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8/12 제47호
자동차산업, 자본과 노동의 공멸로 가는가
한국의 대표기업인 현대차의 위기, 자본철수 위험이 더 높아진 외국계 자동차기업들, 연쇄 부도 위기가 거론되는 중소부품사들, 여기에 대안이 되지 못하는 노조까지. 2018년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본 글은 현대차를 중심으로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노동자운동의 과제를 살펴본다.
추격성장의 한계
현대차의 올해 3분기 누적순이익이 1조 8000억 원이다. 작년 같은 기간 3조 2000억 원보다 40퍼센트 감소했다. 순이익이 가장 많이 났던 2012년 3분기와 비교해보면 75퍼센트 감소했다. 올해 매출액 순이익률은 2.5퍼센트로 세계 상위권 자동차업체 중에 최하위권이다. 다른 상위권 업체들의 순이익률은 7~10퍼센트 정도다. 현대차는 2016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상위권 순이익률을 자랑했었다.
현대차가 고전하는 표면적 이유는 북미와 중국시장에서의 부진이다. 현대차는 SUV중심으로 재편되는 미국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 일본 기업들이 SUV 신차를 잇달아 발표하며 시장을 주도할 때, 현대차는 판매량이 급감하는 세단 중심으로 영업을 확대했다. 중국에서는 사드 여파로 판매량이 급감한 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경쟁사에 비해 현대차가 타격을 회복할 만큼 강점이 없는 탓이다. 그런데 현대차의 위기에는 영업 전략의 실수나 대외조건의 악화보다 더 근본적 원인이 있다. 추격성장 이후 선도자(frontier)로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7년에 설립된 현대차는 1980년대까지 일본 미쓰비시의 기술로 자동차를 생산했다. 그리고 20년 넘는 기술 도입 끝에 1991년에 자체 엔진을 처음 만들었고, 2000년 중반에 엔진, 변속기, 제어장치, 디자인 등을 자력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회사 창립 40년 만에 기술 모방을 끝낸 것이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현대차는 2000년 세계 10위에서 2014년 세계 5위 기업으로 성장한다. 생산량으로 보면 240만대에서 800만대로 3.3배 성장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크게 세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 기술 개발 속도가 둔화됐다. 이전까지 현대차의 기술 개발은 인력과 자본을 집중해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는 것이었다. 검증된 기술을 모방하기에 그만큼 발전 속도가 빨랐다. 개발 실적도 투입 자원에 비례해 나왔다. 그런데 추격 성장이 끝난 2010년대, 상황이 바뀌었다. 단기간에 모방할 기술도, 특허권을 피할 아이템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의 기초 과학은 너무 부실했고 오랜 노하우가 필요한 기술을 발전시킬 기반도 부족했다. 예전 같은 모방 중심의 연구개발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져 버렸다.
둘째, 현대차의 족벌경영 체제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 보단 보수적 태도로 일관했다. 족벌경영 체제는 실패를 무릅쓰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꺼렸다. 그 결과 2010년 2조 4천억 원이던 현대차 연구개발비는 8년 동안 제자리였다. 폴크스바겐, 도요타 같은 경쟁사들이 2010년대 연 10조 원 가까운 연구개발비를 투자한 것과 대조된다. 지엠은 미래형 자동차 연구개발비를 마련하겠다며 2014년 이후 유럽과 아시아 공장을 정리하는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다. 반면 현대차가 행한 2010년대 가장 큰 투자는 현대건설 인수와 서초동 한전부지 매입이었다. 5조 원이 투입된 현대건설 인수는 정주영 일가의 한풀이가 이유였고, 10조 원이 투입된 한전부지는 초고층 신사옥 건설이 이유였다. 둘 다 자동차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기술 선도보다는 가문의 명예와 외형적 성장에 집착하는 족벌 경영의 전형적이고도 퇴행적인 행동이었다.
셋째,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가격경쟁력 확보 전략도 한계에 부딪혔다. 1980년대 저임금으로 경쟁력을 갖춘 현대차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급격한 임금 인상에 대응하기 위해 고용을 줄이는 외주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간접고용, 사외하청이 만들어졌고, 세계 최고수준의 부품 모듈화, 도요타 적시생산(Just In Time)방식을 뛰어넘는 직서열(Just In Sequence)방식의 재고 최소화 시스템도 만들어졌다. 그런데 현대차의 이런 원가절감 방식은 기업 내부보다 외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현대차 노조의 강한 교섭력을 우회하기 위해서 였다. 예로 도요타가 자사 조립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동시에 생산하는 혼류생산으로 원가를 절감했다면, 현대차는 자사 조립라인에서는 한 차종만 생산하고 대신 부품업체에서 현대차 생산순서에 맞춰 혼류생산(이것을 직서열이라고 부른다)을 하도록 만들었다. 도요타가 내부에서 ‘마른 수건을 쥐어짰다’면, 현대차는 외부에서 ‘마른 수건을 쥐어짜도록’ 만든 셈이다. 하지만 이런 비용절감 방식은 2010년대 들어 한계에 부딪힌다. 현대차 내부의 임금과 생산성 사이 격차가 계속 커진데다, 부품사에서도 임금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생산의 절반 이상을 저임금 지역으로 내보냈지만, 이는 경쟁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요컨대, 현대차 위기의 본질적 원인은 추격성장의 한계다. 기술 선도자로 나서지 못하는 한계, 양적 팽창과 가문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족벌 경영의 퇴행성, 기업 외부를 쥐어짜는 비용절감 전략의 한계다. 지금의 현대차에게 과거의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금융세계화의 몰락과 외국계 자동차기업
외국계 자동차기업들의 상황은 현대차보다 더 심각하다.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한국지엠은 올해 군산공장을 폐쇄했고, 추가 구조조정이 예상된다. 쌍용차는 2016년을 정점으로 생산량이 계속 감소하고 있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순손실이 예상된다. 르노삼성은 2014년부터 생산의 절반 이상을 위탁생산으로 채워 무역전쟁 향방과 르노닛산그룹의 정책 변화에 따라 한 순간에 기업이 몰락할 수도 있다.
외국계 자동차기업들의 위기는 사실 매각 때부터 예상됐던 것들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금융세계화 시대에 적응한다는 명분으로 이들 기업들을 모두 해외기업에 헐값에 넘겼다. 해외기업들은 헐값에 인수한 설비로 큰 이득을 챙겼고, 언제 자본을 철수해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물론 해외매각 대신 국내인수 또는 독자생존 방법을 추진했더라도, 이들 기업이 부활할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위기가 금융세계화 정책으로 인해 증폭된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지엠은 1990년대 대우차 시절까지는 현대차와 비슷한 수준의 기술과 영업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001년 지엠에 매각된 후 모든 역량을 상실했다. 한국지엠의 연구개발은 미국과 유럽에서 개발한 자동차의 일부를 프로젝트 방식으로 수주하는 것이고, 생산능력 역시 신규 투자보다는 기존 설비의 가동률을 높이는 것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본사의 하청공장이 된 셈이다. 한국지엠은 2014년부터 본사가 소형차 비중을 낮추고 대형차와 전기차에 집중하는 전략을 추진하면서 위기에 빠졌다. 지엠은 중·소형차에 특화된 대우차 공장을 오래 유지할 필요가 없다.
르노삼성은 본사에 대한 종속성이 한국지엠보다 강하다. 이건희의 무모한 사업 확장으로 1995년 설립된 삼성차는 설립과 함께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고, 제대로 사업을 해보기도 전에 2000년에 프랑스 르노닛산그룹에 매각됐다. 자체 기술이 부족한 르노삼성은 창사 이래 지금까지 닛산에서 엔진을 수입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 르노삼성은 자체 모델을 내수시장에서 판매했지만 이후에는 이마저도 사라져 현재는 닛산의 북미수출용 SUV를 위탁생산하며 공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위탁생산은 상당히 불안하다. 본사가 물량을 배정하지 않는 순간 공장이 폐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르노삼성은 내년부터 닛산의 위탁물량이 감소해 르노의 전기차를 위탁생산하기로 계약했다. 미국의 자동차관세가 높아지거나 위탁물량에 변화가 생기면 르노삼성은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쌍용차는 한국 승용차 기업 중 유일하게 한국보다 기술이 떨어지는 기업에 매각됐다. 쌍용차는 1990년대 이래 제대로 장기간 흑자를 내본 적이 없는데, 생산량이 10~15만 대 정도에 불과한데다 기술력 있는 고급 브랜드도 아니라서 그렇다. 이런 조건에서 2004년 중국 상하이차는 기술유출을 목적으로 쌍용차를 인수했고, 2009년 자본을 철수했다. 2012년 인도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재인수했지만, 마힌드라는 기술수준이나 영업능력에서 대안이 되기는 객관적으로 어렵다. 2016년 티볼리가 인기를 끌며 십여 년 만에 흑자를 내기도 했지만, 2017년부터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저가의 소형SUV는 마진율이 낮아 대량생산과 수출이 아니면 지속적으로 흑자를 내기 어렵다. 쌍용차는 생산의 70퍼센트 이상을 국내에서 판매한다. 하지만 내수침체와 경쟁 격화, 세계 SUV시장에서의 수출경쟁력 부족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쌍용차는 10년 넘게 기술, 생산, 영업 등 모든 분야에서 정체와 퇴보를 반복 중이다.
요컨대, 외국계 자동차기업은 정부의 금융세계화 정책의 피해로 현대차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본사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 자구책을 찾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자운동의 실패
1987년 이후 자동차산업 노동운동의 흐름은 기업 내에서 임금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투적으로 파업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사회 변화의 구상, 계급적 연대의 확대는 현실의 노동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런 대기업 노조의 사업장 내 임금극대화 전략은 역으로 자본에게 이용당하기도 했다. 현대차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외주화를 확대했지만 기업별 노조로는 속수무책이었다. 자동차산업의 노동조합은 추격성장 이후의 발전 전략, 족벌 경영의 개혁, 초국적 자본의 이동 규제, 수직적 원하청 관계의 변화 같은 구조 개혁 쟁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기업 내 임금 인상의 명분으로 이용됐을 뿐이었다. 예로 현대차노조는 매년 정몽구 일가에 대해 비난했지만, 이런 비난은 매년 임금 인상으로 무마됐다. 한국지엠노조는 매년 지엠을 먹튀라 비난했지만, 글로벌 구조조정에 대한 연대나 한국지엠을 국내공급사슬에 묶어 둘 요구는 매번 임금인상의 뒤켠으로 밀려났다.
올해 금속노조는 기존 임단투에 변화를 주고자 ‘하후상박’ 임금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자동차산업에서는 현대차, 기아차, 한국지엠은 5.3퍼센트, 나머지 부품사는 7.4퍼센트의 임금 인상을 요구한 것이다. 임금 격차를 축소하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계급적 연대를 구축하기에는 한계도 뚜렷한 요구다. 우선 현재 자동차산업 상황에서 이 정도의 임금 인상을 수용할 거라 단언하기 어렵다. 실제 타결된 금액을 봐도 목표치에 한참 미달한다. 매출 감소로 지불능력이 감소한 기업일수록 결과적으로 임금인상액은 적었다. 자동차산업 노동조합들의 산업 상황에 대한 인식이 객관적 현실과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연봉이 1억 원이 넘는 완성차 정규직과 연봉이 일반적으로 6천만 원 이상인 부품사 정규직 사이 임금 격차 축소가 한국사회에서 가지는 의미가 모호했다. 계층으로 보면 상위10퍼센트와 상위20퍼센트 사이의 격차 축소다. 수출제조업의 조직노동자 임금인상은 자동차산업 노동조합이 체감하는 것 이상으로 국민경제와 괴리가 크다.
요컨대, 자동차산업의 노동운동은 산업적 위기와 노동자 계급의 격차에 무감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임금 수준은 다른 선진국 경쟁사와 비교해 높은 편이며, 역으로 한국 자동차기업들의 위기는 선진국 기업에 비교해서 상당히 심각한 편이다. 자동차산업 노동조합들은 자본주의 이윤율 경제를 넘어서는 사회 변화를 추구하든지, 아니면 시장의 임금을 수용하든지 해야 하나, 오랫동안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결과적으로 지대를 추구하는 위험에 처한다. 또한 자동차산업의 노동운동은 국가 차원의 수출제조업 주도 성장전략의 수혜를 입었으면서도 노동조합의 힘을 전체 노동자의 임금인상이나 격차 축소에 충분히 사용하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증가한 엄청난 임금격차는 오늘날 목도하고 있듯 노동자운동의 사회적 고립으로 귀결된다.
자본과 노동 모두의 위기, 더 이상 수월한 대안은 없다
추격 성장의 한계, 금융세계화의 몰락, 노동운동의 실패라는 3중 위기가 자동차산업을 옥죄고 있다. 재벌의 족벌 경영체제는 위기에 무능하고, 노동운동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항상 서로 대립하면서 때로는 숨겨진, 때로는 공공연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각각의 싸움은 그때마다 사회 전체의 혁명적 재구성 또는 투쟁하는 계급들의 공멸로 끝났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대략의 방향만 이야기하자면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첫째, 이윤율을 회복하는 자본의 대안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며 추격 성장의 위기를 저임금 가격경쟁력으로 지연시키는 것이다. 노조를 없애고,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며, 임금을 하향평준화한다면 한국 자동차산업은 궁극적 대안은 아니더라도 한동안 더 버틸 수는 있다.
둘째, 사회의 혁명적 재구성을 추구하는 노동의 대안이다. 노동조합이 연대임금-연대고용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높이고, 사회를 재구성하기 위한 지식과 역량을 높이는 것이다. 자동차산업의 노동조합들이 스스로 임금격차를 줄이고 실업자, 비정규직과 연대하며 일자리를 확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임금인상투쟁을 넘어 사회제도와 기업경영에 대해 참여하고, 그것들을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노동조합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세계를 추구하는 방향이다.
노동운동은 어렵더라도 사회의 혁명적 재구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본의 대안이나 양 계급의 공멸은 노동자에게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