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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 제46호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해야 하나

  • 박준형
민주노총은 지난 10월 17일, 임시(정책)대의원대회를 소집했다. 안건은 민주노총의 3대 운동 전략이었는데, 핵심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구 노사정위원회)였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 합의에 반발해 탈퇴했던 민주노총이 노사정 협의기구에 다시 참가할지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임시대의원대회는 성원 부족으로 개회조차 하지 못하고 산회하고 말았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개편

올해부터 임기를 시작한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 집행부는, 선거에서도 ‘사회적 대화 적극 참여’를 주장했었다. 문재인 정부도 제시한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 대화와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1월 초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의 노사정대표자회의 제안과 민주노총 위원장의 문재인 대통령 면담에 이어 1월 31일, 민주노총·한국노총(노), 경총·대한상의(사), 고용노동부장관·노사정위원장(정)으로 구성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개최된다. 이후 몇 차례 회의를 거쳐 4월에는 기존의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로 바꾸는 방안을 합의한다. 명칭만이 아니라 위원회 본회의 구성도 노·사·정만이 아니라 여성·청년·비정규직·소상공인의 ‘저(低)대변 그룹’을 포함하는 등 구성과 운영을 바꾼 기구였다. 이 합의에 따라 관련법도 국회에서 개정되었다.

5월 들어 정부·여당은 민주노총이 강력히 반발하는 가운데 최저임금법을 개악한다. 이에 대한 항의로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도 탈퇴한다. 사회적 대화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신뢰도 정부가 먼저 져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대화를 복원하기 위한 협의가 진행되었으나, 정부·여당이 최저임금법 개악을 철회하거나 재검토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도 복귀하지 않았다.

8월 하순, 민주노총은 개악법안 쟁점을 여전히 남겨둔 채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복귀했다. 노정 간 쟁점에 대해 협의가 시급하다는 이유였다.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 한 달만인 9월 말, 민주노총 집행부는 중앙집행위원회에 경사노위 참여에 관한 안건을 대의원대회에 상정할 것을 제안한다. 10월 중순에 개최되는 대의원대회를 불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상황이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개회조차 하지 못하고 유회된 데에는 대의원의 낮은 관심, 외진 대회 개최 장소, 주요노조의 투쟁일정 등 여러 이유가 있다. 그러나 쟁점 논의와 안건 상정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면, 대의원들에게 사전에 논의 내용을 전달하거나, 현장까지 토론이 진행하기에는 턱없이 시간과 노력이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의원대회가 개최되었다고 해도 내실 있는 토론이 되었을지는 의문이다.
 

경사노위 참여, 왜 쟁점인가

민주노총 집행부의 경사노위 참여에 대해 큰 우려와 반대가 제시되었다. 노동운동의 여러 정파도 모두 찬반 견해를 밝혔다. 논란 끝에 해당 안건은 중앙집행위원회가 아닌 위원장 직권으로 상정되었다. 일부 대의원들은 안건 내용을 반대하는 연서명을 했고, 이 안건을 이번 대의원대회에서는 다루지 말고 내년으로 연기하자는 수정동의안도 발의가 준비되었다. 

민주노총의 노사정 3자 대화기구, 사회적 합의기구를 둘러싸고 쟁점이 형성되는 데에는 역사적인 경험이 매우 큰 영향을 준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하에서 시작된 노사정위원회는 ‘공무원·교원의 단결권, 민주노총 합법화’와 ‘정리해고제·근로자파견제·탄력적근로시간제 등 노동유연화 정책 도입’을 거래하게 된다. 그 결과는 노동자에게 파국이었다. 이 여파로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는 사퇴하고, 새로 당선된 ‘현장파’ 이갑용 집행부는 총파업을 조직하지만 실패한다. 

이후 노무현 정권에서 다시 노사정위원회 참여 쟁점이 부활한다. 2005년~2006년 이수호 위원장 집행부 하에서 격렬한 입장 대립이 있었고, 대의원대회에서는 폭력사태도 벌어진다. 당시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반대한 노조 활동가들은 사회적 합의주의(코포라티즘) 자체를 반대하며, 노사정위원회 복귀가 1998년과 같은 방식의 양보로 귀결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내홍을 겪으면서 결국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포기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하에서 노사정위원회는 정권의 노동 정책을 충실히 합의해주는 거수기로 전락한다. 2015년에는 한국노총이 참여한 가운데 노동개악 정책이 합의되기도 했다. 그 때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서 빠져 총파업과 민중총궐기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이 참여해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노동 개악을 막기는커녕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은 기본권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권리들과 교환하거나 거래할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자신들이 약속했던 ILO 핵심 협약비준에 소극적이기도 하거니와, 노동유연화와 같이 노동자가 다른 권리를 양보해야 추진할 수 있다는 접근을 보인다. 과거 노사정위 악몽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의 낙관적 상황 인식

민주노총은 지금의 정세를 진단하면서, 경사노위 참여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이 더 후퇴하기 전에 현실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정부가 다른 심각한 양보를 강요하지 않고, ILO협약 비준부터 산별교섭 실현을 포함한 노동법 개정까지 노동계의 요구를 우선 수용할 것으로 낙관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독립적인 전망보다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 정책을 지지하고 완수하도록 밀고 가자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 
 
 
공약만큼이라도 노동존중 정책이 추진되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이미 올해 상반기에 최저임금법과 노동 시간 단축 제도가 개악되었다. 최저임금법 추가 개악,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가 공공연히 언급되고 있고, 임금체계 개악도 추진되고 있다. 경사노위 전초전이라고 할 노사정대표자회의 노사관계제도개선위원회에서는 ILO 협약 비준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개혁에 미달하는 내용이 제시되고 있다. 더구나 심각한 고용위기 상황을 맞아, 정부는 자본에 대한 규제 완화는 무엇이든 해준다는 기조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 규제만은 예외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하다. 정부의 노동정책은 명확히 경제정책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편, 민주노총이 아직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논의가 이미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서 진행되고 있다. 각종 의제별, 업종·계층별 위원회로 이미 구성되었거나 추진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노사정대표자회의 산하의 회의체이지만, 사실상 경사노위 산하 위원회가 될 것을 예정하고 구성되는 식이다.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 등 의제별 위원회 6개, 금융·보건의료·공공기관 등 업종별 위원회 약 10개, 청년·여성·비정규직 등 계층별 위원회가 그것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 내 다수 산별도 이를 비판하기보다는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하고 있어 문제다. 산별노조(연맹)들이 경사노위 산하의 여러 의제별, 업종·특성 위원회에 이미 이해관계가 있다. 민주노총이 제시하는 경사노위 의제(요구)에도 총노동의 요구와 업종·특성 요구가 혼재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민주노총이 총노동 차원의 정책·전략이 모호한 상황인 만큼, 노동(임금, 고용, 노동 시간) 신축화를 중심으로 한 총노동 과제를 양보하고 업종·특성 현안 과제를 얻는 방식의 협상이 이루어질 우려가 크다. 바로 1998년 노사정 합의 시 노동유연화를 수용하고 공무원·교원 단결권 교환했던 방식이다.
 

사회적 대화 참여, 민주노총은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제기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의제와 요구도 문제다. 민주노총은 교섭과 투쟁 의제로 사회안전망 확대, 적폐 청산, 후진적 노동관계법 개혁, 비정규직 철폐 및 차별 해소를 목표로 열거한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위기에 빠진 한국 자본주의 비판은 물론, 국민경제와 노동시장 전체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안 정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제시된 것이 없으니 민주노총 내의 합의가 이루어진 방향도 없다. 이런 조건에서 노사정 협상에 나선다 한들, 무엇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98년과 같이, 우선순위를 혼동한 가운데 실수할 우려가 크다.

민주노총이 밝힌 교섭전략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구체적으로 제시된 노동시장-노사관계 제도보다 중층적(다양한) 교섭 전략(산별교섭 등 실현)에 더욱 방점이 찍혀있다. 사회적 대화의 장에서 실현하려는 ‘내용’보다는 협의 틀 등 ‘교섭 형식’에 관심이 집중된 셈이다.

민주노총이 이렇게 판단하는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기업별로 격차가 큰 한국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서, 초기업 노사관계 형성이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사 간에 풀기 어려운 정책적인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사·정 협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노·사·정 협의와 초기업 교섭인가’가 더 중요하다. 총노동 차원의 노사관계, 노동시장 정책·전략과 산별의 정책(교섭 의제)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초기업 교섭틀 만 만든다고 기업별 노사관계가 작동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를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닌,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투쟁과도 연계할 수 있다. 또한 노사 간 해결할 문제에 대해 정부 지원을 활용해 타협점을 찾자는 인식은 자칫 조직노동자의 이해만을 위해 공공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도 있다.
 

민주노총, 자신의 전략부터 찾아야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 유회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년 정기대의원대회(1월말 예정)에서 경사노위 참여 안건을 재론할 예정이다. 정부는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사노위를 출범하는 이른바 ‘개문발차(開門發車)’를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다양한 노동 관련 쟁점을 경사노위에서 논의하겠다면서 민주노총의 참여를 꾸준히 압박할 것이다.

많은 노조 활동가들이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에 반대했던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한편으로 현재 추진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노총 내부의 정책적 입장 마련과 내부 합의 등 주체적인 준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민주노총은 한국경제의 위기와 이에 따른 자본의 공세, 문재인 정부 개혁정책의 한계가 드러나는 현재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해야 한다. 정부의 개혁정책에 낙관할 때는 아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 스스로 한국경제의 개혁을 위한 노동자계급의 대안을 구체화하고 현장까지 토론해야 한다. 그것은 당연히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과는 같을 수는 없다. 또한 정부·자본과 협상만이 아니라 제대로 투쟁할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내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다시 경사노위 관련 안건이 다루어질 때, 민주노총이 그때까지 이러한 노력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진행했는가에 따라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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