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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 제48호

파견법 20년 : 중층화된 노동시장, 저임금 · 장시간 일자리

  • 박준도

파견법 20년, 공단 노동시장

IMF 외환위기 이후 제정된 파견법은 노동시장에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파견업의 합법화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사업주들은 노동시장 유연화의 일환으로 파견노동을 확산시켰다. 1997년 말 파견노동자 수는 22만 5000명이었고(전체 노동인구의 1.7퍼센트) 파견사용업체도 4000여 개였다(강현아, 1999). 파견을 모집하고 공급하는 파견업체만도 5000여 개로 이들은 1992년에 ‘인재파견업 협의회’(현 한국HR서비스산업협회)를 발족해 경총 등과 함께 파견 합법화를 위해 활동했다(손정순, 2013).

둘째, 사내하청 및 위장도급에 대한 규제와 함께 파견 노동시장으로의 전환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인 건설 하도급을 비롯해 특정 서비스를 전문으로 제공하는 용역부터, 소사장제로 일컬어지는 제조업 사내하도급까지 다양한 형태의 하도급 구조를 양산하며 성장했다. 파견법은 이들 도급에 대해, 파견 허용 업무에 대해서는 파견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파견 불허 업무에 대해서는 위장도급을 규제하는 방식(불법파견)으로 작동했다.

공단의 노동시장은 파견법 제정의 효과가 가장 컸던 곳이다.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에서의 파견은 불허되었지만 1990년대 초중반부터 반월·시화공단을 중심으로 파견업체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파견법이 시행되기 훨씬 전부터 소사장제 형태의 위장도급이 발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파견법 시행 20년, 필자는 서울, 충남, 안산, 인천 등 공단 노동시장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살펴보았다. (박준도, 2018.)

 구인광고로 노동력 중개 시장에 개입하는 여러 행위자의 활동을 살펴보았다. 실상을 들여다보니 파견업체들과 유료직업소개소들이 공단 노동시장을 중층화시켜 놓았고, 동시에 저임금 장시간 일자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불법직업소개소의 난립과 사용업체를 알 수 없는 직업정보들

수집 정리된 669건 중 174건은 직접 구인광고였고, 322건은 파견업체의 구인광고, 163건은 직업소개소의 구인광고였다. 직업소개소의 구인광고 중에는 유료직업소개소의 구인광고뿐만 아니라 ‘채용대행’ 구인광고도 많이 발견되었다. 채용대행이란 ‘기업의 채용서비스 전반을 종합적으로 대행하거나 구인신청, 모집, 서류 접수 등 일부 서비스만 대행’하는 것으로, 언뜻 보면 기업의 인사 업무 중 일부를 위탁받아 대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직접 모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채용대행은 직업소개사업이다. 유료직업소개사업과 다른 건 구직자에게서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채용대행은 허가받은 파견업체들의 구인광고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모집형 파견을 하든 채용대행을 하든 사용업체로부터 동일한 관리비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구직자에게 6개월 파견을 하든, 채용대행으로 6개월 계약직을 하든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한편, 파견업체의 구인광고 중 69.8퍼센트, 직업소개소의 구인광고 중 47.9퍼센트가 사용업체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지 않았는데, 이중 89.0퍼센트가 파견 모집이었다(87.1퍼센트는 위장도급 모집). 파견 모집 광고가 사용업체 정보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 것은 공단·제조업에서의 파견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제조업 생산공정은 파견법이 규율하는 도급이라 주장하거나, 파견법이 일부 허용하는 단기파견을 주장하기가 어려운데, 그러다 보니 파견업체나 직업소개소들이 파견·도급 모집 광고에는 사용업체 정보를 숨기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사람인, 알바몬, 잡코리아, 알바천국 등 민간직업정보제공사업자들에게는 구인업체 고지 의무만 있지 사용업체 고지 의무가 없어, 민간직업정보제공기관은 불법파견, 불법직업소개의 온상이 되는 실정이다.
 

전문화 · 복합화하는 파견업체

구인광고에서 파견업체의 모집내용을 정리해, <표 1>처럼 파견업체를 단순형, 전문형, 복합형으로 분류했다. 단순형은 단수의 파견사용업체를 상대로 소수의 직무에서 모집을 대행하는 파견업체를 가리킨다. 전문형은 복수의 파견사용업체를 상대로 동일·유사 업종과 유사 직무로 파견을 하는 파견업체다. 복합형은 전문업체처럼 복수의 파견사용업체를 상대로 하는데, 이종복합형태로 파견을 하는 업체다. 즉 상이한 업종·직종, 유사성 없는 상이한 직무에 파견한다.
 

구인광고 669건 중 409건이 파견모집이었는데 유형 별로 분류해보니 <그림 1>처럼 복합형 파견업체가 53.3퍼센트(218건)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단순형이었는데 33.0퍼센트(218건)였고, 전문형은 13.7퍼센트(56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파견 가능 업무의 파견 모집 광고(56건)만 놓고 보면, 전문형이 72.0퍼센트(36건)로 가장 많았고, 복합형은 26.0퍼센트(13건), 단순형은 2.0퍼센트(1건)에 불과했다. 반면 파견 불가 업무, 즉 위장도급으로 의심되는 모집 광고(359건)에서는 전문형이 5.6퍼센트(20건)에 불과하고, 단순형은 37.3퍼센트(134건)나 되며, 복합형은 57.1퍼센트(205건)나 되었다.
 
<그림 1> 파견업체 유형별 특성
 
 

단순형 파견과 복합형 파견의 실체

(합법)파견 모집 광고에서는 전문형이 많이 발견되고, 도급 모집 광고에서 단순형, 복합형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단순형·복합형 파견 자체가 위장도급업체에서 발견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파견법상 파견업체로 허가받으려면 복수의 사용업체를 상대로 영업을 해야 하는데, 단순형 파견은 그렇지 않다. 이는 해당 파견업체가 영세하거나 아니면 소수의 사용업체 노무 업무를 대행하는 바지사장이라는 의미다. 위장도급 모집 광고에서 단순형이 많이 발견되는 건 이들이 대부분 특정 사용업체의 노무 업무를 단순대행하기 때문이다.

복합형 파견은 파견업체가 업종과 직종을 가리지 않고 노동력 중개행위를 한다는 것으로서, 이는 해당 파견업체가 인력공급사업에 특화된 기업이라는 걸 의미한다. 문제는 대부분이 파견허용 여부와 관계없이 파견을 하고, 또 한편으로 이질적인 생산, 이질적인 직종과 직무에서 동시에 ‘도급’을 하는 복합형 도급업체라는 점이다. 전자는 물류 상하차나 제조업 단순 포장처럼 사용자단체에서는 오래 전부터 파견 허용을 주장해왔지만 아직 파견 허용이 되지 않은 업무인 경우가 많다. 불법이지만 임의로 파견을 하고 있는 셈이다. 파견법(시행령) 개정 이전에 파견업체들이 알아서 먼저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후자는 제조업에서 ‘도급’을 ‘전문’적으로 하는 도급전문업체들인데, 이들은 자동차·디스플레이·반도체·식품 등 상이한 업종에서 기계장치 작동·조립·포장 등 전혀 연관성 없는 직무의 노동자를 모집해 동시에 도급을 한다.

이와 같은 복합형 도급이 가능한지는 근본적으로 의문이다. 생산공정을 관리하는 것은 제조업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데, 복합형 도급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도급업체가 이질적인 생산공정을 모두 지도·감독할 수 있는 ‘초유의 기술’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1] ‘복합형’ 도급은 법 형식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나 산업적으로는 불가능한, 도급으로 위장한 인력공급사업이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발견된 특이점은 위장도급 모집 광고에서 단순형보다 복합형이 더 많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단순형은 위장도급 노동시장에서 실질적인 사업주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복합형은 노동력을 공급하는 사업주도 중요한 행위자라는 의미다. 이는 대기업 사용사업주 못지않게 파견 공급자인 파견업체도 인력공급시장에서 상당한 크기와 정도의 행위자로 성장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복합적이고 중층화된 노동시장

노동력 중개 시장에 개입하는 행위자로서 (유료)직업소개사업자, 파견업체, 위장도급업체들이 난립하면 구직자와 사용자(구인자) 사이의 노동력 양도과정은 매우 복잡해진다. ‘구직자 ↔ 사용자’라는 단순 과정이 ‘구직자 ↔ (소개자) ↔ 구인자(파견) ↔ 사용자 ↔ (원청사용자)’라는 다단계 노동력 양도과정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그림 2> 중층화된 노동시장의 형태
 
<그림 2>처럼 단면적 근로관계(직접고용)가 중층화된 형태로서 ①직접고용 ②소개 및 직접고용 ③소개 및 수급업체 직접고용을 구분하고 다면적 근로관계의 중층화된 형태로서 ④간접고용 ⑤수급업체로 파견 (이중파견) ⑥소개 및 간접고용 ⑦소개 및 수급업체로의 파견으로 나눠 각 구인광고를 유형화해보았다.
 
 
파견노동시장이 발달한 비제조업에서 노동시장의 중층화 양상은 훨씬 다양한 구성을 보인다. 단면적 고용관계 비율이 60.4퍼센트로 높지만 단순한 직접고용은 37.9퍼센트이고 직업소개가 개입한 경우는 10.7퍼센트, 직업소개와 도급관계가 겹친 경우가 11.8퍼센트다. 다면적 고용관계(39.6퍼센트)에서 단순 파견은 16.0퍼센트, 파견과 도급이 겹친 경우가 6.5퍼센트, 파견업체로 직업소개한 경우가 10.7퍼센트, 직업소개·파견·도급 모두 겹친 경우가 6.5퍼센트나 된다.

제조업은 비제조업보다는 간명하지만 다면적 고용관계에서 중층화 정도는 심해지고 있다. 단순 파견이 53.4퍼센트로 집계되었고[2], 파견과 ‘위장’도급이 겹친 이른바 이중 파견 비율도 5.4퍼센트나 되고, 직업소개업자가 파견업체로 직업을 안내하는 비율은 9.6퍼센트나 되었다. 노동시장이 이처럼 중층화되어 있다는 건 노동력 중개 과정에서 소개료와 파견(및 도급) 관리비 명목으로 수수료를 떼어가는 행위자들(중간착취자)이 매우 많다는 것이며, 또 노동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미치는 사업주와 노동력을 양도한 노동자의 고용관계가 흐릿해졌다는 것이다. 중층화된 노동시장에서 사용자 책임은 사라지고 있고, 공단노동시장은 노동법의 사각지대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일상화된 고용차별, 저임금 장시간 일자리

공단에서 구직자가 겪는 가장 큰 곤란 중 하나가 고용차별이다. 남녀 간의 직무 차이로 인한 고용차별(36.7퍼센트)뿐만 아니라 특정 연령 이상이나 이하는 뽑지 않는다는 고용차별(54.2퍼센트)도 매우 높다. 이런 고용차별을 파견업체(연령차별 59.4퍼센트)와 직업소개소(연령차별 65.3퍼센트)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제시하는 일자리의 노동조건을 보면 더 심각한데, 시간당 임금 8635원을 받아 51.0시간 일을 해야 253.2만 원 수입을 벌 수 있다. 직업소개소의 일자리는 더 열악한데, 시간당 임금은 8065원, 일주일 54.3시간 일해야 한 달 252.8만 원을 벌 수 있다. 저임금 장시간 일자리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층화된 공단 노동시장, 형해화된 권리

20년간 파견전문업체들이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사이 노동시장은 크게 바뀌었고, 새롭게 형성된 파견노동시장은 여성에게 차별을, 중장년 노동자들에겐 배제를, 청년들에겐 절망을 안겼다. 이들은 노동력 중개 과정에서 이익을 편취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개발하였는데, ① 적극적으로 직업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자임하여 ② 파견이 허용되지 않는 직무의 노동시장까지 개입하여(파견의 확대) ③ 구인자의 인사채용업무와 구직자의 면접서류 작성업무까지 대행해서(채용대행) ④ 이질적인 업무와 직종에서도 노동력을 동시에 공급·관리할 수 있는 노하우를 쌓아 자신의 수익률을 극대화하고 있었다(전문형·복합형 파견).

동시에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오랜 차별 관행을 존속시킴으로써 노동조건 하락을 부추겼고(고용차별), 저임금 장시간 일자리를 신속히 구직자와 연결해줌으로써 저비용으로 기업에 저임금 노동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노동자들 몫인데, 노동력 중개 비용을 저임금으로 감내할 뿐만 아니라 고용안정(정규직화)은커녕 고용불안의 피해까지 감내해야 했다.

파견법 시행 이후, 파견업체들은 노동력 중개 시장에서 자유로운 기업 행위를 할 수 있었고 도급계약 형태로 노동력을 활용하는 사용사업주의 행태(위장도급, 바지사장)는 여전히 유지 존속되었다. 불법파견 제재조항을 매개로 위장도급을 정규직화하려는 시도가 일부 있었으나 실효성은 없었다. 파견법은 근로자공급사업을 합법화하는 법이지 위장도급을 규제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력 중개 기관의 확대로 노동시장 교섭력은 하락하고, 노동시장 중층화로 작업장 교섭력마저 떨어지면서 헌법이 보장한 ‘노조할 권리’는 완전히 형해화되었다. 경기불황 국면에서 불안정한 노동시장은 민간고용서비스사업자들에겐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이를 타개할 방법은 (공적)직업안정기관이 개입하면서 중층화된 고용관계를 단순화하거나, 고용관계선 상에 위치한 사용자들이 모두 공동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뿐이다(노조법 2조 개정). ●
 

Footnotes

  1. ^ 복합형 도급은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생산설비 장치들을 해당 ‘도급’업체가 보유(혹은 관리)하고 있어야 한다. 웬만한 대기업도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자본금을 동원해 설비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런데 실제 이들 ‘도급’ 전문업체들의 자본금 투자 규모는 수억 원에서 많아야 수십억 원 수준이다. 
  2. ^ 사용업체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집계된 수치. 사용업체를 추가 확인할 수 있다면 많은 수가 파견·도급으로 재분류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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