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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 제46호

제이식 노동자들의 공회 건설 투쟁과 ‘좌익 학생운동’

  • 천슈웨이
중국 광둥 성 선전 시는 개혁개방 이후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한 도시다. 2017년 기준 인구 1250만 명에 달하는데, 이중 약 800만 명은 호적상 이곳 시민이 아니면서 상주하는 거류민(대다수 농민공)이다.

중국인들은 선전, 광저우, 포산, 둥관 등 제조도시가 몰려있는 장강 하구일대를 ‘주삼각珠三角 지역’이라고 부른다. 주삼각엔 수많은 제조업 공장이 있고, 그곳엔 소위 ‘신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200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파업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 신노동자들은 대체로 젊고,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선전은 홍콩과 다리 하나를 두고 맞닿아 있는데 한동안 인근에는 수많은 노동NGO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기도 했다. 지금은 공회(중국의 노동조합)가 상당히 많이 건설됐고, 본토 내의 노동NGO 활동은 꽤 위축됐다. 최근 몇 년 간 주삼각 지역 공장들의 도산 위기와 더불어 중국 정부가 폭발적 노동자운동 성장과 지원 조직들을 제어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체제 내화하기 위한 일련의 ‘개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한 공장에서 일어난 투쟁과 이후 연달아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그와 같은 통제가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이른바 ‘제이식 투쟁’이다.
 

제이식 공장 투쟁의 전개

제이식과기유한공사(佳士科技股份有限公司; 이하 ‘제이식’)는 선전·충칭·청두 등 중국의 대도시에 공장을 두고 있는 선전주식시장 상장 기업이다. 지난 여름 이 공장에서는 잔혹하기 짝이 없는 투쟁이 벌어졌었다. 공장 내의 구타와 폭언, 휴식시간에 강제로 이뤄지는 도보 벌칙 등을 철폐하기 위해 공회(노동조합) 건설을 추진하던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관리자들은 평소 휴식 시간에 강제 도보를 시켰는데, 평범한 노동자 위쥔총은 위챗(중국의 에스엔에스) 공장 채팅방에 이를 조롱하는 말을 적었다. 며칠 후 위쥔총은 관리자들에 의해 구타를 당하고, 이틀 후 저녁 해고 통보를 받는다. 이에 노동자들은 지역 총공회를 찾아가 사측을 고발하는 투서를 냈다. 상급공회는 공회를 건설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이는 지난 20여 년간 계속된 광둥의 다른 기업공회 건설과 비슷한 흐름이다. 가입 서명을 모아 공회를 신고하면, 사측은 상급 공회의 중재로 노동자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고 상황은 종료된다.

한데 6월이 되자 사측 관리자들이 선수를 친다. 소위 ‘직공대표대회’라는 유사 공회를 만들어 사측의 심복을 앉힌 것이다. 이에 노동자들은 공회 가입서를 모아 7월 12일 하루만에 89명이 사인을 한다. 그러자 사측은 이들이 서명을 조작했다며 탄압을 준비한다. 양상은 이전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말이 지나자 공회의 노동자 대표 류펑화가 사측의 타겟이 된다. 어느 날 그는 두 명의 괴한에게 폭행을 당한다. 동료들이 달려와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도리어 류펑화를 구금했다. 이 폭행 사건은 여론을 뜨겁게 달궜다. 공회 건설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SNS에서 적극적으로 이 사실을 알렸다. 노동자들은 시내에서 선전전을 펼쳤다. 그러자 또 다른 노동자 대표 미지우핑도 타겟이 됐다. 미지우핑이 상급공회 관료를 찾아가 요구한 성명이 거절당하자마자, 경비가 미지우핑을 공장 밖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해고됐다.

며칠 후 아침. 노동자들은 정상 출근 투쟁을 시도하지만 보안요원에 의해 제지당했고, 몸싸움 끝에 공장 밖으로 쫓겨났다. 심지어 경찰은 백주대낮에 이들을 폭행하고 연행했다. 20여 명의 지지자들이 석방을 요구했지만, 몇 시간 후 일군의 경찰들이 나타나 이 지지자들을 우악스럽게 경찰차에 끌고 간다. 참으로 잔혹하고 뜨거운 한 주였다.

이후에도 투쟁은 순탄치 않았다. 상급공회는 노동자들을 져버렸다. 상급공회는 투쟁에 적극적인 활동가가 기업공회의 리더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장에서 파업이 발생하면 어느 정도 노동자의 편에 서지만, 타결이 되면 모든 걸 통제 하려 한다. 제이식 투쟁은 공회 개혁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공회는 노동자의 조직이기도 하지만, 집정의 대리조직이기도 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
 

새로운 노학연대의 출현

앞서 등장한 ‘일군의 지지자들’의 대다수는 대학생이다. 나중에야 드러난 사실이지만, 이들이 제이식 투쟁을 다른 양상으로 이끌기 시작한 장본인이었다. 이번 투쟁이 연안지역 노동자 투쟁과 확연하게 달라진 점은 바로 노학연대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베이징대학과 런민대학·난징대학·우한대학 등 중국 유수의 대학들에서 마르크스주의연구회 등 동아리 활동을 하는 ‘좌익’ 학생들이다. 여름 방학 시기 이들은 ‘노동자투쟁성원단’을 결성해 머나먼 광둥성에서 연대 활동을 펼쳤다.

당국과 학교 측은 부모까지 동원해서 학생들을 노동자들과 떨어뜨려 놓으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인 8월 24일, 리더 격이었던 베이징대 학생인 22살 위에신岳昕이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실종 상태이고, 그를 찾자는 호소는 계속되고 있다.

홍콩의 저명한 노동연구자 크리스 챈에 따르면 이들 ‘좌익 학생’ 대다수는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 등으로부터 마르크스주의의 맥락을 이해하고 있다. 유명 대학에서 전통 있는 마르크스주의학회와 삼농(농업·농촌·농민 등 중국의 농촌 문제를 일컫는 말) 동아리에서 활동해왔다. 이들은 노동 문제나 농촌 발전, 사회불평등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한다. 필자가 이들을 마주친 것도 피촌의 베이징노동자의집에서였다.

이들의 활동이 이렇게 활발하게 번지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크리스 챈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농민공들이 남방의 외자기업들을 중심으로 벌인 연이은 투쟁, 세계 시민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된 중국 내 노동NGO의 활동, 나아가 대안적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교육과 선전이 이 좌익 청년들의 행동을 계발했다.

필자가 몇 차례 이들을 만나며 느낀 것이 있다. 이들은 크리스 챈이 인식하는 것보다 중국 현대사와 마오주의의 과오에 대해 훨씬 많은 성찰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중국의 좌파들은 중국 사회 전체의 트라우마, 심리적·정치적 제한 때문에 침묵했다면, 이들은 과거에 대해 어떤 부담도 없고, 사회운동에 대한 의지가 넘친다.
 
 

등장과 함께 시작된 위기

하지만 이 좌익 학생운동은 출현과 함께 위기가 시작됐다. 베이징대학 마르크스주의연구회는 지난 9월 존폐의 위기에 처했다. 활동이 위축됐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왕성한 나머지 실천이 강화됐기 때문일 게다. 동아리의 지도교수였던 베이징대 마르크스주의학원의 한 교수는 등록 시기가 찾아오자 갑자기 자기를 포함한 마르크스주의학원 교수 모두가 동아리 담당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다행히 학생들은 다른 학과 교수 3명을 확보했다. 한데 마감 이틀 전 갑자기 세 교수 모두 담당할 수 없다는 말을 전했다. 당국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다.

놀란 학생들은 이 상황을 공개하기로 결심한다. 인터넷에 그간의 사정을 올리고 학내의 양식 있는 교수들의 도움을 호소했다. 이들이 모든 글은 조회 수 몇 만을 기록했지만 단 몇 시간 이 지나면 삭제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다행히 한 중문과 교수가 나타났고, 학생들은 등록 문서를 제출한다. 그러자 학생공작부 부부장은 갑자기 새로운 조건을 꺼내든다. 해당 교수의 ‘마르크스주의관’을 테스트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지켜보던 많은 학생들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며 비난한다. 상황은 완전히 다르게 정리된다. 마르크스주의학원장이 지도교수를 맡기로 한 것이다. 자신들의 시야 밖에 두기보단, 철저히 관리하겠는 계산일 게다. 썩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폐쇄는 막았다는 점에서 최악의 위기는 넘긴 셈이다.

역시 사회비판적이고 실천적인 기조를 드러낸 난징南京대학 마르크스주의열독연구회는 아예 등록이 취소됐다. 학교 측은 이 동아리의 등록 연장을 불허하면서 끝내 폐쇄 조치를 내렸다. 한국에서 볼 땐 동아리 등록이 안 돼도 활동을 계속하는 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중국 대학에서는 영향이 훨씬 크다. 어떤 공개적 활동도 보호받기 어렵고, 불법적인 사회 교란 행위로 간주되기 쉽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1일에는 난징대학의 새로운 당서기에게 항의하던 몇몇의 학생, 학자들이 경비들에 의해 질질 끌려 나가기도 했다.

비참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련의 상황은 분명 중국의 학생운동이 천안문 사태 때보다는 훨씬 급진화된 양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은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임을 자처하고 문화대혁명의 대의를 지지하지만, 그 전개 양상에 대해 좀 더 예리하게 성찰하려 노력하고 있고, 자유파 지식인들과 달리,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비판한다. 동시에 공산당 정부의 입장과는 독립된 사회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런민人民대학의 상황도 이를 잘 보여준다. 몇 해 전부터 신광평민발전협회新光平民发展协会라는 동아리의 학생들은 런민대학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었다. 이들의 주요 활동이던 노동자 야학이 지난해 역량과 참여 부족으로 중단되긴 했지만, 연대하던 노동자 일부가 해고되자 학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 활동을 펼쳤다. 비교적 마오좌파에 가까워 보이지만, 전 세대와는 또 다른 이들의 활동은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이 동아리 역시 제이식 현장활동에 참여했고, 현재의 탄압에 적극 저항한다. 일련의 상황들이 명징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확실한 듯하다.
 

왜 노학연대에 주목하는가

그렇다면 중국 정부는 좌익 학생들이 단지 노동자와 연대한다는 이유만으로 탄압을 하는 걸까?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몇 년 전부터 비판적이고 급진적이며 실천적인 ‘좌익 청년’들이 졸업 후 노동 현장에 적극 진출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 1월 광둥성 광저우에서 세미나 도중 느닷없이 연행된 한 스물다섯 활동가가 대표적이다. 그는 베이징대학 마르크스주의연구회에서 활동했고, 졸업한 후 노동자운동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얼마 후 풀려나긴 했지만, 이 사건은 중국 당국이 이들 ‘좌익 청년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건이었다.

제이식 공장 역시 몇몇의 ‘학출’ 노동자가 있던 공장 중 하나다. 몇몇의 청년들이 일하다가 공회 건설의 기회를 맞아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사측은 노동자들 중 몇몇을 꼽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이를 선전 시의 다른 기업에 공유하기도 했다. 사측에 따르면 이들은 ‘나쁜 의도’를 갖고 공장에 들어와 노동자들을 선동한 ‘외부세력’이다. 크게 알려진 사례이긴 하지만, 이처럼 공장에 진출한 ‘좌익 청년’의 사례가 비단 제이식 공장에 국한되진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이 흐름이 어떻게 조직되고 연결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어쩌면 공안 당국은 파악했을 수 있지만, 전말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더구나 올해 중국 정부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마르크스주의 학습을 강조해왔다. 이들 좌익 학생들이 가장 열정적인 20대 마르크스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탄압이 까다로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이들 ‘좌익 청년’들이 주요하게 참조하고 거론하는 전례가 바로 한국의 노동자운동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진보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해적판으로 중역되어 돌아다니는 《전태일 평전》과 구해근의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읽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여기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80년대 한국의 ‘지식인’(대학에 간 엘리트들)들이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고 집단적으로 공장에 진출하며 노동자운동의 폭발적 성장을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중국 내 몇몇의 좌파 대안매체들은 이 준비의 시간을 특히 강조했는데, 그때에도 여전히 언급되고 비교되는 것은 한국의 80년대다. 우리가 볼 땐 너무 전통적이고 빤한 해석일 수 있지만, 당면한 중국의 상황에서 청년의 실천을 촉구하는 데에 꽤 유용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물론 오늘날 중국의 노동자운동과 학생운동이 80년대 한국의 상황에 도달했다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현대 중국은 역사적으로나 제도적으로 한국과 다른 점이 많다. 중국의 사회운동이 반드시 한국의 전철을 따를 것이라 보긴 어렵다. 우선 탄압의 양상이 다르다. 70~80년대 한국은 직장에서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만들 수는 있었지만, 중국에서는 전총이 기층 공회에 꽤 정교한 억압을 하고 있어 자주적인 공회의 건설은 매우 험난한 일이다. 광둥 성의 노동운동을 오랫동안 지켜봤던 이는, 현 시기 파업과 공회 건설을 주도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스스로 기존의 공회에 그리 큰 불신이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대표의 민주적 선출권이나 개혁을 요구할 뿐이지, 독립적인 공회는 잘 요구하지 않는다.
 
 

중국 사회운동의 과제

한국인들이 보기에 중국은 사회주의 사회다. 그러니 ‘중국의 좌익’이란 게 대체 뭘 의미하는지 의아할 수 있다. 단순히 마오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도 있고, 사민주의자나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조차 ‘좌익’의 스펙트럼에 낄 수 있다. 개혁개방 이후 자본주의적 개변을 비판하고 보다 실천적 운동을 도모하는 이들 역시 좌익이다. 중국공산당은 이들이 중국 사회의 안정성을 해친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중국 사회의 유일한 희망은 중국의 자본주의적 퇴락을 저지하고 다시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분투하는 일군의 ‘좌익 청년’들이다. 우리는 이들이 ‘민간 사회주의 운동’과 아래로부터의 노동자운동을 재건할 수 있을지, 아니면 보다 긴 터널을 지나야할지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상처와 아이러니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논쟁 속에 있고, 적지 않은 지식인들은 겉보기에 ‘마오좌파’처럼 보이는 청년들이 주도하는 투쟁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좌익 학생운동’의 폭은 넓혀지고 있지만, 그들은 아직 자신의 비전이 무엇인지 포괄적으로 제시하진 않았다. 그러니 자신의 전선을 보다 확장하고 새로운 운동을 만들려면, 서구 사회가 선호하는 자유주의적 전망과 다르고, 집권당의 비전과도 다른 자신의 변혁 과제를 보다 설득력 있고 논리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들의 현실 비판과 정의감은 지극히 옳지만, 이런 난제를 풀어야 비로소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제이식 투쟁을 통해 우리는 기존 공회의 모순과 노동자운동의 난점도 다시 살펴볼 수 있다. 중국은 매우 거대한 나라이고, 웬만한 발전 국가보다 큰 영토를 지닌 29개의 성이 있으며, 각 성의 노동조직 상황도 제각각 다르다. 이를테면 광둥 성이나 톈진 직할시에서와 같은 기업 단위의 ‘단체협약’은 다른 성에선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공회 개혁의 차이 역시 매우 크다. 어떤 곳은 완전히 정부기관 같은 곳이 있고, 어떤 곳에선 기업 단위에선 대표를 직접 선출하는 등 일부 개혁이 이뤄진 곳도 있다. 그런 만큼 구체적 조건에 따라 노동자운동의 기초를 닦고, 공회 개혁을 아래로부터 추동하는 것이 여전히 현실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지난 30년 중국 내 노동자 투쟁들은 외국 자본과 농민공 간에 전개된 것이었다. 농민공들은 노동NGO의 지원을 받아 싸웠고, 노동NGO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든 글로벌 공급사슬 아래서 착취 받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초국적 자본을 감시하려 했다. 하지만 제이식 투쟁의 당사자들은 이미 중국 자본과 좌익 청년이 됐다. 이제 중국의 노동자운동은 서구 사회로부터 도움 받는 단계를 넘어 자기 스스로의 과제 앞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절묘한 타이밍에 일군의 좌익 청년들이 등장한 셈이다. ●
 
덧붙이는 말

[편집자 주] 이 글이 쓰인 이후 좌익 학생운동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이 더욱 거세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11월 11일 자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적어도 10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실종되었다. 본문에 언급된 베이징대학이나 난징대학, 런민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주도하는 캠페인, 동아리 활동에 대학 관리나 당국자, 심지어 신원 불명의 남성들이 폭행하거나 연금,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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