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필름X정치
  • 2018/12 제47호

평화의 눈이 원폭 피해를 바라볼 때

고노 후미요, <이 세상의 한 구석에>

  • 성상민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는 갑작스럽게 버섯 모양의 구름이 피어올랐다. 물론 그것은 상공에서 쳐다본 형상에 불과했다. 구름 아래에는 거센 불길과 충격파, 그리고 오랜 시간 사라지지 않을 무색의 광선이 사람들을 휘감는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 누구도 이 끔찍한 풍경이 다시 한번 펼쳐지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8월 9일이 되자 사람들은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가 처참하게 파괴되었고, 결국 이 압도적인 힘에 굴복한 일본 제국은 8월 15일 히로히토 천황의 옥음방송과 함께 전쟁 패배를 선언한다. 아시아 전역을 휩쓸었던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한국을 비롯해 오랜 시간 동안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있던 국가들이 갑작스럽게 해방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원자폭탄을 바라본다는 것

 
이상의 서술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와 일본의 항복을 최대한 건조하게 적어본 것이다. 한국이 해방이라는 경사를 맞이하기 전까지는 무수한 과정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원폭 투하라는 사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사실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핵 문제에 대해 별다른 반대의 말을 못 꺼내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원자폭탄이라는 대량살상무기가 지니는 원천적인 비윤리성을 고민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었다. 한반도를 일본 제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도, 그토록 증오하던 일본 제국에 거대한 상처를 입힌 것도 모두 원자폭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인이 자신들이 겪은 원자폭탄의 충격과 피해를 말하는 것을 한국인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 시절의 만행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인의 눈에 원자폭탄의 거대한 피해는 ‘자업자득’ 이상이 되기 어려웠다. 전황이 악화하는데도 무리한 전쟁을 강행하다 맞이한 인과응보에 불과해 보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국인의 입장일 뿐이다. 적국의 시민이었다는 이유로, 군수 공장과 군사 기지 부근에 거주했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은 끔찍한 트라우마를 ‘어쩔 수 없으니 참고 견뎌라’고 한다면, 받아들일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가까스로 살아남아도 죽을 때까지 그들을 괴롭힌 방사선 피해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낳았다. 2010년대에 들어 일본 정부가 극우적인 행보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지만, 여기에 반대하는 방식이 원폭의 피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맨발의 겐>, 그리고 <이 세상의 한 구석에>

 
일본 전역을 휘감은 원폭에 대한 공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만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관련하여 한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만화는 나카자와 케이지의 <맨발의 겐>(1973~1985)일 것이다. 나카자와 케이지는 실제로 어린 시절 히로시마에 가족과 함께 살다 원자폭탄이 떨어지며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가족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본인과 어머니 역시도 죽기 전까지 방사선 후유증으로 오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더욱 비극적이었던 사실은 나카자와 케이지의 아버지는 죽기 전까지 오랜 시간 반전 활동가로 일본 제국과 맞서 싸운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을 적극적으로 찬동하고 밀어붙였던 제국의 정치인들이 도쿄에서 무사히 머무는 동안,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은 정작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죽어가야만 했다.

이러한 경험은 고스란히 작가에게 전해져 <맨발의 겐>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만화의 주인공 ‘겐’을 비롯한 다양한 캐릭터들은 작가 본인을 비롯해 주변의 사람들이 모티브가 되었다. 극 중의 캐릭터들은 원폭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온갖 질병과 가난에 시달려도 쉽게 삶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동시에 작품은 왜 자신들이 갑작스럽게 원폭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는지를 무척 잘 인식하면서도, 조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도 충실하게 전하고 있었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겪었던 이들이 보기에는 무척이나 모범적인 구성이었지만, <맨발의 겐>의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맨발의 겐>은 ‘소년 만화’였고, 주인공이 아무리 무수한 수난과 고통을 겪어도 언제나 주인공은 밝게 웃으며 가시밭길을 헤쳐나갔다. 삶의 의지를 되새긴다는 점에서는 훌륭한 작품이지만, 그저 웃어넘기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두각을 드러낸 작가가 바로 <이 세상의 한 구석에>의 원작 만화를 그린 고노 후미요다.
 
 

뒤틀리는 일상에서 찾아온 비극

 
고노 후미요는 본래 일상을 소재로 한 단편 만화를 주로 그리던 작가였지만,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발표한 연작 <저녁뜸의 거리>와 <벚꽃의 나라>를 통해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자들이 전쟁 이후에 겪는 일상과 서서히 스며드는 고통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은 일본의 대중문화 예술상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에서 만화 부문 대상을 받을 정도로 평단의 인정을 받았다. 직접적이거나 강한 어투로 피해의 순간과 고통의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조금씩 지면 밖으로 비치는 캐릭터들의 표정과 대화, 그리고 이미 어딘가 뒤틀려진 일상의 모습을 통해 원폭의 피해를 묘사하는 방법은 <맨발의 겐>을 비롯해 원폭 피해를 다룬 이전까지의 일본 만화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연출이었다.
 
 
이후 고노 후미요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이 세상의 한 구석에>를 연재하여, 다시 한 번 호평을 받았다. <저녁뜸의 거리>와 <벚꽃의 나라>가 작가 본인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었다면, <이 세상의 한 구석에>는 실제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경험한 작가의 외할머니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 비록 작품을 그릴 때는 작가의외할머니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지만, 만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해군에서 일하는 군무원의 아내가 되고, 수차례의 공습과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친가와 시가의 소중한 가족들을 잃게 된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이다. 작가는 외할머니가 살았던 마을을 수소문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사료와 논문을 수집하며 1940년대의 시대상을 재현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2016년, 이 작품에 감동을 받은 애니메이션 감독 카타부치 스나오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겨우 제작비를 끌어모은 끝에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되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선보이게 되었다.
 

<저녁뜸의 거리>와 <벚꽃의 나라>가 원폭 투하 이후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 세상의 한 구석에>는 원폭 투하 이전의 상황을 깊이 있게 바라본다. 그리고 작품 내의 시선은 철저하게 작품의 주인공인 ‘스즈’를 통하여 드러난다. 스즈는 만 18세에 남편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갑작스럽게 시집을 가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조금 무뚝뚝한 걸 빼면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1940년대 중반의 일본은 스즈를 한시도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이미 정부는 전쟁 준비를 이유로 모든 물자를 통제하거나 징발하고 있고, 일상 역시 전쟁을 중심으로 재편된 지 오래다. 제국주의의 물결은 스즈를 비롯해 전쟁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고스란히 스며든다. 관객들은 전쟁의 광기 아래 휩쓸려 가던 스즈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태평양 전쟁 시기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그 시대에 살아가던 이들의 생활상이 어쩌했는지를 마주 볼 수 있다.
 

이분법의 구도를 벗어나, 서로를 마주하기

 
<이 세상의 한 구석에>는 한국에서는 많은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일본인의 시선으로 태평양 전쟁 시기를 다뤘다는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작품의 클라이맥스와 결말이 히로시마 원폭 투하와 직결된다는 점에 있었다. 원폭 투하 이전 주인공은 갑작스러운 연합군의 공습으로 인해 사랑스러운 조카와 자신의 오른손을 잃었다. 아직 분노와 혼란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히로시마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일본 정부는 항복을 선언한다. 주인공은 이런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지만, 항복 선언과 함께 마을에 내걸린 태극기를 보고 나서야 주인공은 비로소 자신들의 문제를 깨닫는다. 자신들이 그간 누리던 평화로운 일상은 결국 그간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던 조선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일본 창작물에서는 쉽게 언급하기 어려운 내용임에도 왜 이 장면이 문제가 된 것일까. 전쟁에 대한 반성과 한국인의 존재를 드러내는 부분이 충분치 않았다는 이유였다. 고노 후미요는 전작 <저녁뜸의 거리>도 한국인 피폭자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었다. <이 세상의 한 구석에>는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였던지, 원폭 투하라는 비극이 발생했던 원인과 당시 일본 제국의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던 ‘조선인의 문제’를 부각하는 방식으로 결말을 처리했지만 이러한 시도 또한 ‘반성이 충분치 않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맨발의 겐> 같이 직설적으로 천황에게 전쟁과 원폭 투하의 책임을 묻고, 명시적으로 조선인에게 사과를 구하는 작품이 아닌 이상 원폭 문제를 다룬 대다수의 일본 창작물이 겪는 문제다. 분명 어떤 식으로든 일본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이러한 논란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작품적인 측면으로도 좀 더 구체적으로 당대의 복잡한 시대상을 지적하는 창작물이 더욱 등장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의 한 구석에>는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쟁 말기 제국의 이데올로기가 강요되던 생활상을 섬세하게 그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식민지 문제를 결말에서야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어떤 의미로는 한계라고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부합하는 가치관을 지닌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며 평화 문제를 고민하는 모든 시도를 거부해도 괜찮은 것일까. 일본이 쉽게 자신들의 전쟁 책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하며 군대를 보유하려는 시도들은 분명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마주 보지 못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다. 하지만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민중’이라는 공통의 지반을 통하여 조금씩 만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갈등의 골은 점점 심해질 뿐이다. <이 세상의 한 구석에>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원폭이라는 비극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접근하려 노력한 하나의 시도였다. 한국은 이러한 노력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그저 류승완의 <군함도>처럼, 최근 논란이 된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원폭 티셔츠처럼 단순하게 원폭을 ‘해방의 기쁨’과 연결 짓지는 않았는가. 서로가 진정한 만남을 가지기 위해서는, 결국 자기 자신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한국도 결코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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