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보다
- 2019/01 제48호
우리 노동의 자화상을 비추다
글 노현웅 외, 그림 이재임, ≪노동,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 서평
위장 취업 아닌 위장 취업, 한겨레 사회부 기자들이 제조업 주야 맞교대, 콜센터, 초단시간 노동, 배달대행업체에 직접 뛰어들었다. 이 책은 그 일터에 대한 반년간의 기록이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모순이 집적된 ‘균열 일터’를 다룬 이 책은 ‘노동법이 미치지 못하는 현장 속의 폭력의 기록’이다. 글만큼 컬러 만화의 비중이 상당한데, 비정규직, 알바 노동을 하며 겪게 되는 가장 보편적인 상황을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다. 적당한 유머 코드를 넣어 책의 균형을 맞췄고, ‘그래,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떠오를 만큼 생동감 있다.
노동시장으로 진입을 앞둔 청년들은 저마다 사연을 안고 초단시간 일자리의 틈새를 파고든다. 누군가에게 '취업 전 거쳐 가는, 잠깐 하다 말 일'은, 누군가에게 '어쩔 수 없이 계속하게 되는 일'이다. 이 책은 청년 기자들이 직접 취재하며 열악한 일자리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청년’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도 하지만, 더욱 본질적으로는 비정규직과 파견근로 일자리 자체를 주목한다.
기계와 노동자의 서글픈 윈윈
5년 전, 월셋날이 코앞에 닥쳐 급전이 필요했다. 급히 구직광고를 검색해 보니, '임금을 당일 지급 해준다'는 CJ 식품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컨베이어벨트에 내려오는 어묵을 분류해 비닐봉지에 담는 일인데 하루 13시간을 일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최저임금으로 하루 7만 원가량이 손에 떨어지는 것이었고,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 순진하게 생각했다.
다음 날 새벽에 바로 출근을 했다. 아웃소싱 업체를 거쳐 파견근로로 고용됐는데, 그 당시에는 파견근로가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방역복을 입고 전신 소독을 한 후 한 줄로 작업 현장에 들어가고 있었는데, 관리자가 맨 마지막에 서 있던 나를 갑자기 불렀다. '다른 팀에 사람이 모자라 그러니 당신은 다른 일을 하라'며 나에게 커다란 쇠망치를 쥐여주었다.
불려가 하게 된 일은 커다란 직육면체 모양으로 단단히 얼린 야채 후레이크를 쇠망치로 깨는 작업이었다. 크기가 쌀 포대만한 얼음을 그냥 녹이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니 미리 조각을 내 빨리 녹이려는 것이었다. 2인 1조로 서서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13시간 동안 얼음을 깨자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두꺼운 얼음을 깨기 위해선 온 힘을 실어 ‘미친 듯이’ 망치로 내리쳐야 했다. 일이 끝난 후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결국 나는 일을 바로 그만두었다. 매일 13시간 동안 흐트러짐 없이 똑같은 속도와 강도로 얼음을 깨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못 버틸 것 같았다. 그렇게 첫 공장 경험이 끝났고 공장 언니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힘들다고 하루 만에 도망가는 나약한 대학생들’ 리스트에 내 이름을 올렸다.
몇 년 후 찾은 제조업 화장품 공장에서도 파견 근로와 매일 있는 잔업 특근, 높게 유지해야 하는 노동 강도라는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내 또래부터 50대 여성까지 모두 모인 그곳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파운데이션 케이스에 레이저를 쏘아 로고를 각인한 후 ‘기스 없이 완벽하게 반질반질하도록 닦는’ 일이었다. 매일 2시간씩 있는 잔업과 암묵적으로 무조건 나와야 하는 주말 특근으로 근육과 관절에 무리가 갔다. 쉬는 날엔 다들 물리치료를 받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다고 하니 모두 우리 같은 사람들 돈 못 벌게 한다며 반대했다. 책에서도 똑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오래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오래 일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뿐’으로, 한 푼이 급한 노동자 입장에서 잔업·특근과 야간수당은 ‘자녀의 교복 브랜드를 달라지게 하고 학원을 보낼 수 있게 하는’ 그런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간으로 장시간 고강도 노동도 어려웠지만, 그보다 더 힘든 사람들은 야간 노동자들이었다. 사람 몸에 생체 리듬이라는 게 있는 만큼 그들은 더 피로해 하고 더 자주 아픈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간으로 넘어오지 않았다. 책에서 말하듯 주야 맞교대는 ‘선택지’라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피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계에 맞추어 기계처럼 일하면서도 어디까지나 그 공장의 소속이 아닌 ‘파견 업체 소속’ 간접고용 노동자였다. 갑작스러운 해고 사태나 산재가 발생할 때 원청인 공장은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았고 파견업체는 법망을 피하느라 몇 년 단위로 회사 이름을 계속해서 바꿨으며 노동자들은 한 공장이 망하면 다른 공장으로, 공단 안을 떠돌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계의 속도에 맞춰서 하는 반복 작업에 잔업이 끝나 집에 가면 밤 9~10시고, 주말마저 특근할 때는 ‘이렇게 긴 시간 힘들게 일만 하며 사는 삶에서 대체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기계적이며 팍팍한 삶이었다.
전화 지옥 닭장, 콜센터
대한민국 직업 중 감정노동지수 1위라는 텔레마케터는 감정노동, 감시 노동의 이중고에 시달린다. 책에 따르면 이들은 고객의 분노를 매끄럽게 처리해 분노가 고객사로 향하지 않도록 1차 방어선 역할을 하는 ‘총알받이’다. 그 때문에 다른 직종에 비해 이 직종에서 더 주목받는 것은 바로 고객 갑질과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잦은 우울증세’다. ‘콜’을 가능한 한 많이 받아야 하니 화장실 가는 것도 보고하며 자리에 최대한 붙어 있어야 하고, ‘클레임’은 적어야 하니 고객이 무슨 말을 하든 숙일 수밖에 없으며, 통화 품질 관리를 위해 전화는 관리자에 의해 도청되고, 말투 하나하나까지 실시간으로 교정받는다. 감정노동이 사회적 쟁점이 된 지 꽤 되었음에도 아직 이러한 인권침해가 콜센터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합법적 차별’ 초단시간 노동자
주당 15시간 미만을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는 그야말로 우리 주위에 넘친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카페의 알바 노동자도, 집 근처 빵집의 알바 노동자도, 자주 끼니를 해결하는 패스트푸드점의 알바 노동자들도 초단시간 노동자다. 그러나 이들은 근로기준법이 정하고 있는 대부분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예외 노동자다. 산재보험을 제외한 4대 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다. 주휴수당이나 연차수당을 적용받지 않으며 유급휴가와 유급휴일이 없고, 퇴직금을 보장받지 못한다. 비슷한 업장을 들여다보면 불법임에도 ‘수습’ 기간을 두고 임금의 90퍼센트만을 주는 행위, 근로계약서 미작성, 매장 상황에 따라 줄어들기도 하는 식사 시간, 근무시간 등 안 좋은 의미로 근무 조건이 얼마나 유동적인지 알 수 있다. 한 번이라도 알바 노동을 해 본 사람이라면 잘 아는 부분이다. 책에서는 정규직·상용직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각종 초단시간 일자리들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단순 알바 노동이 아닌 이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는 추세이며, 특히 여성과 노인 등 노동 취약계층이 몰린다고 지적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플랫폼 노동자?
카카오택시, 에어비앤비, 우버, 배달의민족, 직방 등 디지털 플랫폼 기업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책은 플랫폼 노동의 폭발적인 성장에는 불안한 일자리의 증가라는 대가가 뒤따른다고 말한다. 플랫폼 노동의 대표적인 사례인 배달대행 기사 역시 간접 고용되어 고위험을 감수하고, 고용 안정성이 낮으며 사회보험 등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되는 노동자다. 최근 자신들의 목소리를 알리는 데 나서며 이슈화된 이들은 기본급이 없고 배달 건수마다 받는 돈이 임금이다. 배달 시간을 줄이는 것은 당연하며 최대한 많은 ‘콜’을 잡아야 하고, 이는 과속과 신호 위반을 불러온다. 이들은 위탁계약을 맺어 ‘개인사업자’로 분류된 특수고용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배달대행업체에서 관리를 적용받는 등 사실상 노사관계에 있다. 책에서는 이것을 노동자와 노동권이 기술 발전을 멀리서 뒤쫓고 있다고 표현한다.
스스로 대안을 만들자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책에서는 대안의 방법을 ‘노동법의 강화’로 본다. 노동법의 존재 이유가 노동시장의 ‘절대 강자’인 자본으로부터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는 거다. 법과 제도의 공백으로 기술 발전, 산업의 고도화에 따라 노동이 발 디딜 곳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기에, 노동자들이 더 낮게 웅크려 왜소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노동의 존재 형식에 발맞춰 법 제도 역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전통적인 노동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인권과 안전을 제공하는 새로운 입법 태도가 필요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그저 ‘웅크리고만 있는’ 것을 넘어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이 책의 부제 ‘정밀화로 그려낸 우리 시대 노동자의 삶’을 넘어, 더 진한 선과 색을 입혀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법이 있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최근 플랫폼 노동자들은 국제적으로 연대하며 근로조건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단 노동자들과 콜센터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이미 여럿 존재한다. 노동조합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절대 강자인 자본으로부터 약자인 노동자가 ‘스스로’ 지켜낼 방법이다. 언젠가 노동조합 결성 과정과 방법에 대한 정밀화도 나와 이 책만큼 보편적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
- 필자 소개
홍유정 | 월간 ≪오늘보다≫ 편집실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