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8/12 제47호
기만적인 광주형 일자리 고립된 현대차노조
광주형 일자리사업의 앞날이 불투명하다. 단체협상 유예조건을 둘러싼 입장차이가 좁혀지지 않아서다. 이러한 가운데 보수언론들은 광주형 일자리사업을 반대하는 현대기아차 노조를 비난하기 바쁘다. 귀족노조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임금격차도 축소하는 유의미한 사업을 반대해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다. 그러나 광주형 일자리는 좋은 사업이라 볼 수 없다. 광주시와 정부의 주장과 달리 일자리 창출과 임금 격차 해소도 할 수 없는 데다 위기에 빠진 자동차산업의 현실에도 부적합하다. 노동조합이 반대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도 왜 광주형 일자리는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는가. 대국민 사기극을 비판하는 노동조합은 어째서 지탄받고 있는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노동조합이 국민적 열망이라 할 수 있는 임금 격차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책임있는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격차 해소를 위한 연대임금에 앞장서지 못한 결과라 볼 수도 있다. 오늘날 심화하고 있는 한국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계급적 단결을 도모하지 못한다면 현대차노조는 고립상태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값 임금으로 일자리 창출?
광주형 일자리는 2014년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취임 직후부터 추진했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도 포함되었고 2018년 6월 현대자동차가 투자의향서를 광주시에 제출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주 44시간 근무, 초임 연봉 3500만 원으로 약 1만 2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생산 차종은 경형 SUV 10만 대 판매가 거론된다. 신설공장에는 총 7000억(자본금 2800억 원, 차입금 4200억 원)이 투입되는데 광주시가 자본금의 21퍼센트인 590억 원, 현대차가 19퍼센트인 530억 원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설될 공장은 동희오토와 같은 위탁생산 공장이다. 다만 정부가 자금을 지원한다는 차이가 있다.
사업의 핵심은 임금삭감과 일자리를 교환하는 것이다. 현대차의 높은 임금이 국내투자의 걸림돌이 되고 있기에, 임금이 반값이 되면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취지다. 그러나 진실을 들여다보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현대차가 국내 투자를 기피하고 해외에 공장을 설립한 건 국내 노동자의 높은 임금 때문이 아니다. 자동차기업이 공장입지를 선정할 때 해당 국가의 임금 수준이나 노사관계를 고려하기는 하지만 현지 시장공략과 통상마찰 회피 등의 목적도 함께 고려한다. 지엠이나 도요타 등 세계적인 자동차기업들은 현지생산-현지판매 전략에 따라 세계 각지에 공장을 설립했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그 때문에 미국, 유럽, 중국, 남미 등에 생산기지를 건설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해외투자가 국내 투자 기피 때문이라 보기는 어렵다. 임금삭감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광주형 일자리의 발상은 고임금 노동자들을 비난하기 위한 선동에 가깝다.
신규 공장이 필요 없는 현대차
문제는 국내든 해외든 현대차는 신규 공장 설립이 필요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세계 자동차산업은 이미 과잉설비 상태이며 현대차 역시 가동률이 하락하는 추세다. 현대차의 글로벌 생산능력은 968만 대인데 2017년 판매는 735만 대로 가동률이 75.9퍼센트에 그쳤고, 여유 능력이 233만 대다. 현대차 국내공장은 2012년 191만 대를 최대로 생산한 이후, 생산량이 계속하여 감소해서 2017년에는 165만 대 생산에 그쳤다. 5년 사이에 생산량이 25만 대 감소했다.
물론 현대차는 친환경 자동차 생산이나 대규모 정년퇴직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신규 공장을 설립할 필요는 없다. 친환경 자동차를 생산하게 되면 기존 내연기관 라인이 그만큼 감소하기 때문에 기존 공장의 일부를 개조해도 생산을 이어갈 수 있다. 신규 공장은 차체-도장-조립-물류 모두를 처음부터 만드는 것이기에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그리고 정년퇴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공장 증설보다는 신규 채용을 늘리면 된다.
산업적으로 보아도 한국지엠은 100만 대의 생산능력 중 절반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으며, 르노삼성은 물량이 부족해 닛산과 르노의 차를 위탁 생산하고 있다. 쌍용차도 조립설비가 완전가동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공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있는 공장도 가동하기 어려운 상태다. 따라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필요 없는 공장을 억지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을 위한 무리수인가
광주형 일자리가 스스로 모델로 삼고 있는 사례가 있다. 독일의 아우토5000이다. 그러나 광주형 일자리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독일의 경우 공장 증설이나 이전이 필요한 상태에서 임금이 낮은 곳으로 공장입지 경쟁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광주형 일자리는 임금 삭감과 일자리를 교환한다기보다 필요 없는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무리수라 볼 수 있다.
광주형 일자리에는 임금 양보를 제외하면 별 내용이 없다. 특히 임금 격차 해소방안은 막연하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반값으로 하겠다는 것은 분명한데, 이것이 어떻게 하청노동자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지는 모호하다. 산업단지에서 노사정 대화를 통해 적정 임금과 노동시간 등을 결정하겠다고 하지만, 초점은 대기업 임금 인상을 규제하는 것에 맞춰져 있을 뿐이다. 하청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방안은 전혀 구체적이지 않다. 게다가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강화하기도 어렵다. 지난 9월 광주시와 현대차가 향후 5년 간 임금을 동결하고 노조설립을 금지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 사업이 추진되는 이유는 그저 2020년 총선을 바라보는 정부·여당의 정치적 필요성 때문이다. 여기에 지자체의 보여주기식 성과 경쟁과 사회 전체적으로 노조 비난 여론을 만들고 싶은 현대차의 욕구가 뒤섞였다.
왜 현대차노조는 고립되었는가
이처럼 광주형 일자리는 임금 격차 해소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진지한 해법이라기보다는 노조 공격을 위한 여론몰이의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도 현대차노조가 비난에 취약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현대차노조가 겪고 있는 고립은 오늘날 노동자운동 전반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적으로 임금 격차와 일자리 문제 해결에 대한 요구가 높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조의 전략 부재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임금 격차와 일자리 문제가 핵심 사회 현안으로 등장한 이유는 한국경제의 위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만이 아니라 반도체를 제외한 조선·석유화학·철강 등 제조업 중추 업종이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2011년부터 7년째 지속해서 하락해 1980년대 이래 가장 긴 기간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어 왔던 제조업의 구조적 위기가 저성장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미국헤게모니가 붕괴하고 있지만, 이윤율을 반등시킬 기술혁신이 없고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가 등장할 가능성이 낮은 세계 경제 위기의 맥락에서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경제 위기에 대한 대안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체제 변혁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즉, 노동자운동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인식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대안 사회를 건설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운동은 국민경제에 대한 자본의 대안을 비판하고 노동자 단결의 방안을 제시하면서 자본주의를 변혁하기 위한 ‘정치·사회운동’의 전략을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임금·노동조건에 대한 투쟁에 국한된 노동자운동은 총체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노동조합은 경제투쟁보다 더 ‘광범위한 운동’ 즉 ‘사회·정치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이는 오늘날로 보자면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축소를 통한 노동자운동의 단결 실현과 자본주의 체제를 지양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민주노총에는 국민 경제 전체에 대한 대안이나 격차 축소를 위한 전략이 부재하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지지하며 제대로 실행할 것을 요구하거나,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과 개입도 개별 사안 대응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차노조 역시 단일 기업 내에서 임금을 최대한 올리려는 전략 이외에 연대임금을 실현하는 실천에는 그리 적극적이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현대차노조가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이유이며, 노동자운동 전반의 현실이기도 하다. 노동자운동은 구조적 위기를 인식하고 단결을 위한 전략마련에 힘을 쏟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