어렵다.

노동조합의 투쟁, 조직화 계획은 여성 사업과 비교해 정세적이라고 여기데, 이는 노동자들의 구체적 현실을 분석해 전략을 수립하기 때문이다. 여성 사업도 여성 노동자들의 구체적 현실분석에 기초하여 수립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구체적인 현실분석이란 비단 특정업종 노동자들의 임금 고용 실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운동계획을 세울 때 노동자를 둘러싼 경제, 정부 정책, 산업 현황, 노동실태를 고려하여 종합적인 방향을 설정하듯이 여성 사업도 여성 노동자를 둘러싼 전반적 현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계획되어야 한다. 앞서 설명한 경제위기와 동반한 재생산의 위기와 국가의 저출산 대책 등이 여성에게 미치는 현실을 분석하고 투쟁과제를 도출하자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조합의 투쟁이 단지 구조조정 저지 등으로만 협소화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의 위기에 대한 대응과 운동과제를 제시하는 의미도 있다.

여성 사업을 정세적으로 재구성할 때, 그리고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사업을 제안할 때, 페미니즘은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운동의 정세적 과제로 인식될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조합에서 성폭력이란 가해자 개인의 잘못을 처벌하는 문제를 넘어, 노동자 운동의 정세적 투쟁을 저해하는 행동이라는 인식을 확산하는 반성폭력 운동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둘째로 여성 사업은 노동조합의 조직화, 투쟁 계획과 별개라는 인식이 있다. 상급단위 노동조합에서는 여성 사업 담당자의 대외활동과 여성위원회 운영을 중심으로, 기층노동조합에서는 여성조합원들의 교류를 중심으로 여성 사업이 진행된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페미니즘적 개조를 위해서는 여성 사업의 문제의식이 조직화와 투쟁사업에도 반영되거나 협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해당 산업 여성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하여 조직화 사업을 계획해야 하며, 여성조합원들의 노동조건을 파악해 투쟁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여성위원회 사업으로만 진행될 필요는 없으며 여성위원회가 투쟁·조직사업을 제안하거나 협업하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조합의 여성 사업은 반성폭력과 여성단체협약이라는 고정된 인식을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페미니즘 교육은 반성폭력 교육이라는 인식이다. 노동조합의 페미니즘 교육은 크게 남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반성폭력 교육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반성폭력 강사단 교육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앞서 제시한 정세적인 여성 사업 수립과 투쟁과 조직을 넘나드는 전략 수립이라는 문제의식을 누가 노동조합에서 관철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면 반성폭력 중심의 교육은 재구성되어야 한다. 즉 여성 사업에서 주력해야 할 교육대상은 여성조합원과 여성 간부가 되어야 한다.

여성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직장과 가정에서 경험하는 여성의 어려움을 개인적 불행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노동조합을 통해 집단으로 해결하기 위해 여성 스스로 나서야 함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성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정례화하고, 다른 업종에 있는 여성조합원들 간의 교류 활성화를 통해 자신만이 아니라 전체 여성 노동자의 구조적 현실을 인식할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여성 간부 육성을 위한 교육도 중요하다. 여성조합원이 다수임에도 여성 간부가 적으면 여성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기 어렵다. 전체 노동운동의 주요 사항을 결정하는 단위에서 여성 간부가 적으면 여성 노동자 조직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체감도가 떨어져 노동조합의 핵심 사업으로 관철하기 어렵고, 여성 노동자 조직화에 유능하게 대처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서 여성 간부가 증가해야 하며 그것을 위한 교육이 대폭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할당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라는 의미도 있다. 현재 할당제가 있더라도 여성 간부를 선출하지 못하거나, 기계적으로 성비를 맞추는 것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현실이다. 여성 간부들이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과 요구를 대변할 수 있도록 교육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능동적 여성 활동가를 확대해야 한다.
 
 

보다 전략적인 여성 사업을 위하여

노동자 운동은 많은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서 제안한 여성 사업의 변화 방안도 여성 사업이라는 타이틀은 아니지만 진행되고 있는 사업들도 상당수다.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확대된 대표적 여성 일자리인 요양보호사, 경력단절 여성들이 상당수 분포하는 마트 노동자들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소리 없이 구조조정 되는 전자산업 중소 하청업체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투쟁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사회적으로나 노동조합 내부에서조차 ‘여성’의 문제라기보다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로만 이해되거나, ‘여성’이 주목받는 방식은 고령의 ‘어머니’들의 딱한 사정으로, 또는 가계수입을 보조해야 하는 ‘아내’들의 불행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노동자 운동이 성별 임금 격차를 축소하는 유력한 경로로 인식되거나, 보육정책이나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가장 유의미한 역할을 하는 집단으로 인식되지도 않는다. 이는 오늘날 집단적 문제해결이라는 전망이 불투명해 정치에 대한 불신이 크다 보니 노동조합이나 정당을 통해 직장과 가정에서의 문제를 해결 가능하다는 기대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목적 의식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표상시키지 못한 측면도 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이 노동자 운동에 합류하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노동자 운동 내부에서 여성해방을 지향하는 여성 주체가 퍼지기 위한 전략을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여성 사업이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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