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평화
  • 2018/12 제47호

평화의 새 시대는 북한 핵무장과 공존할 수 없다

  • 김진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월 13~14일 서울을 답방할 것이라는 추측이 파다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2일, “김 위원장의 답방은 그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 답방 자체가 이뤄지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모든 국민이 쌍수로 환영해 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6개월 동안 북핵 신고와 검증, 종전 선언 등 큰 의미의 진전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합의하지 못했으며 ‘이면 합의’는 없었음이 드러났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 발언의 지속적 변화를 보면, 6월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는 북한 비핵화 협상이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를 목표로, 일괄타결 방식으로, 짧은 기간 내에 가능하다는 식이었다. 이는 북한의 완전한 핵 신고서 제출을 전제로 비핵화 시간표 합의, 검증(사찰)을 동반하는 과정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북미 간 비핵화 시간표 합의조차 없는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해체 등 몇 가지 조처를 하거나 앞으로 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아주 실질적인 조치들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9월 평양 선언에서 북한은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북한이 기존 재처리시설을 통해 이미 확보한 핵물질과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고려한다면 영변 핵시설 폐기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으면 남한과 미국 내에서 평화 대화 국면을 지속하고 진전시키기 위한 동력을 만들기 어렵다. 사회운동 일각의 주관적 희망과 달리 문재인 정권의 독자적인 의지, 혹은 소위 ‘우리 민족끼리’의 단결만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남북 정상의 백두산 방문에 이어 한라산 방문 등의 ‘이벤트’를 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 조건들이 있다.

먼저 UN과 미국의 대북 제재라는 현실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침체한 국내 경제의 대안으로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제시하고 있으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남북 경협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이를 우회하려는 시도나 한미 간 사전 합의되지 않은 남북 합의는 미국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으며,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평양 선언 중 ‘남북 철도 연결 연내 착공’과 ‘군사 분야 합의서’에 대해서 폼페이오 장관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신임 주한미군 사령관 등이 불만을 표시했으며, 한국 정부가 5·24 조치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며 미국의 승인 없이는 대북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23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일본 최대 은행 미쓰비시 파이낸셜 그룹(MUFG)이 북한의 자금 세탁에 관여해 대북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미국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재무부가 9월 평양 정상회담 직후에 우리나라 7개 은행에 연락해 “남북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대북 제재가 유효하니 준수해 달라”고 한 일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한국은행을 세컨더리 보이콧(1차 보이콧 대상과 관계된 대상까지 보이콧)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미국의 제재는 실질적으로 국제 금융권에서의 퇴출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것이 현실화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다.

미국 내 정치상황도 트럼프와 북미 대화에 유리하지 않다. 이미 별 진전없는 북미 대화에 대한 내부 비판과 불만이 상당히 큰 상황이다.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의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북미 대화를 비판해 온 민주당이 북핵 협상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다. 트럼프 내각에서조차 현재 북미 대화 과정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2차 북미정상회담 전망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할 고위급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12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1월이나 2월에’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핵시설 폐기와 사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핵 신고, 종전 선언 등에 대해 어떤 논의를 했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2차 정상회담의 성과로 만들기 위해 막후 협상 중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경로가 두 가지 있을 것이다.

첫째, 애초에 언급했던 일괄타결 방식, 즉 핵 신고서 제출과 비핵화 시간표, 검증 등이 없는 방식으로 북한의 핵 동결, 또는 북한의 부분적 핵 군축과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를 교환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현재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북한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와 종전선언을 교환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러한 안을 지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의회나 여론에서 수용할 것이냐가 문제다. 6월 26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 간사 메넨데스 의원(민주당), 동아태소위원장 가드너 의원(공화당)이 공동으로 대북정책감독법을 제출했다. 법안은 비핵화 협상을 정기적으로 미 의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했으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목표로 제시하고, 주한미군 철수는 협상 불가항목이라고 강조했다.

본질적인 문제는 북한의 핵동결, 부분적 핵군축을 실행하는 대가로 종전선언과 대북 제재의 실제적 경감이 이뤄질 경우, 북한이 추가적 비핵화 조치를 취할 유인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미국이 2017년 4월경부터 선포했던 최대 압박 전략은 사실상 해체되는 양상이다. 최근 중국의 대북 제재가 느슨해지고 있다는 지적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일부 제재가 무너져도 북미정상회담의 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북한이 전면적 핵 폐기와 전면적 경제 개방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전망하기에는, 북한 정권에게 핵 보유가 갖는 의미가 여전히 크다. 김정은 시대에 북한 핵 무력 완성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 번째는 상징적인 의미로, 새롭게 등장한 젊은 지도자가 핵 무력을 완성함으로써, 북한을 강성대국으로 이끌 충분한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핵 무력 완성이 김정은 위원장으로의 권력승계를 정당화하는 핵심적 도구로 활용된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좀 더 실제적 의미인데, 북한의 핵 보유는 권력 교체기에 등장할 수도 있는 북한의 내분 사태에 외국의 개입을 억제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리비아의 사례를 보고, 리비아가 핵을 폐기하지 않았더라면 서방이 쉽게 군사개입을 단행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점점 거세지는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거듭하여 핵 무력 완성을 추진했다.

둘째, 북한이 핵 신고서 제출이나 비핵화 시간표 합의를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한 후 대북정책의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다. 대북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서 북한에 대한 최대압박으로 복귀하는 경로로, 여기에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재개도 포함될 것이다.

이는 정권의 ‘업적’을 위해 남북관계 진전을 적극적으로 바라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 맞지 않는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는 현실도 있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실험과 같이, 유엔 제재를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경우, 최대압박 전략으로 복귀에 주변국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어떤 것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 때문에 2차 북미정상회담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다. 2차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1차 정상회담만큼이나 모호한 결과를 남긴다면, 미국과 한국 내 여론의 강한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평화의 새 시대’는 왔는가

 
한반도를 둘러싼 객관적인 현실은 아직 근본적인 변화에 들어서지 않았으며, 평화 대화 국면은 위태롭다. 2차 북미정상회담은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을 성공으로 간주하는지, 실패로 간주하는지와 상관없이 북한의 핵 보유가 현실 조건으로 이어진다면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협상을 ‘성공’이라고 말하더라도, 실제로는 북한의 핵 보유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려는 조치의 수위를 지속해서 높일 수도 있다. 즉 북미협상의 성과를 내세우면서도 이면에서는 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이를 연결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할 구체적 조처를 할 것이다. 아베 정부가 올해 가을 임시국회에 일본의 재무장을 금지해온 평화헌법의 개정안을 제출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베 총리가 3선 연임에 성공하여 2021년까지 집권하게 되면서 앞으로 헌법이 개악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핵무장,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대항하는 반핵·평화운동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우리 민족끼리’ 또는 ‘민족자주’라는 이름으로, 북한의 핵무장 문제를 상대화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 유지는 동아시아 전반의 핵무장 밀도의 강화, 무장 충돌 위험의 증가라는 민중 절멸의 위험을 지속해서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의 실천적 과제는 문재인 정부와 북한 개혁개방에 대한 장밋빛 환상이나 민족주의적 수사와 이벤트에 기대는 것일 수 없다. 운동 내 민족주의적 논리나 남한 사회 내 이주민·난민에 대한 배타적 정서는 상당히 강력한 데 반해, 노동자운동의 평화주의·국제주의적 역량은 취약하다. 국제정세와 남북한의 현실적 조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반도에서의 노동자 단결과 평화운동 강화가 필요하다. ●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전망, 오늘보다
정기구독
태그
북한 김정은 비핵화 남북정상회담 핵무장 북미정상회담 한반도 평화 종전선언 핵시설 폐기 대북 제재 FFVD 김정은 답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