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동보다
  • 2019/01 제48호

청소 · 경비 노동자를 지키는 빗자루 수비대가 되어주세요

  • 김민철

빗자루를 왜 지키지?

 
‘엥? 빗자루 수비대? 지구도 아니고 빗자루를 왜 지키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모두 힘을 모아 빗자루를 지켜야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청소·경비노동자를 지켜야 합니다. 아니, 누가 청소·경비노동자를 빼앗아가기라도 한답니까? 지킨다니…. 물론 빼앗아가는 건 아니지만 각 대학이 지금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 말에 연세대, 홍익대, 고려대 등에서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정년퇴직자 자리를 채우지 않겠다고 해서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연세대에서는 한겨울에 고령의 청소·경비노동자들이 59일 동안 농성하기도 했지요. 2018년 말에도 연세대, 홍익대, 성신여대 등 각 대학에서 총 41.5명의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인원을 감축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학교들이 왜 갑자기 청소·경비노동자들을 줄이겠다고 하는 걸까요?
 

대학들이 돈이 없어서? 청소노동자 임금이 너무 높아서?

 
그 이유는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 대학들이 돈이 없는 걸까요? 연세대는 5687억 원, 홍익대는 7565억 원, 성신여대는 1023억 원의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쌓아두고도 돈이 없어서 비용 절감을 해야 한다니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사회의 결정만 있으면 이 적립금을 충분히 간접고용 인건비로 쓸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1]
 

2017년 말부터 대학들은 급격한 임금인상으로 인해 인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정말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인원 감축의 대상이 될 정도로 임금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걸까요? 2018년 현재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의 임금은 약 160만 원가량으로 거의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여전히 생활하기에는 빠듯한 금액입니다.

각 대학이 차라리 청소·경비노동자들을 간접고용비정규직이 아니라 직접고용·정규직화한다면 중간에 끼어 있는 용역업체에 돌아가야 할 비용이 없어지기 때문에 훨씬 비용 절감의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간접고용·비정규직 고용구조는 그대로 두면서 돈이 없어서 인원을 줄여야겠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CCTV가 도둑 잡아주나요?

 
설령 학교 재정이 어려워서 비용 절감을 해야 한다고 해도, 왜 항상 청소·경비노동자들만 비용 절감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요? 이들의 노동이 하찮기 때문인가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청소노동자들이 하루만 일손을 놓는다면 학교 곳곳에 쓰레기가 넘쳐나고 악취가 진동할 것입니다. 경비노동자들은 학교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기도 합니다. 연세대, 홍익대 등 일부 학교에서는 경비노동자들을 줄이고 CCTV 등과 같은 보안 시설을 통해 무인경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12월 16일 부산대 여학생기숙사에 남성 취객이 침입해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학생 1,380명을 수용하는 기숙사 시설에 야간 경비원 1명과 시설관리자 1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침입한 남성이 문을 강제로 열려고 했는데도 이를 제지할 경비원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보안 시설이 첨단으로 갖춰져 있다고 하더라도 경비노동자가 없어진다면 돌발 사태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고, 이는 곧 학생들의 안전 위협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대학들이 ‘돈’과 ‘안전’을 맞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5명이 하던 걸 2명이 하라구요?

 
문제는 또 있습니다. 학교 건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인원이 감축되면 남아있는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는 강화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지요. 연세대 한 청소노동자는 기자회견에서 “지금 9개 층 건물을 5명이 청소하고 있는데 학교는 내년에 2명으로 줄이겠다고 한다. 우리더러 죽으라는 소리냐.”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안 그래도 만성적인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이것은 그야말로 죽으라는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외친 지 10년이 지났지만

 
중앙대에서는 청소노동자 손이 더럽다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팔꿈치로 누르라고 했었고, 광운대에서는 이사장과 그 아들 집까지 청소해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유령, 노예 취급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뚫고 청소노동자들이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를 외치며 노동조합을 만든 지 어느덧 10년. 하지만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유령 신세를 벗어나기는커녕, 이제는 아예 버림받고 없어져야 할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버림받고 없어져야 할 존재인 사람은 없습니다.
 

지켜야 한다!

 
지켜야 합니다.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삶을, 나아가 우리의 삶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청소·경비노동자와 같은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마저 임금이 높다는 이유로 인원 감축의 대상이 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결국은 한국 사회 전반의 비정규직·실업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만 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많은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학생단체들이 <비정규직 DOWN 좋은 일자리 UP 빗자루 수비대>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12월 20일 연세대 정문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해서 서명운동, 캠페인, 문화제 등의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이제 함께 외칩시다. 빗자루를 지켜라! 우리 삶을 지키자! 여러분들이 빗자루 수비대가 되어 주세요!! ●
 

Footnotes

  1. ^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이화여대는 반값등록금 논란이 한창이던 2011년 건축적립금에서 500억 원, 기타적립금에서 850억 원을 각각 전환해 1350억 원의 장학적립금을 마련했다”며 “대학들이 청소노동자 지원예산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적립금 사용 용도를 변경해 청소용역비를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립대 인원 감축 노사갈등 들여다보니 정규직 전환 재정 부족? 대학 적립금 '수백·수천억 원>, 《매일노동뉴스》,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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