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조 할 권리
  • 2019/01 제48호

“공단, 중소영세사업장, 여성 노동자들의 희망이 될 거예요”

신영프레시젼분회 이희태 분회장을 만나다

  • 조유리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한 구로공단은 구로구 구로동에서 금천구 가산동을 지나 벌거숭이 산(禿山)이라는 이름의 독산동까지 이어진다. 독산역 1번 출구에서 벚나무 길을 따라 백 보, 벚나무 길을 등지고 이백 보를 걸으면 왼쪽 골목에 마주 보고 선 다섯 건물이 보인다. 새롭고(新) 젊다(Young)는 뜻의 신영프레시젼 사업장이다. 불 꺼진 단결동의 2층 분회 사무실에서 오늘의 인터뷰 주인공 이희태 분회장을 만났다. 
 
 

잘 나가던 신영프레시젼에 무슨 일이?

 
1993년 금형전문업체로 출발해 휴대폰 금형 제작과 사출 생산으로 사업을 확장한 신영프레시젼은 구로공단에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알짜 중견기업이다. 2000년대 들어 휴대폰 케이스와 휴대폰 반조립품을 LG전자에 납품하기 시작했는데, 2017년까지만 해도 연평균매출액이 1300억이 넘는다. 경영진은 입만 열면 이번 달도 적자다 위기다 했지만, 노동자들은 쉴 새 없이 G시리즈 등 LG전자의 주력모델 휴대폰 케이스를 만들어냈다. 본사, 연구소, 생산 공장으로 이루어진 다섯 건물에는 평균 300~400명의 노동자로 가득했다. 일감이 많을 때는 파견직, 단기 알바까지 더하여 전체 인원이 400~500명에 이르렀다. 명절마다 떡값도 나오고 상여금도 400퍼센트라 인근 공장의 노동자들에게는 부러움을 사곤 했다.
 

바쁜 분위기가 사그라든 것은 2017년 들어서였다. 일감이 줄었고 파견직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때는 회사의 경영권이 창업주인 신창석에게서 외동아들 신영주로 승계되던 시기와 맞물린다. “회사가 어렵다는데, 사장은 대체 무얼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구요. 답답한 소문만 무성했어요.” 소문은 사무관리직원들을 통해 회사 전체로 퍼졌다. 노동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혀를 차며 신영프레시젼의 미래를 걱정했다.
 

이러려고 여성 노동자 고용했나

 
신영프레시젼은 ‘평등한’ 남녀고용으로 유명한 기업이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2012년 4월, 남녀고용평등 실현에 기여한다고 신영프레시젼을 표창했다. 2014년 2월에는 대한민국 여성경영대상을 줬고, 2014년 12월에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표창하기도 했다. 실상은 달랐다. 신영프레시젼은 여성 노동자에게 막말하고, 여성 노동자를 무료로 쓰고, 여성 노동자만 쉽게 해고했다. “(플라스틱 부품을 조립하는) 제조부에 ‘채순실’이라고 불리는 대리와 ‘왕전무’라고 불리는 이사가 있는데, 폭언이 굉장했어요. ‘작업자들 완전 공주처럼 모시니까 아주 공주가 돼 버린 거야, 어? 옛날 속담에 종을 자식 대하듯이 해 놓으니까 그 종이 있잖아? 자식 노릇 해가지고 주인을 해친다고 했어.’ 그러면서 CCTV 달아 놓고 감시하고, 불량내면 청소시키고, 항의하면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괴롭혀서 쫓아내고.”

신영프레시젼이 노동자들을 무료로 사용하는 방식은 정말 기가 찬다. “예를 들어, 오늘 5시 반에 끝나야 하는데 자재가 없어서 한 시간 일찍 끝났어요. 4시 반에 일거리가 없어져요. 보통 다른 회사들은 그런 때 청소를 시키거나 교육을 시킨다거나 해서 8시간을 채우는데, 신영프레시젼은 아니에요. ‘오늘 일 없으니까 가세요’ 그러고는 그 한 시간을 마일리지처럼 연차에서 까는 거예요. 8시간이 차면 연차–1 이런 식으로. 제조에서 일하시는 분 중에 연차를 제대로 써 본 분들이 없는데도 항상 연차가 10개, 20개씩 마이너스였어요.”
 
 
폭언, 아침 7시 30분부터 시작되는 무료노동, 야간근무자에게 갑작스러운 당일 휴무 통보, 강제 연차소진까지…. 비상식적인 노동환경에 회사를 관둔 사람들이 고용노동부에 신영프레시젼을 신고했다. 2015년에 이어 2017년 4월 두 번째 근로감독이 진행됐다. 근로감독관은 회사의 눈속임에 쉽게 넘어갔고, 진짜 노동환경 문제는 드러나지 않았다. (사출·사상을 담당하는) 생산부의 장시간 노동만 시정조치를 받았을 뿐이었다. 두 번이나 시정조치를 받았으니, 뭔가 고쳐야 했다. 회사는 2교대제로 운영하던 생산부를 3교대제로 바꿨다. 임금이 확연히 줄었다. 남성 노동자들은 집단 퇴사하겠다고 버텼다. 회사는 마지못해 생산부의 남자직원들을 연봉직으로 전환하고 기존 임금을 보전해주겠다고 했다. 단 여성 노동자들은 제외됐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임금 차별을 받다니, 생산부의 여성 노동자들은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신영프레시젼은 노동자들과 교섭할 생각이 없었다

 
2017년 8월이 되자 회사가 1차 희망퇴직을 했다.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일부 공정을 외주화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200명이 넘는 단기 알바를 쓰기도 했다. “생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니까 막상 사람이 부족했죠. 단기 알바를 쓰다 모자라면 사무관리직들로 현장을 채웠어요. 특히 여성 사무관리직들이요. 다들 자기 할 일이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냥 현장으로 보내버린 거예요. 이분들이 ‘언제까지 지원 가야 하냐’고 물어보면 ‘모르겠다, 못 하겠으면 나가라’는 식이었어요.”
 

경영진에 대한 불신과 위기감, 현장에서의 폭언과 비상식적인 노동조건, 여성에 대한 차별. 세 문제가 맞물렸을 때 신영프레시젼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2017년 12월의 일이다. “신영프레시젼은 근속이 긴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신창석 회장이 처음 사업을 시작하던 시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그때 신창석 회장이 입버릇처럼, ‘우리 회사는 노동조합 만들면 문 닫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대요. 신영프레시젼에는 그걸 신념처럼 가진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들었을 때도 정말 회사가 문 닫을까 봐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노동조합이 책임질 거냐며. 우리 조합원들도 굉장히 조심스러웠고, 저도 굉장히… (여전히 떨리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떨렸는데, 하루하루가 떨렸어요. 그런데 막상 노동조합을 만드니까 반나절 만에 회사의 태도가 싹 달라졌었어요. 직원들에게 부당노동행위를 함부로 하지 말라고 교육을 했나 봐요. ‘너희 노조 만들고 그러면 어쩌려고 그러냐!!!’ 이런 거 함부로 하지 말라고. 이희태한테 무조건 존대하라고. 이런 식으로 입장이 갑자기 싹 바뀌었어요.”

회사는 시종일관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교섭 장소도 본사 인화동의 삐까번쩍한 대회의실이었다. 벽에는 ‘2018년 단체교섭’이라고 크게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협조해달라며 부탁하기도 했다. 이 모든 존대는 ‘쇼’였다. 회사는 고용유지휴업을 하겠다했다. 노동조합의 반대에도, 계획은 현실이 됐다. 굳이 그래야만 할 상황은 아니었다. “고용유지지원금 휴업이라고, 생산량이 직전 연도 같은 달의 생산량 대비 15퍼센트 이상 감소한다거나 매출액이 직전 연도 같은 달 대비 15퍼센트 이상 감소하거나 하면, 고용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서 정부가 지원을 해 주는 거예요. 1년 최장 180일 동안 임금의 70퍼센트를 지원해 주는 거죠. 딱 한 달 동안 고용유지 휴업을 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5~6월엔 유급휴업을 한대요. 부서별 단체 카톡방에서 그런 얘길 했어요. 단체교섭에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던 일이죠.”
 
 
2018년 7월 초, 회사는 이번에는 문자를 통해 정리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법대로라면 사용자는 정리해고 통보 후 50일간 노동자 대표와 성실하게 협의해야 했다. “이틀인가 사흘 후에 근로감독관이 회사에 찾아왔어요. 저한테 ‘사측이 정리해고했다는데 알고 계세요?’ 그러는 거예요. 신영프레시젼이 정리해고 신고를 했길래 왔는데, (사측을) 만나보니까 오늘 정리해고 대상자들에게 우편을 보냈다더라, 노조 알고 있냐고 하더라구요. 저야 금시초문이라 ‘몰랐다, 처음 듣는 얘기다’ 이랬더니 ‘어, 그럼 빨리 노동조합에서 상의해서 부당해고구제신청이나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을 해라.’ 하더라고요. 그렇게 알게 된 거예요. 정리해고를 실제로 진행한걸. 그때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그랬지만, 사실 근로감독관이라는 게 그걸 시정해주고 정정해주는 위치잖아요. 그런데 이건 경찰관이 ‘어, 너희 집 도둑 든 거 알고 있냐?’ 경찰관이 그걸 알고 있으면 빨리 범인을 잡던가 해야지 그게 아니라 ‘야, 빨리 112에 신고해.’ 이런 거랑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나중에 근로감독관 규탄하러 가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어쨌든 저희는 뭐 엄청 당황스러웠죠.”
 
 
결국 회사는 7월 13일, 7월 24일 두 번에 나눠 정리해고를 진행했다. 처음부터 두 번에 나눠서 하려 했던 건 아니었다. 우편으로 정리해고를 통보하다 보니 연락을 못 받은 사람이 생긴 까닭이었다. 사측에 물어봐도 정리해고 대상자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73명의 정리해고자가 확인되기까지 모든 노동자가 불안에 떨어야 했다. 혹여나 오늘 집에 가면 뭔가 와있지 않을까, 자기도 모르는 새 집배원이 집을 방문했다 돌아가진 않았을까, 이사하기 전 집으로 배달된 건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놀랍게도 정리해고자의 87.6퍼센트는 여성이었다. 정리해고 이전까지 여성 노동자 비율은 5할을 약간 웃돌았지만, 정리해고 이후 여성 노동자 비율은 20퍼센트까지 하락했다. 노동조합이 여성 우선해고 방침을 비판하자 사측은 ‘부서별로 필요 인원을 정하고, 그 외 인원 중 재취업이 쉬운 젊은 노동자들부터 나이순으로 해고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해고자 대부분이 40대 후반, 50대 초중반 여성 노동자였다.
 

신창석은 살고 노동자는 죽으라고?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군자리에는 신의 언덕(LORD HILLS)이 있다. ‘신’창석 대표이사가 신영프레시젼 노동자들의 고혈을 ‘언덕’만큼 쌓아 만든 로드힐스 골프장이다. 입구에서 클럽하우스 사이를 130미터 터널이 연결하고 있는데, 이 터널을 뚫는 데만 30억 원이 들었다. 신창석 일가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신영프레시젼에서 총 820억 8000만 원을 배당받았다. 무료노동, 폭언, 외주화를 일삼으며 벌어들인 돈이었다. 골프장 개장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2012년, 무언가 술수가 필요했다. 신영프레시젼의 회계에서 468억 원이 골프장 운영업체인 신영종합개발으로 빠져나갔다. 시설 및 운영 자금 압박을 느낄 만큼 현금이 갑작스럽게 빠져나갔다.
 

신영프레시젼은 은행에서 자산을 담보로 217억 8천만 원의 자금을 빌려야 했다. 전에 없던 일이다. 뭔가 이상했다. 단지 15퍼센트(31억 3천만 원)가 신영프레시젼의 기계장치, 집기 비품, 차량 등으로 재투자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그 이자를 갚느라 신영의 노동자들은 더 힘들게 일해야 했다. 한 번이 아니었다. 신창석 일가는 신영프레시젼을 성실하게 운영할 책임을 배임한 채, 신영프레시젼의 자금을 신영종합개발로 빼돌렸다.

2017년 1월 4일, 신영프레시젼은 다시 한번 9억 원을 신영종합개발에 투자했다. 신창석 일가가 부적절한 골프장 투자에 골몰하는 사이, 신영프레시젼은 위기를 맞았다. 설비투자 금액이 급격하게 줄었고, 시장경쟁력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창석 대표이사의 아들인 신영주 사장이 수주 물량을 확대하려고 ‘원청사(LG전자) 간부와 임의적인 만남’을 가지다가 12개월간 LG전자 협력사 개발정지 페널티를 받았다. 2017년 4월의 일이다.
 

신영프레시젼의 위기는 신창석 일가가 자초했다. 하지만 그 책임은 노동자들이 졌다. 10년~20년을 일해 온 노동자들이 2018년 6월까지 159명으로 줄었고, 7월 두 차례의 정리해고를 통해 86명이 되었다. 회사의 위기는 계속되었지만 신창석 일가의 배당잔치는 멈추지 않았다. 2016년 22억 2천만 원을 배당한 것에 이어, 위기가 뚜렷해진 2017년에도 신영프레시젼은 주주들에게 6억 2천만 원을 배당했다.

 

노동조합만이 대안을 만들 수 있다

 
“신영프레시젼은 LG전자의 1차 협력사예요. 우리는 토사구팽이라고 표현하는데, LG가 여름휴가를 7일 간다고 하면 우리는 일이 없어도 7일 휴가를 못 가요. LG 눈치 보느라고. LG가 와서 뭘 해달라고 하면 그건 법이에요. LG가 신영에 들어와서 야, 자재 들어올 때까지 퇴근시키지 마, 그러면 그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동안 LG전자가 우리 힘으로 돈을 벌어 왔고, LG전자의 정책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LG전자가 이 고용 참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죠.”
 

LG전자 휴대폰 케이스 소재가 플라스틱에서 금속, 유리로 바뀌면서 LG전자는 휴대폰 케이스 제작 및 부품 조립공정을 내부화했다. 무책임한 행태였다. 자연스럽게 신영프레시젼의 일감도 줄었다. 그렇다고 신영프레시젼 사업주인 신창석 일가가 그저 피해자인 것은 아니었다. 신창석 일가의 사익추구가 신영프레시젼의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악화시켰다. 노동자들은 그저 쫓겨나야 할까? 누구도 이들의 배임행위와 고용책임 회피를 제재하지 않고 있다. 오직 노동조합만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기회만 준다면 어디에서라도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렇게 목에 다 차서 노동조합 만들 생각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한숨이라도 여유 있을 때 만들라고요. 위기가 닥쳤을 때,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는 주체는 경영진도, 정부도 아닌 노동조합밖에 없어요. 쉽진 않은 일이에요. 막상 노동조합을 만드는 사람들은 노동조합에 대해 상상도 안 했던 사람들이고, 열심히 일하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해왔던 사람들이죠. 회사가 어렵다고 하면 화장실 불도 열심히 끄고, 모니터 불도 열심히 끄고, 안 쓰고 있는 콘센트 있으면 뽑고, 사정이 급하다고 하면 퇴근해서 자리에 누웠다가도 회사로 달려 나오며 이렇게 살아왔던 거예요. 그렇게 아낀 돈을 회사가 어떻게 쓰고 있는지, 회장이 얼마를 받아 갔는지, 우리도 알아야 하는데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이걸 우리가 알 방법은 현실적으로 노동조합밖에 없어요. 너도나도 살기 어려운 상황이니만큼, 좀 더 빠르게 노동조합을 만들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해요.”
 

신영프레시젼의 경영을 악화시킨 주범을 찾아낸 건 다름 아닌 노동조합이다. 지금 신영프레시젼분회는 중소영세기업 사업주의 부적절한 사익추구와 그로 인한 고용위기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신창석 일가는 개인재산을 털어서라도 이에 답해야 한다. “얼마 전 저희 분회가 결성된 지 만으로 1년이었는데요,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백설기를 맞춰서 돌렸어요. 해고당하지 않은 우리 동료들에게도, 신영프레시젼 주변 회사들, 가게들에도 나눠드렸어요. ‘우리 노동조합 만든 지 1년 됐다, 그동안 미안한 마음도 있고 고마운 마음도 있다, 많이 응원하고 격려해 달라’ 했죠. 구로공단, 넓게 보면 부천, 부평까지도 돌고 도는 이 사람들이 모두 신영프레시젼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뭐 대단하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건실하던 회사에 경영진의 무능 때문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는데 그 결과가 뭐가 될지 궁금해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신영프레시젼에서 승리가 우리만을 위한 승리가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희망이자 용기가 될 거로 생각해요.”
 
팔뚝질도 투쟁도 낯설어하던 신영프레시젼 조합원들은 이제 투쟁가도 곧잘 부르고, 어느 집회에서나 연대 발언도 척척 해낸다. 이희태 분회장의 자랑거리다. 중소 영세 여성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찾는 이 싸움이 10년 후 20년 후의 상식을 만드는 싸움이라고 믿기에, 신영프레시젼분회는 결코 물러설 수 없다.

이희태 분회장은 구로공단의 노조할 권리 쟁취를 위해 앞서 노력한 이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우린 <노동자의미래>와 지역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지역 노동조건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던 분들의 지반 위에 서 있어요. 그만큼 책임도 커요. 나아가 우리 신영프레시젼분회도 지역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 쟁취를 위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조업 위기에 노동자의 대안을 모색하는 신영프레시젼분회, 그 바턴을 이어받을 다음 타자를 기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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