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9/01 제48호

어딜 봐도 청년노동자 위한 곳 하나 없네

서울남부 파견노동시장 실태조사를 하면서

  • 양지연
서울남부 파견노동시장 실태조사를 함께 한 ‘구로노동자조사그룹’의 연구원이 조사 과정에서 느낀 점을 기고해주었습니다. 구로노동자조사그룹은 노동자들의 존엄회복과 권리실현을 위해 구로공단(서울디지털산업단지)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학생단체입니다.
나는 울산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살던 동네는 현대의 동네라고 불러도 무색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현대미포조선에 다니셨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나의 큰아버지도 현대중공업에 다니셨다. 반면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가사노동을 하셨기 때문에 어릴 적 나는 울산에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직장은 기껏해야 선생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수많은 직업이 있다는 걸 모르기도 했고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을 볼 수 있는 곳은 학교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런 울산에서 재작년 봄 친구가 큰 회사에 취직했다. 그런데 그 친구의 고용 형태는 파견직이었다. 친구가 설명하길 자신은 사무직이며 월급은 많지 않고(최저임금 수준으로 알고 있다), 대리급 이상은 중년 남성이며 일반 계약직·파견직 사원들은 젊은 여성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계약직·파견직은 일을 잘하면 길게는 4년까지도 일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유리천장 이야기’는 익히 들어와서 더는 놀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대기업이 직원들에게 돈을 조금밖에 주지 않는 점, 그리고 계약 기간이 3년도 5년도 아닌 4년인 점은 의아했다. 어쨌든 요즘 같은 취업난에 일자리를 구한 친구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나중에는 더 좋은 데로 이직하자며 축하파티를 했다. 

친구의 취업 소식을 듣기 전부터 노동자들에게 일어나는 사건·사고가 비정규직에게 주로 일어나며 이것이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난제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구로노동자조사그룹의 활동 지역인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는 장시간·고강도 노동환경에 처해 있는 제조업 노동자들, 정규직인 듯 정규직이 아닌 콜센터 산업의 여성 노동자들, 포괄임금제로 묶인 청년 IT 노동자들 등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들이 저임금·불안정고용에 노출되어 있다고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혹여나 싶었다. 이틀 밤 꼬박 새워 일하고, 수치심을 참아내면서 감정노동을 해야 하고, 과로로 심리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은 극소수이고, 과장된 얘기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 헛된 희망(?)을 품은 채 파견 실태조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실태조사는 민간직업정보제공기관(알바*, 알바**, *코리아, 사람* 등)과 공공직업안정기관(워크넷, 서울일자리포털)에 게재된 구인공고를 기반으로 기초 자료를 수집하고 전화통화와 면접을 통해 추가 정보를 보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해당 조사를 통해 구직과정에서의 실태를 파악했을 뿐 실제 일터에서 위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구인과정에서 제한적인 정보만으로 불합리한 선택을 강요받는 구직자들의 실태는 파악할 수 있었다. 
 

불안정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의 강제

조사 과정에서 친구의 계약 기간이 4년일 수밖에 없는 이유와 대기업이 저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원리’를 알게 되었다. 파견직과 계약직은 각각 최장 2년까지만 일할 수 있고 그 기간을 초과하면 원청업체에 직접고용의무가 생긴다. 아니나 다를까 이를 교묘히 악용한 대부분의 업체는 고용 형태로 ‘파견직 2년, 계약직 2년, 이후 정규직 전환’이라는 불안하지만 달콤한 조건을 내건다. 물론 정규직이 되면 기본급과 상여금 등 임금이 오른다는 조건도 함께.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다. 어떤 제조업체는 3개월 혹은 6개월간 수습 기간을 거쳐야만 전환되는 ‘정규직’을 구하는데 수습 기간 때 업무평가를 하여 일을 못 하면 잘릴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파견법은 제조업의 직접 생산 공정의 경우 임시·간헐적 사유로 최장 6개월 동안 파견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 기간을 초과하면 위와 마찬가지로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다. 이 업체는 ‘수습 기간 후 전환’이라는 명분으로 노동자를 모집하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어떤 이유로든 해고할 수 있다. 해당 조항을 악용하여 직접고용의무를 회피하는 것이다.

직접고용의무를 회피하려고 파견업체와 원청이 짜고 치는 판을 벌인 느낌이었다. 그렇게 노동자들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4년까지 불안정한 노동 환경으로 내몰린다. 또 파견직을 활용하는 가장 큰 유인은 비용 절감인 만큼 일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지만, 그들은 버젓이 파견직에 대한 차별을 자행한다.
 

고용 형태와 사용자 정보에 대한 미흡한 설명

조사대상이 파견시장이었기 때문에 해당 일자리의 형태를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런데 파견(계약)직과 (일반)계약직을 혼용하여 설명하는 업체가 있는 한편 파견직으로 일할지 계약직으로 일할지 구직자더러 선택하라고 하는 곳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해당 직종이 파견법상 허가된 직종에 해당하지 않아도 ‘도급’으로 주장할 명분이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고용 형태가 파견직이든 계약직이든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구직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인지 사용업체 소속 계약직인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작업장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이유가, 사실은 어떤 고용 형태든지 지휘·감독권이 원청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용업체의 정보는 더욱 알기 어려웠다. 파견업체에 전화하여 일하게 될 회사 이름을 알려 달라고 하면 대부분 대답을 이리저리 돌리곤 했다. 그러다 면접 보러 오면 알려준다는 말을 끝으로 통화가 종료되기 일쑤였다. 한 번은 원청 회사 이름을 알려달라고 물어봤는데 돌아온 대답이, “왜요?”였다. 왜냐니. 구직자는 자신이 일하게 될 환경에 관해서 물어보지도 못하는 건가? 직업소개소는 지역 단위로 구직자를 모집하는지 지원 지역에 TO가 남아있지 않으면 다른 인근 지역 일자리를 다짜고짜 권하기도 했다. 파견 노동시장은 구직자 중심이 아닌 구인자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게 결코 불쾌한 상상만이 아님을, 새삼스럽게 확인했다.
 
*  *  *
 
실태조사를 하면서 대다수 청년이 민간직업정보제공기관에서 구직하고 싶지 않겠다 싶었다. 내가 어디 소속 직원인지 언제 어떻게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면서 최저임금 수준밖에 벌지 못하니 말이다. 사람들이 어떻게든 기를 쓰고 정규직이 되려고 이를 악무는 것도 이해되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정규직 고용이 당연했던 시대를 겪어보지 못한 우리, ‘요즘 애들’에겐 비정규직이 디폴트 값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끊임없이 양산하는 구조는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까? 개인의 노력만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나는, 우리 청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
 
 
필자 소개

양지연 |구로노동자조사그룹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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