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9/02/제49호

심화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2019년 세계, 한국 경제 전망

  • 김태훈

세계 경제의 구조적 위기, 장기침체

 
2007~2009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대침체(Great Recession)라는 용어가 확립되었다. 물론 양적 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통해 달러 가치의 폭락이나 은행 위기 같은 상황은 막았다. 1930년대 대불황(Great Depression)에 비교했을 때 경제성장률 하락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았다. 그러나 위기 발발 이전의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회복하는 기간은 훨씬 더 길 거라는 전망도 동시에 제출되었다. L자형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가 진행 중이란 얘기다.

경제위기의 원인, 저성장과 불평등의 원인과 해법을 둘러싸고 부르주아 경제학 내에서도 논쟁이 한창이다. 여기에는 신기술의 성격과 그것이 생산성 증가와 경제성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논쟁도 포함된다. 반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비판에서는 구조적 위기와 순환적 위기를 구분하고 설명하는 것이 쟁점이 된다. 노동을 절약하는 편향적 기술진보로 인해 이윤율이 하락하고, 기술 혁신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절대적 이윤량도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 구조적 위기론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추세적으로는 위기가 계속 작용하지만 이윤율을 잠깐씩 반등시킬 수 있는 ‘반작용’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마르크스가 얘기하는 구조적 위기론이 운명론적인 멸망 예언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평균 임금과 가동률의 변화에 따른 경기순환도 설명할 수 있다.

미국 의회 예산처가 2018년에 발표한 미국의 2018~2028년 예상 잠재성장률은 1.9퍼센트다. 2008~2017년 평균인 1.5퍼센트보다는 상승한 수치다. 하지만 1991~2001년 평균이 3.3퍼센트, 2001~2007년 평균이 2.4퍼센트인 걸 고려하면 2007~2009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는 회복하지 못했다. 현재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크게 웃돈다. 의회 예산처의 예측에 의하면 2017년부터 치솟은 경제성장률은 2020년에는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다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구조적 위기가 지속하는 가운데 경기순환 상 확장국면도 침체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만성화되는 금융 불안정성

 
경제위기의 고통은 취약한 이들에게 가장 가혹하게 전가된다. 주변부 국가에서는 금융위기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고질병이 되어가고 있다. 이윤율이 매우 낮고 수익성 있는 투자처가 불충분한 자본주의의 위기로 인해, 무자비한 착취로 얻은 비금융 법인기업의 수익 상당량이 재투자되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수익은 금융투자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화폐자본의 양을 증가시킨다. 그들은 채권이나 주식과 같은 ‘가공자본’을 보유, 거래함으로써 가치를 증식하는 데 열중한다. 파생상품, 프로그램 매매 등 자산거래의 강도와 다양성이 증가한다. 하지만 금융적 이윤은 점점 더 획득하기 어려워지므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것을 빼앗는 제로섬 게임이 펼쳐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15년 ‘글로벌 자산 시장 붕괴 시나리오’는 신흥국 시장의 포트폴리오 투자의 유출로 인한 금융적 위험 확산이 주요 전이 경로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신흥국으로 유입되는 총자본의 양은 2000년대 초보다 5배 증가했는데, 여기에는 매매차익을 통한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포트폴리오 투자의 역할이 컸다. 신흥국 국채 수익률은 미국 재무부 채권의 금리에 강하게 연동되고, 이러한 연동은 2013년 이후 더 강해지고 있다. 미국 금리가 상승하고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신흥국의 화폐와 금융시장은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투자자들의 강한 압력을 받는다.

각국 채권 수익률의 민감도는 채권의 외국인 소유 비중에도 영향을 받고, 국내 실물 경기 지표에도 역시 영향을 받는다. 지난 10년간 신흥국의 기업부채는 뚜렷하게 증가했다. 비금융부문 기업의 부채는 2004년 4조 달러 정도에서 2014년 18조 달러 이상 증가했다. 신흥국의 평균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같은 시기 26퍼센트포인트 상승했는데 나라 간 차이는 적었다. 신흥국의 많은 금융위기가 급속한 부채 증가에 뒤따라 나타났다. 터키, 아르헨티나, 브라질, 동남아시아 같은 국가들은 거시경제 지표가 좋지 않거나 국제적인 리스크가 발생할 때, 해외투자자본이 더 유동성이 있는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새로운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산업혁명’이라 부르기엔 그 효과가 미미하다. 첫째, 적어도 현재까지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와 같은 기술의 혁신성은 1차 산업혁명을 이끈 증기기관과 공작기계, 2차 산업혁명의 컨베이어벨트, 자동차, 전기설비의 발명이 가져왔던 경제적 효과나 삶의 질 향상엔 훨씬 못 미친다. 특히 1차 산업혁명 당시 공작기계, 2차 산업혁명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기계 생산과 소비의 비용을 줄이며, 자본소비를 절약하는 효과가 아직까진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둘째, 전후방 연쇄효과가 없다. 예컨대 1차 산업혁명 당시 핵심사업은 면직물산업이었다. 동시에 면직물을 만드는 기계 수요가 늘어나면서 철강, 기계 산업이 발전했다. 면직물을 전국 곳곳으로 실어 나르게 되면서 철도산업, 석탄산업 등이 발달했다. 그런데 로버트 고든의 실증 분석에 따르면 전기를 이용하는 모든 엔터테인먼트, 통신, 정보기술에 들이는 지출은 사업체와 가구를 다 합쳐도 201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7퍼센트를 넘지 못한다. 소위 ‘3차 산업혁명’조차 산업혁명에 미달한다고 비판받는 이유다. 4차 산업혁명 역시 마찬가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새로운 국가 간 질서에 기반을 둔 세계시장이 형성될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1차 산업혁명은 인도 합병, 기계제 대공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영국을 세계 자본주의의 헤게모니 국가로 만들었다. 2차 산업혁명은 법인혁명, 관리주의, 케인스주의를 바탕으로 미국을 헤게모니 국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위기의 가능성에 대한 논쟁만 되는 상태다.
 

동아시아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

 
동아시아 경제는 미국이라는 최종 수출시장을 둘러싸고 경쟁한다. 동아시아 경제의 지역통합(무역협정)은 대미 수출을 쉽게 하기 위한 공급사슬 구축이라는 목적에 제한되어 있다. 개별 민족국가의 경쟁적 수출전략이 자유무역협정의 주된 추진배경이 되기 때문에 동아시아 내에서는 유럽연합과 같은 지역통합 논의가 전개되기 어렵다. 대신 동아시아 지역 통합은 미국과의 양자, 다자 무역협정이라는 형태로 분절되는 양상을 보인다. 자동차, 반도체, 철강, 조선 등 동아시아 공통의 주요 수출품목을 둘러싼 경쟁의 압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가중되고 있다.

미국은 무역수지 악화를 회복해야 한다며 동아시아 경제에 강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당연히 그 일차적 대상은 중국이다. 동아시아 주요국 통화의 평가절상은 수출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약화해 미국의 무역수지를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미국 재무부 채권과 같은 달러 표시 국채의 상대적 가치를 하락시켜, 미국의 부채를 탕감하는 효과를 동시에 발휘한다. 그러나 1980년대 일본의 플라자합의처럼 중국의 적극적 ‘정책협력’을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현재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있고, 높은 기업부채, 주택시장 과열, 그림자 금융의 위험과 같은 경착륙 위험 요소가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경제를 떠받치는 수출마저 둔화한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나 한국처럼 성장 잠재력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딜레마로 인해 2018년 관세 분쟁과 같은 미·중 갈등은 점증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는 이른바 ‘중진국 함정’이라 부르는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다. 최근 수익성 하락, 수출 경쟁 격화 속에서 조선업,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있다. 전후방 파급효과가 큰 제조업의 일자리 감소로 고용시장 전반의 침체가 심화하고 소득 분배도 악화하였다. 한국은행의 최근 추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국 경제성장률은 1960년대 이후 최하 수준이다. 금융위기 이후 장기침체 국면인 세계 경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으나, 세계 경제의 추세보다도 낮다. 외부적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특히 1990년대 이후 하락하고 있는 잠재성장률에 주목해야 한다. 기업의 기술 수준을 반영하는 총요소생산성의 하락, 자본축적의 둔화가 잠재성장률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사망률, 출생률 등 인구학적 추세와 자본집약도(노동자 1인당 자본)의 상승 추세를 봤을 때, 총요소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 이상,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향후 20~30년간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이상의 임기응변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신년사에서 소득주도성장은 단 한 번 언급했지만, ‘성장’은 29번, ‘혁신’은 21번 언급했다. 이미 지난 2018년부터 혁신성장으로 강조점이 바뀌어오다 목표치에 한참 미달한 일자리 창출, 제조업, 자영업 위기 등으로 궁지에 몰렸다. 소득주도성장을 상징하던 장하성, 홍장표의 인사교체가 있었고, 김동연을 대체한 홍남기 부총리의 2019년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은 기조 수준에서만 언급될 뿐 자취를 감췄다. 최저임금 인상을 속도 조절하겠다고 밝히며 실패를 인정한 꼴이다.
 
 
문재인 정부는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이 ‘혁신적 포용 국가’라는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를 위한 과정이라고 변명하지만 궁색하다. 포용적 성장론은 이미 박근혜 정부도 주장하고,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도 언급한 바 있는 오래된 신자유주의 해법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박근혜 탄핵, 정권교체, 높은 지지율이라는 호기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 대안이 아닌 인기영합적 임기응변으로 일관하며 중장기 구조개혁에 실패했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 또한 이 실패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를 사실상 지지했기 때문이다. 노동자 운동은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구조적 위기에 대한 인식, 다시 말해 자본주의를 고쳐 쓸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당위적으로 원칙을 확인한 뒤에 현실에 숨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정세적 과제로 설정한 뒤에 실천적으로 고민할 때가 왔다. ●
 
덧붙이는 말

참고문헌 | CBO, The Budget and Economic Outlook: 2019 to 2029, 2019. Francois Chesnais, Chapter 10: Global Endemic Financial Instability, Finance Capital Today, 2016. Dongchul Cho and Kyooho Kwon, Declining potential growth in Korea, 2017. Robert J. Gordon, Declining american economic growth despite ongoing innovation, 2018. 로버트 고든, ≪미국의 경제성장은 끝났는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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