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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제49호

형틀 목수를 넘어 모든 건설 노동자의 단결을 위해

전국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회 중앙 임단협 교섭의 의미와 과제

  • 전국건설노조 경인지역본부 경인건설지부 사무국장 김태완
2017년 8월 25일, 전국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회(이하 건설노조)와 건설사 사용자단체인 서울경인철콘협의회의 임단협(임금과 단체협약) 체결 조인식이 진행됐다. 이번 협약에 따라 전국 형틀 목수 기능공에 대한 1일 기준 임금이 사실상 19만 5000원으로 통일됐다. 전국에서 일괄 적용되는 단체협약서는 형틀 목수 기능공의 임금 통일과 ‘회사는 현장이 개설되면 조합원을 고용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불가능해보였던 건설노동자의 단체협약

 
노동조합에 있어 단체협약은 단지 노동조건을 규정하는 계약서가 아니다. 노동자가 얼마나 단결했는지 그 힘의 척도를 보여주는 상징이며,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 노사관계 자체를 의미한다. 노동조합 활동의 정수가 모두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건설노동자에게 단체협약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1988년부터 시작한 건설일용노동조합들은 초기부터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연히 임단협 교섭도 어려웠다. 이는 건설노동자들의 현장의 특성 때문이다. 건설 현장은 공장 등의 일반적인 사업장처럼 상시 지속해서 운영되지 않는다. 공사가 끝나면 노동자들이 일할 현장이 사라진다. 또 공사 하나를 한다 해도 여기에 투입되는 노동자의 직종이 모두 다르다. 하나의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골조 직종, 전기·소방·통신 및 설비 직종들이 현장에서 필요한 때만 불려서 일한다. 평생 한 곳에 정착할 수 없고 현장을 옮겨 다니면서 일해야 하는 건설노동자들은 프로젝트 계약직 내지는 일용직으로 채용된다.
 

건설 자본들은 인력 관리를 위해 속칭 ‘오야지’를 활용한다. 오야지는 공사 면허가 없는 십장(건설 현장에서 일꾼을 직접 감독, 지시하는 관리직)으로, 하청업체 밑에 공사 물량을 하도급받아 그 밑에 노동자들을 고용한다. 1차 오야지 밑에 또 다른 오야지가 생기기도 해서,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형성된다. 때문에 건설노동자들의 고용 관계가 불안정해진다. 실제적 고용권을 행사하는 사용자가 오야지인지, 하청회사인지, 원청 회사인지도 불분명해진다.

따라서 건설노동자들이 취업한 1개 현장에서 건설사와 임단협을 체결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여러 가지 변수로 단체협약 적용에 방해를 받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현장 교섭으로 임단협을 체결하더라도, 공사가 종료되는 즉시 그 협약은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시공참여자제도 폐지와 건설노조 전국 조직화로 얻은 교훈

 
2007년 시공참여자제도가 폐지됐다. 시공참여자제도는 종합건설업체(원청), 전문건설업체(하청) 아래에 존재하는 현장 오야지(십장)들을 사실상 사업주로 인정하여 다단계 도급의 합법성을 부여하던 제도였다. 즉, 건설노동자들의 고용 관계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제도였다. 시공참여자제도가 폐지되면서 오야지들의 공사 도급은 불법이 됐고, 하청업체가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가 명확하게 명시됐다.

2000년대 들어 다양한 업종의 건설노동자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중앙 교섭을 통해 임단협을 체결했다. 이후 타워크레인 임단협은 하청업체의 타워크레인 조합원 의무 고용 조항을 협약에 반영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하청업체가 노동조합에 가입한 타워크레인 기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고용을 회피한 것에 대응해서다. 또 플랜트 건설노동자가 대규모 조직되면서 지역 임단협을 쟁취하했다. 현장이 개설되면 조합원 고용을 보장하고, 노동조건을 통일하는 성과를 여러 곳에서 만들어 냈다.
 

2000년도 이후에 부상한 여러 업종의 건설노동자 조직화 과정과 시공참여제 폐지는 건설일용노동자, 토목건축노동자 조직화에 있어 몇 가지 교훈을 안겨주었다. 첫째, 노동조합의 진정한 조직화는 현장을 장악하는 임단협의 성과로 나타난다. 둘째, 건설 현장의 특성 상, 1개 현장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현장에 같은 노동조건을 적용할 수 있는 임단협만이 실제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셋째, 사용자 측의 조합원 고용 회피 전략을 저지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현장이 개설되더라도 기존 조합원의 고용을 보장하고 노동조건을 일괄 적용하도록 만들어나가야 한다. 넷째, 원청 사용자성의 쟁취도 중요하지만, 직접적 사용자 관계로서 법적으로 확인된 하청업체와 구체적인 노사관계를 수립해야 한다. 이러한 교훈의 결과로, 전국의 건설노동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임단협을 체결하는 방법은 중앙 교섭 뿐이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이제 중앙 교섭은 건설노조 운동의 조직적 목표가 된다.
 

중앙 임단협 준비, 조직화 과정

 
2007년 건설운송노동조합(덤프, 레미콘), 지역별 건설일용노동조합, 타워크레인노동조합이 통합하여 전국건설노동조합을 만들고, 지역별 건설일용노동조합은 산별 단일조직 내의 토목건축분과위원회가 됐다. 이후 건설노조 중앙의 지원과 함께 지속해서 조직화를 시도한다.

토목건축분과위원회가 전략적으로 주목한 직종은 골조 직종과 형틀 목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건축 공사에서 비중이 가장 큰 공정이 골조 공정이기에 현장에서 조직화의 파급력이 크다.  둘째, 철근과 타설 등 다른 골조 직종보다 형틀 목수는 상대적으로 대규모 인원으로 구성된 팀으로 작업을 한다. 따라서 대규모 조직화도 상대적으로 쉽고, 노동자들 역시 조직적 관점을 갖기 쉽다. 셋째, 시공참여자 제도 폐지로 노동조합은 하청업체와의 직접 고용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는데, 가장 많은 인원을 고용시킬 수 있는 직종이 형틀 목수였다. 즉 노동조합은 기존의 도급 구조를 깨고 노동조합원으로 구성되는 형틀 목수 작업팀(팀원과 팀장)을 하청업체가 직접 고용할 것을 요구하며 투쟁했다.
 
 
2006~2007년, 토목건축분과 조직 중 최초로 대구경북건설지부가 형틀 목수를 중심으로 한 지역 임단협을 체결했다. 2012~2013년을 지나면서 대구경북건설지부는 2000명에 가까운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해 지역 현장을 장악했다. 그즈음 광주전남건설지부도 지역 임단협을 체결했다. 2014~2015년엔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도 형틀 목수 대규모 조직화에 성공했다. 건설노동자들은 지역 임단협이 체결된 곳 안에서는 현장을 이동하더라도 동일한 노동조건을 보장받았다. 수도권에서도 현장 투쟁의 승리를 바탕으로 조직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2015년에 최초로 진행된 토목건축분과 1박 2일 상경 투쟁에는 5000여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2016년, 전국의 토목건축분과위원회 소속 건설지부는 전국적으로 같은 임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형틀 목수 기능공 일일 임금 18만 5000원이었다. 요구안은 모든 지역에서 관철됐다. 이로써 중앙 임단협을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만들어진 셈이다.
 

토목건축분과위원회 중앙 임단협, 시동

 
2017년 3월 2일, 토목건축분과위원회는 형틀 목수를 직접 고용하는 200여 철근콘크리트업체에 단체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하고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 등을 개시했다. 이로써 역사상 최초로 토목건축분과위원회 중앙 임단협 교섭이 시작됐다.

철근콘크리트업체들은 당연히 중앙 임단협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지역 임단협을 적용하고 있는 대구, 광주, 부·울·경 지역 업체들은 지역 임단협에 머물자고 했고, 수도권 및 지역 임단협 미적용 지역은 현장별 임단협을 체결하는 수준으로 마무리하자고 했다. 교섭은 난항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철근콘크리트 업체 중 도급 비율이 높은 업체를 타격하여 투쟁했다. 도급 순위가 1, 2위인 원영건업, 두송건설 등을 움직이면 다른 업체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판단은 적중했다. 수도권에 소재한 주요 철근콘크리트업체들이 결국 5월 중‘서울경인철콘협의회’라는 사용자단체를 구성했다. 비로소 본격적인 교섭이 시작되었다.

수도권을 마지막으로 사용자단체 체계는 구성되었으나, 지역의 사용자단체들은 여전히 지역 임단협을 주장하면서 중앙 교섭만은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건설노조는 6월에 1박 2일 1만 조합원 상경 투쟁으로 맞섰다. 중앙노동위원회 쟁의 조정을 겪으면서 중앙 협약(형틀 목수 기능공임금, 조합원 고용(외국인력 사용 문제), 노동시간은 전국적 토론·합의사항)과 지역 협약(타 직종 임금, 형틀 목수 임금체계와 지급방식, 조합원 고용방식·비율·형태 등, (휴일 외) 여타의 노동조건은 지역적 토론·합의사항)의 병행 체결이라는 방식으로 교섭 방식에 대한 논란을 끝맺었다.

같은 해 7월, 최초로 도급순위 1위인 원영건업과 임단협을 먼저 체결하면서 사용자단체 내부가 분열하기 시작했다. 지역별 사용자단체들이 먼저 임단협을 잠정 합의했고, 그 이후 순차적으로 도급순위가 높은 업체들을 타격해 나가면서 결국 8월 21일쯤 서울경인철콘협의회와도 잠정 합의에 도달했다. 이후 2018년 임금 교섭에서는 별다른 투쟁 없이도 그 다음해 임금까지 합의했고 나아가 건설 현장 주휴수당의 문제까지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토목건축분과위원회 중앙 임단협의 의미

 
토목건축분과 중앙 교섭은 전국 현장에서 일하는 형틀 목수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접근했음을 의미한다. 건설노조 조합원을 배제하고 공사를 진행하며 노동자를 착취하여 이윤을 남기고자 했던 건설사들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건설노조 없이 공사를 할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노동조합에 대한 현장 노동자들의 인식도 바뀌었다. 노동조합에 가입할지,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고 도급 체계에 머무를지 저울질하던 건설노동자들이 망설임 없이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실제 중앙 교섭 이후 조직은 계속해서 확대되었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현장의 인식 변화와 함께 수도권 차원으로 공동 대응하는 투쟁이 활성화됨에 따라 중앙 교섭 이전보다 몇 배에 달하는 조직 확대가 이루어졌다.
 
 
조합원들의 의식도 달라졌다. 지역과 현장에 머무는 투쟁은 조합원들의 의식 또한 지역과 현장에만 초점을 맞추게 만들고, 지역지부 중심성을 강화한다. 하지만 전국적 범위의 투쟁을 통한 전국화된 성과를 경험하면서 조합원들의 의식 또한 전국 단일 조직으로서의 건설노조 조합원이라는 의식이 강해졌다. 이는 전국적 단결을 만들어나가는 가장 큰 힘이다.

지금까지 건설노동자들은 노동 조건 개선을 하려해도 책임질 사용자와 교섭대상이 불명확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2017년 중앙 교섭을 통해 지역별 철콘협의회라는 건설사들의 사용자단체가 구성되어 교섭대상이 명확해졌고,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구축됐다.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임단협 쟁취 과정은 건설노동자들 외에도 우리 사회에서 아직 조직되지 못하고 있는 불안정노동자, 반실업자 군의 조직화 방안을 구축하는 데에 고민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토목건축분과위원회 중앙 임단협의 과제

 
물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현재 건설노조와 철콘협의회의 단체협약은 중앙 협약과 지역협약이 분리되어 있고, 중앙 협약에서 다루는 내용의 범위가 여전히 지역협약에서 다루는 범위보다 좁다. 중앙 협약의 틀을 확대 강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전국적인 중앙 협약으로의 명실상부한 통일을 시도해야 한다. 이를 통해 건설노동자들의 노동 조건도 더 높은 수준으로 통일시킬 뿐 아니라 교섭력과 투쟁력을 전국 중앙으로 더욱 강하게 집중시켜야 한다.

조합원 숫자 및 현장 장악력에서 여전히 지역지부 간의 편차가 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조직 역량을 확대·강화하고 현장을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도록 조직을 확대해야 한다. 형틀 목수 조직 확대는 물론이고, 철근 및 타설 등의 골조 직종 조직화를 진행해야 한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전기 설비 등의 건설노동자도 조직해내야 할 것이다.
 
2018년부터 과제로 떠오른 건설 현장 주휴수당도 해결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건설 현장이 줄고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넘어서야 한다. 건설 일자리가 줄어들면 노동조합 조직이 어려워질 수있기 때문이다.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려면 전국 조직의 단결을 강화하면서 돌파해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토목건축노동자들의 중앙 임단협의 발전을 통해 건설노조 산별 임단협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지금은 업종 별로 사용자단체가 다르게 구성되어 있고, 임단협이 분리되어 있으며, 사실상 업종 별 조직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모든 건설노동자의 총단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일부 업종 중심의 투쟁만으로는 건설 현장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 건설 현장 전체를 지배하고 관리하는 발주처, 원청과 실질적인 내용으로 교섭하고 투쟁할 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목건축만이 아니라 건설기계 27개 기종과 타워크레인 기사 등 모든 건설노동자가 실질적인 단일 조직으로 단결하여, 통일된 요구를 하고 건설 자본과 함께 맞서야 한다.

그 궁극적인 형태는 건설노조 산별 협약이 되어야 한다. 건설노조와 사용자단체 내지는 원청 건설사와 체결하는 단일한 임단협에 모든 업종의 노동조건의 내용을 포괄하고, 실제 규정할 수 있어야 진정한 산별 협약이 될 수 있다. 단일한 임단협으로 업종을 초월해 모든 건설노동자가 단결하여 투쟁하고, 현장을 함께 바꾸고 장악해나가길 꿈꾸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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