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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과 사회
  • 2019/02/제49호

혁신성장과 한국 보건의료의 미래

  • 김진현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신년사에서 ‘혁신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 중 핵심이 보건의료산업이다. 2018년 12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서는 4대 신산업 중 하나로 바이오헬스를 지목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도 지난 12월, <4차 산업혁명 기반 헬스케어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서 주요 과제로 5대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규제 완화부터 시작해 의료기기·제약 부문 규제완화까지 이어질 계획이다. 구글, 아마존과 같은 혁신적인 벤처기업을 육성해 블록버스터 급 신의료기기, 신약을 개발해 경제를 성장시키겠다고 한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실제 산업혁명 수준의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과거 1, 2차 산업혁명과 비견되는 기술 혁신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기술 혁신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술 혁신의 핵심은 대학의 연구 역량이다. 그런데 수준 미달인 한국의 대학 교육·연구를 개선하려면 많은 투자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적어도 문재인 정권 내에 기술 혁신에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따라서 혁신성장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목을 매는 일자리 창출도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혁신성장의 주요 대상은 의료기기와 제약 부문인데, 이 부문은 기본적으로 일자리 창출 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혁신성장은 실패할 것이나, 추진 과정에서 대대적인 규제 완화가 예상된다. 신의료기기·신약에 대한 규제 완화로 의료기관 사이의 고가 의료장비 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한국 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공급구조 개혁 이전에 규제 완화와 문재인케어가 동시에 시행된다면, 그로 인해 증가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노동자민중이 떠안게 된다. 결과적으로 보건의료부문 혁신성장은 득보단 실이 많을 것이다.
 

새로운 산업혁명은 없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듯, 4차 산업혁명은 과거에 일어났던 산업혁명들에 비해 큰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3차(정보통신혁명)와 4차 산업혁명은 확립된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가설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다. (송성수, <역사에서 배우는 산업혁명론: 제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17.) 대부분 머신러닝, 인공지능(AI) 기술의 혁신성은 과거 증기기관이나 컨베이어벨트처럼 경제적 효과나 삶의 질 증진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며, 설령 핵심 산업은 발전할지언정 다른 모든 산업으로 그 효과가 미치지는 못할 것임을 근거로 들고 있다.
 
 
물론 기술이 개발된 뒤 실제 경제적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에 더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90년대 정보통신혁명도 경제적 효과가 나타난 것은 시간이 좀 흐른 뒤였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소위 ‘3차 산업혁명’ 역시 1, 2차 산업혁명에 비하면 성과가 초라했다는 걸 감안하면 기대를 품는 것도 이상하다. 적어도 현재까지의 근거만으로는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어려워지는 미국의 기술 혁신, 따라잡기에 실패한 한국

 
이번에는 통계치를 분석한 연구를 살펴보자. 혹시라도 4차 산업혁명이 발생한다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는 당연히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진 미국이다. 그런데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진이 2017년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에서 기술 혁신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논문에 의하면, 미국의 연구생산성은 1930년대 이후 매년 5.1퍼센트씩 감소해 2000년 들어서면 41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한다. 연구생산성은 새로운 기술 혁신 아이디어를 유효 연구자수로 나눈 지표다.

연구생산성에 관한 보다 미시적인 분석도 있다. 무어의 법칙(Moore’s Law), 곡물 단위면적당 수확량, 사망률과 기대 수명에 관한 연구다.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주장인데, 1970년대 이후로 대체로 잘 관철되어 왔다. 그러나 무어의 법칙대로 성능을 2배로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유효 연구자 수는 1970년대에 비해 지금은 18배나 늘었다. 결과적으로 연구생산성은 매년 평균 6.8퍼센트씩 감소했다.

곡물 수확량 관련 연구생산성도 감소했다. 예컨대 옥수수의 경우 1970년대 이후로 단위면적당 수확량 증가율은 일정했다. 그러나 종자 개발에 종사하는 생명공학 연구자들의 수는 23배로 증가했다. 연구생산성은 연평균 9.9퍼센트 가량 감소했다.
 
 
사망률과 기대수명에 대한 연구는 두 번의 분석을 시행했다. 먼저 신약개발의 연구생산성을 분석했다. 미국 식약청의 승인을 받은 신물질 신약 개수를 유효 연구자수로 나누어 계산한 수치다. 신약개발의 연구생산성은 2015년에는 1970년대의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연평균 3.5퍼센트 감소했다. 다음으로 의학연구의 연구생산성을 분석했다. 임상시험 하나가 환자 1000명당 수명을 몇 년 연장시켰는지 살펴보았다. 2006년 암 연구의 생산성은 1975년의 4.8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연평균 5.1퍼센트 감소한 것이다.

결국 기술 혁신을 위해 치루는 비용이 기술 혁신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한다. 기술 혁신 자체는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꾸준히 일어나지만, 연구생산성은 지속적으로 하락한다. 미국에서의 기술 혁신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브랜스테터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권남호에 의하면(), 한국의 총요소생산성은(기술 혁신을 반영하는 수치다) 미국의 60퍼센트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심지어 지난 20년 간 큰 발전 없이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있다고 한다. 2016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는 세계 2위다. 투자는 많이 하는데 효과는 없는, 즉 연구생산성이 형편없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그 핵심 이유로 수준 미달인 대학 교육·연구를 지적한다. 수출 주도형 재벌기업 중심의 연구개발, 이민에 대한 무관심 등이 여기에 기여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일자리 창출에도 실패할 혁신성장

 
보건의료산업의 혁신성장은 일자리 창출에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2018년 1분기 보건산업 고용동향>에 의하면, 보건산업 전체 일자리는 2016년 기준 78만 명이다. 보건산업 일자리는 크게 네 가지 하위 산업으로 나뉜다. 의료서비스, 의약품, 의료기기, 화장품이다. 이 중 의료서비스가 65만 명으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의약품은 6만 명, 의료기기는 4만 명, 화장품은 3만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혁신성장의 대상은 의약품과 의료기기다. <4차 산업혁명 기반 헬스케어 발전전략>의 5대 프로젝트 중 어느 것 하나도 의료서비스와 관련된 것은 없다. 따라서 혁신성장이 성공해 의약품과 의료기기 산업이 발달하더라도,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하다.

누군가는 한국의 의약품과 의료기기 산업이 발전하면 지금보다는 일자리가 크게 증가할 거라 주장할지 모른다.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제약·의료기기 산업이 매우 발달한 국가에서조차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아일랜드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약·의료기기 산업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의약품 생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0.2퍼센트에 불과하다. 의료기기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역시 전체 노동자의 0.2퍼센트다. 관련 연구자까지 모두 고려해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자연과학, 공학, 생명과학 연구개발에 종사하는 연구자는 전체 노동자의 0.4퍼센트다. 미국 전체 연구·개발 예산 중 생명공학에 투자되는 비중이 2015년 기준 60.8퍼센트니 생명공학 연구자는 대략 0.24퍼센트 정도로 예측할 수 있다. 세 개를 모두 합쳐도 전체 노동자의 0.64퍼센트에 불과하다. 의약품과 의료기기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국가가 되어도 일자리는 다른 산업 부문에서 만들어내야 한다.
 
 
다음으로 아일랜드다. 아일랜드는 많은 초국적 제약회사의 의약품 생산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전체 경제생산 중 제약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44퍼센트(2016년)나 되며, 순수출로만 따지면 세계 최대의 의약품 수출국이다. 그런데 아일랜드에서 제약관련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3만 6000명으로, 전체 노동자 중 1.8퍼센트다. 연구자로 따져 봐도 크지 않다. 과학 연구개발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6300명으로, 전체 노동자 중 0.3퍼센트다. 이들이 모두 생명공학에 종사한다고 간주해도 제약부문은 전체 노동자의 2.1퍼센트만을 고용할 뿐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전체 제조업 생산의 13.6퍼센트를 차지하지만, 고용은 11.8퍼센트나 담당하는 것(2015년 기준)과 비교하면 매우 초라한 일자리 창출 효과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2016년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 중 제약·의료기기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의약품 0.5퍼센트, 의료기기 0.3퍼센트다. 의약품만 따져보면 이미 미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한국이 아일랜드를 밀어내고 세계 최대의 의약품 순수출국이 된다고 치더라도, 일자리 창출은 몇 만 명 수준에 그칠 것이다.
 

경제성장은 못하고 의료비만 증가시킬 혁신성장

 
혁신성장의 효과는 미미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대대적으로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규제 완화는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 핵심 매개는 바로 신의료기술이다.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들은 대형병원들 간의 치열한 경쟁(소위 ‘의료계 군비경쟁’)과 문재인케어다.

혁신성장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2018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의료기기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의료기기 규제완화 정책이 실현된다면, 대형병원 중심으로 신의료기술을 이용한 비급여 진료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의료기기 규제완화 정책으로 인해 효과는 없으면서 가격은 비싼 의료기기가 대거 시장으로 진입한다. 둘째, 신의료기기는 병원 평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병원 간 경쟁의 도구가 된다. 셋째, 문재인케어로 인해 신의료기술이 모두 부분적으로 급여화(예비급여화) 되면서 가격이 평준화되고 본인부담금이 낮아져 행위량이 증가한다.
 

비효율적이고 영리추구적인 의료 공급체계부터 개선해야

 
2019년에는 한국경제가 본격적인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경제위기 시대, 보건의료가 노동자민중의 건강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공급구조 개혁이 최우선 순위로 이루어져야 한다. 공급구조 개혁 이전에 규제완화 정책과 문재인케어가 동시에 시행된다면, 그로 인해 증가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노동자민중이 떠안게 된다.

문재인케어를 시행하면 보험가입자가 얻을 이익이 크기 때문에, 건강보험료를 더 납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규제 완화는 문재인케어가 보장성 강화에 기여할 수 없도록 만든다. 또 경제위기로 가계 경제가 흔들리게 되면 인상된 건강보험료는 고스란히 노동자민중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부문 규제완화 정책은 경제성장은 가져오지 못하면서, 의료비만 증가시키기 때문에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나아가 강제력 있는 비급여 통제 정책과 병상 총량제, 고가 의료장비 규제 정책을 당장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의료 공급체계 개혁을 우선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 혁신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의료기술은 의료비용을 줄이고 1차 의료의사의 진료역량을 증진시킬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보건의료체계 하에서는 혁신성장의 도구이자 대형병원의 영리추구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일차의료·공공의료 중심의 공급구조 개혁이 선행되어야만 기술 혁신도 건강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
 
필자 소개

김진현 | 의사.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정책교육국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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