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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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 제46호

전 세계 항공노동자의 힘을 하나로!

10.2 세계 항공노동자 행동의 날의 의미와 실천

  • 최정아

공항에 타오른 촛불 

지난 7월 1일, 아사아나항공 노동자들은 아수라장 속에 있었다. 기내식이 실리지 못해 비행기가 무더기로 지연되는 일명 ‘노 밀(No Meal)사태’가 터진 탓이다. 왜 비행기가 지연이 되는지 아시아나항공의 노동자들은 그 이유를 전달받지 못했다. 고객의 민원이 빗발쳤다. 특히 가장 먼저 고객과 대면하는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아시아나지상여객서비스지부 소속 출입국서비스 노동자들의 피해가 심각했다. 공항에 발이 묶인 고객들을 상대하느라 2~3시간 쪽잠을 자며 시달린 그들에게 왜 이런 지옥이 펼쳐졌는지 알려준 것은 <아시아나, 7월부터 기내식 제공 어쩌나>(인천일보, 2018-05-11.)라는 인터넷 신문기사가 전부였다. 아시아나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의 하청업체인 ‘KA’ 소속의 노동자라는 이유로 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항공사의 어설픈 하청구조는 긴급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와 고객의 몫이었다. 당시 박삼구 회장이 골프대회 시상을 위해 칭타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의 피로와 분노는 극에 달했다. ‘침묵하지 말자’는 오픈채팅방에는 탄식과 폭로가 이어졌다. 이에 아시아나항공 노동자들은 촛불을 들었고, ‘땅콩갑질·물컵갑질’로 촛불 선배가 된 대한항공직원연대가 손길을 보탰다. 그렇게 공항의 촛불이 점화되었다.
 

세계적으로 연결된 공항, 그리고 노동자 

노 밀 사태로 정신없는 와중에 7월 9일~11일 3일간 예정되어 있던 ‘ITF(국제운수노련) 공항조직화워킹그룹 회의’가 열렸다. 미국, 독일, 네덜란드,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의 공항에서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하는 노조담당자와 현장노동자들이 모였고, ‘10월 공동행동’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결의하는 것이 회의의 목표였다. 첫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부터 세계 공항노동자는 모두 같은 현실에 놓여 있음을 속속 확인했다. 
  • 태국의 항공노동자들의 임금은 하루 10달러에 불과한데, 아시아최저임금연합이 요구하는 생활임금의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 인도네시아의 항공노동자의 시급은 1.5달러로 기본 생계를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 미국의 항공노동자 절반 가까이는 임금이 낮아서 식사를 거르거나 굶주림을 견디고 있다.  
 
 
먼 나라 이야기라기엔 우리와 너무도 비슷했다. 항공산업의 하청화, 비정규직 확대, 과도한 경쟁과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노동조건은 한국만이 아닌 세계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투쟁 사례와 목표를 듣는 것도 흥미로웠다. 
  • 네덜란드: 직종별 투쟁으로는 성공이 어렵고, 다양한 투쟁들이 종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항의 기업들이 좋은 정규직을 80퍼센트까지 사용하도록 하고, 임금을 최저임금의 130퍼센트까지 올리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싸우고 있다. 
  • 독일: 현재 지상조업체 별로 50개의 다른 기준협약이 있는데, 하나의 ‘산별협약’으로 통합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 미국: 과거에는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싸웠는데, 지금은 항공사를 압박하는 것이 핵심이라 생각하고 전략을 짜고 있다. … 시급 7.9달러를 받던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10달러를 넘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 인도네시아: 모든 항공노동자 조직을 목표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청소노동자, 케이터링(기내식)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어 연합체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 태국: 항공노동자 조직을 위해서 ITF에서 교육사업을 하고 있고, ‘태국항공승무원노조, 자회사노조, 공항공사노조’가 협력하여 전략조직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항이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듯이 공항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도 똑같이 연결되어 있었고, 이를 적극 활용하여 세계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이 계속 강조되었다. 미국의 전미서비스연맹(SEIU)은 10월 2일로 공동행동의 날을 제안했고, 참여국들은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히며 ‘세계 모든 공항노동자들의 공정한 임금과 노조 할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하기로 했다. 회의에서 우리가 조직할 수 있는 공항들을 쭉 적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 목표로 했던 공항 중 13개국 33개 공항이 함께 공동행동을 진행했다. 


전 세계 항공노동자의 힘을 하나로!

그렇게 공항에 타오른 촛불의 기세와 전 세계 항공노동자의 힘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실천이 만나,  10월 2일 ‘공항노동자 속풀이 대잔치’가 준비되었다. 이런 이름이 나오게 된 데에도 많은 고민이 있었다. 노조 할 권리는 어떻게 보면 막연해서 전달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다 공항노동자들의 괴로움을 풀어내고 또 다시 힘내서 살아갈 수 있는 해장국 같은 존재가 노동조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탄생한 컨셉이 ‘속이 시원하게 풀리는 해장국 같은 집회’다.

공공운수노조에 소속되어 있는 다양한 공항·항공 관련 조직들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공항이자 공항노동자들의 일터인 인천공항에서, 전 세계 노동자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보자고 제안했다. 4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자리를 깔고 앉지는 못해도 멀찍이 구경을 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 SEIU와의 투쟁 교류는 보다 깊어졌다. SEIU의 조합원이자 델타항공 소속 경비노동자인 오스카 안토니오Oscar Antonio 동지가 미국에서 출발해 한국을 방문했다. 공공운수노조에서는 인천공항지역지부 보안검색지회 강구홍 부지회장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연대투쟁을 나섰다. 전 세계 공항에서 공항으로 집회와 행진, 기자회견, 선전전 등이 이어졌다. 세계 항공산업 자본의 탐욕에 맞선 노동자들의 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해장국 같은 노동조합이 되자

이번 공동행동에 참가한 공항의 노동자들은 많은 힘과 자부심을 얻을 수 있었다. SEIU에서 보다 긴밀한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싶다는 의견을 보내온 만큼, 국제적으로 더 많은 것을 해볼 기회도 생겼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과제는 명확하다. 국제적인 투쟁과 실천을 벌여갈 공항의 ‘주인공’들을 더 많이 만나고 발굴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공항의 지상조업 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관심은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지만, 이 관심과 투쟁의 성과를 받아야 할 공항 노동자들은 삶의 고달픔이 더욱 크다. 노동조합보다는 ‘이직’이 더 선택하기 쉽고, 노동환경의 ‘안전’보다는 ‘위험’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속을 시원하게 해줄 해장국과 같은 대안으로 다가가야 한다. ‘조직화사업’이 모두의 목표가 되는 조직문화를 만들고, 투쟁방향을 세우는 과제가 내부적으로는 더욱 절실하다. 최근 공공운수노조에서 진행하는 ‘넙디 이동 상담소’에 공항의 청춘들이 발길을 향하고 있다. 계속해서 타오르는 공항의 촛불과 투쟁들이 그들에게 한줄기 희망으로 다가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발걸음들이 허망하게 돌려지지 않고, 다음 세계 공동행동의 날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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