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9/03 제50호
반反 페미니즘 정서, 어떻게 볼 것인가
경제위기와 청년 세대의 성 갈등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 지지율을 두고 말이 많다. 작년 말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긍정 평가가 가장 낮은 집단이 20대 남성(두 번째로 낮은 집단은 60대 이상 남성)이었으며 2019년에 들어서도 하락세는 지속하고 있다. 가장 먼저 제기된 주장은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여성 편향’ 정책에 대한 반감, 즉 페미니즘을 둘러싼 쟁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페미니즘 때문이라는 직접적 근거는 불충분하다. 더욱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최근 진행된 인식 조사에 따르면 분배 및 고용 악화라는 경제적 불만이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청년 여성과 청년 남성 집단 사이에 오늘날 여성의 현실에 관한 큰 인식 격차가 존재하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작년 말 국민일보가 실시한 한국 사회 갈등에 관한 조사(리얼미터 실시, 전국 성인 1018명 대상) 결과,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을 묻는 말에 응답자 전체는 빈부갈등(35퍼센트)을 1위로 꼽았지만, 20대는 성 갈등(57퍼센트)이라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지지하는지 묻는 말의 응답 내용도 20~30대 여성과 남성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20대 여성과 30대 여성은 각각 64퍼센트, 44퍼센트가 페미니즘 운동에 지지를 표했지만 20대 남성은 14퍼센트, 30대 남성은 23퍼센트만이 찬성한 것이다. 포털 사이트의 댓글만 살펴봐도,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여성들은 ‘페미니즘’에 높은 관심과 공감을 보이는 반면 동 세대 남성들은 여성 문제 자체에 심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페미니즘 운동은 시대를 불문하고 반발과 몰이해에 부딪히면서 전진해 왔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폭력에 익숙한 기성세대 남성들에서보다 청년 세대에서 더욱 강력하게 발현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청년 세대 남성들의 반감을 ‘기득권을 잃기 싫은 것’, ‘시대의 변화에 뒤처진 것’이라 치부해 버리기에 앞서 그 구체적인 내용과 원인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향후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의 주축이 될 세대가 성별 문제에 관해 좁혀지지 않는 이해를 하고 대립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생산의 위기
청년 세대에서 불거지고 있는 ‘성 갈등’은 실상 그들이 놓인 취약한 조건을 반영한다. 세계적으로 경제위기와 저성장이 지속하는 가운데, 오늘날의 청년들은 더 나은 미래에의 전망이 부재하다.
IMF 외환위기가 ‘안정된 일자리에 대한 구조조정’을 촉진했다면, 2007~2009년의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는 ‘안정된 일자리 진입의 불가능성’이 주목받았다. 대중미디어에서 1990년대 후반의 위기가 ‘가장의 위기’로, 2000년대 후반의 위기가 ‘청년의 위기’로 표상되었던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안정된 일자리의 문제는 곧 가족 구성과 직결된다. 가장이 안정된 일자리에서 해고되자 이혼, 별거 등으로 기존 가족의 해체가 급격히 늘었다. 반면 안정된 일자리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청년 세대는 가족 형성(결혼 또는 출산)을 유보하거나 포기했다. 이른바 삼포 세대, 오포 세대가 등장하며 초저출산 시대의 문이 열린 것이다.
장경섭은 《내일의 종언? 가족자유주의와 사회재생산 위기(2008, 집문당)》을 통해 한국에서 경제위기가 특히 비혼·만혼, 저출산, 가족 해체, 노인 빈곤 등 가족 구성을 둘러싼 갈등 상황으로 드러나는 것은 사회가 오랜 기간 재생산의 의무와 기능을 가족에게 부여해 왔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이는 사회 재생산의 기본 단위를 개인으로 두고 국가가 그에 필요한 자원(공공 보육 및 돌봄 등의 시스템)을 제공하는 서구의 복지국가와는 명백히 다른 방식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은 공적 영역에서는 전일제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하고, 사적 영역에서는 아이나 노인에 대한 돌봄을 개별 가족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떠넘긴 채로 이루어졌다. 가족화된 재생산 노동은 대부분의 경우 가족 내 여성의 일이 되었다.
문제는 한국에서 20세기 자본주의의 핵가족 모델인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가정주부’가 보편적으로 실현된 적이 없다는 데에 있다. 남성생계부양자 가족 모델이 보편화하려면 남성 노동자에게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임금을 줘야 하는데 한국의 노동자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가족의 생계를 부양할 만큼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 1960~70년대에는 저임금을 토대로 국가 경제가 성장해 왔으며,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며 만들어진 고임금의 안정적 일자리마저도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상당 부분 구조조정 되었다. 결국 장시간 노동으로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된 아버지, 가족 내에서 가사와 돌봄의 의무를 수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불안정한 노동을 수행하며 이중 부담에 시달리는 어머니가 우리 시대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이 된다.
일자리와 가족 구성에서의 성 갈등
이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청년 세대의 성 갈등,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두 영역에서 살펴보자.
첫째,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서로를 사회적·경제적 경쟁자이자 동료로 보고 성장해 왔으며, 여성도 노력에 따라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안정된 일자리가 한정적이고 진입이 어려운 사회적 조건은 청년들의 불안과 박탈감을 가중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보상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 이 사회 안에 내가 있을 자리가 없다는 감각이 그것이다. 여성 할당제,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보상으로 일자리가 주어지는 것이 ‘노력한 자의 몫을 불공정하게 빼앗는 것’으로 여겨지는 건 이러한 조건을 반영한다.
둘째, 가족 구성 및 재생산 영역에서의 갈등이다. 여성의 경우 직장에서 일을 지속하는 것과 가족화된 재생산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양자택일의 문제처럼 받아들인다. 여전히 한국의 가족은 여성에게 전통적인 며느리, 아내, 어머니의 역할을 기대하는데, 그것이 전일제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하는 직장 생활과 양립할 수 있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남성은 자신의 지위를 특권이기보다 부담으로 느낀다. 결혼하려면 물질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남성이 주로 생계를 부양해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청년 세대가 가족 구성을 피하는 것이 개인주의 때문이 아니라 한국의 강력한 가족주의 때문이라는 장경섭의 분석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요약하면, 지금의 청년 세대는 가족 구성 및 재생산 과정에서 각각 자신의 성별에 따라 기대되는 역할을 상당한 부담으로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남성은 여성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일터에서는 남성과 똑같이 일하지 않고(육아휴직·단축 근무·퇴사 등) 연애·결혼의 비용을 동등하게 부담하지 않는 등 여성이라는 조건을 내세우지만, 가족 내 전통적인 역할은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려 한다며 비난한다. 반면 여성들은 남성들이 첫 직장 시작 과정부터 시작해 직장·가정생활 전반에서 남성으로서의 특권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외면한다며 비난한다.
그러나 개개인의 선택 자체가 문제의 원인은 아니다. 그것 역시 현존하는 사회의 질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일 뿐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가 여성의 이중부담으로 전가되어 재생산의 위기가 발생하는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지, 사회와 가족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가 진짜 문제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해결해나갈 수밖에 없는 과제다. ●
성공한 여성에 가려진 대다수 여성의 현실
한국에서 ‘페미니즘 열풍’이 시작된 직접적인 계기는 급증한 여성 혐오 담론에 대한 반발이었다.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IS를 찾아간 18세 김 군, ‘여자들이 나를 무시한다’며 여성 타깃의 묻지마 살인을 벌인 강남역 살인 사건, ‘된장녀’, ‘김치녀’로 대표되는 한국 여성의 행태에 대한 부정적 재현 등 2000년대 들어 여성 혐오 담론은 보수나 진보 성향을 막론하고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졌다.
여성 혐오 담론의 급증은 물론 문제가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역차별’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한국 남성의 박탈감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백인 남성들을 중심으로 반여성·반이민 정서가 확대되는 것과 유사하다. 남성인 나도 이렇게 먹고살기 힘든데, 여성이나 이민자에 대한 혜택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 적극적 차별시정 조치를 통해 여성이 주류 질서에 편입하는 일을 장려하고 성공한 여성 개인의 사례를 부각하는 여성운동의 전략은 ‘여성 상위’, ‘남성 수난’의 프레임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며 반페미니즘, 반여성적 정서를 강화했다.
물론 이러한 선전과 달리 대다수 여성의 삶의 조건은 나아지지 않았다. 국가 여성 정책의 핵심 기조는 ‘일·가정 양립’을 내세우며 여성 노동력을 저임금·불안정 노동으로 활용했다. 여성 단체들은 정부 기관의 파트너가 되었다. 결국 현시기 여성 혐오 담론의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시대 페미니즘 운동이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나 불안정해지는 여성 대중들의 삶과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실패의 역사가 놓여 있다. 페미니즘 운동이 기존의 사회 체제에 여성들을 ‘편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거나, 성차별·성폭력에 문화주의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넘어 지금 시대 여성 억압의 핵심적인 양상을 분석하고, 운동의 과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