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9/01 제48호

안녕하세요 저는 공사판 새내기입니다

  • 박진우
지난 8월, 6년간의 이주노조 활동을 정리했다. 그 9월부터 건설 현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별 대단한 계획은 없었다. 그저 머리를 비우고 몸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마음이었다. 출근한지 3개월이 흘렀다. 처음에는 지그재그로 벽돌을 쌓아야 한다는 상식(?)조차 모를 정도로 좌충우돌했다. 하루하루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건설 현장 막내로 일하는 이야기를 짧게 담아보았다.

새벽 6시, 어김없이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따뜻한 전기장판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난 굴러떨어질 듯 침대 밖을 빠져나온다. 갑자기 매서워진 추위 덕분에 4~5겹의 옷을 겹쳐 입고 핫팩과 마스크, 모자 등으로 중무장한 뒤 동네식당으로 향한다. 새벽 6시 반, 동네식당은 건설노동자, 회사원, 취업준비생 등으로 이미 가득 차 있다. 오뎅국, 미역국, 김치찌개 등 그날그날의 국물에 밥을 말아서 후루룩 마시듯이 해치운다. 어느새 친해진 몇몇 반장님들과 추운데 고생이 많다며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현장으로 향한다.
 
새벽 7시 현장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정수기에 커피와 컵이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다. 요즘은 날씨가 추워진 탓에 층마다 고체 알코올 통을 태운다. 건물골조공사의 가장 핵심인 콘크리트를 얼리지 않고 제대로 양생하려는 거다. 약간의 냄새를 꾹 참고 이글거리는 불꽃에 손을 비비면서 그날의 일을 준비한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시간이 좀 흐르면 해가 떠오르고, 현장에 여러 노동자가 붐비면서 본격적인 일이 시작된다.  
 
 
작은 건설회사에 직영으로 3개월째 일하고 있는 내가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일은 쓰레기 청소, 작업준비, 자재준비, 심부름, 그 밖의 다양한 잡무들이다. 5층 정도의 빌라 건물 하나를 짓는데 대략 반 년 정도가 걸리는데 들어오는 노동자 팀은 40여 개 공정에 달한다. 기초 터파기, 매트 골조공사, 지하층 골조 및 방수 단열, 비계 설치, 외부단열재, 조적(벽돌 쌓기)공사, 석재공사, 지붕 공사, 기포 및 방통 공사, 타일 공사, 보일러 액셀 공사, 도배 마루 공사, 페인트 도장 공사, 전기 배선 공사, 상수도 연결공사, 가스관 연결 공사, 통신 맨홀 공사, 경계석 공사…. 짧게는 이삼일에서 일주일 정도의 간격으로 현장에 들어오는 노동자들이 바뀌며 건물이 올라간다.
 
20~30년의 경력을 가진 현장 기술자들의 실력에 비하면 건설 노동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초보지만 어깨너머로 조금씩 일을 배워나가고 있다. 4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시멘트 포대를 나르다 보면 내가 군대에 다시 입대한 것인지, 일터에 온 것인지 헷갈린다. 공짜로 헬스장을 다닌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틴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현장인지라 다양한 업종, 연령, 성별, 국적을 가진 노동자들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노동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흔이 넘은 목수 노동자에게 자극도 받는다.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소소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특히 현장에 힘든 일(주로 무거운 자재를 나르거나 단순 반복 작업이 많은 공정)일수록 젊은 이주노동자 비율이 높다. 이에 대해 반감이 크지 않을까 싶은 고령의 한국 노동자들은 외려 이주노동자 없이 건설 현장은 돌아가지 않는다며 같은 팀으로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언젠가 건설 현장의 이주노동자와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현재로서는 작은 목표다. 물론 워낙 여러 현장을 다니다보니 쉽지는 않다.
 
건설노동자를 두고 주로 노가다, 잡부 등 부정적인 언어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장의 건설 노동자들은 자신이 몸으로 일궈온 노동에 대한 분명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지난 3개월 간 만난 이들은 그랬다. 수십 년간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건설 공정에 대해서 잘못된 것은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바로 잡는 노동자, 자신의 노동 결과물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지려는 자세를 가진 노동자들도 더러 있었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식당에서 술 한 잔을 기울이며 본인이 과거에 어떤 건물을 지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듣다 보면 가끔 어디까지 진실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래도 그 자부심만큼은 솔직히 아주 부러웠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듯이, 하루하루 벽돌을 쌓아 올리다 보면 언젠가 집이 완성되듯이, 오늘도 뚜벅뚜벅 현장으로 출근한다. 스스로 쉼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내 삶에도 새로운 빛이 깃들 수 있기를 바라면서. ●
 
필자 소개

박진우 | 2018년 9월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을 배우고 있는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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